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월) 사사기 19-21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망령된 일(사사기 19: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The owner of the house went outside and said to them,
"No, my friends, don't be so vile. Since this man is my guest, don't do
this disgraceful thing.
"망령된 일"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기 위하여 여러 번역을 소개합니다.
NIV 성경에서 "부끄러운 일(disgraceful thing)"
NASB에서 "어리석은 일(act of folly)"
KJV에서 "어리석은 행동(the folly)"
새한글 성경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짓"
새번역 성경에서 "악한 일"
현대인 성경에서 "더러운 짓"
공동번역에서 "고약한 짓"
도대체 망령된 일은 무엇인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네발라(nebâlâh. נְבָלָה)"라고 합니다.
망령된 일(네발라)이란 용어가 사사기 19장과 20장에서 각각 2구절씩 소개되었습니다.
"망령된 일"을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네발라"라고 하며 그 의미는 "남색(sodomy)과 같이
수치스러운일(창 19:5, 7)" 또는 "비 정상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어리석은 행위(창 34:7. 신 22:21)"를 가르키는 말로 주로 성적 범죄를 말합니다(삼하 13:12).
사사 시대의 특징은 왕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의 성소를 미가라는 개인의 집에 세웠으며, 레위 지파에서 제사장을 세워야 하는데도 미가를 그 집의 제사장으로 그의 어머니가 세웠다고 합니다.
본문에서는 레위지파 제사장이 첩을 얻었으며 그 첩이 친정으로 돌아가서 돌아오지 않아 제사장이 그 첩을 데려오려고 장인의 집을 방문한 후 첩을 데리고 돌아오던 중에 기브아에서 머물게 될 때 그 지역의 부랑배들이 레위의 첩을 데려다가 윤간을 한 후 보냈습니다.
첩은 남편 레위인이 머물고 있던 집 앞에 쓰러져 죽었고 레위인은 그 첩의 시신을 12조각으로 나누어 각 지파에게 보냅니다.
끔찍한 토막 시신을 보고 각 지파들이 이런 일을 행한 베냐민 지파와 싸움을 하고 베냐민 지파의 남자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에서는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주지 않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망령된 일이란 곧 동성연애와 같은 성적인 죄를 말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이러한 죄로 인하여 멸망했고 사사 시대에 이런 흔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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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관하리라(3045) 19:22
יָדַע
스트롱번호 3045
구약 성경 / 940회 사용
성경에서 '네발라'의 이미는 첫째는 형벌(욥 42:8)" 둘째는 사악(삼상 25:25)" 셋째는 부끄러운 행위(강간, 근친성교)(창 34:7, 신 22:21, 신 22:21, 삿 19:23, 24, 20:10, 삼하 13:12, 렘 29:23.)라고 번역합니다.
따라서 망령된 일이란 한마디로 "어리석은 일(foolish thing)"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이러한 용어가 사사기 19장에서 2회 그리고 20장에서 2회 언급되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 여기서 `망령된 일'에 해당되는 원어 `하네발라'(*) 역시 남색(sodomy)과 같이
수치스러운일(창 19:5, 7)이나 비 정상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어리석은 행위(창 34:7; 신 22:21)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주로 성적 범죄를 지칭한다(삼하 13:12).
망령된 일(네발라. nebâlâh) נְבָלָה
스트롱번호 5039
구약 성경 / 13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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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사, 여성 어리석음, 형벌, 욥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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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사, 여성 사악, 삼상 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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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사, 여성 사악한 행동, 부끄러운 행위[강간, 근친성교 같은], 창 34:7, 신 22:21, 삿 19:23, 24, 20:10, 삼하 13:12, 렘 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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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미련한 자(삼상 25:25), 악(신 22:21, 삿 19:23), 망령된 일(수 7:15, 삿 20:6), 어리석은일(삼하 13:12).
זַמָּה 스트롱번호2154
구약 성경 / 29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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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사, 여성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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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명사, 여성 [나쁜 의미] 잠21:27,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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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명사, 여성 [좋은 의미] 욥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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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사, 여성 사악함, 악행[불결한 죄], 시26:10,11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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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악행(레18:17, 20:14), 죄악(레19:29), 음행(삿20:6, 렘13:27, 겔23:48), 계획(욥17:11), 음란(겔16:43,58, 23:49), 악(시119:150), 사악(호6:9), 행악(잠10:23), [형] 악한(잠21:27,사32:7), 사악한(시26:10), 더러운(겔16:27).
1. [여호수아 7:15]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2. [사사기 19: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3. [사사기 19: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
4. [사사기 20: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5. [사사기 20:10]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그들로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의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3월 22일(토) 사사기 17-18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미가(사사기 17: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Now a man named Micah from the hill country of Ephraim.
김일성주석(82세. 1912. 4. 15 - 1994. 7. 8) 본명 / 김성주
김형석교수(103세. 1920. - 현재)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현 평양시 만경대) 같은 마을 출신, 인민학교 선후배 사이
김형석 교수는 1994년 7월 8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일성 전 주석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지금의 평양시 만경대)의 같은
마을 출신이며 인민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말했다. 본명이 김성주인 김 전 주석이 1912년 4월 15일 태어났고, 김 교수가
1920년생이니 8년쯤 후배가 된다.
김 교수는 “또래에 견줘 키도 크고 늘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고 학교 선배들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김성주가 해방 이후 평양에 돌아와 교회 장로들을 초청해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 초대됐다며 함께 가자고 해
갔더니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선 친일파를 청산하고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고 모든 기업을 국유화해야 한다며 지식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보다 ‘한다면 한다’는 식의 강인한 의지를 펼쳐 보였다”고 옛 기억을 되살렸다.
그런데 식사를 한
날로부터 20일쯤 흐른 뒤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김일성 장군이 평양에 돌아왔다고 해 나가봤더니 김성주가 김 장군이라고
소개돼 어리둥절했다고 돌아봤다.
김성주는 교회 환영 모임에서 했던 얘기를 거의 그대로 대중 연설에서 되풀이했던 기억도 선명하다고
했다.
당시 평양 시민들은 김일성 장군의 나이가 50대쯤 됐다고 믿고 있었는데 너무 젊은 김성주가 김 장군 행세를 해 놀라워했다는 증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
교수는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시기라 소련군이 김일성 장군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고, 어떻게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김성주를 옹립했을 것이라고 봤다.
이런 허점을 틈타 권력을 장악한 김 전 주석이 반공주의자들을 처단하고 “나도 이대로 있다간
죽거나 감옥에 가겠다 싶어 1947년에 월남을 결심해 결행하기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사사기 17장은 미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가 살던 시기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사사가 아닌 미가의 이야기가 17장과
18장에 걸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이처럼 미가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해 있으며 혼란스러웠는지를 강조하여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사시대는 약 340년간 12명의 사사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사사가 왕처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다스린 것은 아니었기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온갖 우상숭배를 일삼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이 시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자도, 그
말씀을 들으며 순종하던 자들도 많지 않고 무정부 시대와 같았습니다.
사사기의 내용을 구분해 본다면 가나안 정복과정을 요약한 내용과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해 3장 6절까지의 내용은 서론에 해당이
됩니다.
그리고 3장의 웃니엘부터 12장의 삼손까지 12명의 사사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 본론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나서
17장 이후의 내용은 사사기에 부록과 같이 붙어 있는 부분입니다.
미가는 예루살렘 북쪽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상당히 많은 가치를 지녔던 은 1,100세겔을 잃어버리게
되자 자신의 재산을 훔쳐간 사람을 저주합니다.
그런데 그 돈에 손을 댄 것은 바로 그 아들 미가였습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저주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 하여 어머니에게 돌려드렸고, 어머니는 자신의 저주가 아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은 200세겔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저주의 덫에서 풀어내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하나님의 신상을 만들어 자신의 믿음의 열심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려 했던 이들의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며 부패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가운데 제2계명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아들 미가는 하나님을 위해 신당을 만들어 그 안에 온갖 신상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을 우선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당시 사회 모습을 한줄로 잘 요약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17장 6절입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계속되어지는 본문에는 한 사람이 더 등장하면서 당시 사회가 총체적으로 얼마나 부패해 있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가는 신당 안에 각종 신상을 채워 넣은 뒤 이제 제사장까지 있으면 구색이 맞겠다 싶어서 제사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한 레위인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17:8-9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레위인은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 그들의 땅을 별도로 분배받지 않고 도피성 6개를 포함하여 다른 지파들의 땅에 총 48개의 성읍을
거주지로 분배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매우 무질서 하였고, 원래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도록 하였지만 이것 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레위인들은 생계를 위해 본래 살도록 한 성읍을 떠나 다른
성으로 옮겨다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등장하는 레위인 청년도 원래는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에 살았지만
자신이 거할 적절한 장소를 찾다가 결국 에브라임 산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7절에서 이 레위 사람을 청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30세 이상 된 자만이 가능하였지만 그는 아직 나이가
안되었기에 청년이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혼탁한 사회에서 레위지파가 아닌 사람이 제사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레위인
제사장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미가는 이 청년이 정상적인 제사장이 되기에는 부족하였지만 레위인인데다가 자기
아들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아들을 대신하여 이 레위 청년으로 하여금 자기 집에서 제사장으로 있어줄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미가의 제안이 본문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17: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미가는 레위 청년에게 자신을 위해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말합니다.
나이 30세도 안된 레위청년을 제사장으로 세우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말씀 가운데 미가의 이러한 행동의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나를 위하여” 제사장을 세우고 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그 행동은 결국 아들 미가를 위해 신상을 만든 것이었고, 그 아들 미가는 만들어진
신상을 신당에 모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당을 지킬 제사장을 선발 하였는데 이러한 그들의 행동의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에 대해 이제 하나님께서 하실 일만 남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13절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17: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든, 무슨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복 주는 하나님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형상도 만들고, 그 형상을 놓을 신당과 그 신당을 관리할 제사장까지 세웠습니다.
자신이 열심을 다해
완벽하게 준비해 놓은 제단위에 이제 하나님께서 복이라는 불로 그 제물을 태우시기만 하면 하나님도 좋고 자신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을 드러내려 했던 이런 미가의 의도는 나중에 단 자손들에게 자신의 우상과 레위청년을 모두 빼앗기게 될 때 자기 마음을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18:24).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미가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자기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루어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비단
미가에게만 있었던 모습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읽다 보면 미가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데 크게 일조한 한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미가의 잘못된 행동에 맞장구 쳐준 레위 청년입니다.
에브라임산지에 정착하기 위해 내려온 이 레위 청년에게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미가의 말은 참 달콤한 제안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일은 아니었지만 레위 청년은 미가의 아들처럼 대우를 받으며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 모습이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미가는 레위 청년을 아버지처럼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요청을 하였지만 제사장으로 고용되어 미가로부터 실제적인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이 레위 청년은 결국 미가의 아들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레위 청년은 생활에 있어서는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사장의 직무를 온전히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사사시대 미가라는 한 사람의 종교적 타락은 당시 많은 백성들의 종교적 타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가의 모습이 사사시대에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나름 열심있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그로 인해 복을 주실 것이라 기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잘못된 열심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망하시고, 그 행위를
심판하십니다.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세우신 제사장으로 하여금 실로에 나아가 예배드리도록 하였지만 미가는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잘못된 열심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행동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지만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자신만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본문은 다시한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에 자기 생각과 소견대로 살아가며,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사사시대의 무지한 백성이나 이러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분명히 지적하기 보다 오히려 맞장구 치며 자신의 욕심과 이익의 기회만을 살피는 악한 지도자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혼탁한 상황에서 거세게 부는 바람과 풍랑으로 인해 오히려 힘들고 불확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이끄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테바’ 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나타내 주십니다.
사사기 17장은 이스라엘의 영적 혼란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미가라는 한 남자가 자신의 집에 신상을 만들고, 레위인을 개인 제사장으로 세우는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돈으로 신상을 만들고, 자신의 집을 개인 성소로 삼아 예배했으며, 한 떠돌이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고용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 사람들이 각자 옳은 대로 행동했음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떠난 신앙적 타락과 영적 혼란을 보여줍니다.
사사기 17장 구조 분석
- 미가의 신상 제작과 개인 성소(17:1-6)
- 떠돌이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고용(17:7-13)
사사기 17장 묵상 : 영적 혼란 속에서의 신앙적 교훈
사사기 17장은 이스라엘의 영적 혼란과 개인주의적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은 미가라는 한 남자가 자신의
집에 신상을 만들고 떠돌이 레위인을 개인 제사장으로 고용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스라엘이 왕이 없어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며, 하나님을 떠난 예배의 왜곡과 영적 타락의 심각성을 묵상하게 합니다.
미가의 신상 제작과 개인 성소(17:1-6)
미가는 어머니가 잃어버린 은 1,100개를 돌려주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그 은의 일부를 사용해 신상을
만들기로 서원하고, 장인에게 부탁해 신상과 에봇을 제작합니다.
이후 미가는 이 신상들을 자신의 집에 두고 개인 성소를 만들어
예배합니다.
그는 자신만의 예배 체계를 만들어 하나님을 섬기려 했지만, 이는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미가는 신상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고자 했지만, 그의 행위는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가의 행동은 인간의 잘못된 신앙과 우상숭배가 얼마나 쉽게 우리의 삶에 침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의도로 시작했지만, 그 방법은 철저히 인간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애굽기
20:3)는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며, 우리의 신앙이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해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1. 신상 :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예배와 인간 중심적 신앙의 왜곡을 상징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헌신이 인간의 방식으로 왜곡될 때 나타나는 위험을 보여줍니다.
