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오바댜



에돔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
  
내용개요
오바다서는 구약의 선지서 중에서 가장 짧은 책이다. 
하나님은 본서를 통해 에돔 족속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 
에돔은 이삭의 장자인 에서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는 사실상 형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들은 세일 산을 거점으로 하여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여 왔다. 
그런데 그들은 원래부터 하나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자신들의 강력한 군사적, 경제적인 힘만을 의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다(1-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스라엘과는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른 국가들보다 이스라엘을 더욱 핍박하고 심지어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의해 침략 당할 때는 그것을 기뻐하고 같이 노략질까지 일삼았다. 
하나님은 이로 인해 그들을 심판하시기 로 한 것이다(10-16절). 
그러나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선민인 이스라엘의 구원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에돔의 심판과 함께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17-21절).


강해
오바다 선지자는 유다에 행한 에돔의 잔악한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에돔에게 징벌을 내리실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유다를 대적한 에돔의 심판 예언은 곧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유다가 대적 에돔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에돔의 죄악을 징벌하신다는 본서의 내응은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로우심을 증거하여 주며 핍박받는 의인에게 승리의 소망이 됩니다.  

1 . 심판받을 에돔

1) 스스로의 교만으로 속은 에돔
여호와께서는 에돔을 미약하게 만드시어 크게 멸시를 받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교만하여 중심의 교만으로 스스로 속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교만한 죄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에돔의 교만을 꺾어 낮추심으로써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용납지 아니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죄가 모든 죄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어 주권적인 뜻에 따라 높이시기도 하고 낮추시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인 것입니다. 
에돔이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였듯이 이스라엘도 교만함으로 심판을 받아야 했고 모든 인간의 범죄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교만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a. 교만하여 악을 행함(대하 26:16)
b. 교만하면 낮아짐(잠 29:23)
c. 마음의 교만이 속임(렘 49:16)

2) 에돔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른 나라에게서 수탈한 보물을 다시 다른 나라 백성에게 수탐당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그들과 약조한 자들과 그들의 식물을 먹는 자들을 이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허망한 것임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앗수르와 애굽과 약조를 맺었지만 결국엔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a. 가까운 친우가 배반함(시 55:12-13)
b. 가까운 친구가 잊어버림(욥 19:13)
c. 형제마다 속임(렘 9:4)

2. 에돔의 죄악

1) 이스라엘에 행한 에돔의 포학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구체적인 이유는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에 동참하였음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수욕을 입게 하고 영원히 멸절시키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과 형제국으로서 이방국들이 예루살렘을 짓밟을 때 방관하거나 이스라엘의 패망을 기뻐하지 말아야 했으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악이 단순한 이스라엘에 대한 악행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도전적 행위였던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선택된 백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범죄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심이 취소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행한 에돔의 포학을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보응하신 것입니다. 
에돔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비히 행하여야 했지만 어리석은 그들은 오히려 교만하여 이스라엘을 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a.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함(시 83:5-6)
b.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에 기뻐함(시 137:7)
c. 유다를 쳐서 원수를 갚음(겔 25:12)

2)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열국을 심판하실 날이 가까웠음을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열국을 심판하시되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므로 모든 자에게 그 행위에 상당하는 보응을 내리십니다. 
악인에게는 그 죄 값을 치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인 것입니다. 
열국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죄목은 우상 숭배와 이스라엘에 대한 포학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들의 형상으로 바꾸어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만국을 심판하실 때에 에돔도 심판을 받게 되어 그 들이 이스라엘을 침과 같이 다른 민족에게 침을 당하게 하시어 에돔이 본래 없었던 것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자들의 말로는 소멸당하여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악인의 흥왕함을 허용하시지만 결국에는 악인을 소멸시키심으로써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a. 행한 대로 갚으심(시 137:8)
b. 황무케 하심(겔 35:15)
c. 유다를 쳐서 원수를 갚으심(욜 3:7)

3. 이스라엘의 회복의 날

1) 이스라엘의 회복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시는 날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승리하며 회복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 심판을 받아 이방인들로 말미암아 멸망당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히 버리신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바다 선지자의 예언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어 이스라엘은 회복하여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a. 시온이 공평으로 구속됨(사 1:27)
b. 백성이 다 의롭게 됨(사 60:21)
c. 다윗의 무너진 천착이 회복됨(암 9:11)

2)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승리와 완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성도들이 승리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장에서의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중적인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구원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고 나라가 여호와께 속한다 는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심판주로 오시어 모든 악의 세력을 멸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방국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은 오늘날 성도들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에게 핍박을 받으며 언제나 실패하는 것 같지만 결국엔 하나님 나라 백성이 승리하여 악한 세력을 멸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세워질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a. 유다가 영원히 서게 됨(욜 3:20)
b. 거룩하다 칭함을 얻음(사 4:3)
c.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구원(욜 2:32)

결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적인 승리와 회복을 체험한 존재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 모든 것의 완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날의 승리를 고대하며 현재의 고난을 인내로써 극복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단어해설]

3절. 중심의 교만. / 하나님을 경멸하고 자신의 힘을 믿은 에돔의 교만을 가리킨다.

6절. 수탐. / 사람의 행위를 면밀히 조사하는 것뿐 아니라 약탈하기 위해 집을 샅샅이 수색하는 것을 나타낸다.

10절. 수욕. / 기대와 어긋남으로 인해 겪게 되는 당황과 곤혹 뿐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당한 결과로 얻어지는 불명예를 의미한다.


[신학주제] 에돔의 멸망 원인. 

에돔은 근원상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스라엘과 달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다. 
본장에서는 바로 에돔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거역한 죄이다. 
선지자는 에돔의 죄를 지적하면서 먼저 그들의 교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당시 에돔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힘만을 믿고 하나님을 경멸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는 형제인 이스라엘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환난을 기뻐하고 같이 핍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이웃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며 공의에 벗어나는 불의한 행동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본 장의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측면의 삶의 기준을 보여 준다.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수직적 관계와 공동체 구성원간에 실현해야 할 사랑과 공존의 수평적 관계이다. 
이 두 가지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며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성도들의 삶의 기준인 것이다.


[영적교훈]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살다 보면 남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힘들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서로 무관심한 관계가 되어 버렸고 익명의 시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이런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 못지 않게 사람들끼리의 사랑과 공존을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록 바쁘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지를 살피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도움을, 소외된 자들에게는 위로를 주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10월 1일(수) 오바댜 1장
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1:21)

구원자들이 시온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Deliverers will go up on Mount Zion to govern the mountains of Esau. And the kingdom will be the LORD's.

* 속하리라(1961) 하야(hâyâh) הָיָה

1.  있다.  2.  어떤 자에게 속하다.  3. 섬기다 
발음 [ hâyâh ]  
구약 성경 /  3549회 
관련 성경 / ☞(장막을) 치다(창 13:3), 임하다(창 15:1, 수 22:20), 계시다(창 31:5), (싸우고) 있다(삿 12:2), 섬기다(삼상 2:11), 만나다(삼상 6:9), 속하다(삼하 9:9), 따르다(왕상 16:21, 호 3:3), 같다(시 50:21), 두다(출 25:15), 더하다(출 9:3), 성취하다(잠 13:19), 이루다(겔21:7, 39:8), 지치다(단 8:27), 얻다(슥 8:10).


오바댜서 1장 21절에 나오는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에돔의 멸망과 함께 시온 산에서 구원을 얻어,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구절은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이후, 구원받은 성도들이 시온 산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는 미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바댜서의 배경
  • 오바댜 선지자 :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을 때 활동한 선지자로, 그가 받은 계시는 주 하나님이 에돔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말씀의 의미
이 말씀은 모든 나라와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 될 것이며, 그분만이 궁극적인 통치자이심을 강조합니다. 
에돔의 멸망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드러나고, 이후 구원받은 자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많은 성경 해석가들은 이 구절이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과 복음으로 세워질 교회를 통해 성취될 것이라고 봅니다

  • 에돔의 심판 :
  • 유다 멸망 당시 유다를 대적하고 조롱했던 에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그 교만과 포학이 멸망의 이유입니다. 

  • 구원자들의 등장 :
    에돔이 멸망한 후, 시온 산에 구원받은 자들이 올라와 에돔을 심판하며, 그들이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주권 :

  • 이 말씀은 모든 나라와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 될 것이며, 그분만이 궁극적인 통치자이심을 강조합니다. 
    에돔의 멸망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드러나고, 이후 구원받은 자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많은 성경 해석가들은 이 구절이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과 복음으로 세워질 교회를 통해 성취될 것이라고 봅니다.

  • 구원과 심판의 완성
     :  론적으로, 구원과 심판의 완성은 악을 심판하고 의를 회복하며, 모든 피조세계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한 사역의 최종적인 성취를 가리킵니다. 
    '구원과 심판의 완성'은 신학적으로 세상 끝날, 즉 종말에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믿는 자들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악한 세력을 멸하고, 신자들의 영생과 부활을 완성하며,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총체적인 과정을 포함합니다. 
    구원의 과정과 심판의 의미
    • 구원: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 보호, 영생, 그리고 성화의 전 과정을 의미하며, 칭의(의롭게 여겨짐)와 현재적 삶을 거쳐 미래에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을 얻는 전 과정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완성이라는 개념의 의미
    • 종말론적 완성:
      '구원과 심판의 완성'은 세계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궁극적인 결론을 나타냅니다. 













  •  


    앞 구절(19,20절)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 내용을 요약한다. 
    즉, '에서와 산'이라는 단어로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다.

    구원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 '구원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쉬임'(*)은 '예솨'(*)에서 온 말로 전쟁에서 얻은 승리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합 1:2;  3:13, 18). 
    여호수아라는 이름도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고, '예수'도 이와 같은 어원을 갖는다.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 본 구절의 '나라'는 직접적으로 '에돔'을 의미하지만, 세상 나라 전체를 가리킨다. 
    즉, 모든 세상적인 나라가 타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리라는 점을 말한다. 
    이는 예수께서 사탄의 세력을 파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여 그들을 당신의 나라로 불러들이신 사역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났다.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the Kingdom will be the LORD's)

    구원자들이 시온산에서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면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구원자들이란 전쟁에서 승리한 자를 말합니다.
    에서의 산이란 에서의 후손 즉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이 세웠던 나라를 말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약에서 예언된 구세주 즉 메시야를 믿고 구원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구원자가 되어 이 세상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 위에 우뚝 일어설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성경은 마지막 시대의 영적인 특징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갈(영적 기갈)(아모스 8:11) 
    둘째는 불법이 성행(사랑의 고갈)(마태복음 24:12)
    셋째는 냉랭(冷冷)한 믿음(소극적 믿음)(누가복음 18:8)

    냉랭하다(冷冷)
     
    1. 태도가 정답지 않고 매우 차다.


    라오디게아교회
    요한계시록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열정(熱情)은 감정 중 하나로, 어떤 일에 대해 뜨거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특정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강하고 다루기 힘들거나 간신히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나 성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용어이다. 열정은 아이디어, 제안 또는 명분에 대한 간절한 관심이나 찬사에서 그 범위가 다양할 수 있다. 관심이나 활동을 열정적으로 즐기는 것, 사람에 대한 강한 매력, 흥분 또는 감정이다. 일반적으로 정욕이라는 용어가 암시하는 것보다 더 깊고 포괄적인 감정을 암시하며 종종 황홀경 및 고통의 개념을 포함하지만 로맨스 또는 성적 욕망의 맥락에서 사용된다. 


    유의어뜻이 서로 비슷한 말

    • 열의
      어떤 일에 대한 강한 의욕이나 관심
    • 정열
      강한 감정이나 열망
    • 열정적
      강한 열의나 감정을 가진 상태
    • 흥미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한 관심이나 매력
    • 몰입
      어떤 일에 깊이 빠져드는 상태
    • 열망
      강한 소망이나 바람

    반의어뜻이 서로 반대되는 말

    • 무관심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상태
    • 냉담
      감정이 없거나 차가운 상태
    • 무기력
      활력이 없고 힘이 없는 상태
    • 소극적
      적극적이지 않고 소극적인 태도
    • 우울
      기분이 처지고 우울한 상태
    • 지루함
      흥미가 없어 따분한 상태



    열정이란 무엇인가 한자어의 유래와 의미


    열정(熱情)이란 단어는 한자로 '열(熱)'과 '정(情)'이 결합된 형태로, 각각의 한자가 지닌 의미를 통해 이 단어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열(熱)'은 뜨겁거나 열렬한 상태를 나타내며, '정(情)'은 감정이나 정서를 의미한다

    즉, 열정은 뜨거운 감정, 강한 열의를 뜻하는 것으로, 어떤 일이나 목표를 향해 불타는 마음가짐을 표현한다 열정은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단순히 감정의 차원을 넘어, 목표 달성을 위한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열정은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열정은 때때로 부정적인 측면도 지닌다 지나치게 열정적일 경우, 일에 몰두하여 건강을 해치거나,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열정이란 무엇인가 한자어의 유래와 의미

    따라서 열정은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자아의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열정을 잘 조절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열정은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예술가나 운동선수는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이들은 자신의 열정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 나간다 이러한 사례는 열정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열정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목표를 향한 끈질긴 노력과 뜨거운 감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열정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며, 그 열정을 적절히 조절하여 건강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열정은 우리에게 삶의 활력을 주는 요소이며,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Enthusiasm (열정) : 긍정적이고 활기찬 감정. 어떤 활동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강한 흥미와 긍정적인 에너지 포함한다.

    Passion (열정) : 주로 개인적인 가치나 믿음에 근거한 높은 흥미. 감정적으로 깊게 연결된 강한 욕구나 애정을 의미.

    Fervor (열정) : 강렬하고 격렬한 감정. 일반적으로 열정적인 상태가 더 강조된 상황에서 사용되며, 감정이 뜨거움을 강조한다.

