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시기 : 주전 720년경
성격 : 대언
기간 : 약 60년
수신자 : 북 왕국 이스라엘 백성
북 왕국 이스라엘의 대언자로서 마치 남 왕국 유다를 향해 책망의 메시지를 선포한 예레미야 대언자와 비슷한 사역을 수행했다.
주제 : 이스라엘의 배교와 회복
실제로 이러한 비유적 표현은 호세아 자신의 체험에서 나왔다.
호세아는 자기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인간적인 면에서 비극적인 결혼을 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고귀한 소망을 지닌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하고 그녀의 음란한 품성을 알게 되며 그래서 곧이어 별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호세아의 사랑은 지속되었고 결국 그는 그녀와 다시 결합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음란한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것과 유사하다.
주께 신실할 것을 맹세한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바빌론 포로 생활을 통해 일시적으로 그들을 버릴 때까지 바알 신과 가나안의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메시아의 약속과 함께 마지막 때에 영적인 씨가 행복을 누릴 것을 보여 주셨다.
호세아서는 14장, 197절, 5,175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 3장(하나님의 불변하는 사랑)
핵심 절 : “오 이스라엘아, 네가 네 자신을 파멸시켰거니와 네 도움이 내게 있느니라. 내가 네 왕이 되리라. 네 모든 도시에서 너를 구원할 다른 자가 어디 있느냐?”(13:9-10)
핵심 단어 : 돌아오라(15회)
핵심 구 : “마지막 날들”(3:5)
영적 교훈 :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호세아 선지자의 시대
13대. 여로보암2세(백성의 수가 많아진다,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로서 10여 년간 아버지와 함께 통치하다가 그를 계승하여 제13대 왕이자 예후 왕조의 네 번째 왕 이 되었다
(BC796-753)(왕하 13:13, 14:16, 23).
13:13.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자리에 앉으니라.
14:16.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4:23.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특히 그는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북IS 최고의
황금기를 가져온
왕이다(왕하14:23-29).
아버지 요아스때부터 북IS은 수리아와의 싸움에서 이겨 잃었던 북방의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또
유다를 눌러 남방으로의 영토 확장에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주변국 앗수르와 아람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배경하에서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의 예언대로 ‘하맛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솔로몬 때의 영토와 흡사한 넓이의 광대한 땅을 지배 하게 되었다(신 3:17. 왕하 14:25-28)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 번영 뒤에는 빈부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모순이라는 그림자가 생겨났고, 더욱이 중근동 지역에 성행하던 각종
우상과 타락한 문화가 극격히 유입됨으로써 북IS의 영적 부패를 심화시켰다.
이에 대해 당시 활동 했던 선지자 아모스는 사회
전반의 부패와 극심한 빈부의 차이(암 2:6-7),
헛된 종교적 행위(암 5:21-24; 7:10-17),
허물어져 버릴 거짓된
평안(암 6:1-8)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고(암 7:7-13),
선지자 호세아도 같은 맥락에서 여로 보암 때의 죄악을
비유적으로 고발하고 있다(호 1-3장).
그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왕하 14:29)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특징 네 가지
1. 로다아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1847, 430) 다아트(daʽath) דַּעַת 엘로힘(’ĕlôhîym) אֱלֹהִים
지식(1847) 다아트(daʽath) דַּעַת
어원 / 3045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지식(렘 22:16, 시 19:2, 전 1:16), 지혜(욥 34:35), 재능(왕상 7:14).
구약 성경 / 91회 사용
인애가 없다.
인애(2617) 헤세드(chêçêd) חֵסֵד
발음 / 헤세드[ chêçêd ]
어원 / 2616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인자(창19:19, 민14:18, 시18:50), 은혜(창20:13, 삼하3:8, 렘32:18), 인애(창47:29, 신7:9, 렘2:2), 은총(창32:10, 삼하9:1, 호2:19), 성실(왕상3:6), 긍휼(느1:5, 시85:10), 아름다움(사40:6). [동] 영화롭게 하다(잠14:34), 선대하다(수2:12, 삿1:24, 룻1:8), 은혜를 베풀다(룻2:20), 인자하다(대상16:34, 대하7:3,시59:10), 자비하다(대상16:41, 대하5:13), 선하다(대하32:32, 느13:14), 긍휼히 여기다(스9:9, 시59:17), 불쌍히 여기다(욥6:14).
구약 성경 / 246회 사용
3. 가온
교만하다
1347. 교만(가온. gâʼôwn) גָּאוֹן
어원 / 1342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위엄(출 15:7, 욥 37:4, 미 5:4), 교만(레 26:19, 잠 16:18, 겔 7:20), 영화(시 47:4, 사 14:11), 거만(잠 8:13), 오만(사 13:11), 영광(사 13:19, 암 6:8, 나 2:2), 아름다움(사 60:15), 자고(렘 48:29)
구약 성경 / 49회 사용
어원 / 6035에서 유래
관련 성경 / 겸손(잠 15:33, 22:4, 습 2:3), 온유함(삼하 22:36)
구약 성경 / 7회 사용
4. 첼다이
세속화 되다
2469. 세속적인(첼다이. Chelday) חֶלְדַּי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 및 특징
2대왕 다윗(BC1010~970년경)
3대왕 솔론몬(BC970~930년경)
남유다왕 |
통치연대 |
참조구절 |
|
북IS왕 |
통치연대 |
참조구절 |
1,르호보암 |
930-913 |
왕상12-14장,대하10-12장 |
1,여로보암 |
930-910 |
왕상11:26-14:20 |
|
2,아비야(아비얌) |
903-910 |
왕상15:1-8;,대하13장 |
2,나답 |
910-909 |
왕상15:25-28 |
|
3,아사 |
910-869 |
왕상15:9-24:,대하14-16장 |
3,바아사 |
909-886 |
왕상15:27-16:7,대하6:1-12 |
|
4,여호사밧 |
872-847 |
왕상22:41-50: 대하17-20장 |
4,엘라 |
886-885 |
왕상16:6-10 |
|
5,여호람(요람) |
853-841 |
왕하8:16-24: 대하21장 |
5,시므리 |
885 |
왕상16:8-20 |
|
6,아하시야 |
841 |
왕하8:25-29: 대하22:1-9 |
6,오므리 |
885-874 |
왕상16:15-28,왕하3:4 |
|
7,아달랴 |
841-835 |
왕하8:18:,25-28: 11장 |
7,아합 |
874-853 |
왕상16:28-22:40,대하18장 |
|
8,요아스(여호아스) |
835-796 |
왕하11-12장,대하22-24장 |
8,아하시야 |
853-852 |
왕상22:40,51-53 |
|
9,아마샤 |
796-767 |
왕하14장,대하26장 |
9,요람(여호람) |
852-841 |
왕하3:1-3,9:14-25 |
|
10,아사랴(웃시야) |
791-739 |
왕하15:1-7: 대하26장 |
10,예후 |
841-814 |
왕하9-10장, 대하22:7-12 |
|
11,요담 |
750-731 |
왕하15:32-33 |
11,여호아하스 |
814-798 |
왕하13:1-9 |
|
12,아하스 |
735-716 |
왕하16장,대하28장 |
12,여호아스(요아스) |
798-782 |
|
|
13,히스기야 |
728-687 |
와하18-20장,대하29-32장 |
13. 여로보암2세 |
793-753 |
|
|
14,므낫세 |
697-642 |
왕하21장 대하33장 |
14. 스가랴 |
753-752 |
왕하14:29: 15:8-12 |
|
15,아몬 |
642-640 |
왕하21:19-23,대하33:21-25 |
15. 살룸 |
752 |
왕하15:16-22 |
|
16,요시야 |
640-609 |
왕하22-23장 대하34-35장 |
16. 므나헴 |
752-742 |
왕하15:16-22 |
|
17,요호아하스(살룸) |
609 |
왕하23:31-33,대하36:5-6 |
17. 브가히야 |
742-740 |
왕하15:23-26 |
|
18,여호야김(엘리야김) |
609-598 |
왕하23:34-24:5,대하36;5-6 |
18. 베가 |
740-732 |
왕하15: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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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여호야긴(여고니야) |
598 |
왕하24:6-16,대하36:8-10 |
19. 호세아 |
732-722 |
왕하17: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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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드기야(맛다니야) |
597-586 |
왕하24:17-25:7,대하36: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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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왕
1. 여로보암
(백성의 수가 많아진다,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
이스라엘 분열을 주도한 자로 북IS의 초대 왕(930-910), 에브라임 사람 느밧과 스루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왕상11:26), 아비야와 나답을 낳았다(왕상14:1: 15:25). 솔로몬 휘하에서 신임받은 유능한 신복(공사 감독관)이었다(왕상11:28).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10지파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고(왕상11:29-40), 이에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고 했으 므로 그는 급히 애굽으로 망명하였다(왕상11:29-40).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 왕 때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지파를 규합하여 북IS(세겜을 수도로함)에 또 다른 왕국을 세워 왕이 됨으로써 왕국의 분열이 시작되었다(왕상12:1-20) 특히 그는 백성들이 남왕국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을 막고자 단과 벧엘 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두고 그곳을 예배 중심으로 삼았다(왕상12:25-33), 그리고 정한 절기를 변경하여 율법을
왜곡시켰고(7월15일의 장막절을 8월 15일에 지키게 함). 레위인이 아닌자로 제사장을 삼아 제사를 드리게 했고(왕상 12:31) 산당을 만들었다, 이같은 죄로 인해 그는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과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급격히 몰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왕상13-14장).
하지만 그는 악행을 거듭하다가(왕상13:33-34) 유다왕 아비야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하나님의 징계로 최후를 맞게 된다 (대하13:20) 한편, 여로보암의 죄악은 북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반복되었고 북IS의 통치자들은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자’로 묘사되고 있다(왕상15:26, 34: 16:19, 31: 22:52 왕하3:3 10:29, 13:2, 11: 14:24 15:9, 18, 24, 28).
그리고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는 결국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의 패망의 큰 원인이 된다(왕하17:16, 18)
2. 나답
(하나님은 관대하시다)
북IS 왕 여로보암 1세의 아들, 북IS의 제2대왕(910-909), 블레셋의 군사 도시 깁브돈을 포위 공격하던 중 반란을 일으킨 잇사갈 지파 바아사에 의해 살해되어 그의 온 집안은 망하고 그의 왕조는 2대 만에 막을 내린다(왕상15:27). 그의 통치 기간은 1년 수개월에 불과한데 그는 부왕과 마찬가지로 우상을 숭배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왕상15:26)
3. 바아사
(바알은 태양이다 바알이 듣고 있다)
잇사갈 지파 아히야의 아들(왕상15:27). 북IS 초대왕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 왕의 부하 장군, 나답이 블레셋의 깁브돈을 포위 공략할 때 진중에서 반란을 일으켜 나답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여 수도 디르사에서 24년간 통치햇다, 남유다
2대왕 아사의 경건한 신앙에 고무된 북IS 백성이 남쪽으로 이주하자(대하15:9)남쪽 경계 라마에 성곽을 건축하여 백성의 남하를 저지하는(대하16:1-6) 한편 아사 왕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아람의 원조를 받은 아사 왕 에게 라마 성마저 함락당했다, 지속적으로 우상을 숭배하였으며 사후에 아들 엘라가 왕위를 계승했다,(왕상16:2-12)
4. 엘라
(상수리나무, 테레빈나무)
북IS의 제4대왕 (886-885)이자 바아사 왕조의 두 번째 왕(왕상16:6)으로 부하 장군 시므리의 반역으로 살해되었다
(왕상16:9-10). 이외에도 같은 이름으로 에돔 족장(창36:41), 북IS의 마지막 왕 호세아의 부친(왕하15:30; 17:1; 18:1), 갈렙의 아들(대상4:15), 베냐민 지파의 한 사람(대상9:8)등이 있다.
5. 시므리
(영양)
엘라왕 휘하의 장군이었으나, 왕을 암살하고 북IS의 제5대왕(855년경)이 된 인물, 재반격을 시도한 오므리 장군에 의해 퇴위될때까지 7일 간 통치했다(왕상16:8-20), 오므리는 그의 뒤를 이어 북IS 제6대왕이 되었다.
6. 오므리
(여호와를 숭배하는자, 여호와의 종, 여호와의 예배자)
바아사의 아들인 엘라 왕의 군대장관으로서 북IS의 제6대왕이자 오므리 왕조의 창시자가 된 인물(885-874). 유다 왕
아사 27년에 엘라를 살해한 시므리의 반란 때 진중의 백성들(일종의 군부)에 의해 이스라엘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상16:15-16),오므리에 맞섰던 시므리는 7일만에 자살로 끝을 맺는다(왕상16:18), 그리고 가낫의 아들 디브니가 북IS 주민 절반 가량의 지지로 왕이 되어 오므리를 대항했으나 4년후 마침내 패배함으로써 명실공히 오므리 왕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왕상16:23), 그는 세멜에게서 금 두 달란트로 사마리아를 사들여 사마리아 성을 건축하고 곳을 수도로 정하고 북IS의 수도로 삼았다(왕상16:24-27), 이후 사마리아는 북IS이 멸망할 때(BC722)까지 수도로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오므리는 유능하기는 했지만 여호와 보기에 사악한 통치자였다(왕상16:25-28)
오므리는 두로와 맺은 동맹을 확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아합과 베니게의 공주 이세벨을 결혼시켰다, 이러한 결혼 동맹은 일찍이 다윗과 솔로몬이 베니게에 대해 취해온 전통적인 정책이었다. 이 동맹으로 북IS에는 이방의 악한 풍습과 바알 우상 등이 급속히 유입되어 더욱 타락하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오므리 왕조의 멸망을 초래했다. 이에 더하여 오므 리는 그 악명 높은 ‘오므리의 율례’(미6:16)를 남겼다, 오므리의 율례란 다름 아닌 여호와를 철저히 외면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한 것이었다,
7 .아합
(아버지의 형제)
북IS의 제7대왕(874-853)이자 오므리 왕가의 두 번째왕, 아합은 통치 기간중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치 력을 발휘했고 모압에게서 많은 조공을 받는등(왕하3:4)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태평 시대를 누렸다, 하지만 그는 시돈 의 왕이요 바알 제사장인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독한 바알 숭배를 만연시켰고
(왕상16:28-31), 그 결과로 이스라엘에 기근과 가뭄이 찾아들게 했다(왕상16:32-33). 또한 그는 아내 이세벨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했으며 오바댜가 숨긴 100명의 선지자를 제외한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살해했다(왕상18:4; 19:14), 물론 여호와는 갈멜 산상에서 엘리야를 통해 바알 우상의 허상을 드러내시고 오직 당신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 을 나타내 보이셨다(왕상18장). 한편 아합은 탐욕의 노예로서 이세벨의 계략에 따라 나봇을 살해하고 그의 포도원을
탈취하는 악을 행함으로써 결국 처참한 종말을 예고받게 된다(왕상21:1-26), 아합은 그 예언을 듣고 잠시 겸비함으로써 재앙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었다(왕상21:27-29), 그는 말년에 수리아(아람)왕 벤하닷과의 전쟁을
세 번이나 치렀는데 1,2차는 승리했지만(왕상21:1-42),마지막 전투에서 선지자 미가야의 경고를 무시한 채 전쟁에 나갔 다가 한 병사가 무심코 긴 화살에 치명상을 입고 결국 사망하여 사마리아에서 장사된다(왕상22:5-37), 그리고 미가야의 예언대로 개들이 그 피를 핥았고(왕상22:38)또 그의 아들 요람 때에는 미가야의 예언이 좀더 명확회 성취된다
(왕하9:24-26)
8. 아하시야
(여호와께서 붙잡으셨다)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로서 북IS의 제8대왕(853-852),아하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으며 여로보암의 송아지
우상과 그의 모친 이세벨이 주도하는 바알을 섬겼다(왕상22:52-53), 재위 초기에 매년 엄청난 양의 조공(새끼양 10만과 숫양 10만의 털)을 바쳐 오던 모압이 반역했지만(왕하1:1; 3:4-5), 그가 사마리아 왕궁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쳐 병이 들어 그 반란을 진압하지 못했다, 한편 중병이 든 그는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내어 자신이 나을 것인지 물어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어 그의 죽음을 선고하셨다(왕하1:3-6), 그 선고대로
아하시야는 죽었고 왕위는 그의 형제 여호람이 계승하였다(왕하1:17; 8:16)
9. 요람
(여호람: 여호와는 높으시다, 여호와는 존귀하시다, 여호와는 일으키신다)
북IS의 제9대왕(852-841), 아합과 이세벨의 둘째 아들로서 자식이 없어 죽은 그의 형 아하시야를 계승해 12년 간 통치했다(왕하1:17;3:1), 그는 아합이 만든 바알 우상을 제거했지만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는 숭배했고 악을 행했다, 그는 지금껏 이스라엘을 섬겨왔던 모압이 반란하자 유다(여호사밧왕), 에돔과 연합하여 모압을 정벌하러 가던 중 엘리사로부터 이적적인 방법으로 물을 얻고 또 승리하리라는 예언을 들은 후 완승을 거두게 된다(왕하3:13-27), 아람 왕은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치료하고자 여호람에게 사자를 보냈고(왕하5장), 얼마후 아람 왕은 엘리사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 하심으로써 그 일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왕하6:8-23), 벤하닷이 아람 왕이 된 후 재차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사마리아를 큰 기근에 빠뜨렸지만 이때도 하나님의 이적적인 도움으로 아람 군을 물리쳤다(왕하6:24-7:20), 하지만 또 다른 아람 왕(벤하닷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하사엘)이 이스라엘과 유다 연합군을 공격하여 길르앗 라못에서 여호람에게 부상을 입혔다, 여호람은 귀국하여 요양 중에 있다가 그의 장군 예후의 반란으로 나봇의 포도밭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왕하8:28-9:26), 그후 북IS에 예후 왕조가 시작되었다.
10. 예후
(그는 여호와시다)
북IS의 제10대왕 (841-814년)으로 님시의 손자이자 여호사밧의 아들(왕하9-10장; 대하22:7-12). 100년 이상 지속된
예후 왕조를 시작한 인물, 그는 원래 오므리 왕조인 아합 왕의 군대장관이었으고(왕하9:25),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을 섬기 던 자였다(왕하9:14), 선지자 엘리사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고(왕하9:1-6).또 엘리사로부터 아합의 온 집안을 멸망시키라 는 명령을 받은 후(왕하9:7-10),왕위에 올라(왕하9:12-13),요람왕을 죽이고(왕하9:22-24),계속해서 유다 왕 아하시야
(왕하9:27-28),와 이세벨(왕하9:30-33),그리고 아합의 왕자 70명과 아합 집에 속한 자들을 멸절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왕하10:1-8,11,17),그에 더하여 바알 숭배자들을 죽이고 그 산당을 변소로 만들었다(왕하10:18-27),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은 예후의 후손이 4대에 걸쳐 이스라엘을 통치할 것을 약속하셨다(왕하10:30),하지만 예후 자신은 진심 으로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고 오히려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했다(왕하10:29-31). 그 결과 예후는 하사엘의 침략을 받아 요단 동편 땅을 빼앗겼다(왕하10:32-33), 28년간의 긴 통치를 마감하고 죽어 사마리아에 장사되었다(왕하10:35-36)
11. 여호아하스
(여호와께서 붙드셨다(붙잡으셨다))
북IS의 제11대왕(814-798년). 예후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한 후(왕하10:35)재위 17년 간 아세라 우상을 제거하지
않고 여로보암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였다(왕하13:1-2,6), 아람 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 3세의 침공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호소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한 구원자로 인해 위기를 면하기는 했으나 국력은 크게 손실을 입었다(왕하13:3-5, 22,25), 그는 죽어 사마리아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왕위를 이었다(왕하13:9)
12. 여호아스
(요아스: 여호와께서 주셨다, 여호와는 강하시다, 여호와는 도와 주신다)
여호아하스의 아들로 북IS의 12대 왕이자 예후 왕조의 세 번째 통치자(BC798-782년).16년 간을 통치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왕하13:10-11). 엘리사의 후원자요 엘리사의 병든 것을 슬퍼하였다(왕하13:14-19). 유다 왕
아마샤를 물리쳤으며(왕하 대하25:21-23). 아람와 벤하닷을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다(왕하13:24-25).
죽어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여로보암 2세가 그를 계승했다(왕하13:10-25; 14:8-17)
13. 여로보암2세 (백성의 수가 많아진다,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
북IS
왕 요아스의 아들로서 10여 년간 아버지와 함께 통치하다가 그를 계승하여 제13대 왕이자 예후 왕조의 네 번째왕
(BC796-753)이 되었다(왕하13:13 14:16, 23).
특히 그는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북IS 최고의
황금기를 가져온
왕이다(왕하14:23-29).
아버지 요아스때부터 북IS은 수리아와의 싸움에서 이겨 잃었던 북방의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또
유다를 눌러 남방으로의 영토 확장에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주변국 앗수르와 아람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배경하에서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의 예언대로 ‘하맛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솔로몬 때의 영토와 흡사한 넓이의 광대한 땅을 지배 하게 되었다(신 3:17. 왕하 14:25-28)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 번영 뒤에는 빈부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모순이라는 그림자가 생겨났고, 더욱이 중근동 지역에 성행하던 각종
우상과 타락한 문화가 극격히 유입됨으로써 북IS의 영적 부패를 심화시켰다.
이에 대해 당시 활동 했던 선지자 아모스는 사회
전반의 부패와 극심한 빈부의 차이(암 2:6-7),
헛된 종교적 행위(암 5:21-24; 7:10-17),
허물어져 버릴 거짓된
평안(암 6:1-8)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고(암 7:7-13),
선지자 호세아도 같은 맥락에서 여로 보암 때의 죄악을
비유적으로 고발하고 있다(호 1-3장).
그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왕하 14:29)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4. 스가랴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
여로보암2세를 이어 북IS의 왕이 된 인물. 예후 왕조의 4대째(마지막)왕으로 남유다왕 웃시야 38년에 사마리아에서 즉위 하여 6개월 정도 통치했으며 살룸의 모반으로 암살당했다(왕하14:29; 15:8-11)
15. 살룸 (보응)
북IS 여로보암2세의 아들인 스가랴 왕을 죽이고 사마리아에서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1개월 만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에게 죽임을 당하였다(왕하15:10-15). 부친은 야베스
16. 므나헴 (위로하다)
갓 지파 가디의 아들로 북IS 16대왕(752-742), 여로보암 2세 이후 6개월 만에 스가랴 왕을 살해한 살룸을 제거하고
권좌에 올랐다, 정권 찬탈에 저항하는 딥사 주민들을 학살하였고 장기 집권을 위해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은 1000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기도 하였다(왕하15:13-22), 10년 통치 후 아들 브가히야가 왕위를 계승했다,
17. 브가히야 (여호와께서(눈을)여셨다)
므나헴의 아들이며 북IS의 17대왕(742-740),북IS을 건국한 여로보암의 정책을 본받아 우상 숭배 죄를 범하였다
(왕하15:24), 그는 부왕과 마찬가지로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쳤는데 2년 통치 말기에 군대장관 베가의 반란으로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50명의 자객들에게 암살당했다(왕하15:25)
18. 베가 (뜨다 열다)
군대장관 출신으로 친 앗수르파인 브가히야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북IS 제18대왕(740-732)르말랴의 아들(왕하15:37). 아람 왕 르신과 동맹을 맺고 반 앗수르 정책을 펼치는 한편 남유다의 아하스 왕도 이 동맹에 끌어들이려 했으나 친 앗수르 정책을 펴는 아하스의 반대에 부딪치자 아람과 더불어 남유다를 침공하고 예루살렘까지 압박하였다(왕하16:5; 대하28:5), 이에 다급해진 아하스 왕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원병을 요청하고 앗수르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까지 진격하여 아람 왕 르신을 살해한다(왕하16:9), 또한 북IS 역시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길르앗, 갈릴리, 납달리 지역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는 위기를 맞게 된다(왕하15:29), 이 전쟁의 여파로 베가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친 앗수르파인 호세아(북IS의 마지막 왕)에 의해 살해당해(왕하15:30) 통치를 마감하게 된다.
한편 그가 ‘사마리아에서 이십년간 다르시며’라는 성경 기록(왕하15:27)은 그의 군대장관 시절부터 통치기간을 합산한 것으로 실제 그의 치세는 8년 정도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 호세아(여호와께서 구원하시옵소서)
엘라의 아들, 북IS 왕국의 마지막 왕. 베가를 살해하고 왕이 되었다(왕하15:30). 그가 왕이 된 배후에는 앗수르 왕 디글 랏 빌레셀3세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그 대가로 호세아는 앗수르에 많은 조공을 바쳤다(왕하17:3), 하지만 BC727년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죽자 호세아는 앗수르와의 친선 관계를 단절하고 대신 애굽 왕 소(So)에게 의지하였다(왕하17:4), 이에 왕위를 계승한 앗수르 왕 살만에셀5세는 북IS을 침공하여 호세아를 옥에 가두고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였다(왕하 17:4), 그리고 3년간 사마리아를 포위한 채 공략하였다, 그러나 살만에셀 5세는 사마리아를 함락시키지 못한 채 죽음을 맞고 계승자 사르곤 2세는 결국 호세아 9년에 사마리아를 함락시킨다(BC722). 그리고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할라, 하볼 하수, 메대 등 메소보다미아 여러 지방으로 잡아가고 대신 여러 이민족들을 사마리아에 강제로 이주시킨다
(왕하17:6: 18:9-12: 호10:3,7). 기록에 의하면 이때 포로로 끌려간 자는 무려 27,290명인데 이는 북IS 인구의 20분의 1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남 유다 왕
1.르호보암 (백성의 수가 많다),
솔로몬과 암몬 여자 나아마 사이에 태어난 분열 왕국 남유다의 초대왕(왕상14:21,31).부왕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지나친 조세 부담과 부역에 반발한 10지파가 여로보암을 주축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북이스라엘을 건국하자
유다, 베냐민 두 지파만 거느리고 남유다의 왕이 되었다(왕상12:1-15)
이에 18만의 군사를 일으켜 북IS을 치려 하였으나 스마야 선지자의 만류로 북벌 계획을 중단하였다(왕상12:22-24).
