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포로 귀환





바벨론 포로 귀환 연도 정리


바벨론 포로와 귀환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 족보 제 3기에 해당하는 시기에서 남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과정과 거기에서 돌아오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의 죄’(렘 2:28, 32:29-35), ‘안식일과 안식년을 이행하지 않은 죄’(대하 36:21, 렘 17:27, 34:8-22) 등 남 유다 전체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죄가 가득차자 ‘바벨론 포로생활’이라는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3차에 걸친 포로 과정에서 성전이 파괴되고 왕궁을 비롯한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었으며 왕과 지도자들로부터 빈천한 자를 제외한 모든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포로 귀환은 B.C. 538년, 바사 왕 고레스가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발표하고 B.C. 537년에 귀환함으로 시작되어 3차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고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마침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여 국가적인 면모를 갖추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자료출처 / 나채운박사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ul1150&logNo=222263251491&photoVie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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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의 멸망과 바벨론의 1차 2차 3차 4차 포로의 역사

BHCE연.. | 블로그
5~6분

[역사] 남유다의 멸망과 바벨론의 1창 2차 3차 4차 포로의 역사

이스라엘은 북방 강대국 앗수르와 바벨론, 남방 강대국 애굽 사이에 낀 약소 국가였습니다. 남 유다의 제 16대 왕 요시야 당시는 세계 최강국이던 앗수르가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바벨론이 신흥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1. 므깃도 전투와 갈그미스 전투

애굽은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의 남하를 막기 위하여 갈그미스에서 바벨론과 싸우려고 하였습니다. 애굽 왕 느고는 갈그미스로 가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이때 반 앗수르 입장이었던 요시야 왕은 북진하는 애굽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애굽 왕 느고는 사자를 보내어 화친을 요청하며, 이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자신이 싸우려는 대상은 요시야 왕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대하 35:21). 그러나 요시야 왕은 듣지 않고 변장까지 하면서 전쟁터에 남기를 고집하였습니다(대하 35:21-22). 전쟁터에서 애굽의 궁수가 쏜 화살에 중상을 입은 요시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죽고 말았습니다(대하 35:23).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통해 영적 내리막길로 곤두박질하던 남 유다에 일시적으로나마 제동을 걸었지만, 요시야가 죽은 이후 남 유다의 국운이 갑자기 쇠약해지고 순식간에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애굽과 바벨론이 맞서는데, 이것이 갈그미스 전투(주전 605년)입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바벨론은 당시 근동 지방을 장악하였고, 애굽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왕하 24:7).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아프리카 대륙과 근동 아시아 지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남 유다 왕국마저 정복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였고, 3차에 걸쳐 유다 왕과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3차에 걸친 바벨론 포로의 과정은 성전 파괴의 과정과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서 가장 아끼는 성전을 파괴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징계하셨습니다(왕상 9:7-9).

Flight of The Prisoners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티소(James Tissot)가 그린

불타는 예루살렘과성전, 그리고 바벨론 군대에 포로로 끌려가는 유다 백성들

2. 바벨론 제 1차 포로

1) 포로 시기 – 주전 605년 / 여호야김 제 3(혹은 4)년, 느부갓네살 원년

이때는 여호야김 왕 제 3년(단 1:1)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46:2은 이때를 여호야김 4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기록에 1년 차이가 나는 이유는 열왕기하 23:34을 통해 해명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여호야김이 그의 동생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여호야김이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요시야(주전 640-609b년), 여호아하스(주전 609b-608년), 여호야김(주전 608-597년) 순으로 왕이 되었지만(왕하 23:3-0, 34, 대하 36:1-4), 요시야 다음에 바로 여호야김이 왕이 된 것처럼 기술한 것은, 3개월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악을 일삼았던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왕하 23:31-32).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제 1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주전 605년은 여호야김 제 4년이 되는 것입니다.

2) 포로 대상과 당시 상황

제 1차 바벨론 포로 때에는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과 귀족들이 끌려갔습니다(단 1:3). 여호야김은 처음 3년은 바벨론을 섬기다가 다시 애굽과 동맹하여 반(反)바벨론 정책을 펼쳤고(왕하 24:1), 주전 602년 쇠사슬로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성전 기구들을 약탈당하였습니다(왕하 24:2, 단 1:1-2, 5:2).

3. 바벨론 제 2차 포로

1) 포로 시기 – 주전 597년 / 여호야긴 즉위년, 느부갓네살 8년

여호야긴은 주전 597년에 즉위하여 3개월 10일을 통치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8-12, 대하 36:9-10). 바벨론 역대기에 따르면, 티쉬리월(7월)로 시작되는 달력을 기준할 때 여호야긴이 왕이 딘 것은 주전 597년 불월(8월)이며, 3개월 10일이 지나 왕위에서 쫓겨난 것은 주전 597년 아달월(12월) 2일입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경과한 다음에(왕하 24:10-11)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에 이르러 주전 597년 아달월(12월) 2일에 마침내 예루살렘 성을 점령한 것입니다. 이때 왕위에서 쫓겨난 여호야긴은 주전 597년* 니산월(1월) 10일에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대하 36:10). * 남유다 통치 연도는 티쉬리월 기준이므로 해가 바뀌지 않음.

