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윌리암 윌보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 8. 24-1833. 7. 29
영국의 노예재도 폐지 운동을 이끈 정치인
 

할아버지인 윌리엄 윌버포스(1690-1776) 발트 교역에서 부자가 되었다.
아버지 로버트 윌보포스(1728-1768)
윌버포스는 만18세인 1776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목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너는 정치를 하라는 요한 웨슬리의 조언에 따라 정치인으로 결단하였다.
그는 학생들의 모임에 몰두하고 공부에 열중하지는 않았다.
친구 중에서, 특히 윌리암 피트를 사귀었고, 둘의 우정은 평생 계속되었다.
만 22세인 1781년 학사 학위
만 29세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사에서는 윌리엄 윌버포스를  로버트 레이크스(주일학교 창시자),
존 벤 신부(Rev. John Venn)등과 더불어 18세기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영국 성공회 신자로서 그의 노예제도 반대운동을 기독교 운동의 모델로 볼 수 있다.

*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년 2월 12일 ~ 1865년 4월 15일)


8월 27일(금)
에스라 10장 / 하늘의 하나님(4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10:1∼44
♦ 묵상을 위한 주제 : 힘써 행하소서(4절)
♦ 성구 : 이는 당신(當身)의 주장(主張)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行)하소서.  

“힘써 행하소서(take courage and do it)”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살만에셀 왕)에 의해서 망합니다(BC 722).
남 유다는 그 후 136년 후에 바벨론(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망합니다(BC 586).

바벨론에 의해서 망한 후 70년이 지나서 유다 사람들은 사만 이 천 명 정도가 1차 귀환한 후 총독 스룹바벨의 지도를 받아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 후 다시 60년이 지나서 에스라를 중심으로 만 여명 정도의 사람이 2차 귀환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라가 2차 귀환한 후에 유다를 개혁한 사건입니다.

에스라의 개혁을 통하여 유다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고 그곳에서 메시야가 태어나서 세계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기독교의 위기라고 합니다.
위기를 말하면서도 위기를 극복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나일까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구원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아내와 며느리로 맞이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던 것에 대해 에스라가 제시하는 가르침을 따라서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하자고 합니다.

아내를 보내는 것은 그 결혼이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난 것으로 무효의 법적 상태였다는 점에서 볼 때 타당한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소생 즉 그 아내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보내는 행동은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꽤 잔인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은 어머니의 종교적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틀림없이 이방의 풍습이나 종교에 젖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허다한 다신 종교로부터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하기에 가나안 족속을 모두 멸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너무 처참하고 고통스런 현실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범죄로 파기되었던 언약을(렘 31:32)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사람들이 다시 갱신했듯이(6:16∼17) 최근의 범죄(9:1∼2)로 인하여 또 파기된 언약(9:10, 15)을 다시 갱신하려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죄를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죄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더 큰 어려움이 닥쳐올 것을 알았기에 지도자의 제안을 믿고 따르려는 유다 백성들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교회를 대표할만한 어른과 같은 지도자가 있었는데 오늘날은 대형교회는 있지만 교회의 어른 역할을 할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에스라 혼자서 이런 일을 진행한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도 에스라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자신들이 도와주려고 하니 일어나서 힘써 행하라고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모든 것을 맡기고 헌신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 할 일군이 없다고 합니다.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일군을 보내달라고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함께 할 협력자(協力者)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 힘으로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지만 두 세 사람이면 넉넉하게 견디고 이길 수 있다는 솔로몬의 지혜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나는 믿음으로 협력할 수 있는가?
오늘도 솔선수범하여 협력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라 10:4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아멘

(공동번역)
일어나십시오. 선생님이 알아서 일을 처리하십시오. 우리는 다만 따르겠습니다. 기를 내어 밀고 나가십시오  


에스라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죄에 대한 연대 의식  
자복할 때(야다. yâdâh) יָדָה  /  던지다
10:11, 자복(토다. tôwdâh) תּוֹדָה / 고백, 감사 


에스라 10:2

엘람 자손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스가냐(여호와께서 거하심)의 개혁 제의 


에스라 10:3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 신명기 7:3-4

신명기 7:3-4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에스라 10:4-5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에스라 10:6-7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저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근심하여 떡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에스라 10:8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 내리라.

이스라엘 총회 소집 


에스라 10:11-12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자복(토다. tôwdâh) תּוֹדָה / 고백, 감사
끊어버리라(바달. bâdal) בָּדַל  / 분리하다, 나누다  
10:1, 자복할 때(야다. yâdâh) יָדָה  /  던지다


에스라 10:16-17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위임하고 시월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정월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취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오늘의 기도

숨은 죄를 자복할 회개의 영을 주옵소서!


8월 26일(목)
에스라 9장 / 주 앞에(15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9: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앞에(15절)
♦ 성구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主)는 의(義)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避)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主)께 범죄(犯罪)하였사오니 이로 인(因)하여 주(主) 앞에 한 사람도 감(敢)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날마다 주 앞에서(before you) 일어날 수 있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은혜가 헛되지 않을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의 2차 귀환을 마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걸어야 했던 그 먼 거리를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1~2절). 그 소식은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합은 단순한 결합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빠져버린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심각한 결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면 그들의 우상도 함께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포로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에 열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이방 여인들을 며느리와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을 향하여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 있었습니다(3절).

에스라는 그 백성들이 지은 죄를 자신의 죄로 끌어안고 기도했습니다(6절).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 하나님께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죄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라의 이와 같은 모습에서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죄를 무겁게 여기고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합니다.
둘째는 죄를 짓는 것을 무관심하게 바라보면 안 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우리들을 묶어주신 것은 그 공동체도 나의 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는 곧 나의 몸입니다.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슬픈 일은 함께 울며 슬퍼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일은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잘못과 부정은 곧 나의 잘못이며 부정한 것임을 깨닫고 주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도 에스라의 모습을 생각하며 어떤 환경에서든지 주님을 꼭 붙잡고 내적 개혁과 내적 성숙이 일어나는 복된 하루가 펼쳐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라 9:1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아멘

에스라서 개요

        1. 기록 연대 : BC 458-444
        2. 기록자 : 에스라
        3. 이름의 뜻 : 하나님이 도우신다
        4. 기록 대상 : 유다 백성들
        5. 핵심 단어 : 귀환, 회복
        6. 내용 : 1차, 2차 귀환 후 헌신
        7. 구조 :   1-6장 1차 귀환(스룹바벨) BC 536
                     7-10장 2차 귀환(에스라) BC 457
* 느헤미야 1-13장 3차 귀환 


에스라 9: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죄가 세상에 만연하였다(백성, 제사장, 레위 사람들)



에스라 9:2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방백, 두목 : 그 방백과 지도자
으뜸이 되다 : 앞장 서다 

에스라 9:3-4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에스라 9:5-6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 9:11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에스라 9:1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오늘의 기도 

주의 말씀으로 모든 악한 것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8월 25일(수)
에스라 8장 / 아하와 강가(21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8:1∼36
♦ 묵상을 위한 주제 : 아하와 강가(21절)
♦ 성구 :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禁食)을 선포(宣布)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謙卑)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所有)를 위(爲)하여 평탄(平坦)한 길을 그에게 간구(懇求)하였으니.  

