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하박국 1: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납고 성급한 백성(6절) ♦ 성구 :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性急)한 백성(百姓)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所有) 아닌 거(居)할 곳들을 점령(占領)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하박국”이란 이름은 “포옹하는 자” 또는 “포옹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기원전 612년 앗수르 제국은 바벨론과 메대바사 연합군에 의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대략 500년 동안 왕성하고 견고하던 앗수르 제국이 무너진 후 선지자 하박국은 유다 왕국을 침략하는 바벨론에 대해서 예언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의 16대 왕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하나님
유다 왕국은 바벨론으로부터 여러 차례(1차, 2차, 3차) 침략을 받고 결국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은 세 장으로 구성 되었으며 선지자의 질문과 하나님의 대답이 2번 반복되었으며 선지자가 찬양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1장은 선지자의 첫 번째 질문과 하나님의 첫 번째 대답 그리고 선지자의 2번째 질문에 대해 증거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첫 번째 질문(1:1∼4)
하나님의 첫 번째 대답(1:5∼11)
하박국 선지자의 두 번째 질문(1:12∼17)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유다 나라는 극심한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유다의 16번째 요시야 왕은 나라를 말씀으로 세우려고 애를 썼던 왕이었습니다.
마침 앗수르 제국과 애급 사이에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는데 요시야는 앗수르 제국 편에 서서 애급 왕 바로느고의 진군을 막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했습니다. 그 이후 유다는 애급의 세력에 휘말려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애급 왕은 유다의 왕의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었고 애급이 원하는 사람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와 같은 혼란 속에서 유다 백성들은 힘이 최고라고 생각하여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을 착취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짓눌렀습니다. 온 나라가 힘의 논리에 빠져 있었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짓누르고 학대할 때 하나님은 사납고 성급한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유다 백성들을 깨우치려고 하셨습니다.
깨달아야 할 때에 깨닫지 못하면 재앙과 징계를 받아야만 바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통과한 후에 깨닫는 어리석음 보다는 재앙이 임하기 전에 먼저 깨닫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생각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라고 합니다.
오늘 받아야 할 은혜를 내일로 미루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오늘 받아야 할 은혜를 반드시 오늘 회복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찬양 /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묵상 주제 / 사납고 성급한 백성 하박국 1: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아멘
하박국 선지자를 이스라엘의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유다보다 더 악한 나라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를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문 때문에 선지자는 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오히려 하나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왜 우상을 숭배하는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를 공격하게 하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선지자 하박국의 결론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고백합니다.
당시 유다 나라는 16대 선한 왕 요시아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율법책을 찾아내어 백성들에게 잊혀졌던 말씀을 읽어주며 모든 백성들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우렸던 신앙의 전성기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백성들은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를 17대 왕을 추대했습니다. 그런데 애급 왕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싫어하여 첫째 아들 "여호야김"을 18대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유다 나라의 주권이 애급 왕에 의해서 결정되는 안타까운 시대이었습니다. 18대 왕 "여호야 김"은 애급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백성들은 앗수를 무너트린 신흥강국 바벨론을 의지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 이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예언합니다. 왕은 애급을 의지하려 하고, 백성들과 선지자 예레미야는 오히려 바벨론을 의지하는 것이 좋은 길이라고 합니다. 사치와 향락을 좋아하던 여호야 김 왕은 애급에게 조공을 바치려고 많은 세금을 거둬드립니다. 점점 민심이 흉흉한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박국 선지자는 왜 하나님은 바벨론을 막대기로 사용하여 유다를 징계하시느냐 하며 끈질기게 질문합니다.
하박국 1:1-2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강포란 히브리어는 "하마스" 라고 합니다. '하마스'는 "자기 동료를 해칠정도로 아주 도덕적으로 아주 타락한 상태를 말합니다(창세기 6:11).
선지자 하박국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간구하고 부르짖습니다. 언제까지 이 백성들을 이렇게 버려두시렵니까?
하박국 1:3-4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유다의 18대 왕 여호야 김과 백성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삶에 도취되어 버렸습니다. 선지자 하박국만 부르짖고 항변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갈대아 사람 사납고 성급한 사람들을 일으켜 유다를 징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 1: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바벨론을 일으켜 유다를 징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도 이미 이와 같은 일을 예언했습니다.
이제 우리 역사 현장으로 눈을 돌려봅시다. 한국 사회는 지금 어떻습니까?
실험실에서 개구리를 실험용으로 사용할 때 처음부터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천천히 물의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는 그 안에서 죽어간다고 합니다. 서서히 잘못된 사상에 붙잡힌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운동으로 거대한 조직이 형성되었습니다.
민주노총의 조합원이 100만명이라고 합니다. 조합원은 의무적으로 월급에서 매월 5만원을 조합원 회비로 선납한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조합원들의 봉급을 지불할 때 아예 조합비를 떼고 지출하면 조합비를 노조 사무실로 보낸다고 합니다. 여러분 민주노총 조합원 회비가 매월 500억이란 예산입니다. 일년에 1년 6천억이란 조합비를 갖고 운영합니다. 예산을 확보했기 때문에 돈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계획합니다. 8월 15일 민주노총에서 한미동맹을 반대하는 집회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한미연합훈련을 한미전쟁연습이라고 하여 반대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한미전쟁연습을 즉각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제 1강 하박국 1: 1-11 율법이 해이해진 세상
성경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성경이 무엇이어요 하박국입니다 왜요 하박국이 안아주다라는 표현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박국에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이 좋습니다
우리가 추수 감사 주일에 본문으로 많이 택해지는 구절이지요
하박국 3장 17-18절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포옹하다 안아주다 꺼안는 자 그런 뜻도 있지만 시름하다 그런 뜻도 있지요
하박국 선지자가 대게 살았던 것은 지난주까지 공부했던 나훔서의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앗시리아라는 나라인데 앗시리아라가 비시 612년에 멸망당하거든요
그리고 등장한 새로운 제국이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인데 그 무력에 활동한
선지자로 보여져요 어떻던 제국의 틈 바구니에 있었던 사람들 힘 겨운 상황에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보면 위대한 문화적 유산이라는 게
아주 평안한 시절에 만들어 지지 않아요
그리스에도 그리스하면 떠 오르는 유적들이 어떤 것들이 있지요 파르테논
신전이든지 유명하지요 비시 479년 그것이 만들어진 때가 아주 평화로운 시기가 아닙니다 도시 국가들의 전쟁이 심할 띠이고 또
레르시아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그 때 아름다운 유산들이 만들어 지는데 그러니까 유형적인 유산도 만들어 지지만 그리스에서는 무형
유산들이 만들어 지거든요
그리스의 비극 작가들이 그 때 다 등장해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이런 위대핝 비극 작가들이 등장하는 데 그게 다 어려운 시절입니다 곤고한 시절입니다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가장 난감할 때 가장 위대한 문화를 꽃 피어낸다는 대 있습니다 인간성의 위대라고 볼 수 있어요
앗시리아 나라에 괴롭힘을 당하던 나라들이 앗시리아가 망하니까 평안해지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제국이 등장해 가지고 괴롭히는 것이어요 계속 그런 일들이 그러면 약소 민족들은 다 사그라져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국들은 사라졌지만 약소민족들은 살아 남은 민족들이 있어요 특히 어떤 나라들이냐하면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그래서 함석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고난 받는 종의 노래가 있지요
이사야 52:13-53:12 고난 받는 종의 노래가 있는데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민족 가장 위대한 정신의 높이를 보여 주는 것 성경은 그런 위대함을 보여 주어요 예언서가 그렇거든요 우리가
예언서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점점 그것을 배워가면 좋겠어요
하박국 1장 1절부터 11절까지 공부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가 없지요 언제나 갈등이 있는 세상입니다
중국의 작가인 라오서라고 하는 분이 로토시앙스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하나의 에피쇼드가 등장합니다 어떤 에피쇼드냐 이런 것이지요 하늘은 선인과 악인을 가르지 않고 해와 비를 골고루 내려 주지요 성경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작가적 상상력을 가지고 작가가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공정치 않기 때문에 해와 비는 사람들의 삶을 굴곡지게 만든다는 것이어요
어떤 이야기냐 하면 똑 같은 조건이라도 시인 묵객들은 이슬 빛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지만 하루 벌어 먹는 사람은 하루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 주지요 특별히 예언자라는 사람들은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52 : 13-53: 11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우울해지요
특별히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보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보느냐 하면 현실을 꽤 뚫어 보는 사람들이지요 현실을 쾌 뚫어 보면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백산 그림이었어요
오랫동안 다니면서 산을 그려요 굉장히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무엇을
발견했느냐 초기에 산에 갔을 때 이 분은 춘하추동에 산 빛을 그려 냅니다 봄에는 연두입들이 솟아나오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가을이
되면 물들고 겨울이 되면 쓸쓸하게 되는 춘하추동을 그려요
어떤 때 올라갔느냐에 따라 다르게 그려요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후기로 갈수록 춘하추동을 안 그려요 그리고 산들에서 나무도 다 제거하고 산 속에 바위에 굴국 같은 것들을 들어내요
이전에도 무엇을 보았느냐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이후로 가면서 자꾸 산을 보다 보니까 무엇이 보이기 시작했느냐 하면 산을 이루고 있는 골격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어요 이것이
발전이다고 볼 수 있겠지요 사람은 보는게 달라지는 것이지요
마그로스코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마그로스코라는 그림을 보면 까만
판넬이어요 이게 무슨 그림이야 생각이 드는 것이어요 그런데 그 판넬 앞에 사람들이 앉아서 명상을 해요 왜 그럴까요 눈앞에 아름다운
형태가 있으면 우리가 형태에 집중을 해요
아무런 형태가 없으면 무엇을 보는 것이지 유심히 보고 있다 보면 내가
보여요 내 마음이 보여요 마크로스의 그림은 바로 그런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지요 그렇게 유심히 보다 보면 검은 색으로만 칠해
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어요 붉은 색도 있고 푸른 색도 나타나고 그러면서 어둠 속에서 밝음이 어떻게 베어나온지를 보여 주어요
이 그림이 위대한 작품이 되는데 예언자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옳다 그르다 보기 보다는 그들을 그런 상황 속에 몰아간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보는 자여요 예언자는 어떤 자라고 하나님의 분노를 느끼는 자이어요
불의한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불의한 분노를 느끼는 자들이어요 하박국은 분노가 많아요 이 세상이 왜 이 지경인 것이야 세상이 왜 이 모양이야 그런 질문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 에게 막 질문을 해요
하나님 이러시면 안 되지 않아요 세상이 왜 이래요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하나님에 대한 하박국의 질문과 하박국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재미 있는 구성인데요 그 응답은 이 불의한 현실을 하나님은 지속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불의는 끝장이 나기 마련이고 하나님이 그런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나니까 하박국이 하나님 안에서 자기 마음속에 질서가 생겨나게
되자 하박국은 기도를 하게 되지요 하나님 이런 세상을 이루어 주세요 하박국의 구성은 하나님을 향한 질문 질문에 대한 응답 하박국의
구원에 대한 간구와 기도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게 하박국의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절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하고 말합니다
이 경고라는 것은 대게 이방 나라에 대한 경고에 사용되는 단어이요 앗사라고 하는 단어가 떼때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을 향한 메시지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때는 내부적 문제로 본 것인데요
묵시로 받은 경고라 묵시라는 것은 무엇이어요 모든 사람에게 공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 보여 주실 사람에게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렇게 경고를 들었다
어떤 경고인가
2절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이니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사뭇 시비조입니다 하나님 무엇하시는 것이어요 이런 내가 부르짖어도 주님께서 듣지 아니하십니다
사실 성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시거든요 히브리 사람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려서 신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들으셨거든요 또 하갈이 사라에게 쫓겨나서 광야에서 울고 있을 때 하갈을 찾아 오시거든요
그 눈물 울음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주특기는 듣는 것이어요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게 들음이 하나님의 특기인데 하박국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너무 답답한데 하나님이 안 들은 것 처럼 보여요 부르짖어도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 하시니이가 고통과 재앙의 상황속에서 지금 외치는 것이어요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듣지 아니하시니이다 강포라고 번역된 단어
하마스는 이웃에게 행하는 이웃에게 폭력을 행하는 일이 일상이 괴고 있는 세상이지요 마치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처럼 아합과
이세벨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처럼 또 다윗도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 모든 이 모든 것들이 하마스
강포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당에서 자행되고 있는 하마스들이 제법 많이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말 가운데 외국에서 우리 말 발음으로 쓰는 단어들이 몇 개 있거든요 영어 단어 통성기도 이런 것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사실은 한국인들이 영향을 미쳐서 미국에 있는 기독교인들도 어떤 모임에서는 통성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소리내서 통성기도 통성 프레야 그 다음에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면 그
다음에 부끄러운 단어들인데 재벌 그 다음에 갑질 그러니까 다른 나라 말로 어떻게 표현이 안 되는 한국적 현상이어요 이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유난히 우리에게 심한 것 왜냐하면 우리가 약자들에 대한 존중이 너무 없어졌어 경제 발전하는 것을
지향하기에 인간성이 낮아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존중하는 법들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힘이 있고
돈이 있으면 함부로 대하는 일상이 된 백화점에서 누구 무픞을 꿇는다는둥 이런 소리 듣지 않아요 화가 나지 않아요 왜 거절하지
못하나 이렇게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게 생존이 걸려 있기에 저항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요
어떤 경우 보면 교장 선생님이 교사에세 손바닥 내 놓으라고 하고
때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학생들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제일 중요한 게 존엄이지 않아요 손 될 때 떨치고 나서 이것이 아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데 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앞에 한 없이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 고통 스러운데 하마스가 너무 많은데 이런
강포함이 우리가 이웃에게 강포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폭력이지만 어떤 폭력이냐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노골적인 반역입니디
왜 하나님은 어떻게 인간을 지으셨느냐 하면 어떻게 하와를 만들었는가 하면 아담 잠들게 하고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어요
창세기 2장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인간론의 핵심이라는 것은 갈비뼈를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는 서로에게 속한 존재라는 것이어요 너 없이는 내가 없다 이게 성서가 우리에게 보여준 인간론의 핵심이어요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너도 행복해 져야돼 이것이 창조 질서여요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질서를 위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강포가 넘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부르짖고 있는데 여기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의 투덜거림이 계속됩니다
3절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죄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반역행위입니다 패역은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악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짓는 죄와 우리 이웃들에게 짓는 죄가 넘쳐요 이게 하박국의 눈에 보여요
예언자이기 때문에 이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는 것
처럼 보여요 현실이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이것을 보지 않았다고 하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을 보지
예언자는 구조적인 문제를 본자의 고독함이 있어요
겁탈과 강포가 넘친다고 이야기 하는데 겁탈이라는 것이 성적인 문제만
아이고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누군가를 무력화 시키는 것들이 겁탈이어요 강포라고 하는 것이 폭력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요
힘이 정의로 여겨지고 있는 세상이다는 말이지요
프라톤의 국가 정체라는 책에서 소크라 테스하고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정의란 강자의 편익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게 외곡된 세상의 모습이지요 그러니까 강자가 자기 좋을 대로 하는 게
정의처럼 인식되는 것이어요 그것은 하나민의 정의가 아니거든요
우리의 현실은 강자들이 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오히려 구조화 되어 있단 말이지요 이런 정의와 공의는 이것이 세상이다고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두가지의 질서 위에 세우셨는데 타원형에는 초점이 두 개가 있지요
원은 하나이지만 중심을 두 개인데 하나는 정의이고 하나는 공의인데 겁탈과 강포라고 하는 것은 정확히 역상이어요 이것을 뒤집은 것이어요 정의와 공의를 뒤집은 게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래 세운 일들이 이렇게 벌어지고 있어요