2) 포로 대상과 당시 상황

바벨론은 여호와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었으며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하였습니다(왕하 24:10-13, 대하 36:10).

그리고 여호야긴 왕과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12, 15). 이때 용사 7천 명을 포함하여 방백과 백성 총 1만명, 그리고 공장과 대장장이 1천 명이 끌려갔는데, 그들은 모두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였습니다(왕하 24:14-16). 반란의 구심점이 될 소지가 있는 최고 지도자들과 탁월한 인물들을 모두 뽑아서 끌고 감으로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도록 하여 남 유다를 철저히 무력화 시킨 것입니다. 여기에는 에스겔 선지자와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의 조상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겔 1:1-3, 에 2:5-6).

4. 바벨론 제 3차 포로

1) 포로 시기 – 주전 586년 / 시드기야 11년, 느부갓네살 19년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권면(렘 27:12)을 듣지 않고 반(反)바벨론 정책을 고집하였고(왕하 24:20, 렘 27:12-13, 37:2), 바벨론은 시드기야 제 9년 10월 10일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왕하 25:1, 렘 39:1, 52:4). 시드기야가 애굽에 원군을 요청하여 바벨론 군대가 떠났다가 애굽 군대가 즉각 퇴각하자 다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렘 37:5, 11, 겔 17:15) 시드기야 11년까지 약 30개월 동안(티쉬리 기준 달력) 예루살렘 성을 에워쌌습니다(왕하 25:1-2, 대하 36:11-20, 렘 37:7-10, 겔 17:12-21). 마침내 주전 586년 시드기야 제 11년 4월 9일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왕하 25:1-3, 렘 39:1-2, 52:4-6).

2) 포로 대상과 당시 상황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있는 동안 기근이 극심하여 자녀를 잡아먹을 정도로 비극적 참상이 빚어졌는데(애 2:20, 4:10, 사 9:20, 겔 5:10), 이는 모세의 예언대로(레 26:28-29, 신 28:53-57)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BC 586년,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4월 9일은 유다인들에게 바벨론 유수 기간 내내 금식과 애통의 날로 지켜졌습니다(슥 7:5, 8:19).

성이 함락되던 때 시드기야는 밤에 도망하다가 갈대아 군대에게 잡혀 하맛 땅 립나로 끌려가 바벨론 왕에게 신문을 당하였습니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왕하 25:4-7, 렘 39:4-7, 52:7-11).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한 달 만인 5월 10일에 바벨론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이 와서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사르고 사면 성벽을 헐었습니다(왕하 25:8-12, 대하 36:18-19, 렘 39:8-10, 52:12-16). 그리고 성전의 두 놋기둥(야긴과 보아스)과 받침들과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또 가마들, 부삽들, 불집게들,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또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고,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들을 취하였습니다(왕하 25:13-17, 대하 36:18-19, 렘 52:17-23).

그리고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군사를 거느린 장관(내시) 하나와 왕의 시종 칠 인(혹은 다섯 사람)과 군대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국민 육십 명을 잡아갔으며, 립나에서 그들을 쳐 죽였습니다(왕하 25:18-21, 렘 52:24-27).

한편, 예레미야 52:28-30에는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항거하다 소규모로 잡혀간 자들이 총 4,600명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로 끌려간 자와 고국 땅에 남겨진 자, 그리고 재난을 피하여 주변국으로 도망친 자 등으로 나뉘어, 민족 전체가 갈기갈기 찢기고 그 존재가 점점 사라지는 최악의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선민 유다 백성이 하나님 없는 이방 나라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끌려간 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최대의 비극이요 수치였습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고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거룩하신 뜻을 멸시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의 표현이었습니다(대하 36:21, 참고-렘 34:8-16).

그러나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만 같던 바벨론이 하나님의 주권 역사로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게 하시고(참고-렘 50:3, 9, 41-46장, 51장)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하도록 하셨습니다(대하 36:22-23, 스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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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포로와 귀환 도표

 

바빌론 포로와 귀환

✡ 포로

 

시기

포로/ 탈취/ 파괴

성전 관련

1차

BC605

‧ 바빌론 느부갓네살 2세 1년

(렘25:1-3)

‧ 유다 여호야김 3(4)년

(렘25:1, 46:2, 단1:1-6)

cf. 이사야의 예언

(왕하20:14-19)

‧ 왕족, 통치자들

(단1:1-3)

‧ 다니엘

 

‧ 성전 기구들 중 일부를 가져다가 바빌론의 신당에 보관함

(대하36:6-7, 단1:2)

 

2차

BC597

‧ 느부갓네살 8년

(왕하24:8-15)

‧ 유다 여호야긴 1년

(대하36:9-10)

‧ 1차 포로 8년 후

‧ 왕, 통치자, 왕의 어머니, 아내들, 직무 수행자들, 권세 있는 자들, 강한 용사 7천명, 기술자와 대장장이 1천명, 가난한 자를 제외한 모든 자들 (건강하여 싸움에 능한 모든 자)