“아하와 강가(by the Ahava Canal)”

‘아하와’라는 강 이름의 뜻은 “물”이라고 합니다.

“아하와 강”은 “바벨론 서북방을 흐르는 강 혹은 운하”를 말합니다.

“에스라”가 이 강가에서 백성과 제사장을 조사하였고 또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한 후 정월 12일에 이곳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스 8:15, 21, 31).


에스라 7장에서 에스라가 등장하였고,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던 에스라가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때를 “2차 포로 귀환기”라고 하며, 8장에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소개됩니다.


2차 귀환자의 명단을 소개하면서 두 제사장 “비느하스”와 “이다말” 가문의 후손과 왕족인 다윗의 자손을 먼저 언급합니다(1∼2절). 그리고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숫자가 종족별로 소개됩니다(3∼14절).

백성들이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길에 아하와 강가에서 사흘 동안 머무르게 되었습니다(15∼20절).

그곳에서 귀환자 명단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들의 무리 가운데는 레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15절).

이 때 에스라는 레위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그들도 예루살렘으로 함께 돌아가도록 권유하면서 최종적으로 추가된 38명의 레위인과 함께 귀환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가 되어 그곳에서 무려 140년 동안 생활했던 백성들은 바벨론 문화에 익숙해졌습니다.


몸에 익숙한 생활환경을 떠나서 낯선 땅으로 옮겨가려 할 때 먼저 예루살렘에 도착했던 사람들로부터 정착생활의 불편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벨론을 떠나려는 백성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촌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좁은 문과 좁은 길을 선택하고 심지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질 불편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드릴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을 환경적 존재(coram environmental)라고 합니다.

환경적 존재는 익숙하고 편안해진 환경을 떠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신 분이 성자 예수님입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 길은 멸시와 천대의 길입니다.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선지자 에스라처럼 오늘날도 수많은 성도들 중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할 거룩한 백성들을 찾아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할 주의 백성들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 길을 선택하는 주의 백성들의 수가 채워질 때 비로써 영광과 감격과 감사와 찬양의 넘치는 그 세상이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친히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 힘입어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자원하는 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고생의 길이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자원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38명의 레위 인을 찾아내실 것입니다.  잠시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역사에 기여한 사람들 명단에 기록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속에서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이 길이 험할지라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갈 때 그 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사악한 세력들이 흔드는 세상에서 사람의 능력으로 버틸 수 없습니다.
에스라처럼 아하와 강가에서 긴박한 기도를 하였듯이 우리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때에 이 시대를 극복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그 일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혜로 찾을 수 있는 길이라면 그 길은 더 이상 하나님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생길이며 십자가의 길이라 하더라도 믿음의 사람은 간절한 심령으로 기도하며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자원하는 순종의 길을 기도하며 걸어갈 때 그 오늘은 내일의 소망이 될 것입니다. 내일의 소망은 또 내일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은총의 날이 될 것입니다.

♪ 찬양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https://www.youtube.com/watch?v=VZdMLgChd-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라 8:21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아멘  

기도의 자리가 분명한가?
(예화) 밀림 지역의 어느 원주민 리더를 방문한 선교사가 그 원주민에게 "요즈음 기도를 하지 않았군요?"
그러자 원주민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아셨어요?"
"집 뒤에 잡초가 많이 자랐다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밀림 지역인지라 매일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려면 밀림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랍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에 잡초가 무성합니다.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평탄한 길을 간구했습니다.

에스라 8:1

아닥사스다왕이 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보계가 이러하니라.

함께(임. ʽîm) עִם 

1. 도울 때
2. 행동으로 함께 할 때                     
3. 바로 가까이 있을 때 

에스라 7:13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찌어다.

그와 함께(13회) / 8: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차 귀환(BC.537년) 고레스 / 스룹바벨, 예수아(49,897명)
2차 귀환(BC.458년) 아닥사스다 /  에스라(1,754명)
3차 귀환(BC.444년) 아닥사스다 / 느헤미야(통계 없음)

에스라 8: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일 동안 장막에 유하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는지라.

258명을 불러오다

말리 자손 중 세레뱌와 아들 18명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 형제들 20명
느디님 사람 중 220명

에스라 8:21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금식        
겸비(겸손)                                  
평탄한 길(곧은 길, 안전한 길)  


에스라 8:22-23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에스라 8:31

정월 십 이일에 우리가 아하와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쌔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디모데후서 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오늘의 기도

주와 함께 옳은 길을 걷게 하옵소서!


8월 24일(화)
에스라 7장 / 학사 에스라(6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7: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학사 에스라(6절)
♦ 성구 :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律法)에 익숙한 학사(學士)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救)하는 것은 다 받는 자(者)더니.  

“에스라(Ezra, 조력자)”는 2차 포로 귀환 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도자입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학사이었습니다(teacher well versed in the Law of Moses).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을 받은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협력하여 제2의 성전(스룹바벨 성전)을 완공한 후에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미 성전은 세워졌기 때문에 이제는 모세의 율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를 맞춰 “에스라”를 세웠습니다.
"에스라"를 통하여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동체를 세울 것입니다.

성경은 에스라의 인품을 이렇게 증언합니다(7:25-26).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찌니라.”

아닥사스다 왕의 이와 같은 조서는 에스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에스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라와 같은 신앙의 사람이 없다면 그 나라와 그 백성들은 헛된 것만 자랑하는 헛된 것에 도취되어 결국에는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대형교회를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고 나라의 지도자가 두려워할 줄 아는 작아도 큰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소돔과 고모라 성에 의로운 사람 열 명이 없어서 불의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과 그 교회가 없기 때문에 무서운 불과 사나운 바람과 폭풍우와 지진의 재앙이 임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 찬양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rco1vI3Gr4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라 7: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아멘


BC 722년. 북 이스라엘 멸망(앗수르 살만에셀) - 식민화 혼혈정책 
     
* 136년 후      
BC 586년. 남 유다 멸망(바벨론 느부갓네살) - 이주정책        

예레미야애가 

* 42년 후      
BC 538년. 바벨론 멸망(바사 고레스)     - 귀환정책      

고레스 왕의 조서(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성전 재건(6:22)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7:12-13)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에스라 8장 : 예루살렘으로 귀환
에스라 9-10장 : 기도와 개혁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신앙생활의 세 가지 원칙 : 연구, 준행, 가르침

에스라 7: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성전 완공 : 다리오왕 육년 아달월 삼일

BC 537 고레스 포로 귀환 칙령
BC 536 성전 재건축 시작
BC 516 성전 재건 완성
* BC 586 남 유다 멸망(바벨론 느부갓네살)
 586-516= 70 / 70년 만에 돌아온 것으로 계산하는 근거가 된다.

