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의 고레스왕이 주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여 파사 제국에 통합하고 정복한 모든 민족에게는 회유 정책을 썼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유의 종교를 믿는것과 고국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 하였다. 이 정책은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 왔다. 그리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자들이 큰 희망을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어려 움이 많았다. 15년간이나 성전 재건을 힘썼으나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즉 다리오왕 제2년(520년)에 두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났다. 바로 학개와 스가랴이다. 에스라서에
의하면(스 5:1, 스 6:14)이 두 예언자의 활동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번영하였다.
에스라 5: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에스라 6:14-15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다리오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성전 재건 시작일 : 6월 1일 성전 재건 재개 : 6월 24일(학개 1:15) 다리오 왕 2년 6월 24일 성전 재건 완성 : 9월 24일
학개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길이
없다. 짐작컨대 포로시기에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살다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인것 같다. 만일 이 가정이 옳다면 그는 바벨론에
있을 때 다니엘과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7월 24일(토)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학개 1: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 7월 24(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학개 1: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5절) ♦ 성구 :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萬軍)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自己)의 소위(所爲)를 살펴볼찌니라.
선지자 “학개”라는 이름은 “축제” “절기”라고 합니다. B.C. 586년에 유다 왕국과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시편 137편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시편 137:1∼4)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 때 비로써 예루살렘에서 자유롭게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 큰 즐거움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바사(페르시아)제국에게 패하고 고레스 왕은 즉위한 후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BC. 538년).
스룹바벨의 인도를 받아 약 50년 만에 5만 명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감격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편 126:1)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감격 속에 훼파된 성전을 다시 세우시기 시작했습니다(BC 536년). 성전이 다시 세워질 때 모두 기쁨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들도 성전 건축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스룹바벨과 지도자들은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사마리아는 아시리아 제국의 혼혈 정책으로 이미 이방인의 피가 섞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심 산에 그들의 성전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마리아 사람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하고, 투서를 보내기도 하며, 성전 건축을 집요하게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다 백성들도 건축하다가 만 성전이 방치된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6년이 흘러 BC 520년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가 학개입니다.
1:1∼6, 성전 재건하는 일을 태만히 하던 백성들에 대한 질책 1:7∼11, 성전 재건에 대한 격려 1:12∼15,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는 유다 백성들에 대한 증거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그 날의 감격과 기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완전히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믿음의 길을 걷게 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그 은혜를 증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남은 생애가 복되고 보람된 날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 찬양 /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7월 26일(월) 평강을 주리라(학개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나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 7월 26(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학개 2: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평강을 주리라(9절) ♦ 성구 : 이 전(殿)의 나중 영광(榮光)이 이전(以前) 영광(榮光)보다 크리라 만군(萬軍)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平康)을 주리라 만군(萬軍)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의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성전 재건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학개는 성전 재건에 힘쓰라고 권면합니다(7월 21일). 성전을 짓기 시작한 날이 6월 24일이었으므로 27일이 지나는 마침 장막절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제1의 성전(솔로몬 성전)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에게 제2의 성전(스룹바벨 성전)은 너무 초라하였기에 실망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3절).
당시의 상황을 에스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에스라 3:12∼13).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믿음의 사람은 성전의 겉모양이 아니라 성전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일지라도 그곳에 모일 수 없는 현실은 성전이 아니라 초라한 건물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초라하고 작은 성전일지라도 그 안에서 날마다 찬송과 말씀과 기도가 끊임이 없다면 그곳은 거룩한 처소가 될 것입니다.
성전이란 주님이 늘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외부의 압력에 의해 모이지 않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실까요? 그러나 외부의 압력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배가 생명이라고 확신하며 순교자적 믿음으로 모여서 예배할 때 주님은 그곳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비록 초라하게 보이는 제2의 성전일지라도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찬란하게 될 수 있으므로 멈추지 말고 성전 재건을 계속해야 한다고 격려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 안의 성전을 지금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요? 나를 주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에 따라 오늘도 먼저 안에서 무너지는 성전을 새롭게 세워가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하며 축복합니다.
♪ 찬양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학개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멘
솔로몬 성전을 목격했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다시 건축하는 스룹바벨 성전이 너무 초라하기 때문에 실망하였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에게 이르시기를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는 말씀을 전한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최초로 지은 사람 이름이 누구이지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제1성전이라고 합니다. 이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재건한 성전을 제2의 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셨을 때에 스룹바벨 성전을 헤롯 대왕이 수리를 하였으므로 헤롯 성전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여건이 좋았어요 아버지 다윗이 막대한 부를 축적해 놓고 아들이 그 조건 아래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스룹바벨 성전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지었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 재건되었습니다. 성전 건축이 계속 된 것이 아니었스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정치적 모략에 의해서 멈출 때도 있었습니다
외국에 있는 예배당들 보면 백년 이상 건축해온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수 백년을 건축해온 예배당도 있습니다. 스페인에 가면 바로셀로나에 사그라다 파밀리아라고 하는 성 가족 교회가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가우디라는 건축가가에 의해서 100년이 넘도록 지금도 짓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자 중단하기도 하거든요. 그 때 성전 건축을 해야 될 이유를 깨우친 선지자가 학개입니다.
학개 선지자와 더불어 성전 재건을 깨우친 선지자는 스가랴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참담한 기억이 있다고 하면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경험일 것입니다.
바벨론이
여러차레 침략하면서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갔는데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이 망하게 된 것은 기원전 586년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부터 귀환하게 된 것은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주전 538년경에 돌아오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간지 70여년만에 돌아옵니다.
돌아 온 시간이 그만큼의 세월은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습니다 그만큼의 포로로 잡혀가
있다 인생의 상당한 기간을 전반 이상을 포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씁씁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서 돌아와서 예배를 회복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전을 지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제단을 만들고 에스라 3장 4절 최초로 초막절 절기를 지켰어요
얼마나
감동적이었겠어요 상당히 큰 기쁨을 주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와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포로로 돌아온
사람들이 제단을 만들고 초막절 축제를 하고 그러자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우리도 비용을 낼게 우리를 동참할게 하는 것이어요
유다인은
물론이고 사마리아인들도 우리도 도울게 고맙지 않아요 돌아온 사람들은 그들을 받아 드릴 생각이 없었어요 왜냐 하면 우리는 저 당에
잡혀 갔어도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의 습속을 신앙의 순수성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들의 도움을 받는것은 성전을 짓는 일에 적절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문제는 우리가 일제에 해방이 되었을 때 신사 참배를 거부했던 분들이 신사 참배에 동참한 사람들을 저 사람들은 변절된 사람들이야 이렇게 이야기하고
신사 참배한 사람들은 참해 하면서 속 상해하던 일이 있거든요 똑 같은 일이 역사속에서 반복이 되고 있는데 나도 동참 시켜줘 안 돼 너희는 너희는 더러워 거룩이라고 하는 게 더럽혀짐과 관련된 개념이거든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거룩하지 않아 하는 말이지요 그 때 여러분 나는 더럽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 사람들이 싫어져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저 사람들을 끌어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해하고 위에 편지를 보내는 것이어요 이 사람들이 성전 건축한다고 하는데 페르시아 임금에게 복종하기 보다는 다른 임금에서 복종하기 위해서 성전을 짓는 것이야 이것 막아야 돼 이런 식으로 합니다