(왕하24:14-16)

‧ 에스겔

(겔1:1-2)

‧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가져가고 성전의 금 기구들을 산산조각 냄

(왕하24:13, 대하36:10)

 

 

3차

BC586

‧ 느부갓네살 19년

(렘32:1, 왕하25:1-15)

‧ 유다 시드기야 11년

(렘39:1-15, 52:4-6)

‧ 2차 포로 11년 후

(총 20년 정도에 걸쳐서 포로로 사로잡혀 감)

‧ 왕, 가난한 자들을 제외한 모든 자들

(왕하25:7, 11-12, 렘39:5-10, 52:8- 11)

‧ 왕궁과 위대한 자의 집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좋은 그릇들을 부수며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뭄.

(왕하25:8-10, 대하36:19, 렘39:8, 52:13-14)

‧ 남 유다 멸망

‧ 성전의 모든 기구와 보물을 가져감

(대하36:18)

‧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대들과 놋 바다를 부수어 가져감

(왕하25:13-17)

‧ 솔로몬 성전(제1성전)의 완파

 

✡ 귀환

 

시기

주도자

귀환자

임무/ 성과

1차

BC536

‧ 페르시아 고레스 2세 1년

(대하36:22-23, 스1:1-4)

‧ 606년-70년=536년

(바빌론 1차 포로 70년 후)

- 3차 포로 50년 후

‧ 스룹바벨, 예수아

(스2:1-2, 학1:1, 14)

 

‧ 총 49,897명

(스2:1-65, cf. 느7:5-67)

‧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스1:2-7)

실제 완공은 BC516년

- 1차 귀환 20년 후

- 솔로몬 성전 파괴 70년 후

(516년-586년=70년)

2차

BC458?

‧ 아닥사스다 1세 7년

(스7:7-9)

(1차 귀환으로부터 78년 후)

- 바빌론 1차 포로 148년 후

- 2차 포로 139년 후

- 3차 포로 128년 후

(성전 재건 50년 후)

‧ 에스라

(스7:1-10)

 

‧ 남자만 1,700여명

(스8:1-10)

 

‧ 성전에 필요한 물건들 보충

(스7:14-20)

‧ 성전에서 섬길 레위인들 보충

(스8:15-20)

‧ 유대교에 기반한 행정과 사법 시스템 복구와 율법의 재교육

(스7:25-26, 10)

3차

BC445?

‧ 아닥사스다 1세 20년

(느1:1, 2:1)

(1차 귀환으로부터 91년 후)

- 2차 귀환으로부터 13년 후

- 바빌론 1차 포로 161년 후

- 2차 포로 152년 후

- 3차 포로 141년 후

‧ 느헤미야

(느2:1-8)

 

‧ 느헤미야 (명단 없음)

(느2:1-10)

 

‧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느2:5-8)

‧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삶의 재건

(느8-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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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시대 전후의 역사 정리 도표

포로시대 전후의 역사 

BC721년 BC609년 BC605년 BC597년 BC587년 BC538년 BC520년 BC516년 BC457년 BC445년
북방
이스라엘멸망
애굽/
바벨론
1차전쟁


(무승부)
애굽/
바벨론
2차전쟁
(바벨론승)


다니엘
포로
바벨론
유다침공.


에스겔
포로
남방유다멸망.


3차포로
1차귀환.성전재건


예수아/
스룹바벨
학개/
스가랴,


성전건축격려
성전완공 에스라
와 함께


2차귀환
느헤미야와 함께


3차귀환

 

포로시대에 등장하는 ‘기록 선지자’의 목록

   

기록선지자
(예언자)
활 동 비 고
에 스 겔 ►남 유다의 여호야긴, 시드기야왕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 때
597년 바벨론에
포로가 됨
다 니 엘 ►남 유다의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왕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 바사의 고레스왕 때
605년 바벨론에
포로가 됨
학 개 ►바사의 고레스 이후 다리오1세 때
(1차 포로귀환 후)
바벨론 땅에서
출생
스 가 랴 ►바사의 고레스 이후 다리오1세 때
(1차 포로귀환 후)
바벨론 땅에서
출생
말 라 기 ►바사 다리오왕 2세 때(3차 포로귀환 후)
(느헤미야와 동시대 선지자이나 계속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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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포로 (바빌론 유수)

바벨론 포로(Babylonian Captivity)는 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 율법을 배반한 결과 포로가 되어 바벨론(신바빌로니아)으로 이주한 사건을 말한다. 바빌론 유수(Babylon 幽囚)라고도 한다.
기원전 7세기경, 남 유다 왕국앗수르에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이방 신을 섬기는 데 열과 성을 다했고, 백성들은 회개를 촉구하며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범죄한 유다 백성이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할 것이라 예언했다.[1] 또한 예레미야보다 100여 년 앞서서 사역한 이사야 선지자는 동방의 고레스(키루스 2세)가 바벨론을 징벌하고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할 것이라 예언했다.[2]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역사 속에서 놀랍게 성취되었다.

