2025 미가


완전한 지혜 성구

1. 잠언 2: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2. 잠언 3:21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3. 미가 6:9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찌니라.





















1.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에게 주님의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옵소서. 모든 아픔과 고통을 주님의 능력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도 주님 안에서 온전히 치유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믿음과 평안을 위한 기도

평강의 하나님, 질병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성도에게 주님의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마음이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게 하시고, 모든 상황 가운데서 주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치료와 의료진을 위한 기도

주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성도의 치료를 위해 애쓰는 의료진들에게도 주님의 지혜와 손길을 더하여 주옵소서. 치료의 과정을 통해 회복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고, 성도의 몸과 마음이 강건해지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가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신 손길을 느끼고, 그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고통을 이겨낼 힘을 위한 기도

강한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성도에게 고통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치고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고난의 시간을 통해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강한 믿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기도

자비의 하나님,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와 함께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힘과 위로를 주옵소서. 그들이 성도를 위해 기도하며 헌신할 때 지치지 않게 하시고, 서로의 사랑과 격려로 어려운 시간을 함께 이겨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큰 병에 걸린 성도를 위한 성경구절

큰 병에 걸리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도 지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치유와 위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병이 들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이 말씀들이 아픔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 있고,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찾아보고 위로 받기 위ㄴ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치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기적적인 치유를 베푸시고, 때로는 믿음의 여정을 통해 치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시편 103:2-3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십니다

우리가 아플 때,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많은 아픔과 슬픔을 경험하셨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시며,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병이 들었을 때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고통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위로와 평안을 주십니다.

야고보서 5:14-15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또한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시편 34:17-18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병이 들면 두려움과 염려가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의 마음은 고요해지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십시오

큰 병을 앓을 때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붙드시며, 결국에는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시편 30:5

그의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붙드십시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욱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며, 그분의 나라에서 완전한 치유를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큰 병에 걸린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치료하시고 위로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함께하시며, 우리가 믿음으로 소망을 가질 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경 속의 다양한 주제와 상징, 지리와 생활에 대한 내용들을 한 곳에 모아 정리했습니다. 궁금한 내용이나 단어, 주제가 있다면 아래의 글에서 찾아 공부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전체 목록으로 넘어갑니다.





기도문 1 –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구하며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시간 병상에서 아픔과 불안 속에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 집사님(또는 형제/자매)을 주님의 품 안에 안아주시고,
하늘의 위로와 평안으로 감싸주시옵소서.
마음속 깊은 두려움과 염려를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께서 친히 안수하시고 만져주셔서
아픔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평안을 얻게 하소서.
지금 이 시간도 주님이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낙심 대신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문 2 –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지금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 성도님의 몸과 마음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생명의 기운으로 새롭게 하옵소서.
의사와 간호사의 손길 위에 함께하시고,
어떤 약보다, 어떤 수술보다도 더 강력한
주님의 치유의 능력이 임하게 하소서.
상한 마음은 위로로, 아픈 육신은 회복으로 채워주시고,
하루하루 나아짐을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문 3 – 평강과 담대함을 위한 기도

평강의 주 하나님,
이 병실 가운데 주님의 빛이 비추게 하시고
○○○님에게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새벽을 깨우는 희망의 사람으로,
이 시간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밤잠을 설치지 않게 하시고,
마음에 찾아오는 근심 대신 평안이 자리하게 하소서.
치료가 길어질지라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나를 회복시키시는 중임을 믿게 하소서.
이 과정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문 4 – 환자와 가족 모두를 위한 기도

주님, 이 병 가운데 고통 중에 있는 환우뿐 아니라,
곁에서 헌신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몸이 아픈 것만큼이나
돌보는 이들의 마음도 얼마나 힘들고 지쳐 있는지 아시지요.
주님, 가족 모두에게 위로와 회복을 허락하사
서로를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시고,
공동체의 기도와 손길이 이 가정에 위로가 되게 하소서.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부족함 없게 하시고,
무엇보다 주님의 돌보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소서.


기도문 5 – 감사와 믿음의 고백으로 드리는 기도

은혜의 하나님,
병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아픔이 고통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감사의 입술로 찬양하게 하시고,
병실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게 하소서.
믿음으로 선포하오니, 주님이 반드시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이 고난의 시간 가운데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을 의지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병원 심방 시 마음에 평안을 주는 성경 구절

환자와 가족에게 성경 말씀을 읽어주거나, 기도문 속에 인용하는 것은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특별히 치유와 소망, 평안을 약속하는 구절들을 선택하여 마음에 새겨주세요.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도우심을 확신하게 합니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보호와 위로가 함께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 대신 기도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평안을 약속합니다.)

예레미야 30: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상처를 치료하시고 온전한 회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모든 걱정과 염려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께서 돌보아 주신다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병상에 있는 환자를 위한 기도는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진심을 담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픈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세요. 여러분의 방문과 기도가 환자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10월 4일(토) 미가 5-7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완전한 지혜(6:9)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찌니라.
Listen! The LORD is calling to the city-- and to fear your name is wisdom-- "Heed the rod and the One who appointed it.

완전한 지혜(Perfect Wisdom)

8454. תּוּשִׁיָּה

1. 원조.   2. 계획.  3. 사려
발음 [ tûwshîyâh ]

어원  /  시어로만 사용됨, ‘성립시키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2회 사용
  •  1. 명사, 여성  원조, 욥6:13, 30:22, 잠2:7, 미6:9
  •  2. 명사, 여성  계획, 욥5:12.
  •  3. 명사, 여성  사려, 지혜, 능력, 욥11:6, 12:16, 26:3,잠3:21, 8:14, 18:1, 사28:29.
  • 관련 성경 /  계교(욥 5:12), 능력(욥 6:13), 지혜(잠 18:1, 미 6:9), 지식(잠 8:14).




󰃨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 '경외함이니라'에 대해서 혹자는 '보리라'(Keil, Kleinert)고 해석하나 시편 86:11에서처럼 '경외함이니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서 '경외함'이란 악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순종하는 삶의 자세를 가리킨다(McComiskey).

󰃨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지니라 

- '매'(마테)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한다(Calvin). 
선지자 이사야는 '마테'를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앗수르에게 적용시켜 사용한 바 있다(사 10:5,24). 
만일 선지자 미가가 이사야와 동일한 방법으로 '마테'를 본 구절에서 사용했다고 한다면, 본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될 앗수르의 침략을 예고한 것이 된다(McComiskey). 
하나님은 이미 '마테'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것을 결정하셨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테'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삶의 자세, 
곧 경외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마태(4294)<maṭṭeh> מַטֶּה

1. 나뭇가지.  2. 회초리.  3. 규
발음 [ maṭṭeh ]  
어원 / 5186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51회 사용



미가 6장은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강조합니다.

4941. 미쉬파트(mishpâṭ)  מִשְׁפָּט

1. 판단.  2. 레 19:15.  3. 욥 9:32
발음 [ mishpâṭ ]  
어원  /  819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424회 사용


2617. 헤세드(chêçêd) חֵסֵד

1. 욕구.   2. 열심.  3. 인자함  
발음 [ chêçêd ]  
어원 / 2616  
구약 성경  /  246회 사용

3212. 야라크( yâlak)    יָלַךְ

1. 가다.  2. 1980 참조.
발음 [ yâlak ]  
구약 성경  / 1549회 사용





백성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 묻자, 
하나님은 율법적인 제사가 아닌 올바른 태도와 행위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며, 백성들의 죄악된 행위와 그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시고, 궁극적으로는 회개와 순종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촉구하십니다. 

미가서 6장의 핵심 내용
  1. 하나님의 변론과 백성들의 묵은 죄
    • 하나님은 산과 땅을 증인으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과의 변론을 시작하십니다.

미가 6장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행위가 참된 지혜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피 묻은 율법적 제사가 아니라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가르쳐줍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모든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인도받은 은혜를 잊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공의를 잃고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악을 덮기 위해 외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행위들을 꾸짖으십니다. 



  • 참된 지혜란 무엇인가?
    • 미가 6장 8절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이 단순히 율법적 제사가 아니라, 정의롭게 살고, 자비를 베풀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곧 지혜
    • 미가 6장 9절에서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고 선포합니다. 