그후 3년간 성실히 하나님을 섬겼으나 얼마 되지 않아 우상 숭배에 빠져들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로 5년째 되던 해 애굽 왕 시삭의 공격 앞에 왕궁까지 약탈당하는 위기를 겪는다(왕상14:25-28),그후 북IS과도 잦은 분쟁을 치른다
(대하12:2-4,15).그는 41세에 즉위하여 17년을 통치하였고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통해 28명의 아들과 60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중 아들 아비얌에게 왕위를 승계해 주었다(왕상14:31) 그는 ‘지혜가 없고 미련하여 백성을 반역으로
몰아넣은 자’로 평가받고 있다.
2. 아비야(아비얌)
왕국 분열의 빌미를 제공한 르호보암과 압살롬의 딸 마아가 사이에서 태어난 유다의 제2대왕, ‘아비얌’과 동일인
(왕상14:31),북IS 여로보암의 죄악을 지적했고 또 북IS의 열 지파를 회복하기 위해 여로보암과 교전하여 성읍들을 빼앗았다, 그리하여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아내 14명에게서 아들 22명과 딸 16명 을 두었다 그가 죽어 다윗 성에 장사되고 경건한 왕 아사가 그 뒤를 이었다(왕상15:8: 대하14:1)
3.아사 (치료하는 사람, 의사, 주는자)
아비야와 마아가 사이에서 태어난(왕상15:8-10: 대하14:1)남왕국 유다 제3대왕.유다의 경건한 왕들(아사,여호사밧,
요아스,아마샤,웃시야,요담,히스기야,요시야 등)중 첫 번째 왕이었다(대하14-16장)
그는 통치 초기 약 10년간 전쟁 없이 태평한 시기를 보냈고(대하14:1,6),평화시에 전쟁에 대비했으며 전쟁이 다가왔을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의지했다. 그는 가증한 신상과 제단을 없애며 우상 숭배를 배척했고 하나님의 뜻에 귀기울였 으며(대하15:1-8),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부패와 타락을 멀리하면서(왕상15:11-12) 신앙 부흥 운동에 힘을
쏟았다(대하15:8-16).하지만 아사는 북IS의 바아사를 치기 위해 아람 왕 벤하닷과 동맹을 맺었는데, 그로 인해 선견자 하나니의 꾸중을 들었다(왕상15:16-19: 대하16:1-9), 이에 분노한 아사는 하나니를 옥에 가두고 백성을 학대하였다
(대하16:10).이같은 악행에 대해 하나님은 아사가 왕이 된지 39년에 병으로 그를 치셨다, 이때도 아사는 하나님께 구하 지 않고 의원에게 도움을 청했다(대하16:12),그 결과 아사는 재위 41년 만에 죽어 다윗성에 장사된다(대하16:13-14)
4. 여호사밧(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
남왕국 유다의 제4대왕,아사 왕과 아수바 사이에서 태어났고, 35세에 왕위에 올라 25년간 통치했다, 불의한 왕 아합이나 아하시야와의 연합 같은 실수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여호와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그분을 경외함으로써
(왕하22:4: 대하19:9)히스기야, 요아스와 함께 유다의 3대선왕으로 인정되고 있다
여호사밧은 왕위에 오르자 우상과 산당을 파괴하고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대하17:6-9: 18:4-6, 19:2-11: 20:3-32), 이로 인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나라가 견고해졌다.
이같은 강성함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는 아들 여호람을 북IS왕 아합의 딸인 아달랴와 정략 결혼시키는 잘못을 범하였다
물론 이런 결속으로 솔로몬 사후 계속되었던 남북 간의 전쟁이 종식되기는 했지만(왕상22:44), 양국은 이를 기반으로
아람의 길르앗 라봇을 공격했다가 아합은 전사하고 여호사밧은 겨우 목숨만 구하는 치명타를 입었다(대하18:2-34), 그후 모압과 암몬의 동맹군이 유다를 침입하여 위기에 처했을 때 여호사밧은 여호와께 간구하여 승리를 얻는다(대하21:1-30), 한편 승리한 후 여호사밧은 북왕국의 아하시야와 더불어 배를 만들어 오빌의 금을 들여오려고 했지만 선지자 엘리에셀의 책망대로 배가 파선하여 실패하고 만다. 그는 죽기 전에 장자인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아들들에게는 견고한
성읍과 보물들을 선물로 주었다, 사망후 다윗성에 장사되었다(대하21:1-3)
5. 여호람(요람) (여호와는 높으시다, 여호와는 존귀하시다, 여호와는 일으키신다, 요람은 축약형이다)
유다의 제5대왕, 부친 여호사밧과 함께 4-5년간 유다를 다스리다가 BC847년 부친 사망 후 단독으로 통치하게 된다
(왕하8:16 대하21:1). 그의 아내는 가증스런 바알 숭배자인 북IS의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였다, 여호람은 단독 통치 가 시작되자 아내의 사주를 받아 우상을 적극 섬기고 그 형제와 신하들을 살해하는 등 악행을 일삼았다(왕하8:16-19: 대하21:1-6,11) 이같은 일로 하나님은 그에게 고통스런 생애를 주셨는데, 에돔과 립나의 반역(왕하8:20-22: 대하 21:8-10)과 블레셋과 북IS의 침공으로 나라가 초토화되고 그 아내와 자식들은 포로로 끌려갔다(대하21:16-17: 22:1). 그 역시 하나님의 징벌로 불치의 병을 얻어 2년간 고생하다가 죽음을 맞았다(대하21:18-19), 죽어서도 역대 왕들의 무덤 에 들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대하21:18-20)
6. 아하시야 (여호와께서 붙잡으셨다)
여호람과 아달랴(아합의 딸)에게서 난 막내 아들(왕하8:25-26). 42세때 예루살렘 주민들에 의해 유다 제6대왕으로 옹립 되나(대하 22:1-2) 단 1년간 왕위에 머물렀을 뿐이다(대하22:2) 이유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동맹하여 아람 왕 하사엘과 맞서 싸웠고 요람의 부상으로 그를 문안하러 갔다가 요람을 제거하려는 예후의 손에 살해되었기 때문이다(왕하9:16-27), 재위 기간중 그는 모친 아달랴의 꾐으로 아합 집안과 같이 악을 행했다(왕하8:27: 대하22:3-4) 여호아하스와 동일인
(대하21:17: 25:23)
7. 아달랴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아합과 이세벨의 딸로서 남왕국 유다를 통치한 유일한 여인(대하22-23장), 아달랴는 사마리아에서 성장했고 바알을 섬겼 다(왕하8:18, 25-28), 유다왕 여호람과 결혼해 아하시야를 낳았으나 아들이 죽자 겨우 피신한 손자 요아스를 제외한
왕의 일가족을 몰살시킨 후 자신이 왕위에 올라 6년간 통치했다(왕하11:1-3), 그후 즉위7년째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살해된다(왕하11:4-16).성경에서는 ‘악한 여인’이라 일컫고 있다(대하24:7)
8. 요아스(여호아스) (여호와께서 주셨다. 여호와는 강하시다, 여호와는 도와주신다)
아하시야 왕의 아들로 1살 때 아하시야의 모친인 아달랴의 대학살로 집안이 참화를 겪었다 이때 고모인 여호세바와 고모 부인 대제사장 여호야다 부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화를 면하고 6년간 성전에서 몰래 양육되다가(왕하11:1-3:,
대하22:11-12),7세때 아달랴의 악정에 반기를 든 대제사장 여호야다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유다의 제8대 왕에 즉위하여 (왕하11:12) 40년간을 통치했다, 재위 초기에는 여호야다의 신앙적 조언에 귀 기울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왕하11:17-12:2), 또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기도 했다(왕하12:4-16). 하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며 나라 전체에 우상 숭배를 조장하였다(대하24:17-18), 이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어 불신앙을 경계했으나 듣지 않았다(대하24:19),그 뒤를 이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보내어 요아스의 배교를 꾸짖 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게 했으나 요아스는 오히려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살해하였다(대하24:10-22: 마23:35), 말년에 그는 수리아(아람)하사엘의 침공을 받고 성전 창고의 물건들까지 바쳐야 할 정도로 힘겹게 조공을 충당하였다 (왕하12:17-18), 또 하사엘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기도 했다(대하24:25),
그리고 끝내 오랜 악정 끝에 그는 자기 부하들에 의해 침상에서 살해되었다(왕하12:20: 대하24:25)
9. 아마샤 (여호와는 강하시다 여호와의 능력)
유다의 제9대왕이자 요아스의 아들로 에돔을 정복하였으며, 29년간 왕위에 있었다, 25세에 즉위한 그는 율법 정신에
따라 (신24:16),부왕(요아스)의 암살자를 처형하면서도 그 아들은 살려주었다(왕하14:5-6), 에돔 정복 후 교만해진
아마샤는 북IS을 침공했다가 벧세메스 전투에서 패배하여 생포되고(왕하14:8-14: 대하25:19) 나라는 북IS에 예속된다. 그 역시 내란에 의해 살해되었다(왕하14:18-20) 성경은 그가 대체로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했지만 산당을 제하지
않는 등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않았다고 평가한다(왕하14:3-4: 대하25:2),
10. 아사랴(웃시야) (여호와께서 도우셨다)
유다의 10대왕으로(791-739) 16세에 왕위에 등극(남북 왕국의 왕들 중 가장 오랜기간) 52년 간을 통치했다(왕하15:1 대하26:1). ‘웃시야’(여호와는 나의 힘)로도 불린다(왕하15:13: 대하26:1)
부친 아마샤와 모친 여골리야 사이에서 태어나(대하15:1-1). 재위 초기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리고(대하26:2). 부왕 의 대적인 에돔(동쪽), 블레셋(서쪽), 아리비아(남쪽), 및 마온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왕하14:22: 대하26:1-7).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에 망대를 세워 견고히 하였고, 농경을 발전시켰으며, 군대를 위해 무기를 예비하는 등 종교, 정치, 경제적으로 탁월한 업적들을 남겼다(대하26:4-15). 하지만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안해지 자 교만해져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분향을 하려다가 여호아의 징계를 받아 나병에 걸렸다, 그로 인해 웃시야는 여생 을 별궁에서 홀로 지내다가 죽은 후에도 조상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했다(대하26:16-23). 한편 나병 발병 후 죽기까지 그의 아들 요담이 섭정했고(대하26:21), 웃시야의 모든 행적을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다(대하26:22), 그리고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의 영광을 목격하였다(사6:1)
11. 요담(여호와는 정직 완전 하시다)
부친 웃시야의 나병 발병으로(대하26:16-21) 일찍이 대리로 통치하다가(왕하15:5) 유다의 제11대 왕으로 즉위하여 평생 동안 여호와 신앙으로 통치했다, 그의 모친은 사독의 딸 여루사였다(대하27:1). 그는 이사야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고
사역을 시작한 즈음에 통치를 시작했다(사6:1), 또 호세아와 미가 선지자와도 도이대 인물이다(호1:1,미1:1),따라서 자연 히 하나님의 사람들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왕하15:32-38: 대하27장). 그는 재임 기간중 부왕의 행위대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았다(왕하15:34-35)
12. 아하스
(그(여호와)가 붙잡고 있다)
유다12대왕으로(735-716),20세에 왕위를 물려받아 4년간 부친(요담)과 섭정했으며(왕하16:2), 16년간 단독 통치했다
(대하28:1) 그는 재위 기간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외세를 더 의존했으며, 배교와 가증한 우상 숭배 등으로 유다의 부패를 촉진시켰다, 특히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가증한 풍습을 좇아
자기 아들을 산 채로 불살라 우상(몰록)에게 제물로 바치는가 하면(왕하16:3-4: 대하28:2-4). 우상을 제조하고(사2:8)
우상의 제단을 만들어 제사 드렸으며(왕하16:11-14), 다메섹(아람)의 신들에게 도움을 구했다(28:22-23). 그리고 성전 기구를 파괴하고 성전 문을 닫았으며 유다의 각 성읍마다 산당을 세우고 푸른 나무 아래서 분향하였다(대하28:22-25)
한편 다메섹 왕 르신과 북IS왕 베가가 동맹을 맺고 유다를 침략해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을 전하였으나(사7:1-14)아하스는 이사야의 권면을 거절했고, 결국 끔찍한 전쟁의 참화(하루 동안에 12만 명이 학살당하고, 20만명이상이 포로로 끌려감)를 겪게 된다(왕하16:6: 대하28:5). 이에 더하여 유다는 동쪽의 에돔과 남서쪽의 블레셋의 침략을 받게 되었고(대하28:17-18). 그럼에도 아하스는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3세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더 큰 재난을 재촉하게 된다(사7:1-3: 대하28:16-20). 이러한 악정과 불신앙의 결과, 아하스는 죽은 뒤에도
왕들의 모실에 묻히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대하28:15,27) 아하스의 통치기간중 활동했던 선지자로 이사야
(사1:11), 호세아(호1:1),미가(미1:1)등이 있다,
13. 히스기야
(여호와는 강하시다)
유다의 13대 왕(728-687)으로, 북IS의 패망과 앗수르의 남하 정책에 맞서야 하는 위기 정국을 신앙으로 헤쳐 나간 3대 현군(여호사밧, 요시야 등)중한 사람이다(왕하18-20장: 대하29-32장; 사36-39장). 초기 13년 동안 부친 아하스와 함께 통치하다가 부친의 무능력으로 실권을 장악한 뒤 부친이 폐쇄하고 더럽혔던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고 성전 문을 다시
열고 여호와 예배를 회복시켰다. 이사야, 미가 선지자와 함께 백성의 영적 각성 운동을 벌이는 등 구약 시대 가장 신실한 통치자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히스기야 재위 6년에 북IS은 곤경에 처해 있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드디 어 사마리아를 포위 공격하였고, 사르곤 2세는 북IS을 멸망시킨 뒤 주민들을 메소보다미아 일대로 추방시켰다, 그후
앗수르 왕 산헤립은 남유다를 침공하여 히스기야는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갖 수모를 감내해야 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앗수르 군사는 하룻밤에 185000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퇴각하였다(왕하18-19장). 그후 히스기야는 등창으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사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시켜
주셨다(왕하20:1-11). 이때 그의 아들 므낫세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히스기야 사후 부왕의 왕권을 이어받았 다(왕하20:20-21), 히스기야가 회복되자 바벨론 왕 므로닥 발라단은 히스기야를 축하하기 이하여 사절단 보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히스기야를 설득하여 앗수르 세력에 대항할 비밀 동맹을 맺으려는 의도였다, 주의가 산만한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절에게 그의 모든 보고를 보여 주었는데, 이는 장차 바벨론에 의한 유다 왕국의 멸망을 암시하는 행위로 여겨 져 히스기야는 큰 책망을 받았다(왕하20:12-19), 하지만 히스기야는 평생 바른 신앙과 믿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나라를 바르게 통치한 성군으로 평가된다.
14. 므낫세
(잊게 해주다)
히스기야 왕과 헵시바의 아들로 유다 14대 왕위에 오른 자(697-642년경). 부왕과의 공동 섭정 기간(대략10년)을 포함하 여 55년간 통치한 최장수왕(왕하21:1). 철저한 개혁자였던 부왕과는 달리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고, 성전 뜰에 일월성신 제단까지 두는 등 철저한 우상 숭배자였다(왕하21:1-6). 또 많은 신실한 자들과 선지자를 핍박하였는데, 전승에는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인 것으로 전해진다(왕하21:16: 히11:37), 이런 악행의 결과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바벨론 지역 으로 끌려가기까지 했다(대하33:11-13). 그러나 포로에서 풀려난 후에는 회심하고 우상 철폐에 앞장섰으며 여호와 예배 를 부활시켰다(대하33:12-19)
15. 아몬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충실한 자)
므낫세 왕의 아들이자 요시야 왕의 아버지로 유다의15대왕(642-640 왕하21:18-19). 그는 22세에 등극하여 부친 므낫세 의 정책을 답습함으로써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였다(왕하21:20-22: 대하33:22), 2년간 통치한 후 신복들에 의해
살해된다(왕하21:23-24)
16. 요시야
(야훼께서 고쳐주신다, 야훼께서 주소서 야훼께서 지지하신다)
유다 제16대왕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기(BC586) 전에 유다 왕국의 마지막 종교적 부흥기를 주도하고 국가의 독립성을 유지했던 경건한 왕(대하34:1), 아몬 왕과 보스갓 아다야의 딸인 여디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왕하22:1)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 사역과 이름이 예언되었다(왕상13:1-2) 그는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을 통치하면서 경건했던 여호사밧 과 히스기야 왕의 전통을 이어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에 힘썼다, 그는 재위 8년 되던 해(16세)에 다윗의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기를 원했고, 재위 12년 되던 해(20세)에 우상을 파괴하고 가증한 이교적 예배를 금하였다
(대하34:3). 그리고 재위 18년 되던해(26세)에 성전을 수리, 복구하면서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대제사장 힐기야 에 의해 발견된 율법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를 크게 감동시킨 말씀은 신28-30장)요시야는 옷을 찢고 통곡하면서 겸손히 여호와의 뜻을 물었다(왕하22:11-13), 이에 여선지자 훌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춘 요시야는 예언된 재앙을 만나지 않고 평안히 조상들과 함께 잠들 것이 약속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왕하22:15-20), 요시야는 율법책의 내용을 깨달은 후 정결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 율법 중심의 제2의 종교개혁과 영적 대각성을 추진하게 된다.
이때 그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 그 언약을 온전히 좇게 하였고, 각종 산당과 우상들(바알,아세라,일월성신,몰록,드라빔 등)그와 관련 된 부정한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거나 불살랐고 신접한 자나 박수 등 모든 우상숭배자 들을 처형시켰다(왕하22:3-23:25). 이 개혁의 칼바람은 유다 지경을 넘어 당시 앗수르 치하에 있던 북이스라엘 지경까지 영향을 미쳤다(왕하17:28; 23:15-20), 이렇게 정결 작업을 진행한 뒤, 요시야는 유월절 절기를 성대하게 지킴으로써
종교개혁을 완수하게 된다(왕하23:22-23), 요시야에 의해 정착된 경건한 분위기는 예레미야의 사역 초기에 여러 모양으 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한편, 성경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이후 몇 년 동안의 행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이 침묵 기간 동안 국제적으로는 바벨론이 신흥제국으로 부상하고 있었고 구세력인 앗수르는 점차 힘을 잃어가게 된다, BC609년 에 요시야는 앗수르를 도와 애굽의 바로 느고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는 느고의 평화 제안까지 거부하며 전쟁에 임했다가 므깃도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39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왕하23:29: 대하35:20-24), 그의 죽음은 결국 유다 왕국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백성과 함께 요시야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대하35:25-27), 요시야의 행적을 자신의 예언서에 남기게 된다(렘22:11-18), 요시야는 예루살렘 조상의 묘실에 안치되 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뒤를 이었다(왕하23:30)
17. 여호아하스(살룸)
남유다의 17대왕(609년) 요시야를 이어 23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3개월만에 폐위되어 가장 단명한 왕이 된다
(왕하23:30-3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왕하23:32) 부친 요시야 왕을 전사시킨 애굽의 바로느고에게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 죽고, 왕위는 그의 형에게 주어진다(왕하23:33-34), 예레미야와 에스겔도 이같은 비극적인 운명을 예언 한 바 있다(렘22:10-12: 겔19:2-4),에스겔은 그를 ‘젊은사자’라 불렀다(겔19:3), 일명 살룸(대상3:15)
18. 여호야김(엘리야김) (여호와께서 일으키시다)
경건한 왕 요시야의 둘째 아들이며 유다의 제18대왕(609-598년 대상3:15),유다를 침공한 애굽의 바로느고에 의해 3개 월 천하에 그친 아우 여호아하스(요시야의 넷째아들)의 뒤를 이어 25세에 왕위에 올랐다(왕하23:36),본명이 ‘엘리야김’이 었으나 그를 세운 애굽 왕 바로느고에 의해 ‘여호야김’으로 개명되었다(왕하23:24), 그는 조공을 요구하는 애굽에 공물을 바치기 위해 백성에게 중한 세금을 매겼고 그 일부를 착복했으며9렘22:13-190, 심판을 외치는 선지자 우리야를 살해했 고(렘26:21-23),예언의 말씀을 경시하여 바룩이 기록한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불태우는 등(렘36:9-24)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대하36:5,8) 한편 여호야김 제4년(605년경),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이 바벨론에 대패한 이후, 유다는
바벨론의 지배 아래 있던 중, 선지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3년 후 반란을 일으켰다(왕하24:1 렘27:8-11),이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함락하게 된다, 그후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쇠사슬에 결박된 채 바벨 론으로 잡혀갔다(대하36:6),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보듯(렘22:13-23: 36:30-31),끔찍한 죽음을 맞았을 것으로 추정된다(왕하23:34-37: 24:1-6: 대하36:4-8),
19. 여호야긴(여고니야)
(여호와께서 성취 완성하신다)
여호야김의 아들로 유다 제19대왕(598년 왕하24:6-8), 18세에 왕위에 올라(대하36:9에서는 8세에 등극한 것으로 소개 됨) 불과 3개월만 통치했다(대하36:9), 그는 자기 부친을 본받아 악을 해하다가(왕하24:9)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고 패하여 모친(느후스다)과 아내들과 신하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갔다(왕하24:10-16), 예레미야는 이런 처참한 결망을 예언한 바 있다(렘22:24-30: 24:1-10), 여호야긴은 포로 생활 37년 만에 바벨론의 에월므로닥 왕이 즉위한 때에 석방되 어 명예를 회복하고 높임을 받게 된다(왕하25:27-30: 렘52:31-34), 일명 ‘고니야’(렘22:24: 37:1), ‘여고니야’(렘27:20: 28:4: 29:2), ‘여고냐’(대상3:16-17: 에2:6: 렘24:1 마1:11-12)
20. 시드기야(맛다니야) (여호와는 의롭다)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597-586),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로 여호아하스의 친동생이며 여호야김의 이복동생(대상3:15),
어머니는 립나 예레미야(렘,선지자와 다름)의 딸인 하무달이다(왕하24:18), 시드기야는 조카이자 선왕인 여호야긴(여호야 김의 아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후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21세의 나이에 유다 왕으로 세워졌다, 본래 이름은 ‘맛다 니야’인데, 바벨론식 이름인 ‘시드기야’로 개명했다(겔17:11-14),즉위 3년에 친 애굽파가 득세하자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주변 군소 국가들과 함께 반바벨론 동맹을 결성하였다(렘27:3: 52:3),즉위 9년에는 바로 호브라가
애굽 왕이 되어 원군을 약속하자 하벨론에 반역을 꾀하였다(렘44:30), 그러자 즉시 바벨론의 침공이 재개되었고 애굽의 도움으로 잠시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러나 애굽이 퇴각하자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 바벨론은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시드기야 11년 4월 9일, 햇수로 만 3년 만에 예루살렘 도성은 함락되었고, 예루살렘 성내에서 는 기근과 아사로 수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했다(렘37:21: 애2:4),이런 상황에서 시드기야 왕은 포위망을 뚫고 아라바 광야 쪽으로 도주하였으나 결국 여리고 평지에서 바벨론 군사들에게 체포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왕하25:4-6), 그리하여 바 벨론 야전 사령부가 있는 립나로 끌려간 시드기야는 두 아들은 죽임당하는 것을 목도해야 했고, 자신도 두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잡혀가 옥에서 여생을 마치게 되었다(왕하25:7: 렘52:11)
7월 11일(화) 호세아 14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호와께로 돌아오라(1절)
Return, O Israel, to the LORD your God, For you have stumbled because of your iniquity.
슈바 아도 아도나이(שׁוּבָה עַד יְהוָה)
호세아 14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강조된 심판주로서의 하나님보다 사랑의 하나님을 중점적으로
계시합니다.
마치 2:14-23을 연상케 하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선지자는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임을 밝히며, 이스라엘의 궁극적 회복을 약속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 '...께로'에 해당하는 '아드'(5704)는 단순히 방향을
뜻하는 '엘'(413)과는 다른 말로서 어떤 귀착점, 목적지를 지적하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품안으로 온전히 돌아오게 하는 회개의 선포라고 하겠습니다.
* 엘(413) אֵל
관련 성경 / ~에게, ~향하여, ~안으로, ~으로, 대하여(창30:40, 삼상3:12, 렘22:11), 때문에(삼상4:21), [부] 서로(렘36:16).
