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벽묵상 에스라

남유다 멸망과 포로시기

□ 주요 내용 요약

구 분

주 요 내 용

앗수루 멸망

BC 1,200년~BC609년까지 지속. 국력 쇠퇴기에 애굽과 바벨론이 앗수르 영토 패권을 놓고 다툼

바벨론vs애굽 전쟁


1차 갈그미스 전투

BC 609년. 무승부. 무깃도에서 요시야 전사 → 여호아하스 즉위 → 바로느고가 폐위시킴 → 여호야김 즉위(애굽 섬김)

2차 갈그미스 전투

(1차 예루살렘 침공)

BC 605년. 바벨론 승리. 느브갓네살 침공 → 여호야김 충성 맹세 → 다니엘 등 1차 포로

주변국가의 공격

BC 601년. 여호야김, 바벨론 배반 → 느브갓네살, 주변국가를 통해 유다 공격 → 여호야김 죽음→ 여호야긴 즉위

2차 예루살렘 침공

BC 597년. 여호야긴 배반 → 느브갓네살 침공 → 여호야긴 항복 → 시드기야 즉위 → 에스겔 포로(여호야긴의 온 집안 등 1만명 포함)

3차 예루살렘 침공

BC 588~586년. 시드기야 배반 → 느브갓네살 침공 → 시드기야 포로, 유다 멸망(BC 586년)

포로시기

70년(BC 605~538), 다니엘, 느브갓네살왕 및 벨사살 왕 꿈 해석

바사, 바벨론 점령

BC 539년. 고레스가 점령. 벨사살 죽음

1차 포로귀환

BC 538년. 고레스왕, 포로귀환 칙령. 스룹바벨․예수아 귀환, 성정재건 → 사마리아인 방해로 지연(16년) → 학개, 스가랴 격려로 재개 → 성전 완공(BC 516년)

에스더 사건

BC 483~474년. 아하수에로왕 때. 모르드개와 하만

2차 포로귀환

BC 458년. 아닥사스다왕, 포로귀환 조서. 에스라 귀환. 백성들을 말씀으로 회복시킴

3차 포로귀환

BC 445년(에스라 귀환뒤 13년후) 총독으로 귀환. 성벽 재건 → 바사 귀환뒤 다시 귀환

말라기

BC 430년. 성벽재건후 10년뒤. 메시아 왕국 도래하지 않음 → 레위인 타락 → 백성들 타락 → 여호와의 날 & 엘리야가 다시 옴 → 400년 침묵

□ 상세 내용

o 앗수르 제국 : BC 1200년~BC 609년 (약 600년) → 국력 쇠퇴기에 애굽과 신흥 바벨론은 앗수르 영토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임

o 1차 갈그미스 전투(BC.609년)

- 앗수르 쇠퇴 →신흥 바벨론 vs 이집트, 구 앗수르 영토 패권 다툼 → 애굽 군대(바로느고)가 갈그미스로 진격중 므깃도에서 유다와 전쟁(요시야왕 전사) → 유다 백성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움 → 1차 갈그미스 전투(BC.609년) → 무승부 → 돌아가는 길에 바로느고(애굽)가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여호야김(여호아하스의 형)을 왕위에 세움 → 유다, 애굽의 지배하에 놓임

o 2차 갈그미스 전투(BC 605년, 바벨론의 예루살렘 1차 침공)

- 바로느고(애굽)와 느부갓네살(바벨론)의 격돌에서 느부갓네살 승리 → 바벨론, 예루살렘 침공, 점령 → 유다, 바벨론에 조공(여호야김, 충성 맹세) → 느브갓네살, 아버지 죽음 소식으로 귀국(다니엘과 친구 등 쓸만한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감)

- 여호야김의 딜레마 : 이집트와 바벨론중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왕궁은 친 애굽파, 친 바벨론파로 나뉘어 다툼.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유다 징계를 위해 바벨론을 사용하고 있으니 바벨론에 저항 말 것을 권고) → 애굽에 붙음

o BC 601년(여호야김 사망?)

- 여호야김은 3년간 바벨론 섬김후 배반하여 애굽 섬김(바벨론의 이집트 침공 실패 & 애굽의 지원 약속) → 바벨론은 주변 외인부대(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를 시켜서 유다를 괴롭힘(게릴라전)

- 이 전투중에 여호야김 사망?(BC 601년 혹은 2차 침공때 여호야긴 사망?) → 백성들은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움

o BC.597년(바벨론의 예루살렘 2차 침공)

- 느부갓네살이 직접 침공 → 여호야긴 항복 → 느브갓네살이 여호야긴의 작은 아버지 시드기야(요시야의 아들)를 왕으로 세우고 여호야긴의 온 집안, 고급인력, 병력, 기능공 등 1만명(에스겔 포함)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돌아감

* 포로시대 선지자 다니엘, 에스겔은 남유다 멸망(BC.587년) 전에 바벨론에 끌려감

o BC 597~586년(바벨론의 예루살렘 3차 침공)

- 시드기야, 예레미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굽 바로와 내통 & 바벨론 배반 → 느브갓네살, 예루살렘 침공(BC 588~586) → 시드기야, 아들들 처형당함 & 자기 두 눈이 뽑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감 & 유다 멸망(렘 39:2)

o 느브갓네살 왕

- 하나님이 ‘내 종’이라고 표현(렘 25:9). 패역한 유다를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

- 첫째 꿈에 세계 열강의 미래를 보여주시고(포로인 다니엘이 꿈 해석)

- 두번째 꿈(통치 기간중 34년)에 '하나님의 징계의 꿈'(순찰자가 나무를 자름)을 꾼 뒤 1년 후 정신병으로 7년을 고생 → 하나님의 긍휼로 건강 회복, 마지막 통치 기간에 하나님을 높이는 조서를 씀 → 2년간 살다가 죽음(재위 45년) → 세상 나라의 ‘니므롯’과 같았으나, 결국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보여줌(느브갓네살아, 왕은 바로 나다!)

* 바벨론 : BC 625년(나보폴라살) ~ BC539년(벨사살)(약 90년)

o 바벨론 멸망과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왕

- BC 539, 바벨론 멸망, 고레스 입성

- BC 538, 유대 포로귀환 칙령 내림

- 기름부음 받은 자(사 45:1)

o 포로귀환 : 1차(BC 538년) → 2차(BC458년) → 3차(BC 445년)

o 에스라서 읽기

- 1차 포로귀환과 성전 재건(스 1~2장, BC 538년)

- 성전재건과 예배 회복(스 3~6장, BC 516년) - 에스더, 학개, 스가랴 포함

․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중심이 되어 성전 재건 추진 → 사마리아인들 협력 거부당하자 오히려 방해(아닥사스다 왕 재건 중단명령은 이 때 아님) → 이스라엘 백성들, 중심을 잃고 자기 농경지 돌보는데 몰두 → 성전 재건 지연(16년간 방치) → 다리오 왕, 성전 건축 재개 칙령 & 학개, 스가랴의 격려로 성전 완성(BC 516년)바사 땅에서 에스더 사건 발생(아하수에로왕, BC483~474년)

* 페르시아 역대 왕들은 첨부 참조

- 2차 포로귀환과 에스라 사역(7~10장) : BC 458년

․ 아닥사스다왕, 포로귀환 조서 → 2차 귀환

cf. 시오니즘 : 에스라를 중심으로, 포로시기때 예루살렘(시온)의 회복을 꿈꾸며 자손을 교육시키면서 형성된 유대 공동체의식(구약 역사 전체를 의미하지 않음)

o 에스라

- 다니엘, 에스겔은 BC 605년경 인물들이며 에스라, 느헤미야는 BC 440년경 인물들로서, 약 160년간의 시차가 존재

- 스룹바벨 등 1차 포로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BC 538년경)한 뒤 약 80년 후(성전 재건후 60년후)에 예루살렘에 도착)

- 포로시대때 바사 땅에서 출생. 고레스대왕 칙령으로 이미 동포중 상당수가 예루살렘으로 떠나있는 상태. 성전은 재건되어 있으나, 율법에 능한 지도자가 없어서 백성을 말씀으로 세우지 못하고 있음. 율법에 정통한 학사인 자신이 백성을 바로 세워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떠남.

-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귀환한 백성들을 중심으로 족장들의 계보를 조사 → 역대상하 및 에스라서 집필 → 말씀을 가르치며 사회 개혁을 주도

- 이방인들과의 혼혈에 매우 민감하여(이스라엘의 멸망이 거기서부터 시작) 결혼한 아내까지도 방출시킴

o 느헤미야서 읽기

- 원전에는 에스라서와 함께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음(→느헤미야서도 에스라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짐)

- 3차 귀환과 성벽재건(느 1~7장, BC 445년)

· 느헤미야는 에스라 귀환뒤 13년후(예루살렘 성전 재건후 약 100년뒤)에 귀환(아닥사스다 왕의 명을 받아 유다 총독으로 12년간 근무) → 예루살렘 성벽 재건 및 개혁운동후 바사로 돌아갔다가 다시 옴

-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공동사역(종교개혁, 8~13장)

· 율법책 낭독, 회개, 개혁을 위한 백성들의 서약, 귀환자 거주지 배정, 영적 회복 주도, 통치를 위한 인구조사, 초막절 준수, 레위인 정비 및 제사제도 확립

<바벨론 포로 70년 계산>

포로 70년을 신학자들 간에 다르게 계산함.

① 1차포로~1차포로 귀환까지(BC 605~538)

예루살렘 1차 침공과 1차포로 시점 ~ 유대인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재건 명령한 고레스 왕 제1칙령까지

② 성전중심의 종교적 계산으로 포로 70년 나옴(루터 교)(BC 587 ~ 516)

성전파괴 ~ 성전재건 중심의 종교적 계산으로 포로 70년 나옴

o 말라기 :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후 약 10년 뒤(BC 430년경)

- 성전 재건뒤 시간이 가도 바라던 메시야 왕국(단, 겔, 학, 슥 예언)이 도래하지 않음 → 하나님 사랑과 약속 의심(말 1:2),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의심(말 2:17) → 제사장들의 타락(제사 소홀, 계약 파기, 율법 범함) → 백성들 타락(십일조, 헌물 소홀, 잡혼과 이혼)

- 하나님의 약속으로 끝남 (말 4~5장) : 여호와의 날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리라(→ 신약 세례 요한) : 여호와의 날과 엘리야를 기다리며 끝남.

역대 바사(페르시아) 왕들 계보

o 아케메네스

o 테이스페스

o 고레스 1세 + 아리아람네스(고레스1세의 동생, 공동통치자)

o 캄비세스 1세 + 아르사메스( 캄비세스1세의 사촌동생, 아리아람네스의 아들, 공동통치자)

o 고레스 2세(고레스 대왕, BC 559~530) : 유대백성들 귀환 허락. 예루살렘 성전 재건 후원. 기름부음 받은 자(사 45:1)

o 캄비세스 2세 : 성경언급 없음

o 다리오 1세 (기원전 522-486) - 일명 다리우스 대왕. 다니엘에서 말하는 메대 사람 다리오와는 전혀 다른 인물. 학개, 스가랴가 다리오 1세 통치 2년에 설교 시작. 스룹바벨 성전이 이 시기에 건립

cf. 메대 사람 다리오는 다니엘 시대의 인물로서 요세푸스의 기록에서 " 페르샤 왕 고레스와 메대 왕 다리오(Darius)는 그(나보니더스)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다리오와 그의 친척인 고레스와 함께 바벨론을 함락시켜 바벨론의 통치를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62세였다. 그는 아스티아게스(Astyages)의 아들이었으며, 희랍 사람들 가운데서 그는 다른 이름을 가졌다." 라고 되어있음.

o 아하수에로 1세(크세르크세스, BC 486-465) - 에스더를 왕비로 맞은 왕.

o 아닥사스다 1세(BC 465-425) - 에스라와 느헤미야(술관원장)를 예루살렘으로 보낸 왕. 일반적으로 에스라 임무가 아닥사스다 통치 7년째 주어졌다고 함.

o 아하수에로 2세(BC 423) - 2개월만에 죽음(성경 언급 없음)

o 다리오 2세(BC 423-404) - 성경언급 없음

o 아닥사스다 2세(BC 404-359) - 학자에 따라 에스라 임무가 아닥사스다 2세 통치 7년째 주어졌다고 함.

o 아닥사스다 3세(BC 359-338) - 성경언급 없음

o 아르세스(BC 338-336) - 성경언급 없음

o 다리오 3세(BC 336-330) - BC 330년 알렉산더에게 져서 죽음. 바사 멸망

[참고]

문제는 페르시아 고유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리스의 기록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죠. 최근에 악메다 궁에 대한 발굴에서 고레스의 칙령과 더불어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이 발견되어 역사에서 찾기 어려웠던 에스더에 관한 실마리를 찾기는 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기록들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다니엘 때로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견제가 많았고 기록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다른 신을 모시던 신관들이었던 관계로 고의적인 누락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 됩니다. 사실 아하수에로 1세가 에스더의 남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그것도 100% 확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가우마타의 경우처럼 신관들은 영향력이 컷고 특히나 여호와를 모시는 유대인들에게는 적대적이었습니다.

에스라서의 기록에서 보면 왕의 연대기가 헷갈리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성전이 건립되기 이전 부터 이후까지의 성전 제건 방해 및 예루살램 성을 건축하는 것에 대한 방해 그리고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방해까지를 열거해 놓아서 마치 그 방해 공작이 모두 성전에 국한 된 것처럼 오해하기 쉽게 기록되었다는 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아닥사스다 때의 방해는 성전 건축과 상관없이 예루살렘성을 건축하는 것에 대한 방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4 : 13)

또한 그 당시 유대를 포함 지역의 총독이 반역을 하여 아닥사스다에 의한 예루살렘 재건이 중단되었지요. 아하수에로 왕때의 방해는 그 이유조차 불분명하게 기록되어있죠.

이런 여러 시대(성전이 완성된 이후의 시대를 포함)에 걸친 방해를 나열 한 다음에 갑자기 다리오 2년에 성전 건축이 중단된 문장이 나오므로 오해가 생긴 것입니다.

또 다른 가설에서 캄비세스의 동생을 사칭한 가우마타를 에스라서의 4장에서 건축을 방해한 아닥사스다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바벨론 왕조

* 함무라비시대 : 고대바벨론

* 나보폴라살(느부갓네살)시대 : 신바빌로니아로 부른다(BC 625-538).

Ⅰ. 나보폴라살과 느부갓네살

나보폴라살은 BC625년에 바벨론 왕이 되면서 갈데아 왕조를 세운다. 앗수르 군대를 패배시킴으로(BC609년) 대제국의 주인이 된다. 그는 일찍이 통치 초기에 왕궁수리와 더불어 아들 느부갓네살에게 왕권을 선포. 이 둘은 앗수르 왕이 하란에서 항복하던 시기에 함께 있었고 여기서 나보폴라살은 바벨론으로 갔고 느부갓네살은 3개월 동안 성을 약탈, 불 지르면서 전쟁의 선봉에 섰다.

이때 앗수르 멸망과 더불어 이집트 왕 바로느고는 자기의 세력을 위해 갈그미스로 올라와 느부갓네살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다 왕 요시아가 바로느고와 싸우러 나갔다가 므깃도에서 죽게 된다.(대하35:20-24) 이로 인해, 유다는 잠시 이집트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며 바로느고는 요시아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를 3개월 만에 폐위시켜 이집트로 잡아가고 그의 형제 여호야김(=엘리야김)을 왕위에 앉힌다.(대하36:1-4)

Ⅱ. 바벨론의 왕성 (BC 605-562년)

초대 왕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은 그 아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예언한 금 머리처럼 그의 43년간의 통치기간은 황금시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세력을 시리아와 팔레스틴에서 일소해 버리고 오리엔트 상업의 이권을 차지하였다. 이때의 유다도 이집트의 영향 아래 있다가 바벨론으로 넘어가 마침내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세 차례에 걸쳐 유배되었다.

이에 이집트는 두로 시돈 등 유다 주위의 여러 나라를 원조하여 동맹을 맺게 하고 바벨론에 대항케 했으나 바벨론으로 하여금 이집트의 국경선까지 세력을 확정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BC 568년 이집트를 침략하고 그리고 대항한 여러 약소국들은 점령되어 엄벌을 받았으며 지형적으로 견딜 수 있었던 두로만이 포위 13년 만에 종주권을 인정받았을 뿐 이집트조차도 나일 강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 BC585년 : 메데인과 리디아인 사이에 휴전을 중재함

2) 두로 13년간 포위

3) BC 568년 이집트 침략

바벨론을 1세기도 못되어 당시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느부갓네살은 군소국가의 정복과 상업독점으로부터 들어오는 막강한 재정으로 제국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당시 느부갓네살은 수도인 바벨론에 신전과 제단을 쌓았는데 신들의 여왕인 이시타르를 위한 제단을 180곳에 세웠으며 고대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세우기도 했다.

Ⅲ. 느부갓네살과 예루살렘 파괴(BC 605-562년, 43년간 통치)

갈그미스 전투는 느부갓네살이 이집트 세력을 꺽고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중요한 전쟁이었다. 이 대규모 전쟁에서 이집트는 크게 패배(BC 605). 이 과정에서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여호야김을 굴복시키고 백성중 일부를 포로로 잡아간다. 이때 선지자 다니엘도 잡혀간다.

느부갓네살은 이집트까지 진군해 가기 원하지만 나보폴라살의 죽음으로 회군하여 바벨론으로 돌아갔다. 이미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의 서편에 통치권을 쥐고 있었으며 아버지 죽음으로 제국 전체의 주인이 된다. 그 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는데 여호야김도 바벨론에 반역하였기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느부갓네살은 고대 바벨론을 위대하게 제건했으며 43년간 통치하다가 BC562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Ⅳ. 느부갓네살 이후의 왕들과 바벨론 멸망

(1) 에윌므로닥(렘 52:31-34, 왕하 25:27-30)

① 유다 왕 여호야긴을 석방시켜준 왕

② 2년을 치리한 후 느부갓네살 사위 네리그릿살의 주축이 된 모반자들에게 죽임 당함.

(2) 네리그릿살 : 4년을 치리한 후 BC 556년 전쟁에서 죽음

(3) 라보로소 알코드 : 네리그릿살 아들(저능아) 1년도 못되어 맞아 죽는다.

(4) 나보니두스

① 느부갓네살의 또 다른 사위로서 왕위 찬탈

② 네리그릿살의 아내와 결혼하여 바벨론 멸망(BC 555-538)까지 치리한다.

(5) 벨사살왕(바벨론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의 아들이자 섭정왕. 주의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들로 술잔치를 벌일 때 하나님의 손이 나와 멸망을 기록했으며 그날 밤 벨사살은 살해당했고 바벨론은 멸망했다(단5장, BC 538년 멸망)

나보니두스는 전쟁터(페르시아와 전쟁)에 나가 있었고 벨사살은 왕궁에 있으면서 대규모 연회를 가진 그날 밤 바벨론 도성은 이미 포위된 상태. 고레스는 바벨론 성읍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차단함으로 그 성을 무너뜨렸다. 세속 역사 속에는 나보니두스가 마지막 왕으로 되어 있고 벨사살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아버지 나보니두스와 공동통치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
제 1차 귀환 때 /
성전을 건축하게 하심으로써 유다 백성을 구속사의 주역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제 2차 귀환 때 / 에스라 선지자의 개혁을 통하여 내면적인 신앙 회복을 이룩하게 해 주셨습니다.
제 3차 귀환 때 / 성벽 재건을 통하여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하고, 개혁과 부흥 운동을 통하여 선민의 성결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바벨론 포로 1차 귀환

이스라엘 백성은 주전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인 은총을 베푸사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셨습니다(렘 29:14).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44:28, 45:1-3)과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 25:11-12, 29:10, 14)대로,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가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발표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대하 36:22-23, 스 1:1-4). 이때부터 바사(페르시아) 제국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다 포로들은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3차에 걸쳐 돌아오게 됩니다. 제 1차 귀환은 주전 537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 귀환 목적과 시기
(1) 목적
바사 왕 고레스는 주전 538년에 귀환 조서를 내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라고 공포했습니다(스 1:2-3, 참고-대하 36:22-23).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들이 다 일어났습니다(스 1:5).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성전 건축을 명하게 하신 것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스 1:1). 바벨론 포로 귀환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성전 회복과 그것을 통한 예배의 회복을 자세히 예언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 성전이 짓밟히는 수치를 당한 것(렘 51:51)을 하나님께서 보수하시고(렘 50:28, 51:11), 다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렘 33:10-11, 18). 바벨론에서 돌아온 귀환민들의 최우선 과제는,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을 중심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써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2) 시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렘 25:11-12, 29:10), 이에 대해 역대하 36:21에서는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안식하지 못했던 토지가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 ‘70년’은 실제 포로로 잡혀 간 때와 귀환하여 성전 건축을 시작한 때를 중심으로 볼 때 말씀대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제 1차 포로는 여호야김 3(혹은 4)년(느부갓네살 원년), 곧 주전 605년입니다(왕하 24:1, 렘 25:1, 참고-단 1:1-2). 제 1차 포로 귀환령이 내려진 것은 고레스 원년인 주전 538년으로,  귀환조서를 내린 다음(스 1:2-3), 이 명령을 따라 얼마 동안 귀환준비를 한 유대 민족은 1년 뒤인 주전 537년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스 1:5, 11, 3:1). 그리고 성전 건축을 시작한 것은 주전 536년 2월(시브월)입니다(스 3:1, 8). 그러므로 제 1차로 바벨론에 끄렬간 주전 605년에서 성전을 짓기 시작한 주전 536년까지 햇수로 70년이 정확히 성취된 것입니다.

2. 귀환자와 귀환 당시 상황
(1) 귀환자
제 1차로 귀환할 때의 지도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여호수아)였으며, 총 49,897명이 귀환했습니다(스2:64-66).

귀환자
총인원
  49,897명  

 회중 42,360명 (스 2:1-64, 느 7:5-66)
 지도자 11명, 평민 15,604명(가계별), 평민 8,540명(지역별), 제사장 4,289명,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복의 자손 392명, 레위인 341명,

 종족과 계보가 불명확한 자 652명,  
 계수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 12,531명 

 노비 7,337명 (스 2:65, 느 7:67)

 노래하는 남녀 200명 (스 2:65, 느 7:67. 245명으로 기록)

또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제 1차 귀환자 명단을 기록하면서, 귀환할 때 가지고 온 짐승들의 숫자까지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말 736마리, 노새 245마리, 약대 435마리, 나귀 6,720마리로 모두 8,136마리였습니다(스 2:66-67, 느 7:68-69). 이 짐승들의 수치를 귀환자 중 ‘온 회중’의 숫자(42,360명. 스 2:64, 느 7:66)와 비교해 보면, 대략 다섯 사람에 짐승이 한 마리 정도입니다(5인 기준 한 가족 당 1마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도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함께하였습니다(출 12:38).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도 짐승들과 같이 오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이 없도록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귀환민들 뿐 아니라 각 생축들의 숫자까지도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귀환의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주관하시고 섭리하셨음을 나타냅니다(롬 11:36).

(2) 귀환 때 가지고 나온 재물
유다인들이 귀환할 때, 그들이 거하는 주변의 이웃들이 은 그릇, 황금, 기타 물건, 짐승, 보물로 도와주었으며, 그 외에도 그곳 주민들이 하나님께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스 1:4, 6).


또 고레스 왕은 옛적에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여호와의 전 기명을 돌려보냈는데, 유다 목백(牧伯)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가지고 돌아올 때 금반 30, 은반 1,000, 칼 29, 금대접 30, 그보다 차(次)한 은대접 410, 기타 기명 1,000으로 도합 5,400이었습니다(스 1:7-11). 이는 제 1차 귀환자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선전 건축 역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였음을 말해 줍니다.

(3) 귀환 계기
다니엘 선지자는 당시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강대국 바사의 총리로 있으면서 메대 왕 다리오 시대뿐만 아니라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까지 형통하였습니다(단 6:28). 이 말씀을 볼 때, 다니엘이 정치적으로 바사 제국의 기틀 확립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니엘은 메대의 다리오 통치 원년에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라고 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깨달았으므로(단 9:2), 귀환 1년 전(주전538년) 고레스가 유다인의 해방을 공포한 일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대하 36:22, 스 1:1, 5:13).


한편 다니엘 선지자는 고레스 왕 3년에도 바사 제국에 남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단 10:1). 그런데 다니엘 1:21에서는 다니엘의 최종활동 시기를 고레스 3년이라고 하지 않고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 또한, 고레스가 귀환 조서를 발표(스 1:1-4)하는데 다니엘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 것임을 능히 추정케 합니다.

(4) 성전 건축의 과정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선적으로 성막을 완성한 것처럼,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도 오직 성전 건축을 열망하였습니다.


주전 537년 귀환한 백성들은 옛 성전이 있던 터 위에 단을 세우고(스 2:68, 3:3)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고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 지을 준비를 하였습니다(스 3:1-7).


주전 536년 2월에 마침내 성전의 지대를 놓고 성전 건축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스 3:8-1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이 집요하게 성전 재건을 방해했기 때문에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왕에게 조언을 하던 자들(모사)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유다인들을 참소했던 것입니다(스 4:5).


그 후 성전 건축은 약 16년 동안 중단되었다가(주전 536-520년), 주전 520년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백성들의 마음을 감화하여 흥분시키므로, 다리오 왕 제 2년 6월 24일에 재개되었습니다(스 5:1-2, 학 1:14-15, 참고-슥 4:6-10). 이 시기에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 건축의 진정한 의미가 ‘메시아의 도래와 그의 왕국을 맞이하는 데 있음’을 밝히면서(슥 9-14장) 유다 백성의 바른 신앙 회복을 촉구하였습니다.


성전은 주전 516년(다리오 왕 제 6년) 아달월(12월) 3일, 약 4년 5개월 만에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스 6:15). 이것은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무려 70년만의 일로, ‘70년’만에 귀환한다는 예언이 어김없이 성취된 것입니다(렘 25:11-12, 29:10).



바벨론 포로 2차 귀환

제 1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있은 지 79년 후인 주전 458년에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의 지도하에 제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었음에도 거룩한 선민 공동체로서 합당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유다인들에게, 2차 귀환을 통해 인적·물적으로 큰 지원이 이루어지고, 에스라의 대대적인 개혁 운동으로 유다인들 내부의 영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신앙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귀환 목적과 시기
(1) 목적
① 성전을 중심으로 한 언약 신앙의 공동체를 온전히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바벨론을 출발한 에스라는 귀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그 가운데 성전 제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레위인이 귀환에 전혀 응하지 않았음을 알고(스 8:15), 성전 봉사자들을 모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으로 38명의 레위인이 확보되었고 레위 사람을 수종들게 한 느디님 사람 중에 220명을 데려왔으며 그들의 이름을 다 기록하였습니다. 에스라 8:16-20에서 보듯이 제 2차 귀환에 동참할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을 모은 사실을 중점적으로 기록한 것은, 제 2차 귀환의 궁극적인 목적이 성전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 신앙의 공동체가 온전히 회복되게 하려는 데 있었음을 가르쳐 줍니다.

② 성전 제사의 회복에 필요한 큰 물질을 보충하기 위함입니다.
에스라는 바사의 왕과 모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은금과 바벨론 온 도에서 은금을 얻었고, 또 바사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와 제사장들이 드린 예물을 받았습니다(스 7:15-16, 8:25-27). 그 예물로는 각종 제사에 쓰이는 제물과 전제의 물품을 구입하도록 했습니다(스 7:17). 또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기명을 받았고, 그 외에도 성전에서 필요한 무엇이든지 왕의 내탕고에서 가져가라는 파격적인 허락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받지 않도록 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스 7:18-20, 23-24). 이러한 조치들로 귀환자들의 공동체가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재정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③ 에스라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종교 지도자로서 율법을 가르치라는 명령과, 행정 지도자로서 왕이나 유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큰 권세까지 부여받았습니다(스 7:25-26).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스 7:27-28), 에스라는 제 2차 귀환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 운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시기
이스라엘 백성은 주전 458년 바사(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1세(주전 464-423년) 때 제 2차 귀환을 하였습니다(스 7:7-9). 이때는 제 1차 귀환 후 79년이 지났을 때이고,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주전 516년)되고 58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3) 귀환 계기
아하수에로 왕(주전 486-465/464년)이 통치하던 시기에 발생한 ‘에스더 사건’은 제 2차 바벨론 포로 귀환을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의 결과였습니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이 가장 높은 지위에 올렸던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인 ‘유다 민족’을 말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는 이 모든 일을 알고 굵은 베옷을 입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하고 각 지방의 유다인도 애통하여 금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에 4:1-3). 자초지종을 알게 된 왕후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3-14)라고 전했습니다. 에스더는 3일 동안 금식의 기한을 정해놓고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도 금식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에 4:15-16).


에스더는 누구든지 왕의 부름 없이 안뜰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일사각오로 왕께 나아갔습니다(에 4:16). 왕과 하만을 초대한 잔치 자리에서 에스더는 유다인들이 하만에 의해 진멸될 위기에 있음을 왕에게 알렸고, 왕이 심히 노하여 하만과 그 일가를 완전히 진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만든 50규빗(약 22.8m) 되는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었고, 하만이 유다인들을 말살할 날로 정한 12월 13일과 14일은 유다인 대적의 최후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에 7-9장). 그리하여 해마다 12월 14일과 15일을 명절로 지키도록 하였는데, 유다인들을 없애기 위해 뽑았던 제비를 뜻하는 ‘부르’라는 말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에 9:20-28). 


바사 제국 127도에 흩어져 있던 유다 전 민족이 몰살당할 뻔했다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섭리 가운데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은 이 사건이, 제 2차 포로 귀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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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자와 귀환 당시 상황
(1) 귀환자
에스라는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로서(스 7:6),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통해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스 7:13)라고 공포하고, 에스라를 ‘왕과 일곱 모사의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고 기록하여 에스라의 권한을 강하게 해 주었습니다(스 7:14).

(2) 귀환 때 가지고 나온 재물
바사의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바사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기명들을 에스라가 제사장 12인에게 달아 준 것은, 은 650달란트(22,100kg), 은 기명 100달란트(3,400kg), 금 100달란트(3,400kg), 금잔 20개(1천 다릭, 8.4kg: 금잔 1개당 420g),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 2개였습니다(스 8:25-27, 참고-스 7:15-16).


제 2차 귀환자들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하며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스 8:21). 그리고 1월 12일에 아하와 강을 떠나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스 8:31). 아닥사스다 왕 제 7년 1월 1일 바벨론에서 출발하여 5월 1일에 도착했으므로 약 4개월이 걸린 것입니다(스 7:9). 실제 여행 거리는 약 1,500km가 넘는 험한 노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귀환하는 자들을 도우셔서,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스 8:31).

(3) 에스라의 개혁 운동
①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
제 2차 귀환의 지도자 에스라(뜻:여호와께서 도우신다)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스 7:1-6, 참고-대상 6:3-15, 49-53) 제사장이었으며 학사(서기관)를 겸한 지도자였습니다(스 7:6, 11, 12, 21, 10:10, 16). 에스라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즉위한 해인 주전 464년에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스 7:1, 6), 1차 귀환 시기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아들 요야다(느 12:10, 26), 3차 귀환의 지도자 느헤미야의 활동 시기에도 함께 사역을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출생하였지만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귀환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율법에 익숙한 학사 겸 제사장(스 7:6, 10)으로, 국가적 대혼란 시기에 유다 역사에 변화의 첫 물꼬를 튼 위대한 개척자였습니다.

② 에스라의 개혁 운동
바벨론에서 귀환한 에스라는,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인이 이방과 결혼하고 방백과 두목이 앞장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과 혼잡시키는 것을 알고, 그 죄를 걸머지고 자복했습니다. 그때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며, 이방 여인과 그 소생을 내어 보내기로 결단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며 하나님의 진노가 떠나기를 바랐습니다(스 9:1-15, 10:1-14).


10월 1일부터 1월 1일까지 석 달간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자, 이스라엘 중에서 이방 여인과 통혼한 자들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그 명단을 낱낱이 공개하였습니다(스 10:16-44). 이 명단을 보면, 백성보다 지도자들 가운데 죄가 더 크게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스 9:2). 또 에스라 10:44에는 “...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라고 했으니, 이 개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아내뿐만 아니라 자녀와도 생이별해야 하는 쓰라린 아픔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이루기 위해 말씀의 뜻대로 하는 개혁은, 육정을 끊는 아픔까지도 능히 참고 견디며 이겨 내야 하는 것입니다(마 10:37).

제 1차 귀환 이후 어렵게 성전 건축을 마치고도 타락의 길을 걷고 있던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제 2차 귀환과 함께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불러 올리셨습니다(스 7:6-9). 하나님께서는 에스라를 통해 온 백성이 회개하고 각성하여 믿음의 순수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크신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3차 귀환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 제 1차 귀환 때 성전을 건축하게 하심으로써 유다 백성을 구속사의 주역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제 2차 귀환 때는 에스라 선지자의 개혁을 통하여 내면적인 신앙 회복을 이룩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제 3차 귀환 때는 성벽 재건을 통하여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하고, 개혁과 부흥 운동을 통하여 선민의 성결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1. 귀환 목적과 시기
(1) 목적
제 3차 귀환은 느헤미야를 유다 땅의 총독으로 세워,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케 하고 유다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느 2:5-8, 5:14, 13:6). 제 1차 귀환과 제 2차 귀환은, 제 3차 귀환 때 이루어진 성벽 재건과 개혁 운동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으며, 유다는 다시 구속사를 이끌어 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시기
아닥사스다 왕 20년(주전 444년. 느 1:1, 2:1), 제 2차 귀환(주전 458년) 이후 14년째에 제 3차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던 느헤미야(느 1:11)가 형제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이 소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 기슬르월(9월)이었고(느 1:1-3), 느헤미야가 왕에게 예루살렘 성벽 중건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한 것은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 니산월(1월)이었습니다(느 2:1). 시간 순서상 9월 다음에 10월~12월이 지나 다음해 1월이 오기 때문에 1월은 아닥사스다 왕 제 21년이 되어야 하지만 느헤미야서에서는 티쉬리(7월) 기준 달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월’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속사 자료 ‘통치 연대 계산에 필요한 이해 2’ 참조)


또 한 가지, 에스라 7:7에서 2차 귀환년도를 ‘아닥사스다 왕 7년’으로 표기해 2차 귀환년도가 마치 주전 457년인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느헤미야서가 티쉬리월 기준 달력을 쓰고 에스라서가 니산월 기준 달력을 쓰기 때문에 생긴 연도 차이입니다(느 1:1, 2:1, 학 1:15, 2:10, 스 4:24).

2. 귀환자와 귀환 당시 상황
(1) 귀환자 
제 3차 귀환 시에 몇 명이 돌아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고, 느헤미야 한 사람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 의해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에 보내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느 2:5-8, 5:14). 아닥사스다 제 20년부터 32년까지 12년 동안 유다 총독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면서(느 2:1, 5:14, 13:6), 그들의 정착과 신앙개혁을 힘있게 이끌었습니다.

(2) 귀환 계기
당시 유다는 바사 제국에서 파견된 총독의 관할 지역에 속해 있었던 관계로, 성벽을 짓는다는 것은 곧 반란이나 폭동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방백 르훔(사마리아 총독)과 서기관 심새를 중심한 강 서편의 아닥사스다의 신하들의 고소장을 받고(스 4:6-16) 예루살렘 성곽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스 4:17-23). 이 때 대적들은 부분적으로 세워졌던 성벽을 무너뜨리고 분명히 불을 질렀을 것입니다.


아닥사스다 20년 기슬르월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이 불타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느 1:1-3) 아닥사스다 20년 니산월까지 4개월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느 1:4-2:2). 마침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느 2:8, 18),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벽을 중건하게 되었습니다. 성벽 재건을 심하게 방해했던 왕은 느헤미야의 간청을 듣고 귀환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루살렘 성벽 중건을 도와주었습니다(느 2:3-8). 왕이 자기가 내렸던 조서를 번복해서 다시 조서를 내리는 일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3) 성벽 재건의 끊임없는 방해 공작
귀환한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끊이지 않는 대적들의 심각한 훼방과 위협으로, 성벽 공사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습니다.


① 내부 귀환자들 중의 방해 세력
▸ 담부(擔負. 등에 지고 어깨에 멤)치 않은 드고아 귀족들(느 3:5) - 드고아에 거주하던 유대인 귀족들은 성벽을 쌓는 데 있어서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았습니다. 구속 사역의 가장 중대한 때에, 주의 일보다 자신들의 체면을 앞세운 것입니다.
▸ 예루살렘 근처에 있으면서 성벽 재건에 협조하지 않은 귀환자들(느 4:12) - 성벽 재건은 지역을 초월해서 이루어졌는데(느 3:2-18), 예루살렘 근처에 살면서도 자기 신변의 안전만 먼저 생각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② 대적들의 방해 공작 – 성벽 재건 초기
느헤미야가 치밀하게 성벽 전체를 42구역으로 나누어 조직적으로 공사를 진행하자(느 3:1-32), 산발랏과 도비야 등의 대적들은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라며(느 4:3) 유다 민족을 조롱하고 노골적으로 방해했습니다(느 4:1-4).


③ 대적들의 방해 공작 – 성벽 공사 절반 진행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자(느 4:6), 대적들이 군사적 방법까지 동원하려 했습니다(느 4:8, 11). 큰 위기에 직면하자 유다 백성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사기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느 4:10).


④ 느헤미야의 빈틈없는 작전(성벽 건축과 병행한 철통 수비태세)
대적들의 위협이 더욱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다가오자 느헤미야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신속하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 건축 공사와 함께 전쟁 무기 준비를 병행(느 4:16-17)
▸ 전쟁 시 신호와 군사 집결을 위해 나팔 부는 자가 느헤미야 곁에 섬(느 4:18-21)
▸ 각 사람이 공사하는 동안 그 종자(노비)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자도록 함(느 4:22)
▸ 느헤미야와 그 곁에서 파수하는 자들은 잘 때도 옷을 벗지 않고 병기를 손에 잡음(느 4:23)


⑤ 대적들의 막판 방해 공작(느헤미야를 살해하려는 음모)
성벽 공사가 마무리되어가자 대적들은 급기야 느헤미야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느 6:2). 산발랏 제사장 스마야를 매수하여 거짓 예언을 통해 느헤미야를 해치려 하였으나, 느헤미야가 요동치 않으므로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스 10-14).
 






남유다의 멸망과 바벨론의 1차 2차 3차 4차 포로의 역사

이스라엘은 북방 강대국 앗수르바벨론, 남방 강대국 애굽 사이에 낀 약소 국가였습니다.
남 유다의 제 16대 왕 요시야 당시는 세계 최강국이던 앗수르가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바벨론이 신흥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1. 므깃도 전투와 갈그미스 전투(주전 605년)

애굽은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의 남하를 막기 위하여 갈그미스에서 바벨론과 싸우려고 하였습니다.
애굽 왕 느고는 갈그미스로 가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이때 반 앗수르 입장이었던 요시야 왕은 북진하는 애굽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애굽 왕 느고는 사자를 보내어 화친을 요청하며, 이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자신이 싸우려는 대상은 요시야 왕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대하 35:21).
그러나 요시야 왕은 듣지 않고 변장까지 하면서 전쟁터에 남기를 고집하였습니다(대하 35:21-22).
전쟁터에서 애굽의 궁수가 쏜 화살에 중상을 입은 요시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죽고 말았습니다(대하 35:23).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통해 영적 내리막길로 곤두박질하던 남 유다에 일시적으로나마 제동을 걸었지만, 요시야가 죽은 이후 남 유다의 국운이 갑자기 쇠약해지고 순식간에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애굽과 바벨론이 맞서는데, 이것이 갈그미스 전투(주전 605년)입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바벨론은 당시 근동 지방을 장악하였고, 애굽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왕하 24:7).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아프리카 대륙과 근동 아시아 지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남 유다 왕국마저 정복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였고, 3차에 걸쳐 유다 왕과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3차에 걸친 바벨론 포로의 과정은 성전 파괴의 과정과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서 가장 아끼는 성전을 파괴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징계하셨습니다(왕상 9:7-9).

바벨론 제 1차 포로

1. 포로 시기 – 주전 605년 / 여호야김 제 3(혹은 4)년, 느부갓네살 원년

이때는 여호야김 왕 제 3년(단 1:1)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46:2은 이때를 여호야김 4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기록에 1년 차이가 나는 이유는 열왕기하 23:34을 통해 해명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여호야김이 그의 동생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여호야김이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요시야(주전 640-609b년), 여호아하스(주전 609b-608년), 여호야김(주전 608-597년) 순으로 왕이 되었지만(왕하 23:3-0, 34, 대하 36:1-4), 요시야 다음에 바로 여호야김이 왕이 된 것처럼 기술한 것은, 3개월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악을 일삼았던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왕하 23:31-32).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제 1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주전 605년은 여호야김 제 4년이 되는 것입니다.

2. 포로 대상과 당시 상황

제 1차 바벨론 포로 때에는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과 귀족들이 끌려갔습니다(단 1:3).
여호야김은 처음 3년은 바벨론을 섬기다가 다시 애굽과 동맹하여 반(反)바벨론 정책을 펼쳤고(왕하 24:1), 주전 602년 쇠사슬로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성전 기구들을 약탈당하였습니다(왕하 24:2, 단 1:1-2, 5:2).

바벨론 제 2차 포로

1. 포로 시기 – 주전 597년 / 여호야긴 즉위년, 느부갓네살 8년

여호야긴은 주전 597년에 즉위하여 3개월 10일을 통치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8-12, 대하 36:9-10).
바벨론 역대기에 따르면, 티쉬리월(7월)로 시작되는 달력을 기준할 때 여호야긴이 왕이 딘 것은 주전 597년 불월(8월)이며, 3개월 10일이 지나 왕위에서 쫓겨난 것은 주전 597년 아달월(12월) 2일입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경과한 다음에(왕하 24:10-11)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에 이르러 주전 597년 아달월(12월) 2일에 마침내 예루살렘 성을 점령한 것입니다.
이때 왕위에서 쫓겨난 여호야긴은 주전 597년* 니산월(1월) 10일에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대하 36:10).
* 남유다 통치 연도는 티쉬리월 기준이므로 해가 바뀌지 않음.

2. 포로 대상과 당시 상황

바벨론은 여호와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었으며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하였습니다(왕하 24:10-13, 대하 36:10).

그리고 여호야긴 왕과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12, 15).
이때 용사 7천 명을 포함하여 방백과 백성 총 1만명, 그리고 공장과 대장장이 1천 명이 끌려갔는데, 그들은 모두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였습니다(왕하 24:14-16).
반란의 구심점이 될 소지가 있는 최고 지도자들과 탁월한 인물들을 모두 뽑아서 끌고 감으로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도록 하여 남 유다를 철저히 무력화 시킨 것입니다.
여기에는 에스겔 선지자와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의 조상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겔 1:1-3, 에 2:5-6).

바벨론 제 3차 포로

1. 포로 시기 – 주전 586년 / 시드기야 11년, 느부갓네살 19년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권면(렘 27:12)을 듣지 않고 반(反)바벨론 정책을 고집하였고(왕하 24:20, 렘 27:12-13, 37:2), 바벨론은 시드기야 제 9년 10월 10일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왕하 25:1, 렘 39:1, 52:4).
시드기야가 애굽에 원군을 요청하여 바벨론 군대가 떠났다가 애굽 군대가 즉각 퇴각하자 다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렘 37:5, 11, 겔 17:15) 시드기야 11년까지 약 30개월 동안(티쉬리 기준 달력) 예루살렘 성을 에워쌌습니다(왕하 25:1-2, 대하 36:11-20, 렘 37:7-10, 겔 17:12-21).
마침내 주전 586년 시드기야 제 11년 4월 9일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왕하 25:1-3, 렘 39:1-2, 52:4-6).

2. 포로 대상과 당시 상황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있는 동안 기근이 극심하여 자녀를 잡아먹을 정도로 비극적 참상이 빚어졌는데(애 2:20, 4:10, 사 9:20, 겔 5:10), 이는 모세의 예언대로(레 26:28-29, 신 28:53-57)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BC 586년,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4월 9일은 유다인들에게 바벨론 유수 기간 내내 금식과 애통의 날로 지켜졌습니다(슥 7:5, 8:19).

성이 함락되던 때 시드기야는 밤에 도망하다가 갈대아 군대에게 잡혀 하맛 땅 립나로 끌려가 바벨론 왕에게 신문을 당하였습니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왕하 25:4-7, 렘 39:4-7, 52:7-11).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한 달 만인 5월 10일에 바벨론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이 와서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사르고 사면 성벽을 헐었습니다(왕하 25:8-12, 대하 36:18-19, 렘 39:8-10, 52:12-16).
그리고 성전의 두 놋기둥(야긴과 보아스)과 받침들과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또 가마들, 부삽들, 불집게들,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또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고,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들을 취하였습니다(왕하 25:13-17, 대하 36:18-19, 렘 52:17-23).

그리고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군사를 거느린 장관(내시) 하나와 왕의 시종 칠 인(혹은 다섯 사람)과 군대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국민 육십 명을 잡아갔으며, 립나에서 그들을 쳐 죽였습니다(왕하 25:18-21, 렘 52:24-27).

한편, 예레미야 52:28-30에는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항거하다 소규모로 잡혀간 자들이 총 4,600명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로 끌려간 자와 고국 땅에 남겨진 자, 그리고 재난을 피하여 주변국으로 도망친 자 등으로 나뉘어, 민족 전체가 갈기갈기 찢기고 그 존재가 점점 사라지는 최악의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선민 유다 백성이 하나님 없는 이방 나라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끌려간 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최대의 비극이요 수치였습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고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거룩하신 뜻을 멸시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의 표현이었습니다(대하 36:21, 참고-렘 34:8-16).

그러나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만 같던 바벨론이 하나님의 주권 역사로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게 하시고(참고-렘 50:3, 9, 41-46장, 51장)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하도록 하셨습니다(대하 36:22-23, 스 1:1-4).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와 회복

바빌론 포로(기원전 586–538년)는 유대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독립의 상실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힘과 회복에 대한 열망이 드러나는 새로운 단계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포로에서의 귀환과 예루살렘 및 성전의 재건은 유대 민족의 종교적, 문화적 삶에서 중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맥락

바빌론 포로는 기원전 7세기 말과 6세기 초에 걸쳐 이 지역에서 발생한 정치적 및 군사적 갈등의 결과로 일어났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에 멸망하고 남 유다 왕국이 약해지자, 아시리아 제국과 이어서 바빌론 제국이 정치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유다의 왕들은 독립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매년 바빌론 사람들의 압박이 증가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몰락

기원전 586년, 바빌론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도시를 포위했습니다. 긴 포위 이후 도시는 함락되었고, 바빌론 사람들은 유대 민족의 예배 중심지였던 솔로몬의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이 사건은 유다에게 재앙이 되어 대규모로 사람들이 도망치거나 포로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남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고, 생존자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포로 생활

바빌론 포로는 유대 민족에게 힘든 시련이 되었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은 포로들을 동화시키고자 했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종교적 전통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간직했습니다.

귀환에 대한 예언

포로 생활 동안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국으로의 귀환을 약속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회개와 하나님이 백성을 회복할 것에 대한 믿음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지지와 희망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포로에서의 귀환

기원전 539년 바빌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 왕 키루스 대제가 즉위하면서 유대 민족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키루스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가 고칠 성전들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이 결정은 포로의 끝과 회복의 새로운 단계의 시작을 상징하는 역사적 순간이 되었습니다.

귀환의 첫 단계

첫 번째 귀환 행렬은 스루피벨의 지도 아래 53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귀환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현지 주민의 불만과 자원의 부족 등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으며, 이 성전은 기원전 51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두 번째 성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적 부흥

포로에서의 귀환은 단순한 물리적 재건이 아니라 민족의 영적 갱신이었습니다. 예언자 느헤미야는 법과 관습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백성을 모아 계명을 지킬 것을 촉구하였고, 이것은 유대 민족의 종교적 삶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에스라의 역할

바빌론에서 돌아온 에스라 예언자는 영적 삶의 회복에서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백성을 모아 법을 낭독하였고,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계명을 지키는 데 있어 중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종교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다시 영적 기반을 찾은 단일 민족으로서의 결속을 다졌습니다.

바빌론 포로의 유산

바빌론 포로와 그에 따른 귀환은 유대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 전통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시련, 신앙,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포로 중에 이루어진 예언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을 위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전통과 기억

바빌론 포로를 기리기 위해 유대인들은 성전 파괴와 민족의 추방을 기념하는 티샤 베아브와 같은 축제를 제정했습니다. 고통과 회복의 희망에 대한 이 기억은 수세기 동안 유대인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으며, 신앙과 단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결론

바빌론 포로와 이스라엘의 귀환은 역사뿐 아니라 유대 민족의 영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에서 희망과 회복으로 가는 길을 상징하며, 신앙의 힘과 전통에 대한 헌신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건은 미래 세대에게 영감을 주며 하나님과 자신의 민족 역사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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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8장 요약 / 바벨론에서 온 족장들의 계보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족장들과 그 계보에 대해 기록, 에스라가 레위 사람들을 찾았다고 기록.
귀향 중에 아하와 강가에서 에스라가 금식을 선포하고서 기도하였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그릇을 맡겨서 보관하게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번제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9장 요약 / 에스라의 회개 기도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이방족과 통혼에 대하여 알려주었고, 통혼 소식을 듣고서 에스라가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10장 요약 /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고백하였고, 이방 족속과 통혼한 아내와 자식들을 내쫓기로 하였으며, 이방 여자들과 결혼한 죄를 지은 사람들의 명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 장별연구(10장) : 에스라의 종교개혁

마지막 10장은 유다의 통혼에 대한 문제 해결, 즉 종교개혁의 과정과 함께 그 결과물인 이방 여인을 내보내기로 서약한 사람들의 명단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엎드려 통곡하며 죄를 자백한 에스라의 모습은,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통곡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통곡은 이방 아내와 그 소생을 모두 내보내자는 맹세로 이어졌다. 이에 에스라는 모든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여 그 맹세를 구체적으로 실행하였다.

  에스라는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여 조사 위원회를 발족시켰고, 그 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3개월 동안 이방 아내와 그 소생을 내보내겠다고 맹세한 통혼자들의 명단을 조사, 완료하였다. 명단에 기록된 사람들은 총 113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전체의 24%인 27명이나 되었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회개가 촉발한 종교개혁(1-5절)

9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통혼 소식을 들은 에스라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거기에는 그의 기도 내용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10장은 그때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때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면서 죄를 자복하였다(1절). 이것을 통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에스라가 기도한 장소는 ‘성전 앞’이었다. ‘성전 앞’은 성전의 바깥뜰 가운데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만약 에스라가 성전 앞이 아닌 성전 안에서 기도하였다면, 백성들은 그의 그러한 모습을 제대로 목격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둘째, 그는 바로 그곳에서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9장에서 제시한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하는 모습’과 비교해 볼 때, 그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졌다는 의미를 제공해 준다. ‘엎드려’라는 말은 극도의 슬픔으로 인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 엎드리는 행위를 가리킨다(NIV, throwing himself down). 또한 ‘울면서’는 비극적인 일로 인하여 통곡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23:2;삼상 1;10;삼하 1:24;렘 22:10). 따라서 ‘엎드려 울며’는 극도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암시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죄를 자복하는 기도를 하였다. 이는 앞선 9장에서 드린 기도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복’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에스라가 울면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 앞에 모인 많은 백성도 크게 통곡하였다. 그러자 매우 큰 무리의 이스라엘 백성들, 곧 남녀와 어린아이가 그 앞에 모여들었다. 이 장면은 에스라의 기도가 점차 전파·확대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에스라가 울며 기도하자 그 앞에 모인 많은 백성도 심히 통곡하였고, 그것은 다시 더욱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은 간절히 드리는 한 사람의 기도가 지닌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하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 곧 남녀와 어린아이가 그 앞에 모였다’에서 ‘남녀’와 ‘어린아이’는 ‘이스라엘 백성’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 뒤에 따로 제시한 것은, 죄를 자복하는 일에 제한된 사람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절망과 통곡에 빠져 있을 때,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소망에 대하여 말하였다(2-4절). 그는 엘람 자손 가운데 여히엘의 아들이다. ‘스가냐’라는 이름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6번 소개되고 있지만(8:3,5;느 3:29;6:18;12:3), 그중에 어떤 사람도 본 절의 스가냐와 동일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는 아마도 1차 귀환 때 함께하였던 백성의 지도자로, 통혼에 대해 에스라와 같은 생각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엘람 자손’은 1차 귀환자들의 가문 가운데 하나이다(2;7). ‘여히엘’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지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26절). 따라서 스가냐는 여히엘과 이방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일 수도 있다.

  스가냐는 비록 자신들이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은 죄를 하나님께 범하였지만, 아직 이스라엘에 소망이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모든 이방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모두 내보내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에스라 당신이 주장할 일이기 때문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서 힘써 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와 동시에 우리도 당신을 돕겠다고 약속하였다. ‘소망’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끈질기게 기대하는 것이고(창 49:18;사 40:31), 그에 대한 확신을 저버리지 않는 마음이다. 그가 이런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에스라와 백성의 기도에서 얻을 수 있는 논리적 결과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따라서 만약 그들이 자신들이 범한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시 103:8;애 3:22;요일 1;9). 그는 이것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둘째, 현재 상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에스라에게 이렇게 촉구하였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주장할 일입니다. 일어나 힘써 행하십시오.”(4절) 스가냐의 주장대로 에스라가 귀환한 가장 중요한 목적도 바로 이와 같은 소명을 이루는 데 있었다. 그는 귀환할 때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1) 율법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고, (2)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삼가 행하고, (3)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행정과 사법 등의 부분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그 일은 방백들의 고발로 시작되었고, 에스라와 백성들의 회개에 이어 스가냐의 제안으로 불이 붙었던 것이다.

  그 불길을 딛고 에스라가 일어났다.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스가냐의 말대로 실행할 것을 맹세하게 하였고, 그 자리에 모인 무리는 맹세로 화답하였다(5절). 여기에서 에스라의 행동은 두 단계로 제시되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일어나는’ 것이었다. ‘일어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기도하는 중에 스가냐의 격려와 촉구로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중대한 결심과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다. 두 번째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스가냐의 말대로 실행할 것을 맹세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것을 통해 에스라는 모든 백성이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이어지는 개혁에 그들의 동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였다.

[질문] 위 내용을 통해 회개와 종교개혁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제도나 기구(機構)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이 ‘개혁’이다. 따라서 전에 구축된 제도나 기구에 대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개혁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그 인식이 방백들의 고발로 전면 노출되었다(9:1-2). 이 말은 그 고발 이전에 통혼 문제에 대하여 백성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쉬쉬하였다. 즉 뒤에서 은밀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일부 방백들의 고발로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에스라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 죄를 통곡하면서 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간구하였다. 그 회개 운동에 백성이 동참하였고, 그 운동이 종교개혁의 불길이 되었다. 이것은 문제 인식과 종교개혁 사이에 ‘회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지지고 있더라도 회개가 없다면 종교개혁은 있을 수 없다. 인식은 객관성에 대한 ‘인지’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문제를 개선하여야겠다는 ‘의지’까지 담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인식은 개혁의 출발점이지만 반드시 개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개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회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회개에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과 죄에서 떠나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는 삶의 변화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표출된다(욥 42:6;고후 7:9;히 6:1). 그래서 그것이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회개에 있어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개의 ‘진정성’이다. 만약 회개에 진정성이 들어 있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강도가 약하다면, 개혁은 공염불이 되어 버리고 설사 개혁되더라도 제대로 탄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개혁이 되어 버린다. ‘개혁’(改革)은 ‘고치다’는 말과 ‘가죽’이라는 말이 합해진 단어이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보면, 기존에 덮고 있던 가죽을 벗겨내고 새로운 가죽으로 교체한다는 뜻이다. 가죽을 벗겨내면 그 사람은 고통으로 자지러질 것이 빤하다.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쉽게 이루어진다면 한자어를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개혁은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수많은 개혁 속에 무수히 많은 사람의 피(목숨)가 들어 있다는 것을 역사에서 배웠다. 그 가운데 종교개혁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회개의 진정성 문제는 종교개혁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다.

2. 본궤도에 오른 종교개혁(6-17절)

​본문은 본궤도에 오른 종교개혁을 소개하고 있다. 비록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스가냐의 제안대로 모든 이방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내보내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고 맹세하였지만, 에스라에게는 여전히 그것이 성에 차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은 맹세에도 불구하고 그와 다른 선택을 종종 하였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실행이 필요하였다. 또 그 맹세는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만 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 적용할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서도 기뻐하는 대신 백성의 죄로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6절). ‘여호하난’은 대제사장으로, 엘리아십의 아들이다. 성전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는데, 어떤 방은 성물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고, 또 어떤 방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제사를 위해 준비하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에스라가 들어간 여호하난의 방은 그 방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윽고 방에 있던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모일 것을 공포하였다(7절). 에스라의 공포는 백성들 앞에서 그가 직접 내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전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7절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그들은 모든 자손에게 목소리가 지나가게 하였다”이다. ‘목소리가 지나가게 하는 것’은 ‘공포’를 의미한다. 그리고 공포한 주어는 3인칭 대명사 복수형인 ‘그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에스라의 명령을 받아 백성들에게 공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에스라를 돕기로 약속한 사람들 가운데 지도급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방백들과 장로들에게 에스라가 명한 내용을 공포하고, 후자에 해당하는 그들은 다시 자신들이 속한 자손들에게 훈시를 내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전달된 공포 속에는 3일 내로 모이지 않으면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겠다는 경고 내용이 담겨 있었다(8절). ‘적몰’은 ‘중죄인(重罪人)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까지도 처벌하는 일’을 의미한다. 하지만 본문 속에서의 ‘적물’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어떤 것에 대한 세속적인 사용을 금지하는 ‘신성한 금지’(the holy ban)를 나타냈다. 예를 들면 성전(聖戰)에서 빼앗은 물건이나 포로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즉 그 성전에서 승리의 주역인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때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이 거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속으로 만든 것들은 성소에서 사용한 데 비해 다른 모든 물건은 불로 태워지거나 다른 방법으로 파괴되었고, 심지어 사람이나 동물은 죽임까지 당하였다(수 6:17-21,24). 한마디로 이 단어는 적출(excision), 파멸(perdition), 죽음(death) 등을 의미한다. 에스라가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닥사스다 왕이 그에게 부여하였던 사법권에 기초하고 있다(7:26).

  에스라의 공포에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에 3일 내로 모였다(9절). 총회(總會)가 소집된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 앞에 ‘유다와 베냐민’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에스라서에는 이 같은 표현이 총 3회 사용되고 있는데(1:5;4:1;10:9), 모두 어떤 상징이나 속성을 배제하고 있다. 단순히 북쪽의 이스라엘을 제외한 남쪽 유다만의 백성들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어김없이 공동체가 지닌 하나님 앞에서의 속성이나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총회가 소집된 때는 아홉째 달 20일이었다. 바벨론을 떠난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가 다섯째 달 1일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4개월 20일, 즉 140일이 지난 때이다. 성전 앞 광장에 모여 앉은 무리는 그 일과 큰비 때문에 떨고 있었다. ‘그 일’이란 그들이 지켜야 할 맹세, 즉 결혼한 이방 여인과 그 자녀들을 내보내는 일을 가리킨다.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부인과 자녀는 그들에게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을 내치는 행위는 그들에게 떨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설상가상 ‘큰비’까지 내려 그들의 온몸을 떨게 하였다. 아홉째 달은 히브리 달력으로 ‘기슬르’ 월인데, 이는 현대의 12월 초순 정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유대 지방은 10월부터 12월까지 춥고 비가 많이 우기(雨期)이다. 그때 내린 큰비로 백성들은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큰비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에(삼상 12:17-18;겔 13:11,13) 그 심판이 무서워서 떨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렇게 떨면서 앉아 있던 무리를 향하여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말하기 시작하였다(10-11절). 그의 말은 단호하였다. 그는 먼저 무리의 죄부터 지적하였다. “너희가 죄를 범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다.” 그가 지적한 무리의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들이 되고 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지만, 그 은혜를 저버리고 앞선 조상들의 죄를 답습함으로써 이스라엘에 죄를 더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무리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방 여인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은 통혼 죄를 자복하고, 이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이다. 한편 에스라는 회개 대상인 하나님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그분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그 조상들의 후손인 ‘무리’도 당연히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놓여 있고, 이는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역으로 그 언약을 저버리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명되는 것을 의미한다. 에스라의 단호한 촉구에 모든 회중이 그의 말대로 마땅히 행하겠다고 소리 높여 대답하였다(12절).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입니다’라는 말은, ‘옳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라는 뜻이다(NASB, That’s right! As you have said, so it is our duty to do).

  13-14절은 그곳에 모인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친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무리를 대표하는 몇몇 지도자가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지금 당장 그 일을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들은 그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백성이 너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 자리에서 그 많은 백성을 조직적으로 편성하고, 일일이 후속 작업을 행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그 일은 조용하게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공개된 상황에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둘째, 지금은 큰비가 내리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이 비를 피할 만한 수용 시설이 부족하였고,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셋째, 그들이 그 일로 크게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크다’는 말은 죄의 성격이 심각하다는 뜻도 있지만, 그 문제의 기저에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따라서 그 일은 하루 이틀에 처리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 지금 당장 서두르지 말 것을 제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이 제시한 문제 해결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온 회중을 위하여 방백들을 세우자. 이는 통혼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지도자들로 구성된 조사 위원회(최고 심의회, 최고 종교 법원)를 세우자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통혼한 자는 모두 정해진 기한 내에 방백들에게 오게 하자. 이 조치는 약속된 시간 내에 통혼한 자들에게 방백들 앞에서 이방 여인과 그 소생을 내보내겠다는 서약을 받기 위한 것이다. 셋째, 각자 소속된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자. 여기에서 장로들과 재판장은 서약에 대한 공증인 역할뿐만 아니라 실제 이행 여부를 감찰할 역할까지 맡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마을마다 나이 많고 인품과 덕망이 높은 장로들로 구성된 자치 단체가 있어 치리를 담당하였다(레 19:32;삼상 26-30). 숙곳에는 무려 장로가 77명이나 있었다(삿 8:14). ‘재판장’은 지방(읍내)의 재판관을 가리킨다. 한편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돌려질 때까지’라는 뜻이다. 즉 그렇게 될 때까지 그 일을 멈추지 말고 계속하자는 말이다.

  그렇지만 요나단과 야스야는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였다(15a절). ‘그 일을 반대한’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해석이 두 가지로 갈린다. (1) 무리 가운데 대표자들이 제시하였던 방법(13-14절)에 대한 반대이다, (2) 이방 여인들을 축출하라는 에스라의 의견 자체에 대한 반대이다. 이 중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1)을 더 타당한 것으로 본다. 첫째, 요나단과 야스야는 이방 여인을 취한 죄와 무관하다(18-44절). 둘째, 이방 여인들을 끊어 버리라는 에스라의 명에 무리가 맹세한 일과 대표자들의 제안 사이가 아닌 대표자들의 제안 뒤에 두 사람이 반대하고 일어났다. 셋째, 그들이 악천후에도 에스라의 명에 순종하여 모였다. 넷째, 사법권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는 에스라에게 그렇게 반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째, 에스라의 명령에 맹세로 화답한 무리 속에서 그렇게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섯째, 에스라와 방백들이 아무런 저항이나 문제없이 조사를 진행하였다(16-17절). 그렇다면 그들은 왜 대표들의 방법에 반대하였던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방백들이 얼마간의 기간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지금 즉시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베드로처럼 매우 다혈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도왔다(15b절). 여기서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도왔다’는 것에 대해 두 가지 해석으로 갈린다. (1) 그들이 요나단과 삽브대의 의견을 반박하고 재차 회중 대표자들의 의견을 지지하였다. (2) 한글개역개정성경의 표면적인 내용대로 요나단과 삽브대의 의견을 지지하였다. 전자는 이어지는 16절 내용과 관련해서 자연스럽다. 즉 요나단과 야스야가 개혁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 회중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제시하며 반대의 뜻을 표명하였지만, 므술람과 삽브대가 이들의 의견에 반박하고 회중 전체의 의견에 재청함으로써 그 일이 본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개역개정성경의 번역은 ‘반대하고’(and)를 ‘반대하였지만’(but)으로 번역해야 옳다. 후자는 표준새번역성경과 NIV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해석이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오직, ~만 이 의견에 반대하였으며, ~가 그들에게 동조하였을 뿐이다.”고 번역하고 있고, NIV는 “Only Jonathan and Jahzeiah, supported by Meshullam and Shabbethai, opposed this.”로 번역하고 있다. 이 두 번역에 따르면, ‘요나단과 야스야가 회중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였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은 오직 므슬람과 삽브내 두 사람뿐이어서 그들의 의견이 채택되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개인적으로 후자를 더 지지하지만, 두 해석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본문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 같다.

  16-17절은 조사 위원회의 설립과 그들에 의해 주도된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 즉 귀환한 백성이 그대로 하였다(16절). ‘그대로 하였다’는 말은 무리의 대표들이 제안한 방안대로 실행에 옮겼다는 의미이다. 에스라는 가문(가족)에 따라 각각 지명된 몇 명의 족장을 선임하고, 열째 달 1일에 앉아서 그 일을 조사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첫째 달 1일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의 일에 대한 모든 조사를 마쳤다. 따라서 조사는 만 3개월(90일) 동안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사는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인 날(아홉째 달 20일)로부터 10일 후에 시작되었는데, 이 열흘 동안 심사 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조사를 위한 제반 사항을 준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앉아’는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자신의 자리에 임하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삼상 1:9;왕상 1;35,46).

[질문] 본 단락은 유다 사회에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과정과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그 과정을 사건 진행 순서에 따라 간략하게 정리해 보시오.

유다의 통혼 문제에 대한 개혁은 방백들의 고발과 에스라의 회개 기도로 촉발되었고, 그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에스라의 총회 소집(6-8절) :
① 소집 배경(6절),
② 소집 대상(7절),
③ 소집 공포령의 권위(8a절),
④ 공포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 요구(8b절),
⑤ 공포의 강제권 : 불순종할 때 재산을 적몰하고 공동체에서 추방(8c절).

(2) 모인 총회의 광경과 에스라의 권고(10-11절) :
① 분명하게 밝힌 범죄 내용(10절),
② 해결 방안 제시 : 죄를 자복하고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11절).

(3) 백성들의 반응과 구체적인 방안 제시(12-15절) :
① 긍정적인 반응 : 에스라의 권고대로 실행하되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하자는 의견(13-14절),
② 적극적인 반응: 즉각 시행하자는 의견(추정)(15절).

(4) 진상 조사(16-17절) : 조사 위원회가 주관하여 3개월에 걸쳐 조사.

3. 통혼한 자들의 명단(18-44절)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들 가운데, 먼저 제사장들은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 엘리에셀, 야립, 그달랴였다(18절).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는 ‘요사닥의 아들과 예수아의 자손들로부터’라는 뜻이다. ‘예수아’가 ‘요사닥’의 아들이기 때문에(3:2;학 1:1), 이 부분은 ‘요사닥의 자손들 가운데 예수아의 아들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NIV, 표준새번역성경). 이렇게 볼 때 본문은 예수아와 그 형제의 가문, 즉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인물 가운데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을 밝히고 있는 명단의 도입도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대제사장의 가문마저 이방 여인과 통혼에 빠졌다는 것은 성전을 재건한 후의 이스라엘 공동체가 빠졌던 영적 타락과 부패가 얼마나 심각하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들은 두 가지 행동을 취하였다. (1) 모두 손을 잡아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맹세하고, (2) 그 죄로 말미암아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다(18절). 이런 절차는 18절에서만 나오는데, 이는 아마도 나머지 모든 사람이 치렀던 표준 절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다 손을 잡아’라는 말은, ‘그들이 그들의 손을 주어(내밀어)’라는 뜻이다. 이처럼 손을 주는(내미는) 행위는 증인이 맹약에 서명할 때 하는 일반적인 풍습을 묘사한 것이다(왕하 10:15;겔 17;18). ‘속건제’는 고의적이 아닌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던 제사이다(레 5:14-19). 그들이 이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세 가지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첫째, 유다 자손이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이방인과 통혼하였다가 에스라의 지적으로 그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둘째, 속죄제를 드려야 하지만 오랜 이방 생활로 율법에 무지하였기 때문에 속건제를 드렸다. 실제로 속건제는 주로 이웃과 관련한 범죄를 속하는 성격이 강하였던 반면, 속죄제는 하나님과 직접 관련된 죄를 대속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였다. 셋째, 그들이 회개한 죄가 이방 여인과 통혼한 것뿐 아니라 부인과 자녀들을 돌려보내는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비록 그들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결혼까지 파기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허물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속건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이해가 맞다면 에스라가 단행한 종교개혁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19절에 소개된 명단이 대제사장들이라면, 20-23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명단은 제사장들이다. 임멜 자손 하나니와 스바댜, 하림 자손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 바스훌 자손 엘료에내와 마아세야와 이스마엘과 느다넬과 요사밧과 엘라사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제사장들은 13명으로, 4명의 대제사장들까지 포함하면 총 17명이다.

  레위 사람은 요사밧, 시므이, 글라야라 하는 글리다, 브다히야, 유다, 엘리에셀로, 6명이다. 노래하는 자는 엘리아십, 문지기는 살룸과 델렘과 우리였다. 이들은 모두 성전 봉사자로 총 10명이다(23-24절).

  다음은 백성들이다(25-43절). 바로스 자손은 라먀와 잇시야와 말기야와 미야민과 엘르아살과 말기야와 브나야(7명), 엘람 자손은 맛다냐와 스가랴와 여히엘과 압디와 여레못과 엘리야(6명), 삿두 자손은 엘료에내와 엘리아십과 맛다냐와 여레못과 사밧과 아시사(6명), 베배 자손은 여호하난과 하나냐와 삽배와 아들래(4명), 바니 자손은 므술람과 말룩과 아다야와 야숩과 스알과 여레못(6명), 바핫모압 자손은 앗나와 글랄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다냐와 브살렐과 빈누이와 므낫세(8명), 하림 자손은 엘리에셀과 잇시야와 말기야와 스마야와 시므온과 베냐민과 말룩과 스마랴(8명), 하숨 자손은 맛드내와 맛닷다와 사밧과 엘리벨렛과 여레매와 므낫세와 시므이(7명), 바니 자손은 마아대와 아므람과 우엘과 브나야와 베드야와 글루히와 와냐와 므레못과 에랴십과 맛다냐와 맛드내와 야아수와 바니와 빈누이와 시므이와 셀레먀와 나단과 아다야와 막나드배와 사새와 사래와 아사렐과 셀레먀와 스마랴와 살룸과 아마랴와 요셉(27명), 느보 자손은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이었다(7명). 백성들은 총 86명으로, 그 가운데 베배 자손이 4명으로 가장 적고, 바니 자손은 27명으로 가장 많다.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의 명단으로, 총 113명이다. 그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다(44절). 이는 자녀가 없는 이방인 아내들뿐 아니라 자녀가 있는 이방인 아내들도 자녀들과 함께 내보냈다는 의미이다. 또한, 종교개혁에 따른 이혼이 너무나 큰 인간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사실도 암시해 준다. 한편 통혼한 자들의 숫자인 113명은 1차 귀환자들의 인원수(42,360명, 7,337명의 남종과 여종은 제외)와 비교하면 극소수(0.0027%)에 불과하다. 그때부터 에스라가 귀환한 시점까지 인구가 100,000명 정도로 증가하였다고 가정하면 그 비율은 절반 이상 더 줄어든다. 그렇다면 방백들의 고발과 에스라의 반응은 어떤 면에서 과도하다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극소수였지만 통혼 문제가 너무나 심각한 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히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넋을 잃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둘째, 통혼한 자들을 모두 기록하기에는 지면상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에스라가 제시한 명단에는 종교 지도자와 각 가문의 대표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기록하였다. 셋째, 막상 명단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바꿔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추측에는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기 어렵다.

[질문] 통혼한 자들의 명단에 나타난 특징과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인 명단이 하향식 순서대로 작성되어 있다. 즉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일반 백성이 기록되어 있고, 종교 지도자들도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자, 문지기의 순서대로 제시되어 있다. 이는 2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1차 귀환자들의 명단 제시법과 상반되는 방법이다. 그곳에는 백성들을 먼저, 제사장들은 맨 나중에 소개하고 있다.

  2장과 달리 여기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먼저 제시한 이유는, 그들이 지닌 책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강조한 목적은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고 먼저 추궁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총 27명으로, 통혼자들 가운데 24%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1차 귀환할 때의 백성들 대비 종교 지도자들이 차지하였던 16%보다 더 높은 비율이다(평민들은 24,144명이, 종교 지도자들은 4,630명이 귀환). 이것은 결과적으로 제사장들이 백성들보다 통혼에 더욱 적극적이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들은 백성들을 지도해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자신들이 먼저 앞장섬으로써 백성들이 통혼의 죄에 가담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까지 해 버렸던 것이다.

​II. 메시지  / 종교개혁의 필수 조건(10:1-5)

1. 종교개혁에 담긴 의미

​오늘 본문은 본궤도에 오른 유다 공동체의 종교개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이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개혁의 대상이 종교 문제, 즉 신앙 문제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구축한 삶의 터전을 버리고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귀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남달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 재건 이후에 그들의 신앙은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귀환할 당시에는 이방인과의 통혼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그 일에 가담하고 있었고, 심지어 방백들과 고관들은 그 일에 으뜸이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 충격과 슬픔에 빠져,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넋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숙제로 주어졌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그 일이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지닌 두 번째 의미는, 그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개혁’(改革)은 문자적으로 몸을 덮고 있는 가죽을 벗겨내고 새 가죽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죽을 벗기는 일은 고문 중에서도 상고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개혁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막상 개혁 단계에 이르면 주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다 사회에 만연한 통혼의 문제는 해결 방법이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그들이 맞은 아내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그 당사자들에게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들은 칼로 무를 베듯이 싹둑 자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자신의 살을 베고 뼈를 꺾는 아픔이 수반됩니다. 그래서 에스라 앞에 놓인 종교개혁은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2. 종교개혁의 필수 조건

​1) 죄를 자복하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개혁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 일은 죄를 자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1절).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면서 죄를 자복하자,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백성도 크게 통곡하였습니다. 에스라에서 시작된 자복이 영향을 미쳐 유다 공동체에 큰 통곡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엎드리다’는 말은 극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 엎드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또한 ‘울다’는 말은 비극적인 일로 인하여 통곡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엎드려 울고 있는’ 에스라의 모습 속에는, 극도의 슬픈 감정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가 기도하였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죄를 자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죄를 자복하는 그의 진정성은 다시 엎드려 울고 있는 모습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에 에스라가 자복할 때, “하나님, 미안해요”라는 식으로 가볍게 자복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죄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별로 가슴 아파하지도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그로 인해 고통도 미미하다면, 그 문제에서 돌이키려는 의지, 즉 개혁에 대한 의지도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에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대충 개혁할 것이 빤합니다. 상처 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병원에 반드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로 인해 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도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를 심각하지 보지 않으면 단순히 미안하다는 반응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죄가 심각하다고 느낀 사람은 엎드려 통곡할 수밖에 없고, 그 통곡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의지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에스라처럼 죄를 자복하되 진정성 있게 자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범한 통혼의 죄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역,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 그리고 거룩함과 반대되는 부정한 삶이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이 되기 때문에, 진노와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계 20:13). 예수님은 그 심판의 참혹함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맏으리라”(막 9:48-49). 죄악의 결과가 이토록 참혹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그 죄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죄는 심각하고 또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유다의 죄 앞에서 대충 넘어갈 수 없었고,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엎드려 통곡하면서 자백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자복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반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그래서 진노와 멸망이 아닌 축복과 소망 가득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죄 문제를 심각하게 직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에스라처럼 엎드려 통곡하면서 우리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에 대한 개혁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수 있습니다.

