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고스 / 신과 인간과 세상을 분명히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신과 인간과 세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연결 되느냐? 하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과 인간과 세상은 로고스로 연결된다고 설명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로고스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인간의 로고스는 언어
하나님의 로고스는 생각 즉 말씀
로고스는 무슨 뜻일까요?
3004.
말하다.
글로 말하다
묻다
-
발음 [ lĕgō ]
로고스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단어인데,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간단히 말하면 '말씀', '이성', '논리' 정도로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로고스는 이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로고스의 여러 가지 의미를 하나씩 살펴볼까요?
1. 말씀 또는 언어 :
로고스는 가장 기본적으로 '말'을 의미해요. 우리가 생각을 표현하고 서로 소통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를 뜻하죠. 예를 들어, 여러분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2. 이성 또는 사고 :
로고스는 또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해요.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사용하는 그 능력 말이에요. 마치 퍼즐을 풀 때 우리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비슷해요.
3. 우주의 질서나 원리 :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로고스를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나 법칙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우리 몸 안에 있는 DNA처럼, 모든 것을 만들고 유지하는 기본 설계도 같은 거예요.
4. 신의 말씀 :
종교에서는 로고스를 신의 말씀이나 계시로 해석하기도 해요. 특히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말씀'이 바로 로고스를 뜻해요.
5. 논리나 추론 :
로고스는 또 논리적인 사고나 추론을 의미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수학 문제를 풀 때 우리는 로고스를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하나 차근차근 생각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로고스와 관련이 있답니다.
6. 의미나 뜻 :
어떤 말이나 행동이 가진 깊은 의미를 로고스라고 부르기도 해요. 마치 동화 속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 같은 거예요.
로고스의 개념은 왜 중요할까요?
로고스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요.
예를 들어볼게요:
1. 학교에서 공부할 때 :
여러분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를 푸는 것, 이 모든 게 로고스와 관련이 있어요.
2. 친구들과 대화할 때 :
우리가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도 로고스를 사용하는 거예요.
3. 새로운 것을 발명할 때 :
과학자들이 새로운 발견을 하거나,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도 로고스를 사용해요.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모두 로고스와 관련이 있답니다.
4. 세상을 이해할 때 :
우리가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할 때도 로고스를 사용해요. 예를 들어, 왜 비가 오는지, 왜 계절이 바뀌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말이에요.
고스는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있어요. 여러분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로고스를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심지어 여러분이 꿈을 꾸고 상상할 때도 로고스가 작용하고 있답니다.
로고스를 잘 이해하고 사용하면, 우리는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작가들이 로고스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이제 로고스가 뭔지 조금은 알겠나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우리는 매일매일 로고스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앞으로 여러분이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말할 때, 혹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아, 이게 바로 로고스구나!"라고 생각해보세요.
요한복음
- 책 제목
헬라어 성경에는 ‘카타 이오안넨’으로 되어 있다. 이는 ‘요한에 의한’이란 뜻으로 이에 근거하여 오늘날 모든 성경은 본서의 제목을 '요한복음'이라고 부른다.
- 기록자와 연대
1) 기록자
다른 복음서와 같이 누가 기록했는지 그 이름이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을 사건의 목격자(1:14, 19:35, 21:24-25)로 진술할 뿐만 아니라, 최후의 만찬 때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예수를 팔자가 누구인지를 질문한 정도로 가까우며,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13:23, 19:26, 20:2, 21:7, 20)로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열두 제자 가운데 요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의 제자 이레니우스를 비롯한 초대교회의 교부들 대부분이 이책의 저자를 요한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도 그것을 뒷받침 해준다.
요한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이다.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매이다(마 27:56, 막 15:40).
요한이라고 하면 흔히 ‘사랑의 사도’라는 별칭을 연상하게 된다. 그는 사실 사랑을 논하기에 너무나 성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었고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그의 글에는 사랑이 곧 주제가 되었으며 그는 사랑을 강조하는 사도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생전에는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요 21:7, 20) 그는 주님의 핵심 일꾼으로서 남다른 훈련과 영적인 체험을 가졌다(마 17:1, 요 5:37).
요한은 주님의 공생애 삼년 동안 사랑받는 제자로서 훈련되어 갔다. 그는 실로 사랑받는 제자로서 훈련을 받았다. 요한은 12제자 중 유일하게 십자가 형장까지 쫒아간 제자이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실히 보았고, 만났으며 또 교제하였다(요 20:20). 그래서 그는 확신이 있었고 또한 능동적인 전도사역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교회가 핍박을 받아 사방으로 흩어질 때에는 예루살렘 교회에 머물렀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와 계시록을 후대에 남겼다. 그의 글에는 믿음과 사랑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 마리아(예수님의 모친)를 봉양하였으며,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일생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계 1:9).
2) 기록연대
이 책이 기록된 시기는 아마도 A.D.85-90년 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이 기록한 책 중에 가장 먼저 쓰여진 듯하다.