신상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직접 경험하기보다,
물질적 매개체를 통해 하나님을 느끼려는 욕망의 결과를 나타냅니다.
이는 신앙이 형태적 외형에만 머물러 진정한 영적 관계를
잃어버리는 모습을 경고합니다.
2. 제작 과정 : 미가의 어머니가 은을 바쳐 신상을 제작한 행위는 헌신의 형태를 띠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진심으로 헌신하려는 마음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될 때 올바른 예배에서
멀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 개인 성소 : 공동체적 예배에서 벗어난 개인주의적 신앙의 위험성을 나타냅니다.
미가의 집은
하나님의 성소가 아닌 개인적 만족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 체계가 파괴되고 인간 중심의
체계가 우선시될 때 발생하는 문제를 보여줍니다.
4. 영적 공동체의 상실 : 개인 성소는 신앙이 개인적 만족에 머물러, 영적 공동체와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예배는 단지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5. 왕의 부재 :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소견과 판단에 의한 혼란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통치가 부재할 때 발생하는 영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을 경고합니다.
6. 하나님의 통치 상실 : 왕의 부재는 단순히 정치적 지도자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상실된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을 때 혼란과 타락이 찾아올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떠돌이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고용(17:7-13)
미가의 집에 떠돌이 레위인이 찾아옵니다.
그는 베들레헴 출신으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던 중이었습니다.
미가는
그를 자신의 집에 고용하여 개인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미가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제사 체계를 무시하고 인간적인 욕망과 편리를 추구한 결과였습니다.
레위인 역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떠돌이 레위인의 모습은 영적 리더의 타락과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진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아야 했지만, 물질적 안락과 개인적 욕망을 위해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잊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 헌신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행하라”(여호수아
1:7)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중요합니다.
7. 레위인의 타락 : 하나님의 부르심을 저버리고 세속적 욕망에 타협하는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사사기의 시대적 배경에서 레위인들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며 성소와 제사
체계를 유지하도록 지정되었으나(민수기 18:20-24), 사사 시대의 혼란과 영적 타락으로 인해 레위인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의
사명을 잃고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는 영적 지도자들이 신앙 공동체의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할 때, 전체 공동체가
하나님의 질서를 잃고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떠돌아다니는 레위인은 영적 책임과 사명을 망각한 리더십의 붕괴를
상징하며, 이는 오늘날 영적 지도자들에게도 경각심을 주는 교훈이 됩니다.
레위인의 역할은 공동체를 영적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으나,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헌신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오늘날 영적 리더들이 물질적 이익이나 세속적 유혹에 빠질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8. 고용된 제사장 : 레위인이 고용된 제사장으로 전락한 것은 신앙이 물질적 보상과 편리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영적 리더십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의 필요나 욕망에 의해 결정될 때 발생하는 위험을 상징합니다.
영적 혼란과 신앙의 교훈
사사기 17장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17:6)는 구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와 율법을 따르기보다 자신들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행동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미가와 그의 어머니, 떠돌이 레위인의 이야기는 영적 리더십의 부재와 신앙 공동체의 붕괴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질서가 중심이 되지 않을 때, 신앙은 쉽게 왜곡되고 우리의 선택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기준이나 편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 왕의 부재 :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소견과 판단에 의한 혼란을 상징합니다.
- 미가의 성소 :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난 인간 중심적 신앙 체계를 상징합니다.
결론 :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라
사사기 17장은 영적 혼란과 타락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과 질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합니다.
미가와 레위인의 이야기는
신앙의 외형은 갖추었지만, 그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욕망과 판단으로 가득 찬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은 없는지 살펴보며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신명기 6:5) 우리의 신앙이 온전히 하나님께만 향해야 합니다.
사사기 17장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강력히 상기시키는 장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에 많은 이들은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려 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을 위한다 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까지도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미가와 한 레위 청년의
모습처럼 이 시대 잘못된 욕심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거나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혼탁한 시기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진심으로 바라며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테바’ 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십계명의 제2계명인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며 자신만의 신당에서 우상 두고 있는 미가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하나님 대신 어떤 우상을 마음의 신당에 채워놓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 준다는 제안에 한 집안의 제사장으로 들어간 레위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내 생활 속에서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려는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봅시다.
3.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오히려 자기 만족을 위한 열심으로 무슨 일을 하다가 결국 그것이 커다란 죄였음을 깨닫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방주는 히브리어로 테바(תֵּבָה) 영어로는 Ark라고 합니다.
이 방주는 직육면체의 나무 상자인데, 구약에서 이 테바가 한번 더 등장합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테바)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출애굽기 2:3>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테바)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창세기 6:14>
이집트의 총리였던 요셉을 통해 이집트에 들어간 야곱과 그의 자녀들은 이집트에서 엄청난 인구 증가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이후 요셉을 알지 못했던 즉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자 히브리인들을 경계한 새로운 왕은 남자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를 살린 갈대 상자 즉 예수 그리스도
이때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의 부모는 차마 이 아이를 버리지 못하고 3개월간 숨겨서 키우다가 역청으로 칠해진 갈대 상자(테바)에 아이를 태워 강가 갈대 사이에 띄워 살립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 처럼 빠져 죽어야 할 아이인데, 갈대 상자 즉 테바에 의해 살아남게 된 것이죠.
이 테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물에 빠져 죽어야 할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선택을 받은 자가 살아 남을 의미하죠. 노아의 방주와 마찬가지로 갈대 상자에 탄 자는 살아나 건저냄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이름이 모세라고 지어지고, 모세라는 의미는 ‘건져내다’ 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매 그녀가 그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가니 그가 그녀의 아들이 되니라. 그녀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고 이르되, 내가 그를 물 속에서 건져 내었기 때문이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2:10>
주님께서 높은 곳에서 손을 뻗으시어 나를 잡으시고, 깊은 물 속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시편 18:16>
그러나 하나님은 내 영혼을 무덤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이는 그분이 나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49:15>
또 다른 Ark – Ark of Covenant와 은혜
그런데 이 Ark라는 의미의 단어가 구약에 다시 한번 등장 합니다.
또 너는 그 휘장을 걸쇠들 밑에 달고 증언 궤를 거기로 휘장 안에 들여 놓을지니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해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리라.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언 궤 위에 긍휼의 자리를 두고 <출애굽기 26:33~34>
증언궤, 증거궤, 법궤, 언약궤로 번역되는 Ark of Covenant 입니다.
이 언약궤는 무엇을 의미할 까요?
그룹이라고 불리는 천사의 모양이 있는 법궤의 뚜껑을 시은좌 (Mercy Seat)이라고 합니다. 이 곳은 은혜가 베풀어지는 곳이죠.
시은좌 아래 즉 언약궤 안에는 세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금향로와 돌아가며 금으로 입힌 언약궤가 있었고 이 궤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었으며 <히브리서 9:4>
이 만나 항아리,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들의 그릇된 반응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죄”인 거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이 죄를 없애버리고 처벌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약궤 위에는 그룹이란 천사가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죄를 내려다 보신다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대제사장들은 1년에 한번씩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모든 백성들을 위해 속죄를 하였는데, 언약궤에 피가 덮이면 죄를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은 그 죄를 보지 않고, 어린 양의 피만을 보신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분명히 죄는 존재 합니다.
분명히 우리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지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지 않으시고 그 피를 보시고 넘어가시는 것이며 그것이 구속의 원리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죄에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 타야, 궤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3월 21일(금) 사사기 13-16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 이름은 기묘니라(사사기 13: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He replied, "Why do you ask my name? It is beyond understanding.
내 이름은 기묘니라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곧 그 대상의 본질이나 특성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창
25:19-26 강해, '이름짓기' 참조.
야곱(*, 야아콥)
- 어근 아카브(*)는 '발뒤꿈치'(heel; 3:15, 호12:3) 또는 '발뒤꿈치률 잡는다'란 뜻과 '뒷면'이란 의미가 있어 나쁜 의도로 사용될 때는 '남을 사취하는 자'(27:36), '거짓되다'(렘 9:3 ; 17:9),
'발꿈치를 든다'(시 41:9)는 뜻을 내포한다.
기이한 출생에 의해 붙여진 그의 이름은 이와 같이 좋지 못하나 훗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태어났을 때 붙여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즉 이스라엘(32:8)이라는 한 영광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는 이름을 '기묘'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기묘'에 해당하는
'필리'(6383)는 '기묘자에 해당하는 '펠레'(6382)의 형용사형으로 '이해를 초월한'(NIV, beyond
understanding)또는 '놀라운'(RSV, wwonderful)이란 의미이다.
* 필리(6383) פִּלְאִי
스트롱번호 6383
구약 성경 / 2회 사용
-
1. 형용사 놀라운, 훌륭한, 삿 13:18.
-
a. 형용사 [주]6383 כתיב의 여성형, 시 139:6.
-
-
관련 성경 / [명] 기묘자(삿 13:18). [형] 기이한(시 139:6).
* 펠레(6382) פֶּלֶא
스트롱번호 6382
- 구약 성경 / 13회 사용
-
1. 명사, 남성 놀라운 것. [하나님의] 기적, 출15:11,시77:12(11),15(14), 78:12, 88:11(10)
-
2. 명사, 남성 [형용사] 찬양할 만한, 구별된, 사9:5(6).
-
관련 성경 / [부] 놀랍도록(애 1:9). [명] 기이한 일(시 77:11, 88:10), 놀라운 일(단 12:6), 기묘자(사 9:6).
이것은 인간이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용어는 구약에서 메시야 탄생 예언과 관련하여 메시야의 속성을 묘사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사 9:6).
따라서 마노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구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알 수
있다(Cassel, Lange, Matthew Henry).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16:7-16 강해, '여호와의
사자'를 참조하라.
기묘(奇妙)
פִּלְאִי
스트롱번호 6383
어원 / 6381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회 사용
-
1. 형용사 놀라운, 훌륭한, 삿13:18.
-
a. 형용사 [주]6383 כתיב의 여성형, 시139:6.
-
-
관련 성경 / [명] 기묘자(삿 13:18). [형] 기이한(시 139:6).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기묘자(6382) פֶּלֶא
스트롱번호6382
발음 [ peleʼ ]
어원 / 6381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3회 사용
-
1. 명사, 남성 놀라운 것. [하나님의] 기적, 출15:11,시77:12(11),15(14), 78:12, 88:11(10)
-
2. 명사, 남성 [형용사] 찬양할 만한, 구별된, 사9:5(6).
-
관련 성경 / [부] 놀랍도록(애 1:9). [명] 기이한 일(시 77:11, 88:10), 놀라운 일(단 12:6), 기묘자(사 9:6).
시편 139: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기묘자 예수 : 놀라우신 예수님(Wonderful Jesus)
‘기묘자’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요즘 잘 안 쓰는 말이죠. 기묘하다는 말은 이상하다, 희한하다, 놀랍다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Wonderful’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놀라우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성경에 보면 기묘자라는 이름이 한번 더 나옵니다.
삿 13: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삼손 사사의 아버지가 마노아인데, 그 부부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기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님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탄 이전 구약 시대에 이따금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경우입니다.
예수님은 기묘자라는 이름처럼 정말 놀라우신 분입니다. 모든 면에서 그랬습니다.
① 구약 예언의 성취 :
구약에 보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무려 350번이나 나옵니다. 그 중에 성탄에 관한 예언만 수십 번에 달합니다. 그 모든 게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재림에 관한 예언 외에는 (장차 이뤄질 것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뤄진 것입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면 ... 미가5:2에 예수님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500년 전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처녀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멀리 유대 지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당시는 요즘처럼 왕래가 빈번하지 않았습니다. 교통수단도 별 게 없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 예언이 성취되기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누가복음 2장을 보면 기가 막히게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가 그때 호적 명령을 내립니다. 황제 스스로 한 것 같지만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후손으로 본적지가 베들레헴입니다. 그래서 만삭인 마리아를 동반하고 갑니다. 그곳에 머물던 바로 그때 아기 예수가 탄생한 겁니다. 이런 식으로 350번이나 되는 예언들이 하나하나 성취된 겁니다. 그 중 하나라도 틀리면 성경이 거짓말이 되고, 예수님도 신뢰받지 못 했을 겁니다.
미국의 유명한 수학자 피터 스트너에 의하면 어떤 사람에게 8가지 내용이 동시에 들어맞을 확률은 영(zero)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텍사스 주(한반도보다 훨씬 큼) 전체에 동전 2인치(5cm)를 쌓아놓고 미리
표시해 놓은 것 한 개를 단번에 찾아낼 확률과 같다는 겁니다. 당연히 100%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
350번 맞았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성경에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 메시아임이
틀림없습니다.
② 동정녀 탄생 :
예수님은 무죄하신 분으로 죄의 오염이 없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 처녀의 몸을 빌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③ 지상 생애 :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보면 기적과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그분의 말씀, 그분이 하신 사역 모두가 그랬습니다. 그분이 말씀을
하시면 청중들이 모두 감탄하고 놀랐습니다.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 일러라” 거라사 광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신 후 치유된 거라사
인이 사람들에게 증거하자 모두 놀랐습니다. 막5: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풍랑을 향해 외치시고 잔잔하게 하시자,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마8:27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④ 십자가 죽음 :
그분의 죽음은 또 얼마나 놀라운 죽음입니까? 빌라도 총독은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불법한 유대인들의 저항으로 자리의
위협을 느낀 빌라도가 십자가 형을 집행합니다. 무죄하신 분이 피 흘려 죽은 겁니다. 하나님은 이를 사용해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속하는 대속의 십자가 복음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도 세우고, 사랑도 세우면서 인간을 구원하셨으니 얼마나 절묘한 일입니까?