    Ardor (열정) : 고무적이고 뜨거운 감정을 나타내며, 종종 로맨틱한 느낌을 갖는다. 사랑, 열정, 혹은 애정에 대한 감정을 강조할 때 사용.

    이 단어들은 유사하지만 각각의 미묘한 차이로 다양한 문맥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열정과 관련된 단어들은 감정의 강도나 성격에 따라 선택되며, 상황에 따라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절은 앞 구절(19,20절)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 내용을 요약한다. 
    즉, '에서와 산'이라는 단어로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다.

    구원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 '구원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쉬임'(*)은 '예솨'(*)에서 온 말로 전쟁에서 얻은 승리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합 1:2; 3:13,18). 
    여호수아라는 이름도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고, '예수'도 이와 같은 어원을 갖는다.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 본 구절의 '나라'는 직접적으로 '에돔'을 의미하지만, 세상 나라 전체를 가리킨다. 
    즉, 모든 세상적인 나라가 타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리라는 점을 말한다. 
    이는 예수께서 사탄의 세력을 파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여 그들을 당신의 나라로 불러들이신 사역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났다.



    소선지서 중에는 그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몇 권의 책이 있습니다

    오바댜는 자신을 "여호와의 종"이라고만 밝혔을 뿐 그가 언제 살았던 사람인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엘리사 시대에 오바댜라고 불린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오바댜서를 기록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구약 성경에는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13명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왕상 18:3, 대상 3:21, 27:19, 대하 17:7, 스  8:9,  느 10:5, 12:25 참조). 
    또한 오바댜의 메시지를 읽어보면 엘리사 시대에 나타난 오바야의 특성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나타납니다.  

    2.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오바댜 서의 기록 연대는 주전 850년부터 주전 400년 사이로만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전 850년은 님이 언급하신 여호람의 통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400년은 말라기가 활동했던 구약의 마지막 시대입니다. 
    오바댜의 연대는 이 450년(주전 850-400년)기간 중에 활동했다고 알 수 있을 뿐, 그때가 언제인지는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3. 오바댜서에 대한 연대에 대해서 가장 설득력을 가진 견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람의 통치시기(주전 848-841년)로 보는 견해
    둘째는 유다가 포로된 직후인 주전 578년경으로 보는 견해

    첫 번째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바댜를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람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여자 아달랴와 결혼했습니다(왕상 22:44, 대하 18:1, 21:6, 22:3, 4, 10). 
    * 여호람 + 아달랴

    여호람은 자기의 보좌를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 형제들을 모두 죽였는데, 이런 일은 사악한 아달랴에게 영향력을 입어서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대하 21:4). 
    그리고 후에 아달랴는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기의 손자들을 죽였습니다(대하 22:10). 
    첫 번째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바댜가 바로 이처럼 혼란한 시기에 예언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때에 하나님께서 오바댜를 불러서 남쪽의 에돔 족속에 대해 예언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오바댜가 이스라엘에 대해 교만하게 행한 에돔의 멸망을 예고했다고 주장합니다(옵 11-14).

    3. 두 번째 견해는 에돔의 멸망을 선포하는 오바댜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일치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쓰여진 다른 선지자들 역시 에돔이 바벨론과 공모를 한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렘 49:7-22, 겔 25:12-14, 35:5-6. 애가 4:21-22, 시 137:7).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시기에 쓰여졌는데, 오바댜의 내용은 이 선지자들의 글과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렘 49장을 보면 오바댜서와 내용이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렘 49장과 오바댜서가 공통된 자료를 인용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오바댜서에는 유다가 포로된 후에 등장하는 소망의 메시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참고해서 일부 학자들은 오바댜가 활동한 시기를 유다가 바벨론 포로가 된 직후인 주전 578년 경으로 보고 있습니다(이 시기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활동했던 때입니다).

    4,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견해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첫 번째 견해의 장점은 성경상의 위치에 있습니다. 
    학자들은 소선지서 중에서 앞에 나온 호-욜-암-옵-욘-미가가 유다가 바벨론의포로가 되기 전에 쓰여졌고, 
    뒤에 나오는 나-합-습-학-슥-말라기는 그 후에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앞에 나오는 오바댜서의 연대가 제 9세기인 여호람 시대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견해의 장점은 내용에 있습니다. 
    오바댜서에서 묘사되고 있는 상황과 메시지는 유다가 바벨론 포로가 된 직후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나 에스겔의 내용 역시 오바댜서가 포로 직후에 쓰여졌다는 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바댜의 연대 문제는 아직도 미확정적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오바댜서가 구체적으로 자신이 활동했던 시대와 자신이 오바댜서를 기록한 연대를 밝히고 있지 않은 만큼, 이 문제는 누구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대 문제는 이런 주장들이 있다는 것을 참고하고,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분명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모든 요소들을 충분히 생각해보고 나서, 자기 자신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바댜서(Obadiah)

     

    구약의 예언서 가운데 가장 짧은 책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앞으로 당할 불행한 운명과 심판에 관한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능력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오바댜서는 기록된 모든 예언서 메시지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바댜는 그의 짧은 메시지를 통해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믿음 없는 이방 족속 위에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믿음을 지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하고 있다.

     

    이 작은 책은 큰 죄에 해당하는 자만과 오만함에 대한 위험, 즉 다른 사람들을 착취함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우월 감정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오바댜는 잠언의 진리를 도표로 그리듯이 입증하고 있다(욥 1:3-4).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저자 : 
    오바댜라는 이름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 오바댜서의 저자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기록 연대 :
    오바댜서 자체가 저자의 출신 지역이나 시기, 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 등과 같은 배경에 대해서 아무런 사실도 제공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크게 보면 여호사밧 왕의 아들인 여호람의 통치기간 동안이라는 주장과, 아하스 왕의 통치기간이라는 주장, 그리고 BC 586년에 있었던 바벨론의 예루살렘 함락 사건 바로 직후인 BC 586년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오바댜 1:11의 내용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이 내용 자체가 선지자가 목격한 과거의 사건인지 아니면 순수한 예언인지에 따라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만약 이것이 선지자가 경험한 내용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바벨론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던 사건(BC 586)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반면에 이 내용이 순수한 예언이라면 이 책이 기록된 시기는 아마도 여호람 왕 시대에 블레셋과 구스와 아라비아 사람이 연합하여 유다를 침략함으로써 궁중의 모든 재물이 약탈되고 아내들과 아들들이 탈취되었을 때(대하 21:8-10; 왕하 8:20-22 참고)일 것이다.

    소수의 학자들 이외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바댜서의 기록 연대를 BC 6세기로 보고 있다. 
    이 연대를 가장 뒷받침해 주는 것이 유다의 멸망 때 에돔이 유다를 침공한 것에 대한 언급이다(옵 11-16; 애 4:21-22).

    오바댜서의 특징 : 
    오바댜서는 전체 분량이 21절밖에 안되는, 예언서 가운데 분량이 가장 적은 책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는 다른 예언서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신학적 토대들이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민족과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하셔서 공의로써 심판하신다. 
    특별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 12:3)의 아브라함 언약이 오바댜에서는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옵 15)는 말씀으로 나타났다.

    오바댜에서 보여 주는 야곱과 에서, 그리고 이스라엘과 에돔간의 계속적인 갈등은 신약에서 절정을 이룬다. 
    즉 이두매인이자 에돔의 후손인 헤롯 대왕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인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 것이다(마 2:16).

    전체 개관 : 
    오바댜서는 에돔의 죄악들을 들어 심판을 선언하는 한편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하고 있다. 
    에돔의 죄악에 대한 목록(옵 10-14)은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함을 보여 준다. 
    에돔에 대한 심판은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뿐 아니라 열방들도 포함된다. 
    이러한 넓은 범위는 오바댜 15-16에 나타나며(애 1:21 참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완성될 지를 보여 준다(옵 21).

    1. 에돔에 대한 멸망(1-9)

    2. 에돔의 죄악들(10-14)

    3. 이스라엘 적들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15-16)

    4.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17-21)

    핵심 메시지 : 
    오바댜의 주된 내용은 에돔의 영원한 멸망과 이스라엘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선포이다. 
    이때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인 이방들을 대표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마침내 심판을 받게 되고 그 나라들이 어떻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다.


    오바댜는 어떤 책인가?

    오바댜는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 또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남유다의 선지자로 활동 하였습니다.

    오바댜는 B.C. 586년경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때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국가의 멸망이라는 엄청난 시련과 좌절에 직면해 있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소망을 전했습니다. 
    특히 포로 생활 중에도 결코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바댜는 남유다의 멸망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에돔의 멸망에 대해, 선민 이스라엘에게는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 오바댜서의 배경

    주전 586년,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되는 예루살렘을 향해 에돔사람들은 바벨론을 격려하며 “무너뜨리라... 무너뜨리라!“고 외칩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형제들이었습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들입니다(창 2:21-26).

    • 오바댜서의 내용

    1. 에서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1-16절)
    예레미야는 49장 7-22절에서 이미 에돔의 운명을 말하였습니다. 
    오바댜서에는 이 예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에돔의 죄는 무엇입니까?

     *교만(3-4절)
    - 에돔은 작은 나라였으나 그 업적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에돔은 바위를 뚫고 성을 세웠는데, 그들은 “바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3절). 에돔의 으뜸가는 도시 페트라는 산의 등성이를 파서 된 것이며, 그 요새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습니다(사 14:12-15 비교). 그래서 누구도 자신들을 공격할 수 없다고 여기며 교만하였습니다.

     *동맹(7절)
    - 이스라엘에 사는 형제의 짐을 나누어 지기는 커녕 주위의 나라들과 동맹하여 예루살렘을 적대하였습니다.

     *폭력(10절)
    - 에돔 사람들은 예루살렘성이 무너지는 것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즐거워함(12절)
    - 에돔은 그의 형제의 재난에 대하여 울어야 했으나 반대로 즐거워하며 조롱하고 있었습니다(잠 24:17-18).

     *약탈(13절)
    - 이들은 유대인들이 재앙을 당하는 것을 이용하여 그 성에서 재물을 약탈하였습니다.

     *피난하는 자들을 방해함(14절)
    - 유대인들 중의 어떤 이들은 피난하여 가족들을 보호하려고 하였는데, 에돔사람들은 그 길을 막았습니다. 이들은 피난하는 사람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돌려 보내는 일을 도왔습니다.

     *술의 축제(16절)
    - 에돔 사람들은 포도주를 공급받게 되어 큰 축제를 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유대인을 취급한 그대로 그들을 취급하실 것입니다(시 137:8-9 절). 이들은 연맹군에게 배반을 당하였습니다(11절). 이들은 약탈하였는데 후에는 자신의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5-6절). 에돔은 폭력을 휘둘렀는데, 결국은 완전히 끊겨지게 되며(9-10절), 에돔은 유대인들이 멸망되기를 원하였으므로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10, 18절). 에돔은 그들이 뿌린 것을 거둘 것입니다(사 34:5-15/겔 25:12-41/겔 35:1-15/암 1:11-12 참조)!

    2. 야곱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17-21절)

    17절의 “오직“이라는 작은 단어가 전환점이 됩니다.

    하나님은 시온의 구원과 죄씻음을 약속하십니다. 
    성전은 그들의 죄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집“을 정화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고 왕국은 여호와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의 집(에돔)은 회복되지 못할 것입니다.

    • 오바댜의 개요

    오바댜서 개관도표

    • 오바댜가 전하는 메시지

    리브가는 쌍둥이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동생 야곱을 택하였습니다. 
    그가 형 에서를 제치고 장자가 되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구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맹세를 하십니다.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되리라." 하지만 육신적으로 장자였던 에서에게는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9:13 
    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자녀를 대표하며, 
    그들이 비록 때때로 죄를 범하고 실망시키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유업을 얻을 은혜로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선택의 교리는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이란 공로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야곱은 육과 영 사이의 투쟁을 나타냅니다(갈 5:16-26). 
    에서는 성도의 육(죄성)을 상징합니다. 
    에서는 매력이 있고, 능력이 많지만, 교만하고, 탐욕적이고, 반역적입니다. 
    그는 언제나 이기는 편에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은 육신에는 심판을 선언하셨으며 어느 날 심판이 번개처럼 임할 것입니다. 
    에돔은 교만하고 반역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망하자 조롱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5년 후에 에돔 역시 바벨론에게 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에돔은 어느 나라인가? 
    이 세상은 육신을 자랑하며 육신이 성취한 일과 육신이 얼마나 강한가를 자랑한다. 
    그러나 모든 육신은 그리스도의 승리 앞에 엎드러질 것이다(계 19:11-21 참조). 
    특히 육신이란 말이 반복하여 언급되는 17-18절을 눈여겨 보자.

    또 에서는 육(죄성, 옛사람)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에서와 야곱, 즉 육과 영 사이의 투쟁을 상징합니다. 
    이는 성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가리치는 교훈입니다.

    •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헤롯은 에돔사람이었습니다. 
    헤롯 집안의 한 왕은 그리스도를 파멸시키려는 시도로 많은 유대 아기들을 죽였고(마 2:16-18), 또다른 왕은 세례(침례)요한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한 왕은 사도 요한의 형 야고보를 죽였습니다(행 12장).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투쟁은 창세기 25장 21-26절에서 시작된 똑같은 전쟁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육대 영, 교만대 복종, 인간의 길 대 하나님의 길 등, 투쟁은 그리스도가 돌아오셔서 그의 왕국을 세우실 때 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누구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참고 : 예정과 선택교리

    예정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절대적 은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미리 자질을 헤아리고 그 ‘예지’에 따라서 작정했다는 주장은 자체로 모순된다.