  • 이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고,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의 시작임을 의미합니다. 


  • 죄에 대한 심판과 순종
    • 하나님은 백성들이 지은 죄 때문에 내리는 매를 맞을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시며,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 참된 지혜는 이 징계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 온전한 지혜(잠언 22:17-29)

    지혜자의 생활은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지혜자의 말씀과 지식은 여호와 경외신앙을 가리키며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지혜의 가르침은 개인적 형태로 나타나기를 “지혜와 나(일인칭)”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제자도의 방법은 항상 이런 것입니다. 
    말씀이 개인의 마음에 보존되고 입술로 표현될 때 아름다움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르침, 기록, 그리고 말씀의 깨달음으로 진리에 응답해야합니다. 
    지혜의 생활은 기록된 바른 말씀에 착념해 그대로 순종하는 생활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노와 분을 품은 자와 동행하지 말라는 이유는 행위의 분을 따름으로 영혼이 올무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산업에도 말씀을 적용하는 일에 근실한 사람이 존귀하게 됩니다. 

    셋째,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지혜의 삶은 약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돌보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돼있습니다. 
    소자를 하나님이 신원하시기 때문입니다(20-21). 
    이것이 참 경건입니다(약1:27).


    온전한 지혜(미가6:9)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

    온전한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속성과 그분이 약속하신 것들, 그분이 원하시는 것들을 알때에 진정한 경외자가 되는 것입니다. 
    경외라는 것은 단지 두려워서 섬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힘을 가지고 계시며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진정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알고 경험한 사람은 진정으로 그분을 경외합니다.

    우리가 더욱 그분을 힘써 알고 그분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잠언서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다른 입장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옛말에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사람과 상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 근본이 같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지식은 아는 것입니다.
    지혜는 아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아는 것이라면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 지혜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지식과 지혜의 근본은 같은 것이 됩니다.


     




    성경은 보통 ‘완전함’이라는 것보다는 ‘온전함’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완전함이라고 하면 그 뉘앙스가 실수조차 없는 것, 곧 드러나고 표현된 것의 무결함을 뜻하고, 온전함은 표현 이전에 그 존재의 정체성의 무결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존재론적 말씀인 성경에서는 온전함을 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미가를 통해서 지혜의 완전함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는 그 앞에서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께 나아갈까?’라는 의문 혹은 질문의 연장선에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함이 표현된 어떤 결과의 무결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어떤 행동을 하나님께 가져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행위적인 관점에서의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 바로 지혜의 완전함이라고 답을 하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행할지 몰라서 그 완전함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곧 존재의 정체성을 경외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존재를 경외하지 않으니 행위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완전치 않은 것은 주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그 짧은 문장에 이런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행위의 완전함을 추구하기에 작은 실수도 창피해하고 그것을 극복하면 할수록 위대한 업적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까지나 그럴 수 없고, 항상 그럴 수 없으며, 무엇보다 마음에(존재의 본연에)서는 그렇게 할 명분이 없이 자기 밖의 세상의 가치관이 원하기 때문에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겉으로 완전함을 추구하는 그 모든 내면의 이유는 항상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아주 상식적인 말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한다는 것은 신앙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의문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을 알려고 학문, 곧 신학을 만들고 공부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공부를 했다는 증서를 기반으로 라이센스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함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인지를 궁리합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깊을수록 좋고 경건한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은 좋고 경건한 것이지만, 평생 그러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만드신 사람이 그 만드신 이의 목적을 아는 것을 퍼즐과 같이 두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무 쉽게,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만들어진 장난감처럼 쉽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결혼 이전에 순결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했던 것이라고 말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시대지만) 결혼을 하고 배우자 서로에게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함이듯, 하나님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는 것도 시절이 있는 것이지 그 시절을 지나서도 알지 못함은 순결 자체를 지킨다고 결혼하지 않는 어리석음과 같고, 열매 맺을 계절이 지났음에도 열매가 열리지 않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를 저주하신 사건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 때는 생물학적으로는 무화과가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었는데 저주하신 것은 무화과가 바로 이스라엘의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화과의 잎이 무성하듯 뭔가 부지런히 행하고 의문을 가지고 연구하고 난리 법석인데 정작 열매 곧 하나님의 의가 그 안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각종, 아니 모든 신앙적 의문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어려운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약한 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들어 놓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감춰두고 찾아보라고 하는 꼰대 같은 하나님이라 여기는 것과 진배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 곧 정체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곧 그 존재의 정체성에 경외하고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란 분은 당신이 만든 존재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완전함을 논함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쉽고 편안하게 알려 주시는 분이라 믿는 것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것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노라 입술을 놀리니 예수 믿는 것이, 성경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고상한척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지혜나 행위의 근간은 그 존재의 정체성을 아는 것입니다. 물건의 사용법을 알려면 그것이 왜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위함인지 부터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 곧 이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하면 그 어떤 것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험을 임함에 있어 문제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 왜 그런 것을 문제로 내었는지 모르는데 그 문제를 풀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경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래서 심지어 그것을 학문으로 만들어서 소학도 아니고 대학에, 대학원에 가야 배울 수 있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존재 정체성을 하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적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를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정체성을 모르고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동네 구석구석까지 교회를 세워 놓고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자고 하는 것은, 그래서 헌금내고 봉사한답시고 시간과 육신의 수고를 헌납하고 있는 것은 보이스피싱 당한 것과 진배없는 것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신을 믿는 것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면, 성경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더 나아가 우리는 사람이기에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완전함도 온전함도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שָׁלוֹם 스트롱번호7965
    1.

    온전한

    2.

    창43:27

    3.

    렘13:19.

    발음 [ shâlôwm ]
    어원
    7999에서 유래
    구약 성경
    237회 사용
    תָּמִים 스트롱번호8549
    1.

    완전한

    2.

    온전

    3.

    건전한

    발음 [ tâmîym ]
    어원
    여성 תְּמִימָה, 8553에서 유래
    구약 성경
    91회 사용

    완전한 지혜, 완전한 계시

    인간이 아무리 심오한 사상을 이야기한다 해도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고, 그것을 의존하여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진리는 자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수여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계시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스티븐 존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리는 문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로부터 옵니다. 진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계산되지 않고 계시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뵙기를 원하십니까?

    이 세상에는 완전한 계시를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분적인 계시와 지혜는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지혜, 완전한 계시는 신구약 66권입니다. 신구약 66권 외에는 완전한 지혜, 완전한 계시는 없습니다.


    10월 3일(금) 미가 1-4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죄의 근본(1:13)

    라기스 거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찌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You who live in Lachish, harness the team to the chariot. You were the beginning of sin to the Daughter of Zion, for the transgressions of Israel were found in you. 

    새한글성경 / 

    전투수레를 군마에 메게 해라, ⁕라기스에 사는 사람들아! 
    라기스는 죄가 시작된 곳이다, 딸 시온한테는. 참으로 너 라기스에서 이스라엘의 범죄들이 눈에 띄는구나.



    죄의 근본(레쉬트 핫탓트)

    라기스(3923)  לָכִיש                    스트롱번호  3923

    1. 유다 지파의 한 시골마을 ‘라기스’   2. 수 10:3   3. 12:11
    발음 [ Lâchîysh ]
    어원  /  ‘완강하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
    구약 성경  /  6회 사용
    • 1. 고유명사, 복수 유다 지파의 한 시골마을 ‘라기스’[요새화된 마을로서 전에는 가나안 족속의 왕성이었다], 수10:3, 12:11,15:39, 느11:30, 렘34:7, 미1:13.
    • 관련 성경  /  ☞라기스(수10:3, 12:11, 15:39, 느11:30, 렘34:7, 미1:13).

    근본(7225)  רֵאשִׁית 스트롱번호 7225

    1. 처음.  2. 이전의 상태.  3. 처음 것
    발음 [ rêʼshîyth ]  
    어원  /  
  • 관련 성경 /  ☞태초(창 1:1), 시작(창 49:3, 욥 8:7, 전 7:8), 처음(출 23:19, 느 10:38, 겔 48:14), 첫(레 23:10, 겔 20:40), 으뜸(민 24:20, 욥40:19, 렘 49:35), 장자(신 21:17), 맏물(신 26:2,10), 가장(삼상 2:29, 15:21), 근본(시 111:10, 잠 1:7, 미 1:13), 제일(잠 4:7).


