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Esther) 09.13. 2021 - 09. 23. 2021





에스더 10:1-3

09-23-2021(목)

1. 아하수에로왕이 그 본토와 바다 섬들로 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2. 왕의 능력의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 9:1-32

09-22-2021(수)



1. 아달월 곧 십이월 십 삼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에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 각 읍에 모여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

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인을 죽이고 멸하고

7.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1.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고하니

12.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인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도에서는 어떠하였겠느뇨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또한 시행하겠노라

13. 에스더가 가로되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시거든 수산에 거하는 유다인으로 내일도 오늘날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하소서

14.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15. 아달월 십 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 왕의 각 도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인을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7. 아달월 십 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 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 수산에 거한 유다인은 십 삼일과 십 사일에 모였고 십 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월 십 사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20.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무론 원근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21.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 사일과 십 오일을 지키라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23. 유다인이 자기들의 이미 시작한대로 또는 모르드개의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24.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저희를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25. 에스더가 왕의 앞에 나아감을 인하여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26.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을 인하여

27. 뜻을 정하고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한 정기에 이 두 날을 연하여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28. 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더라

29.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이 지키게 하되

30.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일백 이십 칠도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31. 정한 기한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의 명한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을 인하여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32.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히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에스더 8:1-17

09-21-2021(화)

1. 당일에 아하수에로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고한고로 모르드개가 왕의 앞에 나아오니

2.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로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하니라

3. 에스더가 다시 왕의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

4.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홀을 내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의 앞에 서서

5. 가로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선히 여기시며 나를 기쁘게 보실찐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도에 있는 유다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취소하소서

6.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

7. 아하수에로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달렸고 내가 그 집으로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찌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음이니라

9. 그 때 시완월 삼월 이십 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무릇 모르드개의 시키는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일백 이십 칠도 유다인과 대신과 방백과 관원에게 전할쌔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과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대로 쓰되

10. 아하수에로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저희는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11.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 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13. 이 조서 초본을 각 도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으로 예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 왕의 명이 심히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의 앞에서 나오니 수산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에스더 7:1-10

09-20-2021(월)

1. 왕이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나아가니라

2. 왕이 이 둘째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가로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찌라도 시행하겠노라

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
grant me my life--this is my petition. And spare my people)

4.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5. 아하수에로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일러 가로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뇨

6. 에스더가 가로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

7.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줄 앎이더라

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의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가로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9.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10.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9월 20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7:1∼10
♦ 묵상을 위한 주제 :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3절)
♦ 성구 : 왕후(王后) 에스더가 대답(對答)하여 가로되 왕(王)이여 내가 만일(萬一) 왕(王)의 목전(目前)에서 은혜(恩惠)를 입었으며 왕(王)이 선(善)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所請)대로 내 생명(生命)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要求)대로 내 민족(民族)을 내게 주소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Spare my People!)”

둘째 날 잔치 자리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에스더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왕후 에스더가 왕에게 요청한 것입니다.
내 생명과 내 민족을 구하여 달라는 청원을 듣고 아하수에로 왕은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왕후 에스더의 청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가장 신뢰하는 하만을 지지해야 하는가?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의 순간이 잠시 자리를 떠났던 왕이 들어왔을 때 하만이 에스더의 걸상에 엎드린 것을 보며 왕은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려는가?”

얼굴을 싸더라 :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에서는 죄수의 얼굴과 머리를 수건과 천으로 가려 저주와 죽음을 나타내었다.
얼굴을 싸는 것은 로마나 그리스에서 죄인을 다루는 관습이었는데, 왕의 신하들이 왕의 의사에 따라 그를 죄인으로 취급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왕의 신하 ‘하르보나’가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황제의 살해 음모를 고발한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하만이 자기 집 뜰에 50규빗(약 23m) 높이의 교수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왕은 “하만을 그 교수대에 매달아 처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그 교수대에 하만을 매달자 그제서야 왕의  분노가 가라앉았습니다.

왕후 에스더의 침착하고 지혜로운 처세술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잔치 날에 왕에게 요청할 수 있는 것을 둘째 잔치 날까지 기다리며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은 성급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우리들은 살아온 과거가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야 할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을 지혜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은 우리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교활한 방법으로 손짓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오늘도 세상을 이기셨던 예수님처럼 지혜를 구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기쁨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어둠과 죄악과 싸우면서 영원한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두려움 없이 승리를 확신하며 선한 싸움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추신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 기도 주간 / 9월 20일(월) - 25일(토)
한국에서는 추석 명절을 맞이하는 연휴가 계속되는 주간입니다.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들을 만날 때 느헤미야처럼 고향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도하므로 예루살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주간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 기도주간으로 정하고 우리의 고향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기도하는 주간으로 지내시기 바랍니다.

에스더 7: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내 생명 내 민족

1. 동일시(同一視, Identification)
동일하게 보는 것 /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동질화(同質化, Homosocialization)
같은 성질이 되는 것 /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로마서 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에스더 5: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에스더 7: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이사야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오늘의 기도

주를 위하여 살아보자!

왕은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하만에 대한 처분을 밝히지 않고 잔치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 왕궁 후원으로 나갔다.

본서 저자는 아하수에로 왕이 왜, 무엇을 하려고 왕궁 후원으로 나갔는지 아무런 언급도 없이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 수많은 해석들이 제시됨은 당연한 일인데, 대표적인 견해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끊어오르는 화를 발산하기 위하여 나무를 자르려고 후원으로 갔다는 견해이다.
이는 아람어로 기록된 탈굼(Talgum ll)에 근거를 둔 견해이다.

둘째, 하만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으로 하만의 얼굴조차 보기 싫어서 자리를 피했다는 견해이다.

셋째는 아직까지 하만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그를 벌하기가 쉽지 않아서 자리를 피했다는 견해이다.

넷째, 술과 분노로 인하여 그의 몸이 달아올랐기 때문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진정시키기 위하여 후원으로 갔다는 견해이다.

다섯번째는 다음절과 관련된 것으로 8절에서 하만이 에스더가 있는 걸상 위에 엎드린 것을 보고 그가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려는 것으로 오해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바로 이 사건의 복선을 이루기 위한 저자의 의도적이며 인위적인 삽입이라는 견해이다.

마지막 여섯번째는 하만을 어떻게 벌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 다소간이라도 시간을 벌려고 자리를 잠시 피했다는 견해이다.

이 중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의 해석은 마지막 견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절 후반부에서는 하만이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 줄을 알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왕이 왕궁 후원으로 나간 이유를 암시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서를 원는 독자는 모두 하만의 표현대로 아하수에로 왕이 이 순간 하만에 대한 분노로 그에게 벌을 내리려고 한다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그가 잔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왕궁 후원으로 간 이유도 하만에 대한 처벌올 결정하기 위함이라는 논리가 가장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그는 하만에 대한 처벌을 결정하기가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왕비의 애원이라 해도 제국의 총리 대신을 즉각적으로 처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본서 저자는 결정을 한 단계 유보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이런 모습을 본서 시작부터 일관성 있게 그려왔다.
그는 변덕스러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매사를 자신의 주관대로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의 전처 와스디가 그의 명령에 불복했올 때도 아하수에로는 이 문제에 대한 처리를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물었다(1:13-15).
그 후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여인들을 모집하는 문제도 역시 ‘왕의 시신’의 의견을 따랐다(2:2-4).
유다인올 멸절하려는 사건도 하만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였다(3:10-11).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왕올 모살하려는 음모를 꾸였을 때 모르드개가 고하여 공을 세웠지만 아무런 상급도 내리지 않았었으며, 이후 역대 일기를 읽는 중 이 사건을 발견했을 때도 그는 이 문제을 처리할 자문자를 찾았다(6:3-6).
이와 같이 본서 저자는 아하수에로가 항상 의사결정올 함에 있어서 버릇처럼 조언자를 찾았음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었다.
본문에서도 역시 그는 하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왕궁 후원’으로 갔다고 볼 수 있다.