    삼위 하나님의 구원협약에 따라서 그리스도가 영원 전에 구속주로 작정되시고, 우리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체로 선택되었다.
    이는 우리의 자질을 불문하고 택하심이니 택자들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택하신 분의 ‘기뻐하심’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를 택하심은 우리를 자신의 은혜를 찬양하는 자로 삼고자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예정을 예지에 종속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택하신다고 함은(롬 11:2, 행 2:33)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실 언약의 자녀들을 미리 마음에 두셨다는 의미이다
    주님은 택한 자들을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 ‘아버지의 것’이라고 부르셨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자녀가 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에게만 있다

    선택은 ‘믿음의 어머니’이며, 믿음은 선택에 대한 ‘보증’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믿음 자체를 주신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중에서)


    에서와 야곱 – 두 국민은 어느 족속을 말하는가?


    창세기 25:23에서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 25:23)

    이는 에서와 야곱이 각각 두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1. 에서 → 에돔 족속

    • 에서는 장자였지만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넘겼고, 결국 세일산 지역(오늘날 요르단 남부)에서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됨(창 36:1-9).

    • ‘에돔’은 히브리어로 ‘붉다’는 뜻인데, 이는 에서의 붉은 피부색과 붉은 죽 사건(창 25:30)과 관련됨.

    • 에돔 족속은 후에 이스라엘과 종종 대립하는 관계가 됨(민 20:14-21, 시 137:7).

    2. 야곱 → 이스라엘 족속

    •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후에 이름이 ‘이스라엘’로 변경됨(창 32:28).

    • 야곱의 12아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었고, 이는 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함.

    •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언약을 이루셨고, 그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됨.

    3. 두 민족의 관계

    • 이스라엘과 에돔은 형제 민족이지만, 성경에서 계속 충돌하는 모습을 보임.

    • 출애굽 당시, 모세가 에돔 땅을 지나가려 했지만 에돔 왕이 거부(민 20:14-21).

    • 다윗 시대, 이스라엘이 에돔을 정복하고 통치함(삼하 8:13-14).

    • 바벨론 포로기, 에돔이 이스라엘을 조롱하며 멸망을 기뻐함(시 137:7, 오바댜 1:10-14).

    • 신약 시대, 에돔 후손 중 ‘헤롯 왕조’가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림(마태복음 2:1).

    하나님의 언약은 야곱(이스라엘)을 통해 성취되었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됨.




    창세기 25장,야곱과 에서, 하나님은 왜 에서를 버렸는가? 


    창세기25장

    아브라함이 별세한 후 이삭의 시대가 문을 엽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낳습니다. 큰 아들의 이름은 에서, 작은아들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쌍둥이면서도 외모와 성격 모두 완전 다른 이란성입니다.

    큰 아들 에서는 몸이 붉고 털이 많은 사람입니다. 기질이 호탕하고, 성격이 급하며, 사냥을 좋아하는 그야말로 사나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야곱은 집안에 있기를 좋아하고 성격이 세밀하며 말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만일 저보고 둘 중 누구와 친구가 되려는가 묻는다면 당연히 에서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단순하며 기분파이기 때문에 잘만 비위를 맞춰주면 덕볼 일이 많고, 또 의리파입니다. 자기가 손해볼지언정 배신하지는 않는 그런 성격이죠. 물론 단점도 있긴해도 친구가 손해볼 단점은 아닙니다. 하지만 야곱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계산적이기 때문에 쉽게 손해를 보질 않습니다. 친구를 잘 믿어주지도 않고, 뒤끝이 있습니다. 속을 알 수 없어서 잘못하다가는 뒤통수 얻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성격이 그들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에서는 몸이 붉다는 뜻이고, 야곱은 남의 뒷다리를 잡은 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에서보다는 야곱을 더 좋아하십니다. 심지어 에서를 버렸다고까지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작은 에피소드에서 그 실마리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야곱의 팥죽 사건이죠.

    사냥을 좋아하는 에서가 집에 돌아오니 야곱이 시간을 맞춰 붉은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지역에서는 적갈색의 콩에다 파와 각종 양념을 넣어 끓인 수프가 있다고 합니다. 붉은 색의 스프를 우리식으로 팥죽으로 번역한 것이지만 우리의 팥죽은 아닙니다. 원어에는 붉은을 두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이 죽을 보았을 때 얼마나 먹고 싶어했는가 그 마음이 죽 이름에 담겨 있는 것이죠. 이런 점을 보면 야곱은 의도적으로 에서가 돌아올 때를 맞춰 이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배가 고픈 에서는 야곱에게 죽 좀 달라했지만 야곱은 매정하게 거절하고는 형의 장자의 권리와 죽을 바꾸자고 합니다. 에서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덜렁 이것을 바꾸고 맙니다. 배고파 죽게 생겼는데 장자 권리가 뭐 소용 있냐는 것이죠. 그리고 장자의 권리는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실 때 재산을 나눌 때나 좀 덕을 보지만 그건 나중일이고 지금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 성경은 이런 에서의 생각을 장자의 권리를 경홀히 여겼다고 합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장자의 권리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권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권리와 집안의 대를 이어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소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받는 축복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였기에 하나님은 그런 에서를 버렸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 제임스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선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년 1월 11일, 뉴욕주 뉴욕 ~ 1910년 8월 26일, 뉴햄프셔주 탬워스)는 미국철학자, 심리학자이다.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확립자로 알려졌다. 
    철학
    ·종교학·심리학 등에 뛰어난 연구를 많이 남겼다. 
    1855년에서 1860년까지 유럽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유럽 문물을 만났다. 1861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화학을 전공했다. 1864년에 학부 졸업 후 하버드 메디컬 스쿨로 진학했고, 1869년에 의학박사(M.D.) 학위를 얻었다. 1873년에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해부학, 생리학 강사로 일했고, 1875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가 되었다. 제임스는 기능주의 심리학에 큰 업적을 세웠다. 한편 제임스는 하버드 대학교에 심리학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첫째는 살아있는 선택과 죽은 선택
    둘째는 피할 수 있는 선택과 피할 수 없는 선택, 
    셋째는 중요한 선택과 사소한 선택입니다. 

    죽은 선택은 이미 정해진 것이어서 사람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지만 
    살아있는 선택은 사람의 선택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머지는 설명 안해도 아시겠죠. 
    에서는 자신의 삶의 순간에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살아있는 선택을 거부하였고, 중요한 것 대신에 사소한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에서의 가장 큰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야고보서 4장 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엘리제사장을 꾸짖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십니까? 그럼 지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십시오. 하나님께 존중받고 싶다면 하나님을 존중하십시오. 하나님을 최고로 여길 때 하나님은 역시 당신을 최고로 여겨주신답니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을 때 이삭의 나이가 육십 세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사건은 아브라함이 160세에 있었던 일입니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살아있을 때의 일이고,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으니 에서와 야곱이 태어난 후에도 15년을 더 살며 손자들의 재롱과 자라는 모습을 지켜봤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간순서로 따지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난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죽음 이전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의 저자는 마치 이 일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이 이미 죽은 것처럼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앞에서 마무리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제부터 새로운 세대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죽고 나서 본격적으로 이삭의 생애가 기록될 것 같았는데, 그런 예상과는 달리 막상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이삭보다는 야곱입니다. 실제로 창세기의 저자는 이삭과 그의 첫째 아들 에서 보다 둘째 아들 야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이야기는 26장에서 짧게 다루어지고, 그 후로 독립된 이삭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며,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의 가정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이삭보다는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에 대한 오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난 사건이고, 둘째 부분은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파는 사건입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습니다(20). 특별히 저자는 리브가를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인 브두엘의 딸이며 아람 족속인 라반의 누이라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야곱이 자신의 외삼촌인 라반을 찾아 갈 일을 염두에 두고 미리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해서 어머니인 사라가 죽은 후에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런 이삭에게 문제가 있다면, 오랜 시간 아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것은 창세기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러했었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그러합니다. 훗날 야곱의 아내들도 그러한 일로 괴로워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 집안의 여자들이 임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녀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면,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일은 그냥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약속이 성취될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십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약속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비록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약속의 상속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없이 다음 상속자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이 이삭의 간구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21)

    이삭의 기도가 응답되어 결혼하고 20년 만에 리브가가 임신합니다. 그런데 임신으로 기뻐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리브가에게 근심이 생깁니다. 자신의 뱃속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심한 요동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들들이 뱃속에서 서로 싸우고 있다는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지만, 정작 리브가는 영문도 모른 채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한 후 처음으로, 그것도 어렵게 경험하고 있는 임신입니다. 요즘처럼 초음파로 검사해서 태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아마도 리브가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 자신의 뱃속에 두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입니다.

    22절에 뱃속에 있는 아이들의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해 ‘싸우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말은 강한 의미를 가집니다. ‘짓누르다, 으깨다, 산산조각 내다, 학대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만큼 뱃속에 있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컸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태어난 후에 싸워도 충분히 싸울 날이 많은데, 그것도 부족했는지 뱃속에서부터 싸우는 아이들로 인해 그녀의 뱃속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두 아이가 이미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싸우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둘 사이에 있을 갈등과 다툼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반복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이와 같은 가족 간의 갈등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동생을 시기하여 살인을 저지릅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재산 때문에 같이 살 수 없었고, 이스마엘은 이삭을 조롱하다가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속고 속이는 갈등을 겪게 되고, 뿐만 아니라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도 다투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은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 버립니다.

    이런 일은 단순히 성경 속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도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오는 갈등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오히려 더 많이 싸우는 걸까요? 가장 친밀한 부부사이에서 오히려 더 많은 갈등과 다툼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갈등이 만날 때 “어떻게” 와 “”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 ‘어떻게 저러냐?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겁니다. “5-3=2” 어떤 오해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가정에서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영적인 가족인 교회에서도 쉽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서로 협력하여서 한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서로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어떻게”와 “”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좋아, 이렇게 해야 돼’, 이런 면에서 우리의 관심이 모아집니다. 그리고 그 ‘어떻게’를 달성하기 위해 때로 부딪히기도 하고 다투기도 합니다. 의견 차이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 안에서 뭔가를 할 때 어떻게 보다 ‘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왜 이것을 하는지 말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여러 부서가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고, ‘어떻게’ 더 좋은 행사를 만들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이것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만 생각한다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고 하는 일에 대해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많은 종교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어떻게’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에만 몰두한 나머지 ‘왜’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가운데 어떻게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는 물론, 성경에서 계속 강조되는 것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한 번 더 참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억울함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와서 자신의 뱃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길이 없었던 리브가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3)

    리브가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 응답은 네 마디의 간략한 시적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그녀의 뱃속에 함께 할 수 없는 두 민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배가 요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 두 민족이 그 힘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고,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강한 민족이 형이 아니라 동생입니다. 그래서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씀합니다.

    어찌되었든 때가 되어 리브가는 두 아이를 출산합니다. 첫째 아이는 붉고 온몸에 털이 많아서 에서라 이름 지었고, 둘째 아이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기 때문에 야곱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 당시 문화에서 이름 짓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름을 지을 때 미래에 대한 소망을 담거나 출생에 관련된 사건을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을 읽다보면 이름 짓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어떤 경우는 이름 짓는 게 장난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털이 많아서 에서이고, 발꿈치를 잡아서 야곱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좀 황당한 이름들이지만, 당시의 문화 안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이삭과 리브가는 특이한 아들 둘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붉고 털 많은 자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발꿈치를 잡는 자입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성장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달랐던 두 아들은 자라면서 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이 되어서 주로 들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으로 장막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인데 정말 다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아들의 다른 점이 아니라 그 다른 점으로 인해서 부모의 사랑이 갈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해서 에서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이삭과는 달리 야곱을 사랑하였습니다. 아빠는 형을 사랑하고, 엄마는 동생을 사랑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예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부모의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랑은 가정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모가 자신과 더 잘 맞는 자녀를 사랑하고, 다른 자녀를 덜 사랑하는 정도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문제이기보다 부부의 문제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관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부부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축복을 얻기 위해 속이고 속는 일이 전개되는 27장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자녀 양육의 최선은 건강한 부부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부부사이가 좋지 못하면 그 안 좋은 영향이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를 잘 양육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만큼, 서로에 대해서 나의 남편에게 그리고 나의 아내에게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이삭의 가정에 드디어 사건이 벌어집니다. 27절에 에서를 가리켜 익숙한 사냥꾼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단어의 표현 그대로 말하면 사냥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날, 사냥을 잘 아는 능숙한 사냥꾼인 에서가 사냥에 실패했는지 심히 피곤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사냥꾼이었던 에서는 사냥에 실패하고, 오히려 에서가 야곱의 사냥감이 되어서 야곱의 미끼를 덥석 무는 것입니다.

    마침 야곱은 죽을 쑤고 있었고 에서는 그 죽을 먹기 원했습니다. 에서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30) 에서는 팥죽을 가리켜 ‘그 붉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지금 배가 너무 고파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상태 같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야곱은 형에게 말이 안 되는 거래를 요구합니다. 죽을 주는 대신 장자의 명분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 요구에 대해서 에서는 맹세까지 하며 장자의 명분은 야곱에게 팝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이 어떻게 장자의 명분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가지고 있는 장자의 권리, 그 가치를 알고 자신의 세속적인 형으로 하여금 그것을 포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경솔하고 감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그는 피곤하여 지쳤고, 굶주려 있었고, 장자의 명문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은 34절에 그의 행동을 말해주는 연속되는 동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에서는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감으로써 자신이 장자의 명분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에서는 들에 사는 야생 동물처럼 자기 배를 채우는 일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능숙한 사냥꾼이기보다 형편없는 미끼에 넘어가 붙잡힌 짐승 같습니다.

    에서가 정말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버린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계획이 있습니다. 그분의 섭리 안에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형이 동생을 섬길 거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두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에서는 쉽게 장자권을 내어주었고, 야곱은 필사적으로 장자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야곱이 자기 형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말씀합니다. 에서가 장자가 될 만한 자격이나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본문의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12:16)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서의 세속적인 성품과 행동을 통해 경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욕구를 위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희생하는 것, 일시적인 만족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에 대한 교훈입니다.