  • 죄(2403)  חַטָּאָת 스트롱번호2403

    1. 죄.   2. 우상에 대해 적용되기도 함.  3. 속죄제   
    발음 [ chaṭṭâʼth ]
    어원  /  2398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21회 사용
    관련 성경  /  ☞죄(창 4:7, 레 4:3, 대하 6:25), 죄악(창 18: 20,사 5:18), 속죄제(출 29:14, 민 15:27, 왕하 12:16), 속죄 제물(레 4:32, 민 8:8, 대하 29:23), 속죄 희생(레 4:25), 허물(레 5:6), 잘못(레 5:10,11), 속죄(레 10:19, 민 8:7), 속건제(레 7:7), 번제(레 4:29), 죄악(시 32:5, 애4:6), 죄인(잠 5:22, 13:6), 벌(슥 14:19). 
    [동] 범죄하다(느 1:6, 욥 35:3).




     

    라기스 거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 '라기스'(라키쉬)는 '준마'(라레케쉬)와 운율을 이룬다. 
    라기스는 병거로 무장한 성읍이며, 그곳 거민들은 전쟁에 능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앗수르의 침략소식을 듣고 전쟁을 치를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파멸이다. 
    그들은 준비를 타고 도망을 치게 될 것이다.

    라기스는...네게서 보였음이니라 
    - 본 구절은 라기스가 멸망당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딸 시온, 곧 이스라엘이 범한 죄의 근원이 라기스에서 왔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 죄악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과 병거를 의지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라기스를 통해서 우상들이 이스라엘에 유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5-9절, Lange, Smith)

    라기스가 시온 즉 이스라엘이 범한 죄의 근원이라고 하는 두 가지 이유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과 병거를 의지하도록 이끈 것
    둘째는 라기스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우상들이 유입된 것  

    물론 두 가지 모두 타당하다고 하겠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백성들에게 우상을 전한 것이 더 큰 죄의 근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죄의 근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죄의 근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죄의 출발은 인간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기독교 전통은 일곱가지 근본적인 죄악을 강조합니다.
    첫째는 교만(驕慢) 
    둘째는 위선(僞善)
    셋째는 질투(嫉妬)
    넷째는 탐욕(貪慾)
    다섯째는 분노(忿怒)
    여섯째는 음행(淫行)
    일곱째는 나태(懶怠)  
    Pride, Hypocrisy, Envy, Greed, Anger, Fornication, Sloth

    본문말씀에 등장하는 지역은?

    13절에 "라기스" 
    15절에 "마레사"

    이렇게 두곳입니다.
    안타깝게도 축복의 말씀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다 저주의 말씀만 있습니다. 

    먼저 "라기스"를 향한 예언의 말씀을 살펴보면 
    13절에 미가선지자는 선포합니다. 
    "라기스 주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좀 더 원어적인 번역을 해 보면요 이렇습니다. 
    "라기스 백성들아! 빠른 말을 마차에 메고 도망가라!"

    ​라기스 사람들을 향한 예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도망가는 인생이 되지말자!" 입니다. 

    가끔씩 우린요 꿈을 꿉니다.
    좋은 꿈도 있지만 나쁜 꿈도 있죠?

    "마레사"라는 지역 사람들에 대한 저주의 말씀입니다.

    15절과 16절 말씀을 쉬운성경으로 읽어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15절엔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보내겠다!"라는 표현과 16절에 "너희가 낯선땅으로 끌려 갈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미가서 /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인가

    미가서의 메시지는 심판과 소망이 복잡하게 섞여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회악, 부패한 지도층, 그리고 우상 숭배으로 인한 이스라엘 심판을 예언합니다.
    이 심판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미가서는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변화와 영광을 선포합니다.
    소망과 멸망의 메시지는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회복과 변화는 심판 후에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핵심 구절: 미가 1: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7:18-19,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요약 : 
    선지자는 백성들을 착취하고 그릇 인도하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들, 제사장들, 선지자들을 정죄합니다. 이는 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멸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미가는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갈 사람들의 구원을 선언하고 예루살렘이 그 성을 대항하기 위해 모인 나라들을 파괴할 것이고 위로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상적인 통치자가 베들레헴에서 나와서 그 나라를 지킬 것이며 야곱의 남은 자가 승리할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여호와께서 어느 날 그 나라로부터 우상과 군사력을 의지하는 마음을 제거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선지자는 공의와 충성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대하여 강력하고 간결한 요약을 제시하고 오므리와 아합의 길을 따랐던 사람들에게 심판을 선언합니다. 이 책은 애가의 요소로 구성된 예언적인 전례로 마무리됩니다. 이스라엘은 죄를 고백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힘센 역사를 통해 구원을 받을 것을 확신합니다.

    예표 : 
    미가서 5장 2절은 동방 박사들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왕을 찾으면서 인용한 메시아적 예언입니다(마 2:6). 동방으로부터 온 이 왕들은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에서 평화의 왕이요 온 세상의 빛이 되시는 분이 나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죄와 회개와 회복에 대한 미가의 메시지는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롬 3:24-25)이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요 14:6)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성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용 :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진노를 당하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분의 아들의 희생을 통한 죄 사함을 거부하면 심판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인 우리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우리가 온전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죄가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을 아십니다. 온전함은 회복의 약속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미가서의 중요한 주제를 "심판"으로 보는 학자들은 이 면을 부각시켜 지적한다.
    즉 심판은 임박하여 이르렀고(1:2, 4), 또한 이미 임하였다.
    특히 이 심판으로 인해, 사마리아의 멸망을 당하게 되며(1:6, 7), 예루살렘에는 침략군들이 쳐들 올 것이다(1:15).

    추축시대(차축시대)

    지구는 23.5도 기우러진 상태에서 돌고 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주전 8세기부터 주전 2세기의 시대

    축의 시대(Achsenzeit)
    독일의 철학가 칼 야스퍼스가 고안한 표현으로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를 일컫는다.
    1949년 출간한 그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에 처음 등장한다.
    이 시기에 인도의 석가모니, 중국의 공자, 희랍의 소크라테스와 같은 여러 사상가들이 등장하였다.

    야스퍼스는 이 시기에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중국과 희랍 그리고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직접적 문화교류 없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이 시기에서 미래 철학자와 종교에 영향을 미친 핵심 사상가들과 그들 사이 공통적으로 떠오른 특징을 분류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들 아모스, 호세아, 미가, 이사야가 등장하였다.
    이전의 시대는 신화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신화와 더불어 영웅들이 등장한다.
    전쟁과 폭력이 빈번한 시대에 영웅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의 영웅이란 일상속에서 용기를 제공한 사람들을 말한다.

    축의 시대 

    기원전 900년경 부터 기원전 200년경
    고대 그리스, 인도 아대륙, 중국 대륙, 중동 등의 ㅈ지역에서 인류 문명의 큰 영향을 끼친 세계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하게 된 중요한 시기를 일컫는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아브라함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헤브라임증의 기원이 될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제2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활약하여였다. 

    중국 철학과 종교의 대표적인 시작들이 거의 이 시기에서 비롯되며 공자, 노자, 맹자, 장자다양한 철학자들과 학파가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브라만교의 개혁과 갱신이 시도되어 육사외도를 비롯한 인도의 사상 종교가 될 석가모니불교, 고전 힌두교가 생겨났다.

    이란에서는 자라투스트라가 전 우주의 작용이 선과 악의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을 하며 고전 이란의 종교로 위치할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하였다.

    그리스에서는 헬레니즘으로 이어질 호메로스탈레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소피스트 철학자들이 활약했고 투키디데스, 아르키메데스 등의 학자들이 나타났다.

    고작 몇세기에 이 모든 대표적인 고대의 지식인과 학자들이 그리스, 인도, 중국, 중동 지역 등에서 독립적으로 그리고 거의 동시기에 나타난 것이다.