⑤ 부활과 승천 :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이 돌무덤에 매장되었는데 사흘 째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긴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올라가셨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또 부활하신 몸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가셨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⑥ 성령을 통한 임재 :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와 함께, 가까이 계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믿는 자들의 마음에 와 계십니다. 그리고 곁에 와
계십니다. 누구에게나 동시에 와 계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승천하지 않았다면 한 군데 계시면 다른 데는 계실 수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면 다른 교회의 예배는 예수님이 안 계셔서 공을 치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도, 다른 교회에도 동시에 계시므로 어디서나 예배가 가능한 겁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⑦ 재림 :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이 장차 재림하신다는 것도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분은 장차 재림하셔서 모든 인간을
심판하게 됩니다. 그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무궁한 하늘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묘자라는 이름 그대로입니다.
[기묘자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 : 놀라운 인생(Wonderful Life)
예수님은 ‘기묘자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찾아오셔서 놀라운 일들을 해 주십니다.
1. 영혼의 놀라운 변화 :
예수님이 우리 영혼에 오시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영혼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왕 되셔서 내 마음을
다스리면 내 마음이 천국이 됩니다. 우리가 장차 육신의 죽음 이후에 들어갈 천국도 사모해야 되지만, 내 영혼에 지금 이루어지는
천국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맛보는 영생이요, 신앙의 진수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 영혼에 기쁨과 평안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죄로 말미암아 고달픈 인생을 살던 그 여인이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영생의 기쁨)를 발견하고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피하고만 싶었던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물동이를 버려둔 채 ...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이 우리 영혼에 부어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편리함이나 안일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런 기쁨과 평안이 영혼 가운데 넘치면 주변 환경이나 조건이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495장 찬송가 가사
그대로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 ”
어느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집이 꽤 부유했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늘 다투고, 자녀들도 늘 말썽을 피웁니다. 그러다 보니
매사에 불만불평입니다. 얼굴도 어둡고, 말하는 것마다 짜증입니다. 지옥 같은 나날입니다. 친한 친구에게 상담을 해 봤지만 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후 길에서
상담했던 친구를 만납니다. 친구를 깜짝 놀라서 묻습니다. “얘, 너 얼굴이 좋구나. 요즘 좋은 일 있니? 남편 괜찮아?
아이들도?” 부인은 대답합니다. “아니, 그냥 그래.” 친구는 더욱 놀랐습니다. 그냥 그대로인데 그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얼굴이 환하니? 이상하다, 얘.” 그러자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
똑같지만, 내가 변했어. 나 자신이 변하니까 이래. 예수님을 만났거든. 그러니까 마음이 편하고 기뻐. 그리고 기도하면 앞으로
예수님이 내 남편과 아이들도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거든!”
그렇습니다. 세상 것으로 만족할 수 없지만,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시면 천국의 기쁨을 맛보고, 천국의 평안을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기묘자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 영혼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주십니다.
2. 인격의 놀라운 변화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살다 보면, 점진적으로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죄와 욕심을 따라 살던 옛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새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
고대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의 일화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과 이방종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 모니카가
늘 눈물로 기도하던 중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옛날
함께 방탕하게 지내던 여자를 만납니다.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쳐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따라오면서 외칩니다. “당신
어거스틴 아니요? 맞는데, 왜 그냥 가는 거야? 당신이 나한테 그럴 수 있어?” 그러자 그가 돌아서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나는 어거스틴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어거스틴은 이미 죽었습니다. 나는 다른 어거스틴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놀라우신 분입니다. 한 인간을 폐품에서 명품으로 완전히 변화시켜 놓은 겁니다.
3. 생활의 놀라운 변화 :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 생활 속에 오시면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어려운 난제가 놀랍게 해결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3
“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
그리고 기도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한번은 교계신문에서 한 여학생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영국의 옥스퍼드대를 비롯해서 5개 명문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랑스 국제학교에 유학을 갔는데, 수석으로 졸업하고 명문대학에 당당히 합격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유학 당시 영어와 프랑스어를 잘 했던 게 아닙니다.
아주 평범했답니다.
그런데 단 기간에 어떻게 그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는지 도대체 모를 일입니다.
그 자신과 부모들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빽’이었다고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기도
생활을 하고 교회 봉사에도 열심이었는데, 유학 가서도 어려울 때마다 금식 기도를 하고, 온 가족에게 기도를 부탁하곤 했다는
겁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했겠죠.
그래도 놀라운 일입니다.
기적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찬송하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기묘자이십니다!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시고, 새 사람으로 변화 받고, 날마다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묘 / 8구절
1. [레위기 8:7]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2. [사사기 13: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3. [역대하 2:14]
이 사람은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식양에 능한 자니 당신의 공교한 공장과 당신의 부친 내 주 다윗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4. [욥기 37: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5. [욥기 37:16]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
6.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7. [이사야 23:16]
잊어버린바 되었던 기생 너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행하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케 하라 하였느니라
8. [이사야 28: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세아흐( sêach )(사상, 뜻) שֵׂחַ 스트롱번호 7808
어원 / 7818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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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사, 남성 생각, 뜻, 사상, 암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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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뜻(암 4:13).
3월 20일(목) 사사기 11-12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심판하시는 여호와(사사기 11: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I have not wronged you, but you are doing me wrong by
waging war against me. Let the LORD, the Judge, decide the dispute this
day between the Israelites and the Ammonites."
심판하시는 여호와(the Lord, the Judge)
아도나이 하쇼페트( יְהוָה הַשֹּׁפֵט)
여호와(3068) 예호바(Yehôvâh) יְהֹוָה
스트롱번호 3068
어원 / 1961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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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유명사 자존자, 영원한 자 : 히브리인들이 최고의 하나님으로 여기는 신의 이름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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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여호와(출 20:7, 레 24:13).
김일성의 남반부 혁명을 위한 10대 교시
김형석교수보다 6살 위 / 같은 주일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
김형석교수가 현재 103세 김일성이 생존했다면 109세
4번째 남반부의 교회를 무너트려라.
심판(8199) 샤파트( shâphat) שָׁפַט
스트롱번호 8199
구약 성경 / 142회 사용
신명기 16:18 / 분사형 / 쇼펫트(שׁוֹפֵט) 재판장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과 유사를 둘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암몬 왕은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점령한 그들의 땅을 이제 평화롭게 돌려 달라고 합니다.
입다가 그 땅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당시 아모리 족속이
점령했고,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셔서 이스라엘이 300년간 거주했다고 반론합니다.
그러나 암몬 왕은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입다는 이스라엘 역사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길르앗의 장로들과 흥정했던 입다가 이제 암몬 왕과 협상을 시작합니다.
길르앗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암몬 왕에게
입다는 역사적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은 암몬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으로부터
길르앗 땅을 차지했습니다(15, 21절).
그 당시 요단 동쪽은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선제 공격하는 아모리 왕을 물리치고 길르앗 땅을 점령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요단 동쪽은 두 지파 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22절. 신 3:12~13).
입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땅 소유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역사를 바로 알고 기억하는
것이 분쟁 해결의 열쇠입니다.
* 암몬 왕의 주장은 어떤 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나요?(16~22절)
무력이나 위협이 아닌 정당성을 갖춘 대화로 해결할 일은 무엇인가요?
모든 주장에는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입다는 땅 소유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이어 신학적 정당성 면에서 암몬 왕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그는 온 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길르앗 땅을 이스라엘의 소유로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3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땅 소유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함을 항변합니다.
역사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에서 길르앗 땅의 소유권을 논증한 입다는 최종 판결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두
나라 사이의 영토 문제에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한 것입니다.
'심판하시는(히, 하쇼페트) 여호와'(27절)는 '사사(재판관)이신
여호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사이시며 온 세상의 재판관이십니다.
* 입다가 하나님께 판결을 요청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27절) 역사를 바라보는 입다의 시각에서 내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기업을 빼앗기 위해
거짓 주장으로 위협하는 원수의 전략을 깨뜨리는 지혜를 말씀 속에서 배웁니다.
심판주 하나님께 판결을 맡기며 간구합니다.
세상이
주장하는 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역사의 주관자요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세상을 압도하게 하소서.
입다는 암몬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그가 돌아올 때 그의 무남독녀가 춤추며 나와서 그를 영접합니다. 입다의 딸이 두 달간 친구들과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애곡하고 내려오자 입다는 서원대로 행합니다.
이기적인 욕망과 서원 (29~31절)
암몬과의 협상 결렬로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합니다(29절).
이는 하나님이 입다와 함께하신다는 표징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순간 입다는 하나님께 경솔한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이 만약 승리를 주신다면, 집으로 돌아올 때 맨
처음 마중 나온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신 제사로 암몬 사람이 그들의 신 몰렉을 숭배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입다는 암몬과 싸우면서 암몬 사람처럼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입다의 서원은
'머리'(11:9)가 되려는 개인적 욕망과 연결됩니다.
조건을 걸고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은 불신앙이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행위입니다.
입다가 하나님께 한 서원의 동기는 무엇이었나요?(11:9절 참조)
내가 아직 포기하지 못한 이기적 욕망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요?
입다의 승리와 서원 이행 (32~40절)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가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갑니다.
하나님은 입다의 서원과 무관하게 이스라엘에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개선하고 돌아오는 입다를 처음 맞은
사람은 그의 무남독녀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한탄합니다.
자신이 한 어리석은 서원 때문에 하나뿐인 딸이 희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승리의 기쁨은 애곡으로 바뀌고 맙니다.
입다의 서원은 믿음을 가장한 무지한 불신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율법은 잘못된 서원을 돌이키거나 축소시킬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레 27:2~8).
결국 율법에 대한 무지가 입다와 그의 딸을
불행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하나님 뜻과 상관없는 헌신은 바른 헌신이 아닙니다.
* 입다의 잘못된 서원이 초래한 불행은 무엇이었나요?
거래(흥정)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하나님의 영으로 세밀히 인도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요!
그러나 주님 뜻과 상관없이 경솔하게 말을 내뱉어 발목 잡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욕심과 고집 때문에 승리의 은총을 애곡으로 바꾸지 않도록 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영생(永生) 조에(zōē) ζωή, ῆς, ἡ 스트롱번호 2222
어원 / 2198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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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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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육체적 생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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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 θάνατος, 롬8:38, 고전3:22, 빌1:20,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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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ἐν τῇ ζωῇ σου: 네가 살아있는 동안, 눅16:25, 행8:33, 약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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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ἐν τῇ ζ. ταύτῃ: 이생에, 고전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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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τέλος ζωῆς: 생의 마지막, 히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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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ζωὴ κ. πνοή: 생명과 숨, 행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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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πνεῦμα ζωῆς: 생기, 계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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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ψυχὴ ζωῆς; 살아있는 것, 계16:3. ㉠ [하늘의 몸으로 옷 입은 사람에 대하여] 고후5:4. ㉡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관하여] 롬5:10, 고후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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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의 도구, 생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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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초자연적인 생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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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과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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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나님에 대하여] 요5:26, 12:50, 요일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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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리스도에 대하여] 요1:4, 5:26, 행3:15등, 요일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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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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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서 얻은㉠ ἐν καινότητι ζωῆς περιπατεῖν: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 롬6:4. ㉡ ἀπηλλοτριωμένοι τ. ζωῆς τ. θεοῦ: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 엡4:18. ㉢ ἡ ζωὴ τ. ἀνθρώπων [사랑의 생명, 구원과 영광의 생명에 대하여] 요6:68, 행5:20, 고후4:12, 빌2:16, 딤후1:1,10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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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종말의 축복된 시기에 있을 생명에 대하여] ㉠ ἐν τῷ αἰῶνι τῷ ἐρχομένῳ ζ. αἰ: 내세에서의 영생, 마19:29등, 막10:30, 눅18:30. ㉡ ζ. ἐκ νεκρῶν: 죽은 상태로부터 벗 어난 사람의 생명, 롬11:15, 갈6:8, 딤전1:16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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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생명(마7:14), 이 세상의 삶(고전15:19), 생 기(계11:11).
영생은 죽어서 천국 가서 영원히 산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당연히 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이 이땅에 주시려는 영생일까요?
결코 그런 것이 영생이 아닙니다.
영생이라는 뜻은?
헬라어에 조에 아이오네(ζωε αιωνε) 라고 하는 영생입니다.
이 원뜻은 영생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하면 오는 세대, 오는 세상의 삶이란 뜻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주권을 찬탈해서 아담을 선악과에 순종하도록 시험과 악에 빠지게 하여서 아담에게서 통치 권을 빼았아서 통치하는 이 세대를
사망의 시대 사망입니다.
고난의 시대 고난을 증상으로 나타나는 죽음의 세대가 왔습니다.
이 땅에 사망이 왔다.
사망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오셔서 이 땅을 다스리는 영생의 시대를 오는 세대.
즉 헬라어에 ζωε αιωνε 영생입니다.
영생으로 오셔서 세상을 하나님이 통치한다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 말은 영적인 삶도 아니고 시간적으로도 영원히 사는 삶이라는 말도 아니고 오는 세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세상의 삶을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영생이란?
다시 포도나무의 비유로 말한다면 우리가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에게로 인생의 뿌리 박혀 하나님으로부터 양식과 수분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살아가는 삶을 영생이라 말합니다.
영생은 하나님적(신적) 삶이다.
사단의
나라는 결핍이다.
거기에는 항상 욕구불만이 있다.
거기에는 기쁨대신에 아픔과 불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대신에 아귀다툼이
있습니다.