    세속적인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일시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서 영적이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망령된 자가 되지 않도록, 정말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당장 얻을 수 있는 잠깐의 만족을 위해, 더 가치 있고 더 소중한 것을 희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깐의 쾌락을 위해 정말 귀중한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깐의 달콤함을 얻기 위해 더 유익한 것을 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일시적인 것과 바꾸지 마십시오. 반대로 일시적인 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영원한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보고 제대로 구별하며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순간의 편안함을 위해, 더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합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가치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에서는 훗날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지만 기회는 없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7)

    우리는 이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 때 날아가 버린 기회는, 그 소중한 가치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바댜 전체 강해, 오바댜 내용과 주요사상, 내용분해, 교훈

    *이름의 뜻을 통한 주제 / 하나님의 종

    *오바댜 주제 / 이 세상의 왕국을 다 취하신 하나님(1:21)

    *오바댜 주제 절 / "구원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1:21).

    Ⅰ. 예언자 오바댜

       오바댜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종"입니다. 오바댜에 대해서 다른 참고자료를 얻을 수가 없다. 아모스를 제외한 다른 선지자들과 달리 그의 가문과 출신이 전혀 소개되지 않음으로 그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바댜라는 이름은 히브리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왕상18:3, 대상3:21, 7:3, 8:38, 9:16, 12:9, 대하17:7, 34:12, 스8:9, 느10:5 등 참조).

    오바댜의 연대에 관하여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많으나 예레미야 전후의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대체적입니다. 렘49:14 - 16과 본서 1:1 - 3은 에돔이 받을 심판에 대하여 아주 비슷한 낱말들과 내용들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Ⅱ. 내용과 주요 사상

       에돔은 야곱의 형제 에서의 별칭으로(창25:25~26, 36:1, 19. 43) 그 후손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명칭이기도 합니다(민20:23, 21:4, 34:3). 그들은 이스라엘과 혈연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암1:11). 이와 같은 에돔에 대한 심판은 다른 선지자들에 의해서도 선포되었습니다(사34:5~15, 렘49:7~22, 겔25:12~14, 35:1~15, 암1:11~12).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돕지 않고 괴롭힌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본서의 내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서는 다른 민족을 멸시하며 저주하고 오직 자기 민족만 높이 들릴 것을 희망하고 있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편협한 배타주의 민족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서가 가르치는 중심 내용은 이웃나라(이스라엘)가 당하는 고난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자기의 이익을 얻는 좋은 기회로 삼는 잔인한 무관심과 부도덕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는 것과 그러한 나라는 이웃 나라와 꼭 같은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서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의 후손이요. 에돔 민족은 바로 에서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간교는 형제 사이에 다툼을 가져왔는데 그 후손들도 화목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하려고 에돔 땅을 지나갈 수 있게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에돔은 그것을 거절했으며(민20:14~21), 가나안 정착 후에도 두 나라는 서로 무역 경쟁자의 입장에 있게 되어 이해가 상반되는 대립 관계가 있었습니다. 도리어 에돔은 유다왕국의 멸망을 바라고 기뻐하는 처지였다(11 - 14절, 애4:21).

    Ⅲ. 내용 분해

     1. 에돔의 심판과 그 이유 1 : 1 - 14

       1) 에돔의 멸망에 대한 경고 1 : 1 - 4

       2) 에돔의 완전한 멸망 1 : 5 - 9

       3) 에돔의 심판 이유 1 : 10 - 14

     2. 여호와의 날 1 : 15 - 21

       1) 만국의 심판 1 : 15 - 16

       2) 이스라엘의 회복 1 : 17 - 21

    Ⅳ. 오바댜서의 교훈

    선지서는 기록을 남긴 선지자를 기록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았지만 말씀과 사역을 통하여 선지자 노릇을 했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선지자들을 기록 전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예로 들자면 엘리야 엘리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엘리야 엘리사가 등장하기 이전에 사역했던 선지자들도 다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엘리사 이후부터는 기록 선지자가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록 선지자들은 장차 올 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사역했던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다윗 즉 다윗의 자손 메시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바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바댜가 언제 이 예언을 기록했는지 본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이 침략을 받았을 때 에돔이 했던 악한 짓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외국의 침략이 언제 있었던가를 생각하는 것이 오바댜의 기록 연대를 아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루살렘이 침략을 받은 사건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주전 926년 르호보암 때 애굽 왕 시삭이 침략해서 약탈한 적이 있습니다(왕상 14:25-26). 
    그리고는 주전 848-841에 여호람 치세 중에 블레셋과 아랍인들이 침략한 적이 있습니다(대하 21:16,17). 
    그래서 왕자들과 왕비들과 왕궁의 재물을 약탈하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전 790년 아마샤 치세 중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침략한 적이 있습니다(왕하14:13-14). 
    또 주전 605-586년 사이에 바벨론의 연속적인 침략이 있었습니다. 
    이 중에 오바댜서는 여호람 치세 중에 있었던 블레셋과 아랍인들의 침략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바댜서는 주전 84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록 선지자로서는 가장 일찍이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도 믿는 자가 잘못되는 것을 보고 고소하다고 생각하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에돔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돔은 침략자가 예루살렘을 늑탈하며 좋은 물품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았는데 그들과 한 패가 되어 뒤따라가며 똑같은 짓을 했던 것입니다(11). 
    에돔은 예루살렘이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고 방관하며 기뻐하며(12) 
    아마도 크게 입을 벌리고 웃으면서 좋아라고 했던 것입니다. 

    같이 성에 들어가서 재물을 약탈하며 도망하는 자를 막고 또 잡아서 대적에게 넘겨주는 짓을 했던 것입니다(13-14). 이것이 에돔이 본성이요 세상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선택자에 대하여 가지는 이러한 적개심은 세상이 가진 본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에돔을 위하여 하나님은 심판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15절에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희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하여 심판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속한 에돔도 마찬가지로 심판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돔의 심판은 세상 심판의 한 예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싫어하던 에돔의 멸망은 세상 심판의 한 징조에 불과합니다. 언젠가 세상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에돔의 심판은 이 세상이 심판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살해하여 그 피와 제물의 피를 섞은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이 당한 이 심판이 바로 회개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당할 심판을 예시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치어 죽은 18명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들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 죽지만 그것은 예루살렘의 회개하지 않는 모든 사람의 심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눅13:1-5).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종말이 언제 있느냐 하는 것 따위는 성경의 관심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싫어하고 나아가서 하나님을 싫어하는 세상은 언젠가는 반드시 심판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순간순간 사고를 당하고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심판을 내다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는 것을 보거든 세상이 망하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가는 것을 보거든 죄악의 몸 즉 죽을 몸이 마침내 죽는 것이요 따라서 이것은 또한 죄악의 세상이 죽을 것을 보여 주는 징조인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 즉 계시를 받은 자가 하나 다른 것은 시온산이 망하지 않음을 앎니다. 17절에 "오직 시온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라고 합니다. 시온산은 하나님에 의해서 남겨지는 자들로 채워지며 이들이 불이 되어 에돔을 불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세상 심판의 원리입니다.

    오바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두 가지

    1. 은혜를 모르는 세상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세상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대하여서 알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징조는 지금도 세상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신자의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난 즉 교회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세상은 심판 될 것입니다. 
    교회의 고난에 대한 보복을 하나님이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시므로 이 보복 심판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2. 시온은 망하지 않으며 구원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는 망하지 않으며 구원됩니다. 
    구원자가 시온에 올라오는 것이 구원의 징표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세상 심판의 징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시온의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세상은 망하게 되어 있고 죄악은 망하게 되어 있음을 선언하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역사철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세상이 아무리 세력이 승하고 이기는 것 같아도 결국은 패할 것이라는 점이요 또 하나님의 나라가 아무리 약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나라는 승리할 것이요 따라서 교회가 죄악 투성이라고 해도 교회는 결국 죽음을 통하여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패하지만 교회는 영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구원자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고 좌절하지 말고 살도록 하십시다. 
    또 세상의 우리 삶이 망해버린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있는 것으로 망하지 않음을 믿고 살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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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

    강원대학교 정외과 명예교수 최동희

    인류가 고안해낸 삶의 질서 중에서 가장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에 근접한 것이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자유민주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 내용을 지닌 것이기에 사사무애법계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유민주주의 의미를 일층 더 선명하게 하려면 그와 대칭되는 인민민주주의와 비교 분석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수 세기에 걸친 자유의 질적 확대과정과 자유를 누리는 주체의 확대과정을 통해 확립된 것이다. 인민민주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소련, 동유럽 등의 공산국가에 확립되었던 질서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다음 다섯 가지 수준에서 비교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1. 결정방식
    2. 정치체제
    3. 경제체제
    4. 사회체제
    5. 문화 체제
     

    결정방식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결정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최대한의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그중에서 다수가 좋다고 해서 내린 결정이 좋은 결정이라고 본다. 이러한 결정은 인간의 평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 평등한 사람들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은 다수가 좋다는 것이 된다. 다수결 원칙은 이러한 인간 평등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인민민주주의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소수에 의한 결정이 좋은 결정이라고 본다. 이것은 인간은 본래 불평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무지한 다수보다는 소수의 능력 있는 사람의 합리적 판단에 의한 결정이 좋은 결정이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엘리트주의적 결정이 있을 수 있다. 고도의 기밀을 요 하는 외교, 안보문제는 다수의 의견보다 소수의 합리적 판단으로 결정될 수 있다. 전문성이 높은 문제는 소수의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도하여 결정을 내린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경우는 다수의 참여로 결정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결정방식이다.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다수가 결정에 영향을 줄 경우가 있다. 이른바 대중노선과 같은 것이다. 중국의 문화혁명기에 홍위병의 대중노선이나 인민재판이 좋은 예이다. 대중노선은, 인간 평등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라, 소수가 다수 의견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이다.

    이상의 결정방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준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는 국민 모두의 정치참여가 중시되지만,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 독재가 강조된다. 자유민주주의 경제 질서에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중심이 되지만 인민민주주의에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가 경제를 주도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자유롭게 사회집단이 결성되어 집단을 통해 이익을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지만, 인민민주주의에서는 공산당 지배 구조 속에 사회집단이 존재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를 기초로 국민 모두의 다양한 문화 활동이 보장되지만, 인민민주주의에서는 문화는 공산당 또는 사회주의 혁명의 수단이 된다.

    정치체제

    정치적인 면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당제도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복수정당제를 택하고 있다. 복수정당제는 다수의 정당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을 하는 정당제이다. 정당은 정강 정책을 통해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노력한다. 선거 때마다 각 정당은 훌륭한 후보를 내세워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은 정당이 행정부의 정치 권력을 장악하여 집권하게 된다. 선거 결과 국민 지지가 여러 정당으로 분산되면 다수정당제가 되고 두 개의 큰 정당으로 국민 지지가 양분되면 양당제의 정당제가 되게 된다. 복수정당제에서 각 정당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국민 각계각층이 원하고 바라는 바를 정당의 정책으로 제시하게 된다. 정권을 장악한 정당은 입법이나 정책의 실현으로 계속 국민 지지를 얻으려 노력한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선거를 통해 정권이 다른 정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인민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 독재이다. 프롤레타리아는 다수이기 때문에 다수의 독재는 민주주의가 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공산당 독재이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무지해서 공산당의 지휘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인민민주주의는 공산당(노동당) 일당 독재체제가 된다.

    공산당 이외에 우당(友黨)이 있을 수 있으나 우당은 공산당과 정권을 경쟁할 수 없다.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선거는 공산당과 다른 정당이 정치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행사가 아니라 공산당의 지배를 확인하는 의례적 행사에 불과하다. 공산당은 국민 지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국민 여론이 공산당 집권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민이 당의 지시와 지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복수정당제의 장점은, 국민 각계각층의 원하고 바라는 바가 여러 정당의 정강 정책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국민이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단점은 다양한 국민의 이해관계를 쉽게 정책화할 수 없고, 또 정당의 정책이 실현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는 점이다.

    일당 독재의 장점은 정책의 신속한 실현에 있다. 다양한 국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지배자의 합리적 판단으로 정책이 정해지고 집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은 국민 다수의 이익보다 소수 지배층 중심의 정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국민은 정치의 객체로서 당의 지시와 지배에 순종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또는 시장경제체제이다.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의 사유재산이 보호되고 개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된다.

    수요와 공급이 시장기구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보다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오르든가 공급이 늘게 된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하락하고 공급이 줄게 된다. 수요와 공급이 시장의 가격기구에 의해 균형을 잡게 된다.

    시장경제의 장점은 경제의 활력과 창의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이윤 추구가 보장되기 때문에 경제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 이것은 경제의 활력과 창의력을 키운다.

    단점은 노력과 능력의 차이로 인해 불평등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평등 속에서 불평등이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10시간 일한 사람의 보상이 5시간 일한 사람의 보상보다 배가 되는 것은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을 보면 5를 받은 사람과 10을 받은 사람은 소득에서 불평등한 경우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품종을 개발한 사람은 재래식 방식대로 한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은 평등한 것이다. 이 경우도 결과에서는 불평등이 되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특히 두 가지이다. 첫째는 모든 사람의 노력과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권력의 불필요한 규제 통제는 최소화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결과적으로 조성되는 불평등은 복지정책으로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이 경제의 효율을 저해하지 말아야 한다. 10시간 일한 사람과 5시간 일한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에 따라 같은 보수를 준다면, 이것은 인간의 자생력과 창의력을 말살하는 불공정이 될 것이다.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경제는 계획경제체제이다. 생산수단은 공공 소유 또는 국가 소유이고 개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정부의 합리적 판단으로 국가 전체의 모든 수요를 예측한다. 예측된 수요를 각 생산업체에 배분하고 모든 생산 자제가 공급된다. 생산된 물자는 전국에 필요한 지역에 배분된다.