에스라 7:9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정월 초하루 : 니산월 초하루(유월절)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오늘의 기도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믿음 

               

8월 23일(월)
에스라 6장 /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10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6: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11절)
♦ 성구 : 저희로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香氣)로운 제물(祭物)을 드려 왕(王)과 왕자(王子)들의 생명(生命)을 위(爲)하여 기도(祈禱)하게 하라.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pray for the well-being)”

이 때 생명은 바사 왕 고레스와 왕자들을 말합니다.
이방 나라 왕이었지만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왕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바르게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고레스”는 바사(페르시아, 현재 이란) 제국의 초대 왕으로(BC 558∼529) 메대 왕 “아스타게스”의 통치하에 있던 ‘얀샴’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주전 539년에 바벨론 전역을 정복하여 바사를 최대 제국으로 세웠습니다.

“다리오 왕”은 “고레스”의 치하에 있던 바벨론의 통치자로서 주전 539년 10월 갈대아 사람 “벨사살 왕”이 죽은 후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다리오 왕은 성전 건축을 지원하였고 소용되는 경비까지도 지불하였습니다.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의 글을 받은 다리오 왕은 바벨론의 보물 창고 중 서적 곳간에서 고레스의 조서에 대한 기록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레스의 조서를 확인한 다리오는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에게 조서를 내립니다.

첫째는 성전 재건 사역을 막지 말라.
둘째는 강 서편의 세금 중에서 재건에 필요한 비용과 성전 제사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제공하라.
셋째는 왕과 왕자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다리오는 변개할 수 없는 메대의 법칙을 강조하면서 누구도 성전 재건을 방해하지 못할 것을 확인합니다.

고레스 왕의 조서에다 추가된 다리오 왕의 조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 필요한 번제물의 공급 명령과,
자신의 명령을 변개하는 자와 그 가문은 엄벌에 처할 것,
그리고 성전을 허무는 자를 여호와께서 벌하시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8∼12).

성전 건축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드디어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수소와 숫양을 화목 제물로 바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숫염소 열두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으로 성전을 충만케 하셨고, 건축하는 데 충성한 유대 백성을 복 주셨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성전 봉헌 후 가장 먼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을 마지막으로 지킨 것은 요시야 왕 때였으나, 그 후 약 80년 만에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풀려난 유대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입니다(16∼22).

오늘의 역사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세상이 흘러가는 것 같을지라도 주님은 반드시 하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두 가지를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는 내가 살고 있는 성읍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렘 29:7).

둘째는 나라의 지도자와 관리들이 헛된 욕망에 미혹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딤전 2:2).

그러면 우리 모두가 평안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전화위복의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찬양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1. 에스라 6:10

저희로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아멘


에스라 6:1-2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메대도 악메다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페르시아 왕들의 궁전
  겨울 : 바벨론 궁
  봄 : 페르시아 “수산 궁(느 1:1)”
  여름 : 메대 “악메다”(아람어) / (헬) 에크바타나. (페)하그마타나 


에스라 6:3-5
3. 고레스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전의 고는 육십 규빗으로
광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솔로몬 성전(왕상 6:2) : (고) 높이 30규빗(13.5m)
                                      (광)  너비 20규빗(9m)
                                      (장) 길이 60규빗(27m)


4.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5.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전 금, 은 기명을 돌려 보내어
예루살렘 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안 각기 본처에 둘찌니라 하였더라.

에스라 6:6-7

6. 이제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너희 동료 강 서편 아바삭 사람들은 그곳을 멀리하여.
7. 하나님의 전 역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로 하나님의 이 전을 본처에 건축하게 하라.

에스라 6:8-9

8.  내가 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게 하노니
왕의 재산 곧 강 서편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신속히 주어 저희로 지체치 않게 하라. 

9.  또 그 수용물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소청대로 영락 없이 날마다 주어.

에스라 6:10

저희로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다니엘 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리오 왕을 움직인 사람 다니엘
고레스(키루스 2세) - 캅비세스 - 다리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의 기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역사가
믿음의 증거로 열매맺게 하옵소서!

8월 21일(토)
에스라 5장 / 다시 건축하노라(11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5: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다시 건축하노라(11절)
♦ 성구 :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對答)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天地)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建築)되었던 전(殿)을 우리가 다시 건축(建築)하노라 이는 본래(本來) 이스라엘의 큰 왕(王)이 완전(完全)히 건축(建築)한 것이더니.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 건축을 위한 기초를 쌓을 때 머지않아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왜곡된 고소와 고발 심지어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며 집요하게 성전 재건을 훼방하므로 성전 재건의 기쁨은 땅속에 묻혀버렸습니다.

이제는 성전 건축보다는 개인의 집을 짓는 일에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가 등장하여 백성들을 깨우쳤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학개 1:2∼5)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통해서 유다 사람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은 성전을 짓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는 반드시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와 같습니다. 만일 그 은혜를 외면한다면 은혜를 멈추게 하여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성전은 황폐하였는데 너희는 어떻게 판벽한 집에서 사느냐?”

‘판벽한 집’은 “화려하게 꾸민 집”을 말합니다.


다시 성전 재건에 몰두할 때 또 다른 어려움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 공사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나를 힘들게 합니까?

그 어려움이 은혜에 합당한 믿음의 길을 걷지 못한 것이라면 당장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되찾아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면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에 버금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든든하게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진리의 길을” “믿음의 길을” “소망의 길을” 따라 순종하는 순례자의 삶을 보여주므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 성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라 5:11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완전히 건축한 것이더니. 아멘 

고레스(키루스 2세) / 스룹바벨
                          현대인 성경(13절) 키루스 황제 원년
캄비세스 / 성전 건축 중단 명령

다리오(다레이오스 1세) / 성전 재건  / 학개, 스가랴
6절 다리오 왕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 에스더

아닥사스다(아르타 크세르크세스) /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라 5: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학개 1:1 /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8절 /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스가랴 1:1 / 다리오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4절 /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스라 5:2 /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쿰)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하여 돕더니.

5절 /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 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에스라 5:11 /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완전히 건축한 것이더니.