2) 돕는 사람과 함께하기

​종교개혁에 있어서 두 번째 필수 조건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남과 의논하고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종교개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는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함께하되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무시하였던 대표적인 사람이 ‘르호보암’입니다. 그는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때 북쪽 지파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 르호보암은 그 문제를 먼저 솔로몬 왕을 섬겼던 노인들과 상의하였고, 그들은 그에게 ‘그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면 그들이 영원히 왕이 종이 될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란 어린 사람들의 말, 즉 노인들의 말과 반대되는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왕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두 왕국이 모두 멸망할 때까지 싸움질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누구와 함께하느냐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해 줍니다.

  다행히도 에스라에게는 함께할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가냐와 그의 동료들이었습니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2-4절). 스가냐는 통혼으로 인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율법대로 이방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자는 개혁의 방법(방향)을 제안하였고, 우리가 돕겠다는 약속도 하였습니다. 또 일어나 힘써 행하라고 에스라를 격려까지 하였습니다. 그의 제안과 동참이 에스라를 일으켜 세웠고, 힘써서 행할 수 있는 용기도 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문제는 우리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고, 그 안에서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 서로 분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고전 12:25). 주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가 혼자 설 수 없기 때문이고, 교회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볼 때 상처가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 죄를 서로 고백하고,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강력하고 효과적인(powerful and effective, NIV)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약 5:16). 함께하되 특별히 스가냐와 같이 우리의 신앙이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3)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종교개혁을 완성하기 위한 세 번째 필수 조건은, 그 일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스가냐의 말을 듣고 에스라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그의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였고, 무리는 맹세로 그에게 화답하였습니다(6절). 이는 에스라가 그 문제를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먼저 백성들의 마음을 맹세로 다잡았습니다. 맹세로 마음을 다잡게 하는 행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두말할 수 없게 함으로써 마음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것은 다음에 이어질 행동에 강력한 동력(에너지)을 제공해 줍니다.

  에스라는 그 맹세에 기초하여 개혁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가 실행한 내용은 오늘 본문 뒤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한 후, 그들에게 다시 한번 스가냐의 제안대로 할 것을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맹세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명단을 조사하여, 첫째 달 초하루에 그 작업을 모두 마쳤습니다(16-17절). 이방 여인과 결혼한 이들의 명단을 작성하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이 맹세한 대로 실행에 옮겼는지 한 사람 한 사람 구체적으로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에스라는 유다의 종교개혁을 그렇게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너희도 너희 안에 있는 죄 문제를 그렇게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 문제는 교묘한 자기합리화에 빠져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와 그로 인해 무너진 신앙 목록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방 여인들을 내보낸 것같이 내쫓은 죄가 있다면 ‘Yes’로 표시하고, 해결하지 못한 죄는 ‘No’로 표시하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3. 종교개혁과 예수 그리스도

​유다 공동체에 만연되어 있던 통혼 문제는, 그 모양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 안에도 교묘하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은밀하게 즐길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와 다르게 그것이 제거되기를 원하지만, 그런 우리의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이렇게 한탄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3-24).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이렇다면 우리의 실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종교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한탄 속에는 그런 상태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바울의 한탄 끝에 그 답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 답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롬 7:25).

  오늘 우리가 살펴본 종교개혁의 필수 조건은 모두 그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죄 문제를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지워나가는 일은 그분 안으로 들어와 함께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분의 몸인 교회에 참여해서 서로 섬기기만 하면 함께할 사람들이 생깁니다. 이 일은 모두 우리 삶의 주인을 내가 아닌 예수님으로 바꾸기만 하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종교개혁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이고, 개혁의 필수 조건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모두 충족된다는 의미를 제공해 줍니다. 이 말씀을 찾아 함께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이 말씀이 우리의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다시 신앙의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회개(悔改) :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행동으로 하는 고백

자복(自服) : 죄를 인정하고 동의하는 것.
                    입으로 하는 고백

자백(自白) : 스스로의 죄(罪)를 고백(告白)함              
                    소송상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事實)을 자기(自己)가 시인(是認)함.
                    사실(事實)이 진실(眞實)하다는 표시(表示). 권리(權利) 자백(自白)과 보통(普通) 자백(自白)으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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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경에 기록된 자백의 의미

    로마서 14: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자백 - ἐξομολογήσεται

    본문의 자백은 요한 1서의 자백과는 다른 단어로 엑소몰로게오로

    ' 에크 '라는 밖으로의 의미를 가진 단어와

    '호모로게오'라는 동의하다는 뜻의 단어의 합성어 입니다.

    즉, 동의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겉으로 표현하는 고백행위를 말하는 것 입니다.

    요한1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자백 - ὁμολογῶμεν

    본문의 자백은 로마서와 다른 단어로서

    호몰로게오 입니다.

    ' 호모'라는 함께라는 의미의 단어와

    ' 레고 '라는 동의하다는 의미의 단어의 합성어 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낱낱이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체적으로 자백의 의미는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 라는 고백이나 " 내가 죄인입니다. " 라는 표출되는 표현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2. 성경에 기록된 회개의 의미

    회개는 자백과 엄밀하게 다른 의미로 사용 됩니다.

    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회개 - Μετανοεῖτε· / 메타노에오

    '메타'라는 바꾸다는 의미의 단어와

    '노에오' 라는 마음을 단련하다는 의미의 단어의 합성어 입니다.

    이것은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회개와 자백의 차이

    성경에 기록된 자백과 회개의 엄밀한 차이는

    " 자백 "은 죄를 단순히 고백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며,

    " 회개 "는 죄를 고백하고 이것을 떠나 다시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즉, 죄를 떠나 하나님께 방향을 전환하는 개념이 회개라는 것 입니다.

    4. 성경에 기록된 요한 일서의 자백은 회개인가? (단회적 회개와 반복적 회개)

    성경은 회심으로 인도하는 단회적인 회개, 즉 믿음으로 나오기 위해 단회적 회개를 요구하는 동시에 믿음 이후의 죄에 대한 속죄와 관련 없이 성화를 위한 회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사도행전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본문의 회개는 단회적인 회개로 믿음으로 나오기 위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방향을 전환하여 하나님께 나와 그리스도를 통한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믿음을 가지기 위한 회개를 요구하는 것으로 단회적 회개 입니다.

    이것을 또다른 말로 " 회심 "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 이후에도 회개는 반복됩니다.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본문의 회개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회개로  의롭다 함을 얻고 양자 삼으심을 받은 성도들이 후회할 것 없는 구원이라 표현된 성화와 영화를 위해 필요한 회개를 명령하신 것 입니다.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부분 중에 한가지가 반복적 회개를 통해 죄를 용서 받아 이것을 통해 구원을 유지한다는 것인데, 회개 기도를 통해 죄를 씻는 것은 아닙니다.

    "성화란 성령께서 죄인을 죄의 부패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시며,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로우시며 계속적인 사역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개론, 283쪽) 

    (루이스 벌콥 / 기독교 신학 개론 256쪽)

    새 생명을 심어주는 것으로 해석되는 중생은 결코 반복 될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의 회심도 또한 반복될 수 없다 이것은 중생의 변화가 인간의 의식 생활에서 처음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반복되는 회심에 대하여도 말할 수 있다

    감리교 조직 신학 (웨슬레 조직 신학 199-200쪽)

    이 회개는 칭의에 헌생하는 회개와는 아주 다른 것 입니다. 여기서 회개는 죄책이라든가 정죄라든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의식이라든가 하는 것들과는 연관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깨달음이니 곧 우리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죄를 깨닫는 것 입니다. 곧 육에 속한 마음 입니다. 중생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것이 남이 있으나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 출처 : 네이버 카페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평이협) "

    단회적 회개를 통해 " 믿음 " 을 가질 때 중생과 칭의가 이뤄지는데 " 칭의 "는 법적 신분의 변화로 죄로 말미암아 심판 받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대신 심판을 받아 죄의 삯을 지불하셨으니 그의 의를 입혀 신분상 죄인이 의인으로 변화되는 것, 즉 법적 신분의 변화가 이뤄지게 되는 것으로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단번에 영원히 용서 받기 때문에 회개 기도를 통해 죄를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의 삯은 사망으로 피흘림이 없이는 죄를 용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원죄는 보혈로 씻고 자범죄는 회개 기도를 통해 날마다 죄를 씻는다는 개념이나 믿기 전의 죄만 보혈로 용서 받고, 믿은 뒤의 죄는 회개 기도로 용서 받는다는 개념도 틀린 것 입니다.

    믿음 뒤의 회개는 죄를 용서 받아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용서 받은 자 답게 거룩하게 살아감으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에서 죄와 멀어지고 점차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당연한 것 입니다.

    믿음 뒤에 회개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나, 진실로 믿음으로 중생과 칭의가 이뤄졌다면 믿음 뒤에 죄에 대하여 민감한 변화가 일어나고 회개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한 일서의 " 자백 " 부분이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요한1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본문은 자백, 즉 죄를 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죄를 단순히 자백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1서 본문을 보면  6절에 하나님과 사귐, 즉 죄인이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평이 이뤄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마5:9/ 롬5:1/ 엡2:14 참고) 용서 받은 죄인들, 즉 거듭나 자녀가 된 성도가 죄 가운데 있으면서 아무런 걸림도 없이 하나님과 진실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거짓말이라는 것 입니다. 5절 말씀대로 하나님께는 악이 조금도 없으시기 때문 입니다. 빛과 어둠이 같은 공간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담이 최초에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숨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람이 아무런 두려움이나 걸림 없이 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도가 죄를 용서 받은 것은 신분적 변화지 상태의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성도는 죄를 지을 수 있으나 죄를 가지고 있을 때는 하나님과 걸림 없는 화평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과 사귐, 즉 3절과 같은 " 코이노니아 " 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신령한 교제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라는 것 입니다.

    그러니 죄를 가지고 있으면 7절과 같이 빛 가운데 행해야 하는데, 만약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6절이나 8절과 같이 죄가 없다고 숨기고 거짓말하지 말고 9절과 같이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면서 돌이키는 태도를 가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본문은 단순한 자백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죄를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무런 걸림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죄를 7절과 같이 떠나면서 살던지 죄를 지으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돌이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10절과 같이 죄를 범하였으면서 자신과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지 않고 숨기고 아무런 문제나 걸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안에 진리가 없는 거짓말하는 사람이라는 것 입니다. 진실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죄를 품고 있으면 고통이 있고 죄애 대하여 끊임없이 거부반응이 일어나 견딜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 정도가 상이할 수는 있으나 반드시 이런 것이 있다는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요한 일서는 죄를 단순히 고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것, 즉 회개를 명령한 것 입니다.


    회개와 자백은 어떻게 다른가?


    복음을 전하러 다니다 보면 회개와 자백을 구분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비슷하게 들리는 이 두 단어를 혼동되게 사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구원 계획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구원을 받았는가,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하늘나라에 갈 확신이 있는가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매일 매일 죄를 “회개”한다고 답한다. 그러면 회개하지 않는 죄들은 어떻게 하는가, 기억나지 않는 죄들을 어떻게 하는가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회개(repent)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요, 자백(confess)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매일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죄를 낱낱이 고하는 것은 복음적인 의미의 회개가 아니라 “자백”이다. 어떤 사람은 성령님께서 갓 난 아깃적 죄부터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들을 다 기억나게 해 주셔서 자백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그 사람 자신이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가 얼마나 많겠는가? 수십 년 동안 겉으로 드러난 죄뿐 아니라 순간순간 마음으로 지은 죄들, 미움과 시기, 교만, 자기 사랑, 온갖 거짓말, 험담, 탐욕등 수만 가지 죄악을 다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성경이 제시하는 죄의 기준은 인간의 기준보다 훨씬 높다.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죄가 되느니라"(약 4:17).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이 구절에 따르면 우리의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만 배로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다 자백하고 용서를 받는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죄를 일일이 고함으로써 용서받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구원에 필요한 “회개”는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과 또한 헬라인에게도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노라"(행 20:21). 회개란 단순히 악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는 것이다. 또 회개는 단순히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인정과 슬픔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회개는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울(삼상 15:23,24, 28:16), 유다 이스카리옷(행 1:20,25), 파라오(출 9:27) 모두 “내가 범죄했다”고 인정했지만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았는가? 따라서 복음에 있어서의 회개는 자신이 행한 일이 아니라 바로 죄인 된 자기 “존재”에 대한 탄식을 요구한다.

      이런 회개는 베드로, 욥, 이사야에게서 확실히 나타난다. 이사야가 하나님께 다가갔을 때 그 자신이 행한 잘못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화로다! 내가 끊어졌도다. 이는 내가 불결한 입술을 가진 사람이며 내가 불결한 입술을 가진 백성 가운데 거하면서..."(사 6:5)라고 했다. 즉 자기가 불결한 행위를 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 불결한 자임을 고백한 것이다. 욥도 하나님의 신성을 마주대했을 때 “내가 실수하고 잘못 말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티끌과 재속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라고 했다. 베드로 역시 "나를 떠나가소서. 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말했다. 회개는 믿음 이전에 온다.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회개는 죄 용서 이전에 온다. "모든 민족 가운데 그의 이름으로 회개와 죄 사함이 선포되어야 하리라"(눅 24:47).

      복음적인 회개는 죄인 된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탄식과 함께 의인이시며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반드시 수반한다. 성경은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회개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니라"(행 17:30)고 말씀한다.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인가?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고후 4:4) 대신 우상을 섬기는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마음 안에는 성령께서 오셔서 거하시고(갈 3:2)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12). 그러나 죄 사함은 완전히 받았고 영원한 생명은 얻었어도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은 누구도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기에 날마다 원치 않아도 죄를 짓게 된다. 이 때문에 죄의 자백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구원을 받았으면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구원받는 순간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혼을 “죄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영적 할례를 행하시기 때문이다(골 2:11). 또한 구원은 우리 자신의 행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에 근거하기 때문에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교제의 단절을 가져옴으로써 기도의 응답을 막는다. "오직 너희 죄악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나누었고 너희 죄들이 그의 얼굴을 너희로부터 가렸기에 그가 듣지 아니하심이라"(사 59:2).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은 요한일서 1:9에 따라 자신이 지은 죄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백함으로써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죄라고 깨닫게 해 주신 것은 정당화하려 들지 말고 그대로 시인하고 자백해야 한다. (그러나 자백만 하고 동일한 죄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는 히브리서 12:6-10에 따라 징계를 받으며, 육신의 생명을 일찍 취해가시기도 한다.)

      요약하면 회개는 구원을 위하여 죄로부터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자백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매일 지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혼동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회개와 자복의 차이점

     ‘자복하다’ 헬라어로(엑소몰로게오)라고 하는데 이 뜻은 ‘고백하다’입니다. “제가 이러저러한 잘못을 범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고백입니다. 둘째는 자복하다는 말은 ‘동의하다’입니다. ‘저를 향해 지적하신 제 잘못들을 인정합니다‘ 라고 하면 이것은 동의입니다. 셋째 자복한다는 것은 ’약속하다‘입니다. ’앞으로 잘못을 범치 않고 바르게 살겠습니다‘.라고 하면 이것은 약속입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고백이든 동의든 약속이든 모두 입으로,말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다’는 헬라어(메타노에오)라는 말은 아예 돌아서거나 길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동쪽으로 가던 사람이 자신의 방향이 틀렸음을 아는 즉시 180도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는 또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군대 용어로 “뒤로 돌아 앞으로 가” 가던길에서 반대로 오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자복은 입으로 하는 것이고 회개는 말이 아니라, 철저하게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따라서 자복이 회개의 시작일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회개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잘못을 범했습니다, 다시는 그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은 자복입니다. 그리고 이 자복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전도를 하다가 보면 “교회에는 가고 싶은데 죄가 많아서 못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 몸에 때가 많아서 목욕탕에 갈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는 하지만, 죄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자복은 하면서도 회개할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도둑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켰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훔치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약속했습니다. 주인이 그 말을 듣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좀도둑이 다음에 같은 가계에서 또 도둑질을 했다면, 그는 그 전에 주인 앞에서 자복만 하였을 뿐 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회개가 이와같습니다. 우리의 회개는 대부분 경우 자복으로만 끝나 버립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회개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바른 삶을 약속하는 것은 대단히 잘하는데, 그것이 자기 삶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복은 하는데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진보가 없고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는 성도가 의외로 많습니다.
     
     자복은 점(點)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는 즉시 하나님께 입으로(마음으로)자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점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선(線)입니다. 회개는 지속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이 선의 시작일 수는 있지만 점자체가 선일 수는 없는 것처럼, 자복이 회개의 출발점일 수 있으나 자복 그 자체가 회개일 수는 없습니다


    회개와 자백의 차이점

    1. 자백(自白)과 회개(悔改)의 어원

    1) 자백(自白)

    ① 자백하다 (롬14:11; 요일1:9) 고백하다  동의하다  약속하다

    ② 고백하다  시인하다 (마10:32; 행24:14)

     

    2) 회개(悔改)

    ① 슈브( 히브리어) : 회개하다. 회복시키다

       구원하다(스스로)돌이키게 하다(말4:6)

    ② 그 마음을 부수고 다시 세운다 (마3:2, 4:17)

     

    2. 용어의 차이점

     1) 자백(自白)

    자기의 허물이나 죄 따위를 스스로 고백함(겔12:16;요일1:9;롬14:11)

     

    2) 회개

    옛 삶의 상태로부터 나와 하나님 쪽으로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것으로(롬3:20; 막1:15),

    죄 사함을 얻고(행2:38).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후7:10).

    ① 단회적 회개 : 목욕한 자와 같이 한 번에 이루어진다(요13:10)

     예 : 내시(행8:36-38). 사울(행9:17-19)

    ② 반복적 회개 : 생활과 함께 하며, 발을 씻는 것과 같다(요13:10)

     예 : 다윗 왕(삼하12:7-14). 요나(욘1-3장) 베드로(마26:75)

     

    성경이 가르치는 회개는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는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회개이며,

    또 하나는 그 이루어진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통해 계속해야 하는 회개가 있다.

     

     3. 회개의 의미

    성령의 인도하심으로(요16:13;롬2:4,8:14,26;빌1:19;살후3:5;딛3:5)

    1) 반성하고 - 죄를 지었다는 깨달음에서(눅15:21;롬3;20;고전11:29;요일3;4;약1:15,4;17)

    2) 후회하며 - 죄를 슬퍼하며(시38:18;행2:37;고전15:34;고후7:9-11)

    3) 자백하고 - 죄를 자백하고(요일1:9;수7:19;시32:5;잠28:13;스10;1;마3:6;막1:5)

    모든 죄악을 버리고 죄에게서 해방되는 것이다(겔18;30,31;롬6;18)

     

    회개의 의미에서 보는 것처럼 '자백'은 '회개'의 한 과정입니다. 

    회개는 단지 후회하거나 일시적으로 반성하는 차원이 아니라, 죄악과의 철저한 결별을 뜻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모든 악으로부터 떠나는 삶을 뜻합니다.

     

     4. 결론

    '자백'이 '회개'의 시작이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자백' 자체가 '회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잘못을 고백하고, 바른 삶을 약속하는 것은 대단히 잘하는데 

    그것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백'의 단계에서 멈추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입술로 아무리 열심히 ‘자백’한다고 하더라도

    마음 상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회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적인 회개(悔改)란

    회심(回心 : 회개와 믿음)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자백(自白)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와 자백(고백)의 뜻을 바르게 구별하고 있는가?

    마태복음 4장 17절에는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고 요한1서 1장 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다.

    이 두 말씀에서 '회개'와 '자백'이란 말이 있다. 성경은 이 두 단어를 각각 다르게 쓰고 있다.

    '회개'란 메타노에오(μετανο?ω), 메타(μετα)는 '달리'란 뜻이고 '노에오(νο?ω)는 '생각함'이란 뜻이다. 즉 '생각을 달리(고치다)하다'는 말이다. 메시야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고치고 그를 구주로 받아 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순히 죄에 대하여 후회나 슬픔이나 자백(고백)만은 아니다. 이런 일은 회개의 원인일 수는 있으나 회개의 근본 뜻은 아니다. 회개는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마음의 결단을 말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일생에 한번만 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자백(고백)'은 호몰로게오(?μολογ?ω), '호모스'는 '꼭 같이'란 뜻이고 '레고'는 '말하다'는 뜻이다. 즉 자기의 행한대로 직고하라는 뜻이다. 자백은 가다가 탈선(이탈)했을 때 다시 되돌아가던 길(방향)을 바로 찾아 가는 궤도 수정이라 할 수 있다.

    회개는 이제까지 살아온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즉, 방향 전환이다. 성경은 회개를 통해 '거듭남'의 체험을 하므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강조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회개는 죄인이 의인으로 바꿔지게 하므로 새로 지음받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회개는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했다. 죄의 옛 사람은 죽고 의의 새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요, 이것은 회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요한복음 3장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거듭나는 것은 니고데모의 어리석은 질문처럼 사람이....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다시 한 번 요약한다면 회개를 통한 중생(거듭남)은 한 번밖에 못하는 1회적인 것이다.

    그러나 '자백'은 회개하므로 거듭난 자가 범죄했을 때마다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같은 뜻으로 자복, 고백, 시인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마 3:6, 행 19:18, 행 24:14, 마 10:32, 33). 영어로는 모두 confession, admit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회개는 Repentance로 번역하고 있다.

    자백은 반복이지만 회개는 일생에 한번으로 족하다.

    회개와 자백의 구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눈 자리에서 하신 말씀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그들과 만찬을 나누신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다.

    이때 베드로가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십니까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그렇다면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했다(요 13:4-11).

    '목욕' '루오'는 몸 전체를, '씻음' '빕토'는 몸 부분을 씻는 것이다. 목욕은 회개를 통해 거듭남을 의미하고 씻음은 일상 생활 중에 심령이 더러워진 것을 주님께 자백함으로 씻음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는 것과 고백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백(고백)대신 회개라고 할 때가 많다. 아니 많다기보다는 거의 전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으나 가능하면 원 뜻을 살려 용어를 선택하는 것이 어떨는지....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 함이로다"(고전 9:27),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고백하였다.

    그는 매일 자신을 살펴 입으로 실언(失言)한 것, 손으로 실수(失手)한 것, 발로 실족(失足)한 것을 하나님께 자복하며 자신을 쳐 주님께 복종하였다. 그는 날마다 자기 자신과 싸워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회개를 통해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 의인화(義認化)는 한번으로 족하다. 그 다음에는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성도로서 거룩하게 변화를 받는 성화(聖化)는 세상 떠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이것은 매순간 자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수란?
       어떤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수사기간에 스스로 자기 범죄사실을 신고하여 인정하는 것

    자백이란?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자신이 행한 범죄사실의 일부나 전부를 진술하고 인정한 것

    ​▶자복이란?
       피해자에게 범인이 스스로 범죄사실을 알리는 것

    자백과 자복은 무엇이 다른가요?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자백하다와 자복하다에서
    국어사전 /
    자복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복종한다
    자백은 자신의 죄를 고한다

    형법적 의미 /
    자잭은 수사기관의 조사에 응하여 범죄사실을 진술하는 것
    자복은 고소권을 가진 자에게 자발적으로 자기의 범죄 사실을 고하여 그 고소에 맡기는 것

    자복이 헬라어로 ”엑소몰로게오“라고 고백하다. 자복하다. 혹은 동의하다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자백과 자복은 위처럼 같은 헬라어의 ”엑소몰로게오“ 라는 것에서 나온건가요?
    아니면 우리나라의 사전처럼 자백과 자복을 근본은 같지만 약간은 다른 뜻으로 풀이 하나요? 인터넷에도 자복과 회개에 대한 다른 뜻이라며 풀이한 것은 많이 보이는데 자백과 자복이 같은거라 그런건지 그이야기는 안나오네요 혹시 아시나요"

    1. 자백(自白)과 자복(自服)은 무엇이 다른가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自白(자백)과 고백(告白)에서 "白"(백)은 "말한다, 아뢴다"라는 뜻
    자신의 잘못이나 죄를 인정하거나 죄 자체를 말하는 것을 의미

    자복(自服. confession)에서 "服"(복)은 "服從(복종) 또는 屈服(굴복)"의 뜻이 들어 있어 自白(자백)보다는 더 나아가서 상대방에게 굴복한다는 의미가 덧붙어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自白(자백)과 自服(자복)이 한자를 사용한 우리말에서는 그 뉘앙스가 다르고 세부적인 의미의 차이가 있고, 법률적으로도 구분이 되지만, 헬라어 exomologeõ(엑소몰로게오)는 오늘날과 같이 자백과 자복이 구분되기 전인 고대의 단어이므로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단어로써 여러 경우에 사용되었거나 하나의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는 문맥에 따라서 번역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사정은 헬라어뿐만 아니라 현대의 다른 언어, 예컨대, 영어의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근한 예로 영어 present 라는 동사를 봅시다. 사전을 펴보면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번역됩니다.

    1. 선물하다, 바치다, 증정하다.
    2. (메달, 상장을) 수여하다.
    3. (기회, 가능성을) 제공하다.
    4. (서류를) 제출하다.
    5. (계회, 案을) 제안하다.
    6. (사람을)소개하다, 인사시키다.
    7. (새 영화를) 공개/상영하다.
    8. (배우가 役을) 맡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헬라어 homologeõ(호몰로게오) 또는 exomologeõ(엑소몰로게오)는 "자백하다, 고백하다, 자복하다, 승복하다, 죄를 인정하다, 등등" 의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 단어였습니다.
    이것이 어떤 문맥에서 사용되었느냐에 따라서 현대의 우리말로 가장 적합한 번역어를 찾아서 번역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 회개란 무엇인가요?

    사도행전 2:38 (개정)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5:31, 개정)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행 11:18, 개정)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계 2:5, 개정)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회개(悔改) :  뉘우칠 회, 고칠 개

    회개란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죄를 슬퍼하고 죄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정로, 23)

    우리가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면 죄를 버리지 않게 될 것이요, 또한 진심으로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우리 생애에 진정한 변화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볼 때에 구속의 오묘한 이치가 우리의 마음을 깨우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로 이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셨으므로, 죄인이 이 사랑을 주목할 때에 이 사랑이 심정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에 감명을 주고 심령에 통회하는 생각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하면 이 말씀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구원의 길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게 되면 죄가 가져올 결과 때문에 죄를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미워하게 되어 죄를 자복하게 됩니다.

    “진정한 자복은 언제든지 명백하게 하고 또한 지은 죄를 꼭 지적하여 자백한다. 죄 가운데는 오직 하나님께만 자복하여야 할 성질의 죄도 있을 것이고 또는 해를 입은 당자에게 자복하여야 할 허물도 있다. 또 어떤 죄는 공중에 대한 죄이므로 공중 앞에 자복하여야 할 것이 있다. 그러나 어떤 자복이든지 그대가 범한 죄를 꼭 지적해서 명확하고도 요령 있게 하여야 한다.”(정로, 38)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영원한 속죄로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우리의 회개와 자백, 고백이란 평생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용서받은 죄인인 반면에 시몬은 용서받지 못한 죄인이었다.”(소망, 567)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솔직하게 고백(告白-알릴 고, 흰 백) 하면 마리아처럼 우리도 “용서 받은 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성경에서 자백과 자복에 관해 몇 번이나 사용되었나요?

    자백 - 3구절
    에스겔 12:16, 로마서 14:11, 요한일서 1:9 

    자복 - 17구절
    레위기 5:5, 26:40. 민수기 5:7, 여호수아 7:19. 에스라 10:1, 11. 느헤미야 1:6, 9:2, 3. 시편 32:5. 잠언 28:13, 예레미야 28:13,
    다니엘 9:4, 20, 마태복음 3:6, 마가복음 1:5, 사도행전 19:18.


    (겔 12:16, 개정)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들이 이르는 이방인 가운데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롬 14:11, 개정)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요일 1:9, 개정)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호몰로게오 homologeo-

    약속하다, 고백하다, 시인하다, 선포하다, 선언하다, 찬미하다, 칭찬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

    1) '그 말에 동의하다'(Hdt.,Ⅰ,142,4), '같은 언어를 말하다, 그의 확언을 받아들이다, 책임을 인정하다, 죄를 고백하다'(Soph.Phil.에서부터).

    2) '영수증을 확인하다'(pap에서 때때로).

    3) '제안에 동의하다'(Hdt.,Thuc.), '제안에 따르다'.

    4) '소원에 동의하다, 약속하다'.(참조: O.Michel).

    이 단어들의 종교적 용법은 이 단어들을 협정(조약)이나 법정 언어로 사용한 용법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어떤 맹세(호몰로게오)로서 자신을 구속하는 사람은 신(神)과의 조약 관계에 들어간다. 그래서 이 개념은 법정에서의 과실에 대한 엄숙한 고백을 뜻하는 개념에서 신께 대한 죄의 고백을 뜻하는 개념으로 변형되었다.

    2. 신약에서의 용법

    1) 호몰로게오는 '언명하다, 약속하다, 시인(인정)하다, (엄숙히)공언하다, 증거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예 : 마 14:7에서 헤롯은 의붓 딸에게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맹세의 약속을 했다.

    행 7:17에도 비슷한 용법이 나온다. 곧 아브라함에게 한 공언 또는 약속은 의무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히 11:13은 아마 고백(confessing)과 공언(avowing)에 대한 일반 헬라어 용법을 가장 잘 이해한 것 같다. 약속의 땅 입구에서 족장들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신들이 땅에서는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의 선언 및 증거, 곧 공개적으로 한 고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히 13:15의 호몰로게오는 '찬미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이 문맥은 교회에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할 것을 요구한다.

    3) 호몰로게오는 '고백하다, 공개적으로 고백하다, 공적으로 진술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요일 1:9에서 호몰로게오는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언명 또는 공언을 하는 자는 어떤 사실과 직면한다. 그는 그 사실을 감추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그는 죄인이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특정한 죄들을 고백한다.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정직하게 자신의 과실을 깨닫고 공언할 때 그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경험하게 된다.

    4) 호몰로게오는 법적인 의미에서 '진술하다', '증언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호몰로게오의 법적인 용법은 아마도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하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마 10:32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예수님은 자기를 시인 곧 고백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자기를 고백하면 자기도 종말론적인 증인으로서 아버지 앞에서 그것을 확증할 것이다고 하셨다.

    2) 자복(自服) : 17구절 (구약 - 14회, 신약 - 3회)  

    (시 32:5, 개정)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시 32:5 야다 yadah

    던지다, 쏘다, 감사하다, 찬양하다, 고백하다

    죄에 대한 양심적 가책이나 인정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했음을 의미한다. 혹자는 자백에 대해 설명하기를 ‘자백은 댐의 수문을 여는 것과 같다. 자백하지 않을 때 댐 뒤에 많은 물이 쌓여서 엄청난 압력을 느끼게 되지만 일단 수문이 열리기만 하면 물이 빠지고 압력이 감해진다’라고 하였다.

    (단 9:20, 개정)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단 9:20 야다 yadah

    던지다, 쏘다, 감사하다, 찬양하다, 고백하다

    (마 3:6, 개정)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마 3:6 엑소몰로게오는 엑스(∼부터)와 호몰로게오(동일한 것을 말하다. 말에 동의하다)의 합성어이며, '약속하다, 고백하다, 시인하다, 찬미하다, 칭찬하다'를 의미한다. 현대 헬라어에서 이 단어의 개념은 제사장에게 하는 신성한 고백을 의미하게 되었다. 곧 엑소몰로게오마이는 '나는 고백을 한다'는 뜻.

    고백은 회개의 표적이며(회심 conversion), 따라서 믿음의 새 생활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것은 막 1:5의 병행 구절들에서 특히 분명하게 나타난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이곳에서 시편에 나오는 바와 같이 죄에 대한 공적 고백은 죄로부터 자유(해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Yadah 동사에 대한 3가지 용법

    첫째, 이 단어는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죄의 시인 혹은 고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기본적인 개념은 시 32:5에 묘사되어 있는 다윗의 개인적인 고백에서 분명하게 관찰되었다. 여기에서 시적인 병행구는 고백이 죄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었음을 설명해 준다. 죄에 대한 고백이 하나님께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둘째, 야다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의 일에 대한 인간의 공적인 선포나 선언(고백)을 나타내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은 찬양의 의미의 핵심에 있다. 찬양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그리고 그가 무엇을 행하는가에 대한 고백이거나 선언이다.

    셋째, 야다는 또한 어떤 사람에 관한 어떤 진실을 고백하는, 즉 사람에 대한 사람의 칭찬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성경전체 17번 사용된 자복

    (레 5:5, 개정)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레 26:40, 개정)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민 5:7, 개정)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수 7:19, 개정)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하니』

    (라 10:1, 개정)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라 10:11, 개정)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느 1:6, 개정)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느 9:2, 개정)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느 9:3, 개정)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시 32:5, 개정)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잠 28:13, 개정)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렘 3:13, 개정)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단 9:4, 개정)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단 9:20, 개정)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마 3:6, 개정)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

    (막 1:5, 개정)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행 19:18, 개정)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5월 27일(화) 에스라 8-10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죄를 자복할 때(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While Ezra was praying and confessing, weeping and throwing himself down before the house of God, a large crowd of Israelites--men, women and children--gathered around him. They too wept bitterly.

    새한글성경 / 에스라가 기도하며 잘못을 털어놓고 있었다. 하나님의 집 앞에서 울면서 엎드려 있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남자, 여자, 아이들의 수많은 무리가 그에게 몰려들었다. 백성이 많이 울었다.

    새번역 /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며 를 자백하자, 이스라엘 사람도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많은 무리가 에스라 주변에 모여서, 큰소리로 슬피 울었다.

    현대인 / 에스라가 성전 앞에 엎드려 고백하며 울고 기도하자 이스라엘의 많은 남녀 백성들과 아이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 통곡하였다.

    공동번역 / 에즈라가 하느님의 전 앞에 쓰러져 고백하고 울며 기도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자 여자 어린이 할 것 없이 울며불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죄를 자복할 때에(우케히트와도토.  וּכְהִתְוַדֹּתֹו) when he confessed

    자복(自服) : 스스로 자(自), 옷 복(服)

    1. 저지른 죄(罪)를 자백(自白)하고 복종(服從)함.
    2. 친고죄(親告罪)에서, 범인(犯人)이 피해자(被害者)에게 자기(自己)의 범죄(犯罪) 사실(事實)을 알리는 일. 형(刑)의 임의적(任意的) 감면(減免) 사유(事由)가 되며, 자수(自首)와 같은 효력(效力)을 갖는다.

    3034. 야다(yâdâh) יָדָה     스트롱번호3034

    1. 던지다.  2. 피엘형 : 미완료형 וַיַדּוּ
    3. 히필형 미완료형 יְהוֹדֶה
    발음 [ yâdâh ]
    구약 성경  / 117회 사용
    관련 성경 /  쏘다(렘50:14), 떨어지다(슥1:21), 던지다(애3:53), 인정하다(왕상8:33, 대하6:24), 감사하다(시75:1, 대상16:4, 23:30, 느12:24), 찬송하다(창29:35, 대하7:6, 시45:17), 자복하다(민 5:7, 시 32:5, 단 9:4), 찬양하다(시43:4,71:22, 사38:18), 칭찬을 받다(시49:18), 아뢰다(레16:21).
    자복하다(민 5:7, 시 32:5, 단 9:4),

    민수기 5:7
    그 지은 를 자복하고 그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그가 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 줄 것이요.

    시편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다니엘 9: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하나님의 전 앞
    - 이것은 '성전 마당'을 가리킴이 분명하다(Schultz).
    만일 에스라가 '성소' 안에서 기도를 했다면 백성들이 에스라의 기도 모습을 목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엎드려 울며
    - '엎드려'(*, 미트나펠)는 '쓰러지다' 혹은 '넘어지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나팔'(*)의 재귀형으로서 극도의 슬픔 때문에(Davidson)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하게 엎드리는 행동을 가리킨다(NIV).
    또한 '울며'(*, 바카)는 어떤 비극적 사실로 인하여 '통곡' 혹은 '애곡'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23:2 ; 삼상 1:10 ; 삼하 1:24 ; 렘 22:10).
    따라서 '엎드려 울며'는 극도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암시적 행동임이 분명하다.
    에스라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죄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죄인 양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한 바 있거니와(9:6-15) 여기서도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것인 양 괴로워하며 통회 자복하고 있다.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 이것은 일차적으로 (1) 에스라의 죄에 대한 외적 태도(9:3).
    (2) 에스라의 백성들에 대한 연대 의식 및 그의 간절한 기도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효과를 극대화시킨 요소 중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왕의 정치적 사법권을 소유한(7:25) 신분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Fensham).
    한편, '통곡하매'는 본절의 '울며'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같이 에스라에게 적용된 단어가 백성들에게도 적용됐다는 사실은, 여기의 백성들의 통곡이 에스라의 신앙적 태도에 대한 적극적 반응임을 암시해 준다.


    3045. 야다( yâdaʽ)  יָדַע   

    1. 보다.  2. 지각하다. 3. 삿13:21
    발음 [ yâdaʽ ]
    구약 성경  / 940회 사용
    관련 성경 / 동침하다(창 4:1, 왕상 1:4), 알다(창 4:9, 신 9:6), 가까이 하다(창 19:8, 24:16), 깨닫다(창19:33,전2:14), 간섭하다(창39:6), 허락하다(출3:19), 알게 하다(출14:4, 삼하24:2), 분별하다(신1:39, 전8:5), 생각하다(신8:5, 삼하23:13), 기억하다(신11:2), 알리다(삼상22:17), 살피다(욥35:15, 잠27:23), 아뢰다(시56:9), 측량하다(시71:15), 보다(잠14:7), 모르다(전4:13), 무식하다(사29:12), 몰지각하다(사56:11), 알다(렘1:5), 부끄럽다(렘6:15), 인정하다(렘14:20), 알리다(겔6:13), 알고자하다(전7:25), 알아보다(삼상23:22), 정탐하다(삼상23:23), 자복하다(렘3:13), 상관하다(창19:5, 삿19:22), 기억하다(출2:25), 행음하다(삿19:25), 분간하다(삼하19:35), 헤아리다(욥37:5, 사47:11), 알아주다(사58:3), 자다(삿21:11), 익숙하다(창25:27,왕상9:27), 잘하다(대하2:8), 풍부하다(대하2:12), 돌보다(잠12:10), 인정받다(신1:15), 먹다(창41:21), 탄로되다(출2:14), 나타나다(삼상22:6, 사66:14), 교훈을 받다(렘31:19), 기억하다(창41:31), 보이다(룻3:3), 예고하다(사47:13), 드러나다(잠10:9), 나타내다(욥26:3, 잠12:16), 지시하다(출33:12), 가르치다(삼상10:8, 욥37:19), 배우다(삼상28:15), 대답하다(욥38:2, 40:7), 선포하다(사12:4), 징벌하다(삿8:16), 보여주다(사40:14), 분별하다(겔44:23),인도하다(대하23:13). [명] 총명한 자(단2:21), 감각(잠23:35), 지식(느10:28), 지식인(전9:11),친구(왕하10:11, 시31:11), 친족(룻2 : 1), 친우(시55:13). [부] 능히(대하2:14), 부지중(아6:12), 반드시(창15:13), 밝히(삼상20:3), 분명히(왕상2:37, 렘28:15), 순식간에(시35:8), 부지런히(잠27:23).


    에스라의 개혁(에스라 10:1-17)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1차 귀환 후 약 60년 간 영적인 지도자가 없는 공백기를 지내면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2차 귀환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에스라는 그들이 이방 여인과 통혼하며 범죄하는 모습을 보고 단호한 개혁을 시행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개혁을 통한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에스라는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백성들의 죄를 대신 통회 자복했습니다 (1절). 에스라는 백성들이 죄를 범하자 마치 그것이 자신의 죄인 양 울며 회개했습니다. 백성들의 과오를 대신 지고자 하는 참목자의 심령으로 그들의 불순종과 패역을 토로하는 철저한 참회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같이 통곡하며 죄를 회개하기 시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둘째, 에스라는 백성들이 회개의 역사를 끝마칠 때까지 금식했습니다(6절). 이것은 철저한 회개의 역사를 촉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한번 죄를 범한 후에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그 죄를 범하기 쉬운데, 그 때에는 금식하며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라처럼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서 금식하고 또한 우리 자신의 고범죄를 위해서 금식하며 회개할 때, 우리는 죄의 고리를 철저히 끊어 버릴 수 있게 됩니다.


    셋째, 백성들은 이방 여인들을 단호히 끊어버렸습니다(11-17절). 다말과 룻은 이방 여인이지만 언약의 계보에 들어온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나온 이방 여인들은 가증한 이방 우상을 숭배하며 이스라엘내에 불신앙을 퍼뜨리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에스라는 혼인을 금하고 끊어버릴 것을 명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전도가 가능한 불신자와는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나를 세속주의로 빠져들게 하는 친구 및 불신자와는 그 관계를 단호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에스라의 인도를 따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우리 신앙 생활 중에도 내적인 신앙 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금식하고 회개하며 단호한 결단을 통해 새로운 신앙의 부흥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회개운동의 기폭제(에스라 10:1-17)

    1.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회개로부터

    회개란 다른 곳을 향해 제멋대로 달려가던 인생이 말씀과 성령의 깨우침을 받고,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운동(悔改運動. Repent Movement)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제사장이면서 학사였으며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태어난 에스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자기 민족의 불행과 비극이 하나님을 능멸하고, 하나님 말씀의 본질과 권위를 무시하며, 제멋대로 육체의 입장에서 살아가느라 영적인 소망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영육간에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서두르기 위해 자신이 먼저 철저히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사는 생활로 바꿨습니다.



    페르시아(바사)가 바벨론을 점령하고, 다시 페르시아가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에 아닥사스다 왕에 이르면서 에스라는 그 시대에 서기관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는 비록 포로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유식하고 촉망 받는 출세한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하나님 앞에 잘못되면, 더 심한 채찍과 시련 가운데 멸망당하게 될 것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이것은 사명자의 발로(發露.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이기도 하고, 마땅히 가져야 할 본질적 자세이기도 했습니다.

    2.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백성

    B.C. 538년 제1차 포로귀환(스 1-6)은 스룹바벨의 인도로 예루살렘에 돌아갔고, 그들이 24년 만에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봉헌식을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는 육에 속한 모습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종교적 지도층 인물이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 성전에서 예배하던 찬양대원들, 성전을 지키던 경비들 같이 성전에서 먹고 살고, 대접받고, 봉사해야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15-16절을 보면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찌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미신, 우상에 물들어 악령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선민(選民.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으로 택한 민족이라는 뜻)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온전히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애굽 여자인 아스낫과 혼인하게 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스낫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라는 두 아들을 낳고 이방인이었지만, 남편인 요셉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믿음을 같이했습니다.

    약 400년 후에 있었던 모세도 애굽 공주의 양자로 살면서 많은 애굽 문물을 습득했습니다. 그 후에 광야로 도망쳐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미디안의 사제 이드로의 일곱 딸 가운데 하나인 십보라와 혼인했습니다. 십보라도 마찬가지로 모세와 그 믿음을 같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가나안 땅 원주민의 딸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금기령을 내리신 이유는, 그들의 심지가 견고하지 못한 연유로 이방 여인들을 따르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 순종하고자 하는 착한 마음이 깃든 회개

    하나님이 에스라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여기심으로, 아닥사스다 왕을 성령으로 사로잡아 많은 재물과 함께 1,754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지키심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1차 귀환으로 먼저 와 있던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도 몰랐고, 하나님이 금하신 일들을 행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까지도 이방 여인들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이방 여인들과 왜 혼인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통해 성경은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지켜 살면 그 말씀이 너를 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쪽은 그 말씀을 지켜 살지 않으면 멸망하여 지옥으로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두 가지 “하라”와 “하지 말라” 뿐입니다.

    “하지 말라”하셨는데 했으니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원칙이고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움 받은 에스라는 죄를 짓지 않은 자였습니다. 지금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려는 죄는 이스라엘이 지은 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자기 백성의 죄를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죄 값으로 이스라엘이 또 다시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이 임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며 부르짖고 매달렸습니다.

    에스라가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면서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소망적인 것입니다. 에스라의 회개에 동참하는 회개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2절에서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 에스라를 어떻게 보내오셨는지, 그 에스라가 왜 그토록 애통하며 회개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저주받은 이방 여인들과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죄를 에스라를 통해 지적하시며 책망하시면서 서둘러 회개하기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오히려 그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회개만 이루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질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스가냐는 솔선하여 함께 살던 이방 여인을 그 자식과 함께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를 찾아가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하며 의욕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4. 진실성을 인정받는 회개

    하나님 마음에 드는 교회, 인정받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바른 목회를 하자고 애써오는 과정에서 야단도 치고 징계도 하지만, 온전한 회개와 변화가 없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스라는 총회를 열어 누구든지 3일 안에 다 모이도록 했고“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삼 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내리라(스 10:8)”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에스라에게 준 특권이었습니다. 에스라 7장 26절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찌니라”고 에스라에게 특권을 주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 일 안에 모두 모였고 에스라는 그들에게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스 10:10-11)고 명합니다. 입으로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여 진정한 회개의 진실성을 인정받아 그 죄를 온전히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영적인 소망을 가꾸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땐 그 죄를 정리하는 결단의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이들이 함께 살던 이방 여인들과 그 자식들을 돌려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죄악의 끈을 끊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12절에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고 힘써 이 일을 행하기로 답하고 석 달 동안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자들을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112명 중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저희를 돕더라”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에스라에게 주어진 특권대로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이것은 에스라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그를 보낸 아닥사스다 왕을 거역하는 것이고, 결국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의 회개 기도, 에스라가 주는 역사적 교훈(에스라 9:1~15)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역사는 되풀이되는데 이를 항상 예측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분명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에 지나간 역사 속에서 경험과 지식을 배워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그 죄가 죄를 낳기 때문에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출애굽 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 하였지만,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광야 생활 가운데 원망과 불평만 늘어놓았다가 그만 약속에 땅에 이르지도 못하였습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약속에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믿음의 2세대 즉 새롭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젊은 세대에게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재차 강조하면서 설교한 것이 신명기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아갈 때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신명기의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불순종했던 그들의 선조들처럼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7장에서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하고 일곱 족속을 쫓아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과 언약도 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3~4절 말씀에 보면,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이방 족속과 결혼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방 족속과의 결혼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서 떠나 이방 신들을 섬기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 있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족속과 결혼하였고 하나님께서 예언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결혼동맹으로 나라와 국방을 튼튼히 하였지만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으로 이방의 신들이 걷잡을 수 없이 들어왔던 것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1장 2~5절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하신 이방 족속과의 결혼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분명 솔로몬왕에게서 잘 찾게 된 것입니다. 이방 족속과의 결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의 의미와 함께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계명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주전 586년 나라는 바벨론에게 망하게 되었고 바벨론으로 606년부터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포로 70년이 지나면 다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십니다. 정확히 포로로 잡혀갔던 70년 만에 주전 536년에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에스라서는 포로귀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 1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서를 내리게 됩니다. 스룹바벨의 인도로 주전 536년에 1차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온 그들은 첫 번째 일로 허물어졌던 성전을 짓게 됩니다. 6장 13절 이하에서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되어 봉헌식과 유월절 절기를 지키게 됩니다.

    에스라서 7장과 8장에서는 2차로 에스라의 인도로 예루살렘에 귀환하게 됩니다. 1차 포로귀환 후 80년 만에 2차로 고국 땅으로 되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에스라 8장에서는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함께 에스라서 8장 31절 말씀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이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도우셨다고 에스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그것이 9장 1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1절의 ‘이 일 후에’라는 말은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 땅에 도착한 이후의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7장 9절에 보면 에스라 일행에 이스라엘 도착한 것은 5월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는 사건은 그해 9월 20일에 일어났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4개월을 넘지 않은 시점의 일이었습니다.

    9장 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라는 말을 통해 보면 이스라엘 지도자와 종교지도자 그리고 일반 백성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1절에서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그 가증한 일은 2절에 나와 있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라서에서 발견하던 죄악 된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방인들과 결혼하고 그들의 신을 따랐던 모습과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는 망하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약속의 땅에 돌아온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과거 이스라엘 선조들과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된 모습을 보고 에스라는 모든 백성을 모아놓고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하기를 작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에스라의 기도를 통해 진정한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첫째, 자신의 죄로 받아들이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방 족속과의 통혼을 듣고 에스라는 5절 말씀에 보면,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로 나갔던 것입니다.

    에스라의 기도의 특징 중에서 지난번 다니엘의 기도에서처럼 ‘우리’라는 단어가 무려 27번이나 나오게 됩니다. 이는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르게 되었지만, 그 죄를 자신의 죄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자복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했던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에서, 그리고 우상을 만들어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 했던 모세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했던 다니엘의 기도 모습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9장 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기도했던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위해,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땅, 이 나라와 민족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땅이며 함께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혈육 적인 가족을 넘어 함께 살아가야 할 백성들이기에 우리는 이 땅과 이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죄악이 넘치는 이 땅과 우상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난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과 이 백성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구체적으로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본문 6절부터 15절까지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구체적으로 회개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6절과 7절에서는 과거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죄악에 대해 회개하였습니다. 8절과 10절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한 것에 대해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사 아주 망하게 하지 않으시며 소수의 믿음의 남은 자를 남겨 두셨습니다. 또한, 종 노릇 가운데서도 소성하게 하여주셨으며 긍휼히 여기사 다시 회복해 주셨습니다. 또한, 폐허가 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고 살 수 있는 삶을 터전을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11절부터 15절까지에 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4절부터 15절에서는 에스라의 결단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14~15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에스라는 이처럼 회개하고 결단하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한 회개의 결단은 10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한 결과가 나옵니다. 그들은 통회 자복하고 이방 여인들을 되돌려 보내게 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오직 말씀을 붙잡고 회개할 뿐만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거둘 때만이 그것이 진정한 회개한 자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기도한 것에 결단이 되 따라야 하며, 그 결과를 통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기도하였습니다.

    에스라의 기도의 특징과 다른 믿음의 선조들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8절 말씀에 ‘은혜를 베푸사’ 그리고 9절 말씀에 ‘불쌍히 여김을 입고’ 두 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정치 종교지도자뿐만 아니라 일반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 죄악을 저지를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에스라서 마지막 절인 10장 44절의 ‘모두’라는 말에서 보듯이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죄밖에 지은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오직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고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죄로부터 의롭다 인정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긍휼과 사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 말씀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 때문에 긍휼하심을 받은 존재 되었습니다. 또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죄악 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오늘도 그 용서와 회복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모든 것은 이미 일컬어졌으나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조상들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들은 말씀을 힘써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다시 죄악 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힘써서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께는 영광이며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들임을 증거하는 우리가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에스라의 회개 기도(에스라 9:1~10)

    1. 서론

    예전에 ‘여배우들’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때 인기 있었던 여배우들 6명이 나와 솔직한 얘기를 나누는 영화였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우리가 EBS야? 항상 좋은 얘기만 하게?”

    보통 사람들 의식 속에 EBS는 교육방송이기 때문에 항상 좋은 얘기, 바른 소리만 전하는 방송입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좋은 말은 항상 하기는 어렵다. 진부하다. 지루하다 이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끼리 얘기를 하다가도 상대방이 바른 소리를 하면 “야야, 설교하지 마” 이렇게 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 나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듣기 싫습니다.

    2. 바른 소리를 하는 에스라

    오늘 본문 9장 1절과 2절에서 에스라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른 소리를 합니다. 그들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며, 그들의 딸의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이라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방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무조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신실한 부하 장수 중에서 우리야는 헷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 정탐꾼을 숨겨주었던 라합도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방인과의 결혼이, 그들이 섬기던 신, 즉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종교행위는 악하고 타락했습니다.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고, 불법적인 성행위가 만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사시대와, 왕정시대, 포로기를 지나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온 후에도, 가나안 족속들은 여전히 그 땅에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잊은 채 그들과 결혼해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성벽 재건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아름다우면 그냥 결혼하면 되고, 그들의 종교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서로 충돌하면, 적당히 타협해 나가면 될 뿐이었습니다. 바사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들이 보기에 자기들은 그럭저럭 살아갈 뿐 큰 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은지 오래 되었고, 신앙이 무기력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이 때 에스라가 그들에게 바른 소리, 쓴 소리를 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한 것은 큰 죄악이다. 이 죄악을 방백들과 두목들이 앞장서고 있다’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에게 바른 말을 한 에스라는 자신이 먼저 회개 기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2. 회개 기도하는 에스라

    에스라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는지 3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만 했는데, 백성의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이 죄에 으뜸이라는 사실은 그들 더욱 힘들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에스라가 비통한 심정으로 옷을 찢고 머리털을 뜯으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주변에 모여 들었습니다(4절). 그들은 함께 회개했습니다.

    5절부터는 에스라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 땅의 죄 많은 백성들을 죄를 담당하고 대신 죽은 것처럼 말입니다. 순교자 스데반 집사도 자기를 돌로 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죄를 지은 백성들이 먼저 회개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죄를 지적한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먼저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회개하던 에스라의 기도는 이제 소원을 말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로 바뀝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겨 보는 에스라

    8절부터 에스라의 기도는 여호와께서 그동안 베푸신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해 주셨고, 눈을 밝혀 주셨고, 소성케 해주신 것입니다. 또한 노예생활에서 건져 주셨고, 하나님 전을 세우게 하셨고,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울타리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다시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 기도의 연장선상에서 잠시 주님의 은혜를 돌아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은혜가 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주의 은혜를 또다시 잊고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면, 우리 자신도 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의 은혜를 망각할 때가 많고, 예전에 지었던 죄악을 반복할 때가 많습니다. 날마다 성화되고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4. 결론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적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저들은 왜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할까, 왜 변화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저들을 사랑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패역한 이스라엘은 우리 자신의 모습과 같습니다.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죄악의 유혹에 쉽게 넘어집니다. 죄를 범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죄책감을 갖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다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주님의 인애하심 덕분입니다.

    우리가 회복되는 길은, 에스라와 같이 회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내 잘못이든, 내 가족과 이웃의 잘못이든 내 죄로 여기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을 보면,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펴서 낭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백성들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의 죄악을 찌르는 성령의 검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반응은 회개와 순종과 회복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아멘.









    에스라 5장 요약 / 성전을 재건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였으며, 닷드내와 스갈보스내가 성전 짓는 것을 방해하지만 막지 못하였고, 다라오왕에게 성전 건축의 조사여부를 요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6장 요약 / 성전을 다시 세우다

    다라오왕이 고레스의 조서를 발견하였고 조서를 강 서편의 지도자들에게 내립니다.
    이는 성전건축을 방해하지 말라고 조서를 내린 것이며 다라오왕 6년째에 성전을 완성하였고 유월절을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7장 요약 / 에스라 일행이 돌아가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백성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게 됩니다.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내용, 아닥사스다왕이 강 서편의 관리에게 조서를 내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 장별연구(7장): 에스라의 귀환과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1-6장은 유다 백성들의 1차 포로 귀환
    7-10장은 2차 포로 귀환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7장은 2차 포로 귀환의 배경과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는 바벨론에 있던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나,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가 돌아온 목적은 그 땅의 형편을 살피고, 하나님과 왕의 명령에 따라 성전을 위하여 섬기고, 정의를 실현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근거는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기초하고 있다.
    그 조서에는 에스라의 귀환, 에스라에게 주어진 임무와 권한, 재정 지원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모든 일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에스라는 바로 그분을 송축하였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에스라의 귀환과 결심(1-10절)

    ​1-6장은 바사의 고레스와 다리오 왕 때 있었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때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였다.
    비록 그 중간에 대적들의 방해와 백성들의 나태함 때문에 성전 재건이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소임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7장부터는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주제도 ‘성전 재건’에서 ‘종교개혁’(혹은 ‘신앙 부흥 운동’)으로 바뀌고 있다. 그 일은 학사 에스라의 귀환으로 시작되었다. 앞선 1-6장이 하나님의 집에 대한 첫 번째 부분인 ‘성전 재건’을 다루고 있다면, 7-10장이 다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대한 두 번째 부분인 ‘거룩한 자손의 재건’이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였는가(7-8장),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형성하였는가(9-10장)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편 1-6장이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이루어진 1차 귀환 이후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7장부터는 2차 귀환 후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3차 귀환에 얽힌 사건은 느헤미야서에 소개되고 있다. 성전 재건 이후, 에스라는 모세 율법의 회복과 재정비, 이방인과의 통혼 금지 등을 주도하였다. 그에 비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 국가 살림 재정비 등 행정 부분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였다.

      바사 왕 ‘아닥사스다’(Artaxerxes)는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왕의 셋째 아들로, 부친을 암살한 아르파타나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아닥사스다 1세를 말한다(기원전 464-424년). 아닥사스다가 죽은 후에 페르시아 제국은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느헤미야는 그의 술 관원으로 섬겼으며(느 1:1;2:1), 말라기 선지자는 그의 통치 말기에 활동하였다. 그가 통치할 때 에스라가 있었다(1절). 그는 스라야의 아들로,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후손이다. 그의 족보(상향식으로 제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1-5절). 에스라-스라야-아사랴-힐기야-살룸-사독-아히둡-아마랴-아사랴-므라욧-스라히야-웃시엘-북기-아비수아-비느하스-엘르아살-아론. 여기에서 소개된 족보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대상 6:3-15 참조). 마태복음 1장에서 소개한 예수님의 족보가 그분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점에 강조점을 두었듯이, 에스라의 족보도 그가 아론의 직계 후손인 스라야의 직계로서 대제사장의 혈통임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자세한 인물 정보는 아래 표 참조)

    인물

            소 개

    스라야

    바벨론에 끌려갔던 여호사닥의 아버지이다(대상 6:14-15). 그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할 당시 대제사장이었고,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 하맛 땅 립나에서 죽임을 당하였다(왕하 25:18-21). 따라서 에스라와 스라야 사이에는 130년의 간격이 있고, 그 사이에는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므로 ‘스라야의 아들’에서 ‘아들’은 문자적 의미의 아들(son)이 아니라 자손(descendant)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라야가 에스라의 아버지가 아님에도 그 족보의 맨 처음에 놓은 이유는, 그가 바벨론 포로 전에 예루살렘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대상 6:14). 포로기 이후에는 대제사장의 사역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본서 기자는 스라야부터 에스라 사이에 있는 서너 세대를 생략하여 에스라가 여호사닥의 직계로서 대제사장의 혈통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아사랴

    스라야의 아버지이다(대상 6:13).

    힐기야

    아사랴의 아버지로, 유다 왕 요시야 때 성전을 정화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던 대제사장이다(왕하 22:4-14;대하 34:14-22). 이 사건으로 요시야 왕 때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살룸

    힐기야의 아버지이다(대상 6:12-13). 므슬람과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대상 9:11).

    사독

    살룸의 아버지로(대상 6:12), 다윗과 솔로몬 당대에 활약하였던 대제사장 사독과는 다른 인물이다.

    아히둡

    사독의 아버지이다(대상 6:8).

    아마랴

    아히둡의 아버지이다(대상 6:11).

    아사랴

    솔로몬 시대에 활약한 대제사장 사독의 4대손으로, 솔로몬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활동하였다(대상 6:8-10).

    므라욧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의 조상이다. 따라서 므라욧과 아사랴는 부자 관계가 아니다. 그 사이에는 6명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다(대상 6:6-11).

    스라히야

    므라욧의 아버지이다(대상 6:6,51).

    웃시엘

    스라히야의 아버지로, ‘웃시’로도 불린다(대상 6:6,51).

    북기

    웃시엘의 아버지이다(대상 6:5,51).

    아비수아

    북기의 아버지이다(대상 6:5).

    비느하스

    아비수아의 아버지이다(대상 6:4).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동편 싯딤에서 거짓 선지자 발람의 꾀에 빠져 바알브올을 숭배하고 이방인들과 정을 통하였을 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으로 그 사태를 진정시켰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대제사장의 직분을 약속받았다(민 25:7-13). 미디안과의 전투에 최선봉에 섰고, 가나안 정복 때 동쪽 지파들이 세운 제단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훌륭하게 중재하여 동서 지파들 사이의 분쟁을 방지하였다(민 31:6;수 22:10-14).

    엘르아살

    비느하스의 아버지이다. 아론의 네 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형인 나답과 아비후가 잘못된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진노를 받아 아들 없이 죽임을 당하자,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다(레 10:1-2;민 20:25-28).

    아론

    레위 지파 출신으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이다(레 6:20-22). 아므람과 요게벳의 맏아들이고, 모세의 형이자 누이 미리암의 동생이다(출 6:20;7:7;민 26:69). 하나님은 말이 능숙하지 못하다는 모세의 변명에 아론을 그의 대변인으로 세우셨다(출 4:14-16). 역대상 6장의 족보가 레위로 끝나는 데 비해, 에스라의 족보가 아론으로 끝을 맺은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가계의 흐름도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에스라가 바로 대제사장 아론의 직계 자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6절). ‘이 에스라’는 ‘바로 그 에스라’라는 뜻이다. 이는 앞서 제시된 족보를 통하여 그가 제사장 가문에 속한 탁월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뒤에 이어질 어떤 중대한 일의 중심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이다. 족보가 그의 출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6절 후반부는 그의 인물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익숙한’은 ‘어떠한 일에 능숙하고 준비되어서 아주 신속하고 정확하게 시행하는 사실’을 묘사하는 단어로서, ‘정통한, 능통한’(NIV, well versed), ‘숙련된’(NASB, skilled), ‘준비된’(KJV, ready) 등과 같은 뜻이다(잠 22:29;사 16:5). ‘학자’는 ‘서기관’(왕하 25:19;렘 36:26), ‘서기’(왕하 12:10)를 말하는데, 이 단어는 원래 ‘국가의 서기관’(state secretary, 삼하 20:25)이나 ‘왕의 개인 서기관’(royal private secretary, 삼하 8:17;왕하 22:3-13)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요시야, 여호야김 등 때에 서기관은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삼하 8:17;20:25;왕상 4:3;사 36;1-3;왕하 22:3;렘 36;20-21). 둘째, 그는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왕에게 구하는 것을 모두 받는 사람이었다.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을 의지하였다는 전제가 암시되어 있다. 또 왕에게 구하는 것을 모두 받았다는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돕기도 하셨지만, 그의 행실 또한 왕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데 따른 결과였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출발하여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7-9절). 만 4개월이 걸렸다. 그와 함께 올라온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뒤에 나열된 사람들처럼 특정직에 속하지 않은 일반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그들 중에 1차 귀환 때처럼 북쪽 지파 사람들이 포함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은 성전에서 각각 그런 일을 담당하였던 레위 지파 사람들이다(2:41-42). ‘느디님 사람들’은 원래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출신이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와서 비천한 일에 종사하였던 이들이다(2:43). 바벨론을 떠난 에스라와 그 일행이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그들을 도우셨기 때문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직선으로 800km에 이르는 먼 거리이다. 또한, 그 여정이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가장 더울 때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마 그들은 사막을 피하기 위해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북쪽 수리아로 이동하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였을 것이다. 그 길은 잘 닦여져 있었지만, 강도나 대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하였다(8:22). 그래서 에스라는 이러한 위험을 내다보고 왕에게 자신들을 보호해 줄 보병과 기병을 요청하려고도 하였지만, 차마 그 말만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였다. 대신에 그는 일행들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은 선한 손으로 그들을 도우셨고, 그들은 평탄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8:21-23).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는 세 가지를 결심하였다(10절). 첫째,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한다. 둘째, 연구한 율법대로 준행한다. 셋째, 연구하고 준행한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친다. ‘연구하다’는 말은 ‘조사하다’, ‘찾다’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을 가리킨다(벧전 1:10-11, Rawlinson). ‘준행하다’는 말은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창 6:22;신 5:27;23:23). 율법 연구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불순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부류의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인데,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신랄히 비판하셨다(눅 12:1). ‘율례와 규례’는 외형상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단어가 항상 동시에 또는 교대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거의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단어들은 ‘율법’의 보다 본질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데, ‘율례’는 율법의 기초적인 규정들에, ‘규례’는 보다 구체적인 용례들에 각각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Joseph Blenkinsopp). 세 가지 결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가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는 목적도 최종적으로 이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에스라가 이 같은 결심을 한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목적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은 그 목적을 왕에게 알리셨고, 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려 예루살렘에서 그 목적을 이루도록 명하였다(7:11-28). 그러므로 그의 결심은 주관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과 왕,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객관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질문] 에스라의 족보에 나타난 특징들은 무엇인가?

    첫째, 아론에서부터 에스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사장을 싣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마태복음 1장에서 소개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그분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듯이, 에스라의 족보도 그가 아론의 직계 후손인 스라야의 직계로서 대제사장 혈통임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에스라부터 스라야 사이에 있는 서너 명이 생략되어 있고(이들이 누구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아사랴와 므라욧 사이에도 여섯 사람이 생략되어 있다. 이는 그들이 소개된 사람들과 비교할 때 부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영향력 측면에서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배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시간의 역순에 따라 상향식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사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에서 취하고 있다(3장). 저자는 이런 방식을 통해 수신자인 로마의 고위 관리로 추정되는 데오빌로의 이해를 배려하였고, 더 나아가 유대 공동체 밖에 있는 모든 이방인의 이해도 배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마태복음에서는 하향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는 유대인으로 구성된 마태 공동체의 유대 전통을 감안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에스라의 족보는 유대 전통의 주관성보다 유다 밖의 객관성을 더욱 의미 있게 보았던 것 같다.

      셋째, 아론이 족보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론의 위로는 아므람, 고핫, 그리고 레위가 있다. 특히 ‘레위’는 이스라엘의 지파를 가르는 기준점이 되는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스라의 족보를 레위까지 제시할 수도 있었지만, 그를 비롯하여 아론 이전의 사람들은 대제사장 제도가 생기기 전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본문에 제시된 족보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저자는 에스라의 족보를 아론까지만 제시함으로써, 족보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2.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내용(11-26절)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초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11절). 따라서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에스라는 여호와의 계명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에 관한 학자이자 제사장이었다. ‘학자’는 율법을 연구, 해석, 필사, 가르치는 ‘서기관’을 말한다. 그래서 KJV, RSV, NASB 등은 ‘scribe’로, NIV는 ‘teacher’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학자’는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 부여된 이름이고, ‘제사장’은 에스라의 유대인 직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계명’은 ‘명령’, ‘주장’ 등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는 율법의 말씀들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성문법으로서의 ‘율례’나 불문법으로서의 ‘규례’와 같은 법령의 의미보다는 백성들이 실제 이행해야 하는 법령의 구체적인 실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사실 중 하나가 단지 성전 재건 자체에만 있지 않고 그분의 명령에 대한 구체적인 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아닥사스다 왕이 율법에 완전한(완벽한)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명령을 담고 있었다. (1) 에스라와 유다 백성들을 이끌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라(13절), (2) 그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라(14절), (3) 성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가라(15-20절), (4)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의 모든 창고지기는 에스라가 요청하는 것을 신속히 도우라(21-24절), (5) 에스라는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재판하고(다스리고) 가르치라(25-26절).

      조서의 첫 번째 내용은, 바사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제사장들과 레위인들 포함) 가운데 뜻이 있는 자들은 누구든지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강압이 아닌 자원과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와 같은 원칙은 1차 포로 귀환을 허락한 고레스 칙령에도 적용되었다. 그때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올라갔다(1:5). 하지만 당시에 올라가지 않았던 이들도 많이 있었다. 한편 귀환 대상자들을 언급하는 과정에 나오는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에스라서에 총 36회 사용되었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객관적인 용어로 모두 6회 사용되었다(2:2,70;3:11;7:13;9;1;10:1). 그 외에는 대부분 언약 백성으로서의 신앙적, 혈통적인 동질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반면에 본서에 총 22회 사용된 ‘유다’는, 백성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단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고(4:4), 대부분 바사 제국에서 다스리는 속국의 한 지방으로서의 지역적, 지리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본서가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고, 하나님이 처음 선택한 열두 지파의 총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해 준다.

      두 번째 내용에는, 왕과 일곱 자문관이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낸 이유가 들어 있다(14절). ‘일곱 자문관’은 왕의 측근에서 국정 전반에 관하여 자문과 조언을 하는 일종의 ‘왕실 자문 기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왕실에서 가장 신뢰받는 자문관들로, 그들에게는 왕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들에 대해 에스더서(1:14)에서는 “왕에게 가까이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으로 묘사하고 있다. 왕과 일곱 자문관이 에스라를 보낸 목적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고, 살핌의 기준은 에스라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이었다. 이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그 율법에 어긋난 이들을 벌하거나 가르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 왕이 에스라를 보낸 일차적인 목적이 종교적 성격을 띠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짐작하건대, 에스라는 유다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어긋난 삶을 살거나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가 모세 율법에 어긋나 있다는 소식 등을 들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에스라는 왕에게 예루살렘행을 요청하였고, 왕은 그의 요청에 흔쾌히 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왕이 에스라를 보낸 데에는 정치적 성격의 이차적인 목적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아닥사스다 1세는 왕이 된 이후 곧바로 10년 동안 이집트에서 일어난 커다란 반란에 직면하였다. 이 반란은 이나로스(Inaros)와 아미르테우스(Amyrtaeus)가 주도하였다. 삼각주 지역의 지배권을 차지하고 있던 그들은, 파프레미스(Papremis)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크게 물리치고 아닥사스다 1세의 삼촌이자 그 지역 총독이었던 아케메네스의 시체를 페르시아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정부군은 여전히 멤피스와 이집트 상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집트 남부에 있는 와디 함마마트와 홍해를 통해 본국과 연락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테네인들이 이끄는 헬라의 델로스 동맹군도 지중해 서쪽 지역에 대한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이나로스와 힘을 합쳤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아닥사스다에게 인근 지역의 민족들과 더욱 긴밀하게 우호 관계를 다지는 계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만약 그들과의 우호에 금이라도 간다면 이집트의 반란은 인접한 다른 민족들에게도 반란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고, 또 향후 페르시아가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머나먼 원정길에 오를 때에도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므로 그들과의 우호를 더욱 깊게 다지는 정책은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민족들 가운데는 베니게, 수리아, 팔레스타인에 있는 여러 민족 등이 속해 있었다.

      세 번째 내용에는, 왕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에스라를 보낼 때 그가 가져갈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성전의 필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들로, 다음과 같다. (1) 왕과 자문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린 은금(15절), (2) 바벨론 온 지방(도)에서 얻은 은금(16a절), (3)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16b절). (4) 왕이 에스라에게 준 그릇들(19절), (5) 궁중 창고에서 성전에 쓰일 곳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20절).

      왕과 자문관들이 하나님께 은금을 성심으로 드렸다는 것은, 왕이 에스라의 귀환을 명령한 직접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왕은 하나님을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고백함으로써 그분의 실재와 정체성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왕은 이러한 인식 아래 에스라를 환대하여 보냈는데, 이는 그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그분의 축복을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그 목적 이면에는 정치적인 이해도 맞물려 있었을 수도 있다. 즉 정복 지역의 신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줌으로써 정복지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제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성심으로’는 ‘자원하여’, ‘자발적으로’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성경은 이 단어를 ‘기쁜 마음으로’로, NIV와 KJV은 ‘freely’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왕과 자문관들이 하나님께 은금을 드릴 때의 기본 동기는 후자보다는 전자의 색채가 더욱 강하였다는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짐작은 23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왕의 마음(두려움), 즉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는 고백을 고려할 때 더욱 신빙성을 담보하고 있다. 왕과 자문관들이 성심으로 드린 은금 이외에도, 바벨론의 모든 지방에서 얻은 모든 은금,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린 예물도 에스라에게 주어졌다(16절). 바벨론의 모든 지방에서 얻은 모든 은금은 정황상 고레스 왕 때에 있었던 1차 귀환 때와 유사하게 자발적으로 주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1:4,6). 백성과 제사장들도 1차 귀환 때와 마찬가지로 기쁘게 예물을 드렸다(2:68).

      왕은 에스라에게 주어진 은금과 예물의 사용처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17-18절). 첫째, 그 돈으로 제물과 물품을 신속하게 사서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라. 그 가운데 제물은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을, 물품은 소제와 전제를 드릴 때 필요한 것들을 사라. ‘신속히’는 문자적으로 ‘정확하게’라는 뜻으로, 그 돈을 틀림없이 지정된 목적에 사용하고 그 외의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소제’(素祭, grain offering)는 구약의 5대 제사 가운데 하나로, 곡물로 드리는 제사이다. 성결한 생애를 하나님께 약속하는 표시로 정한 밀가루와 기름과 유향을 불로 태우고 떡을 구워 놓고 드렸다(레 7:12-13). 번제가 헌신을 의미한다면, 소제는 노동(일)의 결과물을 드린다는 점에서 행위의 성별을 상징하였다(시 20:3). ‘전제’(奠祭, drink offering)는 포도주나 독주를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 드리는 제사이다(출 29:40-41;민 15:5). 단독으로 드려질 수 없고, 항상 다른 제사에 곁들여 드려졌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헌신적인 봉사, 주를 위해 생명까지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거룩한 희생을 상징한다. 개역한글성경에서는 ‘관제’(灌祭)로 표현하기도 하였다(빌 2:17;딤후 4:6). 왕이 이처럼 제사의 종류와 제물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점은, 에스라가 왕에게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그 정보를 알려 주었거나 왕궁에서 일하는 익명의 유대인이 그 정보를 알려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둘째,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네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라. 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너와 네 형제인 제사장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대로 사용하라’는 뜻이다.

      에스라에게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할 때 사용될 그릇들도 주어졌다(19절). 그 그릇들은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가져왔던 것을 가리키는 것 같지 않다. 그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고레스 왕에 의해 반환되었다(1:7-11). 그때 반환되지 않고 남아 있던 그릇들일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왕과 귀환하지 않은 유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새롭게 마련해 준 것들로 보는 편이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 밖에도 왕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써야 할 것이 더 있다면 궁중 창고에서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20절). ‘궁중 창고’는 일종의 왕실 창고(NASB, NIV, the royal treasury)로, 왕실의 사유 재산을 보관하는 곳간을 가리킨다. 그것이 ‘강 서편에서 징수되는 세금을 보관하는 금고 또는 그 관리 기관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다.