구약 성경 / 5464회 사용
* 아드(5704) עַד
구약 성경 / 35회 사용
회개의 방법
관련 성경 / 취하다(창 2:22), 따먹다(창 3:22), 데려가다(창 5:24), 택하다(창 24:4, 민 3:12), 빼앗다(창 27:36, 신 3:4, 삼하 8:1), 불러오다(창 27:45, 렘 43:10), 넣다(창 31:34), 받다(창 33:10, 민 3:50), 데리다(창 34:17, 출 14:6), 빼어내다(출 6:7, 삿 3:21), 바르다(출 12:7, 레14:42), 이끌어 내다(출 14:11, 수 24:3), 대다(출 22:11), 가지다(출 29:5, 레 4:5, 수 4:20), 삼다(출 34:16, 신 21:11), 찍다(레 4:25, 민19:4), 돌리다(민 3:41), 모으다(민 11:16), 밀다(민 6:18), 가져오다(민 13:20, 삼하 1:10), 잡다(신 19:12, 삼하 12:4), 데려오다(민 23:11, 삿 11:5), 얻다(신22:15, 삿21:22), 거느리다(삿4:6, 대하16: 6), 장가들다(왕상7:8, 대하11:20), 탈취하다(삼상30:16, 렘20:5), 옮기다(왕하18:32, 삼하18:17), 빼앗기다(왕하13:25, 잠22:27), 양육하다(에2:7), 사로잡다(창14:12, 시68:18), 본받다(잠22:25), 거두다(시51:11, 사51:22), 청종하다(렘7:28), 옮겨가다(렘28:3), 찾아내다(암9:3), 가져가다(렘52:18), 찾다(창38: 20),잡아가지다(렘52:25), 인도하다(왕상20:33, 신4:34), 강권하다(왕하5:16), 접대하다(겔16:61), 이끌다(창19:15, 신30:4), 안다(호11:3, 왕상17:23), 축복하다(창48:9), 줍다(출5:11), 몰아가다(출12:32), 끌어오다(창20:31, 민19:2), 끌다(삼상6:7), 태우다(출4:20, 왕하9:17), 들다(출34:4, 왕하4:29), 끌어들이다(창34:2), 주다(창24:22, 호13:11), 이르다(창48:1), 따다(창40:11), 동원하다(출14:7), 쓰다(출28:5), 숨기다(수2:4), 짓다(민16 : 1), 노략하다(삿14:19), 부르다(삼상17:31), 머무르다(삼상18:2), 사다(왕상10:28, 대하1:16), 차지하다(삼하19:30), 적시다(왕하8:15), 거절하다(왕하5:16), 당하다(왕하11:2, 시75:2), 두다(왕하13:25), 잡히다(왕하20:18, 욥3:6), 싣다(왕하23:30), 내다(대하22:11), 세우다(대하23 : 1), 들리다(욥4:12), 끌리다(욥15:12), 영접하다(시49:15, 73:24), 따르다(시49:17), 치다(시50:9), 탐하다(잠6:25), 사로잡히다(사39:7), 보복하다(사47:3), 불려가다(사57:13), 갚다(렘20:10), 넘기다(렘37:17), 입히다(겔16:18), 간음하다(겔16:32), 꾸미다(겔18:8), 의지하다(미1:11), 던지다(슥11:13), 구원하다(잠24:11), 놀리다(렘23:31),잡혀가다(사52:5), 섞이다(출9:24).
구약 성경 /966회 사용
돌아와서(7725) 슈브(shûwb) שׁוּב
1. 방향을 돌리다. 2. 회복하다. 3. 돌이키다
관련 성경 / 돌아가다(창 18:33, 룻 1:8, 대하 25:10), 오다(레14:39), 돌아오다(레22:13, 사52:8), 배반하다(민14:43), 돌이키다(신23:13, 호6:11), 떠나다(신23:14, 렘2:35), 돌다(수19:12), 함께 가다(삿11:8), 보고하다(삼상23:23), 물러가다(삼하11:15), 다시 이르다(왕하4:38), 그치다(삼상2:26, 느9:35), 남아 있다(사6:13),쉬다(사9:12), 변하다(사29:17), 뉘우치다(렘8:6), 회복하다(나2:2), 베풀다(슥8:15), 마르다(창8:7), 보내다(창27:45, 왕하1:13), 내보내다(신24:4), 불러올리다(삼상28:11), 돌아보다(렘5:3), 부르다(창26:18), 풀리다(창27:44), 주다(창30:31), 회복되다(출14:27,삿15:19), 돌려보내다(삼상29:4), 차리다(삼상30:12), 거두다(대하34:9), 중건되다(단9:25), 또 오다(단11:10), 쌓다(말1:4), 왕래하다(겔35:7, 슥7:14), 지나가다(미2:28), 유혹하다(사47:10), 소생시키다(시23:3), 회복시키다(시60:1), 벗어나다(겔38:8), 찾아오다(창14:16), 옮기다(창29:3, 잠24:18), 복직하다(창41:13), 가져오다(창44:8), 가리다(출34:35), 피하다(레26:26), 돌려주다(민5:7), 대답하다(민22:8), 명심하다(신4:39), 돌리다(신22:2), 가져가다(신28:60), 끌어가다(신28:68), 응하다(삿9:57), 드리다(삼상6:17), 갚아주다(삼하16:12), 데려오다(삿19:3, 왕상13:20), 데리고 오다(왕상13:23), 가져가다(왕상14:28, 대하12:11), 보답하다(대하32:25), 보응하다(잠24:12), 쫓겨나다(렘16:15),인도하다(렘24:6), 거래하다(겔27:15), 드리우다(슥13:7), 모셔오다(삼하19:43), 복종하다(느9:29), 회답하다(에4:13,15), 옮겨오다(렘28:6), 돌려주다(왕상8:6), 구원하다(시35:17), 심판하다(겔21:30), 빼앗기다(창14:16), 도망하다(삼하24:13), 거절하다(왕상2:16,20), 자문하다(왕상12:9), 물리치다(왕하18:24), 꽂다(대상21:27), 복명하다(대하34:16), 들여놓다(느13:9), 막다(사43:13, 렘2:24), 도로 넣다(창42:28), 행하지 아니하다(사58:13), 회복시키다(애1:19), 꾸어주다(겔18:8), 데리고 가다(겔47:1), 소성시키다(시19:7). [명] 왕래(겔1:14). [부] 도리어(잠26:27).
구약 성경 / 1059회 사용
아뢰기를(559) 아마르( ’âmar) אָמַר
관련 성경 / 이르다(창 12:12, 삼하 18:12, 미3:1), 지시하다(창22:3, 26:2), 청하다(창24:43, 느8:1), 대답하다(창26:9, 대하10:10, 삼상17:58), 말씀하다(창31:29, 왕상2:4, 대상17:7), 묻다(창46 :33, 삼하9:4, 암6:10), 명을 받다(출6:26), 명하다(민15:38, 수11:9, 대하29:24), 전하다(삼하18:18), 아뢰다(신26:5, 대상21:8), 간구하다(신3:23, 대하6:37), 인정하다(신26:17,18), 부르다(왕상1:34,39, 대하23:11), 내리다(에 9:25), 선포하다(시40:10), 생각하다(수 22:24, 삼상27:1), 증거하다(왕상21: 10), 언약하다(대하7:18), 전파하다(에1:17), 권하다 (에3:4), 구하다(에6:4, 5:14), 속담을 말하다 (겔16:44), 외치다(대하23:13), 말을 전하다 (출18:6), 여쭈다(출32:31, 삿10:15), 울다(욥 39:25), 간청하다(왕하2:17), 결심하다(대하2:1), 논하다(민23:23), 맹세하다(렘16:14), 허락하다(에9:14), 칭하다(사4:3). [명] 대답 (창24:44), 말(창41:54, 삿12:4, 삼상20: 7, 시 42:3), 명(창43:17, 시106:34).
구약 성경 / 5298회 사용
너는...아뢰기를
- 회개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즉 이스라엘로 하여금
입술의 고백과 간구로써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용서를 빌도록 권고하는 부분이다.
한편 본 구절의 '가지고'(3947. 케후),
'돌아와서'(7725. 쉬부), '아뢰기를'(559. 이므루)등은 모두 2인칭 복수 단수 명령형이다.
이는 본 구절의 회개의 권고가 호세아
선지자에 의해 이스라엘에게 강하게 촉구되어지는 것임을 엿보게한다.
또한 '여호와께로'의 '...께로'란 히브리어로
'엘'(413)인데, 1절과는 달리 하나님께 방향을 돌리도록 촉구하는 뜻을 담고 있다.
선한바를 받으소서
- '선한 바'란 히브리어로 '토브'(*)인데 '아름다운'(창
45:18;신 6:18,19;왕상 1:42), '좋은'(창 18:7;수 9:25;시 85:12)등의 뜻을 갖는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가치있고 유익하다는 뜻을 함축한다.
여기에 대해 카일(Keil)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드려지도록 권고되어지는
입술의 제사'라고 말한다.
실제로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선한 바'란 후반절에서 언급되어지는 입술로 제사드리는 것을 암시한다.
어원 / 2895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좋은(창 1:4, 삼상 2:24, 겔 34:14), 아리따운(창24:16, 26:7), 선한(창26:29, 출18:17), 나은(창29:19, 출14:12, 삿8:2), 충실한(창41:5), 좋게 여기는(창49:15, 삼하24:22), 잘 생긴(출2:2, 삼상9:2), 아름다운(출3:8, 신6:10, 민14:7), 선량한(신6:18), 기뻐하는(신23:16),즐거운(삿16:25), 귀한(룻4:15), 옳은(삼상9:10, 왕상18:24), 칭찬하는(삼상19:4), 선대하는(삼상24:18, 시145:9), 총명한(삼상25:3),어진(왕하10:3), 보배로운(왕하20:13, 스8:27), 존귀한(대상29:28), 즐거워하는(대하7:10), 후대하는(대하10:7), 감사하는(대하30:22, 시136:1), 지극히 선한(스3:11), 흥왕하게 하는(느2:10), 충성된(에7:9), 즐겨하는(에8:5), 선히 여기는(에9:13), 복된(욥7:7),형통한(욥21:13, 시106:5), 잘되는(시112:5), 복을 얻는(시119:122), 정직한(시125:4), 유익한(전5:11), 진기한(욜3:5), 풍부한(슥1:17).[명] 아름다움(창6:2), 선(창44:4, 삼하16:12),은혜(출18:9, 시68:10), 복(민10: 29, 신6:24,왕상10:7), 좋음(민13:19), 행복(신10:13), 형통(신23:6, 스9:12), 은혜(삿8:35, 대하6:41),은총(삼상2:26, 시86:17, 잠22:1), 순금(창2:12, 대하3:5), 선행(느6:19), 주흥(에1:10), 이익(에10:3), 은택(시65:11), 유익(시119:71), 복록(잠12:14, 13:2), 진실(사38:3), 희락(슥8:19). [부] 임의로(삿19:24), 평안히(삼상24:19), 즐거이(에7:9), 뜻대로(에8:8).
구약 성경 / 495회 사용
관련 성경 / 사랑하다(시 18:1), 긍휼히 여기다(신 13:17,왕하 13:23, 사 49:10), 자비하다(시116:5), 불쌍히 여기다(왕상8:50, 시103:13, 사27:11).[명] 자비(렘6:23, 애3:32), 긍휼(겔39:25, 합3:2), 로루하마(호1:8), 루하마(호2:1).
구약 성경 / 47회 사용
이스라엘의 회복 약속(호세아 14장)
14장의 내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반부 / 회개를 촉구(1-3절)
후반부 / 번영과 축복을 예고(4-9절)
죄악을 치유한 후에 누릴 수 있는 은혜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지자 호세아의 외침을 듣지 않고 거부하므로 멸망의 길로 달려갔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고 돌아을 것을 명하시면서 그들이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슬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그들로 축복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징계받고 심판을 받아 죽어 마땅한 백성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들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은총을 구속사적인 의미로 해석해 볼 때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택하신 자녀 모두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소망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와 은혜 안에서만이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와 죄의 오염을 제거시킬 수 있는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가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적으로 받는 상태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형통(亨通)하다
형통(형통)에는 두 종류의 형통이 있습니다.
첫째, 환경적인 형통(세속적인 형통)
사전의 정의처럼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번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코로나19에도 가게가 잘 되고 매상이 많아집니다.
자녀가 명문대학에 올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을 합니다.
졸업 후에
이름있는 회사에 들어가 승승장구합니다.
결혼을 하고 예쁜 손주도 태어납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형통이라고 합니다.
둘째,
성경적인 형통(영적 형통)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으며,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성실히 일하여 인정을 받고 가정 총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주인의 유혹을 뿌리침으로 증오와 모함으로 감옥의 죄수가
되었습니다.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형통하였다라고 말합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39:23)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이란?
단순히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를 형통과
불행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하였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진정한 형통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어려움에
처하였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진정한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쓰인 “형통”은 히브리어로 “찰라흐(צלח)”
라고 합니다.
“찰라흐”는 “돌진하다. 뚫고 나아가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때로 어려움을 만납니다.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사업의 문을 닫기도 하며 직장을 그만두기도 합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고난과 어려움이요 실패요 좌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그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돌진하여 뚫고 나아갈 때 형통이라고 합니다.
쇠사슬에 묶여 애굽으로 끌려갈
때에도,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로 지낼 때에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절망과 좌절의 상황에도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찰라흐의 힘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형통의 삶을 살고 있나요?
때론 건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매달 렌트비와 갚아야 하는 융자금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업장의 어려움과 심지어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일자를 찾아야
함에 잠 못 이룰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형통한 자입니다.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뚫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사 “찰라흐의 형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의 기나긴 터널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찰라흐의 하나님이 함께 하사 그 모든 것을 이기고 기쁨의
춤을 출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모래위의 두 발자국>
어느 날 밤 난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는 꿈이었습니다.
모래 위에 두 발자국이 남겨졌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황혼이 되어 걸어 걸었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발자국이
하나만 있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으로 주님께 물었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가장 어렵고 힘들 때 주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주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야, 나는 너를 홀로 두고 떠난 적이 없단다.
시련과 고통의
순간에 보인 그 발자국은 너를 업고 간 내 발자국이란다.”
어느 날 난 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그 때에도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 여전히 하나 밖에 없는 발자국이었습니다.
“주님, 정말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군요.”
주님께서 “그래 그때는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쳤었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지그재그로 엉망이 된
두 사람의 발자국이 보였습니다.
“이건 무슨 발자국이죠?” 주님이 기쁨 가득한 얼굴로 대답하셨습니다.
“ 모든 어려움이 지난 후
우리가 함께 즐거워 춤을 추었었지.”
어렵고 힘들 때 전능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찰라흐”의 형통, 능히 뚫고 이겨나가도록 도와 주사 마침내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한 후 우리는 주님과 함께
기쁨의 춤을 출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며, 어떤 어려움과 힘든 일에도 믿음으로 나가길 바랍니다.
형통하다(亨通) - 찰라흐, 샬라흐
6743.찰라흐(tsâlach) צָלַח
관련 성경 / 임하다(삿 14:19, 15:14, 삼상 10:6), 건너다(삼하 19:17), 건너가다(삼하 19:18), 형통하다(대하 20:20, 렘 12:1, 겔 17:15, 대하20:20), 감동되다(삿 14:6, 삼상 11:6, 16:13), 힘있다(삼상 18:10), 성취하다(사 53:10), 쓸데없다(렘 13:10), 번성하다(겔 17:9,10), 평탄하다(창 24:21, 40), 행하다(단 11:36), 윤택하다(렘 5:28), 승리하다(렘 32:5), [명] 소용(겔 15:4).
구약 성경 / 65회 사용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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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형 돌진하다, 통하여 가다, 삼하19: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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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형 침범하다, [עַל을 수반하여] 여호와의 영이 사람에게 내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삿14:19, 15:14, 삼상10:10, 11:6,[אֶל을 수반하여] 삼상16:13, 18:10, 하나님 자신이 인간에게 스스로 나타나심에 사용되어, 암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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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형 잘되어가다, 번영하다, 성공하다, 시45:5(4), 사53:10, 렘22:30, 식물이 번성하다, 겔17:9,10, [לְ을 수반하여]~에 적당한, 알맞는, 렘1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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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형 히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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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원형 번영하다, 성공하게 하다. ㉠ [~의 일에] 창24:21,56, 39:3,23. ㉡ [인칭대명사의 목적격을 수반하여]대하26:5, [לְ를 수반하여] 느 1:11,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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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원형 잘 성취하다, 끝내다, 신 28:29, 삿 18:5, 왕상 22:12, 대하 7:11, 시 37:7, 잠 28:13, 렘 2:37, 단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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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1. 샬라흐(shâlach) שָׁלַח
관련 성경 / 보내다(창 27:45, 삼하 11:6, 느 2:5), 펴다(출 9:15, 왕상 13:4, 시 144:7), 대다(출 24:11, 에 9:10), 들다(삼상 26:9, 겔 2:4), 전하다(왕하 17:13, 느 6:19, 슥 7:12), 주다(창 38:17, 욜 2:19), 달리다(에 8:7), 청하다(욥 1:4), 베풀다(시 111:9, 옵 1:7), 훼방하다(사37:17), 편지하다(렘 29:28), 떠나다(신 9:23), 돌이키다(삼상 22:17), 앉다(에2:21), 알리다(에3:6), 암살하다(에6:2), 죽이다(에9:2), 가다(왕하18:17, 느 8:10), 불러오다(렘 9:17), 넘치다(욜 3:13),내밀다(창 8:9, 삿 6:21), 어긋맞기다(창 48:14), 듣다(수 11:1), 던지다(삼상 17:49, 전11:1), 조상(弔喪)하다(삼하 10:2), 통보하다(왕상 21:14), 답장하다(대하 2:11), 부르다(스 8:16), 잡다(느 13:21), 날리다(시 18:14), 내리다(출 9:14, 겔 14:21), 보다(렘 43:10), 펴지다(겔 2:9), 놓다(출 22:5, 레 14:53), 돌아오다(삿 20:48, 암 4:10), 갚다(삼상24:19), 내보내다(신 24:4), 이르다(레 16:22), 벗다(출 30:11), 풀다(욥 39:5), 떠내다(사 50:1), 내쫓다(렘 3:8), 옮기다(렘 24:5, 40:1), 흐르다(겔 31:4), 내놓다(창 8:10), 나가다(창 18:16), 버리다(신 22:29), 쏘다(삼상 20:20), 들리다(느 8:12), 쫓아내다(레 18:24, 사 27:8), 풀어주다(사 58:6), 쫓아내보내다(렘 15:1), 끌러주다(사 58:6), 떠나가다(창 26:27), 이혼하다(말 2:16), 대접하다(민 22:40), 던져버리다(왕상 9:7), 미치다(시 80:11), 버려두다(시 81:12), 꾀하다(잠 6:14), 일으키다(잠 16:28), 붙다(사 10:16), 뻗치다(렘 17:8), 달아내리다(렘 38:6), 자라다(겔 44:20), 이간하다(잠 6:19), 뿌리다(사32:20), 제하다(렘 28:16), 따르다(삿 5:15), 버려두다(잠 29:15), 흩어지다(사 16:2), 보냄을 받다(단 10:11), 손가락질(사 58:9).
구약 성경 / 846회 사용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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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원형 [절대형] 창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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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형 [사람을 대격으로 수반하여] 창43:8, 45:5, 사6:8, 겔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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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원형 [אֶל을 수반하여] 창37:13, 출3: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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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원형 [부정사에 לְ를 수반하여] 민14:36,사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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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원형 [사람에 אֶל을 수반하여] 에9:20,30, 렘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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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원형 [사람에 לְ를 수반하여] 창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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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형 [특별한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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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형 메시지를 보내다, 창38:25, 왕상20:5, 왕하5:8, 잠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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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원형 ㉠ [하나님께서 재앙을] 수24:12.㉡ [구원의 손길을] 시20:3(2).㉢ [신탁, 하나님의 말씀, 계시를] 시107:20, 사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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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형 떠나게 하다, 물리치다, 처리하다, 왕상13:4, 시50:19, 아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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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원형 보내다, 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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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형 [도움의 손을] 사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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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원형 [채찍을] 삼상14:27, 시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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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원형 [주]수동태분사 שָׁלוּחַ: 창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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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원형 니팔형: 보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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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원형 [주]부정사 절대형 נִשְׁלוֹח 에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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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원형 피엘형 שִׁלַּ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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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원형 [대리자로] 보내다, 대리로 임명하다,사43:14. ㉠ [사람을 대격으로 수반하여] 창19:13, 28:6, 사10:6. ㉡ [עַל을 수반하여] 대하32:31. ㉢ [בְּ를 수반하여] 신7:20, 32:24, 왕하17:25, 시78:45. ㉣ [אֶל을 수반하여] 겔14:19. ㉤ [עַל을 수반하여] 겔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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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원형 물러가게 하다, 떠나게 하다, 창32:27,출8:28(32), 레14:7. ㉠ [갇힌 자를] 석방하다, 왕상20:42,슥9:11. ㉡ [딸을] 시집보내다, 삿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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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원형 [강한 의미로] 던지다. ㉠ [활을] 쏘다, 삼상20:20. ㉡ [불 재앙을] 암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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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원형 [힘차게] 던지다, 욥30:11, 전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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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원형 내쫓다, 창3:23, 왕상9:7, 사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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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원형 [특별한 의미로] 이혼하다[아내를 내쫓다], 신21:14, 22:19,29, 렘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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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원형 푸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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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원형 보내지다, 대리로 임명되다, 삿5:15,잠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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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원형 해고되다, 내어보내지다, 창44:3, 사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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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원형 버려지다, 사27:10, 잠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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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원형 쫓겨나다, 흩어지다, 사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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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원형 히필형: [전염병이나 재난을] 보내다, [בְּ를 수반하여] 레26:22, 암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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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월) 호세아 13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구원할 자(10절)
Where is your king, that he may save you? Where are your rulers in all your towns, of whom you said, 'Give me a king and princes'?
"구원할 자(your rulers. )"
웨야쉬오카( וְיֹושִׁיעֲךָ)
3467. 구원하다(야솨. yâsha) יָשַׁע
관련 성경 / 구원하다(민10:9, 삼하22:42, 렘17:14), 구원을 얻다(렘8:20, 삼하22:4, 렘4:14), 구하다(렘30:7), 돕다(삼하10:19, 대상19:12), 보복하다(삼상25:26,31), 건져내다(삿2:16), 이기게 하다(대상18:6), 보호하다(시36:6), 도와주다(신28:31). [명] 구원(사45:17, 신32:29, 습3:17), 구원자(삿3:9, 왕하13:5, 시106:21).
구약 성경 / 205회 사용
1. 동사 - 넓다, 광대하다, 넉넉하다, 풍부하다, 풍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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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사 히필형 הוֹשִׁיעַ. 미완료형 יוֹשִׁי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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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동사 해방하다, 석방하다, 보존하다, 보호하다, 유지하다, 삿2:16,18, 3:31, 6: 14,15,31,36, 시7:2(1), 34:7(6), 4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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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동사 돕다, 구제하다, 구원하다, 출2:17, 수10:6, 삼하10:19, 시3:8, 6:5(4), 31:17(16), 72:4, 86:16, 116:6, 사45:20, 겔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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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동사 승리하게 하다, 이기게 하다, 신20:4, 수22:22, 삼하8: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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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동사 니팔형
f. 동사 자유롭게 되다, 해방되다, 보호되다, 민10:9, 시33:16 -
g. 동사 도움을 받다, 구원받다, 안전하게 되다,정복하다, 시80:4(3),8(7), 신33:29,사30:16, 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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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동사 [주]분사 נוֹשָׁע: 정복자, 슥9:9, 시33:16.
첫째는 전반부(1-3장)
선지자 호세아의 개인적인 가정사(家庭事)에 대한 이야기로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러한 명령은 곧 북 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는 타락한 신앙에 대한 경고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후반부(4-14장)
북이스라엘 백성의 심각한 타락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1-8절은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인 에브라임이 앞장서서 우상숭배를 한 것에 대한 경고와 그런 일들이 조상 대대로부터 있었음을 경고합니다.
(1)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에브라임은 본래 요셉의 두 아들 중에서 둘째입니다.
솔로몬왕이 죽은 이후에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졌습니다.
그 때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이 여로보암이었는데, 그가 에브라임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성경에서 ‘북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되곤 합니다.
마치 ‘시온’은 본래 예루살렘 근처의 작은 산(언덕)의 이름이지만 주로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에브라임 지파’가 하나님을 섬기는 의로운 길을 가는 본을 보이지 못하고, 바알을 섬기는 불의한 길을 가는 본을 보이니까 온 이스라엘도 그렇게 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알’의 뜻은 ‘주인’인데, 이스라엘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바알을 주인으로 섬김으로 말미암아 망하는 길로 갔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2)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섬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우상들을 만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만났던 사람 중에 ‘데메드리오’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을 조각하여 판매하는 종교사업가였습니다. 그처럼 고대에 우상 세공업자들은 상당히 전문직이었고, 우상 조각하는 일은 고소득의 원천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쟁의 신,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분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는 ‘만군의 여호와’가 필요했지만, 완전히 정착한 후에는 ‘풍요의 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기들이 생각하는 풍요의 신을 또 만들었는데, 그것이 ‘송아지 우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에 올라가고, 그들은 아론과 더불어 출애굽 때 가져온 금으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아내와 자녀들의 귀에 있던 금고리를 모아 만든 것이 송아지 우상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라고 외치며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송아지의 모습으로 만든 것입니다.
