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Haggai) 08-16-2023(수) 여호와의 축제, 나의 절기


학개서 (Haggai) 성경공부


성경본문:    학개서 2:1-9


1. 학개서 서론(序論)

■  학개서의 이름
학개서는 성전건축에 관한 책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선지자의 이름을 따라 ‘학가이’(יגח: ‘축제, 잔치, 나의 기쁜 향연’)이라고 했습니다.
70인역 성경(Septuagint)의 이름은 ‘악가이오스’(ΑΓΓΑΙΟΣ)입니다.
한글성경도 선지자의 이름을 따라 ‘학개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학개서의 저자와 기록연대
학개는 선지자 스가랴와 총독 스룹바벨과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1:12, 13, 2:1, 20).
학개서의 기록연대는 페르시아 왕 다리오 1세(주전 522-485)가 팔레스틴을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  학개서의 기록목적
기록목적을 요약하면, ① 일어나 성전을 재건하라는 것을 알려 주고, ②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안일함을 책망하고, ③ 새로운 용기와 격려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  학개서의 주제와 중심사상
학개서의 주제는 ‘성전을 재건하자!’는 것입니다.
중심사상은 ① 하나님께 대한 예배생활이 모든 삶의 우선이며, ② 그리하면 축복과 번영이 오리라는 사상입니다.


2. 학개서의 본론(本論)

학개서는 포로생활 후에 예루살렘에 귀환한 백성들을 향해 “성전을 재건하여 하나님 경외하기를 소홀하지 말자!”라고 외쳤던 메시지입니다.
그의 메시지를 간략하게 구분하면,
1:1-15까지는 ‘성전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고(무관심에서 성전 재건으로), 2:1-9까지는 성전 재건을 하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라는 격려와 약속의 메시지(낙심에서 성전 재건으로), 2:10-19까지는 정결한 제물의 생활을 하게 되면 복이 임한다는 메시지(오욕에서 축복으로), 그리고 2:20-23까지는 스룹바벨에 대한 미래의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첫째, “성전을 재건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1:1-15)
    (1) 2절에서 백성은 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라고 말합니까?
    (2) 그들이 많이 뿌리는데 어떻게 수입이 적을 수 있습니까?
    (3) 하나님은 백성에게 무엇으로 전(殿)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십니까?
    (4) 하나님의 전(殿) 역사가 어떻게 되어졌습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귀중함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전에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옵니까?

둘째, 성전 재건에 대한 격려와 약속의 메시지(2:1-9)
    (1)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예수아)는 그 당시에 무슨 직책의 사람들이었습니까?
    (2) 7절에 “만국의 보배”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3) 9절에 “이 전(殿)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은 어떻게 마음에 평강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습니까?

셋째, 정결한 제물의 생활에 대한 축복의 약속(2:10-19)
    (1)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모든 일들이 부정하다고 말씀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은 백성들의 완악함을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3) 하나님의 축복은 유다 백성들에게 어떤 모양으로 임합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은 삶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비결을 깨달으십니까? 현재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넷째, 스룹바벨에 대한 미래 축복의 메시지(2:20-23)
    (1)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 열국의 보좌를 엎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복 주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셔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께 당신을 드립니까?


3. 결론(結論)--학개서의 핵심적 교훈
학개서의 핵심적 교훈은, ① 성전 건축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수정해야 하며, ② 자신의 소유를 살피므로 영적 성전에 대한 건축도 가르칩니다.



*생활적용과 기도(祈禱)
1. 주님!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함과 거룩함으로 예배하게 하옵소서!
2. 주님! 우리에게 하나님의 한없는 평강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3. 주님!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 자녀 삼아주심을 늘 감사하게 하옵소서!


*학개서가 예언하는 그리스도
1.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
2.    만국의 보배 (2:7)



08-17-2023(목)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만국의 보배(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I will shake all nations, and the desired of all nations wi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says the LORD Almighty.

만국의 보배(the desired of all nations)

헤므다트 콜 학고임( חֶמְדַּת כָּל־הַגֹּויִם)

보배(2532) 헤므다(chemdâh) חֶמְדָּה 

1. 바람,  2. 기쁜 것,  3. 기쁨
발음 / 헤므다[ chemdâh ]
관련 성경 / 사모하는 자(삼상 9:20), 아끼는 자(대하 21:20), 은총을 입은 자(단 9:23), 귀한 땅(렘 3:19, 12:10), 은총을 받은 사람(단10:11,19), 보물(단11:38,43). [형] 좋은(창27:15, 단10:3), 보배로운(스8:27), 귀한(대하36:10, 렘25:34), 아름다운(사2:16, 단11:8, 나2:9), 기뻐하는(겔26:12). 보배의(호13:15, 학2:7).
구약 성경 / 16회 사용

만국(3605. 1471)

3605. 콜( kôl)  כֹּל

1. 전체,  2. 모두,  3. 온통.
발음 [ kôl ]
어원 / 3634에서 유래
구약 성경 / 5408회 사용

* 3634. 카랄(kâlal)  כָּלַל

1. 완성하다,  2. 왕관을 쓰다
발음 / [ kâlal ]
관련 성경 / 온전하게 하다(겔 27:4, 11).
구약 성경 / 2회 사용




1471. 고이(gôwy)  גּוֹי

1. 국민,  2. 이스라엘 사람들,  3.이스라엘 이외의 민족들
발음 / [ gôwy ]
어원 / 1465와 동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임[‘한 덩어리가 된다’는 뜻에서]
관련 성경 / 나라(창 10:5, 민 14:12, 시 83:4), 여러 나라(민 14:15), 민족(창 12:2, 신 4:34, 수 23:13), 고임(창 14:1), 만민(창 18:18), 백성(창 20:4, 수 3:17, 사 60:12), 국민(출 34:10), 족속(창 48:19, 출 33:13), 이방나라들(출 34:24, 레 26:33, 45), 주민(레 18:28, 합 2:8), 이방인(레 25:44, 느 5:8), 나라 사람(신 4:6), 무리(왕하 6:18), 이방 사람(왕하 17:8), 만국(대상 16:35), 만방(사 2:2), 대적(사 18:2), 조상(겔2:3), 이방 신(말 1:11).
구약 성경 / 556회 사용