하박국이 보기에는 지금 하나님이 그런 세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회 분위가 변론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론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게 일상에서 이런 다툼들이 벌어지는데 법이라고 하는 게 법이라고 하는 게 이런 세상 속에서는 법이라고 하는 게 올바로 집행이 되어야 하지요
이 법이라는 글자를 어떤 짐승이 있었다는 데 그 짐승이 죄 지은
사람을 물로 몰아 넣을 때 뿔로 박아 가지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물이 흐르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법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데 어떻게 보면 그 짐승이 죄 지은 사람을 뿔로 받아서 물로 보낸것이 맞은 것 같은데 법이라고 하는 게 옳게 집행이 되어야
하는데 법도 늘 강자들이 법을 독점을 하고 이렇게 되었을 때 겁탈과 강포가 넘치는 세상에서 사회적인 약자들이 속절 없이 유린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다고요
그것이 4절이 요약을 했어요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외워 앃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 짐이니이다
율법이 해이해 졌다는 이야기는 무엇이지요 하나님이 당신의 삶의 원리로
주셨던 그 하나님의 법이 이제 작동되지 않게 된다 힘이 없어졌어 율법이 율법이라고 하는 게 율법의 핵심을 출애굽기에 등장하고
있는 율법의 핵심을 어떤 분이 한 마디로 요약을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관심 여기에서 가난하다는
말은 물질적인 가난함만 말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 사람들 또 이 때에 가난함이란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자든지
나그네가 되었기에 소외 계층을 이야기 하는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이어요
그래서 성경은 율법이라고 하는게 항상 힘 있는 사람들이 힘 없는
사람들을 배려해 주고 어떻게 가야하는 지를 일깨워 주고 있어요 이것을 지킬 때 생명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겁탈과 강포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율법이 해이해 졌다 더 작동되지 않는다
그 결과 정의가 시행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는 악인이 의인을 외워싸고 있고 의인들이 그래서 기를 펴지 못한다 이런 상황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이 위헌 심사를 받았나 그렇게 알고 있는데 장발장 법이라는 것 들어보셨나요 장발장 법 장발장이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빵을 훔쳤다가 감옥 갔다 나온 사람이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 죄인데 내가 무엇인가 누군가의 것을
훔치었어 먹든지 그랬어요 동일한 범죄를 또 저질렀을 때는 가중처벌하는 것이 장발장 법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중 처벌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늘 옳은 지는 의문의 소지가 있습니다
사실 2011년에 이탈리아에서 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로만
오스트리아 호프라는 사람이 슈퍼 마켓에서 치즈하고 쇼세지를 훔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훔친 치즈와 소시지는 4.07 유로
정도 요즈음 돈으로 하면 7천원 정도 이 정도를 훔쳤어요
그래서 체포당해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이 무려 5년 동안이나 갔어요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 선고를 합니다 이 사람은 훔친 것은 분명한데 왜냐 하면 그의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그가 그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던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서 판결을 했어요
대법원이 한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 입니다 노숙자가 영양 섭취라는
필수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소량의 음식을 품친 것은 범죄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데 먹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있었기에 피고의
행위에는 불가피성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정신이 부합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하박국의 시대는 이런 정신이 전혀 시행되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악인이 의인을 외워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로 인해 하박국은 분노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세상이 살만한 것은 무엇이냐 이렇게 분노한
사람들이 있을 때입니다 이런 분노 세상이 이렇게 가면 안 되지 않아 대 부분의 우리는 어떻게 하고 살지요 세상이 뭐 그러러니 하고
그것을 제일 좋아하는 것이 누구일까요? 사탄이지요 그렇지요
그래서 중요한 게 불의한 현실에 눈을 감으면 안 돼 불의에 대해서
종교적 아르바이를 제공해서도 안 되어요 우리가 교회에서 잃어 버린 것이 무엇이냐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것을 잃어 버렸다
우리끼리 이렇게 예수 잘 믿고 복 받고 이렇게 사는 데 성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함께 살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함께
살라고 지어준 이웃들이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든지 불의의 희생자가 되고 있을 때 교회의 존재 이유는 분노하는 데 있어요
이헣게 하면 안 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오늘의 교회가 잃어 버린
것이 있다면 그런 분노 그 분노에는 한 마디를 덧 붙일 수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 그러니까 누구를 미워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신이 왜곡되고 있는 세상을 보고 분노하는 것이 거룩한 분노인데 이것을 잃어 버렸기에 개신교는 힘을 잃어 버리고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 거리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정화하지 못하는 집단 처럼 보이고 있다는 말이어요 이게 속상한 것이지요
5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박국이 이렇게 질문을 했지 않아요 하나님은 언제까지 참으시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너희 생각에 내가 행할 것인데 너희가 믿을 수 없는 일일 것이야 6절부터 이야기 합니다
6절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한 백성을 일으켜 세울 것이어요 성경에서 보라라고 하는 단어는 잘 보세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어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반드시 일어날 일을 이야기 할 때 그 급박함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쓰는 단어이어요
보라 이 일이 급박하게 일어날 것이어요 그래서 결국 한 백성이 일어날
터인데 그들은 사납고 성급해 어떤 일입니까? 지체하지 않고 성급해 그들은 자기 소유가 아닌 갈대아 사람들 넓은 곳으로 다녀 무엇
정말 주저하지 않고 마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 처럼 그들의 기세가 그렇게 무섭게 나타날 것이어요
7절 그들은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에게서 나오며
어떤 이야기입니까? 남의 눈치를 보거나 조언을 듣거나 그것이 아니어요 스스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야 그런데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일으킨다는 것이어요
왜냐하면 불의한 세상을 징계하기 위해서 그런 이를 일으키신다 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다 파괴할 것 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질서 아래 있는 것이어요
9절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 데 앞으로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 잡으러 나아오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요
강포를 행하러 온다는 말은 강포한 세상을 징취하기 위해서 온다 말할 수
있어요 하박국이 보고 있는 그 사회는 겁탈과 강포가 넘치고 있는 세상이어요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한 민족을 일으켜
세웠고 그들이 와서 강포를 징취하기 위해 강포를 들고 온 것이야
무서운 현실이지요 그 기세가 당당합니다 그래서 왕들을 멸시합니다 방백을 조소합니다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샇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성도 무너지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바벨론의 등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달라요
원하지 않았는데 바벨론이 와서 우리 당하게 되었어 이것과 우리가 자체내에 가지고 있는 불의함 이것을 해결하여야 하는데 하나님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보고 있기 때문에
11절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이것은 애매한 구절이기는 합니다 두 가지의 번역이 있는데요
먼저 가돌릭 성경은 그러나 제 힘을 하나님처럼 여겨 죄를 지은 자들 그들은 바람처럼 지나가 사라지리라 라고 이야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선택박은 바벨로니아가 결국은 지나치게 자기를 믿었기 때문에 결국은 사라질 것이다
새번역은 그러나 제 힘이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이 죄인들도 마침네 바람처럼 사라져서 없어질 것이다
여기 불의가 있어 불의한 세상이야 이것을 징계하기 위해서 바벨론을 세우셨어요 여기를 쳐 이제 심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바벨론은 자기들의 한계가 무엇인지 몰랐어 스스로를 신으로 여겨요 힘을 신으로 숭상하는 자들이어요
그들의 결국이 어떻게 된다고요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들이
가장 강력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게 예언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현실이 있고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어떻게 하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때가 되면 스러질 수 밖에 없어요 해가 떠오르면 스러지는
이슬처럼 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하박국서가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떤 경우이든 힘을 정의로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선택 받은 자들이 지나치게 자고할 경우에 그들
또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하는 비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꽤 뚫어 보는 사람인데 하박국은 그렇게 깨 둟어 보면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정 반대로 역상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겠지요 우리가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의를 이것을 추구하지 않는 신앙 생활이라는 게 공허한 생활이어요 나의 욕망 여러분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인간은 욕망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인간 속에는 결핍이 있기에 욕망이 있는 것이어요 무엇인가 결핍이라고 하는 것은 채워 지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욕망의 특생이라는 게 만족이 없어요 이 결핍 때문에 욕망이 발생하는 데 여기에는 만족이 없어요 찰 만자가 없어요
차지를 않아 그러니까 영원한 결핍 속에 살게 되는 것이어요 인간이
결핍 되어 있기 때문 채워야 하니까 욕망은 늘 배타적이야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눌 수 없어요 욕망은 배타적이라는 이야기는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저 사람이 없어져야 돼 그래서 폭력적이 되어요 갈등이 생겨나고 정의와 공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나의 채워
지지 않은 결핍이 있으냐 이 결핍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결핍이 더 큰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나는 그만 해도 되어요 저 사람에게
주세요 정의와 공의여요
이 땅에 기독교인들이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욕망을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오히려 욕망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고 섬기고 나누는 삶이 언제나 유쾌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신앙의 보람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데 있다 새로운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 교회가 새로워 져야 되는 것이 그 지점을 향해 나갈 때 새로워 질것이다 봅니다.
제 2강 하박국 1:12-2: 3 악인이 득세한 세상
성경을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는 이런 것을 배우기도 하지요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성경은 상당히 오래전에 만들어 졌어요 과거의 것이지만 오늘의 우리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에에 우리가 보지요
스웨덴의 언어학자인 헬레나 호지라는 분이 있는데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래라는 것이 가까운 미래도 아니고 오래된 미래라고 말합니다 사실 앞으로 미래의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되는지의 지혜를
과거로부터 배워야한다 그 제목속에 담겨있는 뜻인가 싶어요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서 라다크라는 인도의 북부에 있는 마을을 찾아
갑니다 그 곳에서 돈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의 아름다운 삶을 발견을 해요 평화로운 곳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분쟁이 많지
안항요 안식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라다크 마을은 너무 평화로운 것이어요
평화로운 것이 무엇일까 보니까 돈이 지배를 안 해서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욕이 무엇인지 아니요 우리 어릴 때 친구들하고 싸우다가 욕 배트를 하거든요 그러다가 최종적인 싸움 결론이
무엇인가 하면 부모님 들먹이면 그 다음에는 욱박지르지요 그렇다가 거기 건드리면 안 되는 기억이 나는데
라라크 사람들에게 가장 큰 욕은 무엇이냐 하면 저 사람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와 잘 내는 사람이다 욕이어요 그것처럼 모욕적인 말이 없어요 그 말은 무엇이어요 그 마을 사람들이 화를 잘 안 내는 것이어요
화 내지 않는다는 것은 화 낼 일이 없기도 하겠지만 문화의 풍토가 그렇기도 하지요
우리는 화 낼 준비를 다하고 삽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화 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요 건드리기만 해봐 가만 안 잇을 것이야 이런 태도로 우리가 살아요
우리 사회가 그만큼 경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세상은 그런 세상은 아닙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가 있는 것이지요 잃어버린 세계로 우리가 돌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서 하나님의 눈으로 이웃들을 바라볼 수 잇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항상 내 누군가를 판단을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판단이 되는 순간 불쾌해요 대게의 경우가 우리는 습관적으로 누구를 판단하고 발설하기도 합니다 그것 때문에 평화가 깨지기도 하지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그렇게 판단하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하기에 판단하는 데 그런 이들이 사회적 불의에 대해서 굳게 입을 다물고 왜냐하면 그것은 나에게 손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타자의 약점은 감싸주되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불의에 대해서는 아니요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이어요 이것이 예언자들이 보여주는 세계이고 우리가 지난주부터 하박국을
시작했습니다마는 하박국의 뜻이 안아주다 포옹하다 씨름하다 이런 뜻인데 그 이름 뜻과는 달리 어떻게 보면 하박국은 무엇인가 불만을
제기합니다
하나님 세상은 이러지 안 되지 안되지 않아요 내 질문하겠습니다 대답해 주세요 그래요
하박국이 첫 번째 호소햇던 내용은 인간이 부르짖는데도 듣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패역한 세상 때문에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은것입니다
하박국에 첫 번째 호소했던 내용은 하나님이 인간이 부르짖는 대도 듣지 않은 것입니다
패역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을 심판하기 위하여 오실 것이고 그들을 심판의 도구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장 6절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켰나니
심판의 도구로 세움 받은 그 민족이 과도한 폭력에 치우심으로 그도 또한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고 이야기 했는데 하박국이 두 번째로 질문을 한 것이지요
하박국이 질문을 제기 할 때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인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2절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하신이요 주께서
만세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사망이 이르지 아니하더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하나님을 표현할 때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하신이요 하고 말합니다
거룩함은 구별되었다 그런 뜻이기도 하지요 구별되었어요 세상에 속된 것들과 구별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 다음에 만세전부터 계신 분
여기 계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분이 있다하고 이야기하지요 재미나는 게 영어에 비 동사가 있는데 비 동사는 번역을 한번 해 보세요 아이 엠 나는 있습니다 보어가 없으니까 있다는 뜻이지요 처음에는
아이 엠 어 보이 보어가 있다 나는 소년입니다 이다이지요 나는 존재합니다 하는 이야기이고 나는 이다이지요 존재 그 자체와 무엇 무엇이다라고 하는 서술어가 비 동사 속에 함께 들어있어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존재하는 동시에 다른 것들을 있게 하는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은 만세 전부터 계시는 분이다는 말은 하나남은 오래된
분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말도 있지만 그 말은 만세전부터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존재하도록 만드신 분이셔요
존재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오도록 하신
창조주라고 하기도 합니다 창조주 이 표현 속에 담겨 있는 의미가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
유래 되었다고 한다면 그 세계는 선한 세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지요 거룩하고 만세전부터 계셔서 세상에 모든 것들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또 유지하시는 분 아니십니까? 이 말쏙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런데 세상은 왜 이래요
하나님은 이런 분이지지 않아요 그런데 세상이 이 모양이지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우리가 사망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고 할 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않다고 하는 데 나의 있음이 유지될 것이아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데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데 그리고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1장에서 이야기 한 갈대아
인들입니다 심판의 도구로 선택받은 나라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기 위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심판하기 위해서
둘째는 경계하기 위해서 경계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세웠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박국은 그것을 인정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자로 세웠다는 사실을 그런데 심판자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냐 하면 없에 버리는 것이 아니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일을 위해 세워졌는데 여기가 심판자로 세웟다고 세웠다고 이야기 함으로 세움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스스로가 존재한 것이 아니라 갈대아 사람들의 일어남은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그들이 선 것이어요
그들이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세상을 심판한 것 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둘을 열결 짓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반석이시다 반석이시오 그렇게 말하지요
반석이시오 반석이신 주님 반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수렁 속에 빠져
들 때 반석위에 세워주시는 어떤 은총의 존재를 심판이라고 어두운 심연 고통이라고 하는 어두운 심연 그 때도 그 백성을 반석위에
심판과 경계에 고통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은 반석이 되어서 그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이 말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이렇게
복합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3절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심으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를 방관하시면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대도 잠잠하시나이까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지만 검사가 마치 재판관 앞에서
하나님을 피고로 삼아서 논고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눈이 맑은 분이셔서 오염되고
더러운 것을 볼 수 없는데 오늘 현실을 보십시오
그 다음에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는 분이신데 어찌하여 저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나이까 하나님이 지금 고발되고 있는
첫 번째 이유가 방관죄이어요
두 번째는 무엇이지요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대도 침묵하십니까?