      왕의 조서에 담긴 네 번째 내용에는,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방의 모든 창고지기에게 내린 명령이 담겨 있다(21-24절). ‘창고지기’는 바벨론에서 유다로 향하는 에스라가 거쳐 가게 될 지역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재정 관리들을 말한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을 용도에 따라서 출납하거나 왕실에 상납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왕은 그들에게 율법의 서기관이자 제사장인 에스라가 요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도록 명령하였다. 왕은 에스라가 구하는 것에 대하여 은은 100달란트까지, 밀은 100고르까지, 포도주와 기름은 각각 100밧까지 제한하였지만(소금은 무제한), 그 수량은 놀랄 만큼 많았다. ‘은 100달란트’는 현재 시세로 25억 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1달란트는 34kg, 1kg은 35.27온스, 1온스는 17.2달러, 1달러는 1,203원, 19.10.02. 기준). ‘고르’는 10밧에 해당하고(겔 45:17), 1고르는 230리터 정도이다. ‘은’은 희생 제물을 구입하는 데 필요하고, ‘밀’과 ‘포도주’는 소제와 전제를 드리기 위해서 각각 필요하였다. 또 ‘소금’은 소제와 전제의 제물에 뿌려질 용도로 필요하였다(겔 43:24). 23절에는 왕이 모든 창고지기에게 그와 같이 명령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첫째는, 그것을 통해 에스라가 성전을 위하여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삼가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삼가’는 ‘집중해서’, ‘부지런히’, ‘열의를 가지고’라는 뜻이다. 이는 원래 고대 셈족어에서 전쟁터에서 적이나 목표물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둘째는, 그것을 통해 바사 왕과 그의 나라에 영원토록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어 왕과 바사 제국에 재앙이 임하기 때문에, 신속히, 그리고 철저하게 이행하도록 명한 것이다. 왕의 이런 인식을 통해 그의 신앙이 전적으로 미신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진노를 내리셨는데, 그러한 진노는 이방 나라들도 피해 가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역사적 배경에 근거해서 아닥사스다 왕도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 두려움은 자신과 자신의 왕국의 안녕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2차 귀환과 귀환 후의 일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모든 창고지기에게 이어진 왕의 명령에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은 성직자들을 비롯하여 성전 봉사자들에게 조공, 관세, 통행세 등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24절). 이는 구약의 율법과도 일치하는 것이지만, 당시 페르시아를 포함한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는 신전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심지어 다리오 왕의 가다타스(Gadatas) 비문에는 아폴로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세금을 받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문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한편 면세 대상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여섯 부류로 분류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앞에 소개되고 있는 다섯 부류의 사람들, 즉 제사장들, 레위인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은 앞서 2장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2:36-54). 그에 비해 마지막에 소개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 절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아마도 성전에서 육체노동을 하였던 사람들로, ‘느디님 사람’보다 신분이 더 낮았던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로 추정된다(2:55).

      조서에 담긴 마지막 내용에는, 왕이 에스라에게 부여한 두 가지의 권한과 사명이 소개되고 있다(25-26절). 첫째 사명은, 모든 백성에게 공의를 펴기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이를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재판하게 하는 일이었다. ‘법관’은 ‘공의를 시행하다’, ‘재판하다’는 뜻을 가진 아람어 ‘쉐파트’에서 파생된 단어로, 개역한글성경에서는 ‘유사’(有司, official, ruler)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유사’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행정이나 군사적인 능력을 갖춘) 장관, 관리, 서기관(대상 23:4;27:1), (2) 백성을 지도하는 지도자, 감독자(렘 29:26), (3) 족장과 집안의 우두머리(출 22:28). NIV와 KJV은 ‘법관’을 ‘magistrates’(치안 판사)로 번역하여, 뒤에 나오는 ‘judges’(재판관)와 구분하고 있다. 한편 페르시아 제국에서 행해진 두 가지의 사법 활동을 통하여 법관과 재판관을 구분하기도 한다. 즉 당시 페르시아에는 일반 관례법에 따라 시민들 상호 간의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는 ‘사회 법정’과 국가나 정부의 이해와 관련된 사건을 맡은 ‘왕궁 법정’이 있었는데, 이에 근거해서 ‘법관’은 종교나 사회 문제 등에 관한 관습법을 다루는 사람이고, ‘재판관’은 왕에 관한 정치 문제를 취급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런 견해는 이어지는 26절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구분하여 명시하였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더하고 있다. 만약 이와 같은 견해를 따른다면, 왕은 에스라에게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이스라엘 내부의 종교 문제와 백성들의 일반 소송 문제뿐만 아니라, 왕과 정부에 관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명까지 부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스라에게 주어진 둘째 사명은,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왕이 에스라에게 이와 같은 두 가지 사명을 주었다는 것은, 역으로 이스라엘 내부에 이 두 문제와 함께 앞서 제시한 성전 제사와 관련된 문제들이 동시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왕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고, 그에 맞춰서 사형, 귀양, 가산 몰수, 옥살이 등의 형벌을 내리도록 지시하였다(26절).

    [질문]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들어 있는 내용상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왕이 에스라에게 부여한 권한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에스라의 귀환을 허락한 왕은, 그를 그냥 보내지 않고 조서 속에 그에게 부여된 권한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왕이 그에게 부여한 권한은 다음과 같다. (1) 유다에 정착한 백성들의 상황 감찰 권한(14절), (2) 주어진 은금과 예물을 용도에 맞게 분배, 사용할 수 있는 권한(15-20절), (3) 창고지기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수 있는 권한(21-23절), (4) 종교, 사법, 교육에 대한 전적인 권한(25-26절). 만약 에스라가 이러한 권한이 명기된 왕의 조서 없이 귀환하였다면, 그가 비록 율법에 익숙한 학자이자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그의 권위를 쉽게 인정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 백성들은 이미 이방 문화에 상당히 깊이 동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의 권한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왕의 조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아닥사스다 왕의 인식과 태도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비록 이방 나라 페르시아의 왕이었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 그리고 성전과 제사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아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분께 순종하여 그분의 뜻과 일이 이루어지도록 전심으로 도왔다. 그 배경에는 제국의 안정을 바라는 정치적인 목적, 자신과 자기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기복적인 신앙 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의 순수성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셋째, 조서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닥사스다 왕이 모든 일을 주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진하게 묻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에스라가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는 내용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27-28절). 그는 (1) 하나님이 왕의 마음에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고, (2) 하나님이 자신에게 왕으로부터 은혜를 얻게 하셨고, (3) 또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신이 힘을 얻어 백성들과 함께 올라오게 하셨다고 찬양하였다.

    3. 에스라의 송축(27-28절)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대한 에스라의 반응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향한 송축으로 채워져 있다. ‘송축하다’는 ‘축복을 받으소서’(KJV, Blessed be), ‘찬양하다’(NIV, Praise be)는 뜻이다. 에스라는 그분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소개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강조함과 동시에 포로 귀환이나 성전 재건과 관련된 상황 등이 모두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천명하고 있다.

      에스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님을 송축하였다. 첫째 이유는, 하나님이 왕의 마음에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기 때문이다. 이는 아닥사스다 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2차 귀환 명령이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에 대해 잠언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이유는 성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에스라를 왕과 보좌관들과 모든 방백 앞에서 은혜를 얻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은혜’(헤세드)는 주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변함 없는 사랑과 자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은혜가 에스라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이방 나라의 왕과 관리들의 마음을 만지셨다. 마지막 이유는, 에스라 위에 있었던 하나님의 손으로 인해 그가 힘을 얻고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모아 함께 올라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선 두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손이 왕(보좌관들, 방백 포함)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에스라는 수많은 권한과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을 수행할 에스라가 동기가 없거나 마음이 약해져 버리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세 번째 이유는 매우 중요하다. 동기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에스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은 그 본질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주어지지 않으면 혼자 일어설 수 없다. 심지어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단언까지 하셨다(요 15:5).

    [질문]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서, 에스라가 소유하고 있었던 신앙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첫째,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기초한 신앙이라는 점이다. 허구에 기초한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다. ‘미신’은 역사적,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미신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그에 반해 ‘참된 신앙’은 그 뿌리가 실재에 있고, 그 실재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드러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에스라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실재하실 뿐 아니라 그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분으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 귀환과 은혜(재정적 지원)가 주어졌다고 송축할 수 있었다.

      둘째, 경험적인 신앙이라는 점이다. 이는 앞선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에, 그 역사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에스라는 그때 그 장소에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였다. 그는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그분의 손을 경험하였고, 그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도 경험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에게 힘을 주시고,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였다.

      셋째, 겸손한 신앙이라는 점이다. ‘겸손’은 자기 정체성을 가감 없이 명확히 인식할 때 그러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 그에 반하여 ‘교만’은 자기기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어사전은 교만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이러한 정의 이면에는 잘난 체할 뿐 정작 잘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들어 있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났다고 뽐내기 때문에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주인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교만이 죄가 되는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이나 그 반대의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에스라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로 간절히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8:21-23). 그 결과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 위에 있었고, 그로 인해 그는 다시 힘을 얻어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II. 메시지 / 에스라의 결심(7:6-10)

    1. 에스라의 귀환 배경

    ​1-6장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 즉 1차 포로 귀환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때 스룹바벨의 주도로 올라온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2차 성전을 지었습니다. 7-10장은 2차 귀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차 귀환을 주도한 사람은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였는데,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과 도움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에스라의 귀환을 허락한 왕의 조서에 보면 그가 돌아오게 된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은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임무를 맡겼습니다. 첫째,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라(14절). 둘째, 하나님의 전(성전)을 위하여 (제사로) 섬기라(17-20절). 셋째,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가르치라(25절).

      에스라에게 이와 같은 임무를 맡겨졌다는 것은, 역으로 당시 그곳에 그와 같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소홀히 하였고, 그나마 드리는 제사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도를 정확하게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법관과 재판관으로 세워졌고, 그들에 의해 공정한 재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왜 벌어졌을까요? 백성과 지도자들(특히 종교와 사법 분야)이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은 그곳의 형편을 살펴서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다음과 같이 결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겠다”(10절). 오늘 우리는 에스라가 결심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에스라의 결심 세 가지

    ​1)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기

    에스라가 결심한 첫 번째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는 먼저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기본적으로 ‘모세 오경’을 가리킵니다(6절).
    하지만 그는 이것뿐만 아니라 ‘시가서’를 비롯하여, 에스라 이전에 쓰여진 ‘역사서’와 ‘예언서’ 일부까지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구하다’는 말은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을 완전하게 얻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6절).
    여기에서 ‘익숙하다’는 말은 ‘숙련되다’(RSV, NASB, skilled), ‘박식하다’(NEB, learned), ‘정통하다’(NIV, well versed)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익숙함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연구를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에스라와 비교할 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많은 경우, 그보다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데 얼마나 게으른지 모릅니다.
    연구는커녕 읽는 것도 소홀히 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런 태도에서 돌이켜 에스라처럼 연구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연구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에스라가 결심한 그다음 내용인, 준행하고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그런데 우리는 이 명령에 제대로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순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명령의 전제가 되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과 ‘여호와의 율법’이 다른가요?
    아닙니다.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과 단절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단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완전하게 하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온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말씀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거짓이고 자기기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를 받은 사람이, 그 편지를 소홀히 다룰 수 있을까요?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고, 또 그가 당부하는 말도 열심히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있지 않다면, 먼저 이 문제부터 자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연구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척도가 낮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날마다 시간을 정해 놓고 말씀을 읽고 상고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성경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2) 준행하기

    에스라가 결심한 두 번째 내용이 무엇입니까?
    연구한 말씀의 내용대로 준행하는 것입니다.
    ‘준행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그 율법대로 실천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에게도 축복이 되기 때문에, 그 율법을 통해 우리의 실천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한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 준행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14,17-22).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 앞에서 비치는 빛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그 모습이 우리의 이웃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가 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준행이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입니다.

    3) 가르치기

    ​에스라가 결심한 마지막 내용은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당시 그곳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게 한 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았을 것이고, 그분이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도 제대로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재판관들이 사회 정의를 왜곡시켰던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가르치되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일까요?
    그것에 대한 정답을 사도 바울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만나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행 20:18-20, 34-35).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언제 어디서나 거리낌 없이 그들에게 전하여 가르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범사에(항상) ‘모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장로들은 그 모든 모습을 보았고 또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위대하고, 그래서 그를 통해 교회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들은 교육에 있어 모본의 파괴력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모본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3.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도록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백성들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도 그와 똑같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결심하는 것은 정말 잘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면 실패에 대한 실망으로 자괴감에 빠지기 때문에 이전보다 못한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결심한 것을 주님과 함께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은 내가 결심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도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성경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이루시는 분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5).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시 145:16).

    우리의 결심이 작심삼일에서 벗어나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에스라의 결심이 우리 모두의 결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모두 주님 안에 거하면서 그 결심에 많은 열매가 맺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5월 26일(월) 에스라 5-7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에스라의 행적(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For Ezra had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and observance of the Law of the LORD, and to teaching its decrees and laws in Israel.

    에스라의 행적(行跡)에서 세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행적(行跡)이란 한자는 다닐 행(行)과 발자취 적(跡) 또는 쌓을 적(積)이란 문자로 "평생동안 한 일이나 업적"을 말합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에스라의 헌신에서 세 가지 과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스라의 개혁 운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간 후 70년 동안의 종살이를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귀환 후
    그들의 신앙과 율법 준수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과 통혼하며 범죄하는 모습을 보고 단호한 개혁을 시행하였다.
    그의 개혁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백성들의 죄를 대신 통회 자복하고 백성들이 회개의 역사를 끝마칠 때까지 금식하며 이방 여인들을 단호이 끊어버리는 등 신앙의 개혁을 통한 몇 가지 교훈을 제공합니다.
    에스라의 개혁은
    1. 율법 준수 운동
    2. 인습배제운동
    3. 혼합주의 금지 운동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과 동화되어 신앙적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첫째, 연구(硏究)하는 자세(Study)


    1875. 다라쉬( dârash) דָּרַשׁ

    1. 문지르다.  2. 어떤 장소를 가다. 3. 구하다


    그때는 구약 성경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구약의 율법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주 익숙한 학사가 되고, 완전한 학사가 되었습니다.
    율법에 관한 한 그 누구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성경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말입니다.
    남을 뜯어고치겠다고 하기 전에 에스라는 자기 개혁을 먼저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자신을 먼저 개혁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철저히 공부했습니다.

    둘째,  준수(遵守)하는 자세(observance)

    6213. 아사( ʽâsâh) עָשָׂה

    1. 노동하다.  2. 만들다. 3. 생산하다

    지키지 않는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에스라는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개혁자는 자신이 먼저 법을 지켜야 합니다.

    셋째, 교육(敎育)하는 자세(Teaching)
     

    3925. 라마드( lâmad)  לָמַד   

    1. 응징하다.  2. 훈련받다. 3. 렘 10:2.

    예레미야 10:2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그럴 때에 사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백성을 깨우치고 법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율법을 가르치고 나 자신이 지키면서 이방 혼인한 사람들을 전부 정리하고 사회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즉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개혁을 하였습니다.
    개혁이 그들을 살아남게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이 먼저 바뀌고 새로워지는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사회와 나라가 개혁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잘 될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믿음의 뿌리가 깊은 사람입니다.
    포로 생활의 쓰라린 고난도 뿌리깊은 신앙을 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수한 역경 중에서도 믿음은 더욱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도움은 부분적이요,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전체적이요,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자가 승리합니다.
    그런가하면 에스라는 철저히 개혁하는 개혁자였습니다.
    먼저 자신을 개혁하고 사회를 개혁하고 종교계를 개혁했습니다.
    그래서 선민은 혼탁한 와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오늘날에 개혁만이 살길입니다.
    에스라의 삶을 본받아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도의 교육자 케리여사의 현대인은 세 가지의 정신적 죄악

    첫째, 모르면서 배우려 하지 않는 것
    둘째, 알면서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것
    셋째, 할 수 있으면서 하려고 하지 않는 것

    * 자료출처 / 안병욱 전집 좌우명 365일중에서


    준수(遵守) : 좇을 준(遵), 지킬 수(守)

    1. 전례(前例)나 규칙(規則), 명령(命令) 따위를 그대로 좇아서 지킴.


    불치하문(不恥下問)의 뜻

    불치하문(不恥下問)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지위나 연령에 관계없이 지식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겸손한 태도와 끝없는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 겉뜻: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속뜻: 지위나 나이에 상관없이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음.



    공자는 불치하문(不恥下問) 즉 자기보다도 아랫 사람에게 묻는다 해도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알면 남에게 가르쳐야 한다.
    앞선 사람은 뒤진 사람을 가르쳐야 그것이 먼저 안 사람의 의무여, 책임이다.
    알면서 가르치지 않고 나만 혼자 알고 있는 것은 지식의 이기주의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큰 죄악이다.
    그것은 행동에 있어서 무책임한 사람이요, 방관하는 사람이며, 정의와 정열이 없는 사람이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는 것이지만 안 하는 것은 태만이요, 책임의 포기인 것이다






    에스라(Esra)의 의미, 성장 배경, 성격 및 역사적 의미

    1. 에스라(Esra)의 이름 뜻

    에스라는 히브리어로 "도움을 받은 자" 혹은 "야훼가 돕는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히브리어 원어는 ‘עֶזְרָא’(Ezra)이며, 이는 ‘에제르’(עֵזֶר, ezer)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돕다" 혹은 "지원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성경에서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대 민족의 신앙 회복과 율법 준수를 강조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종교적 개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그들의 신앙과 생활을 정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 에스라의 성장 배경과 성격
    1) 성장 배경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기(BC 597~538년) 동안 태어난 유대인 학자이자 서기관이었다.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 계열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대 민족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끌려간 상태였으며, 이들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성장하면서 유대 율법을 깊이 연구했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갖추었으며, 유대 율법과 전통을 보존하는 데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페르시아 시대에 그는 왕궁에서도 인정받는 학자가 되었으며, 후에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BC 465~424년)의 허락을 받아 유대로 돌아가 신앙개혁을 주도하게 된다.

    2) 성격
    에스라는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종교적 개혁에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성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경건함: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깊이 연구하며, 이를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② 지도력: 바벨론에서 유대로 귀환한 유대인들이 신앙적으로 무너져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다시 신앙 공동체로 조직하고 율법을 강조하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③ 결단력: 유대 민족이 이방인들과 혼합된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며, 신앙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단호한 개혁을 진행했다.
    ④ 겸손함: 그는 지도자로서 백성을 훈계하고 가르쳤지만, 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3. 가족관계
    에스라는 제사장 계열로,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었다.

    성경에서 그의 부모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의 족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에스라는 사라야의 아들로 기록되며(에스라 7:1), 사라야는 바벨론 침공 당시 대제사장이었다.
    • 사라야는 바벨론에 의해 처형되었고, 그의 후손인 에스라가 페르시아 시대에 등장하면서 유대 율법 부흥운동을 주도했다.
    • 에스라의 개인적인 결혼이나 자녀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남아 있지 않다.

     

     

     

     

     

    역사적 사실과 주요 사건
    에스라가 활동한 시기는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이며, 그가 이끄는 개혁은 주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Artaxerxes I) 통치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바벨론 포로에서의 성장과 서기관 활동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태어나 유대 율법을 연구하며 성장했다. 당시 유대 민족은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성전은 파괴된 상태였다. 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한 후(BC 539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 2세가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하면서 점진적인 귀환이 이루어졌다.

    2.  제2차 귀환 지도(BC 458년)
    BC 458년경,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칙령을 받고 유대 땅으로 귀환했다.
    • 이때 에스라는 약 1,500명의 유대인과 함께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 왕은 에스라에게 유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예루살렘의 종교적 질서를 확립할 권한을 주었다(에스라 7:25-26).

    3. 율법 개혁과 종교적 순수성 회복
    귀환 후, 에스라는 유대 사회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고 개혁을 단행했다.
    •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고, 그들의 풍습을 받아들이는 등 신앙적 타락이 심각했다.
    •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이방인과의 결혼을 끊고, 율법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에스라 9-10장).
    •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다시 한 번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도록 이끌었다.

    4. 느헤미야와의 협력
    에스라 이후,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부임(BC 445년경)**하며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사역을 감당했다.
    • 에스라는 느헤미야와 협력하여 유대 민족에게 율법을 낭독하며 신앙 부흥을 이끌었다(느헤미야 8장).
    • 그는 성경을 공개적으로 낭독하며, 백성들이 율법을 따를 것을 다짐하도록 지도했다.

    에스라의 성격적 의미와 신학적 중요성
    에스라는 유대인의 신앙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역할은 단순한 지도자를 넘어 유대교의 형성과 발전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1) 율법의 중요성 강조
    그의 개혁은 유대교의 근본적인 특징인 율법 중심주의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유대교는 성전 중심에서 율법 중심으로 변화했으며,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학파의 기원이 되었다.

     

    2) 종교적 개혁과 민족적 정체성 회복
    에스라는 유대 민족의 신앙과 전통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이는 이후 유대 민족이 여러 차례 박해와 흩어짐 속에서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3) 기독교적 해석
    기독교에서는 에스라를 율법의 교사로서, 신앙을 개혁하는 모범적인 인물로 본다. 또한, 신약에서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6. 결론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대 민족의 신앙적 회복을 이끌며, 율법을 강조하고 신앙 공동체를 재건한 인물이다.
    그의 개혁은 유대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기독교에서도 그의 역할을 중요한 신앙적 본보기로 삼는다.




    에스라(Ezra)
    라틴어 번역 성경인 벌게잇에서는 "에스라서"를 "제1에스드라스" 라고 하고 "느헤미야서"를 "제2에스드라스" 라고 부르고 있다.
    또 이 두책은 정경상의 위치도 다르다.
    즉 한글 성경에는 역대하 다음에 있는데 히브리 원전에는 성문서집 중에서 다니엘 다음에 있다(히브리 원전 중에도 팔레스틴 계통의 원전).
    전통적으로 우리는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앞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믿고 있는데 최근의 어떤 학자들은 사실은 그 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에즈라(Ezra[ עזרא, 기원전 480~440년) 또는 에스라구약성경 에즈라기에 나오는 율법학자이자 제사장이고, 서기관이다.
    그리스어라틴어로는 에스드라스(고대 그리스어: Ἔσδρας)라고 불린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그는 제1성전에서 봉사한 마지막 대제사장인 스라야의 후손이고,[2][3] 예루살렘 귀환 이후 제2성전의 제사장이었던 예수아의 먼 친척이었다.[4][5]

    바빌론 유배지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모세의 율법을 다시 소개했다.[6][7]
    동방 정교회
    에서 사용 중인 에즈라기의 헬라어 번역본 에스드라스 1서에서는 에즈라를 대제사장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유대교 랍비 전승에서는 단지 일반 제사장 중 하나였다고 전한다.[8]

    에즈라의 무덤에 관해서 여러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한 전설에 따르면 그는 이라크 바스라 근처 알 우자이(al-Uzayr)에 안장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전설은 시리아 북부 알레포 근처의 타디프(Tadif)에 묻혀 있다고 한다.[9]

    에즈라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돕는다는 뜻인 '아자르야후(עזריהו)'의 약어일 수 있다.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진 70인역 성경에서 '에스드라스(Ἔσδρας)'로 적혔다.

    에즈라기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서 살고있던 유대인 일부를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인도하는 과정이 나온다 (에즈라 8.2-14).
    에즈라는 모세 5경에 대한 준수를 강요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에 따라 확신을 갖고 특정 종교의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도록 권고했는데, 이 가르침은 모세 오경에 기록되어있다.[10][11]

    구약성경의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에즈라의 활동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반면 에즈라에 관한 다른 책들인 에스드라스 1서, 에스드라스 2서 등은 에즈라느헤미야에 기초해 창작된 저작물로 본다.

    에즈라-느헤미야는 원래 두루마리로 엮어진 한 개의 문서였다.[12]
    후에 유대인들은이 두루마리를 나누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에즈라라고 불렀다.
    현대에는 유대인들 역시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 두 권의 책을 에즈라와 느헤미야로 부른다.
    에즈라기 몇 부분(4:8~6:18과 7:12~26)은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대부분은 히브리어인데, 에즈라 본인은 이 두 언어에 능숙했다.[13]

    에즈라는 바벨론에 살고 있었다.
    페르시아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칠년 (기원전 457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야훼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야훼의 율법을 가르치라고 에즈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많은 포로된 유대인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에즈라는 그곳의 유대인들이 유대인이 아닌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절망 속에서 자신의 옷을 찢고, 야훼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며, 동족 몇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죄 많은 결혼 생활을 해소함으로써 공동체를 정화하려고 했다.
    몇 년 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도시 벽을 재건하는 임무를 지닌 총독으로 예루살렘에 느헤미야(유대인 귀족 집안이면서 왕의 측근이었다)를 보냈다.
    성벽이 완성되자, 느헤미야는 에즈라에게 모세 율법 (토라)을 모은 책을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읽게했고, 백성과 제사장은 율법을 지키고 모든 다른 민족들과 섞이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었다.

    1. "God helps") -"Jewish Encyclopedia", Emil G. Hirsch, Isaac Broydé, "Ezra the Scribe", Jewish Encyclopedia (Online)
    2. 에스라 7:1
    3. 열왕기하 25:18
    4. 역대상 5:40-41
    5. 에스라 3:2
    6. 에스라 7-10장
    7. 느헤미야 8장
    8. Emil G. Hirsch, Isaac Broydé, "Ezra the Scribe", Jewish Encyclopedia (Online)
    9. Tawil, Hayim & Schneider, Bernard 2010, Crown of Aleppo: The Mystery of the Oldest Hebrew Bible Codex, 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2010, p. 63 ISBN 9780827608955; Laniado, David, Li-Qedošim ašer ba-areṣ, Jerusalem 1980, p. 26 (Hebrew); Frenkel, Miriam, article: Atare pulḥan yehudiyyim be-ḥalab bi-yme ha-benayim ha-tikhoniyyim, published in: Harel (הראל‎), Yaron, Assis, Yom Ṭov & Frenkel, Miriam (eds.), Ereṣ u-mlo’ah: meḥqarim be-toledot qehillat aram ṣova (ḥalab) ve-tarbutah, vol. I, Ben-Zvi Institute: Jerusalem 2009, pp. 174–75 (Hebrew); Khatib, Muḥammad Zuhair, Rabṭ al-Sabāba al-yamanī.
    10. Liwak, Rüdiger; Schwemer, Anna Maria. "Ezra". Brill's New Pauly.
    11. "Ezra". Encyclopædia Britannica. 2007.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12. Hugh G. M. Williamson, Ezra, Nehemiah,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6 (Dallas:Word, 1985), pp. xxi–lii.
    13. James H. Charlesworth – "Announcing a Dead Sea Scrolls Fragment of Nehemiah"The Institute for Judaism and Christian Origins – Retrieved 20 August 2011.

    본문 1절을 보면 '이 일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라는 말씀 그대로 제목을 '에스라라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에 대해서 우리 성경에는 없는 얘기가 외경에는 있습니다. 그것은 에스라를 가리켜 '선지자'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이스라엘에는 포로 이후에 동네마다 회당이 세워졌습니다. 즉 성전은 예루살렘에 한 곳이 있었을 뿐이요, 동네마다 회당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이면 동네 회당에 가서 안식을 지키곤 하였습니다. 이 동네마다 있는 회당을 전체로 총괄하는 '대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스라라 하는 사람이 이 '대회당'을 창설하고 대회당장이었다는 것이 전설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의하면 에스라는 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십 육대손입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제사장이 됩니다. 그러고는 율법을 얼마나 많이 연구하고, 또 연구했는지 '율법에 관해서는 완전한 학자라.'고 하였습니다. 즉 어느 누구도 따라갈 자가 없었던 학사였습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 중에서 귀환할 때 모두 함께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돌아온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세웠고, 2차로 돌아온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쌓았습니다. 에스라는 2차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잘 가르치고, 회개운동을 일으키고, 이방인과 혼인한 것을 다 정리하도록 합니다. 마지막에는 다시 바벨론으로 돌아가서 100살이 넘도록 장수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에스라라 하는 자'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한 사람인가를 본문의 가르침을 따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 믿음의 뿌리가 깊은 에스라 (1-5)

    뿌리가 깊은 나무는 옆으로도 퍼지고 위로도 크게 자랍니다. 뿌리가 얕은 나무는 이렇게 자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절대로 쓰러지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뿌리가 얕거나, 혹은 뿌리가 옆으로 뻗었다면 잘 넘어집니다. 우리 믿음 생활에도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믿고,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믿고, 할아버지가 믿고, 아버지가 믿고, 내가 믿고, 내 자식이 믿듯이 뿌리가 깊은 가정의 믿음은 특별히 뜨거움이나 갑자기 변화가 일어나는 일은 많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뜨거움이나 성령체험을 하는 경우는 당대에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뿌리깊은 믿음은 있는 듯 없는 듯 미지근한 것이 단점입니다. 이러한 단점이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좀처럼 교회를 떠나지 않는 다는 장점, 즉 끈질김이 있습니다. 디모데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위장병이 들어 나중에는 물밖에 마시지를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이때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위장병에는 포도주가 좋다고 하니 포도주 한잔씩을 마셔보라." 고 권면하는 것이 디모데전서에서 나옵니다(딤전 5:23). 바울 사도가 한참 은혜를 받고 기도할 때에는 손수건만 가져다 놓아도 병자들이 일어났는데 심복이요, 동역자인 디모데의 병은 끝내 고쳐주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겁니다. 위장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죽을 각오를 하고 바울 사도를 따라다녔습니다. 전도하는 일에는 최선의 동역자였습니다. 나중에는 에베소 교회의 담임도 잠시 하였습니다. '디모데가 없었으면 바울이 바울이 못되었다.'할 정도로 정말 훌륭한 동역자가 됩니다. 그것도 병들어 약한 중에도 말입니다. 진정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하여 디모데에게 이어진 믿음입니다. 디모데의 믿음을 가리켜 바울은 '거짓이 없는 네 믿음'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와 헤어져 있을 때에는 거짓 없는 네 믿음을 옆에 놓고 보고싶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대를 이은 뿌리깊은 디모데의 믿음은 "죽어. 죽어."하는 병마도 꺾어버리거나 빼앗지 못합니다. 끈질기게 끝까지 주님의 일에 온갖 충성을 다 바칩니다. 이것이 바로 '뿌리깊은 믿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에스라가 바로 '뿌리 깊은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본문 1절에서 5절을 보면 '이 일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저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손이요 아히둡의 육대손이요 아마랴의 칠대손이요 아사랴의 팔대손이요 므라욧의 구대손이요 스라히야의 십대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손이요 아비수아의 십삼 대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손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이라고 하게 되면 모세와 견줄만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 모세는 정치적으로 지도자가 되었고, 종교적으로는 아론이 지도자입니다. 이런 대제사장의 십육대손이요, 사독이라고 하는 유명한 제사장의 오대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망할 때 이 제사장의 가족들 모두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이런 중에서 살아남은 에스라는 성전이 없어서 제사는 드릴 수 없지만 제사장의 직분은 그대로 가지고 내려옵니다. 율법을 열심히 연구해서 가르칩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에스라를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율법의 완전한 학사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법에 저촉되는 것을 모두 정리하자.'고 하여 이방인들과 결혼한 사람들을 불러 가르치고, 설득하여 이방혼인을 전부 정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스라는 굉장한 개혁자 중에 하나입니다. 요즘 우리가 "개혁, 개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진정으로 '신앙개혁', '종교개혁', '생활갱신'을 이룩하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뿌리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뿌리깊은 믿음이 역사 하는 힘이 많습니다.

    렐프 존슨 번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뉴멕시코에서 태어났는데 아주 가난한 흑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투병 중에 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12살이었습니다. 1년도 체 못된 때에 아버지 마저 잃게되었습니다. 그래서 13살에 완전한 고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자식들의 13살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의 이야기이기 까닭에 특별하게 와 닿지 않지만 우리 자식들의 이야기라고 상상해 보면 가슴에 닿을 겁니다. 그래서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할머니에게 가서 얹혀 살게 됩니다. 그냥 얻어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밖에 나가 노동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해서 먹는 문제, 입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모으고, 대학교 총장님을 찾아가서 자신이 고학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얘기하고, 입학과 동시에 일자리를 얻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캘리포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을 졸업합니다. 하버드 대학이라고 하게 되면 세계가 알아주는 대학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가 가정을 이룩하는데 아들이 소아마비가 되는 불행을 또 겪습니다. 지금까지도 불행하게 살아왔는데 아들까지도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을 딛고 일어나 'UN'에 취직하여 UN 본부의 부 사무총장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아랍족속들과 유대족속들간의 팔레스타인 제 1차 전쟁이 발발하는 때였습니다. 번치가 이 전쟁을 휴전시키는데 절대적인 공로를 세웁니다. 이것이 인정이 되어 '노벨 평화상'까지 타게 됩니다. 이렇게되기까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고생 다하고 자기 집안도 불행한 상황에 있는 이 사람이 이런 세계적인 큰 업적을 남긴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가 12살 때 어머니가 죽으면서 불러놓고 얘기합니다. "번치야. 나는 너에게 주고 갈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너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런 일, 저런 일 많은 어려운 일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다른 것은 모두 잊을지라도 믿음만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믿음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그래서 번치는 아무리 괴로워도 믿음을 굳게 붙잡고,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입니다. 어머니에게서부터 오는 믿음이 그에게 심어졌고, 뿌리가 내리고 깊어졌습니다. 어떤 고난 중에서도 그는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괄시하는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뿌리깊은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혼자서 예수를 다 믿는 것 같아도, 고난이 있고, 환난이 있고, 풍파가 있을 때 뿌리깊은 믿음은 고난과 환난과 풍파를 모두 이겨내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승리하는 사람,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스라는 믿음의 뿌리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II.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에스라 (6-9)

    하나님의 도우심은 받을 수록 좋고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사람의 도움만을 받으면 이 도움은 며칠을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도움은 부분적이요,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은 전체적이요, 절대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고 하게되면 사람을 통해서 도와주실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직접 도와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실 때 사람은 나를 도울 수 있으나 이 도움은 몇 푼의 가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괴롭습니다. 사람들은 도와주었다고 얼마나 유세를 부리는 지 모릅니다. 차라리 그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도움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에스라는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당했을 때 요단강 건너편까지 쫓겨갔습니다. 그 땅이 바로 마하나임입니다. 이곳에 갔더니 소비, 마길, 바실래라는 큰 갑부 셋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다윗을 아무 조건 없이 돕지 않습니까? '다윗이 나중에 압살롬의 난을 진정시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어떤 대가를 줄 건가? 우리가 무엇인가를 받지 않겠나?'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도와 준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도움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압살롬이 난을 일으켜서 예루살렘을 다 점령하고 요단강까지 점령했는데 요단강 건너편으로 쫓겨온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이었습니까? 다윗을 도와주었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답은 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자기들 지역으로 쫓겨와서 죽게 된 사람들을 우리는 편히 있으면서 어떻게 가만히 있겠나?' 라는 생각으로 세 사람이 힘을 합하여 열심히 도왔습니다. 결국은 다윗이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요, 도움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도움 까닭에 압살롬의 난을 진정시키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 마하나임에서 몇 푼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사람의 도움일 뿐입니다. 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시켜서 도와주어 도운 도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 난을 평정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환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도우실 때만 가능했지 마하나임의 세 사람은 그런 일에는 전혀 도움이 못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도움이라는 것은 지극히 제한된 상대적인 도움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무한하고 절대적인 도움입니다. 그러기 까닭에 하나님이 직접 도울 수도 있고 사람을 통해 도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꼭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영광이요, 복되다 할진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에서 9절을 보면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아닥사스다 왕 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 년 오 월이라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 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까닭에 아닥사스다 왕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면 알아서 다 충당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에스라가 구하는 것은 다 주더라.'는 뜻입니다. 왕의 도움 이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또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떠나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즉 4개월이 걸린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돌아오는 길은 넉달이 걸리는 거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2000명에 가까운 큰 무리를 거느리고 오는 것입니다. 무장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오는 길에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대적들의 괴롭힘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넉달 동안의 긴 여행을 끝내고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사람의 도움은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한국에서 장로의 직분을 가졌고, 수술하는 외과계통에서는 늘 제 일인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장기려 박사님이 계십니다. 장박사님은 김일성의 맹장수술을 해 주고 6.25사변이 나자 남쪽으로 넘어 온 사람입니다. 남쪽으로 내려와서 부산에 복음병원을 세우고 복음병원 원장을 지낸 훌륭한 분입니다. 이 분은 김일성의 맹장 수술을 할 때에도 기도하고 수술을 시작한 분입니다. 기도하고 수술하자는 데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한번은 아주 위독한 환자가 수술을 받으러 왔습니다. '성공할까? 실패할까?'하는 것은 반반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의 의료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많은 문하생들이 둘러서서 견학을 합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데 믿지 않는 사람이 봐도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알아볼 정도였습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을 땀을 흘려가며 수술하는데 여러 사람들은 지켜보고 배웁니다. 어렵다고 하던 수술이 깨끗이 끝나고 성공해서 살아났습니다. 이때 문하생 중에서 지켜보았던 한 사람이 "박사님, 수술에 성공하고 이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기도 때문입니까? 박사님의 의술 때문입니까?"라고 물을 때 "기도를 통해 받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50%이고, 우리가 하는 노력이 50%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다. 그 사람의 병 나은 결과가 전적으로 기도에 있다면 의술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또 의술로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면 하나님은 무엇 하는 분입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수술도 기도한 후에 자신의 의술로 최선을 다했더니 죽어 가는 사람이 살아난 것입니다. 노력이 50%입니다. 자기 자신이 할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 100% 다 해달라고 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다하고 이제는 "하나님이 일할 차례입니다."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겨야 합니다. 아무 노력 없이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맡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나면 되지 않을 일도 되고 죽어 가는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도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III. 철저히 개혁하는 에스라 (10-)

    우리나라가 지금 "개혁 개혁"하면서 야단인데 개혁을 해야만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힘이 듭니다. 이 나라 곳곳에 개혁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법부, 언론계, 정치계, 문화계, 종교계, 교육계, 경제계 모두 다 개혁을 해야 하는데 개혁을 잘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납니다. 개혁을 하려면 법적으로 개혁하고 제도로 개혁하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개혁, 갱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에 인천 '호프집 사건' 때문에 55명이 죽었습니다. 꽃다운 청춘들이 죽었습니다. 법이 없어서 죽었습니까? '문을 닫아라'는 폐쇄 명령을 내렸는데도 관련 기관에 돈을 갖다 바침으로 눈감아주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법을 아무리 만들어 놓아도 운영하는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런 법과 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이 먼저 개혁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식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은 개혁의 모델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에스라의 행적에서 세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는 연구하는 자세

    그때는 구약 성경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구약의 율법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주 익숙한 학사가 되고, 완전한 학사가 되었습니다.
    율법에 관한 한 그 누구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성경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말입니다.
    남을 뜯어고치겠다고 하기 전에 에스라는 자기 개혁을 먼저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자신을 먼저 개혁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철저히 공부했습니다.

    두 번째로 '준수했다.'는 것입니다.
    지키지 않는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에스라는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개혁자는 자신이 먼저 법을 지켜야 합니다.

    세 번째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럴 때에 사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백성을 깨우치고 법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율법을 가르치고 나 자신이 지키면서 이방 혼인한 사람들을 전부 정리하고 사회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즉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개혁을 하였습니다.
    개혁이 그들을 살아남게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이 먼저 바뀌고 새로워지는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사회와 나라가 개혁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잘 될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믿음의 뿌리가 깊은 사람입니다.
    포로 생활의 쓰라린 고난도 뿌리깊은 신앙을 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수한 역경 중에서도 믿음은 더욱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도움은 부분적이요,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전체적이요,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자가 승리합니다.
    그런가하면 에스라는 철저히 개혁하는 개혁자였습니다.
    먼저 자신을 개혁하고 사회를 개혁하고 종교계를 개혁했습니다.
    그래서 선민은 혼탁한 와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오늘날에 개혁만이 살길입니다.
    에스라의 삶을 본받아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절의 초두에는,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키'(*)라는 접속사가 있다. 이것은 '왜냐하면'의 의미로서 에스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본절의 맨 끝부분의 '결심하였더라'는 '결심하였기 때문이다'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 그렇지만 본절이 또한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중요한 이유 혹은 목적을 말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여호와의 율법 - 6절 주석을 참조하라.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 여기의 '모세의 율법'은 그 앞에 하나님의 언약적 속성을 강조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라는 호칭이 나왔음을 볼 때, 언약 백성들이 반드시 이행해야할 규범으로서의 율법을 뜻한다(출 19:5-8).
    한편, '익숙한'(마히르)은 '서두르다' 혹은 '빠르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마하르'(*)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어떤 특정한 사물에 대해서 충분한 준비와 경험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의 '익숙한'은 '능통한'으로 번역해도 괜찮을 것이다


    연구하여(리드로쉬. לִדְרֹושׁ )
    - '조사하다' 혹은 '찾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다라쉬'(dârash) דָּרַשׁ)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어떤 사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을 가리킨다(Rawlinson, 벧전 1:10, 11).

    1875. 다라쉬( dârash) דָּרַשׁ

    1. 문지르다.  2. 어떤 장소를 가다. 3. 구하다
    발음 [ dârash ]
    구약 성경  / 164회 사용

  • 관련 성경  /  찾다(레10:16, 시77:2, 신22:2), 묻다(신13:14, 왕상14:5, 겔14:3), 조사하다(신19:18), 구하다(대하16:12, 미6:8, 대상26:31), 거두다(대하24:6), 구걸하다(시109:10), 청하다(대상10:13), 간구하다(대하20:3, 렘21:2), 연구하다(스7:10, 시111:2, 전1:13), 조사하다(스10:16), 용납하다(겔14:3), 힘쓰다(렘29:7),탐구하다(신12:30), 받다(신18:19), 요구하다(신23:21, 겔20:40), 알아보다(삼하11:3), 나아가다(대하1:5), 신원하다(대하24:22), 감찰하다(시10:4,13), 도모하다(에10:3), 심문하다(시9:12), 돌보다(시142:4),
    [부] 자세히(사 34:16), 청하건대(왕상 22:5).

  • 준행하며(라아소트. וְלַעֲשֹׂת)
    - 이것은 '행하다', '만들다' 등의 의미가 있는 동사 '아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자신의 사상 및 견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가리킨다(창 1:31 ; 6:22 ; 신 5:27 ; 23:23).

    6213. 아사( ʽâsâh) עָשָׂה

    1. 노동하다.  2. 만들다. 3. 생산하다
    발음 [ ʽâsâh ]
    구약 성경  / 2627회 사용



    율례와 규례
    - 여기서 '율례'(*, 호크)는 '새기다' 혹은 '초상화를 그리다' 등의 의미를 갖는(Davidson) 동사 '하카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번복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규정된 것' 혹은 '명령된 것'을 뜻한다(레 10:13 ; 욥23:12 ; 렘 5:22).
    한편 '규례'(*, 미쉬파트)는 '재판하다'나 '공의를 실행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쉬파트'(*)의 파생형이다.
    이것은 마땅히 따라야 할 행동의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준(레 18:4 ; 시 103:6)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위의 두 단어는 외형상으로는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두 단어가 항상 동시에 혹은 교대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볼 때, 거의 같은 의미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단어가 '여호와의 율법'의 보다 본질적 특성들을 두 가지로 드러내주는 단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율례'는 율법의 기초적인 규정들에, '규례'는 보다 구체적인 적용례들에 각각 중심을 둔 표현이라 할 수 있다(JosephBlenkinsopp).

    가르치기로(레라메드.  וּלְלַמֵּד )
    - 이것은 '습관들이다'(Davidson) 혹은 '효율적으로 가르치다'(Meyer)는 의미이다.
    에스라가 실행하기를 결심한 여러 일 중 가장 중요시되던 것은 바로 여기의 이 '가르침'이었다(Fensham).

    3925. 라마드( lâmad)  לָמַד   

    1. 응징하다.  2. 훈련받다. 3. 렘 10:2.
    발음 [ lâmad ]
    구약 성경  / 197회 사용
    관련 성경  /  배우다(신 5:1, 시 106:35, 렘 12:16), 본받다(신 18:9), 연습하다(사 2:4, 미 4:3), 교훈을 받다(사 29:24), 익숙하다(대상 5:18, 아3:8), 가르치다(신 4:5, 렘 2:33, 시 25:4), 교훈하다(시 71:17), 명령하다(신 4:14), 길들이다(호 10:11).
    [명] 배움(사 26:9), 스승(시 119:99).








  • 성경의 5대 제국

    성경과 5대제국”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라는 이스라엘에 영향을 끼친 강대국을 인문학적인 배경 안에서 역사, 지리, 인물, 문화 등으로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조명하고 있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5대제국의 왕을 들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유다왕국을 심판하셨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바벨론을 점령하고 바벨론의 포로를 귀환시키는 역사적 사건 등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

    성경과 5대제국(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산업혁명 전까지 500년간 상 아시아의 대주였던 앗수르가 천박한 땅에서 비록 관개수로를 이용한 농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지는 미스터리 하지만 요나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니느웨(니네배)’를 통해 앗수르가 근동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마의 지성 키케로가 극찬한 역사의 아버지 ‘헤로로토스’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을 기록한 “역사”라는 책에서 앗수르의 존재를 희미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앗수르는 처음은 작은 소도시였으나 동으로는 인도, 서로는 애급, 북으로 러시아, 남으로 아라비아 펠릭스까지 3,200km에 달하는 소아시아와 초원의 사막을 장악한 제국주의로 발전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1846년 영국의 고고학자 ‘레이어드’에 의해 세상에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고 발굴된 앗수르의 유적들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성경 내용 그 자체로 전시되어있다.

    1. 요나(B. C. 8c)와 앗수르와의 관계

    4장밖에 안 돼는 요나서에 언급된 니느웨는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상에 빠진 북이스라엘에게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앗수르를 통해 북이스라엘을 교훈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는 요나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욘 1:2; 3:1~2)하지만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의 회개를 받으시고 구원(욘 3:9,10)하시며 하나님을 아시는 지식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과 가축들까지 아끼신다는 것을 요나서는 기록(욘 4:11)하고 있고 바울의 사도됨과 예수그리스도의 대위임령(마 12:41)을 거룩한 제사장나라의 시민이 가야할 길과 회개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앗수르라는 제국은 구원의 메시지를 순종하지 않음으로 야망으로 인해 150년 후 나홈 선지자가 선포한 것과 같이 멸망의 길에 들어갔다.

    열왕기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분열, 역대기는 다윗과 남 유다의 역사와 북이스라엘이 200년간 7번의 쿠데타로 19명의 왕이 난립하는 피 비린내 나는 역사를 기록하며 다윗의 혈통들은 여보라함 같은 악한 왕들로 하나님의 계획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13:1~2; 13: 10~11; 14:23~24).

    열왕기는 이렇게 선민이라고 자부한 북이스라엘은 15째 왕 ‘살룸(B. C.752)'을 죽이고 16번째 왕이된 ’므나헴(B. C. 752~742)'이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의 돈을 강탈(왕하 15: 19~20)했지만 그러함에도 북이스라엘의 온 땅을 점령한 앗수르는 백성을 잡아갔고 마지막 19대 왕인 호세아(B. C. 732~722) 때 앗수르에 의해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만다.

    예언서는 19명의 왕들에 의해 쿠데타를 일으키며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선지자인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의 능력을 두 배나 간구한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죄악의 길에서 나오지 않자 아모스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시어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회개를 촉구(암 1:1)하셨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멀리하는 북이스라엘에는 호세아(호1:1)를 보내시고 남 유다에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를 보내시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결과는 앗수르가 아닌 바벨론에게 남 유다는 멸망당했다. 나훔서와 이사야서에는 B. C.609년경에 앗수르가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하 19:35~37; 사 37:36~38; 나 1:12; 나 3: 18~19). 앗수르는 수도 니느웨가 B. C. 612년 바벨론에 함락되어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주변 국가를 탄압하던 죄의 대가를 받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국가가 되었다. 다윗이 민족국가를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경계를 넘지 않은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거주의 경계를 만드시고 고유한 민족들을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을 앗수르 제국의 멸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3> 이데올로기 경영의 바벨론 제국과 율법 경영의 하나님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다니엘서, 에스겔, 하박국, 스바냐, 열왕기하, 역대하)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18만 5 천명이 죽어 위기를 맞은 앗수르와 남유다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한 사건(사 38: 3~5)은 동일선상에서 바벨론과 남 유다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사 39:1,2).

    앗수르에 보낼 공물이 없어 성전과 왕궁의 금을 긁어모았던 초라해진 남 유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에 의해 앗수르가 폐했다는 소식은 제국을 꿈꾸고 있던 바벨론에게는 충격이었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생명연장 소식을 들은 바벨론은 인사를 핑계로 특사를 보내 염탐을 계획했는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한 것이 아니라 무기고와 곳간을 보여주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그런 히스기야의 어리석음을 보고 바벨론은 위기의 앗수르를 치고 남유다와 애급을 점령할 계획을 세운다.

    히기스기야 자신은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지만 자손들 중 몇은 치욕스럽게 바벨론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고뇌(사 39:3~8)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가 55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산당을 세우고 우상 섬기는 악행을 저질러 요시야 왕이 이룬 치적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로 인해 남 유다를 멸망을 하시겠다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신다(왕하 23:25~26; 대하 33: 11~13).

    요시야는 다윗의 길을 따른 순종의 왕이었지만 애급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자 애급은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왕의 자리에 있던 여호아 하스를 애굽으로 끌고 가 죽이고 만다.

    앗수르에 조공을 하던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붙었다 앗수르에 붙었다를 반복하자 바벨론은 아람과 모압과 암몬과 동맹을 결성하여 먼저 애급을 치고 므낫세에게 멸망을 예언한 것처럼 유다는 점령( 왕하 24: 1~4, 7)당하는데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를 ‘애급’과 ‘바벨론’이 벌인 “갈그미스 전투”를 모티브로 하여 바벨론과 유다의 역사를 다니엘서는 언급하고 있다.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대하 36:6~7, 10)’이 등장하는 “1 차 바벨론 포로” 이야기(단 1:3~4)는 남 유다를 경영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 차 바벨론 포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에스겔을 통해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인물을 등장 시킨 이유는 혼혈주의로 인해 멸망한 앗수르와 다르게 바벨론은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해 귀족과 인재를 포로로 하여 대영제국이나 일제가 행한 제국경영의 모델이 되었다.

    성경을 통한 다니엘의 꿈 해몽(단 2:19~23; 2:31~35)은 요셉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와 연결(창 40:8)되어 왕 중에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고 있다(단 2:47; 6:26~27).

    국가가 환란 중에 있을 때 예레미야처럼 같이 고통을 받으며 눈물로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렘 18:20, 20:2, 7~9, 37:15~16, 38:6)과 거짓 예언자 하나냐의 등장(렘 28:1~4)은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에 교훈을 주고 있는 상황 같다.

    하나님께 거역하는 선지자는 하나냐 처럼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렘 28:16~17).

    바벨론의 제국경영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이지만 하나님의 세계 경영은 율법 교육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하나님의 계호기 앞에서 인간의 욕심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 우리는 도전 받아야 한다.

    <4> 페르시아 제국 (다니엘, 학개, 스가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 역대하 등)과 인간이 개수한 병사의 숫자

    바벨론으로 1~3차에 걸쳐 포로로 잡혀갔던 남유다 백성들이 페르시아에 의해 강대국 바벨론이 망하는 것과 페르시아에 의해 1~3차에 걸쳐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의 이데올로기 경영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 경영의 큰 뜻을 펼친 행정가이며 선지자 다니엘을 기록한 다니엘서, 1차 귀환 때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세력에 의해 16년간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을 때 학개(학 1:2)와 스가랴(슥 1:1)를 기록한 3권의 성경은 페르시아와 관련되어 있고 1,2차 포로 귀환 사이에 벌어진 이스라엘 말살 정책에서 민족을 구한 페르시아 왕비 에스더를 등장 시킨 에스더서(에 1:1), 2차 포로 귀환을 지도한 학사 에스라(스 1:1), 3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 총독 느헤미야 이야기(느 1:1), 페르시아에서 파견된 총독 이야기(말 1:8)를 다룬 말라기까지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신음하는 백성을 선지자를 세워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앞에선 전율할 수밖에 없다.

    남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고 이데올로기 경영을 한 애굽의 바로 왕과 남유다 백성을 귀환 시킨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 고레스(키루스 2세)는 구약의 두 수레바퀴와 같이 사건의 중심이 되고 있는 왕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왕의 마음은 강퍅(출 9:12)하게 하셨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은 감동시키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스 1:1).

    창세기에 나오는 바로왕은 요셉과 요셉이 믿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왕으로 요셉을 총리로 세우고 애굽의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요셉을 칭송하게 명령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요셉의 손가락에 끼우고 애굽의 총리로 세운 왕(창 41: 38~43)이지만 출애굽기에 나오는 바로왕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출 5:2)되어 있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왕인 것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모든 세계를 경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찬양하며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조서를 내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예물을 드리고 남유다 포로들을 귀환 시킨다(스 1:1~4).

    이렇듯 구약의 성경에 주변 강대국의 왕들을 등장 시키고 있는 성경의 의도를 우리는 환란 중에 하나님을 잊지 않고 예배드린 선지자들의 믿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니엘서( 6:7~8)와 에스더서( 1:17~18)에서 메대(메디아)와 바사(페르시아)라는 페르시아의 두 도시 국가가 등장하고 있는 데 통일 전 페르시아는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구성되어져 있었는데 그리스에게 최초로 조공을 받고 있던 리디아(터키)의 크로이소스 왕을 2주 만에 굴복시켜 페르시아가 동방의 부를 대표하게 만든 왕 고레스는 탄생과 성장, 왕이 되기까지의 신화를 간직한 왕으로 페르시아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데 정복자와 패배자의 관계를 우호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아테네의 솔론이라는 현자를 등장 시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부를 축적한 과정을 알게 되었을 땐 성경을 읽는 재미와 다른 지혜를 얻게 된다.

    페르시아는 리디아라는 도시 국가를 통해 그리스의 철학과 학문을 접하게 되어 앗수르의 혼혈주의나 바벨론의 인질 교육 정책과는 다른 관용의 정책을 펼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 예레미야와 고레스 왕 (스 1;1)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스 1:1).

    고레스의 칙령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고 남은 자들은 후에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되어 매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성전에 십일조를 바치고 30일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며 소비를 촉진 시켜 예루살렘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는데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였던 남유다 백성은 다른 이방인과 구별되어 유대인으로 불리고 있는데 애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히브리인으로 불린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며 북이스라엘은 혼혈족 사마리아인으로 바벨론의 남유다 백성은 유대인으로 명칭까지 바뀌게 된 역사를 페르시아와 이스라엘 관계 속에서 알게 되었다.

    페르시아의 왕 로레스가 29년간 통치하고 8년간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캄비세스는 이집트를 점령한 왕이며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고 3대 왕 디리오는 장사꾼으로 기록되어 있다.

    1차포로 귀환 때 사마리아인의 방해로 기초 공사 도중 중단 되었던 성전 건축은 페르시아 2대 왕 다리오 때 비로소 완공 되는 데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다리오 왕과 어릴 적 친구인 유대인 총독 스룹바벨인데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세상에서 믿음의 빛을 낸 결과였다.

    성전 방해를 하던 사마리아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마침 솔로몬의 성전은 작지만 본 모습을 드러내는데 신약의 헤롯 왕 때 건축된 성전과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2. 에스더 이야기

    페르시아를 이야기 할 때 4대왕 아하 수에로의 왕비 에스더(에 1:1, 10~12, 15~16)를 빼 놀 수 없는데 술에 취한 왕은 왕비 와스디의 나체를 잔치에 참석한 자들에게 보여주려 했기 때문에 왕후 와스디는 거절했다고 유대 고대사 “요세푸스 Ⅱ”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일로 인해 왕궁에서 쫓겨 난 왕비를 그리워하다 아리따운 처녀를 후궁으로 맞이하는 데 바로 에스더였다.

    유대에 의해 몰살당한 아멜렉의 후손 하만의 원한과 모르드개의 암투(에 3:13~15)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로 왕 앞에서 지혜로 민족을 구한 에스더의 사건은 12월 14~15일 이틀간의 부림 절이라는 유대인의 명절이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에 9:20~22).

      3. 에스라 선지자와 2차 포로 귀환(B. C.458)

    아론의 16대 후손인 에스라는 1차 포로 귀환(B. C.537년) 79년 뒤 2차 포로 귀환(B.C.458) 때의 제사장(스 7:1)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쳤으며 페르시아의 학자로 존경 받았다(스 7:6,10).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겠다는 계획에 페르시아왕 아닥스는 직접 공문을 여호와를 신실하게 믿는 에스라에게 내리고 많은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었다(스 7:12~26).

    애굽의 바로 왕이 애굽의 총리 요셉에게 전권을 준 것과 같이 페르시아 궁중 창고의 모든 재물을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마음껏 쓰라고 공문을 주었고 재판권의 시작이 된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권까지 아닥스는 에스라에게 허락하였다.

    4. 페르시아 총독 느헤미야와 3차 포로 귀환 (B. C.445)

    에스라에 조서를 내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아닥사스 왕 20년 후 페르시아의 총독 느헤미야는 등장한다(느 1:1~3).

    페르시아의 높은 관직에 올라 환란과 능욕 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겠다는 느헤미야의 꿈은 아닥스다 왕에게 충성과 큰 제국을 통솔한 행정력이라는 신뢰로 페르시아 왕 앞에서 ‘수심’이라는 패(느 2:1,5~8)를 내고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마치게 되었다(느 6:15).

    느헤미야는 70년이라는 생활을 포로 생활이 아닌 훈련이라고 가르쳤고 귀환해서 그 하나하나의 능력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이스라엘 백성에 가르쳤기 때문에 유대 백성은 귀환한 후 한 동안 우상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페르시아는 군인들의 숫자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하나님은 레위기를 통해 숫자가 아닌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켜 행하면 각 나라와 민족의 경제적 안정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페르시아의 멸망은 경제 수치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이다.

    <4> 헬라 제국(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신구약 중간사)과 로마 제국(신약 전체)

    구약의 끝인 말라기(말 4:4~6)와 신약의 처음인 마태복음(마 1:1) 사이에는 400년이라는 세월이 숨어 있는 것은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유대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냉소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침묵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하시지만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묻고 확인하려한다(말 1:2).

    아브라함부터 1,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늘 사랑하셨는데도.. 하나님은 믿음에 대한 불순종이라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400년 만에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로 오시기로 결심하신다(요 3:16).

    이러한 신구약 중간 사에 다니엘의 예언(단 7:6; 8: 3~8; 21~22: 11:3)처럼 알렉산더라는 헬라 제국의 영웅이 나타나 그리스 철학과 동방 오리엔트 문명을 합친 헬라 문화를 꽃 피우는데 헬라 문화의 주인인 마케도니아는 아테나와 스파르타라는 강력한 군사력 이전에는 페르시아의 속국이었지만 알렉산더 왕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를 강력한 군가로 세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크레니데스라는 곳에서 금광을 발견했기 때문인데 그곳을 “필립포스”라고 명명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은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 중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듣고 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유럽의 첫 교회를 그곳에 세웠기 때문이다(행 16:6~12).

    이 때 그 유명한 성경의 구절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는 말씀을 기록하는 데 바울이 옥에 갇힌 것도 옥문이 열려 바울이 탈출한 줄 알고 자결하려한 간수장의 이야기와 귀신 들렸다가 나은 여종, 자주 장수 루디아의 이야기가 우연일 수 없는 것은 어쩜 “빌립보 도시”가 세워진 것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1. 알렉산더와 두로의 멸망을 예언한 성경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쓴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와는 많은 우화가 있는데 이 영웅전이 집필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알렉산더가 두려워했던 것은 심오한 철학과 지식의 힘을 믿고 국가를 통치하려는 자신의 야욕에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 저항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에스겔 28장 2절에 예언되어 있는 것 같이 강력한 해양 도시 두로 왕이 아무리 신같이 굴어도 사람일 뿐이라는 것(겔 26:4; 27:2~8)이 예언되어 있는 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에스겔의 예언을 믿을 수 없었는데 배를 만들고 자색 염색 산업으로 엄청난 부를 누리며 사치스럽던 두로가 쉽게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바벨론과 페르시아를 들어 쓰셨던 하나님께서 알렉산더를 들어 두로 성을 불타게 하여 그 교만이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다(암 1:9~10; 사 23: 1~3).

    두로가 멸망한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다가 에돔에 노예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된 두로의 교만은 결국 황무해지고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되고 말았다.

    예수께서 이곳에 들려 귀신들린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고 이후 두로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고 198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마 15:21~28).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이 알렉산더를 피해 도망가다 부하들에 의해 살해당하며 페르시아는 멸망하고 알렉산더는 파죽지세로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고 정복한 지역에 그리스 문화와 헬라문화를 합하여 오리엔트 문화를 퍼트렸지만 인도의 인더스 지역에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 B.C.323년에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2. 하나님의 세계경영을 실천할 때

    헬라 제국 경영의 키워드는 알렉산더가 그리스의 철학과 동방의 문화를 융합해 오리엔트 문화를 만들어 보급하며 제국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앗수르의 계급을 전제로 한 강제 혼혈 방식이나 헬라의 페르시아 여인과 마케도니아 군인들을 결혼 시켜 민족과 문화를 융합하려는 수평적 세계동포주의(cosmopolitanism)라는 인간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각 민족의 균형과 조화는 모든 만물을 종류대고 창조하시고 개인과 민족에게 각각 거주의 경계를 지정해주신 제사장 나라 적 융합으로 완성될 수 있는데 ‘각기 종류대로’‘수평적으로’, ‘하나님 앞으로’ 동질적 연대를 형성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세계 경영 방식은 바울이 헬라인은 헬라인에게 유대인은 유대인에 맞게 복음을 전한 것과 일치되는 것이다. 천하보다 귀중한 한 개인과 모든 민족에게 속하되 섞일 수 없는 유일한 한 민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각 민족은 독특한 하나님의 창조적 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독특함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순혈 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이 하나님의 세계경영으로 돌아설 때라는 것을 헬레 문화의 멸망을 보며 알게 되었다.

    <5> 로마 제국 (마태복음~요한계시록)

    신약 성경의 근간은 로마 제국과 연관성 속에 있는데 예수가 태어나시기 전에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해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호적 하러 간 것과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것 같이 유대의 사형 법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 처형도 로마의 사형 법이었다(마 27:27~31).

    이러한 예수께서 로마의 속국인 유대의 왕으로 오신다는 소식은 온 예루살렘에 소동을 일으킬 사건 중의 사건이 되었고 예루살렘에 파견된 분봉 왕 헤롯과 로마 제국의 총독에 앞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유대왕의 탄생을 알고 찾고 있다는 사건은 헤롯과 예루살렘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 로마 제국의 출현과 가이사(카이사르)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와 같은 선지자들이 왕성하게 유대 땅에서 활동할 때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신화가 있다. 왕정과 공화정을 거친 로마는 카르타고와 3차에 걸친 120년의 포에니 전쟁을 치르며 급부상한 나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쥴리어스 시저)는 오랜 전통의 애굽이나 고대 근동을 모두 점령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잡았다.

    종신 독재 관이었던 가이사르는 황제의 길을 열고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는데 로마의 세금을 누구에게 바쳐야 하느냐는 바리새인의 질문(마 22:15~22)에 동전에 그려져 있는 가이사를 보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시며 미묘한 정치적, 종교적 문제를 해결했는데 가이사는 자신의 얼굴을 동전에 새겨 로마 제국 전체에 자신을 알렸다.

    거대한 로마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 공화정에 반대하고 황제 체제로 국가를 경영하려는 계획에 반기를 든 원로원이 가이사를 암살했지만 더 이상 거대해진 제국을 시민과 원로원의 협의체인 공화정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자신들이 암살한 가이사가 마련한 계획에 따라 가이사의 양자로 삼은 옥타비아누스를 황제로 등극 시켰는데 그만큼 가이사는 로마 제국에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2.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왕은 누구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중요한 또한 사람은 헤롯으로 재위 15년째에 46년 동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쌓는 어마어마한 공사를 벌이고 A. D.70년 로마군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성전 장식에 공을 들인 로마의 분봉 왕 헤롯을 빼 놓을 수 없는데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터”는 유대의 하스몬 왕조를 B. C.63년에 로마에 넘기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내전을 할 때 카이사르 편에 서서 승리하고 유대 총독으로 부임했고 그의 아들 헤롯에게 유대를 다스리게 했다(B. C.37~4년까지).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헤롯은 한 사람이 아니라 헤롯 가문의 왕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스라엘 땅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요셉의 이야기(마 2:20)에 등장하는 헤롯은 유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에돔 지역을 분할 받은 헤롯 아켈라오 왕이 등장하는데 요셉은 아켈라오의 눈을 피해 유대가 아닌 나사렛으로 갔다고 마태복음 2장 22절은 기록하고 있는 데 그만큼 아켈라오가 폭력적인 정치를 했기 때문인데 A. D.6년에 유대와 사마리아 귀족들이 로마 황제에게 숙청해달라고 요청해서 왕위에서 쫓겨났고 이 후 유대 지역은 로마 총독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저 여우”(눅 13:32)라고 부른 헤롯은 헤롯 빌립 1세의 형인 헤롯 안티파스로 자신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였고 세례 요한이 안티파스에게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자 세례 요한을 죽였다(마 14:3~4)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여우라고 말씀하신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에 등장하는데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의 분봉 왕으로 세례 요한을 죽이고 빌라도와는 원수지간이었지만 예수를 갈릴리 사람이라고 심문할 때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눅 23:12).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신 곳은 헤롯 빌립 2세가 로마 황제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립한 지역인 가이사랴 빌립보(마 16:13) 였고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처형한 왕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다 벌레에 먹혀 죽는 벌을 받았다(행 12:21~23).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인 아그리파 1세의 아들 아그리파 2세는 사도행전 26장 24절로 32절에 등장하는데 로마 군사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는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로마에서 죽었다.

    3. 로마의 2대 황제 디베료(티베리우스)와 총독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

    성경에 나오는 디베료는 A. D.14년 예수님의 청소년 시기부터 십자가 처형과 사도행전의 초기까지 37년 간 폭정을 한 왕이며 빌라도는 디베료가 황제가 된 지 15년째에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눅 3;1).

    디베뇨는 가이사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가 혈연에 연연했는데 유부녀인 리비아와 결혼하기 전 이미 3세였던 디베뇨는 어머니가 옥타비아누스와 결혼하자 친부 드루수스도 밑에서 성장했고 생부가 죽자 의붓아버지인 옥타비아누스와 황궁에서 살았다.

    혈연을 중시하는 옥타비우스는 황제의 자리를 친족에게 물려주기 위해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유일한 혈육인 딸을 친구이자 동료인 아그리파와 결혼 시키고 외손자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지만 모두 죽자 디베료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 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디베료에게 아그리파와 살고 있던 자신의 딸과 결혼하는 조건을 달았고 디베뇨가 황제에 오르자 옥타비아누스는 딸 율리아를 간통죄를 빌미로 유배형을 내렸다.

    디베뇨는 황제가 되었지만 강제 이혼한 첫 부인을 평생 잊지 못하고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며 의붓아버지 밑에서 외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아마 “테러블 티베이우스”라는 폭군으로 성장했는지 모르겠다.

    디베뇨는 카프리 섬에서 운둔하며 문서 정치를 10년간 했고 이때 유대로 파견한 총독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였는데 헤롯이라는 유대 분봉 왕과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고 있는 대제사장, 바리새파, 사두개파, 유대의 고위급인 서기관들 틈에서 빌라도는 카프리 섬에 있는 폭군 디베뇨에게 민란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어갈 것이라는 강박감으로 두려워했는데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대제사장 세력은 민란을 빌미로 교묘하게 예수의 처형을 빌라도에게 요구한 것이다.

    유대인의 유월절에 죄수 한 명 씩을 놓아주는 전례는 소동이 빈번했기 때문이라고 요세푸스의 신화는 기록하고 있다. 유대의 정치범을 한 명 놓아줌으로 로마 제국에 대한 불만을 감소시키려는 의도였는데 유대의 명절이 로마 제국에는 비상 사태였던 것이다.

    빌라도가 노련한 정치가이며 행정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빌라도는 이러한 유대의 풍습을 이용해 예수를 특사로 풀어주려 했지만 오히려 대제사장들은 유월절을 이용해 민란이 날것이라고 겁박하고 예수를 처형하라고 요구한다(마 27:15~17, 21).

    분명 돌로 쳐서 죽이는 유대의 전통 처형 방식이 있는데도 대제사장과 무리들은 로마의 처형 방식인 십자가 처형을 고집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로마에 전가시키려는 아론 대제사장의 후손인 유대 족속의 비겁한 자기 부인이었다(마 27:24~26).

    비로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태복음 5장 17절로 20절에서 말씀하신 천국의 가르침처럼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심이 아니라 완성 시키셨다(마 26:56) 예언자 미가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마구간에서 탄생(마 2:5~6)하셨고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애굽에서 돌아오셨다(마 2;15).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헤롯이 2살 아래 남자 아이들을 죽였는데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로마와 예수님과 바울과 같은 사도의 행적에는 로마 제국과 다신교를 믿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등과 같이 예수님과 연관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페르시아에서 유대로 귀환한 후 출범한 산헤드린 공회는 A. D.6년 로마로부터 유대의 최고 대표기구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 예수님의 시신을 총독 빌라도에게 요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유대인의 재판권을 담당한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공회원이었다는 사실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마 27:1~2).

    성경과 5대 제국이라는 거대한 파노라마의 끝은 로마 제국이 A. D.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A. D.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 화되었고 A. D.476년 로마의 멸망으로 끝을 맺는다.

    로마가 모든 분야에서 부르짖은 것은 “관용”이었지만 노예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귀족 중심의 관용이었지만 “하나님의 세계경영은 십자가의 관용”이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400년의 침묵을 깨고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관용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결코 기독교의 십자가의 관용은 국가에서 이념으로 내세우는 종교가 아니며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는 그런 값없는 이름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천하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애굽의 바로, 앗수르의 산헤립,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페르시아의 고레스, 헬라의 알렉산더, 로마의 옥타비아누스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 까 ?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이 천하보다 소중하다는 사실과 모든 민족이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나의 정체성을 찾고 가정과 민족과 조국을 통해 타인과 타민족,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염원하며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이 가신 십자가 길을 걸어 갈수 있는 권능을 달라고 간구해 본다.


    1. 앗수르 제국 / BC 900 - BC 612


    BC 900년경, 앗수르(아시리아)제국이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악했다.
    앗수르는 BC 722년에 북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하여 백성들을 곳곳에 흩어버리는 한편,
    인종 혼합 정책을 써서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통혼시켜 ‘사마리아인’이라는 혼혈족을 만들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순수 혈통을 지녔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몹시도 경멸했던 것이다.
    근동의 패자로서 앗수르의 세력은 BC 612년까지만 지속되었다.

    2. 바벨론 제국 / BC 612 - BC 536


    신흥 제국 바벨론이 BC 612년에서 BC 536년까지 새로운 패자로 세상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BC 606년에 남유다 왕국을 정복했고,
    BC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완전히 파괴했다.
    그 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해석했는데,
    왕이 본 거대한 신상의 금 머리는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왕 자신이며, 가슴과 팔은 은이며(페르시아제국),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그리스제국), 종아리는 철(로마제국)이었다(단 2:31-45).

    3. 페르시아 제국 / BC 536 -  BC 332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이후 바벨론은 BC 536년에 페르시아(바사)제국에 왕좌를 내어주게 되었다.
    페르시아는 BC 536년에서 BC 332년까지 존속했는데,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을 놓아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했고(이전보다는 작은 규모였다),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공식적인 집단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구약이 끝날 무렵, 그들은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제국은 알렉산더가 이끄는 그리스(헬라) 군대에 의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4. 헬라(그리스) 제국 /  BC 332 - BC 176


    그리스제국은 BC 332년에서 BC 176년까지 존속했는데, 알렉산더 대왕은 피정복 국가들에 그리스(헬라) 문명을 확산시켰다.​
    그래서 그리스도 당시에는 헬라어가 거의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다(신약이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헬라어는 복음의 내용을 더욱 간결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그리스제국이 멸망할 무렵, 정확히 BC 176년에 레위 지파의 마카비(Maccabee) 일가가 봉기를 일으켜 유대인의 독립 시대를 수립했다.
    이때 하스모니안(Hasmonean)이라 불리는 일가친척들이 팔레스타인의 자치(自治)를 구현했지만, BC 63년 로마의 팔레스타인 정복으로 중단되었다.
    바로 이 독립 시기 동안 침묵기 대부분의 영적인 활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5. 로마제국 / BC 63 - AD 500


    BC 63년에 폼페이 장군의 예루살렘 점령으로 시작된 로마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AD 500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치세할 당시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이때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팔레스타인의 통치권을 위임 받은 헤롯 대왕은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의 남아(男兒)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또한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 옛날 스룹바벨 당시에 재건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확장하고 미화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도 했다.
    로마제국은 여러 면에서 기독교 확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로마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룩한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이웃으로 만들었다.
    만약 사도들이 1세기 정도 더 일찍 사역을 시작했더라면 국수주의의 장벽에 막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의 도로 역시 사도들이 전도여행을 하는 데 용이하게 사용되었다.
    덕분에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하루 평균 50킬로미터에서 80킬로미터까지(이전에는 15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가 고작이었는데)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 동안에도 사람들은 보편적인 세계 언어로 헬라어를 사용했다.그러나 로마는 극심한 경제 불황에 시달렸다.
    백성들은 어림잡아 세 명에 두 명 꼴로 노예였고, 6천만에 달하는 노예들로 인해 사회 불안과 빈곤이 조장되었다.
    조세 관리들은 일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을 뿐 아니라
    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쥐어짜 돈을 우려낼 대로 우려냈다.
    그런 식으로 백성들의 것을 갈취하기는 사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지적한 것처럼 로마 사회는 도덕적으로 타락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있었고, 영적으로는 잡신(雜神) 숭배로 완전히 죽어 있었다.
    철학자들은 올림포스산이 거기 사는 모든 신들 때문에 너무 북적거린다고 비아냥거릴 정도였으니까.
    로마는 새로운 지역을 정복할 때마다 새로운 우상들을 들여왔고, 그나마 로마의 정신을 지탱하던 헬라 철학을 자기모순에 빠진 빈혈증 환자로 여겼다.
    한편 유대인들의 신앙은 유대인 반대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겉치레와 내분으로 변질되어 갔다.




    신관(神觀)

    신관에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자연신관(自然神觀)초월신관(超越神觀)이 있다.
    자연신관은 우주 자연을 신으로 보는 견해이며 초월 신관은 우주를 초월하여 창조하고 지배하는 유일의 절대자로 보는 견해이다.

    ​기독교의 신관(神觀)

    ​1. 삼위일체 한분 하나님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 일체 한분 하나님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한분 하나님이시다.

    마태복음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위의 말씀에 성자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강에 계신다.
    그리고 성령은 비둘기 같이 임하신다.
    그리고 성부는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다.

    삼위 일체란 말은 하나님은 셋 안에 하나이며 하나 안에 셋인 신비의 실체로 존대한다.
    그러기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 한분으로 계시면서 성자의 사역으로 성령의 사역으로 성부의 사역으로 역사 하셨다.

    삼위 일체라는 말은 신비의 수이기 때문에 초대 시대에 큰 논쟁이 되었다.
    초대 교회시대 신학자 데오도시어스는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임하므로 하나님의 큰 아들로 삼았다.
    이유는 하나님은 시작이 없어야 하는데 그리스도는 시작이 있기에 하나님일 수 없다고 단일신 론을 주장하다가 교황 빅토리우스(VictoriusA.D.189년-199년)에게 이단으로 규명되고 추방되었다.
    그 이후 아르테몬(Artemon)은 성령을 받을 때 무한한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주장했다가 아르테몬도 교황 제피리우스(Zephyrius A.D.199년-A.D.217년)에게 이단으로 규명되고 추방되었다.
    또한 사벨리우스는 삼위 일체를 태양으로 비유하여 성부는 태양과 같고 성자는 빛과 같으며 성령은 열과 같은 것처럼 삼위일체란 단일성을 가지는 것으로 역할에 따라 삼위로 나눈다고 말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의 다른 형체로 나타난 것이다고 주장했다가 역시 이단자로 규정되었다.