* 1465. 게바( gêvâh) גֵּוָה 

1. 몸,  2. 신체, 3. 욥 20:25.
발음 [ gêvâh ]
관련 성경 / 몸(욥 20:25).
구약 성경 / 1회 사용


만국의 보배(the desired of all nations)가 무엇일까요?

보배(헴다트.  חֶמְדַּת)는 문자적으로 '열망' 또는 '사모하는 것' 혹은 '귀중한 것'을 말합니다.
보배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Jeromem R. L. Aldon)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전에 임하실 때 온전한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둘째는 은과 금과 같은 귀중한 것(70인역, P. A. Verhoef,  Von Orelli, Calvin)
만국이 가져오는 재물로 지은 하나님의 성전의 영광이 이전의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울 것임을 시사합니다(9절).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나 한 가지 흐름을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취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도래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 구절의 '보배'를 그리스도로 해석하든 재물로 해석하든 간에 그것은 기독론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T. V. Moore).

때가 이르면 열방들은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바라보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 재물을 가지고 오게 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스룹바벨
스가랴 4:6-10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7.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스룹바벨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베드로전서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베드로전서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시편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새번역 / 또 내가 모든 민족을 뒤흔들어 놓겠다. 그 때에, 모든 민족의 보화가 이리로 모일 것이다.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현대인 / 모든 나라를 뒤흔들어 놓겠다. 온 세상의 보물이 이리로 굴러들어올 것이며 내가 이 성전을 영광으로 충만하게 할 것이다.

공동번역 / 뭇 민족도 뒤흔들리라. 그리하면 뭇 민족이 보화를 가지고 오리니, 내가 내리는 영광이 이 성전에 차고 넘치리라. 야훼의 말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못되어 공사는 또다시 중단됩니다.
그것은 이 성전의 위세가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다시 학개를 통하여 비록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이 예전의 솔로몬 성전만큼은 못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더 크게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계속 재건해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개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이 어떤 외형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진실한 믿음에 있으므로 낙심치 말고, 실망치 말고 계속 성전을 재건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인간의 판단은 그 대상의 외모를 기준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석이 놓여질 때 이전 솔로몬 성전의 위용을 기억하고 있던 많은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큰 슬픔과 실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 학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하는 말씀은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 구속사의 관점에서 희망찬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음으로 묻어놓고 이해되는 것을 자랑하며 내 삶의 자리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이전보다 더 거룩하고 견고한 믿음의 반석으로 다져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오 주여
오늘도 진실하게 하옵소서
늘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살믕의 임배로 마장차 도래할 메시아 사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정한 과거의 죄악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로 인하여 임하였던 재앙을 기억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함을 인하여 다시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내려 주실 구원의 축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신학주제]
계시의 점진성. 성전의 첫 유래는 모세 시대의 성막이었다. 그러다가 이것이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 고정적인 형태인 성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신약 시대로 넘어와서는 교회 형태로 바뀌었다. 이것은 외형적인 면에서는 규모의 축소나 형태의 단순화일지는 모르지만 그 성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성막이나 성전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셨지만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그리스도가 친히 성전으로 임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전이 갖는 의미는 구약의 성전이나 성막보다도 그 의미 면에 있어서는 더 크다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구약의 성전처럼 건물이나 형태의 외형적인 면에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신약의 성전은 건물의 의미를 초월하여 장차 메시야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신약의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의 날에 완전하고도 새로운 예루살렘의 형태로 임하셔서 성도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여기서 예루살렘이란 성과 성전의 의미를 둘 다 지니 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성막보다는 성전에, 성전보다는 신약의 교회에 더 완전한 계시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적교훈]
본장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심과, 또한 그가 성전으로 오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성전 중심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역시 성전을 통하여 성도들을 구원시킬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무엇보다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 : 제각기 살아 나갈 길을 꾀함




08-16-2023(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전을 건축하라(학개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Go up into the mountains and bring down timber and build the house, so that I may take pleasure in it and be honored," says the LORD.

전을 건축하라(build the house)
우베누 합바이트(וּבְנוּ הַבָּיִת)