    야스퍼스는 이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사상과 철학은 그리스, 인도, 중국, 페르시아에서 직접적 문화교류 없이 서로 독자적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카를 마르크스가 세계사의 과정을 원시공산사회 -> 노예사회 -> 봉건사회 -> 자본주의 ->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 공산사회 라고 주장하였다면 야스퍼스는 역사의 과정을 선사시대 -> 고대문화 -> 축의 시대 -> 과학의 시대 -> 두번째 축의 시대로 나눈다.

    알렉상드르 쿠아레라는 과학사학자가 주장한 과학혁명기 개념과 비교되기도 한다.





     

    7월 6일(화)
    죄의 근본(미가 1:13)

    미가서의 배경 /

    신흥제국 앗수르의 등장(앗시리아)
    제국은 욕망이 강하여 자기를 더 크게 하려고 전쟁을 벌인다.
    서쪽에 있는 나라 아람(르신)이스라엘(베가)은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게 대항하자.
    그러나 힘이 부족하므로 유다 왕국 아하스에게 동맹을 제안하였다.
    아하스 왕은 아람과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을 것이 아니라  앗수르와 동맹을 맺자.
    이때 아람과 이스라엘이 이 사실을 알고 유다를 공격하려고 군대를 동원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등장하여 아하스 왕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이사야 7:14).

    아하스는 앗수르와 손을 잡았으나 많은 조공을 바쳐야 하였다.
    유다의 첫번째 위기가 되었다.
    앗수르가 세력을 확장하여 아람의 수도 다마스커스가 732년,  이스라엘은 722년에 멸망시켰다.

    앗수르를 블레셋에 속한 나라들을 침략하였다.
    이 때 유다의 2차 위기 앗수르

    유다의 3차 위기 히스기야 왕 때 반란을 일으켰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46개의 성을 초토화시켰다.
    이때 라기스가 포함되었으며 미가 선지자의 고향이 라기스와 가깝다.

    미가야 /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미가 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미가 선지자(언어의 마술사)
    미가 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미가야)(마카야후)


    미가 1:8-9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마지막 시대에 도시들의 운명(10-15절)

    가드(술 짜는 틀) 호곡하지 말라
    2. 베들레아브라(먼지의 집) 티끌에 굴지어다
    3. 사빌(아름다운)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가라
    4.  사아난(밖으로 나가다) 나오지 못하고
    5. 벧에셀(근처의 집, 도피처) 의지할 곳 없음
    6. 마롯(고통, 비통) 복을 바라나 재앙이 임함
    7. 예루살렘(평화의 도성) 재앙(허물이 보인다)
    8. 라기스(무리) 준마에 병거를 메우라
    9. 가드모레셋(전별금, 약혼) 작별하는 예물을 주라
    10. 악십(메마른 시냇물, 기만) 속이리라
    11. 마레사(정복자) 너를 얻을 자가 임할 것이라
    12. 아둘람(피난처) 영광이 아둘람까지

    뉴욕(New York)
    새로운 항구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베소서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라기스 주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 라기스(병거로 무장한 성읍)

    라기스를 죄의 근본이라고 하는 이유?

    첫째는 하나님보다 군사력을 의지하는 것
    일반적인 해석의 견해

    둘째는 우상 숭배(1:5-9 참조)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우상이란 무엇인가?

    오늘날의 우상은 무엇일까?
    말과 말씀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모든 것
    말씀은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유명한 목사의 축도가 한국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성경적인 축도는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성경의 기록대로 축도를 하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에 언제부터인가 축도하는 목사들이 수식어를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어느 신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한경직목사님이라고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어느 모임에서 축도를 할 때 수식어를 더하여 시작한 것이 모든 목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따라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말은 헬라어로 "레마"라고 합니다.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상이란 "레마"를 "로고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대신한 모든 것이다.
    우상은 짝퉁 하나님이며 ‘만들어진 신(神)’이다.
    왜, 인간은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으로 섬기는가?
    그 이유는 죄 때문이다.
    죄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대용품으로 우상을 만들었다.
    우상은 형상뿐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포함한다.
    타락한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낸다.
    돈, 권력, 섹스와 수많은 탐욕의 부산물들이 우상이 된다. 

    우상과 우상숭배는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하나님을 섬겨야할 이스라엘.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 대신 가나안의 신들, 고대 근동의 우상들을 숭배했다.
    우상숭배는 개인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 전체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우상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우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성경이 말하는 우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이후 모든 인간의 역사가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타락의 결과는 우상 숭배이다.
    피조물을 신(神)으로 삼고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상은 어떻게 숭배되었으며 그 영향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성경과 고대 근동 자료,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우상들의 특징들을 쉽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우상"이라 하면 무엇이 떠 오르나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찰이 있는 불상을 먼저 생각하고 그러한 종류의 형상적인 나무, 돌 또는 쇠로 만든 우상으로만 단정해 버리기 쉽습니다.

    또 성경에서 표현된 우상에 대해서도 나무나 돌, 쇠로 만든 물질적인 형상에 대한 관심 외에는 깊이 있게 깨달을려고 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알려주시는 우상의 참된 의미에 대해 알게 된다면 너무나도 놀랍고 깊은 사실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만큼 성숙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하박국 2: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무엇을 알려주고자 하신 말씀인가?

    우상은 거짓스승(선지자 혹 목자)이요,
    하나님이 보내지 아니했지만 명예와 빵(재물)과 권세를 위한 거짓 스승(목자)을 짐승, 우상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상은 결국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는 거짓 스승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비어있거나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이천년 전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셨을 때 상황을 살펴봅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 말씀을 통해 그 시대를 들여다보면 그 시대에 세계 민족 중에 하나님께 유일하게 선택받았던 민족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요 권력자로 행세했던 서기관 바리새인, 율법박사들이 곧 우상(거짓스승)이었으며 그들을 섬기며 그들을 믿고 따르는 유대백성들이 곧 우상을 섬기는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 예수님 만이 참된 스승(목자)이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유대민족들은 참 스승이요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죽이라 하고 강도는 살리자 하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참여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누구였을까요?
    참 목자, 참스승행세를 하고 예수님을 귀신 바알세불로 만들어 버린 서기관, 바리세인들의 거짓 증언과 말에 속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리가 인정되면서 밝혀진 사실과 같이 결국 그 시대 유대땅에는 예수님 외에는 참 목자가 없는 우상(거짓 목자)천지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예언서인 다니엘서에도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2:36-38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과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우상의)금머리니이다.  

    이 말씀이 말세 종말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예언이고 주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때에 이루실 말씀인 것을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매우 중대하고도 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바로 이 우상이며 이 우상에게 모든 것 즉 인생들 새들 들짐승 어느 곳에 있는 것이든 "다 이 우상에게 붙이사 우상이 다 다스리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우상에게 붙어서 우상의 지배를 받고 있어도 나만은 괜찮겠지...라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다시 예수님 초림때를 살펴보면

    마태복음 23: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모세의 자리(거룩한 자리)에 앉았으며.

    그 당시 서기관, 바리세인들은 하나님의 참 목자 행세를 하며 오히려 예수님을 이단(우상=거짓스승)이라고 핍박하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선동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26-27
    형제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
    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당시 예루살렘 백성(신앙인)들은 마태복음 23:31~33에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사자로 가장한 마귀의 목자(우상)들을 섬기는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깨달은 결과입니다.

    오늘날 주 재림을 기다리는 때에도 인자의 때가 노아의 때와 롯 때와 같다고 하셨으니 천국에 소망을 둔 우리 신앙인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말과 말씀을 구별못하고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습관을 이제는 버리고 누가 참된 진리를 전하는 목자이며 누가 거짓을 전하는 우상목자인지를 심각하게 구분하고 분별하여서 참된 깨달음과 믿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모든 시대마다 참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었습니다.
    초림때도 예수님은 한 분이지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 바리새인들 같은 우상(가짜 스승)들은 많은 무리며 그들을 따르며 섬기는 신앙인들은 많았습니다.
    많은 무리가 옳다고 말하며 믿고 따른다고 해서 참과 거짓이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계 22:16) 교회들을 위하여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성경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것이며 진리의 영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오늘날의 신앙인 역시 우리 사람의 생각과 세상의 말을 깨끗이 버리고 성령의 생각과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믿어야 참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나니.