방관과 침묵의 죄로 하나님이 기소되고 있습니다
이것 참 무서운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는 존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어요 우리가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영광 받으소서 우리가 이럴 때 내가 영광스럽네 하고 기뻐하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누구를 좋아하느냐 하면 대드는사람들을 좋아해요 세상이 이러지 않아요 그게 하나님의 합당합니다 주여 이 죄악된 우리는 주님만 바라봅니다 이것 주님만 기뻐하실 것 같아요 아니어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기에 그런 것이어요
예언자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대들 때 하나님은 고연 놈 그러지 않는다 그 말이어요
그렇지요 하나님 이러면 안 되지 않아요 이러면 안 되지 않아요 이러는 것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정말로 침묵으로 방조한 죄를 묻고 있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등장해 가지고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이 현실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세상이 아니지 않아요 하고 대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엘리비젤이라고 하는 작가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엘리비젤이라고 하는 사람이 유대 사람이어요 나치 치하의 수용소에 갇힌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용소 체험을 우리에게 수용소 체험을
우리게 전해준 책이 있는데 그 가운데 나이트 밤이라고 하는 책이 있어요
그 가운데 나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강제 노역장에 갔다가
수용소로 돌아오고 있는 데 저녁 무렵인데 사람들이 그 연병장에 그 수용소의 운동장에 다 서 있는 것입니다 그 때는 다 숙소로
들어가야 할 때인데 왠일인가 하고 가 보니까 그 운동장 한 복판에 교수대가 세 개가 세워져 있고 그리고 거기에 사람들이 교수형에
처해져 있는 것이어요
왜냐하면 탈출하다 잡혀온 사람들을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 교수형에 처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자를 벗어서 그 죽음 앞에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너무 가슴 아픈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교수대에 메달린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이야 어린 아이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으니까 어른들은 목이 부러져 가지고 빨리 숨이 끊어지는데이 애는 죽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소리가 들려와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 또 내면의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은 저 교수대에서 소년과 함께 계신다는 들려와 밤이라고 하는 책에
등장하고 잇는 일화인데 실화이지요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인 볼트만이라고 하는 분은 바로 그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책을 썼느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엘리비젤은 증인으로서 나치의 만행에 증인으로서 굉장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책을 썼습니다 내가 감동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그분은 놀랍게도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는 일을 했기 때문에 86년가 그래요
엘리비젤이 쓴 희곡 가운데 상골우드의 재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실 더 파이어 갓 하나님의 소송이 원 제목으로 우리말에 번역이 될 때는 상골우두의 재판이라고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유대인 학살의 생존자들고 카돌릭 신부와 떠돌이와 유랑객들이 상고르라고 하는 한 지방의 여관에 모입니다 상처 입은 그들은 연극을 해요 어떤 연극을 하느냐 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피고로 삼는 재판을 연극으로 하게 됩니다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기소된 것이어요 학대와 방관의 책임을 물어
하나님을 피고로 세우는 재판극을 벌입니다 어떤 이는 검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몰아 세우고 어떤 이는 하나님을 변호하고 어떤 이는
참상에 대한 증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묻는 질문이 이런 것이지요 하나님이 정말 선하시고 정의롭다고
한다면 모든 비극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유죄이다 이것이 검사의 논고입니다 그런데 증인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맹렬하게 변호합니다 하나님 이럴 수 밖에 없었다
희곡의 마지막 장면세 반전을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변호한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변호해요 놀라운 변전인 것이지요 엘리비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님은 당신을 변호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세상이 이렇게 되면 안 되지 않아요 이런 사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변호하기 위해서 하나님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말하는 것이 아니어요 욥의 세 친구들이 하나님 편에 서서 욥을 심판하지 않아요
그런데 결국 그들이 결국 칭찬 받지 못하지요 욥이 나도 너희를 용서해
주어야 나도 너희를 받을 것이야 하지 않아요 상고르드의 재판이라는 것이 그렇게 여기에서 하나님을 방관죄로 침묵하는 죄로 하나님
문제가 있습니다 지적을 하고 있는 하박국은 하나님은 불경하다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야 어떻게 보면 왜냐하면 세상이 그렇게 가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있기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박국서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말이 계속됩니다
14절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린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너무 가슴 아픈 것이야 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인데 지금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 의해서 바다의 물고기 같이 떼로 잡혀 가고 또 다스린자 얺는 벌레처럼 이리 저리
도망 다닐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 속에 왜 몰아 넣으신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사람들을 존엄한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여러분 제일 나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어법 가운데도 조심해야 될 것이 있는데요 동 일본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일어나 가지고 여러해 전에 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3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3만명이 죽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일본의 한 작가가 이야기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3만명이 죽은 3만개의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어떤 숫자속에 개인들을 가두어 놓게 되면 그냥
우리는 숫자로 환원된 그 숫자만 바라보지 그 희생당한 사람 하나 하나의 상황은 사라져요 사람은 저마다 존엄한 존재입니다
여기에 있는 한분 한분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들을 숫자로 환원 시켜서는
안된다 이 말이어요 악마가 하늘 일 가운데 집단화 해 가지고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을 그물에 다
집어넣고 이 속에서는 개별적 인격의 존엄 같은 것은 없는 것이어요
군사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는 일이 하박국에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제국의 군대 앞에서 존엄을 박탈당한 인간들의 쓰라림이 여기에 있는 데 이게 가슴 아픈 것이어요
주님이 허락하시는 세상이 이런 세상입니까? 이러면 안 되지 않아요
15절 낚시로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이런 표현을 하박국의 의도적으로 쓴 것은 바벨론의 창조 신화가 있거든요 거기에서 마르둑이라고 티아맛이라는 괴물을 잡을 때 그물을 사용하거든요
그러니까 바벨론의 창세 신화를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일부러 그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몽뚱 거려서 집단화 할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시골에서 라디오를 경청할 때 어떤 것을 들었느냐 하면 베트남 전쟁에 가서 군인들이 청용 부대인가 적을 어디에서 몇 명을 죽였습니다 이 소리를 들었어요 라디오에 계속 그 이야기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날마다 몇 명 죽였습니다 오아 우리가 그러니까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별적인 존재 하나 하나를 숫자로 환원시키는 일에 익숙해 졌어요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무엇이냐 한 개인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는 내 안에 있는 인간성도 파괴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아요 그 때에 비인간 취급을 받는 사람도 아프지만 그를 비인간으로 취급하는 내 안에 인간성도 파괴되는 것이야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임마누엘 칸트라는 철학자의 말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이어요 다른 한 명에게 가해지는 비 인간적인 행위는
내 안에 있는 인간성을 파괴한다 하고 이야기 합니다 하박국은 그런 현실에 예민한 것이어요 사람들을 비 인간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폭력 때문에 비록 유다가 지은 죄 때문에 심판의 도구로 그들을 세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반역 행위가 일어나고
있어요
과도한 폭력이라는 것이 이 하박국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옳습니다
순응하는 자가 아니어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파괴되는 것 때문에 아파하는 것이어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이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제기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정말로 이렇게 악인들에 의해서 세상이 속절 없이 파괴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그 악인들은 어떻게 한다고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고 그러면서도 기뻐합니다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것이 무슨 이야기일까요 그물과 투망 결국 이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사로 잡았어요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군사력이기도 하고
폭력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군사력 혹은 폭력이어요 그런데 그들이 이것에 제사를 바쳐 그 말은 군사력과 폭력을
우상으로 삼고 이게 지금 제국을 바라보고 있는 하박국의 대변입니다
그러니까 폭력을 우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하는 것을 마치 신처럼 숭상합니다 오늘로 이야기 하자면 돈이 많으면 내가 존귀한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돈이라고
하는 것을 수단으로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보면 마치 신처럼 여기지요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도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누가복음 6장 13절 하나님과 만몬을 돈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수단이지만 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만족하는 법이 없어요
그래서 우상이기 쉬운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것들을 제사를 그 앞에 바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신적 존재가 되는 것이어요 이것이 신이어요 그 세태에 대하여 얼마나 정확한 분석을 하고 있는 지 모르지요 이게 하박국이지요
17절 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말 속에 옳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2장 1절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른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장 1절은 상황이 이러합니다 제시하고 하박국이 하나님에게 하시는 말이어요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슴하실런지 기다리고 바라보면 어떻게 대답하였는지 보리라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보면 이 녀석 보게 하지 않고 흐뭇하실 것 같아요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실런지 내가 들어봐야 되겠어요 어떻게 보면 불경스러워 보일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불경을 행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깊은 일치를 이루었기에 아픔이 있네요 세상이 이 모양 이어서는 안 됩니다 해 보세요 여러분 예언자는 파숫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다싶이 에스겔서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파숫군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눈을 뜨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적이
오는 지 안 오는 지 적이 오는 것을 보면 파숫군이 해아 할 일은 나팔을 불어서 사람들을 깨워야 해요 파숫군이 잠이 들었어 적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어 적이 오는 것을 보고 혼비 백산 도망갔어요 잠들어 있던 사람들을 깨우지 못했어 그러면 그 죄를 파숫군에게
묻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파숫군이 적이 오는 것을 나팔을 부었어요 깨어야 된다 일어나야 돼 하고 이야기 했는데 그래서 이 잠이 너무나 달콤한데 지금 꾸고 있던 꿈마저 깨어나지 않는다든지 그러면 그 책임은 깨어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지요
파숫군은 외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파숫군으로 부름 받은 예언자들의 소명이었는데 이렇게 기다리고 잇는 파수 망대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그 예언자에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2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세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너는 사람들에게 가서 선포하라가 아니어요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기록하라 커다란 판넬 같은 것에다가 세기라는 것이어요 세긴다고 하는 것은 지워 지지 않은 것이지요 세겨라
그리고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약간 어려워요 이 말은 달려가면서 읽게 하라는 말은 크게 쓰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어떤 이야기냐 하면 그 소식 사람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고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달려간다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우선 판에 세겨라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고 말합니다
3절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이 이루겠고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은 차곡 차곡 다가온다
우리가 아무리 막으려고 애써도 가을이 오는 것처럼 그리고 겨울이 오고
봄이 오는 것처럼 그 때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하는 것은 어김 없이 성취 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네
생각에는 더디게 보일런지 몰라도 하나님의 때를 꾸준히 기다리라 그 이야기입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앞 당기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가쟌 자키스라고 하는 자기의 영혼의 자서전이라는 책과 어느 날 산에 올라가서 나비가 부화하는 모습을 봅니다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어요 그 과정이 빨라요 느려요 대게 느리지요 지켜 보고 있다가 나비를 응원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하면 입김을 불어 넣어 주었어요 호호 그래서 나비가 나왔어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 애가 태어나지 못했기에 날개가 접혀서 펼수 없는 불구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이것이 카잔 스키스탄이 직접 경험 했을 가능성이 었어요
우리는 살다 보면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앞당기려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가 앞당기는 것이 아니어요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해 가면서 기다리는 것이어요 더딜 지라도 기다리는 것이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이 다가오도록 촉매 구실을 해 가는 것이 세상이 안 되지 않아요 예언자의 뜨거운 열정을 봅니다 이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지 바라봅니다.