전(1004) 바이트(bayithבַּיִת

1. 집,  2. 장막, 3. 왕하23:7.
발음 / 바이트 [ bayith ]
어원 / 연계형 בֵּית, 복수 어미활용 בָּתֵּיהֶם ,בָּתֵּיכֶם ,בָּתֵּינוֹ, 1129에서 유래한 약어로 보임
관련 성경 / 집(창 7:1, 레 14:35, 삼상 1:7), 권속(창 18:19, 레 16:6, 삼하 2:3), 궁(창12:15, 삼하7:2), 처소(창 24:31, 대하 5:7), 집 안(창27:15, 시55:14),전(출 34:26, 신 23:18), 옥(창 39:20, 삿 16:21,왕하 25:27), 간수장(창 39:21), 궁중(창 45:2,왕하 21:33, 에 7:8), 가족(창 5:22, 신11:6, 시 68:6), 족속(출 2:1, 레 22;18, 수 17:17), 식구(출 12:3), 안쪽(출 28:26), 가옥(레 14:55, 신 19:1, 사 5:8), 친정(레 22:13), 종족(민 1:2, 대상7:4), 지도자(민 25:14), 지파(수 22:14), 신전(삿9:4,왕하19:37, 대상10:10), 신당(삿17:5), 궁내(왕하10:5), 성전(왕하16:18, 대상29:3), 창고(왕하20:13), 궁궐(왕하 21:18, 대상 14:1), 성막(대상 9:23), 궁전(대상 17:1), 곳간(대상 26:15,사 22:8), 반열(대상 28:13), 내전(內殿)(대하3:13), 무더기(욥 8:17), 가산(욥 20:28), 국고(사 22:15), 딸(사 10:32), 부엌(겔 46:24), 집(미 2:2).
구약 성경 / 2036회 사용

건축하라(1129) 바나(1129)  בָּנָה 

1. 짓다,  2. 왕상 6:15,  3. ~위해 집을 짓다 / 렘 24:6
발음 / 바나[ bânâh ]
관련 성경 / 쌓다(창 11:5, 신 27:5, 애 3:5), 건축하다(민 32:37, 대하 6:2, 느 2:18), 만들다(신 20:20, 겔 27:5, 창 2:22), 세우다(룻 4:11, 왕상 11:38, 렘 45:4), 증축하다(대하 27:3), 짓다(욥 27:18, 전 2:4, 렘 35:9), 건설하다(시 122:3, 사 25:2), 건축되다(겔 36:33, 잠 24:3, 슥 1:16), 번성하다(말 3:15), 얻다(창 16:2, 30:3), 복구시키다(사 44:26).
[명] 건축(왕상 6:9), 건축자(왕상 5:18, 스 3:10).
구약 성경 / 373회 사용

판벽한(5603) 사판(çâphan) סָפַן 
1. 덮다.  2. 마루를 깔다
발음 / 사판[ çâphan ]
관련 성경 / 덮다(왕상 6:9, 7:3, 7), 준비하다(신 33:21), 입히다(렘 22:14), 판벽(板璧)하다(학 1:4).
구약 성경
6회 사용

기뻐하고(7521) 라차흐[ râtsâh ]   רָצָה 

1. 기쁘게 여기다,  2. 만족하다, 3. 니팔형 : 호의를 가지다
발음 / 라차흐[ râtsâh ]
관련 성경 / 기쁘게 하다(대하 10:7), 누리다(대하 36:21), 기뻐하다(대상 28:4, 시 44:3, 잠 3:12, 학 1:8), 은혜를 베풀다(시 85:1, 77:7), 즐거워하다(시 102:14), 기쁘게 받다(전 9:7, 렘 14:10, 겔 20:40), 베풀다(시 40:13), 드리다(미 6:7), 칭찬하다 (시 49:13), 연합하다(시50:18), 기쁘게 받다(레 1:4, 19:7, 22:29), 화합하다(삼상 29:4), 사모하다(대상 29:3), 은혜를 구하다(욥 20:10).
구약 성경 / 56회 사용





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은 선지자 학개의 첫 번째 설교로서 포로 귀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성전 재건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 바벨론 포로생활에서부터 고향으로 돌아왔던 귀환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는 여호와를 사모하는 열정은 식었고 무기력하여 현실에 안주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 영적 각성 운동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인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성전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전하는 전반부(1-11절)와 그 지시에 백성들이 순종하였음을 보여 주는 후반부로 내용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12-15절).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핑계로 성전 재건 사역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을 책망하시며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재앙이 임하게 되었음을 말씀하셨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의 마음을 자극하여 성전 재건 사역을 감당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성전은 이 땅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었으나 성전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공간적 위치로서 신앙의 확신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영접한 그리스도인이 곧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3:16-17, 6:19).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내가 있는 그 자리가 곧 거룩한 성전이 세워진 장소라는 것을 명심하고 내 삶의 주위를 거룩한 땅으로 회복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도 내가 세워야 할 성전을 바르게 세워 주위 사람들에게 삶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영적 경고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성전도 결국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의미를 지닌 예수의 모형이요, 그림자이며 예표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성전은 그 유래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성막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조건으로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그것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실 것임을 증거하는 표징으로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즉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제나 함께하시며 영원히 보호하실 것임을 보장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모세를 만나시고 백성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막과 성전도 단지 성막이 이동적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성전은 고정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다르지만 그 이외의 의미는 같다고 하겠습니다.

본장에 나오는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상 세 번 건립되었으나 성경에서는 에스겔이 본 환상까지 합하여 네 개의 성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에스겔 성전, 헤롯 성전 등이다.
결론적으로 이 성전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머리로 신약에서는 매듭짓고 있다. 따라서 이 성전에 출입하는 성도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교회 즉 성전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교회 밖, 즉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은혜의 시대 즉 신약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의 살아 있는 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떠난 성도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성전이 그리스도의 몸이듯이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일부분으로서 살아 있는 성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성전으로서의 삶은 결코 오늘날 이야기하는 교회란 건물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성전으로서의 삶은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와 봉사에 충실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본받는 삶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책망하셨듯이 바른 삶과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이 있는 교회의 활동은 거짓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 생활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도 항상 성전으로서의 의식을 갖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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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유다, 북 이스라엘 선지자 활동


이스라엘 /  아모스(B.C. 760 / 북 여로보암2세 때)
                  호세아(B.C. 760 /북 여로보암2세 때)
                  요나(B.C.760 /북 여로보암2세 때)