에스라 4장 이런 식으로 무기를 들고 위해를 가하려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까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졌어요 그래서 중단이 됩니다 얼마동안 중단이 되느냐 하면 근 20년 가까운 시간 중단이 됩니다
시작을 해
내놓은 데 20년간 방치를 해요 정말 흉물 스럽습니다 기원전 516년에 준공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바로 학개 예언자입니다 그 무렵 20년이 지났을 때 돌아온 사람들도 삶에 지쳤어요 돌아올 때는 희망이 있지 않아요 내 고향에
돌아오면 우리가 자유인으로 멋지게 살 것이야 삶이 너무 힘들어 흉년이 들고 먹을 것 부족하고 인심이 흉흉하고 머물러 있던 사람하고
갈등 때문에 삶이 힘겨워요
그 때는 공적인 어떤 일을 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너무 힘든 것이야 거기에만 몰두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 건축에 대한 열정도 싫고 성전을 건축할 만한 여럽이 없다고 스스로 느껴요
바로 그 때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이어요
1절 다리오왕 제 이년 여섯째 달 곧 그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가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우리가 예언서를 보다 보면 예언자가 부름을 받았던 때를 늘 적시를 하지 않아요 대게의 경우에 그 때 무슨 무슨 임금 시대에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 여기에 이야기 되고 있는 임금 이름이 누구지요 다리오 왕
그런데
이미 다 아시겠지만 다리오는 유다의 임금이 아닙니다 유다의 임금이 아니어요 이 사람은 다리오는 누구냐 하면 페르시아의 임금입니다
성경에서 선지자가 부름을 받았을 때를 이야기 할 때 이렇게 유다 임금이 다른 나라 임금 이야기 하는 것이 드물지요
학게는
다리옹 때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임금이어요 페르시아라는 나라는 고레스라는 임금으로 유명합니다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 세속의 역사 속에서는 고레스라고 안 하고 씨루스 임금이라고 하는데 씨루스라는 사람이 대 제국으로
성장을 시켜요 페르시아는 영토를 확장 시킨 왕입니다
씨루스 고레스를 이어서 왕이 된 사람이 캄비세스라는 왕인데 이 캄비세스 왕은 애굽까지 정복해요 애굽까지 정복을 함으로서 제국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는데 그 다음 그를 이은 임금이 다리오어요
이 다리오 임금은 인더스 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 합니다 대 제국을 형성한 것이지요 어마 어마 어마한 제국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페르시아가 다른 제국과 다른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것이 어떤 것일까요? 페르시아는 다른 제국들의 특색은 무엇이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 내가 가지고 있는 문화속에 들어와야 돼 그렇게 제국을 운영을 했어요
우리가 바벨탑 이야기를 할 때 바벨탑의 재료를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벽돌이라고 했거든요 이것을 그런 의미라고 할 수 없으나 이전에는 자연석을 썼어요 벽돌이라는 게 규격화 된 것이거든요
이것은 무엇이냐 도량형의 통일과 관련이 되어요 길이를 젠다든지 부피를 젠다든지 마차 바퀴 사이의 간격을 만든자든지 이런 것들이 도로 건설하고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제국들은 도량형의 통일을 하려고 합니다
중국의 진시왕도 도량형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바벨탑이라고 하는 것은 다름이 용납되지 않아요 규격화 된다고 하는 것은 다름이 들어설 여지가 없어 페르시아는 달랐다 그 이야기여요
다양한
언어 문화 경제 시스템 종교 이런 것들을 그래 너희들이 누리고 있던 그것을 그대로 누려 이렇게 허용을 해 주는 것이어요 그
조직들을 잘 융합을 해 페르시야 문명은 무엇과 같은 가 하면 물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 조그마한 지천이 와서 합류하지 않아요 다른
물이 와서 합류를 하지 않아요 큰 강이 되지 않아요
이것처럼 페르시아 문명은 흘러가면서 융합하는 문명이었어요 다름을 이렇게 포함하는 문명이었어요 어어느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결혼한 사람에게 강을 가지고 이야기 했어요
강을
가지고 이야기 했어요 북한강이 흐릅니다 충주 저 쪽에서부터 남한강이 흘러요 어디에서 만나느냐 하면 양수리라는 곳에서 만나요
양수리를 두물머리라고 하지 않아요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한강이 되는
것이어요
나를
버렸지만 나는 더 큰 나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신비한 부부가 된 것이 그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렇지요 나는 끝까지 갈 것이야 그러면
곤란하지요 페르시야 문명이라는 다양한 것을 받아 드림으로 자기를 크게 만들었어 문화적인 것이 컸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어요
다리오
왕이 중요한 왕인데 그 왕이 즉위한지 2년 여섯째달 초하루에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이렇게 본문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누구를 향하고 있느냐 하면 누구에게 주어졌어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했다
스알디엘은 첫 번째 총독인 것으로 보여요 스룹바벨이 그 아들이고요 그 다음에 여호수아는 바벨론에 태어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임했는데 이 다리오왕 2년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항상 이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권력 교체기에 위기를 맞이 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강력한 왕이 물려나고 아직 리더쉽이 확정되지
않은 후임 왕이 들어올 때 자기 세력을 키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즉위하자마자 반란을 효과적으로 제압을 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 반란에 가담한 벌주면서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총독 제도를 두기 시작 합니다 이런 전환기에 학개가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학개가 예언한 시기는 어떤 예언자는 상당히 긴 시간 예언하지 않아요 그런데 학게가 예언한 것은 6월 1일부터 시작에서 9월
24일까지 날자가 딱 있어요 3개월 넘은 4개월 안 되는 그 정도의 시간동안 활동을 합니다 분명한 포커스가 있지요
이제
어쩼던 4개월 정도인데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때가 며칠 날이었다고요 다리오왕 2년 6월 1일 그런데 성전 건축이 재개 된
날자는 언제이냐 하면 6월 24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겨우 세주 지난 다음에 일이 시작이 된 것이어요
상당히 빠른 진척을 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개라는 사람은 보통 예언자를 이야기 할 때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나오더근요 아니면 할아버지 이름이 나오고 증조 할아버지가 나오는데 학개는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안 나타납니다
이것을 보면 학개라고 하는 사람이 종교 귀족이 아니었구나 종교 귀적이 아니었고 명문 가문 출신도 아니었구나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흙수저 출신이어요 학개가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어요
학개라는
이름은 학가이라는 것이 히브리어 발음입니다마는 축제를 뜻하는 하그라는 말과 연결이 되지요 학개와 스가랴 성전 건축을 독려한
선지자들로 성전이라는 게 절기 축제를 바치는 고것이고 순례의 중심이었음을 생각할 때 성전 건축을 촉구했던 학개의 이름이 축제와
연결된다는 것이 상당히 적절한 것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학개는 철저히 가문의 전통에 의지한 것이 아니고 우리 조상이 대단한 사람이어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신빙성이 있어요 이렇게 안 하고 오로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런 선지자였던 것이지요
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 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하나님이 짜증이 나신 것이어요 여기 하나님을 일컷는 말이 만군의 여호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 전사로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셔요 적을 무찌리시는 분으로 여기에 등장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에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은 의미는 있는 것이어요 백성들 사이에 만연한 패배주의 무기력 절망감 그것과 맞서 싸우시는 하나님 바로 그 분이 여기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때때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 무너질 때 사람이 무너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남들이 저 사람 살만한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있어요 열악한 환경이 있는데 씩씩하게 살아가는 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기력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빅터 프랭클이라고 하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가 있는데 이 분은 나치 수용소에 갇힌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가진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을 포인트라는 사람이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살아갈 쾌락에의 의지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야기 합니다 아플레라는 사람은 권력의 의지가 인간을 살게 만든다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수용소에 갇혀 보니까 쾌락의 의지도 아니야 권력의 의지도 아니야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느냐 하면 내 삶이 의미가 있다고 할 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어요
빅터
프랭클이 자기가 수용소에 내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이 사람은 바로 용광로에 들어가지 않고 노동 사역에 쓰이게 되어요
살아 남았지요 그런데 비밀을 말하자먄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빅터 프랭클의 가족들은 이미 죽었어요 같이 끌려 간 가족들이 바로
죽었어요
프랭클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강제 노역은 너무 힘들어요 그가 노동하면서 힘겨울 때 만도 그가 생각한 것은 내 가족이 평안하기를 바래 그러니까 힘겨운 노동이 즐거운 노동이 되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니까 어떤 일이 의미있다고 느낄 때는 사람들이 살아 그가 한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은
윌 투 미닝 Will to meaning 의미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의미의 의지를 가진 인간 미닝이지요
그래서 나중에 그가 나치가 망한 다음에 돌아와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고치는 데 결국 무엇이냐 하면 삶의 의미를 구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찾아 주므로 그들이 치료 되도록 해요
그것을
로고 테라피라고 하는 데 로고스 말씀이거든요 내 속에 의미가 돌아올 때 살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매우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속에 있는 무기력과 절망 그것과 맞서 싸우도록 하셔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의미가 채워지는 순간 사람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의미를 주는 일 이게 중요해요
만군의 하나님은 외부에 적과 싸우시기도 하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떠 오르고 있는 무의미 고통 무기력 절망과 이런 것들과 싸워서 우리가 삶의 의미를 되 찾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어요 그 하나님이 이야기 하는 것이어요
그 하나님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어요 백성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우리가 그 백성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최초의 열정이 남는 것은 곤고한 삶의 무게일 수 밖에 없어요
열정이
식고나면 남루한 이 현실만 남지 않아요 미국에 라스베가스에 가면 그렇다면서도 밤중에 화려하고 번쩍 번쩍하고 우아하고 그러는데 다음
날 아침 보면 조명이 꺼진 그 도시는 사막 가운데 있는 적막할 도시일 뿐이지 그런 것입니다
열정이 식고 나면 남는 것은 곤고한 삶의 무게 밖에 없는 것이야
그 다음에
성전 재건을 안해야 할 이유가운데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성전 건축이 자칫하면 페르시야 당국의 의혹을 살 수 있어 페르시아의
반역을 저지르기 어떤 중심을 만드는 것이 아니야 이런 의혹을 살 수 있다 백성들은 그런 핑계를 생각한 것이어요
세 번재는
이런 것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의 삶이 죄를 하나님이 흔연히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아닐까 우리의 삶이 곤고한 것은 주님이
아직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니 성전을 짓는 것은 그 분의 뜻에 반하는 일일 수도 있어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안할 핑계는 얼마든지 있어 그래서 제 테드 강연에서 어느 미국의 대학 교수님이 강의를 하는
것을 듣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할 것인가 하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의 눈에 잘 노출 되도록 해야 돼 그래야 사람들이 선을