12절 / 우리 열조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희를 갈대아 사람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이 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솔로몬 성전 착공 BC 966년(왕하 6:1), 완공 BC 959년(왕상 6:38)
스룹바벨 성전 착공 BC 518년경, 완공 20년 후 

에스라 5:13-15 /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고.
또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속에서 금, 은 기명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왕이 그 신당에서 취하여 그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 이름한 자에게 내어주고.
일러 가로되 너는 이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그 본처에 건축하라.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의 기도

모든 염려를 온전히 주님께 맡겨버리게 하옵소서!

8월 20일(금)
에스라 4장 / 홀로 건축하리라(3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4: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홀로 건축하리라(3절)
♦ 성구 :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其他) 이스라엘 족장(族長)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殿)을 건축(建築)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相關)이 없느니라 바사 왕(王)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命)하신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爲)하여 홀로 건축(建築)하리라.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에게 포로로 붙잡혀 가지 않고 고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백성들이 찾아와서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겠다고 제안합니다.

이때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각 족장들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그들이 참여를 거부하여 말하기를 “홀로 건축할 것” 이라고 합니다.

좋은 뜻으로 성전 건축에 참여하려던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반대 의견에 반발하여 페르시아 왕과 관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노골적으로 성전 건축하는 것을 훼방하게 됩니다.

성전 건축에 참여할 것을 반대한 이유는 대부분의 사회 지도층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붙잡혀 갔고 예루살렘에는 천한 백성들만 남겨 놓았습니다(왕하 24:14∼16).

세월이 지나면서 고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의 종교와 생활 풍속에 영향을 받아 신앙의 순수성과 유대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스 9:1∼2).

이러한 사람들의 제안이라고 거부하므로 성전의 거룩성을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물질적인 지원과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한 까닭은 예루살렘에 세워질 성전은 순수한 믿음에 의해서 거룩한 방법으로 건축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물질이 풍성하면 모든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신앙의 순수함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생각하며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하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드러나야 하겠습니다.

소금은 다른 물체에 들어가 그 형체를 완전히 녹여 부셔지고 흔적조차 없어집니다.

빛은 어둠 속에 들어가 순식간에 어둠을 몰아내고 모든 것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고 빛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쉽고 빠른 길이 좋은 것이 아니라 비록 어렵고 느릴지라도 성경적인 방법에 따라 순종하는 믿음의 길을 선택하므로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하나님이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며 덕이 되는 길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어두움 후에 빛이오며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라 4: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단독으로 건축하겠소"

에스라 4:1-2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함께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그들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왜 거부했을까요?

에스라 4:4-5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에스라 4: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이르니라.

잠언 28:10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

오늘의 기도

굳건한 신앙으로 세상 유혹을 이기게 하옵소서!


8월 19일(목)
에스라 3장 / 여호와의 전 지대(10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여호와의 전 지대(10절)
♦ 성구 : 건축자(建築者)가 여호와의 전(殿) 지대(地帶)를 놓을 때에 제사장(祭司長)들은 예복(禮服)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提琴)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王) 다윗의 규례(規例)대로 여호와를 찬송(讚頌)하되.

“여호와의 전 지대”란 성전을 재건할 기초를 말합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귀환 백성들이 드디어 칠월에 모두 모여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아침과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며 “초막절”을 지킵니다.

칠월이란 유대 민족의 중요한 절기가 시작됩니다.
칠월 초하루는 “신년(로쉬 하 샤나)”
칠월 십일 “대속죄일(욤 키퍼)”

이와 같은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칠월에 하나님의 단을 만들었습니다.

율법은 25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이 일을 시작하도록 규정하였으나(민수기 8:24) 봉사할 인원이 부족하여 20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감독하게 합니다(8절).

성전 재건의 지대를 놓을 때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를 찬송하며 즐거이 찬양하였으나 노인들은 첫 성전(솔로몬 성전)을 보았기 때문에 대성통곡합니다(12절).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은 성전이 없는 생활을 하며 하나님께 단을 쌓았으나 이제는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한다는 기쁨과 처음 성전과 비교할 때 초라한 모습에 통곡하는 어른들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팬데믹으로 인하여 거의 1년 6개 월동안 교회에서 모여 함께 예배할 수 없었던 우리들이 다시 모여 예배하는 그 날에 어떤 모습으로 예배했습니까?

성전을 재건하는 감격의 마음이 느껴집니까?
아직도 예배자의 감격과 예배자의 삶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속히 예배의 감격과 예배자의 거룩한 삶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이러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전에 날마다 예배자의 거룩한 삶이 이 세상을 흔들어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넘쳐나는 세상으로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예수 한국 복음 통일을 위하여!”
“예수 천국 복음 천하만국을 위하여!”

♪ 찬양 / 빛나고 높은 보좌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라 3: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아멘

에스라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도우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도와주실까요?
어제 수요성서학당에서 "이 시대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강좌에 참여했던 성도들이 이구동성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시대에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뚜렷한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알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전 537년,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 1-6장은 1차로 돌아온 사람들
에스라 7-10장은 2차로 돌아온 사람
느헤미야 1-13장은 3차로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일반 회중이 42,360명, 남녀 종이 7,337명, 노래하는 남녀가 200명 등 모두 49,897명(약 5만명)이었습니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회복과 안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귀환한 7월에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7월은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태양력으로는 9-10월 경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일제히’ 모였습니다.
‘일제히’라는 문자적인 뜻은 ‘한 사람처럼’ 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무교절과 칠칠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3대 명절 중에 하나인 초막절을 7월 15일일부터 일주일동안 지켰습니다.
그 절기를 지키기 위해 한 사람같이 예루살렘으로 모였던 것입니다.
마치 추석명절에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이듯이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모인 것은 수십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처음 맞는 초막절이었습니다.

에스라 3: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칠월 : 디슬리 월(양력 9-10월)
일제히 : 한 사람 처럼 

7월(디슬리 월) 양력 9-10월

7월 1일 / 나팔절(로슈 하샤나) 신년, 새해

7월 10일 / 속죄일(욤 키퍼)

7월 15일 / 초막절(수콧) 

에스라 3:8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지 이년 이월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 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월 : 시브월(왕상 6:1) 솔로몬 성전 건축 시작일  

에스라 3:11-12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 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에스겔 18: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늘의 기도

회개의 기도가 성도들의 삶의 현장과
각 교회에서 크게 울려퍼지게 하옵소서!


8월 18일(수)

에스라 2장 / 본 성에 이른자(3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2:1∼70

♦ 묵상을 위한 주제 : 본성에 이른 자(1절)
♦ 성구 : 옛적에 바벨론 왕(王)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者)의 자손(子孫)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道)로 돌아와 각기(各其)


남 유다 왕국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무너지고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갔습니다.