바벨론 포로기와 포로 귀환(도표)

분류 구분 연대(B.C.) 지도자 관련 성구
바벨론
포로기
1차 포로 606년경 여호야김 3년, 느부갓네살 원년
단 1:1-6
2차 포로 597년경 여호야긴 원년, 느부갓네살 8년
왕하 24:10-17
3차 포로 586년경 시드기야 제11년, 느부갓네살 19년
왕하 25:1, 8-9
바벨론
포로 귀환
1차 귀환 537년경 고레스 원년 스룹바벨 에스라 1장
2차 귀환 457년경 아닥사스다 7년 에스라 에스라 7장
3차 귀환 444년경 아닥사스다 20년 느헤미야 느헤미야 1-6장

바벨론 포로기

주변 열강의 정세와 남 유다 왕국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약 30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하던 앗수르(신아시리아)는, 기원전 612년경 바벨론 왕 나보폴라사르가 이끄는 군대의 니느웨 침공으로 국운이 기울었다.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의 세력 확장에 위기를 느낀 애굽(이집트) 왕 느고(네코 2세)는 앗수르 재건을 돕고 북방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갈그미스로 북진했다. 당시 반 앗수르 정책을 펴던 남 유다 왕국의 요시야왕은 므깃도에서 애굽 왕 느고와 교전을 벌이다 전사한다. 이때부터 남 유다는 애굽의 내정간섭을 받게 된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다〉, 프란츠 폰하우슬라브 작.

바벨론 1차 포로(B.C. 606년경)

요시야왕이 전투에서 죽은 후 애굽의 속국이 된 유다는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버리고 죄악의 길로 돌아섰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재앙과 멸망이 임할 것이라 경고했지만 백성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애굽 왕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끌고 가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쳤다.
얼마 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2세)이 애굽을 격퇴시키며 유다를 침공하여,[3] 다니엘을 포함해 일부 왕족과 귀족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B.C. 606년경).[4]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항복하고 3년을 섬겼으나 4년째 되는 해에 바벨론을 배반했다.

바벨론 2차 포로(B.C. 597년경)

여호야김이 죽고 여호야긴이 유다 왕이 되었다. 그해 느부갓네살왕은 예루살렘을 다시 공격해 성전의 모든 보물과 기명, 왕궁의 보물까지 훼파하고 빼앗아 갔다. 예루살렘의 백성과 방백들, 공장과 대장장이는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빈천한 자들만 남겨 농사를 짓게 했다.[5] 여호야긴왕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 선지자 에스겔도 함께 끌려갔다. 여호야긴에 이어 시드기야(본명: 맛다니야)가 남 유다 왕이 되었다.

바벨론 3차 포로(B.C. 586년경)

유다 왕국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경고도 무시하고 즉위 후 친애굽파와 결탁하여 바벨론에 대항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예레미야에게 부탁했으나,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을 섬기도록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항복을 권했다.[6][7] 하지만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2년 안에 바벨론을 물리칠 것이라며 맞섰다.[8]
기원전 586년경,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예레미야의 경고도 무시하던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했다. 성전과 왕궁은 불탔고 모든 성전 기구는 약탈당했다. 수백만의 백성이 죽고 수십만이 포로로 끌려갔다. 시드기야왕도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에 끌려가 최후를 맞았다.[9] 이처럼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어 참 선지자의 말을 무시했던 자들은 모두 처참한 결말을 맞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응한 사람들은 무사히 지내며 때로는 육신의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서는 성전과 성을 재건하는 기쁨도 누렸다.

포로 귀환

바벨론의 패망과 유다 민족의 해방

바벨론은 메대(메디아)와 함께 앗수르를 멸망시켰고, 느부갓네살(B.C. 605-B.C. 562년경) 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남 유다의 멸망도 느부갓네살왕 시대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바벨론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70년[1]이 지나자 하나님은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일으켜서 바벨론을 응징하고, 바벨론에 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을 해방시키셨다(B.C. 537년경).[10][11] 고레스에 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170여 년 후에 정확히 이루어진 것이다.[2]

1차 귀환과 스룹바벨(B.C. 537년경)

바사 왕 고레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다 백성을 놓아주고 무너진 하나님 성전을 건축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바벨론에 빼앗겼던 예루살렘 성전 기명은 물론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화도 아낌없이 내주었다.[12]
이스라엘 포로 중 약 5만 명이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를 따라 본국으로 귀환했다. 이들은 성력 7월에 예루살렘에 모여 옛 제단 터에 단을 쌓고 초막절을 지켰다.
귀환 이듬해,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다.[13] 하지만 성전 건축에 참여하려다 거절당한 사마리아인들의 극심한 방해로 중단되어[14] 성전 지대만 놓인 채 약 15년의 세월이 흘렀다.[15]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스가랴를 통해 백성들의 심령을 일깨웠고,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공사에 앞장서자 백성들도 힘을 보탰다. 총독 닷드내는 성전 재건의 합법 여부를 확인하려고 바사 왕 다리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다리오 왕은 선왕인 고레스가 성전 재건을 허락한 포고령을 확인하고 성전 건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다리오왕 제6년(B.C. 516년경) 아달월(성력 12월) 3일,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자 모든 백성은 한데 모여 기쁜 마음으로 봉헌식을 행했다. 이듬해, 성력 정월 14일에는 유월절을 지키고 이어서 이방 왕의 마음을 돌이켜 성전을 역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무교절을 지켰다.[16]