유다 / 요엘(B.C.597 / 남 여호사밧 때)
          오바댜(B.C. 848~841 / 남 여호사밧 때)
          이사야(B.C.700~680 /아하스, 히스기야 때)
          예레미야(B.C. 627~587 /남 요시야, 여호아하스,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때)
          다니엘(B.C. 605년의 1차 포로 / 남 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느부갓네살 때)
          에스겔(B.C.597년의 2차 포로 /남 여호야긴, 시드기야, 느부갓네살 때)
          미가(B.C. 627-586 /남 아하스, 히스기야 때)
          하박국(B.C.  / 남 여호야김 때)
          스바냐(B.C. 640~609 / 남 요시야, 여호야김 때)
          나훔(B.C. 663~612 /남 요시야 때)

포로 귀환 /  학개(B.C. 520-519)
                   스가랴(B.C. 520-475)
                   말라기(B.C. 430 / 다리오 2세 때)

니느웨 / 요나(B.C. 760 / 북 여로보암 2세 때)
              나훔(B.C. 663~612 / 남 요시야 때)

1차 포로 / 다니엘(B.C. 605년의 1차포로 / 남 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느부갓네살, 고레스 때)

2차 포로 / 에스겔(B.C. 597년의 2차포로 /남 여호야긴, 시드기야, 느부갓네살 때)

에돔 / 오바댜(B.C. 848-841 /남 여호사밧 때)

통일왕국시대

  사무엘   -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을 삼음 / 삼상 16:12
  나단      - 다윗의 간음을 책망함 /  삼하 12:1-12
  갓          - 다윗의 인구 조사를 책망함 / 삼하 24 11-19
  아히야   - 여로보암에게 북이스라엘을 세울 것을 예언 / 왕상 11 : 29-39
  앗도      -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  /  대하 9:29
 




학개

구분               구약
분류            소예언서
장수                  2장
기록 관련
기록자                  학개
기록 연대(추정)              B.C. 520년경
기록 장소           예루살렘으로 추정


학개(Haggai)는 구약성경의 37번째 책으로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예언서다.
'학개'라는 명칭은 '축제의, 절기의'라는 뜻이며, 기록자인 학개 선지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본토에 귀국한 유다 민족에게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것이 본서의 주요 내용이다.

기록자

본서의 기록자인 학개는 포로기 이후 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다.
유다 민족을 독려해 스룹바벨 이후 약 15년간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전 재건 역사를 마쳤다.
바사(페르시아) 왕 다리오 1세 제2년 6월부터(오늘날 8-9월에 해당) 9월까지 약 4개월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작성 배경

바사 왕 고레스는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을 정복한 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다 민족을 본국으로 귀환시키고 성전 건축을 명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착수하였으나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방 민족의 방해로 중단되었다.[1] 이러한 상태는 약 15년간 이어졌다.[2]
다리오 1세 2년(B.C. 520년경)에 학개 선지자는 스가랴와 함께 백성들이 하나님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마음을 모으고,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자고 촉구했다. 모두의 노력으로 성전은 공사를 재개한 지 4년 만에 완공되었다.[3]

학개의 내용 구성

장절     때(다리오왕 2년)        내용
1장          6월 1일     성전 건축을 격려함
2장 1-9절         7월 21일     새 성전의 영광
2장 10-23절         9월 24일     정결한 삶의 축복

선지자 학개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백성들이 열심히 일해도 궁핍한 이유가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한 것을 보고도 자신들의 집만 돌보았기 때문임을 일깨웠다.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들은 이들은 마음이 뜨거워져서 6월 24일에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함께하시겠다고 격려하시고 새로 건축한 성전이 솔로몬 성전보다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더불어 이제부터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바벨론 포로시대와 바벨론의 멸망

남 유다왕국이 망하면서 유대인들은 4차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1차 포로 / B.C. 605년다니엘을 포함한 왕족들귀족 계급이었고,
2차 포로 / B.C. 597년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일반 백성들과 모든 방백들과 군사1만 명 외에 많은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3차 포로 / B.C. 586년에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이 최후로 함락될 때 시드기야 왕을 포함한 백성들이었습니다.
4차 포로 / B.C. 581년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의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이 마지막 남은 유대인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유대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유대 본토에 남겨진 백성들은 극히 미천한 자들로 토지를 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들은 불과  2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한 후 각처로 도망갔던 유대인들이 다시 모여 왔으나 황무해진 그 지역의 형편은 기아와 무법천지였습니다.

반면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에게 바벨론 정권은 비교적 많은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집을 짓고 사업을 할 수도 있었으며, 관리에 등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성전은 없었지만 종교의 자유도 허락되어서 성전을 대신한 회당을 중심으로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며 민족의 흩어짐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신앙과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남유대왕국의 사람들로서 유대지파와 베냐민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왕국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의 나머지 10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앗시라아)에게 망하고 일부는 포로로 잡혀갔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을 강제로 자신들의 다른 영토로 이동시켰고,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이방 민족을 이스라엘과 혼합되게 하여 새로운 사마리아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의 잊혀진 열 지파로 사라져 갔습니다.

바벨론제국에 포로로 있던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에게 망한 후, 바사제국의  고레스왕(고레스2세)이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함에 따라 1차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 때가 B.C. 538-537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스룹바벨이었습니다.
그 후 B.C. 457년 아닥사스다왕 때에 에스라를 지도자로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B.C. 444년 2차와  같은 아닥사스다왕 때에 유대인 느헤미야가 유대지방의 총독이 되어 민족을 이끌고 3차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포로귀환 후 활동하던 선지자들은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입니다.