애굽의 대표적인 신 중의 하나가 ‘아피스(Apis)’인데, 그것이 풍요의 신이며, 그 모습이 ‘황소’였습니다. 나일강이 범람하여 만드는 삼각지(델타)는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에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 땅을 바라보니, 거기가 ‘애굽 땅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비옥한 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 당시까지 사람들은 송아지 신상에 입을 맞추며 존경을 표하며, 충성을 다짐하는 어리석은 일을 그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3)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의 말로가 ‘구름’과 같고, ‘이슬’과 같으며, ‘쭉정이’와 ‘연기’와 같다고 합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일시적이라 금방 사라지는 것들이어서 덧없음과 허무함을 뜻합니다. 또한 이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들이어서 실상과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서 허상이었다는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도 동일합니다. 내가 실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틀림이 없고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허상으로 밝혀지고, 모호하고 흐릿하게 바뀌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할 때가 있고, 가진 것이 그러할 때가 있고, 앉은 자리도 그러할 때가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러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아주 분명한 ‘실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히브리어성경으로 이 구절의 첫 단어이자, 강조되는 단어는 ‘나는’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꺼낸 것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 있는 나,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모든 신은 다 ‘허상’이고, 오직 나, 여호와 하나님만 ‘실상’이다는 의미입니다.
(5-6)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이제 너희들 알아서 살아라’라고 말씀하지 아니하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 아무데도 기댈 데가 없는 마른 땅에서 그들을 아셨다(남편과 아내가 서로 아는 인격적인 교제)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다 지나고 나니까 딴소리를 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들을 온 정성을 다해서 젖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밥 먹이고, 교육을 받게 하여 다 키워 놓으니까 하는 말이 “해 준 게 뭐 있어요?”, 이웃에 사는 용돈 한 번 준 사람보고, “그 분이 나를 키웠어요, 그 분이 훨씬 더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해 주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차지할 때도, 그 전에 전쟁을 해 보지도 않은 노예 출신의 오합지졸 군대가 연전연승을 거두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바알로, 자신들이 만든 우상으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8)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하는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당신이 맹수와 같이 바뀌어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사자는 백수의 제왕이라고 불립니다. 잡히면 빠져나가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또 표범은 모든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 사냥 능력이 가장 뛰어납니다. 그리고 곰도 굉장히 강한 맹수입니다. 사자나 호랑이도 곰과 일대일로 싸우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새끼를 빼앗긴 암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들짐승들도 사납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이에나나 들개들은 떼로 다니기 때문에 사자보다 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는 분이신데, 이런 맹수와 같이 되신다고 하는 것은, 자기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불순종하는 것을 보니 속이 너무도 상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맹수와 같은 사람들을 보내어서 징계하심을 통해서 다시 세우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9-16절)
9-16절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속적 가치관을 따랐던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9-11)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이스라엘은 패망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싸워야 할 대상과 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해 주는 하나님을 향해 칼을 겨누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직 망하지 않았음에도 패망하였다고 선언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면, 싸우지 않아도 진 것과 마찬가지이고, 서 있어도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과 지도자들을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분노하심으로 왕을 주고, 진노하심으로 폐하였다고 말씀하심에서, 자연스럽게 사울왕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오래전에 장차 때가 되면 왕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주변 나라들과 같이 왕의 제도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사울왕은 언제나 하나님의 길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만든 길만을 고집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뽑혔을 때, 이스라엘 온 백성은 환호성을 지르며 “임금님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 모습을 개인으로 축소하면, 기도를 응답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시 106:15)”
우리가 올려드린 기도가 응답을 받느냐 아니냐도 우리의 관심사이지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와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2)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무슨 의미인지 빨리 다가오지 않는데, 새번역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에브라임의 허물을 적은 문서를 모두 모았고, 죄상을 적은 기록을 모두 보관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이 죄 위에 죄를 또 짓는, 계속해서 죄를 쌓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여인이 결혼하여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은 큰 복입니다. 그런데 임신한 태아가 해산할 때가 되었음에도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의 임신기간은 40주, 280일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태가 280일째 되는 날에 세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임부(妊婦)들은 40주가 가까워지면 초긴장을 하게 됩니다. 또 이미 출산의 경험이 있다면, 그 때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더 긴장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분만(출산)예정일이 2주가 지났음에도, 태아가 나오려고 하지 않으면 그 때는 태아는 물론 산모에게도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출산의 고통도 크지만, 그것보다도 나오지 않는 태아의 상태는 더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그와 같은 모습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15-16) 그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의 근원이 마르며 그의 샘이 마르고 그 쌓아 둔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
‘동풍’이 ‘광야에서 불어오는 하나님의 바람’이라고 합니다. 그 바람이 모든 것을 말려 버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고온건조한 사막열풍입니다. 그것이 물을 말려버리는 것처럼, 아시리아의 군대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무너뜨리게 될 때에 어린아이들과 임신한 여인들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그러하다면 남자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이렇게 낱낱이 북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 것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사는 자신의 실상을 직시하고, 나라가 망하는 고통을 당하기 전에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한 번 정해 주신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나라의 잔치 속에 머무는 두 번째 부르심을 외면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택하신 것은 숫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들을 불러 구원하여 주신 분이 하나님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자,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적어서, 그리고 거리와 골목, 길과 울타리 가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잔치로 초대를 받았고, 그런 우리를 불러주신 분이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 사실을 되새김으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 속에 사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구원할 자(your rulers)"
웨야쉬오카( וְיֹושִׁיעֲךָ)
3467. 구원하다(야솨. yâsha) יָשַׁע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이방 신에게 절하는 우상 숭배의 죄에 붙잡혔습니다.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와 같은 행위가 모두 헛된 것이며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이 바알과 금송아지를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배역에 대해 징벌을 내리실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징벌하실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그들을 다시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더욱 하나님의 구속하심과 자비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7월 8일(토) 호세아 12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기념 칭호(5절)
NIV / the LORD God Almighty, the LORD is his name of renown.
KJV / Even the LORD God of hosts; the LORD is his memorial.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성도들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위기를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때로 세상의 권력자나 돈을 가진 자에게 의지할 때가 많다. 물론 이런 방법은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또한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성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상황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한 것은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힘으로 하여금 성도를 도와주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장에서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표현한 것은 이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무리 계획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성도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발견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야훼 지크로(יְהוָה זִכְרֹו)
칭호(2143) 제케르(zeker) זֶכֶר
1.기억. 2. 명성. 3. 찬양
관련 성경 / 칭호(출 3:15), 기억(신 32:26, 사 26:14), 기념(욥 18:17, 시 97:12, 사 26:8), 이름(전 9:5), 자취(시 34:16), 명칭(시 102:12), 향기(호 14:7). [동] 기념하다(출 17:14, 에 9:28, 시 6:5), 기억하다(시 6:5, 9:6)
구약 성경 / 23회 사용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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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사, 남성 기억, 회상, 신25:19, 32:26, 시9:7(6), 34:17(16), 109:15
-
2. 명사, 남성 명성, 명망, 이름, 출3:15, 호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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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사, 남성 찬양, 칭찬, 시6:6(5), 102:13(12).
* 기억하다(2142) 자카르(zâkar) זָכַר
관련 성경 / 기억하다(창9:15, 시9:12, 겔21:23), 생각하다(창40:14, 겔23:19, 렘31:20), 기념하다(시136:23, 출13:3, 삼하18:18), 마음에 두다(사17:10), 선포하다(렘20:9), 부르다(사12:4),생각나게 하다(왕상17:18), 칭송하다(대상16:4), 전하다(렘4:16), 자랑하다(시20:7), 진하다(아1:4), 분향하다(사66:3). [명] 소문(사19:17), 사관(삼하8:16, 왕상4:3, 대상18:15), 서기관(대하34:8).
구약 성경 / 222회 사용
호세아서 12장은 선지자 호세아의 일곱번째 설교의 연속된 내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두 가지 내용으로 구분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것과 아울러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1-6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격노케 한 대가에 대한 예고(7-14절)
이스라엘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선지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를 의지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임과 동시에 나아가 우상을 숭배하겠다는 배교적인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질의 풍요 가운데서 세속의 가치에 익숙한 백성들에게 하늘의 가치를 선택하라고 외치는 것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돌아올 뿐입니다.
기념 칭호(기념 칭호. 야훼 지크로. יְהוָה זִכְרֹו)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기 위하여 선택한 지도자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바로 그 이름입니다(출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세속의 물결이 흉흉하게 파도치는 세상에서 오늘도 오직 예수 이름만 의지하고 영생의 항구를 향하여 힘차게 항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 주의 기념 이름(2143) 제케르
출애굽기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 표호(2143) 제케르(zeker) זֶכֶר
관련 성경 / 칭호(출3:15), 기억(신32:26, 사26:14), 기념(욥18:17, 시97:12, 사26:8), 이름(전9:5), 자취(시34:16), 명칭(시102:12), 향기(호14:7). [동] 기념하다(출17:14, 에9:28, 시6:5), 기억하다(시6:5, 9:6).
구약 성경 / 23회 사용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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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사, 남성 기억, 회상, 신25:19, 32:26, 시9:7(6), 34:17(16), 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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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사, 남성 명성, 명망, 이름, 출3:15, 호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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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사, 남성 찬양, 칭찬, 시6:6(5), 102:13(12).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크게 노하시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도다.’ 에브라임이, 하나님의 백성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가 된 것을 보고 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나도 지금 장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가 무역회사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상인은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가나안 사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이라고 하면 페니키아인들을 가리키는데 성경에 나오는 베니게 즉 두로와 시돈입니다. 그들은 지중해를 오가며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그래서 가나안과 상인은 같은 의미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가나안사람들의 본거지인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을 미혹한 대표적인 우상인 바알종교의 발상지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마음속에는 “저들은 상인이라”는 말속에 ‘저들은 가나안과 같은 자들이라’는 뜻이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 왕국은 유다와 이스라엘 둘로 나누어집니다. 남쪽 유다에는 유다와 베냐민, 2지파가 연합하여 왕국을 이루었고, 북쪽의 이스라엘에는 10지파가 합하여 나라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의 10지파 중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이 있는 지파가 바로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을 부를 때! 어떤 때는 이스라엘! 어떤 때는 에브라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에브라임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의 그 부요함과 쾌락에 점점 빠져듭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물질이 차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에브라임이 가나안화 되어서 바알과 아세라 앞에 제물을 주고, 엎드려 제사를 드리면서 많은 소득의 기회를 얻었고, 그 불의한 소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앞에 불의함이 없다며 자만하는 모습을 주님은 보고 계신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큰 착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8절)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재물도 많이 얻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내리면서 부끄러움도 죄가 될 만한 일도 없다고 합리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느새 가나안화 되어서 물질을 자신의 신으로 알고 섬기는 에브라임에게는 당연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구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찹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선민들이 어떻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자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할 수 있을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한 번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바알을 같은 수준에 놓고 숭배했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전쟁의 신이니까 전쟁이 나면 부릅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때는 바알을 찾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들의 전공을 찾아 준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삶이 어떤 것입니까?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 주인이 되게 하라는 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에브라임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라”,“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호세아는 하나님께 돌아와 인애와 공의의 하나님을 바람으로 바뀌어진 사람으로 이스라엘 이름의 주인공인 야곱을 예로 듭니다. 야곱은 오직 자기욕심을 따라 목적을 세우고 자신의 꾀와 술수로써 그것을 성취하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을까요? 축복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욕심과 그 욕심 성취를 위하여 자신의 경쟁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본성은 아예 출생 때부터 타고났던 것이었습니다. 형 에서를 속입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성공은 그가 섬기는 우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계책을 의지하여 교만하게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장막에 거하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12:9). 이것은 죄를 범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서 쫓아내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범죄하고 40년간 광야에서 유리하던 그때와 같이 만드시겠다고 하는 심판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외견적으로는 징벌의 선언처럼 들리는 이 말씀 속에는 죄를 범한 자기 백성들과 만나서 그들과 다시 새롭게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2장14절). 즉 하나님께서는 남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음란하게 바알을 숭배한 이스라엘을 벌하실 것이지만, 그들을 광야(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써 타이르고 위로하여 이전의 첫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때때로 성도들이 세상에 취하여 살다가 어느 날엔가 광야와 같은 시련이 찾아올 때, 그것은 사실상 징벌이라기보다 우리를 단독적으로 만나 설득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물질을 주인으로 삼는 삶 아니 하나님과 물질을 모두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가나안의 삶을 포기하십시오.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이요, 우리의 숙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과 동일하게 이 시대에 물질을 따라가는 가나안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에브라임으로써 진정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삶, 하나님을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기를 주님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주님의 기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성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에브라임같이 야곱같이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가나안적인 삶이 나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장애물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 우리의 삶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주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야곱처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길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5, 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 받았던 복을 기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특히 야곱의 생애와 출애굽 당시에 보호와 인도함을 받았던 것을 기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 수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속히 회개함으로 복 받았음을 기억하여 죄를 회개하고 해결 받을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외교에서 거짓과 교만을 나타냈으므로 하나님께서 격노하셨고 그에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되리라는 경고를 하였습니다.
12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2절에서 에브라임과 유다의 행위를 책망하고 있는데, 헛된 것을 사랑하고 추구하다가 결국 자신들을 파멸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우리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명예를 모독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3-6절에서 오직 하님께로 돌아오라고 선포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던 복을 기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특히 야곱의 생애와 출애굽 당시의 일을 기억할 것을 요구하며,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과거 수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속히 회개함으로 복 받았음을 기억하여 죄를 회개하고 해결 받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7-10절에서 에브라임의 불의를 책망하면서 패역한 이스라엘은 상고와 같이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하기를 좋아하는 장사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상고’란 가나안 족속을 가리키며, 이들은 베니게 지역에 거주하였고, 주업은 상업이었으며 남을 속이고 강탈을 일삼았습니다.
패역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자행했지만,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깨닫고 정직과 공의로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11-14절에서 거짓 된 제사와 우상숭배를 강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거짓을 좇는 자의 삶은 허망하게 되고 필경 파멸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2절에서 지혜로운 자는 악인의 결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교훈을 받습니다.
2, 3절에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진지하게 하나님과 씨름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4절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만나려면 그 손으로 붙잡은 모든 우상을 포기해야 합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진실로 당신을 찾는 자들을 만나주시며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6절에서 하나님께로 되돌아왔다면 이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죄악으로 하나님께 징계 받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회개하여 회복되는 사실을 모든 성도에게 교훈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계시하신 말씀을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고 오직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의무요, 본분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 계시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여 상벌을 내리실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표징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다.(호세아12: 2, 3절)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2-3절을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역사적 경험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위기에 직면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위기에서 벗어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온갖 계책과 지혜로 거짓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미의 뱃속에서 나올 때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는데, 이는 그가 천성적으로 욕망이 강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나타내줍니다.
성경을 보면 그는 형님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게 하였고, 눈이 어두워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는 그 아비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서를 피하여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였던 때에는 간교한 술책으로 외삼촌의 양들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자기의 욕망으로 거짓과 술책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삶은 이로 인해 형과 원수가 되었고, 외삼촌과도 원수가 되어 그를 피해 야간도주해야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외적으로는 성공을 거둔 덧 하였지만,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피곤하고 고단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쳐야 했던 것입니다.
누가 이러한 그의 인생을 성공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의 인생을 참으로 복되다 하겠습니까?
이러한 그의 실상이 현저히 드러난 곳이 바로 얍복 강가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당시 에서는 사백이나 되는 장정들을 거느리고 그를 향해 오고 있었고 그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인간적 계책으로 얻게 된 모든 것을 잃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그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이 건너보이는 얍복 강에 이르러 하나님을 붙잡고 울며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은총을 간구한 것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과 씨름하였던지 그의 환도 뼈가 위골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환도 뼈가 위골되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결코 놓지 않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고야 말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간교한 야곱에서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되었고, 에서와 극적인 화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이 거짓과 위선과 계략과 모사로 흥망이 결정되며, 복과 화가 결정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의 참된 복과 흥함은 오히려 인간의 모든 거짓된 계책을 버리고 하나님을 붙잡고 도움을 의뢰할 때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30:2-3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거짓과 술수와 계략과 인간의 지혜는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고 당장 승리를 안겨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며 반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그 뜻 안에서 씨름하면 궁극적으로는 참된 승리와 성공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지? 야곱처럼 성공지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앞세운 적은 없었는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디에 있다고 믿는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긍휼히 여김을 받을 때에 얻는 결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오늘 성령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기를 원하시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인생의 근본적인 모든 문제 해결은 한계가 있으나 진지하게 하나님과 씨름할 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여 은혜와 평강의 복을 누립니다.
- 인본주의 계책과 지혜란 간교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간교함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 계책을 쓰는 자는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 자기가 쓴 계책이 자기 무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잡으면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인본주의적 수단과 방법의 계책과 지혜를 다 버립시다. 대신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 하나님을 붙잡고 진지하게 그분께 기도하고 힘을 다해 씨름 해 봅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을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놀라운 지혜를 베푸사 인간의 모든 문제 해결과 형통의 자리에 굳건히 서게 하실 것을 확신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인가?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의 고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주장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사용하는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이라는 책을 보면 "여호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정의: "여호와는 유일하신 참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이다. 이 이름은 그분이 친히 정하신 이름이다."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시므로, 합당하게도 우주의 최고 통치자이시다." "여호와는 '그분은 되게 하신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maton;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자음 "YHWH"를 의미한다.) 즉 יהוה에서 번역되었다. 이 히브리어 네 글자는 많은 언어에서 "JHVH" 또는 "YHWH"에 해당하는 글자로 표시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로마서 10장 13절(신세계역)을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즉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뜻을 다시 설명한다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부르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의 증인은 주장하기를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중에서 여호와의 증인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조직인 이유는 오직 여호와의 증인만이 하나님의 참 이름인 "여호와"를 부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에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려면" 이라는 글에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지닌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까? 다른 사람이 이 거룩한 이름을 알도록 돕고 있습니까? 프랑스 파리의 한 여자는 여호와의 증인만이 하느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뒤에 증인을 만났을 때 자기 성서에서 그 이름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시편 83편18절을 읽자 그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그 여자는 성서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은 여호와의 증인의 자매가 되어 다른 나라에서 충실히 섬기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가톨릭 신자인 한 부인은 난생처음으로 성서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보고는 기뻐서 울고 말았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신실한 여호와의 증인 전도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자메이카의 증인들이 한 여자에게 본인의 성서에 하느님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자 그 여자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이름을 지닌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 소중한 이름을 모두에게 알리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JEHOVAH)"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가 아닙니다.
먼저
워치타워의 글을 보도록 합시다. 1980년 2월 1일 워치타워의 글에 "여호와"가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워치타워의 글에 분명히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이 무엇인지는 잃어 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분명하지 않다고
그들 스스로 말합니다. 아래의 영어는 원문이고 한어는 번역한 것입니다.
"... down though the
centuries, the correct pronunciation of the divine name in Hebrew has
been lost. Hence, it is uncertain what vowels should be used to fill in
the name" (WT Feb. 1, 1980). "
... 수세기를 지나면서 올바르게 발음하는 히브리어의 신의 이름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 어떤 모음을 써야하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의 영어 표기는, 대부분의 히브리어 학자들이 'Yahweh'(야훼)를 선호하기는 하지만,('Jehovah' 한국어로는 '여호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느님의 이름의 히브리어 자음은 알려져 있지만 문제는 '이들 자음에 어떤 모음을 결합시켜야 하는가?'이다."
그렇다면, 히브리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자음 네 글자(יהוה)는 알고 있는데 모음을 알고 있는가? 지금은 정확한 모음을 찾았는가? 답은 워치타워가 인정하듯 모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증인도 그 모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100% 정확한 모음을 찾지는 못했지만 여호와는 확실히 아니고 거의 대부분의 히브리 학자들은 "Yahweh(야훼)"를 선호한다고 말합니다. (왜 확실히 여호와가 아닌지는 뒤에 설명합니다.)
야웨가 더 올바른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다시 워치타워의 글을 보도록 합니다. 1969년도 인터리니어 헬라어 성경 서론 23페이지에는 여호와의 이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영어는 원문이고 한어는 번역한 것입니다.
"While
inclining to view the pronunciation 'Yahweh' as the more correct way,
we have retained the form 'Jehovah' because of people's familiarity with
it since the 14th century" (1969 edition, p. 23).
하나님의 이름은 『야웨 Yahweh』가 더 올바른 발음이지만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를 계속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14세기부터 '여호와'라는 이름에 친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이글에서 무엇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본래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히브리 성경학자들은 여호와가 아니라 "야웨"가 하나님의 이름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하나님의 이름은 "야웨"가 더 맞지만 더 맞는 "야웨"를 쓰지 않는 이유는 14세기부터 사람들이 "여호와"란 이름을 썼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도 "여호와"란 이름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보다는 "야웨"가 더 정확한 이름인 줄을 여호와의 증인은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여호와란 이름이 더 친숙하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쓴다는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여호와"는 성경적인 이름이 아님을 알고 또한 "야웨"가 더욱 성경에 가까운 이름인줄 알면서도 14세기부터 "여호와"란 이름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여호와의 증인도 "여호와"란 이름을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적인 진리(TRUTH)보다는 사람의 전통을 선택하였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주장해온 여호와의 증인의 정신(SPIRIT)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 조직은 사람의 전통보다 하나님의 진리를 선택하는 조직이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진리가 아닌 전통을 따름으로 자신들이 정직한 단체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워치타워는 구약에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가 6,973번 나오고 신약에는 237번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야웨가 더 올바른 하나님의 이름인 것을 알면서도 구약에 6,973번의 옳지 않은 이름인 "여호와"를 쓴 것이고 신약에는 237번 "여호와"를 쓴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더 올바른 이름이 "야웨"인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왜 의도적으로 "여호와"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많은 사람들을 속일까요? 성경에도 있지 않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번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의 이름조차 거짓을 일삼고 있는 조직이 과연 하나님의 진실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라는 단어의 시작은 기원 1270년 입니다.
"여호와"
이름의 시작을 워치타워의 기록에서 찾아보도록 합시다. 워치타워는 "여호와" 라는 이름의 첫 시작이 1270년에 한 가톨릭
신부라고 말합니다. 아래는 요약된 내용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처음 기록된 것은 13세기 스페인 신부인 레이문더스 마르티니의 책
「포헤오 피테이」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학자들은 대체로 "야웨"가 올바른 발음이라고 말합니다."
"The first
recorded use of this form [Jehovah] dates from the 13thcentury C. E.
Raymundus Martini, a Spanishmonk of the Dominican Order, use ditin his
book Pugeo Fidei of the year 1270. Hebrew scholars generally favor
"Yahweh" as the most likely pronunciation" (Aid to Bible Understanding,
1971, 884-85).
워치타워의 기록에 따르면 "여호와"라는 발음의 시작이 1270년이므로 그전에는
"여호와" 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어느 누구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의 어느 누구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13권 쓴 바울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1270년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름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스페인 가톨릭 신부인 레이문더스 마르티니란 사람이 만든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1270년 이전에는 아무도
몰랐던 "여호와"란 이름을 지금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학자들의 견해를 보겠습니다.
그럼 학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말하는 "여호와"에 대하여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요약하겠습니다.
* 유니버살 유대인 백과사전
"'여호와'는 히브리 하나님의 이름 네 자를 그릇 인도하는 것이다."
THE
UNIVERSAL JEWISH ENCYCLOPEDIA says "JEHOVAH is an erroneous
pronunciation of the Tetragrammaton a four lettered name of God, made up
of the Hebrew letters Yod He Vav He. The word "JEHOVAH" therefore is a
misreading for which there is no warrant and which makes no sense in
Hebrew" The Hebrew letters point to a Yod Y the more correct
pronunciation is Yahweh or some form deriving from the same consonants.
For example Yah is used in its shorter form in Ex.15장 2 and 17장 15,
Isa.12장 2 and Ps.118장 14 .
*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말한 것이다."
JEHOVAH -"is an erroneous form of the name of the God of Israel." (ENCYCLOPEDIA AMERICANA)
*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
"'여호와'란 발음은 자음 'YHWH'과 모음 'ADHONAY'가 합쳐져서 나온 말이므로 오류다."
JEHOVAH
-"the pronunciation "Jehovah" is an error resulting among Christians
from combining the consonants YHWH with the vowels of ADHONAY."
(ENCYCLOPEDIA BRITANNICA)
* 스카프-헤조그 백과 사전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다."
JEHOVAH -"is an erroneous form of the divine name of the covenant God of Israel." (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 유대인 백과사전
"여호와"는 히브리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발음한 것이다.
문법적으로 여호와 이름은 불가능하다.
JEHOVAH
-"is a mispronunciation of the Hebrew YHWH the name of God. This
pronunciation is grammatically impossible. The form "Jehovah" is a
philological impossibility." (THE JEWISH ENCYCLOPEDIA p. 160)
"여호와"란 이름은 사람이 만든 이름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나온 이름이 아닙니다. 본래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여호와(JEHOVAH)"는 사람이 만든 단어입니다. "여호와(JEHOVAH)"의 단어가 생긴 일반적인 설명은 이러합니다. 히브리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יהוה YHWH』로 표기합니다. 유대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이름 "YHWH"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르지 않았습니다. 점차 발음하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후에 "Adonai" 라는 단어에서 모음을
뽑아 하나님의 이름인 네 자의 자음 "YHWH"과 합하여 "JEHOVAH" 란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사람이
만든 이름입니다.