행할 가능성이 있어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이게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핑계를 댈 수 있는 여지를 없도록 만들어야돼
그러니까\
12월이 되면 구세군 자선남비가 딸랑 딸랑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거기 지나갈 때 약간 질리거든요 어떻게 하냐 하면 저기 있네하고
돌아가지요 돌아가면서 못 봤다고 하고 무엇이냐 하면 핑계를 댈 수록 여기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데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유치하게 어쩼던 그렇게라도 선을 행한 게 좋은 데 금방 이야기 한 것처럼 무엇인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이게 백성들의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용기가 꺾이면 안 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인간의 재능입니다
그 때 여호와가 말씀하신 것이어요
4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제 판벽한 집에 거주한 것이 옳으냐
성전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내 버려지고 무너지고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판벽한 집이라는 게 백향목으로 지은 집이야 아름답고 튼튼하게 잘 꾸며진 집이 판벽한 집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이렇게 퇴락했는데 너희들 사는 집은 좋은 것으로 꾸미려고 그렇게 지내고 있느냐
그게
옳으냐 어떤 사람이 옳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대책이 없겠지요 그것은 한 대 맞는 수 밖에 없어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자기의 집을 꾸미는 일에는 열중하면서 하나님의 집을 꾸미는 일은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언약 공동체의
비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백성을 선택하셨을 때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셨는데 그 꿈을 실현하도록 주는
중심이 성전인데 그 성전에 퇴락을 방치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그 꿈을 버린 것이어요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린 것이어요 자기 망각이어요 결국은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공의 문제보다 개인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성 프란치스코가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어요 성 다미아노 성인이 누더기를 걸린체 울면서 오는 것이어요 프란체스코가 놀합니다 성인님 천국에 어찌하여 울고 계셔요 이렇게 물어요
천국에 계신 분이 울고 있다니 천국에도 눈물이 있단 말이어요 그러자 다미아노가 대답합니다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오 그것은 아직도 지상에서 헤메고 있는 사람의 눈물이다네 이렇게 말해요
그리고 다미아 성인이 이야기 합니다 지금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그런데 너는 이렇게 평안한 잠 자리에서 잠만 자고 있을 것이냐 가서 무너지는 교회를 세워 이렇게 이야기 해요
프란체스코
성인은 하나님의 계시로 알아 듣고 수리하는 일에 나섭니다 그런데 사실은 성 다미아노가 프랑체스코를 그렇게 부른 것은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인 건물을 고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스스로의 부요함 속에서 도전 없이 왔던 카도릭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였고 그것을 어깨를 떠 받혀 일으키라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프란 치스코 성인이 13세기에 교회에 가지고 들어온 것은 가난이라고 하는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하야 한다고 들어오거든요 이것이 공공의 문제보다 개인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탄식하였다
5절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 행실을 돌아보라는 것이어요 돌아봄을 자기를 돌아보는 것 반성이라고 하지요 어디에서 나온 말이어요
논어에서 증자가 한 말입니다 五日오일 三省삼성五오 나는 하루에 세 번 나를 돌아 본다
첫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불충하지 않았는가 하는 게 첫 번째이고
벗과사귀면서 진실하지 배운것을 불신 믿음직하지 않은 것이어요
그 다음에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불 습입니다
불신 불충 하지 않았는가 자기를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 맑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지금 그 백성들에게 너희 행위를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결국은 무엇이어요 내가 고백하고 있는 그 내용을 삶으로 번역한 과정인데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정 반대로 왜곡하고 있는 그 현실을 하나님은 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은 일상적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되어요
6절에 너희가 많이 뿌릴 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 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결국
백성들이 선택한 삶은 풍요로움이었지만 본인의 행복이었지만 그들의 행복을 추수하지 못해요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흉년이
찾아오기도 하고 제국의 수탈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라는 삶의 중심성이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삶이 구멍 뚫어진
전대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이 바로 서지 않는 경우에는 말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삶이 본이 무엇인지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것은 말을 추구하기 위해 본을 버린 것이야
오늘
우리의 삶을 어떻습니까? 인간을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본 그 본을 내가 정말
굳게 붙들어야 하고 내 속에 가물 가물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심지에 불을 붙여야 하는 데 우리는 무엇이냐 내 속을 성찰하기
보다는 바같에 있는 외부적 조건들을 바라 보느라고 본을 상실한 본말이 뒤집힌 삶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아픔을 우리들이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마음속에 크게 와 닿은 것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신 것인데 우리 속에 있는 절망 우리 속에 일어나는 무의미
나는 할 수 없어 무기력 이런 것과 맞서 싸우면서 우리 속에 숨을 불어 넣으셔서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
꿈을 불어 넣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 제게는 크게 다가옵니다.
제2강 학개 1:1:7-15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아기는 어떤 존재인 줄 알아요 아기 어른의 스승이다 그런 시도 있지요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고 어른의 아버지도 하는 시도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있는데요 그 시인이 아기 천사께서 우리 집에 오신
다음에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다고 이야기 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대오 옹아리로 모든 것이 통해 그러니까 그 예쁜 아기 앞에서 모두가 용서가 되고 받아드리게 되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도 화해하게 되고 그렇게 보면 연약함의 신비라는 것이 있어요
세상은 강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지만 연약한 사람들이 세상을 정화해 그러니까 아기가 어른의 스승이고 맞다 말이어요 성탄절로 비유해도 되겠네요 우리 주님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지요
그 아기를 우리의 마음속에 모시고 산다고 하는 것 연약하고 섬세한 존재를 우리들이 어떻게 품고 갈 것인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차가운 북풍 앞에 서 있는 것 처럼 위태로와요
현실은 우리에게 절망감을 안겨 줄 때가 많이 있지만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다시 시작할 용기 나는 넘어져도 다시 시작할 힘을 우리 속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분이 있기 때문에 어떤 분이 말이
인간은 제 아무리 크게 넘어져도 하나님의 은총 밖으로 넘어지는 방법은 없데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사로 잡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실망할 수 있고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갖고 내 삶을 고쳐 세우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7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 행위를 살필지니라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고요 자기 행위를 살필지니라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이 삻핌이지요 인간이 다른 존재와 다른 것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존재라는데 있습니다
성찰 사유라는 것은 나 좋을 대로 처신한 것이 아니고 타자와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어요 내가 미란씨와 만났다면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이야 내가 친절하게 말해야 하는데 무뚝뚜하게 말한 것이
아닌가 내가 선한 표정을 가지고 타자라는 거울 앞에서 우리 시대에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반성 우리는 누구를 보고
판단은 잘해요
저 사람 옷 잘 입었네 저 사람이 화장이 잘 나왔네 이런 소리는 잘 하는데 저 사람은 저러면 안 돼지 이런 말을 잘 하는데 밖을 보는 일에 익숙해요 자기를 살피는 일에 너무 소홀해 이것이 우리의 습성처럼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단편 소설이 기억나는데 친구들이 제주도 갔데냐 술을 많이
먹었어요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이게 콘 텍즈 렌즈기 뒤로 돌아갔데요 큰 일 났지 않아요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몰라 어쩧던 소설이 그래요 친구들이 우수어 죽겠는지 친구들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보고 무엇이라고 하더니 읽었던 기억이 나요
사람이 자기를 살피는 일을 잘 못하지요 성찰하지 않는 것이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도 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라고 하는 대 타자 앞에 내 삶을 돌이켜 생각함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기도여요 이게 매우 중요해요
그러나 성찰을 한하는 것이지요 여기 하나님은 거듭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라
5절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 행위를 살필지니라
8절 그리고는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나무를 비어오라는 것이어요 여기 산이라고 번역하는 단어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무엇이냐 하면 정관사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 산이어요 그 산이 어떤 산인지 몰라요 그 이야기는 그 산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정관사를 가지고 그 산이라고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다 알아 나무가 있는 어떤 산이겠지요
사람들 생각하기에 성전을 지으려면 백향목 싯딤나무 이런 것들 가지고 지으리라고 생각하니까 우리는 백향목에 접근할 수 없어요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지을 때도 백향목을 운송해 오거든요
그리고 스룹바벨이 성전 건축을 시작할 때 그 대도 에스라 책을 보면
3장 7절 레바론에서 백향목 가져오거든요 처음에 지금 그 길이 다 막혔어요 가져 올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말씀이
8절 그 산에가서 그 산은 백향목이 나는 것이 아니라 야산 같은 것 평범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이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성전의 의미는 건축 자재에 있지 않다 자재가 얼마나 훌륭하지 않아 하나님에게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보게됩니다
사실 성전의 핵심은 무엇이냐 하면 황폐해진 하나님에 선에 대한 송구스러움 죄송함 아픔 이런 것들이 있을 때 그게 성전의 핵심이지요
시편에서 우리들이 보았습니다마는 여호와께서 받으시는 제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물은 양도 소도 아닙니다 상한 마음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시편 51편 7절 파커 팔머라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왜 우리
랍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두라고 하지 않고 머리 위에 두라고 이야기 합니까? 그러자 랍비가 대답합 평생시에 사람들을 말씀을
들어도 그게 마음속에 안 들어간데 머리 위에 두라
살다 보면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하고 나의 자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
