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



바리새인들의 기원과 특징, 신학적 입장과 생활 방식, 
그리고 예수님 및 초대교회와의 관계를 역사적· 신학적 배경

 ‘바리새인(Pharisees)

1. 역사적 기원과 배경

  1. 명칭과 유래

  • “바리새인(Pharisees)”이라는 명칭은 히브리어(또는 아람어) ‘퍼루심(פרושים)’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단어는 “분리된 자들” 혹은 “구별된 자들”을 의미합니다.

  • 이들이 “분리된 자들”이라 불린 이유에 대해서는, 죄나 불경건, 이방 문화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고자 하는 경건 운동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됩니다.

  1. 형성 시기

  • 바리새인들은 주전 2세기경 하스몬 왕조 시기(마카비 혁명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 헬레니즘 문화의 침투와 왕조의 세속화에 반대하며, 율법의 철저한 준수와 경건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1. 사회적 기반

  • 바리새인들은 주로 중산층, 서기관(율법교사), 랍비(교사) 출신이 많았고, 일반 백성 사이에서도 널리 지지받았습니다.

  • 사두개인들이 성전 귀족 계층이라면, 바리새인들은 주로 회당(Synagogue)과 교육 현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백성들의 신앙생활 지도를 담당했습니다.

  1. 요세푸스의 언급

  •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바리새인은 백성들의 존경과 지지를 많이 받았고, 이들은 율법 해석에 능통했으며, 세부 규정에까지 엄격한 준수를 요구했다고 기록합니다.


2. 신학적·종교적 특징

  1. 율법과 구전 전승(구전율법)의 중시

  • 바리새인들은 모세오경(토라)뿐 아니라, 랍비적·전승적 해석(미쉬나, 구전율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 율법의 조항을 일상생활 모든 영역으로 확대·적용하며, 백성들이 거룩과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세세한 규정들을 마련했습니다.

  • 예를 들어, 안식일 준수, 정결 예식(손 씻기, 식사 규정), 십일조와 헌물 규정 등에서 매우 엄격한 전통을 만들고 지켜 왔습니다.

  1. 부활과 영적 세계 인정

  •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 천사와 영적 존재의 실재 등을 믿었습니다(행 23:8).

  • 이 점은 사두개인들과의 가장 큰 신학적 차이 중 하나였고, 예수와 사도들의 ‘부활 신앙’에 대해서도 일부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습니다.


  1.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

  • 요세푸스 등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은 인간의 운명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개입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어느 정도 자유 의지도 주어진다고 이해했습니다.

  • 사두개인들이 운명과 초자연적 개념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바리새인들은 좀 더 복합적인 신학 체계를 갖춘 편이었습니다.

  1. 거룩과 순결 강조

  • 바리새인들은 일상 속에서도 성전에서 행해지는 것과 유사한 ‘정결의식’을 지켜야 한다고 보았고, 부정한 것(시체, 혈액, 특정 음식 등)을 피하고자 하는 철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본래는 경건성과 윤리성에 대한 열정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율법주의’ 혹은 ‘외형적 의’로 흐를 위험도 있었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마 23장). 

3.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갈등과 교훈

  1. 바리새인들의 의도와 실제

  • 바리새인들은 본래 백성들의 신앙을 정결하게 유지하고, 이방 문화의 침투를 막으려는 열심에서 출발했습니다.

  • 하지만 예수 시대에 이르면, 일부 바리새인들은 외형적 율법 준수와 자기 의에 빠져, 본래 경건 운동의 취지를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1. 예수님의 비판

  •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장 강력한 비판 대상 중 하나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마 23장 등).

  • 예수님은 “외식”(겉으로만 경건을 드러내면서, 내적 변화와 공의·인애를 소홀히 하는 태도)을 지적하셨습니다.

  • 또한 세세한 전통과 규례를 지키면서도, 율법의 더 중요한 정신—정의, 긍휼, 믿음, 사랑—을 놓치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마 23:23).

  1. 일부 바리새인들의 긍정적 역할

  • 모든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니고데모(요 3장), 아리마대 요셉 등은 예수님을 존경하거나 그 가르침을 진지하게 따르려 했습니다.