다시 한 번 워치타워의 글을 보도록 합시다.
"Aid to Bible Understanding"이란 워치타워의 글에도 보면 "여호와(JEHOVAH)" 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자음 네 글자『יהוה』와 주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 'Adho.nay and 'Elo.him'(아도나이, 엘로힘)의 모음을 합성하여 만든 글자가 'Yeho.wah' and 'Yehowih'(여호와)입니다."
By combining the vowel signs of 'Adho.nay and 'Elo.him' with the four consonants of the Tetragrammaton the pronunciations Yeho.wah' and Yehowih' were formed. (Aid to Bible Understanding, Watch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1971, pp. 884-885)
그러므로 "여호와"란 이름은 워치타워에서도 주장하듯이 사람이 만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연관된 세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한 번도 하나님을 부를 때 "여호와"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를 보도록 합시다.
마태복음 6장 9절(신세계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십시오."
예수님이
제자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 ..." 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복음서 어느 곳에서도
"여호와"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란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을까요?
2.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8장 14-15절(신세계역)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15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을 갖게 하는 종살이의 영이 아니라 아들로 입양되게 하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 영으로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외칩니다."
3. 구원은 반드시 "여호와"라는 이름을 불러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신세계역)
"그들이 대답했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고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수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 여호와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 봅니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Romans 10장 13 is referring to Jesus.
WT 5. 1. 1978, p. 12
Romans 10장 13 is referring to Jehovah.
WT 2. 1. 1980, p. 16
신세계역 번역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신약에는 한 번도 히브리 이름인 "여호와(JEHOVAH)"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5000천개 이상의 헬라어 사본에서 한 번도 "여호와"란 단어가 쓰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왜 신세계역에는 신약에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는가?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이 신약에 "여호와"라는 단어를 237번 삽입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도 원어에는 없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그들 맘대로 삽입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을 이해하려면 10장 9절부터 전체의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개역)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9절은 누구에 대한 말씀입니까? 분명히 예수님이 대한 말씀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개역)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절에서는 누구를 의미할까요?
9절에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에 이어서 10절에 [예수를]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 문맥상 9절에도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고 10절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1절(개역)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1절의 말씀은 이사야 28장 1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6절(개역)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말씀은 시온의 기초 돌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로마서 9장 33절에도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로마서 9장 33절(개역)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도 역시 "부딪히는 돌"은 예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에서 "저"는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예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2절(개역)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여기서
"주"는 누구일까요? 바울은 9절에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12절에는 "... 한 주께서..."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주" 12절에도 "한 주"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서 ..."에서 "저"도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는 바울이 모든 사람과 하나 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도 주가 나옵니다.
에베소서 4장 4-6절(개역)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니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로마서 10장 13절(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9절도
예수님에 대하여, 10절도 예수님 대하여, 11절도 예수님에 대하여, 12절도 예수님에 대하여입니다. 14절에 "믿지 아니하는
이를"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9절, 10절, 11절, 12절, 그리고
14절 모두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13절은 누구에 대한 말씀일까요?
당연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지요. 9절에서 12절까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13절에 가서는 "여호와"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행전 9장 14-21절(개역) 말씀을 봅시다.
사도행전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14-21절(개역)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여기서 누가가 말씀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 "는 여호와의 이름이 아닙니다. 14절, 15절, 16절, 17절 .... 모두 다 "주의 이름"은 곧 "예수님의 이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을 보겠습니다.
고전 1장 2절(개역)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동일하게 로마서 10장 13절 말씀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에서 "주"도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은 요엘서 2장 32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요엘의 『יהוה』과 로마서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하게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워치타워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주장할까요?
워치타워도
1870년부터 1978년까지 108년 동안 그렇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980년도에 "여호와"로 바꾸었습니다.
바꾼 의도가 무엇일까요? 지난 1969년부터 현재까지의 "여호와 이름"에 대한 워치타워의 주장을 요약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69년 인터리니어 헬라어 성경
"'야웨(Yahweh)'가 더 올바른 발음이지만 우리는 '여호와'를 계속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14세기부터 친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1971년 Aid to Bible Understanding
"여호와라는 이름이 처음 기록된 것은 13세기 스페인 신부인 레이문더스 마르티니의 책 "포헤오 피테이"입니다. 히브리 학자들은 대체로 "야웨"가 올바른 발음이라고 말합니다."
1971년 Aid to Bible Understanding
"하나님의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자음 네 글자와 주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 'Adho.nay and 'Elo.him'(아도나이와 엘로힘)의 모음을 합성하여 만든 글자가Yeho.wah' and Yehowih'(여호와)입니다."
1980년 워치타워
"... 수세기를 지나면서 올바르게 발음하는 히브리어의 신의 이름을 잃어 버렸습니다."
1985년 추리
여호와 정의: 유일하신 참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 그분이 친히 정하신 이름이다.
2010년 통찰
대부분의 히브리어 학자들이 "Yahweh"(야훼)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
2010년 파수대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지닌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까? 다른 사람이 이 거룩한 이름 [여호와]를 알도록 돕고 있습니까?"
결론
여호와의
증인이 스스로 주장을 하듯이 "여호와"라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히브리어 자음 네 자 『יהוה』와 "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adonai" 모음의 합성어입니다. 그리고
레이문더스 마르티니가 만든 이 이름은 1270년 이후로 쓰였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예수님도 모르는 이름입니다.
사람이
만든 이름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주장해야 옳은 것일까요? 그게 정직한 생각일까요? 차라리 여호와의 증인도 성경에 더
가깝다고 자신 스스로가 인정한 "야웨"를 쓰는 것이 더 정직하고 옳지 않을까요? 여호와의 증인 조직이 진정 하나님의 유일한
조직이라면 왜 진리보다 사람의 전통을 택하였나요? 더 나아가, "여호와"가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온 세계에 다니며 거짓
증거하는 일을 중단해야 진정한 여호와의 증인의 정신이 아닐까요?
다시 위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글들을 봅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지닌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까? 다른 사람이 이 거룩한 이름 [여호와]를 알도록 돕고 있습니까?"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י (요드), ה (헤이), ו (바브), ה (헤이)라는 네 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기록합니다 (Tetragrammaton). 히브리어 성경 뿐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יהוה 라고 소개합니다 (참조. 메사 석비).
영어로는 YHWH 라고 쓰지요.
그런데 영어 철자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네개의
글자에는 모음이 없습니다.
굳이 우리 식으로 빗대어 표현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ㄷㅎㅁㄴㄱㄱ”이라고 써놓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히브리어는 원래부터
모음이 없었습니다.
모음은 관습처럼 부모의 세대에서 자녀의 세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었거든요.
모음이 없는 히브리어 표기 전통은 곧 매우 난처한 경우를 맞이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나
거룩하기 때문에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이 금지 되어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스스로 드러내신 이후에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하나님의 이름 יהוה (요드-헤이-바브-헤이) 는 모세 이후 몇 백년 뒤에 결국 아무도 어떻게 읽는지 모르는
이름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이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그 이름” ( השם
하쉠), 또는 “주님” ( אדני 아도나이)이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는 יהוה를 “the Lord” 라고
번역하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유대교의 전통을 따라서 “주님”이라고 번역한 것이지요.
예수님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יהוה)’라는 이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의 여호와는 원래 상형문자로부터 시작된 문자입니다.
히브리어의 ‘요드, 헤, 와우, 헤’ 그래서 ‘Yahweh(야훼, 여호와)’라고 발음합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총 2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철자 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첫 번째 글자인 ‘요드(Yod)’는 ‘손(hand)’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상형문자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 자체가 손 모양하고 비슷합니다.
여호와의 두 번째, 네 번째 글자는 ‘헤(Heh)’는 ‘창문 또는 보다(Window, behold, look)’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세 번째 글자는 ‘와우(Vow)’는 ‘못(nail)’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철자가 못 모양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글자들을 종합하면, “그 손을 보아라, 그 못을 보아라(Behold the hand behold the nail)”이란 뜻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분 없습니까? 우릴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의미하는 겁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안에 이미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래 이름은 구약에서 등장하는데, 모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축약형이 ‘예수아(Yehhsuah)’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이름이 신약시대에 헬라어로 ‘이에수스(Iesous)’라고 했고, 라틴어를 거쳐 오늘날 널리 알려진 영어의 ‘지저스(Jesus)’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인 ‘여호수아’는 ‘구원’이란 뜻의 ‘호세아’라는 이름 앞에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뜻하는 ‘여’가 붙어서 ‘여호수아’ 축약형으로 ‘예수아’ 그래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인 ‘예수아’는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그 야훼라는 이름 안에는 ‘그 손을 보라, 그 못을 보라’ 즉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는 것입니다.
"야훼"가 의미하는 10가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는 "야훼"로 발음되며, 이는 "I am"에 해당하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혹은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I am"에 해당하는 단어로 형성된 이름이며 이는 하나님이 다른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는 다른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야훼 ("I am") 라는 이름은 하나님에 대해 적어도 10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결코 시작이 없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묻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만들었나요?" 모든 지혜로운 부모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들지 않았어. 하나님은 그저 존재하시지. 그리고 언제나 존재하셨단다. 시작이 없는 분이지."
2. 하나님은 끝이 없습니다.
만약 그분이 존재의 시작이 없다면 그 존재에서 벗어나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being(존재하는 것)이십니다.
3. 하나님은 절대적인 실재이십니다.
하나님을 앞서는 다른 실재는 없습니다. 하나님 바깥에 다른 영원한 실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시거나 만드시지 않는 한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합니다. 영원히 존재했던 실재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영원 전에는
공간도, 우주도, 공허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계셨습니다.
4. 하나님은 전적으로 독립적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누구의 도움이나 누구의 조언에도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5.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전 우주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고, 그 존재를 유지함에 있어서도 매 순간 하나님의 결정에 의존합니다.
6. 모든 우주는 하나님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의존적인 실재와 절대적이고 독립적인 실재의 차이는 그림자와 실물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혹은 메아리와 천둥소리간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은하계 내에서 놀라워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7.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개선되거나 보완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언가로 becoming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becoming 하는 존재가 아니라 be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절대적으로 동일하게 존재하십니다. (He is who he is)
8. 하나님은 진선미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찾아볼 법전이 필요 없습니다. 사실들을 확실히
기록해두기 위한 연감이 필요치 않습니다. 무엇이 탁월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지침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아름다운지에 대한 기준이십니다.
9.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시며, 이는 언제나 옳고 언제나 아름답고 언제나 진리에 부합합니다.
하나님
밖에 있는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창조하고 설계하셨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다른
어떠한 것에도 구속되거나 제한되지 않으시며 완전히 자유로우십니다.
10. 하나님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한 실재이자 인격이십니다.
하나님은 전 우주의 그 어떤 존재보다 더 우리의 흥미와 주목과 찬양과 즐거움을 얻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7월 7일(금) 호세아 11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위에 계신 자(7절)
My people are determined to turn from me. Even if they call to the Most High, he will by no means exalt them.
"위에 계신 자(The Most Hugh. the One on high)"
위에 계신 자 -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열왕기하 19:15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위에 계신 자 -
욥기 31:2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서 전능자의 주시는 산업이 무엇이겠느냐.
욥기 31:28
이 역시 재판장에게 벌 받을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니라.
골로새서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1.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으라
- 본절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골로새 교인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들의 생명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사는 그리스도의 관심사로 바뀌어야 했다.
‘위엣 것’ 에 대해서 바울은 이미 ‘하늘’ 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1:5,16,20, O ' Brien).
따라서 ‘위엣 것’은 ‘하늘 나라와 새 시대의 일’을 의미한다.
이것은 윤리적인 면을 내포할 뿐만 아니라(12-14절) 하나님께 속한 본질적이며 초월적인 것을 포함한다(O' Brien).
이것은 이미 골로새 교인들이 맛보고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으며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찾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제테이테’(*)는 현재 명령법으로서 본절의 요구에 충족되기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Hendrikaen, O' Brien).
- 본절은 ‘위엣 것’을 찾는 이유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Primitive Confeaaion)을 반영하는 것으로(Bruse),사도들의 설교에 있어서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였다(행 2:33-35 ; 5:31 ; 7:55,56 ; 롬8:34; 엡1:20 ; 히1:3,13 ; 8:1 ; 10:12; 12;2 ; 벧전 3:22 ; 계 3:21).
이것은 예수께서 직접 인용하신 시 110:1의 기독론적 해석이다(막 12:35-37 ; 14:61-62).
사도들은 본절을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로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서 다스리신다’(엡 4:10 ; 빌2:9-11)는 의미로서, 하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그의 신적인 지고의 권위를 나타낸다(O' Brien, Bruce, Carson, Vaughan).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바울은 본절에서 ‘위엣 것’과 ‘아랫 것’을 대조하는 바 이 대조는 윤리적인 요소를 내포한다.
‘위엣 것’에 해당하는 윤리적인 요소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 용납, 용서, 사랑들이며(12-14절).
‘땅에 것’에 해당하는 윤리적인 요소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등이다(5-7절).
한편 ‘생각하고’의 헬라어 ‘프로네이테’(φρονειτε)는 ‘판단하다’ ,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의미이다(프로네오. φρονέω).
이것은 단순히 지적 요소분만 아니라 의지적인 요소를 내포한다.(O' Brien).
생각하라 / 프로네오(5426) φρονέω
어원 / 미완료 ἐφρόνουν, 미래 φρονήσω, 제1 부정과거 ἐφρόνησα, 5424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생각하다(롬 8:5, 빌 1:7, 골 3:2), 여기다(롬 14:6), 뜻이 같게 하다(롬 15:5), (서로에게) 마음을 기울이다(롬 12:16, 빌 2:2, 5), [명] 사상(행 28:22).
신약 성경 / 26회 사용
하나님은 단순히 노예에 불과하던 이스라엘을 압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가나안 땅에서 자유와 기쁨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육체적,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에 빠져 버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호세아 11장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현상을 정죄합니다(1-7절)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은혜를 베푸십니다(8-12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들과 같이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우상 앞에서 절하며 음란하듯 섬긴 것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과 인도는 아버지가 아들을 돌봄 같았지만 이스라엘은 아버지의 사랑을 버리고 타락한 아들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갔던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였어도 하나님은 한번 베풀기로 한 당신의 사랑을 변치 않고 베푸셨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장 즉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등과 맺은 언약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주도하에 맺어진 것이었다.
그런 구원의 언약에서 인간의 역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아담 이후로 아브라함에게까지 이어진 구원의 언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초하여 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심판을 행하신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벌써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셔서 용서를 베푸셨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을 택하셔서 사랑하겠다고 약속한 언약을 끝까지 이행하신 것이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인간이 언약을 이행치 않고 파기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보존하기 위한 또 다른 계획을 세워 놓으셨다.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를 통해 인간의 불순종을 대신하시고 언약의 조건을 완성하신 것이다.
성경에서 말한 대로 모든 존재하는 인간 중에 의인이 아무도 없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불변하심에 의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받은 백성들이 구원의 완전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인간이라도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언제든지 당당할 수는 없다.
사람은 언제나 죄악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성도들 중에는 언제나 죄악을 행하는 자신의 삶 때문에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태도이며 스스로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성도들은 비록 자신의 죄악된 삶에도 불구하고 결코 절망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구원에 관한 한 하나님의 언약은 불변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인간의 구원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에 전혀 보탬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악된 세상을 살아갈 때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 때는 절망감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거룩의 가치와 세속의 가치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한 야곱 일가는 어느덧 200만명이라는 엄청난 수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큰 위협을 느끼고 히브리 가정에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강에 던져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이런 엄혹한 시절에 모세가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겨서 키워냅니다. 만에 하나 모세를 숨긴 것이 발각이라도 되면 이미 안전이 보장된 모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까지도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이 벼랑 끝에서도 모세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거기에는 부정과 모정을 넘어서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출 2:2) 한국어 성경으로만 이해하면 모세의 외모가 너무 출중해서 죽일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 ‘잘 생긴’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토브’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에도 사용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했는데 ‘좋았더라’는 단어가 ‘토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것은 단순히 인간의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당신의 형상을 보시고 ‘토브’, ‘아름답고 좋았더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이 토브의 시선으로 모세를 바라봤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하나님의 시선, 토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죄로 왜곡돼 하나님 나라의 법칙과 기준이 깨어지고 세속의 기준, 잘못된 기준으로 세팅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많이 가진 자가 대우받고 많이 배우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토브의 시선을 가진 공동체는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존귀하게 여깁니다.
이런 아름다운 일이 안디옥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 안디옥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던 영적인 리더 다섯 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먼저 바나바는 안디옥교회를 개척한 목회자이자 레위 지파의 후손이었습니다. 다음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에서 파생된 단어가 ‘니그루’인데 ‘흑인’이라는 뜻입니다. 로마 제국에서 흑인들은 대부분 노예였습니다. 다음은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학자들은 구레네 출신인 루기오 역시도 흑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음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마나엔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가진 로마 왕가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바울입니다. 그는 철저한 유교적 배경 속에서 자란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면면을 살펴보면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안디옥교회의 영적 리더로 하나가 되어 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안에 토브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 영적 리더로 쓰임 받았던 모세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시선을 가진 아므람과 요게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예수님의 마지막 대 명령인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토브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봄으로 사분오열 깨어지고 갈라진 이 땅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시선 vs. 인간의 시선
시선(視線) : 볼 시(視), 줄 선(線) -
1. 눈이 가는 방향(方向)
2. 눈동자의 중심점(中心點)과 외계(外界)의 주시점(注視點)과를 잇는 직선(直線)
3. 주의(注意)나 관심(關心).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의 궁궐에서 자라게 했을까요?
왜 이스라엘이 벌벌떠는 적장 골리앗을 대면한 다윗은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사무엘이 타락한 제사장의 아이들과 어울려 못된 짓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속에서도 살아 돌아온 다니엘의 믿음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떻게 구분을 하게 될까요?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쓰실 사람을 미리 준비하십니다.
모세를
바로의 공주가 건져서 키운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이 있었습니다.
바로의 공주는 그 아이가 당시
천민계층인 이스라엘의 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유모를 찾게 되었고 모세의 실제 엄마가 유모로
궁궐을 드나들게 됩니다.
모유를 먹이머 아마도 철저한 유아교육을 시켰을 겁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다음세대에 쓰실 사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게 나일지 나의 자녀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우리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다윗을 준비하신 하나님, 사무엘을 준비하신 하나님, 다니엘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발견 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꼬맹이 였던 양치기 소년 다윗이 적장 골리앗과 당당히 싸워서 이길수 있는 담대함을 주신 하나님을 봅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성전에 바쳐친 사무엘이 제사장의 타락한 아들들 틈에서도 올바르게 자라는 모습을 봅니다.
사자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을 의지했던 다니엘, 불가마 속에서도 당당했던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위의 상황을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연약한 양치기/ 타락한 아이들과 뛰노는 아이/ 포로로 잡혀간 소년의 모습 입니다.
지금 악조건에 놓여 있습니까?
그런데,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을 훈련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의 시선과 다릅니다.
세상은 꼬맹이 다윗을 보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용맹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봅니다.
세상은 성전에서 악동들과 같이 뛰노는 꼬마 사무엘을 보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의 중심을 보십니다.
세상은 볼품없는 나라에서 포로로 끌려온 소년 다니엘을 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만 의지하며 담대한 소년의 마음을 읽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왔습니까?
결코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사람을 주님이 쓰십니다.
철은 녹슬지만 금은 변함이 없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변함이 없이 주님만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환난이 오면 오히려 즐거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환난을 예비해 놓으셨을지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 계신자(알. ʽal) עַל
1. 높음. 2. 높이. 3. 위
어원 / 5927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위(창 49:25, 시 50:4, 호 11:7), 높이(삼하 23:1). [형] 높은(호 7:16).
구약 성경 / 6회 사용
- '결심하고'(테루임)는 기본어 '타라'(*)의 복수 수동태 분사형이다.
'타라'의 의미는 '매달리다', '집착하다', '치우치다'이다.
그리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리므슈바티)란 1인칭 접미사가 붙은 명사(기본 명사, * , 메슈바, 배교)에 전치사가 결합된 단어로서 '나에게서 물러가는 것(나를 떠나가는 것)에'이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떠나는 일에 매달려 집착해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7월 6일(목) 호세아 10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무성한 포도나무(1절)
Israel was a spreading vine; he brought forth fruit for himself. As his fruit increased, he built more altars; as his land prospered, he adorned his sacred stones.
"무성한 포도나무(a spreading vine)"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열매를 잘 맺는 포도나무처럼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만 그 열매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이방 신 바알에게 감사합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두 마음이라고 꾸짖습니다(2절)
성경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마태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레미야 4:3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 갈고(5214) 니르( nîyr) נִיר
1. 땅을 갈아 엎다. 2. מָנוֹר
어원 / 5216과 동일 어원에서 유래한 듯
관련 성경 / 갈다(렘 4:3), 기경(起耕)하다(호 10:12)
구약 성경 / 2회 사용
* 묵은 땅(5215) 니르(nîyr) נִיר
어원 / 5214에서 유래
관련 성경 / 경작지, 밭을 경작함(잠언13:23), 묵은 땅(예레미야 4:3).
구약 성경 / 3회 사용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
- 본절의 유다가 1절의 '이스라엘'의 일부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달라진다.
어떤 주석가들은 1절의 '이스라엘'이 현재 포로로 잡혀가 있는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본다(Streane, Welch).
그러나 문맥상 본절과 4절은 1,2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며, 따라서 본절의 '유다'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변방 주(州)로 편입된 이후 남하한 백성까지 포함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묵은 땅을 갈고
- 여기서 '묵은 땅'(니르. 5215)은 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작된 바가 없는 '새 토양'을 뜻한다.
결국 분문은 개혁 기간 동안의 형식적, 피상적 회개가 아닌 근복적 회개를 요청하는 내용으로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란(마 9:17; 막2:22) 예수의 비유와 일맥 상통한다.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 예레미야는 여기서 '유다'라는 토지가 과거, 특히 므낫세 통치 이후에 악행이라는 가시덤불로 만연되어 있으며, 유다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새 토지를 경작하는 것뿐임을 지적한다. 즉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야기된 온갖종류의 폐단들, 곧 가시덤불을 회개와 순종이라고 하는 쟁기로 갈아서 온전히 제거해버리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C.L. Feinberg).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 갈고(5214) 니르( nîyr) נִיר
1. 땅을 갈아 엎다. 2. מָנוֹר
어원 / 5216과 동일 어원에서 유래한 듯
관련 성경 / 갈다(렘 4:3), 기경(起耕)하다(호 10:12)
구약 성경 / 2회 사용
호세아는 두 마음을 속히 버리지 않으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하여 자기들의 죄악을 버리지 않고 점점 더 타락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행위까지도 주저하지 않고 행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타른 길로 나갔고 드디어 헤어날 수 없는 징계의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오직 마음을 하나로 하여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두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섬긴 결과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언약을 수행하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은 징벌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분명한 메시지로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섬겨야 하느니라.
만일 너희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면 나도 너희를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복의 길로 갈 것인가?
저주의 길로 갈 것인가?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하시렵니까?
불편할지라도 미래가 보장되는 무성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되어 우리들이 누려보지 못했던 풍성한 은혜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그 길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주의 백성으로 오래도록 기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마음의 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우상 숭배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질투하는 하나님이기에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밝히셨다.
왜냐하면 다른 신을 하나님과 동시에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상을 동등한 위치에 둔다는 것이며, 이는 우주의 유일한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할 때 기존의 모든 족속과 그 곳의 문화를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역사상 한번도 가나안의 우상 숭배 관습을 철저히 타파한 적이 없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이다.
스불론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항오를 정제히 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명이요.
시편 12: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시편 119: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호세아 10:2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헐으시리라.
야고보서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게펜 보케크(גֶּפֶן בֹּוקֵק)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
- '열매 맺는'(페리 예솨에 로)에 대해
혹자는 '예솨에'(*)가 '열매 맺다'의 뜻이라고 보아(Gesenius, J.Given), 본 구절을 '그가 자기를 위해 열매를
맺는다'로 본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예솨에'의 기본어 '솨와'(*)가 '두다', '쌓아놓다'의 의미가 있는 바 본 구절을
'그가 자기를 위하여 열매를 쌓아 놓을것이라'는 의미라고 본다.
영역본 중 KJV, NIV등은 전자와 유사하게 '그가 자기를
위하여 열매를 맺다'로 해석한다. 한편 '무성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케크'(*)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1)'텅빈'으로 보는 견해(A.Ezra). 영역본 중 KJV가 이와 일치한다. (2)본 구절의 기본어가 '약탈하다'의 의미도
있는 바 '도둑맞은'의 뜻(J.Calvin)으로 주장하는 견해. (3)한글 개역 성경과 유사하게 '넓게 퍼진'(Gesenius),
'무성하게 자란'(De Wette)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이중 (1)은 문맥상 맞지 않는 것 같고 (2)는 어느 정도
일리는 있으나 자연스럽지는 않다. 따라서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할 때 (3)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본 구절은 과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풍성했던 이스라엘을 묘사한 내용이다. 그들은 초기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 풍요로운 은혜 가운데 정착했었다(시
80:8-11;렘 2:21;겔 19:10,11).
제단을...아름답게 하도다
- 이스라엘이 열매 등으로 풍족하게 되면 될수록 더욱
우상 숭배를 자행하며 사신(邪神)을 아름답게 장식한 사실을 지적한다(2:8).