제 3강 하박국 2:4-8 악은 장구하지 못하다
인간의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질문을 통해서 얻어져요 내가 물어 보지 않는 것은 옳게 안다고 이야기 할 수 없어요 정말 그렇지요 분명해 보이는 것도 질문을 거듭함을 통해서 더 깊은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되지요
믿음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질문이 많아져야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자꾸 질문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의문이라야 말로 우리를 깊은 세계로 안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회의가 아니라 믿음의 반대말은 그릇된 확신이어요
그러니까 의문 회의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깊어지기 위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그냥 당연질문이 없거든요 당연한 세상 어른들은 오랫동안 살다 보니까 하늘에 구름이 떠 있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봄이 되어 가지고 나무 잎 나오는 것도 당연하고 그런데 애들은 왜 그래요 묻지요
우리가 하박국 공부하고 있는데 하박국이 질문이 많지 않아요 하나님 이러면 안 되지 않아요 이렇게 자꾸 대들어요 그러니까 하박국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에게 굉장히 중요한 성경 구절 하나가 있는데 기억이 안 나겠지요 로마서 1장 17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말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아요 그 말이 원래 나온 성경이 어디여요 하박국입니다
그 단어가 굉장히 중요한 구절인데 오늘 이제 그 구절을 공부하겠습니다
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지난 시간에 보라라고 하는 말이 그냥 보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뜻이었지요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하고 하는 일종의 확언이라고 이야기를 했었지요
2장 4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는 갈대아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은 교만하고 하고 말하는데 마음은 단순하게 마인드 우리 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로 네페쉬라는 말인데 이것은 전인을 뜻해요
목구멍을 뜻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숨 호흡 다양한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데 존재 전체를 이야기 하는 것인데 그의 존재 전체가 교만하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교만이지요 부풀어 오른 마음이어요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교만이지요 악인의 특생이 존재 전체로 자기를 과대포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요
우리가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병이 두 가지가 있거든요 어떤 병인지 아세요
첫째는 남들과 같아지지 않으면 못 견디는 병 남이 가지는 것은 나도 다
가져야 돼 남이 누리는 것은 나도 다 누려야 돼 이것을 병 욕망의 평준화 나한테 좋은 것 누리고 살면 좋은데 비교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제가 입은 저 옷은 무슨 옷이네 나도 있어야지 남과 같아지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또 모순된 이야기이기도 한데 우리는 남이 나와 같아지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아 똑 같응 옷을 입고 있는 사람 보면 불쾌해 구별되기를 원해 그러니까 모순적 감정입니다 남과 같아지기를 원하면서 남과
구별되기를 원하는 이 모습 속에서 우리는 고통 받고 있어요
이것이 현대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병인데 이 교만함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내가 더 크다고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이어요 그 마음이 교만함입니다 그 태도는 남이 나보다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도 돼 나는 그럴 권리가 있어 그렇게 느낍니다
이것이 극단화 되었을 대 하박국의 언어로 이야기 하면 겁탈과 강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요 하박국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문제는 그런 것이었거든요 다른 것이 없어요 내 마음이 남보다 큰 존재인 것
처럼 스스로 인식하고 그렇게 보여 주고 싶어해요
그러다 보니까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려고 하고 아래로 보기 때문에 함부로 여기고 전혀 맥락에 관계입니다마는 한국 남자들이 모이면 무엇을 하는지 아시지요 족보 따지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 다음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지요
그 다음에 학벌이 어떻게 되세요 그것도 인연이 없으면 군번이 이런 것 그래서 무엇하냐 하면 서열을 정해 이것을 소위 패킹 오더라고 하는 데 그러니까 조류들이 무엇인가를 먹을 때 그 쪼아 먹는 순서가 페킹 오더야
이렇게 따져 가지고 다른 사람하고 처음 만나서 악수하고 혹시 나이가 어떻게 나보다 많이 어리시군요 말 놔도 되지요 이렇게 그것이 무슨 태도인지 모르겠어요 왜들 그러는지 그러니까 우리가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래요
그 마음에 뿌리속에 있는 것이 교만함이단 말이지요 일곱 가지 죄의 뿌리라는 것이 있어요 기독교 전통에 오랫동안 가르켜 온 것이비다 교만으로 시작 되어 가지고 시기 분노 나태 탐욕 정욕 탐식 너무 많이 먹는 것
일곱가지 죄의 뿌리 중에서 내 마음속에 명심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인색 인색한 것
어떤 것이 인색한 것이지요 똔 쓰지 않는 것 그게 인색이지요 그러나 그게 죄의 뿌리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 때 인색은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병이어요
누가 예뻐요 이야기하면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예쁘죠 하지만 성격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누가 굉장히 똑똑해요 똑똑해 똑똑하지 그런데 인간성은 그 사람 참 착한 것 같아요 착하지만 똑똑하지는 않아 이것이 전부 인색이야
그 이야기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같아요 내가 보기에는 나의 정신이
커지기 위해서는 인색을 떨치고 누군가가 좋은 것을 보면 아낌없이 좋아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사람도 기분 좋고 나 또한
사람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그러거든요
어떻던 7가지 죄의 뿌리 가운데 제일 앞에 나오는 게 교만이어요 다른 사람 앞에 나를 크게 부풀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인데
2장 4절 그 교만한 사람들은 자기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다 말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이제 교만한 사람에 대비되고 있는 사람이 무엇이냐 의인입니다 교만한 사람하고 대비해서 의인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라고 하는 말이 오해하기 쉬운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사람은 참
의로와 그러면 늘 불의에 대해서 투쟁하고 이런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의인이라고 하는 말은 쩨다카를 따르는 사람
짜딕인데 쩨다카라는 것은 무엇이어요 누군가를 긍휼히 여길 때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쩨다카여요
그 마음의 뿌리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긍휼히 여기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안에서 그를 바라보기 때문이어요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한 사람들이 의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의인들은 어떻느냐 하면 자기 좋을 대로 처신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는 바가 나의 이웃들이 내게 요구하는 바가 내게 불리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불리하다고 해서 입장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게 의인입니다 선택한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길이 의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벗어나지 않는 그 삶을 진실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 진실한 삶에 대비되는 삶이 무엇이었어요 정직하지 못한 삶 아까 교만한 사람은 정직하지 않다고 이야기 했지요 진실하지 않으면 정직하지 않는 것이어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미쁘심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미쁘심 뿐만 아니라 내가 이웃과 맺는 관계에서 얼마나 성실하나 하는 것도 믿음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우리가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내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 인간의 인간됨이라고 하는 것은 요구받음에 대한 응답을 통해 구성된다
우리에게 무엇인가가 요구되어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지고 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비명조차 못 질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가 그 옆을 지나가게 되었어요 강도 만난 존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요구합니다 요구 받음에 대한 응답이 요구되는 데 응답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응답이다는 단어가 응답하다는 동사는 리스판스(response)입니다
이것의 명사형이 무엇이냐 하면 리스판스비리티(responsbility) 책임이어요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의 응답하는 것이어요 인간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냐 누군가의 요구에 대해서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다는 것이어요
교만한 사람들은 책임을 안 집니다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자기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자이니까 하나님과의 언약에 따라서 내가 사람들을 함부로 안
보고 그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가 요구하는 바에 응답하며 사는 것이지요
이 응답이 매우 중요해요 반응할 줄 아는 게 그래서 저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종종합니다
노아 홍수 시절에 하나님은 모든 세상을 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만 남겨 두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새로운 세상을 구원의 세상을 노아를 통해 시작하지 않았어요
누구를 통해 하십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매개가 요구하셨어요
그래서 어떤 분이 묻습니다
창세기 12장 2 노아도 의롭고 아브라함도 의로와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노아가 아닌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상의 구원을 베풀었을까?
그 차이가 무엇일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노아는 순종의 쳄피언이어요 아브라함도 순종의 쳄피언이고 떠나라고 하면 떠납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하면 바칩니다 둘다 순종의 쳄피온입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의 차이는 하나입니다
창세기 14장 14- 16절 자기 조카 롯이 잡혀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병들을 이끌고 그 먼곳에 가서 조카 롯을 구해 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소돔과 고모라 성을 그 성에 살고 있는 의로운 사람이 멸망하면 안 되니까 의인이 악인과 함께 멸망하며 되느냐고 가로막고 구합니다
창세기 18장 23절 그 의인들을 위해 이웃에 대한 책임이 곧 믿음입니다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는 것은 주여 믿습니다 이것이 아니어요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책임적이고 이웃들에게 책임적으로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만합니다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어요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의인들은 하나님과 이웃관계에서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때때로 그러다 보면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너만 의롭느냐 이런 소리 듣습니다
우리 이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너만 교회 다닌 것이야 너만 착한
것이야 이런 것을 무엇이냐 하면 죄의 사회성이야 자기들의 잘못된 행위 속에 누구를 끌어 넣고 안심하고 싶어요 저 사람 하나만
우리의 양심을 비춰주는 묻혀야돼 그래서 너도 우리 속에 들어오라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악과 싸워야 되지만 악의 선택하는 도구를 사용하면 안 되어요 제가 좋아하는 성인이 계신데 요한네스 크리스소스토무스 라는 분이 계신데 4세기에 콘스탄티 노플의 대 주교입니다
그 분이 말하기를 우리가 양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가 승히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늑대 천마리에 외워 쌓인다 할 지라도 우리는 정복하고 승리한다 그러나 우리가 늑대가 되는 즉시 패배한다 늑대는
기르지 않고 양을 기르는 목자의 기지를 잃기 때문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의인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하나님의 방법을 택해야 되어요 사랑이라는 방법 누군가를 살려주기 위해 나를 선물로 주려는 방법을 선택해야지 악인들이 선택한 방식을
취함으로 악을 제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이야기할 때 그것을 개인이 아주
사사로운 신앙을 뒷 받침하는 본문으로 받아 드리면 안 됩니다 의인이 내가 강조하는 바는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서야 한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인은 어떤 사람이냐 타자의 운명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이게 의인이야
오늘 한국 교회가 잃어 버린 것이 복음의 공공성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을 이것이 약화 되어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헬라어 단어에서 이디오테스라고 하는 단어가 있는데요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이냐 하면
공공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자자 이디어테스라고 이야갛니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가 영어 단어 바보를 뜻하는 이디엇트입니다
바보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어요 오직 자기에게 몰두하고 있는 사람 이것이 바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제 강의중에 한 이야기인데 투키디데스라고 하는 그리스 역사가가 쓴 헬로폰네스 전쟁사 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전쟁을 해요 도시 국가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그게 기원전 431년 경이거든요
첫 번째 전투에서 아테네의 많은 젊은이들이 죽습니다 스파르타와의 싸움에서 죽은 병사들을 시신들을 수습해 와 가지고 장례를 치루게 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장의 예를 갖추어서 장례를 치루게 됩니다
매장하기 전에 그 시대에 가장 존경 받은 사람을 사람들이 택합니다 추도사를 하도록 그 해 추도사를 하도록 뽑힌 인물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페리클레스입니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책에 등장하니다 거기에서 전몰자들에게 아주 아름다운 찬사를 바칩니다 그러면서 그의 연설은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아테네라고 하는 자기 속해 있는 아테네의 긍지를 드 높이는 연설을 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사치에 흐르지 않고 지식을 사랑하면서도 유약함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기 나라에 대한 강력한 자부심이 등장합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전사라도 정치에 소홀핮 않으며 이에 참여하지 않는 자를 공명심이 없다고 보기 보다는 쓸모없는 자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자기들이 살아야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책임져야 하는 나만 행복하면 된다 이런 사람들을 쓸 모 없는 그리스 민주주의에 매우 중요한 형태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믿는 것도 똑 같습니다 우리는 나의 행복만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되어야할런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의인이어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가 그런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5절 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
그는 누구인지 갈대아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그는 술을 즐긴다 술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빠지게 만들지요 탐닉하도록 만들지요 탐닉하게 되면 결국은 자기를 잃어버려 몰각하는 것이어요 술에 취하면 그것을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 것도 분제여요 무엇이든지 분주하게 하는 것인데
새 번역은 술이라는 단어를 재산으로 쓰기도 하거든요 새 번역 성경은 부유한 사재산은 사람을 속일 뿐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거만하고 탐욕을 채우려고 쉴날이 없다
카도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참으로 재물은 믿을 수 없다 거만한 사람은 견디어 낼 수 없다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여하튼 악인들의 특색이 무엇이냐 몰각 지각이 없어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요 그리고 거만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떠 벌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사나와 집니다 술취하면 사람들이 사나와 지기도 하는데 그리고
헛것을 봅니다 술취하면 헛것을 보고 곤고한 사람들의 처지를 잊게 된
것이지요 바로 그것을 술취함으로 이야기했어요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술이라는 것이 나는 무엇으로 보느냐 하면 폭력이야 폭력에
취해 내 힘만 믿고 내 주먹이 얼마나 큰지 알아 그러면서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자기에 대한 과신 이런 것들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어요
2장 5절 그는 술을 즐기고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 에게로 여러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
스올은 죽은 자들이 머무는 세상이지요 죽은자들이 머무는 세상이 점점 넗어 가는 것이어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른다 이게 악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하면
6절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여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자여
술에 취한 것처럼 자기에 도취되어 지내고 있는 그들 제 힘만 믿고 못할 일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그들이 커보여요 지금은 그런데 신앙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깨 뚫어 보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는 너머의 세계를 꽤 뚫어 보는 것이지요
그겋데 보니까 그들의 몰락이 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어요 부드러운
것은 생명에 가갑고 점점 자기를 강해 가지고 닥딱하게 변했어 그러자 예언자의 눈이 탁 보는 게 무엇이냐 하면 애들은 이제 망한다
이것을 꽤 뚫어 보는 것이어요 권력의 정점에 있는 그들이 망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속담이라는 것은 속담으로 그들을 조롱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풍자라고 하는 게 어떤 것이지요 풍자라고 하는 것은 자라고 하는 게 특별히 풍은 바람 풍 자를 쓰는데 자라고 하는 것이 찌를 자자입니다
우리가 칼에 찔렸다 자상을 입었다 하고 찌를 자자인데 풍자의 특색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푹 찔러 어떤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은 그런 것이어요 해악은 어떤 것이냐 하면 어떤 인물에 대한 동정심과 그리고 연민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흥부 농부전에서 보면 흥부가 형 대신 매 맞으려 가는 장면도 나오고
우리 연민을 자아내거든요 이게 해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해학이라고 한다면 풍자는 마치 무엇하고 같은 가 하면 마당 놀이에서
말둑이가 양반을 조롱하는 것이어요
양반의 허례의식을 막 조롱하고 막 찌르고 이렇게 하지 않아요 이런
것도 풍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자라고 하는 말은 중국의 시경에 처음 등장하는 데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을 풍화하고 풍화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가르쳐서 잘 교화하는 일을 풍화한다고 합니다
풍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어요 잘 가르켜서 교화하는 것이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랫 사람들은 윗 사람들을 풍자하는 데 아랫 사람들이 윗 사람들의 결점을 공격하는 것이어요
그렇게 하는데 이를 말하는 자 죄 없으며 이를 듣는 자 훈계로 삼을
가치가 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풍자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자기를 찌르고 있는 그 말을 통해서 이놈이 나를 공격해 그 사람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터인데 지금 이제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 그 권력의
정점에 속담으로 그들을 조롱하고 풍자를 통해서 그들을 찌르게 될 것이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깨달으면 좋은데 깨닫지 못하지요
그들의 특생이 무엇이어요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 볼모 아닌