  • 예수 부활 이후, 사도행전에서도 어떤 바리새인들이 기독교 신앙에 호의적이었거나(행 15:5), 바울과의 논쟁 가운데서도 부활의 교리를 옹호하기도 했습니다(행 23:9).

  1. 율법과 복음의 관계

  • 예수님은 율법 자체를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시려 오셨다고 하셨습니다(마 5:17-18).

  • 바리새인들의 율법 준수가 지닌 의의와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율법이 가리키는 궁극적 가치를 보지 못하고 ‘외적 형태’에만 머무는 위험성을 예수께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4. 초대교회와 바리새인의 관계

  1. 바울의 사례

  • 사도 바울은 자신을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고 고백합니다(빌 3:5, 행 23:6).

  • 그는 율법에 열심인 바리새인으로서 초기 교회를 박해했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회심했습니다(행 9장).

  • 이후에도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했던 자였으나(빌 3:6),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비교해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빌 3:8).

  • 바울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깊이 고찰했고,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교리를 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갈, 롬 등).


  1.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와 바리새인

  • 사도행전 15장에서, 이방인들의 할례 문제를 두고 논의가 진행되는 장면에서 “바리새파 중에 믿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행 15:5).

  • 이들은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바리새적인 전통을 지닌 크리스천들이 일상적 율법 준수를 이방인에게도 적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 최종 결론은 “이방인이 율법 전체를 지킬 필요는 없고, 다만 우상에게 바친 것, 음행, 목 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하라”는 타협안을 도출하게 됩니다(행 15:28-29).

  • 이는 초대교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율법 준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공동체 질서를 세우고자 했던 노력을 잘 보여줍니다.


  1. 래빅(랍비) 유대교 형성

  •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사두개인과 같이 성전 제사 중심으로 권력을 행사하던 분파는 몰락합니다.

  • 이후 바리새적 전통이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로 발전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대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됩니다.

  • 이 과정에서 회당 중심 예배, 율법 해석학, 구전율법(미쉬나, 탈무드)의 집대성 등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5. 평가와 의의

  1. 경건 운동의 공로

  • 바리새인들은 당시 세속화되어 가는 유대 사회 속에서 율법을 지키고, 일상 속에 거룩을 실천하도록 독려하는 경건 운동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큰 공로가 있습니다.

  •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율법)에 대한 열심과 경건생활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가르쳤습니다.

  1. 율법주의적 함정

  • 그러나 예수님의 책망에서 드러난 것처럼, 인간의 전통과 세세한 규칙을 강조하는 나머지, 율법의 근본 정신(사랑, 자비, 정의)을 훼손하거나 형식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 복음서와 서신서는 ‘율법이 아닌 은혜’, ‘형식이 아닌 마음의 변화’를 강조함으로써, 바리새적 율법주의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1. 초대교회와 랍비 유대교의 갈림길

  • 성전 파괴 후 유대교의 중심이 바리새적 전통을 이어받은 랍비 유대교로 재편되었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공동체(초대교회)가 분리되어 성장하게 됩니다.

  • 이 과정을 통해, 율법 중심 공동체와 복음 중심 공동체가 크게 갈리게 되었는데, 바리새인들의 신학과 전통이 랍비 유대교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6. 맺으며

바리새인들은 원래 경건운동을 통해 율법을 생활 속에서 철저히 지키고자 한 열정적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시대에 이르러, 일부 바리새인들은 외형적인 규율과 자기 의에 몰두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과 충돌을 빚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판은 단지 “바리새인”이라는 그룹 전체를 폄훼하기보다는, “위선적 종교생활”에 대한 경고이자 ‘율법의 정신’을 놓치는 모든 이들을 향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 전통은 AD 70년 성전 파괴 이후 랍비 유대교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대교의 핵심 사상이 되었고, 이와 동시에 초대교회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확립함으로써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 서신 등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관련 언급들을 좀 더 풍부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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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이방 문화에 물들어 가는 것을 배격하고 모세오경과 유대인들의 전승을 강조하며,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평신도 신앙 운동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자 점점 그들이 유대인들의 지도층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첫 출발은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하였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권력도 생기게 되자, 그들의 경건은 변질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와 금식, 십일조 생활, 구제 등에 언제나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들의 엄격한 신앙 생활은 일반인들이 따르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의지에서 출발한 경건도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선망을 받으며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도는 항상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나 그들 마음에는 자신들의 호칭처럼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특권의식도 자리 잡았습니다.