다툼과 착취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다른 사람의 것을 더 빼앗으려고 늑대노릇 하려고 다툼과 착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단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사망은 사단의 통치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사망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 곧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오는 시대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영생을 가져다준 그리스도의 복음은 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단의 통치로부터 해방시켜서 하나님이 자신의 의와 생명의 통치로 우리를 회복시키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 세대 끝에 하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야 예수님을 보내서 사단의 세력을 꺾고 오는 세대영생의 시대를 여시므로 그 하나님의 하나님 우리를 다스려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그 약속이 성취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영생을 표현할 때 첫 번째의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결혼식에 포도주가 떨어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을 그리는 것입니다.
시편23편에서도
구원의 상태를 영생의 상태를 하나님께서 내게 큰 잔치상을 배설하셔서 내 포도주잔이 넘치나이다.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그 구원의
잔치 영생의 삶이 내 원수들의 목전에서 곧 오는 시대에 메시야가 오셔서 다스림으로 오는 하나님 나라를 잔치로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결핍과 사망이 왕노릇하는 이곳에 풍요로움과 배부름으로 넘치게 한다는 것이 영생이고 구원입니다.
영생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서로 나누고 권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는 시대에 영생을 그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시작되는
잔치를 말하면 그려내는 연상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이 영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는 잔치의 그림과 상속의 그림을 섞여 있습니다.
그 뜻을 풍부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탕자가 아버지에로의 귀환상태를 아버지가 그에게 다시 가락지를 끼우고 예복을 입힘으로 상속자로
회복시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풍악을 우리는 큰 잔치를 베풉니다.
그 뒤에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말합니다(눅 15:25, 34).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함에 참여함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없어지고 거기에는
슬픔과 아픔이 전혀 없는 그런 상태를 생명이라고 말한다.
구원을 생명이라고 하고 지금 이 사탄의 다스림으로 사망이 왕노릇하는
아담적 실존을 죽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다스리는 구원의 상태는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이세상에 사탄의 다스림을 받은 사망을 삶이라 한다면 이 사망과는 다른 새로 이 땅에 새 세상 , 오는 세상의 삶이란 뜻으로 영생이라고 합니다.
영생은 내용적으로 신적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다시리는 생명이 영생입니다.
이런 구원이 예수께서는 약속을 하면서 그런 구원이 곧 온다고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힘이, 영생의 힘이 예수님의 자신의 치유 활동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뛰며 앉은 뱅이가 걸느며
나변환자가 낳은 자신의 치유 활동이 곧 올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실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이 다스리는 것을 하나님의 구원의 통치가 지금 실현되고 있음을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맘몬(Mammon)의 우상숭배 빠져있는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가 회개하고 맘몬의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았을 때 예수께서 '이 집에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다'선언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즉 부정적인 언어로 말하면 죄가 용서되고, 긍정적인 언어로 말하면 의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삭개오가 이웃을 착취하였고, 이웃은 삭개오를 멸시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다스리심으로
삭개오는 이웃과 갈등 속에서 오는 상호증오와 상호 공포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샬롬이 이곳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샬롬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치유입니다.
구원의 치유입니다.
이 치유는 삭개오가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 마음에 평화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치유를 병고와 귀신 쫓아내는 것만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많은 죄인들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하나님의 죄 용서를 선언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그런 치유 활동 이것이
복음서의 근저에 깔린 영생의 내용입니다.
영생의 회복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회복, 이웃과의 관계회복이 더 근본적인 치유이입니다.
이것이 육신의 병고의 회복으로도 나타나고,
사회 궁핍의 해방으로부터로도 나타납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곧 오는데 그 하나님 나라가 자신의 치유를
통해서(치유는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결핍으로부터의 해방, 하나님의 충만함에 참여함으로 일어나는 것을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실현되어 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3월 19일(수) 사사기 9-10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진실하고 의로우냐(사사기 9:16)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을 삼았으니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 행한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Now if you have acted honorably and in good faith when you made Abimelech king, and if you have been fair to Jerub-Baal and his family, and if you have treated him as he deserves.
아비멜렉(אֲבִימָלֶךְ, Ǎḇîmeleḵ)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사악하게 판결한 판관이다.
그의 이름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고 해석 될 수 있으며,
"아비멜렉"은 또한 블레셋 왕들의 공통적인 이름이었다.
그는 사사기 8:31에서 기드온과 세겜 족 첩의 아들로 소개되며, 그의 통치에 관한 성경적 기록은 사사기 9장에 기록되어 있다.
출생
아비멜렉의 어머니는 기드온의 세겜 족속 첩이었으며 가나안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70형제들과 함께 키워 졌다.
골육상쟁
기드온이 죽은 후, 아비멜렉은 세겜에 가서 기드온의 아들들 70명보다 골육인 스스로가 낫지 않냐고 선동을 하여 세겜의 모든 이가 그의 편에 서게하였다.
바알브릿 신전에서 준 은 70으로 건달패들을 사서 거느리고는 오브라에 있는 기드온의 집으로 가서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한 바위에서 죽였으나, 숨어버린 막내 요담은 죽이지 못했다.
이후 세겜의 모든 어른들과 밀로의 온 집안사람들은 세겜에 있는 석상 옆 상수리나무 아래 모여서 아비멜렉을 그들의 왕으로 세웠다.[1]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무려 아들이 칠십 명이었다고 합니다(삿 8:30).
특히 세겜에 있는 첩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아비멜렉(나의 아버지는 왕)"이라고 합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에 '아비멜렉'은 오브라에서 기드온의 아들 칠십명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 기드온의 막내 아들 "요담"은 도망하여 그리심산에 올라가서 세겜 사람들을 향하여 네 종류의 나무 이야기로 '아비멜렉'의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요담의 나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감람나무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자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되므로 왕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무화과나무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자 무화과나무는 아름다운 실과를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포도나무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자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새 술을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하자 가시나무는 내 그늘에 피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이 나와서 모두 살라버리겠다고 합니다.
왕이 되기를 거부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는 아비멜렉에게 죽임을 당한 기드온의 아들들을 말합니다.
가시나무는 스스로 왕이 된 아비멜렉을 말합니다.
요담의 이 비유는 아비멜렉을 조롱하는 것으로 과연 세겜 사람들의 결정이 "진실하고 의로우냐?" 하고 꾸짖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비멜렉 처럼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겠다고 가시나무처럼 꿋꿋하게 일어났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의 봉기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올바른 것이 좋은 것이라고 깨우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려고 눈치를 보며 자리에 연연하는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실하고 의로운 것'이 아니면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담의 우화]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드온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하나님 한 분 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8:22,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을 삼은 것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함이었다(2, 3절).
따라서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결코 진실되거나 의로운 행동이 될 수 없다.
요담은 그들에게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 여기서 '보답'에 해당하는
'그물'(*)은 선악에 대한 보상, 답례 등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에는 개인이나 민족의 선악 행위가 현실적으로 그대로 보응받는다고
하는 보응관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수 23:9-16).
이는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의 독특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현세적으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갚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다(롬12:19).
한편 세겜 사람들은 이러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은공을 악행으로
갚았다(1-6절).
때문에 요담은 본절에서 이러한 잘못된 보응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현실적 정책이 다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잇는
것이다.
진실하고 의로우냐(베에메트 우베타밈) בֶּאֱמֶת וּבְתָמִים
* 진실(에메트. ’emeth) 571 אֶמֶת 스트롱번호 571
발음 [ ’emeth ]
어원 / 53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7회 사용
* 539. אָמַן 스트롱번호 539
구약 성경 / 100회 사용
* 의(타밈. tâmîym) 8549 תָּמִים
스트롱번호 8549
어원 / 여성 תְּמִימָה, 8553에서 유래
구약 성경 / 91회 사용
관련 성경 / 정결한(겔43:22), 흠 없는(출12:5, 민6:14, 겔46:6), 완전한(창17:1, 삼하22:26, 시101:2), 진실한(삿9:16), 안전한(삼하22:33), 온전한(욥12:4). [부] 종일토록(수10:13), 진실로(욥36:4), 정직히(시84:11). [명] 진실(삿9:19, 시15:2), 실상(삼상14:41).
사사기 9장은 기드온의 아들 "요담"에 의해서 알려진 "네 종류의 나무 이야기"로 유명한 말씀입니ek.
감람나무(Olive Tree) 2132 자이트(zayith) זַיִת
스트롱번호 2132
- 어원 / 연계형 זֵית, 복수 זֵיתִים,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
- 구약 성경 / 38회 사용
-
1. 명사, 남성 감람나무, 삿9:9, 신8:8
-
2. 명사, 남성 감람나무 열매, 미6:15.
-
3. 명사, 남성 감람나무 가지, 감람나무 잎, 슥4:11.
-
관련 성경 / 감람(창8:11, 레24:2, 왕하18:32), 감람원(출23:11, 수24:13, 왕하5:26), 감람나무(신6:11, 삿9:9, 대상27:28), 열매(신28:40).
무화과나무(Fig Tree) 8384 테에나( teʼênâh) תְּאֵנָה
스트롱번호 8384
- 구약 성경 / 39회 사용
-
1. 명사, 여성 무화과나무, 창3:7, 민13:23, 20:5, 신8:8
-
2. 명사, 여성 무화과 열매, 왕상5:5(4:25), 왕하20:7, 미4:4, 슥3:10.
-
문법설명 / 복수תְּאֵנִים, 외래어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임
-
관련 성경 / 무화과나무(창 3:7, 시105:33, 학2:19), 무화과(민13:23, 느13:15, 렘24:1).
포도나무(The Vine) 1612 게펜(gephen) גֶּפֶן
스트롱번호 1612
어원 / 혼성. 어미활용 גַּפְנִי, 복수 גְּפָנִים, ‘구부리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
구약 성경 / 55회 사용
-
1. 명사 덩굴, 덩굴 식물, 민6:4, 삿13:14, 왕하4:39.
-
2. 명사 포도나무, 창40:9, 사7:23, 24:7, 32:12, 삿9:13.
-
관련 성경 / 포도나무(창40:9, 시78:47, 학2:19), 나무(창40:10), 포도(신8:8, 왕하18:31, 사36:16), 들포도덩굴(왕하4:39), 포도송이(아7:12).
가시나무(The Bramble) 329 아타드( ’âṭâd ) אָטָד
스트롱번호 329
- 구약 성경 / 4회 사용
-
1. 명사, 남성 털갈매 나무.
-
2. 명사, 남성 가시나무, 삿9:14,15.
-
관련 성경 / 아닷(창50:10,11), 가시나무(삿 9:14, 15, 시 58:9).
기드온이 죽은 후에 기드온의 첩
여룹바알이라고 하는 사사 기드온이 죽은 후에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으로 가서 그 어미의 형제들에게 누가 너희들을 다스리는 것이 좋겠느냐? 하며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인이 다스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너희 골육지친인 이 '아비멜렉'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좋을까? 하며 세겜 사람들을 회유합니다.
그러자 세겜 사람들은 자기들의 골육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것이 좋다고 동조합니다.
이때 아비멜렉은 그의 형제들 칠십인을 모두 죽여버리고 왕이 됩니다.
마침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심산으로 올라가서 나무 이야기로 세겜 사람들의 잘못을 꾸짖습니다.
요담의 나무이야기는 구약에서 유일한 비유라고도 합니다.
요담(기드온의 아들)과 나무의 비유
요담의 우화(사사기 9:1-21)
●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 대군을 무찌른 기드온은 이스라엘 사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지도자였다. 기드온의 별명이 여룹바알인데, 그 뜻은 ‘바알과 대적하다, 바알과 논쟁하다’이다. 기드온이 바알신상과 바알 단을 깨어버렸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었다. 그가 미디안을 무찌르고 사사로 있었던 40년동안 이스라엘은 태평하였다. 그런데, 기드온은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사사로서 영화를 누리는 가운데 많은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고대의 이방 사회에서 많은 부인을 두었던 사람은 왕이었다. 따라서 기드온에게 아내가 많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법에는 무지하고 무관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선민으로서의 구별된 삶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가치관에 젖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혼에 대한 성경의 원리는 일부일처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조상들도 당시 이방세계의 영향으로 아내를 많이 두고 축첩하였는데, 언제든지 형제들 간에 골육상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 뒤끝이 좋지 않았다. 기드온의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비멜렉이라는 기드온의 아들이 등장한다. 기드온과 세겜 출신의 가나안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첩의 아들이다. 아비멜렉이란 이름의 뜻은 ‘아버지는 왕이다’인데, 아비멜렉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짐작케 하는 이름이다. 그 이름대로 그는 야심이 큰 자였으나 첩의 아들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왕이 되기 위해 이복형제 70명을 한자리에서 죽인 것으로 보아 평소 배다른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거나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포악하고 잔인한 성품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아마도 그의 주체할 수 없는 야욕과 열등감이 합쳐져서 그같은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9:1 이하에 보면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세겜에 가서 그 어미의 형제, 곧 외가댁 사람들을 충돌질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얼마나 정치적 계산이 빠르고 술수가 뛰어난 자인지 알게 한다. 세겜은 예루살렘 북쪽 가나안땅 중앙에 자리잡은 주요한 성읍으로,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던 곳이며, 특히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선포했고 도피성으로 구별했으며, 또 죽기 직전 언약갱신 의식을 거행했던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였다.
그런데, 기드온이 사사가 된 이후, 기드온이 만든 에봇 때문에, 기드온의 성읍 오브라가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세겜 사람들에게는 자존심 상한 일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비멜렉은 이러한 세겜 사람들의 감정을 이용하여 왕이 되려 했고, 세겜 사람들 역시 아비멜렉을 왕으로 옹립하고 바알 숭배를 회복하여 자신들의 종교적 자존심을 세우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상호간에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세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아비멜렉은 손쉽게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 이스라엘 민족 최초의 왕 위에 오른다.