무너질 때 들어가 비로서 들어가 우리 가슴속에 들어간다 무너져서 깨지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서 열리는 마음 이게 은총의 도구여요
하나님이 말슴이 그 때 결실해져 오히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제물은 상한 마음이다고 그것 가기조 가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다는 것이어요
성전 건축의 자재가 중요하지 않아
시편 51편 17절 상한 마음 성전 건축의 자재가 중요하지 않아 평범한 그 산에서 나를 무엇으로 보는 것이야 성전의 화려함 건축 자재의 화려함 이것은 하나님의 관심 사항이 아니어요 그 속에 담겨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시작하려는 마음 하나님의 집이 황폐해 졌는데 이 집을 수리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스니다
제가 즐겨 인용하는 시가 있는데 함석헌 선생님의 님이 오신다는 시가 있습니다
님이 오신단다는 소리가 들여 옵니다 임을 맞이하는 설레임이 있습니다
님이 오신다 길 닦아 예비하자 내 집에 오시는 님으리 날 보러 오시는 님을 긎저 어찌 맞느냐? 집안 청소하고 이것을 해야되여
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 왔으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지고 청소를 깨끗이 하고 할 수 있으면 은 모래도 깔아 놓고 물도 뿌리고 오시는 이 맞아야지 참 좋은 마음이지요
님을 기다리면서 그저 잤고니 이것 저것을 온 방인 하투루 늘어놓아 그저 앉으실 곳도 없이 했구나
늦잠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정말 일어나서 허둥 지둥거리는 것이야 그런데
그런 날일 수록 왜 그리 어지런 진 것이 많은 지 몰라 방안에 허트린 것이 있고 앉으실 곳조차 없는 것이야 쓸자 닦자 고치자
마음이 허둥 허둥하고 있는데 하면 할수록 묶은 먼지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천장에는 거미줄도 나 있고 저 길은 이렇게 풀들이
우거지고 야단이 난 것이어요
마음만 분주했지 다 마치지 못했는데 님이 오셨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이어요
아이구 님이 오시네 저기 벌써 오샤 이를 이를 어찌노 어딜 들어오시랄꼬 이 얼굴 이꼴 이 손은 아에
아 이를 어쩌노 어디 들어오라고 할 까 당황하고 있는데 오신 님이 이야기 하는 것이야
이 애 이 애 걱정 마라 나도 같이 쓸어주마 나 위에 슬 지 않은 그 방 내가 쓸어 너를 주고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담아주마
그러니까 중요한 게 무엇이냐 하면 나를 위해 닦지 않은 그 마음을 받은 것이야 니미 그러니까 그 분이 오셔서 내 집을 쓸어주고 나를 주겠다는 그 방을 너에게 주겠다는 것이어요
이 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밝히자면서 못 맑힌 맘 저절로 밝혀지고 나중에 맑아졌으니 내라곤 없소이다 님 곁에만 사오리
내가 나를 깨끗하게 하고 싶었는데 나는 못했어 그러나 깨끗하게 하려는
내 마음을 님이 보시고 오리려 나를 맑혀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셨어 그러니까 은총으로 사는 것이야 중요한 것은 얼만큼 깨끗해
시작하려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엣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게 아슬 아슬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솔로몬의
최대 치적을 이야기 할 때 성전 건축을 이야기 하지요 최대의 치적인 것은 맞으나 문제가 있어요 성전 건축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고 물자를 동원하다 보니 백성들의 삶이 피해해졌어 그렇지요
그래서 솔로몬이 세상을 떠났을 때 백성들이 느흐보암에게 이야기 아지요 당신의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왕상 12장 4절 당신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강제 노역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느흐보암이 그 말 안 듣지요 분단이 되지요 성전 건축이라는 것이 아름다운 치적처럼 보였지만 결국 분단이라는 것을 낳았어
그런데 성전 이전에 광야 공동체가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성전이
아니라 회막이라는 것이어요 회막을 만들어요 회막 건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언약이
맺어지고 그리고 그들이 이제 하나님에게 지시를 받은 것이 회막을 만들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6장 1절 그래서 탈출 공동체가 마음을 보아서 한 최초의
행위가 회막 만드는 것이어요 한 백성이 지어지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회막 건축은 바로 그런
것이었고 분단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가 되게 했어 그들을 통합했단 말이지요
회막 건축할 때 어떻게 했느냐 하면 백성들 모두가 기여를 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금은 붙이도 내 놓고 어떤 사람들은 아껴 두었던 좋은 가죽 같은 것도 내 놓고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실 조금 내
놓고 그러니까 각자가 할 수 있을 만큼 기여를 해요
그런데 이 공동체가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기여의 경중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어디 가 보면 건물 짓는데 돈 내놓은 사람 누구는 1억 크게 이렇게 누구는 5천만원 누구는 100만원 기타 등등 성경의 원리에 어긋나요
경중을 가리지 않는다 1억원을 냈기 때문에 큰 자리 차지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믿음의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 되어요 경중을 가리지 않았기에 기뻐 여기에는 기여라고 하는
것이 자발적으로 낸 것이어요 인색한 마음이 아니어요 자발적으로 냈고 경중을 가리지 않았어 이것이 사회를 통합했어요
성전 건출이라는 것은 잘 지었지만 백향목 가지고 돌 뜨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잘 지었지만 결국은 분단으로 귀착되는 일이 벌어졌고 우리는 참 두렵게 생각을 해야 되어요 요즈음도 성전 건축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이 많아요
정막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배당 잘 짓는 일도 매우 중요하나 회막
건설이 예2배당 건축의 핵심 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발적으로 기여하고 경중을 가리지 말고 어떤 사람이 성전 건축하는데 3억원을 내
가지고 공로패 이런 것 하지 말고 돈 많이 낸 사람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야 이런 것 하지 말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금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학개 1장 8절 그 산에 올라가라 그것을 가지고 성전을 건축하라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영광을 얻으리라
여기 내가 기뻐하고 라는 말은 어떤 의미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바친 예물이 열납되었을 때 사용하는 단어여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주 기쁘게 받아 드린다 백향목이 아니네 그것 안 하신다 겨우 그것 가지고 왔어 그것 안 하신다
그 마음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고 그것 때문에 영광을 받으신다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므로 지금 하신 그 말씀을 확증하시는 것이지요 마치 도장을 찍는 것처럼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여의 겅중에
따라서 사람들 평가 안 한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핵심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9절을 보면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 왔으나 내가 부어 버렸노리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인 황혜하였을 때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9절은 6절을 변형한 것입니다 많이 뿌릴 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수확의 말씀을 6절의 말씀을 변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9절이 우리에게 일깨어준 말씀은 욕망을 중심에 둔 삶의 허망함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어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욕망한다고 하는 것은 결핍이
있기 때문이어요 내 속에 결핍이 있기 때문에 욕망이 벌어지는 것이어요 특별히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심리적 결핍입니다 마음 속에서
벌어진 결핍이어요 그냥 멀고 살만 한 대도 결핍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핍은 무엇이냐 하면 채움의 욕구여요 그런데 채움의 욕구라라고 하는 것은 내가 채워지기 남에게 줄 수 없어 그래서 배타적이야 배타적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고통 받는 타자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야 이것은 자기중심적이지
내 삶 속에 타자가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야 욕망에 사로 잡힌 사람은
우리가 믿음 생활한다는 것은 본 회퍼가 욕망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 내 욕망을 내 삶의 핵심으로 삼지 않고 사는 게 믿음의 삶이라는 말이어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어떻다고 말하느냐 하면 자기 배 채우는 일에 몰두했어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욕망이어요 그러나 적었어 그것을 집으로 가져 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다 어마 어마한 이야기가 여기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자기 중심적인 삶은 타자를 위한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요즈음 식으로 이야기 하면 이런 이들이 만들어진 세상은 각자 도생의 삶 내가 살아남아야 각자 도생이어요 각자가 생을 도모해야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살벌해 여러분 과거에 지금부터 50년 전에 우리는 참 가난한 나라였어요 50년 60년 전에 지금은 상당히 부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마는 가난했지만 비참하지는 않았어요 우리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요? 골고루 가난해서 그래요
남과의 비교의 대상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골고루 가난해 그러니까 골고루
가난하니까 그 때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정이 있어 배고픈 사정 헤아리고 그러니까 공동체가 살아 있는 것이야 가난해도 그런데 돈이
우리의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돈은 독점력이거든요
그러니까 돈이 들어간 곳에 공동체가 한결 같이 무너져 각자 도생의 사회는 공동체가 무너진 사회란 말이지요 이게 참 고통스러운데 그런 삶을 빈손이 되게 한다
1장 9절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읁 황혜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런 삶은 빈손이 되게 한다 집에 데리고 가서 불어 버리겠다
하나님이 어떻게 불어 버리겠어요 이런 것 아닐까요? 질병 예기치 않은 사고 재난 낭비 이런 것들이 그 집에 찾아오면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그것들이 다 사라지지 않아요 이게 하나님이 불어 버리셨다는 말일 것이어요
이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중심의 삶이고 타자에 대한 여지가 없도록 만들 때 그런 삶을 하나님이 후 불어 버린다 이게 무시 무시한 이야기여요 이 경고를 우리가 알아 들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지금 문제는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해 빨랐다 하는 말입니다
공적인 일 자기들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지향을 꼭 붙들지 않고 내가 살아남는 그 일에만 관심을 가짐으로 공동성은 무너지고 개인성만
강조된 사회 하나님은 그것을 타락한 사회로 보신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그 사회를 하나님은 아름답게 보시지 않는다
이게 본문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10절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절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돠 땅의 모든 소산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결국 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이 땅을 명하셔서 풀이 돋아나게 하시고 땅은 그런 역할을 감당했어요 죄가 들어오기 전에 땅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였어요
그런데 죄가 들어오게 되지 땅이 어떻게 되었어요 창세기 3장 18절
엉겅퀴를 내고 가시 넝쿨을 내고 이것이 성서에서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땅의 황폐라고 하는 것은 그저 지력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무엇과 연결시키는가 하면 인간의 죄로 연결시키는 것이어요
레위기 25장 4절 하나님은 땅도 쉬게하라 안식년 되면 땅도 쉬게
하라고 하지 않아요 안 지켰어 사람들이 성경은 무서운 이야기가 나와요 그들이 땅의 안식을 허락하라는 말을 안 하니까 하나님이
무엇이냐 하면 그 땅에 백성들을 이방 나라로 잡혀가게 했어
레위기 26장 34절 그러자 당이 안식을 누렸다 무시 무시한 이야기여요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여요
그러니까 땅의 황폐함은 인간의 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어요
10절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은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이슬 내려주고 비를 내려 주어야 농사를 짓는데 자기 중심성 욕망을