    아리어스(Arius)는 그리스도는 영원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성자는 성부의 첫 피조물로 하나님이 아니며 성령은 성자의 첫 피조물이며 비 인격적인 활동력이다. 당시 니케이아 종교 회에서 정의된 삼우 일체 하나님은 상부 상자 성령 모두 자존하신 하나님이시고 본성도 동질이시고 권위도 동등하시고 구속 역사에 항상 동역하신 하나님이심을 증명했다. 아리우스는 A. D. 325년에 콘스탄틴 황제 때 교황 실베스테르(Sylvester A.D. 312년-A.D 335년)에 의하여 성경에 없는 하나님을 주장하다가 이단자로 규명되어 추방당되었다. 당시에 삼위일체를 규명한 대표적인 성경은 마테복음 3장 16절-17절이었다. 당시에 니케야 종교 회에서 규명된 삼위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었다.

    (1) 삼위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은 만사 만물을 계획하신 분이시며 만사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창조하신 우주를 섭리 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 중에서 자기 백성을 형성 하시고 택한 백성을 구속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물의 주인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이시다.

    (2) 삼위 하나님은 성자의 하나님이시다.

    성자 하나님은 창조사역을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신 분이시고 하나님과 동존 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대속을 이루신 분이시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여 새 생명을 보이시고 원래 계시던 곳으로 승천 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다시 강림하시어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구원 받은 자들과 영원히 함께 사실 분이시다.

    (3) 삼위 하나님은 성령의 하나님이시다.

    성령의 하나님은 모든 역사하심에 성부 성자와 함께 하신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셨고 선지자들을 감동하여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인도하셨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오순절 날을 기점으로 교회를 세우셨다. 그의 백성들을 거듭나게(中生)시키시고 그들을 감동하셔서 회개에 이르게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성화시켜 영원한 나라에 이르게 하신다.

    2) 창조의 신 여호와.

    기독교의 신관은 자연과 우주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유일한 신(하나님 여호와) 을 믿는다. 사람이 상상하고 추상하여 인간이 더듬어 찾은 신이 아니라. 창조자로서 창조된 인간에게 자신을 알려준 신이다. 그리고 영이기 때문에 형상이 없는 신이다. 왜냐 하면 영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지상의 것들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기독교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인데 천지 만물을 창조한 창조자이며 우주를 통치하는 통치자이며 역사를 주관하는 주관자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해준 생명의 근원이며 인간의 생명을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랑의 신이다.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데 그의 성품에 따라 여러 말로 표현되었다.

    (1) 엘(לאֵ). 하나님[엘]이란 이름의 뜻은 능력자, 권능 자란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능

                                 력의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신이다.

    (2) 엘루앟( חוֹלאֵ )하나님. [엘루앟]라는 이름의 뜻은 존경스러운 자. 두려운 자, 존

    ​         엄하신 자, 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심과 자비하시고 존경스러우 면서도 죄

            를  엄하게 다스리시는 신이다

    (3) 엘로힘( םחילּאֵ )하나님. [엘로힘]이란 이름의 뜻은 통치자, 재판 자라는 뜻이 있

             다. 우주를 통치하고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심판자 신이다.

    (4) 여호와(הוׂהיְ)하나님 [여호와]란 이름의 뜻은 자존 자, 언약자라는 뜻이 있다. 하

             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기에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헤아리는 분이 아 니며 믿어야 하

             는 분으로 나타냈다. 스스로 계시기에 만물의 근원이 시고 생명의 근원이시며 영생의

             원천의 신이다.

    (5) 엘솨다이(ידשׁלאֵ)하나님 [엘솨다이]란 이름의 뜻은 복의 근원이신 자, 부요하신 자

             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인 신이다.

    (6) 쯔바오츠 (תוׂאבָצְ)하나님 [쯔바오스]라는 이름의 뜻은 만군의 여호와, 대신 싸우

             는 자 란 뜻이다 연약할 때에 대신 싸우시고 환난을 당할 때에 전적으로 도우시는 보호

            자 인 신이다.

    (7) 엘룐(ןרׂילאֱ)하나님 [엘룐]이란 이름의 뜻은 높이 계신 자, 전지하신 자라는 뜻이

            있다. 경배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 엘룐 하나님의 이름을 주신 뜻은

           높이 계셔서 경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이름이다. 그리고 높은데서 내려다보시고 세

          상을 모두 감찰하고 인간의 모든 언행을 보고 계시고 모 두 감찰하는 신으로 생사화복​

       (生死禍福) 상벌(賞罰)하는 신이다.

    (8) 아도나이(ינדׂאָ )하나님 [아도나이]란 이름의 뜻은? 소유자, 통치자라는 뜻이 있

             다. 나의 주(主)가 되고 모든 것의 소유자(所有者)인 신이다.

    (9) 테오스 (θεοs)이신 하나님 헬라어적 하나님의 이름인데 구약의 8가지 이름을 함

            유한 이름으로 한분 하나님을 나타낸 이름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기에 아버지로 섬긴다. 인간이 탄생하면 그 탄생한 날을 부모가 알려준다. 태어난 인간은 자신의 태어난 사실과 날자와 신간을 모른다. 왜냐 하면 보지도 못했고 지각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부모가 알려준 대로 믿을 뿐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알려준 것 외애 어떤 증거가 필요가 없다.

    이와 마찬 가지로 인간을 창조한 신이 내가 너를 창조 했다고 말하면 그 말을 믿을 것이다. 기독교는 창조자로서 자신이 창조자이심을 알려준 말씀을 그대로 믿고 섬기는 것이다. 다만 자녀가 부모의 아들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부모를 닮았다는 사실과 자신에게 베풀어준 사랑으로 알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도 믿는 신앙생활 가운데 자신이 신을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 신의 사랑을 알 때에 창조자 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그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며 생명의근본인 아버지를 섬기며 영원한 생명의 근본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창조한 우주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스리시며 주관하시며 보전하신다.

    (창1:26-28)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 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43:1)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 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 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9:15)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 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에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신다.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인간이 죄로 타락하여 죽음에 이르자 그를 살리시려고 독생자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희생의제물이 되셨다. 그 대속하신 역사가 새로운 역사의 기점이 되는 것이다. 이유는 그 대속 자 그리스도가 역사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 절대자의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이고 역사의 시작하신 분이시며 역사의 끝을 맺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알파와 오메가라 했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은 신약 성경을 기록한 헬라 언어인 알파벳 처음 알파(α) 끝 오메가(ω)라는 뜻이다.

    (계1:8)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삼위일체란 말은 한분 하나님이시면서 삼위가 계신다는 말인데 셋이시면서 하나이시고 하나이시면서 셋이신 신비의 실체라는 말이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실체이므로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고 표현하기 어려운 실체라는 말이다.

    (마3:16-17)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 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 삼위 하나님은 두 가지 성품을 가자신 분이신데 자신만이 가지는 성품 자존하시고 자유하신 분이시고 무한하시고 편재하신 분이시고 공의하시고 유일하시고 단순(석이지 않고 깨끗함)하신 분이시고 우리 인간들에게 나누어준 성품으로 영적이시며 생적(生的=생명자체) 이기에 살아계신 분이시고 인격적(人格的=인간과 같은 품성)이신 분이시며 공의(公義)하시고 사랑이신 분이시며 주권적(主權的)이신 분이시다.

    이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해서 만들거나 더듬어 찾은 신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 아담에게와 그의 백성들에게 자신 스스로 또는 그의 사자들을 보내어 알려주셨다. 그 보여주신

    하나님 알려주신 하나님을 그대로 기록한 말씀이 성경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신이 알려주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2) 구원의 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구원의 신 구주이다.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신이다 창조때에도 계신 신이고 최초 인간 아담 때에도 계신 신이다. 여호와의 신은 인간이 타락하여 영원한 죽음에 이르데 되자 장차 여인의 후손으로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약속했다.

    (창 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요 1:1-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일 1:1-2)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인간을 구원하여야 하기에 인간으로 오셨고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에 죄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야 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친히 가르쳤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해 보여 믿게 하려고 신만이 행할 수 있는 기적을 행하여 인간이 증명해 보였다.

    그리스도는 쩨자 빌립에게 자신이 하나님이라 했다.

    (요 14:8-11)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많이 행하였다.

    (요 2:11)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11:42-44)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눅 7:12-16)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죽었던 자가 일어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16)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구원자로 온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와서 인간 대신 죽었고 그리고 그 구원을 증명하여 믿게 하려고 부활했고 그리고 다시 하늘로 오르셨다.

    그고 태어날 때 까지의 인간은 하나님의 백성의 계획한 수가 아니기에 장래 태어날 인간들이 대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자들을 모두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약속을 기록하고 또 전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 신약 성경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오기전 영인의 후손으로 보내실 약속을 기록한 말씀이 구약 성경이고 그 약속된 그리스도가 와서 장차 다시와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한 자들을 살려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신다는 약속을 기록한 것이 신약 성경이다.

    3) 교회와 성령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창조시에도 함께 역사 하셨고 그리스도가 오시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계시하시고 기록하게 하였고 제사장들이나 왕들에게 임재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형성하고 이루게 하였다.

    성령의 하나님은 자존의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 대속후 교회에 강림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면서 그리스도 뒤를 이어 성령의 하나님을 보내신다고 했다.

    (요 15:26)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6:7-8)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십자가에 죽음으로 대속을 이루고 부활한 그리스도께서 승천 하시고 난 후 마가 다락방교회에 성령이 임하여 역사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교회에 함께 하시면서 택한 자들을 불러내고 또한 거듭나게 하고 회개에 이르게 하여 심판을 이루고 성도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비하게 하신다. 그리고 사도들을 감동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였고 그 말씀을 온 천하에 증거하도록 역사했다.

    2. 불교의 신관(神觀)

    불교의 신관은 힌두교의 뿌리인 베다종교의 신관이다. 베다 종교는 자연신이며 범신관(梵神觀)이다. 자연 신관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신으로 보는 견해이다.

    불교의 신관은 베다종교 힌두교 신관을 배경으로 한 범신관(梵神觀)이다. 그러기에 불교의 신관을 알려면 고대 베다 종교의 신관을 알아야 한다.

    1) 베다 종교의 신관

    베다 종교는 33신을 헤아린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문한(文獻 모아진 글)과 제신(諸神-모든 신)에 대한 찬가(讚歌=신을 숭배하는 노래)에 기록된 신의 종류는 33종의 신을 헤아린다. 우주를 3계(三界=3계의 세계)로 나누는데 하늘의 세계, 공중의 세계, 지상 세계로 나눈다.

    (1) 우사스 신. 

    천상세계, 중공세계, 지상세계, 3계(界)로 나누어 그들은 제각기 좌(座)를 가진다. 다시 말하면 33신은 제각이 존재하면서 3 세계에 각각 자기의 영역을 가지는데 이 33종의 신이 각각 이 3계에 좌(座=왕권)를 갖는다.

     (2) 아그니 신.

    천상 세계(天上世界-하늘세계)는 서광(曙光=빛)을 다스리는 신, 우사스(Ushas)신, 태양을 다스리는 수리아(Surya)신, 이다. 공중 세계(空中世界)를 다스리는 폭풍의 신 인드라 신(Indra 神)과 그 부하 신이 다스린다고 믿는다.

    (3) 수리아 신. 

    지상 세계(地上世界)는 불의 신 아그니 신 (Agni 神)신과 술 신(酒神)인 소마 신(Soma 神)이 지배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밖에 동물(動物)과 식물(植物) 기구(器具)등을 신격화 하여 섬긴다.

    (4) 인드라 신.

    베다 종교는 자연숭배와 민간 신앙이 바탕이 되어 형성된 종교로서 자연을 모두 신격화 한다. 여러 가지 많은 인격의 신(人格의 사람과 성격이 같은 신), 그 배우의 신(配偶=인간 위에 초월해 있는 신), 잔연화신(自然化神=자연을 신으로 높인 신),을 대상으로 숭배한다. 소, 원숭이, 뱀, 등 동물 신, 거목(巨木=큰 나무) 거암(巨巖=큰 바위) 산정(山頂-산꼭대기), 물가, 그리고 천체(天體=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 그리고 성력(性力=정력)을 신으로 숭배했다.

    2) 힌두(Hindu=모든 신은 하니)교의 신관(諸神)

    힌두교는 우주를 모두 신으로 보면서 계보가 있는 종교로서 단일 종교가 아니라 다신종교(多神宗敎 =많은 신)이며 범신종교(梵神宗敎=모든 것이 신)이다.

    베다 종교의 자연신(自然神), 또는 다신(多神)의 기반을 둔 힌두교는 자연을 신격화 하여 소(于), 원숭이, 뱀, 등의 동물이나 기암(奇巖), 산정(山頂), 물가, 천체(天體) 그리고 성력(性力)도 신격화하여 숭배한다. 그 외에도 정령숭배(精靈崇拜) 주력숭배(呪力崇拜)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을 숭배한다.

    이 모든 신들 가운데 주신(主神)이 브라라마 신(Brahma 神), 비슈스 신(Bisus 神) 시바 신(Siba 神), 3신(三神)이다.

    (1) 창조의 신 브라마(Brahma 神)

    브라마(Brahma)는 고대 중국인들에 의해 범(梵)으로 음력된 것으로 우주의 근본(宇宙 의 根本)으로 중성(中性)의 범(梵=합하여 모두)으로 인도의 민중숭배(民衆崇拜) 중심이 되되다가 남성(男性)적이며 인격(人格=사람의 성품과 같은)의 신으로 최고(最高)의 브라마(Brahma) 범천(梵天)으로 확립되었다.

    이 브라마 (梵 범)는 세계를 창조하고 세계를 유지(유지= 머물게 하고 관리함)한다고 믿는다. 브라마 신은 공평무사(公平無死=공평하고 죽지 않음)한 신으로 믿으며 믿는 자에게는 자비나 은혜를 주지 않는 신으로 인정하기에 숭배자가 적었다.

    (2) 아트만(Atman)

    아트만이란 호흡을 말하는데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 요건이기에 생기(生氣), 신체(身體), 본체(本體)가 된다. 그리고 사람의 본성인 정수(精髓=영혼)로서 개체 통일의 원리로 생각한다. 우파니샤드 베난타 철학에서는 자아(自我) 또는 개아(個我)로 아타난다. 아트만은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여 보편일체화(普遍一體化)로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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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지의 신 비슈누(Bius 神)

    비슈누 신은 제 2의 신인데 신인양성(神人兩性=신이면서 인간인 성품)을 가진 신으로 세계를 유지하고 악마를 멸망시키며 여러 가지 화신(化神)의 능력을 가진 신이기에 멧돼지 형상, 거북이 형상, 물고기 형상을 가진다.

    비슈스 신의 배우(配偶=아내)의 신으로 미의 여신(女神 )라크수미라(Raksumira 여자 신) 슈리(suri 여자 신)가 있다.

    원래(原來)는 태양을 편조작용(編造作用=태양 일부작용)했는데 차차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인도의 제 2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aratha)와 라마야나(Ramayana)의 영웅 크리슈나(Krishuna)와 라마(Rama)를 신격화(神格化)한 것이다.

    (4) 파괴의 신(破壞의 神) 시바( Siba 神)

    시바신은 폭풍의 신 루드라(Rudra)를 형용한 신이다. 시바신은 파괴의 신이며 거친 신이다. 시바신의 형상은 남성의 생식기(生殖器)를 숭배한다. 시바의 신에게도 배우(配偶)의 신이 있는데 설산(雪山=눈 덮인 산)의 처녀 신(處女 神)신으로 성격이 광폭(狂暴=미친 성격 과격)한 신 두르가 여자 신(Duruga )과 칼리(Kali) 여자 신(女神) 두 여자신이 있다. 이 신의 숭배로 성력 숭배가 자행되었다.

    (5) 성력 숭배(性力 崇拜)

    성력숭배(性力崇拜)란 성애(性愛) 성력(性力) 중시하여 남성의 성기(性器=남자 생식기) 링가(Linga)와 여자의 성기 요니(Yoni)를 성적인 표상으로 숭배했다. 남성의 생식기는 여성의 생식능력을 신비롭게 한다고 생각하여 숭배했다.

    성력 숭배를 해탈의 방편으로 오륜좌 수행(五輪座 修行=원형으로 앉아서 행하는 수행 이 있는데 이를 5M 수행이라고 한다.

    근친(近親=같은 혈통)과 상관없이 같은 깊은 밤에 남녀의 수가 둘러 앉아 만드리(眞言=주문)를 외우며 5단계로 수행한다.

    ① 수행 마디아 (Madiha 술(酒)을 마신다.

    ② 수행 만사 (Mansha 고기(肉)를 먹는다.

    ③ 수행 맛야 (Matyha 생선(魚)을 먿는다.

    ④ 수행 무드라 (Mudrha 과자(菓子)를 먹는다.

    ⑤ 수행 마이투나(Maitunha 성교(性交)한다.

    이 5M 수행은 성적인 관계를 가짐으로 수행이 끝난다. 이 5M 수행을 통하여 해탈한다고 한다.

    힌두교에서는 브라만 비슈누 시바 3신을 꼽는데 브라마 신이 높은 위치에 있고 비슈느 신과 시바 신은 하위에 있으면서 서로 하나로 공존한다고 믿는다.

    (6) 방신 숭배(仿神 거느리는 여러 神 崇拜)

    힌두교는 바라마, 비누슈, 시바, 이 3 신의 배우자 신과 수많은 화신(化神) 등 여러 신의 계보와 그 외의 잡다(雜多)한 통일성이 없는 것들이 숭배의 대상이었다. 화신(火神)으로 태양신(太陽神) 수리아 신(Surya 신)과 우신(雨神)인 인드라(Indra)신 과 새벽의 여신(女神) 유샤스(Ushas)신, 술신(酒神)인 소마(Soma)신, 명부(冥府)의 신 야마(Yama)를 숭배했다.

    그리고 조령숭배(祖靈崇拜), 악령(惡靈) 아수라(阿修羅), 아잇샤(夜叉-야차), 라크샤스(羅刹=라찰), 그리고 악마 암소, 원숭이, 산양, 거북이, 그리고 성수(聖河), 성수(聖樹), 성석(聖石) 등을 숭배했다.

    3). 소승불교 불신관(佛神觀)

    승불교는 베다종교나 힌두교의 범신이다. 윤회 사상을 을 믿는 소승 불교에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수행하여 보살이 되어 해탈하거나 아니면 다시 윤회환생한다고 한다. 해탈이란 원래의 인간이 된 오온(五蘊)의 법(法, 結合)이 헤체되어 이 세상 고해(苦海)에 황생하지 아니하고 원래의 무(無)로 돌아 가는 것이고 해탈하지 못한 인간은 다시 윤회 환생한다

    그러기에 소승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의 철학이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수행을 완성하여 보살이 되는 것이다. 그 보살을 불신(佛神)으로 믿는다.

    (1) 아라한(阿羅漢)이 된 석가.

    아라한이란 아라하트(Arahat)란 말인데 완성한 자라는 말이다. 일체의 번뇌를 끊고 해야 할 일을 완성하고 더 배울 바가 없으며 세인들에게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석가를 추앙하는 자들이 석가는 수백천생(數百天生 )에 걸쳐 이타(利他=다른 세계(世界)의 사람을 구제해온 행위)의 선행(善行)을 해온 유일한 존재로 석가를 아라한(佛神)이라 한다.

    (2) 불신과 불타관(佛神 과 佛陀觀)

    불신(佛信)은 석가의 유래 없는 위대성은 많은 사람의 귀의심(歸依心=돌아가 예속함)이 일어나고 그가 죽은 후 염(念-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 그를 초인화(超人化=인간 이상의 인간), 절대화(絶對化), 완전화(完全化),가 행해지게 되었다. 그는 전세(前歲=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생애)에 뛰어난 선근공덕(善根功德=선행과 공덕을 쌓음)에 연유한 것

    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보살이라 불리게 되었다. 불신은 석가처럼 깨달음을 구하여 정하는 표상이다.

    불타(佛陀)는 석가가 80세의 나이로 죽었지만 제자들은 그의 죽음은 모습을 감춘 것에 불과하고 그의 생명은 영원히 심재(心在=마음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불멸의 진리 자체라고 생각한다.

    (3) 구원의 법신불

    35세에 도를 깨달아 80세에 죽은 석가를 신격화(神格化) 했는데 인간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32상((相=상상) 에 8가지 호(好 좋은 모습)의 특수한 모습을 갖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불타를 초월한 것으로 주장한다.

    석가는 일시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석가는 이 세상 이전 과거 세상에서 성불을 완성하고 무한한 시간에 걸쳐서 인간들을 교화(敎化=가르침)해 온 구원실성(久遠實成=옛 먼 실제적인 성취)의 부처가 있었음을 말하고 이 부처가 법신불(法身佛)인데 법은 영원불변하고 그 법을 깨달은 부처로 일체되어 실체(身体)로의 법신(法身) 영원불변(永遠不變=영원히 변하지 않은 )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4) 대승 불교의 불신관.

    소승 불교에 반하여 창설된 대승 불교는 보살이 석가 하나인 반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온전히 수행한 인간은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석가 외에 4 보살을 신앙한다. 소승 불교는 윤회 환생하지 아니하고 해탈하면 무로 돌아 간다고 믿지만 대승 불교에서는 긍락이 있어 보살들은 그 긍락을 통치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해탈하면 육도 환생 하지 않고 긍락으로 간다고 믿는다.

    (1) 아미타불 (阿彌陀佛-서방극락정토)

    아미타불이란 아미타바(Amitabha)란 말인데 헤아릴 수 없는 광명(光明=밝은 빛)과 아미타유스(Amaitaus)란 말 헤아릴 수 없는 수명(壽命)을 가진 두 가지 덕성을 가진 불타라는 의미이다.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에 머무는 구제불의 신앙으로 출현한 부처로서 과거 구원겁(久遠劫=옛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세자 제왕(世自在王=스스로 존재했던 왕)때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보살(法藏菩薩 법을 갖춘 보살)이 되어 부처 밑에서 수행하고 제불(諸佛=모든 불)의 정토를 견학하고 5겁(五劫=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긴 세월을 생각 끝에 48서원(四八誓願)을 일으키고 덕을 쌓았기 때문에 지금부터 10겁(十劫) 전에 원행(願行=멀고 먼 수행)을 완성하고 성취하여 아미타불이 되고 10만 억 토(十萬億土 )나 떨어진 서쪽 극락(極樂)을 세워 설법하고 있다고 말한다.

    (2) 약사불(동방 정유리세계)

    방 정유리 세계에 머물고 있는 보살로 의료의 신이다. 약사여래(藥師如來, bhaiṣajyaguru)는 불교에서 중생의 모든 병을 고쳐주는 부처(여래) 즉, 약사 부처(Medicine Buddha)를 말한다. 아미타불의 48 서원과 함께 약사여래의 12대 서원이 유명하다.

    약사불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열두 가지 큰 서원(十二大願)을 세웠다. 질병을 치유하고 수명을 연장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원이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약사불은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부른다. 중생의 아픔을 치료해주는 의사 부처님이란 뜻이다. 나아가 어리석음을 뜻하는 무지(無知)의 병까지 고쳐준다고 했다. 때문에 약사불은 치유와 염원의 상징이 되었다. 병을 낫게 하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약사불에 대한 신앙은 널리 퍼졌다. 그리고 수많은 약사불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3) 미륵불 (彌勒佛=Maitrea 도솔천 兜率天)

    석가는 현세에서 진리에 눈을 뜬 현세 불(現世佛)인데 미래영겁(未來永劫= 미래의 헤아릴 수 없는 세월)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불멸의 진리이기에 과거에 있어서도 석가와 같이 진리에 눈을 뜬 사람이 있었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만든 것이 미륵불이다. 다시 말하면 현제의 구제불이 있다면 미래에도 존재해야 한다는 전재아래 생긴 것이다.

    미륵은 현재는 보살인데 정토인 도솔천(道率天=육욕천의 넷째 하늘, 미륵보살이 사는 곳)에서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석가의 예언으로 4천세(四天世 =인간의 나이 56억 7천만년 이 되면 인간계에 화생되어 석가의 자리를 대신한다고 생각함) 불이다. 그래서 미륵보살 미륵불 두 상을 만들었다.

    (4) 관세음보살(Avalokitesvara 菩薩 보타락산 補陀落山 )

    관음이란 산스크리트 어인데 아박로지제바라(Avalokitesvara)라는 의미 인데 무한자비의 불(佛)이다. 어머니니 같은 자비를 보였기에 여성의 모습으로 대비성자(大悲星者 자비가 무한한 자) 어떤 보살의 자비보다 넓고 깊다. 관음보살은 천개(千個=1000개)의 손과 천개(千個)의 눈을 가졌다. 실제로는 42개의 손을 자졌는데 합장한 두 손은 본래의 손이고 40개의 손 하나 하나에 손이 25개의 손을 소유하고 있어 중생을 제도하므로 40x25=1000.이 되는 것이다.

    관음보살은 감로수(甘露水 =달고 맑은 물)정병(淨甁=투명한 유리병)을 손에 쥐고 흰 옷을 입고 연꽃 위에서서 세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을 (敎化)교화 한다. 관세음보살은 32신(三十二神), 또는 33신으로 제도(制度= 진리, 법을 가르칠)할 대상에 따라서 가지가지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인간의 모든 원한(怨恨)을 들어주는 보살인데 33신 32신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관세음보살은 구호난자(救護苦難者=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 시무외자(施無畏者=두려움을 없애 주는 자). 원통대사(圓通大士=원만하여 통하지 않는 것이 없는 자).이다 시간과 장소에 제한 없이 어느 곳에나 긴간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내고 입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큰 불에 들에 들어갈지라도 불에 타지 않으며 큰 물에 빠질지라도 죽는 일이 없으며 바다에 감은 바람을 만나 죽음에 임박해도 해탈하며 죽음의 칼이 목전에 왔을 지라도 저절로 칼이 부러지며 아무리 사나운 마귀일지라도 해치지 못하며 죄가 있거나 없거나 감옥에 고통을 맞게 된 자들이 자유로워지고 원수다 도적을 만나도 스스로 사라지는 일곱 가지 재앙을 면한다.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 음욕이 많은 자는 청량(淸亮=푸르고 밝은)을 얻고 분노 대신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어리석음 대신 제혜를 얻으며 몸으로 예배하고 공양하면 훌륭한 자녀를 얻게 되며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외우면 굶주려 죽는 등의 15가지 나쁜 일을 면케 해주며 항상 좋은 친구를 만나며 15가지 좋은 일을 함께한다고 한다.

    대승 불교는 수행을 온전히 행하면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위의 4 부처외에 많은 부처가 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

    우라노스의 기원과 의미

    우라노스(Uranus)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하늘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하늘'을 의미하며, 그는 땅의 신인 가이아(Gaia)와 결합하여 다양한 신들과 거인들, 몬스터들을 낳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가 창조되었습니다.
    우라노스는 원시 신 중 하나로, 그의 존재는 코스모스의 기원과 세계의 창조를 상징합니다.
    그는 또한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을 예고하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권력과 통치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라노스의 이야기

    우라노스는 자신과 가이아의 자식들을 두려워하며, 그들을 지하 세계인 타르타로스(Tartarus)로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가이아는 이에 분노하여 그들 중 가장 강력한 크로노스(Cronus)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크로노스는 가이아의 도움으로 우라노스를 무력화하고 그의 지배를 끝냅니다.
    우라노스의 패배로 인해 그의 피가 바다에 떨어져 아프로디테(Aphrodite)가 탄생하게 됩니다.
    또한 그의 생식기를 바다에 던지자 거센 파도와 거품이 일어나 아름다운 사랑의 여신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우라노스와 그의 유산

    우라노스의 존재와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코스모스의 기원과 창조를 이해할 수 있으며, 신들의 세계와 인간 세상의 관계와 갈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권력과 통치에 대한 문제를 다루며, 이러한 문제가 신화의 주요 주제 중 하나임을 보여줍니다.
    우라노스의 후손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중심 인물들로, 여러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의 아들 크로노스는 결국 자신의 아들 제우스(Zeus)에게 패배하게 되며, 이로 인해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우라노스의 유산은 그의 후손들을 통해 지속되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중심 이야기와 주제를 구성합니다.
    이를 통해 신화 속 세계의 복잡한 역사와 신들의 투쟁, 인간들의 운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코스모스의 기원과 세계 창조를 상징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의 이야기와 업적을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신화의 주요 주제와 인간들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라노스와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를 더 깊이 탐구해 보시고, 그것이 현대 사회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우라노스(Οὐρανός Ouranos[*])는 그리스 신화의 1세대 하늘의 남신이다.
    로마 신화
    카일루스(Caelus)에 해당한다.
    카오스
    가이아의 아들이며 크로노스의 아버지이자 제우스의 할아버지이다.

    가이아가 스스로 낳은 첫 번째 자식으로, 이후 가이아가 장남인 우라노스를 남편으로 맞이하며 가이아의 남편이 된다.
    우라노스는 어머니인 가이아와 결혼한 후부터 그녀에게 매우 집착하였으며, 가이아는 계속 임신하고 자식들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우라노스는 계속해서 가이아의 곁에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끈질기게 집착하였다. 가이아가 자식들을 출산할 때마다 우라노스는 사랑을 표하며 하늘에 올라가 황금빛 비를 쏟아 땅을 촉촉히 적셔주며 사랑을 표현하면, 가이아는 땅에 만물이 샘솟게 도와주면서 우라노스에게 보답하였다. 이 시기의 우라노스와 가이아는 부부 금슬이 좋았고, 점점 더 서로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다.

    하지만 가이아가 키클롭스, 헤카톤케이르를 비롯한 괴물들을 낳으면서 우라노스와 가이아는 점차 반목하기 시작하고, 이렇게 흉측한 괴물들이 자신의 자식이라는 걸 수치스럽게 여긴 우라노스는 그들을 모두 타르타로스에 감금한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예전처럼 가이아에게 끊임없이 집착하였다. 아무리 괴물이지만 자신의 자식들을 지하에 가두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임신시키려는 우라노스에게 분노한 가이아는 복수를 다짐하고, 자신의 몸 속을 흐르는 광맥에서 낫을 만들어 우라노스를 거세할 계획을 세운다.

    낫을 만든 가이아는 자식들을 불러 자신을 도와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면 1인자의 자리를 약속하였지만, 가이아의 말을 들은 자식들은 우라노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였다. 이렇게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 할 때 막내인 크로노스가 가이아를 돕겠다고 나서고, 가이아는 기뻐하며 크로노스에게 자신의 낫을 넘겨주었다.

    이제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와 말을 맞춘 뒤 낫을 품고 침실에 숨어 아버지 우라노스가 가이아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되자 마침내 우라노스가 가이아를 향해 다가오더니 이내 그녀를 덮쳤다. 숨어있던 크로노스는 서둘러 뛰쳐나와 왼손으로 우라노스의 성기를 쥐고 오른손으로 낫을 휘둘러 자른 뒤 바다로 던져버렸다. 우라노스는 성기가 잘리자 고통을 참지 못하고 큰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들인 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하면서 1인자에서 쫓겨나고 더 이상 가이아와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된 우라노스는 고통 속에서 많은 피를 흘리며 도망가서는 다신 가이아를 찾지 않았다.

    우라노스가 흘린 피가 땅에 떨어지면서 기가스, 에리니에스, 멜리아데스가 탄생하였다. 한편 바다에 떨어진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흘러나온 정액이 바닷물과 섞이면서 흰 거품이 일더니 그 자리에서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이렇게 우라노스가 생식력을 잃으면서 그의 집권기도 끝나게 되고, 더 이상 하늘과 땅이 붙어있지 못하면서 하늘과 땅 사이엔 경계가 생겼다.

    한편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헤어진 후에도 그와 맺었던 성관계에 중독되어 한동안 외로움을 심하게 탔다고 한다. 이후 자신이 스스로 낳은 또 다른 아들인 폰토스에게 빠져들게 되고, 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폰토스를 유혹한 뒤 사랑을 나누어 자식들을 낳으면서 재혼한다.

    이후 자식들을 낳을 때마다 계속 삼키는 남편 크로노스의 악행에 분노한 레아제우스를 출산할 때가 임박하자 우라노스를 찾아와 계책을 짜내 줄 것을 간청한다. 우라노스는 레아의 말을 기꺼이 들어주고 크로노스에게 일어나기로 예정된 모든 일들을 그녀에게 말해준 뒤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제우스의 탄생 이후 전혀 언급이 없지만 죽은 건 아니다. 비록 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해 지배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그 후로도 전혀 죽지 않았으며, 단지 가이아와 멀리 떨어져 분리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라노스와 가이아는 멀리 떨어져 별거하는 중이지 그들은 절대 이혼해서 남남인 사이가 아니하고 생각하였다


    가이아(Γαῖα) 또는 (Γῆ)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여신이기도 하고 세상을 모두 지배하는 지배여왕이라는 애칭도 있다.
    대지와 만물의 여신이며 창조의 여신으로 태초의 모든것들을 낳은 태초의 어머니이다.
    로마 신화텔루스(라틴어: Tellus) 영어 이름 테라와 동일시된다.
    지모신의 형태로 보면 된다. 옛날, 세상이 혼란의 덩어리 카오스이던 시절. 카오스에서 태어난 최초의 여신이라고 전해진다.

    헤시오도스가 쓴 《신통기》에 따르면, 카오스타르타로스 등과 더불어 태초부터 존재해왔던 태초신이라고 하며, 또한 카오스의 유일한 아내이자 딸이라는 설도 있다.

    우라노스폰토스의 어머니이자, 또한 에레보스닉스아이테르 등 많은 남매들을 낳은 어머니신이다. 아버지 카오스를 남편으로 최초로 맞이하고 에레보스, 닉스 등 낳았다고도 한다. 또 아들 우라노스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 족키클롭스, 피톤 등의 괴물을 낳았다. 우라노스가 크로노스에게 거세를 당한 후에는 또 한 명의 아들 폰토스를 남편으로 삼았다고 한다. 가이아의 또 다른 남편들 중에서는 티탄족의 왕이자 아들인 오케아노스와 손자인 포세이돈 그리고 하데스, 제우스가 있으며 그들을 통해서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기독교 신관

    신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보면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록 막연하게나마 어떤 신적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인류의 대다수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을 믿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신이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를 신으로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보면 신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이 선악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즉, 신은 선한 존재라고도, 악한 존재라고도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하고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선하다', '악하다'라는 판단은 인간의 생각이고, 인간적인 구분일 뿐이라는 것이죠. 
    신은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 인간적인 판단, 인간적인 구분을 초월한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범신론적 신관이 바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신론이란 신과 이 세상을 거의 동일시하는 사상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신의 표현이자 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런 신관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현대인들이 좋아할 만한 신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범신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종교적인 신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관과 대조되는 신관이 바로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입니다.

    기독교의 신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분이며,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십니다. 
    신은 선악을 초월한 신비롭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입장이 분명하신 분입니다.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는 분
    이시죠. 
    이러한 신을 믿는 것은 때로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단지 신비롭기만 한 존재라면, 선과 악을 따지지 않는 신이라면 믿기가 편하고 좋겠지만, 기독교의 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악이 있잖아요. 성경이 말하듯이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 안에 어둠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우리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루이스는 기독교를 '전투적인 종교'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기독교가 선악의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여기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범신론에서의 신은 마치 거대한 바다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선과 악이 모두 용해되어 사라지는, 그런 거대한 바다 같은 존재이죠. 하지만 기독교의 신, 하나님은 그런 바다 같은 존재가 아니라 불칼 같은 존재입니다. 불처럼 선을 사랑하시고, 칼처럼 악을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악과 우리 인간 안에 숨겨진 모든 악을 반드시 도려내고야 말겠다는 작정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이 칼은 사실 사랑의 칼입니다. 의사의 칼과도 같습니다. 정말 환자를 사랑하는 의사라면 그 환자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하고 비명을 지르더라도, 그 암을 도려내기 위해 칼을 들이댈 것입니다. 그래야 환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죠. 기독교의 하나님은 만사 오케이,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을 바로잡으라고 명령하시고, 너희는 이 세상에서 악의 편이 아니라 선의 편에 서라고 명령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선과 악 - 이원론

    "선한 신이 만든 세상이 왜 이렇게 나빠졌을까요?"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의 전통적인 대답을 하기 전에, 루이스는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이 세상에 악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악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루이스는 이런 예를 듭니다. 물고기는 축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까요? 모르겠죠. 물고기는 원래 물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축축하다는 개념이 없을 겁니다. 물 바깥에 사는 생명체들이라야 축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 바깥의 세계를 알고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만약 이 세상이 원래부터 악하기만 한 곳이었다면, 인간은 악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악하다'라는 말은 다시 말해 '선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선이 무엇인지 아는 존재라야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인간이 악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말하자면 인간은 악의 바깥 세계를 알고 있는 존재이고, 사실은 원래 그 바깥 세계에서 살도록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악을 자기 자신에게 느낀다는 것, 심지어 이 세상에 악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해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이 세상은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세상이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기독교의 교리를 뒷받침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까 말했던 범신론에서는 이러한 질문, 즉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제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이니 선이니 하는 것들은 인간의 생각일 뿐이지, 신의 관점에서는 진짜 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이런 심각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범신론은 선악의 문제를 그렇게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사상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간단한 대답을 제기하는 사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원론입니다. 이원론은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신이 있고, 그와 대등한 악한 신이 있어서 이 세상은 이러한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영원한 전쟁터라는 종교 사상, 철학 사상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선한 신으로부터 오고, 나쁜 것들은 악한 신으로부터 온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악은 원래 있는 것입니다. 악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냥 존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원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선한 신, 즉 하나님과 대등한 악한 신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천사들을 창조했는데, 그 천사들 중 일부가 타락해서 악이 생겨난 것입니다. 악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만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철학적, 신학적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선하신 분인데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가 떠오르고, 거기에 대한 답이 요청되는 것이죠.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아까 얘기했던 이원론은 따지고 보면 너무 단순한 생각입니다. 한번 생각해볼까요?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한 신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를 악한 신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그 두 신 위에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는 것을 상정하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 신의 절대적인 표준을 상정해서 그 표준에 비추어 어떤 신을 선한 신이라 하고, 또 다른 신을 악한 신이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선과 악은 깊이 생각해보면 대등한 원리가 아니라, 악은 선에 기생하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철학에서는 선악을 이야기할 때, 악이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어둠이 있습니다. 어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악도 있지만, 그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이 없고, 선이 결여된 상태를 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악은 있지만 선이 존재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악은 궁극적으로 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원론은 이 세상을 선과 악이 싸우는 영원한 전쟁터라고 생각하지만, 기독교는 이 세상에 합법적인 왕이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세상의 일부 지역에서 말하자면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란은 반드시 언젠가 진압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반역자들에게 일부 점령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적들의 점령 지역, 이것이 현재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말하는 것은 합법적인 온 우주의 왕이 이 세상에 반란 지역으로 변장을 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채 침투해서 지금 이 세상에서 거대한 반란 진압작전, 수복작전을 펼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이 거대한 수복 작전에 동참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좋았던 세상이 지금은 비록 나빠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소망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되었을까? - 인간의 자유의지 - 사랑과 기쁨과 행복을 위해

    그렇다면 다시 중심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된 걸까요? 기독교의 대표적인 답변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인간은 그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께 등을 돌렸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악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까요? 자유의지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나빠졌잖아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에게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이 가능한 것도 자유의지 때문이지만, 사랑이나 기쁨이 가능한 것도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을 위해 기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컴퓨터가 있다면, 그 컴퓨터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는 것이 왜 감격스럽고 기쁜 일일까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해 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의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을 줄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준다는 것은 사랑을 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주기로 선택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 만물은 자유의지가 없는 존재이지만, 오직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오직 하나님만이 누리고 있는 이러한 인격적인 사랑과, 인격적인 사랑에서 오는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고귀한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고자 하신 행복은 사랑과 기쁨의 철저한 자유와 자발적인 하나님과의 연합, 그리고 이웃과의 연합에서 생겨나는 행복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에 비하면 지상에서 남녀가 나누는 가장 평온한 사랑조차 물 탄 우유처럼 싱거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행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인간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일종의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러한 모험을 하신 것이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지 못해서 하는 생각입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만이 누릴 수 있는 이러한 충만한 사랑과 기쁨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모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셨고, 또한 우리가 이후에 보겠지만, 이 모험에 따른 대가를 스스로 감당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부족해서 죄를 지었을까?

    또 다른 질문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지금보다 더 탁월한 존재로 만드셨다면,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라고 묻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더 탁월한 존재일수록, 타락하지 않으면 더 찬란한 존재가 되지만, 타락하면 더 끔찍한 존재가 됩니다. 인간보다 더 탁월한 존재로 창조된 것이 천사입니다. 천사는 영적 존재니까요. 하지만 천사가 타락하면 마귀가 됩니다. 인간의 타락 이전에 우리는 천사의 타락이 먼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왜,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루이스는 인간이 타락하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여 우리가 추측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아까 얘기했던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인간에게 자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본질은 자기 중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자기를 중심으로 도는 거죠. 내가 중심이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 모든 너, 모든 상대,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나를 중심으로 도는 위성으로 여기고 취급하는 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내가 중심이고, 내가 주인이고, 내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죄의 본질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악마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했죠.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처럼 되려 하지 마라." 이것이 바로 사탄이 지은 죄였고, 사탄이 인류에게 가르친 죄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말은, 다시 말해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왕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겠다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중심, 진정한 주인,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제쳐놓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나님 바깥에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것입니다. 루이스는 이러한 시도를 "가망 없는 시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그러한 가망 없는 시도로부터 인간의 역사, 즉 돈, 가난, 야망, 전쟁, 매춘, 계급, 제국, 노예제도 등 하나님 외에 무언가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인간들의 길고 무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바깥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인간의 시도가 가망 없고 부질없는 시도인 것은,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루이스는 아주 적절한 비유를 듭니다. "자동차는 기름을 넣어야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것을 넣으면 달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넣어야 달릴 수 있도록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스스로 우리 영혼이 연소시킬 연료가 되시고, 우리 영혼이 먹을 음식이 되신 것입니다. 다른 연료나 음식은 없습니다." 마침내 이 말은 이렇게 해석됩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행복이나 기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고, 그래서 세상과 인생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러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무엇을 하실까?

    하지만 이런 세상, 이런 인간을 하나님이 그냥 두고 보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무언가를 하셨습니다. 바로 기독교가 가르치는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세상,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을 다시 부르시기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루이스는 네 가지 단계로 설명합니다. 

    양심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양심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게 되면 이 양심이 더 예리해집니다. 불칼 같은 하나님의 영을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자신의 양심의 소리대로 살고자 노력했던 인간들이 있었고, 그러나 자기 양심의 목소리에 100% 순종했던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꿈 - 신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두 번째 일은 루이스가 이야기한 것인데, 이는 우리가 교회에서 잘 들어보지 못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루이스는 이것을 "좋은 꿈"이라고 부릅니다. 세계 여러 민족에 공통적으로 퍼져 있는 아주 특별한 종류의 신화가 있습니다. 어떤 신적인 존재가 있는데, 그 신적인 존재가 어떤 죽음과 부활을 겪고, 그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민족이나 나라, 부족에 하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기독교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에 매우 유사합니다. 세계 도처에, 기독교 이전 시대부터 예수님 이야기와 유사한 신화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루이스는 오히려 이러한 이야기들이 없었다면 더 이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화는 일종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꿈, 인류가 집단적으로 꾼 꿈이 바로 신화입니다. 칼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인류의 신화는 집단 무의식을 공유하는 인류가 집단적으로 꾼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를 닮은 그러한 신화들은 바로 그런 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시기 전에 유대인들에게는 먼저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미리 가리켜 주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신화를 보내주셔서, 특히 죽음과 부활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를 꿈꾸게 만드셔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는 손가락 역할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장차 실제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일종의 전주곡, 암시 같은 역할을 하게 한 것입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은 말하자면 신화가 사실이 된 사건이다."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듯이, 신화가 사실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을 다시 말해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꿈같은 것들이 참말로 현실이 되었다." 인류가 꿈꾸었던 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이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나라들의 홍수 신화 등을 이야기하며, 성서의 내용들도 그냥 여러 신화들의 영향을 받았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성서의 내용과 유사성을 보이는 신화의 내용들이 성서의 내용을 미리 '꿈'꾸게 한 것이었기에 유사함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이 점이 재미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심 - 참된 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세 번째로 하신 일은, 많은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진정한 신, 참된 신이 무엇인지를 심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인류 대다수는 어떤 신을 믿기는 했지만, 그 신은 무시무시하고 신비로운 존재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예언자들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의로우신 분이며, 무시무시할 정도로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셨습니다.

    이방 종교의 신들은 단지 성전에서 인간들이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 만족하는 신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신은 이 땅에서 사회 정의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종교적 행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거부하다가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는 혹독한 심판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러한 신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성육신

    네 번째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입니다.
    루이스가 살던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많은 유럽의 지성인들, 혹은 일부 신학자들은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면서, 예수님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만 여기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으로는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말씀 중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라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루이스는 "이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가령 제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는데, 어떤 제3자가 저에게 와서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서로에게 짓는 모든 죄는 동시에 하나님께 짓는 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너희 죄를 사하노라"라고 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루이스는 예수님을 단지 위인이나 훌륭한 교사 정도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논리를 들이대며 그들을 코너로 몰아넣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셨다. 이 주장은 참이거나 거짓일 수밖에 없다. 만약 거짓이라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주장했거나, 아니면 자신을 잘못 생각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예수님은 최고의 사기꾼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과대망상증 환자일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의 선택지는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뿐이다." 당신이 보기엔 예수님이 사기꾼 같습니까? 아니죠? 그렇다면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보이나요? 그것도 아니죠. 그러면 남아 있는 선택지는 오직 하나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그 앞에 경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나타났는데, 좋은 점도 있고 훌륭한 말씀도 하셨지만, 그가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가 그 사람을 단지 훌륭한 사람으로만 여길 수 있을까요? 없죠? 그렇죠? 그러니 루이스는 당대의 유럽 지성인들에게 "예수님을 그저 훌륭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는 어정쩡한 태도는 역사적 기독교가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입장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이 논리가 어떻습니까? 루이스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논리를 우악스럽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논리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분명한 것은 역사적 기독교, 정통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예언자 이상의 분으로, 인류의 위대한 스승 이상의 분으로,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이자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 위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단지 위대한 스승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인류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루이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지 좋은 어드바이스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해 굿 뉴스, 복음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라고 강조합니다.

    복음 - Good News

    그럼 굿 뉴스란 무엇일까요? 가령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다는 것은 좋은 어드바이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런 좋은 말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인류는 서로 미워하며 싸우고 있고, 그로 인해 구덩이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그 구덩이에서 건져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좋은 말을 전해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엄청난 일을 행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를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영어로 굿 뉴스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뉴스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이 땅에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이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니, 믿기 어렵죠? 하나님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의롭지 못한 죄인을 위해 죽으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어야만 이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루이스는 "이것이 기독교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하셨고, 그 죽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으며, 그가 죽음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힘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인간의 죄로 인해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망 권세를 무력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에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기독교인은 이 기독교의 핵심을 믿지만, 더 나아가 이것을 한번 이해해보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왜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가졌을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걸까? 그 사실을 이해해보고 싶은 것이죠. 여러 가지 설명과 이론이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 있는데, 죄를 지으면 인간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에 대한 벌로 죽어 지옥에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게 하심으로써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은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설명은 예수님의 죽음이 왜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여러 이론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루이스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논리를 소개합니다. 교회에서 잘 듣지 못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루이스는 "예수님의 죽음이 왜 특별한 능력을 가졌는가?"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이론들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죽음이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그 사실 자체가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왜 그런지 설명해주는 이론이나 설명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가령 인간은 밥을 먹으면 힘이 납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설명해주는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그 이론들은 계속 업데이트되며, 완벽한 이론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완벽한 이론은 있을 수 없으며,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그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 역사상 어느 지점에서 인류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이 세상 바깥에서 이 세상 안으로 뚫고 들어온 사건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천지창조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일어났다." 이 사건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루이스는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론은 부차적이라고 이야기한 다음, 자신이 선호하는 다른 이론을 소개합니다. 

    구원 = 하나님께로 돌아감 = 회개 = 항복

    그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이라고 하면 다시 말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떠났던 인간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이 구원받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여러분이 "회개"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하는 장면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는 단지 그런 모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회개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사실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 돌아간다는 말처럼 모순된 표현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회개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중요한 것은 회개의 본질이 사실 항복이라는 것입니다. 항복. 왜냐하면 인간은 단순히 개선이 필요한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반역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여기까지가 기독교 신앙에 입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왕이시며 중심이신데,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며, 내가 왕이며, 내가 중심이었습니다. 이런 죄의 본질을 깨달을 때, 인간은 내 안에 반역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질 때 진정한 기독교적 인간관과 죄에 대한 사상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지 내가 지었던 죄에 대해 후회하거나 슬퍼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회개는 반역자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 내 몸과 영혼 안에 깊이 새겨진 고집과 자만과 죄를 도려내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죽는 것 같은 경험입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뜻을 꺾고 내가 죽어야 합니다.





    에스라 1장 요약 / 포로들의 귀환길

    고레스가 이스라엘 민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고 사로잡혀간 백성들이 돌아옵니다.고레스가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그릇을 세스바살에게 주엇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 장별연구(1장) : 고레스 칙령

    ​I. 본문 이해와 질문

    1.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1-4절)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온 나라에 칙령이 내려졌다(기원전 539년).
    '바사'(페르시아, Persia)는 바벨론에 이어 등장한 제국이다.
    바벨론 제국은 초대 왕인 느브갓네살이 기원전 562년에 죽은 뒤에 그를 이은 여러 왕들, 즉 에윌므로닥, 네르갈사레셀, 나보니두스 등이 즉위하지만, 급속하게 몰락하였다.
    특히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는 우르와 하란의 달 신을 섬겼기 때문에, 그 당시 바벨론의 수호신인 마르두크(Marduk, 렘 50:2)를 섬기고 있던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 멸망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는 또한 치세 후반기에 아들인 벨사살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섭정을 통해 바벨론을 통치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고레스이다.
    '고레스'는 그의 할아버지 고레스 1세와 구분되는 고레스 2세로서, 부친인 캄비세스 1세를 이어 바사의 왕이 되었다.
    그는 서쪽으로 리디아까지, 동쪽으로 멀리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러한 바사의 팽창으로 위협을 느낀 바벨론은 고레스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정비하였지만, 기원전 539년 티그리스 강을 따라 진격한 고레스에 의해 멸망하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다니엘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단 5:30-31). 한편, 바사의 전성기 때에는 동쪽으로 인더스 강, 서쪽으로 이집트와 그리스 반도, 남쪽으로 티그리스 강, 북쪽으로 아르메니아 산맥과 카스피 해까지 거대 제국을 형성하였다.

    '태양'이라는 뜻을 가진 고레스(Cyrus)는 62세에 왕위에 올라 기원전 539년부터 529년까지 11년 동안 바사 제국을 통치하였다.
    따라서 고레스 원년은 기원전 539년을 가리킨다.

    그때 고레스 왕은 자신이 통치하는 온 나라에 칙령을 내렸는데, 그것은 공포와 조서의 두 가지 형태로 내려졌다.
    '공포'는 사자들의 음성을 통해 온 나라에 울려 퍼지는 것을, '조서'는 사자들이 전달한 문서화된 왕의 명령을 말한다.
    그가 내린 칙령에는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첫째, 여호와께서 나에게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명령하셨다(2절).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3절).
    셋째,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러 사는 지역의 사람들은 그들을 도와주고, 예루살렘에 세울 성전을 위해 예물을 기쁘게 드려라(4절).

    첫째 내용은, 칙령이 내려진 근원적인 배경을 담고 있다.
    그 칙령이 내려진 이유는 고레스 왕의 자발전인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에는 역사의 주인공이 제국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리셨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였다(1절).
    하나님은 이 일이 있기 전에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약속)하셨다.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5:11-12; 29:10).

    둘째 내용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고레스의 순종이 들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지 않고 순종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가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분의 음성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선지자 이사야는 그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하였다(사 44:27-28;45:1-5).

    셋째 내용에는, 앞선 둘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남아 있는 백성'은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대부분 유프라테스 강 하류의 메소포타미아 평야 지대에 거주하고 있었고 더러는 페르시아 곳곳에 흩어져 살기도 하였다.
    왕은 그들과 함께 거주하는 곳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그리고 그곳에서 성전을 건축할 때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라고 명령하였다.
    금과 은, 물건, 짐승, 예물 등과 같은 것이 없이 돌아가게 될 경우, 그들에게 예루살렘 귀환과 그 이후의 성전 건축은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 사람들로부터 금, 은, 물건, 짐승, 예물 등을 가지고 나오게 될 모습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의 상황(창 13;1-2),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상황(출 12:35-36), 블레셋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수레에 실려 나올 때의 상황(삼상 6:4,8)과 유사하다.

    하나님은 왜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는가?

    그 이유가 고레스 왕의 고백 속에 들어 있다.
    즉 그분이 하늘의 하나님, 참 신이시고, 또 세상 모든 나라를 자신이 지정한 왕에게 주고 명령하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계신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늘의 하나님'은 '하늘'이 상징하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참 신'은 '거짓된 신'과 대조되는 말이다.
    거짓은 그 안에 공허한 부재와 나쁨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로 참은 그분의 실재하심과 선하심을 의미한다.
    '나라를 주신다'는 말은 그것에 대한 주도권이 세상의 왕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뜻으로, 역사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시는 그분의 속성을 들어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모든 회중 앞에서 송축하였던 다윗의 고백 속에 들어 있기도 하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또한 '예루살렘에 계신다"는 말은 그분이 하늘에 앉아 팔짱을 끼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그 계심을 직접적으로 나타내 보이신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도 하지만 친히 그분 자체이시기도 하다(눅 5:17-26;요 1:1,14;14:9).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살렘 귀환(5-11절)

    고레스 왕의 칙령이 내려지자 그 칙령에 따라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났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일어난 사람들은, 유다와 베냐민, 즉 남 유다의 지도자 그룹인 족장들, 성직자 그룹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모든 이들이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지도자와 성직자 그룹 이외의 별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문에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즉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자원하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역으로 하나님께 감동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전 건축을 위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정착하면서 많은 재산도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미 구축한 삶의 터전을 떠나 황폐한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렘 29;4-7;겔 33:30-33). 그 결과 많은 유대인이 귀환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인 49,897명만 1차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2:64-65).

      성전 재건을 위하여 일어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던 사람들은,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의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였다. 즉 그들은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는데, 이는 그 내용을 지시하고 있는 4절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은 그들이 모든 것을 '기쁘게' 드렸다는 점이다. 비록 왕의 명령에 따라 이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자원해서 드리지 않고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쁘게, 즉 자원해서 드렸다. 그들의 이런 태도에는 두 가지가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전 재건을 위해 일어났던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는 이웃들과의 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둘째, 그 일이 하나님의 개입과 인도하심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칙령을 내리게 하신 하나님은(1절), 동일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던 사람들의 마음도 감동시키셨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또 그것을 받아 누리게 하시는 일의 주체가 되시는 분이다(딤전 6:17).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는 일에 고레스 왕도 동참하였다. 그는 당시 창고지기인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여호와의 성전 기명, 즉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였던 기구와 그릇을 꺼내어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었다. 이에 세스바살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 그것들을 다 가지고 갔다. 왕이 넘겨 준 그릇의 수효는 금 접시 30개, 은 접시 1,000개, 칼 29개, 금 대접 30개, 금 대접보다 못한 은 대접 410개, 그 밖의 그릇 1,000개였는데, 금과 은으로 된 그릇이 모두  5,400개였다. 여기에서 '접시'는 음식을 담거나 물품을 제공할 때 사용하던 그릇인데, 영역본에서는 이를 '큰 접시'(KJV, charger), '타원형의 큰 접시'(NKJV, platter), '쟁반'(NLT, tray) 등으로, 또 공동번역에서는 '대야'로 번역하고 있다. '대접'은 성전에서 사용하던 덮개가 있는 잔을 가리키는데, 영역본에는 '사발'(NIV, bowl), '물 대접'(NKJV, basin)으로 번역하고 있다. '칼'은 문자적으로 칼(knife)를 가리키지만, 70인역(LXX)에는 '기구'로, 영역본에는 '냄비'(NIV, pan), '향로'(RSV, censer), '복제품'(NASB, duplicate)으로 번역하고 있다. '칼'을 그릇으로 볼 경우 그릇은 도합 2,509개가 되는데, 이는 마지막에 제시한 합계 숫자 5,400개와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일부 주석가들은 당시 필사자들이 그 숫자를 잘못 계산하여 기록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2,509개라는 숫자는 당시 고레스 왕의 명령에 따라 가치 있는 것들만 특별히 계수한 것으로, 실제로 그것을 포함한 모든 그릇의 숫자가 5,400개였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한편 '창고지기'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국가의 중요한 물품을 관리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였던 용어로 보인다. 그래서 KJV, NIV 등의 영역본에는 이를 '보물 관리인'(treasurer)으로 번역하고 있다. 유다 총독인 '세스바살'은 문자적으로 '불의 숭배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름이다.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스룹바벨과 동일 인물로 보는가 하면(3:2), 또 다른 일부에서는 스룹바벨이 아닌 다른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전자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데, 이는 이후부터 세스바살이라는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또 그토록 중요한 성전 기명들은 포로들을 인솔하는 총책임자에게 인계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비롯된 것이다(1차로 포로 귀환을 인솔하였던 인물은 스룹바벨이다). 

    [질문] 7-11절에는 성전에서 사용되던 기명들이 바벨론의 신당에 있게 된 배경(7절), 그것이 세스바살에게 넘겨진 과정(8절), 그리고 기명들의 정확한 숫자를 기술하고 있다(9-11절). 이와 같은 내용을 에스라가 이토록 구체적으로 기록한 의도는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특히 기명들의 종류와 숫자를 구체적으로 적고 있는 9-11절은 어떤 면에서 기명들의 합계만 기록하고 생략해도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의미가 심대하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를 정복하고 그곳 신당에서 사용하던 물품들을 자신들이 섬기는 신당에 보관하는 일은 고대 중근동의 일반적 관습이었다. 이를 통하여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우월성을 천하에 과시하고 피정복민들에게는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따라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던 기명들이 바벨론의 신당에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등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안겨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명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은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수치심을 자부심으로 회복하는 전환점이 된다. 에스라는 기명들의 종류와 숫자를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바로 그런 사실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상징적인 면에서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던 기명들은, 실제적인 면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더라도 기명들이 없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다. 그 많은 것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느브갓네살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을 모두를 다시 제작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명들을 귀환할 때 반드시 가져가야 할 물품이었다. 에스라는 이를 놓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성전 재건 이후에 새로운 기명들을 제작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 있다는 사실의 중요성 강조하였던 것이다.



    II. 메시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스라 1:1-11)

    ​1. 에스라서 개관

    에스라서는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기록한 책입니다. 바사(Persia)의 초대 왕 '고레스'가 즉위 원년에 내린 칙령(고레스 칙령)에 따라, 느브갓네살 왕 때 바벨론으로 잡혀 온 남 유다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와 같은 포로 귀환은 총 세 차례 이루어지는데, 1차는 기원전 537년 '스룹바벨'의 인솔 아래 5만 명 정도(종들까지 포함)가 돌아와 온갖 방해를 극복하고 마침내 기원전 515년 제2의 성전(스룹바벨 성전)을 완성합니다. 제2의 성전 건축은 586년 남 유다가 멸망한 이후 만 70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2차 포로 귀환은 1차 포로 귀한 이후 80년이 지난 기원전 458년에 이루어지는데, 이때 '에스라'가 1,754명을 인솔하여 돌아옵니다. 그리고 3차 포로 귀환은 기원전 444년 선지자 '느헤미야'의 인솔 아래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에스라서는 1, 2차 포로 귀환 때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에스라서는, 1-6장에서 1차 포로 귀환 과정과 성전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7-10장에서 2차로 귀환한 에스라에 의해 종교개혁과 대부흥 운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아래 도표 참조).

    2.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말씀은 고레스 왕이 내린 조서, 즉 '고레스 칙령'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1절). 바사, 즉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원년에 온 나라에 칙령을 내리게 된 배경 속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지혜와 사랑으로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돌보고 이끄시는 통치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리게 된 것은 그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내린 것으로, 여기에는 특별히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나님은 이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또 약속한 것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3절).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남 유다가, 더구나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던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주권을 빼앗긴 후 해방이 되기까지, 또 수많은 강제 노동자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기까지 3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그 일도 36년이나 걸렸는데,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고 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은 그것의 두 배나 되는 긴 시간대입니다. 이 사건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거짓말이나 후회가 들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반드시 실행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유프라테스 강가의 술사인 '발람'도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하고, 그 약속에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아멘'하고 반응할 때,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첫 번째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 이렇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면,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그분의 성품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레스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사람들은, 포로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자유인이 되어 에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명'입니다.

      ​​2-3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왕에게 명령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곳으로 올라가 놀고먹지 말고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남아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유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전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던 삶에서 돌이켜서, 이제부터 하나님을 그들 삶의 한가운데에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또 그분과 함께 살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들에게도 크나큰 축복이 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신을 위해 자기 마음대로 사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성전 재건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약속하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사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 우리 시대에 와서도 변치 않고 동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유다가 멸망한 이후까지 수도 없이 메시아(그리스도)를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대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고전 15:3-4).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예수님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롬 14:9), 이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우리에게 유다의 남은 자들처럼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제시되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위해 몇몇 사람들만 올라가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3절). 만약 성전 건축을 위해 몇몇 사람들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면, 성전은 결코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세워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몇몇 사람만 참여하여 세울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기적으로 한 몸을 이룬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를 건강하고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다 참여해야 합니다. 나 혼자 빠져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교회는 병들고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이 고레스 왕을 통해 남은 자들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을 주셨을 때,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났다"고 에스라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 재건은 이렇게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자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이 교회를 세워나갈 때, 교회는 그때서야 비로소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띨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도 받지 않고 또 억지로 교회 세우는 일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를 허물고 병들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다 일어나야 하고, 또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우리 안에 충족될 때, 우리 교회는 비로소 주님이 기뻐하는 건강한 교회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이 조건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갖추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자원까지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그 약속 안에 소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는 '자원까지 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세 번째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게 하실 때, 그들을 빈손으로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성전 건축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그들의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6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살게 될 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되 이웃의 물품을 강탈해서 취하게 하지 않고, 그 이웃들이 자발적으로 기쁘게 돕고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7-11절에 보면,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성전 그릇을 고레스 왕이 창고지기인 미드르닷을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내 주는데, 그 수효가 5,400개라고 구체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소명만 달랑 넘겨주면서 그 뒷일을 책임지지 않는 분이 아니라, 소명을 주실 때 그 소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구체적으로 그 수효까지 세어 가면서 채워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  ​그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함께하시는 분일까요? 그분은 지금도 그때와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소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원을 더욱 차고 넘치도록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시기도 한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주실 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19-20). 다시 말해서 그 사명을 받은 우리는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자원까지 통째로 받은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소명을 주실 때,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 즉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것도 함께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6:33).

    ​5.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우리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후회 없는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약속을 지키실 때 소명과 함께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는 모든 자원까지 구체적으로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손수 우리 손에 쥐어 주신 자원이신 예수님을,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을 주님(주인)으로 굳게 붙잡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소명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모두 다 자원하여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오늘 우리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2장 요약 / 귀환 포로들의 명단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포로로 잡혀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과 가문과 숫자에 대해,돌아온 무리의 수는 42,36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중 : 42,360명
    노비 : 7,337명

    에스라 3장 요약 / 성전 기초를 놓다

    귀향 7개월만에 제단을 쌓고서 번제를 드렸으며 초막절을 지켰으며 귀향 2년 2개월부터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4장 요약 / 사마리아인들의 훼방

    유다의 대적들이 성너전의 건축을 함께하자고 제안하지만 스룹바겔이 거절합니다.
    대적들이 성전의 건축을 방해, 페르시아 왕에게 성전 건축의 부당합을 고발합니다.
    페르시아 왕의 명령으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월 24일(토) 에스라 1-4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늘의 신(1:2)

    바사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This is what Cyrus king of Persia says: " 'The LORD, the God of heaven, has given me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and he has appointed me to build a temple for him at Jerusalem in Judah.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라고 선포합니다.

    당시 바사의 종교는 이원론적 신관(神觀)을 갖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아리만(Ahriman)
    흑암을 다스리는 신

    둘째는 오르무즈(Ormuzed)
    광명을 다스리는 신
     
    그런데 바사 왕 고레스는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고레스 왕의 이와 같은 선포의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때문(사 45:1. 44:28).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둘째는 포로가 된 유대 백성들의 환심을 얻기 위하여

    포로가 된 유대인들은 고향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하던 그 시절이 매우 그리웠습니다.
    고레스 왕은 유대인들의 이와 같은 마음을 잘 알았기에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며 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할 때 21대 대통령 선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유대한민국이란 체제를 계속 유지하느냐?
    아니면 조선인민민주의 체제로 전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에 의해서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따라서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더러운 꼴을 못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세대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세상에서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할지라도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주조건 김문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합니까?
    만일 나라가 무너지면 그 모든 조건은 버려야 할 더러운 휴지조각과 같습니다.

    지금은 이재명이냐?
    무조건 김문수이냐?

    믿음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분별의 영을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올바른 사람을 선택합시다.
    후손들을 위하여 우리가 지금껏 누렸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희생합시다.
    내 마음에는 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레스는 오르무즈드 대신 여호와라고 함으로써, 피정복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유하려고 했습니다.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다고 말한 것은 분명치는 않으나 고레스는 다니엘의 영향을 받아 자신에게 엄청난 승리가 주어진 것을 이사야 45:1 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한 여호와의 섭리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Rawlinson).
    이 같은 고레스의 생각은, 그 당시의 페르시아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신관(神觀)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신' 오르무즈드는 세상의 왕들에게 권세를 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고레스는 여호와에 대한 참 지식을 소유하지는 못했으며 다만 자신의 민족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신관에 따라 여호와를 이해했을 뿐입니다.
    또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고 말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으나, 히브리 원문에는 나를 명하사 앞에 대명사 `그가'에 해당되는 `후'(*)가 있다는 점에서 이 구절은 매우 강조적인 표현입니다(요 10:1).
    한편 `명하사'(파카드)는 `위임하다' 혹은 `임명하다'의 의미로 이해됩니다(창 39:4; 41:34; 레 6:4; 렘 40:11).
    따라서 본 구절은 고레스가 스스로를 여호와의 대리자로 임명받은 자라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다니엘의 영향이 일조(日照)를 했다고 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를 강권적으로 감동시키신 결과였습니다(1절 주석 참조).
    `유다'는 고레스 당시에 페르시아의 여러 `도'(Province) 중의 하나로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여기의 `유다'는 옛적에 일개 국가로 존립했던 지역으로서의 유다로 이해함이 무난합니다(Williamson).
    그렇다고 본다면 고레스가 굳이 `유다' 라는 호칭을 여기서 사용한 것은 그 지역이 대적에게 멸망되었던 슬픈 역사를 상기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것입니다.
    `예루살렘'도 그 당시에는 여전히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고레스에게 있어서 다른 민족들의 성전이나 제단 등을 복구시켜 주는 일은 주된 통치 정책 중의 하나였습니다(Kidner).
    그의 다신론 사상은 근래에 발견된 한 비문을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르면 그는 바벨론의 주신(主神)이 그 백성들에 의하여 섬겨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말둑(Marduk) 이외의 다른 신들, 즉 `벨'과 `느보'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신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부탁했다고 합니다(Kidner).
    그러나 우리는 고레스가 여호와의 전을 재건할 필요성을 가졌던 사실을 다만 그의 일관된 통치 정책의 결과로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즉,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섭리가 개재되어 있었고 고레스는 적어도 이사야 44:28의 예언이 자신에 대한 것으로 알고 그것에 대해 순종했을 수 있습니다(Schultz).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바사왕국

    포로회복기
    (페르시아 제국)

    1. 페르시아의 영광과 쇠퇴

    바사는 인더스 티그리스 강 사이의 이란 고원에 본거지를 두었다. BC1500년경 아리안 족이라 하는 인도, 유럽 족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이 아리안 족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인도 쪽으로 다른 하나는 서쪽의 비옥한 초생 달 지역에 이르렀는데 이곳에서 메대와 바사의 두 왕국이 일어났다. 메데인은 그 땅의 북서부를 차지하고 바사는 남부지역을 차지하였다. 메대는 BC700년경에 대국을 이루고 BC 612년 시악사레스 왕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멸망시켰다.

    바사 족은 남하하여 엘람과 동쪽 지대를 점령하였으나 BC65O년경에는 앗수르의 앗수르바니팔에 의해 파멸되었다. 처음에는 메데의 세력이 더 강해서 바사를 지배했지만 고레스 왕 이후로는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게 되었다.

    고레스는 BC550년에 반란 중에 있던 메데를 제압하고 부친과 궁중정략 결혼으로 속국이 아닌 연합국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에1:19, 단6:8) 소아시아 리디아왕국(BC546). 바벨론(BC539)을 정복함으로써 바사 최대 세계 최강대국으로 세웠다.

    바벨론 무너뜨릴 당시에는 메디아인 세력이 더 컸다. 다니엘 5:31에는 바벨론 접수한 왕을“메디아인 다리오(고레스의 삼촌)”라 말하고 있다. 이때 바벨론을 무너뜨린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고레스였다. 또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다민족과 다른 민족들에게 해방령을 내렸다.(BC536년 스1:1-5)

    페르시아 제국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는(다리오1세 때부터) 인도에서 그리스 카스피 해에서 홍해와 아라비아 바다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다리오1세(다리오대왕)는 페르시아의 지경을 넓혔을 뿐 아니라 광활한 영토를 능숙하게 다스리는 행정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수산과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했는데 이 두 도시에 세워진 궁전들은 고대 페르시아의 웅대함을 잘 나타낸다. 수산은 에스더서의 배경도시이다. 이곳의 궁전은 베벨론 양식을 따랐다.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수산은 더 오랫동안 존속하다가 몽골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2. 성경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왕들

    1. 다리오(BC539-537)

    메데인이며 고레스 외삼촌이다. 고레스가 바벨론 정복당시 정복 왕국의 초대 왕이 되었 다(BC539). 성경에서 다리오에 대한 기사는 단 6장에 나옴.

    2. 고레스(BC536-529)

    고레스는 다리오 다음에 왕이 되어(BC538) 그의 왕조를 이어나간다(아케메네스왕조).

    바벨론 정복하기 전 BC559년 바사의 왕이었으며 다리오가 죽은 후 BC536년에 새롭게 왕으로 등장한다. 성경에서는 이때를 고레스 원년으로 말한다(스1:1). 고레스는 왕이 되자 바벨론에 사로잡혀갔던 유다의 포로들에게 귀환하라는 칙령을 내렸는데 이는 예레미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렘29:10, 스1:2-3)

    •유다포로들 귀환

    •바벨론 정복 후에는 바벨론 제국의 계승자로 자신을 제시함(스5:13)

    •세계사에는 고레스 2세 또는 고레스대왕으로 알려져 있다.

    3. 아하수에로(BC529-521) - 캄비세스

    유대에 1차로 귀환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인도 하에 진행되던 성전 공사를 그 땅의 이방인들이 방해 했을 당시의 페르시아 왕이다(스4:6)

    •세계사에서 캄비세스로 나옴.

    * 애굽까지 정복하고 귀국길에 죽는다(BC525년)

    4. 아닥사스다(BC521)= 아닥세스세스

    세계사에서 가짜 스메르데스로 나옴(마기승 가우마타). 캄비세스의 동생 스메르데스를 사칭하여 반란으로 왕이 되었다. 유대성전공사의 방해자들은 이 왕 때에도 방해 편지 보냄(스4:7-23) 스메르데스는 2개월 만에 귀족들에게 암살당한다.

    5. 다리오(BC521-485)=다리오 1세=다리우스1세=다리오대왕=다리우스 히스타페스

    다리오가 귀족들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 다리오1세는 페르시아의 영광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페르시아의 쇠퇴의 길을 걸었다.

    •고레스 칙령에 따라 성전 건축 승인

    •다리오 때에 성전이 완공된다(스6:1-15). (다리오, 크세르크세스 1세 → 505년에 공동 통치)

    •인도북서부까지 정벌, 소아시아 정벌 - 소아시아에서 살고 있던 이오니아인들을 일으킨 발란을 진압(BC499-493)

    •그리스 본토 침략하려다 마라톤 전쟁에서 패함(BC491년)

    6. 아하수에로(BC485-465) - 단독통치

    •크세르크세스 1세

    •그리스 침략하려다 즉위 7년 째 되던 해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한다.

    •이 왕이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 왕이다.

    7. 아닥사스다 = 아닥세르세스(BC465-423)

    •세계사에서 아닥세르세스1세로 불림 = 롱기마누스라고도 불림

    •에스라, 느헤미야 귀환시킨 왕(스7장, 느2장)

    어머니 : 폐위 당한 와스디, 나중에 에스더가 어머니 역할 함.

    8. 크세르크세스 2세(423)

    9.다리오2세(423-404)

    10.아닥사스다2세(404-358)

    11.아닥사스다3세(358-338)

    12.다리오3세(338-330)

    330년 다리오 3세가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에게 알벨라에서 대패한 후 그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해 아케메네스 왕조인 페르시아 역사 끝나고 헬라 제국시대 시작


    바벨론, 메대- 바사(페르시아)의 주요 왕들

    바벨론제국의 주요 왕들

    1. 나보폴라살과 느부갓네살

    신바벨론 제국의 왕들

    나보폴라살은 BC625년에 바벨론 왕이 되면서 갈데아 왕조를 세운다. 그는 앗수르 군대를 패배시킴으 로(BC609년) 대제국의 주인이 된다. 그는 일찍이 통치 초기에 왕궁수리와 더불어 아들 느부갓네 살에게 왕권을 선포. 이 둘은 앗수르 왕이 하란에서 항복하던 시기에 함께 있었고, 여기서 나보폴 라살은 바벨론으로 갔고, 느부갓네살은 3개월 동안 성을 약탈, 불 지르면서 전쟁의 선봉에 섰다.

    이때 앗수르 멸망과 더불어 이집트 왕 바로 느고는 자기의 세력을 위해 갈그미스로 올라와 느부갓 네살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다 왕 요시아가 바로 느고와 싸우러 나갔다가 므깃도에 서 죽게 된다.(대하 35:20-24) 이로 인해, 유다는 잠시 이집트의 영향아래 들어가게 되며, 바로 느고는 요시아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를 3개월 만에 폐위시켜 이집트로 잡아가고, 그의 형제 여호야 김(=엘리야김)을 왕위에 앉힌다.(대하 36:1-4)

    2. 바벨론의 왕성(BC605-562년)

    초대 왕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은 그 아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예언한 금 머리처럼 그의 43년 간의 통치기간은 황금시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세력을 시리아와 팔레스틴에서 일소해 버리고 오리엔트 상업의 이권을 차지하였다. 이때의 유다도 이집트의 영향 아래 있다가 바벨론으로 넘어가, 마침내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세 차례에 걸쳐 유배되었다.