● 그런데 아비멜렉이 형제 70명을 학살할 때, 기드온의 말째 아들 요담이 용케 아비멜렉의 눈을 피해 살아남았다. 얼마후 아비멜렉이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요담은, 용기를 내어 세겜 성읍이 내려다 보이는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세겜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저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저주를 선포하게 된다. 그 내용이 바로 요담의 우화이다.
그리심 산 꼭대기에서 크게 외친 소리가 산 아래에 있던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었다는 사실은 최근의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것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는 협소한 골짜기가 있었고, 그 절벽은 바위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요담은 가나안 땅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들을 등장시켜 우화형식으로 장차 세겜 사람들에게 불어닥칠 저주를 선포했다.
좁게는 세겜 사람들, 넓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암시하는 나무들이 하루는,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기 위해 감람나무를 찾아간다.
(9:8)‘기름 붓다’의 ‘마솨흐’는 ‘성별하다’란 뜻도 있어서 어떤 인물을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 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은 주로 제사장의 위임이나 왕의 위임을 상징하는 행위로 기록되어 있다.
감람나무에게...우리 왕이 되라. ‘감람나무’(자이트)는 곧 올리브를 가리킨다. 올리브의 열매와 기름은 고대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무였다. 성경에서는 감람나무가 ‘아름답다’고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겉모양이 아닌 풍부한 열매와 기름의 수확에 비유되고 있다. 특히 감람나무는 왕들의 기름부음과 등잔의 연료로 사용되었고, 또한 환자의 치료에도 유효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으며, 선한 행실의 표본으로 비유되고 있다. 따라서 나무들의 왕을 뽑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추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9:9)감람나무 기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감람나무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영화롭게 하는 귀중한 것이었다. 먼저 그것은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때, 하나님의 종들인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세울 때, 그리고 성막과 지성물 위에 발라 거룩하게 구별할 때 사용되었다. 또한 감람유는 사람들의 치료 약품과 등잔 연료로 요긴한 것이었다.
‘요동하다’의 ‘누아’는 흔들다‘, ’움직이다‘, ’흩뜨리다‘ 등의 뜻으로 여기서는 모든 나무 위에 군림하여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감람나무는 ’내가 어떻게 요동하겠느냐‘고 반문함으로써 자신이 결단코 자신의 본분을 외면한 채 다른 일을 하지는 않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들은 이번에는 무화과나무에게 가서 왕이 될 것을 요청한다. (9:10)무화과나무는 가나안 땅의 과실수 가운데 가장 흔하여 수확이 많은 나무이다. 주로 무화과 열매는 식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또한 치료하는데 있어서 귀중한 약품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무화과나무는 성경에서 상징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 ‘번영과 평화’, ‘열매없는 신앙’,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 등을 비유하고 있다.
(9:11)그러자 무화과나무도 자기에게 맡겨진 원래의 사명을 내세워 거절을 한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설탕이 없던 고대에 당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열매가 크고 그 속이 꽉 차서 식용을 위한 선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무성한 잎사귀는 나무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여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따라서 이같은 귀한 자신의 사명이 있는데,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겠느냐고 거절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무들이 포도나무를 찾아간다. (9:12)포도나무는 가나안 땅에서 재배되는 과실수 가운데 이스라엘과 가장 연관이 깊은 나무이다. 물이 풍부하지 못한 가나안 땅에서는 포도열매로 만든 포도주가 음료로 사용되었다. 특히 포도주는 제사를 드릴 때 ‘전제’와 함께 드려졌고, 헌물이나 십일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세금이나 품삯으로 지불되었고, 치료제로도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9:13)그래서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신의 직임에 충실하겠다고 말하며 나무들의 요청을 거절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포도주는 번제와 예물로 드려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잔치에 흥을 돋우어 주고, 목마름을 해소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생명의 기쁨이다. 특히, 포도주는 곤비한 자에게 새 힘을 돋우는 데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준 이같은 아름다운 은사와 직무를 버릴 수 없음을 포도나무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처럼 왕을 세우고자 하는 자신들의 욕망이 무산될 지경에 이르자,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나무들이 가시나무에게로 가서 자신들의 왕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를 의아하게 만드는 것은, 나무들이 왜 가시나무에게까지 가서 자신들의 왕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게 되었느냐 하는 사실이다. 나무들 가운데는 15절에도 나와 있듯이,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은 귀하고 값진 나무들도 있는데 말이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고대 근동의 최고급 목재로서 성전이나 왕국 건축의 주된 재료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세겜의 방백들을 가리키고 있다.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눈이 가려져서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는지 모른다. 나무들은,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존귀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야겠다는 일념으로, - 사실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적극 말리셨던 것이다 - 자신들의 욕망에 눈이 멀어, 이제는 가시나무에게까지 가서 자신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9:14)가시나무 ‘아타드’는 ‘찌르다’란 어근에서 유래하여 가시나무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가시나무는 불신앙과 심판, 파멸과 고통, 그리고 거짓 선지자 등에 비유되는 것처럼 폭군인 아비멜렉을 상징한다. 감람나무처럼 좋은 기름도 생산하지 못하고, 무화과 나무나 포도나무처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나무는 오히려 사람을 찔러 고통을 주고 땔감으로 사용될 뿐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눈 어두운 나무들을 앞에 두고 이제 가시나무는 마음껏 저들을 농락한다. (9:15)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사실 가시나무에는 쾌적한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찌르는 것과 그로 인한 고통만을 줄 뿐이다. 요담이 이와 같은 역설을 사용한 것은 가시나무인 아비멜렉에게는 쉴만한 그늘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를 왕으로 삼은 세겜 사람들이 그늘 대신 가시의 고통을 받게 될 것임을 대조적으로 암시하기 위함이다.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사를 것이니라. 가시나무 그늘에 피난처를 삼으라는 역설과는 달리,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온다는 위협은 사실이다. 가시나무는 아주 쉽게 불에 타는 성질을 가져서 땔감으로 이용된다.
요담은 이처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우화를 통해 세겜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으나, 저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3년후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자, 아비멜렉은 세겜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자신은 세겜 망대로 도망친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윗짝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깨어지고, 고통 가운데 자신의 병기잡은 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을 찌르게 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 몇가지 교훈
1)자녀교육의 부재가 비극적인 사태를 양산한다는 사실이다. 추측컨대 기드온은 수많은 자녀를 거느린 탓에 그들에 대한 올바른 신앙교육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특히 첩의 소생이었던 아비멜렉은 다른 형제들에 비하여 더욱 기드온의 영향을 적게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아비멜렉은 그의 태생적 열등감에 신앙 교육의 부재까지 겹쳐 인격적으로 결함을 지닐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권력 쟁취를 위해 형제들을 살해하는 범죄까지 자행했을 것이다. 성도들은 자녀에 대해서는 바른 신앙교육 실시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음을 인식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중고등부 겨울수련회 등 참석시키라.)
2)아비멜렉은 하나님의 통치를 무시한 채 스스로 자기를 높이기 위하여 음모와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은 그도 배반을 당했고 맷돌에 맞아 머리가 깨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즉 그는 심은 대로 거운 악인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평한 재판장이시다. 혹시 나에게도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한 채 ‘내가 높아지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온갖 권모술수를 자행하는 모습이 발견되지는 않는가?
3)탐욕에 빠진 한 개인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기까지는 먼저 아비멜렉의 탁월한 정치 능력도 있었으나, 그의 감언이설에 휘말려 왕으로써 추대한 세겜인들의 우매함이 그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다분화된 집단을 이루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격있는 지도자 선택의 중요성을 교훈할 뿐만 아니라 악한 자의 행동에 대한 동조, 혹은 무관심이 결국 자신까지도 파멸케 할 수 있음을 경고해 준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듯이, 성도들에게도 진정한 왕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세상의 위협이나 공격 앞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말고, 여러분의 심령의 왕좌에 주님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요담의 가시나무 비유(사사기 9:7-21)
오브라에서 죽음을 면한 요담은 그리심 산꼭대기로 올라가서세겜 사람을 향해 외쳤습니다.
이곳은 아비멜렉의 위협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그가 여기서 외친 메시지는 예언적인 것이였습니다.
이메세지는 흔히 비유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하나의 우화입니다.
요담의 언설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룬 것도 아니고 실제 생활에서 이끌어낸 이야기도 아닙니다.
본 우화는 나무들이 한 왕을
어떻게 뽑게 되었는지를 서술해 줍니다. 나무들은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3대 과수들인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포도나무들에게
차례로 그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제각기 매우 의심스러운 왕의 영예를 차지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과일 맺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무들은 아무쓸모가 없는 가시나무에게 갔습니다. 가시나무는 기다리기라도
한듯이 선뜻 그들의 왕이 되어주겠다고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가시나무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주었습니다.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9:15)
이 우화의 적용은 자명한 것입니다. 백성들(나무들)은 기드온(과수)에게 그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거절하자 백성들은 아비멜렉(쓸모없는 가시나무)에게로 갔습니다. 그는 언른 왕관을 자기 머리에 얹었습니다. 또 때가되면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들은 태우게 될 것이었습니다. 요담은 한 가닥 소망의 메시지를 부언하였는데 그것은 세겜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태운다는 것입었습니다(9:20).
아비멜렉의 왕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3년 후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권위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9:22-29).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에게 행한 포악한 일을 갚되...’(9:24). 어느 날 가알이라는 한 군인이 세겜에 나타나서 백성들을 충동하고 아비멜렉에 대한 반란에 앞장섰습니다.
그 때에 성읍 장관으로서 아비멜렉의 충복이었던 스볼이 왕에게 반란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로써 세겜을 철저히 파괴시킨 일련의 연쇄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9:30-49). 아비멜렉은 스볼의 조언에 따라 야밤에 세겜으로 접근하였습니다. 그의 군사들은
동틀 때까지 숨어 있다가 성읍으로 진입하였습니다. 한편 스볼은 아비멜렉의 편이었지만 내색을 하기 않고 세겜 사람들의 반란에
호응하는 척하였습니다. 그는 가알과 함께 성문에 있다가 아비렐렉의 군사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가알에게 나가서 싸우라고
독려하였습니다(9:38). 가알은 아비멜렉을 맞아 싸웠지만 막아내지 못하고 성안으로 도주하였습니다. 아비멜렉도 일단 아루마로
퇴진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스볼은 계속 세겜 사람들의 편을 드는 척하며 가알의 패배를 구실삼아 그를 제거시켰습니다. 그 결과 세겜
사람들은 지도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세겜 주민들은 밭으로 나가 농사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비렐렉은 기회를 잡아
이들을 진멸하고 세겜성을 탈취한 후 파괴시키고 소금을 뿌렸습니다. 이것은 세겜이 소금밭처럼 황폐케 되기를 바란다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9:45).
한편 세겜성의 유지들은 ‘엘브릿 신당의 보장(대피소)’(9:46) 혹은 ‘(벧)밀로’(9:20)라고 불리는 은신처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이 마지막 세겜인 천 명까지 모두 불태워 죽였습니다. 반면 두 개의 얼굴을 가졌던 스볼의 행방에
대해서는 본문에 더 이상 언급된 것이 없습니다.
아비멜렉은 다음의 전략으로 데베스라는 인근 성읍을 점령키로 하였습니다. 이 성은 세겜의 반란과 관련되었음이
분명합니다(9:50-57). 아비멜렉은 성 안으로 들어갔지만 성민들은 모든 요새로 대피한 후였습니다. 아비멜렉은 여기서도 성민들을
불태워 죽이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여인이 맷돌을 그의 머리 위에 내리던져 그를 쓰러뜨린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한 여자의 손에 살해되었다는 치욕을 면하려고 자신의 무기 당번을 불러 자기를 찔러 죽이게 하였습니다. 사사기
9:56절은 다음과 같은 간결한 결언으로 끝납니다. ‘아비멜렉이 그 형제 칠십인을 죽여 자기 아비에게 행한 악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요담의 저주는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시나무’는 더 이상 ‘까다로운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였습니다!
악에는 값이 붙어 있습니다.
9장에는 구원의 특별한 구원의 주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몇가지 도덕적 교훈들을 받게 됩니다.
영국 복음주의의 한 목회자였던 챨스 시므온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익한 인물들은 명예욕에 휩슬리고, 현명하고 착한 사람들은 명성을 회피한다.”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기드온은 악한
아비멜렉이 욕심을 내던 것을 사양하였습니다. 이것은 각 시대마다 해당되는 일반적인 진리입니다. 챨스 시므온은 더붙이기를 “크게
되려 하기 보다는 선하게 되려고 힘쓰라”는 권면을 하였습니다.