윤용근 변호사(법무법인 엘플러스 대표 변호사)가 매주 금요일 오후 유튜브로 생중계 되고 있는 '차별금지법 바로알기 아카데미'(차바아) 시즌2의 17일(제39회) 순서에서 "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주장을 팩트체크 한다!"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윤 변호사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차별금지법에 관해 관심이 없었다. 아내가 차별금지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어봤는데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것을 공부하고 알려 주겠다고 했다. 차별금지법 법안을 읽어보았는데 첫 번째로 부딪힌 것이 사람의 성별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성별이 있었나?'라고 생각해보았을 때,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는데 왜 이런 법안이 만들어졌는지 끝까지 읽었으며, 차별금지법을 다 읽고나서 느낀 결과는 이것은 인권을 위한 법률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를 위한 법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법적으로 심각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차별금지법에 대해 알고 나니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법에 대해 반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법안 발의와 관련해서 어떻게 발의되고 진행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차별금지법이 2020년 6월 29일에 정의당을 중심으로 해서 발의가 되었다. 이를 반대하기 위해 1년 동안 열심히 싸워왔다. 그런데 2021년 6월 16일에 이상민 의원에 의해 평등법안이 발의되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십수 년 전부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시안을 국회에 제출했었다. 이 시안을 바탕으로 국회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했다가 폐기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윤 변호사는 "두 법안의 특징을 보면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안, 평등법안에 기초하며 이름만 바꾸고 법안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을 보면 중복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면 왜 중복적으로 법안을 발의할까? 그 의도는 입법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법률안이 발의되었기 때문에 평등법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함이며, 여론을 집중적으로 몰아가기 위함이다. 우리는 평등법을 반대하고 있다. 반대하는 이유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평등법 제정 반대 국민청원을 한 적이 있었으며, 최단 시간에 10만 명이 반대에 동의했다. 반대하는 이유는 이 법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대의 이유를 보면 성적지향이 다르다고 반대한다는 것이다. 성적지향이라는 규정안에 동성애를 포함하고 있다. 성적지향이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감정적, 호의적, 성적으로 깊이 이끌릴 수 있고 친밀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맺지 않을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을 말한다"며 "성적지향에 동성애를 포함하고 있어서 반대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동성애 행위를 죄로 보고 있다. 죄는 금지되는 것이다. 금지되는 죄를 법으로 인정하겠다고 하는 것이 평등법, 차별금지법"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평등법을 반대할 때 법적 근거로 반대했으면 좋겠다. 일반 국민이 동성애를 반대할 때 명백한 헌법의 근거를 가지고 반대한다. 헌법적 근거를 명확히 알고 주변인들에게 전달했으면 좋겠다. 인권위가 그동안 평등법,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법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우리가 인권위 상대로 지적해왔다. 최근에 인권위에서 평등법이 발의되어야 하는 주장을 10개로 정리해 놓았다. 이 10개의 주장들을 보며 팩트체크를 하고자 한다"라고 했다.

윤 변호사는

첫째 팩트체크, '차별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법률 제정이 필요한가?

이에 대한 팩트는 이미 이런 법률이 있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팩트체크, '평등법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과도한 국가 개입이 아닌가?

이에 대한 팩트는 국민의 모든 사적 영역에 개입하는 건 과도하다는 것이다.

셋째 팩트체크, '불명확한 차별 개념에 따른 법치주의 원칙 위배가 아닌가?

이에 대한 팩트는 괴롭힘, 구별 등은 너무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넷째 팩트체크, '여성이나 남성으로 분류되지 않는 '제3의 성'을 성별에 개념에 넣는 것은 과도하다?'

이에 대한 팩트는 성별은 창조 때부터 여성 아니면 남성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다섯째 팩트체크,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불확정적 개념이다?'

이에 대한 팩트는 이는 낯설고 불명확하며, 정의 규정에도 없다는 것이다.

여섯째 팩트체크, '제3의 성, 성별 정체성 개념으로 가족제도 붕괴, 국가 신원 체계 변동 야기, 병역의무 회피 수단으로 악용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팩트는 주민등록제도, 징병제도, 가족제도가 무너질 수 있다"라고 했다.

일곱째 팩트체크, '화장실, 목욕탕, 탈의실에 성 중립 시설을 두게 되면 여성의 안전이 위협을 받고 여성의 역차별을 초래한다?'

이에 대한 팩트는 화장실, 탈의실 등에 성 중립 시설을 따로 마련해야 하며, 여성 안전 위협과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덟째 팩트체크, '평등법이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제한한다'

이에 대한 팩트는 평등법을 통해 제한이 되며 종교 등 모든 영역에 적용되고 반대하는 표현 자체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아홉째 팩트체크, '차별구제수단이 피해자 위주(소수자 편향성)이다'

이에 대한 팩트는 차별구제수단은 편향적이며, 차별 주장만 하면 상대방이 아니라고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째 팩트체크, '인권위 권환을 강화하여 최상위 사정기관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팩트는 인권위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헌법기관을 통제하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윤 변호사는 "평등법의 목적 조항인 제1조 1항의 규정을 읽어보면 좋아 보이지만,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착한 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생각과 표현을 통제하려는 것이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이다. 악법이 되는 것이다. 법과 도덕과 윤리는 다르다.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성별'이란 여성과 남성을 말하며, 차별금지대상에서 '성별 정체성' '성적지향' 규정을 삭제, '차별' 개념에서 '괴롭힘, 혐오 등 불확정적 표현' 삭제, 간접차별 규정 삭제, 입증책임 전환 규정 삭제,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 삭제를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팩트체크 과정을 통해서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평등법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거짓 주장과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호도하고 있는지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했다.




에스더 6:1-14

09-18-2021(토)

♦ 9월 18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6:1∼14
♦ 묵상을 위한 주제 : 이 밤에(1절)
♦ 성구 : 이 밤에 왕(王)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命)하여 역대(歷代) 일기(日記)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이 밤에(That night)”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History is made at night))”는 말처럼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가져와서 읽게 합니다.

그 일기의 내용 중에 왕을 살해하려던 사람들을 체포하여 왕의 생명을 구한 사례가 왕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왕은 그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확인한 후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공교롭게도 하만에게 묻습니다. 하만은 마치 그 사람이 자기라고 착각하여 최고의 특별대우를 하라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은 하만이 아니라 오히려 하만이 죽이려했던 모르드개 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심각한 번민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하만의 계획은 잔치가 열리기 전에 아침 일찍 모르드개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날 밤에 왕과 하만이 모르드개를 높이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만이 세운 오십 규빗의 높은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할 운명의 모르드개와 왕이 특별대우 할 사람이라고 착각한 하만의 생각이 교차되어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을 누가 알았을까요?

하만은 자신의 손으로 모르드개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말에 태우고, 모르드개를 높이며 성을 순회해야 했습니다(10∼11절).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란 칭호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숨어계신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건이 전개되면서 그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세미한 손길을 깨달을 때 에스더서가 성경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사고를 뛰어 넘어 역사하십니다.
때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지라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 되심을 믿고 깨달을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알려고 하는 인간적인 속성보다는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배워가며 오늘도 믿음과 인내와 소망으로 삶의 영역에 새겨질 하나님의 은총을 찾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인생역전 / "페리페테리아(peripeteia)"

내촌감삼 /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1888. 7. 10 ~ 1960. 4. 23)
일본의 장로교 목사이며 기독교 사회주의자.

일본에 한 어린 소년이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를 기를 수가 없어서 자기 남편의 본처에게 그 아이를 맡겼습니다. 

이 소년은 전혀 얼굴을 모르는 이복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 다른 형제들은 이 소년을 괄시하고 멸시했습니다. 
"너는 기생의 아들이지, 너하고 우리는 근본이 달라. 너에게는 더러운 피가 섞여 있어."
 