21:18-19에 베드로의 순교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인용된 것을 볼 때 이미 베드로는 순교한 다음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며, 미티아누스 황제 시절 박해을 받아 밧모섬으로 유배 보내진 시점으로 생각된다.
당시에 교회는 A.D.70년의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 율법을 중시하는 바리새파들이 더욱 유대주의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율법이 아닌 믿음을 강조하는 것에 대하여 핍박과 박해가 거세졌을 뿐만 아니라, 영지주의의 침투로 인한 교회내의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영지주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과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죄, 그리스도의 속죄,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였으며 그들이 교회 안에 들어옴으로써 기독교는 일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예수님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육체로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참된 복음을 강조하여 전할 필요가 있었다(요 3:16).
- 기록 목적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너희로 에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요 20:31).” 그렇게 하기 위하여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다양한 표적과 강론을 통해 예수님께서 유대의 메시아, 구약을 성취하신 구원자이심을 보여주며, 아버지와 동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 주제
1)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메시아)
요한복음의 중심 주제는 중심인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은 한 마디로 ‘아들-메시아’로서 예수에 대한 계시(선포)이다. 특히 예수는 성경적이며 유대적인 기대 속에 성취된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데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히브리어인 메시아(Messiah)란 단어가 그대로 사용함으로(1:41; 4:25). 로고스이신 메시아가 육신으로 오셨음을 선언하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또한 서두(1:1-18)에서 진술되고 있는 말씀(logos)이신 예수께서 성육신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은혜와 진리와 영광을 드러내신다. 무엇보다도 성육하신 로고스이신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복음의 로고스 기독론은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 ‘성육신 하신 말씀’을 통한 구속사역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로고스의 이러한 모습은 요한복음의 중요한 상징인 빛(fw/j)과 생명(zwh,)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2) 믿음의 중요성
‘믿는다’(pisteuo)라는 단어가 요한복음에 98번이나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공관복음(마가복음 11번; 마태복음 14번; 누가복음 9번)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독특하다. 요한복음은 사람들을 두 부류 즉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고 있는데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가진 사람들(요 3:15-16, 36; 5:24; 6:40, 47)로서 빛 가운데 행하며(12:46),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심판받는 사람들(3:18; 12:48)로서 어두움 가운데 행한다. 확실히 요한복음에서 믿음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이슈로 제시된다. 한 마디로 요한복음의 중심된 메시지는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로 요약할 수 있다.
- 특징
1) 예수님의 직접적인 계시
요한복음에는 “나는…이다”(ego eimi, I am)란 말이 일곱 번이나 나온다.
예컨대 나는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 참 포도나무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말씀하실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란 말씀과 같은 표현이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란 뜻이다.
2) 하나님의 아들 – 신성의 강조
마태가 왕의 관점, 마가가 종의 관점, 누가가 인자(사람의 아들)이란 관점으로 쓰였지만,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엔 나오지 않았던 인물들과 예수님의 대화가 요한복음의 주제에 맞춰 나오기도 한다. 나다나엘(1:45-51), 니고데모(2:23-3:21), 사마리아 여인(4:1-42), 음행한 여인(7:53-8:11)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의 신성들이 잘 드러난다.
3) 기적이 아닌 표적
또 요한복음에는 이적이나 기적이란 말보다는 표적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이 말은 예수님의 표적이 단순히 남을 놀라게 하고 병을 고치고 도와주는 초자연적 사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행적의 의미에 대하여 기술을 함으로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보여주는 계시성을 강조한다. (요한복음에는 일곱 가지의 표적이 나온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에서부터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것, 38년 된 병자를 고친 것, 5천 명을 먹이시고, 물위로 걸으신 것, 나면서 소경된 자를 고치시고,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곱 가지의 표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 표적의 목적은 20장 31절에 잘 나와 있다.)
4) 예수님께서 기도 하셨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음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에는 ‘기도’라는 단어가 예수님과 연관되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원어로 ‘기도하다’를 의미하는 ‘proseuchomai(프로슈코마히)’라는 단어가 요한복음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대신 ‘구하다, 묻다, 말하다’란 뜻의 ‘erōtō(에로토)’가 몇 번 나올 뿐이다.
5) 시간과 장소의 독특성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주 활동무대가 갈릴리로 되어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지방에서의 사역이 강조되고 있다. 시간상으로도 차이점이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시간 계산의 표준이 되는 유월절이 한 번만 기록되어 있으나 요한복음에는 세 번 나온다.
6) 단순한 헬라어 표현
헬라어를 배울 때 요한복음을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다. 요한복음이 네 복음서 중에서 단어가 가장 쉽고 간결한 표현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신학적인 통찰력은 대단히 무게가 있고 심오하다. 즉, 영원하신 주님, 곧 로고스(말씀)로서의 예수님을 주제로 삼고 있는데 그분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세상이 창조될 때에 하나님과 함께 일하셨다(1:3)는 것을 잘 밝혀주고 있다.