정치든 사업이든 교회일이든 무슨 일이든지 주께서 당시능ㄹ 불러 맡겨주시는 직무에 대해서는 기꺼이 응하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아는 일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 내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본문에 점철된 주제는 악에 가격표가 붙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응징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기드온의 일흔 명의 아들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백성들에게 징벌을 내리셨다고 해서 죽은 자식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정의는 근본적으로 보복적입니다. 죄의 값은 지불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있게 될 대심판의 날에도 모든 죄의 값은 지불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모든 미수금이 완전히 징수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이 인생을 제멋대로 사는 자들이 이 사실을 확신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편 기자는 자신이 관찰해 본 결과 많은 불경건한 사람들이 장수하면서 잘 살다가 편히 죽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시73:4,5)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사는 일이 정말 무슨 소용이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볼때 신자들은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인 반면 경건치 못한 못된 죄인들은 성경 말씀의 지배나 제한을 받지 않고 마음껐 즐기는 자들이었습니다.(시73:3-14). 시편 기자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그릇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까지는 마음의 갈등을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실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게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시73:17-19) 그제서야 이 시편 기자는 주님게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본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성소’에서 악인들의 운명을 목격했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의를 지닙니다. 장막(성소)에서 죄를 위한 속죄가 행해졌고 은혜의 언약을 나타내는 상징물들이 진열되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존전에서 시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의 실체는 은혜의 언약을 드러내는 상징들과 속죄의 필요성을 통해 분명히 표출되었습니다. 속죄는 곧 복음입니다. 구원의 방법을 알리는 복음의 골자는 간단합니다. 즉, 자기들의 죄값을 스스로 지불할 길이 전혀 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구세주가 모든 값을 대신 치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제공하는 구언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보응이 기달리 뿐입니다. 이 보응은 영원한 심판으로서 현세의 안전과 쾌락들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성서식물해설 / 요담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나무’(사사기 9:15)
영명 : Christ Thorn
학명 : ziziphus spina-christi (L.)
히브리어 : אטד
서식 : 이스라엘 북쪽과 사마리아 산지의 동쪽(요담의 이야기 배경이 되는 장소)
가시나무(아타드. ’âṭâd) אָטָד
스트롱번호 329
- 구약 성경 / 4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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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사, 남성 털갈매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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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사, 남성 가시나무, 삿 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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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아닷(창 50:10,11), 가시나무(삿 9:14, 15, 시 58:9).
요담의 이야기에서 ,atadim
요담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타드는 올리브, 무화과보다도 못한 가시나무이다.
그런데 자기 그늘 밑에 들어와 쉬라고 한다.
탈무드에서 아타딤
탈무드에서는 이 아타딤을 pistachio, Terebinth 등을 포함하는 식물로 적고 있는데, 아랍어로 (Dum) 이라고 부르는 이 Ziziphus 는 작은 열매를 맺는데 사실 먹을수 있는 열매이며, 가끔 시장에 나오기도 한다.
예수님의 면류관이 이 나무인가?
사실 면류관에 대해서는 이 나무가 아닐수도 있다.
예루살렘 지역에는 많은 가시 덤블들이 자라는데 그중에는 Thorny burnet(Sarcopoterium spinosum) 이라는 가시 덤블도 있다.
대부분 학자들은 이 덤블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도 Ziziphus 를 주장하는 이들은 예루살렘 동쪽 산등성이에 이 나무가 자라기는 한다.
나무의 성질
- Ziziphus = Christ thorn
Atad אטד 는 히브리어로 ‘thorn’ 이라는 뜻이다.
이 나무는 약 10미터 정도 까지 자라는 상록수이며, 그 가지는 옆으로 뻗어 상당히 넓게 퍼진다.
작은 나뭇잎이 양쪽으로 자라며, 그 잎에 붙어있고 작은 가시가 같이 있다. 여름 정도에는 노란색 꽃이 피었다가 이후에 작은 열매가 열린다.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이 나무는 열대 식물이며, 이스라엘 전역, 사해, 요단 골짜기에 많이 있다.
이른비가 오는 시기가 되면 이 나무는 작은 꽃을 피운다. 이후에 작은 사과와 같이 생긴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는 신 사과 맛이 난다. 이후에 익어서 노란색이나 불그스름한 색이 되면 사과보다는 아니지만 많이 달콤해진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끓여서 젤리를 만든다고 한다. 고대 시대에는 음식이 없는 여행자들의 열매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씨가 너무 커서 먹을수 잇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반면에 아랍 동네에서는 이 Ziziphus 나무를 기르는데 열매가 보다 크고 더욱 달콤하다.
하지만 미쉬나에서는 다른 종류끼리 섞지 말라고 하엿다(kilaim 1,4)
Atad 는 어떤 나무인가?
Tosefta 에서는 Atad 와 sirim 을 광야의 가시가 잇는 나무로 묘사를 하고 있다(,Sotah IV, 2)
이 두 나무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잇는 곳이 성경의 시편이다
시58:9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든지 불 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가게 하소서
yx;î-AmK. dj'_a' ~k,äyteroySi( Wnybiäy" ~r<j,ÛB. WTT Psalm 58:10`WNr<(['f.yI !Arªx'÷-AmK.
일반적으로 미쉬나와 Tosefta 에서는 요담에 나오는 Atad 를 야생에서 자라는 덤블정도로 이야기를 하고 있음
창 50:10-11 아닷 타작마당 = 아타드에 둘러쌓인 타작마당(Sotah 13a)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왜 요담은 이 특별한 나무를 선택하였나?
포도나무, 무화과, 올리브 나무의 과수원은 보통 이 가시나무로 펜스를 쳤다고 한다.
이런 나무들은 가족들과 끈끈한 관계를 잘 맺고, 조상의 유업들을 잘 지키는 것을 상징한다.
기드온은 전쟁에 승리를 하고도 다스리지 않을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삿8: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즉 귀하게 여기는 열매를 맺는 나무들에게 거절을 당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 담장을 이루고 잇는 가시나무로 갈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시나무는 아비멜렉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드온의 아들들 중에 가장 악하고 분별없는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그 당시에 그는 자신이 다니면서 각 지방을 다스릴것을 이야기를 하는데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형벌을 그 도시에 내렸다.
미드라쉬에서는 아비멜렉이 가시나무의 가시와 같이 악으로 가득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Midrash Tanhuma vahere 29)
기드온의 아들 요담의 “나무들에 관한 비유”
재판관기 9장에는 요담의 “나무들에 관한 비유”가 나온다.
이것은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칠십 명의 형제들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세켐 사람들의 왕이 되었을 때(1-6절),
그 살육에서 살아남은 막내아들 요담이 세켐 사람들에게 했던 비유다.
『세켐의 모든 사람과 밀로의 온 집안이 함께 모여 가서 세켐에 있는 돌 기둥의 평지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것을 말하니 요담이 가서 그리심 산 꼭대기에 서서 목청을 높여 소리질러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세켐 사람들아, 내게
경청하라. 그래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경청하시리라.
옛날에 나무들이 그들을 다스릴 왕을 기름부어 세우려고 나가서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기를 ‘네가 우리를 치리하라.’ 하였더니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나는 기름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을
영예롭게 하나니 내가 내 기름을 버려 두고, 가서 나무들 위에 군림하리요?’ 하더라. 나무들이 무화과나무에게 말하기를 ‘너는 와서
우리를 치리하라.’ 하나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나의 달콤함과 좋은 열매를 버려 두고, 가서 나무들 위에
군림하리요?’ 하자, 나무들이 포도나무에게 말하기를 ‘너는 와서 우리를 치리하라.’ 하니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버려 두고 가서 나무들 위에 군림하리요?’ 하더라. 그러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말하기를 ‘너는 와서 우리를 치리하라.’ 하니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말하기를 ‘진실로 너희가 나를 기름부어 왕으로 삼으려거든 와서
내 그림자를 신뢰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들을 삼킬 것이라.’ 하였느니라』(6-15절).
요담은 이 비유를 과거에 이스라엘이 복을 선포했던(신 27:12) 그리심 산 꼭대기에 서서 외쳤는데(7절), 그의 “나무들에 관한 비유”는 그리심 산의 역사적 성격과는 정반대로 “저주”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요담은 옛날에 “나무들”이 그들을 다스릴 왕을 기름부어 세우려고 나갔다는 말로 비유의 문을 열었다. 나무들은 “세 나무들”에게 갔는데 먼저 올리브 나무에게 가서 나무들을 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예롭게 하는 기름을 놔두고 나무들 위에 군림할 수 있겠냐면서 거절했다(8,9절). 이에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가서 자신들을 치리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무화과나무 역시 자신의 달콤함과 좋은 열매를 버려 두고 가서 나무들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면서 거절했다(10,11절). 그다음으로는 포도나무에게 가서 치리해 달라고 했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버려 두고 어떻게 나무들 위에 군림할 수 있겠냐는 말로 역시나 거절당했다(12,13절). 세 나무들은 그들이 가진 좋은 것들을 버려 두고 나무들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거부했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가시나무”인데, 가시나무는 이 땅에서 쓸모없고 성가신 존재로서 불을 때는 연료로만 쓸모가 있다. 이 “가시나무”는 세켐 사람들이 왕으로 삼은 “아비멜렉”을 가리킨다. 비유에서 가시나무는 다른 나무들에게 『진실로 너희가 나를 기름부어 왕으로 삼으려거든 와서 내 그림자를 신뢰하라.』(15절)라고 말했다. 다른 나무들보다 키가 작고 이파리도 없어서 그늘을 제공할 수 없는 주제에, 다른 키 큰 나무들에게 자기 그림자를 신뢰하라고 하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요담은 아비멜렉을 신뢰하는 세켐 사람들의 처지가 바로 그와 같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가시나무는 나무들이 자기 그림자를 신뢰하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들을 삼킬 것이라.』(15절)라고 엄포까지 놓았는데, 실제로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여름만 되면 키 작은 가시나무에서 종종 불이 발생하여 다른 나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한다(cf. 삼하 23:6,7). 비유에서 “가시나무”는 아비멜렉이고, “레바논의 백향목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세켐 사람들이다(15,20절). 말하자면 요담은 “가시나무가 그늘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비멜렉이 그 백성을 보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를 신뢰하는 세켐 사람들을 “불로 파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아비멜렉은 스스로를 큰 가치를 지닌 안전한 나무로 생각했지만, 요담은 그를 쓸모없는 잡초에 불과한 존재로 여겼다. 세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그들의 왕으로 택했을 때, 그들은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올리브기름과 달콤한 무화과 열매와 기쁨을 주는 포도주를 얻지 못하고 쓸데없는 것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얻은 것은 “저주받은 가시들”뿐이었고, 그들의 “가시나무 왕”은 실제로 그들을 태울 불의 연료였음이 판명되었다. 즉 비유에서 “가시나무”로부터 나오는 불이(20절) 문자적인 불로서 성취된 것이다. 『모든 백성이 이와 같이 각자 자기 나뭇가지를 잘라서 아비멜렉을 따라 그 가지들을 그 요새에 놓고 그 위에 불을 질렀더라. 세켐 망대의 사람도 다 죽었으니 남녀가 약 일천 명이더라』(49절).
한편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기드온의 70명의 아들들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처럼 왕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또한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주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더라』(판 8:23). 기드온의 아들들 중 유독 아비멜렉만이 스스로를 높이고 권력에 탐욕을 부림으로써 자기 형제들을 살육하고 스스로 왕위를 취했던 것이다. 특히 이 비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그 비유가 하나의 예언이 되어 요담이 아비멜렉과 세켐 사람들 간의 비극을 내다보았다는 점이다. 즉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예언이었던 것이다(벧후 1:21). 『아비멜렉이 삼 년 동안 이스라엘을 치리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켐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니 세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에게 패역하게 행하였더라.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행한 잔악함이 임하며, 그들의 피를 그들을 죽인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그의 형제들을 죽이는 데 그를 도운 세켐 사람들 위에 임하게 하기 위함이더라』(판 9:22-24). 결과적으로 아비멜렉은 세켐 성읍을 대적해 싸워서 그 성읍을 취했고,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죽였으며, 성읍을 파괴시키고 소금을 뿌리는 만행도 저질렀다(45절). 그는 또 브릿 신당의 요새로 피한 세켐 망대의 사람 약 일천 명을 불로 태워 죽였다(49절). 즉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들을 삼킬 것이라.』(15절)라는 비유가 예언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하지만 아비멜렉은 데베스를 치기 위해 그곳으로 가서 진을 쳤다가 그곳의 견고한 망대에서 한 여인이 던진 맷돌 한 짝에 두개골이 깨졌다. 자신이 여자의 손에 죽었다는 말이 나돌지 않게 하려고 병기 든 자에게 칼로 찌르라 하더니 결국 그렇게 죽었다(50-54절).
요담의 비유가 성경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비유에 나오는 나무들이 가시나무를 제외하고는 “에덴의 동산에 있던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가시나무는 본래 에덴의 동산에 없었고, 나중에 죄의 결과로 생겨났다(창 3:18). 특히 이 세 나무들은
에덴 동산의 나무들, 곧 “생명의 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정체를 밝혀 준다.
올리브 나무 : 올리브 나무는 “성령”을 예표한다.
이 나무는 비유에서처럼 『하나님과 사람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고(9절), 실제로 그 기름은 이스라엘의 영예로운 직분인 제사장들과 왕들에게 기름을 붓는 데 사용되었다.
올리브기름은 성막의
금촛대에 불을 밝히는 데도 사용되었는데(출 27:20), “금촛대” 역시 “성령”을 예표한다(계 4:5). 따라서 그 촛대에
자신의 기름을 공급한 올리브 나무는 분명 성령과 관련이 있다.
또한 대환란 때의 두 증인인 모세와 엘리야는 올리브 나무로
비유되며(슼 4:3,11,12,14, 계 11:4), 그들은 주님의 왕국에서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마
20:23). 이것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영예롭게 하는 올리브 나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한편 올리브 나무가 에덴의
동산에서 어떤 나무였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나무는 로마서 11:17-24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 즉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상징한다(<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로마서> pp.306-310). 창세기
8:11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생명”이 땅에 돌아오고 있음을 보여 주셨을 때, 『생명의 영』(계 11:11), 곧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로(마 3:16) 하여금 “생명이 있어 자라고 있는 나무”로부터 “올리브 잎사귀”를 뜯어서 물어 오게 하셨다.