그들은 그를 핍박했습니다. 
이 어린 소년은 살고싶지 않아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저런 삶을 살다가 우연히 마루턱에 앉아있는데 속에서 울컥하고 끓어 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토해서 보니까 붉은 핏덩이였습니다. 
놀라 병원에 갔더니 그는 이미 폐결핵 3기 중증환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치료해줄 사람도 없고 치료받을 돈도 없었습니다. 
그는 죽을때만 기다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밖에서 북치는 소리와 함께 어떤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소리를 듣는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구세군 전도대가 북을 치면서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한 여인이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아줌마, 나 같은 기생의 아들도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나요?"

그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고귀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는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의 삶은 점차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은 더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나아지지도 않았습니다. 

어느날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내가 하루를 살아도 남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살아야지'

그는 자기 짐을 다 정리해서 리어카에 싣고 다리 밑 빈민굴로 내려갔습니다. 
빈민굴에는 폐병환자들, 걸인들, 노숙자들이 몰려있었습니다. 

그는 그 환자들을 섬겼습니다. 
발을 씻겨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약을 구해다주고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의 병은 나았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일년을 못넘긴다고 하였지만 75세가 넘도록 장수하였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일본교회가 자랑하는 성자 가가와도요이코 목사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를 내촌감삼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비운의 운명이였지만 
그는 운명을 딪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서 복되고, 선한일을 하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알프레드 노벨

1833년 10월 21일 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한 어린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너무나 약하게, 병약한 몸으로 태어나서 어머님의 젖을 빨지 못했다.
의사선생님과 주변의 사람들은 말했다.
“이 아이는 얼마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나 태어날 때부터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오래 못 살 것입니다.”
실제로 이 아이가 자라면서 늘 몸이 약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한편 놀랬지만은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라고 믿고 의지했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안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를 살려주옵소서. 이 아이를 살려 주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헌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아이의 생활기록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빈궁한 가정환경과 병약한 몸으로 수업하기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고무 공장을 운영하다가 부도나서 피신 가버렸고, 이 어머니는 작은 채소가게를 하면서 네 아이를 길러야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엎드려 기도했다.
후에 소년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세계적인 재벌이 되었다.
그런데 좋은 일에 쓰려고 만든 이 다이너마이트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전 재산을 인류에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기금으로 내놓았다.
이 사람의 이름은 알프레드 노벨이다.

두 번째 왕후 에스더의 초대를 받은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아 역사를 읽다가 모르드개의 충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에게 상을 주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상을 내리려고 신하를 부르는데 마침  하만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날 밤에, 마침

하만은 초대 받은 자리에 가기 전에 아하수에로 왕에게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앞마당에 세운 높이 50규빗의 나무에 매달아 죽이려는 것을 허락받기 위하여 입궐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페리페테리아(peripeteia)" 라고 합니다.
"페리페테리아"는 "운명의 역전" 이란 뜻입니다.


인생은 일상의 반복(反復)같지만, 사실은 반전(反轉)을 기다리는 초초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예술이란 다가오는 지금 이 시간을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순간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반전(反轉)’을 그리스어로 ‘페리페테이아’(peripeteia)라고 명명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되돌릴 반(反), 구를 전(轉)

반전은 사건들이 일어난 과정에서 개연성과 필연성에 따라 발생하는 (급격한) 방향전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이란 작품에서 "어떤 사건을 통해 자신이 습관적으로 가던 길에서부터 이탈하여 ‘주위의 다른 길로’ + ‘자신을 밀어 넣는 행위’(‘페리’ + ‘페테이아’) 라고 정의합니다.

하만은 두 번째 왕후 에스더의 초대를 받아 잔치 자리에 가기 전에 하만의 감정을 매우 기분 나쁘게 하는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앞 마당에 50규빗의 나무를 세웠으므로 그 나무에 하만을 잡아 죽이려는 계획을 허락받기 위해 왕궁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신하를 부른 것은 궁중 역사서를 읽다가 암살당할뻔한 왕을 죽음의 사슬에서 구한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상급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안스러워 상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현상을 “페리페테이아”, 즉 ‘운명의 역전’이라고 합니다.

에스더서는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통제 밖의 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건의 이면에 계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삶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통찰해내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뜻은 결국 무너지고 하나님의 계획만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하루하루 신실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에스더 6:1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에스더 6:4-5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
시신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들어 오게 하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 날 밤에, 마침 
페리페테이아(운명의 역전) 반전(反轉) 인생역전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에스더 4:16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 5:1-14

09-17-2021(금)


♦ 9월 17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5:1∼14
♦ 묵상을 위한 주제 : 잔치에 또 나오소서(8절)
♦ 성구 : 내가 만일 왕(王)의 목전(目前)에서 은혜(恩惠)를 입었고 왕(王)이 내 소청(所請)을 허락(許諾)하시며 내 요구(要求)를 시행(施行)하시기를 선(善)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王)과 하만을 위(爲)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來日)은 왕(王)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잔치에 또 나오소서(come tomorrow to the banquet)”

에스더는 죽으면 죽겠다는 각오로 왕 앞으로 나갔습니다(1절). 왕은 에스더를 위해 금규(금홀, 금지팡이, the gold scepter)를 내밀었고 심지어 에스더의 청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합니다(2∼3절).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에스더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신중하게 일을 진행합니다. 청을 아뢰기 전에 먼저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했습니다(4~8절).

그런데 변수가 발생합니다.
하만이 성문을 지키는 모르드개의 태도에 화가 치솟아 당장 그를 죽일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9~14절).

운명이 날이 멀었기에 안심하고 있을 모르드개에게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하만은 오십 규빗이나 높은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과 더불어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나갈 때에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을 진멸하기 전에 먼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 모르드개를 먼저 처형하려고 계획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우리가 모르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은밀한 계획일지라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와 말씀으로 나갈 때에 사탄의 계획을 무너트릴 뿐만 아니라 합력하여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악의 시간은 하만의 손에 있었지만,
선의 시간은 모르드개의 편에 기우러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유대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금식하며 기도한 것과 왕후 에스더는 금식한 후에 죽으면 죽을 것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금식과 기도로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에 붙잡혀 삶의 영역안에서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며 환난풍파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더의 지혜 / 에스더 5:8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나아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주요 등장 인물

에스더(Esther) / 별
(역사가 요세프스의 이야기)

하만(Haman) / 고독, 외로움

아하수에로(Ahasuerus) / 위대하다
- 크세르크세스(Xerxes) / 영웅들의 지배자

지혜를 얻는 단식과 기도 / 에스더 5:1

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금식 후 제 삼일)

외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은혜 / 에스더 5: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심히 사랑스러우므로(나세아 헨) חֵן נָשָׂא                                
 나사(nâsâʼ) 들어올리다
 헨(chên) 자비 

에스더 5: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에스더 5:4

에스더가 가로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임하소서. 


주요 등장 인물

에스더(Esther) / 별
(역사가 요세프스의 이야기)

하만(Haman) / 고독, 외로움

아하수에로(Ahasuerus) / 위대하다
- 크세르크세스(Xerxes) / 영웅들의 지배자

지혜로운 여인 에스더 / 잠언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왕 앞에 나간다는 것은
전능의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5:2)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 외적 은혜(외모)
(5:4) 잔치에 임하소서 / 내적 은혜(지혜)

어리석은 하만 /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잠언 14: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교만한 아하수에로 /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시편 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오늘의 기도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릴 수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에스더 4:1-17

09-16-2021(목)

 ♦ 9월 16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4: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죽으면 죽으리이다(16절)
♦ 성구 : 당신(當身)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爲)하여 금식(禁食)하되 밤낮 삼일(三日)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侍女)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禁食)한 후(後)에 규례(規例)를 어기고 왕(王)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죽으면 죽으리이다(If I perish, I perish)”

"페르시아 제국"을 성경에서는 "바사"라고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을 역사가들은 “크세르 크세스” 라고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바사의' 다리오 1세'의 아들로서 21년간 바사를 통치했습니다.

왕후 “와스디”가 폐위 된 후에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에게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왕의 최측근 하만은 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출입하는 왕궁의 문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꿇어 엎드려 절을 하였으나 모르드개는 무릎을 꿇지 않았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모르드개 때문에 하만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모르드개가 유다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하만은 모든 유다인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품었습니다.