중심에 놓고 사는 너희의 삶의 결과 하늘이 닫혔다 땅은 산물을 그쳐요 그리고 그 땅에서 자라나던 모든 것들이 결국 잘 자라
보이지만 한재가 들었어 전부 결실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이 땅을 회복하시는 이야기가 나와요 인간이 하나님앞에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돌아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호세아 2장 2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에 응답하고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결국 이 문제가 풀리면 땅도 회복된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거든요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고백하는 신자들조차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숨결이 닿아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고 나의 욕망을 위해ㅓ 함부로 홰손하고 해친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여요
그래서 하나님이 믿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낌이야
이게 절제이지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가운데 절제가 들어가지 않아요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 9가지 열매 그 9가지
열매 가운데 우리 시대에 가장 회복되어야할 열매는 절제의 열매여요
나 좋을 대로 내 욕망대로 가면 땅이 황폐해 질 수 밖에 없어 우리가 정말 많은 것을 쌓아 올린다 하더라도 한재가 들어서 하나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관적 세계여요
12절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그들 스룹바벨 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들었고 선지가 학개 말을 들었어 왜 바깥 귀가지고 듣는 게 그게 아니고 이 때 들음은 순종입니다
들음이라는 말 속에는 순종이라는 뜻이 들어 있어요 듣는다고 라는 말은 그런 의미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학개가 집안 축신으로 보이는데 그 학개늘 총독도 그렇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받아드린 것이지요
이게 중요한 것이지요 진리를 향해 그들의 마음잉 열리는 것이어요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던어가 있는데 12절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두 번씩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함으로 하나님의 친밀하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여기에 표현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란 말은 그 하나님을 뜻하는 말인데 두 번이나 이 말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무저질번 했던 언약4이 다시 서게 되었다 라고 한 말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13절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메시지의 내용이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니 누구와 함께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는 이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어요
그러면 그동안 하나님이 보재하였다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셨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함께 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14절 여호와께서 스루바벨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절 그 때는 다리오 왕 제 2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냐 하면 마음을 감동 시키는 일이어요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었다고 할 때 그것이 르하흐이거든요 하나님이 그들 속에 숨을 불어 넣으신 것이어요 갱기를 불어 넣으신 것이어요
이 르하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람들의 마음에 무기력과 절망감과 무의미를 제거하고 그들 속에 무엇인가를 수행하고 싶은 마음의 열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어요 이게 하나님의 영이하시는 일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 속에 그 마음을 불러일으키자
14절 그들이 와서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먼저인지를 보여 주고 있어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신 것이 우선이고 그러자 그들이 와서 하나님의 전 공사를 시작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해 전입니다마는 여수에 있는 어느 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교회당이 참 예뻐요 참 좋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이야기 합니다 이 교회를 우리 교인들이 지었습니다 교인들이 이 교회를 어떻게 지어요
회사 출근하는 교인들이 퇴근하고 돌아와서 밤에 와서 공사를 하고 여
신도들은 밥을 짓기도 하고 자재를 날라주기도 하고 그래서 그 교회를 완성한 것이야 너무나도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은 것을 보고
마음이 감동인 되었는데 그들이 그 마음 속에 기쁨이 있기에 그래요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었기 때문에 그래요
서양의 속담 가운데 이런 게 있데요 성령 받지 못한 채 목회를 하거라 그런 말이 그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어요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생기가 내 속에 없으면 모든 게 고역이어요
그런데 내 속에 하나님이 영을 불어 넣으시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기쁨이 돼 그러니까 내 궁리라고는 없소이다 이 말이 정말이어요 경험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어요 성 어거스틴이 내가 하는 일이 온통
악 뿐입니다 더러 내가 선한 일을 한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내 속에서 당신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당신이 기뻐하는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내가 했어 그렇게 안 해요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냥 겸양 떠는 말이
아니라 아는 것이야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내 속에서 그분이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어요
하나님의 생기가 여러부느이 마음을 가득 채우면 좋겠어요 여기 있는
분들이 하나님의 생기로 일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은 알아 차려요 아 저 사람은 출발이 다른데 무엇인가 달라 이 느낌이 있어요
하나님의 생기를 가지고 호흡하기 땝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이 재건이 시작된 그 날을 다리오왕 이년 제 6월
24일 학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한지 석주 남짓 지났을 대 정말 빠르지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숨을 그들
속에 불어 넣었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을 바탕을 둔 삶이라는 것이 내 것으로 확보했더 하는데 하나님이 훅 하면 다 날라가 그런데
하나님이 훅 숨을 불어 넣으시면 우리를 신명나게 만들어요 하나님이 술을 불어 넣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3강 학개 2:1,9 영광이 머무는 성전
일년 365일 가운데 특별한 날들이 있나요 특별한 날자 크리스마스
결혼기념일 나도 여러 가지 있는데 2월 15일 나에게 중요한 날인데 생전 처음 교회에 간 날이지요 나는 청년 시절에 교회에 갔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다른 일 하다가 청년 시절에 갔거든요
그날이 수요일날이었는데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지요 그래서 2월 15일은 특별한 날이고 사람마다 특별히 기억는 그런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10월 27일이 중요합니다 2007년 10월 27일 성서학당이 시작한 날
이렇게 날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예언서 가운데
특정한 날짜를 탁탁 꼽아 가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학개서 밖에 없어요 우리가 학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학개가 소명을 받은
날자도 소상하게 나오고 성전 건축을 시작한 날도 나오고 다양한 날자들이 나오고 있는데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하게 된 것은 바벨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들어서면서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서 돌아오지요
그래서 귀환한 공동체가 돌아온 것은 주전 538년경으로 봅니다 돌아오자 마자 그들이 했던 일은 제단을 먼저 쌓고 그 위에서 제사를 초막절 제사를 드렸어요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이지요
그리고 성전을 건축하려 했으나 내외의 많은 반대에 부딪치고 방해에
부딪쳐서 성전을 짖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언제나 그래요 초창기의 열정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열정이 빠져 나가고 나면 환멸과
권태가 밀려오고 하는데 오랜 시간동안 성전을 짓고자 하는 그 마음의 열정이 사그라들자 사람들은 성전을 짓는 일 보다는 내가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해요 거기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몰두하면 행복한 일이 많이 벌어지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고 가뭄이 들고 질병이 다가오고 온갖 어려움이 역경이 지속되었던 것이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깊은 환멸 속에 빠져 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학개가 부름을 받은 것이어요 그 때가 주전 520년경 귀환 공동체가 돌아온지 18년 그 정도가 지난 다음에 학개가 부름을 받았고 그 때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유다 왕을 가지고 말하지 않고
1절 다리오왕 제 이년 여섯째달 초 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했다
2장 일곱째달 그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했다
일곱째 달입니다 7월 2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 임했는데
7월이라는 달이 매우 의미 있는 달입니다
이 7얼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를 할께요
일곱째 달을 히브리에서는 티슈리월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날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새 해로 시작을 해요
출애굽 사건과 관련이 되는 데 우리로 이야기 하면 1월 1일이 새해인데 이 사람들의 새해라고 하는 것은 티슈리월에 시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티슈리월이라는 시작되는 달의 첫날을 로쉬하사나라고 불러요
유대인의 새해 그 날을 새해라고도 하고 무엇이라고도 하면 나팔절이라고도 합니다 왜 나팔절일까요? 뿔 나팔을 부는 날이기 때문에 나팔절인 것이지요
여러분 뿔 나팔 본적이 있나요 뿔 나팔을 보면 사실 불기가 쉽지가 않다고 해요 그래서 이것을 장단에 리듬에 맞추어서 부는 것이지요 그 장단 고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요
뿔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시간이 시작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어요 뿔 나팔 소리는 어떤 소리이냐 하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부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쉬하샤라의 뿔 나팔 소리의 의미를
랍비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잠자는 자들아 깨어나라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고 회개하라
로쉬하샤라의 뿔 나팔 소리의 의미여요 사람들은 일상 속에 빠져서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망각하고 살지 않아요 우리도 그럽니다 일상에 일들 루틴한 일들을 하다
보면 내가 순례자라고 하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내가 더 나은 존재로 초대받은 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저 일상 속에서 하루
하루를 덫 없이 살아가기 쉽지요
그리고 우리 일상을 깨고 들려오는 뿔 나팔 소리는 너 잠자는 자여
이제는 깨어나라 그래서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고 회개하라 뿔 나팔 소리의 의미는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림자를 사냥하는 사람이 되지 말며 공허한 것을 찾느라 인생을 소비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뿔 나팔 소리가 담겨 있는 의미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내 삶이 여러분
일상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일상 데일이 라이프이지요 일상은 참 귀한 것이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 속에만 파
묻혀 살다 보명 방향을 잃기가 쉬어요
수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어요? 호흡이지요 호흡을 어떻게