    우리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생각은 말씀에 있으므로 우리는 "말씀"에 입각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먼저는 나 자신이 우상, 즉 가짜 목자를 따르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 말씀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나도 모른 중에 저 2000년전 서기관 바리새인의 말만 듣고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는 헛된 이스라엘의 유대교 신앙인들과 같은 꼴이 되어 영원한 지옥불에 던지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가드

    뜻 : 술짜는 틀

    가자의 북쪽 32KM 지점.
    (1) 블레셋 5개 중요도시 중의 하나 (삼하 1:20). 이 다섯 성읍은 모두 팔레스타인 남해안과 그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각기 저들의 왕에 의해 통 치되었다(수 13:3, 삼상 6:17) 가드는 옛 가나안 도시로서 그 주민들 가운데는 가드족이라고도 부 르는 키가 큰 아나킴(Anakim)족이 팔레스 타인 산지에 널리 살고 있었다(삼하 6:10-11, 15:18,-22).

    (2) 다윗의 손에 죽은 골리앗의 고향(수11:22 삼상17:4).

    (3) 엘리 때에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독종이 전영되어 에그론으로 옮겼고(삼상5:8-10).

    (4) 다윗이 정복하요 이스라엘에 속하게 하였고 (대상18:1)

    (5) 다윗압살롬을 난을 피하여 다닐 때 생사를 같이 하겠다는 충성된 신하 잇대의 고향(삼하15:18-22).

    (6) 솔로몬이 부왕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에게 금족령을 내렸으나 위반하고 이곳에 간 줄을 알고 죽인 곳(왕상2:8,36,41,46).
    (7) 르호보암이 국방성을 건축할 때 이 성을 개수보강하였다(대하11:5-10).
    *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자들은 텔 에스 사피가 가드였던 것으로 더욱 유력시 되 고 있다.
    성서나 아시리아, 비잔틴 자료들을 재 검토하면, 가드가 불레셋의 북부 에 위치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베들레아브라

    '티끌 집(베트-레-아브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티끌 집에 사는 사람들아 티끌에서 뒹굴어라"는 의미입니다

    사빌(Saphil)
    아름다운

     아스돗(Ashkelon) 남동쪽 6km, 아소갈론에서 동북 약 11km 지점. 에브라임의 한 성읍인데 현재의 에스솨빌 이라 한다(미 1:11).

    가드 : 블레셋 지역의 큰 성읍 (의미) 술짜는 틀

    베들레아브라
    : 먼지의 집 / 하나님의 심판 앞에 먼지 속에서 뒹굴게 될 것이다.

    사빌 : 아름다운, 순결한 / 그 도시의 아름다움을 잃은 채, 벌거벗은 수치로 나아가게 될 것

    사아난
    : 밖으로 나가다  / 하나님의 심판 앞에 나오지 못하고 멸망하게 될 것

    벧에셀 : 근처의 집, 도피처 /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이 도시는 그 어디에도 피난하지 못하고 의지할 곳을 모두 잃어버린 채, 애곡하게 될 것

    마롯 : 고통, 수고, 비통하다  /  비통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

    라기스 : 무리 / 병거로 무장한 전쟁에 능한 자들이 있든 성읍. 준마에 병거를 매어 무리를 지어 도시로부터 도망치라

    가드모레셋 : 모레셋은 전별금과 발음이 비슷함. 약혼함 / 신랑을 잃은 신부처럼 작별하는 예물을 받게 될 것

    악십 : 메마른 시냇물기만 이란 뜻을 가진 성읍 /  여러 도시를 기만하며 속이는 거민들이 될 것

    마레사 : 정복자와 발음이 비슷함 / 그 땅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정복당하여 심판자 앞에 독수리처럼 대머리가 된 채, 모두 쫓겨나는 신세를 당하게 될 것

    아둘람
    :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숨었든 동굴, 피난처 /

     이 도시는 그 이름처럼 하나님의 심판 앞에 먼지 속에서 뒹굴게 될 것입니다.
    11절의 ‘사빌’은 ‘아름다운’의 뜻의 도시이지만, 이제 그 도시의 아름다움을 잃은 채, 벌거벗은 수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아난’의 이름은 ‘밖으로 나오다’라는 뜻이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 나오지 못하고 멸망하게 될 것이며,

    ‘벧에셀’은 ‘도피처’라는 뜻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이 도시는 그 어디에도 피난하지 못하고 의지할 곳을 모두 잃어버린 채, 애곡하게 될 것입니다.

    12절의 ‘마롯’은 비통하다‘의 히브리어 발음과 비슷한데, 그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13절의 ‘라기스’는 히브리어로 ‘무리’라는 의미와 흡사한데 하나님은 준마에 병거를 매어 무리를 지어 도시로부터 도망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에게 임할 심판이 얼마나 처참할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14절의 ‘가드모레셋’의 ‘모레셋’은 히브리어로 ‘약혼한’의 의미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신랑을 잃은 신부처럼 작별하는 예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악십’은 ‘기만’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그들의 이름처럼 여러 도시를 기만하며 속이는 거민들이 될 것입니다.
    15절의 ‘마레사’는 히브리어로 ‘정복자’라는 발음과 비슷합니다. 그 땅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정복당하여 심판자 앞에 독수리처럼 대머리가 된 채, 모두 쫓겨나는 신세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도시 위에 임하였고 그 앞에 화려한 도시들은 오늘날 돌 하나 남지 않고 모두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미가시대의 무너진 도시들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 이 도시, 서울을 바라봅니다.

    ἄθεος, ον 112 [athĕŏs]

    • 불신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엡2:12.

    O.N.O 스트롱코드 헬라어사전

    • 불순종[성경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나 복음에 대한 불신을 나타냄], 롬11:32, 엡2:2, 5:6, 골3:6, 히4:6,11.

    O.N.O 스트롱코드 헬라어사전



    ἀδίκημα, ατος, τό 92 [adikĕma]

    • 잘못, 범죄, 악행, 불공평, 불의, 상해, 행18:14, 24:20, 계18:5.

    O.N.O 스트롱코드 헬라어사전

    • 1.

      불의 성질:

    • 2.

      불의, 사악, 부정, 행8:23, 롬1:18, 고전13:6, 살후2:12, 딤후2:19.

    • 3.

      나쁜 짓, 악행, 고후12:13, 8:12.

    O.N.O 스트롱코드 헬라어사전



    ἀνομία, ας, ἡ 458 [anŏmia]

    • 1.

      무법, 불법.

    • 2.

      불법 행위, 마7:23, 13:41, 롬4:7, 6:19, 딛2:14, 살후2:3, 요일3:4.

    • 3.

      마음의 혼란 상태. δικαιοσύνη, 롬6:19, 고후6:14.

    O.N.O 스트롱코드 헬라어사전

    ἄνομος, ον 459 [anŏmŏs]
    • 1.

      불법의, 비합법적인, 무법의.

    • 2.

      [정관사 ὁ가 붙는 경우] 불법자=적그리스도, 살후2:8.

    • 3.

      [모세의 법에 근거하는 경우; 이방인에게 사용] 행2:23, 고전9:21.

    O.N.O 스트롱코드 헬라어사전

    ἀθέμιτος, ον 111 [athĕmitŏs]
    • 불법의, 무법의, 방자한, 방종한, 행10:28, 벧전4:3.

    O.N.O 스트롱코드 헬라어사전



    죄(罪)

    Distrust, evil, injustice, illegality


    불신 -

    ἄθεος, ον 스트롱번호112
    1.

    불신의

    2.

    하나님을 믿지 않는

    3.

    엡2:12.

    발음 [ athĕŏs ]
    어원
    1[부정불변사]과 2316에서 유래
    • 1.
      불신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엡2:12.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하나님이 없는(엡2:12).
    ἀνομία, ας, ἡ 스트롱번호458
    1.

    무법

    2.

    마음의 혼란 상태

    3.

    마23:28.