하만은아각( 아말렉) 사람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경배하는 모르드개의 신앙을 용납치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도성과 각 지방에서 한 날을 정하여 모든 유다인을 죽일 계획을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수가 대략 300-40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모르드개를 비롯하여 모든 유다 백성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대궐 문 앞에서 엎드려 통곡하였으며 각 지방의 유대인들도 금식하며 울며 재에 누운 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수산궁 에스더에게 알리어 “왕 앞에 간절히 구하라”고 전달합니다.

이러한 모르드개의 요구에 에스더는 감히 어떤 결단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와스디 왕후는 왕이 불렀을 때에 오지 않아서 폐위되는 화를 당했지만 또한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 앞에 나가는 것도 규례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자신의 곤란한 사정을 모르드개에게 전하였을 때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고 합니다(4:13).

모든 유대인들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고 왕후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결단하고 규례에 없지만 왕 앞에 나갈 것을 각오하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금식하며 기도를 부탁한 후 왕 앞으로 나갑니다.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민족도 교회도 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어려울 때에 나 혼자 피한다고 나 혼자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월남이 패망하여 공산화 될 때 무작정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사람들이 대략 100만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을 보트 피플(boat people)이라고 합니다.
공동체를 상실한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엿볼 수 있었던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어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 괴뢰군이 남한 전 지역을 거의 장악하고 마지막 낙동강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 도지사 숙소로 목회자들을 초청을 하여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군은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입니다. 지금은 장마철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야 비행기가 떠서 적진을 폭격할 수 있습니다. 비가 계속 오면 적은 낙동강을 건너올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니 목사님들은 금식하며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한 마음으로 일주일 동안 철야하며 금식하였고 계속되던 비가 그치자 전투기는 적의 주력 부대를 풍비박산 괴멸시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고 나아가 인천 상륙작전까지 성공하므로 전세를 바꾸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코로나 방역이라는 제도에 의해서 예배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에 대한 생각이 교회마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적 가치관과 올바른 역사관이 없다면 서로 다른 주장과 행동에 의해서 교회 공동체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의 때는 함께 모여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마음과 생각을 하나로 묶어 코로나 방역과 예배에 대한 선지자적인 외침을 한 목소리로 쏟아낼 때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될 것입니다.

♪ 찬양 /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아멘 

필사즉생(必死則生)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행생즉사(幸生則死)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모르드개의 용기

8절.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 민족을 위한 기도

14절.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 민족을 위한 기회 

에스더의 두 가지 결단 

11절.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 규례를 무시하는 믿음

16절. 죽으면 죽으리이다.
- 생명까지도 바치려는 믿음

에스더 4: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오늘의 기도
합력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하옵소서!



이윤영 의원 기도(일동기립)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현시하신 것으로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 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 히브리서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In your struggle against sin, you have not yet resisted to the point of shedding your blood.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신명기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열왕기하 6:5-7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에스더 3:1-15

09-15-2021(수)


♦ 9월 15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3: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부르(7절)
♦ 성구 : 아하수에로 왕 십 이년(十 二年) 정월(正月)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십이월(十二月)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부르(the Pur)”는 히브리어 “푸르”의 복수 형으로 “제비 뽑다”는 ‘아카드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부림절”은 고대 페르시아 시대에 아각 사람 하만이 유대인들을 살해하려던 음모에서 구원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를 말합니다.

아각 사람 하만은 유대인들을 살해할 아달월(Adar)을 얻었고 13일 하루 동안 페르시아 제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살해할 음모를 꾀하였습니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을 통하여 유대인들을 살해하려던 하만은 죽임을 당하고 반면 살해당할 위기에 빠졌던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날이 부림절 입니다.

모르드개 한 사람의 잘못은 그 한 사람만 처벌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 모두를 죽이려는 것은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니라 사탄의 계략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치 유다에게 사탄이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넣은 것과 같습니다(요 13:22).

사탄은 생각을 사람에게 집어넣어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악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오직 사탄의 목적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완전히 멸망당하므로 장차 약속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훼방하려는 것이 사탄의 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계략을 성공시키려고 사탄은 하만의 교만함과 악함을 사용하려 했습니다.

우리에게 태초부터 약속하신 일은 우리를 살리려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약속대로 메시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일은 성취되었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마음에 보내주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날마다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뜻과 생각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뜻대로만 우리가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의 기록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형편이 어떠하든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 어떻든 내 생각이 어떻든 그것은 진리와는 상관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고 사실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주인 되신 좋으신 하나님 신실하신 아버지만 믿고 주인이신 하나님말씀에만 순종하므로 기쁘고 감사하는 거룩한 삶에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도입 이야기)

꼬마 감자가 엄마 감자에게 “엄마, 나 감자 맞아?”라고 물었다. 엄마 감자는 “당근이지!”라고 답했다. 그 길로 꼬마 감자는 가출했다. 엄마 감자가 자기보고 ‘당근’이라고 말하자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출을 했다가 돌아온 꼬마 감자가 할머니 감자에게 다시 물었다. “할머니, 나 감자 맞아?” 경상도 출신의 할머니 감자는 “오이야(오냐)”라고 대답했다. 그 길로 꼬마 감자는 또 다시 집을 나가고….

우리를 웃게 만드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과 사명을 지닌 존재인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책임과 권리를 지닌 존재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삶의 보람을 잃어버린 채 공동체에 꼭 필요한 존재로서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민으로 택하셨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중략)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뒤에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며 백성들이 품고 있어야 할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심어주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년 동안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우상을 숭배하며 갖은 죄악에 빠져 살다가 바벨론에서 수십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다시 그들의 마음에 정체성을 심어주셨다.

(도입 이야기)
어느 날 새끼 호랑이가 엄마와 풀밭에서 재롱을 떨며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끼 호랑이가 그 어미 호랑이에게 물었습니다.
"나 호랑이 맞아? 달리기도 못하고 토끼 한 마리도 못 잡고 사냥도 못하는 내가 호랑이 맞아?" 어미는 대답합니다.
"그럼 내가 낳은 새끼니까 너는 틀림없는 호랑이다" 또 물어 봅니다.
"강아지 만도 못한데 나 호랑이 맞아? 난 아무 것도 못하는데 내가 호랑이 맞아?"자꾸 물어보니까 화가 난 어미 호랑이가
"야 이 개새끼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졸지에 개새끼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아무 것도 못해도 호랑이는 호랑이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에스더  3:7

아하수에로왕 십 이년 정월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십이월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하수에로 왕 12년 / BC 474년


에스더 3:1-2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신앙의 정체성(신적 경배 거부) / 하나님만 섬기리라

마태복음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에스더 3:3-4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민족의 정체성 / 천국시민


빌립보서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에스더 3:6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역사의 정체성(민족의 위기) / 올바른 역사 인식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세 가지 정체성(Three Identities)

1. 신앙(Faith),   2. 민족(People),    3. 역사(History) 


요한일서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사도 바울의 고백

1.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2. 나는 날마다 복종하노라(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부림절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오는 부림절이다.
유대인의 월력은 해가 진 후부터 다음날 해가 지기까지를 하루로 계산하기 때문에 부림절의 시작은 정확히 밤부터 시작된다.

(사진은 부림절에 예루살렘의 가장 중심가인 벤예후다 거리를 가득 메운 유대인들 모습)

부림절을 맞는 현대 유대인들의 모습이 다양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부림에 대한 주요 내용만 간단히 소개한다.
부림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세 절기(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하누카와 더불어 이스라엘 내외 모든 유대인들이 기쁨으로 지키는 국가적 명절이다.

율법이 정한 절기가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부림절에 일하고 매매행위를 해도 종교적인 해를 당하지 않는다.