11절에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라는 표현에서 바리새인이 기도드릴 때의 마음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도드리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기를 원했고 특별하게 보이길 원했던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기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의 기도는 결국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잘 봐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경건한 모습을 자랑하듯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러니 저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있으니 제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자기 의(義)를 내세워 기도했으며,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서서 기도했지만 주님은 그들을 낮아지게 했습니다.

기도는 자기의 의(義)를 힘입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리도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세리의 기도는 바리새인과 달랐습니다.

13절에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라는 표현에서 세리가 기도드릴 때의 마음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만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 받을 기대도 하지 않지만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합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나는 죄인입니다” 결국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을 의지했습니다. 
세리들은 몸을 구푸리고 엎드려 기도했지만 주님은 그들을 높여주십니다.

기도는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의지하며 나가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그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기도의 자리에서 겸손히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입니까? 아니면 세리의 기도입니까?

적용 /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기도한 일은 있지 않나요? 하나님만 집중하며 겸손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기도  /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날 바리새인과 같이 특권의식과 교만으로 물든 마음으로 기도한 것들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며,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한 자세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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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누가복음 5:30)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마가복음 8:11)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마태복음 12:14)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향해 비방하고 힐난하며 죽이고 싶은 마음을 표출했던 것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믿었던 바리새인들의 마음 중심의 실상은 회칠한 무덤과 같았고 독을 숨긴 독사와도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신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안으로는 회개치 않은 교만과 악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복음 12:34)

​하나님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인류를 진단하셨기에 (롬 3:10),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위해 피흘려 죽으셨고 죄인임을 시인하고 나아오는 모든 자의 '의'가 되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에게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죄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힘입지 않으면 그저 멸망할 죄인일 뿐임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가 자신들을 의롭게 한다고 믿었기에 교만했던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전도서 7:20)

​우리는 스스로 그 어떤 행위로도 의롭게 될 수 없는 죄인들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만 벌거벗지 않은 죄인들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기도 속에 나타난 바리새인과 세리의 차이는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며 중심에 회개치 않는 죄인과 하나님을 자기 의로 여기며 회개하는 죄인의 차이이므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선한 열매는 오직 회개하는 죄인에게서만 맺힐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누가복음 3:8~9)

​십일조도 하고 금식도 하며 하나님을 주여주여 하던 바리새인이지만, 그런 바리새인을 향해 예수님은 단 한번도 천국에 들어갈 자의 상징으로 언급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 강도와 같이 멸시받는 죄인이지만 겸손히 뉘우치고 나오는 자들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신 목적 자체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2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21:31)


하나님이 서로를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눅6:37)

우리는 그 이유를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서 붙잡힌 사건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인을 구원하신 장면은 인류가 처한 상황과 하나님의 뜻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돌로 쳐죽인다는 것은 죄인을 심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왜 돌을 던지려던 사람들이 돌을 놓고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갔을까요?

심판자가 되려면 죄가 하나도 없어야만 하는데, 그들 중에는 죄 없는 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7)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심판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심판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심판자로다" (야고보서 4:11)

그러나 다른 성도들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담임 목회자가 마음에 안 든다며 흠을 찾고 고발하며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입장인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심판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마음 중심에 있는 한번 예수님을 영접했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 버리시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념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셨고 (살전5:19),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타락하면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하셨으며 (히6:6),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도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셨고 (마18:35),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마5:22).