    포로[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포로생활

    1) BC. 585년 : 메데인과 리디아인 사이에 휴전을 중재함

    2) 두로 13년간 포위

    3) BC. 568년 이집트 침략

    바벨론을 1세기도 못되어 당시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느부갓네살은, 군소국가의 정복과 상업독점으로부터 들어오는 막강한 재정으로 제국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당시 느부갓네살은 수도인 바벨론에 신전과 제단을 쌓았는데, 신들의 여왕인 이시타르를 위한 제단을 180곳에 세웠으며, 고대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세우기도 했다.

    3. 느부갓네살과 예루살렘 파괴(BC605-262년, 43년간 통치)

    갈그미스 전투는 느부갓네살이 이집트 세력을 꺾고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중요한 전쟁이었다. 이 대규모적인 전쟁에서 이집트는 크게 패배.(BC. 605) 이 과정에서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여호야김을 굴복시키고 백성 중 일부를 포로로 잡아간다. 이때 선지자 다니엘도 잡혀간다. 이때부터 공식적인 유대인들의 국가는 더 이상 없게 되며, 이것이 예레미야 예언에 따른 “황폐함” 이다(렘 25:11). 느부갓네살은 고대 바벨론을 위대하게 재건했으며, 43년간 통치하다가 BC562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4. 느부갓네살 이후의 왕들과 바벨론 멸망

    (1) 에윌므로닥(렘 52:31-34, 왕하 25:27-30)

    ① 유다 왕 여호야긴을 석방시켜준 왕

    ② 2년을 치리한 후 느부갓네살 사위 네리그릿살의 주축이 된 모반자들에게 죽임당함.

    (2) 네리그릿살

    4년을 치리한 후 BC. 556년 전쟁에서 죽음

    (3) 라보로소 알코드

    네리그릿살 아들(저능아) 1년도 못되어 맞아 죽는다.

    (4) 나보니두스

    ① 느부갓네살의 또 다른 사위로서 왕위 찬탈

    ② 네리그릿살의 아내와 결혼하여 바벨론 멸망(BC. 555-538)까지 치리한다.

    (5) 벨사살왕(바벨론 마지막 왕)

    주의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들로 술잔치를 벌일 때 하나님의 손이 나와 멸망을 기록 했으며 그날 밤 벨사살은 살해당했고, 바벨론은 멸망했다.(단5장)(BC. 539년 멸망)

    벨사살왕의 연회

    나보니두스는 전쟁터(페르시아와 전쟁)에 나가 있었고, 벨사살은 왕궁에 있으면서 대규모 연회를 가진 그날 밤 바벨론 도성은 이미 포위된 상태, 고레스는 바벨론 성읍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차단함으로 그 성을 무너뜨렸다.

    *세속 역사 속에는 나보니두스가 마지막 왕으로 되어 있고 벨사살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아버지 나보니두스 와 공동통치)

    ■ 메대-바사(페르시아)의 역대 왕들

    메대 - 바사(페르시아제국)

    0. 키루스 1세 [Cyrus I]

    - 고레스의 아버지 , BC 7세기말에 활동한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

    1. 고레스 (키루스 2세) (BC. 539-530 치리기간 : 30년)

    - 페르시아 제국의 건설자.

    - 캄비세스 1세의 아들.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 또는 고레스왕이라 고도 한다.

    - 이때에 1차 포로귀환. 세스바살을 포함한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 한다.

    유다의 포로 귀환

    2. 캄비세스 2세(BC. 529-522 치리기간 : 7년)

    - 고레스의 아들 이집트를 정복함..

    3. 바르디야(6개월),

    - 고레스의 동생이자 캄비세스2세의 동생으로, 실질적으로는 가우마타가 통치함.

    4. 다리우스 1세[대왕] 히스타페스(BC. 522-486 35년)

    - 흔히 다리우스 대왕(성경에는 다리오)이라고 함,

    - 스룹바벨과 예수아에 의한 성전재건 BC520~515(<다리우스 2년~6년 아달월>

    스 5:2~6:18)]의 배경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 스 5:1)

    5.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 1세(BC. 485-465; 20년),

    - 에스더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 약 BC 477년도에 일어난 일, 에스더 왕후 책봉

    6.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BC. 464-424; 40년)

    - 2차 에스라 포로귀환 , 3차 느헤미야 포로귀환을 시킨 왕.

    7. 다리우스 2세(BC. 423-405; 18년)

    8.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므네몬 (BC. 404-359; 45년)

    9.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오쿠스 (BC. 358-338; 20년)

    10. 아르세스(BC. 337-336; 1년)

    11. 다리우스 3세(BC. 335-331; 4년)

    리디아의 족보와 고레스의 족보

    페르시아의 최대 전성기

    ※ 참고 문헌

    - 「 성경과 5대 제국 」 조병호 지음, 통독원.

    - 「 성경과 고대전쟁 」 조병호 지음, 통독원.

    - 「 성서 그리고 역사 」 장 피에르 이즈부츠 지음, 황소자리.(내셔널지오그래픽)

    - 「 성서의 역사와 지리 」 김흔중 지음, 엘맨.

    - 「 다니엘서 강해 」 조용기 지음, 서울서적.

    - 「 지구의 운명을 지배하는 손 」 강병국 지음, 생애의 빛.

    - 고대사와 구약사, 인류의 기원과 역사,- 블로그 외







    하나님의 감동(에스라 1:1~11)

    에스라서는 바벨론 70년 포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기록된 책이다.
    당시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돌아올 때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과 그 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는 포로생활의 어려운 환경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도우시고 성전재건이라는 어려운 역사를 이루시게 하신 놀라온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1.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다(1절)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1.1.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예언을 이루심(대하 36:21~23)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1.2.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킴(1)
    하나님께서 한 나라의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일하셨다.

    1.3. 고레스가 공포하고 조서를 내림

    2. 고레스의 선포(2,3)
    2.1. 성전을 건축하라(2)
    【스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2.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참 신이시다(3)
    【스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3. 성전건축을 위한 예물(4~6)
    【스1: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3.1. 물질로 도우라(4)

    3.2. 성전건축을 위해 예물을 기쁘게 드리라(4)

    3.3. 사면 사람들의 도움을 얻음(6)
    【스1:6】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할 일인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은, 금, 보물과 짐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게 하셨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주는 사람들이 ‘기쁘게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면 도저히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출애굽기에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나온다.

    1) 너희가 빈손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출 3: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 애굽 사람들에게 구하게 함.
    【출 11: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출 11:3】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3) 구하매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심.
    【출 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출 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질을 주시기 위해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주인공(이스라엘 백성들)은 따로 있었다.

    하나님은 물질의 주관자이시다. 주시고자 할 때 어떤 장애물도 없다.

    3.4. 유다사람, 베냐민, 제사장, 레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심(5)
    【스1: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하나님께서 포로생활70년이 되매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감동하셔서 믿음의 사람들을 준비하시고 일어나게 하셨다.

    3.5. 빼앗긴 성전의 보물들을 돌려받음(7~11)
    예루살렘 성전의 빼앗긴 은, 금 그릇 등 많은 것들을 돌려받았다.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이었다.

    적용
    1. 하나님의 주시는 감동을 무시하지 말자!
    2. 하나님께서 물질의 주관자이심을 분명히 알자!
    3.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심도 알자!

    하나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것처럼 이 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원들과 국가인권위원장, 각 부의 장관들, 각 시의 시장들, 각 도의 도지사들, 각 도, 시, 구의 의원들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 나라에 차별금지법, 동성애법이 제정되지 못하게 하시고 모든 악법들이 철저히 무효화되어 하나님의 공의가 올바로 세워져 가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 소개할 구약 성경의 열다섯번째 장인 에스라 장별 요약 핵심정리입니다..

    성경을 어려워하시는 분이나 읽을려는 엄두가 나지 않으시는 분들을 위하여 앞으로 성경요약을 해볼까합니다.또한 성경을 읽을 때에는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전체 내용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합니다.

    구약성경 열다섯번째 에스라 배경

    포로귀환은 70년만에 귀환하리라는 예례미야 예언의 성취입니다.
    포로귀환자들의 인원이 적다고해도 이들이 자원자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에스라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향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에스라 1장 요약

    고레스가 이스라엘 민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고 사로잡혀간 백성들이 돌아옵니다.고레스가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그릇을 세스바살에게 주엇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온 나라에 칙령이 내려졌다. '바사'(페르시아, Persia)는 바벨론에 이어 등장한 제국이다. 바벨론 제국은 초대 왕인 느브갓네살이 기원전 562년에 죽은 뒤에 그를 이은 여러 왕들, 즉 에윌므로닥, 네르갈사레셀, 나보니두스 등이 즉위하지만, 급속하게 몰락하였다. 특히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는 우르와 하란의 달 신을 섬겼기 때문에, 그 당시 바벨론의 수호신인 마르두크(Marduk, 렘 50:2)를 섬기고 있던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 멸망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는 또한 치세 후반기에 아들인 벨사살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섭정을 통해 바벨론을 통치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고레스이다. '고레스'는 그의 할아버지 고레스 1세와 구분되는 고레스 2세로서, 부친인 캄비세스 1세를 이어 바사의 왕이 되었다. 그는 서쪽으로 리디아까지, 동쪽으로 멀리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러한 바사의 팽창으로 위협을 느낀 바벨론은 고레스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정비하였지만, 기원전 539년 티그리스 강을 따라 진격한 고레스에 의해 멸망하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다니엘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단 5:30-31). 한편, 바사의 전성기 때에는 동쪽으로 인더스 강, 서쪽으로 이집트와 그리스 반도, 남쪽으로 티그리스 강, 북쪽으로 아르메니아 산맥과 카스피 해까지 거대 제국을 형성하였다.

      '태양'이라는 뜻을 가진 고레스(Cyrus)는 62세에 왕위에 올라 기원전 539년부터 529년까지 11년 동안 바사 제국을 통치하였다. 따라서 고레스 원년은 기원전 539년을 가리킨다. 그때 고레스 왕은 자신이 통치하는 온 나라에 칙령을 내렸는데, 그것은 공포와 조서의 두 가지 형태로 내려졌다. '공포'는 사자들의 음성을 통해 온 나라에 울려 퍼지는 것을, '조서'는 사자들이 전달한 문서화된 왕의 명령을 말한다. 그가 내린 칙령에는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첫째, 여호와께서 나에게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명령하셨다(2절). 둘째,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3절). 셋째,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러 사는 지역의 사람들은 그들을 도와주고, 예루살렘에 세울 성전을 위해 예물을 기쁘게 드려라(4절).

      첫째 내용은, 칙령이 내려진 근원적인 배경을 담고 있다. 그 칙령이 내려진 이유는 고레스 왕의 자발전인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에는 역사의 주인공이 제국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리셨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였다(1절). 하나님은 이 일이 있기 전에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약속)하셨다.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5:11-12;29:10). 둘째 내용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고레스의 순종이 들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지 않고 순종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가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분의 음성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선지자 이사야는 그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하였다(사 44:27-28;45:1-5). 셋째 내용에는, 앞선 둘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남아 있는 백성'은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대부분 유프라테스 강 하류의 메소포타미아 평야 지대에 거주하고 있었고 더러는 페르시아 곳곳에 흩어져 살기도 하였다. 왕은 그들과 함께 거주하는 곳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그리고 그곳에서 성전을 건축할 때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라고 명령하였다. 금과 은, 물건, 짐승, 예물 등과 같은 것이 없이 돌아가게 될 경우, 그들에게 예루살렘 귀환과 그 이후의 성전 건축은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 사람들로부터 금, 은, 물건, 짐승, 예물 등을 가지고 나오게 될 모습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의 상황(창 13;1-2),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상황(출 12:35-36), 블레셋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수레에 실려 나올 때의 상황(삼상 6:4,8)과 유사하다.

    [질문] 하나님은 왜(어떤 점에서) 역사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주인공이 되시는가?

    그 이유가 고레스 왕의 고백 속에 들어 있다. 즉 그분이 하늘의 하나님, 참 신이시고, 또 세상 모든 나라를 자신이 지정한 왕에게 주고 명령하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계신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늘의 하나님'은 '하늘'이 상징하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참 신'은 '거짓된 신'과 대조되는 말이다. 거짓은 그 안에 공허한 부재와 나쁨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로 참은 그분의 실재하심과 선하심을 의미한다. '나라를 주신다'는 말은 그것에 대한 주도권이 세상의 왕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뜻으로, 역사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시는 그분의 속성을 들어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모든 회중 앞에서 송축하였던 다윗의 고백 속에 들어 있기도 하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또한 '예루살렘에 계신다"는 말은 그분이 하늘에 앉아 팔짱을 끼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그 계심을 직접적으로 나타내 보이신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도 하지만 친히 그분 자체이시기도 하다(눅 5:17-26;요 1:1,14;14:9).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살렘 귀환(5-11절)

    [본문]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7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 8 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 9 그 수는 금 접시가 서른 개요 은 접시가 천 개요 칼이 스물아홉 개요 10 금 대접이 서른 개요 그보다 못한 은 대접이 사백열 개요 그 밖의 그릇이 천 개이니 11 금, 은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

    [이해] 고레스 왕의 칙령이 내려지자 그 칙령에 따라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났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일어난 사람들은, 유다와 베냐민, 즉 남 유다의 지도자 그룹인 족장들, 성직자 그룹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모든 이들이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지도자와 성직자 그룹 이외의 별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문에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즉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자원하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역으로 하나님께 감동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전 건축을 위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정착하면서 많은 재산도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미 구축한 삶의 터전을 떠나 황폐한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렘 29;4-7;겔 33:30-33). 그 결과 많은 유대인이 귀환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인 49,897명만 1차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2:64-65).

      성전 재건을 위하여 일어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던 사람들은,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의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였다. 즉 그들은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는데, 이는 그 내용을 지시하고 있는 4절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은 그들이 모든 것을 '기쁘게' 드렸다는 점이다. 비록 왕의 명령에 따라 이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자원해서 드리지 않고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쁘게, 즉 자원해서 드렸다. 그들의 이런 태도에는 두 가지가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전 재건을 위해 일어났던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는 이웃들과의 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둘째, 그 일이 하나님의 개입과 인도하심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칙령을 내리게 하신 하나님은(1절), 동일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던 사람들의 마음도 감동시키셨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또 그것을 받아 누리게 하시는 일의 주체가 되시는 분이다(딤전 6:17).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는 일에 고레스 왕도 동참하였다. 그는 당시 창고지기인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여호와의 성전 기명, 즉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였던 기구와 그릇을 꺼내어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었다. 이에 세스바살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 그것들을 다 가지고 갔다. 왕이 넘겨 준 그릇의 수효는 금 접시 30개, 은 접시 1,000개, 칼 29개, 금 대접 30개, 금 대접보다 못한 은 대접 410개, 그 밖의 그릇 1,000개였는데, 금과 은으로 된 그릇이 모두  5,400개였다. 여기에서 '접시'는 음식을 담거나 물품을 제공할 때 사용하던 그릇인데, 영역본에서는 이를 '큰 접시'(KJV, charger), '타원형의 큰 접시'(NKJV, platter), '쟁반'(NLT, tray) 등으로, 또 공동번역에서는 '대야'로 번역하고 있다. '대접'은 성전에서 사용하던 덮개가 있는 잔을 가리키는데, 영역본에는 '사발'(NIV, bowl), '물 대접'(NKJV, basin)으로 번역하고 있다. '칼'은 문자적으로 칼(knife)를 가리키지만, 70인역(LXX)에는 '기구'로, 영역본에는 '냄비'(NIV, pan), '향로'(RSV, censer), '복제품'(NASB, duplicate)으로 번역하고 있다. '칼'을 그릇으로 볼 경우 그릇은 도합 2,509개가 되는데, 이는 마지막에 제시한 합계 숫자 5,400개와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일부 주석가들은 당시 필사자들이 그 숫자를 잘못 계산하여 기록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2,509개라는 숫자는 당시 고레스 왕의 명령에 따라 가치 있는 것들만 특별히 계수한 것으로, 실제로 그것을 포함한 모든 그릇의 숫자가 5,400개였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한편 '창고지기'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국가의 중요한 물품을 관리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였던 용어로 보인다. 그래서 KJV, NIV 등의 영역본에는 이를 '보물 관리인'(treasurer)으로 번역하고 있다. 유다 총독인 '세스바살'은 문자적으로 '불의 숭배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름이다.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스룹바벨과 동일 인물로 보는가 하면(3:2), 또 다른 일부에서는 스룹바벨이 아닌 다른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전자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데, 이는 이후부터 세스바살이라는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또 그토록 중요한 성전 기명들은 포로들을 인솔하는 총책임자에게 인계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비롯된 것이다(1차로 포로 귀환을 인솔하였던 인물은 스룹바벨이다). 

    [질문] 7-11절에는 성전에서 사용되던 기명들이 바벨론의 신당에 있게 된 배경(7절), 그것이 세스바살에게 넘겨진 과정(8절), 그리고 기명들의 정확한 숫자를 기술하고 있다(9-11절). 이와 같은 내용을 에스라가 이토록 구체적으로 기록한 의도는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특히 기명들의 종류와 숫자를 구체적으로 적고 있는 9-11절은 어떤 면에서 기명들의 합계만 기록하고 생략해도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의미가 심대하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를 정복하고 그곳 신당에서 사용하던 물품들을 자신들이 섬기는 신당에 보관하는 일은 고대 중근동의 일반적 관습이었다. 이를 통하여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우월성을 천하에 과시하고 피정복민들에게는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따라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던 기명들이 바벨론의 신당에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등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안겨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명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은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수치심을 자부심으로 회복하는 전환점이 된다. 에스라는 기명들의 종류와 숫자를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바로 그런 사실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상징적인 면에서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던 기명들은, 실제적인 면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더라도 기명들이 없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다. 그 많은 것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느브갓네살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을 모두를 다시 제작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명들을 귀환할 때 반드시 가져가야 할 물품이었다. 에스라는 이를 놓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성전 재건 이후에 새로운 기명들을 제작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 있다는 사실의 중요성 강조하였던 것이다.

    II. 메시지

    본문: 스 1:1-11

    제목: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0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0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0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0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0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06.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07.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 08. 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 09. 그 수는 금 접시가 서른 개요 은 접시가 천 개요 칼이 스물아홉 개요 10. 금 대접이 서른 개요 그보다 못한 은 대접이 사백열 개요 그 밖의 그릇이 천 개이니 11. 금, 은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

    ​1. 에스라서 개관

    에스라서는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기록한 책입니다. 바사(Persia)의 초대 왕 '고레스'가 즉위 원년에 내린 칙령(고레스 칙령)에 따라, 느브갓네살 왕 때 바벨론으로 잡혀 온 남 유다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와 같은 포로 귀환은 총 세 차례 이루어지는데, 1차는 기원전 537년 '스룹바벨'의 인솔 아래 5만 명 정도(종들까지 포함)가 돌아와 온갖 방해를 극복하고 마침내 기원전 515년 제2의 성전(스룹바벨 성전)을 완성합니다. 제2의 성전 건축은 586년 남 유다가 멸망한 이후 만 70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2차 포로 귀환은 1차 포로 귀한 이후 80년이 지난 기원전 458년에 이루어지는데, 이때 '에스라'가 1,754명을 인솔하여 돌아옵니다. 그리고 3차 포로 귀환은 기원전 444년 선지자 '느헤미야'의 인솔 아래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에스라서는 1, 2차 포로 귀환 때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에스라서는, 1-6장에서 1차 포로 귀환 과정과 성전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7-10장에서 2차로 귀환한 에스라에 의해 종교개혁과 대부흥 운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아래 도표 참조).

    2.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말씀은 고레스 왕이 내린 조서, 즉 '고레스 칙령'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1절). 바사, 즉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원년에 온 나라에 칙령을 내리게 된 배경 속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지혜와 사랑으로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돌보고 이끄시는 통치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리게 된 것은 그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내린 것으로, 여기에는 특별히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나님은 이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또 약속한 것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3절).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남 유다가, 더구나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던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주권을 빼앗긴 후 해방이 되기까지, 또 수많은 강제 노동자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기까지 3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그 일도 36년이나 걸렸는데,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고 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은 그것의 두 배나 되는 긴 시간대입니다. 이 사건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거짓말이나 후회가 들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반드시 실행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유프라테스 강가의 술사인 '발람'도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하고, 그 약속에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아멘'하고 반응할 때,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첫 번째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 이렇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면,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그분의 성품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레스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사람들은, 포로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자유인이 되어 에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명'입니다.

      ​​2-3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왕에게 명령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곳으로 올라가 놀고먹지 말고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남아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유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전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던 삶에서 돌이켜서, 이제부터 하나님을 그들 삶의 한가운데에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또 그분과 함께 살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들에게도 크나큰 축복이 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신을 위해 자기 마음대로 사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성전 재건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약속하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사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 우리 시대에 와서도 변치 않고 동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유다가 멸망한 이후까지 수도 없이 메시아(그리스도)를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대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고전 15:3-4).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예수님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롬 14:9), 이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우리에게 유다의 남은 자들처럼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제시되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위해 몇몇 사람들만 올라가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3절). 만약 성전 건축을 위해 몇몇 사람들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면, 성전은 결코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세워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몇몇 사람만 참여하여 세울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기적으로 한 몸을 이룬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를 건강하고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다 참여해야 합니다. 나 혼자 빠져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교회는 병들고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이 고레스 왕을 통해 남은 자들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을 주셨을 때,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났다"고 에스라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 재건은 이렇게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자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이 교회를 세워나갈 때, 교회는 그때서야 비로소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띨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도 받지 않고 또 억지로 교회 세우는 일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를 허물고 병들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다 일어나야 하고, 또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우리 안에 충족될 때, 우리 교회는 비로소 주님이 기뻐하는 건강한 교회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이 조건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갖추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자원까지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그 약속 안에 소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는 '자원까지 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세 번째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게 하실 때, 그들을 빈손으로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성전 건축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그들의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6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살게 될 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되 이웃의 물품을 강탈해서 취하게 하지 않고, 그 이웃들이 자발적으로 기쁘게 돕고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7-11절에 보면,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성전 그릇을 고레스 왕이 창고지기인 미드르닷을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내 주는데, 그 수효가 5,400개라고 구체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소명만 달랑 넘겨주면서 그 뒷일을 책임지지 않는 분이 아니라, 소명을 주실 때 그 소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구체적으로 그 수효까지 세어 가면서 채워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  ​그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함께하시는 분일까요? 그분은 지금도 그때와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소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원을 더욱 차고 넘치도록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시기도 한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주실 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19-20). 다시 말해서 그 사명을 받은 우리는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자원까지 통째로 받은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소명을 주실 때,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 즉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것도 함께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6:33).

    ​5.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우리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후회 없는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약속을 지키실 때 소명과 함께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는 모든 자원까지 구체적으로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손수 우리 손에 쥐어 주신 자원이신 예수님을,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을 주님(주인)으로 굳게 붙잡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소명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모두 다 자원하여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오늘 우리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2장 요약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포로로 잡혀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과 가문과 숫자에 대해,돌아온 무리의 수는 42,36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장은 ‘고레스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과 유다 도(province, 지방)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과 인원수, 그리고 성전 재건을 위해 그들이 드린 예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명단은 크게 ‘가계’(족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것을 증명할 수 없는 이들로 나누어 소개되고 있다. 스룹바벨의 인도에 따라 1차로 귀환한 사람들은 총 42,360명이었다.

      ​에스라는 귀환자들의 명단을 가계와 지역, 신분(지도자, 제사장, 레위인들, 성전 봉사자, 평민, 노예 등)에 따라 소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성전을 재건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 일은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아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II. 본문 이해와 질문

    1.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 가계 증명 가능(1-58절)

    [본문]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3 바로스 자손이 이천백칠십이 명이요 4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5 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이요 6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이 명이요 7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8 삿두 자손이 구백사십오 명이요 9 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10 바니 자손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11 브배 자손이 육백이십삼 명이요 12 아스갓 자손이 천이백이십이 명이요 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 14 비그왜 자손이 이천오십육 명이요 15 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16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17 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삼 명이요 18 요라 자손이 백십이 명이요 19 하숨 자손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0 깁발 자손이 구십오 명이요 21 베들레헴 사람이 백이십삼 명이요 22 느도바 사람이 오십육 명이요 23 아나돗 사람이 백이십팔 명이요 24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이 명이요 25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26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27 믹마스 사람이 백이십이 명이요 28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9 느보 자손이 오십이 명이요 30 막비스 자손이 백오십육 명이요 31 다른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32 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 33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오 명이요 34 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35 스나아 자손이 삼천육백삼십 명이었더라 36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37 임멜 자손이 천오십이 명이요 38 바스훌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이요 39 하림 자손이 천십칠 명이었더라 40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41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이십팔 명이요 42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구 명이었더라 43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44 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45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46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47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48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49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50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51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52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53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54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 55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56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7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58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

    [이해] 예루살렘과 유다 도(province)로 돌아온 사람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돌아와서 자신들의 성읍으로 각자 돌아갔다. '도'는 페르시아 제국의 거대 행정 구역에 속한 여러 작은 지방을 말한다. 다리오 왕 때에는 광대한 제국을 빈틈없는 체제로 조직하였는데, 그는 전체 영토를 20개의 거대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총독에게 다스리게 하였다. 따라서 당시 유다가 독립 국가가 아닌 페르시아의 일개 피정복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유다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유다 백성들이 돌아올 때 그들을 인도한 지도자들이 있었다.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드개, 빌산, 미스발, 비그왜, 르훔, 바아나 등 모두 11명의 지도자가 그들을 이끌었다. 그 가운데 제일 먼저 소개되고 있는 인물이 '스룹바벨'이다. 그 이름의 뜻은 '바벨론의 자손', '바벨론에서 태어난'이다. 그는 유다의 왕 여호야긴의 장남인 '스알디알'의 아들로(3:2;학 1;1;마 1;12;눅 3:27), 다윗의 후손이다. 역대상 3장 19절에서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의 아들로도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스알디엘이 후사 없이 죽자 그의 동생 브다야가 고대 유대인의 수혼 제도(신 25:5-10)에 따라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스룹바벨'을 낳았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스룹바벨은 실제적으로는 브다야의 아들이지만, 법적으로는 스알디엘의 상속인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맛소라 본문에는 '스룹바벨과...함께 나온'에 해당하는 말씀이 서두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스룹바벨'과 '...와 함께'가 연결 부호로 이어져 있다. 이는 스룹바벨이 이어지는 다른 모든 지도자보다 가장 우위에 있는 지도자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것으로, 그가 이스라엘의 1차 포로 귀환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룹바벨에 이어 소개되고 있는 인물이 '예수아'이다. 그는 느브갓네살에게 살해된 스라야의 손자이자(왕하 25:18-21;대상 6;14) 바벨론으로 끌려간 요사닥(여호사닥)의 아들로(3:2;대상 6:15;학 1;1), 예루살렘 귀환 후 첫 번째 제사장이 되었고,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재건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5:2; 슥 3장). 한편 느헤미야는 여기에 '나하마니'를 추가하여 12명의 지도자를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9명은 두 곳에서 모두 동일한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고, 에스라서의 '스라야'와 '르엘라야'는 르헤미야서에는 각각 '아사랴', '라야마'로 소개되고 있다.

      3-63절에는 귀환한 백성들의 명단과 인원수가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제시한 명단에서 가장 큰 특징은 크게 두 부류의 집단으로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 제시한 집단은 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들은 다시 평민(3-35절)과 다양한 제의적 공직자(36-58절)로 나누어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29,166명이 돌아왔다. 뒤에 제시한 집단은 가계를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로, 다시 평민(59-60절)과 제사장(61-63절)으로 나누어 소개되고 있다.

      가계를 증명할 수 있는 평민들의 명단과 인원수는 '가계와 '지역''에 따라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먼저 '가계'에 따른 평민들은 다음과 같다(3-20절). 바로스 자손 2,172명, 스바댜 자손 372명, 아라 자손 775명, 바핫모압 자손(예수아와 요압 자손) 2,812명, 엘람 자손 1,254명, 삿두 자손 945명, 삭개 자손 760명, 바니 자손 642명, 브배 자손 623명, 아스갓 자손 1,222명, 아도니감 자손 666명, 비그왜 자손 2,056명, 아딘 자손 454명, 아델 자손(히스기야 자손) 98명, 베새 자손 323명, 요라 자손 112명, 하숨 자손 223명, 깁발 자손 95명으로, 총 15,604명이다.

      평민들 가운데 '지역'에 따른 명단과 인원수는 다음과 같다(21-35절). 베들레헴 사람 123명, 느도바 사람 56명, 아나돗 사람 128명, 아스마웻 자손 42명,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 743명, 라마와 게바 자손 621명, 믹마스 사람 122명, 벧엘과 아이 사람 223명, 느보 자손 52명, 막비스 자손 156명, 다른 엘람 자손 1,254명, 하림 자손 320명,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 725명, 여리고 자손 345명, 스나아 자손 3,630명으로, 총 8,540명이다. ‘가계’와 ‘지역’을 합한 평민들은 모두 24,144명이 유다로 귀환하였다.

    지역명

    위 치

    베들레헴

    예수님의 고향. 예루살렘 남쪽 10km 지점에 있는 성읍.

    느도바

    베들레헴 남쪽 6km 지점에 있는 산악 지대 성읍. 유다 지파의 땅.

    아나돗

    예루살렘 북동쪽 4km 지점에 있는 성읍.

    아스마웻

    예루살렘 북동쪽 8km 지점에 있는 성읍.

    기랴다림

    예루살렘 북서쪽 15km 지점에 있는 성읍.

    그비라

    기브온 서쪽 5km 지점에 있는 성읍. 베냐민 지파의 땅.

    브에롯

    예루살렘 북쪽 20km, 기브온 남쪽 2.5km 지점에 있는 성읍.

    라마

    예루살렘 북쪽 10km 지점에 있는 성읍. 사무엘의 주요 활동 지역.

    게바

    예루살렘 북쪽 13km 지점에 있는 성읍. 유다 왕국의 북쪽 경계.

    믹마스

    예루살렘 북동쪽 13km 지점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고원 도시.

    벧엘

    예루살렘 북쪽 19km 지점에 있는,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잤던 곳.

    아이

    여리고 북서쪽 16km 지점에 있는 고지대. 베냐민 지파 거주.

    느보

    요단 동편 헤스본 남서쪽 8km 지점에 있는 성읍. 유다 지파 거주.

    막비스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으로, 위치 불분명.

    엘람

    위치 불분명. ‘다른 엘람’은 엘람이라는 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

    하림

    위치 불분명.

    로드

    샤론 평야에 있는 성읍으로, 욥바 동남쪽 18km 지점에 위치.

    하딧

    팔레스타인의 해안 평야와 중앙 고원 지대의 세펠라에 있던 성읍.

    오노

    욥바 남동쪽 11km 지점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

    여리고

    요단강 서쪽 8km, 사해 북쪽 11km 지점에 있는 성읍.

    스나아

    여리고 북쪽 8km 지점에 있는 막달센나와 동일한 곳으로 추정.

      제자장들의 명단과 인원수는 다음과 같다(36-39절).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973명, 임멜 자손 1,052명, 바스훌 자손 1,247명, 하림 자손 1,017명으로, 총 4,289명이다. 또 레위 사람들은 호다위야 자손(예수아와 갓미엘 자손) 74명(40절),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 128명(41절), 문지기의 자손들(살룸, 아델, 달문, 악굽, 하디다, 소배 자손) 139명으로(42절), 성전 봉사자들은 총 341명이다. 따라서 제사장을 포함하여 성전의 봉사자들은 모두 4,630명이 귀환하였다. 여기에서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 왕대에 찬양의 제사를 주관하였던 사람으로(대상 16:4,5,7,37), 여러 편의 시편을 쓰는 등 이스라엘의 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다윗은 제사장의 24반차에 상응하여 노래하는 자들도 24반차로 조직하였다(대상 15:16-24). 당시에 노래하는 것이 레위인들의 직무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대상 25:1-7), 아삽과 그의 자손들도 레위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삽 자손을 레위 사람들의 명단에 넣지 않고 따로 분류한 것은 그 직분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문지기'는 성전의 문들을 닫고 여는 독특한 직분의 소유자들로(대상 9:17-27;시 84:10), 이들 역시 레위인들이었다. 이들의 다른 임무 중의 하나는 성전의 보물을 관리하는 것도 들어 있었다(대상 9:28-29).

      느디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의 자손들이다(43-54절). 시하, 하수바, 답바, 게로스, 시아하, 바돈, 르바나, 하가바, 악굽, 하갑, 사믈래, 하난, 깃델, 가할, 르아야, 르신, 느고다, 갓삼, 웃사, 바세아, 베새, 아스나, 므우님, 느부심, 박북, 하그바, 할훌, 바슬룻, 므히다, 하르사, 바르고스, 시스라, 데마, 느시야, 하디바. '느디님'은 '주어진 사람들', '바쳐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영역본에는 '성전 하인들'(The temple servants)로 번역하고 있다(RSV, NASB, NIV). 이들에 대한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구약에는 전쟁 포로들이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바쳐졌다는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는데(민 31:25-47), 아마도 느디님 사람들은 이들의 후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호수아서에는 기브온 족속들이 이스라엘에 의하여 멸망당할 것이 두려워 여호수아를 속이고 그 결과 죽임을 당하지 않지만,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들이 되는 기사가 나온다(수 9:23-27). 유대 랍비 전승은 성전 종들과 기브온 족속을 동일하게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느디님 사람들을 기브온 출신으로 보기도 한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성전에서 레위인을 돕거나 희생 제물을 태울 나무를 패고 물을 나르도록 할 목적으로 성전에 바쳐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주로 성전에서 막일이나 천한 일을 하였다.

      솔로몬 신하의 자손은 다음과 같은 사람의 자손들이다(55-57절). 소대, 하소베렛, 브루다, 야알라, 다르곤, 깃델, 스바댜, 하딜, 보게렛하스바임, 아미.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은 모두 392명이다. '솔로몬 신하의 자손'에서 '신하'는 문자적으로 '종', '노예'를 뜻한다. 그래서 NIV에서도 이를 '솔로몬의 종들'(the servants of Solomon)로 번역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기브온 족속을 성전 일꾼으로 삼았듯이, 솔로몬도 가나안 원주민들을 자신의 역군으로 삼은 적이 있기 때문에(왕상 9:20-21), '솔로몬 신하의 자손'은 이들과 동일 사람들로 보인다.

    [질문] 2장에는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과 인원수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부분을 요약하여 한두 구절로 제시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그것도 긴 지면을 할애하여 제시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본 장은 70절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가운데 1절과 68-70절을 제외한 66개 구절(전체의 95%)이 모두 귀환자들의 명단과 인원수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저자가 이 내용을 한두 구절로 요약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이 그것이 지닌 가치(중요성) 때문이다.

    첫째, 구체적인 명단을 제시함으로써 1차 귀환 사건의 역사적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도자들이 누구였는지, 평민들은 어느 가계와 지역 출신이었는지, 그리고 성전 봉사자들도 맡은 역할에 따라 누가 얼마나 귀환하였는지를 이름과 숫자로 낱낱이 밝힘으로써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진실성을 더해 주고 있다.

      둘째, 구체적인 정보를 통해 귀환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정보를 통해 어느 가계 어느 지역 자손들이, 또 어떤 계층 사람들이 성전 재건과 신앙 공동체 재건에 얼마만큼 참여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가계'를 알 수 있는 자손들 가운데 예수아와 요압 자손은 가장 많은 2,812명이, 두 번째로 많은 바로스 자손은 2,172명이 돌아왔다. 이 두 가문의 합계가 4,984명인데, 이는 전체 24,144명 가운데 21%를 차지하는 인원이다. 또 '지역'에 따라 나눈 귀환자 가운데 여리고 근방으로 추정되는 스나아의 자손은 3,630명으로 전체(8,540명)의 과반수에 육박하는 43%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어문'(fish gate) 공사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다(느 3:3). '어문'은 '중문'(middle gate)이라고도 하는데(렘 39:3), 예루살렘 둘째 구역(대하 34:22), 즉 예루살렘의 확대된 신도시 북쪽 벽에 있었던 문이다. 갈릴리나 두로 등지의 생선들이 주로 이 문으로 반입되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런 정보 등은 앞서 제시한 구체적인 명단과 인원수에 기초해서 나온 것들이다. 즉 본문에서 일차로 제시한 구체적인 정보는 이와 같은 이삼 차 정보를 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가 된다.

      셋째, 둘째 내용과 관련하여 귀환자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고레스 칙령으로 귀환한 공동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전 왕국(국가)의 회복을 추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바사 제국의 지방 백성으로 간주되었고(1절), 따라서 국가와 국민이라는 이름 대신 오로지 성전 재건을 위한 종교적인 실체, 즉 회중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러한 점은 명단 속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들은 비록 예전의 이스라엘 공동체와 연속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명단의 내용에는 왕가의 직계 후손이자 다윗 왕의 상속자에 대한 언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명단이 지닌 이러한 특징을 통해, 이들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가 이전에 가졌던 왕국 개념이 아닌, 새롭고 영원한 공동체인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공동체는 일부 영향력 있는 한두 사람이나 특정 계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이 사건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으셨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관심은 성전을 재건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공동체를 향하고 있지만, 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각 사람, 즉 개인을 향해서도 잊지 않고 집중되어 있다. 그러한 관심은 계층, 가문, 지역 등을 세분해서 또 그 숫자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꿰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래서 누가는 각 사람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는 분으로 소개하였던 것이다(눅 12:7).

    2.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 가계 증명 불가능(59-63절)

    [본문] 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60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62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이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가계'를 증명할 수 없는 이들은 평민과 제사장으로 나누어 소개되고 있다. 먼저 '평민들'은 델멜라, 델하르사, 그룹, 앗단, 임멜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그들은 들라야, 도비야, 느고다의 자손들이다. 모두 652명이 귀환하였다(59-60절). 이들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를 밝힐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았지만 실제로는 이방인과 결혼하여 이방인 혈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전쟁과 포로로 끌려가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족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델멜라'(Tel Melah)와 '델하르사'(Tel Harsha)는 각각 '소금의 도시', '조각의 도시'라는 뜻으로, '델'(Tel, 텔)이라는 단어가 첨가되어 있다. '델'은 고대 우가리트 어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성읍을 지칭하는데, 대부분 주요 전쟁터로 현재는 폐허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두 도시는 페르시아 만 근처에 있었던 성읍으로 추정된다. '앗단'은 '앗돈'과 동일 지역으로 추정된다(느 7:61). 그래서 NIV에서는 두 지명을 'Addon'으로 동일하게 적고 있다. '앗단', '그룹', '임멜'의 위치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들라야, '도비야', '느고다'라는 인물들도 밝혀지지 않았다.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바르실래 자손이 돌아왔다. 이들 중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가운데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그 이름을 따른 사람이다. 그들은 비록 제사장이었지만, 계보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였고 그 결과 사람들이 그것을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에 제사장 직분을 행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계보'는 문서화된 족보로, '연대기적 족보'를 의미한다(NLT, genealogical records). 세 자손들이 족보에서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한 것은 다른 이유, 즉 부정이 개입되었다는 여지를 열어 준다. 따라서 그들은 이에 근거하여 제사장 직분을 행하는 데에서 배제되었다. 이에 방백이 그들에게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방백'은 총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페르시아식 호칭으로(느 7:70), 스룹바벨 혹은 세스바살로 추정된다. '광채'라는 의미의 '우림'과 '완전함'이라는 의미의 '둠밈'은 흉패에 넣는 것이다. 흉패는 제사장이 입는 에봇에 부착되어 있다(출 28:30;레 8:8). 우림과 둠밈은 모호하거나 의심이 드는 사건(문제)이 있을 때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거나 하나님이 그 질문에 응답하는 데 사용된 수단이었다(출 28;30;민 27:21;삼상 23:6,9,10;30:7). '그것들을 가진 대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이라는 말 속에는 아직 그때까지 우림과 둠밈이 없었고, 방백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지성물을 먹지 말라'는 것은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던 지성물 분배에서 그들이 제외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비단 거기에만 한정되지 않고 제사장 역할 전체를 수행하지 말라는 의미까지 들어 있다. 제사장에 대한 기록 부분에서 특이한 것은, 귀환한 사람들 가운데 그들의 인원수만 적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질문] 가계를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도 귀환하였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유대인들처럼 족보를 따지는 그룹에, 그 내용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도 함께 귀환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대한 증명 불가는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유대 사회에서 여러 가지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제사장은 그로 인해 '부정하다'는 모욕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하였고, 제사장 직임을 수행하거나 제사장의 특권인 지성물을 먹는 일에도 배제되었다. 이러한 불이익은 귀환하기 전부터 예상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귀환 길에 올랐다는 것은 그러한 대우보다도 하나님과 그분의 성전 재건에 참여하는 것을 더욱 가치 있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으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과 열정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두 번째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바로 그들도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혈통의 순수성을 증명하는 족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 기꺼이 그 일에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다.

    3. 회중의 합계와 기타 사항(64-67절)

    [본문]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5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66 말이 칠백삼십육이요 노새가 이백사십오요 67 낙타가 사백삼십오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이었더라

    ​[이해] 유다로 귀환한 모든 회중의 합계는 42,360명이다. 이에 대해 느헤미야도 동일하게 밝히고 있다(느 7:66). 하지만 여기에는 앞서 제시한 백성의 인원수와 차이가 있다. 앞서 구체적인 명단과 함께 제시한 숫자는 총 29,818명이다(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 29,166명, 가계를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 652명, 가계를 증명할 수 없는 제사장들은 산정 제외). 따라서 13,194명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규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많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 3-60절에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만 다루었지만, 합계는 그들과 함께 귀환한 북쪽의 열 지파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2) 3-60절에는 20세 이상의 남자만 다루었지만, 합계는 12세 이상의 남자까지 포함되어 있다. (3) 3-80절에는 20세 이상의 남자만 다루었지만, 합계는 여자와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다. (4) 3-50절의 내용 가운데 필사자의 오류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 군사적 왕정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전 재건을 통하여 예배 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귀환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공동체를 표현하는 용어인 '회중'은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3)의 견해를 가장 무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42,360명의 백성들 외에도 7,337명의 남종과 여종, 200명의 노래하는 남녀도 귀환하였다. 또 그들이 데리고 온 짐승은 말 736마리, 노새 245마리, 낙타 435마리, 나귀 6,720마리가 되었다. 남종과 여종, 그리고 노래하는 남녀가 짐승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귀환한 사람들의 합계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종들의 수가 귀환자들 대비 1/6에 해당한다는 것은 대단히 높은 비율이다. '노래하는 남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아삽 자손의 수가 부족해서 그것을 메우기 위해 고용하였다는 견해, 부자들이 그들의 여흥을 위해 고용하였다는 견해 등이 그것이다. 귀환자들이 성전 재건과 제의를 위해 구성되었고 노래하는 자들이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노래하는 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당시 중근동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는 점에서(삼하 19:35;전 2:8) 후자의 견해가 좀 더 일리 있어 보인다. 짐승들은 노약자와 어린이 등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운반하는 데 이용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질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희생하였던 것들은 무엇인가? 반대로 그들이 얻은 것들은 또 무엇인가? 서로 나누어 보시오.

    ​그들이 희생한 것들은 먼저 바벨론에 구축해 놓은 삶의 터전이었다. 귀환하지 않고 그곳에서 계속 살게 될 경우 그들이 닦아 놓은 생활 기반으로 상당히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안락한 생활을 희생하였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2,400km가 넘는다. 그 여정은 4개월이나 걸렸기 때문에(7:9), 무척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령 그 여정을 마치더라도 편안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황폐된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어야 하고, 그들의 귀환 목적인 성전 건축 일에도 참여해야만 하였다. 셋째는, 가족 친지들과 이별해야 하는 희생을 감수하였다. 물론 가족 모두가 돌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곳 원주민들과 결혼하거나 그곳에서 이룬 기반을 포기할 수 없었던 가족들에게는 이 문제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성전 재건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사람들은 그 이별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이 얻은 것은 첫째, 분명한 삶의 목적이었다. 바벨론에서의 삶도 분명 목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새롭게 부여된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목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분명하고 영광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둘째, 성전 재건과 그곳을 중심으로 구축하게 될 공동체에 그들의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다. 따라서 그 임재 속에서 이룰 공동체는 오늘날의 교회를 의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라 할 수 있는 교회를 세우는 영광스러운 일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그들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 지도자와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과 하층민들도 모두 하나같이 그곳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길 수 있었다. 셋째, 그 결과 하나님이 그들 자신의 기업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는 자신들과 함께하면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고, 저세상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도 참여하여 그분과 영원토록 함께하면서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4. 귀환 후에 한 일(68-70절)

    ​[본문] 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69 힘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더라 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이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한 일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어떤 족장들이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그곳에 하나님의 전을 다시 건축하는 데 사용될 예물을 드렸다는 것이다. '어떤 족장들'은 모든 족장이 아닌 일부 특정 족장들만 가리키는 것이다. 그들이 드린 예물을 금고에 들였는데, 금 61,000다릭, 은 5,000마네, 제사장의 옷 100벌이나 되었다. '다릭'은 바사 제국의 금화로, 다리오 왕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무게는 약 8.41g으로, 은화 20배의 가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금 61,000다릭은 513,010g으로,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300억 원 정도 된다(1g에 58,474원 적용, 2019년 7월 12일 기준). '마네'는 유대의 화폐 단위인 '므나'를 말한다. 1마네는 은 570g이다. 따라서 은 5,000마네는 2,850,000g으로,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18억 원 정도 된다(1g에 645원 적용, 2019년 7월 12일 기준). 어떤 족장들은 그 예물을 드릴 때 '기쁘게', '힘자라는 대로' 드렸다. '기쁘게'는 '기꺼이...하다'(to do willing), '자유롭게 행하거나 아낌없이 주다'(to do or give freely)는 뜻이다. '힘자라는 대로'는 '그들의 능력에 따라(맞게)'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포로 귀환자들의 지도자들이 그 예물을 드릴 때 인색함이나 강요에 의해서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형편에 따라 기꺼이 드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모습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세우기 위해 많은 재물을 자원하여 드렸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출 35:5,21-29).

      ​둘째,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들의 성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제사장들, 레위인들, 몇 명의 백성,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을 이스라엘 무리와 구분하여 기록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자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일을 위해 성전 인근의 예루살렘에 거하였다. 본 거주지가 예루살렘이었던 몇몇 백성들도 당연히 그곳에서 거하였다. 그렇지만 이들을 제외한 '무리'는 예루살렘 성읍에서 떨어진 유다 전역에 있는 자신들의 거주지에 정착하였다.

    ​[질문] 성전 건축을 위하여 예물을 드렸던 '어떤 족장들'에게 볼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인가?

    ​첫째,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말로 지시만 하고 자신들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내용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정반대로 행동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이 추구한 삶의 양식은 교만과 허례허식이었고, 가난하고 불쌍한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눅 20:46-47). 그들의 악영향은 당시 유대 사회를 병들게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해 주셨다(눅 12;1). 그들과 달리 어떤 족장들은 귀환한 백성들에게 예물을 드리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예물을 드림으로써 새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주었다. 둘째, 그 예물을 기쁘게, 힘자라는 대로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쁘게'는 강압에 의해 행동으로 옮겨지는 '어쩔 수 없이'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또 '힘자라는 대로'는 '적당히', '인색하게'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반대되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기쁘게, 힘자라는 대로 드린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어떤 족장들은 그렇게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즉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자신들과 함께한 공동체도 그 영광 가운데 머물도록 하였다.

    ​[참조]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귀환자 인원수 차이 비교(단위:명)

    ​다음과 같이 둘 사이의 인원수에 차이가 생긴 이유는, 에스라서의 필사자와 느헤미야서의 필사자가 숫자를 기록할 때 생긴 오류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명 단

    에스라

    느헤미야

    비고(차이)

    아라 자손

    775

    652

    123

    바핫모압 자손

    2,812

    2,818

    6

    삿두 자손

    945

    845

    100

    바니(빈누이) 자손

    642

    648

    6

    브배 자손

    623

    628

    5

    아스갓 자손

    1,222

    2,322

    100

    아도니감 자손

    666

    667

    1

    비그왜 자손

    2,056

    2,067

    10

    아딘 자손

    454

    655

    201

    베새 자손

    323

    324

    1

    하숨 자손

    223

    328

    105

    베들레헴과 느도바 자손

    179

    188

    9

    벧엘과 아이 사람

    223

    123

    100

    스나아 자손

    3,630

    3,930

    300

    아삽 자손

    128

    148

    20

    문지기의 자손

    139

    138

    1

    노래하는 남녀

    200

    245

    45

    인원수 합계

    42,360

    42,360

    동일

    II. 메시지

    ​본문: 스2:1-70

    ​제목: 성전 재건 참여자의 명단

    ​1.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접할 때, 우리는 종종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데,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마치 '늪'과 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레위기나 이사야서를 비롯한 예언서들을 읽을 때면, 도대체 알 수 없는 의미들로 인해 계속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건너뛰어야 하는지 갈등에 빠지곤 합니다. 더러 용기를 내서 몇 장을 넘겨보기도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수면제가 우리의 온몸에 퍼져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본문 말씀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과 숫자만 우리의 눈을 흔들리게 합니다. 그렇지만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런 '늪'과 같은 말씀 속에 천지와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그 의미를 곰곰이 되씹어보면 허약한 심령에 보약이 되는 '진액'이 끊임없이 배어 나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소개하고 있는, 예루살렘과 유다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은 아래 도표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명단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는데, 2-58절은 족보(가계)나 본적지 증명이 가능한 사람들이고, 59-63절은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족보나 본적지 증명이 가능한 사람들은 다시 11명의 지도자를 비롯하여(2절, 느헤미야는 12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민들, 성전 봉사자들, 막일이나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족보나 본적지 증명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평민들과 제사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성전 재건을 위해 돌아온 사람들이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사람들이 바로 그 이후의 '참(진정한) 이스라엘'을 구성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참 이스라엘'은 오늘날 '교회'로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교회가 바로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명단 속에 들어 있는 그들의 어떤 점이, 향후 전개될 유다 사회를 '참 이스라엘'로 만드는 데 원동력이 되었을까요?

    ​2. 그들이 바라본 곳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고레스 칙령)은, 구속력이 있는 '강제 명령'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예루살렘 귀환에 대한 '허락'의 성격이 더 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대로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돌아가기로 결정하게 되면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와 희생이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벅찬 기쁨과 동시에 엄청난 심리적 갈등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포로 신분이었지만 그들의 생활 기반은 고레스의 이방인 포용 정책에 따라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모습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집도 생기고, 농지도 생기고, 그로 인해 그들 나름의 기득권도 확장되어 갔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치러야 할 희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족과 이별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모든 가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곳 원주민과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형성한 사람들은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족과 그 문제로 의사 결정을 하면서 고통스러운 갈등에 빠질 것이 빤하였고, 심지어 그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가족들끼리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돌아가는 쪽으로 결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그 앞에는 그들이 치러야 할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대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2,400km 이상의 광야 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그것도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노모와 어린아이까지 함께 가야만 하는 그 길이 그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에 도착한들 그들을 반겨줄 친척이나 안락한 집, 배부르게 먹을 풍성한 음식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전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된 땅덩어리뿐입니다. 새로 집을 짓고 황무지를 옥토가 되도록 일구기 위해서는 뼈가 빠지도록 일해야 하고, 그 와중에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도 동원되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된다면 그때도 바벨론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아니 오히려 고통만 예상되는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저 같으면 그냥 바벨론에 눌러앉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고, 그것도 구체적으로 이름과 사람의 수까지 적어가면서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머릿속에 오버랩(overlap) 되는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창 12:1), 정말 그곳을 떠나 그 말씀을 따라가 버렸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약속 하나만 달랑 믿고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이런 아브라함과 똑같이, 지금 바벨론에 남아 있던 유다 백성들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자마자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다 일어나 올라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그들의 기억 속에도 똑같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정작 중요한 관심은 바벨론의 편안한 삶보다 성전 재건에 있었고, 재건된 성전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 축복받는 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참다운 이스라엘'의 자격이 있고, 바로 그런 점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소명, 즉 성전을 재건하라는 사명을 온전하게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에스라가 공개한 명단을 보면서, 그리고 그 구체적인 명단 이면에 힘 있게 내딛는 그들의 믿음을 보면서, 우리도 지금 우리 교회를 믿음의 눈으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약속 있는 소명 앞에서 자신들이 딛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오직 성전 재건을 위해 흔쾌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그들처럼, 얽매이기 쉬운 모든 무거운 죄와 짐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우리도 우리에게 주신 약속 있는 소명인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3. 그들도 바라본 곳

    ​오늘 본문이 제공하고 있는 명단 속에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름도 적혀 있습니다. 43-54절에서 느디님 사람들의 자손들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에서 막일을 하던 종들입니다. 느디님 자손들이 성전에서 막일을 하던 종들이었다면, 55-58절에서 소개한,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은 왕궁에서 천한 일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백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끌려온 후에 종이 되어, 이스라엘 사회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정당한 대우가 아닌 푸대접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벨론에 머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들의 명단도 예루살렘 귀환과 성전 재건 명단의 한가운데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59-63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족보나 본적지 증명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족보나 본적지를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였던 이스라엘 사회의 관습에서 볼 때, 그것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은 이전에 그들이나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이방인 취급받던 사마리아인들과 또 앞서 소개한 느디님 자손이나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도 느디님이나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처럼,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지 않고 바벨론에 남아 있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름이 그 명단에 버젓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제시한 두 부류 사람들은 왜 바벨론이 아닌 예루살렘을 선택하였던 것일까요? 우리는 본문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 동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황상 하나님의 소명과 약속이 바벨론에서의 삶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였다고 쉽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적인 관점에서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예루살렘을 왜 선택합니까?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한 선택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들의 믿음은 기생 라합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고, 이런 점 때문에 향후 전개된 이스라엘 공동체가 '참 이스라엘'이 되는 데에 그들의 동참이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디님 사람의 자손들,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 그리고 족보도 본적지도 없는 부랑자와 같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재건하는 사람들의 명단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이전의 역사는 몇몇 사사들과 몇몇 왕들이 주인공이 되어 역사를 좌우하였습니다. 하지만 포로기 이후의 역사는 스룹바벨과 같은 지도자나 제사장들, 족보나 본적지가 있는 정통 평민들뿐만 아니라 종이나 하층민, 그리고 족보나 본적지도 없는 부랑자까지 모두 '하나의 순수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면서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500년 뒤의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교회에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주님의 복음에 몇몇 주도적인 사람이 등장하나요? 아닙니다. 주님의 복음은 포로기 이후의 '참 이스라엘' 사회처럼, 그 어떤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행 2:21),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는 누구든지 주님의 가족이 되어(마 12:50), 신약시대의 ‘참 이스라엘’인 ‘교회’를 세우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복음이고, 그래서 그 복음이 이끌어가는 역사가 '참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허드렛일이나 하는 존재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족보나 본적지와 같은 든든한 배경이 없어 맨날 루저(looser)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푸념하거나 불평할 때가 있습니까? 만약 그 일로 인해 우리가 자꾸만 작아진다면, 그때는 우리 인생에서 '위기'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귀중한 '기회'가 됩니다.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믿음 하나 붙들고 성전 재건을 위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유다 백성들처럼, 우리도 지금 그 모습 그대로 겨자씨 같은 믿음 하나 붙들고 주님께 나아간다면 그들의 이름이 '참 이스라엘'의 명단에, '그 위대한 명단'에 올라갔던 것처럼, 우리의 이름도 '참 교회'의 명단에 새겨지고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우리에게 열어 준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굳게 붙잡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4. 우리가 바라볼 곳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 재건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명단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스룹바벨과 같은 지도자와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은 성직자가 들어 있고 족보와 본적지가 분명한 보통 사람들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종이나 막일하는 노동자의 이름도 들어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라 이방인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족보나 본적지도 없는 부랑자들도 끼어 있습니다. '참 이스라엘'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하나의 순수한 신앙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참 이스라엘'을 이루게 된 원동력은 이런 배경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 원동력은 성전 재건을 위하여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에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눈앞에 있는 희생만 바라보았다면 애초 발걸음을 떼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명 뒤에 있는 찬란한 약속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어려운 발걸음을 기쁜 마음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참 이스라엘'인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는 소명은 어쩌면 성전 재건 작업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길에는 희생할 것이 너무도 많고 핍박(박해)도 무수히 널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인 상급을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뛰어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이름이 구원받은 자들의 명단뿐만 아니라, 참 교회를 세우는 데에 원동력이 된 명단 속에도 생생하게 새겨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스라 3장 요약

    귀향 7개월만에 제단을 쌓고서 번제를 드렸으며 초막절을 지켰으며 귀향 2년 2개월부터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장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바벨론에서 본토로 귀환한 백성들은 그 해 일곱째 달에 성전 터에 제단을 세우고 번제를 드렸다. 그들이 제단을 세우고 번제를 드린 일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주변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고 그 회복이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빌미삼아 이스라엘에 온갖 방해와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제단을 세우고 번제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였다.

      ​둘째, 성전 재건을 위하여 반년 동안 준비한 백성들은, 귀환한 그다음 해 둘째 달에 성전 재건을 위한 기초를 놓았다. 모든 백성은 그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면서 기쁨으로 큰 함성을 질렀다. 1차 성전(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그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하기도 하였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제사 회복과 성전 재건 준비(1-7절)

    ​[본문] 1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3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이해]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은 각자의 성읍에 정착하며 살았다. 그들은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다. '일곱째 달'은 유대력으로 '디스리월'로, 태양력, 즉 현대의 달력에 따르면 9, 10월에 해당한다. 아마도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그 해의 일곱째 달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달에는 나팔절(1일), 속죄일(10일), 초막절(15일)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거룩한 달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이 일곱째 달에 일제히 모인 이유는,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서 모세의 율법에서 기록한 대로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였다(2절). 그들은 성전 재건에 앞서 모세 율법의 규정대로 초막절을 준수함으로써(레 23:41), 먼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려고 힘썼던 것이다. 더구나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고 낙헌제를 드렸던 때도 칠월이었기 때문에(대하 5:3), 그 의미는 남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유다의 주변국 사람들이 그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단을 세우고 번제를 드리는 것이 두려웠다. 3절의 '모든 나라 백성'은 당시 팔레스타인 땅과 그 주변에 거주하고 있던 여러 민족을 가리킨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회복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에, '모든 나라 백성'에게는 그것이 정치적인 위협으로 비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기를 쓰고 막을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모종의 위협, 즉 전쟁이나 여타 방해 공작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4-5장에는 그와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성전 재건을 지속적으로 방해하였고, 그로 인해 성전 재건 작업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 일이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despite, NIV) 그 터 위에 재단을 세웠다. 따라서 그 터에 재단을 세웠던 그들의 행동 속에서 두 가지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두려움보다 제단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즉 그들은 재단을 세우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대적들의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처음부터 올바른 기초 위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였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러한 행동은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다. 한편, '그 터'는 성전이 세워졌던 곳이고, 또 다시 성전이 세워질 장소를 가리킨다. 그 터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구체적으로 지정해 주셨던 곳이고, 그 지정에 따라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던 곳인,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 위에 있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이다(삼하 24:18-25; 대하 3:1). 따라서 새로운 제단은 파괴된 원래 제단이 있었던 곳에 복구되었던 것이다.

      ​솔로몬 성전 터 위에 제단을 세운 백성들은,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다(3절).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드린 번제는 '상번제'를 의미한다. '상번제'는 매일 드리는 번제로(출 29:42;단 8:11-13;11:31;12:11), 아침과 저녁 두 번에 걸쳐 어린 양을 한 마리씩 번제로 드렸고, 고운 가루 1/10 에바에 기른 1/4 힌을 섞어 소제와 전제를 곁들여 드렸다(출 29:40-41;민 28:5-8;29:6-38;스 3:5;느 10:33;겔 46:15). 또 안식일에는 제물이 두 배로 드려졌다(민 28:9-10).

      ​또한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렸다(4절). '초막절'은 출애굽 당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 지켜졌던 절기로, 유월절, 칠칠절(오순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이다. 히브리 달력으로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지켜졌다(민 29:12). 초막을 짓고 모든 가족이 함께 거하면서 절기를 지켰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노동이 금지되었으며, 첫날과 마지막 날에 성회가 열렸고 매일 화제를 드렸다(레 23:34-43). 이때는 농사가 끝나고 곡식을 저장하는 때이기 때문에,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절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초막절을 '수장절'로 부르기도 한다(출 23:16).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드렸다'는 말은, 기록된 율법의 규례를 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수송아지의 경우 첫째 날에는 13마리를, 둘째 날에는 12마리를, 그리고 그렇게 계속 한 마리씩 줄이다가 일곱째 날에는 7마리를 드렸다. 이렇게 해서 이 절기 동안 바쳐진 제물은 총 215마리였다(민 29:13-38). 이렇게 다른 어느 경우보다 많이 바쳐진 제물로 인해 초막절은 종종 '잔치', '축제'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백성들이 율법을 바로 인식하고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번제와 초막절 이후에도 항상 드리는 번제(상번제), 초하루에 드리는 번제,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를 드렸다. 또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도 드렸다(5절). '초하루에 드리는 번제'는 매월 초에 드리는 번제를 말하는데, '월삭'이라고도 한다(민 10:10;28:11-15;시 81:3).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는 '무교절'(유월절, 레 23:5-80), '맥추절'(레 23:15-21), '나팔절'(레 23:23-25), '초막절'(4절;레 23:33-36), '속죄일'(레 23:27-34) 등의 절기를 말한다. 또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은 특정 절기와 관계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기쁘게(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즉 '자원제'(free will-offering)를 말한다(출 35:21,29;36:3;레 22:18,21;대하 35:8).

      ​이처럼 성전 터 위에 제단을 세운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지만, 그때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하였다(6절). '번제'(burnt offering)는 제물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제사로, 번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이 되는 짐승의 가죽을 제외한(가죽은 제사장의 몫이었음, 레 7:8) 모든 것을 거룩한 불에 완전히 태워 그 향기(연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레 1:2-9). 성전 마당의 번제단에서 드려졌다 하여 ‘번제’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5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레 1:1-7:38) 중의 하나인 번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예배자의 전 인격이 하나님께 바쳐짐을 상징하는 제사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번제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회복되었지만, 그때까지 성전 지대는 놓지 못하였다. '지대'는 '기초'라는 뜻으로, 성전의 기초도 미처 놓지 못하였다는 것은 그때까지 성전 재건 작업이 착수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한 목적을 아직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보 제공과 함께, 그들이 성전 재건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위해 귀환하였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먼저 건축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였다(7절).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었고, 시돈과 두로 사람에게 음식과 음료와 기름을 주었다. '석수'는 '돌을 뜨는 사람'(왕상 5;15), '벽돌공'(왕하 12;12) 등과 같이 돌을 다루는 기술자들을 말한다. '목수'는 '목공'(사 44:12), '철공'(사 44;12), '장인'(사 40:19) 등을 말한다. 석수와 목수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선발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돈을 주고 고용하였다. 시돈과 두로 사람들에게 음식, 음료, 기름을 준 이유는, 그 지역, 즉 레바논의 백향목과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시돈과 두로 지역은 경작에 적합한 농지 부족으로 식량 사정이 열약하였기 때문에(행 12:20), 음식(곡식), 음료(포도주), 기름(올리브유) 등의 생필품을 백향목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얻었다. 물물교환을 통해 구한 백향목은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되었는데, 그 방법은 백향목을 뗏목으로 엮어서 해안을 따라 옮기는 '수운'(water traffic)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운송 방법은 최초의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에 의해서도 이용되었다(왕상 5:9). 백향목을 가져오는 대목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을 통해 고레스 왕이 성전 건축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얼마나 구체적으로 돕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 '시돈'(Sidon)은 베이루트 남쪽 48km 지점에 있었던 도시 국가이다. 지중해 연안의 해상 교통, 무역, 상업의 중심지로, 페니키아(베니게) 사람들이 세운 항구 도시이다. 가구, 건축, 장신구 제작, 상아 가공 기술이 매우 발달하였다. 12-13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의 주요 격전장이 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그곳에는 십자군들이 세웠던 요새와 성터가 남아 있다. 오늘날은 레바논 공화국에 속한 인구 5만의 소도시 '사이다'(Saida)이다. '두로'(Tyre)는 시돈 남쪽 40km 지점에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 국가로, 이스라엘 아셀 지파의 북쪽 접경지대에 위치해 있다. 시돈과 두로는 페니키아의 도시 국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였다.

    ​[질문] 최초로 세운 성전은 솔로몬이 주도하였기 때문에 '솔로몬 성전'이라 하고, 2차 성전은 스룹바벨이 주도하여 '스룹바벨 성전'이라 부른다. 이 두 성전 건축의 준비 과정을 비교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시오. 참고로 솔로몬 성전 건축 준비 과정은 역대상 22장 2-4절과 역대하 2장 15-16절에 소개되어 있다.

    ​'솔로몬 성전'은 다윗 왕 때부터 준비되었다. 다윗은 석수들을 시켜 성전 건축에 필요한 돌을 다듬게 하였고, 못을 만들 철과 용기를 만들 놋을 심히 많이 준비하였다. 후자는 철공, 장인을 포함한 목수들이 담당한 몫이었다. 또 시돈과 두로 사람들을 통해 수운으로 무수한 백향목을 준비하였다(대상 22:2-4). 솔로몬은 밀과 보리와 기름과 포도주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냈고, 그 대가로 레바논에서 벌목한 백향목을 받았다. 그때 후람은 백향목 떼를 엮어 바다에 띄워 욥바로 보냈다(대하 2:15-16). 이런 과정은 2차 성전 건축을 준비할 때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차이점은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1차 때는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들을 활용하였지만(대상 22:2), 2차 때는 이방인이 참여하였다는 정보가 없다는 점이다. 둘째, 1차 때는 용기를 만들 재료들을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지만, 2차 때는 그것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차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할 때 느부갓네살에 의해 옮겨진 용기들이 고레스 왕에 의해 다시 주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셋째, 1차 때는 다윗과 솔로몬 왕이 다스리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강성할 때 준비하였지만, 2차 때는 가장 빈곤하고 약할 때 준비하였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다시 세워진 성전은 1차 성전에 비해 그 규모가 작고 초라하였지만, 그 성전이 세워지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피와 땀이 깃들여 있다는 점에서, 2차 성전의 가치와 의의는 높고도 크다 할 수 있다. 넷째, 1차 때는 성전 건축의 주체가 어디에도 이스라엘 왕국의 자유민이었지만, 2차 때는 그들의 신분이 여전히 포로 신분이었다는 점이다(8절).

    ​2. 성전 기초 작업(8-13절)

    ​[본문] 8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9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13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이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 이 년(기원전 536년) 둘째 달에 이르러 성전 건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앞서 귀환한 첫해의 일곱째 달에 성전 터전에 제단을 세우고 번제를 드렸던 백성들은, 초막절이 끝나는 일곱째 달 22일 이후부터 성전 재건을 준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그들이 그때부터 다음 해 둘째 달 이전까지 약 6개월 동안 그것을 준비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달'은 유대 달력으로 '시브월'인데, 태양력으로는 건조기가 시작되는 4, 5월경에 해당된다. 솔로몬 왕이 성전 공사를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때였다(왕상 6;1,37;대하 3:2). 시브월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첫째, 그때는 추수가 끝나기 때문에 농사 일손을 건축으로 돌릴 수 있다. 둘째, 이때부터 비가 오지 않는 건조기가 반년 정도 이어진다. 비가 오면 건축 공사를 하기 어렵다. 셋째, 주요 절기인 유월절과 오순절을 이미 지냈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건축 공사에 전념할 수 있다.

      ​성전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스룹바벨, 예수아, 다른 형제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그리고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이었다(8절). '다른 형제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친형제라고 보기 어렵다. 아마도 모든 제사장들이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들이라는 점에서 '형제'라는 말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 앞에 있는 '사로잡혔다가'라는 말은 돌아온 자들의 신분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사로잡혔다가'는 원문을 직역하면 '포로 상태로부터'라는 뜻이다. 즉 돌아온 자들의 신분이 자유민이 아닌 포로 신분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성전 건축을 시작할 때 그 일을 감독하는 책무가 20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졌는데(8절),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 유다 자손,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들이 바로 그들이다(9절). 이처럼 레위 사람들이 성전 건축 일에 감독 역할을 하였던 것은 1차 성전을 건축할 때와 동일하다(대상 23:4-5). 레위 사람들이 성전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원래 25세 이상이 되어야만 하였다(민 8:24). 하지만 그 제한을 20세 이상으로 낮춘 것은 후대에 들어와서 레위인들의 인구가 감소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예수아'는 대제사장인 예수아(2, 8절)가 아닌, '호다위야 자손'(2:40)의 대표 가운데 하나인 레위인 예수아를 가리킨다. '갓미엘'도 '호다위야 자손'의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다(2:40). '헤나닷 자손'은 2장에서 소개한 레위인 족보에는 나오지 않지만(2:40), 느헤미야는 그를 레위 사람이라 밝히고 있다(느 10:9). 한편 '유다 자손'의 '유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후다'는, '호다위야'(2:40) 또는 '호드야'(느 7:43)로도 불리는 특별한 사람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NIV에서는 '유다 자손'을 괄호 속에 넣어 '(descendants of Hodaviah)'로 번역하고 있다.

      ​드디어 성전의 기초 공사가 시작되었다(10절). 건축자가 성전 기초를 놓을 때,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섰다. 여기에서 '나팔'은 금속으로 만든 관악기인데,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출 19:13)이나 야생 염소의 뿔로 만든 나팔(삼상 13:3;왕하 9;13;호 8:1)과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고 진영을 출발하게 할 때 사용하도록 하였다(민 10:2). 또 대적을 치러 나가거나 희락의 날에, 그리고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면서 그 나팔을 불게 하였다. 그러면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민 10:9-10). 제사장들이 나팔을 들었다면, 아삽 자손의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섰다. '제금'은 두 개의 금속 원반이 한 쌍을 이룬 타악기로,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낸다(대상 15:16,19;16:5;25:1,6). 오늘날의 심벌즈와 비슷하게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찬양하였다는 것은, 성전 예배에 음악을 도입한 다윗이 규정한 내용대로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그 나팔을 들고 선 것이 모세의 규례에 따른 것이라면, 아삽 자손이 제금을 들고 선 것은 '다윗의 규례'에 따른 것이다. 그들이 이런 규례를 따랐다는 것은, 그들이 비록 포로의 신분일 뿐만 아니라 2차 성전이 1차 성전에 비해 비록 규모가 작고 덜 화려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형태에 있어서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 이로써 그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신앙 전통이 1차 때와 일치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화답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는데,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던 이유는, 그분이 선하시고 그분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 위에 영원하시기 때문이었다. 외형적으로 볼 때 그들은 찬양과 감사를 드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들의 신분은 여전히 식민지 포로 상태였고, 주변의 적대국들로부터 위협이 상존하였다. 황폐화된 땅에서 힘겨운 노동으로 가산을 일으켜야 하였고, 그에 더하여 성전을 재건해야 하는 일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던 이유는,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이스라엘, 즉 자신들에게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인식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들의 신앙은 하박국의 고백과 일치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제사장들과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만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 아니다. 그 찬양에 모든 백성이 함께하였다(11절). 그들은 성전 기초가 놓이는 것을 보고 즐거워서 목청껏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큰 소리'는 전쟁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지르는 '함성'을 말하는데, 주로 승리하였을 때 즐거워하면서 이렇게 지르곤 하였다(삼상 4:5). 그들 가운데 특히 1차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나이 많은 족장들)은 성전 기초가 놓인 것을 보고 대성통곡까지 하였다(12절). '대성통곡'은 지속적으로 크게 울며 흐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기뻐하면서 함성을 질렀다.

    ​[질문] 성전 기초가 놓일 때, 1차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은 대성통곡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기쁨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큰 감격이 넘쳤기 때문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1차 성전에서 제사로 섬겼고, 지도자인 족장들은 백성들의 맨 앞에서 그 제사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바벨론의 침공으로 성전이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더 이상 그것을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왕하 25:13;대하 36;19). 그들에게 그 사건은 크나큰 상실이었고, 그 자체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그와 같은 성전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던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성전 재건의 기초가 놓인 것을 보면서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둘째, 1차 성전과 비교할 때 자신들 앞에서 세워지고 있는 2차 성전의 기초는 너무 초라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2차 성전은 1차 성전에 비해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학개서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학 2:3). 보잘것없어 보이는 성전의 기초가 그들에게 큰 아픔이 되었고,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대성통곡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원인은 2차 성전의 외형만 보았을 뿐 그 존재의 참된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후에 학개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예표하는 2차 성전에 오셔서 그 성전의 나중 영광을 솔로몬 성전의 이전 영광보다 더 크게 하고 평강을 주실 것이라고 예언함으로써 백성들을 위로하였다(학 2:6-9).

      ​셋째, 슬픈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전 기초가 놓이는 것을 보면서 역으로 자신들과 자신들의 조상이 지은 범죄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민족에게 철저히 유린당하였던 슬픈 과거를 생각하면서 뉘우치고 한탄하는 '회한의 통곡'을 하였던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사람은 한 가지로 인해서, 또 어떤 사람은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대성통곡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II. 메시지

    ​본문: 스 3:1-13

    ​제목: 우리도 그들처럼

    ​01.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0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03.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0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0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0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0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08.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09.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13.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1.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 그들

    ​에스라서 1장은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 남아 있던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유대 땅으로 돌아온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주도하신 분이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역사를 섭리 가운데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잊지 않고 밝히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그들의 명단과 인원수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3장은 그들이 유대 땅에 거주한 이후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대 땅에 무사히 안착하여 각자의 성읍에 살고 있던 그들은, 일곱째 달이 되자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일곱째 달은 굉장히 중요한 달입니다. 일곱째 달의 1일에는 '나팔절'이, 10일에는 '대속죄일'이 있고, 15일에는 유대인의 3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초막절'이 있기 때문에, 일곱째 달에는 거의 한 달 내내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귀환자들'인 그들도 그 전례에 따라 그 기간 동안 한 마음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1-6). 그렇지만 여호와의 성전 기초는 그때까지도 놓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그들은 성전 재건을 준비하기 위하여 석수와 목수를 고용하는 한편, 솔로몬 왕이 그랬던 것처럼 시돈과 두로 사람들을 시켜 레바논 산지의 백향목을 이스라엘의 서부 해안 지역인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반년 동안 성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 그들의 귀환 두 번째 해의 둘째 달에 마침내 성전 재건의 초석이 되는 기초를 놓았습니다(6-13절).

    ​2.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워진 제단

    ​그들의 이런 모습 속에는 우리가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할 대목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인 교회를 세우는 일과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 귀중한 지침이 되는 것들입니다. 먼저 3절 말씀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무리가 다른 터에 세워야 할 제단을 두려움 때문에 그 터에 세웠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터에 세웠다는 말인지, 그리고 제단을 세우는 것과 두려움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자가 맞는 것일까요, 아니면 후자가 맞는 것일까요? 또 그 상관관계는 무엇일까요?