합니까? 음파 음파 수영에서 중요한 게 호흡이지요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숨을 쉬기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물이 입에 들어오기
때문에 무서워하지요 수영 잘하는 사람은 아주 평안하게 수영을 하지요
그러니까 호흡이라고 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그 호습은 결국 무엇이냐 하면 일상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어요 저는 조금 시간이 나 가지고 외국에 나가면 수도원에 들어가서 머물 때가 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 있으면 참 좋아요 왜냐하면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회하고 점심 전에 기도회하고 저녁 먹기 전에 기도회하고 잠들기 전에 기도회하고 네 번 정도 드리는 그 기도회 리듬이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중간 시간에는 일도 하고 독서도 하고 하는데 기도 시간이 되면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중단하고 기도에 동참해야 돼 그 리듬이 내 속에 베게 될 때 호흡이라고 하는 게 그런 것인데 우리는 살다 보면 일상의 코를 박고 사는 것이지요
무엇이냐 하면 호흡이 잘 안되기 때문에 수영할 때 호습이 안 되면
어떻게 되지요 숨만 차고 힘들고 가라 앉고 우리 삶이 그런 것이어요 호흡이 잘 안되기 때문에 자꾸만 우리 일상 속에서 이런 삶을
살게 되는 데 이 뿔 나팔 소리는 그것을 돌이키라는 말이지요
그 날은 너의 영혼을 들여다보라 자기 영혼을 들여다 보는 날이어요 그리고 너의 악한 받법과 생각에서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용서하실 것이야
뿔 나팔 속에 담겨 있는 뜻이 그렇게 오묘합니다 인간은 기호를 다루고 상징을 다루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 뿔 나팔 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원점으로 돌아오도록 하고 있어요
이런 기도를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향심기도 (관상기도)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의 마음을 무엇인가를 향하는 것이지요 무엇인가를 집중하는 그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냥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어요
침묵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리내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곳에 현존해 계신 하나님을 그냥 느끼고 앉아 있는 것이어요 그러면 여러분 우리 마음이 집중이 되어요
여러분 경험은 어떻던가요 나는 목사이고 항심 기도를 훈련함에도
불구하고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다른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것은 어쩔 수 없어요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 마음에
통합성이 깨져 가지고 그런데 분심이라고 그래요 늘 그게 찾아와
우리가 흔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예배 드릴 때 예배에 집중해야 하는 데 내가 자동차를 잠그고 왔던가 무엇인가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아요 예배를 방해하지 않아요 이것이 분심이야
그런데 이 분심이 우리 속에 떠 오를 때 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하면 시크리트 워드라고 하는 것을 정하는 데 성스로운 언어를 하나를 택해요 어떤 의미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 평화 생명 그런 말을 자기가 정해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 마음에 다른대로 떠 돌아 상대가 다리가 많이 아프겠다 하는 생각이 떠올라 그 때 평화라는 말을 내 마음을 세크리트 워드인 내게 평화라는 말을 평화 내 마음을 원점으로 갖다 놓는 것이야
마치 깃털이 내려 앉는 것 처럼 내 마음이 원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필요한데 뿔 나팔 소리라는 것이 너희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져오라 그것이 뿔 나팔 소리의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7월 티수리월은 매우 중요한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7올 1일 로쉬하나아라고 하고 열흘이 지난 다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절기가 돌아옵니다
욥 키르로하고 하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 말로 번역한게 대 속죄일 이게
7월 10일 날 그래서 그 날을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데이스 오브 워라고 하는 데 두려움의 날이어요 하나님 앞에 내
삶의 무게를 달아보고 하나님앞에서 지금까지 지었던 모든 죄를 속죄함 받아야 하는 날이어요
경건해야만 하는 그 날이 대 속죄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 일곱째 달은 매우 중요하고 대 속죄일이 지나간 다음에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 게 초막절이어요 초막절은 그 때 시작이 되어요
그러니까 티쉬리월이 굉장히 중요하지요 그리고 티쉬리월의 초막절의
마지막 날이 7월 21일이 됩니다 초막절의 마지막 날이 그 날은 토라를 암송하거든요 오늘 학개에게 그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날이
언제이냐 하면 일곱째 달 그달 21일 7월 21일 초막절이 끈나는 날 절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 너는 스알디알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우리는 이 말씀을 1장 1절에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할 대상들이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 남은 백성들입니다
3절 너희 가운데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전 성전은 어떤 것이어요? 솔로몬 성전 솔로몬 성전이 바벨로니아에 의해서 무너졌거든요 이전 성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이가 제법 많은 사람들 나이가 많겠지요
숫자가 많지 않더라고 이전 성전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기 스룹바벨이 만들어가고 있는 이 성전은 규모면에서 보면 보잘 것 없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레바논의 있는 백향목을 가지고 와서 지은 이전의 성전과 그들이 잘 알고 있었던 평범한 산에서 가지고 온 나무로 만든 성전은 달라요 그것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전 성전은 다윗 왕 때부터 모아놓은 재화로 마음껏 활용하면서 왕실에 적극적 도움을 받으면서 지은 것이 이전 성전이었지요 거기에 비하면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조건 속에서 짓는 두 번째 성전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에스라서를 보면 그 성전을 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에스라 3장 12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에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이전에 그 영화로웠던 성전을 생각하니까 마치 이게 초막처럼 너무 초라해 보인 것이어요 대성통곡을 했다 그런데 학개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3절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는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규모의 문제 그들을 사로 잡고 있는 것은 규모의 문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 이전에 성전이 이러다면 지금 성전이 이러니까 초라하다고 합니다
사람이기에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굉장한
건물을 보면 굉장한데 규모가 주는 느낌들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사실 인간이 주고 있는 숭고함이라고 하는 미락적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압도적인 큰 것 앞에 섰을 때 숭고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은 백층 넘는 건물도 있고 하지만 고대 세계의 쿠푸 왕의 피라믿과
같은 것들을 압도적인 높이와 크기를 바라보면 우아 숭고함을 느낀단 말이어요 그런 것들이 그렇지요 예를 들어서 히말라야 있는 안나
푸르나 봉 앞에 흰 설상 앞에 서는 순간 오아 이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어마 어마한 것을 짓고 싶어하는 크기에 대해 압도되는 느낌을 주고 싶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학개를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중요한 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고 말합니다
헤롯 대왕에 의하여 재건된 그런 성전을 바라 보면서 아 돌 하나가 이렇게 크다니 제자들이 놀랜 것이어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삼일 안에 짓겠다
제가 담임하고 있는 청파 교회가 교회 지어진지가 올해로 꼭 40년입니다 40년 되었는대요 그래서 예배당을 봉헌하는 예배에서 제 전임자인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때 설교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이 성전을 허물라야
교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예배당을 지었어요 그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이 성전을 허물라 이 본물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야 놀랍지 않아요 우리가 여기에 사로 잡히면 안 돼
교회는 건물이 아니야 그 이야기를 그 목사님이 하시고 싶었던 것이어요 대단한 목사님이셔요
그 목사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우리가 헌신했지 우리 예배당 이렇게 안 하고 더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마가복음 13장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갈 때
제자중 하나가 주님께 말합니다 선생님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면 이 성전이 어떠 하나이까 네가 이 큰 성전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 지니라
주님에게 중요한 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있으면 초막이라고 해도 거룩한 공간이고 아무리 대단한 건물을 지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면 그것은 죽은 건물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지금 학개를 통해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어요
4절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수룹바벨아 스스로 굳게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가 스스로 굳게세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당의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
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굳세게 라는 구절이 3번 반복되고 똑 같이 여호와의 말이 세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글쓰는 사람에게 가장 피해할 단어가 반복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지적을 받고 왔는데 이 단어가 반복되고 있지 않아요 고치고 왔어요
그런 엄중한 비평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글쓰는 사람이 피하여 할 것이 반복인데 어떤 때는일부러 반복합니다 아내가 이것은 반복인대요 하면 일부러 반복하는 가닭이 있지요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반복할 때가 있지요
굳게게 하라는 구절과 여호와께서 함께 하니라는 말씀이 세 번식
반복되어서 함으로 힘을 내서 일하라 규모의 의기 소침하지 말아라 다시 말하면 작은 시작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이 작다고 생각해서 부끄러워서 일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머리 속에 포부만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미얼 죤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어요 좇은 뜻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아직 그 뜻을 펼치기에 내 역량이 적었어 교회가 그렇습니다 교회가 커지면 좋은 일 할
것이야 여러분 교회 커져서 좋은 일 할 수 없습니다 뜻이 있어야 아주 작지만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는 압니다 굶주린 군중들을 바라
보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마가복음 9장 13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먹을 것을 사지 아니호는 할 없사옵니이다 하니.
그것 가지고 오병 이야기의 결론 이야기가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였다 모두 만족했다 작은 시작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교회가 작다고 우리는 규모가 작아서 못해요 그것이 아니고 어떤 일을 내가 할 수 있을만큼 시작하는 것이어요
테레사 수녀님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이제 성녀가 되었습니다 마는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테레사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수녀님 수녀님이 돌보고 있는 이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기는 한데 세상에는 고통을
받은 사람은 많은 데 돌몸을 받는 사람은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데테레사 수녀가 이야기합니다.