성경에 제시된 이 모든 상징들을 고려할 때, “생명의 나무”가 올리브 나무였음이 분명해진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과는 다른
초자연적인 올리브 나무였는데, 이는 아담이 그 생명의 나무를 먹고 영원히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창 3:22).
무화과나무 : 무화과나무는 “인간의 의”를 예표한다.
이 비유에서 무화과나무의 경우에는 다른 두 나무와 달리(9,13절)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는데, 그 대신 『나의 달콤함』(11절)이라는 표현이 유독 눈에 띈다.
무화과나무는 하나님과 관련 없이
스스로를 달콤하게 여기는 “자기 의”와 연관된 나무다. 무화과나무는 범죄한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몸을 가리기 위해 잎사귀를 취한
나무였고(창 3:7),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를 상징하는 잎사귀를 걷어 내시고 그분의 의를 예표하는 양의 가죽옷을 입혀
주심으로써(창 3:21)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자기 의”인 잎사귀만 무성하고(롬 9:31,32)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눅 13:6-9), 예수님께서는 잎사귀만 가득한 채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이스라엘)를
저주하심으로써 자기 의만 붙들고 있는 이스라엘이 저주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 주셨다(마 21:19, 막 11:12-14).
포도나무 : 포도나무는 “피”의 모형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13절) 포도주는(시 104:15) 갈릴리 카나의 혼인
잔치 때 하객들을 기쁘게 하는 데 사용되었다(요 2:9,10). 그날 예수님께서는 그 “포도주”를 그분의 “피”와
연관시키셨는데(요 2:3,4,10), 주님께서는 포도 열매의 포도주, 곧 『포도의 순수한 피』(신 32:14)를 친히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에 비유하신 것이다(마 26:27-29). 그런데 성경 전체에 걸쳐서 금지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피”이다. 피는
율법 이전에 금지되었고(창 9:4), 율법하에서도 금지되었으며(레 17:14), 율법 이후에도 금지되었다(행 15:20).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금지된” 유일한 나무 역시 포도나무인데(민 6:3,4), 이 “금단의 나무”는 아담과 이브에게 무엇이
“금단”이었는가를 보여 준다.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에게 금하신 것은 다름 아닌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금지된 “포도나무”와 금지된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 이 둘 사이의 일치성을 보게 된다. 금지된 포도나무에는
『포도의 순수한 피』가 있고, 아담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을 때는 그 몸에 “피”가 흐르게 되었다.
“포도나무”가 곧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였던 것이다! 물론 창세기 2:17의 나무 역시 “초자연적인 포도나무”였다. 이렇듯
아담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처럼(창 9:4, 레 17:14, 민 6:3,4, 행 15:20) 포도나무, 즉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인데, 그는 먹지 말라는 것을 먹음으로써 몸에 “피”가 흐르게 되었고, 결국 영생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사기 9장 구조분석과 강해
사사기 9장: 아비멜렉의 통치와 몰락
사사기 9장은 기드온(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통치한 이야기와 그의 몰락을 기록합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닌 인간의 욕망에 의해 세워졌을 때의 비극적 결과를 보여줍니다.
1. 아비멜렉의 권력 찬탈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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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
- 아비멜렉은 자신의 모친의 고향 세겜으로 가서 외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지할 것을 요청.
- 기드온의 70명의 아들들과 비교하며, 자신이 같은 혈육임을 강조.
-
9:3:
-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말에 동조.
-
9:4:
- 바알브릿 신전의 은 70세겔을 받아 자신을 따를 무리(무뢰한)를 고용.
-
9:5:
- 아비멜렉은 오브라로 가서 기드온의 70명의 아들들을 한 바위 위에서 죽임.
- 막내아들 요담은 도망쳐 살아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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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 세겜 사람들이 모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움.
2. 요담의 비유와 저주 (9:7-21)
-
9:7:
- 요담이 그리심산 꼭대기에 올라가 세겜 사람들에게 소리쳐 비유로 경고.
-
9:8-15:
- 요담의 비유:
- 나무들이 자신들의 왕을 선택하려 했으나,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거절.
- 가시나무가 왕이 되는 것을 받아들임.
- 가시나무는 불을 내어 모든 나무를 태우겠다고 협박.
- 비유는 아비멜렉의 부적합성과 그의 통치가 결국 파괴를 초래할 것을 암시.
- 요담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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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20:
- 요담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세운 것이 의롭지 못함을 지적하며 저주를 선언.
-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서로를 멸망시킬 것"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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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
- 요담은 저주를 선포한 후 도망침.
3.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의 분열 (9: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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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
- 아비멜렉이 3년 동안 세겜을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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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24:
-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어 갈등이 생김.
- 이는 기드온의 아들들에 대한 피를 갚기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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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
-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고 강도를 배후에서 지원.
4. 세겜의 반란과 갈의 등장 (9: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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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29:
- 세겜 사람들은 갈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받아들임.
- 갈은 아비멜렉의 권위를 조롱하고 반란을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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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33:
- 세겜의 지도자 세불이 갈의 계획을 아비멜렉에게 알리고 반란을 진압할 계획을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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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41:
- 아비멜렉이 갈과 그의 군대를 기습하여 패배시킴.
- 세불은 갈과 그의 형제를 쫓아냄.
5. 아비멜렉의 학살과 세겜의 파괴 (9: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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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45:
- 세겜 사람들이 반란을 다시 일으키자, 아비멜렉이 그들을 공격하고 도시를 점령한 뒤 소금을 뿌려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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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49:
- 세겜 망대의 주민들이 도피하지만, 아비멜렉이 나뭇가지를 모아 망대에 불을 지름.
- 망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음(약 1,000명).
6. 아비멜렉의 죽음 (9: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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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54:
-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진격하여 망대를 공격.
- 한 여인이 망대 위에서 맷돌 조각을 던져 아비멜렉의 머리를 깨뜨림.
- 아비멜렉은 자신의 부하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하여 죽음.
- 이는 "여자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치욕을 피하기 위해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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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57:
- 아비멜렉의 군대가 흩어지고, 그의 통치는 종결.
- 하나님의 심판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 임함으로써 요담의 저주가 성취됨.
핵심 주제
- 하나님의 심판 : 인간적인 욕망과 죄로 세워진 왕국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멸망함.
- 지도자의 부적합성 :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닌 자신의 야망으로 왕위에 올라 악한 통치를 행함.
- 죄의 대가 :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서로를 멸망시킴으로써 요담의 저주가 이루어짐.
- 하나님의 주권 : 하나님은 악한 인간의 행동을 사용해 공의와 심판을 이루심.
문학적 특징
- 비유 사용 : 요담의 비유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설명하며, 아비멜렉의 부적절한 왕권을 경고.
- 반복적 주제 : 사사기의 중심 주제인 "하나님 없는 인간의 지도력은 실패로 끝난다"는 메시지를 강조.
- 극적인 몰락 : 아비멜렉의 죽음은 그의 교만과 폭력을 상징적으로 종결짓는 사건.
결론
사사기 9장은 하나님의 선택 없이 세워진 지도자가 어떻게 실패로 끝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비멜렉의 통치와 몰락은 인간의 야망이 하나님의 계획과 질서를 벗어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경고합니다.
이 장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사사기 전체의 교훈을 강화합니다.
3월 18일(화) 사사기 4-8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즐거이 헌신하니(사사기 5: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When the princes in Israel take the lead, when the people willingly offer themselves-- praise the LORD!
"즐거이 헌신하니"라는 말씀을 NIV 성경에서는 "willingly offer themselves" 라고 번역합니다.
"기꺼이 자신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헌신(獻身)이란 한자는 "드릴 헌, 바칠 헌(獻)" "몸 신(身)'이란 훈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힘을 다함"이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사사기 5: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나다브. 5068) 여호와를 찬송하라.
사사기 5: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나다브. 5068) 여호와를 찬송하라
히브리 단어는 "나다브(nâdab)" נָדַב
스트롱번호 5068 라고 하여 "자원하다(출 35:21, 느 11:2), 기쁘다(출 25:2), 드리다(대상 29:9, 스 2:68), 헌신하다(삿 5:2,9). [부] 즐거이(대상 29:5)".라고 사용합니다.
* 나다브(nâdab)" נָדַב
스트롱번호 5068
구약 성경 / 17회 사용
관련 성경 / 자원하다(출 35:21, 느 11:2), 기쁘다(출 25:2), 드리다(대상 29:9, 스 2:68), 헌신하다(삿 5:2,9). [부] 즐거이(대상 29:5).
출애굽기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마래 4390)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 마래(mâlêʼ) מָלֵא
스트롱번호 4390
구약 성경 / 250회 사용
시편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네다바. 5071)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 네다바( nedâbâh) נְדָבָה
스트롱번호 5071
발음 [ nedâbâh ]
어원 / 5068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6회 사용
관련 성경 / 자원(레7:16), 자원제(레22:18, 시119:108, 암4:5), 자의(레22:21), 자원예물(레22:23, 23:38, 신12:6), 예물(신12:17, 대하31:14). [부]즐거이(대하35:8, 호14:4). [동] 드리다(스1:4, 3:5), 흡족하다(시68:9), 헌신하다(시110:3), 드리다(출35:29), 자원하다(출36:3, 겔46:12).
사사기 2: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사사(8199) 솨파트(shâphat) שָׁפַט 스트롱번호 8199
구약 성경 / 142회 사용
표징(226) 오트( ’ôwth) אוֹת
어원 / 미완료형의 복수 1인칭 어미활용 נֵאךת, 복수 3인칭 어미활용 יֵאוֹתוּ, 225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임
구약 성경 / 79회 사용
관련 성경 / 징조(창1:14, 삼상10:7, 시78:43), 표(창4: 15, 신11:18), 증거(창9:13), 표징(창17:11, 출 31:13, 삼상2:34, 겔14:8), 이적(민14:22, 신 34:11), 표적(출12:13, 시74:4, 사19:20), 기호 (민2:2, 신6:8), 예표(사20:3).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
거기서
- '상수리 나무 아래서'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자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 있는 반석에서 기드온의 예물을 태웠으며(19-21절), 그곳에서 기드온과 대화했기 때문이다(22,23절).
단을 쌓고
- 과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한 후 헤브론에서 단을
쌓았다(창 13:18).
그리고 야곱도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후 그곳에서 단을 쌓았다(창 28:16-19).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단을 쌓는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람의 열심과 헌신을 의미했다.
여호와 살롬
- '예호와 솰롬'은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또는 '평강의 여호와'란 의미이다.
앞서 여호와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셨는데(23절), 이 말의 원어 역시 '솰롬', 곧 '평강'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본절에서 기드온이 쌓은 단은
하나님과의 화해의 제단이요 구원의 제단이었던 것이다.
한편 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주요 속성 중 하나를 평강이라 하였고(롬
14:17),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평강의 왕이라 불리운 것 같이(사 9:6),
평강이라는 주제는 하나님의 귀한 은총으로서 성경
전편에 걸쳐 흐르고 있다.
그런데 특히 불안과 혼란이 팽배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눅 8:48) 가정과(고전 7:15)나아가
전세계가(왕상 4:24)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화목된 관계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시 29:11;갈
1:3).
3월 17일(월) 사사기 1-3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사사기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After the death of Joshua, the Israelites asked the LORD, "Who will be the first to go up and fight for us against the Canaanites?"
사사기 1장부터 3장에서 옷니엘, 에훗, 삼갈이라는 세 명의 사사들의 행적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After the death of Joshua)
지도자가 죽은 후에 나타나는 현상에 의해서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 아니면 건강하지 못한 사회인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사사 시대의 특징을 이렇게 강조했기 때문입니다(삿 17:6. 21:25).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
여호수아는 110세에 죽었습니다(삿 2:8).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하고 묻습니다.
아직은 여호수아의 정신과 신앙이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유다는 시므온에게 함께 올라가자고 제안하였고 시므온은 유다와 함께 올라갔습니다.
유다와 시므온의 협력에 의해서 베섹에서 일만명을 죽이고 싸움에 승리합니다.
지도자가 없는 그 자리를 협력으로 채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력(協力)이란 한자를 살펴봅시다.
십자가(十)와 같은 무겁고 어려운 싸움을 유다와 시므온이 서로 힘을 모아(力) 더 큰 힘(力)을 발휘하였다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여러 아들들에게 싸리나무 단을 앞에 두고 이 나무단을 꺾어보라고 합니다.
어느 아들도 그 싸리나무단을 꺾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이제는 싸리나무를 하나씩 꺾으라고 합니다.
여러 아들이 순식간에 싸리나무단을 모두 잘라버렸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내가 없을 때에 너희들이 서로 힘을 모아 이렇게 살아가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 통치하는 "신정국가(神政國家)"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백성들은 이웃 나라들이 왕이 다스리는 제도를 보면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
국가의 체재(體制)가 바뀐다는 것은 통치 방법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하기를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합니까?
그때 여호와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는 기업을 차지하기 위하여 시므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시므온은 주저하지 않고 유다와 협력하여 올라가서 싸움에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왕정국가에서는 왕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왕을 요구할 때 백성들의 요구에 반대하지 않고
체제(體制) 몸체, 절제할 제 / 일정한 정치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 질서의 전체적 경향
이러한 방법이 신정국가의 체재(體裁. 몸 체, 마를 제).
체재란 생기거나 이루어진 형식(形式) 또는 됨됨이. 체제(體制), 스타일.
씨 받이 작전 / 북한 통일 선전부에서 남한의 지도자들이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가임기 여성을 숙소에 들여보내 임신하도록 한 후 임신이 되면 아이를 낳아 양육 관리하며 북한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조절합니다.