바벨론제국이 B.C. 586년에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B.C. 538년에 바사에 의해 바벨론이 망하게 되는 그 사이에 인도지방에서는 불교의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중국에서는 유교의 공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지배계급인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불만이 폭력으로 귀족정치를 타도하고 평민에 의한 독재정권을 세우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독재자를 참주라고 부르며 그런 정치를 참주정이라고 부릅니다.

그 참주정은 민주주의의 시효로 알려지는 그리스의 B.C. 508년의 민주정치의 도입까지 이어졌습니다.
민주주의(Demokratial)란 말은 민중(Demos)이 권력(Kratos)를 가지는 정치체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망하고 바사가 근동지역을 지배하던 때인 B.C. 509년에 유럽의 이탈리아반도에서는 로마의 공화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석가모니 출생 BC 564년 네팔 룸비니

공자 출생 BC 551년 노나라 취푸(曲阜)에서 떨어진 시골인 창평향(昌平鄕) 추읍(郰邑)에서 부친 숙량흘과 모친 안징재(顔徵在) 사이에 태어났다.



08-17-2023(목)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만국의 보배(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I will shake all nations, and the desired of all nations wi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says the LORD Almighty.

만국의 보배(the desired of all nations)
모든 민족이 사모하는

새번역 / 또 내가 모든 민족을 뒤흔들어 놓겠다. 그 때에, 모든 민족의 보화가 이리로 모일 것이다.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현대인 / 모든 나라를 뒤흔들어 놓겠다. 온 세상의 보물이 이리로 굴러들어올 것이며 내가 이 성전을 영광으로 충만하게 할 것이다.

공동번역 / 뭇 민족도 뒤흔들리라. 그리하면 뭇 민족이 보화를 가지고 오리니, 내가 내리는 영광이 이 성전에 차고 넘치리라. 야훼의 말이다.

 
[내용개요]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못되어 공사는 또다시 중단되었다. 그것은 이 성전의 위세가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다시 학개를 통하여 비록 지금 짓고 있는 성전만큼은 못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더 크게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계속 재건해 나가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학개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이 어떤 외형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진실한 믿음에 있으므로 낙심치 말고, 실망치 말고 계속 성전을 재건해 나가라는 데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판단은 그 대상의 외모를 기준 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석이 놓여질 때 이전 솔로몬 성전의 위용을 기억하고 있던 많은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큰 슬픔과 실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학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9절)고 하는 이 메시지는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 구속사의 관점에서 희망찬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장차 성전에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알려 주며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전반부(1-9절)와 이스라엘의 불순한 믿음을 지적하며 결국은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것을 전하는 후반부(10-23절)로 나눌 수 있다.  


[강  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정한 과거의 죄악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로 인하여 임하였던 재앙을 기억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함을 인하여 다시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내려 주실 구원의 축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신학주제]
계시의 점진성. 성전의 첫 유래는 모세 시대의 성막이었다. 그러다가 이것이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 고정적인 형태인 성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신약 시대로 넘어와서는 교회 형태로 바뀌었다. 이것은 외형적인 면에서는 규모의 축소나 형태의 단순화일지는 모르지만 그 성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성막이나 성전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셨지만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그리스도가 친히 성전으로 임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전이 갖는 의미는 구약의 성전이나 성막보다도 그 의미 면에 있어서는 더 크다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구약의 성전처럼 건물이나 형태의 외형적인 면에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신약의 성전은 건물의 의미를 초월하여 장차 메시야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신약의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의 날에 완전하고도 새로운 예루살렘의 형태로 임하셔서 성도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여기서 예루살렘이란 성과 성전의 의미를 둘 다 지니 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성막보다는 성전에, 성전보다는 신약의 교회에 더 완전한 계시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적교훈]
본장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심과, 또한 그가 성전으로 오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성전 중심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역시 성전을 통하여 성도들을 구원시킬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무엇보다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 : 제각기 살아 나갈 길을 꾀함




08-16-2023(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전을 건축하라(학개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Go up into the mountains and bring down timber and build the house, so that I may take pleasure in it and be honored," says the LORD.

전을 건축하라(build the house)
우베누 합바이트(וּבְנוּ הַבָּיִת)

전(1004) 바이트(bayithבַּיִת

1. 집,  2. 장막, 3. 왕하23:7.
발음 / 바이트 [ bayith ]
어원 / 연계형 בֵּית, 복수 어미활용 בָּתֵּיהֶם ,בָּתֵּיכֶם ,בָּתֵּינוֹ, 1129에서 유래한 약어로 보임
관련 성경 / 집(창7:1, 레14:35, 삼상1:7), 권속(창18:19,레16:6, 삼하2:3), 궁(창12:15, 삼하7:2), 처소(창24:31, 대하5:7), 집 안(창27:15, 시55:14),전(출34:26, 신23:18), 옥(창39:20, 삿16:21,왕하25:27), 간수장(창39:21), 궁중(창45:2,왕하21:33, 에7:8), 가족(창5:22, 신11:6, 시68:6), 족속(출2:1, 레22;18, 수17:17), 식구(출12:3), 안쪽(출28:26), 가옥(레14:55, 신19:1,사5:8), 친정(레22:13), 종족(민1:2, 대상7:4), 지도자(민25:14), 지파(수22:14), 신전(삿9:4,왕하19:37, 대상10:10), 신당(삿17:5), 궁내(왕하10:5), 성전(왕하16:18, 대상29:3), 창고(왕하20:13), 궁궐(왕하21:18, 대상14:1), 성막(대상9:23), 궁전(대상17:1), 곳간(대상26:15,사22:8), 반열(대상28:13), 내전(內殿)(대하3:13), 무더기(욥8:17), 가산(욥20:28), 국고(사22:15), 딸(사10:32), 부엌(겔46:24), 집(미2:2).
구약 성경 / 2036회 사용