것으로 무겁게 짐진자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인간이지요 어떤 분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 세상은 지구라고 하는 이
혹성은 지구라고 하는 별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의 필요를 감당하기에 넉넉합니다
지구는 그러나 지구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 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렇지요 이 지구라고 하는 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공급해 주어요 생명이 있는 존재들에게 그런데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는 지구 하나 가지고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너무 풍요롭게 지낸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다른 누군가가 누려야 할 것을 빼앗아서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로 바뀌어 가는 현상인데 늘 샤워하고 욕하고 하는 것은 깨끗해서 좋기는 좋으나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더 가뭄속에 들어가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하고 함께 몽골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몽골에
나무를 심기 때문에 그 숲을 보기 위해 갖다 왔기 때문에 우리의 습성이 무엇이냐 하면 씻어야 해요 아침에도 싯어야 하고 저녁에도
씻어야 하고 그런데 보면 몽골도 물이 상당히 부족한 나라이거든요
그런데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우리 교우들이 반성들을 했습니다 거기 사람들을 보면 손톱 사이에 떼도 끼어 있고 하는 데 위생 관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관광객처럼 살면 그 나라는 지탱될 수 없어요
우리는 깨끗한 척하고 여기에 대한 반성들을 했거든요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것 볼모 잡은 것을 짐진 것 이런 것들이 결국은 하나의 풍요로운 문명을 지탱해 지는 것들이지만 그 풍요로움 때문에
오히려 더욱 더 가난해 지고 여려워 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세상은 괜찮은 세상이 아니거든요
지금 예언자는 바로 그런 세상을 네가 언제까지 이러겠느냐 말하고 있고요
7절 너를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힐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지금은 숨 죽이고 있는 것 처럼 보여요 여러분 모순이 극대화 되면 변화가 일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 사건을 보면 출애굽에서 애굽을 탈출해 열 개의 재앙이 내리지 않아요 개구리도 튀어 나오고 온갖 게 나온다고요
흥미로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없던 개구리가 생긴게 아니고 그 땅에
어디엔가 있던 모든 것들이 일제히 몸을 드러낸 것이지요 불편하고 견딜 수가 숨 죽이고 있어 그들이 없는 것으로 여기면 안 돼
그런데 힘 있는 사람들은 없는 존재 견디다 못해 이러면 안 되지 않아 일어나는 것이어요
바로 그게 7절 너를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힐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이 갈대아 사람으로 상징되고 있는 힘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억누르고 고통을 가했는데
역전된 날이 오지 않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라는 것이어요
8절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으이요 또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라
노략하는 자가 노략 당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게 하나님이 정한 이치이다 이전에는 시시한 말처럼 들렸는데 크게 다가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우리는 불의를 심는자는 불의로부터 심판을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아름답고 의로운 삶을 심는 자는 결실이 없다고 해서 그 결실을 내가 보거나 내 후손이 볼 것입니다 힘 있다고 해서 억누르는 삶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사람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타자를 배려하고 자기를 선물로 줄 수 있는 사람이 여러분 그런 의로운 삶의 길로 뚜벅 뚜벅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제 4강 하박국 2: 9-20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하라
나는 살면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이 참 어려워요 싫은 소리 잘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기 어려워요 사람들 대 놓고 꾸짖거나 잘 하지
못합니다 저 사람 왜 그래 알아서 해 주면 좋겠는데 그 때 나 혼자 속으로 속 상해하고 기도하고 그런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지요 갈등이라고 하는게 이제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사실도 갈등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수봉이라는 사회학자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이야기 하면서 조어인데 우리가 말할 때 문법에 맞게 말하지 않아요 무의식 속에
문법이 들어있는 것이지 한국인들이 사고하고 말한다고 할 때 그 유형을 그 사회학자가 분석을 했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갈등
회피주의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냥 없는 것으로 이렇게 회피해요 이것이 문제 해결이 안된 것이어요 때때로 갈등을 이야기 하는 사회학적 개념에서는 갈등이 긍정적 기능을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정말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한다면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 이야기한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게 긍정적인 말들 보다는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예언자들은 인기가 없어요 예언자들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대게 순교 죽음 고독 이런 것들입니다 버림 받음 이것이 예언자들의 운명이지요 그러나 인류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친 예언자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면 세상을 깨어 있게 만드니까 이렇게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하박국은 불의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박국이 세상이 이러면 안 되지 않아요 하나님 세상이 왜 이 지경이지오 질문을 던지고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실는지 지켜 보겠다 시작을 합니다
1절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실런지 내가 지켜 보겠다
하나님이 대답을 하시는 것이지요 이러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는 화가 임한다 하고 말하는데 몇 가지 화가 나오는 데
2장 6절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화의 선언이 나오게 있지요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 볼모 잡은 것으로 모으는 자 첫 번째 화였습니다
9절부터는 두 번째 화가 등장하고 있는데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이려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 합니다
높은 데 깃들이려한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권세 같은 것 이것은 공간적으로도 맞는 것 같아요 요즈음도 유럽에 가다 보면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 곡대기 위에 집들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편할 터인데
정말 이상해요 왜 산 꼭데기에 집을 지었지 그 원인은 두가지 중에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무엇이냐 도시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잦았을 때 계곡에 있으면 언제나 침투가 되지 않아요 적들이 오는 지를 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가야겠지요
또 하나는 고원 다습한 지역에서는 병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통기가 잘 되는 높은 곳으로 올라 갔을 것입니다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은 그런 곳으로 삶의 터전을 이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밑바닥에 형성을 하는 것이지요
질병에 취약하고 전쟁이 일어나도 피해를 당하고 그렇게 공간적으로도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여기 높은 데 깃들인다는 것은 자기를 강화하고 자기를 크게 만들고 이것도 높은데 깃들인다는 교만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간적으로도 이야기 될 수 있고 은유적으로도 이야기 될 수 있습니다
9절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한댜 어떤 이야기일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관심의 방향이 자기에게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죄라고
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죄라고 하는 것을 저 나름대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마음 그러니까
언제나 나야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 나와 내 가족 우리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내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거드든요 나와 내 가족이 별일 없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남들이 불행을 당했는데 내게 불행이 안 올 때 내게
하나님이 말 없이 보호하고 그것은 말 없이 하나님께 하면 되지만 공적으로 드러내 놓고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지켜 주셨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폭력적이야
그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인식될 수 있단 말이어요 정말 우리는 이런 말들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부당한 일을 행하면서 가족주의 국가주의로 포장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부끄러운 축약어 가운데 하나가 내로 남불 그러니까 내가 하면 괜찮고 남들이 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 내로 남불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공직에 나가는 사람들을 청문회 같은 것을 하다 보면 몇 가지씩은 걸려요 위장 전입이라든지 위장 전입은 정말 많아요 위장취업도 있고요 특혜를 얻은 것도 있고요 다운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있고 온갖 것들이 있습니다
서민들은 보면 그들이 사는 방법이 저렇구나 속 상하지요 법을 위반합니다 다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자식 키우니가 알지 않아요 가족 주의입니다 이것을 확장하면 국가주의가 됩니다 우리나라인데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주의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신앙인에게는 국가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적 가치는 그것보다 더 높은 그런데 늘 나와 내 집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 처럼 생각합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든 것도 죄입니다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 이야기하고 있는데 부당한 이익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익일까요?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몫을 내가 빼앗는 것이 부당한 이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이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가을철이 되면 다람쥐들이 이제 겨울을 위해서 도토리 같은 것을 모아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람쥐가 볼에다가 도토리 잔득 집어넣고 게가 가져 가야 얼마나 가져 가겠어요
우리 어떻게
합니까? 요즈음도 공원 같은 데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침부터 열심히 엎드려서 일들을 하고 계셔요 도토리 줍느라고 그냥 다람쥐
먹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내 가족들에게 도토리 묵 해 먹이고 싶어서 이것은 귀여운 위반이고 정말 우리는 많은 위반을 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마음을 빼앗기고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게 됩니다 자기의 이익을 모든 가치 판단의 척도로 삼는 사람들에게 이웃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나 좋을 대로 처신하는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웃을 비존재로 만든다 하나님이 함께 살라고 만든 이웃들을 비 존재로 만드는 것 이런것들이 죄라고 볼 수 있겠지요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똑 같이 사는 것을 인식이 안 되는 것이어요 인간의 도덕성이라고 하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여러분 인간의 내가
상훈씨와 내가 함께 살 때 도덕성이 내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지만 이웃을 위해 나의 몫을 내려 놓을 줄 아는 것이 도덕성이야
인간의 도덕성을 그렇게 발생한단 말이어요
그렇지 않고 나만 챙기는 것은 이 자본주의 법 앞에서는 능력자라고 이야기 할지 몰라도 그들에게 화가 있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명분으로 위해 내 세우는 것이 나라를 위하여 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악하게 보신다
그런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숨겨질 수 없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오느냐 하면
11절 담에서 풀이 부르짖고 집에 들보가 응답하리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아가지고는 아주 철옹성 같은 집을 지었는데 내가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어 그런데 여기 밤에 돌들이 부르짖고 집의 들보가 응답하고 이것은 어떤 무생물조차 그의 죄를 고발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전에도 이몽룡이 어사 출두하기 전에 변사또 금잔 미주는 천인 혈이요 금잔의 아름다운 술은 많은 사람의 피다 옥반 가효 천인고요 옥반에 담겨 있는 기름진 안주감은 만인의 고혈이다고 노래하지요
여기에는 집에 들보조차도 그의 죄를 지적한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셔요 세상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무생물조차 그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그의 생이 끝났음을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12절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피로 성읍을 건설한다 이것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성읍을 부요하게 만들기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전쟁을 통해서 누군가의 것을 약탈하고 누군가를 죽이고 그래서 쌓아진 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피로 세워지는 성읍이다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것 저는 늘 제국이라고 하는 게 무한한 확장을 지향하는 데 무한히 확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것을 내 것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것은 폭력적인 것입니다
언제나 제국은
폭력적입니다 우리가 일제의 만행을 겪었지 않아요 인제가 동 아시아에서 저지른 죄가 크지요 일본이 동 아시아인들에게 저지를 폭력들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수 많은 여성들을 도구화 했던 이 일을 위해서 이것이 큰 죄입니다 하고 통해 자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 하지요 제국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 성 같은 것이 있는데 제국의 논리라고 하는 것은 나를 강화하기 위해서 제거해 버리거든요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 무엇을 위하여 약자들을 수탈하는 체제는 악마적이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 제국이 늘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일사 분란 총화 단결 그런 것 다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요 19 세기에 국민 국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유럽에서 여러 나라들이 국민 국가가 생겨납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동질성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민족은 무엇이야 백의민족 순수 혈통 반만년 동안 이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 왔단 말이어요 이게 국민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들입니다
문제는 이런데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소위 우리라고 하는 틀이 있어요 이 우리라고 하는 틀 속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피부색은 이렇고 몸은 이렇고 언어는 이렇고 틀들이 있어
이질적 존재들도 있단 말이어요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또 종교가 다르고 뭐 다양한 다름들이 있지 않아요 문화가 다르고 이럴 때 이 국민국가는 우리들로부터 그들을 배제한단 말이어요
배제하거나 또
하나는 무엇이냐 받아 드릴게 너희들의 특생 버리고 우리 식으로 이야기 해 미국의 못된 사람들이 여기 우리나라니까 너희 나라말
하지 마 영어 써 이런다든지 피부색은 바꿀 수 없으니 우리 말해 이러든지 종교 너 그 종교 가지면 안 돼 이 종교가져 동화 시키는
것이야 동화되지 않은 것은 추방하든지 죽이든지 해요 이게 국민 국가들이 국가가 형성되면서
결국 그렇게 하는 나라들은 어떻게 될 것이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13절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고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결국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살 권리를 빼앗아 가는 그 민족들은 결국은 허망함을 추수하게 될 것이다 이 성경의 메시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 주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우리의 틀 속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문화 국가로 가고 있어요 굉장히 이 문화 사람들이 들어와서 이주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구 절벽이
다가온다고 이야기 하는데 노동력이 우리가 우리 이주해 오는 사람들의 노동력은 필요합니다 그들 신세를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이등 국민으로 삼는다든지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화를 부르는 일이다고 하박국은 하고 있어요
우리가 세겨 들어야 될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4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그 대가 온다 왜냐하면 무한한 자기 확장을 꾀하고 있었던 제국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 역사를 주관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은 반드시 시행이 된다 이것이 하박국이 들려주는 대목입니다
이 대목으로 찬양이 있지요
물이 바다 덮은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은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것이 온 땅에 가득할 것이다
이것이 예언자들의 전망입니다
이사야 11장 9절 폭력이 없는 세상을 이야기 하면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하는 것을 이사야가 내다 보지 않아요
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황도 없을 거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
이것이 하박국이 정말 예언자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앞에 경외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볼 수 있어요
15절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에게 취하게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사람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알콜 마시게 하는 말이 아니지요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한다는 말은 술이라고 하는 것은 때때로 어떻게 쓰여졌느냐 하면 진노의 잔으로 표현되는 진노의 잔으로 표현해요
예수님도 나를 좌의정 영의정 마가복음 10장 38절 세베데의 두 아들에게 주님이 무엇이라고 하지요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 하지요
마가복음 10장 38절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 잔은 영광의 잔입니까? 고난의 잔입니까? 고난의 잔입니다 누군가에게 술을 마시게 한다는 것은 누구를 취하게 만듬으로 누군가에게 고난을 안겨주는 그런 삶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들에게 화가 있다
누군가를 취하게 하는 것도 문제인데 거기에다가 자기의 분노까지 더하여 취하게 한다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냐 하면 바벨론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그분의 분노의 잔입니다
그 잔을 가지고 이 바벨론이 죄 지은 나라를 징계하도록 하나님이 쓰셨어요
그러면 도구는 도구로서 역할만 하면 됩니다 거기에 무엇을 했다는 것이야 자기 분노를 더했다 이게 문제입니다
분노를 더한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그 하체를 드러내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고 말합니다 하체를 드러낸다는 것 그것은 그들을 수치 스럽게 만들지요
그러니까 수치스럽게 만든다는 말은 존엄의 박탈이지요
여러분 십자가 처형의 악마성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로 사람들을 처형할 때 고통도 고통이지만 못을 박히는 고통도 고통이지요 옷을 벗기거든요
무엇이냐하면
옷을 벗긴다고 하는 것은 그의 존엄의 박탈입니다 더 이상 인간으로 처신하지 못하는 것이어요 이것이 상징적 행위라고 볼 수 있겠지요
여기에도 누군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그 술에 자기의 분노를 더하고 왜 분노를 더하느냐 하면 바로 그의 하체를 벗김으로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어요