북한을 위한 각종 선전 및 간행물을 발간하여 노골적으로 위협한다.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
북한에 대한 지원 선동
일반적인 성경 분류에 따르면 사사기는 ‘역사서’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사기’를 전기예언서에 포함합니다.
전기예언서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바벨론 포로가 될 때까지의 역사를 기술합니다.
표면적으로 역사를 서술하지만, 유다와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를 제시하고, 회복을 암시합니다.
* 마빈 스위니, 『IBT 구약입문시리즈 - 예언서』(서울: 기독교서회,
2015), 26.
즉, 사사기는 타락과 심판, 구원의 흐름을 가지고 있기에 전기예언서에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사기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왕정 시대의 문을 여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사무엘이 사사기의 저자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주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기 때 역사를 회상했던 사람들이 썼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누구이며, 어느 시기에 썼든지 사사기는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으로 세상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주된 내용은 “평화 ⭢ 타락 ⭢ 고난 ⭢ 회개 ⭢
구원 ⭢ 평화”의 흐름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순환 구조’라고 불리는 이 흐름은 5명의 사사 이야기에서만 발견되는 흐름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4~16장에 나오는 사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사 중에서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사는
‘기드온’입니다.
기드온 이야기는 사사기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는데, 기드온 이후로 이스라엘의 영적 퇴보가 일어나기 때문에 기드온은
사사기 전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됩니다.
사사기 1~2장을 이해하려면 여호수아 24장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시작하면서 저자는 여호수아가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과 싸우기 위해 선뜻 나서지 않는 모습을 이야기하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가나안
족속과 싸워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는 혼자가 아닌 시므온 지파와 함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싸우기 위해
갑니다.
싸움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지만, 유다가 보여준 모습은 온전한 믿음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7절에 보면 아도니 베섹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70명의 왕을 모욕하고
자기의 상 아래에서 음식을 주워 먹게 했던 잔인한 행동을 고백하는데, 자기가 이와 같은 상황을 맞이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즉, 가나안 사람들의 잔인함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고, 유다 지파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가나안을 심판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유다가 가나안의 관습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유다의 이런 행동은 앞으로 사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할 것을 암시합니다.
사사기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웠는지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앞으로 사사기를 묵상하면서 주님의 손을 맞잡고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시간을 맞이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노예로 지내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의 구원자였습니다.
출애굽 한 이후 시내산에서 1년 머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한 신학자였습니다.
그리고 40년 간 광야
생활을 이끌었던 지도자였습니다.
이제 모세는 죽고 없습니다.
이제
누군가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정복해야 하는 막중한 일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세우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맡기십니다.
지도자(指導者)는 자신이 물러날 때 자신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사람을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기 마련입니다.
모세가 나이 들어 죽기 전에 하나님께 자신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이끌 후계자로 세워줄 것을 요청합니다.
즉 모세는 자신의 후계자 세우는 일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일을 위임했던 것입니다(민 27:15-17).
왜냐하면 이 일이 모세 자신이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지금까지 그 일을 주도하신 분 역시 하나님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수종자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을 모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죽었다고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수종자였던 여호수아를 세워 자신의
일을 계속 진행해 가십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사명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일은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완성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계속
자신의 종들을 불러 사용하실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죽은 후 이스라엘을 인도할 후계자를 세워주실 것을 하나님께
요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를 지명하셨습니다.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민 27:18, cf. 고전 2:14-16)
민수기 27: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고린도전서 2:14-16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2-4절
1: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1: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1: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원하는 땅을 모두 취해선 안되었고, 오직 하나님이 그들에게 정해주신 땅만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이외의 그 어떤 땅도 취해선 안되었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처소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어선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처소는 어떤 곳인가요? (엡1:3, 요14:1-3, 히11:14-16).
☞2. 우리에게 허락된 처소가 하늘에 속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마8:20, 요3:27, 딤전6:8-12)
3. 5절/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는 말씀은 지난 날 모세를 사용하신 것처럼 여호수아를 쓰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모세의 곁에서 수종자의 신분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 딤후1:12절을 읽으시고 사도 바울이 어떤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보세요(cf. 행27:28-25).
4. 7-9절/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 모세를 이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해야 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이 명령을 가슴에 품고 그대로 행할 때 그는 천하무적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책을 손에서 떼지 말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고, 그리고 그것을 다 지켜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모든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신17:18-20).
- 문제는 사람들이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일보다는, 성경을 삶에 실천하는 일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역시 그랬습니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보다 성경의 규례를 지키는 일에 힘썼던 것입니다.
-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열심을 내는 종교인의 삶을 살았지만, 성경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바로 그 예수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1. 여호수아에게 성경책을 손에서 떼지 말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사9:7)
☞2. 여기서 여호수아에게 약속된 형통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나요?(cf. 창39:2-3,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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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시대
'여호수아 사후 ~ 사울 즉위 전' : 336년
12명의 사사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1. 옷니엘(유다 지파) : 8년 압제, 40년 평화, 침략국- 메소포타미아 구산리사다임 왕
2. 에훗 (베냐민 지파) : 18년 압제, 80년 평화, 침략국- 모압(암몬, 아멜렉) 에글론 왕
3. 삼갈(납달리 지파) : 평화
4. 드보라(에브라임 지파) : 20년 압제, 40년 평화, 침략국- 하솔 야빈 왕, 시스라 장군
5. 기드온(므낫세 지파) : 7년 압제, 40년 평화, 침략국- 미디안/ 세바, 살문나 왕/ 오렙, 스엡 장군
6. 돌라(잇사갈 지파) : 23년 평화
7. 야일(므낫세 지파) : 22년 평화
8. 입다(길르앗) : 18년 압제, 6년 통치, 침략국- 암몬
9. 입산(베들레헴) : 7년 평화
10. 엘론(스불론) : 10년 평화
11. 압돈(비라돈) : 8년 평화
12. 삼손(단 지파) : 40년 압제, 20년 통치, 침략국- 블레셋
침략국(6개국) : 메소포타미아, 모압, 하솔, 미디안, 암몬, 블레셋
평화시대 : 삼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로느 압돈 사사
(참고) 사무엘상 : 역시 사사인 '엘리'와 '사무엘'은 사무엘상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 룻기 : 사사시대의 부록에 포함된다.
사사시대 특징
'반복' 또는 '순환'이 사사시대의 특징이다.
6회의 순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순환]
1. 평화 - 2. 타락 - 3. 고난 - 4. 회개 - 5. 구원
12명의 사사들의 이름과 활동
사사는
히브리어로 ‘쇼페팀’인데, ‘중재하는 자, 다스리는 자, 재판을 담당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각 지파 별로 또는 지역
별로 평상시에는 백성을 재판하여 다스렸으며, 전시에는 군대의 지휘관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사사들이 세움을 입을 때는 대부분
‘하나님의 신’이 그들에게 강림하였습니다(삿 3:10, 6:34, 11:29, 13:25).
성경에 나오는 사사는 크게 열두 명입니다.
옷니엘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최초의
사사 옷니엘은 아낙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어 모두가 꺼리는 드빌(기럇 세벨)을, 하나님의 힘을 믿고 자원하여 정복한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수 11:21, 15:13-17, 삿 1:11-13).
옷니엘의 아내가 된 악사는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수 15:18-19, 삿 1:14-15).
옷니엘은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통해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는 옷니엘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삿 3:8-10).
에훗은 약점을 가졌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에훗은 ‘왼손잡이’였는데(삿 3:15), ‘오른 손이 제 구실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더 정확합니다.
그러나 에훗은 하나님과 연합된 자로, 쓰임받았습니다.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또다시 악을 행하자 모압을 강성케 하사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셨습니다(삿 3:12-14).
에훗은 모압 왕을 속여
검으로 모압 왕을 죽이고(삿 3:15-23), 자신이 앞장서 나가며 동족들의 힘을 합하여 모압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삿 3:27-29).
에훗의 통치 기간 80년은 사사 시대 중 가장 오랜 평화의 기간이었습니다(삿 3:30).
삼갈은 평범한 농부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밭을 갈 때 사용)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습니다(삿 3:31).
‘대로는 비었고 행인들이 소로로 다닐’
정도로(삿 5:6) 블레셋의 세력이 막강했던 시대에, 삼갈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관원이 그친 때에 깨어 일어난 여(女) 사사입니다.
가나안 왕 야빈의 학대 속에 지도자가 없어 남자들마저 잠잠할 때, 유일한 여(女) 사사 드보라가 일어나 나라를 구원하였습니다(삿 4:3-4, 5:7).
드보라는 승전가를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공로자들을 치하했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던 시스라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한 드보라는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승리하였음을 찬송하고, 바락을 비롯하여 전쟁에서 헌신한 자들과 참전한 지파들을 치하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삿 5:1-31).
기드온은 큰 용사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에게 환난을 당하는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며 원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해 표징을 구했지만(삿 6:13-21,
36-40),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붙잡아 큰 용사로 만드셨습니다(삿 6:12).
기드온은 사사로 부름받고 곧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삿 6:25-32).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를 선발하고, 나팔과 횃불로 승리하였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을 시작하려 하자 32,000명의 군사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두려워 떠는 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를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겼습니다(삿 7:1-8).
기드온과 300용사는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들고
나아가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삿 7:9-23).
이는 300용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였고, 일치된 순종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드온의 300용사는 피곤하나 끝까지 따르며 사명을 완수했습니다(삿 8:4).
돌라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돌라는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의 학정 속에서 의분을 느끼고 있다가, 그의 죽음을 계기로 사명감을 가지고 힘차게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삿 10:1).
돌라는 에브라임 땅 ‘사밀’에 묻혔습니다.
돌라는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잇사갈 지파 사람이었는데, 중부에 위치한 에브라임 지파의 땅 사밀에서 사사로 활동하였고, 그곳에
묻혔습니다(삿 10:2).
그는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정해 주신 곳에서 사역하였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사역지를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일은 22년 동안 평화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백성들이 악을 행했다거나 이방의 압제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그는 평화 시기에 백성들을 말씀으로 깨우쳐 범죄하지 않도록 힘을 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일은 부귀를 누리며 후대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야일은 아들 30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당시 귀족들의 교통수단이었던 어린 나귀 30필을 탔고, 길르앗에 있는 성읍 30개를 각각 소유하고 있었습니다(삿 10:4).
입다는 암몬으로부터 학대받는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입다는
기생(창녀)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로, 본처의 자식들에 의해 추방되었습니다(삿 11:1-3).
이스라엘은 18년 동안 암몬의
학대를 당하였는데, 입다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회개와 간구의 결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섭리하신 것입니다. 신앙에 입각한 투철한
국가관과 역사관을 가진(삿 11:12-27) 입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암몬을 물리쳤습니다(삿 11:29, 32-33).
입다는 경솔한 서원을 하였습니다.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를 영접하는 첫 번째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는데, 그의 외동딸이 가장 먼저
영접하였습니다(삿 11:30-31, 34).
입다는 맹목적이고 경솔한 서원을 했지만, 그의 딸은 확고한 신앙으로 순종하였습니다(삿
11:36-40).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입다를 시기한 에브라임 사람들의 비방과 위협은 동족상잔을 불러와, 결국 42,000명이 죽는 참변으로 에브라임 지파의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습니다(삿 12:1-6).
입산은 아들 30명과 딸 30명이 있었으며, 호화로운 삶을 누렸습니다.
입산은
최고 지도자로서 나라를 위해 한 일은 없고, 오직 여러 아내를 얻어 수많은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을 결혼시켰다는 기록만
있습니다(삿 12:9).
그는 직분에 충실했다기보다 직분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이익에 마음이 쏠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블레셋의 압제 기간과 겹치는데(삿 10:7-8),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방을 물리치려 하지 않고 자식들을 모두 외국인과 결혼시킴으로 이방 민족과 화친하여 안정을 꾀하려 하였습니다.
엘론은 그 생애가 가장 짧게 기록되었으며, 그 시대에는 ‘태평’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름 뜻으로 볼 때 능력 있고 강한 자였음에도, 크게 부각되는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평범하게 살았습니다(삿 12:12).
입산과 엘론과 압돈의 시대에는 “태평하였더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압돈은 탁월한 능력을 가졌으나 많은 아내와 자녀를 거느렸을 뿐입니다.
나라 한쪽에서는 블레셋의 압제를 받아 백성들이 신음하고 있는데, 그가 한 일은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식들을 결혼시키는 개인적인 일 뿐이었습니다(참고-빌 2:21, 시 39:6).
그의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어린 나귀 70필을 탔다는 것은 그 집안이 상당히 부유했음을 보여줍니다(삿 12:14).
삼손은 천사의 수태 고지를 통하여 태어났습니다.
마노아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수태 고지를 한 것은(삿 13:2-7).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 고지를 한 것을 연상케 합니다(눅 1:31).
삼손은 틈을 타서 블레셋을 치고자 하였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을 핑계 삼아 그들을 치고자 하였습니다. 삼손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나실인의 규례를 어겼음에도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게 하심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삿 14:1-20).
삼손은 비밀을 누설하는 결정적 실수를 범했으나,
마지막 기회를 붙잡아 가장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원인은 성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삿 16:1-3, 4).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해 비참한 노예로
전락한 그는(삿 16:5-21), 진심어린 회개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마지막 기회를 붙들었기 때문에(삿 16:28-30), 하나님은
그의 삶을 믿음의 삶으로 인정하셨습니다(히 11:32).
사사는 이스라엘이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세워 주신 구원자들입니다(삿 2:16-18, 3:9).
그러나 이스라엘의 참된 통치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며, 사사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인이었습니다(삿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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