건축하라(1129) 바나(1129)  בָּנָה 

1. 짓다
2. 왕상6:15
3. ~위해 집을 짓다 / 렘 24:6
발음 / 바나[ bânâh ]
관련 성경 / 쌓다(창 11:5, 신 27:5, 애 3:5), 건축하다(민 32:37, 대하 6:2, 느 2:18), 만들다(신 20:20, 겔 27:5, 창 2:22), 세우다(룻 4:11, 왕상 11:38, 렘 45:4), 증축하다(대하 27:3), 짓다(욥 27:18, 전 2:4, 렘 35:9), 건설하다(시 122:3, 사 25:2), 건축되다(겔 36:33, 잠 24:3, 슥 1:16), 번성하다(말 3:15), 얻다(창 16:2, 30:3), 복구시키다(사 44:26).
[명] 건축(왕상 6:9), 건축자(왕상 5:18, 스 3:10).
구약 성경 / 373회 사용


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은 선지자 학개의 첫 번째 설교로서 포로 귀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성전 재건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 바벨론 포로생활에서부터 고향으로 돌아왔던 귀환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는 여호와를 사모하는 열정은 식었고 무기력하여 현실에 안주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 영적 각성 운동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인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성전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전하는 전반부(1-11절)와 그 지시에 백성들이 순종하였음을 보여 주는 후반부로 내용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12-15절).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핑계로 성전 재건 사역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을 책망하시며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재앙이 임하게 되었음을 말씀하셨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의 마음을 자극하여 성전 재건 사역을 감당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성전은 이 땅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었으나 성전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공간적 위치로서 신앙의 확신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영접한 그리스도인이 곧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3:16-17, 6:19).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내가 있는 그 자리가 곧 거룩한 성전이 세워진 장소라는 것을 명심하고 내 삶의 주위를 거룩한 땅으로 회복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도 내가 세워야 할 성전을 바르게 세워 주위 사람들에게 삶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영적 경고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성전도 결국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의미를 지닌 예수의 모형이요, 그림자이며 예표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성전은 그 유래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성막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조건으로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그것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실 것임을 증거하는 표징으로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즉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제나 함께하시며 영원히 보호하실 것임을 보장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모세를 만나시고 백성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막과 성전도 단지 성막이 이동적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성전은 고정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다르지만 그 이외의 의미는 같다고 하겠습니다.

본장에 나오는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상 세 번 건립되었으나 성경에서는 에스겔이 본 환상까지 합하여 네 개의 성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에스겔 성전, 헤롯 성전 등이다.
결론적으로 이 성전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머리로 신약에서는 매듭짓고 있다. 따라서 이 성전에 출입하는 성도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교회 즉 성전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교회 밖, 즉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은혜의 시대 즉 신약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의 살아 있는 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떠난 성도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성전이 그리스도의 몸이듯이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일부분으로서 살아 있는 성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성전으로서의 삶은 결코 오늘날 이야기하는 교회란 건물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성전으로서의 삶은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와 봉사에 충실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본받는 삶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책망하셨듯이 바른 삶과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이 있는 교회의 활동은 거짓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 생활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도 항상 성전으로서의 의식을 갖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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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개요

1. 서론

모든 성경들은 본서의 중심 인물인 ‘학개’를 표제로 삼았으며 이름의 뜻은 ‘절기’ 혹은 ‘축제’ 이다.
하나님의 일을 미루고 자신의 삶과 일에만 치중하는 자들에게 성전 재건을 통해 가치관을 재정비하라고 권면한다.

2. 저자

전통적으로도 학개의 저작으로 보며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선포했다는 내용이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1:1, 3; 2:1, 10, 20).
학개의 이름이 3인칭으로 서술되어(1:12-13; 2:12-14) 학개 저작 설을 부인하는 일부의 견해가 있다.

3. 기록시기와 시대적 배경

바벨론을 멸망시킨 고레스는 유다 백성의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내려 1차로 스룹바벨의 인솔 하에 귀환하여 B.C.536년경 성전 재건에 착수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주변 이방인들의 방해로 2년 만에 중단되었다가 다리오 왕 2년(B.C. 520년)에 학개 선지자를 통해 다시 재개한다.
성전은 공사를 재개한 지 4년 만인 B.C. 516년(다리오 6년)에 완공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네 편의 메시지가 나오는데(1:1; 2:1,10, 20), 모두 날짜가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4. 기록목적

스룹바벨 이후 중단되었던 성전 재건을 독려하고, 다시금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헌신과 희생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건축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우선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5. 구조

초 점

성전재건

하나님의 언약회복

구 분

1장

2:1-9

2:10-19

2:20-23

첫 번째 설교

두 번째 설교

세 번째 설교

네 번째 설교

주 제

성전재건 촉구

재건될 성전의 영광

순종한 사람들의 복

위로와 약속

핵 심

구 절

[학]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 성전의 역할

태초에 성전의 모델인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통해 온 세상으로 확장되게 하였지만 불순종으로 성전의 기능이 파괴 되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언약관계를 맺고 함께하시며 만나주시는 것을 상징한다.(출 25:22)
성전은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완전한 성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현실화 되었다.(레 26:11, 요 2:21)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백성답게 올바르게 살아가야 할 방법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다.