    계획경제체제에도 장점,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장점은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소수의 능력 있는 사람이 전국의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고 공급(생산)을 하면 수요와 공급이 정확하게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가정에 불과하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단점은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전국에서 매년 필요한 물자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또 그 종류도 대단히 많다. 그 모든 수요를 예측한다는 것은 신(神)의 작업이다. 잘못 예측된 수요에 따른 생산은 전국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가져와 경제 운영이 어렵게 된다. 작년에 과잉 생산된 물자가 산적해 있는데, 전년도와 같은 생산 지침이 시행된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이 장기화 되면서 인민민주주의 국가는 경제의 활력을 잃고 대부분 폐망하였다.

    둘째, 계획경제에서는 인간의 창의성이 온전히 발휘될 수 없고 또 경제의 활력도 기대할 수 없다. 소수 지배층을 제외하고 국민 다수는 경제의 객체에 불과하다. 인간의 창의성은 주체적 활동에서 나온다. 국민은 정부 지침에 수동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국민의 창의성이나 경제의 활력을 기대할 수 없다.

    결과적 평등을 인위적으로 잘못 추구하면 사람들의 의존성을 키워 인간의 자생 능력을 떨어트린다. 경제생활에서의 인간의 객체화는 경제의 활력과 창의성을 크게 저하시킨다.

    사회체제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다. 모든 사람은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사회집단 또는 이익집단을 결성하여 집단의 힘으로 공동으로 이익 추구를 하게 된다. 기능별로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정부나 정당에 압력 활동을 전개한다. 각 정당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익집단들의 요구를 수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국민 다수가 원하고 바라는 사안들이 정부 또는 정당의 정책으로 반영 되게 된다.

    이러한 사회체제의 장점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가 현실화된다는 점이다. 국민 대부분은 기능별, 지역별, 영역별의 다양한 사회집단이나 이익집단에 참여한다. 개인은 사회집단을 통해 이익 추구와 이익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사회집단은 국민 다수를 정치참여의 길로 이끌어 준다.

    단점은 자본과 조직력이 강한 사회집단이 정책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민 전체가 사회집단에 참여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조직되지 않은 국민이 다수일 경우도 있다. 그러할 경우는 많은 사람의 권익이 정책으로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적극적인 정당 활동이 존재하면 조직되지 않은 국민의 권익도 보호될 수 있다.

    인민민주주의 국가에도 다양한 사회집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집단은 이익집단 또는 압력단체의 기능을 갖지 못하고, 공산당(노동당)의 지시를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고 구성원들을 규제 통제하는 기능만을 갖는다.

    장점은 당의 지시를 일사불란하게 신속하게 국민 전체에 전달할 수 있다, 는 점일 것이다.

    단점은 국민의 다양한 요구나 욕구가 표현되고 충족될 수 없다, 는 점이다. 위로부터의 대규모 군중 집회가 자주 개최되는 것은 군중의 욕구 불만을 집단적으로 발산케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문화 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문화생활은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등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의 소질에 따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장점은 수만 가지 주의 주장이 꽃피울 수 있다는 점이다. 남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지 않는 한 모든 생각이나 사상은 표현될 수 있고 또 존중된다.

    단점은 문화 예술의 세속화 현상일 것이다.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문화 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에 따른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문화 예술은 사회주의 혁명이나 공산당 이념에 충실하여야 한다, 는 지침이다.

    문화 예술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지침을 따르면, 문화 예술의 획일화 현상이 나타난다. 인간의 다양한 문화 활동이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서로 상반 된, 종합적인 삶의 질서이다. 서로 다른 총체적인 삶의 질서는 한 울타리에서 공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남과 북의 연방제는 현실성이 없다. 남과 북의 공존은 서로 다른 국가에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종합적인 삶의 질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가장 이상적인 삶의 질서인 사사무애법계에 근접해 있다. 사사무애법계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기의 빛을 발하면서도 전체로서는 서로 걸림 없고 대립 갈등이 없는 완벽한 공존의 질서이다. 자유민주주의 질서는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국민 대다수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사사무애법계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강원대학교 정외과 명예교수 최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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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오늘날 세계 정치 질서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보편적인 가치처럼 사용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체제들이 공존한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모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본질적인 성격은 극명하게 다르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핵심 가치로 삼고 다원주의적 질서를 제도화한 체제이며, 인민민주주의는 특정 계급과 집단을 주권자로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일당 독재를 합리화하는 체제이다. 두 체제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학적 논쟁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자유와 권력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이어진다. 이 글은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를 헌법적 개념, 역사적 기원, 현대적 사례, 그리고 이념적 차이라는 네 가지 축으로 심층 분석하여 정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학문적 통찰과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헌법적 개념의 대비: 자유와 권리 vs 집단과 당

      헌법은 정치 체제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기본 문서이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은 개인의 권리를 국가 권력보다 우위에 두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이때 ‘국민’은 집단적 추상 개념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개별 시민들을 의미한다. 반면 인민민주주의 헌법은 ‘인민’ 또는 ‘노동자·농민’을 주권자로 규정하면서도 실제로는 특정 정당이 이들을 대리한다는 형식을 취한다. 북한 헌법 제11조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는 조항은 인민의 이름으로 당의 권력을 절대화하는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따라서 헌법적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권력 분립과 기본권 보장을 제도화하지만, 인민민주주의는 당 중심 권력 집중을 정당화한다.

    역사적 기원: 시민혁명과 개인 권리 vs 사회주의 혁명과 집단 권리

      자유민주주의는 근대 유럽의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탄생했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은 의회 주권과 법치주의를 확립했고, 미국 독립혁명(1776)은 개인의 생명·자유·재산권을 신성한 권리로 규정했다. 이어진 프랑스 대혁명(1789)은 자유·평등·박애라는 원칙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존 로크, 몽테스키외, 토크빌 같은 사상가들의 이론적 토대를 거쳐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졌다. 반대로 인민민주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기원한다. 레닌은 기존의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비판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이는 사실상 일당 독재와 계급 독재를 제도화한 것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개인 권리를 중심으로 발전한 반면, 인민민주주의는 집단 권리와 계급 중심 논리에서 출발했다.

    현대적 사례: 다당제와 정권 교체 vs 일당제와 권력 집중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미국, 독일, 대한민국, 일본 등을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미국은 권력 분립과 다당제 경쟁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며, 독일은 기본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시하여 헌법재판소가 이를 수호한다. 대한민국 역시 헌법 전문과 제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반면 인민민주주의 국가는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 등이 있다. 이들 국가는 헌법상 인민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규정하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모든 정치 활동을 독점한다. 중국 헌법은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명시하며, 북한 헌법은 조선로동당의 영도를 최고 원리로 선언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권력이 순환하며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반면, 인민민주주의 국가는 권력이 특정 세력에 집중되어 권위주의적 성격을 띤다.

    이념적 초점: 자유+민주 vs 인민+민주

      이념적 차원에서도 두 체제는 뚜렷한 대비를 보인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설정한다. 따라서 다수결 원리도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정당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자 장치이다. 반면 인민민주주의는 집단적 주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인민이라는 개념은 모호하며, 실제로는 공산당이 인민의 대리인을 자처한다. 그 결과 인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와 당의 이익에 따라 제한되며, 민주주의는 집단적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념적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전제로 한 민주주의이고, 인민민주주의는 집단을 전제로 한 권력 독점적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이름을 둘러싼 본질적 차이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모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만, 그 내용은 극명하게 다르다. 자유민주주의는 헌법적 차원에서 권력 분립과 기본권 보장을 제도화하고, 역사적으로 시민혁명과 개인 권리 사상에서 기원했으며, 현대적으로는 다당제와 정권 교체를 통해 권력 남용을 억제한다. 반면 인민민주주의는 헌법적으로 당의 권력 독점을 정당화하고,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혁명과 계급 투쟁 논리에서 출발했으며, 현대적으로는 일당제와 권위주의적 통치를 통해 민주주의의 외형만을 유지한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표면적으로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듯 보이지만, 그 실제 운영 원리를 살펴보면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제도화했지만, 인민민주주의는 집단의 이름으로 권력을 독점하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한다. 따라서 두 체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정치학적 학문 탐구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자유와 권력의 균형에 대한 실천적 과제로 연결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고 '인민'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이 투표 통해 정권을 만들고 교체하는 선거 민주주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삭제되고 대신 “민주주의”가 삽입됐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알레르기적 반감이 작용한 듯한데, 이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개념 자체를 정확히 알지 못해 생겨난 무익하고 부조리한 논란일 뿐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화자(話者)의 의도, 정치적 목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로 혼용되어온 다의적 개념이다. 
    상식적으로 중·고생 교과서에 정확하고 구체적인 개념 대신 불명료하고 애매한 개념을 사용할 수는 없다. 
    한국사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삭제하자는 주장은 북한의 역사 교과서에서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삭제하고 “민주주의공화국”만 쓰자는 주장만큼이나 어불성설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개인의 기본권, 정부의 권력분립, 대의제 민주주의의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정교한 이론 체계이다. 
    자유주의 헌법에 따라 운영되는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입헌 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라고도 불리는데,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등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은 물론 국가 간섭을 최소화한 자유방임주의 국가까지도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들어간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는 참정권을 부여받은 국민 개개인이 투표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또 그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선거 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를 채택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성립될 때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사실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체제라는 사실만큼이나 명확한 팩트(fact)다. 중국현대사를 기술할 때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삭제할 수 없듯, 대한민국 현대사의 기술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절대로 삭제될 수 없는 용어다. 중·고교 교과서라면 더더욱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적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을 정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교과서는 위헌적 불량품이기 때문이다.

    인민민주주의는 ‘인민’이 ‘인민의 적’에게 독재하는 체제...자유민주주의와 양립 불가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상극(相克)의 체제다. 
    1940년 1월 마오쩌둥은 “신민주주의론”이라는 글에서 세 가지 민주주의를 논했다. 
    그는 구미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는 자산계급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구(舊)민주주의”라고 혹평했다. 
    반면 구소련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미 발달한 사회주의 공화국의 민주주의라고 극찬했지만, 당시 중국이 일본과 국민당이 분할 점령하고 있는 “반(半)식민지, 반(半)봉건” 상태의 나라이기 때문에 소련식 사회주의 공화국이 바로 성립될 순 없다고 보았다. 
    마오쩌둥은 제3의 길로서 노동자, 농민, 좌파 지식인, 및 소자산자의 계급적 연대에 기초한 “신(新)민주주의”를 제창했다. 
    1940년대 10년 동안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론”은 중국식 사회주의 혁명의 이론적 청사진이 되었다.

    1940년 당시 마오쩌둥은 앞으로 건립할 사회주의 공화국의 이름을 “중화민주공화국”이라 했다. 9년 후 중화대륙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후, 중국공산당은 새 나라의 국명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개칭했다. 공화국 속에 이미 민주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학자들의 지적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 당시 마오쩌둥이 이미 “인민민주독재”의 이론을 정립했다.


    <1949년 7월 1일, 인민일보 제1면에 게재된 마오쩌둥의 “인민민주전정을 논함”>

    마오쩌둥에 따르면, “인민민주주의”는 중국공산당 영도 아래서 “인민” 계급이 “인민의 적”에 대해 독재를 행사하는 전제적 시스템이다. “인민민주독재” 아래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지난 70여년 간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를 요지부동의 기본 전제로 삼아왔다. 시진핑 역시 집권 초기부터 중국의 인민을 향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유혹을 물리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가령 2019년 3월 시진핑은 중공중앙의 기관지 <구시(求是)>지에 실린 글에서 “서구식 헌정(憲政), 삼권분립, 사법독립”의 길을 갈 수는 없음을 강조했다. 중국식 “인민민주주의”가 구미식 “자유민주주의”와 절대로 양립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29세 전기공 웨이징성, 선거 민주주의 담은 대자보 내걸고 15년형 받아

    1978년 12월 5일 베이징 동물원의 전기공 웨이징성(魏京生, 1950-)은 베이징 시단(西單) 민주장(民主墻, 민주의 벽)에 “제5의 현대화: 민주와 그 외”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써서 붙였다. 웨이징성이 말한 “제5의 현대화”란 다름 아닌 “민주화”를 의미했다. 1960년대부터 중국공산당은 농업, 공업, 과학·기술, 국방 네 분야에서 이른바 “4대 현대화”를 내걸어왔다. 이에 맞서 웨이징성은 “민주화”야 말로 현대화의 급선무라 주장했다.

    지난 주 살펴 봤듯, 웨이징성은 18년의 세월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은 친청(秦城) 감옥에서 정치범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베이징시 제1중급 인민법원”은 왜 왜 일개 전기공에 불과한 스물아홉 살 청년이 기껏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반혁명죄”를 걸어 15년 형을 언도해야 했을까? 바로 웨이징성이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를 부르짖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명료하고 강력한 문장으로 인민이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를 통해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구미식 선거 민주주의의 도입을 주장했다.