2차 귀환과 에스라(B.C. 457년경)

남 유다 백성들의 1차 귀환이 있은 지 80년이 지난 기원전 457년경, 에스라의 인솔로 2차 귀환이 이루어졌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 율법에 통달한 학사 겸 제사장이었다. 그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는데, 그런 그가 본국에 돌아가려 했던 이유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17]
왕은 에스라의 귀향을 허락하면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에스라와 함께 가도 좋다는 조서를 내렸다. 또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일 예물을 에스라에게 주어 가져가게 하고, 제사장들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징수하지 말며,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백성들을 재판하고 가르쳐서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를 처벌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에스라는 귀환 의사가 있는 백성들을 모으고 성전에서 쓰일 예물과 기명들을 가지고 본국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2차 귀환자들 가운데 성전에서 봉사할 레위인이 없는 것을 안 에스라는 레위 자손을 찾아와 귀환에 동참케 했다. 제사장과 다윗 왕조의 후손, 레위인 그리고 백성으로 구성된 2000여 명의 일행이 귀환 길에 올랐다. 그들은 안전하게 예루살렘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금식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했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심으로 평안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18]

3차 귀환과 느헤미야(B.C. 444년경)

바사 왕 아닥사스다 제20년. 바사 제국의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은 불탔으며 백성들은 큰 환난과 능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에게 성벽 중건을 위해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아닥사스다는 느헤미야의 청을 허락하며 그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했고, 예루살렘성 재건을 위한 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조서까지 내렸다.[19]
기원전 444년경,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밤에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보았다. 성벽은 다 무너지고 성문은 불타버린 상태였다. 느헤미야는 제사장과 귀인과 방백들을 불러 모으고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성벽 재건을 위해 자신을 보내셨으니, 성벽을 중건해 지금 당하는 수치를 다시는 당하지 말자고 설득했다.[20] 느헤미야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마음을 모아 예루살렘 성벽 중건에 나섰다.
그러나 공사는 이내 장애에 부딪혔다. 공사 소식을 들은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 게셈 등 여러 대적자들이 예루살렘성의 건축을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백성들이 쌓고 있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는 말로 조롱하고, 어떻게든 공사가 진척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물론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개의치 않고 성 건축에 전념했다. 성벽이 절반쯤 쌓아 올려지자, 이 소식을 들은 대적자들은 불시에 공사 현장에 쳐들어가 백성들을 죽이고 공사를 중단시킬 계획까지 세웠다. 이를 알게 된 느헤미야는 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자며 백성들을 독려했다.[21] 백성들은 예루살렘 안에 거하며 밤에는 보초를 섰고, 낮에는 성 건축을 계속해 나갔다. 또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무기를 들어 경계를 더욱 철저히 했다.[22] 느헤미야는 총독의 보수를 위해 백성들에게 부과되었던 세금을 거두어들이지 않는 등 자신의 권리마저 포기한 채 예루살렘 재건에 몰두했다.[23]
온갖 훼방 속에서도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적들과 이방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낙담했다.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셨다는 사실을 그들도 느꼈기 때문이었다.[24]
예루살렘 성곽 낙성식이 열렸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히 하고,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했다.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교훈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던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멸망한 후에도 남 유다는 히스기야, 요시야 등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히 여긴 일부 왕들의 노력으로 유월절을 지키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기원전 586년경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남 유다도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이내 우상 숭배로 돌아섰기에 때로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고 괴로움을 당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 그들의 죄를 일깨우시고 사는 길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으나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림으로 결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망하고,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많은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서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이 차기까지 지루한 포로 생활을 지냈다.[1][25] 그 와중에 예레미야, 에스겔 등 참 선지자의 말을 듣고 실행한 사람들은 무사히 지내며 때로는 육신의 성공을 거뒀고 끝날에 가서는 귀국하여 성전과 성을 재건하는 등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노력했다. 그러나 하나냐와 같은 거짓 선지자의 예언을 믿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멸망하고 말았다.
성경은 영적 바벨론에 포로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고 알려준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26]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바벨론에서 나와 영적 시온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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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포로와 귀환


1차귀환

이스라엘 백성은 주전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인 은총을 베푸사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셨습니다(렘 29:14).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44:28, 45:1-3)과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 25:11-12, 29:10, 14)대로,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가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발표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대하 36:22-23, 스 1:1-4). 이때부터 바사(페르시아) 제국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다 포로들은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3차에 걸쳐 돌아오게 됩니다. 제 1차 귀환은 주전 537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 귀환 목적과 시기