그리고 성령을 훼방하면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한다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막3:29).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대신 죽으심으로 구원하신 형제를,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된 그 지체를 함부로 비방하고 정죄할 경우

눈에 보이는 형제에게 한 것을 보이지 않는 나에게 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하신 그대로 심판하실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마25:40, 요1서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한1서 4:2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믿음과 겸손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회개의 열매요 회개한 죄인의 성품이며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외적인 기준으로 믿음을 보시지 않으며 그가 맺는 선한 열매로 그를 평가하십니다 (마7:20).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회개의 토대 위에 세워져있지 않으면,

아무리 높은 직분에 오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다해도 교만이 그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자기 의로 끝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7:22).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모습이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고도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독촉하며 학대하는 배은망덕한 자로 발견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한1서 3:10)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누가복음 6:36)

​온 인류를 심판할 자격을 가지신 유일한 심판자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라면, 영혼을 구원하시고 죄인을 돌이켜 살리시려는 주님의 마음과 합한 마음을 우리도 품어야 합니다.

상한 갈대를 무자비하게 꺾어버리고 꺼져가는 심지를 냉정히 꺼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매서운 칼바람에 꽃잎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어린 아이처럼 온유함으로 서로를 보듬어가며 천국을 향해 걸어갈 때 우리 모두가 함께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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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새인의 기도(11절) :     
바리새인의 기도는 당시 사회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기도로 알려진 기도이고,  많은 사람이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소원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들을 것이 없는 가장 형편없는 기도의 표본으로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 바리새인들은 따로 서서 기도하여(11절) : 스타데이스(σταθεις) 2476

여기에서의‘서서’에 해당하는 ‘스타데이스’는  자신을 나타내도록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따로 서서  고자세(高姿勢)로 당당하게 서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 세리는 멀찍이 서서(13절) : 헤스토스( εστως) 2476 / 완료부정사 - 

    여기에서의‘서서’에 해당하는 ‘헤스토스’는 초라하게 서서 마음에 아픔과 고통을 느끼면서  혼잣말로 하는 것처럼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저자세(低姿勢)


ἵστημι Storng number 2476

1. 놓다.  2. 세우다.  3. 내세우다  
Pronunciation [ histēmi ]
관련 성경  /  서다(마2:9, 막9:1, 요1:35), 세우다(마4:5, 행6:6, 롬3:31), 데리고 가다(마18:16), 서 있다(마20:6), 두다(마25:33), 멈추다(행8:38), 작정하다(행17:31), 그대로 두다(고전7:37), 확정하다(고후13:1), 대적하다(엡6:13), 앉다(약2:3), 일어서다(계11:11).




예수님이 비유하신 바리새인의 외식적인 기도의 모습


   누가복음 18:9-1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모습을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리새인은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하나님에게 서서 기도한다. (11-12절)

우리는 이 구절을 보면서 바리새인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과장한 것으로 여긴다. 정말로 그럴까? [탈무드]에는 주후 1세기 당시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탈무드에 기록된 바리새인의 기도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길 모퉁이에 앉아 있는 자들의 무리에 참여케 하지 않으시고 회당에 앉아 있는 자들의 무리에 참여케 하신 것을 당신에게 감사하나이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들도 아침 일찍 일어나지만 나는 일찍부터 율법의 말씀에 종사하고 저들은 일찍부터 헛된 일에 종사함이니이다. 

나도 수고하고 저들도 수고하지만, 나는 수고하고 그 보수를 받되 저들은 수고하고도 보수를 받지 못함이니이다. 나도 알려가고 저들도 달려가지만 나는 미래 세계의 생명을 향해 달려가고 저들은 멸망의 구렁을 향해 달려감이니이다."

금식의 어려움이 바리새인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1년에 단 하루, 속죄일에만 금식하도록 율법이 규정하였지만, 바리새인들은 1주일에 두번, 즉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했다. 

바리새인들이 기도를 하면서 금식한 것을 자랑할 수 있었던 데는 금식의 어려움이 뒷받침 되었다. 물을 마시면서 하는 우리의 금식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조차 입에 대지 않고 금식을 했다. 

예수님의 지적은 정확하게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찔렀을 것이다.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명함에 40일 금식을 했다는 것을 자랑삼아서 기록을 해놓고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기도 한다. 완전히 바리새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이 된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눅11:39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 도다."눅11:43

바리새인과 율법사를 향한 예수님의 매서운 질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

예수님께서 의롭다 한 사람은 죄인임을 알고 가슴 아파하던 세리가 더 의롭다고 말씀하셨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리라"(눅18: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