      ​히브리 원어와 여러 번역본들을 종합해 보면,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땅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땅히 세워져야 할 곳인 바로 그 터 위에 (번)제단을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땅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땅히 세워져야 할 곳인 바로 그 터 위에 (번)제단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그 위에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림으로써 (그 두려움을 물리치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 속에는 첫 번째 의미 속에 담겨 있는 그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는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터는 양보할 수 없었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그 터에 제단을 설치한 이유가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그 터'는 솔로몬이 1차로 성전을 세웠던 자리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터 위에 제단을 세우는 것과 두려움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들에게 두려움이 되었던 '모든 나라 백성'은, 그 당시 팔레스타인 땅과 그 주변에 살던 여러 민족을 가리킵니다. 그런 민족 가운데 아시리아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서 사마리아 주변에 정착하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만약 옛 영화의 상징인 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에 성전이 재건된다면,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회복되고 다시 이스라엘이 강성한 민족이 된다면, 이는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기득권(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주변 민족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터에 제단을 세운다는 것은 주변 민족들에게 그런 의미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빌미가 되어 핍박이나 보복, 심지어 전쟁까지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유다 백성들은 그 터에 제단을 세우면서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바로 그 터에 제단을 세웠습니다. '역대기서' 기자는 그 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대하 3:1). 그 터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고 또 다윗이 정한 곳이기 때문에, 제단을 세울 장소로서의 그 터는 유다 백성들에게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그 어떤 두려움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 이면에는 또 이런 믿음도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두려워할 때 오히려 올무에 빠진다. 바로 그곳에 제단을 세워 하나님만 의지하고 섬기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구원해 주실 것이다.' 이런 믿음이 두려움을 물리치고 평안을 선물해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사수하는 태도와 하나님만 의지하고자 하였던 그들의 믿음은, 오늘 우리에게 귀중한 울림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그들과 동일하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것이고, 이 땅에 굳건하게 세워야 할 교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사수할 때 그들에게 임하였던 두려움이 우리에게도 밀려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소중한 것들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우리에게 두려움이 밀려온다면, 아니 우리를 위협하면서 두렵게 하는 것들이 분명히 밀려오게 되어 있지만, 그렇더라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평안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분만 믿고 의지하면 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대로' 하는 태도

    ​유다 백성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유심히 들여다볼 또 다른 대목은, 바로 '~대로 하는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대로 하는' 그들의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그들은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하였습니다(2절). 초막절을 지킬 때에도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4절). 그런가 하면 성전 기초를 놓으면서 여호와를 찬양할 때에도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규례대로" 하였습니다(10절). 심지어는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할 때에도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하였다고 에스라는 기록하고 있습니다(7절).

      ​이들의 이런 태도는 이전 사사시대와 왕정시대 사람들의 태도와 비교할 때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를 마감하면서 기자는 당시 사람들의 상태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여기에서 중의법으로 사용된 '왕'은 세상 '왕'과 왕이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절대적인 기준이신 하나님 없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회는 통제 불능에 빠져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왕정 시대의 이스라엘은 왜 망하게 되었습니까?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그들을 이렇게 비판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사 50:10).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렘 22:21).

      ​그렇지만 70년이 지나서 지금 유대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이런 모습이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지워져 있었습니다. 마치 꼭두각시나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자기 소견도 없어 보이고, 순한 양이 되어 율법과 규례, 심지어는 고레스 왕의 명령에 따라 그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절대 순종이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쓰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이런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의 소명을 맡겨 주셨고, 또 이들을 통하여 '참 이스라엘'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들에게서 옮겨 심어야 할 태도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의 주님과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소견의 옳은 대로 하지 말고 주님의 소견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기꺼이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뜻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길은 바로 '~대로 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하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시간에 바로 그렇게 반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4. 그 기쁨이 우리의 기쁨으로

    ​12-13절은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본 백성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그들의 커다란 기쁨이 우리의 심장에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이 장면이 우리 교회에서도 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바람도 저의 바람과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장면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위하여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온갖 두려움도 그들의 열정 가득한 믿음을 꺾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그런 믿음이 그들을 두르고 있던 두려움을 말끔하게 지워 버렸습니다. 그들은 또 어떻게 해서 이런 장면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자기의 소견을 완전히 지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처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복음과 교회를 위해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멀리까지 들렸던 그들의 기쁨 소리가 우리 교회 안에서도 재현될 수 있습니다. 그 바람이 단순하게 바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통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4장 요약

    유다의 대적들이 성너전의 건축을 함께하자고 제안하지만 스룹바겔이 거절합니다.대적들이 성전의 건축을 방해,페르시아 왕에게 성전 건축의 부당합을 고발합니다.페르시아 왕의 명령으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장은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대적들(유다 주변의 민족들)의 행위를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회유책, 위협, 모함(뇌물로 관리들을 매수)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방해하였고, 그 결과 다리오 왕 2년까지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되었다(1-5,24절).

    본문에는 대적들이 성전 건축 이후의 일, 즉 예루살렘 성읍과 성곽 재건 공사 등을 지속적으로 방해한 사건들도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이 성전 재건 방해 기사인 1-5절과 24절 사이에 삽입되어 있다. 특히 그들은 아닥사스다 왕 때 그 일을 모함하는 고발장을 왕에게 보내 성전 중단을 명하는 왕의 조서를 받아냈고, 그것에 근거하여 권력으로 예루살렘 성읍과 성곽 공사를 중단시키기도 하였다. 에스라는 이것을 통해 대적들이 유다 백성들의 정착을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방해하였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유다 백성들이 어떤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었는지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대적들의 성전 재건 방해(1-5절)

    [본문]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이해]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은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은 '포로의 자손들', '추방되어 이주한 자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유다와 베냐민'은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가리킨다.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그 지파 사람들이 귀환자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고, 또 귀환자들이 거주하던 곳이 원래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던 땅이기 때문이다. '대적들'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그 땅 백성'(4절), '모든 나라 백성'(3:3)으로 볼 수 있고, 이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족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는 말은, 역으로 유다와 베냐민이 그들의 대적이라는 말도 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유다와 베냐민이 왜 대적이 되는 것일까? 그곳에 정착하고 있던 그들 입장에서 보면 유다와 베냐민은 '굴러온 돌'이다. 굴러온 돌인 귀환자들이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옛 이스라엘의 영광이 재현되는 것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의 실질적인 힘의 균형도 유다와 베냐민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것은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유다와 베냐민이 그들에게 대적이 될 수밖에 없고, 반대로 그들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한편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스라엘 족속의 순수성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시리아 왕 살만에셀(기원전 727-722년)이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을 함락한 후에(기원전 722년), 그곳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시리아 땅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 사르곤 2세(기원전 722-705)는 기원전 720년에 하맛의 영향 아래 있던 아람과 팔레스타인 연합군을 공격하여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다시 점령하였다. 그때 그는 그곳 백성들을 추방하고, 대신 바벨론, 구다, 아와, 하맛, 스발와임 등지의 사람들을 사마리아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다(왕하 17:24). 그 결과 그 지역은 민족뿐만 아니라 언어, 관습, 종교의식 등도 혼합되는 현상이 초래되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죽는 심판이 내려졌고,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아시리아 왕은 제사장을 벧엘로 보내 그곳 거주민들에게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가르쳤다(왕하 17:25). 그러나 각각의 민족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신상들도 만들어 섬김으로써 종교 혼합주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왕하 17:29-34). 바로 이런 점과 그들이 성전 재건과 예루살렘 성 복원 작업에 지속적으로 방해하였다는 점 때문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으로 간주하고 개 취급하면서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요 4:9;8:48).

      성전 재건 소식을 들은 대적들은, '상생'이라는 호의적인 전략 대신 '충돌'이라는 호전적인 전략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먼저 도움을 주는 척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과 같은 종교 혼합주의로 편입시키기 위해 회유책을 폈다. 그들은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제안하였다.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처럼 너희 하나님을 찾는다. 아시리아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2절) '너희처럼'은 우리가 너희와 동일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과 자신들의 '신앙 동질성'을 근거(이유)로 들면서 건축에 함께하자고 제안하였던 것이다. '너희처럼'이라는 그들의 말에는 일면 맞는 측면도 있지만, 틀린(거짓된) 면도 들어 있었다. 유다와 베냐민은 오직 여호와 한 분만 찾지만, 그들은 그 외에도 다른 신, 즉 자신의 신들도 섬기고 있었다. 후자를 숨기고 전자만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공사를 함께하려고 하였던 그들의 숨은 의도는 어디에 있었을까? 첫째는, '물타기 전략'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술에 물 탄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성격이 분명하지 않고 미지근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들은 명확한 성전 재건의 성격(의미)을 미지근하게(혼탁하게) 하기 위해 이 전략을 썼던 것이다. 혼합 종교를 믿는 그들이 성전 재건에 참여하게 되면, 상징적인 면에서 순수성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면에서도 완성될 성전과 그 성전에서 드리게 될 제사가 혼합 종교의 영향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그 과정을 통해 오히려 유다와 베냐민을 자신들의 종교에 동화시킬 수 있다. 둘째는, '공사 지연 전략'이다. 그들의 힘이 더해지면 공사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도 속에 불순물이 들어 있다면 더해진 힘에 반비례해서 공사는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함께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의사 결정을 왜곡시키고 현장 일을 방해한다면 성전 건축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함께하자는 그들의 제안 속에는 이런 노림수가 숨어 있었다.

      스룹바벨, 예수아, 그리고 이스라엘 족장들은 그들의 제안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였다(3절). 그들이 거절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들이 자신들과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적들은 상관이 있다는 이유로 제안하였지만, 스룹바벨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상관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상관이 없다'는 말은 그들이 혼합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자신들과 종교적으로 연관성이 없다는 말이다. 또 그들이 고레스 왕으로부터 성전 재건에 함께하라는 조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방인(혼혈족)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혈통적으로도 연관이 없었다. 둘째, 바사 왕 고레스가 자신들에게 그것을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고레스 칙령'에는 두 가지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본토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벨론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질적으로) 도우라는 것이었다. 그 조서에는 제안하고 있는 대적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첫째가 주로 신앙적인 측면에서의 거절이었다면, 두 번째 이유는 조서 내용을 지키기 위한 법적, 외교적인 노력에 근거하고 있다.

      회유책이 무산되자 그 땅 백성(대적들)은 그때부터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건축을 방해하고,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건축 계획을 막았다(4-5절). '손을 약하게 하다'는 말은 '능력', '의욕' 등을 비유하고 있는 '손'(6:22;왕상 18;16;대상 18:3;렘 38:4)을 감하거나 나태하게 하는 것으로, 유다 백성이 성전 재건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도록 온갖 교활한 방법을 동원한 방해 공작을 가리킨다. 특히 이 말은 전쟁과 같은 때에 느끼는 두려움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느 6:9;렘 38:4;49;24;50:43;습 3:16). 본문에는 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은 위협, 훼방과 같은 방법으로 건축을 방해하였고, 그 결과 유다 백성의 건축 의지는 상당 부분 약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방해 공작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는 것이었다. '관리들'은 페르시아의 고위 공직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사마리아에 거주하던 페르시아 왕실의 관리로, 법정의 민원 담당자나 고문관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적들이 그들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물은 공의를 어그러지게 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출 23:8;삼상 12:3;잠 17;23). 따라서 그들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는 그들의 진술(2절)이 거짓이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고레스 왕 때부터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유다 백성의 성전 건축을 지속적으로 방해하였다(5절). 그리고 그들의 방해 공작은 다리오 왕 즉위 2년(기원전 521년)까지 공사가 중단됨으로써 실효를 거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24절).

    [질문]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통치가 가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신약에서 교회가 성전의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대적들의 방해 공작과 그에 대한 유다의 대응을 보면서 교회를 세우는 데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교회'는 머리 되신 예수님의 몸이다. 따라서 그분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그 몸을 이루고 있다(엡 1;22;4:15-16;골 1;8). 교회의 이와 같은 정체성은 교회를 세우는 데에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도 하다(요 1:1,14). 그분의 본질은 하나님과 동동하게 '거룩'과 '순결'에 있기 때문에, 그분의 몸 된 교회 역시 그것으로 세워지고 그것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는 역으로 성전과 성전을 중심으로 이룰 공동체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함께 건축하자는 대적들의 제안에 스룹바벨을 위시한 유다 지도자들의 거절은 올바른 대응이었다. 만약 함께 건축하게 될 경우 종교 혼합주의로 인하여 건축 과정의 순수성뿐만 아니라 건축 이후의 제사 행위에도 그 순수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훼손은 죄와의 타협을 의미한다. 현대 교회는 많은 경우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유다의 대응 모습을 교훈으로 삼지 않는다.

      두 번째로 삼을 교훈은,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도 대적들의 방해가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때로는 회유책으로, 때로는 물리적인 공격인 핍박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한다.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한다는 것은, 성전의 재건이 의미하는 것처럼, 반대편에 있는 세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반대편 세력, 즉 사탄은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탄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이렇게 묘사하기도 하였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먹이를 찾기 위하여 '우는 사자'에게 자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먹이를 발견한 사자는 먹이에게 가까이 접근하기 위하여 수풀 속에 몸을 잔뜩 낮춘다. 이윽고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잔인한 발톱과 이를 드러낸다. 유다의 대적들이 회유책을 쓰고, 유다의 손을 약하게 하고, 뇌물로 계획을 막았던 행동 속에는 바로 이런 모습이 들어 있었다. 그로 인해 성전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와 맞물려 성전 공사가 중단된 데에는 내부적인 문제도 심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건축하고 이런저런 일상적인 문제에 시선을 빼앗긴 탓에, 성전 건축에 대한 태도는 무관심과 나태함에 빠져 버렸다(5:1;학 1:4). 대적들의 방해 공작에 그런 태도로 맞설 수 없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는 사자'에게 맞설 수 있는 태도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을 것'(To be self-controlled and alert)을 주문하였다.

    2. 계속되는 대적들의 방해(6-16절)

    [본문]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9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11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건너편에 있는 신하들은 12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13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14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오니 15 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16 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이해] 앞서 1-5절과 맨 뒤의 24절은 유다 백성들이 귀환한 이후부터 있었던 일, 즉 대적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하고 그로 인해 건축이 중단된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기원전 536-520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해 비해 6-23절은 그 일 이후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바사의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왕은 성전이 완성된 이후, 즉 다리오 왕 이후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아하수에로'(Ahasuerus)는 헬라식 명칭으로 '크세르크세스'(Xerexes I)로 불리는 인물로, 다리오 1세의 뒤를 이어 인도부터 에티오피아까지의 광활한 바사 제국을 통치하였다(기원전 486-464년, 에 1:1). 구약 성경에는 왕후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유다 출신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에 1:17;2:17). 그는 살리미스 해전(기원전 480년)과 플라티아 전투(기원전 479년)에서 그리스군에게 연패하였고, 귀국 후 방탕한 생활을 하다 암살되었다. '아닥사스다'(Artaxerxes)는 아하수에로의 셋째 아들로, 부친을 암살한 아르파타나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기원전 464-424년). 그는 유대인의 2차 귀환(재위 7년, 에스라가 주도, 7:7-9)과 3차 귀환(재위 20년, 느헤미야가 주도, 느 2:1-8)을 허락하였지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잠시 중단시키기도 하였다(4:7-23). 그가 죽은 후에 바사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고레스 왕 때부터 다리오 왕이 즉위할 때까지 성전 재건을 방해하였던 대적들은, 그 뒤 아하수에로 왕이 즉위할 때에도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고발하였다(6절). 그들이 고발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알기 어렵다. 아하수에로 왕 때에는 성전이 이미 완성된 후였고, 또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3차 귀환이 이루어지기 전이다. 따라서 성전과 성벽 재건의 일로 고발하였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일로 사사건건 유다와 대적들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내용을 고발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발하다'는 말은 '참소하다', '비방하다'는 뜻으로, 바로 여기에서 '대적하는 자', '참소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사탄'이 나왔다(욥 1:6). 따라서 그들이 그 고발(모함)을 통해 얻고자 하였던 것은, 유다가 왕의 미움을 사서 더이상 기를 펴지 못하도록 압제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대적들은 아닥사스다 때에도 왕에게 글을 올려 유다를 고발하였다(7-10절). 이번에는 두 건이었다. 하나는 비슬람, 미드르닷,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올린 글(고발장)이다(7절).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주재하였던 바사 관리로 추정될 뿐이다. 그들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글을 진술하였다.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썼다'는 말은 아람어로 기록하고 아람어로 번역하였다는 뜻으로, 이는 처음에는 아람어로 기록된 문서가 이후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고, 그것을 다시 아람어로 번역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번거로운 일이 일어난 이유는, 그 당시 페르시아가 근동 지역을 지배하였지만 실제 일상 공용어로 아람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마 제국이 패권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헬라어가 일상 공용어로 사용되었던 경우와 같다. 구약 성경은 모두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구약 어디에도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한 내용을 그 나라의 언어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에스라는 7절부터 16절까지 아람어로 된 공식 문서를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에스라가 이렇게 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본문 내용의 신빙성을 높이려고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소장에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기원전 458년 2차로 귀환한 에스라가 주도한 종교개혁과 신앙 부흥 운동을 방해하거나, 기원전 444년 3차로 귀환한 느헤미야가 주도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내용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성전을 재건한 후 60년 정도가 지났을 때 유다 공동체의 신앙은 다시 우상을 섬기고 이방 여인과 결혼할 정도로 허물어져 있었다(9:1-2). 이때 귀환한 에스라가 개혁과 부흥 운동을 통해 유다 공동체를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적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또 그로부터 14년 후에 돌아온 느헤미야가 주도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모습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회 기강이 바로잡히고 성곽이 온전하게 회복되면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것이 빤하다고 생각한 이웃 나라의 대적들은 모함을 통해 그 작업을 방해하였으리라 여겨진다.

      글을 올려 아닥사스다 왕에게 유다를 고발한 세 번째 사건은,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주도하였다. 그 고발에 그들의 동료 디나 사람, 아바삿 사람, 다블래 사람, 아바새 사람, 아렉 사람, 바벨론 사람, 수산 사람, 데해 사람, 엘람 사람,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자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도 동참하였다(8-10절). '방백'은 사마리아에 거주하던 바사의 지방 행정관을 가리킨다. 페르시아 제국은 각 지역을 독자적으로 감찰하기도 하였지만, 지방 지도자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일정 지역 관할 구역 내에서는 지방 장관이 직접 왕에게 서신을 보내 상황을 보고하고 왕의 명령을 하달받기도 하였다. '서기관'은 공식 서류의 사본을 만들고 그것을 아람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거나, 세금 명부 보고서를 만들던 왕의 직속 관리이다. 방백인 르훔이 명령하고, 서기관 심새가 받아 적어 고발장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동료'는 '지방 관리들'과 '이전에 바벨론의 여러 지방에서 사마리아로 추방되었던 사람들의 자손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들'의 조합으로 여겨진다. '디나 사람'은 단순히 사람이나 지역 이름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사사'나 '재판관'을 말한다.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도 각각 '정부 관리', '영사, 집정관, 감독'을 지칭한다. 그래서 NIV에서는 이들 세 사람을 그냥 'the judges and officials'(재판관들과 관리들)로 번역하고 있고, 이들이 아바새, 아렉, 바벨론, 수산, 데해, 엘람 등지에서 강제 이주해 온 사람들을 다스렸다(over the men from)고 적고 있다. '아바새'는 '페르시아'나 '유프라테스강 동쪽 지역'라는 주장이 엇갈리는데, NIV와 RSV는 '페르시아'로 번역하고 있다. '아렉'(Erech)은 고대 바벨론의 도시로, 니므롯이 시날 땅에서 시작한 4대 도시 중 제2의 성읍이다(창 10:10). 바벨론 성의 남동쪽 160km 지점에 있는 유프라테스강 동쪽 기슭의 습지대로, 바벨론과 우르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압살롬이 반역할 때 아히도벨의 계략을 물리친 다윗의 친구이자 고문이었던 '후새'가 아렉 출신이다(삼하 15:37;16:16-18;17:5-15;대상 27:33). '수산 사람과 데헤 사람과 엘람 사람'에서 '데헤'는 역본에 따라 인명이나 지명으로 보기도 하고(ASV, KJV), 히브리어의 관계 대상사로 보기도 한다(NIV, NASV, RSV). 후자를 적용할 경우 '수산 사람 곧 엘람 사람'(the Elamites of Susa)으로 번역된다. 'Susa'는 이란 남서부에 위치한 후제스탄 주의 주도인 아바즈 북쪽으로 110km 지점에 있는 고대 도시이다. 아하수에로 왕과 에스더 왕후 이야기의 주요 무대가 이곳 수산 궁이다. '오스납발'은 아시리아 제국 말기의 왕으로, 제국의 후기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던 '앗수르바니팔'(기원전 669-626년)을 가리킨다. 므낫세를 쇠사슬로 채워 바벨론으로 데려갔던 인물이기도 하다(대하 33;11). 바벨론이 반역을 일으킬 때 엘람이 그 반역을 도왔고 또 엘람의 꼭두각시 왕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앗수르바니팔은 그 반란을 모두 진압한 후 엘람을 유린하고 수사의 거주민들을 국외로 추방하였다. 그렇게 추방된 사람들은 '사마리아 성과 강 건너편 다른 땅'에 거주하게 되었다. '강 건너편'은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역을 말한다. 이는 페르시아 제국의 유프라테스강 서안에 있는 거대한 속국을 일컫는 공식적인 이름이었다. 그 당시의 페르시아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강 건너편'을 시리아, 팔레스타인, 페니키아(두로와 시돈) 등에 대한 총칭으로 이해하였다(왕상 4:24). 그 지역들 가운데 특히 '사마리아 성'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은, 다른 지역들보다 사마리아 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방해하는 일에 가장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앞선 고발과 달리 세 번째 고발에는 그 글의 초본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11-16절). 대적들의 고발장에는 첫 번째로, 귀환한 유다 사람들이 패역하고 악한 예루살렘 성읍의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12절). 이 보고에 따르면 바로 그 이전까지 예루살렘 성읍의 기초가 건축되지 않았고, 성곽은 허물어진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아닥사스다 왕 때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벽과 성읍 재건 작업은 1차 귀환(기원전 537년) 이후부터 아닥사스다가 왕으로 즉위한 기원전 464년까지 최소한 73년 이상 제대로 착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느헤미야가 주도한 3차 귀환(기원전 444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기간을 최대 90년까지 잡을 수도 있다. 이것을 통해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되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참상은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형제(동생) 하나니를 통해 접한 소식 속에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느 1:3). '패역한 성읍'이라는 말은 '반란을 일으키는 성읍'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유다가 예루살렘 성읍의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한 일은 반란과 악한 행위라는 것이 대적들의 주장이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내용의 결과론을 연장한 것으로, 만약 성읍과 성관 건축이 완공되면 유다 백성들이 다시는 조공과 세금(관세와 통행세)을 바치지 않을 것이고, 이는 결국 왕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13절). 조공과 세금을 바치지 않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반역을 의미한다. 만약 그런 반역이 일어나면 페르시아 국고가 타격을 받기 때문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적들은 이렇게 왕의 민감한 노출 신경을 건드려서 왕으로 하여금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였다. 세 번째 내용은, 예루살렘 성읍이 왜 패역하고 악한지, 그래서 성읍과 성곽이 중건되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었다. 그들은 왕의 조상들의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제시하면서 결과적으로 강 건너편의 영지를 잃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왕의 주의를 환기시켰다(14-16절). '조상들의 사기'는 '열조의 사기'를 말한다. 페르시아는 스스로 바벨론의 합법적인 계승국으로 자처하였기 때문에, 열조 사기에는 바벨론 제국 때부터의 역사 기록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 아시리아 제국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왕은 히스기야와 시드기야 등의 반역에 대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대적들은 사기에서 민감한 내용만 추려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적었다. (1)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다. (2) 예로부터 그 성읍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읍이 무너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기의 내용을 환기시킬 때에는 그들이 왕궁의 소금을 먹기 때문에 왕이 수치 당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왕에게 아뢴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자신들이 글을 올린 이유가 시기에 의한 모함이 아니라 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소금'은 보통 언약을 보증할 때 사용되기 때문에 '충성'을 의미한다(레 2;13;민 18:19;대하 13:5). 또 '소금을 먹는다'는 말은 나라의 '봉직에 종사하다', 나라로부터 '봉급을 받다'는 뜻을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이것을 통해 대적들은 자신들과 왕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질문] 6-16절은 성전 재건 이후 대적들이 행한 방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을 성전 재건 기사 중간에 삽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적들은 함께 건축하자는 제안이 무산되자,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건축을 방해하였는데, 주된 방법이 관리들에게 뇌물을 줘서 계획을 막는 것이었다(4-5절). 관리들은 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활용하는 방법은 가장 강력한 최선책이 될 수 있다. 뇌물을 받은 관리들은 유다의 성전 재건 과정에 행정적, 사법적으로 사사건건 개입하였을 것이고, 그런 방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을 경우 6-16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방법, 즉 글을 써서 왕에게 모함하는 방법을 활용하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6-16절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 성전 재건을 방해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추론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된다.

      두 번째 이유는, 대적들의 방해가 집요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발한 글을 보낼 때에는 강 건너편의 모든 족속이 함께하였고, 그 내용도 열조의 사기를 인용할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그들의 방해가 한두 사람에 의해 추상적이거나 엉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그들의 방해 공작은 모두가 힘을 합쳐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보는 역으로 그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할 때에도 어떤 태도로 덤볐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게 한다. 이 정보를 신약에 적용하면 교회를 세우는 일을 방해하는 사탄의 접근 태도나 방법도 이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힌트를 준다.

      세 번째 이유는,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왕 때 대적들이 행한 방해 공작이 앞선 성전 재건 과정에서 행한 방해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비록 성전이 재건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곳으로 나아가 제사를 드릴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어 있다면, 그 제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고, 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 민족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성전 재건과 백성들의 삶의 터전은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성전 재건 이후 60년(최대 80년) 동안이나 성읍과 성곽이 무너진 채로 회복되지 못한 데에는 유다의 나태함도 원인이 되었겠지만, 대적들의 방해 공작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 분명하다.

    3.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17-24절)

    [본문] 17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 동관들과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18 너희가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19 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20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 21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22 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 하였더라 23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 년까지 중단되니라

    [이해] 고발장을 접하고 그 내용을 살핀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내렸다. 수신자는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의 동관들,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들이었다. '그들의 동관들'은 '그들(르훔과 심새)의 동료들'을 말한다.

      조서 내용에는 앞서 르훔과 심새가 보낸 고발장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이 담겨 있었다. 첫째 내용은, 그들이 고발한 내용대로 왕이 사서를 살펴보니 예루살렘 성읍이 옛날부터 왕들을 거역하고 반역한 일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왕들'은 아시리아 제국부터 바벨론을 거쳐 페르시아까지의 열조 왕들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이러한 왕들에 대한 반역, 특히 아시리아와 바벨론에 반발하였던 히스기야, 여호와김, 시드기야 왕 등의 사건이 기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왕하 18;7;24:1,20).

      두 번째 내용은, 옛적에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에게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다는 것이다. 이는 '큰 군왕들'을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다윗과 솔로몬,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남 유다의 웃시야나 히스기야 등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이들은 유프라테스강 서쪽의 상당 부분을 점령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솔로몬은 왕국의 북동쪽 지역인 딥사(유프라테스강 서쪽)에서부터 이집트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왕국을 다스리고 조공을 받았는데(왕상 4;21), 특히 시리아 사막 내의 중요 오아시스 지역인 '다드몰'을 건축하여 유프라테스강 서쪽 일대를 장악하기 위한 거점 요새로 삼기도 하였다(왕상 9;18). '다드몰'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북동쪽으로 190km 지점에 있는 교통 요충지이기도 하다. 솔로몬 사후에 신-아시리아가 팽창하면서 이스라엘이 점차 밀리기 시작하고 결국 북 왕국은 아시리아에 패망하였지만, 아닥사스다 왕이 볼 때 예루살렘 성읍과 성곽 재건은 솔론몬 당대와 같은 확장 가능성까지 열어둔다는 점에서 근심거리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둘째는, '큰 군왕들'이 아닥사스다 이전의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왕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이 경우 아닥사스다는 이전 왕들에 비해 자신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고, 따라서 예루살렘의 팽창 소지를 제거하여 최소한 이전 왕들과 같은 조건의 조공과 각종 세금을 거두고자 하였을 것이다.

      세 번째 내용은, 이제 너희(조서의 수신자들)는 그 사람들(유다)에게 나(왕)의 명령을 전하여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왕은 조서 말미에 '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는 말로 자신이 내린 명령의 중대함과 함께 엄중한 실행을 강조하였다. 또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는 경고의 메시지까지 담았다. 한편 아닥사스다 왕은 세 번째 내용 가운데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남김으로써, 비록 지금은 공사 중지를 명령하였지만 나중에 이에 대한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여기에는 왕의 신중함이 묻어 있기도 하는데, 이런 여지는 실제 자신의 재위 20년인 기원전 444년 느헤미야에게 성곽 재건을 허락함으로써 바뀌기도 하였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심새, 그리고 그의 동료들 앞에서 낭독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올린 고발장과 조서의 내용이 일치한 것을 확인하고 무척 기뻐하였을 것이다. 이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에게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였다(23절). '급히 가서'라는 표현 속에는 왕이 내린 조서에 그들이 얼마나 흡족해하였는지, 또 그들이 그것을 얼마나 빨리 실행에 옮겼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권력으로 억제하다'는 말은 '군대를 동원하여 막다'는 뜻이다. 외경인 에스드라상 2장 30절에 따르면 대적들은 기병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군대를 동원하여 공사를 그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그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이미 공사가 진척되어 있던 부분까지 모두 허물거나 불태웠고, 그 결과 그것이 유다 백성들에게는 큰 환난과 능욕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느 1:3).

      고대에는 어떤 글에 삽입구를 넣은 후 그 삽입구 바로 뒤에 원래의 기사를 다시 시작할 때 삽입구 이전의 마지막 내용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기록하는 관습이 있다. 24절에는 이 같은 '반복 재개'의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즉 삽입구 이전의 원래 기사 마지막 내용인 '바사 왕 고레스가 즉위할 때'(5절)는, 24절에 와서 '바사 왕 다리오 제이 년까지'로 요약 반복함으로써 6-23절로 중단되었던 연대기적 순서를 되돌리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확대 전개하지 않고 다시금 다리오 왕 시대로 되돌린 것이다. 고레스 왕 3년(기원전 536년) 경에 시작된 성전 재건 공사는 뒤이은 다리오 왕 2년(기원전 520년)까지 중단되었다.

    [질문] 대적들이 예루살렘 성읍과 성곽 건축의 부당함을 고발하였을 때 아닥사스다 왕은 그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교훈)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대적들의 전략이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유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성읍을 건축하고 주변국들의 무력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성곽을 건축한 일은 객관적으로 정당한 일이었다. 비록 그들이 식민지의 포로 신분이었다 할지라도 부당한 일이 아니었다. 대적에 해당하는 주변 민족들도 유다가 하고 있었던 일, 즉 자신들의 성읍과 성곽 건축을 정당하게 생각하고 유다 귀환 이전에 이미 그 작업을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대적들은 유다의 정당하고 순수한 일에 대해서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여 건축의 동기를 왜곡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왜곡은 모함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그들은 제국의 왕이 내린 조서를 등에 업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공사를 그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일은 현대에 와서도 유사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유무형의 교회를 세우고, 또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사업을 일구고 직장 등에서 열심히 수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받고 때로는 모함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은 그렇게 부당한 처우나 모함이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 수위가 국가 권력에 의한 억제로 높아지기도 한다. 대적들의 승리는 유다 백성들에게 패배, 즉 고통과 수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삶의 현장에서 그와 똑같은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두 번째는, 대적들의 행동이 당장은 승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역사는 정직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은 중단되었고, 예루살렘 성읍과 성곽 공사도 멈추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대적들의 방해가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다리오 왕 2년에 성전 건축을 재개시켰고, 예루살렘 성읍과 성곽도 아닥사스다 왕 20년(기원전 444년) 느헤미야의 귀환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성전 건축 재개, 예루살렘 성읍과 성곽 공사 재개는 모두 하나님이 개입하신 결과이다. 하나님의 개입은 현대에도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 번째는, 이 사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상황 가운데 반응해야 할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삶의 현장에서 대적인 사탄의 방해가 주어지고 그로 인해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실망하거나 낙담에 빠져서는 안 된다. 실망과 낙담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반응은 사탄이 노리는 최종 결과물이다.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승리로 돌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패배처럼 보이는 그런 상황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자신의 모습과 능력을 계시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영광 받기 원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는 바울의 권면대로 하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II. 메시지

    본문: 4:1-5,24

    제목: 성전 건축 방해와 유다의 대처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1. 대적들이 방해한 이유

    지금의 세계정세를 살펴보면, 상생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해 관련 국가들을 압박합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수입 관세를 상향 조정하여 미국 내에서의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고, 중국도 밀리지 않기 위해 동일한 정책을 펴서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상황은 이와 성격이 다르지만, 그 기저에는 역시 자국 이익 우선 정책이 깔려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민감한 소재와 부품을 가지고 양국 간의 역사, 정치, 외교 등의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에 밀리지 않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고, 국민들은 불매 운동을 통해 일본 경제에 피해를 주면서 아베 정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한때 북한은 남북 정상 회담, 북미 정상 회담 등으로 화해 국면을 조성하여 그것을 국내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로 모색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자 여려 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한미를 압박하면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주도권을 자기 쪽으로 자져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주변국들의 갈등은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부터 계속되고 있고, 최근에는 이란과 군사 문제로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뿐만이 아닙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얽히고 얽힌 온갖 이해 문제로 갈등과 분쟁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도 시대만 다를 뿐 똑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남쪽 지역인 유다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로 종들까지 포함하여 5만 명 가까이 되었는데, 그들이 돌아온 이유는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고레스 왕 즉위 둘째 해에 성전 재건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3:7), 그 다음해인 기원전 536년부터 성전 기초를 놓기 시작하였습니다(3:8-13). 그 소식이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 귀에 들려왔습니다(1절). 유다 백성들이 다시 돌아와 정착한 것도 마뜩치 않은 판에, 성전을 재건한다는 소식은 이제 그들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1차 성전은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이 건축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성전이 재건된다는 것은, 대적들의 입장에서 볼 때, 유다가 다윗이나 솔로몬 왕조 때와 같이 부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국제 역학 관계를 볼 때 한 쪽이 강성해지면 다른 쪽은 그쪽에 편입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대적들은 유다의 성전 재건을 곱게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생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성전 재건을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대적들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성전 재건을 방해하였는데, 먼저는 회유책을, 나중에는 그것이 여의치 않자 강공책을 썼습니다.

    ​2. 대적들이 방해한 방법

    1) 회유책

    그들이 사용한 회유책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내용이 2-3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그들은 자신들도 성전 건축을 돕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또 자신들이 그 일을 돕는 합당한 이유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도 너희처럼 하나님을 찾는다.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날부터 계속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함께 돕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그들의 말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시리아의 에살핫돈 왕에 의해 바벨론 등지에서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입니다. '에살핫돈'은 아시리아 왕 산헤립의 셋째 아들로, 그 뒤를 이어 기원전 681년부터 669년까지 12년 동안 아시리아를 통치한 왕입니다. 따라서 대적들은 그때 강제로 이주되어 성전 기초를 놓았던 기원전 536년까지, 최소 130년 이상을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리아의 이와 같은 이주 정책은 반란을 막기 위해 취해졌는데, 실상은 사르곤 2세가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기원전 722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그때 그곳 백성들을 추방하고, 대신 바벨론, 구다, 아와, 하맛, 스발와임 사람들을 사마리아 땅에 강제 이주시켰습니다(왕하 17:24). 그 결과 그 지역은 민족, 언어, 관습, 종교 의식 등도 혼합되는 현상이 초래되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죽는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아시리아 왕은 제사장을 벧엘로 보내 그곳 거주민에게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왕하 17:25). 그래서 대적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말은 사실이었고, 함께 건축하자는 그들의 제안은 성전 재건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2) 강공책

    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공책을 선택하여 성전 건축을 방해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4-5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여기에서 '손을 약하게 하다'는 말은 '손'이 의미하는 '능력', '의욕' 등을 감하거나 나태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유다 백성이 성전 재건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교활한 방법을 동원하는 방해 공작을 폈다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그들은 그러한 방법을 통해 유다를 두려움에 빠지도록 하였습니다(느 6:9). 본문에는 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은 위협, 훼방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건축을 방해하였고, 그 결과 유다 백성의 건축 의지는 상당 부분 약화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대적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관리들'은 페르시아의 고위 공직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에 거주하던 페르시아 왕실의 관리로, 법정의 민원 담당자들이나 고문관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관리들은 행정, 사법 등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전 공사를 방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뇌물은 공의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출 23:8). 따라서 그들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는 그들의 진술(2절)이 거짓이었다는 반증이 됩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고레스 왕 때부터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유다 백성의 성전 건축을 지속적으로 방해하였고, 그 결과 다리오 왕 2년(기원전 521년)까지 성전 공사가 중단되는 실효를 거두었습니다(24절).

    3. 유다와 베냐민의 대처

    1) 회유책에 대한 대처

    그렇다면 이번에는 대적들의 방해에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함께 건축하자는 제안, 즉 대적들의 회유책에 유다 백성들은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절한 이유는, 한 마디로 그들이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둘 사이에 상관이 없습니까? 첫째는, 신앙적인 부분에서 상관이 없었습니다. 대적들은 비록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의 상도 만들어 섬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종교 혼합주의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행태에 대해 열왕기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왕하 17:28-29). 하나님은 우상을 부정하고 있고(사 41:29),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4;눅 16;13;고전 10;21). 그러므로 대적들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분과 관계없는 우상만 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그들이 함께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과 함께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유다 백성들은 대적들의 종교 혼합주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로 인해 유다 사회도 그들의 영향에 의해 종교 혼합주의에 물들게 되어 있습니다. 또 회유책을 쓴 목적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대적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공사를 지연시킬 게 빤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적들의 제안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그 일이 행정적으로 둘 사이에 상관이 없었습니다.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대적들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홀로 건축하겠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2) 강공책에 대한 대처

    대적들의 강공책에 대해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대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대적들은 유다 백성들이 두려움을 가지도록 온갖 위협을 가하는가 하면, 뇌물로 관리들을 매수하여 성전 건축 계획을 막았습니다. 만약 유다 백성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대처하였다면, 다시 말해서 그들도 대적들을 위협하고 뇌물로 관리들을 매수하였다면, 저자인 에스라는 성경에 그 내용을 밝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들은 그런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았고, 침묵으로, 그렇지만 그 일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결과를 조용히 기다리는 방식으로 대처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그들은 가장 현명한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에게 선하게 대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출 23:4). "원수를 갚지 말며...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 또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신 예수님은(마 5:17), 산상수훈을 통해 원수에게 이렇게 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그들이 이런 태도로 대하지 않고 대적들과 똑같이 대하였다면, 그래서 성전이 중단되지 않고 완공되었다면 그 성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전을 건축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분과 화합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행동을 한다면, 원수들은 오히려 완공된 성전을 보면서 이렇게 비난할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은 사랑도 없는 그런 분이냐?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분이냐? 하지만 오늘 본문 속에서는 그들이 이렇게 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들은 대적들의 방해 공작에 가타부타 하지 않고, 침묵으로 그들의 신앙을 드러냈고, 그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선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침묵이 위대한 것입니다.

    ​4. 교회의 순수성과 선한 행실

    대적들의 방해에 대처하였던 유다 백성들의 태도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유다 백성들의 소임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소명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성전 건축이 종교 혼합주의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듯이, 교회를 세우는 일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함께한다면 교회는 그 순수성을 잃고 사교 집단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 교회는 많은 부분 세상과 타협하면서 이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세상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가 지닌 순수성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 변화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타협하지 않고 순수성을 지킬 때, 대적들은 거기에서 행동을 멈출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기를 쓰고 달려듭니다. 온갖 위협으로 두려움에 빠뜨리고, 심지어 뇌물로 관리들을 매수하여, 즉 공권력까지 동원하여 박해를 가합니다. 성전을 건축하던 유다 백성들에게 그랬고,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런 일들이 몰아칠 때, 우리는 유다 백성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침묵하였습니다. 그들은 침묵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은 악을 선으로 바꾸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은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그러한 결과는 우리에게 실망과 낙담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감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실망과 낙담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낳기 때문에, 그런 감정에서 빠져나와 이와 같은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우리가 이런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성전 건축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을 뿐이지, 파괴되거나 영원히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일시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은 다리오 왕 2년에 재개되었고, 마침내 4년 후인 다리오 왕 6년에 완공되었습니다(6;13-15). 이것을 통해 우리는 대적들의 방해와 그로 인한 중단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살아 계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분을 우리 하나님으로 믿기 때문에, 낙담과 실망 대신,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순수성을 지켜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원수를 사랑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또 우리 앞에 지금은 실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 상황을 영광스러운 장면으로 바꾸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 소원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그 소원이 우리 모두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5장 요약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엿으며 닷드내가 성전 짓을 것을 방해하지마 막지 못하였고,다라오왕에게 성전 건축의 조사여부를 요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장은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선지자들(학개와 스가랴)은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예언의 말씀을 전하였다. 첫째, 성전 건축을 뒤로한 채 자신들의 집안 꾸미기에만 열중한 백성들에 대한 책망. 둘째,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성전 건축에 매진하라는 촉구. 셋째, 성전은 건축되고 성읍은 넘치도록 풍성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

      성전 건축이 재개되자 총독 닷드내 일행은 그 현장을 방문하여 진상 조사에 나섰다. 그들은 장로들의 진술 내용에 기초하여 왕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의 초본에는 장로들이 진술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1)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고 파괴된 경위, (2) 2차 성전의 건축이 재개된 경위(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세스바살이 주도). (3) 왕은 보물 전각에 있는 그 조서를 확인한 후에 성전 건축 재개 여부에 대한 뜻을 내려달라는 요청.

    I. 본문 이해와 질문

    1. 성전 건축 재개와 총독의 진상 조사(1-5절)

    [본문] 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3 그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4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이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주동한 모함으로, 성전의 기초를 놓은 이후(기원전 536년 둘째 달)부터 다리오 왕 2년(기원전 520년 여섯째 달 23일)까지 16년간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 그결과 유다 백성들은 큰 실망과 낙담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에스라서에는 이 기간 동안 그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에 대한 정보는 학개서에서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1) 그들은 그동안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1:2). (2) 그들은 판벽한 집에 살고 있었고, 제집 일에 매달리느라 바빴다(1:4,9). '판벽한 집'은 여러 개의 칸막이로 방을 갖추고 넓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지자 학개는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자 그렇게 살고 있던 백성들을 신랄하게 책망하면서 성전 건축에 다시 매진할 것을 촉구하였다. (3)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그리 윤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성전이 황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집 일에만 매달렸던 행위를 하나님이 심판하셨기 때문이다(1:6,8-11).

      선지자들, 즉 학개와 스가랴(잇도의 손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다(1절). 학개서와 스가랴서에 그 예언의 내용이 실려 있다. 하나님은 '학개'를 통하여 다리오 왕 제2년 여섯째 달 1일에 성전을 건축하지 않고 판벽한 집에 살고 있던 백성들을 책망하신 후에, 성전 건축을 명하심과 동시에 그 가운데 친히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다(1:1-13). 또 그해 일곱째 달 21일에 '내가 함께하니 두려워하지 말고 굳세게 일하라'고 명하셨다(2:4-5). 그리고 아홉째 달 24일에는 자신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축복을 약속해 주셨다(2:19-23).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서도 예언의 말씀을 주셨는데, 다리오 왕 제2년 여덟째 달에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라'고 촉구하셨고(1:3), 그해 열한째 달 24일에 성전이 건축되고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하게 될 것을 예언(약속)해 주셨다(1:7-17). 따라서 예언의 내용을 정리하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성전을 건축하고 있지 않은 백성들에 대한 책망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성전은 다시 건축되고 성읍은 넘치도록 풍성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약속)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 내용은 성전 건축이 중단된 것이 대적들의 방해에서 비롯되었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부에서 비롯되었다는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들의 손에는 성전 건축을 명하고 있는 고레스 왕의 칙령이 들려 있었고,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하나님께 감동받고 성전 건축을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1:5). 대적들의 방해가 아무리 위협적이었다 하더라도, 또한 뇌물을 받은 관리들의 횡포가 도를 넘는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 모두는 바사 제국의 왕인 고레스의 칙령 앞에 맞설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는 것은 그에 대한 그들의 의지(동기)가 무디어졌다는 단서(이유)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대적들의 방해 공작은 주로 그들의 손을 약하게 하는 데 집중되었고, 그 과정에서 뇌물로 매수된 관리들이 앞장섰던 것으로 보인다. 한 번 맞은 이슬비로 옷은 젖지 않는다. 하지만 누적된 이슬비는 결국 옷을 흥건히 젖게 한다. 그로 인해 손이 약해졌다면, 그 약해진 손이 향할 곳은 자명하다. 그들은 성전이 아닌 자신들의 삶의 터전, 즉 자신들의 집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을 판벽한 집으로 바꾸거나 제집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학개는 성전 건축에 관심을 끊고 자신들의 안락만 추구하고 있던 백성들의 태도를 신랄하게 책망하고, 스가랴는 그런 그들에게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하였던 것이다. 한편 저자는 스가랴를 '잇도의 손자'로 밝히고 있는데, 이는 잇도(가 스가랴의 할아버지라는 말이 아니라 스가랴가 잇도의 '자손'(후손, a descendant)이라는 뜻이다(느 12:16, NIV). '잇도'는 분열 왕국 시대 초기의 선지자이었거나(대하 9:29;12:15;13:2), 제사장 가문의 족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느 12:4,16).

      예언의 말씀이 주어지자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그 일을 주도하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하면서 그들을 도왔다(2절). 성전 건축은 다리오 왕 2년(기원전 520년 여섯째 달 24일)에 재개되었다(학 1:15). 성전 건축은 학개를 통해 주어진 첫 번째 예언(여섯째 달 1일)에 따라 재개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그 이후 열한째 달까지 6개월 동안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예언의 말씀이 네 차례 더 주어졌다(학개서와 스가랴서 기준). 선지자들, 즉 학개와 스가랴는 하나님이 전해 주신 '네 차례의 예언'을 통해,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성전이 건축되고 성읍들이 다시 넘치도록 풍부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굳세게 일하라'고 독려하는 것으로 그들을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

      공사가 다시 시작되자 유프라테스강 건너편, 즉 강의 서쪽 지역을 담당하는 총독 일행이 나아와서 이의(문제)를 제기하였다(3절). '총독'은 구약 성경에서 '장관'(왕상 20:24), '방백'(8:8;9:3)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 스룹바벨의 직함과 동일하기도 하다(6:7;학 1:1,14). 라이프성경사전에서는 '닷드내'가 다리오 1세 때 유프라테스강 서쪽 식민 국가의 총독을 지낸 인물로 소개하고 있지만, 카리스종합주석에는 '닷드내'를 강 서쪽 지역 총독 '우쉬타니' 휘하의 고위 관리(governor, NIV)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통치하였을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스달보스내'는 서기관이나 조사관으로서 '닷드내'를 보좌하였던 인물로 추정된다. '그들의 동관들'은 '닷드내'의 부하들(감찰관)로 추정된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는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성곽'은 원래 건축 구조물 자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건축물의 기초 구조물일 수도 있고 성전의 외벽일 수도 있다. 그래서 NIV와 NRSV는 그것을 '구조물'(structure)로, KJV은 '외벽'(wall)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 질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총독 일행은 유다의 대적들과 달리 성전 건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임무는 관할 지역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일들을 왕에게 보고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즉 성전 건축이 어떤 근거(연유)로 재개되었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3절을 비롯하여 유다의 진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왕에게 보낸 보고서 초본의 내용에도 드러나는데, 그 속에는 유다에 대한 적대적인 의도나 대적들의 악의적인 부추김에 따른 모함 등이 보이지 않는다(6-17절). 둘째, 총독 일행은 고레스 칙령의 내용을 알지 못하였다. 이는 역으로 유다 백성들이 그 조서의 내용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추정도 낳게 한다. 따라서 총독 일행은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질문을 통해 성전 재건 여부의 합법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조사하였던 것이다.

      4절은 '아뢰다'(말하다)의 주체가 되는 '우리'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둘로 갈린다. 개역개정성경과 KJV은 '우리'를 총독 닷드내 일행의 질문에 유다 백성들이 대답한 것으로 보고, 그들이 성전 건축을 지시한 사람의 이름(고레스 왕)을 총독에게 아뢰었다고 적고 있다. 그에 비해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NIV, RSV 등은 '우리'를 1인칭 복수가 아닌 3인칭 복수로 보고, 그들, 즉 총독 일행이 유다 백성들에게 성전 건축을 명령한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였던 것으로 적고 있다(They also asked). 두 번째 견해는 70인역(70LXX)의 '그들이 물었다'는 번역을 수용한 것으로, 닷드내 총독 일행이 앞서 질문에 이어 재차 질문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총독이 다리오 왕에게 보낸 글에 보면, 그들이 장로들에게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고 질문하고(9절), 그 대표자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아뢰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재차 물었다(10절)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두 번째 견해가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성전을 건축하게 한 자의 이름이 그들에게 전해졌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총독이 다리오 왕에게 전한 보고에는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였고, 세스바살(스룹바벨)이 돌아와서 지금까지 건축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5:12-16). 총독은 그 같은 내용을 왕에게 보내 확인을 요청하였다(5:17).

      총독 일행은 유다 백성들의 성전 건축 공사를 막지 못하였다(5절). 에스라는 그들이 그것을 막지 못한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는,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눈이 유다 장로들 위에 있었다'는 뜻이다. 선하신 하나님의 눈길이 누군가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그분의 특별한 배려가 그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저자가 이러한 이미지를 제시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심화시켜서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욥 36:7;시 33:18;34:15). 두 번째 이유는, 그 내용을 다리오 왕에게 보고하고 답장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다리오 왕의 대답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총독이 작업 중단을 명령해도 문제가 되지만, 이는 역으로 왕의 답장이 도착하기 전에 유다 백성들이 공사를 계속할 수 있다는 논리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총독은 그 답장이 오기 전에도 성전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총독은 막지 않았다. 이는 유다 장로들 위에 함께하신 하나님의 눈이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겠지만, 장로들의 입에서 나온 고레스 칙령에 대한 위엄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것을 통해 총독이 객관적이고 매우 신중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질문] 성전 건축이 중단된 상황에서 유다 백성들의 모습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무엇이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 번째 문제는, 그들이 손을 약하게 한 대적들의 방해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이다. 대적들의 방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속수무책의 원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대적들의 방해가 거센 것이었다 할지라도 성전 재건에 대한 초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은 두 장의 히든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한 장은 고레스 칙령이고, 다른 한 장은 기도였다. 그들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두 장의 히든카드를 끝내 사용하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대적들의 방해를 자신들의 다른 관심으로 돌리는 데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성전 건축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눈을 돌려 자신들의 집을 꾸미는 데 집중하였고 제집 일을 매달리느라 바빴다. 그들은 이런 행동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함께 재물이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학개와 스가랴로부터 엄한 책망을 받고 돌이키라는 촉구까지 받았다.

      사도 베드로는 대적 마귀를 우는 사자에 비유하면서 그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할 것을 주문하였다. '근신하라', '깨어라',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깨어 있으라'는 뜻이다. 정신을 놓고 나태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마귀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에,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삼아야 할 두 번째 교훈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단정하셨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세 번째 교훈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 재건을 삶의 최고 가치(이상)로 삼았던 그들은, 대적들의 방해를 빌미 삼아 그 자리를 자신들의 집 문제로 대체시켜 버렸다. 그들은 자기 집을 일으켜 세운 후에 하나님의 성전도 건축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은 둘 다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집안은 그들의 생각만큼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빈궁이 밀려왔고, 그 빈궁에 허덕이면서 하나님도 잃어버렸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하신 예언에도 이러한 원리는 똑같이 녹아 있었다. 하나님은 두 선지자를 통해 잘못된 태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면 성전 재건뿐만 아니라 성읍도 넘치도록 풍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2. 총독이 올린 보고서(초본)의 내용(6-17절)

    [본문] 6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인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라 7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 왕은 평안하옵소서 8 왕께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본즉 성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9 우리가 그 장로들에게 물어보기를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 하고 10 우리가 또 그 우두머리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아뢰고자 하여 그들의 이름을 물은즉 11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12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13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고 14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금, 은 그릇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꺼내어 그가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내주고 15 일러 말하되 너는 이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제자리에 건축하라 하매 16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았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17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이해]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의 총독 닷드내는, 다리오 왕에게 글을 올렸다. 그 글에는 스달보스내, 그들의 동료인 유브라데 아바삭 사람이 함께하였다. '아바삭'은 '고하는 자', '조사하는 자'라는 의미로, 어떤 부족의 이름이 아니라 페르시아 관원들의 구체적인 직함으로 보인다. 그 글의 초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1) 성전 건축 상황(8절), (2) 성전 건축의 경위에 대한 조사(9-10절), (3) 유다 장로들의 답변(11-16절), (4) 고레스 칙령의 내용 확인 의뢰.

      성전 공사 상황은 형통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백성들은 큰 돌로 성전을 세우고 나무를 벽에 얹는 공사를 하되, 부지런히 그 일을 하였다. '벽에 나무를 얹다'는 것은, 건물을 하나로 붙이고 연결시키기 위하여 또는 지진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할 목적으로, 벽과 벽 사이에 대들보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한편 총독이 표현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은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성전 규모가 지극히 크다. 둘째, 하나님을 '지극히 크신 분'으로 높이고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두 번째 해석을 더 타당한 것으로 본다. (1) 정복한 지역의 종교를 존중하는 것이 페르시아의 일관적인 식민지 정책이었다. (2) 건축 중이던 성전은 그 규모 면에서 그렇게 크지 않았다(3;12). (3) 원문에는 '지극히 크다'는 말이 '성전'이 아닌 '하나님' 뒤에 나온다. 그래서 NIV와 KJV도 그 부분을 'the temple(house) of great God'로 번역하고 있다.

      총독 일행은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된 연유를 조사하기 위하여 유다 장로들에게 질문하였다. 그들은 두 번에 걸쳐 질문하였다. 첫 번째 질문은,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누가 너희에게 이 전을 건축하고 이 구조물을 보완하도록 법령(조서)을 주었느냐'는 뜻으로, 총독 일행은 그 질문을 통해 성전 건축 재개의 전후 사정을 살피려고 하였을 것이다. 장로들은 그에 대한 질문으로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다시 건축하라고 명하였다고 대답하였던 것으로 보인다(11-16절). 전후 사정을 파악한 그들은 이에 장로들에게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공사 책임자들(우두머리들)의 이름이 무엇이냐?" 두 번째 질문은 공사 책임자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주어졌고, 따라서 그 내용도 보다 구체적이었다. 이에 장로들은 '세스바살'이라고 답하였던 것으로 보인다(16절).

      장로들의 대답에는 공사 재개의 당위성과 책임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내용을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다시 건축하고 있는 이 성전은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하였다(11절), (2) 조상들의 범죄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12절), (3) 고레스 왕 원년에 왕이 조서를 내려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명령하였을 뿐 아니라, 그가 세운 총독 세스바살에게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진 성전 기구들까지 다시 내 주었다(13-15절). (4) 총독 세스바살이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와서 성전의 지대를 놓고 지금까지 건축하고 있지만,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16절). (1)과 (2)에는 장로들이 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왜 멸망 당하였는지에 대한 인식이 정확히 들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천지의 하나님의 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그들이 '다리오 왕의 종'이 아니라 그보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신앙고백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이 묻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멸망한 이유, 즉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끌려간 이유가 조상들의 죄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에 있었다고 밝힘으로써 그 사건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역사에도 정확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큰 왕'은 '솔로몬'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기원전 96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왕상 6:1) 7년 뒤인 기원전 959년 가을에 성전 건축을 모두 마쳤다(왕상 6:38). 제2차 성전이 재건을 위해 기원전 536년에 기초를 놓았기 때문에 솔로몬 성전은 그로부터 420년 정도가 되는 것이다.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던 사건'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기원전 605년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한 후 유다의 왕족과 귀족 일부를 사로잡아 갔다(단 1:1-5). 두 번째는, 여호야긴 왕의 배신이 발단이 되었는데, 이때 느부갓네살은 요호야긴을 포함하여 용사 7,000명, 기술자 1,000명, 다수의 귀인들을 잡아갔다(왕하 24:10-17). 세 번째는, 시드기야 왕의 배신이 발단이 되어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었는데, 이때 비천한 자들을 제외한 백성들 대부분이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왕하 25:8). 마지막은,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유다 총독 그달라야를 살해하였을 때(기원전 582년), 또다시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렘52:30). (3)에는 성전을 재건하게 된 경위가 소개되고 있다. 그 일은 고레스 왕의 명령에 따라 시작되었고, 고레스 왕이 총독으로 임명한 세스바살이 주도하였다.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총독'의 지위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재건되어 분리, 독립된 유다 지방의 총독이었는지, 사마리아 총독의 관할 아래 있던 유다 지구의 대리 총독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어떤 특정 일의 지휘 감독을 맡은 왕의 변무관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선지자 학개가 스룹바벨을 '유다의 총독'이라 불렀고(학 1:1,14), 스룹바벨이 실제적으로 정치적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총독'은 유다에서 제반 업무를 반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직책이었다고 추정해 볼 수는 있다. 13절에서 장로들이 고레스를 바사 왕으로 칭하지 않고 '바벨론 왕'으로 칭한 것은, 페르시아가 바벨론의 합법적이고 정통적인 계승자로 자처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럽다. 그들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역사적 사실과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으로 성전 재건이 시작된 역사적 사실을 연결시켜 설명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총독은 장로들의 대답에 근거하여 글로 써서 왕에게 보내되, 특별히 그 끝에 왕의 보물 전각에 있는 고레스 왕의 조서를 통해 장로들이 한 말이 정말 맞는지 확인하고 그 일에 대한 왕의 뜻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였다(17절).

    [질문] 총독의 질문에 대한 장로들의 대답은 어떤 특징들을 담고 있었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삼을 교훈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시오.

    ​장로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이고, 그 신분에 따라 예전에 건축한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사명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는 자신들의 정체성이 순전히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는 신앙고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그들은 '다리오 왕의 종'에 담긴 정치적인 의도를 배제하였다. 또한, 그들은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것이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신 결과라는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 인식 속에는 조상들이 밟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가 심층적으로 담겨 있었고, 그 의지는 다시 성전 건축으로 표출되었다. 그들의 대답에서 볼 수 있는 세 번째 특징은, 성전 재건에 대한 경위를 밝히는 모습 속에 들어 있다. 그들은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으로부터 귀환 후에 세스바살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건축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렇지만 가감 없이 총독에게 밝혔다. 그리고 그 진술은 총독이 왕에게 글을 올릴 때 그대로 반영되었다.

      장로들의 태도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실 때 하셨던 말씀을 상기케 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 예수님은 제자들의 정체성을 이리 가운데 보내진 양으로 보셨고, 그런 그들이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기를 바라셨다. '순결'은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성품이다. 따라서 그 성품은 자신의 신분(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 즉 자신이 하나님의 종(자녀, 백성, 제자)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집중할 때 완성된다.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성품이다(욥 28:12-28). 잠언서 기자는 그 지혜를 하나님이 주시는데, 그것이 정직, 온전한 행실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잠 2:6-7).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한 장로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거짓 없이 성전 재건 경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장로들의 태도이다.

    II. 메시지

    본문: 스 5:1-5

    제목: 중단된 성전 건축 재개

    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3 그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4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1. 성전 건축이 중단된 원인

    시간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긍정적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본문이 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전 모습은 후자에 속합니다. 유다의 대적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성전 재건을 방해하였습니다. 때로는 위협으로, 때로는 돈으로 관리들을 매수하여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그 결과 성전 건축은 중단되어 버렸습니다(4:24). 다리오 왕 2년(기원전 520년)까지 중단되었기 때문에, 성전 기초를 놓았던 기원전 536년을 기점으로 하면 최대 16년 동안 중단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사가 중단된 원인을 대적들의 방해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일어난 유다 백성들이(1:5), 그렇게 쉽게 대적들의 방해에 굴복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대적들의 방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고레스 왕의 칙령을 가지고 있었고, 또 성전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그들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은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 건축이 중단된 원인이 대적들의 방해보다 더 근원적인 데 있었다는 것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근원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그 원인이 1절과 2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선지자들의 예언이 주어지자 성전이 다시 건축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지자들이 어떤 예언의 말씀을 전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선지자 학개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학 1:2,49).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적들의 방해로 손이 점차 약해지자, 즉 성전 건축의 의지가 꺾이자(4:4),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자기 합리화해 버렸습니다. 자기 합리화는 그들의 관심을 성전 건축보다 자신들의 집으로 옮기게 하였고, 그 결과 그들은 잘 꾸민 집에서 안주하거나 자기 집을 짓는 일에 몰두하면서 황폐된 성전을 그대로 방치해 버렸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책망하셨고, 또 스가랴를 통해 그러한 죄에서 돌이켜 ‘내게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셨던 것입니다(슥 1:3).

    2. 두 가지 교훈

    성전 건축이 중단된 근본적인 원인이 유다 백성들의 태도에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1) 첫째, 부정적인 상황 앞에서 자기 합리화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유다를 둘러싼 주변 나라들은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방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적들의 행동은 분명 유다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성전 재건을 중단해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의 구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다 백성들에게는 두 가지의 히든카드가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고레스 칙령’과 ‘하나님의 명령’이 바로 그것입니다. 고레스 칙령은 대적들의 모든 시도를 발아래 굴복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만군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면, 대적들의 위협은 바람에 날려가는 티끌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되는 대적들의 방해 앞에서 두 장의 히든카드를 모두 버리고 자기 합리화의 길을 선택해 버렸습니다.

      ‘자기 합리화’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은 '합리화'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하게 함”, “낭비적 요소나 비능률적 요소를 없애 더 능률적으로 체제를 개선함”. 따라서 합리화는 그 기준이 객관성에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자기 합리화’는 그 기준이 주관성, 즉 자기 자신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를 할 경우, 부정적인 상황에서 생긴 감정적인 상처나 실망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회피해 버립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로 이런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대적들의 방해는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었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여전히 그 상황을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은 여전히 긍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을 보는 눈(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졌던 유다 백성들이 긍정적인 의미의 객관적인 합리화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들의 생각을 접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대적들의 방해로 괴롭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실 것으로 믿고 묵묵히 그렇지만 부지런히 성전 건축에 매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대적들의 방해를 묵인하신 것도 바로 이런 모습을 통해 영광 받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쓰다 보면, 유다 백성들이 직면하였던 것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사탄이 바보가 아닌 이상 분명 부정적인 상황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는 유다 백성들처럼 자기 합리화의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우리 앞에 주어진 소명에 매진해야 합니다.

    2) 두 번째 교훈은, 우선순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집을 세우는 일에 빨랐던 이유는, 그들이 일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까? 자신들의 집을 짓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도, 고레스 왕도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거듭되는 대적들의 방해와 자기 합리화의 결과 그들의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우선순위를 바꾼 이유는 자명합니다. 성전보다 자신들의 집이 더욱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먼저 짓고 경제력도 튼튼히 세워 안락한 생활을 누린 후에 성전은 나중에 지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졌을까요? 결과는 그들의 생각과 정반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학 1:9-11).

      그들은 왜 이런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우선순위를 혼동하여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예수님이 제시한 말씀과도 배치됩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유다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바람과 달리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가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주어진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먼저 그분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바르게 할 때,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살피시는 하나님에 의해 충족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

    자기 합리화와 잘못된 우선순위에 빠졌던 유다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책망과 촉구에 마음을 돌이켜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의 책망과 촉구는 분명 그들의 마음을 각성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속적으로 성전을 건축하기에는 동력이 부족합니다. 책망과 촉구는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동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것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 친히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내가 함께하니 두려워하지 말고 굳세게 일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학 1:1-13;2:4-5). 또 자신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학 2:19-23). 그런가 하면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도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그들이, 너희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슥 1:16-17). 택하신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약속,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위로하시겠다는 약속, 성전이 건축되고 성읍이 다시 넘치도록 풍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 그 약속은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기대와 흥분 속에서 뛰놀게 했습니다. 성전이 다시 건축되고 성읍도 넘치도록 풍부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은, 그들의 팔뚝에 힘을 주고 소매를 걷어붙이게 했습니다.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2절).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울 때 책망과 촉구 앞에서 의무감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마음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만 있다면 교회를 세우는 우리의 노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마음을 지속시키고 더욱 적극적으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유다 백성들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약속입니다.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교회를 세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풍부하게 채우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다시 한번 더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만약 그 약속이 틀림없다면 우리 앞에 거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굳세게 일하기만 하면 됩니다.

      유다 백성들이 예언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공사를 재개하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역을 관할하는 총독 닷드내와 그의 일행이 찾아와서 장로들에게 이렇게 따져 물었습니다(3-4절).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건축하는 자들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지만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유다의 장로들을 돌보셨기 때문에 그들도 능히 공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5절). 고레스 칙령을 검토한 다리오 왕에 의해 성전 건축을 신속히 행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마침내 다리오 왕 6년에 성전은 완공되었습니다(6:12-15).

    4. 초심으로 돌아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결과는 긍정적으로 돌아옵니다. 그 시간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앞에 주어진 상황은 그 시간 속에서 흘러갑니다. 그 상황이 우리가 볼 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와 관계없이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그런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분이 함께하신다면, 그래서 그분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 상황이 최악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긍정적인 시간입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기 합리화에 빠졌던 유다 백성들은, 그 긴 시간 동안 올바르지 못한 곳에 사용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성전은 방치되었고 자신들의 생활도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맨 처음 대적들의 방해가 주어졌을 때 단호하게 대처하였습니다(4:3). 하지만 계속되는 방해 공작에 그들의 손은 약해졌고, 그런 시간이 계속되자 그들의 관심도 점차 성전보다 자신들의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한 번 맞은 이슬은 옷을 젖게 할 수 없지만, 이슬비를 계속 맞게 되면 결국 옷이 흠뻑 젖게 됩니다. 그들은 결국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유다 백성들의 이런 모습을 상기시켜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초심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불붙어 있었고, 그 믿음을 성전 건축에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그와 같은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6장 요약

    다라오왕이 고레스의 조서를 발견하였고 조서를 강 서편의 지도자들에게 내립니다.이는 성전건축을 방해하지 말라고 조서를 내린것이며 다라오왕 6년째에 성전을 완성하였고 유월절을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6장은 다리오 왕이 유프라테스강 서쪽을 관리하던 총독 닷드내가 보낸 보고서의 요청에 따라 두루마리(고레스 칙령)를 찾아 확인하는 내용부터 소개되고 있다. 거기에는 성전 재건과 재정 지원을 명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내용을 확인한 다리오 왕은, 그에 근거해서 중단된 성전의 재건과 함께 공사에 필요한 모든 경비까지 지원해 줄 것을 총독에게 명하였다. 그 명에 따라 성전 재건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고, 마침내 다리오 왕 6년(기원전 516년)에 완공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즐거이 성전 봉헌식을 행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봉헌식을 행한 한 달 후에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켰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일은 제2의 출애굽과 비견할 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귀환 후 처음으로 지킨 유월절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유월절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무교절도 일주일 내내 즐거움으로 지켰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고레스 칙령의 내용(1-5절)

    [본문] 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 2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 3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4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5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성전 금, 은 그릇들을 돌려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전 안 각기 제자리에 둘지니라 하였더라

    [이해] 총독 닷드내가 보낸 글(보고서)을 받은 다리오 왕은, 그 내막을 확인하기 위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였고,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다(1-2절). '조서'는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문자로 보내진 일련의 공식 문서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지만 원래 이 단어는 아람어에서 '명령'(order), '포고령'(decree)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본에서도 '(행정) 명령'(NIV, NLT, NJB, 'order')이나 왕실의 공식적인 '포고령'(KJV, NASB, ASV, 'decree')으로 번역하고 있다. 또 한글 번역본인 표준새번역성경과 공동번역성경에서도 각각 '명령', '어명'으로 번역하고 있다. '메데도 악메다 궁성'은 메데 지방(province of Media)의 엑바타나 궁(palace of Ecbatana)을 말한다. '메데'는 이란 북서부에 자리했던 고대 국가로, 기원전 11세기에 역사에 출현하여 기원전 8세기경에 왕국을 건립하였지만,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성경에서는 바사 왕 고레스로 소개)에 의해 멸망하였다. 수도는 금은보화가 가득한 엑바타나(지금의 Hamadan)였다. 그 종족은 페르시아인과 더불어 아리아인의 후예들로, 전성기 때는 영토가 흑해 남부 연안에서 오늘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지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이었다. 바사 제국의 왕이 고레스 칙령을 찾기 위해 명령을 내린 것과 메데 지방의 악메다 궁까지 샅샅이 뒤지게 한 것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다. 사실 고대 근동에서 통치 사료를 찾아보는 일은 국가 중대사와 관련된 일에만 가능하였다. 게다가 127도(province)로 이루어진 거대 제국 페르시아의 서쪽 변방에 위치한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한 종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은 더욱더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은, 그 일의 배후에 성전을 재건하시고자 하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악메다 궁에서 발견한 '두루마리'는 동물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를 말하는데, 고레스 왕 원년에 내린 조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1) 성전 건축에 대한 명령(3a절), (2) 성전 규모와 건축 방식(3b-4a절), (3) 경비 출처(4b절), (4) 느부갓네살이 탈취한 성전 그릇들의 반환(5절). 이 중에 (2)와 (3)은 앞선 1장에서 고레스 왕의 조서를 소개할 때 들어 있지 않았던 내용이다.

      고레스 왕이 정한 성전의 규모는 높이와 너비가 각각 60규빗이고, 길이는 정하고 있지 않다. 그에 비해 솔로몬 성전은 높이가 30규빗, 너비가 20규빗, 길이가 60규빗이었다(왕상 6:2). 따라서 다시 지어질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높이는 2배, 너비는 3배나 컸다. 조서에 기록된 성전의 규모가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큰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첫째, 포로기 이후의 규빗이 모세 시대의 규빗보다 절대 길이가 더 작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레스는 모세 때의 규빗에 따라 지어진 솔로몬 성전과 동일한 규모로 짓기 위해 페르시아 규빗을 더 높게 잡았다는 것이다. 둘째, 고레스가 솔로몬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외에도 성전 뜰을 포함한 길이로 지시했다는 견해이다. 셋째, 고레스가 유다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전보다 더욱 크게 짓도록 명령하였지만,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따르지 않았고 유다 백성들의 역량도 솔로몬 당대에 미치지 못하여 오히려 솔로몬 성전보다 더 작은 성전을 지었다는 견해이다. 앞선 두 견해는 재건된 성전이 솔로몬 성전과 규모가 같았다면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재건된 2차 성전은 규모 면에서 솔로몬 성전보다 작았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3:12;학 2;3), 두 견해는 수용하기 어렵다. 고레스가 유다의 성전 재건뿐만 아니라 자신이 정복한 여러 나라에 대해서도 종교적 관용을 베풀어 민심을 사려 하였다는 점과 고레스 당대에 성전 재건이 중단되기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세 번째 견해가 비교적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세 번째 견해를 수용하되, 고레스가 하나님을 세상의 모든 나라를 자신에게 주신 분으로 또 참된 신으로 고백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1:2), 그가 유다 백성들의 환심보다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이전보다 더 크게 재건하도록 명령하였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높이와 너비를 각각 60규빗으로 짓되, 건축 방식은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솔로몬 성전 안뜰의 건축 방식과 일치하고 있다(왕상 6:36). '켜'는 학자들에 따라 '벽'(wall), '줄'(row), '겹'(layer), '층'(floor) 등과 같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벽'으로, 공동번역성경은 '겹'으로, KJV는 '줄'로 제각기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70인역(LXX)에 의하면, 이 성전은 4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3층까지는 돌로 마지막 층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성전 건축에 소요되는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는 말은, 국고에서 비용을 대주라는 뜻이다. 개역개정성경에 번역된 '다'(all)라는 부사어는 원문에 없는 단어이다. 다리오 왕은 그 내용을 왕실에서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가운데 일부를 그들에게 끊임없이 주는 것으로 이해하였다(8절). 하지만 이 같은 경비 지원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린 재물로 충당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2:68-69).

      고레스 칙령의 마지막 부분은 성전 그릇들의 반환을 명령하고 있다(5절). 성전에서 사용될 금그릇과 은그릇은 이전에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한 후에 바벨론으로 옮겼던 것으로, 고레스는 그것들을 돌려보내 예루살렘 성전 안의 제자리에 둘 것을 명령하였다. 왕은 이 임무를 세스바살(스룹바벨)에게 맡겼다(1:8-11).

    [질문] 다리오 왕이 고레스 칙령을 알지 못하였고, 또 그것을 찾기 위해 제국 내에 있는 모든 궁을 뒤지게 하였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였을 때 대적들의 지속적인 방해가 있었다. 또 그것이 한 요인이 되어 성전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유다 백성들은 그 과정에서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그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밝혔다면 대적들의 방해도 없었을 것이고, 또 중단된 성전 건축을 재개하였을 때에도 총독 닷드내 일행이 와서 그 경위를 따져 묻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다리오 왕의 정황이다. 그는 선왕(先王)인 고레스가 펼쳤던 정책들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하였던 것 같다. 이는 그가 그 부분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그것을 챙길 만한 여유가 없었던 데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리오 왕(Darius 1세)은 캄비세스 2세(기원전 529-523년)의 최측근 장교이자 페르시아의 태수였던 휘스타스페스의 아들로서 고레스 왕가 출신이다. 고레스의 아들인 캄비세스 2세가 에티오피아 원정길에 올랐을 때,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인 가우마타가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러자 페르시아 제국에 억눌려 있던 피정복국의 포로들이 사방에서 조직적으로 봉기하였다. 수년 동안 계속되었던 반란은 메데, 엘람, 파르사(Parsa) 등지에서 시작되어 아르메니아와 이란 전역으로 번졌다. 심지어 서쪽으로 이집트와 소아시아까지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다리오가 일어나서 가우마타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그는 도화선처럼 일어나는 반란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였다. 다리오 왕 2년까지 중단되었던 성전 공사가 바로 그 시점에서 재개되었기 때문에, 반란 진압으로 인해 선왕들의 정책들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던 그로서는 통독 닷드내가 보낸 보고서 내용이 낯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반란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고레스 칙령이 담긴 두루마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한편 모든 반란을 진압한 다리오 왕은 그 여세를 몰아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페르시아의 영토는 최대로 확장되었다.