이런 현상은 유다 왕국의 말기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겔 16:15-29).
관련 성경 / 무너뜨리다(렘 19:7), 약탈하다(나 2:2), 공허하게 되다(사 24:3), 쇠약하다(사 19:3). [명] 약탈자(나 2:2).
구약 성경 / 9회 사용
포도나무(1612) 게펜(gephen) גֶּפֶן
어원 / 혼성. 어미활용 גַּפְנִי, 복수 גְּפָנִים, ‘구부리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
관련 성경 / 포도나무(창 40:9, 시 78:47, 학 2:19), 나무(창 40:10), 포도(신 8:8, 왕하 18:31, 사 36:16), 들포도덩굴(왕하 4:39), 포도송이(아 7:12).
구약 성경 / 55회 사용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 등의 죄로 인해 영적 파탄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의지한 우상 숭배가 아무 소용없다고 경책하셨다(1-8절).
또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며 회개할 것을 재차 촉구하셨다.
이스라엘의 범죄의 원인은 그들이 두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즉 바알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겼던 것이다.
성경은 두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합니다(마 6:24; 눅 6:13).
호세아는 두 마음을 속히 버리지 않는다면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분명히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하여 자기들의 죄악을 버리지 아니하고 점점 더 타락의 길로만 나아갔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타른 길로 나아갔으며, 드디어는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징계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오직 마음을 하나로 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했는데,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두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섬긴 결과였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언약을 수행하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은 징벌 심판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우상 숭배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질투하는 하나님이기에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밝히셨다.
왜냐하면 다른 신을 하나님과 동시에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상을 동등한 위치에 둔다는 것이며, 이는 우주의 유일한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할 때 기존의 모든 족속과 그 곳의 문화를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역사상 한번도 가나안의 우상 숭배 관습을 철저히 타파한 적이 없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이다.
본장에서 호세아 선지자가 선포하는 심판의 예고도 역시 하나님 외에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긴 그들의 죄악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바로 두 마음을 품은 것을 말하며 이 두 마음은 결국 타락이요 죄인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이런 본장의 내용은 신약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인 성도들이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돈을 섬길 수 없다고 교훈한 것이다(딤전 6:17).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비타협적인 종교이다.
그래서 유대교도 역사상 최초의 유일신 사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삶에 있어서 포괄적이되 신앙적으로 배타적인 기독교 신앙 의 본질을 단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갈수록 물질 위주의 사상이 삶을 지배하는 이 시대 속에서 오직 하나 님만을 섬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돈을 벌기 위해 때때로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행복과 성공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물질을 우선으로 하는 삶은 순간의 유익은 있으나 결코 하나님의 최종 적인 심판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록 지금 어렵다고 해도 마지막의 상급을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계속해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삶이 총체적으로 부패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1-8절이 바로 그 사실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랜 기간 통치하였던 왕은 여로보암2세였습니다. 또 그가 통치할 때에 북이스라엘은 최전성기를 구가하였습니다. 군사적으로 막강하여 다윗과 솔로몬 때 만큼이나 국경이 길어졌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습니다. 여로보암2세 통치 후반에 호세아 선지자는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1절의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풍성함의 이유를 우상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제단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주상_한 곳에 서 있는 우상’을 꾸미는 일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두 마음을 품다’는 ‘마음이 나뉘어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현 중에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을 행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전쟁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음(J. Calvin)
2.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상태(J. Wolfendale)
3. 이스라엘인들의 마음이 거짓되고 기만적이라는 사실을 나타냄(F. Keil, B. Chrisholm)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그릇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이...헐으시리라
- 이는 이미 모세 오경에 경고된 바 있다(레
26:30).
본 구절의 '쳐서'(아라프)란 '구부리다', '목을 꺾다'라는 뜻을 내포하는 데(출 13:13; 34:20),
우상 제단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암시한다.
두 마음(할랔 립밤. חָלַק לִבָּם) Their heart is deceitful. Their heart is devided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제나 군대의 하나님,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나서는 ‘전쟁의 하나님’이 아니라 ‘풍요의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알’을 비롯한 우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치를 때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고,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할 때는 ‘바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사실을 잘 지적한 것이,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여호와와 바알 중에서 누가 하나님이신지를 선택하라는 외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의 제단을 파괴하시고, 주상_돌기둥을 부수신다고 하십니다. 즉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5-6)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벧아웬’은 ‘벧엘’을 뜻하는 지명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한 곳인데, 그곳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와서 처음 처음 단을 쌓았던 곳이었고, 야곱이 돌베개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곳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1세가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거기에다 금송아지를 세우는 등 우상숭배를 하게 되어, ‘벧엘_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벧아웬_사악의 집, 허무의 집’이라고 경멸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사악의 집, 허무의 집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야렙 왕’의 문자적인 의미는 ‘싸움의 왕’입니다. 그는 ‘아시리아제국의 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상숭배는 곧 나라를 허무는 출발이자 마침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8)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물의 표면에 맺히는 거품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거품이 무지갯빛을 띠고 아무리 영롱하게 보일지라도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또 거품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빨리 터집니다.
또한 ‘거품’은 ‘나뭇토막’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강물이나 시냇물 위에 떠 있는 나뭇토막이나 나뭇가지는 조금 있다가 다시 보면, 떠내려가고 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멸망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토록 잘 꾸미려고 했고, 정성을 다했던 벧엘에 세운 산당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최초의 대중가요가 ‘황성옛터’입니다. 한때 찬란했던 고려의 왕궁, 만월대를 바라보고 지은 노래입니다. 2절 가사 앞부분이 이러합니다.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하나님의 집이 우상숭배의 도시가 되어 버린, 벧엘이 이와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징계(9-15절)
9-15절은 북이스라엘의 죄를 기브아까지 소급하여 추궁하고, 결국 징계를 당할 것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9-10)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북이스라엘은 기브아 시대 때부터 당시까지, 300년 이상을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브아 시대’는 사사기 19-21장에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일어난 일은 입에 담기도 어려운 참극입니다. 한 레위인의 첩이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서 성폭행과 살해를 당하자, 그 시체를 12조각을 내어서 이스라엘 각 지파로 보내어서 기브아 사람들이 저지른 만행을 온 나라에 알렸습니다. 그래서 전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베냐민 지파는 그 일로 인해, 전멸할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그 일은 생각도 하기 싫은 치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의 시대가 그 옛날 사사시대처럼 잔혹하고 추악함이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물리침을 당하는 ‘두 가지 죄’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반역 정부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우상숭배와 연결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 대용품_우상’을 섬기게 되었고, 다윗의 계보가 아닌 다른 정부를 세웠기 때문에, 성전을 대신하기 위해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세웠던 것입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대용품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뜻합니다.
북이스라엘은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트랙터와 같은 농기구가 없던 당시에 소가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밭을 가는 일도 해야 했고, 곡식을 등에 지고 옮기기도 해야 했으며, 곡식을 빻기 위해 연자맷돌도 돌려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 소의 가장 쉬운 일은 곡식을 밟는 것이었습니다. 소가 곡식을 떨 때에는 입에 망을 씌우지 않는 것이 율법의 관례이었기 때문에 곡식을 떠는 소는 곡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북이스라엘이 복과 형통, 풍요는 좋아하지만, 율법이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는 행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이 사람도 태우고 수레도 끌어야 하고, 밭도 갈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먹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이방에게 압제를 당하며, 곤고한 날을 보내게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곡식의 씨를 심고, 열매를 거두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명령하십니다. ‘공의를 심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누어져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분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을 향하여서는 긍휼한 마음, 깊은 공감을 가지고 삶을 나누는 것이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인애’입니다. 인애는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고, 떨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사랑입니다.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묵은 땅을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묵은 땅은 오랫동안 경작하지 않아서 길처럼 딱딱해진 땅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의 심령이 욕망만을 추구하느라 율법과 말씀의 쟁기로 한 번도 뒤집어 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 마음의 땅을 뒤집으면 공의의 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땅을 아무리 뒤집어서 거기에 곡식을 심어도, 물이 없으면 결실할 수 없습니다. 뒤집음과 공의의 비가 합해져서 의의 열매를 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촉구함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이 어떠하였는지 이렇게 증거합니다.
(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북이스라엘 백성이 ‘갈고’, ‘거두고’, ‘먹은’ 것은 전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밭 갈아 심은 것은 ‘악’이었고, 거둔 것은 ‘죄’였으며, 먹은 것은 ‘거짓 열매’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의뢰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많은 용사_군사력’이었습니다. 여로보암2세의 군대로 나라를 충분히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14-15)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북이스라엘은 국방력이 강하고, 산성을 높이 쌓으면 나라가 지켜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이 산성을 쌓아도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벧엘에 송아지로 우상을 만든 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게 부서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 시작되는 새벽에 이스라엘의 왕이 잡혀 죽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고대에 왕의 죽음은 곧 전쟁의 패배를 의미하고, 전쟁의 패배는 곧 국가의 멸망과 동의어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2세가 죽은 후, 30년 동안 6명의 왕이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혼란을 겪다가 아시리아제국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 제1 원인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자신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은 바알을 비롯한 가나안의 토착신들을 섬긴 것입니다. 이것은 남유다가 바빌론의 포로가 된 이유도 동일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그 삶이 무너지는 가장 큰 원인은 우상숭배입니다. 고대에는 우상숭배가 돌과 나무와 같은 눈에 보이는 형상이었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속적인 가치관과 병든 이기심(욕망)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의 주인을 자신으로 삼고, 하나님은 조력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알라딘의 마술램프에 나오는 ‘지니’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길을 자신이 정하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만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잔치를 여시고 초대를 하는 데도, 자신은 밭을 샀기 때문에 나가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소를 샀기 때문에 시험을 해 봐야 한다고 말하며, 결혼했기 때문에 내 생활에 더 치중해야 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과 민족이 거리와 골목에 있을 때, 길과 울타리 가에 있을 때 불러주심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고 보면 깨닫게 됩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에 순종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며, 내 길을 고집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길에 순종하는 것이 최상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보다 더 지혜로운 삶은 없으며, 그것보다 인생을 더 가치있게 사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이기심의 묵은 땅, 욕망의 묵은 땅, 세속적 가치관의 묵은 땅을 기경하여 공의를 심음으로, 하나님의 인애를 거두며, 하나님의 은혜의 비를 경험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에 집중하다가 그렇게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집중하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 삶의 ‘벧엘_하나님의 집’을 ‘벧아웬_사악의 집, 허무의 집’으로 전락시키는 일도 없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우리 삶에 있는 묵은 땅들을 갈아엎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인애를 거두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시는 공의로운 비를 경험하는 복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007. 벧 아웬(Bêyth ʼÂven) בֵּית אָוֶן
1. 허영의 집 : 벧엘 성 동쪽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마을 ‘벧아웬’. 2. 여호수아 7:2. 3. 사무엘상 13:5
발음 / 벧 아웬[ Bêyth ʼÂven ]
어원 / 1004와 205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벧아웬(수 7:2, 삼상 13:5).
구약 성경 / 7회 사용
1008. 벧엘(Bêyth-ʼÊl) בֵּית־אֵל
어원 / 1004와 410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벧엘(수 16:1, 2, 삼상 13:2).
구약 성경 / 70회 사용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으십니까? 행복이 있으십니까? 행복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런 행복한 순간이 하나님이 임재를 느낄 때라고 생각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계시해 주실 때 마음에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때가 몇 번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처음 창조주 하나님을 영접했을 때 하늘의 기쁨이 임했습니다. 그 기쁨으로 제가 대학 일 학년에서 삼 학년까지를 버텼습니다. 대학 삼학년 때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날 감격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 힘으로 대학 졸업 때까지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감격하여 한참 울었습니다. 그 후에 순종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면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것들은 너무 많아서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물질을 통해서 나타나 주신 하나님, 학생들의 성적을 통해서 만나주신 하나님, 그리고 양들의 변화를 통해서 만나 주신 하나님, 질병의 치료를 통해서 만나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특히 제가 삼 년간 언어와 논술을 가르친 학생들 네 명중에 세 명이 서울의대에 가고 한명이 서울대 전기과에 간 사건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한 번은 본고사반 22명 중에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서울대 법대와 의대를 포함하여 연고대에 합격했습니다. 회개했을 때 학생회 새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았을 때도 하나님이 크게 임재하여 주셨습니다. 그때 성경 66권 강해서를 쓰기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성경 강해를 완성하면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내주하여 나의 마음 속에 영원히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은 임재뿐 아니라 하나님의 내주하심입니다. 하나님이 내주하실 때 우리는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와 내주를 알 수 있을까요?
(축복을 받을수록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이스라엘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가 가득한 포도나무처럼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재산을 제단과 기념비와 신상을 세우는 데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 땅에 풍년이 들면 들수록 더욱더 많은 제물을 우상의 제단에 바치기에 바쁜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사막 땅에 살 때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이 뜨거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때가 즐거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는 행복했습니다. 사막을 지나다 포도나무 송이를 발견했을 때 감격하듯이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첫열매를 보았을 때처럼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만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막을 지나자마자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 바알브올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 것처럼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되자 우상의 제단을 더 많이 만들고 그 돈을 우상 신상에게 쏟아부었습니다. 그들은 풍년이 들면 들수록 우상의 제단에 제물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지게 하시고 곡식이 떨어지게 하십니다. 흉년으로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가난할 때는 정말 된장찌개라도 보글보글 끓여놓고 이마를 맞대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남편은 집에 일찍 돌아오고 항상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해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아내도 남편과 함께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부자가 되자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남편은 집에 늦게 들어왔습니다. 집에서 밥 먹는 날이 한 달에 며칠 안 되었습니다. 사업을 핑계로 여러 여자들을 만났습니다. 아내에게 대하는 말투도 달라졌습니다. 겸손하게 존댓말을 쓰던 사람이 교만하게 반말을 했습니다. 간혹 폭력도 행사했고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아내는 이제 기도제목이 달라졌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를 아십니까? 아다다는 항상 말을 하면 아다다... 하기 때문에 별명이 아다다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뇌성마비로 인한 정박아입니다. 누구한 테 시집갈 수도 없습니다. 어떤 가난한 남자가 아다다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다다는 시집갈 때 혼수감도 가지고 가고 돈도 많이 가지고 갔습니다. 아다다로 인하여 그 시댁에는 활기가 돌았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아다다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잘 대해주었습니다. 그 가지고 온 돈을 밑천으로 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 집이 부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부자가 되자 아다다가가 싫어졌습니다. 바람을 피우고 아다다를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다다는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친정으로 도망을 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들 남편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배가 고프고 목마를 때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광야를 떠나자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자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물질적으로 축복해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보며 차라리 사막에서 가난할 때가 얼마나 좋고 행복했었느냐고 탄식하십니다.
(축복의 때에 하나님을 떠난 우리나라 백성들)
이들의 상황이 바로 우리나라의 상황입니다. 우리가 오륙십 년대에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얼마나 헐벗고 배가 고팠습니까? 그러나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교회에는 사람이 모였고 선교단체마다 사람이 들끓었습니다. 새벽기도, 금요 철야기도, 금식기도, 성경백독 사관학교, 성경 암송대회등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경제적으로도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90년대부터 교회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점점 편하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시자 그 돈을 가지고 성매매하고 나이트클럽을 갑니다. 돈을 가지고 놀러다니는데 바쁩니다. 하나님이 주신 돈으로 로또복권을 사는 데 열을 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탄식하시겠습니까?
이들의 상황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는 얼마나 고통했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정신 병원에 있을 사람도 있고 자살해서 살지 못할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살만하니까 이제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고 말씀공부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사명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어떻게 하실까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을 벌하시는 하나님)
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그들은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바알에게 바쳤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행동은 음란 사이트들어 가는데 열을 내었습니다. 그들은 진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셨던 축복을 가져가십니다. 그들의 호화로운 우상제단을 무너뜨리고 신상을 쓰러뜨립니다. 그들의 물질적인 축복을 다 가져가십니다. 이는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런 우상 숭배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하면 하나님이 성령을 비처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요즘 시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돈을 섬깁니다. 음란과 쾌락과 자기를 섬깁니다. 대학촌은 동거촌으로 전락했습니다. 자기의 만족과 쾌락을 섬깁니다. 이렇게 자기를 왕으로 섬기는 자들은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자들입니다. 이런 우상 숭배를 회개해야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스라엘)
“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4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호세아서에 하나님은 사자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무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담대히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주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다가, 나라를 잃었습니다. 임금도 못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임금이 있은들 나라를 잃었으니 임금은 아무데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나라 잃은 것을 탄식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말을 함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빈 약속이나 일삼습니다. 거짓 맹세나 합니다. 쓸모없는 언약이나 맺습니다. 그들은 진실성, 신실성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밭이랑에 돋아난 독초처럼 불의가 퍼져 나갑니다.
(우상숭배로 수치를 당하는 이스라엘)
5,6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마리아 주민은 벳아웬의 금송아지를 잃고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이 두렵습니다. 벳아웬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벧엘이었습니다. 여로보암 이세가 단과 벧엘에 단과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후에 벧아웬 곧 우상의 집이라는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우상이 함께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 이세가 그곳에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벧아웬은 허무한 곳의 뜻이 더하여졌습니다. 벧아웬은 그 송아지 우상을 잃고 슬퍼할 것입니다. 송아지 우상을 즐겨서 섬긴 이교의 제사장들은, 우상의 영화가 자기들에게서 떠난 것 때문에 탄식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앗시리아에 가지고 가서 앗수르 대왕에게 선물로 바칠 것입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이 앗수르에게 대가로 받아 오는 것은 수치뿐일 것입니다. 그들은 굴욕적이 외교를 맺습니다. 끝내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긴 일로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빨리 죽기를 바라는 이스라엘)
“7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사마리아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물 위로 떠내려가는 나무토막과 같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죄악인 벧아웬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 올라서 그 제단들을 뒤덮을 것입니다. 그 때에 백성들은 산들을 보고 "우리를 숨겨 다오!" 또 언덕들을 보고 "우리를 덮어 다오!" 하고 호소할 것입니다. 그들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편하여서 빨리 죽기를 바랍니다.
(기브아 사람들과 같이 죄를 지은 이스라엘 사람들).
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이스라엘은 기브아에 살던 때부터 죄를 짓기 시작해서 이제까지 죄를 짓고 있습니다. 레위지파가 첩을 얻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레위인을 동성애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이 되지 않자 그 첩을 집단 강간하여 죽였습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격동하게 하여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에게 반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베냐민과 이스라엘이 전쟁이 나게 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벌하셨습니다. 베냐민은 60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전쟁이 기브아에서 죄짓는 자에게 미치지 않겠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기브아 사람들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그 때에 이 백성을 쳐서 벌하십니다. 이방 나라들도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칠 것입니다. 그들은 두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주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긴 죄입니다.
(에브라임의 목에 멍에를 메우시는 하나님)
"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한때 에브라임은 길이 잘 든 암소와 같아서, 곡식을 밟아서 잘도 떨었습니다. 길들인 암소는 제대로 훈련받고 교육 받은 백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씌워 에브라임은 수레를 끌게 하고, 유다는 밭을 갈게 하십니다. 야곱은 써레질을 하게 하십니다. 그들을 이방인의 종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멍에를 메게 하고 수레를 끌게 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공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어야함)
"12a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은 그들이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주를 찾을 때라고 하십니다. 지금이 회개할 때라고 하십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묵은 땅을 기경해야하는 이유)
"12b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십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말씀은 쟁기든지 경운기로 갈아 엎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묵은 땅을 보셨습니까? 묵은 땅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묵혀둔 땅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묵혀 두면 온갖 잡초가 생겨납니다. 잡초뿐 아닙니다. 그곳에는 나무도 자랍니다. 가시나무 같은 것이 뿌리를 내립니다. 이곳 저곳에서 돌맹이도 굴러와 있습니다. 이런 밭은 갈아 엎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르도자로 밀고 삽으로 모든 나무나 돌맹이를 가려내야 합니다. 오래 된 밭일수록 기경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갈아엎어야 합니다. 여기서 묵은 땅은 오랫동안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마음에는 갖은 죄악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온갖 욕심의 돌맹이들이 굴러와 있습니다. 이를 회개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지신의 힘으로 힘이 듭니다. 성령의 도자로 밀어야 합니다. 말씀의 삽으로 가려내야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상태가 그런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묵은 밭과 같았습니다. 묵은 밭은 사사기부터 시작된 죄악을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묵은 밭일수록 돌도 많고 가시나무도 많습니다. 갈아엎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갈아엎어야합니다. 그들은 회개해야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음란을 회개하고 물질 숭배를 회개해야합니다. 강대국을 의지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그들이 회개하면 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정의를 비처럼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이 마음껏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한 자에게 임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사 비처럼 의를 내려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단비처럼 내려 주십니다. 아침 빛과 같이 그들을 비추십니다. 치료의 빛 생명의 빛을 비추십니다. 우리의 생활 곳곳에 임재하사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기쁨의 단비를 내려 주십니다. 행복의 단비를 내려 주십니다. 그들의 내면에 영원히 내주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생명이 자랄 것입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나무가 자라서 잎이 무성할 것입니다. 나무는 가지를 뻗고 많은 새들이 깃들일 것입니다. 강에는 큼직한 고기들이 뛰놀 것입니다. 행복의 동산, 축복의 동산이 건설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밭에 갈아엎어야 할 죄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 죄악의 나무는 뽑아내도 되고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이를 뽑아 내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 밭은 불태워 버립니다. 다시 밭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밭을 황무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들은 회개하고 죄악의 나무를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뽑아내야 할 죄의 나무는 무엇입니까? 이들이 뽑아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어떤 심판이 임합니까? 혹시 우리 가운데 이런 죄악의 요소는 없습니까?
(죄악을 뿌리고 거짓을 거둔 이스라엘)
"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하나님은 공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밭을 갈아서 죄악의 씨를 뿌리고, 반역을 거두어서 거짓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병거와 많은 수의 군인을 믿고 마음을 놓은 탓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군대를 의지하고 거짓된 강대국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죄를 애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뿌리는 이스라엘은 반드시 망함)
"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그들이 묵은 땅을 기경하지 않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는 전쟁의 함성이 들려 올 것입니다. 벳아벨이 살만에게 공격을 받고 파괴된 날과 같이, 이스라엘의 요새들이 모조리 파괴될 것입니다. 그 날에 자식들이 박살 난 바로 그 바위 위에서 어머니들마저 박살 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게 그와 같은 심판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지은 심히 무서운 죄악 때문에 그렇게 벌하십니다. 이스라엘 왕은 전쟁이 시작되는 새벽녘에 틀림없이 잡혀 죽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심판을 피하는 길은 묵은 죄를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영원히 내주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호세아 10장 강해 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세아 10장 1-호세아 10장 15
요절 호세아 10장 12b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7월 5일(수) 호세아 9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의 파수군(8절)
The prophet, along with my God, is the watchman over Ephraim, yet snares await him on all his paths, and hostility in the house of his God.
관련 성경 / 살피다(창 31:49, 시 66:7), 감찰하다(잠 15:3), 파수하다(삼하 13:34, 나 2:1), 엿보다(시 37:32), 보살피다(잠 31:27), 기다리다(삼상 4:13, 욥 15:22), 바라다(시 5:3, 애 4:17), 바라보다(애 4:17, 미 7:7, 합 2:1), 지키다(렘 48:19).
[명] 파수꾼(삼하 18:25, 사 21:5, 겔 3:17), 망대(아 7:4).
구약 성경 / 36회 사용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백성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영의 축복과 안정을 누리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같은 은혜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이방인들의 속된 문화와 종교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 없는 삶을 즐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저주를 내리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쫓겨나는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호세아 9장은 이와 같은 사실을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포로가 될 것이다(1-9절)
포로가 되기 전 가나안 땅에서 받을 저주에 대하여 예언합니다(10-17절) .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고 축복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참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행복은 타락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없눈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들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인간에게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라고 해서 모두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의 땅에서 추방된 것같이 성도들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는 것은 성도라는 신분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에서는 제멋대로의 삶을 즐기고 교회에서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복을 구하는 기도처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온전히 일치될 때 진정한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여름철에 더욱 강건하여 지옥의 열기보다 부드러운 더위를 지혜롭게 다스리며 진리의 말씀따라 순종하는 하나님의 파수군으로 세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베들레헴 남동쪽 약 12km 지점, 엘 자바(Jaba, Jeba)로 추측.
기브아 : 기브아는 히브리어로 구릉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벧엘로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이 기브아는 이스라엘 초대왕인 사울의 고향이다(삼상 10:26).
1. 유대 남쪽 도시로서 옛적에 성소가 있던 곳이므로 하나님의 기브아라 함 (삿 19:6).
종교적 암흑기요영적 혼란기였던 사사 시대의 윤리적인 타락상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레위인 첩 사건에서 잘 나타납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한 레위인이 첩을 두었습니다.
그런데그 첩이 다른 남자와 간음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도망간 첩이 있는 장인의 집에 가 그녀를 데리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의 한 노인의 집에 들려 하룻밤을 쉬어 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불량배들이 몰려와 레위인과 동성애를 요구하였습니다.
막무가내인 그들에게 레위인은 결국 자기 첩을 내어 주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밤새도록 고통을 당한 레위인의 첩은 처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죽은 자기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각지에 보냈습니다.