그리고 하체를 벗긴다는 말이 말 속에 담겨 있는 뜻은 전쟁 상황 속에서 자행되는 여성들에 대한 성 폭행 같은 것들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졌거든요
이런 일들을 시행하게 하는 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남을 취하게 하는 사람은 스스로 취하게 될 것이다
16절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받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 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리라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너희 손에 돌아가게 될 것이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리라 여러분 죄를 지으면 그것이 반드시 자에게로 돌아온다 예언자가 거듭 거듭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세상인데도 저는 심은 대로 거두는 세상이 정상적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박 이런 말들을 잘 믿지를 않습니다 제 외손녀가 있는데 세살인데 아름다운 바다를 보더니 와 할아버지 대박이어요 그래요
깜짝 놀랬어요 아니 애가 이런 용어를 써 나는 대박이라는 말을 참 싫어해요
아무튼 나는 심는대로 거두는 세상이 참 좋은 세상이다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강포를 행한 자에게는 강포의 운명이 다가올 것입니다
17절 이는 네가 레바논에 강포를 행한 것과 짐승의 피를 흘리며 땅과 성읍과 그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
레바논에 강포를 행하고 짐승을 죽이고 하는 자에게 어떤 생명도 반드시 그들에게 되 갚아질 것이다 이것이 예언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다섯 번째 화의 선언이 등장합니다
18절 세긴 우상은 그 세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새긴 우상과 부어 만든 우상 이것을 이야기 하고 있네요 어떤 것일까요 세긴 우상을 나무나 부어 만든 우상이고 부어 만든 우상은 동으로 만든 우상이지요 그 우상들을 사람들이 만들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지요
19절 나무에게 깨라하고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 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나무에게 개라하고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한다
사실은 우상은 사람들이 왜 우상에 의지하느냐 하면 불안하기 때문에 그럽니다
여러분 어두운 밤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홀로 걸어갑니다 두렵지요 그런데 다섯 각이 어린애 하나 손 잡고 가면 무서워요 안 무서워요 안 무섭지요
애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인간의 불안함이 무엇이냐 하면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안함이어요
출 32장 1절 암 송아지 우상 없이 기다리다 우상 없이 기다려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지요 우상을 만들고 가시적인 것 앞에서 안심을 하는 것입니다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자고 하는 것은 불안 했기 때문이어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우상 없이 기다리는 것이어요 어느 시인의 시 제목입니다
우상 없이 기다려요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어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가시적인 것에 안심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예언자들이 말합니다 보기에는 헛된 것 우상의 본래 의미는 빈 것 공허한 것 헛된 것이어요 이것을 거짓 스승으로 삼고 있다는
말이지요 거짓 스승 거짓 스승이기 때문에 이 우상이 하는 일은 나의 욕망을 추인해 주어요 내가 원하는 바가 이 우상이 원하는 바인
것 처럼 해 준다 그 말이어요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어떻게 나의 욕망을 추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 잘못되었다고 하고 참된 스승의 특색은 꾸짖는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꾸짖지 않아요 그래서 질정해요 꾸짖어서 바로 잡아 주는 게 스승이어요
우상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바를 해봐 잘 한다 그게 자기 욕망을 투사하는 것이야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정말로 어떤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우상화하는 경우도 있어요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이 다 들어주실 것이라고 우상화 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지요 이것이 복음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그래요 긍정적 사고방식 좋아요 적극적 사고방식 좋아요
그런데 믿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분별력입니다 내가 이렇게 누려도 괜찮한가 내가 이렇게 누렸을 때 다른 사람이 피해를 갖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분별력입니다 거짓 스승은 나의 욕망을 추인해 주면서 다 될 것이야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말합니다 그러나 참
스승은 그렇게 살면 안 돼 옆에 굶주린 사람이 있지 않니 옆에 너처럼 누리지 못한 사람이 있지 않아 조심해야지 그래서 사람들은 참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좋아합니다
본능적이로
이게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신앙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바가 다 이루어지는 것이 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가 있지만 그 욕망을 내려 놓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복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나무에게 깨라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훈을 베풀 수가 없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어요
생기가 없다 생기는 공기할 때 기자로 쓸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생기는 한자는 그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마는 일어날 기자도 있거든요 일어나는 힘이 없어요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요
창세기 2장 그 속에 생기 생령이 되었아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면 일어선 존재가 되는 것이야 일어났어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면 일어선 존재가 되는 것이야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특색이 무엇이냐 절망의 골짜기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절망이라고 말할 그 때 슬그머니 일어나는 생기를 간직하고 사는 것이어요
모든 인간은
죽음의 운명성이 있습니다 사멸성이라고 하지요 모든 인간은 사멸하는 운명이어요 안 죽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 장담하는 데 백년 안에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어요 여러분 사멸하는 운명이어요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났을 때 인간의 탄생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끊임 없이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돼
이것을 한나
아렌트라는 정신 철학자가 어떤 말을 쓰느냐 하면 탄생성 그런 말을 써요 어떤 말이냐 절망의 어두움 속에 내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 속에 불어 넣으시는 생기를 통하여서 다시 한번 일어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용기 이게 탄생성이다는 말이어요
탄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인가 종속되어 있으면 탄생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돈에
종속되어 있어도 안 되고 특정인에 종속되어 있어도 안 되고 내 삶에 주인이 되어야 해요 하나님만이 내 삶에 주인임을 인정할 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합니다
20절 오직 여호와는 그의 성전에 온 땅은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다
참되신 그
분이 내 속에 생기를 불어 넌다는 생각으로 그 크신 영광 앞에서 내 속에 잠잠할 때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절망과
어두움을 이기고 일어서게 하신다 이것이 하박국이 제국의 폭력속에 있는 자들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제5강 합3:1-7 광채속에 감추어진 권능
야고보서에
보면 5장13절에 너희중에 고난당한 자가 있느냐 기도하라 너희중에 즐거운 자가 있느냐 무엇하라 찬양하라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 찬양을 하는데 그 기쁨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라 하는 이야기이지요
고난당한 자가 있느냐 기도라라 내가 곤고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지요 그러나 기도한다고 하는 것이 주는 아름다운 효과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기도할 때 나는 넓은 전망 속에서 나의 고난을 바라보게 되어요
이전에는 그
고난과 내가 마주 서 있어요 너무 힘들어 나에게 왜 이러니 하나님앞에 이 문제를 가지고 갔을 때 그 고난이 내가 못 견딜 고난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하는 고난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시지요 제 마음 이러고 나니까 마음속에 위로가 오고 이것이
기도의 효력이어요
우리가 기도를 함으로 얻는 또 하나는 남들이 보기에는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어요 이것이 기도하는 보람이지요
하박국의 시작은 탄식이었습니다 하나님 세상은 왜 이 모양이어요 악한자가 득세하는 세상 막 탄식을 했습니
저 악인들이
지배하는 세상 저 악인들이 제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악인들이 심판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화해 선언이 여러번 반복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냐 하면 이전에는 눈앞이 캄캄했어 세상이 왜 이래 희망이 없어 어두어 그랬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까 오늘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내게 생겨 그래 지금 현실이 이러한지 몰라도 이 현실이 궁극적인 현실이
아니야 이것은 바뀔것이야 하나님 안에서 시행될 일이기에 겨 하나님 안에서 악인들이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야
하나님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냐 하면 기도여요
오늘부터 보는 대목은 무엇이냐 하면 하박국의 기도입니다
1절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시기 오놋에 맞춘 선지가 하박국의 기도라 하는데요 시기 오놋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요 어떤 음절을 가지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데 어떤 음률에 맞추어서 부른 것 같아요
지금도 우리가 교회들마다 주기도문 송 부르지요
나는 우리
교회이야기입니다마는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들이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찬양을 안 합니다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찬양을하면 솔로야 압도 되어요 일부러 떨어지라고 이야기 합니다 많이 떨어져요 그러면교우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같이 들려오는 것이어요
굉장히 감동스러워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기도문 송 부르는 데 수 백명이 함께 하나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것을 부를 때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찾아옵니다 정말 울렁 울렁 힘이 느껴져요 이것은 나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교우들이 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 찬양이 다른 교우들의 소리와 섰어서 우리에게 올 때 내 뒤를 밀어 주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요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노래를 잘해도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쩧던 이렇게
기도도 음률에 맞출 수가 있는 것이지요 때때로 주기도문만이 아니라 좋은 기도문에 곡조를 붙여서 부르는 기도들이 있거든요 그런
기도들을 부를 때 마음속에 감동이 오는 데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니까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이야기함으로 하나님의 행하심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 계획에 하박국이 무엇하고 있느냐 하면 기도로 응답하고 있지요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의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교부가 이야기한 것 처럼 하나님은 사람 없이 세상을 창조했지만 사람과 더불어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나는 너의 도움이 필요해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단 말이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까닭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꿈이 있어서 그래요 하나님의 꿈을 위해 나를 통하지 않고는 하실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이야기해요 그렇지요 이게 중요한 것인데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박자가 잘 맞아야 하는데 쿵하면 짝이
들어가야지
그러니까 신앙생활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쿵에 대한 인간의 짝 이것이 같이 맞아 들어가는 것이어요 이것이 신인 협력설이 아니고 조화로움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쿵 했는데 무슨 소리가 낫나 그러면 안 되어요
인간쪽에서 먼저 쿵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짝하고 응답해요 기도의 응답이지요 이것이 조화롭게 움직일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서 나타나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릴지에 대한 꿈을 2장에서 말씀하셨어요
예언자에게 그러자 하박국이 그것을 받아서 기도로 응답을 하고 있지요
이 시기오놋에 맞추었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이 부분이 예배 공동체가 하나님앞에 바친 공동체의 기도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박국의 기도로 되어 있지만 이것이 지속적으로 공동체의 기도로 바치어 졌다 알 수 있습니다
2절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랍나이다
주께 대한
소문을 들으신 바가 있나요 우리가 우물가로 가냐 되나 주님에 대한 소문 그 소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행하신 일들
주께서 행하신 일들 그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 그런 것들 여러분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이 지금 암담한 처지에 있어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그 때에 아까도 우리 이야기 할 때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다가가오면 그 일이 내 눈앞에 성큼 다가오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여 이것만 보여 이 문제만 그렇지요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눈앞에 캄캄하다고 합니다
이게 이게 문제 없는 것이 아니고 문제여요 그런데 내가 어느 순간 이 문제가 다가 왔을 때 물러났어 이렇게 이렇게 보니까 이것도 보이지만 무엇이 보여요 그러자 이 문제가 죽교사는 문제가 아니야 여백이 내 속에 생긴 거에요
그러니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내 앞에 다가와 있는 이 문제를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어요 그러자 무엇이
보이느냐 하면 이 문제가 내 인생의 어려운 문제인 것이 분명하나 지난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도와 주셨는지
나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에 어려움의 시간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 주셨는지에 대한 기억이 상기되는 것이야 기억의
상기여요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기억해 내는 것이어요
이것이 여기에 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놀랐나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하나님의 베푸신 역사 섭리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 그 이야기를 들음 정서적 반응이 놀랐나이다 아 깜짝이야 이게 아니지요 놀랐나이다 경외심 경외심에 사로잡힌 것이어요
여러분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으려는 데 안 잡혀요 그런데 어떤 분이 와 가지고 그물을 깊은 곳에 던져라 깊은 곳에 던지니 고기가 많이 잡히거든요
누가복음 5장 4절 깊은 곳에 손을 붙잡고 주님 동업합시다 이렇게
누가복음 5장 8절 거룩한 존재에 눈이 띠어진 것이어요 그렇게 되지 자기의 나약함 더러움 나를 떠나소서 내가 감히 그 거룩에 다가갈 수 없어요 이것이 경외심이다는 말이어요
그러자
베드로가 나와 가지고 손을 붙잡고 동업합시다 이렇게 안 하지요 어떻게 했어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요 주께서 베푸신 기사와 이적과
은혜를 들었어 그리고 놀랍나이다 하는 것은 주님의 솜씨가 놀랍다는 말이 아니라 그 앞에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유명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절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것 많이 보지 않았어요 많은 교회가 이것을 표어로 씁니다
수년내에 부흥케 하소서 특히 교회에 건축하는 교회들이 써 붙여 놓고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주의 일은 건축하는 일이고 그렇게 정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주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앞에 2장에서 이야기 한 하나님의 화해 선언이야 이렇게 이렇게 못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징계하고 역사를 바로 잡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꿈이 주인이 되어요
그리고
수년내라고 하는 것은 1-2년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아니고 영어로 이야기 하면 In the midst of the years
이렇게 되어 있는데 흘러가는 해에 중간에 그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어떻든 시간 속에 수년내에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는 데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 바라기는 빨리 그런 마음이 있겠지요 이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여기서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내에 나타내시옵소서 라고 하는 이 말은 그것이 현실이 되게 하여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게 교회 건축할 때 이것 내 거는 것은 전형적 자의적 해석에 속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무엇하고 같으냐 하면
욥기 8장 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의 구절을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데 그래서 음식점을 차리는 교우가 있으면 그것 사 가지고 갈 때가 있지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가 기도해 주면 좋아하기도 하고
욥을 향한 빌닷의 책망중에 나오는 말이어요 성경 구절을 뽑아 가지고 내 마음에 맞게
얼마전에 미국에 갔는데 미국 사람들은 나무 판에다가 무엇을 써서 기록하고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나봐
물론 영어지만
이렇게 써 있습니다 손자 손녀들은 언제나 환영 부모님은 꼭 약속하고 오실 것 그렇게 그것 보고 제가 웃었는데요 부모들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구나 언제나 자식들에게 손자 손녀들은 언제나 오케이 그런 현실인데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좋은 말이기는 하지요 띠어 놓자면 맥락속에서 보면 그 이야기가 아니거드뇽
주의 일을
수년에 부흥케 하소서 이 말은 폭력이 만연해 있는 세상 힘 있는 사람들이 힘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무시하고 이런 세상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이 국가의 시스템이 폭력적 제국이어요 가난한 나라 힘 없는 나라들을 억압하고 있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바로 잡겠다고 하셨으니 그 주님의 일을 속히 이루어 주십시오
그 이야기여요 이 구절이 그런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한다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지금 비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진노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어요 바벨론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것이 진노입니다 죄 지은 백성에게 바벨론이라고 하는 몽둥이를 들어가지고 치게
하셨어요 그러나 하박국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그 속에서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라고 말합니다
사실은 잊지
마소서라는 단어는 기옵하소소라고 번역하는게 옳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신명기 4장 31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으신 분이 하나님이지요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자비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많이 공부를 하셨을 터인데 하나님의 성품을 이야기 할 때 오래 참으심 긍휼하심 자비하심 이런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자비 혹은
긍휼이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컴팻션 compasssion 이라고 옮겨지는데 컴은 함께라고 하는 뜻이고 팻션이라는 것은 열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고난이라는 뜻도 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함께 아파하는 것이어요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본체 만체 이렇게 안해 그 문제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어요 그리고 그 문제를 내가 아파하는 것이지요 그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애 쓰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랑이지요 사랑의 근본적인 모습이 성육신이다는 말이지요 함께 고난당하는 그런 하나님의 모습이 성육신으로 등장하는 데 이 컴펫션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그 단어는 무엇과 관련이 되어 있느냐 하면 어머니의 자궁과 관련된 단어이어요