    중국공산당이 그러한 “과격한” 주장을 그대로 방치할 리 만무했다. 중국공산당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중국의 각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중국 통일의 주체였다. 중국공산당이 막강한 군사력을 견지하고 있는 한, 그 어떤 조직도 정권교체를 꿈꿀 수 없다. 1949년 중화대륙을 통일한 중국공산당은 “인민민주독재”의 이념을 통해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의 길을 완벽하게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1979
    <1979년 추정, 법정 진술하는 웨이징성의 모습. 사진/공공부문>

    시진핑이 말하는 민주란? 독재권력의 대민 지배를 전제...민주의 주체는 중국공산당

    놀랍게도 35년 지난 2013년 이래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은 “제5의 현대화”라는 과거 웨이징성이 외쳤던 구호를 그대로 차용해서 쓰고 있다. 웨이징성에게 “제5의 현대화”는 “민주화”였지만, 시진핑이 부르짖는 “제5의 현대화”는 “국가 치리(治理) 체계와 치리 능력의 현대화”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흔히 거버넌스(governance)라 번역되는 치리의 본뜻은 “다스리다,” “질서를 바로 잡다” 정도의 의미다. 최고권력자가 “정치범”의 표현을 표절하면서 “제5의 현대화”의 원의를 “민주”에서 “압제”로 바꿔치기 했다! 오늘날 중국의 현실을 보면, 그 함의가 어렵잖게 파악된다. 바로 QR코드, 바이오 메트릭스, 홍채인식,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최첨단의 디지털 감시체제를 이용한 대민(對民) 통제의 강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시진핑도 틈만 나면 “민주(民主)”를 강조한다. 시진핑 정권에서 강조해온 “사회주의 핵심가치관” 12가지 중에서 “민주”는 “부강(富强)”에 이어 제2의 가치이다. 과연 어떻게 공산당 일당독재의 나라 중국의 최고권력자가 “민주”를 외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독재자치고 “민주” 팔이를 안 한 사례가 별로 없다. 레닌,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 20세기 전체주의 정권의 좌우파 독재자는 모두 “민주”를 강력한 장기집권의 명분으로 삼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자 페리(Elizabeth J. Perry)의 분석에 따르면, 오늘날 중국에서 “민주”는 흔히 “인민주의적(populist)” 개념으로 사용된다. 시진핑 집권 초기 중국의 사회의식 조사를 보면, 85%의 중국인들은 “민주”가 “정부의 지도자들에 의한 인민을 위한 통치”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때의 “민주”란 유권자가 직접, 비밀, 보통 선거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고 교체하는 근대 구미 사회의 선거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계몽주의 이후 입헌 민주주의는 경쟁적 선거, 다수결주의, 국가권력 제한을 명시한 자유주의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민주주의(populist democracy)”는 21세기 현대 민주주주의 국가의 “선거 민주주의”와는 결이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독재 권력의 하향적 대민(對民) 지배를 전제하지만, 후자는 국민 참여에 따른 상향적 민주 권력의 창출과 교체를 핵심으로 삼는다. 결국 중국공산당이 부르짖는 “민주”란 “백성을 어엿비 여기고 백성을 위하는” 전통시대 군주의 위민(爲民) 통치의 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의 주체는 중국 인민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다.

    그렇다고 모든 중국인들이 “인민주의적 민주” 개념에 포박당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위의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15%의 중국인들은 “정기적인 선거를 통한 국가 지도자의 선출”을 “민주”의 본뜻이라 생각하고 있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중국이 선거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61%는 부정적 답변을 했다. 적어도 39%는 미국식 “선거 민주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언제든 제2의 웨이징성이 다시 나와서 민주적 직선제를 통한 정권 교체를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1978-1979
    <1978-1979, 베이징의 민주장(民主墻) 운동. 사진/공공부문>

    톈안먼 민주 운동과 구소련 붕괴로 이어진 웨이징성의 민주장 운동

    1979년 3월 덩샤오핑을 정조준해서 “민주”의 직격탄을 쏜 웨이징성과 <<탐색>>지 동인들의 결정은 기름통을 들고 불길로 뛰어드는 무모한 행동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40년이 지나 웨이징성은 그날 자신이 써붙였던 “민주냐, 새로운 독재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자평했다.

    “예상대로 우리들이 모두 체포되자 커다란 풍파가 일어났다. 덩샤오핑은 부득불 잠시 민주화 체포를 잠시 정지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민주장은 1년 간 더 지속됐다. 우리들의 체포가 변곡점이 되어 민주장에선 큰 변화가 일어났다. 민간 간행물 편집위원 류칭(劉靑, 1946?- )과 저명한 시인 베이다오(北島, 1949- )를 위시한 운동가들이 구명운동을 벌였다. 당내 각급의 개혁적 간부들이 덩샤오핑의 정치적 탄압을 비판했다. 그 결과 당내에는 덩샤오핑 독재를 비판하는 반대파가 결집되었다.

    웨이징성은 베이징 민주장운동의 세계사적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1979년 민주장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중국 밖 여러 나라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새롭게 일어났다. 타이완, 파리, 프라하, 바르샤바, 모스크바 등지로 민주의 열풍이 번져갔다.”

    1979년 12월 10일 타이완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메이리다오(美麗島)사건’이 발생했다. 웨이징성의 지적대로 “베이징의 봄”은 타이완 민주화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타이완 민주진보당 전 주석 스밍더(施明德, 1941- )는 스스로 베이징 민주장운동에 자극을 받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덩샤오핑의 강경 진압으로 민주장운동은 중단되었지만, 민주를 향한 중국 인민의 열망을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1986년 봄 다시 민주의 싹이 돋아나 그해 말 대학가에선 대규모 학생 시위가 일어났고, 3년 후엔 1989년 4-6월 톈안먼 민주운동으로 만개했다. 톈안먼 민주운동은 비록 탱크 부대에 짓밟혀 무지몽매한 대학살극이 벌어졌지만, 베이징의 봄은 결국 구소련과 동구 공산당 체제를 붕괴를 예고했다. 웨이징성은 말하듯, “베이징 민주운동은 전 지구적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킨 위대한 공헌을 했다.” <계속>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 근본적인 개념 이해 ⚖️🌐 완벽 분석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언뜻 보면 비슷하거나 같은 개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용어는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각각의 가치와 지향하는 바에도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체제'를 뜻하는 민주주의와, 여기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라는 가치를 더한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개념의 핵심적인 차이점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깊이 있게 다룹니다. 민주주의의 다양한 얼굴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논의에 참여해 보세요. 🧠✨

    🌟 1. 민주주의(Democracy)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어 'demos (국민)'와 'kratos (지배)'에서 유래한 말로, '국민의 지배'를 뜻합니다. 🏛️

    1.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 🗣️

    • 국민 주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입니다. 국민이 직접 또는 대표를 통해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합니다. 🙋‍♀️🙋‍♂️
    • 다수결의 원칙: 의사를 결정할 때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는 가장 효율적인 의사 결정 방식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
    • 대의 민주주의: 현대 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도록 하는 대의 민주주의(간접 민주주의)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

    2.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 🌐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정치 체제라기보다는, 다양한 이념과 결합하여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 직접 민주주의: 국민이 직접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방식 (고대 아테네, 현대의 국민투표 등).
    • 대의 민주주의: 국민이 선출한 대표를 통해 통치하는 방식 (대부분의 현대 국가).
    • 인민 민주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용했던 용어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의 지배를 강조하며,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름에 '민주주의'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국민이 다스리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그 방식과 결과는 어떤 이념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 2.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단순히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을 넘어,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인권)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이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합니다. 📜

    1.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개념 ✨

    •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 다수결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의견이나 개인의 기본권(언론, 집회, 사상, 신체 등)은 다수의 결정으로도 침해될 수 없다는 원칙을 포함합니다.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권력 분립: 국가 권력(입법, 행정, 사법)을 여러 기관으로 나누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권력 남용을 방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합니다. 🏛️⚖️
    • 법치주의: 모든 국민과 정부 기관이 법에 따라 행동하며,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제한하는 원칙입니다.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합니다. 📖
    • 복수 정당제 및 자유로운 선거: 여러 정당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국민이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다원주의 사회를 지향합니다. 🗳️
    • 사유 재산권 보장 및 시장 경제: 개인의 사유 재산권을 인정하고, 시장 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경제 활동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

    2.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배경 📖

    자유민주주의는 17~18세기 계몽주의 사상과 시민 혁명(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절대 군주제에 대항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고, 권력 제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 초기 자유주의: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 현대 자유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보장과 함께 사회적 평등, 복지 등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기본 위에 '자유'라는 안전장치를 더한 것입니다. 다수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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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 차이점 비교

    두 개념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분명한 강조점의 차이를 가집니다.

    1. 주요 차이점 요약 📊

    구분 민주주의 (일반적 개념)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핵심 가치 국민 주권, 다수결의 원칙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 권력 분립, 법치주의
    초점 누가 통치하는가? (국민) 어떻게 통치하는가? (자유와 법에 근거)
    다수결의 원칙 다수의 결정이 중요 다수결이지만 소수 의견과 개인의 자유를 존중
    적용 범위 정치 체제 일반 (광범위) 특정 이념(자유주의)이 결합된 정치 체제 (더 구체적)
    위험성 다수의 횡포 가능성 지나친 개인주의로 인한 공동체 약화 가능성
    예시 고대 아테네 민주정,
    인민 민주주의 (북한)
    대한민국, 미국, 유럽 대부분의 민주 국가

    2. 민주주의의 '명사'와 '형용사' 🧐

    쉽게 비유하자면, 민주주의는 '명사'와 같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다"라고 말할 때,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로운'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어떤 종류의 민주주의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즉,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라는 의미입니다.

    💡 대한민국 헌법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과 제4조 등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를 넘어, 개인의 기본권이 존중되고 권력 분립과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형태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뜻을 명확히 합니다. 이는 북한의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둔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마무리하며: 현대 민주주의의 본질 🌐✨

    현대 국가에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민주주의'는 대부분 개인의 자유와 권리, 법치주의를 핵심 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합니다. 단순한 다수결 원칙이 아닌, 다수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소수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중요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 주권과 개인의 자유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산물이며, 이는 현대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이 두 개념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논의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참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북한 체제 어떻게 다른가

    취재기자
    10~12분

    남북한 체제 어떻게 다른가
    -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바람직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pbpm@hanmail.net

    2017. 11. 28

    인류가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 가치 두 가지를 뽑는다면 자유와 평등일 것이다. 이 가운데 남한이 추구해온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자유를 더 중시하고, 북한이 지향해온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공산주의는 평등을 더 중시한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은 서로 보완적이면서도 상충적이다.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면 사회적 평등은 축소되고, 사회적 평등이 확장되면 개인의 자유는 위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남북의 이념이나 체제를 비교하면서 남한은 민주주의인데 북한은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부적절한 비교다. 민주주의는 정치 이념이나 체제를 가리키고, 사회주의/공산주의는 경제 이념이나 체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남쪽의 정치적 자유를 내세우고 싶으면 남한은 민주주의인데 북한은 독재주의라고 말하든지, 남쪽의 경제적 풍요를 자랑하고 싶으면 남한은 자본주의인데 북한은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말하는 게 옳다.

    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고 사회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으며, 사회주의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고 독재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다. 대개 민주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경제와 짝을 이루고, 사회주의 경제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치를 거치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그리고 사회주의와 독재주의를 같거나 비슷한 개념으로 쓰는 경향이 크다. 이것 역시 잘못이다.

    1.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정의하기 어려운 정치학 용어다. 개념이 애매모호하고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2017년 현재 지구상의 약 200개 나라 가운데 스스로 민주주의가 아니라 규정하는 국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남북한부터 그렇다.

    남한은 1948년 정부수립 때부터 지금까지 단 1년이라도 민주주의가 아닌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 때문이다. 이승만의 12년 독재정치에도 민주공화국이라 했고, 박정희의 18년 군사독재 때도 민주공화국이라 우겼다.

      북한은 남한보다 민주주의를 더 강조해왔다. 남한은 헌법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을 내세웠지만, 북녘은 나라 이름에서부터 민주공화국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8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3대에 걸쳐 세습 통치를 해도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와 ‘공화국’은 변함없다.

      민주주의에는 종류가 많다.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와 심의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이 1950년대에 주창했던 교도민주주의와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에 독재정치를 강화하며 이름 붙였던 ‘한국적 민주주의’까지..... 이 가운데 이념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널리 자리잡아온 대표적 민주주의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미국과 남한 등이 지향해온 자유민주주의, 중국과 북한 등이 추구해온 인민민주주의,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이 실시해온 사회민주주의다.

      첫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것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정치 이념이다. 17-18 세기 유럽에서 발전된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개인의 자유와 법적 평등을 중시한다. 여기서의 자유는 각 개인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 최소한의 제한을 받으며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상태요, 평등은 개인이 타고난 본질적 가치가 동등하며 세습적 특권이 거부되는 상태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주의와 사유재산권 등을 중시하므로 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결합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말 앞에 아무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를 가리키기 마련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남한이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등이 반공을 바탕으로 한 국가보안법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으니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인민민주주의는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들에서 인민의 평등을 목표로 채택해온 정치이념이다.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 계급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민의 대표기관인 의회 등을 도입해 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동’들을 제거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북한에도 인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라는 의회가 존재하고 기능한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가 수령의 통치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없는데도 인민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셋째,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적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이념이다. 노동자 계급에 의한 폭력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주의를 이룬다는 취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의 스탈린 독재주의가 공산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쓰이게 되자,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실현되며, 민주주의도 사회주의에 의해서만 달성된다”는 민주사회주의운동이 영국과 서독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사회복지정책이 가장 잘 발달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민주주의다.

        2. 남한의 다당제와 북한의 1당제
    남한은 오랫동안 군사독재를 통해 양당제 같은 1.5당제를 유지했다. 거대한 여당과 왜소한 야당이 있었던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정당 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며 양당제를 거쳐 다당제로 발전하고 있다. 북한은 2017년 현재까지 수령독재 또는 1당독재를 실시해오고 있다. 남한에서는 북한을 비난하기 위해 부정적인 의미로 1당독재라는 말을 쓰지만 북한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정당화하며 미화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는 여러 계급이나 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의 다양성을 중시하고 다당제를 취하기 쉽다. 각 계층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정당도 필요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정당도 필요하다. 진보주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도 만들어지고 보수주의자들을 대변하기 위한 정당도 만들어진다. 환경보호를 위한 정당도 나오고 종교의 확장을 위한 정당도 나온다.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는 (자본가) 계급이 없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사회의 획일성을 중시하고 일당제를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계급계층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이 많이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궁극적으로 ‘노동자 천국’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을 대변하며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정당인 공산당이나 노동당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을 위한 정당은 있을 필요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 이른바 1당독재를 긍정적으로 선전하거나 정당화하는 배경이다.