에스라 2장은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이때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42,360명이라고 합니다. 또한 남종과 여종이 7,337명 그리고 노래하는 남녀 200명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말은 736마리, 노새 245마리, 낙타 435마리, 나귀 6720마리로 총 8,136 마리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민족이 아닌 낯선 나라 사람들의 생소한 이름을 읽는 것도 불편합니다. 왜 이렇게 불편한 이름들을 소개하셨을까요?


생소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소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은 돌아온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훗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모두 생소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상에서 생소했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 정확하게 그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마태복음 17장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모세와 엘리야를 이전에 본 적도 없었는데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이름을 기록으로 남겨주신다.

성경은 주의 백성들의 이름이 기념책에 또는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말 3:16, 시 69:28, 계 20:15, 13:8).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셋째, 선봉자가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혜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합니다(2절).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생뚱맞은 이름도 있습니다.
귀환하는 이스라엘에게 앞장서서 걸어가는 지도자들이 있었음을 알려주십니다. 누군가 앞서 걸어갈 때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이렇게 결단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되겠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앞서 걸어가셨던 예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그룹으로 나누셨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이 백성들을 특정한 기준에 따라 나누어 계수합니다.
예를 들면 조상이 누구였는가? 역할이 무엇이었는가?
이름도 인원도 상황도 다른 그룹들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보며 교회가 공동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모두가 같은 모습이 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한 몸에 손이 100개만 있는 것을 좋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양한 부서와 각기 다른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돌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그룹들을 비난하면서 자기 그룹이 가장 최고라고 자랑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서로 같은 목표와 공통점을 갖는 공동체를 이루며 목적지를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다섯째, 신분 확인이 어려운 사람들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다고 분류된 사람들이 소개됩니다(59∼63).

비록 함께 긴 여정을 함께 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제사를 위한 일에 종사할 수 있는 신분이라고 확정될 때까지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는 제약이 제시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돌아온 사람의 무리에 속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일군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요?
만일 부끄러운 삶이 있었다면 그 일에서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순결하고 온전한 예배자로서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머릿돌처럼 귀중하게 쓰임 받는 지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에스라 2: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아멘

* 본성(이르. ʽîyr) עִיר  도시, 성, 성읍, 고을, 도성 
귀환 여정 : 16,00km(약 120일) / 42,360명(64절)
포로 된 사람들 : 200-300만 명 / 2-3% 귀환

1. 역사적 배경은?

페르시아 시대 / 포로 기 이후

2. 에스라서의 목표는?
회복(하나님, 성전, 제사)

3. 에스라서에 대한 예언적 배경은?

이사야 44:28, 고레스(이름을 예언)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기원전 8세기 이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은 대략 200년 전에 선포한 것이었다.


예레미야 29:10, 칠십 년이 차면(햇수를 예언)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4. 귀환은 제2의 출애굽 사건(에스라 1장) 

에스라 2: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들
* 에스라 2장 / 제2의 아브라함 사건(창세기 12:1)


창세기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스룹바벨 :
(뜻) 바벨론의 자손, 바벨론에서 태어났다

1. 여호야긴 왕의 손자(마 1:12, 눅 3:27)
2. 스알디엘의 아들(스 3:2, 학 1:1)
3. 브다야의 아들(스알디엘의 형제)(대상 3:19)
4. 세스바살의 조카(스 1:11)

에스라 2장의 족보 내용을 구분

2:2, 지도자 그룹
2:3-20, 가족(3절. 바로스 자손)
2:21-35, 지역(21절. 베들레헴 사람)
2:36-42, 사역자(36절. 제사장들)
2:43-54, 성전의 종들(43절. 느디님 사람)
2:55-58, 솔로몬 신복
2:59-63, 평민들(족보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

히브리서 11:13-15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오늘의 기도        

돌아갈 내 고향을 바라보는 신앙 


8월 17일(화)
에스라 1장 / 전을 건축하라(3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스라 1:1∼11
♦ 묵상을 위한 주제 : 전을 건축하라(3절)
♦ 성구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神)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百姓)된 자(者)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殿)을 건축(建築)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願)하노라.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 70년의 포로 생활은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하여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남 유다는 멸망당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이며(렘 25:11∼12),
70년 후에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렘 29:10)”

주전 605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것을 “1차 포로”라고 합니다. 이때 끌려간 사람들 중에 “다니엘”도 포함됩니다.

1차 포로를 시작으로 주전 587년 남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3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주전 538년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 제국은 무너졌고, 바벨론을 점령한 고레스는 현재의 “이란”인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습니다.

‘고레스’는 제국의 임금으로 즉위했던 해에 바벨론으로 끌려온 포로들을 고국으로 귀환시키라는 조서(칙령)를 전국 각지에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주전 536년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는데, 이때 이루어진 포로 귀환을 “1차 포로 귀환” 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70년 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605년-536년=70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 땅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주셨다. 여호와께서는 나에게 유다의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셨다며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2절).

“전을 건축하는 것”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자원하여 진행한 사건이 아니라 페르시아 왕의 칙령에 의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통치하고 다스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반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포로를 지배하는 새로운 왕의 명령에 의해서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선지자적 통찰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한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자유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현실을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적인 안목을 갖지 못하면 공산화 작업이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을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읽고 깨닫는 지혜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지도하는 목회자들이 도처에 세워지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神)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百姓)된 자(者)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殿)을 건축(建築)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願)하노라.”(3절)

오늘도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세우는 일에 내 몫을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 찬양 / 어느 민족 누구게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BC 722년 북 이스라엘 멸망(앗수르)

BC 586년 남 유다 멸망(바벨론)
- 유다가 이스라엘 멸망 후 136년 후에 망하는 것은 그 기간만큼 깨닫고 뉘우칠 기회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깨닫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벨론 1차 침략 BC 606년 여호와김 /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포로
바벨론 2차 침략 BC 597년 여호야긴 / 에스겔 포로
바벨론 3차 침략 BC 586년 시드기야 / 멸망, 성전과 성벽 파괴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 / 70년 포로 생활 후 돌아오게 돌 것이다.