    2. 다리오 조서와 그 내용(6-12절)

    [본문] 6 이제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너희 동관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들은 그곳을 멀리하여 7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 8 내가 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성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리노니 왕의 재산 곧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 9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 10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11 내가 또 명령을 내리노니 누구를 막론하고 이 명령을 변조하면 그의 집에서 들보를 빼내고 그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의 집은 이로 말미암아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 12 만일 왕들이나 백성이 이 명령을 변조하고 손을 들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을 헐진대 그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지어다 하였더라

    [이해] 고레스 칙령을 확인한 다리오 왕은 유프라테스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과 스달보스내와 동료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려, 그곳을 멀리하여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도록 명하였다(6-7절). '그곳을 멀리하라'는 말은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뜻이다. 표면적으로 지역적인 접근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관계적인 접근 금지가 강조되어 있다. 즉 다리오 왕은 페르시아 관리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책임자가 되어 유다 백성들 스스로 처리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면적인 의미 속에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라'는 의미(고소 거부, 기각)의 전문적이고 법적인 판결이 들어 있다.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건축하도록 명한 다리오 왕은, 계속해서 총독에게 다음과 같이 지원할 것을 명하였다. (1) 공사가 중단되지 않도록 경비를 끊임없이 지원하되, 그 경비는 왕의 재산 즉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으로 충당하라(8절). (2) 제사에 필요한 것들도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매일 제공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왕자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제공할 것들은 수송아지, 숫양, 어린 양, 밀, 소금, 포도주, 기름 등이다(9-10절). '경비를 끊임없이 주다'라는 구절에서 '끊임없이'는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차용된 단어인데, '철저하게'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성경에서는 '어김없이'로 번역하고 있다. 번제물로 드릴 짐승 중에서 '수송아지'는 속죄제 등과 같이 특별한 때에 드려지는 제물이고(레 9:2-3), '숫양'은 속건제를 드릴 때의 제물이다(레 5:15;6:6). '어린 양'은 상번제의 제물인데, 아침저녁으로 각기 한 마리씩 드려지는 등 가장 많이 소용되던 짐승이다. 이는 당시 중근동에서 말이나 심지어 돼지 등으로 제물을 삼던 민족들이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다리오 왕이 이스라엘 제사법의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밀'은 소제의 예물을 드릴 때 소용되고(레 2:1-3), 때로는 속죄제의 제물로 소용되기도 하였다(레 5:11-13). '소금'은 소제를 드릴 때 그 제물 위에 치는 용도로 사용되고(레 2;13), 언약을 맺을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레 2:13;민 18:19;대하 13:5). '포도주'는 다른 제사에 수반된 전제(the drinking offering)에 소용되었다(출 29:40;레 23;13). '기름'은 상번제, 소제, 그리고 제사장의 위임식에 소용되었다(출 29;21). 이런 항목에 대한 지원은 다리오 왕이 조서를 작성할 때 유대인 서기관의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리오 왕은 이러한 지원의 대가로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하였다. 이와 같이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왕이 자기를 섬기는 신과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은 고대 중근동의 보편적인 관행이었다.

      조서 말미에는 왕의 명령을 변조한 자에 대한 경고와 저주, 그리고 신속한 시행에 대한 명령이 들어 있다. '변조'는 조서의 내용을 바꾸거나 위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명령에 대한 불이행, 명령의 부분적인 이행, 명령의 왜곡된 이행 등이 모두 포함된다. '경고'는 변조한 자들의 집 들보를 빼내고 그 위에 그를 매달게 하고, 그 결과 그의 집은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11절). '거름더미'는 들보를 빼냄으로써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로, 불명예와 함께 엄한 형벌이 주어진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저주'는 왕의 명령을 변조하거나 성전을 허는(파괴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멸하시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12절). 여기에서 왕은 하나님을 '그곳에 이름을 두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 성소의 지정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언급된 신명기 12장 21절의 내용과 일치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도 다리오 왕이 그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왕은 이 모든 일을 신속하게 시행하라고 명령하였는데, '신속하게'는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완전히'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매우 부지런히'(RSV, NASB, with all diligence), '부지런히'(NIV, with diligence), '신속하게'(GB, KJV, with speed)의 의미도 담겨 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지체 없이'로 번역하여 시간의 속도를 강도하고 있고, 공동번역성경은 원문에 충실하게 '어김없이'로 번역하여 그 일의 성격(정확성,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질문] 다리오 왕이 고레스 칙령을 발견하고 그 내용을 확인한 후에 중단되었던 성전 공사를 재개시킨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점은 무엇인가?

    첫째, 진리와 거짓, 선과 악은 반드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된 것은 두 가지가 주요 원인이 되었다. 대적들의 방해가 첫 번째이고, 그로 인해 손이 약해진 유다 백성의 자기 합리화와 잘못된 우선순위가 두 번째이다. 그 가운데 대적들의 방해는 위협과 돈으로 관리들을 매수하는 술수에 기대고 있었다. 이는 명백한 거짓이고 악이다. 거짓과 악은 성전 공사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났다. 총독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지역에서 중단되었던 대규모의 공사가 재개된 사건은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 경위를 조사하여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리는 것이 총독의 임무이다. 그는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장로들의 말을 들었고,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고레스 왕의 명령'을 간과할 수 없었다. 총독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왕에게 보고서를 보냈고, 다리오는 발견한 두루마리를 통해 장로들의 말이 사실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감추어진 것들을 반드시 드러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과 함께하실 것과 성전이 다시 세워지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학 1:13;슥 1:16-17).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총독 닷드내로 하여금 장로들을 찾아와 질문하고 그들의 대답을 듣게 하셨다. 또 총독의 보고서를 받은 다리오 왕이 제국의 모든 궁을 뒤져 두루마리를 찾고, 그 내용을 확인하도록 인도하셨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었다(마 10;29). 그래서 욥은 그분을 이렇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욥 12:22).

      셋째, 따라서 우리가 진리와 선에 머물러 있다면, 현재 처하고 있는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낙담이나 절망이 아닌 기쁨과 감사, 그리고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살전 5:16-18). 진리와 선에 머문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의미한다(요 15:1-4). 그분과 동행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진리(선)와 거짓(악)을 반드시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그분 안에 동거하고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극적이고 합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리오 왕이 내린 조서를 통해 그것을 증명해 보이셨다.

    3. 성전 완공과 봉헌식(13-18절)

    [본문] 13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신속히 준행하니라 14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15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16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하니 17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 양 사백 마리를 드리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18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

    [이해] 성전을 재건하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도우라는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려지자, 유프라테스강 건너편 총독 일행은 그 조서에 적힌 내용대로 신속하게(철저하게) 이행하였다(13절). 유다 장로들도 선지자인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기 때문에,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하였다(14절). 그에 따라 마침내 다리오 왕 제6년 아달월 3일에 성전이 완공되었다(15절). 유다의 장로들이 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다는 것은, 그들을 비롯한 모든 백성이 이전처럼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선지자들의 격려를 받아 성전 건축 일에 전념하였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성전 건축 일과 마무리는, 그 모든 것이 1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명령, 2차적으로는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는 성전 건축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분이 사용하신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성전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 발견되지 않지만, 저자인 에스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고레스에 대한 예언(사 44;28),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1:1-2), 선지자들(학개와 스가랴)을 통한 성전 건축에 대한 예언 등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간주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여기에서 '아닥사스다 왕'(기원전 464-424년)은, 다리오 왕(기원전 522-485) 당대에 이루어진 성전 건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는 이 사건보다 훨씬 후대(최소 64년 이상)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기자가 그를 언급한 이유는, 여기에서 얻었던 동일한 승리가 그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즉 아닥사스다 왕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게 될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성전 공사가 형통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 기간 동안 그토록 집요하였던 대적들의 방해도 없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성전을 완공한 때는 다리오 왕 6년(기원전 516년) 아달월(히브리 월력으로 12월, 현대 월력으로는 3월경) 3일이다. 그러므로 2차 성전은 1차 성전이 파괴된 때(기원전 586년, 왕하 25:8-17;대하 36:19)로부터 만 70년 후에 재건된 것이다. 또 다리오 왕 2년에 공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만 4년에 걸쳐 완공된 것이다. 앞서 성전 지대를 놓고 중단되기까지의 기간이 얼마나 소요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년 미만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성전 재건에 소요된 기간은 총 5년 미만이라 할 수 있다. 솔로몬 성전은 공사 기간이 7년이었다(왕상 6:38). 그런가 하면 성전 재건을 위하여 귀환한 백성들은 5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회중 42,360명, 종 7,337명, 노래하는 자 200명, 2:64-65). 그에 비해 솔로몬 성전을 건축할 때는 역군 3만 명, 짐꾼 7만 명, 석공 8만 명에 이르렀다(왕상 5:13-16).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보다 인력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공사 기간이 더 짧았다는 사실은, 역으로 완공된 2차 성전의 규모가 솔로몬 성전보다 작았고, 또 완성도 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조잡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성전이 완공된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즐겁게 행하였다(16절). 맨 처음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과'에서 '과'는 원문에 없는 조사이므로 생략되어야 맞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 뒤에 나오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과 동격이다. 그 자손들을 '유다의 자손'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적은 이유는, 완공된 성전이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만의 성전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의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두 지파 외에 다른 열 지파는 성전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참여하였더라도 소수였겠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열두 지파와 맺어졌기 때문에(출 19:1-6;수 4;1-4;왕상 18:31), 여기에서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사용하였다. '봉헌식'에 해당하는 아람어 '하누카'는 '헌신하다'는 뜻의 '하나크'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더럽힌 성전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청결하게 한 후에 성전 봉헌식을 다시 하였는데, 이때부터 '하누카'는 이것을 기념한 축제의 이름(수전절, 요 10;22)이 되었다.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 수소 100마리, 숫양 200마리, 어린 양 400마리를 드렸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에 따라 숫염소 12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다(17절). 솔로몬 성전을 봉헌할 때에는 화목제물로 소 22,000마리, 양 120,000마리를 드렸다(왕상 8:63;대하 7:5). 따라서 2차 성전을 봉헌할 때 드렸던 제물의 수는 1차 성전 때와 비교할 때 1대 200의 비율로 매우 초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인구수로 대조하면 1인당 제물의 수는 얼추 비슷한 비율이 나온다. 다윗이 인구를 조사하였을 때, 칼을 빼는 담대한 자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모두 합해 130만 명이나 되었다(삼하 24:9). 그에 비해 귀환한 백성들은 종들까지 합하여 5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2:64-65). 따라서 양적 면에서는 2차 성전을 봉헌할 때 드려진 제물의 수는 1차 때와 비교할 때 매우 초라하였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대등한 수준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속죄제'로 드린 숫염소 12마리는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것은 '유다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속죄제'는 대속죄일에 드려지던 '속죄제'와 구별되는 것으로(레 16장), 여기에서는 성전을 봉헌하기 이전에 죄 사함을 받는 일반적인 절차로서의 속죄제를 말한다(민 7장).

      18절은 새 성전을 운영할 사람들의 조직과 운영 방안이 소개하고 있다.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워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였다. 포로기 이전 왕정 시대에도 제사장들은 24분반으로 나누어 성전 봉사를 하였다(대상 24:1-19). 각 분반은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희생 제사의 직무를 담당하였다(왕하 11;9;대하 23:4;눅 1:5,8). 레위 사람들도 제사장처럼 24반차에 따라 성전 봉사를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대상 25:9-31). 이러한 순서는 다윗에 의해 조직되었다(대상 23-24장). 다윗은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인 엘리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을 24반열로 나누어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 두 차례씩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였다.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였다'는 것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각기 정해진 순서대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모세의 책, 즉 모세오경에 기록하고 있는 내용대로 준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출 29장;레 8장;민 3:5 이하;8:5 이하).

    [질문] 본문 저자는 유다 백성들이 성전 봉헌식을 할 때 '즐거이'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즐거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나누어 보시오.

    첫째, 솔로몬 성전을 봉헌할 때와 비교할 때 그 즐거움은 그보다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크고 화려한 성전에서 많은 제물을 드리면서 봉헌식이 이루어지면 즐거움이 더욱 클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점이 즐거움의 양과 질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 문제는 봉헌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임하였는지가 더 중요하다. 성전은 이전보다 작고 드리는 제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렸다. 그래서 인구 1인당 제물의 비율은 1차 때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2차 성전의 기초가 놓인 것을 보면서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불렀고, 기쁨으로 큰 함성을 질렀다. 나이 많은 족장들은 심지어 대성통곡까지 하였다. 멀리까지 들릴 정도로 외치는 소리는 컸다(3:11-13). 그렇다면 완공된 성전을 봉헌할 때 그들이 질렀던 기쁨의 소리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둘째, 감격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 즐거움은 1차 성전 때보다 더욱 컸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바벨론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4개월이나 예루살렘 여정에 올랐다. 성전 기초를 놓았지만 대적들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방해가 있었고, 그로 인하여 도중에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솔로몬 성전을 공사할 때와 비교할 때 일손도 턱없이 부족하였다. 또한, 그들의 신분은 여전히 식민지 포로였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완공된 성전이었기 때문에 그 감격은 솔로몬 성전을 봉헌할 때와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 감격이 이런 극적인 상황 속에서 주어졌기 때문에 그에 비례해서 즐거움의 질과 양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고진감래'가 바로 그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4. 첫 번째 유월절과 무교절(19-22절)

    [본문] 19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2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21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22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

    [이해] 4:8~6:18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여기부터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되고 있다. 전자가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주로 지방 장관과 왕이 문서를 교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사실성과 생동감을 강조하기 위하여 아람어를 사용하였다면, 여기부터는 주제가 다시 종교적인 문제로 돌아왔기 때문에 원래 교훈을 받을 때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이 첫째 달 14일에 유월절을 지켰다(19절). '첫째 달'은 현재 월력에 따르면 4월이다. 그러므로 기원전 516년 3월에 완공된 성전 봉헌식을 행하고, 한 달 후인 동년 4월에 유월절을 지켰던 것이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였다. 정결하게 한 후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든 자손과 동료 제사장들과 자신들이 먹기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았다(20절). 그리고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것을 먹었고, 그 땅에 사는 이방인들로부터 부정을 탔다가 그런 부정을 떨어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도 그들과 함께 모두 유월절 양고기를 먹었다(21절). '유월절'은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키는 절기이다(출 12:1-14,24-27;레 23:5-6;민 9:10-14). 따라서 성전 봉헌식 이후 처음으로 드려진 유월절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드렸다는 점에서 제2의 출애굽에 비견할 만한 의미가 있었다. 유월절에 양을 잡는 일은 원래 한 가정의 가장이 하였다(대하 30:17). 그렇지만 히스기야 왕 때 백성들의 부정으로 레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잡게 한 이후부터(대하 30:16-17), 레위인들이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던 것 같다(대하 35:10-12). 유월절 음식을 먹은 대상으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하나는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땅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부정을 탄 후에 그 부정을 떨어내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다. 후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견해가 있다. (1) 유다 자손과 함께 귀환한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 백성들, (2)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속하지만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던 백성들, (3) 원래 이방 민족이었지만 유다 백성들이 귀환한 후에 개종한 사람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세 번째 견해를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이방인이 할례를 받고 개종하면 자신들과 같이 된 것으로 인정하였다(출 12:43-49). 옛 언약에서 육체에 새긴 '할례'는, 새 언약에서는 그리스도의 할례인 침례에 해당된다(골 2:11-12). 따라서 할례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 전제로 들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유월절에 이어 무교절을 7일 동안 즐겁게 지켰다(22절).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 동안, 즉 첫째 달 15일부터 21일까지 유월절의 일부로 지켜졌다(출 12:15-20;레 23:6-8;민 28:17). 이때에는 누룩을 제거한 빵을 먹었는데, 이는 유월절 저녁에 빵에 누룩을 넣을 여유가 없을 만큼 신속하게 애굽을 탈출해야 하였던 상황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출 12;39;13:6-8;23:15).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 농사를 지어 거둔 첫 곡식단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에 따라(레 23:10-14), 절기가 시작되는 안식일 첫날에 거두어들인 첫 보리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다. 그들이 무교절을 특별히 '즐거움으로' 지켰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즐겁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즐거워한 근원(원천)이 바로 하나님께 있었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돌려서 대적들의 방해를 물리치시고, 성전 건축하는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여 무사히 완공할 수 있도록 도우셨기 때문에 즐거워하였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바사의 왕이라 하지 않고 '아시리아 왕'이라고 기록한 것은, 페르시아 왕들이 아시리아와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였기 때문이다(5:13;느 13:6).

    [질문]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유다 백성들의 모습(행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절기를 지키기 위해 먼저 자신들의 몸을 정결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지키는 절기이다. 그러한 절기에 부정한 몸으로 참여하여 그 사건을 기념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는 없다. 이는 신앙의 출발점이 정결에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유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몸을 정결하게 한 후 절기를 지켰던 것처럼,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부터 정결히 해야 한다. 만약 아직도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구원은 죄로부터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죄를 범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롬 3;23). 만약 이미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자,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요 1;12)에 맞게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벧전 1:16). 이것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그분이 하신 일을 기념하거나 영광을 돌릴 수도 없다.

      둘째, 그들은 절기를 즐겁게 지켰다는 것이다. 그들이 절기를 즐겁게 지킬 수 있는 근원은 하나님께 있었고, 그 구체적인 이유는 그분이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돌려서 성전을 완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하나는 그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은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렇게 할 때 그분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도 힘이 된다(느 8:10).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수 없고 슬픔으로 힘을 잃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강조하기도 하였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두 번째 교훈은, 즐거워하되 구체적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즐거워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도와 성전을 완공시키신 하나님의 손길을 잊을 수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이 우리에게 해 주신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기록하면서 그것들 하나하나로 인해서 종일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데 있다. 만약 우리의 즐거움이 피상적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은 '수박 겉 핥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II. 메시지

    제목: 유월절을 지킨 백성들

    본문: 스 6:19-22

    19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2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21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22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

    1. 유월절을 지킨 백성들

    성전 건축은 대적들의 방해와 유다 백성들의 잘못된 우선순위로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예언(말씀)과 다리오 왕이 내린 조서로 성전 건축은 다시 시작되었고, 마침내 다리오 왕 6년(기원전 516년) 아달월(3월)에 완공되었습니다(6:15).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기원전 586년에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로부터 만 70년이 지나 2차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완공된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봉헌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첫째 달 14일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19-21절). 여기에서 ‘첫째 달’은 ‘아빕월’로, 현대 달력으로는 4월경에 해당합니다.

      유월절이 어떤 절기입니까? ‘유월절’은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수장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영어로 ‘Passover’인 유월절은 ‘넘어가다’, ‘지나가다’, ‘~을 뛰어넘다’는 뜻으로, 출애굽 전날 밤 하나님이 보내신 죽음의 사자가 애굽 장자들을 죽일 때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넘어감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출 12;11-14). 이 사건은 아빕월, 즉 첫째 달 14일 저녁에 일어났기 때문에, 유월절 절기도 이날 저녁에 지키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를 지킴으로써, 자신들에게 그 큰 구원과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였습니다. 더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지키고 있는 유월절은,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처음으로 지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완공된 성전을 봉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지켰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은 제2의 출애굽에 견줄 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지킨 유월절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유월절에 이어 무교절을 지켰습니다(22절).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 동안, 즉 첫째 달 15일부터 21일까지 유월절의 일부로 드려집니다(출 12:15-20). 이때 누룩을 제거한 빵을 먹는데, 이는 유월절 저녁에 빵에 누룩을 넣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애굽을 빠져나와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출 12:39).

    2. 두 가지 교훈

    1) 먼저 정결하게 해야

    오늘 본문은 유다 백성들이 유월절과 무교절 절기를 지킨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두 가지 내용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볼 수 있는 첫 번째 모습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먼저 자신들의 몸을 정결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후에 어린 양을 잡고 모든 백성이 함께 먹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20-21절).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또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바로 그분이 여전히 자신들과 함께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그분과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절기에 부정한 몸으로 참여하여, 그 사건을 기념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더구나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애초에 함께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전에 자신들의 몸을 정결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출발점이 정결에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

      a) 유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몸을 정결하게 한 후에 절기를 지켰던 것처럼,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스스로를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결의 반대 개념인 부정의 원인이 되는 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는 자리에서 죄를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분과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믿을 존재는 오직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성경은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의인은 한 명도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0-18). 더 나아가 성경은 죄인들, 즉 부정한 사람들에 대해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a).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창조주 하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본질이 죄인이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죄로 얼룩지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죽음과 심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올바르게 끼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죄인에서 의인이 되고, 마귀의 새끼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b)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도 정결은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레 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우리가 모든 행실에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과 교제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행실에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인생의 열매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과 동행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기 위하여 주님 안에 거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버려져 말라비틀어질 뿐만 아니라 불쏘시개가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3-6).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몸을 정결하게 하는 일, 즉 모든 행실에 거룩하게 하는 일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 즐거움으로 지켜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교훈은, 그들이 ‘즐거움으로’ 그 절기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즐거움으로 절기를 지켰던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22절). 그들이 즐거웠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즐겁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쁨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즐거웠던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돌려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 역시 기쁨의 근원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동시에 그들이 구체적인 사건에 근거해서 즐거워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체적인 은혜로 인해 즐거워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즐거워해야 할까요?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에게 왜 중요할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이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추상적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왜 즐거워합니까? 함께하고 있는 아빠와 엄마가 바로 자기의 부모라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 엄마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돌봐주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돌봐줄 것을 믿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즐거워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고, 그것은 부모에게도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도 이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되고,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수 없고 슬픔으로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소원을 아뢰지도 않고 소원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분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또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즐겁게 그분께 의지하고 아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그 기쁨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성전을 완공하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이 우리에게 해 주신 일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떠올리면서 종일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쁨이 마냥 피상적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은 '수박 겉 핥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3. 그들의 촉구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으로 현대 사회는 엄청난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풍요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 밀어내거나 부정합니다. 현대 문화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그 성격을 딱히 무엇이라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다단해졌고, 그 결과 순결과 감사(기쁨)라는 단어도 그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본문이 소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회복하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먼저 자신들의 몸을 정결하게 하였고, 그것을 시작으로 출애굽 사건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을 기념하였습니다. 또 무교절을 지키는 내내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그분이 성전을 완공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는 사실이 즐거웠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촉구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게 힘이 되고 많은 열매를 맺는 소원도 이룰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촉구대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룩함을 회복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구체적으로 돌아보면서 즐거워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7장 요약

    에스라가 예루셀람으로 돌아오였고 백성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게 됩니다.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내용,아닥사스다왕이 강 서편의 관리에게 조서를 내렷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6장은 유다 백성들의 1차 포로 귀환을, 7-10장은 2차 포로 귀환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7장은 2차 포로 귀환의 배경과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는 바벨론에 있던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나,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가 돌아온 목적은 그 땅의 형편을 살피고, 하나님과 왕의 명령에 따라 성전을 위하여 섬기고, 정의를 실현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근거는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기초하고 있다. 그 조서에는 에스라의 귀환, 에스라에게 주어진 임무와 권한, 재정 지원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모든 일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에스라는 바로 그분을 송축하였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에스라의 귀환과 결심(1-10절)

    [본문]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3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4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5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7 아닥사스다 왕 제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 년 다섯째 달이라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이해] 1-6장은 바사의 고레스와 다리오 왕 때 있었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때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였다. 비록 그 중간에 대적들의 방해와 백성들의 나태함 때문에 성전 재건이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소임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7장부터는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주제도 ‘성전 재건’에서 ‘종교개혁’(혹은 ‘신앙 부흥 운동’)으로 바뀌고 있다. 그 일은 학사 에스라의 귀환으로 시작되었다. 앞선 1-6장이 하나님의 집에 대한 첫 번째 부분인 ‘성전 재건’을 다루고 있다면, 7-10장이 다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대한 두 번째 부분인 ‘거룩한 자손의 재건’이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였는가(7-8장),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형성하였는가(9-10장)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편 1-6장이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이루어진 1차 귀환 이후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7장부터는 2차 귀환 후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3차 귀환에 얽힌 사건은 느헤미야서에 소개되고 있다. 성전 재건 이후, 에스라는 모세 율법의 회복과 재정비, 이방인과의 통혼 금지 등을 주도하였다. 그에 비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 국가 살림 재정비 등 행정 부분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였다.

      바사 왕 ‘아닥사스다’(Artaxerxes)는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왕의 셋째 아들로, 부친을 암살한 아르파타나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아닥사스다 1세를 말한다(기원전 464-424년). 아닥사스다가 죽은 후에 페르시아 제국은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느헤미야는 그의 술 관원으로 섬겼으며(느 1:1;2:1), 말라기 선지자는 그의 통치 말기에 활동하였다. 그가 통치할 때 에스라가 있었다(1절). 그는 스라야의 아들로,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후손이다. 그의 족보(상향식으로 제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1-5절). 에스라-스라야-아사랴-힐기야-살룸-사독-아히둡-아마랴-아사랴-므라욧-스라히야-웃시엘-북기-아비수아-비느하스-엘르아살-아론. 여기에서 소개된 족보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대상 6:3-15 참조). 마태복음 1장에서 소개한 예수님의 족보가 그분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점에 강조점을 두었듯이, 에스라의 족보도 그가 아론의 직계 후손인 스라야의 직계로서 대제사장의 혈통임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자세한 인물 정보는 아래 표 참조)

    인 물

    소 개

    스라야

    바벨론에 끌려갔던 여호사닥의 아버지이다(대상 6:14-15). 그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할 당시 대제사장이었고,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 하맛 땅 립나에서 죽임을 당하였다(왕하 25:18-21). 따라서 에스라와 스라야 사이에는 130년의 간격이 있고, 그 사이에는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므로 ‘스라야의 아들’에서 ‘아들’은 문자적 의미의 아들(son)이 아니라 자손(descendant)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라야가 에스라의 아버지가 아님에도 그 족보의 맨 처음에 놓은 이유는, 그가 바벨론 포로 전에 예루살렘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대상 6:14). 포로기 이후에는 대제사장의 사역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본서 기자는 스라야부터 에스라 사이에 있는 서너 세대를 생략하여 에스라가 여호사닥의 직계로서 대제사장의 혈통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아사랴

    스라야의 아버지이다(대상 6:13).

    힐기야

    아사랴의 아버지로, 유다 왕 요시야 때 성전을 정화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던 대제사장이다(왕하 22:4-14;대하 34:14-22). 이 사건으로 요시야 왕 때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살룸

    힐기야의 아버지이다(대상 6:12-13). 므슬람과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대상 9:11).

    사독

    살룸의 아버지로(대상 6:12), 다윗과 솔로몬 당대에 활약하였던 대제사장 사독과는 다른 인물이다.

    아히둡

    사독의 아버지이다(대상 6:8).

    아마랴

    아히둡의 아버지이다(대상 6:11).

    아사랴

    솔로몬 시대에 활약한 대제사장 사독의 4대손으로, 솔로몬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활동하였다(대상 6:8-10).

    므라욧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의 조상이다. 따라서 므라욧과 아사랴는 부자 관계가 아니다. 그 사이에는 6명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다(대상 6:6-11).

    스라히야

    므라욧의 아버지이다(대상 6:6,51).

    웃시엘

    스라히야의 아버지로, ‘웃시’로도 불린다(대상 6:6,51).

    북기

    웃시엘의 아버지이다(대상 6:5,51).

    아비수아

    북기의 아버지이다(대상 6:5).

    비느하스

    아비수아의 아버지이다(대상 6:4).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동편 싯딤에서 거짓 선지자 발람의 꾀에 빠져 바알브올을 숭배하고 이방인들과 정을 통하였을 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으로 그 사태를 진정시켰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대제사장의 직분을 약속받았다(민 25:7-13). 미디안과의 전투에 최선봉에 섰고, 가나안 정복 때 동쪽 지파들이 세운 제단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훌륭하게 중재하여 동서 지파들 사이의 분쟁을 방지하였다(민 31:6;수 22:10-14).

    엘르아살

    비느하스의 아버지이다. 아론의 네 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형인 나답과 아비후가 잘못된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진노를 받아 아들 없이 죽임을 당하자,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다(레 10:1-2;민 20:25-28).

    아론

    레위 지파 출신으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이다(레 6:20-22). 아므람과 요게벳의 맏아들이고, 모세의 형이자 누이 미리암의 동생이다(출 6:20;7:7;민 26:69). 하나님은 말이 능숙하지 못하다는 모세의 변명에 아론을 그의 대변인으로 세우셨다(출 4:14-16). 역대상 6장의 족보가 레위로 끝나는 데 비해, 에스라의 족보가 아론으로 끝을 맺은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가계의 흐름도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에스라가 바로 대제사장 아론의 직계 자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6절). ‘이 에스라’는 ‘바로 그 에스라’라는 뜻이다. 이는 앞서 제시된 족보를 통하여 그가 제사장 가문에 속한 탁월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뒤에 이어질 어떤 중대한 일의 중심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이다. 족보가 그의 출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6절 후반부는 그의 인물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익숙한’은 ‘어떠한 일에 능숙하고 준비되어서 아주 신속하고 정확하게 시행하는 사실’을 묘사하는 단어로서, ‘정통한, 능통한’(NIV, well versed), ‘숙련된’(NASB, skilled), ‘준비된’(KJV, ready) 등과 같은 뜻이다(잠 22:29;사 16:5). ‘학자’는 ‘서기관’(왕하 25:19;렘 36:26), ‘서기’(왕하 12:10)를 말하는데, 이 단어는 원래 ‘국가의 서기관’(state secretary, 삼하 20:25)이나 ‘왕의 개인 서기관’(royal private secretary, 삼하 8:17;왕하 22:3-13)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요시야, 여호야김 등 때에 서기관은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삼하 8:17;20:25;왕상 4:3;사 36;1-3;왕하 22:3;렘 36;20-21). 둘째, 그는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왕에게 구하는 것을 모두 받는 사람이었다.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을 의지하였다는 전제가 암시되어 있다. 또 왕에게 구하는 것을 모두 받았다는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돕기도 하셨지만, 그의 행실 또한 왕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데 따른 결과였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출발하여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7-9절). 만 4개월이 걸렸다. 그와 함께 올라온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뒤에 나열된 사람들처럼 특정직에 속하지 않은 일반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그들 중에 1차 귀환 때처럼 북쪽 지파 사람들이 포함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은 성전에서 각각 그런 일을 담당하였던 레위 지파 사람들이다(2:41-42). ‘느디님 사람들’은 원래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출신이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와서 비천한 일에 종사하였던 이들이다(2:43). 바벨론을 떠난 에스라와 그 일행이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그들을 도우셨기 때문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직선으로 800km에 이르는 먼 거리이다. 또한, 그 여정이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가장 더울 때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마 그들은 사막을 피하기 위해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북쪽 수리아로 이동하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였을 것이다. 그 길은 잘 닦여져 있었지만, 강도나 대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하였다(8:22). 그래서 에스라는 이러한 위험을 내다보고 왕에게 자신들을 보호해 줄 보병과 기병을 요청하려고도 하였지만, 차마 그 말만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였다. 대신에 그는 일행들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은 선한 손으로 그들을 도우셨고, 그들은 평탄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8:21-23).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는 세 가지를 결심하였다(10절). 첫째,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한다. 둘째, 연구한 율법대로 준행한다. 셋째, 연구하고 준행한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친다. ‘연구하다’는 말은 ‘조사하다’, ‘찾다’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을 가리킨다(벧전 1:10-11, Rawlinson). ‘준행하다’는 말은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창 6:22;신 5:27;23:23). 율법 연구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불순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부류의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인데,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신랄히 비판하셨다(눅 12:1). ‘율례와 규례’는 외형상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단어가 항상 동시에 또는 교대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거의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단어들은 ‘율법’의 보다 본질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데, ‘율례’는 율법의 기초적인 규정들에, ‘규례’는 보다 구체적인 용례들에 각각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Joseph Blenkinsopp). 세 가지 결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가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는 목적도 최종적으로 이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에스라가 이 같은 결심을 한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목적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은 그 목적을 왕에게 알리셨고, 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려 예루살렘에서 그 목적을 이루도록 명하였다(7:11-28). 그러므로 그의 결심은 주관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과 왕,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객관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질문] 에스라의 족보에 나타난 특징들은 무엇인가?

    첫째, 아론에서부터 에스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사장을 싣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마태복음 1장에서 소개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그분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듯이, 에스라의 족보도 그가 아론의 직계 후손인 스라야의 직계로서 대제사장 혈통임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에스라부터 스라야 사이에 있는 서너 명이 생략되어 있고(이들이 누구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아사랴와 므라욧 사이에도 여섯 사람이 생략되어 있다. 이는 그들이 소개된 사람들과 비교할 때 부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영향력 측면에서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배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시간의 역순에 따라 상향식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사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에서 취하고 있다(3장). 저자는 이런 방식을 통해 수신자인 로마의 고위 관리로 추정되는 데오빌로의 이해를 배려하였고, 더 나아가 유대 공동체 밖에 있는 모든 이방인의 이해도 배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마태복음에서는 하향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는 유대인으로 구성된 마태 공동체의 유대 전통을 감안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에스라의 족보는 유대 전통의 주관성보다 유다 밖의 객관성을 더욱 의미 있게 보았던 것 같다.

      셋째, 아론이 족보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론의 위로는 아므람, 고핫, 그리고 레위가 있다. 특히 ‘레위’는 이스라엘의 지파를 가르는 기준점이 되는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스라의 족보를 레위까지 제시할 수도 있었지만, 그를 비롯하여 아론 이전의 사람들은 대제사장 제도가 생기기 전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본문에 제시된 족보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저자는 에스라의 족보를 아론까지만 제시함으로써, 족보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2.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내용(11-26절)

    [본문] 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14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15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16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17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18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19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20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 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21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22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이해]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초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11절). 따라서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에스라는 여호와의 계명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에 관한 학자이자 제사장이었다. ‘학자’는 율법을 연구, 해석, 필사, 가르치는 ‘서기관’을 말한다. 그래서 KJV, RSV, NASB 등은 ‘scribe’로, NIV는 ‘teacher’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학자’는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 부여된 이름이고, ‘제사장’은 에스라의 유대인 직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계명’은 ‘명령’, ‘주장’ 등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는 율법의 말씀들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성문법으로서의 ‘율례’나 불문법으로서의 ‘규례’와 같은 법령의 의미보다는 백성들이 실제 이행해야 하는 법령의 구체적인 실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사실 중 하나가 단지 성전 재건 자체에만 있지 않고 그분의 명령에 대한 구체적인 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아닥사스다 왕이 율법에 완전한(완벽한)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명령을 담고 있었다. (1) 에스라와 유다 백성들을 이끌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라(13절), (2) 그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라(14절), (3) 성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가라(15-20절), (4)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의 모든 창고지기는 에스라가 요청하는 것을 신속히 도우라(21-24절), (5) 에스라는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재판하고(다스리고) 가르치라(25-26절).

      조서의 첫 번째 내용은, 바사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제사장들과 레위인들 포함) 가운데 뜻이 있는 자들은 누구든지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강압이 아닌 자원과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와 같은 원칙은 1차 포로 귀환을 허락한 고레스 칙령에도 적용되었다. 그때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올라갔다(1:5). 하지만 당시에 올라가지 않았던 이들도 많이 있었다. 한편 귀환 대상자들을 언급하는 과정에 나오는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에스라서에 총 36회 사용되었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객관적인 용어로 모두 6회 사용되었다(2:2,70;3:11;7:13;9;1;10:1). 그 외에는 대부분 언약 백성으로서의 신앙적, 혈통적인 동질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반면에 본서에 총 22회 사용된 ‘유다’는, 백성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단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고(4:4), 대부분 바사 제국에서 다스리는 속국의 한 지방으로서의 지역적, 지리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본서가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고, 하나님이 처음 선택한 열두 지파의 총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해 준다.

      두 번째 내용에는, 왕과 일곱 자문관이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낸 이유가 들어 있다(14절). ‘일곱 자문관’은 왕의 측근에서 국정 전반에 관하여 자문과 조언을 하는 일종의 ‘왕실 자문 기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왕실에서 가장 신뢰받는 자문관들로, 그들에게는 왕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들에 대해 에스더서(1:14)에서는 “왕에게 가까이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으로 묘사하고 있다. 왕과 일곱 자문관이 에스라를 보낸 목적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고, 살핌의 기준은 에스라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이었다. 이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그 율법에 어긋난 이들을 벌하거나 가르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 왕이 에스라를 보낸 일차적인 목적이 종교적 성격을 띠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짐작하건대, 에스라는 유다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어긋난 삶을 살거나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가 모세 율법에 어긋나 있다는 소식 등을 들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에스라는 왕에게 예루살렘행을 요청하였고, 왕은 그의 요청에 흔쾌히 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왕이 에스라를 보낸 데에는 정치적 성격의 이차적인 목적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아닥사스다 1세는 왕이 된 이후 곧바로 10년 동안 이집트에서 일어난 커다란 반란에 직면하였다. 이 반란은 이나로스(Inaros)와 아미르테우스(Amyrtaeus)가 주도하였다. 삼각주 지역의 지배권을 차지하고 있던 그들은, 파프레미스(Papremis)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크게 물리치고 아닥사스다 1세의 삼촌이자 그 지역 총독이었던 아케메네스의 시체를 페르시아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정부군은 여전히 멤피스와 이집트 상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집트 남부에 있는 와디 함마마트와 홍해를 통해 본국과 연락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테네인들이 이끄는 헬라의 델로스 동맹군도 지중해 서쪽 지역에 대한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이나로스와 힘을 합쳤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아닥사스다에게 인근 지역의 민족들과 더욱 긴밀하게 우호 관계를 다지는 계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만약 그들과의 우호에 금이라도 간다면 이집트의 반란은 인접한 다른 민족들에게도 반란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고, 또 향후 페르시아가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머나먼 원정길에 오를 때에도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므로 그들과의 우호를 더욱 깊게 다지는 정책은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민족들 가운데는 베니게, 수리아, 팔레스타인에 있는 여러 민족 등이 속해 있었다.

      세 번째 내용에는, 왕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에스라를 보낼 때 그가 가져갈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성전의 필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들로, 다음과 같다. (1) 왕과 자문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린 은금(15절), (2) 바벨론 온 지방(도)에서 얻은 은금(16a절), (3)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16b절). (4) 왕이 에스라에게 준 그릇들(19절), (5) 궁중 창고에서 성전에 쓰일 곳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20절).

      왕과 자문관들이 하나님께 은금을 성심으로 드렸다는 것은, 왕이 에스라의 귀환을 명령한 직접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왕은 하나님을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고백함으로써 그분의 실재와 정체성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왕은 이러한 인식 아래 에스라를 환대하여 보냈는데, 이는 그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그분의 축복을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그 목적 이면에는 정치적인 이해도 맞물려 있었을 수도 있다. 즉 정복 지역의 신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줌으로써 정복지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제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성심으로’는 ‘자원하여’, ‘자발적으로’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성경은 이 단어를 ‘기쁜 마음으로’로, NIV와 KJV은 ‘freely’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왕과 자문관들이 하나님께 은금을 드릴 때의 기본 동기는 후자보다는 전자의 색채가 더욱 강하였다는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짐작은 23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왕의 마음(두려움), 즉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는 고백을 고려할 때 더욱 신빙성을 담보하고 있다. 왕과 자문관들이 성심으로 드린 은금 이외에도, 바벨론의 모든 지방에서 얻은 모든 은금,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린 예물도 에스라에게 주어졌다(16절). 바벨론의 모든 지방에서 얻은 모든 은금은 정황상 고레스 왕 때에 있었던 1차 귀환 때와 유사하게 자발적으로 주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1:4,6). 백성과 제사장들도 1차 귀환 때와 마찬가지로 기쁘게 예물을 드렸다(2:68).

      왕은 에스라에게 주어진 은금과 예물의 사용처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17-18절). 첫째, 그 돈으로 제물과 물품을 신속하게 사서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라. 그 가운데 제물은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을, 물품은 소제와 전제를 드릴 때 필요한 것들을 사라. ‘신속히’는 문자적으로 ‘정확하게’라는 뜻으로, 그 돈을 틀림없이 지정된 목적에 사용하고 그 외의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소제’(素祭, grain offering)는 구약의 5대 제사 가운데 하나로, 곡물로 드리는 제사이다. 성결한 생애를 하나님께 약속하는 표시로 정한 밀가루와 기름과 유향을 불로 태우고 떡을 구워 놓고 드렸다(레 7:12-13). 번제가 헌신을 의미한다면, 소제는 노동(일)의 결과물을 드린다는 점에서 행위의 성별을 상징하였다(시 20:3). ‘전제’(奠祭, drink offering)는 포도주나 독주를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 드리는 제사이다(출 29:40-41;민 15:5). 단독으로 드려질 수 없고, 항상 다른 제사에 곁들여 드려졌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헌신적인 봉사, 주를 위해 생명까지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거룩한 희생을 상징한다. 개역한글성경에서는 ‘관제’(灌祭)로 표현하기도 하였다(빌 2:17;딤후 4:6). 왕이 이처럼 제사의 종류와 제물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점은, 에스라가 왕에게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그 정보를 알려 주었거나 왕궁에서 일하는 익명의 유대인이 그 정보를 알려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둘째,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네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라. 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너와 네 형제인 제사장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대로 사용하라’는 뜻이다.

      에스라에게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할 때 사용될 그릇들도 주어졌다(19절). 그 그릇들은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가져왔던 것을 가리키는 것 같지 않다. 그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고레스 왕에 의해 반환되었다(1:7-11). 그때 반환되지 않고 남아 있던 그릇들일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왕과 귀환하지 않은 유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새롭게 마련해 준 것들로 보는 편이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 밖에도 왕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써야 할 것이 더 있다면 궁중 창고에서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20절). ‘궁중 창고’는 일종의 왕실 창고(NASB, NIV, the royal treasury)로, 왕실의 사유 재산을 보관하는 곳간을 가리킨다. 그것이 ‘강 서편에서 징수되는 세금을 보관하는 금고 또는 그 관리 기관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다.

      왕의 조서에 담긴 네 번째 내용에는,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방의 모든 창고지기에게 내린 명령이 담겨 있다(21-24절). ‘창고지기’는 바벨론에서 유다로 향하는 에스라가 거쳐 가게 될 지역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재정 관리들을 말한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을 용도에 따라서 출납하거나 왕실에 상납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왕은 그들에게 율법의 서기관이자 제사장인 에스라가 요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도록 명령하였다. 왕은 에스라가 구하는 것에 대하여 은은 100달란트까지, 밀은 100고르까지, 포도주와 기름은 각각 100밧까지 제한하였지만(소금은 무제한), 그 수량은 놀랄 만큼 많았다. ‘은 100달란트’는 현재 시세로 25억 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1달란트는 34kg, 1kg은 35.27온스, 1온스는 17.2달러, 1달러는 1,203원, 19.10.02. 기준). ‘고르’는 10밧에 해당하고(겔 45:17), 1고르는 230리터 정도이다. ‘은’은 희생 제물을 구입하는 데 필요하고, ‘밀’과 ‘포도주’는 소제와 전제를 드리기 위해서 각각 필요하였다. 또 ‘소금’은 소제와 전제의 제물에 뿌려질 용도로 필요하였다(겔 43:24). 23절에는 왕이 모든 창고지기에게 그와 같이 명령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첫째는, 그것을 통해 에스라가 성전을 위하여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삼가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삼가’는 ‘집중해서’, ‘부지런히’, ‘열의를 가지고’라는 뜻이다. 이는 원래 고대 셈족어에서 전쟁터에서 적이나 목표물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둘째는, 그것을 통해 바사 왕과 그의 나라에 영원토록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어 왕과 바사 제국에 재앙이 임하기 때문에, 신속히, 그리고 철저하게 이행하도록 명한 것이다. 왕의 이런 인식을 통해 그의 신앙이 전적으로 미신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진노를 내리셨는데, 그러한 진노는 이방 나라들도 피해 가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역사적 배경에 근거해서 아닥사스다 왕도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 두려움은 자신과 자신의 왕국의 안녕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2차 귀환과 귀환 후의 일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모든 창고지기에게 이어진 왕의 명령에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은 성직자들을 비롯하여 성전 봉사자들에게 조공, 관세, 통행세 등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24절). 이는 구약의 율법과도 일치하는 것이지만, 당시 페르시아를 포함한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는 신전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심지어 다리오 왕의 가다타스(Gadatas) 비문에는 아폴로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세금을 받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문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한편 면세 대상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여섯 부류로 분류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앞에 소개되고 있는 다섯 부류의 사람들, 즉 제사장들, 레위인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은 앞서 2장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2:36-54). 그에 비해 마지막에 소개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 절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아마도 성전에서 육체노동을 하였던 사람들로, ‘느디님 사람’보다 신분이 더 낮았던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로 추정된다(2:55).

      조서에 담긴 마지막 내용에는, 왕이 에스라에게 부여한 두 가지의 권한과 사명이 소개되고 있다(25-26절). 첫째 사명은, 모든 백성에게 공의를 펴기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이를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재판하게 하는 일이었다. ‘법관’은 ‘공의를 시행하다’, ‘재판하다’는 뜻을 가진 아람어 ‘쉐파트’에서 파생된 단어로, 개역한글성경에서는 ‘유사’(有司, official, ruler)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유사’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행정이나 군사적인 능력을 갖춘) 장관, 관리, 서기관(대상 23:4;27:1), (2) 백성을 지도하는 지도자, 감독자(렘 29:26), (3) 족장과 집안의 우두머리(출 22:28). NIV와 KJV은 ‘법관’을 ‘magistrates’(치안 판사)로 번역하여, 뒤에 나오는 ‘judges’(재판관)와 구분하고 있다. 한편 페르시아 제국에서 행해진 두 가지의 사법 활동을 통하여 법관과 재판관을 구분하기도 한다. 즉 당시 페르시아에는 일반 관례법에 따라 시민들 상호 간의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는 ‘사회 법정’과 국가나 정부의 이해와 관련된 사건을 맡은 ‘왕궁 법정’이 있었는데, 이에 근거해서 ‘법관’은 종교나 사회 문제 등에 관한 관습법을 다루는 사람이고, ‘재판관’은 왕에 관한 정치 문제를 취급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런 견해는 이어지는 26절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구분하여 명시하였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더하고 있다. 만약 이와 같은 견해를 따른다면, 왕은 에스라에게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이스라엘 내부의 종교 문제와 백성들의 일반 소송 문제뿐만 아니라, 왕과 정부에 관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명까지 부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스라에게 주어진 둘째 사명은,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왕이 에스라에게 이와 같은 두 가지 사명을 주었다는 것은, 역으로 이스라엘 내부에 이 두 문제와 함께 앞서 제시한 성전 제사와 관련된 문제들이 동시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왕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고, 그에 맞춰서 사형, 귀양, 가산 몰수, 옥살이 등의 형벌을 내리도록 지시하였다(26절).

    [질문]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들어 있는 내용상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왕이 에스라에게 부여한 권한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에스라의 귀환을 허락한 왕은, 그를 그냥 보내지 않고 조서 속에 그에게 부여된 권한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왕이 그에게 부여한 권한은 다음과 같다. (1) 유다에 정착한 백성들의 상황 감찰 권한(14절), (2) 주어진 은금과 예물을 용도에 맞게 분배, 사용할 수 있는 권한(15-20절), (3) 창고지기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수 있는 권한(21-23절), (4) 종교, 사법, 교육에 대한 전적인 권한(25-26절). 만약 에스라가 이러한 권한이 명기된 왕의 조서 없이 귀환하였다면, 그가 비록 율법에 익숙한 학자이자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그의 권위를 쉽게 인정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 백성들은 이미 이방 문화에 상당히 깊이 동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의 권한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왕의 조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아닥사스다 왕의 인식과 태도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비록 이방 나라 페르시아의 왕이었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 그리고 성전과 제사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아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분께 순종하여 그분의 뜻과 일이 이루어지도록 전심으로 도왔다. 그 배경에는 제국의 안정을 바라는 정치적인 목적, 자신과 자기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기복적인 신앙 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의 순수성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셋째, 조서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닥사스다 왕이 모든 일을 주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진하게 묻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에스라가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는 내용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27-28절). 그는 (1) 하나님이 왕의 마음에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고, (2) 하나님이 자신에게 왕으로부터 은혜를 얻게 하셨고, (3) 또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신이 힘을 얻어 백성들과 함께 올라오게 하셨다고 찬양하였다.

    3. 에스라의 송축(27-28절)

    [본문] 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이해]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대한 에스라의 반응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향한 송축으로 채워져 있다. ‘송축하다’는 ‘축복을 받으소서’(KJV, Blessed be), ‘찬양하다’(NIV, Praise be)는 뜻이다. 에스라는 그분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소개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강조함과 동시에 포로 귀환이나 성전 재건과 관련된 상황 등이 모두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천명하고 있다.

      에스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님을 송축하였다. 첫째 이유는, 하나님이 왕의 마음에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기 때문이다. 이는 아닥사스다 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2차 귀환 명령이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에 대해 잠언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이유는 성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에스라를 왕과 보좌관들과 모든 방백 앞에서 은혜를 얻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은혜’(헤세드)는 주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변함 없는 사랑과 자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은혜가 에스라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이방 나라의 왕과 관리들의 마음을 만지셨다. 마지막 이유는, 에스라 위에 있었던 하나님의 손으로 인해 그가 힘을 얻고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모아 함께 올라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선 두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손이 왕(보좌관들, 방백 포함)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에스라는 수많은 권한과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을 수행할 에스라가 동기가 없거나 마음이 약해져 버리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세 번째 이유는 매우 중요하다. 동기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에스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은 그 본질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주어지지 않으면 혼자 일어설 수 없다. 심지어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단언까지 하셨다(요 15:5).

    [질문]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서, 에스라가 소유하고 있었던 신앙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첫째,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기초한 신앙이라는 점이다. 허구에 기초한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다. ‘미신’은 역사적,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미신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그에 반해 ‘참된 신앙’은 그 뿌리가 실재에 있고, 그 실재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드러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에스라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실재하실 뿐 아니라 그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분으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 귀환과 은혜(재정적 지원)가 주어졌다고 송축할 수 있었다.

      둘째, 경험적인 신앙이라는 점이다. 이는 앞선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에, 그 역사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에스라는 그때 그 장소에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였다. 그는 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그분의 손을 경험하였고, 그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도 경험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에게 힘을 주시고,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였다.

      셋째, 겸손한 신앙이라는 점이다. ‘겸손’은 자기 정체성을 가감 없이 명확히 인식할 때 그러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 그에 반하여 ‘교만’은 자기기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어사전은 교만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이러한 정의 이면에는 잘난 체할 뿐 정작 잘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들어 있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났다고 뽐내기 때문에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주인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교만이 죄가 되는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이나 그 반대의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에스라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로 간절히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8:21-23). 그 결과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 위에 있었고, 그로 인해 그는 다시 힘을 얻어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II. 메시지

    본문: 스 7:6-10

    제목: 에스라의 결심

    0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07 아닥사스다 왕 제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0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 년 다섯째 달이라 0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1. 에스라의 귀환 배경

    1-6장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 즉 1차 포로 귀환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때 스룹바벨의 주도로 올라온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2차 성전을 지었습니다. 7-10장은 2차 귀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차 귀환을 주도한 사람은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였는데,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과 도움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에스라의 귀환을 허락한 왕의 조서에 보면 그가 돌아오게 된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은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임무를 맡겼습니다. 첫째,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라(14절). 둘째, 하나님의 전(성전)을 위하여 (제사로) 섬기라(17-20절). 셋째,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가르치라(25절).

      에스라에게 이와 같은 임무를 맡겨졌다는 것은, 역으로 당시 그곳에 그와 같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소홀히 하였고, 그나마 드리는 제사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도를 정확하게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법관과 재판관으로 세워졌고, 그들에 의해 공정한 재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왜 벌어졌을까요? 백성과 지도자들(특히 종교와 사법 분야)이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은 그곳의 형편을 살펴서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다음과 같이 결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겠다”(10절). 오늘 우리는 에스라가 결심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에스라의 결심 세 가지

    1)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기

    에스라가 결심한 첫 번째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는 먼저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기본적으로 ‘모세 오경’을 가리킵니다(6절). 하지만 그는 이것뿐만 아니라 ‘시가서’를 비롯하여, 에스라 이전에 쓰여진 ‘역사서’와 ‘예언서’ 일부까지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구하다’는 말은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을 완전하게 얻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6절). 여기에서 ‘익숙하다’는 말은 ‘숙련되다’(RSV, NASB, skilled), ‘박식하다’(NEB, learned), ‘정통하다’(NIV, well versed)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익숙함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연구를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에스라와 비교할 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많은 경우, 그보다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데 얼마나 게으른지 모릅니다. 연구는커녕 읽는 것도 소홀히 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런 태도에서 돌이켜 에스라처럼 연구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연구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에스라가 결심한 그다음 내용인, 준행하고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그런데 우리는 이 명령에 제대로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순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명령의 전제가 되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과 ‘여호와의 율법’이 다른가요? 아닙니다.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과 단절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단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완전하게 하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온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말씀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거짓이고 자기기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를 받은 사람이, 그 편지를 소홀히 다룰 수 있을까요? 곁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고, 또 그가 당부하는 말도 열심히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있지 않다면, 먼저 이 문제부터 자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연구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척도가 낮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날마다 시간을 정해 놓고 말씀을 읽고 상고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성경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2) 준행하기

    에스라가 결심한 두 번째 내용이 무엇입니까? 연구한 말씀의 내용대로 준행하는 것입니다. ‘준행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그 율법대로 실천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에게도 축복이 되기 때문에, 그 율법을 통해 우리의 실천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한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 준행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14,17-22).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 앞에서 비치는 빛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그 모습이 우리의 이웃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가 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준행이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입니다.

    3) 가르치기

    에스라가 결심한 마지막 내용은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당시 그곳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게 한 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았을 것이고, 그분이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도 제대로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재판관들이 사회 정의를 왜곡시켰던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가르치되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일까요? 그것에 대한 정답을 사도 바울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만나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행 20:18-20,34-35).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언제 어디서나 거리낌 없이 그들에게 전하여 가르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범사에(항상) ‘모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장로들은 그 모든 모습을 보았고 또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위대하고, 그래서 그를 통해 교회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들은 교육에 있어 모본의 파괴력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모본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3.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백성들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도 그와 똑같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결심하는 것은 정말 잘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면 실패에 대한 실망으로 자괴감에 빠지기 때문에 이전보다 못한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결심한 것을 주님과 함께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은 내가 결심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도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성경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이루시는 분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5).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시 145:16).

      우리의 결심이 작심삼일에서 벗어나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에스라의 결심이 우리 모두의 결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모두 주님 안에 거하면서 그 결심에 많은 열매가 맺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8장 요약

    아닥사스다 왕때에 에스라와 함게 돌아온 족장들과 그 계보에 대해 기록,에스라가 레위사람들을 찾았다고 기록.귀향중에 아하와 강가에서 에스라가 금식을 선포하고서 기도하였고,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그릇을 맡겨서 보관하게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번제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8장은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의 전후에 있었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난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 모인 백성들을 살피던 도중 레위 자손들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에 그는 가시뱌 지방의 족장 잇도에게 사람들을 보내 40명의 레위인들과 성전 일꾼인 느디님 사람 220명을 데려왔다. 또한, 그는 따로 세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맡겨 삼가 지키도록 하였다.

      첫째 달 12일에 아하와 강을 떠난 에스라 일행(남자만 1,500명, 총인원은 5,000명 정도)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섯째 달 초하루에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에스라와 그 일행은 3일 동안 머물렀고, 제4일에 성전 예물을 그곳 성전 관리자들에게 인수인계하였다. 그 후 하나님께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고, 왕의 조서를 총독들에게 넘겨 주었다. 조서를 받은 총독들은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에스라와 함께 올라온 사람들의 계보(1-14절)

    [본문] 1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2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3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백오십 명이요 4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 명이요 5 스가냐 자손 중에서는 야하시엘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삼백 명이요 6 아딘 자손 중에서는 요나단의 아들 에벳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오십 명이요 7 엘람 자손 중에서는 아달리야의 아들 여사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요 8 스바댜 자손 중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팔십 명이요 9 요압 자손 중에서는 여히엘의 아들 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십팔 명이요 10 슬로밋 자손 중에서는 요시뱌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육십 명이요 11 베배 자손 중에서는 베배의 아들 스가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십팔 명이요 12 아스갓 자손 중에서는 학가단의 아들 요하난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십 명이요 13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육십 명이요 14 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었느니라

    [이해] 본문은 2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다. 명단은 “~ 자손 중에서는 ~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명이요”라는 일정한 문장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가계별 대표자들과 그에 속한 사람들의 수효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줌과 동시에 에스라와 함께한 그들이 회복될 이스라엘 공동체의 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아닥사스다 왕 때,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족보)는 다음과 같다.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이다.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로, 그와 함께한 남자가 150명이고(이하 ‘그와 함께 있는 남자’는 생략, 인원수는 괄호 안에 제시),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200명)이다. 스가냐 자손 중에는 야하시엘의 아들(300명), 아딘 자손 중에서는 요나단의 아들 에벳(50), 엘람 자손 중에서는 아달리야의 아들 여사야(70명), 스바댜 자손 중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바댜(80명), 요압 자손 중에서는 여히엘의 아들 오바댜(218명), 슬로밋 자손 중에서는 요시뱌의 아들(160명), 베배 자손 중에서는 베배의 아들 스가랴(28명), 아스갓 자손 중에서는 학가단의 아들 요하난(110명),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 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60명), 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70명)이었다.

      자손별로 나타난 남자들의 인원수는, 에스라, 게르솜, 다니엘, 핫두스를 포함하면 총 1,500명이다. 70인역(LXX)에는 네 지도자를 포함하여 1,518명으로, 에스드라1서 8장에는 1,794명으로 되어 있다. 부녀들과 어린아이들(21절)까지 합하면 약 5,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숫자에는 40명의 레위인, 220명의 느디님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18-19절). 1차 포로 귀환 때의 1/10에 해당하는 규모이다(2:64-65).

      족장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름

    특 징

    게르솜

    아론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출 6:23;대상 6:3;24:1). 이들 중에 제사장 직분을 행한 아들은 셋째인 엘르아살과 넷째인 이다말이다. ‘비느하스’는 엘르아살의 아들이다. 비느하스는 아론의 대사장직을 아버지로부터 인계받았기 때문에, 정통 제사장 가문으로 자처할 수 있었다. ‘게르솜’은 모세의 맏아들이다(출 2:22). 본문의 ‘게르솜’은 이와 다른 인물로, 제사장 가문의 우두머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니엘

    ‘이다말’은 아론의 넷째 아들이다. 제사장직에 임명되었고(출 28:1), 성막 제작을 감독하였다(출 38;21).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의 직무를 감독하기도 하였다(민 4:28,33). 하지만 정통성에 있어서 비느하스 가문보다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의 후손인 ‘엘리’는 대제사장과 사사로서 명성을 날렸다(삼상 1:3). 이다말의 후손인 ‘다니엘’은 다니엘서의 저자와 다른 인물이다.

    핫두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다윗 자손’(‘핫두스’ 포함)은 유다 왕가를 형성하였던 사람들로 보인다. ‘핫두스’는 다윗의 직계 자손으로, 아버지는 ‘스마야’, 할아버지는 ‘스가냐’이고, 스룹바벨의 4대손이다(대상 3:17-22).

    스가랴

    성경에는 ‘스가랴’가 선지자 스가랴, 침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를 포함하여 30명 정도가 소개되고 있다. 스가랴와 함께한 이들은 150명이었는데, 모두 바벨론 생활을 청산하고 유다로 자원하여 귀환한 이들이다. 이 인원수에는 딸들이 결혼하여 맺은 친척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이하 인원수 소개는 동일 내용 적용).

    엘여호에내

    ‘바핫모압’은 ‘모압의 통치자’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모압이 유다 지파의 통치 아래 있었던 통일 왕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그는 모압의 일부를 관리하였던 통치자로 여겨진다. ‘엘여호에내’는 그의 후손이다.

    야하시엘의 아들

    ‘스가냐’는 다윗 왕가의 자손이다. 스가냐의 아들이 ‘스마야’이고, 스마야의 아들이 ‘핫두스’이다(대상 3:22). ‘야하시엘’은 스가냐 가문 가운데 한 족장의 아버지이다. 가계 중에서 야하시엘의 아들만 그 이름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요나단

    구약 성경에는 ‘요나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16명이다. 여기에 소개된 ‘요나단’은 ‘아딘 자손’으로, 아딘 자손은 후에 에스라가 제창한 율법 준수 운동에 인을 침으로써 참여하였다(느 7:20;10:16).

    여사야

    ‘여사야’의 조상인 ‘엘람’은 역대상 8장 24절에 언급된 인물로, 그의 자손은 고라 자손(레위인)이었던 것 같다(대상 26:3;느 12:42).

    스바댜

    추측하기 어렵다.

    오바댜

    오바댜의 선조인 ‘요압 자손’은 1차 포로 귀환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시뱌

    요시뱌의 선조인 ‘슬로밋’은 ‘바니의 자손인 슬로밋’으로 추정된다(2:10).

    스가랴

    ‘베베 자손’으로, ‘브배 자손’과 동일하다(2:11).

    요하난

    추측하기 어렵다.

    엘리벨렛, 여우엘, 스마야

    이들의 선조인 ‘아도니감 자손’은 그 일부가 이미 1차 포로 귀환 때 스룹바벨과 함께 유다로 귀환하였다(2:13). ‘나중 된 자’는 1차 때 귀환하지 못하고 2차 때 에스라와 함께 올라왔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대, 사붓

    이들의 선조인 ‘비그왜’는 엘레판틴 파피루스 사본에서 느헤미야의 뒤를 이은 유다 총독으로 나온 페르시아식 이름이다. 그는 1차 포로 귀환 때 2천여 명을 데리고 왔다(2:14;느 7:19).

      2차 포로 귀환자들의 계보는 1차 때와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인다(2장과 8장 내용 비교).

    구 분

    특 징

    공통점

    1) 2차 때 열두 가문(요압 제외, 9절)의 이름이 1차 때에도 모두 나온다.

    2)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 이들 열두 가문은 결국 나중에 재결합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고레스 왕 때 있었던 최초의 귀환 명령에 유다 백성들이 다양하게

    반응하였고, 결국 개별 가문들이 둘로, 즉 귀환한 자들과 남아 있는

    자들로 나누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귀환한 가문에서 계속 귀환이

    이루어짐으로써 이들이 하나님의 ‘남은 자’를 형성하였다.

    차이점

    1) 1차 때는 일반인들로부터 시작하여, 그 뒤로 제사장들, 레위인들,

    성전 봉사자들과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이 언급된다.

    2차 때는 제사장들로부터 시작하여, 그 뒤로 핫두스를 비롯하여

    열두 가문의 일반인 출신 지원자들이 언급된다.

    2) 1차 때는 제사장들이 사독의 혈통을 따르고 있지만,

    2차 때는 아론의 혈통을 따르고 있다.

    3) 2차 때는 바핫모압 가문이 예수아의 혈통만 대표하고 요압의 혈통은

    독립적인 가문으로 간주하고 있지만(8:4,9),

    1차 때는 두 혈통 모두 바핫모압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2:6).

    4) 2차 때는 명단에 남자들만 실려 있지만,

    1차 때는 여자들도 귀환자들의 인원수에 포함되어 있다.

    5) 1차 때는 신분 증명의 수단으로 귀환자들이 속해 있던 가계의 이름을

    사용하여, 회복된 공동체가 이스라엘과 연속성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2차 때는 귀환자들의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 가계 지도자들의 이름을

    첨가하였는데, 이는 1차 때 강조한 연속성의 표현을 현재의 믿음

    상태로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질문] 2차 포로 귀환자들의 인원수가 1차 때의 1/10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

    ​첫째, 귀환의 성격(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인원수가 적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1차 때는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귀환하였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2차 때는 그 성격이 달랐다. 에스라의 귀환 목적은 앞선 7장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펴서 바로 세우는 데 있었다. 따라서 에스라의 임무는 그 땅의 형편을 살펴 성전 제사를 올바르게 회복하고, 무너진 행정, 사법, 교육 등을 정상화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임무는 1차 때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적은 수로도 가능하다.

      둘째, 1차 때와 비교할 때 신앙의 열정이 많이 식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1차 때는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끌려온 이후 50년이 채 되지 않아 귀환이 이루어졌다(기원전 586년 예루살렘 멸망, 기원전 538년 1차 귀환). 그러므로 그때는 개척 정신이나 예루살렘과 성전 재건에 대한 강한 집념을 소유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포로 1세대들도 있었다. 하지만 2차 때는 성전 파괴와 포로로 끌려온 때로부터 거의 130년이 지나 있었다. 성전이 재건된 시기로만 환산해도 40년 가까이 된다(기원전 516년 성전 재건).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다면, 성전 파괴 이후 3-4세대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1차 포로 귀환 때 돌아간 1-2세대와 달리, 그들에게서 개척 정신이나 예루살렘을 향한 열망 등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더구나 그들은 본격적으로 바벨론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반면, 그들의 눈에 비친 유다와 예루살렘은 아직도 손볼 곳이 많은 변두리 깡촌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그 와중에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신앙과 예루살렘에 대한 열정 측면에서 ‘대단하였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원수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2. 레위 자손을 찾은 에스라(15-20절)

    [본문]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20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받은 이들이었더라

    [이해]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난 에스라는,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로 백성들을 불러모았다(15절).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는 ‘아하와 쪽으로 흐르는 수로’(NIV, at the canal that flows toward Ahava)라는 뜻이다. 이 수로는 적어도 반경 144km 안의 바벨론 근처 유프라테스강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는 많은 수로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하와 강’은 그 당시 유대인의 거주 중심지였던 바벨론 북서쪽에 위치한 아하와 성을 가로지르던 유프라테스강의 지류인 ‘이스 강’을 말한다. 에스라가 백성들을 그곳으로 모은 이유는,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곳이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던 ‘닙볼’과 가까웠거나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그 지점을 지나가야 하였기 때문에 그곳으로 모았을 수도 있다. 그는 3일 동안 장막에 머물면서 출발하기 전에 백성들의 인원수, 구성, 상태 등을 점검하고, 또 세밀한 여행 계획을 짰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살피는 도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을 발견하였다. 레위인들은 제사장은 아니지만, 성전 제사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임무를 맡은 성전 관리인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성전을 위하는’ 귀환 목적을 이루는 데에도 합치하지 않았다. 에스라에게 그 사실은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에스라는 모든 족장과 명철한 사람들을 불러 그들을 가시뱌 지방으로 보냈다(16절). 원문에는 ‘모든’이라는 말이 없다. ‘족장’도 적절하지 못한 번역이다. ‘족장’은 원래 ‘머리’를 지칭하는 명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곳에서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지도자들’(NASB, leading men;NIV, who were leaders), ‘주요 인물들’(KJV, chief men), ‘지도급 인사들’(표준새번역성경)을 가리킨다. 지도자들인 엘리에셀, 아리엘, 스마야, 엘라단, 야립, 엘라단, 나단, 스가랴, 므술람이 누구인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그들이 가족들의 대표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2-14절). 그들은 아마도 레위인들을 데려오는 데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철한 사람들’은 분별력이나 이해력을 가진 ‘율법 교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명철한 사람인 요야립과 엘라단도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가시뱌 지방’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에스라 일행이 첫째 달 12일에 아하와 강을 떠났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곳으로부터 2~3일이면 왕복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곳에는 족장 잇도와 그의 형제 즉 느디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17절). ‘잇도’는 유대인 행정 관리나 페르시아 왕에 의해 가시뱌 지방에서 자기 동족들을 통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가시뱌 지방으로 간 사람들은, 잇도와 느디님 사람들에게 에스라가 일러 준 대로 이야기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왔다(17-20절). 그들이 데려온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레위 자손들은 말리의 자손으로 명철한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 및 형제들(친족들) 18명,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가운데 여사야와 그의 형제들 및 아들들 20명으로 총 40명이다. ‘말리’는 레위의 셋째 아들인 ‘므라리’의 맏아들로, 성막 기구를 책임지던 가족의 조상이다(민 3:33-37;4;29-33). 다른 곳에서는 ‘마흘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출 6:19;대상 23;21;24:26). 저자는 말리를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1) 본서와 함께 에스라가 기록한 역대기서의 족보와 조화를 이루고(대상 2:1), (2) 그 이름이 갖는 특별한 의미(창 32:24-29)를 상기함으로써 본문에서의 성과가 철저히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레위의 아들’은 실제로는 ‘레위의 손자’이다(민 3:20). 한편 여기에서 ‘므라리 자손’은 ‘말리’의 후손을 뺀, 말리의 동생 ‘무시’의 후손을 말한다(대상 6:19).

      가시뱌 지방으로 간 사람들은 느디님 사람 가운데 성전 일꾼 220명도 함께 데리고 왔다(20절). ‘느디님 사람들’은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인들을 섬기라고 준 이들이다. 성경에는 다윗과 방백들이 느디님 사람들을 레위인들에게 주었다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다윗 왕이 성전 봉사를 담당할 레위인들의 직무를 배정하면서 느디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대상 23-26장), 레위인들에게 느디님 사람들을 배정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레위인들의 인원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성전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이들 느디님 사람들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그들은 모두 지명받은 이들이었다’는 말은, ‘그들의 이름이 모두 기록되었다’는 의미이다.

      한편 레위 자손들과 느디님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었던 이유로, 저자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18절). 이는 고레스 왕과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듯이(1:1;7:6), 이번 가비샤 지방의 족장 잇도와 느디님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들을 데려올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도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질문] 레위 자손은 처음에는 아하와 강가로 모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레위인들이 모이지 않았던 사건의 전조는,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이루어진 1차 귀환 때부터 발견할 수 있다. 그때 제사장들은 4,289명이었지만 레위인들은 341명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2차 때에는 아예 한 명도 모이지 않았다. 이는 성전 중심의 이스라엘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그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 이유는 그들이 바벨론에 정착하면서 다른 직군(일)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쩌면 바벨론에서 금융업으로 부유하게 된 유대인들에 속하였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땅 소유가 금지되었던 그들에게 그런 제한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조건은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맡게 될 성전 봉사 직무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과중한 업무와 낮은 보상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낮은 신앙의 열정 또한 모이지 않은 이유에 한몫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3. 에스라의 금식 선포와 간구(21-23절)

    [본문] 21 그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이해] 에스라는 3일 동안 아하와 강가에 마련된 진중에 머물면서 출발 준비를 모두 마쳤다. 이제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들 앞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적들의 위협이었다(22절). 여기에서 ‘대적’은 ‘도적’, ‘노상강도’를 가리킨다. 에스라에게는 이미 왕과 방백들, 그리고 바벨론의 모든 지방에서 얻은 수많은 금은과 귀한 그릇들이 주어져 있었다. 그것들은 대적의 먹잇감으로 너무 매력적이었다. 또 군대의 호위를 받지 못한 민간인들은 붙잡아 자신들의 노예로 삼거나 다른 사람에게 노예로 팔 수도 있는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더구나 그 여정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4개월이나 되는 머나먼 길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에스라는 이것을 비롯하여 백성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왕에게 호위병(보병과 마병)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이전에 왕에게 이렇게 아뢰었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십니다.” 그 상황에서 만약 에스라가 왕에게 호위병을 요청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하게 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에스라는 종교적인 사명을 띠고 가는 제사장이기 때문에,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인간의 손에 의지하였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에스라는 호위병을 요청하는 통상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였다는 오해를 남기기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그렇지만 간절하게 백성들의 안전과 모든 소유의 보존을 위하여 평탄한 길을 내달라고 구하였다(21절). 그 일은 에스라 혼자 하지 않고 우리, 즉 모두가 함께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이 응답하셨다(23절). 응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31절에 소개되고 있다.

    [질문] 에스라는 귀환 때 왕에게 호위병을 요청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의지하였다. 하지만 3차 귀환을 주도한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군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돌아왔다(느 2:9). 이런 사실은 두 사람 사이에 믿음의 경중이 달랐다는 문제 제기도 해 볼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보면 에스라의 믿음이 더 우월하였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호위병을 요청하지 않았다. 느헤미야와 함께한 백성들에게 호위병이 붙여진 것은 순수하게 왕의 호의에서 비롯되었다. 느헤미야가 왕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 호의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간주하였다. 더구나 그는 정치적인 권한을 가진 총독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왕이 아끼는 신하에게 군사적 호의를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양하다. 그분은 이적과 같은 비상한 방법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자기 백성들을 돌보신다. 그분은 일반적인 섭리 가운데 여러 방법을 사용하시지만(사 55:10-11;호 2:21-22;행 27:31,44), 또한 그분의 기쁘신 뜻에 따라 자유롭게 그러한 수단들 없이(욥 34:10;호 1:7;마 4:4), 그것을 초월하여(롬 4:19-21), 그리고 그것들을 역행하여(왕하 6:6;단 3:27) 역사하시기도 한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적과 같은 방법을 체험하는 것만이 영적이고, 일반적인 체험을 세속적인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이원론에 빠지곤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삶 전체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상한 방법과 일반적인 방법을 구분하는 순간,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한 태도는 불신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4. 선택한 제사장들에게 성전 예물 전달(24-절)

    [본문] 24 그때에 내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25 그들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그릇들을 달아서 주었으니 26 내가 달아서 그들 손에 준 것은 은이 육백오십 달란트요 은그릇이 백 달란트요 금이 백 달란트며 27 또 금잔이 스무 개라 그 무게는 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이 두 개라 28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29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이 그릇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3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그릇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무게대로 받으니라

    [이해] 성전 봉사자인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을 데려오고 하나님께 금식 기도를 드렸던 에스라는, 제사장의 지도자들 가운데 열두 명 즉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들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그들에게 성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그릇들을 달아서 주었다(24-25절). ‘세레뱌’는 레위의 아들인 말리의 자손이다. ‘하사뱌’도 레위인이다. 그들 모두 에스라가 가비샤 지방에서 데려온 레위인이다. 따라서 그들을 ‘제사장의 우두머리 중 따로 세운 열두 명’과 동격으로 처리한 개역개정성경의 번역에는 문제가 있다. 그에 비해 KJV에서는 그 내용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Then I separated twelve of chief of the priests, Sherebiah, Hashabiah and ten of their brethren with them,”(나는 제사장들 가운데 열두 명과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들의 형제 열 명을 그들과 구분하고,). NIV도 동일한 내용으로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성경은 더욱 직접적으로 둘을 구분하여 번역하고 있다. “나는 제사장들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 열둘을 뽑고 세레비야와 하사비야와 그들의 일가 십 명을 뽑아 세우고는”. 이와 같은 번역에 비추어 볼 때, 열두 명의 레위인들이 열두 명의 제사장들에게 배속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에스라는 그들을 따로 세웠는데, 여기에서 ‘따로 세우다’는 말은 ‘나누어 따로 떼어놓다’, ‘구별하여 선발하다’는 뜻이다. 이는 합해져 있는 둘을 완전히 갈라 구분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1;14;레 10;10;신 10:8;대상 25:1). 특히 이 말은 제의적(祭儀的)인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에스라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따로 세운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그릇들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제사장들은 거룩한 물건을 취급하는 책임자이고, 레위인들은 그것을 운반하는 등 부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이다. 에스라는 학자이자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익히 알고 있었고, 또한 그대로 시행하고 있었다(7:10). 25절에는 그들에게 맡겨진 은과 금과 그릇들이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무리’에 의해서도 드려졌다는 정보가 들어 있다. 이 정보는 7장에서 소개한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는 들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였고, 또 예물을 얼마만큼 드렸는지는 알 수 없다.