맞아요 자매님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작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켄지스강에서 한컵의 물을 덜어내는 일 밖에 안 될 것이어요. 하지만 겐지스 강물은 한 컵 만큼 줄어져 있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어요
우리가 세상의 고통의 문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한 줌의 물을 덜어내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 되어요
성전이 초라하다고 울지 말아라.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라. 하나님이 함께 하면 적은 것이 문제가 안 된다 이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그 메시지 속에 무엇이냐 하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가 반복되고 있어요
5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지니라
두 가지가 함께 있어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맺은 언약의 말이 함께 있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있어 그것이면 되었지 그것이면 되었지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비젼이 에스겔이 깜짝 놀란것이
11장 23절 하나님의 영이 성전에서 빠져 나와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어요 형해만 남은 것이야 아무리 근사한 건물 지어 놓은다 할지라도 그것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어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머물느냐 이 작은 시작을
격려하면서 하나님이 학개를 통해 하신 말씀은 두가지이지요 언약의 말씀이 너희와 함께 있다 나의 영이 함께 있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
말라 작지만 생명력 있는 성전이 될 것이다 합니다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들 가운데도 규모가 작은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가 있다. 그것 밖에는 없어 그러니까 큰 교회라고 해도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있다면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큰 교회라고 해도 작은 교회라도 마찬 가지입니다
거꾸로 말을 할 수도 있어요 작은 교회인데도 언약의 말씀이 없고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거꾸로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겸허하게 가야만 합니다
6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가까운 미래에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개입하실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뒤 바꾸어 놓을 그런 때가 온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시대였지만 역사의 새로움은 인간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개입에서 일어난다 하는 것입니다
1989년이지 1990년인지 기억을 하는데 제가 학교 교목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을 때인데 어느 교회 예배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이 기도해요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도저히 무너지지
같지 않던 저 동부권의 장벽들이 샤베레리아서 불어오는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오자 무너져 내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이어요 베르린의 장벽이 무너지고 오랫동안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막을 내리는데 그렇게 급격하고 공산주의가 몰락할 지는 아무도 모른 것이야 하나님의 바람이 한번 불어 오니까 와르르 무너진 것이어요
그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것이구나 하나님이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
시킨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인간의 계획 속에 역사가 있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인생의 역사가 개입되고 있구나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절망 처럼 절망처럼 느끼는 대서도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낙심하지 않고 절망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꽃 하나를 들 줄 아는 사람이어요
7절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에 보배가 이르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모든 나라를 진동 시키고 그래서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를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의도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파괴 될 때 성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약탈 당했지요
성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약탈당했습니다 성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약탈당했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로 이야기하자면 솔로몬의 황금시대가 막을 내렸다 하는 뜻이거든요
솔로몬의 황금 시대가 막을 내렸어요 그런데 지금 나라가 망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내가 세상을 진동 시킬 것이고 나라들도 진동 시켜서 결국 어떻게 한다고 이야기 합니까?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를 것이다 이전에 흩어졌다고 한다면 나라들의 보배가 이곳을 모여 들게 될 터인데 새로운 영광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작지만 초라하다고해서 낙심하지 말아라 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통하여서 온 민족이 하나님에 이를 날이 다사올 것이다 학개는 이렇게 가슴 벅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시대가 열리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차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7절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절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절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8절부터 9절까지도 무엇 무엇이니라 하고 선언한 다음에
후렴부처럼 선언한 말이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마치 성 삼위 송영을 부르는 것처럼 당신이 일으키실
사건이 틀림없는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지금은 초라해 보이지만 금도 나의 것 은도 나의 것
하나님의 영광이 그렇게 드러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그런 영광이 가져온 세상의 모습은 무엇이냐 하면 샬롬의 세상
평강의 세상 결국은 이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샬롬이 세상을 가득채우게 될 것이다 작지만 생명력이 있을 때 그 속에 언약의 말씀이
함께 하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면 결국은 그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샬롬이 빛살처럼 번져가게 될 것이다 학개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제4강 학개 2:10-23 거룩은 전염되지 않는다
성경 한 권 한 권을 끝날 때마다 마음속에 기쁨이 있어요. 아 그래도 하나를 통과해서 내가 지나가고 있구나 하는 이야기 벌들이 일 벌 한 마리가 평생 모을 수 있는 꿀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반 스푼 정도 평생 몇 만 송이에 꽃을 찾아 다녀야 그만큼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제 꿀벌들이 하고 있는 일은 꽃에게도 좋은 일이지요 왜 그래요 꽃이 가지고 있는 꿀을 가지고 가지마는 꽃의 수분을 돕는 역할을 하지 않아요
우리가 어떤 성경책을 읽어가고 통과해 나가면 벌의 다리에 꽃 가루가
묻어 있어서 우리가 무엇인가 잉태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신앙 가운데 가장 슬픈 신앙이 불임의 신앙이어요
무엇인가 생산해 내고 탄생시켜야 하는데 오랫동안 다니기는 했는데 그냥 그런 것이지 슬픈 것이지요
성경책 한 권을 끝내고 나면 우리 내면에 무엇인가 잉태되기를 소망합니다
10절 다리오 왕 제 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게에게 임하니라
아홉째 달 이십 사일 특정한 날이 등장하고 있지요
2장 1절 일곱째달 곧 그달 이십일일에 초막절이 끝나는 날로 이야기
했는데 아홉째 달 이십사일 두달 남짓 지난 다음에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 날로 학개에 하신 말씀이 그쳐요 그
이후에도 학개에게 어떤 말씀을 사신지 모르지만 기록에 의하면 이것이 마지막으로 등장합니다
나중에 스룹바벨에 대한 신탁이 있지만 같은 날이거든요 두달이 지난 다음에
11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제사장들이 하는 일들이 어떤 일들이 있지요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도에 따라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제사뿐만 아니라 제사장에게 요구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분별하는 일이어요 어떤 것이 거룩한지 불결한 것인지 분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카도릭 같은 대서는 분별이라는 말보다 식별이라는 단어를 쓰거드뇽 이것과 저것을 알아차리는 일이지요
고전 2장 10절 여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성령의 은사 가운데도 중요한 은사가 영를 분별하는 은사입니다
이런 것 아세요 제 후배 목사 책을 읽다가 매우 재미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진자 휘발유여요 그러니까
진자에다가 조금 다른 것을 섞어서 가짜 휘발유를 만들어요
왜냐하면 진짜 휘발유가 많이 안 들어가면 사람들이 즉각 알아 차리거든요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하면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가져다 쓰면서 자기들의 나쁜 견해를 집어넣어가지고 퍼트리는 사람들 이것이 가짜 뉴스이거든요
이게 가짜 휘발유를 만들어 가짜에 진자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 진짜여요
그런 것을 우리가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사이비 아닌데 그런 것처럼
보이는 사이비 비슷 사자야 비슷한데 아니야 가자가 너무 많아요 세상에 b가짜 뉴스도 많고요 그 뉴스에 사람들이 속아가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그 속에 진자가 많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예를 들어서 90퍼센트 사실에 10%에 가짜가 섞여 있으면 그것이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가짜여요 영적 분별력이 중요한 것은 그 10%가 모든 것을 망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하신 이야기를 기억하는데 어떤 종교적 현상이 종교적
열정이 교회를 부흥 시키는 데 열 개의 공적이 있는데 그 중에 90프로의 공이 있다고 해도 그 종교적 열정이 10 퍼센트의 페해를
가져 온다면 사람들은 90을 취하지요
이것이 효과적이기까 그 목사님 이야기가 그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 10%가 그 종교적 부정적인 요소 이것을 삼키고도 남아 정말로 그래요 꽁 잡는데 메라고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 10%가 전체를 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런 말을 우리가 들어 보았지 않아요 똑 같은 분별을 해 주어야 해요
분별을 해 주어야 해 이것이 옳은지 틀린지
그러니까 제사장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분별하는 일인데 무엇을 분별하라고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12절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상상을 해 보세요 세마포 같은데다가 고기를 샀어요 하나님에게 바칠 거룩한 고기를 쌌습니다 그런데 그 옷자락이 만약 떡에나 국에는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다았으면
옷자락에 싼 성물 거룩한 것 때문에 이 옷자락에 접촉했던 기름이나 포도주가 거룩하게 변하겠느냐
12절 답은 무엇입니까? 제자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이다 하는지라
어떤 거룩한 곳에 접촉했다고 해서 내가 거룩한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분별을 하게 되는데
13절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 진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성서의 세계에서
제사장은 분별을 하는 사람인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요 속된 것을 구별을 해요 구별의 기준으로 매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거룩한 것은 생명에 가까운 것이고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지오 그래서 부정하다고 하는 것은 속되다기 보다는 부정한 것은 무엇과 관견이 되느냐 하면 생명이 아니라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멸할 수 밖에 없는 사멸의 운명을 타고난 것들 이런 것들이 부정한 것으로 취급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멸할 것이 아닌 생명이 거룩함에 속하기 때문에 그래서 제사장들이 하는 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경계를 지켜 내는 일이었어요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도 중요해요 사람의 집 벽에도 무엇인가 부정한
것이 생겨나지 않았는지 그 경계를 지키기 위해서 제사장들이 노력을 합니다 피부라고 하는 것도 피부에 종양 같은 것들이 나서
투병하다가 나아지면 제사장에게 가 가지고 완치 되었는지 보여주고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어요
레위기 14장 2절 나병환자가 정결한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거룩한 것과 접촉했다고 해서 나는 거룩해 지지 않아요 그런데 부정한 것과 접촉했을 때는 부정해 지지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참 놀라운 분인 것은 무엇이냐 하면 부정해지는 것이 좋아요 꺼림직한 일이지요 부정해 진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나환자라든지 이런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물러서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의 부정을 감염시킬 까봐 사람들에게 갈 때에 입을 가리고 말하는 것이지요 불결 불경 여러분 병의 고통도 고통인데 자기를 불견한 존재로 세상앞에 말한다고 하는 게 얼마나 슬프겠어요
불결 불결하고 갈 수 밖에 없는데 예수님은 나 환자를 바라보면서 아 안 되었다 3미터 떨어져 내가 기도할 터인데 3미터 떨어져 그렇게 안 하잖아요 어떻게 했어요 그의 몸에 손을 데고 내가 말하노니 깨끗해 져라합니다
눅 5장 13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나으니라.