(1) 목적

바사왕 고레스는 주전 538년에 귀환 조서를 내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라고 공포했습니다(스 1:2-3, 참고-대하 36:22-23).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들이 다 일어났습니다(스 1:5).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성전 건축을 명하게 하신 것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스 1:1). 바벨론 포로 귀환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성전 회복과 그것을 통한 예배의 회복을 자세히 예언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 성전이 짓밟히는 수치를 당한 것(렘 51:51)을 하나님께서 보수하시고(렘 50:28, 51:11), 다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렘 33:10-11, 18). 바벨론에서 돌아온 귀환민들의 최우선 과제는,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을 중심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써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2) 시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렘 25:11-12, 29:10), 이에 대해 역대하 36:21에서는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안식하지 못했던 토지가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 ‘70년’은 실제 포로로 잡혀 간 때와 귀환하여 성전 건축을 시작한 때를 중심으로 볼 때 말씀대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제 1차 포로는 여호야김 3(혹은 4)년(느부갓네살 원년), 곧 주전 605년입니다(왕하 24:1, 렘 25:1, 참고-단 1:1-2). 제 1차 포로 귀환령이 내려진 것은 고레스 원년인 주전 538년으로, 귀환조서를 내린 다음(스 1:2-3), 이 명령을 따라 얼마 동안 귀환준비를 한 유대 민족은 1년 뒤인 주전 537년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스 1:5, 11, 3:1). 그리고 성전 건축을 시작한 것은 주전 536년 2월(시브월)입니다(스 3:1, 8). 그러므로 제 1차로 바벨론에 끄렬간 주전 605년에서 성전을 짓기 시작한 주전 536년까지 햇수로 70년이 정확히 성취된 것입니다.

2. 귀환자와 귀환 당시 상황

(1) 귀환자

제 1차로 귀환할 때의 지도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여호수아)였으며, 총 49,897명이 귀환했습니다(스2:64-66).

귀환자

총인원

49,897명

회중 42,360명 (스 2:1-64, 느 7:5-66)

지도자 11명, 평민 15,604명(가계별), 평민 8,540명(지역별), 제사장 4,289명,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복의 자손 392명, 레위인 341명,

종족과 계보가 불명확한 자 652명,

계수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 12,531명

노비 7,337명 (스 2:65, 느 7:67)

노래하는 남녀 200명 (스 2:65, 느 7:67. 245명으로 기록)

또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제 1차 귀환자 명단을 기록하면서, 귀환할 때 가지고 온 짐승들의 숫자까지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말 736마리, 노새 245마리, 약대 435마리, 나귀 6,720마리로 모두 8,136마리였습니다(스 2:66-67, 느 7:68-69). 이 짐승들의 수치를 귀환자 중 ‘온 회중’의 숫자(42,360명. 스 2:64, 느 7:66)와 비교해 보면, 대략 다섯 사람에 짐승이 한 마리 정도입니다(5인 기준 한 가족 당 1마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도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함께하였습니다(출 12:38).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도 짐승들과 같이 오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이 없도록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귀환민들 뿐 아니라 각 생축들의 숫자까지도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귀환의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주관하시고 섭리하셨음을 나타냅니다(롬 11:36).

(2) 귀환 때 가지고 나온 재물

유다인들이 귀환할 때, 그들이 거하는 주변의 이웃들이 은 그릇, 황금, 기타 물건, 짐승, 보물로 도와주었으며, 그 외에도 그곳 주민들이 하나님께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스 1:4, 6).

또 고레스 왕은 옛적에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여호와의 전 기명을 돌려보냈는데, 유다 목백(牧伯)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가지고 돌아올 때 금반 30, 은반 1,000, 칼 29, 금대접 30, 그보다 차(次)한 은대접 410, 기타 기명 1,000으로 도합 5,400이었습니다(스 1:7-11). 이는 제 1차 귀환자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선전 건축 역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였음을 말해 줍니다.

(3) 귀환 계기

다니엘 선지자는 당시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강대국 바사의 총리로 있으면서 메대 왕 다리오 시대뿐만 아니라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까지 형통하였습니다(단 6:28). 이 말씀을 볼 때, 다니엘이 정치적으로 바사 제국의 기틀 확립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니엘은 메대의 다리오 통치 원년에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라고 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깨달았으므로(단 9:2), 귀환 1년 전(주전538년) 고레스가 유다인의 해방을 공포한 일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대하 36:22, 스 1:1, 5:13).

한편 다니엘 선지자는 고레스 왕 3년에도 바사 제국에 남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단 10:1). 그런데 다니엘 1:21에서는 다니엘의 최종활동 시기를 고레스 3년이라고 하지 않고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 또한, 고레스가 귀환 조서를 발표(스 1:1-4)하는데 다니엘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 것임을 능히 추정케 합니다.

(4) 성전 건축의 과정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선적으로 성막을 완성한 것처럼,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도 오직 성전 건축을 열망하였습니다.

주전 537년 귀환한 백성들은 옛 성전이 있던 터 위에 단을 세우고(스 2:68, 3:3)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고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 지을 준비를 하였습니다(스 3:1-7).