그는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을 천하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사사 시대의 타락상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레위인이 첩을 둔 일, 그 첩의 간음행위, 만연한 동성애, 불량배들의 만행, 경악할 만한 사체 절단 행위 등등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들의 삶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삶은 결국 처참한 악행과 심각한 부도덕 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롬 1:24-32)
2. 유대 산중에 있는 한 성읍(수 15:57).
- 이는 사사 시대에 기브아에 사는 비류(非類)들이 한 레위인의 첩을 강간한 사건을 빌미로 이스라엘인과 베냐민 지파가 싸워 베냐민 사람들이 크게 희생당한 역사적 사실을 말합니다(삿 19:10-20:48).
이스라엘 백성이 극도로 패괴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한편 '패괴한 지라'(쉬흐트)의 기본어 '솨하트'는 (도덕적으로) '부패하다', '타락하다'의 뜻을 함축한다(창 6:12; 신 4:16; 31:29; 잠 6:32; 겔 23:11).
7843. 패괴하다(솨하트. shâchath) שָׁחַת
관련 성경 / 부패하다(창6:12, 삿2:19), 썩다(렘13:7),터지다(렘18:4), 설정하다(창38:9), 상하게 하다(출21:26), 멸망시키다(민32:15), 멸하다(창9:11, 호11:9), 헛된 데로 돌아가다(잠23:8), 죽이다(사14:20), 헐다(렘12:10, 애2:5), 깨뜨리다(렘48:18, 말2:8), 더럽히다(겔28:17), 패망하다(호13:9), 버리다(암1:11), 없이하다(나2:2), 죽다(창6:17), 헐어버리다(대하34:11), 범죄하다(대하26:16), 손상하다(레19:27), 엎드러뜨리다(삿20:21), 치다(대하35:21), 해되다(사11:9), 해하다(사65:25), 박멸하다(렘11:19), 깨어지다(단8:25), 진멸하다(삿20:42), 파괴하다(사54:16), 사납다(렘2:30), 반역하다(렘6:28), 더러워지다(잠25:26), [명] 해(출8:24), 흠(신32:5), 노략꾼(삼상13:17), 사악(대하27:2), 멸망(렘51:25).[형] 더러운(겔20:44).
구약 성경 / 140회 사용
추수의 계절에 경고(1-3절)
2절에 타작마당과 술틀이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추수의 계절에 추수로 인해 흥겨워하고 있는 백성들을 향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고 하며 그 이유를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단순히 추수에 대한 즐거움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바알이라는 우상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며 영적 음행과 온갖 문란한 육체적 음행을 저지르며 즐거웠습니다.
바알 신앙은 모든 농산물의 수확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바알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추수 때에 풍성한 수확물에 대해서 바알신에게 경배하는 행위를 두려움없이 행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을 선언하셨는데, 2-3절입니다.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먹거리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기근이나 가뭄을 통해 수확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알게 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비참한 삶을 예고하고 있는데, 앗수르로 끌려가 포로라는 비참함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설사 앗수르를 피해 애굽으로 도망한다 하더라도 그곳에서도 역시 비참함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경고합니다.
비참함에 대한 경고(4-6절)
그 비참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4-6) 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너희는 명절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의 포로나 애굽으로 도망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를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들이 먹는 것은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사람들마다 부정을 타게 될 것이다.’ 부정한 음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관계의 단절이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도 맺을 수 없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무섭고 비참한 경고는 없습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으로만 온전히 채워질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 속에 살아갈 때에만 온전한 인생의 의미를 채워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며 사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파수꾼으로서의 사명 망각(7-9절)
또 한 번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7-9, 새번역) 이스라엘은 알아라. 너희가 보복을 받을 날이 이르렀고, 죄지은 만큼 벌받을 날이 가까이 왔다. 너희는 말하기를 "이 예언자는 어리석은 자요, 영감을 받은 이 자는 미친 자다" 하였다. 너희의 죄가 많은 만큼, 나를 미워하는 너희의 원한 또한 많다. 하나님은 나를 예언자로 임명하셔서 에브라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예언자가 가는 길목마다 덫을 놓았다. 하나님이 계신 집에서마저, 너희는 예언자에게 원한을 품었다.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 못지않게, 이 백성이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주님께서 이 백성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그릇된 행실을 다 벌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 때문에 영적 눈이 가려져 있어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그른지 분별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파수꾼으로 보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높은 파수대에 세워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험을 성읍 내부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위험을 대비할 수 있게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영적 눈이 흐려져 이를 알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선지자의 메시지가 불편하고 듣기 싫어 원한을 품고 비방한 것도 모자라 참 선지자들을 미친 사람 취급해 버렸습니다. 한편 파수꾼으로 해야 할 역할을 감당해야 할 선지자들 역시 그 소명을 저버리고 백성을 걸려 넘어지게 함으로 타락을 가속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부패가 기브아 사건 때의 부패와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사사기 19-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한 레위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첩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첩이 집을 나가 친정으로 갔고, 레위 사람은 그 여인을 데리러 갔습니다. 그 여인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레위 사람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라는 곳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이때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그 집으로 몰려와 집 주인에게 레위 사람을 내 놓으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레위사람은 자신의 첩을 대신 내어주었고, 결국 첩은 윤간을 당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일 후 레위 사람은 그녀의 시체를 열두 토막 내어 이스라엘 온 지역으로 보냈고, 결국 전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베냐민 지파는 거의 전멸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사사기의 어두운 영적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왕인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으로 극도의 음란함과 잔인함을 저질렀던 이 기브아 사건 때의 타락상이 바로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당신의 파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말과 삶으로 그대로 전하고 선포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 늘 주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이스라엘(10-17절)
10절 상반절에 보면 원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광야에는 포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못하던 포도를 만난다면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또 처음 익은 무화과나무 열매는 매우 맛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이러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정 기쁨이 되는 존재. 이스라엘이 이러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인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다고 합니다. 이 구절을 새번역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바알브올에 이르자, 그들은 거기에서 그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바치고, 우상을 좋아하다가 우상처럼 추악해지고 말았다.”
모압평지에 위치한 바알브올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말하는 듯 보입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곧 가나안 입성을 앞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평지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벌어지지 말아야 할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발람의 꾀에 넘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음행 정도가 아니라 이 여인들의 종교까지 끌어안으며 그들의 신인 바알에 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엄청났습니다. 염병을 내리셨는데, 이만 사천 명이 이 일로 죽었습니다.
이때처럼 하나님은 바알을 선택한 이스라엘에게 극적이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먼저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갈 것이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떠나실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에브라임이 잉태하지 못할 것이고, 설령 자식을 낳아서 기른다고 하여도 그 아이들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라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소망을 생각할 수 없는 더 이상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철저한 멸망을 예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설명합니다.
(15)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길갈은 이스라엘에게 깊은 의미를 지니는 곳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할례 의식을 행하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결하고 구별될 것을 다짐한 곳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우상숭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은혜를 기억해야 할 의미 있는 그곳이 온갖 악이 행해지는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장소가 있습니다. 은혜로 보내어진 자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으며, 은혜의 눈물이 스며있는 곳이 있습니다. 가정이 그런 곳일 수 있고, 회사가 그런 곳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기보다,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떠올리기보다, 내 이기심이 자라가는 곳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감사함보다 미움, 불평, 증오로 채워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17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비춰 우리 자신을 매일 점검해 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잔치로 불러 주신 주님만을 목적 삼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잔치 속으로 초대해 주신 것처럼 거리와 골목에 있는 사람들, 길과 울타리 가에 있는 사람들을 이 잔치로 인도하는 징검다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주님!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심정을 읽으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게 해 주시옵소서.
마땅히 벗어야 할 우상을 벗게 하시고, 마땅히 져야 할 주님의 파수꾼의 사명을 지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어떠한 곳이든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곳임을 믿고, 그곳에서 사명도 새기고, 은혜도 새기고, 감사도 새기며 늘 살게 해 주시옵소서.
7월 4일(화) 호세아 8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1절)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한 여러 증거를 제시하면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외칩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더불어 세상을 따라가는 적당주의와 기회주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신앙에 대해 철저한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따라서 호세아 8장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언약과 율법을 위반하였다(1-3절)
금이나 은으로 새긴 우상에게 절하는 죄를 범했다(4-7절)
이스라엘이 살길을 찾고자 외세의 도움을 구한 것은 더 큰 멸망의 길로 빠져드는 것이다(8-10절)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11-14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하고 자신들의 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이방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창조주요 구원주로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율법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의 성격과 하나님의 뜻을 알려 줄 뿐만 아니라 삶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인간이 최고의 행복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 곧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 그분과 교제하는 방법, 윤리 및 규범과 규칙 등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인간이 순종하고 따르면 믿음이 자라고 복이 임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반면에 불순종하면 저주와 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삶의 기준이 되는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율법의 숨겨진 의미까지 완전히 가르쳐 주셨으며, 동시에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내릴 율법의 정당한 심판 요구를 대신 지불하므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삶의 기준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성경을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삶 속에 실천함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은 율법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의무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들은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의 뜻을 본받아 율법에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은 세상(땅)의 소금과 세상(코스모스)의 빛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나팔’이 등장한다?
학자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무려 200만 명으로 추산한다.
그 옛날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까?
민수기를 보면 비밀이 풀린다.
바로 ‘나팔’이다.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팔 소리’는 최고의 신호 체계였다.
두 종류의 ‘나팔’은 각각 언제 불지?
구약성경에는 두 종류의 나팔이 등장한다.
하나는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길이가 대략 45~50cm 되는 은 나팔 ‘하초체라’(חֲצֹצְרָה)
חֲצֹצְרָה 2689
어원 / 2690에서 유래한 중복형
관련 성경 / 나팔(민 10:8, 대하 20:28, 느 12:35, 호 5:8), 나팔수(왕하 11:14), 나팔부는 자(대하 29:28).
구약 성경 / 5회 사용
다른 하나는 21~90cm의 다양한 크기의 양 뿔로 만든 양각 나팔 ‘쇼파르’(שׁוֹפָר)
שׁוֹפָר 7782
어원 / 복수 שׁוֹפָיוֹת 8231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나팔(출 19:16, 삿 3:27, 슥 9:14), 뿔나팔(레 25:9, 왕상 1:34, 39).
구약 성경 / 72회 사용
‘은
나팔’(하초체라)은 주로 이동에 따른 신호를 주거나 전쟁에 나갈 때 불었다.
양각 나팔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소리의 빠른 전달이 가능했을 것이다.
‘양각 나팔’(쇼파르) 역시 신호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다양한 크기의 뿔 나팔은 크기나
모양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로 제사를 드리거나 절기 때 연주용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두
나팔의 용도를 엄격하게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약의 헬라어는 이 두 종류의 나팔을 한 단어,
‘살핀크스’(σάλπιγξ)로 번역했다.
σάλπιγξ, ιγγος, ἡ 4536
어원 / 4535에서 유래한 듯함
관련 성경 / 나팔(마 24:31, 살전 4:16, 계 9:14)
신약 성경 /11회 사용
그러나 시대와 상황, 재질과 소리를 고려했을 때, 은 나팔은 주로 전쟁과 절기 때에 소집과 해산 및 이동을 알리는 신호용으로 사용됐고, 양각 나팔은 제사와 연주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팔 소리’,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 주위를 일주일 동안 돌아 성을 차지하게 됐다는 ‘여리고 전투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자주 들어본 사람들은 이스라엘 벽성이 6일 동안은 아무 소리를 내지 않다가 7일째에 신호(나팔
소리)에 맞춰 큰 소리를 내며 성을 무너뜨린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나팔 소리는 마지막 날뿐
아니라 매일 이스라엘 백성 중에 울리고 있었다(수 6:13~14).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전쟁에 사용된 나팔이 ‘은
나팔’이 아니라 ‘양각 나팔’(수 6:4)이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라면 전쟁 신호용인 ‘은 나팔’이 사용돼야 하는데,
가나안 첫 전투에는 ‘양각 나팔’이 사용된 것이다.
이는 어떤 이유일까?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행진을 ‘전쟁’이
아니라 ‘예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은 전쟁이 아니라 약속으로 얻는 땅임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얻을 수 있다.
일촉즉발의 전쟁터에서 드리는 예배의 행렬, 멋지지 않은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내 삶에 울려 퍼지다
혹자는
인생을 전쟁에 비유한다.
이는 삶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세속의 물결에 맞서야 하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불어야 하는 나팔은 무엇일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은 나팔’일까? 아니면 그 치열한 현장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며 예배하는 ‘양각 나팔’일까?
답을 하기에 앞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전쟁의 정체와
그 승패가 무엇에 달렸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치열한 상황일지라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며 예배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닐까?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내 삶이 예배의 연주가 되는 ‘양각 나팔’을 불어 보자.
요한계시록 8:2, 일곱 나팔을 받더라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그렇다면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았다는 것의 의미하는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구원과 심판을 나타냅니다.
나팔 소리는 전쟁의 때를 알리는 신호입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싸울 때 나팔을 본 것은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군대를 쳤을 때 사울은 나팔을 불어 온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삼상 13:3) 성전을 봉헌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긴 후에
성전을 봉헌할 때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그 성전에 하나님의 구름이 가득 찼습니다. (대상
5:12-13)
그리고 대관식에도 나팔을 불어 축하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아도니아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음모를 꾸몄을 때,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 그리고 브나야 장군을 불러 아도니아 대신에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왕상 1:34) 그리고 나팔 소리는 예배의 때와 관련 있습니다. 보통 번제를 드리기 전이나 절기에
나팔을 불기도 했습니다. (민 10:10; 레 23:24)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 나팔 소리는 주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나팔은 주로 종말론적 심판 (Eschatological judgment)을
의미합니다. (Osborne, Revelation, 347)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한 설교에서, “그때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 땅의 모든 족속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4:31)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마지막 때 현상을 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그리고 계시록에서 나팔은 종말론적 약속 (계 1:10; 4:1)과 심판을 나타냅니다.
특히, 인 심판 뒤에 있을
나팔소리는 심판 자체를 의미합니다. (8:6-9:21 & 11:15-19)
결국,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구원과
심판을 나타내는데, 본문에서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닥칠 심판에 대한 예고입니다.
어떤 소리가 잘 들립니까?
혹은 어떤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까?
우리 주변에는 많은 소리가 있지만, 우리는 주님의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통한 구원과 심판을 알리는 주님의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나팔 소리는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소리이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심판의 소리가 됩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바로 지금 그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때를 알리는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등과 기름은 무엇인가?
1장 미련한 처녀 다섯
미련한 처녀 다섯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에 다섯이다. 그러면 왜 미련한 자인가? 그것은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하셨다.
그러면 ‘등’을 가진 것은 무엇이며, 그리고 ‘기름’을 가지지 아니한 것은 무엇인가?
1. 등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엡1:3-6)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았다. 이것이 열 처녀가 등을 든 것이다.
다음은 열 처녀가 든 등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은 것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 사죄의 구속
1) 대형벌의 대속
(롬5:6-7)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영이 함께 거하시지 않는 육신의 연약한 자로 있을 때에(롬5:6-7)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의 육체가 죽으시는 대형벌(代刑罰: 골1:22)의 대속을 하셨다.
2) 사죄의 구속
(요20:19-22)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주님을 믿는 제자들에게 오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즉 육신의 연약한 자를 하나님의 영(롬8:9)이 거하시는 생령의 사람으로 구속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사죄의 구속이다.
2. 칭의의 구속
1) 대복종의 대속
(롬5:8-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아직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로 있을 때에(롬5:8-9)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대복종(代服從: 빌2:8)의 대속을 하셨다.
2) 칭의의 구속
(롬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즉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자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구속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칭의의 구속이다.
3. 화친의 구속
1) 대화평의 대속
(롬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골1:19-20)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가 아직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로 있을 때에(롬5:10-11)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대화평(代和平:골1:19-20)의 대속을 하셨다.
2) 화목의 구속
(엡2:15-16)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하나님과 화평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화목으로 말미암아 원수 된 것을 소멸하셨다. 즉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고 또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구속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화친의 구속이다.
참고로, 우리가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평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요14:16, 요14:26, 요15:26)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는 것을 말씀한다. 그리고 우리가 영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눅4:18)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씀한다.
2. 기름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것이 기름을 든 것이다.
그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요15:26) 것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눅4:18) 것이다. 이것이 미련한 처녀 다섯이 기름을 가지지 못한 것이며, 이것이 슬기 있는 처녀 다섯이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간 것이다. ‘기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2장 슬기 있는 처녀 다섯, 2. 기름”에서 참고하시기 바란다.
2장 슬기 있는 처녀 다섯
슬기 있는 처녀 다섯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에 다섯이다. 그러면 왜 슬기 있는 자인가? 그것은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하셨다.
그러면 등을 가진 것은 무엇이며, 그리고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간 것은 무엇인가?
1. 등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엡1:3-6)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았다. 이것이 열 처녀가 든 등이다.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위의 “1장 미련한 처녀 다섯 1. 등”에서 언급하였기에 생략한다.
2. 기름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은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그러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요15:26) 것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눅4:18) 것이다. 이것이 미련한 처녀 다섯이 기름을 가지지 못한 것이며, 이것이 슬기 있는 처녀 다섯이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간 것이다.
다음은 슬기 있는 처녀 다섯이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간 것이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이다.
● 보혜사 성령
1.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보혜사 성령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아니하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신다.
2.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보혜사 성령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 보혜사 성령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화친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신다.
● 주의 성령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1.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2.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3. 눌린 자를 자유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결론)
열 처녀가 등을 든 것은 꼭 같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은 것은 꼭 같다.(이에 대한 도리를 부산서부교회 백영희목사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가 차별이 없이 받은(롬3:22) 것이므로 ‘기본구원’이라 표현하셨다) 그러므로 열 처녀는 전부 택자이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 다섯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처녀 다섯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이다.
미련한 처녀 다섯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았다. 그러나 죄 사함의 구속을 받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여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지 못하였다. 즉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을 받지 못하였고, 주의 성령의 임하심을 받지 못하였다.
슬기 있는 처녀 다섯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았다. 그리고 죄 사함의 구속을 받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ㅇ음으로 살아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즉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을 받았고, 주의 성령의 임하심을 받았다.
그런즉 미련한 처녀 다섯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지 아니하였고, 슬기 있는 처녀 다섯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다.(이에 대한 도리를 부산서부교회 백영희목사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세우는(고전3:10-15) 것이므로 ‘건설구원’이라 표현하셨다, 건설구원은 곧 성화구원(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갈4:19)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은 그 안에서 그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과 칭의의 구속과 화목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이다.
● 우리의 믿음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 사죄의 구속을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자로 사는 것이다. 즉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것이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이다.
2. 칭의의 구속을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이다.
3 화친의 구속을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화친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화친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받은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믿음이다. 그래서 성경은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라 하셨다.
기다리던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등불과 기름의 참된 의미
Matthew 25:1 Then shall the kingdom of heaven be likened unto ten virgins, which took their lamps, and went forth to meet the bridegroom. 2 And five of them were wise, and five were foolish. 3 They that were foolish took their lamps, and took no oil with them: 4 But the wise took oil in their vessels with their lamps.
성경을 읽다 보면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중 한번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구절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을 때라면 다른 한 번은 열 처녀의 비유에서였습니다(완전수 1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여태까지 열 처녀의 비유를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늘 성령 충만 해야 한다’는 식의 설교를 들었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에는 ‘이 열 처녀를 크리스천에 비유하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 크리스천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어리석은 5 처녀처럼 기름이 떨어질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 열 처녀의 비유는 천년왕국 때 주님께로 돌아올 이스라엘에 대한 비유다’란 설교를 들었었습니다.
양쪽 해석에 대해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성경을 통독하다가 깜짝 놀라게 됐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절과 4절을 직역하면,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들의 등불은 가져갔으되 기름은 가져가지 않았더라, 그러나 현명한 자는 등불과 함께 자신들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더라’. 3절의 ‘took no oil’이란 표현이 눈에 들어오자 비늘이 벗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있던 기름이 떨어진 줄로만 생각하고 또 그렇게 듣고 넘어갔었던 구절이었는데 5 처녀는 처음부터 기름이 없었음을 발견하자 잠시 멍했습니다(숫자 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렇게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동안 성경을 여러 번 주의 깊게 살피며 정독했었고 또 그 과정에서 깨달았었던 다른 것들이 합쳐지며 화학작용처럼 일어난 것이긴 했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 가운데 이미 ‘vessel’ 즉 그릇이 성경에선 사람의 몸을 뜻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삼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칠 때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 먹을 것을 구합니다. 그러자, 아히멜렉은 먹을 것이라고는 여호와께 올렸다 내린 거룩한 빵 5덩이 밖에 없는데 같이 있는 자들이 여자를 가까이하지만 않았다면 주겠다고 합니다. 그때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삼상 21:5)”라고 합니다. 여기서 소년들의 몸을 그릇으로 표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하나님은 바울에 대해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십니다. 바울 또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고 하며 디모데에게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고 말합니다.
또한 저는 성경에 나오는 어떤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을 땐 성경에서 그 단어가 들어간 모든 구절을 뽑아 읽어보는데-부끄럽게도 백 구절 넘어가는 것들은 그 유익을 알면서도 뽑아놓기만 했지 읽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그렇게 모든 구절을 읽다 보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단어의 의미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등불’의 바른 의미를 알고자 예전에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서 ‘lamp’가 들어간 44구절을 모두 찾아 읽었었습니다. 그런데 이 ‘lamp’라는 단어는 놀랍게도 44구절 안에 총 50번 등장합니다. 50은 온전한 은혜와 속량 및 자유를 뜻하며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령의 법을 뜻하는 숫자입니다(5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 및 언약을 뜻하는데 특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령의 법을 뜻한다는 거였습니다. 몇 구절을 예로 든다면 등불은 창 15:17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반으로 찢긴 헌물의 사체들 사이로 등불과 화로가 지나가는 장면에서 처음 나옵니다. 그리고 시 119:105절에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라는 다윗의 고백이 나오며 잠언 6:23절엔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명령으로 번역된 단어가 영어로는 ‘commandment’ 즉, 계명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어느 날 열 처녀의 비유를 읽다가 어리석은 5 처녀는 등불은 가져갔으되 기름은 없었고 현명한 5 처녀는 등불과 함께 자기들의 그릇(몸)에 기름을 가져갔더라는 비유가,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법(등불)이 올 것이라는 언약은 알았지만, 그 언약을 성취하러 오신 예수님은 정작 거부해서 성령(기름)은 없게 될 유대인들과 예수님을 믿어 성취하신 성령의 법(말씀) 안에 기름인 성령을 받게 될 교회를 비유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등불 자체엔 당연히 기름이 있어 불이 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시기에 등불 자체에 기름이 있지만, 말씀 즉 성령의 법(등불)만 갖고 있지 그 말씀을 마음 가운데 믿어 주님을 영접함으로 성령의 전(기름을 담은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고전 3:16), 그가 가진 성경이나 언약이 구원을 가져오진 않습니다. 이 비유를 현 지역 교회에 적용한다면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 받고 말씀을 마음에 받아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과 그냥 성경책만 들고 다니는 church goer(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더구나 3절에 어리석은 처녀들은 모든 묘사에서 복수로 쓰이는데 4절에 지혜로운 처녀들은 5명임에도 불구하고 ‘the wise’란 단수로 표현하다가 ‘그들의 그릇들에’, ‘그들의 등불들’에서는 복수로 쓰입니다. 교회는 여러 지체로 되어 있으면서도 한 몸이요 한 영인 탓입니다. 그렇기에 이 비유에서 나오는 현명한 5 처녀는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눠줄 수 없다고 9절에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그릇에 담겨 있는 기름을 (몸에 임재하시는 성령) 나눠줄 방법이 없기에 너희 것을 사라고 권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말씀하시고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도 내게로 와서 사라고 권면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7-18).” 그들은 이어지는 계 3:20절에 보이듯이 그냥 교회만 다니지 말고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주님으로 영접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렇게 황망히 자리를 떠났던 어리석은 5 처녀들은 11절에 다시 돌아와 지혜로운 자가 신랑과 함께 marriage(결혼)에-성경엔 wedding 즉 결혼식에 대한 비유도 나오지만, marriage 즉 결혼식을 포함한 결혼한 상태를 뜻하는 비유도 나옵니다-들어가게 되어 닫힌 문을 열어달라고 주님께 호소합니다. 하지만 그냥 문을 열어달라고만 하지 어디에도 기름을 사 왔더란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공중 재림) 사이에 있는 은혜의 때가 지난 후에는 이미 늦었기 때문입니다.
가릴 차, 살 주, 넉 이, 고녁 적. 눈안, 눈동자 정
7월 3일(월) 호세아 7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리석은 비둘기(11절)
관련 성경 / 미혹하다(신 11:16), 유혹되다(욥 31:27, 9),어리석다(욥 5:2, 호 7:11), 한담하다(잠 20:19),속이다(잠 24:28, 삼하 3:25), 조롱하다(렘 20:7), 유혹을 받다(겔 14:9, 렘 20:10), 꾀다(출 22:16, 삿 14:15, 잠 16:29), 아첨하다(시 78:36), 타이르다(호 2:14), 권유하다(렘20:7).
구약 성경 / 28회 사용
비둘기(3123) 요나(yôwnâh) יוֹנָה
1.비둘기. 2. 집비둘기. 3. 창세기 8:8이하
어원 / 복수 יוֹנִים, 3196과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임
관련 성경 / 비둘기(창 8:8, 시 55:6, 나 2:7), 집비둘기(레 1:14, 12:6, 민 6:10), 비둘기 똥(왕하 6:25)
구약 성경 / 32회 사용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범죄와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그럴수록 그들은 인위적으로 해결책을 갈구하였다.