7) 나오지 않는 표현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많은 내용이 빠져 있는데, 먼저 요한복음엔 족보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시작과 끝이며(계1:8, 21:6, 22:13) 영원하신(창 21:33; 신 33:37; 사 9:6; 40:28)분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상황에 대한 묘사도 없고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도 없다. 죄와 용서에 대한 회개의 외침도 없으며,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자세한 기록도 나오지 않는다. 사탄에게 40일간 시험받으신 부분도 없고, 귀신들을 쫓아내는 기록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12제자들을 택하시거나 70명을 내보내시는 기록이나 변화산의 변화에 대한 기록조차도 없다.
- 내용과 구조
요한복음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주된 내용의 전개에 따라 나누면 1)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2) 하나님 아들의 증거와 유대인들의 배척, 3) 하나님 아들의 가르침, 4) 하나님 아들의 수난과 영광으로 표현할 수 있고, 주된 목적에 따라 나누면 1)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표적, 2) 그분이 어떠한 사역을 통해 영광을 이루셨는지로 나눌 수 있다.
1) 표적의 책(1-12장)
① 출생 : 성육신과 세례(1:1-34)
② 공생애 : 그리스도 사역(1:35-12장)
2) 영광의 책(13-21장)
(1) 수난
① 다락방 강화(13-16장)
② 체포에서 십자가까지(17-19장)
(2)) 부활 : 부활과 이후 행적(20-21장)
참된 예배_요 4:21-26
윤효배 목사
■ 들어가며
6월은 ‘선교’라는 주제 아래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의 말씀을 읽게 된다. 사랑의 사도라 일컬어지는 요한의 기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들을 잘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고 또한 받은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 잘 전하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은 말씀일기 본문인 요한복음 4장의 내용 중에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가 어떠한 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 말씀과 함께
- 본문의 배경 :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
1) 대화의 주요 내용
- 사마리아의 수가라 하는 동네에 야곱의 우물 곁에 가신 예수님(3-6)
예수님 : 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하심(7)
여 자 : 어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지 물음(9)
예수님 : 예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내게 생수를 구하지 않았다고 말함(10)
여 자 : 우물이 깊어 생수를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야곱보다 큰 자인지를 물음(11-12)
예수님 :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 말함(14)
여 자 : 내게 그런 물을 달라고 함(15)
예수님 :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함(16)
여 자 : 남편이 없다고 함(17)
예수님 : (네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고 말하심(18)
여 자 :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예배할 곳이 어디인지 물음(19-20)
예수님 :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1),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22),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24)
여 자 :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리라(25)
예수님 : 내가 그리스도라 하심(26)
2) 특징적인 표현과 그 의미 : (한 영혼의 구원의 서정과 유사)
①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3) : 먼저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찾으신 예수님(9) -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이 있으심
②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함(14) :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을 주시는 예수님 - 영적인 존재로서 구원을 허락해 주시는 분이심을 표현
③ 네 남편을 불러오라(16) : 죄에 대한 깨달음과 치유 - 자기 죄를 철저히 깨달아야 할뿐만 아니라 그것의 회복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야 함
④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1),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22) : 장소가 아닌 대상 -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배하는 대상이 중요함
⑤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3) : 거짓되게 (아무렇게 또는 자의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
1)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① 하나님은 영이시니(pneu'ma oJ qeov", 24a) : 예배 대상(하나님의 존재)의 바른 인식
→ 어느 장소에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처럼 생각하여 어떤 장소를 거룩한 곳으로 생각하며 예배드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분이심으로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다. (특별히 어떠한 형상이나 모양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 2계명)
② 영과 진리로(24b) : 예배 방법 - 성령(pneuvmati, 프뉴마티)과 진리(ajlhqeiva/, 알레세이아)로!
-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 :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26-27)
- 진리 되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 구약의 피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폐기 완성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방법이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께서 주신 방법대로 예배해야 한다.
③ 예배할 지니라(24c) : 예배 자세 - (proskunevw - 부복하다. 꿇어 엎드려 존경을 표하다.)
→ 예배는 먼저 내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것이다. 예배를 통해서 내 자신이 은혜 받는 것은 두 번째 문제이다. 삶속에서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존전 앞에서 겸손히 낮아져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찬양하며 하나님만을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
2)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
① 의식과 형식적인 예배 보다는 말씀의 순종의 모습이 더 중요함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②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되어야 함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③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주님을 모시는 것임
-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 각자의 삶의 처소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야 하며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삶으로서의 예배가 있어야 한다.
3) 하나님께 드려질 천상예배(계 4-5장) : 하나님께 모든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삶
① 네 생물 : 밤낮 쉬지 않고 찬양함(계 4:8)
② 이십사 장로들 :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림(계 4:10-11)
■ 맺음말
예배 가운데 잘 나왔다. 그러나 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려 경배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참된 예배는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주님을 가장 높이려고 하되,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것이 되어야 하겠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님과 호흡하며 감사 찬송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