푸림은 히브리어 푸르의 복수 형태로써 ‘제비 뽑다’는 의미의 아카드어에서 온 단어이다.
부림절은 고대 페르시아 시대에 아각 사람 하만이 유대인들을 살해하려던 음모에서 구원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에스더 3:7절에 의하면, 아각 사람 하만은 제비를 뽑아 유대인들을 살해할 달로 아달월 (Adar)을 얻었고 13일 하루 동안 페르시아 제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살해할 음모를 꾀하였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을 통하여 유대인들을 살해하려던 하만은 죽임을 당하고, 반면 살해당할 위기에 빠진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었다. 이것을 기념하는 날이 부림절이다.

유대인들은 아달월 14일과 15일 이틀간 부림절로 지킨다.

에스더 9:17-22절에 부림절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었다.

아달월 13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14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며 즐겼고 수산에 거한 유다인은 13일과 14일에 모였고 15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월 14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무론 원근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14일과 15일을 지키라.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유대인들은 부림절에 네 가지를 실천한다.

첫째는 회당에 참석하여 공적으로 읽는 에스더서를 듣는 일이다.

회당에 참석하여 첫날과 둘째날에 에스더서를 들으며,
모든 사람들은 2:5절, 8:15-16절, 10:3절에 이르러서는 모두 한 목소리로 그 구절을 암송한다.
이 세 구절은 모르드개의 인물, 승리, 유대인의 구원을 담고 있는 말씀들이다.

두번째는 가까운 이웃과 친지들에게 선물을 보내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세번째는 가난한 사람 두 명 이상에게 자선을 베푼다.

네번째는 세우다트 푸림 만찬을 나눈다.

안식일을 포함하여 유대인들이 절기마다 갖는 만찬은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의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안식일 식탁에서도, 부림절 식탁에서도 그들은 그 날과 그 의미를 반복하여 묵상한다.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 만약 여기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날과 절기, 성경의 구원 사건들을 재해석하여 묵상할 수 있다면,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부림절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두 가지

1.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주어진 절기
2. 백성들 자발적 동의로 제정된 절기

▲하만이 모르드개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부럽고 두려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 1583-1633)의 그림.

모세 율법에 규정된 절기들을 잇는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은 그 명맥을 이어가지만, 율법에 규정되지 않는 절기인 부림절은 교회에서 거의 무시된다.

필자는 부림절을 맞아, 그날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것이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 지면을 빌어 부림절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부림’은 본래 페르시아의 총리 하만이 유대인의 학살 날짜를 정하기 위해 던진 제비 돌을 일컫는 말이었다(에 3:7; 9:26). 하지만 에스더서에 묘사된 대로 그 ‘부림’이 정한 날은 유대인의 멸망이 아닌 승리의 날이 된다.

부림절은 그런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반전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 날은 유대인들이 죽다 살아난 것을 단순히 축하는 날이 아니다. 부림절이 주는 교훈은 이보다 훨씬 깊다.

부림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첫째, 부림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땅에 살아가는 상황을 전제한 절기가 아니라, 그들이 이방 나라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의 상황에 주어진 절기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누리는 축복을 감사하는 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신앙인들이 스스로 일군 기적을 축하하는 날이 부림절이다.

둘째, 이스라엘의 다른 절기들은 하나님 명령의 형태로 내려진 것이지만, 부림절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제안에 백성들의 자발적 동의로 제정된 것이다.

에스더서는 부림절을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한 결과임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한다(에 9:23, 27, 31).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부림절의 의미를 새겨보자. 부림절은 단순히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했음을, 혹은 대적들을 멸했음을 자축하는 날이 아니다. 그 날은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듯한 세상에서, 유대적 신앙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새롭게 다짐하는 날이다.

당시 페르시아에 살던 유대인들에게 신앙은 역사상 처음으로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인의 부모 아래 태어나면 유대인이 되었던 이전에는 유대적 정체성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페르시아 치하에서 유대인들은 본인이 원하면 페르시아인으로 살 수 있었다. 페르시아 사람들도 제국의 방식에 순응하기만 하면 민족 출신은 굳이 따지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식으로 개명한 후 유대인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갔다. 그것이 출세와 성공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해도, 신앙을 고집하지 않으면 페르시아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에스더도 자신의 유대인 이름(‘하다사’)을 숨기고 페르시아인들이 사랑하는 여신을 연상시키는 이름인 ‘에스더’로 궁중 생활을 시작한다. ‘마르둑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르드개도 유대인의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하지만 사회의 불의가 신앙의 임계점을 넘자,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고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결단을 한다.

물론 그 순간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오늘날 부림절은 없었을 것이다.

그날이 멸망이 아닌 승리의 날로 뒤바뀐 것은 유대인으로 살겠다는 의지와 선택들이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본받아 신앙의 이름으로 불의와 싸운 사람들이 들불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작품 <에스더의 연회에 참석한 아하수에로와 하만>.

이처럼 부림절은 유대인들이 불의한 세상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겠다고 공동체적으로 다짐하는 날이다.

요람 하조니는 다음과 같이 부림절의 의미를 설명한다.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부림절이라는 정기 축제이지만, 모르드개가 정말 의도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수용하는 운동이라 말할 수 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과 멀리 떨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위한 세계시민적 메시지를 추가로 전한다.

유대인들이 스스로 일어나 그들의 신앙을 위해 싸운다면, 디아스포라의 환경이 유대 개인뿐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에게 권능과 생명을 허락할 수 있다!” (<에스더서로 고찰하는 하나님과 정치>, 홍성사, 253-54쪽)

부림절의 주인공들에게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두려움 가운데 감추어야 할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이 유대인다워졌을 때, 즉 불의와 담대히 맞서 싸웠을 때, 페르시아 사람들이 오히려 유대인을 존중하고 두려워했다.
나아가 페르시아인들 중 스스로 유대인이 되려는 사람도 생겨났다(에 8:17).

모르드개는 신앙의 이름으로 하만의 독재에 굴하기 거절하다가 직위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고, 에스더도 자신의 직위와 목숨을 걸고 유대 민족을 학살하려는 하만의 악한 계획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부림절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직위와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라는 모르드개의 도전(에 4:13-14)은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신앙의 가치를 실천하려 할 때, 우리에게는 내려놓아야 할 무엇인가가 생긴다.
그것이 포기일 수도 있고, 나눔일 수도 있다.
귀찮다고 혹은 두렵다고 부림의 날을 멸망에서 승리로 바꾸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앙인들이 이 세상을 정의와 사랑으로 채워가는 일에 힘쓸 때, 세상도 신앙인들을 존중하게 되고 신앙인들의 편에 서려 할 것이다.


에스더 2:1-23

09-14-2021(화)

♦ 9월 1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2: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굄을 얻더라(15절)
♦ 성구 : 모르드개의 삼촌(三寸) 아비하일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自己)의 딸 같이 양육(養育)하는 에스더가 차례(次例)대로 왕(王)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宮女)를 주관(主管)하는 내시(內侍) 헤개의 정(定)한 것 외(外)에는 다른 것을 구(求)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者)에게 굄을 얻더라.

“굄을 얻는다”는 것은 “호감을 주었다”는 뜻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호감(好感)”을 갖는 사람과 “비호감(非好感)”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와스디’는 왕과 방백들에게 ‘비호감’이 되었지만 ‘에스더’는 ‘호감’이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호감을 갖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된 것은 ‘와스디’가 폐위되고 4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본문에서 ‘에스더’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7절).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도금양나무) 곧 에스더(별)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부모의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에스더였지만 그런 기색 없이 에스더의 얼굴은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마음과 품행이 곱고 아름다웠습니다.

어느 날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왕후가 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였는데 그 숫자는 약 40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기회는 한번 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한 번의 기회에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왕에게 나아갈 때 치장할 수 있는 화려한 장신구들을 다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하는 것은 관리들이 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했습니다(15절).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아하수에로 왕에게 호감을 얻게 된 에스더는 특별한 화장품을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잊지 말아야 할 명제는 “숨어계신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에스더가 왕후가 되게 하셨고 모르드개는 왕의 암살 음모를 밝히는 공을 세우게 하십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안목(영안)이 없다면 그저 한 나라의 왕후가 교체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만일 오늘의 말씀을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성공한 이야기로만 끝맺음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과 목적을 이루시려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일까 생각해 봅시다.