그게 무엇이냐 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부정을 주님이 자신의 것으로
수용한 것이야 그리고 정화 시키는 것이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어 했던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내가 사랑 받는 사람이라고 부정한 사람을 보면 피하게 되어요
주님은 무엇이냐 하면 그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셔요 그의 몸에 타치를 한단 말이어요 타치가 중요한 것이어요 타치한다고 하는게 그래서 오래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우리 후배 목사님이 있는데 아주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분이셔요
그분은 불경스럽게도 예수님을 걸레가 되신 주님 그렇게 말해요 걸레의
용도은 깨끗한 대에만 쓸 수 있습니다 바닥을 더러운 것을 닦으려면 걸레는 자기 몸에다가 더러운 것을 묻혀서 깨끗하게 하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사장들은 분별의 기준은 명확했어요
제사장들은 분별을 하는 자인데 그 분별의 기준은 명확하지요 내가
거룩한 것과 악수를 했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 지지는 않아 어떤 분들이 이야기 합니다 예수 믿으셔야지요 이야기합니다 나는 괜찮고
우리 아내가 잘 믿으니까 아내 천국 갈 때 메달려서 가면 된다고 그런데 그런데 거룩한 곳에 접촉한 다고 내가 거룩해 지지 않아
거꾸로 이야기 하면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내가 부정해져
그래서 사람들이 꺼려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은 무엇이냐 하면 꺼려지는 부정을 당신의 몸으로 받아 드림으로 정화시키는 것이어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이어요 부정하게 됩니다 하자
14절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에 모든 일도 그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야기입니까? 이 백성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부정하다 그들의
형편은 그런 것이어요 부정을 씻기 전에 하는 행동은 종교적인 행동은 소용이 없다 내 손에 숯 검덩이가 많이 묻어 있으면 상훈씨
먼지가 물었어요 털어주면 먼지가 털어져요 더 묻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이러하다 너희와 접하는 모든 것들이 더러워 지고 있다 하는 이야기 성전에 황혜함을 방치 한체 하나님 앞에 바쳤던 제물은 정결할 수가 없다 그 이야기입니다
예물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묻어 있는 때 때문에
그것은 부정할 수 밖에 없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배 행위가 매우 중요하지만 저는 예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십분
이해하고 정말 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늘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배 드리러 온 사람들 보고 어서 오세요 하고 마지하면 좋겠는데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혹시 기억이 나실는지 모르는데
이사야서 1장 11절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 불렀고 나는 수 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너는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여러분 교회를 다닌다고 다 신자인 것은
아니고 마당만 밟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어요 이것이 참 두려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복음 성가에도 그런 것 있나요 우리
입술은 주님 닮은 듯 하나 내 마음은 주님을 닮지 못한 일 입술은 주님을 닮은듯한데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은 주님을 닮지 못한 것이
있는데
내 마당만 닮은 이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이
13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하나님이 화가 나신 까닭이 어디 있느냐 하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고 말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데 동시에 악을 행해 그러면 예배를 망치는 것이지요 더럽히는 것이지요
내 손에 있는숯 검덩이를 가지고 사방 묻혀 놓는 것이지요 이게 그릇된 종교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제사도 바치고 나는 꽤 괜찮은 신자라고 자부하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니라
14절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에언자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하나님의 파토스에 사로잡힌 자라
파토스라고 하는 말을 정념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이어요 예언자는 무엇이냐 하면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마음일까
세상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일까 인데
예배드리러 성전을 찾아 오는 사람들을 예배드리기 위해서 나오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악을 행하고 있다면 이게 예배일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여러해 전에 조지아라는
나라와 아르메니아라는 나라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참 놀랬어요 조지아 사람들 정교회 신자들인데 아르메니아도 그렇고
정교회 신자들인데 가다가 십자가만 보이면 길을 건너가다도 여지 없이 이래요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어요 예배당에 들어가 보면 이콘들
앞에 촛불 켜 놓고 기도하고 이콘에 입 맞추고 앉아서 말씀 듣고 하는 것 보면 참 거룩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운전사들은 관광객들 속여 먹고 시장에
가면 시장 사람들 바가지 씌우려고 하고 오늘 교회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평형이 무너진 것 이것이 대단히 종교적인 것 처럼
보이는데 일상생활에서는 자기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것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그래도 나에게 예배하러 오니까 좋아 그렇게
이야기 하실까
이사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어요
12절 내 마당만 밟는다 외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진실되게 설 것인가
15절 복이 약속되고 있는데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위에 놓이지 아니한 때를 기억하라
오늘과 이전을 구별하여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전에 돌이 놓이던 날입니다 그러니까 이전과 이후를 한번 비교해 보라 기억하라라고 하는 것은 기억을 위해서는 인간은 늘 망각하는 동물이지요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알레테이야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어요 세상을 떠날 때 강을 건너가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강을 건너는 것처럼 표상을 하고 있단 말이어요
건너는 그 강을 스틱스강이라고도 이야기 하는데 레테강이라고도 이야기해요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너갈 때 강물을 마셔요 물을 마실 때 과거의 기억을 다 잊어요 레테는 망각의 강이어요
진리라고 하는게 알레테이야이어요 아라고 하는 것은 부정의 의미이거든요 그러니까 레스테이를 깨트리는 것이어요 알레테이라는 것은 진리를 비 은폐성 은폐되어 있던 것들이 드러나는 것이어요
은혜되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은혜 되었던 것들이 드러나는 것이 진리이다 기억한다고 하는 것은 망각의 우리의 기억속에 그것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오늘과 이전의 삶을 너희들이 반드시 기억하라 그래야만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을 진실히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어떤 복이 오는 지를
16절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주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고르 뿐이었느니라
성전에 기초가 놓이기 전에는 그렇게 수확이 빈약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수확이 빈약한 것이 있겠지만 가혹한 세금 정책 때문에 뜯기는 것도 많았겠지요 그런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거두어 들인다 해도 빠져 나가는 것이 많으면 독은 비게 마련이어요 진실된 예배를 드리기 전에는 빠져 나가는 대가 많았다
학개 1장 6절에 보면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운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보람이 없어요
9절 너희가 많은 것을 받았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 집으로 가져갔으나 불어 버렸느니라 이것이 인상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빠져 나가지 않아야 채워지는 데 빠져 나가는 것을 막지 않고
하면 안 된다 옛날에 오성과 한음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어요 제가 즐겁게 보었던 만화입니다 장난 꾸러기이거든요 오성과 한음이
오성인지 한음인지 모르겠는데 구멍이 뚫어진 독에 물을 다 채우면 무엇을 준다고 냇가에 가 가지고 물을 떠다가 막 집어넣었는데
되어요 안 되어요 안 되어요
오성이라는 자가 깨를 내어요 가만히 구멍 뚫어진 것을 메워 그리고 물 갇다 부으니까 차 오르게 되지 않아요 빠져 나가지 않게 해야지 하나님 없이 복을 누리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독에 물을 넣은 것 처럼 허망하기 짝이 없어요
과거의 삶이 그랬다는 것이어요
16절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 뿐이었고 포도주 틀에 오십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고르 뿐이었었느니라
17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니 너희가 내게로 돌아카지 아니하였느니라
맡 뻐잔 독처럼 살림이 고달파졌으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살므이 이 곤고함의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했는데 사람들은 자기를 돌이켜 성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18절 너희는 오늘 이 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말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어떤 이야기입니까? 성전 지대를 쌓기 시작하는 그 날부터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성전 건축에 가서 일하느라고 노동력이 부족할지 몰라도 오히려 수확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 빠져나가는 일이 적기 마련이어요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풍요의 상징이었던 나무들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 석류나무 그 나무들이 열매가 없었는데 오늘 이후에는 달라질 것이다 확신에 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 지대를 샇던 날부터 하나님이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 날을 기억해 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성전 지대를 쌓는 날은 어느날이어야할까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마음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우상이란 어떤 것들이 우상이었지요
출 20장 4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들을 본 따서 만든 것들이 우상이지요
진자 우상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영향을 미쳐할 그 자리에 우리 영혼의 핵심의 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와 독차지 하고 앉아 있는 것 그것이 우상이거든요
그 우상은 현대 세계의 우상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돈입니다 오똔
뷴운 아여가 했어요 현대 세계의 우상은 출세이다 출세를 위해 못할 일이 없어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끊고 친구들도 이용가치로
바라보고 그러면 내가 아무리 교회를 내 마음에 지성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돈이어요 출세여요
우상 숭2배하고 이 우상을 척결해야 합니다 다시금 하나님이 내 마음에
중심 속에 들어오셔서 좌정하시도록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우리 마음 속에 모셔 드리기 위해 그림을 품고 다가설 때 학개
시대의 성전 지대가 놓이는 것과 같은 것이야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그 우상과 결별하고 내 마음의 핵심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그분과 맺은 언약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어떤 이웃의 사랑의 마음들이 내 마음속에 회복될 때 그 때는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 같은 풍요의 상징의 나무들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이다 말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내 삶이 왜 이렇게 곤고할 까 생각하면서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야 되어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성전의 지대가 놓이기 바랍니다
마지막에 스룹바벨에게 약속이 등장하는데
20절 그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1절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절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자를 엎드려뜨리리니 말과 그 탄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려 지리라
23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세상에 가장 힘 있어 보이는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연약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내 종이라 일컷는 스룹바벨을 내 세우실 때 하나님이 마치 그를 도장처럼 그를 통해서 일하실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다양합니다. 종교인들도 있지만 때때로 정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종으로 일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나의 일이 아니하 하나님이 생각하신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바로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나를 복되고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우리의 삶이 황폐해 진 것이 아닌지 채워도 채워도
만족이 없었던 것은 내 마음속에 그릇된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그릇된 주인을 내 쫓고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 모셔 들여서 마치
학개 시대에 성전 지대가 놓이는 것 처럼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 때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나무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그렇게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복된 역사에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더 찬미하고 우리의 삶이 이웃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