주전 536년 2월에 마침내 성전의 지대를 놓고 성전 건축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스 3:8-1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이 집요하게 성전 재건을 방해했기 때문에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왕에게 조언을 하던 자들(모사)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유다인들을 참소했던 것입니다(스 4:5).

그 후 성전 건축은 약 16년 동안 중단되었다가(주전 536-520년), 주전 520년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백성들의 마음을 감화하여 흥분시키므로, 다리오 왕 제 2년 6월 24일에 재개되었습니다(스 5:1-2, 학 1:14-15, 참고-슥 4:6-10). 이 시기에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 건축의 진정한 의미가 ‘메시아의 도래와 그의 왕국을 맞이하는 데 있음’을 밝히면서(슥 9-14장) 유다 백성의 바른 신앙 회복을 촉구하였습니다.

성전은 주전 516년(다리오 왕 제 6년) 아달월(12월) 3일, 약 4년 5개월 만에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스 6:15). 이것은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무려 70년만의 일로, ‘70년’만에 귀환한다는 예언이 어김없이 성취된 것입니다(렘 25:11-12, 29:10).


바벨론 포로시대의 연대

B.C

722. 북이스라엘 멸망(앗시리아)

605. 바벨론 1차 포로(다니엘, 귀족들)

597. 바벨론 2차 포로(여호야긴, 에스겔, 기술자)

586. 바벨론 3차 포로/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

539. 10월 고레스의 바벨론 점령

538/7 1차 포로 귀환(세스바살, 스룹바벨): 에스라 1-6장

520 학개, 스가랴 선지자의 활동

515 제2성전 완공

492. 1차 페르시아 전쟁(다리오1세, 헬로도토스에 따르면 아토스 곶에서 폭풍을 만나 300척의 전함과 2만명의 군사를 잃음)

490. 2차 페르시아 전쟁(다리오 1세, 마라톤 평야에서 아테네의 중장병 밀집대전술에 패함)

480. 3차 페르시아 전쟁(크세르크세스,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

465. 궁정 쿠데타로 크세르크세스 사망

465. 크세르크세스의 아들 아닥사스다 1세 집권(느헤미야가 술맡은 관원)

461. 이집트가 페르시아 제국에 반기

458 2차 포로 귀환(에스라): 에스라 7-10장/ 1차 신앙운동

444/5 3차 포로 귀환(느혜미야): 느헤미야서/ 성벽재건 공사와 2차 신앙운동

2014 GSC 새벽 큐티 설교 <에스라 1:1-5, 2:1-2>

제목 : <에스라1:1-5, 2:1-2> 다시 세우시는 예배공동체

[에스라1장1절-5절]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 에스라 2장 1절-2절 ]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출처: https://ever-flowingstream.tistory.com/227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제목 : 100년동안 다시 세우시는 예배 공동체

지난주간까지 <에스더서>가 끝나고 이번주부터 <에스라서>본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에스라서의 전체적인 개관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1장과 2장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처: https://ever-flowingstream.tistory.com/227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흔히 <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는 동시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살펴볼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 에스더 느헤미야 에스더 >를 연대기적으로 배열한다면 < 에스라 - 에스더 - 느혜미야 >로 재배열할수 있을 것입니다.

주로 이 세가지 말씀은 이스라엘의 1,2,3차 포로귀환이 진행되었던 5세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히브리 원문 성경에는 < 에스라와 느헤미야 >가 한 권으로 책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bc 538년-433년까지 약 100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왕부터 캄비아스, 다리오,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왕까지의 여러대의 걸친 페르시아 제국의 세속의 역사와 함께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출처: https://ever-flowingstream.tistory.com/227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주된 이야기와 사건들의 배경은 <3번에 걸친 바벨론 포로 귀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다 시피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이 이방나라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이 멸망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앗수르 마져도 바벨론 대제국앞에 무릎을 꿇고 그 사이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은 3번에 걸쳐서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바사나라 곧 페르시아 대 제국에 의해서 멸망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생활을 한후에 3번에 걸쳐서 포로귀환이 이루어집니다. 1차귀환은 < 스룹바벨 >과 함께, 2차 귀환은 < 에스라 >와 함께, 3차 귀환은 <느헤미야>와 함께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3번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것은 < 바벨로 유수 >라고

말합니다.

출처: https://ever-flowingstream.tistory.com/227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3번에 걸쳐서 바벨론에서 돌아온것을 < 바벨론 포로 귀환 >이라고 말합니다. 공교롭게도 3번에 걸쳐서 잡혀가고 3번에 걸쳐서 돌아옵니다.

출처: https://ever-flowingstream.tistory.com/227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이렇게 이스라엘과 유다백성이 구사일생으로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수 있는 것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과 구원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역대기서를 보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의 파괴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장면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끝맺고 있습니다.