에스더가 왕과 모든 대신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감추어진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은 곧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오늘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과는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역사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찾아 믿음으로 굳게 세워지는 주님의 은총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더 2:15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굄을 얻더라. 아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굄을 얻더라 /  헨(chên) חֵן(자비, 품위, 탄원)
호감을 주었다(현대인 성경)  아리따웠다(공동번역)(새번역)  

에스더 2:1-2

후에 크셀크세스 황제는 분노가 가라앉자 와스디가 행한 일과 자기가 내린 칙령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때 황제의 자문관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아름다운 처녀를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첫째, 감정에 흔들리지 말자!
분노(헤마. chêmâʼ) חֵמָה
분노, 독, 따뜻함

세계 4대 해전


1.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BC 480년
그리스 아테네 vs 페르시아

2. 악티움 해전(Battle of Actium) BC 31년
로마 제국 옥타비아누스 vs 안토니우스 &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7세

3. 레판토 해전(Battle of Lepanto) 1571년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 신성동맹 함대 vs 오스만 제국

4.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 1805년
프랑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스페인 연합함대 vs 영국 호레이쇼 넬슨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잠언 16:14

왕이 화가 나면 죽음의 사자처럼 무서워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 노여움을 누그러지게 한다.

에스더 1:1-22
09-13-2021(월)


에스더서의 배경은 칠십 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스룹바벨에 의한 일차 귀환과 에스라에 의한 이차 귀환의 중간 시기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BC 486-BC 465).
그는 바사의 네 번째 왕이었습니다.
(고레스 - 캄비세스 - 다리오 - 아하수에로 - 아닥사스다)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와 권력이 인도에서 구스땅 즉 에디오피아에 이르는 127도 즉 아주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127도란 127개 나라를 말합니다.

바벨론 제국을 무너트린 강력한 페르시아 왕의 권력은 점점 더 강력한 제국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더구나 에스더서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특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가 통치한 지 3년이 되던 해, 왕은 아주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 연회에는 지방의 모든 장수와 지방관, 그리고 귀족들이 참여하였고, 그 기간은 여섯 달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왕은 연회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제국이 얼마나 큰 부를 누리고 있는지, 얼마나 강력한 나라인지 한껏 과시했습니다.

이 긴 연회가 끝나갈 무렵, 아하수에로왕은 이번에는 모든 백성을 대상으로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간에 걸쳐 성대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6절에 보면, 후원 뜰은 백색, 녹색, 청색 휘장들로 풍성하게 장식되었고 그 휘장들은 자색 가는 베 줄과 은 고리로 대리석 기둥에 고정되었고, 뜰은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으로 포장되었으며 금과 은으로 제작된 아름다운 걸상들이 그 포장된 뜰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포도주는 서로 모양이 다른 수많은 금잔들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참석자들이 원하는 만큼 마시도록 허락했습니다.
얼마나 성대하고 화려한 잔치인지 상상이 가십니까?

왕의 아내인 왕후 와스디는 별도의 장소에서 여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잔치의 마지막 일곱째 날, 왕은 술 때문에 기분이 고조된 상황에서 어전 내시 일곱 명에게 명하여 왕후 와스디에게 왕후의 옷을 입혀 자기 앞으로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는 왕후의 아름다움을 지방관과 백성에게 뽐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왕, 자신의 탁월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에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왕후는 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였습니다.

왜 왕후가 이런 왕의 명령을 거부하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여러 학자의 추측 중 술 취한 손님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임으로서 얻게 되는 왕후로서의 위엄에 대한 손상이 가장 타당한 이유였을 겁니다.

왕은 왕후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자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라 여긴 자신에게, 그것도 많은 지방관과 백성이 보는 앞에서 왕의 명령을 거부한 것은 자신에게 대한 일종의 모독이었고, 도전이었다고 여겼지 않았을까요?

왕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규례와 법률에 정통한 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격인 지방관 므무간(박사 라는 뜻)이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6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므무간은,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여인이 왕후의 행위에 대해 듣게 되면 그들도 왕후의 예를 따라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왕후는 왕에게뿐 아니라 지방의 관리들과 백성 모두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왕후가 다시는 아하수에로왕 앞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조서를 내려 그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왕후에게 속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녀의 지위를 다른 이에게 넘기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나라의 모든 여인이 남편을 존경하게 되는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이라 므무간은 말했습니다.
결국, 그 잔치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은 이 므무간의 조언에 찬성했고, 왕은 므무간의 조언을 따라 왕후의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마치 일반 역사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것은, 에스더서 전체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록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다 하더라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리고, 앞으로 계속 보게 될 에스더서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음모로 인해 말살 위기 가운데 처하게 될 유대민족을 구하기 위해, 에스더의 왕후 등극의 밑 작업을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인간의 계략과 방해로 마치 중단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이미 인간의 모든 결정 위에 계시고, 온 우주 만물뿐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셔서 당신의 뜻과 약속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이루고야 마시는 분이심을 오늘 본문을 통해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역사가 없고, 하나님의 계획 하심이 없는 역사의 시간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답답함을 느낄 때,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부분은 물론 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에도 고통과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어떻게든 그 어려움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고, 이겨보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이 이 고통과 고난의 문제 속에 전혀 개입함을 느끼지 못할 때, 그래서 더 이상 이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보일 때, 그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일 겁니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이 문제 속에 개입하고 계시다는 어떤 사인만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이 고난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견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을 느낄 수 없어 답답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볼 수 있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그 신실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역사를 잡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일분일초도 무의미한 시간이 있을 수 없고, 우리가 겪는 어떤 일도 그냥 쓸모 없이 버려지는 무의미한 일들이 있을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고,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섭리를 믿고, 그 주님께 우리의 삶과 문제의 통치권을 내어 드린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뤄가실 것임을 믿음으로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위해 일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감사함과 기쁨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통해 주님께 온전히 삶을 내어 드리고, 나를 이끄시는 주님의 강한 손을 경험해 보시길 소원합니다.


♦ 9월 13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더 1: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행위의 소문(17절)
♦ 성구 : 아하수에로 왕(王)이 명(命)하여 왕후(王后) 와스디를 청(請)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王后)의 행위(行爲)의 소문(所聞)이 모든 부녀(婦女)에게 전파(傳播)되면 저희도 그 남편(男便)을 멸시(蔑視)할 것인즉.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바벨론은 바사(페르시아)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남 유다 백성들의 역사가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에서는 포로 귀환의 모습으로 소개되었다면 에스더서에는 포로 귀환하지 않고 포로가 된 땅에서 살아가는 유대인들에 대한 삶을 소개합니다.

에스더서 1장은 당시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BC 486-BC 465)” 왕의 왕후 “와스디”가 왕이 베푸는 만찬 자리에 초대를 받고 그 자리에 나오지 않으므로 폐위되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바사의 다리오 왕은 그리스를 침략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아들 아하수에로가 다시 그리스 정복에 나서려고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이때는 당시 인도부터 구스(에디오피아)까지 바사가 점령한 지역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의 꿈을 이루려던 아하수에로는 그리스 정복을 위해 바사 모든 곳의 방백과 관리들을 불러 모으고 힘을 결집을 위해 무려 6개월 동안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기 1주일 전 아하수에로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왕비 와스디를 왕 앞으로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왕비 와스디는 왕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이때 방백과 관리들은 나라의 기강을 위해 왕의 명령을 어긴 와스디의 행동은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고 제안하고 아하수에로는 그 제안을 따라 와스디를 폐위시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이 절대적임을 보여주려고 왕비 와스디를 더욱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힘을 모아야 할 상황에서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자에겐 용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에스더 1장이 왕비 와스디의 폐위 장면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역사의 주인은 절대 권력을 자랑하는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야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될 수 있었고 하만의 계략에서 유다 백성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포로가 되었던 백성들이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어야 하며 또 언약의 백성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오실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더 1장은 매우 중요한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역사는 사람들의 욕심과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뜻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세상 역사가 일시적으로 통치자의 욕망과 생각대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르면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불안하고 답답한 현실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처음과 나중이며 알파와 오메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소망을 갖게 됩니다.