7. 성전 재건의 중요성

포로 귀환 공동체의 삶이 피폐해진 이유는 자신들의 생존과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우선 가치를 가지고 성전 재건을 회피하였기 때문이다.(1:2-11)
성전 재건은 죄악으로 인해 멈춰버린 것 같았던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성전 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며 약속하신 언약적인 복을 주신다.

8. 중요 메시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존과 번영에 대해 그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잘못된 예배와 부정한 삶을 지적하고 성전 재건을 통해 바른 예배를 회복하도록 호소하고 있다. (2:10-19)
성전 재건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평강을 누리는 것이다.

​9. 결론

성도의 책임은 축복만을 누리는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철저한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성전 재건은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복귀하는 것임을 천명한다.
성도들이 견지해야 할 삶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을 삶에 중심에 모시고, 성령을 따라 성전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말한다.

 







우선순위(優先順位)

넉넉할 우, 먼저 선, 순할 순, 자리 위
어떤 것을 먼저 차지하거나 사용(使用)할 수 있는 차례(次例)나 위치(位置).



피터 드러커(P. Drucker)
훌륭한 경영자란 많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다양한 재능의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뒤죽박죽되지 않게 하고,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해서 처리하는 사람이다.

경영에서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해서 처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선순위란 많은 일 중에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선순위 문제는 경영분야 뿐 아니라 하루 일과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고,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스도인의 순간적인 선택은 영원을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무엇을 뒤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갈라진다. 

선택이 필요한 이유

그러면 인생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가?
인생은 선택이다.
누구도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할 수는 없고,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둘 다를 가지려고 하지 말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 둘 다를 가지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며 어리석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것을 우리 인생에 적용할 수 있다.
여러 가지에 가치를 두지 말아야 한다.
하나는 가치 있게 여기고 하나는 덜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덜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하고 버려야 한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다 가지려고 하면 둘 다를 잃게 된다.
년 초에 어디 놀러가고 즐기는 것도 하고, 영적인 축복도 받는 것 둘 다를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영적인 축복을 더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즐기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 저녁마다 집회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지거나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는 이유는 시간과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가치 있는 것을 가지기 위해 덜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하는 지혜와, 더 가치 있는 일을 행하기 위해 덜 소중한 일을 뒤로 미루고, 시간과 능력이 되면 하고, 못하면 그 일은 포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인생이 평생을 통해 모이고 모인 것을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계획성이 없고 닥치는 대로 살며, 인생을 뒤죽박죽으로 사는 사람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다.
닥치는 대로 살고 인생을 뒤죽박죽으로 살아온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으로 바꾸어 살려면 ‘우선순위를 수정하라’

하루 일도 닥치는 대로 하지 말고 뒤죽박죽되지 않게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부터 하나하나에 집중하라.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한 달의 계획을 세우고, 한 주간의 계획과 하루의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중요한 일부터 우선 순위에 두라.
1년 뒤에는 인생이 달라져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먼저 구할 것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먹고 사는 문제는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나라’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더 가치 있게 여기고, 먼저 선택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나라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의 가치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말도 안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사는 사람들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사실은 이 말도 안 되는 삶의 방법이 본래는 진리였고 정상적인 질서였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하고 타락하면서 이 질서를 무시하고 반대로 살아왔다. 그 결과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고 파괴되고 만 것이다. 세상에 가치를 두고 사는 것이 진리가 되어버렸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의 질서를 회복시키려고 하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찌걸인 죄로 죽임을 당했다. 그 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복음을 듣고 세상의 가치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바꾸어 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성경의 원리, 창조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순위를 수정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수정하 면 뒤죽박죽이 된 우리 인생도 수정될 수 있다.

 

과거에 우리는 성공, 부, 출세, 재물을 인생의 우선순위에 두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고 섬기는 우상숭배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이제는 그 삶의 방법을 뒤집어 반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시간, 노력, 재물, 성공을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구하고 얻고 사용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수정하고 사는 삶이 바로 된 인생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법이다.

 

그러면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우리 삶의 방법, 방향과 목적을 완전히 뒤바꾸어놓는 것은 무엇인가?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경영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중요한 원칙은 효용성, 가치성’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제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우선순위도 다른 것이다.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것이다.

삶의 가치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다르게 살게

하는 그 요인은 ‘가치’이다

 

세상의 성공과 출세, 부를 가치로 여기는 사람은 명예, 돈, 권세, 출세를 얻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거기에 모든 것을 쏟고 투자한다. 명예, 돈, 권세, 성공이 모든 인생을 바치는 제단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그분의 가치였기 때문에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죽임을 당하셨다. 자신의 목숨 보다 인류구원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 제단에 그분의 생명을 바치고 피를 쏟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가치는 바로 예수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한다

최고의 가치는 십자가의 복음이다

십자가의 복음만이 세상을 구원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며 주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한다

이 땅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며, 굶주리는 자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구제이다

하나님은 이런 일에 재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분의

자녀들에게 공급해주신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인생 전부, 모든 재물을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우이해 바치는 거룩한 제단이 있어야 한다

다른 헛된 제단에 인생을 허비하고 사는 것은 마귀에게

바치는 인생이다

기독교는 세상에 말씀을 전파하여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우선순위를 바르게 수정하고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

도록 도와주는 종교이다

집에 불이 났다. 그 집의 안주인은 겁에 질려 홀로 뛰쳐나왔다가 갑자기 불 속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 귀중품이 들어 있는 보석 상자를 안고 나왔다. “아, 이제 살았다. 귀고리, 목걸이, 팔찌, 모든 보석을 다 찾았다. 참으로 다행이다”고 외쳤다. 그때 사람들이 “저기 보세요. 아이들이 창가에 있어요”라고 외쳤다. 보석 상자를 들고 나온 여인은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 아이들! 내 아이들!”하고 소리치며 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불은 아이들의 생명을 삼켜버렸다. 가치관이 올바르면 큰 것을 얻게 되지만, 가치관이 올바르지 못하면 인생의 소중한 것을 다 잃고 망치게 된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사는 우선순위의 중요성