      에스라가 그들에게 무게를 달아 넘겨 준 것은 은 650달란트, 은그릇 100달란트, 금 100달란트, 금잔 20개(1,000다릭의 무게), 그리고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이 2개였다. ‘은 650달란트’는 현재 시세로 약 16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1달란트는 34kg, 1kg은 35.27온스, 1온스는 17.2달러, 1달러는 1,203원, 19.10.02. 기준). ‘금 100달란트’는 현재 시세로 약 1,944억 원에 해당한다(1달란트는 34kg, 1kg은 57,172,200원, 19.10.02. 기준). 1,000다릭 무게의 ‘금잔 20개’는 8.6kg에 해당한다. 시대마다 달란트의 무게가 다르고 은과 금의 가치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이처럼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2차 귀환 때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던 예물들이 실로 막대하였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앞선 ‘은그릇’과 ‘금잔’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서술한 데 비해, ‘놋그릇’에 대해서는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은그릇이나 금잔보다 못한 놋그릇을 이렇게 화려하게 소개하는 것은 대단히 특이한 점이다. 한글개역개정성경은 이 그릇의 재료를 단순하게 ‘놋’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지금의 놋이나 구리와는 다른 특별한 성분의 합금으로 보인다. 이 합금은 로마 시대에 ‘오리찰쿰’(orichalcum)으로 불리던 청동의 일종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특이한 금속의 한 종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것은 그 당시 금보다 희소가치가 더 컸을 것이다. 이들 그릇의 모양이나 용도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밝히고 있지 않아 알 길이 없다. 다만 제사장이 관리한 은그릇이나 금잔처럼 성전 예배와 관련하여 사용되었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로 성전 보물 보관소에 보관되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여호와께 즐거이 드려진 예물을 따로 세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넘겨 준 에스라는, 그들에게 성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들과 레위인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앞에서 그것의 무게를 다시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고 당부하였다(28-29절). ‘성전 골방’은 성전의 건물 양편에 있는 방들이다. 한쪽에는 제사장들이 쓰는 방이, 그 반대편에는 창고가 있었다(느 13:5). 여기에서는 성전 창고를 말한다. ‘삼가 지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깨어라, 그리고 지키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명령은 도둑질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도둑질은 여행하는 도중 노상강도들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고, 내부적으로는 탐심에 사로잡힌 백성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러한 명령을 내린 이유는, 그것을 지키는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구분된 거룩한 사람들이고, 그 예물들도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거룩한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거룩한’의 수식 대상인 제사장들, 레위인들, 예물은 본래 다른 사람들이나 사물들과 질적으로 다르거나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서 거룩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거룩한 이유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되어 사용되거나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별한 목적은 여호와를 향한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거룩의 개념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다는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 에스라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이처럼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긴장감을 가지고 맡은 바 직무를 잘 감당하도록 독려하였던 것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에스라의 명령에 따라 은과 금과 그릇을 성전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그 무게대로 받았다(30절). ‘무게대로 받았다’는 말은, 무게를 단 후에 그 무게를 서로 확인하고 받았다는 뜻이다.

    [질문] 에스라가 성전 예물을 관리할 때 보인 방법상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자신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였다는 점이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직접 관리하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직접 관리하면 이를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는 에스라가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권위(권력)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에스라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함으로써 그보다 중요한 일, 즉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거나 안전하게 인도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

      둘째, 예물을 맡을 만한 사람들에게 위임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많았던 역사를 고려해 볼 때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였다. 예물은 그 목적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므로, 거룩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맡아야 하는 사람들도 거룩하게 구분된 사람들이 선발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예물을 대충 맡기지 않고 무게를 단 후에 맡기고, 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그것들을 다시 성전 골방에 보관할 때에도 모든 것을 세고 달아 보고 무게의 총량을 기록하였다는 점이다(30, 34절). 이것을 통하여 에스라가 예물을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관리 방법(원칙)은 현대 교회가 재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5.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한 일(31-36절)

    [본문] 31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32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3일 동안 머물고 33 제4일에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은과 금과 그릇을 달아서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넘기니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가 함께 있어 34 모든 것을 다 세고 달아 보고 그 무게의 총량을 그때에 기록하였느니라 35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두 마리요 또 숫양이 아흔여섯 마리요 어린 양이 일흔일곱 마리요 또 속죄제의 숫염소가 열두 마리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36 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총독들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 주매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느니라

    [이해] 아하와 강가에서 레위인들의 부재 문제를 해결하고 예물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위임한 에스라는, 동참한 백성들과 함께 첫째 달 12일에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 여정에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을 도와 대적들과 길에 매복한 자들의 손에서 건지셨다(31절).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신 하나님의 손은, 앞서 금식을 선포하고 간절히 기도하였던 에스라와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낙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21-23절). 또한 ‘하나님은 기도와 간구에 귀를 기울이실 뿐만 아니라 진실과 의로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시 143:1).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 일행은 그곳에서 3일 동안 머문 후에, (1) 제4일에 성전에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달아서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에게 넘겨주고(33-34절), (2) 번제를 드렸다(35절). 또 (3) 왕의 조서를 왕의 총독들과 유프라테스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넘겨 주었고, 그들은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다(36절). 그들이 세 가지의 일을 하기 전에 3일 동안 머문 이유는, 휴식을 취하거나 거주할 곳을 찾기 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머물다’는 단어가 ‘안식하다’(NIV, rest), ‘거주하다“(KJV, adobe)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3일 동안 기다렸다는 견해도 있다. 즉 희년 달력(Jubilee calendar)에 따르면 그들이 도착한 때가 금요일이었고 그날 저녁부터 안식일이 이어지기 때문에, 위 세 가지 일을 하기 위하여 3일 동안 머물렀다는 것이다.

      가져온 예물을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에게 넘겨줄 때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그 일이 여러 사람의 공증(公證)에 따라, 즉 므레못은 물품 인수의 실질적 책임자로, 엘르아살과 요사밧과 노아댜는 입회인으로 참여하여 객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므레못’은 성벽의 두 번째 구간을 중수하였고 언약 준수를 서약하고 인을 쳤던 학고스의 손자로, 우리아의 아들이다. 그는 대제사장어거나 성전 보고의 관리인이었을 것이다. ‘학고스 자손’은 1차 귀환 때 자신들의 혈통을 증명하지 못해 제사장 업무 수행이 유보되었던 사람들이다(2:61). 그런데 학고스의 손자인 므레못이 물품 인수를 책임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이 그 후에 자신들의 혈통을 증명하였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엘르아살’은 본 구절 바로 앞에 ‘그와 함께’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 므레못처럼 제사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느 12:41-42). ‘요사밧’은 느헤미야에서 율법책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였고(느 8:7), 성전 바깥일을 맡았던 자로(느 11:16), 에스라서에서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가 하나님의 교훈에 따라 다시 아내와 소생을 모두 내보내기로 언약하였던 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10:3,5,23). ‘노아댜’는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그의 아버지 ‘빈누이’는 예루살렘 성벽의 한 부분을 중수한 책임자였다(느 3:24). 본문은 예물을 가져온 사람들과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인수인계하는 모습을 매우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숫자를 세고 저울로 그 무게를 달았고, 또 그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기록으로 모두 남긴’ 목적은, 성전 재산의 도난이나 횡령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어쩌면 에스라는 기록 내용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내 모든 물품이 제대로 인계되었음을 증명하였을 수도 있다. 이것을 통해 예물을 인수인계하는 과정이 대충 하지 않고 철저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 곧 이방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은, 예물을 인계한 후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35절).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하여 번제를 드린 행위는, 그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 때문에 올바른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 행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그들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표현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몇몇 제물들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7:17)을 온전하게 수행하였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그들이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 드린 번제물은 수송아지 12마리, 숫양 96마리, 어린 양 77마리, 그리고 속죄제의 숫염소 12마리였다. ‘수송아지 12마리’는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이다(6:17). ‘숫양 96마리’는 개별 지파당 6마리씩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속죄제의 숫염소 12마리’는 불결함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성전 봉헌식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던 속죄제 제물과 똑같은 종류와 숫자이다(6:17). 속죄제를 통해 그들은 먼저 바벨론에서의 신실하지 못한 삶을 회개하고 그 죄 사함을 받았을 것이다. 또 기나긴 여정에서 필연적으로 불결하게 된 것들도 정결하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세 번째로 한 일은 왕의 조서를 총독들에게 넘겨 주는 것이었다(36절). ‘왕의 조서’는 에스라와 그 일행을 도우라는 명령이 담겨 있었다(7:20-26). ‘왕의 총독들’은 상당히 광활한 정복지를 왕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관리를 말한다. 당시 유프라테스강 서쪽을 다스리는 총독은 한 명이었는데, 본문에는 ‘총독들’이라고 복수로 표현되어 있어 문제시될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 지역을 애굽까지 확장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팔레스타인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애굽에는 두 명이 총독이 있었다. ‘유프라테스강 건너편 총독들’은 앞에 소개한 ‘왕의 총독들’ 수하에 있던, 비교적 작은 지역을 다스리던 지방 관리로 보인다(6:6). 왕의 조서를 받은 그들은,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다. 그들은 물질 공급 등을 통하여 성전 예배가 권위를 회복하고 원활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요세푸스는 이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들(총독들)은 그(왕)가 명령한 것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우리 민족을 존중하였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었다.”(Antiquities XI, v. 2. 138)

    [질문]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 일행이 행한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첫째, 3일 동안 머물렀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3일은 먼 여정으로 쌓인 피로를 해소하는 시간이었고, 희년 달력(Jubilee calendar)에 따르면 그들이 도착한 때가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이어지는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3일 동안의 시간을 통해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안식일도 지켰다. 현대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서두름’에 있고, 유독 한국인들은 그러한 특징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한 우리에게 3일 동안 머무르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성전을 위한 예물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인수인계하였다는 점이다. 그릇들의 숫자를 하나하나 세고, 은과 금의 무게도 저울에 달았다. 또 그렇게 세고 저울질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과정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러 명이 함께함으로써 공증도 획득하였다. 그들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교회를 운영할 때, 특히 재정 문제를 처리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된다.

      셋째,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다는 점이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제사이다. 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의 전 인격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번제이다. ‘속죄제’는 죄를 없애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사이다. 에스라 일행은 여정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번제를 드렸고, 여정 가운데 생긴 부정을 없애기 위해 속죄제를 드렸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우리도 신앙의 여정 가운데 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가 있고, 반대로 우리의 부정도 묻어 있다. 그 부정을 예수님이 이미 대속해 주셨지만, 그렇다고 그 부정에 대한 우리의 회개까지 다 걷어가신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회개는 계속 표현되어야 한다.

      넷째, 왕의 조서를 총독들에게 넘겨 주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런 점은 우리의 대인 관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1차 귀환 때에는 고레스 왕이 내린 조서(칙령)를 총독들에게 넘겨 주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로 인해 주변 민족들의 방해가 있었고, 그들의 뇌물을 받은 관리들도 성전 건축을 방해하였다. 하지만 2차 귀환 때에는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총독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적만 하나님의 응답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향은 이적이 아닌 다른 도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해석하지 않는 오류를 낳는다. 그 결과 우리가 지닌 믿음의 영역은 상당히 축소되고 세상 사람과의 관계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에스라는 왕의 조서를 하나님의 손길과 단절시키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적극적으로 도우신 결과로 보았다. 그래서 그 조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교회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있으므로, 오히려 바람직하기도 하다. 1차 귀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운 이들이 이방인들이었다. 2차 귀환 때에도 왕과 방백들의 도움이 있었고, 귀환한 후에도 총독들의 도움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선을 이루셨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 그 선을 이루고 계신다.

    II. 메시지

    본문: 스 8:15-23

    제목: 에스라의 귀환 준비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20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받은 이들이었더라 21 그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1. 출발 전에 모인 백성들

    페르시아 제국의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난 에스라는,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에스라와 함께한 여정에는 남자만 1,500명이 되었습니다. 부녀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하면 5,000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의 2차 포로 귀환입니다. 그 숫자는 1차 포로 귀환 때와 비교할 때 1/10에 불과하였지만, 그들의 임무는 막중하였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명을 주었습니다. 첫째,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라. 둘째, 성전을 위하여 섬기라. 셋째, 올바른 법관과 재판관을 세워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라. 따라서 그들은 에스라에게 주어진 사명을 함께 이루어갈 사람들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기 전에 사람들을 아하와 강가로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함께 가기로 한 백성들이 다 모였으면 곧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거기에서 3일 동안이나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왜 3일 동안이나 그곳에서 머물렀던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 오늘 우리가 나눌 내용입니다. 정답부터 말씀드리자면, 에스라는 그동안 여행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준비하기 위해 즉시 출발하지 않고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준비하였던 것일까요? 그가 그곳에 머물면서 준비하였던 것들을 살펴보면서, 그 내용을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사람들을 살피기

    에스라가 장막에 머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폈다는 것입니다(15절). ‘살피다’는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다’는 뜻입니다. 살핀 대상은 ‘백성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백성이라고 하면 제사장도 포함되는데, 굳이 이 둘을 구분하여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표면적으로 보면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였다’는 뜻을 강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좀 더 들어가 보면, 백성과 제사장들의 ‘살필 내용이 달랐다’는 의미도 보입니다. ‘백성’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공동체의 뿌리와 줄기를 이루고, 공동체의 바탕과 중심이 되기 때문에, 어떤 가문에서 누가 참여하였는지, 그들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지, 여행 준비는 잘 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지도자입니다. 에스라가 귀환하게 된 1차 목적이 ‘성전을 위한 것’에 있었기 때문에, 성전 제사를 담당할 제사장들이 누가 얼마나 모였는지 살피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만약 제사장들이 오지 않았다면, 오더라도 극소수만 왔다면, 귀환 목적을 이룰 수 없고, 따라서 귀환은 애초 하지 않는 편이 더 낫습니다.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피는 것이 일차적으로 여행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귀환 후에 이루게 될 공동체의 밑그림이 되기도 합니다. 그림은 재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됩니다. 연필로 그리면 스케치가 되고, 목탄으로 그리면 목탄화가 됩니다. 물감을 기름에 개어 그리면 유화가 되고, 물감을 물에 풀어서 그리면 수채화가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인 백성과 제사장들이 누구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에스라는 왕으로부터 유다 지역의 행정, 사법, 교육 등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따라서 에스라는 함께 돌아갈 사람들을 파악해서 각 지역의 통솔자와 재판관과 교육자들을 누구로 세울지, 또 어떻게 운용하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제일 먼저 하였던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스라의 이런 태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귀한 교훈이 됩니다. 교회와 가정과 직장에서 사역할 때, 우리도 에스라처럼 제반 사항을 살피지 않으면, 즉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목적을 상기하면서, 에스라처럼 함께한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야만 사전에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3.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에스라가 두 번째로 하였던 일은, 발견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였다는 것입니다.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피던 에스라는,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레위인들’은 제사장은 아니지만, 제사장들이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돕는 임무를 맡았던, 중요한 성전 관리인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성전 제사를 비롯하여 성전의 여타 업무도 마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에스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지도자와 명철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할 말을 일러준 뒤에, 그들을 가시뱌 지방에 있는 족장 잇도와 그의 형제 느디님 사람들에게 보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들은 에스라에 명령에 따라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인 명철한 사람을 비롯하여 40명의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 가운데 성전 일꾼 220명을 데려왔습니다(16-20절). 에스라 일행이 장막을 쳤던 아하와 강은, 바벨론 북서쪽의 아하와 성을 가로지르던 유프라테스강 지류인 ‘이스 강’을 말합니다. ‘가시뱌 지방’은 그곳으로부터 왕복 3일 이내의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유대인을 비롯한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견한 문제를 처리하는 에스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만약 에스라가 그 문제를 곧바로 해결하지 않고 미루어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미룬 시간만큼 예루살렘을 향한 출발 시간은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문제를 외면해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전 제사를 비롯한 성전의 모든 업무가 마비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문제가 있다면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 해결을 미루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이 자원의 부족 문제라면 채워 넣어야 하고, 그것이 죄 문제라면 과감하게 도려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일을 도우신 하나님의 선한 손입니다. 에스라의 문제 해결 방법은 그 방법의 최선 여부를 떠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애당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하와 강가에 모일 때 그들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던 사실에 있습니다. 그들이 애초 오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정황을 통하여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모이지 않았던 사건의 전조는 1차 귀환 때부터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때 제사장들은 4,289명이 함께하였지만, 레위인들은 341명에 불과하였습니다. 돕는 자들이 도움을 받는 자들의 8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기형적인 상황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2차 귀환 때는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은, 그들이 바벨론에 정착하면서 다른 직업(일)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어쩌면 그곳에서 금융업으로 부유하게 된 유대인들에 속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땅에 대한 소유권도 없던 그들에게 그곳에서는 그런 제한도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담당하게 될 성전 봉사는, 그 업무가 과중할 뿐만 아니라 보상도 지금의 좋은 형편과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민 삼사 세대이기 때문에 도전 정신이나 신앙에 대한 열정도 희박합니다. 그런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2차 귀환 대열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손길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과 함께한 220명의 느디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혈통 상 이스라엘 족속이 아닙니다. 더더구나 그들의 신분은 평민도 아닌 종입니다. 그들이 돌아가서 맡게 될 업무도 존재감도 없는 성전 막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새롭게 일군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할 동기는 너무도 희박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귀환 대열에 동참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줍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신속하게 임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문제를 우리가 주체가 되어 해결하려고 달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렘 33:2). 이렇게 일의 주체가 하나님께 있고 그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 있으므로, 우리는 그 문제를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그분께 의뢰해야만 합니다.

    4. 금식을 선포하고 함께 간구하기

    성전 일을 도울 레위 사람들과 함께 느디님 사람들까지 구한 에스라에게, 풀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습니다. 5,000여 명에 이르는 일행이 귀환하는 길은 직선으로 800km 정도 됩니다. 무더위를 최대한 피하고 도중에 물도 보충할 수 있는 좋은 길로 가려면 그 거리는 두 배로 늘어납니다. 이것만도 난관인데, 언제 어디서 도적 떼나 노상강도들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에스라 일행이 가지고 가는 수많은 예물, 즉 수많은 금과 은과 그릇들은, 도적 떼와 노상강도들에게 너무도 탐나는 먹잇감이었습니다. 백성들도 그에 버금가는 먹잇감이었습니다. 그들을 붙잡아 노예로 팔면 곧바로 현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에스라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정보는, 이미 그들의 귀에 접수되었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러한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자신들을 보호해 줄 호위병을 요청하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이전에 왕에게 이렇게 아뢴 적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십니다.”(22절) 그러므로 만약 그가 왕에게 호위병을 요청하게 되면, 정작 자신은 그러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므로, 왕에게 호위병을 요청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께 매달리는 정공법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가 금식을 선포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겸비하다’는 ‘낮아지다’, ‘굴복하다’는 말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버리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간구하기 위해서, 즉 기도하되 간절히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금식’이 ‘겸비’와 ‘간구’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식이 중요합니다. 금식을 통해 스스로 겸비하여 간절히 기도하되, 그 일을 에스라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우리)이 그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께 모든 백성과 모든 소유의 안전을 위하여 평탄한 길을 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23절).

    5. 에스라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으로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3일 동안 머물면서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폈습니다. 그 과정에서 레위 자손들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예상되는 대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모든 백성과 모든 소유의 안전을 위하여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스스로 겸비하여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에스라의 이런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에스라가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금식 기도의 중요성과 그것에 대한 새로운 동기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분이 자신의 귀를 우리에게 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이다”(시 116:2).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실 뿐만 아니라 에스라가 왕에게 말한 대로 자기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금식하는 모습이 딱 두 번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안디옥 교회가 선교를 위하여 바나나와 사울을 따로 세울 때이고(행 13:2-3), 또 한 번은 소아시아에서 각 교회 장로들을 택하여 그들을 주님께 위탁할 때입니다(행 14:23). 그래서 현대 교회는 금식 기도를 소홀히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현대 교회는 스스로 겸비하는 모습과 간절하게 매달리는 모습이 동시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에스라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생각 끝에서 우리의 모습이 에스라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9장 요약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이방족과 통혼에 대하여 알려주었고,통혼 소식을 듣고서 에스라가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9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에스라의 반응이 소개되고 있다.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전한 내용은 이방인과의 결혼, 즉 통혼에 백성들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도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방백들과 고관들이 그 가증한 일에 으뜸이 되고 있다는 소식은 에스라에게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는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넋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주저앉아 있던 에스라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를 드렸다. 그는 그 죄와 무관하였지만, ‘우리’라는 단어를 31회나 사용하면서 그들의 죄를 자신을 포함한 유대 공동체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그분의 자비하심에 기대어 용서를 구하였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을 들은 에스라(1-4절)

    [본문]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이해] 이 일 후에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와서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의 실상을 알렸다(1-2절). 에스라 일행은 아닥사스다 왕 7년 다섯째 달 1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3일 동안 머물면서 휴식을 취한 후 제4일에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예물을 인수인계하고 번제를 드렸다(8:33-35). 또 왕의 조서를 총독들에게 전달하였다(8:36). 조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 이후 아홉째 달 20일에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모이게 하였다. 따라서 예루살렘 도착과 백성들을 모이게 한 사건 사이의 기간은 4개월 15일 정도의 시간이 된다. 에스라는 그동안에 왕의 조서를 유다 원근의 총독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광범위하게 여행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일 후’는 에스라가 그런 일들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방백들’(‘하사림’, 히)이 어떠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들은 에스라가 귀환하기 전에 귀환한 백성들의 지도자였거나(10:14,16),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백성들의 지도자 그룹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에 대한 개혁이 이들이 전한 소식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알린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포함)이 그곳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 땅의 딸들을 아내와 며느리로 맞이함으로써 서로 섞이게 하는 일(통혼)을 하고 있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그 죄에 더욱 으뜸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라는 말은, ‘그들의 가증함을 따라서’(KJV, according to their abominations), ‘그들의 혐오스러운 행위를 따라서’(NIV, with their detestable practices)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가증한 일’이라는 말이 원래 고대 우가리트어(Ugaritic語)에서 ‘성전에서 일어난 잘못된 행위나 말’을 칭하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금기되는 사실’(taboo)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방백들은 가증한 일의 표본이 된 지역 사람들로 가나안, 헷, 브리스, 여부스, 암몬, 모압, 애굽, 아모리 사람들을 제시하였다. ‘가나안, 헷, 브리스, 여부스, 아모리 사람들’은 가나안 지역의 원주민을 총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히위 족속’, ‘기르가스 족속’ 들도 당연히 포함된다(신 7:1). 그들이 악하였기 때문에(신 9:4-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정복할 때 불쌍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 또 그들과 언약하고 통혼하는 것도 금하셨다. 특별히 하나님이 통혼을 금하신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유혹하여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여호와의 진노를 사서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신 7:1-4). 따라서 방백들의 고발 속에는 이스라엘이 지금 통혼으로 여호와를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와 멸망의 길을 자초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암몬, 모압, 애굽 사람들’은 가나안 밖 인근 족속들이다. ‘암몬 족속’은 롯이 그의 작은딸과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들의 후예들이고(창 19:38), ‘모압 족속’은 롯이 그의 큰딸과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들의 후예들이다(창 19:37). 이들 두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광야를 지날 때 도움 대신 박해를 하였던 족속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셨다(신 23:3-6).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신 23:7), 동시에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 이유는 애굽의 풍속을 따르는 것이 가나안의 풍속이나 규례를 따르는 것과 똑같이 여기셨기 때문이다(레 18:3).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고발한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고 그 가운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그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구성하였던 세 계층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계층을 언급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가증스러운 일이 각계각층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둘째, 그 일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가담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드러내기 위함이다. 특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담당하고 율법 교육을 통해 통혼하지 못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종교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증함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방백들과 고관들’은 더욱 경악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라는 말은, 바로 그들이 그 죄의 우두머리가 되어 이방 여인들과의 통혼을 주도하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이교도 여인들과의 통혼에 앞장섬으로써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순수성이 탈선하도록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방백들’은 앞서 에스라에게 이 문제를 고발하였던 ‘방백들’과 같은 단어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가 통혼에 앞장섰다면, 후자는 그 탈선에서 벗어나서 고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방백이 그 일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고관들’은 그들이 방백들 뒤에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방백보다 한 단계 아래의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3-4절은 방백들의 말은 들은 에스라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들은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기가 막혀 앉았다(3절).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크게 분낼 만한 일이 일어나거나 마음이 괴롭고 아플 때 취하는 행동이다(창 37:29,34;삼하 13:19;욥 1:20). 더구나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찢었다는 것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이 에스라에게 얼마나 큰 슬픔과 고통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옷을 찢는 것과 동시에 머리털과 수염도 뜯었는데, 이는 옷을 찢는 행동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 뜻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을 때 보이는 증상이다. ‘기가 막혀 앉았다’에서 ‘기가 막히다’라는 말은, ‘소스라쳐 놀라다’, ‘넋을 잃다’, ‘몸서리치다’는 뜻인데, ‘압도를 당하다’, ‘섬뜩하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는 충격적인 사실에 넋을 잃어버리는 심리적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또한 ‘앉았다’라는 말은 그냥 편안하게 앉은 것이 아니라 받은 충격으로 폭삭 주저앉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에스라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감당할 수 없는 놀람과 괴로움으로 인하여 참담하게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그와 같은 일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그와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 그것을 자기 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에스라의 이러한 반응은 역으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철저한 연대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에스라의 반응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에스라에게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이들이었고, 이들이 모두 모여든 이유는 사로잡혔던 그 사람들의 죄 때문이었다. 이들이 모여올 때 에스라는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주저앉아 있었다(4절). 모인 이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신상필벌(信賞必罰)의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교훈은 가장 가깝게는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그로 인한 포로 생활이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는 사실이다(대하 36:12-16). ‘그 사람들의 죄’, 즉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까지 하나님이 금지하신 통혼의 죄를 범하고, 심지어는 그러한 행위를 말리거나 모본을 보여야 할 방백들과 고관들이 앞장서서 그러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에스라에게 모여든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재현될까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인 이들은 에스라의 조치를 기다렸다. 하지만 에스라는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기가 막힌 채 주저앉아 있었다. 여기에서 ‘저녁 제사 드릴 때’는 해가 질 무렵(민 28;4), 즉 제9시(오후 3시)의 기도하는 시간을 가리킨다(출 12:6;행 3:1). 이때는 죄를 고백하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질문]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하는 것이 왜 가증한 일이 되는가?

    거룩한 자손이 부정한 사람과 서로 섞이게 되기 때문이다.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을 혼합하면 그냥 더러워지는 것처럼, 거룩한 자손은 부정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통혼을 금지하셨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 7:3-4). 결혼은 단순하게 당사자인 두 사람이 결정하는 문제로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 이후에 전개될 삶의 방향, 즉 신앙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난 결혼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가증한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그분의 주재권과 순종에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결혼에 대한 결정권이 결혼 당사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눈에 좋게(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한다. 이런 생각과 선택에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까? 두 가지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첫째는,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관자가 되신다. 따라서 결혼에 대한 주재권도 하나님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인간들이 그 주재권을 빼앗아 자기 스스로 결혼에 대한 주재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 가증하게 비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하나님의 눈이 아닌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였다는 점이다. 자기 눈이 보기에 좋은 대로 배우자를 결정하는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배척하는 행위가 들어 있다. 그래서 가증한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혼 문제를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통혼이 지닌 파괴적인 성격을 우리의 전인격적인 삶과 연결하여 총체적으로 규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에스라는 통혼을 우리의 모든 삶이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이 서로 섞이는 통합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결혼에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모든 신앙이 농축되어 있는데, 그 결혼이 통혼이 됨으로써 그 사람의 삶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신만 믿는 죄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통혼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 진노와 멸망을 향하여 치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8-9).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는 단순하게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그러한 문제들 가운데 결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결혼을 비롯하여 삶의 모든 문제에서 주재권을 하나님께 내드리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해야 한다.

    2. 에스라의 기도(5-15절)

    [본문]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7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10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11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13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이해]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에스라는 근심 중에 일어났다(5절). ‘근심 중에’는 치욕과 고통을 받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이는 어떤 외적인 사건에 대해 연대감을 느끼면서 깊이 고민하는 것을 가리킨다(레 16:29-31;시 119:107;사 53:7). 후기 유대교 문헌에서는 이 단어를 금식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하였다. 한편 ‘일어나서’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을 가리키기보다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이루어지는 의지적 결단을 강조하는 단어이다(1:5). 그렇게 일어난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이 찢긴 채 무릎을 꿇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통 서서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겸손과 간절함을 나타낼 때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눅 22:41;행 20;36). ‘손을 들고’는 양팔을 넓게 들고 양쪽 손바닥을 펴서 하늘로 향하게 하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동작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에스라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에스라의 일반적인 죄에 대한 고백(6-7절), (2) 특정 죄(통혼을 금지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에 대한 인식과 고백(10-12절), (3) 미래의 진술인, 하나님의 자비 요청(13-14절), (4) 결론적인 고백(15절). 한편 에스라는 이 기도에서 일인칭 복수인 ‘우리’를 31회나 사용하고 있다. 그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의 통혼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자신을 포함시켜 그들과의 연대감을 형성하면서 중보하였던 것이다.

      먼저 에스라는 일반적인 죄에 대해 고백하였다(6-7절). 하나님 앞에서 범한 크고 많은 죄와 허물이 정수리에 넘치고 하늘에 미쳤기 때문에, 그는 심히 부끄럽고 낯이 뜨거웠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허물’은 ‘잘못하여 저지른 실수’, ‘흉, 즉 남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거리’를 말한다. 또 ‘정수리’는 ‘머리 위의 숫구멍이 있는 자리로, 사물의 제일 꼭대기 부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정수리에 넘치고 하늘에 미치다’는 말은 죄와 허물이 크고 많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강조한 표현이다. 에스라가 우리의 죄에 대해 인정한 부분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후 발견한 통혼의 죄뿐만 아니라 포로로 끌려가기 전부터 자기 조상들이 저질렀던 모든 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7절). 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현재 범하고 있는 죄가 앞선 세대의 죄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 뿌리를 조상들이 범한 죄와 연결함으로써 현재 범하고 있는 죄가 그 원인과 양상 면에서 이전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은 향후 주어질 심판의 내용도 이전과 같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그는 자기 조상들이 받았던 심판의 내용이 오늘에 와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한탄하였다. 조상들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백성과 왕들과 제사장들까지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겨져서 죽거나 사로잡혀 갔고, 재산을 노략질당하고, 온갖 수모를 겪어야만 하였다.

      하지만 에스라는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찬양하였다(8-9절). 그 은혜는 잠시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몇을 남겨 두어 피하게 하셨고 종노릇하는 중에 조금 소생하게 하셨다. 여기에서 ‘잠시’는 하나님이 페르시아의 왕들을 감동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신 일을 가리킨다. 그 잠시 속에는 에스라의 귀환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조금 소생하였다’에서 ‘조금’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이나 그 후손 가운데 소수의 사람이 다시 본토로 돌아온 사건을 가리킨다. ‘소생하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그들을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같이 되게 하시고 그들의 눈도 밝히신 일을 말한다. ‘거룩한 처소’는 성전 혹은 팔레스타인 땅을 의미한다. 그곳에 박힌 못이 되었다는 것은 견고하면서도 안전하게 정착하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눈을 밝힌다’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호흡을 불어넣는다는 말과 의미가 같다(삼상 14:27-29;시 13;3;잠 15:30;29;13). 따라서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운을 회복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생이 더욱 의미가 있는 이유는 종노릇하는 가운데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와 같은 일이 주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이다.

      9절의 찬양은 앞선 8절 내용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9절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부는 소생의 성격에 대해, 후반부는 소생의 결과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소생의 성격’은 노예가 되어 종살이하는 중에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고 페르시아의 왕들 앞에서 불쌍히 여김을 받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생은 ‘비록’이라는 부사어와 어울리면서 그 소생이 극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머나먼 곳에서 노예가 되어 종살이하는 것은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삶은 죄로 인해 주어진 형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버림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셨다. 또 그런 삶 가운데 처하였다 하더라도 그들 위에 있는 왕들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기대할 수도 없다. 만약 불쌍히 여겼다면 애초 그들을 포로로 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위에 바사 왕들의 긍휼함이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 은혜에서 비롯된 ‘소생의 결과’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전을 재건하고, 무너진 것을 수리하고,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울타리를 주신 것이다. ‘울타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그들의 삶을 보호하는 문자적인 울타리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보호’이다. 여기에서는 후자의 성격이 더 강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소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귀환한 백성에게는 ‘평안’이 되는 셈이다(눅 2:14).

      이어진 에스라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은망덕한 처사를 지적하고 탄식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10-12절). 그는 이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는데도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어겨 이제 하나님께 할 말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고 한탄하였다. ‘주님의 계명’은 주님의 종인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인데, 거기에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지켜야 할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나님은 그곳을 ‘더러운 땅’으로 규정하셨다. 그 이유는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 땅의 모든 곳이 더러움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 원주민들은 진멸의 대상이었고, 상종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과의 통혼을 금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평화와 행복도 영원토록 구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와 동시에 그 계명에 순종하게 될 경우, 다음과 같은 축복을 약속하셨다. “너희가 왕성해져서(강해져서, 신 11:8), 그 땅에서 나오는 아름다운(좋은) 것을 먹고(창 45:18;사 1:19), 그 땅을 자손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줄 것이다(겔 37:25).” 하지만 그들은 이 계명에 불순종하였고, 그 결과 약속된 축복 대신 진노와 멸망을 받았다. 한편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라는 말씀에서,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신명기 4장 5절 이하에서, ‘더러운 땅’은 예레미야 18장 25절과 예레미야애가 1장 17절에서 빌려 온 표현들의 집합체이다. 또한 ‘더럽다’는 말은 ‘불결하다’, ‘혐오스럽다’는 뜻으로, 구약 성경에서는 월경하는 여인과의 접촉(레 12:2)이나 성적 타락(레 20:21) 등으로 인한 의식적(儀式的)인 부정의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여기에서는 가나안의 우상 숭배나 그와 관련된 부도덕한 행위들을 의미한다(대하 29:5;애 1:17;겔 7:20;36:17).

      13-15절에서는 앞선 8-12절 내용을 반복하여 요약하면서, 하나님께 회개와 함께 용서를 구하고 있다. 에스라는 우리의 죄악과 하나님의 은혜를 대조하여 진술하면서,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면서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다. ‘우리’의 처지는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이 모든 일, 즉 진노와 멸망 가운데 이르렀다. 왕국은 망하고 성전을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그렇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셔서 이만큼의 백성을 남겨 주셨다.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베푸신 이유는, 그분이 다른 사람들이 아닌 ‘우리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유는 이어지는 회개와 용서에 대한 근거이자 거기에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된다. 에스라는 두 가지의 질문을 통해 그 의지처에 회개와 용서를 기대고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이다. 이에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이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 속에는 ‘회개’가 들어 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렇게 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이다. 대답은 당연히 ‘예’이다. 만약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의 의와 어긋나기 때문에 진노와 멸망은 피할 수 없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인정하였다고 해서 그분의 심판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를 더욱더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였던 것이다.

      15절은 에스라의 기도에 담긴 내용의 결론에 해당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즉 주님을 ‘의로우신 분’으로 인정하였다. ‘의’는 하나님의 본성(nature)이자 의지(will)이다(시 145:17). 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은 특별히 언약과 관련 있다. 즉 그분의 의로우심은 언약 백성이 언약을 어겼을 때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시는 데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징벌에 처한 사람들로부터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불평과 반발을 살 만한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이다. 오히려 정의를 실천하시는 분으로 종일토록 찬양을 돌려야 한다(시 35:28). 에스라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을 남아 있는 자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의는 그분의 자비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그분의 자비와 대조되지만, 그분의 의는 그분의 자비와 언제나 함께한다(시 33:5;40:10;89:14;145:7;사 45:21).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가운데 그분의 의를 나타내신다. 이는 역으로 그분이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런 모습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 속성을 구체적으로 계시하셨다(슥 9:9). 에스라는 이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의를 찬양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공존하고 있는 그분의 ‘자비’에 기대어 현재 주어진 문제, 즉 백성의 통혼 죄를 상정하고 그분의 용서를 기대하였다. 그래서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은 것’도, 동시에 ‘하지만 주님께 죄를 범하여 그분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게 된 것’도 그분의 의로우심 앞에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기다렸던 것이다.

    [질문] 에스라의 기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첫째, 죄악을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범한 ‘통혼의 죄’를 인정하되,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인정하였다. 그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1) 하나님의 은혜와 대조하고, (2) 그 주체를 ‘그들’이 아닌 ‘우리’로 상정한 것은 특별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죄는 하나님의 은혜에 비추어볼 때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의 은혜는 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기 때문에 죄악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기준이 된다. 이는 마치 어둠의 정도를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빛에 비추어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그는 통혼 죄를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범한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죄의 실상을 선명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하지만 그 죄는 자신이 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을 포함한 ‘우리’로 상정한 것은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공동체를 연대하고 그 안에 있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풀고자 하였다.

      둘째, 죄를 회개하였다는 점이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을 말한다. 죄를 명확하게 인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귀신들이 계속 귀신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분과 관계 맺기를 원하지 않았다(눅 4:41;8:28). 만약 죄를 인정하되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런 꼴이 되고 만다. 에스라는 두 가지 질문 속에 회개의 마음을 담아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그분의 자비를 구하였다.

      셋째, 기도의 대상이 되신 분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기초하여 자비를 구하였다는 점이다. 기도는 대상에 따라 또 그분이 누구인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그래서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에스라는 그분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식하고 있었고, 의로우시고 자비(은혜)로우신 분으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통혼 문제를 들고 그분께 나아갔고, 그분 앞에서 회개와 용서를 구하였다.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우리의 기도 모습 속에서는 이것이 종종 왜곡되기도 한다. 종교 다원주의의 영향은 여호와 하나님을 왜곡, 변질시키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기도 내용도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에스라의 인식을 우리 안에 내리는 것이다.

    II. 메시지

    본문: 스 9:1-4

    제목: 통혼에 대한 에스라의 반응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1.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을 들은 에스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그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답을 회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 다양하게 또는 극단적으로 나누어지는 현상은, 아마도 두 가지가 원인이 되어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현대 산업 정보화 사회가 지닌 복잡다단한 양상이 결혼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 문제에 대한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후자가 더욱 근본적인 문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내용은 바로 이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에스라가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3절). 이렇게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크게 분낼 만한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심히 괴롭고 아플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런 장면이 종종 나타납니다. 형들이 동생 요셉을 미워하여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았을 때, 그 사실을 나중에 안 르우벤은 슬픈 나머지 자신의 옷을 찢었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창 37-29,34). 또한, 다윗의 맏아들인 암논은 자기 누이인 다말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부정한 방법으로 누이를 범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강제로 욕을 보이는 사랑은 오래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변질됩니다. 다말을 범함으로써 욕구를 채운 암논의 마음은 급속하게 얼어버렸고, 급기야는 그녀를 미워하여 쫓아내기까지 하였습니다. 다말은 암논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항의하였습니다.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네가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다말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암논은 종을 불러 문 밖으로 내쫓고 문빗장을 질러 버렸습니다. 이에 다말은 재를 자기 머리에 덮어쓰고 ‘채색옷을 찢고’ 크게 울부짖었습니다(창 13:.1-19). 에스라가 옷을 찢은 행위 속에는 바로 이와 같은 충격이 담겨 있었습니다. 더구나 옷을 찢은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도 뜯었다는 것은, 그가 받은 충격과 그에 따른 슬픔과 분노가 형언할 수 없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넋을 잃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에스라로 하여금 그런 충격과 슬픔과 분노에 빠지게 하였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과 통혼하여, 거룩한 자손이 부정한 사람들과 서로 섞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일에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심지어 백성들의 리더인 방백들과 고관들이 그 일에 더욱 앞장섰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1-2절).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왜 하나님이 뜻이 아닌지,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왜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가증한 결혼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이유는, 그 일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증하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보실 때 ‘혐오스럽다’라는 뜻입니다. ‘가증한 일’이라는 것은 원래 고대 우가리트어(Ugaritic語)에서 ‘성전에서 일어난 잘못된 행위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금기시되는 사실’(taboo)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1) 섞이는 문제

    그렇다면 이방인과 통혼하는 것이 왜 가증한 일일까요? 거룩한 자손이 부정한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 섞이게 되면 거룩한 자손은 부정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통혼을 금하셨던 것입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 7:3-4).

      결혼은 당사자인 두 사람이 결정하는 문제로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향후에 전개될 삶의 방향, 즉 신앙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난 결혼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가증한 일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혹자는 결혼하고 나서 배우자를 하나님께 인도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혼과 동시에 거룩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서로 섞이게 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지 못한 착각에 불과합니다. 결혼은 배우자가 될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된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빠르고 모든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2) 주재권의 문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가증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결혼에 대한 결정권이 결혼 당사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자기 눈에 좋게 보이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합니다. 이러한 생각과 선택에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까요? 두 가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눈이 아닌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였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관자가 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창 1;1).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그러므로 결혼에 대한 주재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창세기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하와를 배우자로 삼을 때 그가 그 일을 주관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자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을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창 2:18-25). 아담이 그 일에 관여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다만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감탄만 하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주재권도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 주재권을 빼앗아 인간 스스로가 결혼의 주재권을 행사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배우자를 결정하는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행위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결혼이 가증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여기에서 ’왕이 없다‘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다윗과 같은 왕이 없다는 뜻도 있고, 왕이신 하나님이 없다는 뜻도 있습니다. 즉 사사 시대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각자 자기 소견대로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인이 첩을 거느리는가 하면, 그 첩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몸을 섞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또 그 첩을 기브아 불량배들이 능욕한 후에 죽게 버려둔 일도 일어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일로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지파 사이에 동족상잔의 비극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결혼은 이런 문제와 다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결혼은 두 당사자가 매일 한 집에서 함께 산다는 측면에서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결혼 문제에 있어서 통혼을 금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한 말씀을 결혼 문제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8-9).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입니다. 그 문제들 가운데 결혼도 예외가 아닙니다. 따라서 결혼에 대한 주재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분의 뜻대로 배우자를 선택할 때, 우리는 사사 시대의 문제들에서 벗어나 축복 가득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3. 진노와 멸망을 향한 결혼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결과가 참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앞서 사사 시대의 예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결혼 속에는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반인륜적인 범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결혼 생활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여호와를 떠나 우상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모습을 결코 좌시하실 수 없습니다. 진노하시고 갑자기 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신 7:4).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러한 결혼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결혼을 왜 합니까? 저주받고 싶어서, 멸망 당하기 원해서 결혼을 합니까? 그것을 원해서 결혼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 믿고 결혼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망과 달리 저주와 멸망이 결혼 끝에 기다리고 있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낭패일까요. 하지만 그 어처구니없는 낭패가 우리 주변에는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 눈에 좋아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보는 것을 ’착시‘라 합니다. 오아시스를 보고 달려갔는데, 그곳에 도착해 보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눈에 좋게 보였을 뿐이지, 실상은 신기루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신기루만 보는 우리의 눈이 아니라, 실상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눈이 필요하고, 그 눈에 의지해서 결혼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올바른 결혼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통혼 문제에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쪽은 그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쪽은 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방백들과 또 그 말을 듣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에스라입니다. 우리는 그 문제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요? 저는 우리의 모습이 후자가 되기를 원하고 또 원합니다.

      성경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랴”(고후 6:14). 그렇다고 이 말씀을 믿지 않는 자와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고(레 19:18), 예수님은 더 나아가 새 계명을 주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12).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의 ’거룩‘과 직결되어 있고, 동시에 믿지 않는 자와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은 거룩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결혼해서 이룬 가정이 맺게 될 이웃과의 관계는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인 결혼은, 우리의 모든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결혼이 거룩하게 유지되기를 원하십니다. 동시에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눔으로써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고, 또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에게 나아가는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함을 파괴하는 통혼 앞에서 거룩한 분노가 일어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결혼이 이루어지도록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그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 모두의 모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에스라 10장 요약

    백성들이 죄를 고백하엿고,이방 족속과 통혼한 아내와 자식들을 내쫓기로 하였으며,이방 여자들과 결혼한 죄를 지은 사람들의 명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10장은 유다의 통혼에 대한 문제 해결, 즉 종교개혁의 과정과 함께 그 결과물인 이방 여인을 내보내기로 서약한 사람들의 명단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엎드려 통곡하며 죄를 자백한 에스라의 모습은,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통곡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통곡은 이방 아내와 그 소생을 모두 내보내자는 맹세로 이어졌다. 이에 에스라는 모든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여 그 맹세를 구체적으로 실행하였다.

      에스라는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여 조사 위원회를 발족시켰고, 그 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3개월 동안 이방 아내와 그 소생을 내보내겠다고 맹세한 통혼자들의 명단을 조사, 완료하였다. 명단에 기록된 사람들은 총 113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전체의 24%인 27명이나 되었다.

    I. 본문 이해와 질문

    1. 회개가 촉발한 종교개혁(1-5절)

    [본문]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이해] 9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통혼 소식을 들은 에스라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거기에는 그의 기도 내용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10장은 그때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때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면서 죄를 자복하였다(1절). 이것을 통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에스라가 기도한 장소는 ‘성전 앞’이었다. ‘성전 앞’은 성전의 바깥뜰 가운데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만약 에스라가 성전 앞이 아닌 성전 안에서 기도하였다면, 백성들은 그의 그러한 모습을 제대로 목격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둘째, 그는 바로 그곳에서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9장에서 제시한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하는 모습’과 비교해 볼 때, 그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졌다는 의미를 제공해 준다. ‘엎드려’라는 말은 극도의 슬픔으로 인하여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 엎드리는 행위를 가리킨다(NIV, throwing himself down). 또한 ‘울면서’는 비극적인 일로 인하여 통곡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23:2;삼상 1;10;삼하 1:24;렘 22:10). 따라서 ‘엎드려 울며’는 극도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암시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죄를 자복하는 기도를 하였다. 이는 앞선 9장에서 드린 기도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복’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에스라가 울면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 앞에 모인 많은 백성도 크게 통곡하였다. 그러자 매우 큰 무리의 이스라엘 백성들, 곧 남녀와 어린아이가 그 앞에 모여들었다. 이 장면은 에스라의 기도가 점차 전파·확대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에스라가 울며 기도하자 그 앞에 모인 많은 백성도 심히 통곡하였고, 그것은 다시 더욱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은 간절히 드리는 한 사람의 기도가 지닌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하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 곧 남녀와 어린아이가 그 앞에 모였다’에서 ‘남녀’와 ‘어린아이’는 ‘이스라엘 백성’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 뒤에 따로 제시한 것은, 죄를 자복하는 일에 제한된 사람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절망과 통곡에 빠져 있을 때,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소망에 대하여 말하였다(2-4절). 그는 엘람 자손 가운데 여히엘의 아들이다. ‘스가냐’라는 이름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6번 소개되고 있지만(8:3,5;느 3:29;6:18;12:3), 그중에 어떤 사람도 본 절의 스가냐와 동일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는 아마도 1차 귀환 때 함께하였던 백성의 지도자로, 통혼에 대해 에스라와 같은 생각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엘람 자손’은 1차 귀환자들의 가문 가운데 하나이다(2;7). ‘여히엘’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지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26절). 따라서 스가냐는 여히엘과 이방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일 수도 있다.

      스가냐는 비록 자신들이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은 죄를 하나님께 범하였지만, 아직 이스라엘에 소망이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모든 이방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모두 내보내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에스라 당신이 주장할 일이기 때문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서 힘써 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와 동시에 우리도 당신을 돕겠다고 약속하였다. ‘소망’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끈질기게 기대하는 것이고(창 49:18;사 40:31), 그에 대한 확신을 저버리지 않는 마음이다. 그가 이런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에스라와 백성의 기도에서 얻을 수 있는 논리적 결과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따라서 만약 그들이 자신들이 범한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시 103:8;애 3:22;요일 1;9). 그는 이것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둘째, 현재 상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에스라에게 이렇게 촉구하였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주장할 일입니다. 일어나 힘써 행하십시오.”(4절) 스가냐의 주장대로 에스라가 귀환한 가장 중요한 목적도 바로 이와 같은 소명을 이루는 데 있었다. 그는 귀환할 때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1) 율법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고, (2)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삼가 행하고, (3)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행정과 사법 등의 부분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그 일은 방백들의 고발로 시작되었고, 에스라와 백성들의 회개에 이어 스가냐의 제안으로 불이 붙었던 것이다.

      그 불길을 딛고 에스라가 일어났다.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스가냐의 말대로 실행할 것을 맹세하게 하였고, 그 자리에 모인 무리는 맹세로 화답하였다(5절). 여기에서 에스라의 행동은 두 단계로 제시되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일어나는’ 것이었다. ‘일어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기도하는 중에 스가냐의 격려와 촉구로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중대한 결심과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다. 두 번째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스가냐의 말대로 실행할 것을 맹세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것을 통해 에스라는 모든 백성이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이어지는 개혁에 그들의 동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였다.

    [질문] 위 내용을 통해 회개와 종교개혁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제도나 기구(機構)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이 ‘개혁’이다. 따라서 전에 구축된 제도나 기구에 대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개혁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그 인식이 방백들의 고발로 전면 노출되었다(9:1-2). 이 말은 그 고발 이전에 통혼 문제에 대하여 백성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쉬쉬하였다. 즉 뒤에서 은밀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일부 방백들의 고발로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에스라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 죄를 통곡하면서 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간구하였다. 그 회개 운동에 백성이 동참하였고, 그 운동이 종교개혁의 불길이 되었다. 이것은 문제 인식과 종교개혁 사이에 ‘회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지지고 있더라도 회개가 없다면 종교개혁은 있을 수 없다. 인식은 객관성에 대한 ‘인지’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문제를 개선하여야겠다는 ‘의지’까지 담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인식은 개혁의 출발점이지만 반드시 개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개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회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회개에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과 죄에서 떠나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는 삶의 변화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표출된다(욥 42:6;고후 7:9;히 6:1). 그래서 그것이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회개에 있어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개의 ‘진정성’이다. 만약 회개에 진정성이 들어 있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강도가 약하다면, 개혁은 공염불이 되어 버리고 설사 개혁되더라도 제대로 탄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개혁이 되어 버린다. ‘개혁’(改革)은 ‘고치다’는 말과 ‘가죽’이라는 말이 합해진 단어이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보면, 기존에 덮고 있던 가죽을 벗겨내고 새로운 가죽으로 교체한다는 뜻이다. 가죽을 벗겨내면 그 사람은 고통으로 자지러질 것이 빤하다.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쉽게 이루어진다면 한자어를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개혁은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수많은 개혁 속에 무수히 많은 사람의 피(목숨)가 들어 있다는 것을 역사에서 배웠다. 그 가운데 종교개혁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회개의 진정성 문제는 종교개혁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다.

    2. 본궤도에 오른 종교개혁(6-17절)

    [본문] 6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그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음식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7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8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 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9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 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10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11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12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13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14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15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 16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각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고 열째 달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17 첫째 달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이해] 본문은 본궤도에 오른 종교개혁을 소개하고 있다. 비록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스가냐의 제안대로 모든 이방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내보내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고 맹세하였지만, 에스라에게는 여전히 그것이 성에 차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은 맹세에도 불구하고 그와 다른 선택을 종종 하였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실행이 필요하였다. 또 그 맹세는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만 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 적용할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서도 기뻐하는 대신 백성의 죄로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6절). ‘여호하난’은 대제사장으로, 엘리아십의 아들이다. 성전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는데, 어떤 방은 성물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고, 또 어떤 방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제사를 위해 준비하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에스라가 들어간 여호하난의 방은 그 방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윽고 방에 있던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모일 것을 공포하였다(7절). 에스라의 공포는 백성들 앞에서 그가 직접 내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전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7절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그들은 모든 자손에게 목소리가 지나가게 하였다”이다. ‘목소리가 지나가게 하는 것’은 ‘공포’를 의미한다. 그리고 공포한 주어는 3인칭 대명사 복수형인 ‘그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에스라의 명령을 받아 백성들에게 공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에스라를 돕기로 약속한 사람들 가운데 지도급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방백들과 장로들에게 에스라가 명한 내용을 공포하고, 후자에 해당하는 그들은 다시 자신들이 속한 자손들에게 훈시를 내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전달된 공포 속에는 3일 내로 모이지 않으면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겠다는 경고 내용이 담겨 있었다(8절). ‘적몰’은 ‘중죄인(重罪人)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까지도 처벌하는 일’을 의미한다. 하지만 본문 속에서의 ‘적물’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어떤 것에 대한 세속적인 사용을 금지하는 ‘신성한 금지’(the holy ban)를 나타냈다. 예를 들면 성전(聖戰)에서 빼앗은 물건이나 포로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즉 그 성전에서 승리의 주역인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때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이 거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속으로 만든 것들은 성소에서 사용한 데 비해 다른 모든 물건은 불로 태워지거나 다른 방법으로 파괴되었고, 심지어 사람이나 동물은 죽임까지 당하였다(수 6:17-21,24). 한마디로 이 단어는 적출(excision), 파멸(perdition), 죽음(death) 등을 의미한다. 에스라가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닥사스다 왕이 그에게 부여하였던 사법권에 기초하고 있다(7:26).

      에스라의 공포에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에 3일 내로 모였다(9절). 총회(總會)가 소집된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 앞에 ‘유다와 베냐민’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에스라서에는 이 같은 표현이 총 3회 사용되고 있는데(1:5;4:1;10:9), 모두 어떤 상징이나 속성을 배제하고 있다. 단순히 북쪽의 이스라엘을 제외한 남쪽 유다만의 백성들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어김없이 공동체가 지닌 하나님 앞에서의 속성이나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총회가 소집된 때는 아홉째 달 20일이었다. 바벨론을 떠난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가 다섯째 달 1일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4개월 20일, 즉 140일이 지난 때이다. 성전 앞 광장에 모여 앉은 무리는 그 일과 큰비 때문에 떨고 있었다. ‘그 일’이란 그들이 지켜야 할 맹세, 즉 결혼한 이방 여인과 그 자녀들을 내보내는 일을 가리킨다.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부인과 자녀는 그들에게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을 내치는 행위는 그들에게 떨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설상가상 ‘큰비’까지 내려 그들의 온몸을 떨게 하였다. 아홉째 달은 히브리 달력으로 ‘기슬르’ 월인데, 이는 현대의 12월 초순 정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유대 지방은 10월부터 12월까지 춥고 비가 많이 우기(雨期)이다. 그때 내린 큰비로 백성들은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큰비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에(삼상 12:17-18;겔 13:11,13) 그 심판이 무서워서 떨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렇게 떨면서 앉아 있던 무리를 향하여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말하기 시작하였다(10-11절). 그의 말은 단호하였다. 그는 먼저 무리의 죄부터 지적하였다. “너희가 죄를 범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다.” 그가 지적한 무리의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들이 되고 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지만, 그 은혜를 저버리고 앞선 조상들의 죄를 답습함으로써 이스라엘에 죄를 더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무리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방 여인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은 통혼 죄를 자복하고, 이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이다. 한편 에스라는 회개 대상인 하나님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그분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그 조상들의 후손인 ‘무리’도 당연히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놓여 있고, 이는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역으로 그 언약을 저버리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명되는 것을 의미한다. 에스라의 단호한 촉구에 모든 회중이 그의 말대로 마땅히 행하겠다고 소리 높여 대답하였다(12절).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입니다’라는 말은, ‘옳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라는 뜻이다(NASB, That’s right! As you have said, so it is our duty to do).

      13-14절은 그곳에 모인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친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무리를 대표하는 몇몇 지도자가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지금 당장 그 일을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들은 그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백성이 너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 자리에서 그 많은 백성을 조직적으로 편성하고, 일일이 후속 작업을 행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그 일은 조용하게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공개된 상황에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둘째, 지금은 큰비가 내리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이 비를 피할 만한 수용 시설이 부족하였고,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셋째, 그들이 그 일로 크게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크다’는 말은 죄의 성격이 심각하다는 뜻도 있지만, 그 문제의 기저에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따라서 그 일은 하루 이틀에 처리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 지금 당장 서두르지 말 것을 제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이 제시한 문제 해결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온 회중을 위하여 방백들을 세우자. 이는 통혼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지도자들로 구성된 조사 위원회(최고 심의회, 최고 종교 법원)를 세우자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통혼한 자는 모두 정해진 기한 내에 방백들에게 오게 하자. 이 조치는 약속된 시간 내에 통혼한 자들에게 방백들 앞에서 이방 여인과 그 소생을 내보내겠다는 서약을 받기 위한 것이다. 셋째, 각자 소속된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자. 여기에서 장로들과 재판장은 서약에 대한 공증인 역할뿐만 아니라 실제 이행 여부를 감찰할 역할까지 맡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마을마다 나이 많고 인품과 덕망이 높은 장로들로 구성된 자치 단체가 있어 치리를 담당하였다(레 19:32;삼상 26-30). 숙곳에는 무려 장로가 77명이나 있었다(삿 8:14). ‘재판장’은 지방(읍내)의 재판관을 가리킨다. 한편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돌려질 때까지’라는 뜻이다. 즉 그렇게 될 때까지 그 일을 멈추지 말고 계속하자는 말이다.

      그렇지만 요나단과 야스야는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였다(15a절). ‘그 일을 반대한’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해석이 두 가지로 갈린다. (1) 무리 가운데 대표자들이 제시하였던 방법(13-14절)에 대한 반대이다, (2) 이방 여인들을 축출하라는 에스라의 의견 자체에 대한 반대이다. 이 중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1)을 더 타당한 것으로 본다. 첫째, 요나단과 야스야는 이방 여인을 취한 죄와 무관하다(18-44절). 둘째, 이방 여인들을 끊어 버리라는 에스라의 명에 무리가 맹세한 일과 대표자들의 제안 사이가 아닌 대표자들의 제안 뒤에 두 사람이 반대하고 일어났다. 셋째, 그들이 악천후에도 에스라의 명에 순종하여 모였다. 넷째, 사법권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는 에스라에게 그렇게 반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째, 에스라의 명령에 맹세로 화답한 무리 속에서 그렇게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섯째, 에스라와 방백들이 아무런 저항이나 문제없이 조사를 진행하였다(16-17절). 그렇다면 그들은 왜 대표들의 방법에 반대하였던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방백들이 얼마간의 기간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지금 즉시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베드로처럼 매우 다혈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도왔다(15b절). 여기서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도왔다’는 것에 대해 두 가지 해석으로 갈린다. (1) 그들이 요나단과 삽브대의 의견을 반박하고 재차 회중 대표자들의 의견을 지지하였다. (2) 한글개역개정성경의 표면적인 내용대로 요나단과 삽브대의 의견을 지지하였다. 전자는 이어지는 16절 내용과 관련해서 자연스럽다. 즉 요나단과 야스야가 개혁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 회중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제시하며 반대의 뜻을 표명하였지만, 므술람과 삽브대가 이들의 의견에 반박하고 회중 전체의 의견에 재청함으로써 그 일이 본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개역개정성경의 번역은 ‘반대하고’(and)를 ‘반대하였지만’(but)으로 번역해야 옳다. 후자는 표준새번역성경과 NIV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해석이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오직, ~만 이 의견에 반대하였으며, ~가 그들에게 동조하였을 뿐이다.”고 번역하고 있고, NIV는 “Only Jonathan and Jahzeiah, supported by Meshullam and Shabbethai, opposed this.”로 번역하고 있다. 이 두 번역에 따르면, ‘요나단과 야스야가 회중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였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은 오직 므슬람과 삽브내 두 사람뿐이어서 그들의 의견이 채택되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개인적으로 후자를 더 지지하지만, 두 해석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본문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 같다.

      16-17절은 조사 위원회의 설립과 그들에 의해 주도된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 즉 귀환한 백성이 그대로 하였다(16절). ‘그대로 하였다’는 말은 무리의 대표들이 제안한 방안대로 실행에 옮겼다는 의미이다. 에스라는 가문(가족)에 따라 각각 지명된 몇 명의 족장을 선임하고, 열째 달 1일에 앉아서 그 일을 조사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첫째 달 1일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의 일에 대한 모든 조사를 마쳤다. 따라서 조사는 만 3개월(90일) 동안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사는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인 날(아홉째 달 20일)로부터 10일 후에 시작되었는데, 이 열흘 동안 심사 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조사를 위한 제반 사항을 준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앉아’는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자신의 자리에 임하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삼상 1:9;왕상 1;35,46).

    [질문] 본 단락은 유다 사회에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과정과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그 과정을 사건 진행 순서에 따라 간략하게 정리해 보시오.

    유다의 통혼 문제에 대한 개혁은 방백들의 고발과 에스라의 회개 기도로 촉발되었고, 그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에스라의 총회 소집(6-8절): ① 소집 배경(6절), ② 소집 대상(7절), ③ 소집 공포령의 권위(8a절), ④ 공포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 요구(8b절), ⑤ 공포의 강제권: 불순종할 때 재산을 적몰하고 공동체에서 추방(8c절).

    (2) 모인 총회의 광경과 에스라의 권고(10-11절): ① 분명하게 밝힌 범죄 내용(10절), ② 해결 방안 제시: 죄를 자복하고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11절).

    (3) 백성들의 반응과 구체적인 방안 제시(12-15절): ① 긍정적인 반응: 에스라의 권고대로 실행하되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하자는 의견(13-14절), ② 적극적인 반응: 즉각 시행하자는 의견(추정)(15절).

    (4) 진상 조사(16-17절): 조사 위원회가 주관하여 3개월에 걸쳐 조사.

    3. 통혼한 자들의 명단(18-44절)

    [본문] 18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19 그들이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20 또 임멜 자손 중에서는 하나니와 스바댜요 21 하림 자손 중에서는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요 22 바스훌 자손 중에서는 엘료에내와 마아세야와 이스마엘과 느다넬과 요사밧과 엘라사였더라 23 레위 사람 중에서는 요사밧과 시므이와 글라야라 하는 글리다와 브다히야와 유다와 엘리에셀이었더라 24 노래하는 자 중에서는 엘리아십이요 문지기 중에서는 살룸과 델렘과 우리였더라 25 이스라엘 중에서는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라먀와 잇시야와 말기야와 미야민과 엘르아살과 말기야와 브나야요 26 엘람 자손 중에서는 맛다냐와 스가랴와 여히엘과 압디와 여레못과 엘리야요 27 삿두 자손 중에서는 엘료에내와 엘리아십과 맛다냐와 여레못과 사밧과 아시사요 28 베배 자손 중에서는 여호하난과 하나냐와 삽배와 아들래요 29 바니 자손 중에서는 므술람과 말룩과 아다야와 야숩과 스알과 여레못이요 30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앗나와 글랄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다냐와 브살렐과 빈누이와 므낫세요 31 하림 자손 중에서는 엘리에셀과 잇시야와 말기야와 스마야와 시므온과 32 베냐민과 말룩과 스마랴요 33 하숨 자손 중에서는 맛드내와 맛닷다와 사밧과 엘리벨렛과 여레매와 므낫세와 시므이요 34 바니 자손 중에서는 마아대와 아므람과 우엘과 35 브나야와 베드야와 글루히와 36 와냐와 므레못과 에랴십과 37 맛다냐와 맛드내와 야아수와 38 바니와 빈누이와 시므이와 39 셀레먀와 나단과 아다야와 40 막나드배와 사새와 사래와 41 아사렐과 셀레먀와 스마랴와 42 살룸과 아마랴와 요셉이요 43 느보 자손 중에서는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라 44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라 그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이해]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들 가운데, 먼저 제사장들은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 엘리에셀, 야립, 그달랴였다(18절).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는 ‘요사닥의 아들과 예수아의 자손들로부터’라는 뜻이다. ‘예수아’가 ‘요사닥’의 아들이기 때문에(3:2;학 1:1), 이 부분은 ‘요사닥의 자손들 가운데 예수아의 아들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NIV, 표준새번역성경). 이렇게 볼 때 본문은 예수아와 그 형제의 가문, 즉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인물 가운데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을 밝히고 있는 명단의 도입도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대제사장의 가문마저 이방 여인과 통혼에 빠졌다는 것은 성전을 재건한 후의 이스라엘 공동체가 빠졌던 영적 타락과 부패가 얼마나 심각하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들은 두 가지 행동을 취하였다. (1) 모두 손을 잡아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맹세하고, (2) 그 죄로 말미암아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다(18절). 이런 절차는 18절에서만 나오는데, 이는 아마도 나머지 모든 사람이 치렀던 표준 절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다 손을 잡아’라는 말은, ‘그들이 그들의 손을 주어(내밀어)’라는 뜻이다. 이처럼 손을 주는(내미는) 행위는 증인이 맹약에 서명할 때 하는 일반적인 풍습을 묘사한 것이다(왕하 10:15;겔 17;18). ‘속건제’는 고의적이 아닌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던 제사이다(레 5:14-19). 그들이 이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세 가지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첫째, 유다 자손이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이방인과 통혼하였다가 에스라의 지적으로 그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둘째, 속죄제를 드려야 하지만 오랜 이방 생활로 율법에 무지하였기 때문에 속건제를 드렸다. 실제로 속건제는 주로 이웃과 관련한 범죄를 속하는 성격이 강하였던 반면, 속죄제는 하나님과 직접 관련된 죄를 대속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였다. 셋째, 그들이 회개한 죄가 이방 여인과 통혼한 것뿐 아니라 부인과 자녀들을 돌려보내는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비록 그들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결혼까지 파기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허물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속건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이해가 맞다면 에스라가 단행한 종교개혁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19절에 소개된 명단이 대제사장들이라면, 20-23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명단은 제사장들이다. 임멜 자손 하나니와 스바댜, 하림 자손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 바스훌 자손 엘료에내와 마아세야와 이스마엘과 느다넬과 요사밧과 엘라사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제사장들은 13명으로, 4명의 대제사장들까지 포함하면 총 17명이다.

      레위 사람은 요사밧, 시므이, 글라야라 하는 글리다, 브다히야, 유다, 엘리에셀로, 6명이다. 노래하는 자는 엘리아십, 문지기는 살룸과 델렘과 우리였다. 이들은 모두 성전 봉사자로 총 10명이다(23-24절).

      다음은 백성들이다(25-43절). 바로스 자손은 라먀와 잇시야와 말기야와 미야민과 엘르아살과 말기야와 브나야(7명), 엘람 자손은 맛다냐와 스가랴와 여히엘과 압디와 여레못과 엘리야(6명), 삿두 자손은 엘료에내와 엘리아십과 맛다냐와 여레못과 사밧과 아시사(6명), 베배 자손은 여호하난과 하나냐와 삽배와 아들래(4명), 바니 자손은 므술람과 말룩과 아다야와 야숩과 스알과 여레못(6명), 바핫모압 자손은 앗나와 글랄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다냐와 브살렐과 빈누이와 므낫세(8명), 하림 자손은 엘리에셀과 잇시야와 말기야와 스마야와 시므온과 베냐민과 말룩과 스마랴(8명), 하숨 자손은 맛드내와 맛닷다와 사밧과 엘리벨렛과 여레매와 므낫세와 시므이(7명), 바니 자손은 마아대와 아므람과 우엘과 브나야와 베드야와 글루히와 와냐와 므레못과 에랴십과 맛다냐와 맛드내와 야아수와 바니와 빈누이와 시므이와 셀레먀와 나단과 아다야와 막나드배와 사새와 사래와 아사렐과 셀레먀와 스마랴와 살룸과 아마랴와 요셉(27명), 느보 자손은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이었다(7명). 백성들은 총 86명으로, 그 가운데 베배 자손이 4명으로 가장 적고, 바니 자손은 27명으로 가장 많다.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의 명단으로, 총 113명이다. 그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다(44절). 이는 자녀가 없는 이방인 아내들뿐 아니라 자녀가 있는 이방인 아내들도 자녀들과 함께 내보냈다는 의미이다. 또한, 종교개혁에 따른 이혼이 너무나 큰 인간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사실도 암시해 준다. 한편 통혼한 자들의 숫자인 113명은 1차 귀환자들의 인원수(42,360명, 7,337명의 남종과 여종은 제외)와 비교하면 극소수(0.0027%)에 불과하다. 그때부터 에스라가 귀환한 시점까지 인구가 100,000명 정도로 증가하였다고 가정하면 그 비율은 절반 이상 더 줄어든다. 그렇다면 방백들의 고발과 에스라의 반응은 어떤 면에서 과도하다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극소수였지만 통혼 문제가 너무나 심각한 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히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넋을 잃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둘째, 통혼한 자들을 모두 기록하기에는 지면상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에스라가 제시한 명단에는 종교 지도자와 각 가문의 대표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기록하였다. 셋째, 막상 명단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바꿔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추측에는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기 어렵다.

    [질문] 통혼한 자들의 명단에 나타난 특징과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인 명단이 하향식 순서대로 작성되어 있다. 즉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일반 백성이 기록되어 있고, 종교 지도자들도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자, 문지기의 순서대로 제시되어 있다. 이는 2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1차 귀환자들의 명단 제시법과 상반되는 방법이다. 그곳에는 백성들을 먼저, 제사장들은 맨 나중에 소개하고 있다.

      2장과 달리 여기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먼저 제시한 이유는, 그들이 지닌 책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강조한 목적은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고 먼저 추궁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총 27명으로, 통혼자들 가운데 24%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1차 귀환할 때의 백성들 대비 종교 지도자들이 차지하였던 16%보다 더 높은 비율이다(평민들은 24,144명이, 종교 지도자들은 4,630명이 귀환). 이것은 결과적으로 제사장들이 백성들보다 통혼에 더욱 적극적이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들은 백성들을 지도해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자신들이 먼저 앞장섬으로써 백성들이 통혼의 죄에 가담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까지 해 버렸던 것이다.

    ​II. 메시지

    본문: 스 10:1-5

    제목: 종교개혁의 필수 조건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1. 종교개혁에 담긴 의미

    오늘 본문은 본궤도에 오른 유다 공동체의 종교개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이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개혁의 대상이 종교 문제, 즉 신앙 문제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구축한 삶의 터전을 버리고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귀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남달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 재건 이후에 그들의 신앙은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귀환할 당시에는 이방인과의 통혼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그 일에 가담하고 있었고, 심지어 방백들과 고관들은 그 일에 으뜸이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 충격과 슬픔에 빠져,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넋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숙제로 주어졌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그 일이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지닌 두 번째 의미는, 그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개혁’(改革)은 문자적으로 몸을 덮고 있는 가죽을 벗겨내고 새 가죽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죽을 벗기는 일은 고문 중에서도 상고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개혁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막상 개혁 단계에 이르면 주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다 사회에 만연한 통혼의 문제는 해결 방법이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그들이 맞은 아내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그 당사자들에게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들은 칼로 무를 베듯이 싹둑 자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자신의 살을 베고 뼈를 꺾는 아픔이 수반됩니다. 그래서 에스라 앞에 놓인 종교개혁은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2. 종교개혁의 필수 조건

    1) 죄를 자복하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개혁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 일은 죄를 자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1절).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면서 죄를 자복하자,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백성도 크게 통곡하였습니다. 에스라에서 시작된 자복이 영향을 미쳐 유다 공동체에 큰 통곡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엎드리다’는 말은 극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 엎드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또한 ‘울다’는 말은 비극적인 일로 인하여 통곡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엎드려 울고 있는’ 에스라의 모습 속에는, 극도의 슬픈 감정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가 기도하였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죄를 자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죄를 자복하는 그의 진정성은 다시 엎드려 울고 있는 모습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에 에스라가 자복할 때, “하나님, 미안해요”라는 식으로 가볍게 자복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죄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별로 가슴 아파하지도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그로 인해 고통도 미미하다면, 그 문제에서 돌이키려는 의지, 즉 개혁에 대한 의지도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에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대충 개혁할 것이 빤합니다. 상처 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병원에 반드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로 인해 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도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를 심각하지 보지 않으면 단순히 미안하다는 반응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죄가 심각하다고 느낀 사람은 엎드려 통곡할 수밖에 없고, 그 통곡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의지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에스라처럼 죄를 자복하되 진정성 있게 자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범한 통혼의 죄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역,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 그리고 거룩함과 반대되는 부정한 삶이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이 되기 때문에, 진노와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계 20:13). 예수님은 그 심판의 참혹함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맏으리라”(막 9:48-49). 죄악의 결과가 이토록 참혹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그 죄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죄는 심각하고 또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유다의 죄 앞에서 대충 넘어갈 수 없었고,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엎드려 통곡하면서 자백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자복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반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그래서 진노와 멸망이 아닌 축복과 소망 가득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죄 문제를 심각하게 직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에스라처럼 엎드려 통곡하면서 우리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에 대한 개혁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수 있습니다.

    2) 돕는 사람과 함께하기

    종교개혁에 있어서 두 번째 필수 조건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남과 의논하고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종교개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는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함께하되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무시하였던 대표적인 사람이 ‘르호보암’입니다. 그는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때 북쪽 지파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 르호보암은 그 문제를 먼저 솔로몬 왕을 섬겼던 노인들과 상의하였고, 그들은 그에게 ‘그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면 그들이 영원히 왕이 종이 될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란 어린 사람들의 말, 즉 노인들의 말과 반대되는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왕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두 왕국이 모두 멸망할 때까지 싸움질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누구와 함께하느냐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해 줍니다.

      다행히도 에스라에게는 함께할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가냐와 그의 동료들이었습니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2-4절). 스가냐는 통혼으로 인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율법대로 이방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자는 개혁의 방법(방향)을 제안하였고, 우리가 돕겠다는 약속도 하였습니다. 또 일어나 힘써 행하라고 에스라를 격려까지 하였습니다. 그의 제안과 동참이 에스라를 일으켜 세웠고, 힘써서 행할 수 있는 용기도 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문제는 우리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고, 그 안에서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 서로 분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고전 12:25). 주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가 혼자 설 수 없기 때문이고, 교회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볼 때 상처가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 죄를 서로 고백하고,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강력하고 효과적인(powerful and effective, NIV)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약 5:16). 함께하되 특별히 스가냐와 같이 우리의 신앙이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3)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종교개혁을 완성하기 위한 세 번째 필수 조건은, 그 일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스가냐의 말을 듣고 에스라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그의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였고, 무리는 맹세로 그에게 화답하였습니다(6절). 이는 에스라가 그 문제를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먼저 백성들의 마음을 맹세로 다잡았습니다. 맹세로 마음을 다잡게 하는 행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두말할 수 없게 함으로써 마음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것은 다음에 이어질 행동에 강력한 동력(에너지)을 제공해 줍니다.

      에스라는 그 맹세에 기초하여 개혁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가 실행한 내용은 오늘 본문 뒤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한 후, 그들에게 다시 한번 스가냐의 제안대로 할 것을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맹세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명단을 조사하여, 첫째 달 초하루에 그 작업을 모두 마쳤습니다(16-17절). 이방 여인과 결혼한 이들의 명단을 작성하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이 맹세한 대로 실행에 옮겼는지 한 사람 한 사람 구체적으로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에스라는 유다의 종교개혁을 그렇게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너희도 너희 안에 있는 죄 문제를 그렇게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 문제는 교묘한 자기합리화에 빠져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와 그로 인해 무너진 신앙 목록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방 여인들을 내보낸 것같이 내쫓은 죄가 있다면 ‘Yes’로 표시하고, 해결하지 못한 죄는 ‘No’로 표시하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3. 종교개혁과 예수 그리스도

    유다 공동체에 만연되어 있던 통혼 문제는, 그 모양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 안에도 교묘하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은밀하게 즐길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와 다르게 그것이 제거되기를 원하지만, 그런 우리의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이렇게 한탄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3-24).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이렇다면 우리의 실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종교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한탄 속에는 그런 상태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바울의 한탄 끝에 그 답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 답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롬 7:25).

      오늘 우리가 살펴본 종교개혁의 필수 조건은 모두 그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죄 문제를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지워나가는 일은 그분 안으로 들어와 함께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분의 몸인 교회에 참여해서 서로 섬기기만 하면 함께할 사람들이 생깁니다. 이 일은 모두 우리 삶의 주인을 내가 아닌 예수님으로 바꾸기만 하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종교개혁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이고, 개혁의 필수 조건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모두 충족된다는 의미를 제공해 줍니다. 이 말씀을 찾아 함께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이 말씀이 우리의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다시 신앙의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