BC 539년 바벨론 멸망(바사, 페르시아 현재 이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남 유다 백성들은 자연적으로 바사(베르시아)의 포로가 되어야 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勅令)에 의거 포로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1차 포로 귀환 BC 536년 스룹바벨 총독으로 임명, 여호수아 대제사장
2차 포로 귀환 BC 467년 에스라
3차 포로 귀환 BC 447년 느헤미야

포로 귀환의 모든 역사를 담은 말씀이 "에스라, 느헤미아, 학개, 스가랴"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1, 2차 포로귀환을 이야기하며 그 가운데 성전을 재건하는 가운데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는 것을 말씀합니다.
학개, 스가랴서는 3차 귀환때 성벽과 성전이 재건되며 그들이 영적인 회복을 이루어 동류되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같은 심판을 말씀하시며 포로로 잡혀갈 것과 성벽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 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남유다의 왕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면 큰 일이 나는 줄 알았던 그들은 성전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믿지 못하고 끝까지 예루살렘에 남아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포로로 잡혀서 종살이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이스라엘에 있을 때 보다 더욱 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회당을 지어 안식일 모임, 절기 모임을 지니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나누었습니다.
그리하여 70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된 자리에서 다시 귀환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귀환을 시키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유일한 신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그 주권을 가진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이스라엘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귀시키는 것입니다(에스라 1:1~2)

이방의 왕이 이같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만지지 않으시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포로들은 온갖 노역에 궃은 일을 할 뿐 아니라 노동력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나라적으로 손실이 크고 바벨론의 백성들에게도 불편이 상당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귀환을 시키는 왕의 명령과 그것이 3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은혜스러운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70년이란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일제 치하에 있었던 기간이 이보다 짧은 36년이었으나 아직도 그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며 여러 전쟁의 피해자들과 희생자들이 아직도 그것을 증언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70년의 시간동안 온갖 힘든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픔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었고 그 아픔이 결국은 연단과 훈련을 통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과 순종하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각자 맡은 사명과 소명을 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반드시 그것을 성취 시키십니다.
그 성취의 과정 속에 우리에게 각자 주신 분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복을 누리는 우리는 세상이 어둠으로 간다고 해도, 우리 앞에 여러 상황들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분복을 누리며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 선지자는 고레스 왕이 취한 외교정책을 신학적 관점 즉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레스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가 취한 외교정책의 결과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바로 이 점에서 구별됩니다.
역사를 단순한 인과관계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1절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에스라는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고 설명합니다.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겠으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고레스 왕이 이전 두 제국의 통치자들과 달리 피정복민에 대하여 관용정책을 취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신 결과였습니다. 고레스 왕은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관용정책을 시행하였지만, 그러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한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실 고레스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것과 그에 의해 이스라엘이 해방될 것은 이미 그가 바사 제국의 왕이 되기 16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일입니다.

이사야 44장 28절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의 이름까지도 분명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가 부와 권력을 가진 몇몇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인간의 모든 마음의 생각과 계획까지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때때로 인간의 생각과 판단에 비추어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듯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 세상 역사는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기억하고 묵상해야 할 말씀은 이 세상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의 주인이 되시기에 그 분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행복이며 참 기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사무엘, 열왕기, 역대기)가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2.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란 생각이 드십니까?
3. 고레스가 이 땅에 등장하기 160년 전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4.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오늘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어떻게 보여집니까?

학자 겸 제사장인 지도자 - 에스라

에스라의 인적사항

1. 에스라의 뜻 : ‘여호와가 도움
2. 스라야의 아들(스 7:1)
3.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
4. 학자겸 제사장
5. 제2차 포로 귀환 때 유다인을 인솔한 지도자 중 한 사람

시대적 배경

남 유다 왕국이 멸망(BC 586)한 후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지났다.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사제국이 등장하였다.
바사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대대적인 귀환 명령이 내려졌다.

1차 포로 귀환이 있은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 1세(BC 464-424년)가 다스릴 때
2차 포로귀환(BC 444)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때 포로들을 이끌었던 인물이 에스라이다.

에스라의 특징

BC 722년앗수르 제국살만에셀에 의해 북 이스라엘 멸망

BC 586년바벨론 제국느부갓네살에 의해 남 유다가 멸망
포로로 끌려갔던 수많은 유대인들은 포로지에서 70년의 세월이 지난 이후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BC 559년 바사 고세르 왕에 의해 바벨론 멸망

바벨론을 점령한 바사제국의 초대왕 고레스에 의해 B.C 536년에 1차 포로귀환
인도자 : 스룹바벨, 예수아

아닥사스다 왕 1세(에스더의 남편이었던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 때에 2차 포로 귀환 BC 457년
인도자 : 에스라이다.

그러므로 당시에 시대적 상황에서 에스라는 아주 훌륭한 지도자이며 그가 미친 영향력은 매우 컸다.

에스라는 어떤 인물인가?

1. 에스라는 뛰어난 학자이며 제사장이었다.

에스라라는 인물은 에스라서의 7장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어 진다.
그런데 에스라를 소개할 때 제일 먼저 에스라가 아론의 혈통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에스라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결국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실제적으로 에스라는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에스라는 자신의 혈통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에스라에게 붙는 별칭이 있는데 이는 에스라가 학자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제사장을 언급해도 학자임을 강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에스라에게만은 학자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그것도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라는 것이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주 익숙한 다른 말로 말하면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다.

에스라 7: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당시에 아닥사스다 왕도 에스라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겸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에스라가 특별한 호칭을 받게 된 이유는 에스라의 말씀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대적으로 암울했던 시기를 돌이켜 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난무했고, 아첨하기에 바빴고 자기의 실속을 챙기기에 바빴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의 비위를 마치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해석해서 알려 주는 자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이것이 에스라의 됨됨이다.
그는 포로지에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가까이 나아간 것이다.
사실 포로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딜레마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왜 우리 나라가 망했을까?
하나님이 지키시는 나라가 왜 망한것인가?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신 것인가? 하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이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들이 가득했다.
그러기에 이 시점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갈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에스라는 진정한 학자요. 제사장이었던 것이다.

교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
당시에는 인쇄술이 없었기에 오늘날 처럼 손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에 지도자들이 제사장들이 말씀을 가르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집집마다 성경책이 없는 집이 없다. 또한 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의로 교육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듭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
인생의 이정표가 되고, 살의 지침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말씀을 능히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에스라는 당시 바사제국에서 고위직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왜냐하면 에스라는 왕의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겸 제사장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누구에게 인정받고 있는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닥사스다왕은 에스라를 통해서 여러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이다.
특히 에스라가 학자의 신분이고 제사자의 신분이었기에 이스라엘의 문화나 특성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것이다.
그때 에스라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왔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아닥사스다 왕도 인정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또한 에스라는 왕의 신임을 받는 자였다. 아닥사스다 왕이 볼 때 에스라는 믿고 신임할 수 있는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로 삼음

아마도 에스라는 자기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왕에게 하고 나서 남은 포로들을 돌려 보내 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당시에 아닥사스다 왕은 모든 민족에 대해서 관대한 정책을 폈다. 그리고 각각의 모는 민족들이 자신이 섬기는 신들을 자유롭게 섬기도록 포용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에스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를 주장했을 것이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지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하나님에게 경배하지 않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을 것이다. 어떤 나라든지 하나님이 노를 발하시면 바람 앞에 등불이요(풍전등호), 바람 앞에 티끌이요(풍전지진), 알을 쌓아 놓은 형국(누란지세)이 될 것이라는 했을 것이다.