    발음 [ anŏmia ]
    어원
    459에서 유래
    • I.
      무법, 불법.
      • 1.
        마음의 혼란 상태. 《반》δικαιοσύνη, 롬6:19, 고후6:14.
        • a.
          [ὑπόκρισις와 함께] 마23:28.
        • b.
          [ἁμαρτία와 함께] 요일3:4.
        • c.
          [그외] 살후2:3, 히1:9.
      • 2.
        불법 행위, 마7:23, 13:41, 롬4:7, 6:19, 딛2:14, 살후2:3, 요일3:4.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불법(마7:23, 롬4:7, 요일3:4), 불의(히8:12)


    ἀδικία, ας, ἡ 스트롱번호93
    1.

    불의 성질:

    2.

    나쁜 짓

    3.

    불의

    발음 [ adikia ]
    어원
    94에서 유래
    • 1.
      불의 성질:
      • a.
        나쁜 짓, 악행, 고후12:13, 8:12.
      • b.
        불의, 사악, 부정, 행8:23, 롬1:18, 고전13:6, 살후2:12, 딤후2:19.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불의(행1:18, 살후2:10), 행악(눅13:27), 옳지 않은 (사람)(눅16:8), 공평하지 못한 것 (고후12:13).


    ἀδίκημα, ατος, τό 스트롱번호92
    1.

    잘못

    2.

    범죄

    3.

    악행

    발음 [ adikĕma ]
    어원
    91에서 유래
    • 1.
      잘못, 범죄, 악행, 불공평, 불의, 상해, 행18:14, 24:20, 계18:5.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옳지 않은 것(행24:20), 불의한 일(계18: 5), 부정한 일(행18:14).




    불신(不信) 요한복음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in regard to sin, because men do not believe in me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호세아 12: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무릇 나의 수고한 중에서 라 할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Ephraim boasts, "I am very rich; I have become wealthy. With all my wealth they will not find in me any iniquity or sin."


    불신 두스피스티아 dyspistía δυσπιστία

    불선 운세온 Oúnseon Ούνσεον

    불의 프로게로스 flogerós φλογερός

    불법 아디키아 adikía  (αδικία)


    불선(不善) 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Anyone, then, who knows the good he ought to do and doesn't do it, sins.


    불의(不義) 요한일서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All wrongdoing is sin, and there is sin that does not lead to death.


    불법(不法) 요한일서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Everyone who sins breaks the law; in fact, sin is lawlessness.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역사의 기원과 목표"(Der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1949년에 발표된 중요한 저서로, 인간 역사와 존재의 의미를 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탐구한 작품입니다. 
    이 책에서 야스퍼스는 역사의 의미와 목적을 규명하려고 하며, 인간 역사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전환점과 ‘역사적 순간’의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합니다.

    1. 역사의 기원과 목표 : 책의 주요 질문

    야스퍼스는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 역사의 기원은 무엇인가?

    • 역사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는 인간이 겪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근본적인 전환점과 그 전환이 인간의 존재와 세계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야스퍼스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의미와 역사의 방향성, 그리고 역사를 통한 인간 존재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논의합니다.

    2. 역사의 기원 : 인간의 전환적 순간

    야스퍼스는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 즉 ‘역사적 순간’(Achsenzeit, Axis Age)을 강조합니다. 

    그는 역사를 단순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특정 시점에 의해 형성된다고 봅니다. 
    이 시점은 기원전 800년에서 200년 사이에 발생했으며, 그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철학적, 종교적 혁명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 시기를 "역사의 축" 혹은 '축의 시대'(Axis Age)라고 부릅니다.

    - 축의 시대의 핵심

    이 시기 동안, 인류의 역사적 사유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변화들은 각각의 문화와 문명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났지만, 그 내용은 매우 유사하며, 인간 존재와 신, 인간과 사회,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야스퍼스가 언급하는 중요한 역사적 혁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리스 철학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의 철학자들이 인간 존재, 도덕, 윤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 인도 : 불교와 힌두교의 발전, 특히 부처와 베다의 가르침은 인간의 고통과 구속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했습니다.

    • 중국 : 공자와 노자 등의 사상가들이 윤리와 사회의 질서를 재정립하려는 철학적 활동을 벌였습니다.

    • 이스라엘 : 유대교의 발전과 함께 하나님과 인간, 신과 도덕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변화는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인 존재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인간이 역사적 존재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 존재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기반이 됩니다.

    3. 역사의 목표 : 인간의 존재와 자유

    야스퍼스는 역사의 목표를 인간 존재의 진화적 목표와 연결짓습니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건들이 단순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게 이해하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공동체적 존재로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역사가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 역사의 목표로서 인간의 자유

    야스퍼스에게 역사는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게 인식하고 자기 실현을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와 자유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타자,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작업입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정치적 자유를 넘어서, 내면적 자유, 즉 자아의 실현과 도덕적 자율성을 의미합니다.

    - 도덕적 책임과 공동체의 중요성

    역사는 또한 인간이 도덕적 책임을 자각하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야스퍼스는 주장합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선택이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고 봅니다.

    4. 역사의 의미와 종말 :

    야스퍼스는 역사의 목표가 반드시 특정한 ‘최종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대신, 역사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과정으로, 인간 존재의 발전은 특정한 최종적인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아를 실현하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어떤 종말론적 관점을 배제하고, 역사는 계속 변화하며 열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역사는 결국 인간의 자유와 자아 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으로, 끝없이 이어져 가는 변화와 발전의 과정입니다.

    5. 결론 :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야스퍼스는 역사를 단순히 과거 사건들의 나열로 보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과 그것의 발전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인간이 겪는 역사적 변화 속에서 자유와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는 존재론적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그는 역사가 특정한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라기보다는, 계속해서 열린 가능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여정임을 제시합니다. 
    이 책은 역사, 존재론, 자유, 그리고 인간의 자아 실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인간 존재와 역사적 과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중요한 저서로 평가됩니다.
























    일곱 가지 대죄(Seven Deadly Sins):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경고

    일곱 가지 대죄(Seven Deadly Sins)는 기독교 윤리학에서 인간이 피해야 할 주요 악덕을 지칭합니다. 이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도덕적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위험한 속성으로 간주됩니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구성됩니다:

    1. 교만(Pride):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타인을 깔보는 태도
    2. 탐욕(Greed): 물질적 욕망과 끝없는 소유 욕구
    3. 색욕(Lust): 통제되지 않은 성적 욕망
    4. 질투(Envy): 타인의 성공과 행복을 질투하거나 원망하는 태도
    5. 폭식(Gluttony): 과도한 음식 섭취와 절제의 부재
    6. 분노(Wrath): 억제되지 않은 분노와 복수심
    7. 나태(Sloth): 영적, 도덕적 또는 육체적 게으름

    역사적 기원과 발전

    초기 기독교의 뿌리

    일곱 가지 대죄는 4세기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에 의해 처음 개념화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가장 흔히 빠질 수 있는 여덟 가지 악덕을 정리했으며, 이는 후에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 정리되어 현재의 일곱 가지 대죄로 발전했습니다.

    중세 신학과 그 영향

    중세에 들어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에바그리우스의 여덟 가지 악덕을 정리하고, 이를 일곱 가지 대죄로 확립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는 이를 철학적, 신학적으로 분석하며 대죄의 본질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죄악의 구조를 설명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과 철학의 융합을 통한 중세 사상의 거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중세 스콜라 철학의 정수를 이루어냈습니다. 아퀴나스는 그의 주저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을 통해 철학적 이성적 

    일곱 가지 대죄는 중세 예술과 문학에서 자주 다루어진 주제였습니다. 
    특히,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의 다양한 층이 각각의 대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죄와 처벌의 연결성을 강조했습니다.

    일곱 가지 대죄의 심층 분석

    1. 교만(Pride)

    교만은 일곱 가지 대죄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는 자신을 신보다 높게 여기거나 타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교만은 타락한 천사 루시퍼의 타락 원인으로도 해석됩니다.

    2. 탐욕(Greed)

    탐욕은 끝없는 물질적 소유 욕구를 의미합니다. 이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관계를 왜곡시키며, 환경 문제와 같은 현대적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3. 색욕(Lust)

    색욕은 인간의 성적 욕망이 도덕적 한계를 넘어선 상태를 뜻합니다. 이는 개인의 자존감과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할 위험을 내포합니다.