자신의 모태
속에 여성의 몸은 받아 안습니다 이 생명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희생적으로 돌봅니다 희생적으로 돌보아요 언젠가도 이야기 했습니다마는
인간의 몸에는 면역 체제가 있어요 외부에서 무엇인가 들어오면 음식물이 아닌 다른 생명이 들어오면 면역 체제가 발동되어 가지고
비상들이 울리고 가 가지고 싸워 그런데 여성의 몸 가운데 유일하게 공격 안하고 잘 보듬어 나는 게 새로운 생명이어요
이게 신기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만드신 신비야 그러니까 어머니들은 그렇게 자기의 모태에서 새 생명을 품고 키우고 그 생명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지요 입덧하고 먹지 못하고 고생하고 그리고 이제 출산이라고 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출산해요
그리고 나면
탯줄이 잘리기는 하지만 그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는 탯줄이 잘리지만 끊을 수 없는 정서적 끈이 있지요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어떤
심정입니까? 아기야 너 대신 내가 아프면 좋으련만 대신 아파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이지요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이지요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할 길이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때 인간이 경험한 사랑의 최대치가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래서 자궁에서 유래된 단어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한 것이어요
이게 중요한 것이어요 솔로몬의 재판이야기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마는
왕상 3장 25절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3장 26절 그 산 아들의 어머니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성경에는 그 여인의 자궁이 꿀틀하여 말하되 굉장히 강렬한 이야기이지요
가자 엄마
진자 엄마에게 아이를 잘라가지고 반식 주라고 하자 가자 엄마는 예 좋은 판단입니다 진자 엄마는 그 여인의 심정이 불 붙는 것 같아
성경은 그의 자궁이 꿈틀하여 이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할 때 그런 사랑으로 사랑하신단 말이어요 무엇 때문에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어요
그래서 하박국이 구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 사랑이 그치는 순간 인간은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지만 인간이 해야할 일 가운데 해야할 일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을 그 이야기를 자꾸 이제 함으로서 내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존재임을 더욱더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박국이 지금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단 말이지
3절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 도다
기도를 통해 얻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지금 현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데만은 에돔의 중심도시이고 바란은 아마 이스라엘 남쪽 지역이 아닐까 싶은데 하나님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단 사실을 하나님의 사랑이 장소와 더불어 하나님의 현현을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오신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 장소라는 것이 참 재미있는데 인간은 장소성 속에 있는 존재인데요 예를
들어서 저는 여러해 전만 해도 함양이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나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몰랐어요
그런데 함양에 있는 어떤 분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기 시작하자 함양은 그의 얼굴과 더불어 내게 떠올라요 경남 거창이라는 곳도 제게는 무관한 장소였지만 거창에서 인연을 맺은 아무게와 더불어서 떠 올라요
우리는 어떤 장소에 대표이기도 해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교회에 갔는데 그 교인 한 사람에 대한 인상이 그 사람이 교회에 정착할까 말까에 대한 결정을 좌지우지한 경우도 있단 말이어요
모든 장소에 대한 기억은 사람에 대한 기억과 연결된다 아름다운 곳에 가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아무게와 함께 왔다 그 생각이 들지요 그 장소를 함께 누리고 싶은 것이어요 인간은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현현하신다고 할 때 이것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바란 광야에서부터 오시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현현하실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분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이불처럼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다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이불처럼
4절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영광의 빛이 온 누리를 비추는 것 처럼 보여 집니다 그의 관명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이사야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오지요
이사야 30장 26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메시고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굉장한 이야기이지요 이것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냐
요한 계시록에 21장 23절 하나님의 나라는 해와 달도 소용이 없어 왜 그 분의 영광의 광채가 세상을 가득차 있기 때문에
지금 하박국은 자기 시대를 바라보면서 암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자 무엇이냐 하면 빛이 자기를 채워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창세기 1장 2절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1장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빛이 생겨났지요 상황은 바뀐 것이 없어요 다만 하나님이 자기 속에 내주하여 계시면서 빛을 비추어 주시자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 드러났고 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빛이 아 오르고 어두운 세상이 환해 진 것이어요
믿음의
사람들이 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인간은 사멸하는 존재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인간에게는 사멸성도 있지만 무엇도 있다고 이야기
했지요 탄생성 그런 말 기억나세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이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불어 넣어주신 생기덕분이어요
지금 하박군은 암담하지 않아 이제는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 이지만 암담하지 않아요 그가 바라 본 것이 찬송이 가득찬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 요한 계시록 보좌에 앉으신 분이 있고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있고 네 천사가 있고 24장로가 있는 데 그분들이 찬양을 시작해요
계시록 5장 13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온 피조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과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찬양을 해요 이것이 중심에서부터 점점 번영하는 것이야 잔잔한 호수에 우리가 돌을
던지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지 수 없이 많은 물결이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 가지고 그것 보좌에서부터 찬양이 퍼져가
우리는 늘 무엇만 보느냐 하면 여기에서부터 호수쪽으로 오는 동심원만 생각하는 데 이 파도가 부딪치면 또 돌아갑니다 이것이 우주적 찬양이야 감동이야 하늘에서 시작된 찬양이 땅에서도 다시 하늘로 번져 가는 것이어요
이것이 그것 아닐까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그 말의 의믈 그림으로 그리자면 그런 모습이 아닐까
온갖 피조물들의 찬양이 온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4절 그의 광명이 햇빛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 졌도다
그 광채는 부드럽고 온유하지만 하나님의 강한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져 있다
온유하지만 강력합니다 제가 노자에 나온 이야기를 종종 좋아하기는 합니다마는 거기 어떤 말이 나오느냐 하면
예는
날가룸이야 날카로움을 완화 시켜서 부드럽게 하고 해기분이라는 것을 어지럽게된 것을 풀어내고 화기광 그 빛을 조화롭게 만들고 너무
환하게 하지 않게 하고 동기진 마치 먼지와 하나가 된 것 처럼 한다 이게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단 말이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쪼겔수 있는 강한 말씀이지만 주님은 그것을
부드럽게 말씀으로 어지러운 세태를 단순하게 풀어나시고 광채 그 자체이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여기지 않고 종의 몸을 입고 와서
하나가 되었어요
빌립보서 2장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절 오히려 자기를 지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몸을 입고 와서
하나님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져 있어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너그럽고 놀라운 분이지만 5절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결국 무엇이냐
역병과 전염병까지도 거느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런 분이셔요 때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 벌어져요 우리가 욥기에
공부할 때도 베헤못과 리워야단 혼돈의 괴물처럼 보여 지거든요 혼돈의 괴물조차도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이성으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파악되지 않을 것이 일어나요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실 것이야 이것을
우기가 확고하게 믿어야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를 추구해야 돼 알아야 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해 신앙은
이해를 추구해야 되지만 알아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앙은 역설속에 더 한다 그 말이어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이해할 수 일들이
너무 많다
키엘코겔이라는
분은 신앙의 깊이를 역설 속에서 찾아요 높아 지고자 하는 사람은 낮아야 해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어야 돼 이것은 말로만 해
가지고는 알 수 없어요 그 삶을 선택한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십자가가 그래요 십자가는 궁극적 생명인 십자가
이 역설속에 있다 제가 감동하는 것 하나는 십자가 위해서 예수님의 7마디 말씀 가운데
마가복음 15장 34절 아버지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십니이까 시편 29편 구절을 주님이 낭송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 심정을 하나님께 아뢴 것이지요
버림 받음의 고통 그러면 하나님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해서 그래 이렇게 안 하지 않아요 너무 하십니다 이렇게 무엇이라고 했어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깨 맡깁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나를 하나님께 맡겨 신뢰하는 것이지요
세상이 왜 이 모양이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에 있어요 역병도 전염병도 불덩이도 하나님께 속했어 이게 하나님 앞에 가고 있어요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많다 그렇게 말합니다
6절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려 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하나님이 탁 서실 때 땅이 진동하고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괘 뚫어 보실 때 여러나라가 전율하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산들이 무너지고 작은 산들이 엎드려져 그 위용 앞에 설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바벨론이라는 제국이 압도적인 영원할 것 같은 제국이어요 그러나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고 하나님이 한번
서시면 마치 쓰나미 같아 여러분 쓰나미가 몰려올 때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모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정말 고통 받는 사람을 보았는데 쓰나미에 비유해서는 안 되겠습니다마는 오만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때때로 쓰나미처럼 다가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인간이 모든 제국들의 무너짐을 볼 수 있습니다
굳건해 보이는 모든 나라들도 하나님의 현존 앞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어요 애굽 앗스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진나라 나치의 제 3제국 소련 일본 모든 제국은 다 무너졌습니다
폭력과 겁탈에 기반한 사회는 자기 속에 파괴의 씨를 내장하고 있고 그 파괴의 씨는 반드시 자라서 그를 무너뜨릴 수 밖에 없다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왕자가 생떼쥐 베리의 어린 왕자가 날마다 자기 별에서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그 화산 분화구를 청소하는 일이 날마다 하는 일이었고 그리고 자기 별에서 싹이 터오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장미싹인지 바우밤
나무싹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장미 자라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 큰 바우밤 나무가 자라면 별이 깨질 수밖에 없거든요
바우밤 나무 뽑는 것이어요 자기 속에 바우밤 씨가 생겨지만 견딜 수 없는 것 처럼 나무의 시가 자기 힘에 대한 과신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속에 파괴의 씨를 심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7절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현현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살다 보면 떼때로 눈앞에 캄캄하고 암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둠보다 하나님의 광채가 더 빛난다 우리 내면속에 그 빛이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굳건한 심령이 있다고
한다면 혼돈 고통 억압 이런 것이 우리를 규정하는 궁극적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멸할 사람만이 아니라 날마다 탄생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생기가 우리 속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제 6강 합 3:8-19 하나님의 철저하신 보호
재능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게 재능이지요? 재능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마다 재능이 다 다르지만 지속에의 열정 어떤 일을 지속하는 것 이것이 진자 재능이다
살면서 보니까는 아름다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기 보다는 꾸준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의미에서 재능이라고 하는 것은 지속의 열정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성경 공부도 그래요
성경 공부도 다
아는 것 같고 이 정도면 이만 하면 되었지 중단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알듯한 이야기이지만 반복해서 듣고 그러다 보면 마음속에
세기어 지고 이것이 연륜이 쌓여지다 보면 성품이 되고 성품이 우리 인생을 만들기도 하고 꾸준함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가 하박국
공부하고 있는데 하박국의 뜻을 알고 있었지요 어떤 뜻이었지요? 안아주다 포옹하다 그런 뜻이다고 굉장히 따뜻한 의미로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 뜻이 있어요 보니까 안아주다 포옹하다 그런 의미도 있지만 씨름하다 붙잡으니까 가만히 보니까 하박국은 자기
시대와 문제하고 치열하게 씨름을 했어요
어떤 사람이 교양이 있다고 이야기 할 때 그 교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다른 게 없습니다 타자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사람은 자기의 아픔은 작은 아픔에도 절박하게 반응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잘 인식 안해 이것이 인간이지요 우리자 정말 사랑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때 그게
깊어진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나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해야 하지만 자기 시대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지요
하박국은 그랬어요 강포와 패역에 가득차 있는 세상 괴로워하고 이러면서 씨름해 왔지 않아요 오늘 하박국의 마지막 시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탄식이 있었고 하나님 세상이 왜 이 모양이어요 탄식이 있었고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나의 심판은 늦추지 않는다 그 다음에 하박국의 기도 하나님이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기도가 있었지요
8절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말타는 분이시네요 주께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전사로서의 이미지로 전사 하나님 악과 싸우는 하나님의
이미지인데 어떤 특정과 대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더불어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니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님이 말을
타고 병거를 몰고 있는데 묻는 것이어요 바다 때문에 화를 내십니까? 강들 때문에 화를 내십니까? 바다와 강하고 싸워 봐야 여기
강들과 바다를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면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강이 지배하는 신이 있다고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신격이어요 그 신격이라고 하는 것을 특별히 믿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강과 바다와 싸운다고 그런 신격들을 하나님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강이나 바다 같은 것들을 신격으로 할 수 없는 까닭은 사실 문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것 아니어요 물이 있어야 바다나 강을 통해서 운송할 수 있고 모든 것들이 경제 문제가 강과 바다를 통해 이루어 졌단 말이어요
밤은 무섭기도
합니다 범람하면 홍수로 범람하면 우리의 삶의 터전을 돌아가게 하고 고대인들에게 중요한 일은 강을 다스리는 일이 매우 중요했어요
중국에서도 홍수 피해나고 하면 황하를 다스리는 일이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왕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 있다면 치산치수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우임금을 물을 잘 다스리는 임금으로 여져져 있습니다 이 물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삶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때로는 복된 삶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몰아가기도 하기 때문에 그 신격들을 달레는게 고대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였겠지요
그래서 그
신들을 강이나 바다를 신격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이방인들이지요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분노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성서를 통해 알고 있는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신 하나님 어떤 바다이지요 홍해 갈대 바라들 또
요단강을 가르셨지요 명령하자 요단강의 물이 흐름을 중단하고 이런 것들이 물과의 싸움이다기 보다는 물을 신격으로 숭배하고 있는
자들의 그릇된 생각과의 싸움을 드러내 보인 것이지요
그런 사건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말을 타고 전차를 모시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트렸다 강과 바다와 더불어 싸우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9절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게셨나이다
그 하나님은 말을 타시는 뿐 아니라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꺼내시고 당시시고 하나님이 여기서 궁수로 되고 있습니다 궁수로 표현된 하나님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내게 떠오른 사람은 그리스의 문학가인 니코스 카잔자키스입니다
니코스 카잔
자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라는 책을 통해서 많이 알고 분입니다 젊은 날부터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든 사람이 니코스 카잔자키스인데 오래
전에 그리스에 갔을 때 아테네 숙소에 머물고 있는데 이 땅은 니코스 카잔스키의 땅이야 그래서 숙소에서 나와 가지고 뒤졌어요
굴목을 서점을
저는 성서 그리스어는 하지만 현대 그리스어는 못 합니다 현대 그리스어는 할 수 없는 데 스리스말로 쓰여진 니코스 카잔 자키스의 책을 샀어요 읽지 못하는 책을 사 가지고 와서 호텔에서 만나는 그리스 사람에게 부탁을 했어요
내가 영어로 이야기 해 줄테니까 그리스어로 기록해 주어 자유를 새의 목적으로 상을 사람을 기억하며 그리스 말로 책에 쓴 적이 있습니다 니코스 카잔자키스 자서전을 보면 하나님을 궁수로 표현한 대목디 등장합니다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하나님께 그렇게 인생이란 게 전부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팔이야 나를 당겨지지 않으면 썩가든요 나를 당기소서