역대하 36:21-23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22.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역대하 마지막장 마지막절은 고스란히 에스라 1장 1절-3절에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역대기 기자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을 떠나 귀환하는 문제를 미결상태로 남겨놓은 반면에 에스라는 그 귀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속에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서 자신의 백성이 돌아올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5:11-13

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13.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리고 이사야 45장 1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는 일에 <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종 >의 역할을 바사 나라 < 고레스왕(Cyrus) >이 감당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출처: https://ever-flowingstream.tistory.com/227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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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벨론 포로 귀환의 사건은 갑자기 일어나는 행운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고 그것을 이루어가시는 구속의 역사와 성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속의 시간표가 구속의 시간표로 바뀌는 장면입니다.

실패의 시간표가 은혜의 시간표로 바뀌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에스라서속에 담겨있는 <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성취 >를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속의 역사속에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끝까지 자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지를 우리는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에스라서 1장 1절을 읽으면서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에는 대목은 세속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해줍니다. 그러나 <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라는 대목에서 이 세속의 역사를 도구삼아 자신의 구속의 역사를 써내려 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손길과 계획을 주목해서 보아야합니다.

바로 이 대목이 세속사가 구속사가 바뀌는 대목입니다. 세속의 주인공이 하나님의 선한 일에 주인공이 되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시간과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상황들>은 그냥 세상적인 시간과 사건들이 아님을 명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에게 <일상처럼 주어진 시간과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상황들>을 구속의 은혜와 고백으로 바꿔내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구속의 묵상으로 바꾸는 능력

우리의 시간을 구원의 시간으로 바꾸는 능력

우리의 상황을 구원의 감격으로 바꾸는 능력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구속사로 다시 써내려가는 능력입니다.

에스라서는 바로 그냥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일어나는 포로 귀환의 사건들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포로 귀환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의 포로 유수의 70년의 시간,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100년의 시간을 어떻게 우리는 바라보아야 할까요?

먼저 우리는 왜 ?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심판을 당했나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철저하게 하나님께 버림 받는 심판의 고통을 당했던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은 <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패한 예배공동체였습니다. 실패한 예배자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자부했던 예배의 처소인 성전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맙니다.

그들이 범죄와 가증한 태도로 하나님만을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이방나라를 의지하고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사람들과 교제하는 이들이 하나님이 참을수 없는 심판을 만들게 된것입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판격이 되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바로 < 예배의 실패 >였습니다. 제사장들이 타락하고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우상을 섬겼고 가증한 일을 행했습니다. 실제로 포로로 잡혀갈때보면 대부분이 < 제사장들과 지도자들, 귀족들이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러한 70년의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들 다시 돌아오게 하셔야 했을까요?

바로 그 이유는 < 그들이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보기 원

하셨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바사왕 고레스의 호의와 조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약속하고 주었던 땅으로 돌아가게하십니다.

그 주된 이유는 < 다시 예배공동체를 세우셔서 다시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예배자들로 세우기 위함 >이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가장 먼저한 일은 바로 < 성전을 재건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예배 공동체를 다시는 세우는 일입니다.

실제로 에스라1장에 보면 바사왕 고레스(키루스)가 < 성전 재건을 허락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이방신 말둑을 섬기고 있는 바사왕이 자신의 신도 아닌 다른 나라 신을 섬기도록 허락하는 일은 가히 상상할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바사왕 고레스의 유화적인 정책과 태도를 사용하십니다. 고레스의 자비로운 통치의 이면에는 < 하나님의 감동 >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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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에스라 1장은 분명히 그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왕의 이면에 일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성전이 재건되고 제사가 재확립됩니다.

그리고 에스라 1장 마지막 절을 보면 놀랍겠도 빼앗겼던 성전기물들을 가지고 가게하고 성전을 건축하는 자금을 지원받게 됩니다. 어찌 이런일이 ... 세상에 이런일이... 믿거나 말거나 ...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 역사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에스라 2장에 언급되어 있는 포로귀환자 명단을 면밀히 보면 < 제사장들, 제사에 수종드는 자들, 그리고 성전에 허드렛일을 하는 이방족속 느디니사람들 >이 주된 사람들 42,350명이 돌아오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성전건축과 제사를 회복하시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사람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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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사람중에 < 아론의 16대손, 스라야의 아들, 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 >를 통해서 그 일들을 주도하게 하십니다. 바로 에스라를 통해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할 뿐아니라 이스라엘 다시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공동체로 재건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엡 백성의 실패는 < 예배의 실패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 예배의 재건>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에스라서를 통해서 주목해서 묵상해야할 것은

1/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이 기뻐하는 새성전을 다시 세우고 계시는가?

2/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예배를 받기 위해 남은 예배자들를 구원하시는가?

3/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이 원하시는 예배공동체를 세우시는가?

이것을 주목해서 보아합니다.

다시 세우는 성전 재건

다시 모으시는 예배자들

다시 일으키시는 예배공동체

이것이 에스라서를 묵상하는 핵심방향입니다.

우리는 반대로 우리는 이렇게 적용질문을 만들어 볼수 있습니다.

1/ 나에게 무너져있고 실패하고 있는 성전은 없는가?

2/ 나는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인가?

3/ 나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공동체가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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