    4. 질투(Envy)

    질투는 타인의 성공과 행복에 대한 부정적 감정으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5. 폭식(Gluttony)

    폭식은 과도한 음식 섭취와 자원 낭비를 포함합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현대인이 직면하는 과잉 소비 문제와 연결됩니다.

    6. 분노(Wrath)

    분노는 통제되지 않은 감정으로, 이는 폭력적 행동과 복수심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가정 폭력, 사회적 불안 등 현대의 다양한 문제와 연결됩니다.

    7. 나태(Sloth)

    나태는 영적, 도덕적 게으름을 나타냅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기술 의존성과 무기력을 부추길 수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현대적 비판과 적용

    비판적 관점

    일곱 가지 대죄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지나치게 도덕적 규율을 강조한 관점으로 비판받습니다. 특히, 개인의 자유와 심리적 욕구를 억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 심리학과 갈등을 빚습니다.

    현대적 적용

    현대 사회에서 일곱 가지 대죄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 교만: 소셜 미디어에서의 자기 과시
    • 탐욕: 자본주의와 부의 불균형
    • 색욕: 디지털 시대의 성적 물질화
    • 질투: 비교 문화와 불안
    • 폭식: 환경 파괴와 소비주의
    • 분노: 인터넷에서의 혐오 발언
    • 나태: 과도한 기술 의존과 생산성 저하

    일곱 가지 대죄와 인간성

    일곱 가지 대죄는 단순히 인간의 약점을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도덕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각 대죄는 우리가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를 포함합니다.


    기독교 전통에는 일곱 가지 대죄(大罪)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만, 분노, 나태, 시기, 탐욕, 탐색, 탐식입니다.
    일종의 칠거지악(七去之惡)입니다.
    "칠거지악"은 한자 뜻 그대로 “제거되어야 할 일곱 가지 악”이란 뜻이지요. 

    신세대한글학회 회장 류 박사에게 전통적인 용어들을 현대적 감각을 살려 번역해 달라고 했더니 아래와 같이 보내왔습니다.

    1.  교만(Superbia, Pride):                           공작새                   “잘난체”

    2.  분노(Ira, Wrath):                                    사자                       “죽을래”

    3.  나태(Socordia, Sloth):                           달팽이                    “귀찮아”

    4. 질투(Invidia, Envy):                                뱀                           “배아파”

    5.  탐욕(Avaritia, Greed):                            두꺼비                     “더더더”

    6.  탐색(Luxuria, Lust):                               염소                        “밝힘증”

    7.  탐식(Gula, Gluttony):                              돼지                       “배터져”

     




    죄의 근본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떠나 자신을 주인 삼는 것이며, 이는 교만과 하나님 불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죄의 본질은 성경에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며 그 기준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는 상태로 이어집니다. 
    죄의 근본적 원인 (기독교적 관점)
    • 교만:
      모든 죄의 근본이 되는 교만은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서 내쫓고,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죄의 영향
    죄는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서 밀어내는 행위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죄는 육신, 즉 세상적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며, 인간은 죄의 통로를 통해 죄에 잠식당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자신의 의지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모든 행위와 마음이 죄의 본질입니다. 

  • 자신이 선과 악의 기준이 되는 것: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정죄하는 행위가 죄의 근본이며, 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 죄의 근본은 무엇인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죄가 온 인류의 근본적인 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은 죄가 그렇게 큰 죄입니까?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내쫓은 죄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비록 작은 영역 같아도 하나의 왕국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은 왕이셨습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귀가 하와에게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줍니다. 
    ‘하나님이 정말 선하신가? 
    진짜 좋으신 하나님이면 다 먹으라고 하시지, 절대로 죽지않아. 저걸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대.’
    그런데 하와가 이 유혹을 뿌리치지 않고,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악과가 다르게 보입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합니다(창 3:6). ⠀
    ‘하나님은 왜 저렇게 맛있어 보이는 걸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은 선하시지 않은가 봐.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처럼 되는 걸 싫어하시나 봐.’

    이렇게 마귀가 주는 마음을 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서 내쫓은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왕 되심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롬 1:28).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하나님인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도 저것도 응답해주세요. 성공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 되면 하나님을 저주하고 부인하고 떠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자기가 하나님인 사람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끊어져 있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왕이 예수님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알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옥에 갈 죄인임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나는 지옥에 갈 죄인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 왕 되시는 것이 부담스럽고 솔직히 하나님이 안 보시는 곳에서 내 맘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살아서 망가진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라고 회개하며 예수님께 자신을 드리게 됩니다.

    자기의 중심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 깨달아지고 인정이 된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정한 구원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 말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마태복음 7:21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마태복음 3:8

    이르되 주(主 주인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 사도행전 16:31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7가지 큰 죄

    (잠 6:16-19)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영국의 황태자가 죄인들이 수감되어 있는 감옥을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황태자를 만난 죄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모두 억울한 사람을 잡아 가둔 게 틀림없었습니다. 황태자는 실망했습니다.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가 『무슨 죄로 들어 왔느냐』는 황태자의 질문에 『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를 짓고 들어와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황태자가 『그 중 가장 무거운 죄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죄수는 대답하기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죄가 가장 큰 죄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황태자가 그 죄인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모르는 큰 죄인이었소.』 황태자는 북받치는 눈물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황태자는 그 죄인을 곧 석방시켜 자신의 비서로 삼았습니다. 루소는 말하기를 『과실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회개치 아니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 있는 자는 항상 자기를 쳐서 주님 앞에 회개하고 복종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됨을 면하라』(히 3:13)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로마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무지』가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라고 말했습니다. 불교에서는 탐욕이 가장 큰 죄라고 하여 세상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산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불효가 가장 큰 죄라고 말합니다. 공자는 세상에는 3,000가지 죄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악한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희랍에는 교만이 큰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살인죄 즉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모르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바로 큰 죄입니다. 십계명중 가장 큰 죄는 우상숭배입니다.

    죄란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구약에는 613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모세의 십계명에서 10개로 축약되고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두 가지로 압축되었으니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마 22:37) 인데 이것을 다시 한 말로 줄이면 『사랑』입니다.

    구약 613개 율법을 엑기스를 뽑아 정제하면 한 덩어리 『사랑』만이 남습니다. 그럼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죄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하라 한 것을 하지 않았으니 이는 또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며 죄의 본질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았으므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죄, 즉 대장격인 죄로 ① 교만 ② 거짓(위선) ③ 시기심. 질투 ④ 탐욕(우상숭배) ⑤ 원망, 분노(화냄) ⑥ 정욕(음행) ⑦ 나태(게으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1. 교만

    일곱 가지 죄목 중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교만인데, 이는 교만이 모든 죄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예전에는 천사였는데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교만한 생각 때문에 쫓겨났다고 전합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삼하 22:28)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시 119:69)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 보다 나으니라.』(잠 16:18, 19)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8:12)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 21:4)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23)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 5-6)

    2. 거짓, 위선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 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시 101:7)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 6:19)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잠 14:5)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잠 19:5)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잠 21:28)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 28)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막 13:22)

    <질문> 성경에 거짓말하다 죽은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리고 아간이 있지요.