이러한 간청을 들은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2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로 세우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 정월 초하루에 포로민들을 이끌고 바벨론을 출발하여 5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에스라는 자기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에스라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왕이 주었다.

에스라가 왕에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았다고 한다. 이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이는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를 얼마나 신임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① 예루살렘에 올라갈 뜻이 있는 모든 자는 에스라와 함께 가도록 허락을 받음(7:13)

② 하나님께 예배하기 필요한 모든 은금과 예물을 가지고 가도록 허락을 받음(7:15-18)

③ 성전에 쓰일 물건이 필요하면 궁중창고에서 가져다가 쓰도록 허락을 받음(7:19-22)

④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조공, 관세, 통행세를 받지 못하게 함(7:24)

⑤ 에스라로 하여금 법관과 재판관을 세울 인사권과 사법권을 줌(7:25-26)

이러한 조치는 정말 파격적인 조치였다. 당시에 에스라가 가지고 있었던 권한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에스라는 총독정도의 권한을 가진 것이다. 이토록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를 신임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지역을 잘 관리해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혜롭게 다스리게 한 것이다.

이처럼 에스라가 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에스라가 정직히 행한 것이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충성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상전에게 신임을 얻는 행위도 매우 중요하다. 상전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스라는 편법을 사용하거나 간계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인기를 얻기 위해 모략을 꾸민 것이 아니다. 에스라는 그의 순수성과 진실성과, 성실성이 인정받은 것이다. 에스라가 섬기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줄 알게 했다는 것이다.

교훈

우리는 우리의 상관에게 인정받는 사람인가? 아니면 애물단지인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작은 구역 안에도 구역장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구역장의 기도제목이 되는 사람이 있다.

각 부서에도 보면 무슨 일을 맞기면 아무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근심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무엇을 하던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따라주고 지지해주고 격려하며 힘을 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상관에게 인정받는 사람인가? 아니면 애물단지인가? 우리의 인정이 우리의 순수성과, 진실성과 성실성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아첨에서 나오는 것인가? 우리는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도움 받는 사람이었다.

위에서 우리는 에스라가 아닥사스다왕의 인정을 받았다고 했는데 실제로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에스라는 사람에게 인정 받기를 원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에스라의 모습이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6절에 의하면 에스라가 왕에게 구하는 것을 다 받게 된 이유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스라가 왕의 조서를 듣고 너무나 감사해서 여호와를 찬양한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꾸밀 마음을 주셨다. 여호와께서 왕과 그의 보좌관들과 궨세있는 모든 방백들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시고 하나님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었다. 그래서 올라오게 되었다고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준비된 에스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교훈

사실 에스라가 형통하게 된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나 들어서 사용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겸비하는 인생을 들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인생을 들어서 사용하신다. 에스라는 그랬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기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겸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엇인가? 자신을 겸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의 인정과 도움을 받는 백성이 되어야 하겠다.

그렇다. 에스라는 이렇게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연구하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했고, 가르치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왕에게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에스라가 한 일이 무엇인가?

믿음으로 백성을 이끌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에스라는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였다.
2번째 대대적인 귀환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햇던 인물이 에스라였다. 에스라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에스라가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짧은 여정이 아니었다. 앞에서도 살펴 보았지만 이 여행길은 4개월이 걸리는 대 장정이었다. 날짜로 보자면 120일이 걸리는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많은 위험의 요소들이 있다. 당시에 포로민들이 가지고 가는 물건은 값비싼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많은 은금과 짐승들이며, 기구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금방 퍼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큰 제국을 가로질러 오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위험요소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에스라는 이 일을 위해 철저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에스라고 백성들을 이끌고 바벨론을 출발하여(아닥사스다왕 7년 정월 초하루) 아하와 강가에 머물렀을 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어린아이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가는데 평탄한 길을 달라고 한 것이다. 사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큰 소리를 쳤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선을 베푸시고 배반하는 자들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왕에게 자기 민족을 지킬 수 있도록 보병이나 마병을 붙여 달라고 구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에스라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였다. 그러기에 왕에게 요청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한 것이다. 모든 백성이 금식하며 스스로 겸비하게 한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한다.

에스라 8:31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이처럼 에스라는 철저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갔던 지도자였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는 여호와께 감사의 번제를 드렸다.

교훈

지도자는 믿음으로 그 공동체를 이끌어야 한다. 지도자가 상황이나 형편만을 탓하고 있으면 안된다. 안 될 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일들만 늘어놓게 되면 누가 그 지도자를 따르겠나! 그러므로 지도자는 더욱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자기 혼자 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겸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백성을 참으로 사랑하고 중보했다.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한 에스라는 감사의 번제를 드렸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문제는 항상 발생하고 그 과제를 풀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나와서 이스라엘의 실상을 이야기 하는데 이 땅의 백성들과 제사장, 고관, 방백들이 이 땅의 딸들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서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일에 방백들과 고관들이 더욱 앞장서서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에스라는 너무나 황망했다.

에스라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주저 앉아 버렸다. 자신이 그동안 바사의 왕에서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릎쓰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변했던 일 자신의 하나님을 자랑했던 일, 그리고 120일 동안 위험을 무릎쓰고 백성들을 이끌고 귀국한 일 등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수많은 예물과 은금과 그릇들과 짐승들을 준비해 오고 세금 면제를 받았는데 실상 이 곳 백성들은 가증한 일을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에스라는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고, 부끄럽고 해서 너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에스라는 초췌한 모습으로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손을 들고 기도했다.

에스라 9:6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고, 황망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며 계속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때로부터 하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수많은 전쟁에서 건지시고 수많은 환난에서 건지셨건만 이 민족이 범죄하여 하나님이 수많은 징계를 하셨고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므로 결국 종살이를 하게 하셨는데 아주 버리지 않고 은혜를 베푸셔서 소생하게 하시고 성전을 세우며 이렇게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를 위해 울타리를 쳐 주셨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는데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으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나이다. 하며 흐느껴 울며 기도하자.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백성들이 크게 통곡하며 회개했다.

그러자 백성 중에 스가냐라 하는 자가 말하기를 이제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은 우리가 주의 교훈을 따르며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당신이 주장 하소서 우리가 힘써 돕고 행하겠습니다.

그래서 대대적인 정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조사단을 선별하여 세우고 이방여인을 취한 자들을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성결하게 했다.