신학자 존 네이스빗은 “우선순위를 잘못선택하면 삶의 목표에서 멀어진다”고 했고,

찰스 휴멜은 “우리들이 삶에서 만나는 온갖 딜레마들은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함

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혼란스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문제점 하나는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삶이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이라면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수정되면 뒤죽박죽이 된 인생에 혼란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바로 설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결정하고 평생을 살아야 할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첫째,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한다

요한복음 4:23- 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지금 찾고 계신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먼저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 아브라함이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백세에 얻은 외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에게 우선순위는 아들보다 예배와 순종이었다.
그랬더니 결과는 믿음의 조상이 되는 영적인 축복도 받고 후손의 축복을 받아 최고의 명문가가 되었다.

부모들이 ‘공부해서 남 주나 다 네 잘되라고 공부하라는 것이지’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주일예배보다 공부와 성적과 성공에 우선순위를 둔다. 그러나 주일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고 공부하는 아이들은 예배에서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자기 잘되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남 주려고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아이들을 축복해주시는 것이다. 지금 성적이 좋거나 별로 안 좋은 것 가지고 아이들의 미래를 예단 할 수 없다

우리는 남 주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남 주려고 열심히 일한다.
이게 우선순위가 바로 되어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면 하나님도 여러분의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도와주시는 것이다.

오늘 새해 첫 주일을 맞아 우리가 결정할 것이 있다. 어떤 일보다 주일 예배를 우선으로 정하고 일 년 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예배 빠지지 맙시다. 그러면 새해에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둘째, 사명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한다

사도행전 20:23- 24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살지 않고 사명을 따라 살고 움직인 사람들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보다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사명을 따라 갔다.

하나님이 어느 날 닭, 개, 돼지를 불러 “너희들은 인간 세상에 내려가 1년 동안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할일을 찾아 섬기다가 올라오라”고 하셨다. 이들이 1년 후에 돌아와서 하나님께 보고하였다. 맨 먼저 닭이 입을 열었다. “하나님, 세상에 가보니 사람들이 시간을 몰라 사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을 보고 매일 새벽마다 ‘꼬끼오’하고 소리를 내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듣고 계시던 하나님이 너무 기뻐서 닭에게 벼슬을 하나 주셨다. 그게 닭 벼슬이라고 한다.

 

그 다음엔 개가 보고를 한다. “하나님, 제가 세상에 가보니 도적이 하도 많아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멍멍’하며 짖어서 집을 지켜주었습니다.” 개의 이야기를 들으신 하나님은 너무 기뻐서 개에게 다리를 하나 더 주셨다고 한다. 본래 개는 다리가 세 개뿐이었는데 다리 하나를 더 주셔서 네 개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보면 개들이 쉬를 할 때 한 쪽 다리를 든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다리라며 들어서 자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돼지가 보고를 한다. “저는 세상에 가서 보니 세상에 별 할 일이 없어서 매일 먹고 자고 놀다가 왔습니다.” 돼지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하나님은 노하시면서 “여봐라, 저 돼지의 주둥이를 치라!”고 하셨다. 그래서 돼지는 다른 짐승과는 달리 주둥이가 없고 코와 입이 붙어 있어 보기가 좀 우습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조국 이스라엘 국회가 만장일치로 이스라엘 대통령으로 추대키로 결정하고 대통령이 되어줄 것을 제의 했을 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정중하게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선택한 것이다.

모든 피조물에는 사명이 있다.
성공적인 인생은 무슨 유명인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대로 충실하게 사는 인생이다.

셋째, 하나님의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한다

말라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의 것에 우선을 두지 않고 주의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백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다가 멸망한 이유 중에 하나가 십일조 문제였다고 말라기 성경은 밝히고 있다.
십일조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교훈이 여기에 있다.

첫째 이유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
둘째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 

십일조가 하나님의 은혜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이 다 요구하신다 해도 할 말이 없고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것인데 하나님은 십분의 일만 드리라고 하시니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십일조가 은혜인 두 번째 이유는 우리는 하나만 드렸는데  하나님은 열을 다 받으시는 것처럼 받으시기 때문이다

셋째는 우리가 하나만 드리면 하나님은 나머지 아홉을 지켜주시고 보장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십일조는 무거운 짐이나 고통이 아니라 십일조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재산을 지켜주는 큰 은혜의 약속이 있다

십일조는 우리를 망하지 않게 지켜주는 하나님의 전략이요 최고의 방패이다

하나님 우선으로 사는 삶의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가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나라에 두고 살면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누가 책임져주는가?
무슨 보장이 있는 것인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선순위를 수정하고 살면 영생도 주시고 땅의 것도 다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닥치는 대로 살고, 인생을 뒤죽박죽으로 살면 영생도 얻지 못하고 땅의 것도 다 잃는다는 것이다.

미국에 구두를 만들어 돈을 엄청나게 번 브라운이라는 분이 있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구두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제 성공의 비결은 우선순위가 분명하였습니다.
저는 매사에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가정, 그리고 셋째는 구두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하여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인생을 바꾸어 살고 싶은가?
가치관이 변하지 않고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기도를 하고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를 결정하고 우선순위를 바로 수정하여 그 우선순위를 따라 살면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