    3. 시기심, 질투

    성경 상에 나타난 시기와 질투의 사례 몇 가지를 보면,

    1) 가인이 동생 아벨의 재물은 하나님이 열납하셨으나 자기의 재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지 시기함으로 아벨을 죽입니다.(창 4:3-8)

    2)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여종 하갈이 먼저 잉태하여 자기를 멸시하자 이를 시기하여 하갈을 학대하므로 하갈이 결국 도망하게 됩니다.(창 16:4-6)

    3) 야곱의 처 라헬과 레아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므로 여종들을 야곱과 동침하게 만듭니다.(창 30:1- 15)

    4) 요셉의 형들이 아비가 요셉을 그들보다 더 사랑함을 알고 시기하여 애굽의 종으로 팔아버립니다.(창 37:4- 11)

    5) 사울이『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는 여인들의 소리를 듣고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합니다.(삼상 18: 7,8)

    6) 바벨론의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합니다.(단 6:3,4)

    7)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십자가에 못박도록 고소합니다.(막 15:9,10)

    8)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시기로 비방하고 핍박합니다.(행 13:45, 행 17:5)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욥 5:2)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 14:30)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 8:6)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마 27:18)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막 7:22)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롬 1:2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행 7:9-10)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딤전 6: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약 3:14- 16)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6)

    4. 탐욕, 우상숭배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 119:36)

    『무지한 치리자는 포악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잠 28:16)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전 7:7)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 12:15)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14)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갈 5: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 5:3)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5)

    5. 원망, 분노(화냄)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잠 23:2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7-10)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며』(빌 2:14-15)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약 5:9)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 1:16)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편 37:8)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잠 7:9)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잠 14:17)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1:19)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 29:22)

    『너는 조급하게 분노하지 마라.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의 가슴에 머무는 것이다.』(전 7:9)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20)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6. 정욕, 음행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7)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전 5:1)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 7:2)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5: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살전 4:3-5)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벧후 2:18)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7. 게으름, 나태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 12:2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 13:4)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잠 15:19)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잠 19:2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잠 20:4)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 21:25)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 22:13)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 3:10)

    찬송가 282장 (통 339장)『큰 죄에 빠진 날 위해』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2. 내 죄를 씻는 능력은

    주 보혈 밖에 없도다

    정하게 되기 원하여 주께로 거저 갑니다

    3. 큰 죄악 씻기 원하나

    내 힘이 항상 약하니

    보혈의 공로 믿고서 주께로 거저 갑니다

    4. 내 죄가 심히 무거워

    구하여 줄 이 없으니

    내 의심 떨쳐 버리고 주께로 거저 갑니다

    5. 죄용서 하여 주시고

    내 마음 위로하심을

    나 항상 믿고 고마와 주께로 거저 갑니다

    6. 주 예수 베푼 사랑이

    한없이 크고 넓으니

    내 뜻을 모두 버리고 주께로 거저 갑니다 아-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죄의 유혹이 언제나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벧전5:8)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쫓지 말라.』(잠1:10)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엡4:22) 또한 주님께서는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47-48)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의 무서움을 알고 죄의 유혹을 거절하는 결단을 내리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우리 성도들 모두가 세상의 불의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고 하나님 앞에 축복받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죄 짓는 근본 원인을 알아야 죄를 이깁니다(열왕기하 6:1-14)

    크고 견고한 성 여리고를 정복한 이스라엘의 다음 목표는 아이 성이었다.

    그 성은 작고 숫자도 많지 않아서 이삼천 명만 보내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쟁의 결과는 패배였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증거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날이 저물도록 슬퍼하며 있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려 있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도둑질하여 속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다음 날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나오게 하여서 유다 지파를 뽑았고, 그들 중에 족속대로 나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으며, 그들 중 각 남자를 나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중 각 남자를 나오게 하였더니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가 숨긴 물건들과 그의 아들 딸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재산들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돌로 치고 불살랐다.

    이처럼 죄의 근원을 찾아내어 그 뿌리를 제거하므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되었다.

    문제의 발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주님은 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는데 그 이유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계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어디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하고 찾아서 회개하고 다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 선지생도가 도끼질을 하다가 빌려온 도끼를 물에 빠트리고 말았다.

    지금이야 도끼 한 자루 잃어버린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는 도끼를 쉽게 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빌려온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은 안절부절이었던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도끼가 어디에 빠졌느냐?” 하고 묻는다.

    선지생도가 그 빠진 곳을 가리키니까 엘리사가 나뭇가지 하나를 베어서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 것이다.

    생도는 기뻐하면서 그 도끼를 집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의 여정에는 이처럼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그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아는 것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알 때 해결 방안이 나온다.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짓는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죄를 짓지만 대부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그에 대해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크든 작든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자각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다.

    문제는 지은 죄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믿는 자라도 대부분 죄를 해결할 때 자기가 지은 목록적인 죄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여 주님의 보혈로 용서를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못 가서 또 그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결국 죄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죄 짓고 회개하고 용서받고 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용서받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죄를 끊지 못하면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다른 종교에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도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물고기나 자라 등을 방생한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를 대신 씻는 것이다.

    힌두교는 겐지스 강물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씻는 의식을 갖는다.
    그것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반복될 때 다른 종교인들과 다를 바가 없으며 무엇보다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내가 짓는 죄의 근원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죄를 지으면 그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또 이 몸이 죄를 지었다고 한탄하고 몸을 학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죄를 짓는 죄의 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곳에 있는 것이다.
    죄의 몸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불완전한 상태의 몸이다.

    로미서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따라서 이 몸은 가만 놔두면 당연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죄를 짓는 것은 이 몸(소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이 죄를 짓는 죄의 몸을 지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옛 사람이다.

    이 옛 사람은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아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이다.

    그래서 이 옛 사람은 죄의 몸을 지배하여 끊임없이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옛 사람은 또한 죄의 세력(SIN)의 지배를 받는다.

    죄의 세력(하마르티아)은 권세, 힘을 가지고 있어서 내 안에 있는 죄를 짓고자 하는 본성인 옛 사람을 주장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옛 사람이 죄의 몸을 지배하여 죄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죄를 짓는 죄의 몸에 집중하지만, 죄를 짓게 하는 근본적 원인은 죄의 몸이 아니라 죄의 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죄의 세력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죄의 세력의 지배를 받는 죄를 짓고자 하는 아담 안에 있는 본성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죄의 세력이 주장할 대상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죄의 세력을 자연스럽게 무력하게 된다.

    그리고 죄의 몸은 장애자 선언을 하여 죄의 몸조차도 죄의 세력에 지배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죄의 몸에 장애자 선언을 하는 것은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죄의 몸에 장애자 선언을 하는 것은 왕의 명령(케리그마)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닌 것이다.

    왕의 신하가 어명으로 사약을 받으면 그 사약을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어명, 즉 왕의 명령이기 때문에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장애자 선언을 하는 것은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명령인 주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순종하고 그에 따르면 된다.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데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일을 매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 죄를 범하는 일과 회개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을 매일 하게 되면 우리에게서 죄를 짓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며, 결국 죄를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지은 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죄를 짓게 하는지 그 원인을 밝히 알아야 한다.

    죄에 대하여 무지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죄에 대하여 무지한 자였다.

    그래서 맨날 죄를 짓고 또 그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울며불며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 죄를 끊기 원하지만 죄는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내가 이 십자가 복음을 몰랐더라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의 세력을 알고 그 죄의 세력에 지배당하는 옛 사람의 존재를 알고 보니까 내가 그동안 알지 못하여 악순환을 반복하였던 내가 너무도 불쌍하게 보였다.

    이제 죄의 세력을 밝히 보고 매일 아침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죄의 몸은 장애자 선언을 하여 불의의 무기로 쓰임받던 몸을 이제는 의의 무기로 주님께 드린다.

    (롬 6:12-13)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주님...
    십자가 복음을 알게 하셨음을 감사하나이다.
    무엇보다 십자가 복음에 머물지 않고 장사 복음과 부활 복음으로 나아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죄의 권세 아래 있던 자가 이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아래에 있음이 복이 되었나이다.

    주님...
    죄의 쳇바퀴에 휘둘려 넘어지고 쓰러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失存이 이제는 주의 품안에 거하는 實存이 되었나이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으므로써 나의 옛 사람은 죽었고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무덤에 장사됨으로 그 안에서 성소를 짓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에 연합하여 일으키심을 받아 이제는 새 생명으로 살아가나이다.
    나의 힘이 되신 주님...
    당신의 권세가 이제는 나의 권세가 되었기에 그 권세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나이다.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는 것은 내가 주님의 품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 영혼은 주님과 함께 춤을 춥니다.

    세레나데를 부르며 왈츠를 춥니다.
    영원을 잇대어 살아가는 나에게 영생이 임하고 주의 영광을 보나이다.
    나는 참으로 자유하며 행복한 자입니다.
    주님께 이 모든 영광 올려 드리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