교훈

그렇다. 우리는 삶이 한 가지 일을 해결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생 문제를 풀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한가지 일을 성공적으로 끝냈으면 또 다른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라의 대처 능력이 이떠한가?

에스라는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본인이 없드린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중보하며 회개한 것이다. 이러한 에스라의 모습을 보고 모든 백성들이 겸비할 것을 다짐한 것이다. 자신들을 스스로 성결이 하기롤 결단한 것이다. 그렇다. 지도자는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자기 권한을 사용하기 보다는 정말 안타까워하고 마음아파하는 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지도자의 영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영성이 있어야 하겠다.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영성을 기르자. 정말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의 죄 때문에 아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자 그럴 때 공동체가 회복되고 치유 될 것이다.

결론

에스라는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에스라는 늘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기 위해서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에스라의 이러한 모습은 왕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믿음으로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함께 하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백성들의 잘못을 보고 자신의 권한을 가지고 징계할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 겸비하여 성결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뜨겁게 중보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참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1. 말씀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자기 개발, 자기 정화)

2. 하나님과 상사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순수, 정직, 성실)

3. 믿음과 사랑과 참 중보의 지도자가 되자(참 마음이 전달됨 - 하나님과 백성에게)

에스라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build the temple of the LORD.


에스라 1:1-3 : 역대하 36:22-23

역대기 / 성전 중심, 하나님 중심, 다윗 중심

에스라 / 70년 포로 생활 후 포로의 삶에 익숙한 삶
신앙적으로 온전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을 찾으라!

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페르시아) : 이란
고레스 : 캄비세스 1세(BC 600-539) 아들. 키루스 2세
예레미야 예언 : 70년 포로생활(25:11) 후 귀환(29:10, 대하 36:22)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 여호와, 말씀, 감동시킨다

에스라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늘의 신 : 하늘(빛), 땅(어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 여호와, 명하사, 건축하라 

에스라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바사 왕의 통치 방법 : 돌아가서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나님은 참신 / 하늘의 신(빛의 신)
                          땅의 신(어둠의 신)

에스라 1: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2의 출애급 사건(출애굽기 12:35-36)


로마서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오늘의 기도

의의 병기로 사용되게 하옵소서!

(자녀들, 교회, 나라와 민족)



* 세스바살과 스룹바벨 

느혜미야 12장 1절

본문에는 제1차 포로 귀환 당시 지도자로서 제사장 예수아와 나란히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 이 스룹바벨이 스 1:8, 11에 언급된 유다 목백 세스바살과 동일 인물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제기 된다. 이에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의 관계에 대한 학자들 간의 상반된 두 견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동일 인물이라는 견해

스 1:8,11을 보면 제1차 포로귀환 당시 바사왕 고레스로부터 성전 기명(器皿)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온 목백(총독) 이 세스바살로 나온다. 그런데 본문과 스 2:2를 보면 제1차 포로 귀환자의 명단 속에는 세스바살은 없고 스룹바벨만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바사 왕이 동시에 두 사람을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은 동일 인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Kel. Kidner. Graetz )

뿐만 아니라 스 5:16을 보면 세스바살이 전지대를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반해, 전지대 공사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인 스 3:8-13에는 세스바살이 아닌 스알디엘의 아들인 스룹바벨로 나타난다. 이런 사실에서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은 동일 인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두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보는 학자들의 도다른 주장 중의 하나는 ‘세스바살’을 스룹바벨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즉 ‘세스바살’은 ‘태양의 신이여, 아들을 지키소서’ 라는 뜻의 바벨론식의 이름으로서, 바벨론이 바사 궁정에서 지낼 때 사용한 이름이라는 것이다.(Kwil).

 

 

2.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견해

세스바살은 바사 왕 고레스에게서 성전 기명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옮겨온 일과 관련해서만 나타나고 성전 재건 사업에 관한 기록들 속에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룹바벨과 다른 인물이라는 견해이다. 즉 세스바살은 단지 성전 지대 공사와 관련해서 단 한 번 언급되는데(스 5:16) 이것은 강 서편(바벨론, 메소포타미아 서편 지역) 총독 닷드내가 바사 왕에게 보낸 보고서에 언급된 것이다. 그러므로 세스바살이 전지대 공사에 직접 관여 했다기 보다는 단지 포로 귀환자들의 대표로서 언급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또 만일 세스바살을 스룹바벨의 숙부로 본다면 공식적인 서류에 그를 대표자로 기록 할 수도 있는 것이다.(Williamson. Meyer. Graetz).

또한 스룹바벨이란 이름이 에스라, 학개, 스가랴서에 나오는데 세스바살과 동일 인물임을 암시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세스바살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서도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가. 스룹바벨 이전의 유다 총독

B.C.538년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 반포 이후 1차로 기명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목백(총독) 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스룹바벨의 귀환은 B.C.537년이 아닌 그 이후 시대가 될 것이고,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성전 재건 사업을 개시한 시기인 B.C.520년 바사 왕 다리오 1세(B.C.522-485년) 통치시기에 귀환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또 한 차례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는 셈이 되는데 이에 관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 뿐만 아니라 전지대 공사 기록에서 이미 스룹바벨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스룹바벨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귀환 했음이 분명하다.

나. 스룹바벨의 숙부(叔父)

세스바살을 스룹바벨의 아버지 스알디엘의 동생 세낫살로 보는 견해이다.(대상 3:18-19). 즉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숙부로서, 제 1차 포로 귀환시 예루살렘으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유다 목백(총독) 이라는 견해이다. 이렇게 볼 때 문제점은 어떻게 동시에 총독이 둘 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 세스바살은 고령으로 원로 총독이었고, 스룹바벨이 실제로 총독의 업무를 관장했다고 본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언급하고 있는 곳이 성경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과 성전재건 공사 중단 이후 그 공사를 다시 개시할 때에도 세스바살이 여전히 통독으로 언급된 사실(스 5:16)에서 그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B.C.520년 성벽 재건 공사 중단 이후 다시 개시하게 된 시기부터는 스룹바벨이 정식 총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3. 결론

위의 두 견해 중에서 어느 한 견해가 옳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대상 3:18-19절의 스룹바벨의 족보와 제1차 포로귀환자들의 명단 등에서 볼 때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서로 다른 인물이라고 보는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

그리고 그 견해 중에서도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숙부로서 원로 총독이었으며, 실제로 총독의 업무를 관장한 것은 스룹바벨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한편 ‘세스바살’과 ‘스룹바벨’ (바벨론의 씨 라는 뜻임) 이 다 같이 바벨론식 이름이라는 점에서 포로 귀환 당시 히브리인들이 바벨론의 풍속에 얼마나 젖어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