매일의 삶이 타락한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나도 모르게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손길이 깃들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매일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 뜻과 생각이 아닌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참된 기쁨이며 행복이고 영원한 곳을 향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겠습니까?
아니면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겠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오늘도 진리의 말씀에 아멘하며 즐겁고 행복한 믿음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나의 맘속에 온전히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1절은 그가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127도를 다스리는 왕이라 말합니다.
구스는 이집트의 남쪽, 수단의 북쪽 지역을 말하는데, 「페르시아 전쟁사」를 보게 되면, 아하수에로 왕의 아버지였던 다리우스 1세는 바사 왕국을 20개 총독부로 다스렸다고 말합니다.
20개 총독부 안에 127도의 구획 단위로 나뉘어 다스렸다는 의미인데, 에스더의 저자는 둘 중에 더 큰 숫자를 사용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왕국이 더 커보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왕국의 왕 아하수에로는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을 모아 잔치를 베풉니다.
그 잔치는 180일, 무려 6개월동안 계속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이 잔치를 열었던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절입니다.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는 국력과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는 180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잔치가 마무리 되고, 왕은 7일간의 추가적인 잔치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 잔치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보면 다시 한 번 나라의 부함과 위엄이 드러납니다.

6-7절을 보겠습니다.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고대 페르시아 왕국수산, 바빌론, 악메다, 페르세폴리스라는 네 개의 수도가 있었습니다.

수산은 봄에 왕이 머무는 궁전이었습니다.
봄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이 잔치의 장면을 생각해봅니다.
후원에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돋아 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 아래,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잔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호화로운 장식과 화려한 주안상, 이러한 대단한 잔치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궁전 안에서 맑은 정신을 갖고 있었던 사람을 보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10절에서는 왕마저도 “주흥이 일어나서” 즉, 술에 취해 흥이 나서 7명의 내시들에게 왕후 와스디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합니다. 왕후 한 명을 데리고 오는데 동원되는 사람이 7명입니다.
한 명의 왕후를 치장하고 데리고 오는데 무려 7명이나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7명이나 동원해서 왕후를 데리고 오는 이유에 대해서 성경이 설명하는데, 11절 하반절입니다.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왕이 술에 취해 왕후를 부른 이유는 왕후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왕후마저도 왕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왕의 의도를 알았는지, 와스디는 이러한 왕의 명령이 싫었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왕의 명령을 거절한 이유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왕의 명령을 거절한 와스디를 주목하게 합니다.
왕의 명령을 절대 복종해야 했음에도, 그녀가 나가지 않은 것은 어쩌면 참으로 희한하고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결국 와스디는 왕의 진노를 사게 되고, 결국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왕후의 자리를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게 됩니다.
즉, 폐위됩니다.

에스더서를 마지막까지 보게 될 때, 성경은 와스디와 에스더를 대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와스디는 왕의 명령에도 왕 앞에 나아오지 않으므로 폐위를 당했습니다.
반대로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아감으로 왕의 호감을 얻게 됩니다.
와스디와 에스더, 모두 왕의 명령을 거절했지만,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에스더가 특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닥칠 위기 속에 언약의 백성들에 대한 대책으로 에스더를 바사 왕국의 중심에 심으셨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에스더 1장의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비춰본다면, 이러한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가 보여주는 화려함과 과장됨이 비단 우리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지금의 세상도 과장된 모습으로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화려한 잔치에서 자신들을 향해 찾아오는 위기조차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초라함과 같이 세상 속에서 우리도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번화가의 거리를 생각해봅니다. 그 네온사인 밑에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듯, 각자의 멋과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그러한 과장과 화려함의 중심에서 신앙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우리의 겉모습은 비록 초라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화려한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를 통해 하나님은 바사 왕국의 중심에 에스더를 심을 준비하시고 계시듯, 하나님은 과장됨으로 자기만족하고, 화려하게 자신을 뽑내는 세상의 중심에 하나님의 대책으로 우리들을 심고 계십니다.

화려한 잔치가 계속되었던 바사 왕국 안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에게 몰살당할 위기가 찾아올 것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힘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미리 바사 왕국의 중심에 에스더를 심으시며 준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과장됨과 화려함으로 자기를 자랑하는 세상에 빠져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우리를 이 시대의 에스더로 심어주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속, 그리고 이 시대 속,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귀한 사역에 당신의 대책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남유다를 바벨론이(BC 586), 바벨론을 바사( 페르시야) 가 점령하며(BC 539. 다니엘 5:30),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느헤미야 에스라서에 이어 에스더서에도 계속됩니다.

* 다니엘 5:30
그날 밤에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현대인의 성경) 그 날 밤에 바빌로니아의 벨사살왕은 죽임을 당하였고.

에스더서 1장은 당시 아하수에로( 크세르크세스)입니다.
영화 300에서도 크세르크세스왕이 나옵니다. 
왕의 아내였던 와스디가 폐위되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바사의 다리오 왕이 그리스를 점령하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아들인 아하수에로가 다시 그리스정복에 나서려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이때 당시 인도부터 구스( 지금의 에디오피아)까지 바사가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는 차에 아버지 다리오 왕의 꿈을 이루려 아하수에로는 그리스정복을 위해 바사 모든 곳의 방백과 관리들을 불러모으고 힘을 결집시키려합니다.
힘의 결집을 위해 장장 6개월의 시간을 들여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그 잔치가 끝나기 1주일전 아하수에로는 자신의 힘을 뽐내는 방법의 하나로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왕비 와스디를 왕앞으로 오라 명령합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왕비 와스디는 왕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이때 방백과 관리들은 나라의 기강을 위해 왕의 명령을 어긴 와스디의 행동은 절대 용서하면 안된다고 제안하고 아하수에로는 그 제안을 따라 와스디를 폐위시킵니다.

도대체 무슨 사정인지 이유인지에 상관없이 아하수에로는 자신의 권력이 절대적임을 보여주려 왕비 와스디를 더욱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힘의 집결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자에겐 용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왜 에스더 1장이 왕비 와스디의 폐위 장면 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에스더 서입니다.
바로 이런 일이 있어야 , 아하수에로왕의 왕비로 에스더가 즉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에스더서 3장 이후에 나오는 하만의 계략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만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야 하고, 또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으로 메시야 예수님이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1장의 내용은 중요한 역사의 한 장면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한 약속.. 너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다는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약속대로 천지의 창조주이시고 주인이신 성자하나님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약속이 성취되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선택된 민족으로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만과 같은 인간의 음모와 계략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약속의 성취에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사람들의 욕심과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너머에는 그 뒤에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주님의 계획과 뜻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오늘의 내용에서도 사람들의 각자의 욕망과 생각대로 된 일 같지만 이 일은 에스더가 즉위하는데 쓰이게 된 것입니다. 한치 앞밖에 모르고 보이는 상황따라 좌지우지되는 인생들과는 다르게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전지전능하신 이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다시한번 확인합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가는 것은 다 욕심과 욕망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인내와 사랑으로 끝까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자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 깨닫고 돌이켜 내 뜻과 내 생각이 아닌 주인되신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무조건 즉각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이 길만이 헛되지 않은 진정한 기쁨이요 행복이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어떤 것을 따르시겠습니까?  욕심과 욕망을 따라 살며,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안된다고 아둥바둥하며 낙심하고 좌절하고 온갖 염려와 수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성자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만 주인으로 모시고 오직 주님말씀에만 아멘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명철과 지혜와 능력이 한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하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만이 지혜요 진정한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는 끝을 알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겐 승리만이 있을진대 오늘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주인되신 예수님께만 모든 것을 올려드립시다.