      북한에는 정당이 3개가 있다. 남한에 잘 알려져 있는 <조선로동당> 말고 과거 남한의 <민주노동당>과 자매결연하고 교류했던 <조선사회민주당>도 있으며 천도교도들이 중심이 된 <천도교청우당>도 있다. <조선로동당>은 1945년 10월, <조선사회민주당>은 1945년 11월, <천도교청우당>은 1946년 2월 만들어졌다. 이렇듯 정당이 세 개나 있는데도 1당제라고 일컫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당이란 사전적 의미로 정치적 이념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명실상부한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집권(執權) 경험이나 수권(受權)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권을 잡아본 경험이 있거나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진정한 정당인 것이다. 북한엔 이러한 정당이 <조선로동당> 하나뿐이기 때문에 1당제라고 한다. 미국에서 대통령선거 때가 되면 전국적으로 100개 안팎의 정당이 출현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정권을 잡아보고 앞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은 민주당과 공화당 2개 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의 정당제도를 다당제라 하지 않고 양당제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고로,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정권을 잡지 못한 정당을 야당이라고 하지만 인민민주주의에서는 정권을 잡지 못한 정당을 우당(友黨)이라고 부른다. 경쟁하거나 반대하는 정당이 아니라 협력하거나 보조하는 정당이란 뜻이다. 북한에서 <조선사회민주당>이나 <천도교청우당>은 <조선로동당>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라 보조하는 우당이다.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국가나 정부보다 당이 더 높은 위치에 있고 더 크고 많은 권력을 행사한다. 당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체제다. 공산주의 이론에 따라 정부와 국가는 궁극적으로 사라져야 할 조직이나 기구지만 공산당은 영원히 남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 헌법 제1장 제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이 국가를 영도한다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이 당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3.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본(재산)’을 중시하는 경제 이념이다. 사유재산권이 핵심 가치다.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과정에서 시작되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전해왔다. 시장경제와 결합되는 순수자본주의, 즉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고 경제의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부터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역할이 커져 왔다. 이것이 수정자본주의다. 시장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정부의 개입이라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요소를 섞었다고 해서 혼합경제체제 (mixed economic system)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서나, 미국에서든 남한에서든, 순수한 자본주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자본주의는 수정되면서 발전해온 것이다.

    요즘은 자본주의라는 말조차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생략한 채 시장경제라고 강조하거나 ‘시장민주주의(market democracy)’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본주의 하면 빈익빈부익부 또는 황금만능 등의 부정적 개념이 먼저 떠오르지만, 시장이란 말은 수요와 공급에 의한 자유로운 소통을 먼저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를 알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다. 대개 둘을 같은 것으로 쓰고 있지만, 공산주의가 목표나 결과라면 사회주의는 과정이나 수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마지막 단계 또는 종착점이요,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시작 단계 또는 출발점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세상에 공산주의 국가는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북한을 포함해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다소 있었을 뿐이다.

    북한은 헌법 서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다”고 선언하고, 제1장 제1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라의 이념이나 사상 또는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서 그 개념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말 그대로 사회의 조화와 평등을 강조하는 이념이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단점이나 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사유재산에 따른 부의 편중이나 사회적 불평등 또는 모순 등을 극복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발전되어온 사상이기 때문에,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가장 근본적이고 큰 차이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느냐 금지하느냐는 점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유재산의 대상이 생산수단에 한정된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하는 재물, 또는 쉽게 말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인 음식, 옷, 가구, TV와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등은 물론 값비싼 자동차도 개인이 가질 수 있다. 북한에도 관용차 말고 자가용을 굴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떤 물건을 만들어낼 때 노동의 대상이나 도구가 되는 생산수단은 개인이 가질 수 없다. 식량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토지나 지하자원 그리고 옷이나 가구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원료나 기계 등은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가장 대표적인 생산수단은 농장과 공장인데 이런 것들은 국가나 공공기관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헌법 제2장 제20-22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 국가소유는 전체인민의 소유이다. 국가소유권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 나라의 모든 자연부원, 철도, 항공, 운수, 체신기관과 중요 공장, 기업소, 항만, 은행은 국가만이 소유한다. 국가는 나라의 경제발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국가소유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며 장성시킨다. 사회협동단체 소유는 해당 단체에 들어있는 근로자들의 집단적 소유이다. 토지, 농기계, 배, 중소 공장, 기업소 같은 것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할 수 있다. 국가는 사회협동단체 소유를 보호한다.”

    거듭 강조하자면, 소비재는 자동차처럼 아무리 비싸고 큰 것이라도 개인이 가질 수 있되, 생산수단은 땅이 손바닥만 하고 공장이 아무리 조그만 해도 개인이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중국은 지속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크게 받아들여 오고 있는데, 생산수단 가운데 공장이나 기업은 개인이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땅은 한 평도 가질 수 없다. 농지에 대한 경작권은 가질 수 있어도 소유권은 가질 수 없으며, 공장을 세워 그 건물은 사고 팔 수 있어도 공장이 들어선 땅은 사고 팔 수 없다는 뜻이다.

    사회주의에서 생산수단을 개인이 갖지 못하게 하는 배경이나 이유는 노동력 착취를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농장이나 공장을 가지고 있으면 그 자신은 직접 일을 하지 않고도 일꾼들의 노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농장이나 공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생산한 것을 자신이 직접 갖지 못하고 지주나 공장주로부터 노동의 대가 또는 임금을 받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농장이나 공장 등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노동력을 빼앗게 되는데,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비인간적인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국유화 또는 공유화한다는 것이다. 농장과 공장 그리고 기업 등이 소수 개인의 이윤추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사회의 필요를 위해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마르크시즘(Marxism)이라 불리는 과학적 공산주의 또는 현대공산주의는 1848년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내놓으면서 이론적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사상이다. 1818년 독일에서 태어난 마르크스가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기자로 일하다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서 생활할 때는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기계와 공장의 등장으로 경제가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농업사회가 공업사회로 바뀌어갔다. 이런 공업화 과정에서 그는 노동자들이 한낱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한편 공장주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서 공산주의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공산주의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 모든 인류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이상적 사회를 목표로 한다. 공산주의가 이루어지려면 기본적으로 3가지가 없어져야 된다. 첫째, 부의 편중이나 사회적 불평등을 불러오는 사유재산이 사라져야 한다. 사회주의의 기본원칙으로 공산주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일으키는 계급이 사라져야 한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가계급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 인민의 자유로운 생활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정부가 사라져야 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무소유(無所有), 무계급(無階級), 무정부(無政府)의 3무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공산주의의 배경과 목표는 참 훌륭하고 바람직하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해 하나가 되어 아무런 간섭이나 통제 없이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데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첫째, 개인이 생산수단을 갖지 못하게 되면 자본가들의 노동력 착취가 없어지고, 양극화나 빈익빈부익부 현상 같은 부의 편중이나 사회적 불평등이 일어나기 어렵겠지만, 생산성이 크게 떨어져 경제 성장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경영자나 관리자 처지에서는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위 주인정신이 약해 소홀하기 쉽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근로의욕을 높이는 유인책(인센티브)이 적어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기업 또는 민영기업보다 공기업이나 국영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요, 자본주의국가보다 사회주의국가의 생산성이 뒤처지는 배경이다.

     

    둘째,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계급을 없애는 과정에서 폭력을 부추기거나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계급이란 군대나 경찰 등의 조직에서 신분이나 직위가 높고 낮음을 구분하는 단계가 아니라,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갈등하고 대립하며 투쟁하는 집단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고대의 귀족과 노예, 중세의 영주와 농노, 근대의 자본가와 노동자가 각각 계급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시대마다 상반되는 집단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을 통해 인류가 발전해왔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공산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본가 계급이 없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자본가들이 스스로 사유재산을 내놓고 노동자 계급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을 착취하는 자본가 계급을 물리쳐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자본가들이 생산수단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축적된 부를 통해서 온갖 정보 및 통제나 회유 수단을 가지며, 권력과 결탁하거나 아예 권력을 잡기까지 하는 마당에, 노동자들이 무슨 수로 자본가들을 타도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에 마르크스는 모든 노동계급이 단결하여 혁명을 통해 지배 계급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게 바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폭력혁명’이다. 계급을 없애는 것은 폭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인데, 폭력적 수단에 의하지 않고 공산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공산주의의 심각한 문제다.

      셋째, 노동자혁명을 통해 자본가 계급이 타도된다 할지라도 공산주의가 실현될 때까지는 독재정치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도 비판받아야 할 점이다.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금지하고 계급을 폐지하더라도 모든 인민이 한결같이 당과 국가의 방침이나 정책을 지지하거나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이나 국가의 결정을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인민민주주의를 실시하지만, 그 결정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불순분자 또는 반동세력으로 몰아붙이고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독재를 시행하게 된다.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요약하자면 공산주의가 태어난 배경이나 지향하는 목표는 훌륭하고 이상적이지만,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나 수단은 폭력적이고 독재적이라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4. 남북한 통일을 지향하며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각각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 남한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이념을 발전시키되 ‘사회적 평등’을 중시하는 북한 체제의 장점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 바꿔 말해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면 된다. 북한은 ‘사회적 평등’을 중시하는 이념을 발전시키되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남한 체제의 장점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게 좋다. 쉽게 말해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면 된다. 그러면 남북이 이제까진 70년 안팎 헤어져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아래서 살아왔어도, 앞으로는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복지 사회를 지향하며 통일을 추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이 글은 2017년 11월 3일 경기평화교육센터에서 “남북한 체제 비교”를 주제로 실시한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인민민주주의(人民民主主義, 러시아어: Народной демократии, 영어: people's democracy) 또는 민중민주주의(民衆民主主義)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론상 개념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소비에트 연방 과학 아카데미 사회과학원은 각 약소국의 혁명 모델을 연구하였고 그 결과 ‘인민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 인민민주주의 혁명 이론에 근거하여 동유럽과 아시아 각국 공산당에 산업프롤레타리아·농민·지식인·소부르주아의 연립 정권을 구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종전 후 갑작스러운 공산화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수월하게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계급을 하나의 혁명집단으로 묶을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할 정치적 여유를 벌기 위함이다. 두 번째는, 동유럽과 아시아 일대의 경제혁 생산력은 상당히 낮았기에 자본주의가 들어선 적이 없다는 평가에 기초하여, 해당 사회를 반봉건사회(半封建社會)라 규정하고, 민주주의 혁명을 선차적으로 도모하려는 의도이다.[1]

    본래 인민민주주의와 유사한 이론적 개념은 1928년 12월 10일 코민테른에서 발표한 ‘12월 테제’에서 등장하나[2], ‘인민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 사회과학원에서 만들어졌다. 소비에트 연방 사회과학원은 식민지 국가, 약소국과 특히 중국의 혁명을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 기존 서구의 부르주아와 달리 약소국의 부르주아는 민족 독립을 중시하는 동시에 진보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춘 부르주아라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중국의 부르주아 지식인은 서구의 불충분한 부르주아 혁명을 비판적으로 흡수했기에 서구 부르주아 민주주의 초기에서 드러났던 일련의 비민주적인 양상도 또한 성찰할 수 있었다. 동시에 중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 활동가와 민족 부르주아 지식인이라는 두 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사회과학원은 이러한 현상이 모든 약소국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 후 이들의 혁명 흐름을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정의하였다.[3]

    중요한 것은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성립되는 사회구성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닌 반봉건사회라는 것이다. 반봉건사회는 완전한 봉건사회도, 완전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닌 중간 상태를 의미하며, 제국주의 침탈을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가 협소적으로 진행된 상태의 구(舊)식민지 또는 신(新)식민지 상태와 겹친다. 코민테른의 12월 테제에 따르면 제국주의 시대에서 약소국은 제국주의 국가의 세계 재분할 감행에 의해 온전하게 부르주아 혁명을 완수할 수 없으며, 자본가가 혁명을 주도할 수도 없다. 이 시기 혁명은 노동자·농민·소상공인·민족자본가·지식인의 연합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혁명은 반봉건적 사회구성체를 파괴하여 참된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성격을 갖추게 된다.