두 번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요 운명의 타격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게 당겨지면 내가 부러질 수 있어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있어요
세 번째 나를 힘껏 당겨 주소서 주님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섭리 앞에 자기를 맡기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다 보면 상처 많이 받지 않아요 상처를 상처로만 간직하고 살면 인생이 우울해 집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인생은 부러진 갈대 하나님이 그 속에 술겸을 불어 넣으시면 피리가 되어 가지고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 합니다
상처 없기를 바라지 말고 그 상처 속에 하나님이 그 속에 아름다운 선율을 상처가 없기를 바라기보다 그 상처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나를 당겨 주소서 만약에 그런 당겨진 것이 없다면 내가 썩어 버릴지 몰라 그러나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내가 부라질 지 모릅니다
인간적 생각
세 번째는 그 기도 내용이 바뀌지요 내가 부러진들 어떻습니까? 내가 당신 안에 있는한 이것이 니코스 카잔 스키의 생각입니다 운명을 대하는 자세가 이러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님도 화살을 메겨 쏘시는 분 전투하시는 분으로 나오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 하면
9절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시적 표현이지요 물이 땅위를 흘러가지요 보통 땅에 고랑을 만들면서 흘러가지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을 했어요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게셨나이다 이것 어마 어마한 표현이 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가끔 자연
하천들을 보면 일직선일 때가 없지요 구비 구비 이렇게 가지 않아요 특별히 몽골의 초원 같은데 물이 흐르는 곳을 가보면 초원이니까
나무들이 별로 없어요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보면 물이 흘러가고 있는데 거기만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이어요
무엇처럼
보이느냐 하면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 천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사행천이라고 해요 뱀 사자 해 가지고 뱀이
지나가는 처럼 보여요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 상공을 날아가다 보면 밑을 내다보면 모래사막으로 된 그 곳에 초록색 뱀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보여요
나일강이어요 그
나일강을 중심으로 해서 사람들이 산림을 일구어 가지요 그런데 강이 흘러간다 표현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강으로 땅을 쪼게셨나이다
역동적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어떤 자들이냐 하면 우리가 바라보고 편견적 시선 상투적인 시선을 뒤집어 냄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존재들입니다
정현정
선생님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다 그래요 무엇인가 기대지 않고 사는 것이 있네요 하면서 저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를 좀 보세요
그렇게 말한단 말이어요 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그 나무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야 공기를 기대고 서 있는 것이야
공기가 무슨 힘이 있어 그럴런지 모르지만 공기가 없으면 나무도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시적 표현이지요 무엇인가 뒤집어서 우리의 생각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예언자가 그렇게 보고 있어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베어 있음을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이 하박국의 이야기가 점점 커집니다
10절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이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우리는 산이나
이런 것들이 무정물이야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데 하박국이 하는 이야기는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립니다 또
창수 창이라고 하는 것은 점점 넓어져 가는 것을 이야기 하니까 큰 물이야 큰 물이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고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이것 굉장한 표현들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시인입니다 월터 블그만이라는 신학자가 있는데 최근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있어요 그 분의 책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Finaly Comes The Poet 그래서 번역을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마침내 시인이 온다
그 이야기는
성서의 언어는 시적인 언어라는 것이어요 산문적인 언어가 아니라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 보여 주기 때문에 이것을
성서적 표현으로 이야기 하면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했지요 하나님의 구원이 십자가라는 어리석은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거든요
고린도 전서 1장 18절 이 세상에 멸망 받는 자에게 십자가는 어르석은 것이어요 그러나 구원 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시인 어느
잡지에서 세상을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들 새롭게 상투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시인이어요 그래서
정오승 선생님은 시에도 나오고 카리지브라의 시에도 나오는 데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그 분은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접촉하고 살면 세상을 이전처럼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어요 이것이 시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보면 굉장히 역동적인 표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0절 소리를 지릅니다 소리를 높이 듭니다 소리를 높이 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인들은 예언자들은 자연 현상이야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이는 것을 이렇게 보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편 107편 25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 도다
26절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 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절 그들이 이리 저리 구르며 피한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속에 빠지는 도다
28절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뱃사람들의 지각을 혼돈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들을 바다를 고요하게 하시고 항구로 인도하게 하시도 합니다
29절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절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
바닷물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 처럼 어려운 일들이 벌어져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겪어낼 때 하나님은 바닷물을 잔잔하게 하시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준다고 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게 사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든든함을 그렇게 노래하고 있거든요
하나님은 그렇게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게 만드신 분입니다
이 시인들의 역동적 표현은 대단합니다
시편 77편 16절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7절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이게 표현이 너무 아름답니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 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아름다운 표현이지요 이것을 읽을 때 떠 오르는 옥스퍼드 대학생이었던 17세기 18세기 시인입니다 이 바이런이 시험을 보는 데 수험관이 보니까 답을 안 쓰고 창 밖을 내다 보고 있어요
옥스퍼드 대학에서 시행된 종교학 수업이었는데 그 시험 문제가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된 영적의미가 무엇인지 논하세요 이런 문제였단 말이어요 바이런이 두 시간 동안이나 창 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남들이 적고 있는데 수험관이 한 글자라도 적으라고 바이런이 썼던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물이 그 주인을 알아보고 얼굴을 붉혔다 그게 하나면 다 된 것 아니어요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사건이야
그러나 짧막한 한 문장이지만 무엇인가 설명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공감된 것이 있는데 이것이 시적 세계인데 성경에도 보면 물들이 주를 바라 보았나이다 대단히 역동적인 장면입니다
말 타시는 하나님 활 쏘시는 하나님 그분의 현존 그 자체가 바다가 손을 들게 만드는 하나님의 위엄을 말한 다음에 11절 날아가는 주의 화살이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하고 말합니다
전사
하나님이어요 이제 화살을 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쏘고 주님의 창을 휘두르는 전사로서 이야기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해와 달이 그 처소에서 멈추었다 더 이상 빛을 낼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광채가 얼마나 놀라운지 해와 달도 무색해 졌다 이렇게 이야기 할까요 해와 달도 낯 빛이 창백해 졌다 그런데 화살이 막 날아가는 그 모습들을 우리가 영화를 통해 종종 보기도 합니다마는
이 화살 날아가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대가 있습니다 그게 어디이냐 하면 헤로토스가 쓴 역사라는 책인데 주전 480년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크세르크스라는 왕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그리스는
인구도 많지 않고 속절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데 병사들이 서로를 얼마나 많이 오는지 정말 그들이 쏘는 화살이 해를 가릴 정도이다
하는 이야기를 하자 그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페르시아의 병사들이 쏘는 화살이 해를 가릴 것이라고 하니 정말로 반가운 소식
우리는 그늘 속에서 싸울수 있지 않겠소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 페르시아는 그들이 생각하는 서양 사람들이 만났던 최초의 압도적인 타자입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군인은 무엇이냐 하면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전제 군주에 의해서 강요되어서 온 사람들이어요
그런데 아테네
사람들은 노예들은 전투에 안 나갑니다 시민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가지요 압도적 타자를 경험하고 있지만 강요된 사람들이
아니기에 자유스러운 주체야 저들이 쏜 화살이 태양을 가린다고 한다면 그들 속에 싸울수 이게 무엇이냐 굉장한 자부심입니다
아테네에 민주정에 대한 자부심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어요 아시아적 존재인 페르시아를 폄하나는 듯 보여도 기분이 나쁘기는 하나 헤로도토스는 아테네의 자유 여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장을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지를 보여 주는 데
12절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을 두르셨으며 분을 내사 여러 나라를 밟으셨나이다
주님의 노로 땅을 두르시고 여러 나라를 밟으십니다
13절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 그 기름부은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직접 개입하시고 그들이 무너질 수 이것이 강력한 이야기입니다
악인의 집과 싸움으로 점점 하나님의 싸움이 구체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는 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14절 그들이 회오리 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를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가만히 가난한
자를 삼키기를 즐거워 하나 하나가 중요합니다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결국 폭력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은
타자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취급하는 그들은 자기들의 무기에 의해서 스스로 해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십니다
15절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말을 타시고 하나님의 모습이 여기에 아름답게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장면이 있지요
옛날에 영화가운데 몬트리올 예수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어떤 공연을 하는 사람이어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은 것을 시연하기 위해서 문 밑에 받힘을 쭉 만들어 놓고 그 위는 걷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사실은 많은 성도들의 관심은 무엇이냐하면 예수님이 정말로 물 위를 걸으실 수 있을까 그 고민들을 하지요 이것이 사실이야 꾸민 이야기야 그런 관심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방법을 상훈씨는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인지 모르나 동일한 이야기를 했을 때 상훈씨가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한쪽 발이 빠질 것 같으면 다른 발음 옳기고 발을 빨리 움직이면 된다고 했어요
어떤 분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 26절 제자들이 그가 바다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면 무서워하며 소리 지르거늘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고 두려워하는 데
27절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29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서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이시면 나도 걷게 해 달라고 오라 그러자 베드로가 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걸었어요 몇 걸음 걸었어요 몇 걸음 걸었는지 알 수 없지요 그런데 결국 베드로는 빠졌지요 왜 빠졌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어요 마음에도 무게가 있다 그의 마음을 예수님에게 맡겼을 때 그는 걸었는데 그 마음을 되 찾아 왔어 네가 걷는
것이야 천사가 가볍기 때문이거든요 무게가 안 나간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늘 하늘을 향해 바라보지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고 예수님이 바다를 걸으신 그 사건이 신약 성서에서 매우 중요하게 이야기 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형상되고 있는가 하면
하박국 3장 15절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흉흉한 물결위를 밟고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욥기 9장 8절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바다 물결을 밟는다고 하는 것은 그분이 누구임을 나타내신가 하면 하나님이심을 예수 그리스도가 물위를 걸었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동시에
그것만이 아니라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예수님이 태어나실 무렵에 로마 황제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사람이었어요 로마는 아우수스투스를
신화화하기 위해서 동전을 만들어요 거기에 상징물을 집어 넣고 있는데 말을 타고 수레를 타고 그러니까 전투 수레를 타고 물결 위를
달려가는 아우구투스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어요
그것은 결국
무엇이냐 하면 물위를 달린다고 하는 마차를 타고 달린다고 하는 것은 신적 존재라는 것이어요 그 때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물 위를 밟고 걸으셨다는 것으로 누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냐 고백이다고 볼 수 있어요
이 본문하고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말을 타시고 압도적인 하나님의 권능 여기 15절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싹이 나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를 떨리는 도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중요한데 왜 이게 중요한가 하면 이전에 하박국이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햐였느냐 하면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실지 내가 들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2장 1절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른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이라 하였나니
하나님 대답좀 해 보세요 이 세상에 대해서 그가 말합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내 입술이 떨렸음이라
그런데 그가 이제 말합니다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 떨리는 도다
창자가 흔들린다고 하는 말은 옛날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이 인간의 신체 장기 속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장 깊은 정서가 머무는 자리가 창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내 창자가
흔들렸다고 하는 것은 내가 서 있던 하나님의 압도하심 앞에서 내가 들었음으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느니라
적들의 패망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견디어야 할 현실은 무겁기만 합니다
이것이 하박국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의 마음속에 희망이 들어왔어요 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강포와 폭력이 아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박국에서 제일 잘 알려진 본문이 등장한 것이어요
17절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기 보면
없고 없고 없고 그러지요 내 삶의 조건으로 이러 이러한 것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러면 무엇입니까? 불행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치부합니다 평화로운 조건이 하나도 구성되지 않은 것 같은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18절에 하박국이 이야기 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탄식이 변하여
기쁨의 찬양이 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를 그렇게 괴롭게 했던 그 현실이 해결 되었습니까?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러나 하박국에 생긴 것은 이 현실이 지속될 수 없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악인들이 심판을 받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어요 실편될 수밖에 앞을 내다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속에 생긴 것은 기쁨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저 악인들인 줄 알았더니 아니야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가
18절 여호와와로 말미암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합니다 이런 것을 급진적 낙관주의라고 이야기 합니다 래디컬 이야기 하고 있는데 래디칼이라는 말은 근본에서부터 그 뜻이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급진적 낙관주의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거기에서 헛된 생각하지 말고
예레미야 29장 3절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4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가게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절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딸들 시집 장가 보내고 그들에게 평안을 구하라
7절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그들이
평안해야 그럴 이 때는 하나님의 정한 때가 지나가면 그 때까지는 경거 망동하지 말고 그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라 미래가
없다고 한다면 힘들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했기 때문에 급진적인 낙관론을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
하박국도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보아내는 것입니다 그 희망의 근거는 나가 아입니다 이 절망 속에
빛을 비추어 하나님의 역사 섭리 나는 패배할런지 몰라도 나는 패배할 수 없다는 신념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무너지지 않게 해 주는
것이지요
19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여호와는 우리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높이를 가지며 싸움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시다 여러분 하박국이 씨름 끝에 얻은 결론이 주어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제아무리 열악하다 해도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그와 더불어 있다고 할 지라도 나는 패배할 지라도 패배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하박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