오늘 우리의 할일은 역사의 주관자시요, 내 인생의 주관자이신 좋으신 아버지께 모든일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가족과 교회공동체와 이웃을 사랑하고 , 이땅의 사명인 주와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것 뿐입니다. 다 가진자로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승리의 삶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에스더서 요약

1. 내용 :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곳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크세르크세스 1세로 알려진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르 치세 시에 유대 백성을 파멸시키려는 음모에서 그들이 구출된 것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섭리적으로 인도하심으로써 하만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하만은 아하수에르 왕의 측근으로서 유대인의 하나인 모르드개가 그에게 복종하여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앙갚음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하수에로는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베풀어진 연회에 아름다움을 보여주도록 왕비 와스디를 초청하였으나 그녀가 이를 거절하자 화가 난 나머지 그녀를 폐위시켜 버렸다.(1장)

유대인 처녀 에스더는 와스디를 대신할 왕비의 후보들 가운데 하나로 뽑혔고 결국 왕의 마음에 들어 왕비가 되었다.

그녀의 사촌인 모르드개는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엿듣고는 에스더를 통해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며, 이 일은 궁중 일기에 기록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 최근에 총리가 되었던 하만은 모르드개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으려는 것에 화가 난 나머지 유대인들이 그들의 특별한 율법들로 인해 왕에게 전적으로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진멸할 수 있는 칙령을 왕에게서 얻어내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그녀가 그녀의 백성인 유대인을 위하여 왕에게 중재해줄 것을 호소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했던 하만은 그가 교수대에 달도록 명령했던 모르드개에게 역설적으로 경의를 표하고 왕에 대한 음모를 발견한 대가로 그의 공적을 공표하도록 왕의 명령을 받았다.

또 다른 연회에서 에스더는 유대인에 대한 하만의 음모를 밝혔는데, 그 결과 하만은 그가 모르드개를 달려고 세웠던 바로 그 교수대에 달리게 되었다.

모르드개는 하만을 대신하여 총리가 되었고, 유대인들이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칙령이 내려졌으며,

그들은 그들의 대적을 진멸하게 되었다.
유대인의 이러한 기적적인 구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림절이 제정되었다.
이 명칭은 하만이 유대인 학살을 위해 길 한 날을 결정하기 위해 뽑은 부르, 즉 제비를 따라 지어진 것이다. 

2. 목적

이 책의 종교적 가치에 관한 심각한 의심으로 인해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모두 오랫동안 이 책을 각각 그들의 정경으로 인정하기를 꺼려했다.

어떤 유대인들은 이 책이 부림절의 새로운 절기를 제정함으로써 모세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염려하였지만, 랍비들은 이 책을 모세 오경과 동등하거난 그 이상의 것으로 간주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이 책이 괴로움을 당하는 유대인들에게 약속하는 소망 때문인 듯하다.

이 책은 397년에 이르러서야 정경으로 인정받았으며, 루터는 여전히 이 책의 중요성을 의심하였다.

이 책의 주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이 책에서 아마 여인의 후손으로 이해되고 있는 듯한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것, 곧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 계획을 보존하며 실행하신다는 것이다.

에스더서는 교회의 적 및 하나님 나라와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행동 모두가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적대감 및 복수의 폴력적 수단 사용은 귀감적인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들은 아마 당시의 유대 백성을 대표한 인물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유대인 포로들과 함께 고국으로 되돌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서의 강력한 소망의 메시지는 이 책이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의 일부로 위치할 수 있음을 뒷받침해준다.

저자 :

에스더서는 저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전통에 따르면 에스더서의 저자는 모르드개(에스더의 주요 인물), 에스라, 또는 느헤미야(바사 풍습에 익숙했을 사람)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작 연대 :

에스더서는 주전 460년에서 35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록 목적 :

에스더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섭리, 특히 그분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과 관련한 섭리를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부림절의 설립과 영속적인 준수의 의무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이 에스더를 통해 가져온 유대 민족의 위대한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에 읽혔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부림절 기간 동안 에스더서를 읽습니다.

핵심 구절 :

에스더 2:15,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에스더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 6: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에스더 7: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요약 :

에스더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1:1-2:18  / 에스더가 와스디를 대신하다. 
2:19-7:10  / 모르드개가 하만을 이기다. 
8:1-10:3  / 이스라엘은 그들을 파괴하려던 하만의 시도에서 살아남다.

고상한 에스더는 그녀의 백성이 위험에 처한 것을 깨닫고는 자기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녀는 기꺼이 죽음에 처할 수 있는 행동을 했고, 남편의 왕국에서 서열 2위인 하만과 대결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인 왕의 지위 앞에서 겸손하고 품위있게 행동하면서도 현명하고 가장 가치있는 상대임을 입증했습니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창세기 41장의 요셉 이야기와 매우 흡사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유대인의 운명을 주관하는 이방 나라의 군주와 관련이 있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그들의 민족과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제공한 이스라엘의 영웅을 보여줍니다.
나쁜 상황으로 보이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분명하게 나타남으로써 그 상황이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백성의 유익을 뜻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출애굽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록된 아말렉 족속과 유대인 사이의 지속적인 갈등이 있습니다.
하만의 목표는 유대인을 완전하게 근절하는 것으로서 구약 시대에 기록된 마지막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결국 그의 죽음으로 끝났고, 유대인들은 구원을 받고, 원수였던 모르드개는 하만이 지녔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잔치는 이 책의 주요 주제입니다.
잔치 기록만 10건이 있으며 많은 일들이 계획되고 꾸며졌지만 잔치에서 다 드러났습니다.
이 책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결코 언급되지 않았지만, 수산 성의 유대인들이 사흘 동안 금식하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개입을 구한 것은 명백합니다(에 4:16).

유대인들의 멸망을 허락하는 칙령이 메대와 바사 법에 따라 기록됨으로 결코 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도가 응답 받을 수 있는 길이 환하게 열렸습니다.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목숨을 걸고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에 4:1-2, 8:3).

그녀는 하만의 파멸에 만족하지 않고 그녀의 백성을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부림절 제도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기록되고 보존되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준수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은 주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지만, 에스더의 지혜와 겸손으로 형 집행 정지를 허락 받았습니다.

예표 :

우리는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의 목적 및 특히 그분의 약속된 메시야에 대항하는 사탄의 계속되는 투쟁을 무대 뒤에서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오시는 것은 유대 종족의 존재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던 것처럼, 사탄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왔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위해 설치한 교수대에서 패배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원수가 그분과 그분의 영적인 후손을 파괴하기 위해 고안 한 바로 그 무기를 사용하십니다. 사탄이 메시야를 멸망시킬 계획으로 고안한 십자가는 도리어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수단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4-15). 하만이 모르드개를 위해 세운 교수형에 자신이 달린 것처럼, 마귀는 그리스도를 멸하려고 자기가 세운 십자가에 의해 멸망 당하였습니다.

적용 :

에스더서는 삶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든지 또는 우연히 발생한 일들로 보든지 그 둘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주권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단지 악한 사람들의 행동에 의해 바뀔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 책에는 업급되지 않았지만, 책 전체에서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자기 백성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돌보시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전능하신 하나님이 적절한 시기에 아하수에로 왕으로 하여금 잠을 들지 못하게 하신 사실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예를 통해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종종 우리 영혼과 직접 대화하시기 위해 사용하는 침묵의 사랑 언어가 나와 있습니다.

에스더는 경건한 마음과 배우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기꺼이 순종하였습니다.
에스더의 겸손은 그녀 주변의 사람들과 현저히 달랐으며, 이로 인해 그녀는 여왕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은 아닐 지라도 대단히 힘든 상황 속에서 품위와 겸손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우리로 하여금 종종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엄청난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 합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나 특히 시련 속에서 에스더의 경건한 태도를 본 받아야 합니다.
에스더서 내용을 보면, 단 한번도 불만이나 못된 태도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에스더서를 읽다보면 여러차례 그녀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호의가 결국 그녀의 백성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당한 박해를 받아들이고 에스더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과 결단 가운데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때 그러한 호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그러한 위치에 두실 지 누가 알겠습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