    레닌의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당의 두 가지 전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며, 그 형태는 세계의 생산 관계의 일정 정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

    부르주아의 계급 독재(이것은 흔히 ‘자유민주주의’라고 불린다) 아래에서 시민에 의거하는 통치를 주창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그 정치의 정체성이 소수의 자본가와 다수의 군중(群衆, Массы)에 몰려져 있다. 여기서 군중이란 계급 의식이 없거나 희미한 개체를 뜻하는 말로, 인민(人民, Народ)과 차별적으로 쓰인다. 낡은 생산 관계를 유지하려는 부르주아 계급은 인간 개체가 유적 존재(독일어: Gattungswesen)로서 사람인, ‘인민’이 되는 것을 막고 오로지 군중으로서, ‘군중에 의거한 통치’를 형식적인 표어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군중은 계급 의식이 없거나 희박하며, 역사 발전의 원동력인 생산 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을 제대로 인식해내지 못 하기에, 그들 스스로가 유적 존재가 되지 않는 한 전근대와 차별화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통치 원리로서 구현할 수 없다. 한편, 부르주아는 자본주의적 소유 구조에서 스스로의 경제적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치적, 법적 장치를 ‘법치’와 ‘인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씩 도입한다. 군중은 부르주아의 이러한 정치적 행동에 때때로는 찬동하며, 동시에 반대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의 진정한 권리를 찾는 거시적인 방법을 모르며, 특정 정치인, 특정 담론에 얽매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러한 총체적 난국 속에서 ‘부르주아적 자유’는 이러한 상태를 부추길 뿐, 그 어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레닌은 부르주아적 자유가 인민과 프롤레타리아에게 전혀 필요없는 것이며, 인민의 이해와 대립하는 것이라고 하였다.[4][5]

    이러한 의미에서 군중은 인민과 다르다. 여기서 인민은 무산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대적 모순 그 자체인 계급 모순을 체화하는 주체이다. ‘계급 투쟁이라는 본질을 가진 적대적 모순’ 그것 자체의 현상으로 주요 모순이 되었을 때,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주요 모순에 참가하는 계급 투쟁의 최일선에 있는 계급이다. 반면 인민은 이러한 적대적 모순이 제국주의 단계에서 불균등 발전 법칙에 의해 여러 양태로 화(化)하였을 때, 그러한 변환된 모순을 인식하는 개체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인민은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아닌 지식인, 소부르주아 계층에서 충분히 등장할 수 있다.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만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가장 민주주의적인 부르주아 공화국도 자본이 근로자를 탄압하기 위한 기관, 자본이 정치권력의 도구, 부르주아 독재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으며 또 될 수도 없었다. 민주주의적 부르주아 공화국은 다수자에게 권력을 약속하고 그것을 선언했으나 토지와 그 밖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존재하는 한 결코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 부르주아적 민주공화국에서는 ‘자유’란 실제로는 부자를 위한 자유였다.

    — 블라디미르 레닌, 『미국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1918년 8월 20일)[6]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자인 로이 메드베데프(Рой Медве́дев)는 자신이 저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하여』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 이렇게 논하였다.

    우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논할 때, 그것을 불안전한 환상적인, 기만적인, 책략적인 효과를 노린 것 등으로 멸시하는 것이, 습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취급하는 것은 편파적이요, 잘못된 것이다. 물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아주 제한된 민주주의며, 따라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 빈자와 부자에 대하여 기회가 평등치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쉬운 일이다.

    — 로이 메드베데프,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하여』(1975년)[7]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근대적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자연법 사상과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변증법적 함의’ 둘 사이를 연결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진보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갖는 외형적 형식을 갖추기 위하여 ‘실증성에 기초한 법치로서 법치주의’를 주창한다. 이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스스로가 민주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수사(국민 주권, 사회계약에 기초한 헌법 원리 등)를 부여하면서도 놓지 않는 것이며, 모순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경험 단계의 지각적 지반을 통해서는 민주주의의 성격과 그 정당성을 정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 실례(實例)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1848년의 프랑스 2월 혁명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것이었으나, 실제로 이러한 대사건이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근거로 프랑스는 1789년 기준으로 약 150년이 지나서야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의 보장은 140년이 지나서야 보장된 것이다. 1783년 미국 혁명 시점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보장된 시점은 1920년이다. 영국의 경우도 1912년이 되어서야 보장이 되었지만 그 조건은 완전히 동등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그것 자체로 진보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적 통치 원리 보장성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 한다. 반면 러시아 10월 혁명은 곧바로 남성과 완전히 동등한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성립된 수많은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경우도 양성의 동등한 참정권 및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권리를 상당 부분 보장하였다.

    군중 집단은 계급의식이 없는 것과 무관하게,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내포한 모순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따라서, 비본질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군중 집단의 저항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러한 저항은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부르주아가 모든 생산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중이 직접적인 행동에 기반한 정치 캠페인을 통해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일종의 망상이다. 이러한 운동은 참여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 운동으로 표현된다.[8] 하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부르주아가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도입하며, 이러한 장치를 고수하기 위한 다층적 폭력을 실시하는 데에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모순, 사회적 문제, 빈곤의 문제는 이러한 것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구조는 상당히 입체적이다. 그러나, 소외된 군중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할 수 없으며, 계속하여 특정한 담론과 미시적인 정책,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으로 선전이 잘 된 인물에 대한 광신적인 숭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문제점을 영영 해결할 수 없는 길로 가게 된다.[9]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군중이 부르주아를 넘어서지 못 하였으며, 부르주아의 정치적 패턴을 분석하는 데 실패했지만, 부르주아는 군중의 정치적 패턴을 대부분 이해하였다고 분석했다. 그리하여 부르주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중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반동성을 되려 유지하는 행동 방식을 문화적 차원에서 강화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화 패권’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 그람시는 이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특징을, ‘인간의 정치적 본성과 괴리된 법률에 대한 숭배’(부르주아 법치주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 한 상태에서 행동하는 군중의 정치적 권리’(부르주아 인권), ‘사물에 대한 수동적이고도 기계적인 반응과 그 과정을 자유로 착각할 자유’(부르주아 자유)라는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하였다.

    인민민주주의는 계급 의식에 기초한 사람에 기반하는 민주주의이다. 이는 정확하게 말하여, 생산 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에서 시발(始發)하여 생성된 수많은 주요 모순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 존재에 의거하는 민주주의적 통치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인민민주주의는 사회주의 단계라고 취급할 수 없으나, 이 정체(政體)에서 대부분의 공민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계급 투쟁 의식을 항상 갖는 것으로 간주된다.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당의 두 가지 전술』에서 레닌은 러시아 제국이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이기 때문에 과거 서유럽의 전통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경로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레닌은 러시아의 민주주의 혁명은 노동계급과 농촌 소부르주아 계급의 연합으로서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레닌은 위 두 세력이 이중 권력 체계로 이끄는 민주주의를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라고 칭하였다. 이 개념은 인민민주주의와 유사하나, 본질적으로는 다르다.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정책은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적인 정책과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 단계는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기간이다. 따라서 경제 운영에 있어서 전면적인 국유화가 아닌 국유화와 집체소유(混合所有)의 혼합 방식을 채택한다. 또한 정당 정치에도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유화는 경제 운영 골격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민주주의 혁명이 목표로 되는 사회구성체는 봉건적 소생산 체계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혼재된 상태이며,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이 반봉건 체제를 타파하는 데에 그 목적성이 있다. 특히 소생산 경제 주체의 수는 상당히 많기에 이들을 한꺼번에 국유 조직에 흡수하기 힘들다. 따라서 봉건적 소생산 구조는 소멸하고, 대신에 소생산자(중소 및 영세자영업자 등)는 생산자 협동조합으로 편입되어 자기 노동에 기초한 수익을 보장받는다. 이러한 집체소유법은 사회주의 단계에서도 유지된다.

    토지 개혁은 토지 소유권을 일체 소멸하는 전면적인 토지 국유화가 아닌, 토지 분배의 성격을 강화한다. 따라서 농민은 토지 소유의 주체로서 법적 효력을 가지며, 소작제 폐지, 몇 가지 징세 제도와 소유 가능 토지 면적 제한 등을 통하여 반(半)봉건적 토지 소유 구조의 부활을 막는다.

    불로소득자 및 임대업자는 공업화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거에 소멸하기 힘들기에, 사회주의 공업화의 객관적 조건이 성립될 때까지 표준임대료제를 통하여 임대료의 폭증을 막는 동시에 임대료를 대폭 낮춘다. 중국과 베트남 인민혁명 과정에서 실제 적용된 감소폭은 최소 30%에서 최대 50% 수준이었다. 불로소득에 기생하는 지주는 소멸하게 되며, 임대업자는 추가적인 노동을 하지 않을 경우 제한된 소득만을 얻게 된다. 단, 이 과정은 각국마다 그 조건에 따라 상이하게 달랐으며,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에서 임대업자는 곧바로 소멸되었다. 사회주의 토대가 확립되었을 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임대-임차 관계가 청산된다. 이러한 혁명 과정이 진행되는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장(場)이라고 할 수 있는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춘 공장업은 사회주의적 국유화를 통하여 사회주의 형성의 객관적 조건을 마련하게 한다. 인민민주주의 경제 구조에서 공장의 프롤레타리아는 인민민주주의의 강화와 더불어, 사회주의로의 진보를 추동하는 핵심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전(全) 사회적인 것으로 될 때, 인민정부는 토지 국유화를 점진적으로 수행하고, 소농 및 영세농이라는 소생산자의 성격을 갖고 있는 농민을 협동농장의 일원으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농민은 소생산자 성격이 사라지며 농업 프롤레타리아로서 기능할 수 있다.

    직접 투표에 기초한 보통선거제, 여성 참정권 완전 보장, 여성 인권 증진, 노예제도 폐지, 국내 외국인이 가질 수 있는 권리 등을 보장한다. 그러나 인민정부는 인민민주독재(人民民主獨裁) 권력이기에 불로소득 기생자·매판지주·매판자본가·기타 착취자 등에 대해서는 폭력을 수반하는 독재를 실시한다.

    행정 조치에서 ‘법률우위의 원칙’이 폐지되고, 개별 사안에서 기만적인 ‘법리’(法理)보다는 인민의 의사를 중점에 놓고 판단한다.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유로운 공화국인 부르주아 공화국이 기존의 자연법사상을 망각하고, 스스로의 반인민적 지배를 위해 현상적 차원에서 규정된 개법(個法)을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권위를 부여한 후 법률을 부르주아 독재의 수단으로 여길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합치하는 것이 아니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참된 민주주의가 될 수 없는 이유라고 하였다. 여기서 인민에 의한 정치는 법률적 토대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각 지역에 조직된 문화·생산 조합과 인민위원회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10]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 법률은 미시적 차원에서 인민민주독재가 작용되는 범위를 대략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인민민주독재가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이 없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제, 민사상의 법률 문제는 관련 법률을 적용한다.[10]

    법률 성격, 법률이 적용되어야 하는 범위의 확립 및 제한점을 기준하는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특성은 사회주의 성립 이후에도 유지·발전된다.

    복지라는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반봉건국가나, 최소한 수준의 복지만 갖추고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달리, 인민정부는 교육·노동·식량·의료·주거 차원에서 전향적인 복지가 이루어진다. 인민정부가 실시하는 복지는 국가주도의 복지로, 민간사회복지업체·민간자선사업체에 의한 자본주의적 복지랑 상당히 다른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복지 시설의 대대적인 국유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후 대부분의 주거와 일정 식량 및 생필품은 무상으로 분배되며, 무상 교육, 무상 의료가 실시된다. 노동권은 직장배정제(職場配定制)를 통하여 보장된다. 특히 주거 지대와 작업장 지대 내 국립탁아소 건립 및 주요 직종 할당제 실시를 통한 여성 복지 강화는 인민정부 주도 민주주의 시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복지 체계는 사회주의 단계에서도 유지·발전된다.

    소생산자 및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도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제도의 실질은 점진적인 국유화 및 집체소유화와 병행하며 이루어진다.

    인민민주주의 정당 정치는 형식적으로 다당제(多黨制)에 기초하고 있으나,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으로 향하기 위한 혁명을 지도하는 중심 세력은 프롤레타리아이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전위정당이 실질적으로 정치를 주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력은 정당 정치라는 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프롤레타리아 전위정당 주도의 사회 변혁 과정(형식적 정당 정치가 아닌 영역)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 정치는 형식적으로 다양한 계급·계층 조직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전위정당이 갖는 실질적인 권력으로 인해 다양한 계급·계층의 이해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따라 인민정부는 다양한 계급·계층 조직의 연립체인 통일전선체(統一戰線體)를 조직하여야 한다.

    경제 조직의 사회주의화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역량을 확보하게 할 것이고, 정당 정치에서 다양한 계급 이해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 사이의 괴리는 점점 좁혀질 것이다. 사회주의로의 단계가 완성될 때 정당 정치는 프롤레타리아 전위정당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 삼권분립(三權分立) 또는 이권분립(二權分立)은 사라지거나, 형식적으로 존재하더라도 제기능을 하지 못 하는, 사실상의 폐지 상태로 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 이론에서 권력 분립의 이데올로기와 법적 토대는 자유주의 성립 초기 부르주아들과 봉건영주 사이의 타협으로 성립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물론이고, 블라디미르 레닌, 체 게바라 등은 삼권분립 또는 이권분립이 자유주의자들이 혁명기 과정에 봉건영주 세력과 타협한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봉건 세력과의 타협에 기초한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참된 민주주의로서 기능하지 못 하는 하나의 증거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또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최고로 성숙하게 될 경우, 삼권분립과 이권분립이 인민의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정치 권력 행사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였다.[10]

    반봉건적 생산 관계를 일체 철폐함으로써 부당한 징세 제도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징세 제도는 재정 운영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인민정부는 사회주의 구조로의 진입 조건이 생성될 때까지 소생산자(농민, 기타 자영업자 등), 중소기업에 대해선 징세를 펼친다. 따라서 토지세, 법인세, 일부 소득세, 공과금 제도는 당분간 유지된다. 경제 영역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마련될 때 소생산자의 수는 적어질 것이며, 대다수의 농민은 협동농장으로 나아가 농업 프롤레타리아로서 기능하고, 기업의 국유화는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된 상태일 것이다. 이에 따라 인민정부를 징세 제도의 단계적인 폐지를 실시한다. 사회주의 국가가 된 상태에서 징세 제도는 극히 일부의 공과금 제도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민민주주의 국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종전 급증하였다. 1960년대 이후 몇몇 인민민주주의 국가는 헌법을 개정하여 자국이 사회주의 단계에 들어섰음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보통 인민민주주의 단계를 완수하고, 사회주의 단계에 들어서면 국호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변경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사회주의 단계에 들어섰음에도 ‘공화국’ 또는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일부 존재한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자국을 인민민주독재(신민주주의)에 기초한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사회주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뜻이 아닌, 인민민주주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라오스를 제외한 나머지 베트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쿠바 등은 헌법에서 자국이 엄연히 사회주의 단계에 들어선 사회주의 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 자세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