따라서 본 장에서 호세아는 전반부(1-7절)를 통해 왕위 쟁탈과 노략으로 도적질이 들끓고 있는 국내의 상황을, 후반부(8-16절)에서는 나라의 어려움을 외세로 극복하려는 어리석음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특히 본장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상호 관계가 유기적이라는 것과 또한 이 모든 정치와 종교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정일치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미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신, 예를 들면 바알 신 같은 것에 빠져 버리고 우상 숭배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더욱이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기인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B.C.753) 이후 30여 년 동안 네 번의 혁명과 6번의 왕위 바뀜이 있었는데 이 시기에는 나라 안의 혼란이 극도로 치달았다.
본장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교만함으로 인한 어리석음이 그들을 죄악 가운데 빠뜨렸고 그로 인해 심판을 받아 이방 나라에 멸망받게 되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방 나라를 의지함으로써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 속에 내재해 계신다.
하나님은 왕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사실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불신하며 인위적인 방법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
이것은 문제들을 더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태초 이래로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운행되었다.
하나님은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셨고 나라를 멸하기도 하셨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하나님은 그 백성과 나라를 번성케 하셨고 은혜를 베푸셨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불신할 때에는 재앙을 내리기도 하셨고 이웃 나라를 통한 전쟁의 어려움도 겪게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은 종교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세속사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일반 세속사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자가 최종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체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
따라서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앞에 꿇어 복종하며 이 땅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절대자를 찾고 그에게 나아가 자신의 삶을 의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본장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헛된 우상에게로 나아가 복을 빌고 있다.
그러나 우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결코 인간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오직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면 삶이 무의미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인간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바른 신앙 고백과 찬양을 돌려야 할 것이며, 사람을 의지하거나 다른 우상 앞에 절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할 것이다.
7월 1일(토) 호세아 6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호와를 알자(3절)
Let us acknowledge the LORD; let us press on to acknowledge him. As surely as the sun rises, he will appear; he will come to us like the winter rains, like the spring rains that water the earth.
"여호와를 알자( acknowledge the LORD)"
라다아트( לָדַעַת) 엩(אֶת) 아도나이(יְהוָה)
* 돌아가자(7725) 슈브(shûwb) שׁוּב
관련 성경 / 돌아가다(창 18:33, 룻 1:8, 대하 25:10), 오다(레 14:39), 돌아오다(레 22:13, 사 52:8), 배반하다(민 14:43), 돌이키다(신 23:13, 호6:11), 떠나다(신23:14, 렘2:35), 돌다(수19:12), 함께 가다(삿11:8), 보고하다(삼상23:23), 물러가다(삼하11:15), 다시 이르다(왕하4:38), 그치다(삼상2:26, 느9:35), 남아 있다(사6:13),쉬다(사9:12), 변하다(사29:17), 뉘우치다(렘8:6), 회복하다(나2:2), 베풀다(슥8:15), 마르다(창8:7), 보내다(창27:45, 왕하1:13), 내보내다(신24:4), 불러올리다(삼상28:11), 돌아보다(렘5:3), 부르다(창26:18), 풀리다(창27:44), 주다(창30:31), 회복되다(출14:27,삿15:19), 돌려보내다(삼상29:4), 차리다(삼상30:12), 거두다(대하34:9), 중건되다(단9:25), 또 오다(단11:10), 쌓다(말1:4), 왕래하다(겔35:7, 슥7:14), 지나가다(미2:28), 유혹하다(사47:10), 소생시키다(시23:3), 회복시키다(시60:1), 벗어나다(겔38:8), 찾아오다(창14:16), 옮기다(창29:3, 잠24:18), 복직하다(창41:13), 가져오다(창44:8), 가리다(출34:35), 피하다(레26:26), 돌려주다(민5:7), 대답하다(민22:8), 명심하다(신4:39), 돌리다(신22:2), 가져가다(신28:60), 끌어가다(신28:68), 응하다(삿9:57), 드리다(삼상6:17), 갚아주다(삼하16:12), 데려오다(삿19:3, 왕상13:20), 데리고 오다(왕상13:23), 가져가다(왕상14:28, 대하12:11), 보답하다(대하32:25), 보응하다(잠24:12), 쫓겨나다(렘16:15),인도하다(렘24:6), 거래하다(겔27:15), 드리우다(슥13:7), 모셔오다(삼하19:43), 복종하다(느9:29), 회답하다(에4:13,15), 옮겨오다(렘28:6), 돌려주다(왕상8:6), 구원하다(시35:17), 심판하다(겔21:30), 빼앗기다(창14:16), 도망하다(삼하24:13), 거절하다(왕상2:16,20), 자문하다(왕상12:9), 물리치다(왕하18:24), 꽂다(대상21:27), 복명하다(대하34:16), 들여놓다(느13:9), 막다(사43:13, 렘2:24), 도로 넣다(창42:28), 행하지 아니하다(사58:13), 회복시키다(애1:19), 꾸어주다(겔18:8), 데리고 가다(겔47:1), 소성시키다(시19:7). [명] 왕래(겔1:14). [부] 도리어(잠26:27).
구약 성경 / 1059회 사용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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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형 방향을 돌리다, 돌아서다, 창8:12, 18:33, 겔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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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형 [무생물에 대하여] 돌아서다, 회복하다, 새롭게 되다, 공허하게 되다, [화가] 돌아서다, 누그러지다, 삼상7:14,왕상13:6, 사29:17, 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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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형 돌이키다, 회복하다, 새롭게 하다, 민10:36, 시54:7, 85:5(4), 잠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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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형 필렐형 שׁוֹבֵב: 돌이키다, 회복하다, 돌리다, 사47:10, 렘50:19, 사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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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원형 풀랄형 שׁוֹבַב, 분사 מְשׁוֹבֶבֶת: 돌이킨, [즉]구조된, 구원된, 겔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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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원형 히필형 הֵשִׁיב, 미완료형 ׃יָשִׁיב 돌이키게 하다, 회복하다, 새롭게 하다, 철회하다, 헛되게 하다, 여러 번 가져오다, ~로 돌리다, ~를 향해 돌아가다, 왕상8:47, 시72:10, 사1:25, 단9:25, 11:18, 암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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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원형 호팔형 ׃הוּשַׁ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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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원형 뒤돌아 서게 되다, 출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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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원형 회복되다, 창42:28, 43:12, 민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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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이틀 후에...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빠르고
확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표현한다(Keil, Cheyne, Lange, Chrisholm).
왜냐하면 이 숫자들은 매우 짧거나
적은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장 중요하거나 확실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왕상 17:12; 왕하 9:32;잠 30:15; 사
17:6; 암 4:8).
그런데 유대인 학자들은 이를 연대기적으로 해석하여 '이틀'을 애굽과 바벨론 포로기로 '삼일'을 로마의
속박과 관련시키거나(Kimchi), 또는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메시야에 의해 세워질 성전의 '세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Rashi).
이와는 달리 많은 교부들과 주석 학자들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적용시킨다.
즉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은 3일만에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한다(Theodoret, Given, Calvin,
Butler).
결국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회복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즉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다시 소생시킬 뿐만 아니라, 메시야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릴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사
26:19; 겔 37:1-14).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 직역하면 '그의 얼굴 앞에서'이다.
이는 여호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섭리와 보호 아래서 살게 되리라는 의미이다(창 17:18;렘 30:20).
* 2617. 인애(헤세드)
* 2077. 제사(제바흐. zebach) זֶבַח
어원 / 2076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제사(창 31:54, 출 12:27, 민 15:5), 희생(창 46:1, 레 3:1, 신 12:11), 제물(레 19:6, 신 18:3), 제육(祭肉)(잠 17:1), 잔치(겔39:17,19), 제사를 드림(삼상 10:8)
구약 성경 / 162회 사용
* 5930. 번제(올라. ʽôlâh) עֹלָה
관련 성경 / 번제(창 8:20, 레 10:19), 번제물(출 10:25, 레 3:5, 민 6:11), [동] 올라가다(겔 40:26), 번제하다(창 22:7, 8)
구약 성경 / 9회 사용
사람은 온전하지 못한 영과 육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면 신앙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단계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Create in me a pure heart, O God, and renew a steadfast spirit within me.
둘째는 성경을 받으라(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 신 - 데우스(2316)
* 받은(1096) 기노마이(ginŏmai) γίνομαι
관련 성경 / 되다(마 1:22, 막4:19, 눅1:2), 되게 하다(마4:3, 막1:17, 고후5:21), 이루다(마5:18, 6:10, 눅1:38), 내다(마6:16), 일어나다(마8:24, 막4:17), 베풀다(마11:20), 행하다(마11:21,23), 나타나다(행8:13), 맺다(마21:19), 나다(마25:6, 막9:7, 눅3:22), 생기다(마23:15, 요5:14), 계시다(마26:6, 막4:10), 임하다(마27: 45, 막15:33), 이르다(막1:4, 눅10:32), 당하다(막5:16, 딤후3:11), 드러나다(막6:14), 오다(막6:21, 요1:17), 차다(눅2:6, 9:51), 만들다(행19:26), 가다(행27:33), 거하다(고전2: 3), 있다(마18:12).
신약 성경 / 670회 사용
요한복음 5:3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7:38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디모데후서 3:16-17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힘써 여호와를 알자
- 여호와를 '아는 것'(다아트)은 우상 숭배와 배교로부터 돌아서려는 강한 열성을 내포한다(4:1, 6).
이것은 계명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지식(1847) 다아트(daʽath) דַּעַת
어원 / 3045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지식(렘 22:16, 시 19:2, 전 1:16), 지혜(욥 34:35), 재능(왕상 7:14).
구약 성경 / 91회 사용
'힘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다프'는 '추적하다', '뒤따르다'란 뜻으로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일에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열심히 좇아가는 것을 의미한다(신 30:2, 3).
힘써(7291) 라다프(râdaph) רָדַף
관련 성경 / 추격하다(창35:5, 삿7:25, 8:12), 따르다(출14:4, 삼하18:16, 시23:6), 쫓다(레26:8, 신16:20, 삼상26:18), 따라가다(수2:7, 잠15:9, 호12 : 1), 치다(삼하20:10, 욥19:28), 핍박하다(시69:26, 욥19:22, 애1:3), 학대당하다(렘29:18), 쫓아가다(삼상30:8, 대하13:19, 암1:11),쫓아오다(수7:5, 느9:11), 따라오다(수20:9),쫓기다(삿9:40, 삼하24:13), 수색하다(삼상26:20), 임하다(호6:3), 뒤쫓다(애3:66), 구하다(사1:23), 박해하다(욥19:22, 렘15:15, 20:11), 지나가다(전3:15), 쫓아내다(나1:8)
구약 성경 / 144회 사용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 '나오심'의 히브리어 '야차'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나타낸다(창 19:23; 시 19:5).
본 구절은 여호와의 임재가 새벽처럼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사 58:8; 60:2).
비와 같이
- 여기서 '비'(게쉠)는 퍼붓거나 흡족하게 내리는 비로서(스 10:9, 13) 10월 초부터 2월 말 사이에 오는 겨울비를 가리킨다.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 '늦은 비'(말코쉬)는 추수하기 전
3-4월 중에 내리는 봄비로서 곡물의 수확에 가장 중요한 비이다.
한편, '땅을 적시는'에 해당하는 '요레'는 원래 '이른
비'(former rain, KJV)를 뜻하나, 여기서는 하필 미완료형(또는 칼 분사형)으로 사용되어 '마른 땅을 적시는'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와같이 만물을 소성케 하는 겨울비와 봄비처럼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힘써 아는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은총과 축복을
내리신다(레 26:4;신 11:14).
호세아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1-3절).
이스라엘과 유다가 언약을 어긴 죄에 대한 구체적인 죄의 항목을 지적합니다(4-11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예언하면서 그들의 외식적인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제사만 지냄으로써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제사장들의 행악은 모든 사회를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상처받은 이스라엘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 회복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것임을 예표합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선지자 호세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암시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부활로 택한 백성을 회복시키듯이 성도들도 회개와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우선적으로 주력해야 합니다.
또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이 죄 문제를 해결할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호세아 6:6)
헤세드
자바흐(2077)
זֶבַח 스트롱번호2077
살륙
희생
출10:25
-
발음 [ zebach ]
- 어원
- 2076에서 유래
- 관련 성경
- ☞제사(창31:54, 출12:27, 민15:5), 희생(창46:1, 레3:1, 신12:11), 제물(레19:6, 신18:3), 제육(祭肉)(잠17:1), 잔치(겔39:17,19), 제사를 드림(삼상10:8).
- 구약 성경
- 162회 사용
호세아는 인생과 나라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맺는 것이고 그 언약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 6:7).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종교적 행위, 제사(자바흐)와 번제(올레)가 아니라 인애(헤세드)와 하나님을 아는 것(다아트 엘로힘)이라고 말하며 아담의 언약을 말하고 있다.
선악과를 따먹었던 불순종의 조상을 언급하면서 죄를 짓는 아담의 후예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며 죄를 짓지 않는 길은 무엇인가?
그 길은 여호와를 아는 것, 여호와의 지식을 갖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3).
호세아서 후반부는 이 여호와의 지식을 강조하며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부각하고 있다.
호세아 4-14장은 크게 호4-11장과 호12-14장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서도 여호와의 지식과 언약, 회개와 인애와 공의를 강조한다(4:6; 5:15; 6:3; 7:10; 8:1; 9:15; 10:4; 11:3; 12:6).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기도다”(호 8:12).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서 말씀을 순종하게 하려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 율법을 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호세아서 4장은 제사장들의 불순종과 우상제의(11-19)를 말하며 그 땅에 하나님의 지식이 없음을 말한다(4:2).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4:1-2).
원시 부족에 가보면 하나님을 아는 법을 가지지 못하여 범죄가 범죄로 여겨지지 않고 자연적으로 죄와 저주가 뒤대이며 연속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북이스라엘도 이러한 죄악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지도자들도 하나님 지식이 없는 그러한 모습이다(5:1-7). 하나님께 돌아갈 가능성이 없었다.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호5:6).
호세아5-7장에는 시로-에브라임 전쟁의 상황에서 일어난다. 호 6:1-3절은 회개의 노래로 이삼일이면 살아나리라 하신다. 과연 이스라엘이 죄악 속에서 과연 회개하여 살아날 수 있을까? 교정할 수 없는 이스라엘(6:4)의 상황이며, 하나님은 희생제사 대신에 하나님의 지식을 요구하며(6:6), 에브라임이 자신을 다른 백성들과 혼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7:8). 군주와 제사의 거역(8:4이하)과, 어리석은 예언자(9:7)를 말하며. 역사적 첫 회고를 한다(바알브올, 호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호9:10).
호세아서 11장은 이스라엘이 반란한 아들과 같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호11:9).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숭배하며 다른 민족과 종교적으로 혼합하며 인간적인 판단으로 시리아와 동맹을 맺어 전쟁을 하는 모습 등을 본다.
호세아는 하나님께 돌아와서 다시 언약을 갱신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호12:5-6). 하나님을 아는가, 모르는가? 이는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인생과 국가와 민족에게는 절대적 운명의 판가름이 나게 되는 것이다.
호세아12-14장은 이스라엘이 지식이 없어서 사기치는 조상 야곱과 같이 되며(호12), 그로 인해 이스라엘에 파멸이 오게 되었다(13장). 그 후 회개를 촉구하고(14:2-4절), 그래서 하나님의 치유 행동이 있게 된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14:4). 끝으로 설명적인 지혜결론으로 맺는다. “주의 길은 의롭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14:9).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한15: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레브 타홀 / 3820. 2889)
3820.
לֵב 스트롱번호3820
-
발음 [ lêb ]
- 관련 성경
- ☞마음(창6:5, 삼상4:13, 시61:2), 심중(신29:19, 에7:5), 숨(출8:15), 콧김(출15:8), 가슴(출28:29), 감동(출35:34), 간담(수14:8), 결심,생각(삿5:15, 시33:11), 진심(삿16:17), 기력(삿19:5), 관념(삼상4:20), 인심(삼하15:13),심장(삼하18:14, 시38:10), 염통(왕하9: 24, 시45:5), 한마음(대상12:38, 시83:5), 성심(대상29:9), 전심(대하17:6, 시119:10, 겔44:5), 뜻(대하24:4), 충심(시34:18), 총명(욥12:24), 지혜(욥36:5, 잠10:8, 전1:17), 지식(잠10:21), 의사(잠18:2), 생각(잠24:32), 명철(전7:7), 지각(렘5:21), 굳센 자(암2:16). [동] 말하다(창42:28), 간곡하다(창50:21), 낙심하다(민32:7),염려하다(삼상9:20), 개의하다(삼상25:25),낙담하다(삼상17:32, 겔21:15), 근심하다(삼하7:27, 애3:33), 상심하다(삼하13:33), 깨닫다(왕상8:47), 감동시키다(대하30:12), 위로하다(대하30:22), 주의하다(욥1:8, 전7:2), 담대하다(시27:14), 살피다(시48:13), 무지하다(잠6:32), 간교하다(잠7:10), 착심하다(잠23:12), 진술하다(사41:22), 기억하다(사46:8), 낙심하다(렘4:9). [부] 다정하게(삿19:3), 뜻대로(삼하7:21, 대상17:19), 담대히(렘30:21).
- 구약 성경
- 599회 사용
2889.
טָהוֹר 스트롱번호2889
순수한.
깨끗한
혼합되지 않은
-
발음 [ ṭâhôwr ]
- 어원
- 2891에서 유래
- 관련 성경
- ☞정결한(창7:2, 8:20, 출37:29, 합1:13), 부정하여지지 아니한(레11:36), 깨끗한(레7:19, 대하13:11, 사66:20), 정한(레10:10, 민19:19, 겔22:26), 순결한(레24:4,6, 시12:6), 성결한(대하30:17), 맑은(겔36:25). [명] 순금(출25:11, 대하3:4, 대상28:17), 정결(민9:13).
- 구약 성경
- 95회 사용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 여기서 '정한 마음'은 범죄의 욕구를 물리칠
정도의 능력이 있는, 성령에 의해서 변화된 심령을 가리킨다.
한편 '창조하시고'(바라)는 하나님께서 무(無)에서 유(有)를
산출해 내는 경우에 사용된 동사이다(창 1:1).
다윗은 바로 이 같은 동사를 과감히 사용함으로써,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6절) 삶을 사는데 있어서 자신의 타락한 옛성품은 전혀 무의미함을 강력히 시사하며
2. 아울러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이적적인 은혜로써만 가능함을 나타낸다(kIDNER).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여기서 '정직한 영'(루아흐
나콘)에 대해서는
1. 다윗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성령'이라는 견해(Cavin)
2. 다윗이 이미 갖고 있었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라는 견해(박윤선)
3. 다윗이 지금까지의 변덕스러운 마음 대신에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새로 받게 될
'변함없는 마음'이라는 견해(Kraus)
4. 하나님의 은총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게끔 하는 심령(마음)을
뜻한다는 견해(A. A. Anderson)등 그 해석이 다양하다.
그러나 첫째, 본절은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두
대구(對句)로서 표현되었으며
둘째, 완전한 인격자이신 성령은 갱신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셋째, 본 문구의 '새롭게 하소서'(하다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온전케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삼상 11:14;대하 24:4;사 61:4)는 점 등에서 볼 때,
위의 네 견해 중 (4)의 것이 가장 타당하다.
즉, 여기서 다윗은 성령에 의해서 감동받은 자신의 '영'이지만, 더욱 새롭게
갱신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다윗은 하나님안에서 두려움이 없고 담대하며(57:7; 112:7) 또한
굳건해질(78:37) 수 있는 것이다(C. B. Moll).
정직한 영(루아흐 쿤 / 7307. 3559)
영
입 기운
호흡
-
발음 [ rûwach ]
- 어원
- 7306에서 유래
- 관련 성경
- ☞영(창1:2, 삼상10:10, 사11:2), 기운(창6:17,7:15), 바람(창8:1, 삼하22:11, 시11:6), 마음(창26:35, 수2:11, 전1:17), 콧김(출15:8, 시18:15, 애4:20), 의심(민5:14,30), 생명(민16:22),노여움(삿8:3, 잠29:11), 정신(삿15:19, 왕상10:5, 대하9:4), 성령이 하시는 역사(왕하2:9,15), 큰 바람(욥1:19), (콧)김(욥4:9), (입)기운(시33:6), 호흡(시104:29, 전3:19), 영혼(욥7:11, 시143:7, 사26:9), 광풍(시148:8, 사32:2), 숨(욥9:18, 19:17), 혼(전3:21), (입)김(욥15:30), 심령(시77:3, 잠16:2), 폭풍(시55:8, 사27:8), 성품(잠17:27), 생기(렘10:14, 겔37:9), 분(전10:4), 사면(렘52:23), 사방(겔5:10, 17:21, 단11:4), 바람이 불 때(창3:8), 헐떡거림(렘2:24). [부] 허망하게(미2:11). [동]헐떡이다(렘14:6).
- 구약 성경
- 378회 사용
3559.
똑바로서다
필렐형 כּוֹנֵן
세우다
-
발음 [ kûwn ]
- 관련 성경
- ☞견고하다(왕상2:46, 대상17:14, 잠29:14), 예비되다(잠19:29), 준비하다(대하35:4, 시9:7, 사51:13), 든든히 서다(삼상20:31), 굳게서다(대상16:30, 시102:28, 잠12:3), 완비하다(대하8:16), 갖추다(대하29:35) 구비되다(대하35:10), 준비되다(대하35:16), 견고히 하다(시89:21), 서다(시101:7), 보존되다(잠12:19), 이루다(잠16:3), 성취하다(잠20:18),정하다(창41:32, 시108:1), 분향하다(시141:2),성취하다(잠20:18), 버티다(삿16:26,29), 기다리다(욥12:5, 18:12), 옳다(욥42:7), 신실하다(시5:9), 정직하다(시51:10), 확정되다(시57:7), 세우다(출15:17, 시119:90, 신32:6), 당기다(시11:2), 건축하다(합2:12), 배우다(욥8:8), 짓다(욥31:15, 잠8:27), 건설하다(시24:2), 삼다(대상14:2), 저축하다(대상29:16),행하다(대하27:6), 정돈하다(대하35:20), 결심하다(대하30:19), 지도하다(렘10:23), 성취하다(렘33:2), 항오를 벌이다(나2:3), 향하다(삼상7:3), 살피다(삼상23:22), 방비하다(렘51:12), 닦다(신19:3), 베풀다(욥29:7), 주다(시65:9), 인도하다(잠16:9), 삼가다(잠21:29), 박히다(겔40:43). [명] 참(신13:14),실상(삼상23:23). [부] 견고히(시93:1, 잠25:5, 왕상2:45), 든든히(잠4:26), 자세히(신17:4), 과연(삼상26:4).
- 구약 성경
- 217회 사용
6월 30일(금) 호세아 5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들으라 깨달으라 기울이라(1절)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
"Hear this, you priests! Pay attention, you
Israelites! Listen, O royal house! This judgment is against you: You
have been a snare at Mizpah, a net spread out on Tabor.
들으라(솨마) 깨달으라(카솨브) 기울이라(아잔)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때 점층적인 방법으로 그 수위를 높여갑니다.
첫째는 들으라(솨마. שָׁמַע)
둘째는 깨달으라(카솨브. קָשַׁב)
셋째는 기울이라(아잔. אָזַן)
들음(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깨달음(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기울이라(사도행전 2: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호세아 5:1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
8085. 들으라(Hear) 솨마(shâmaʽ) שָׁמַע
관련 성경 / 듣다(창 3:10, 신 5:23, 슥 8:9), 준행하다(창 22:18, 렘 35:10), 순종하다(창 26:5, 신 30:2, 사 1:19), 들어가다(삼하 19:3), 청종하다(신 4:30, 수 1:17), 받다(잠 13:8), 들어보다(렘 18:13, 19), 들리다(왕상1:45, 시26:7, 렘51:46), 예언하다(렘23:25, 29:8), 비방하다(애3:61), 분간하다(삼하 14:17), 차지하다(왕상 21:16), 복종하다(렘 42:13), 따르다(창 27:8), 알다(신 28:49), 용납하다(느 13:27), 깨닫다(렘5:15), 드리다(미 7:7), 부르다(삼상 3:10), 반포되다(에 2:8), 소집하다(삼상 15:4), 불러모으다(삼상 23:8), 알리다(사 45:21), 소리지르다(겔27:30), 소리를 내다(대하 5:13), 공포하다(렘 4:5, 50:2), 전파하다(렘 31:7), 모이다(암 3:9),소리내다(암 4:5), 찬송하다(대상 16:42, 느 12:42), 이르다(사 42:9), 증인(삿 11:10, 잠 21:28), 소문(느 6:6).
구약 성경 / 1159회 사용
7181. 깨달으라(Pay attention) 카솨브(qâshab) קָשַׁב
관련 성경 / 기울어지다(사 32:3), 듣다(대하 33:10, 사 48:18, 말 3:16), 순종하다(느 9:34), 주의하다(시 66:19, 잠 4:1, 렘 18:18), 귀 기울이다(슥 1:4, 사 42:23, 51:4), 알아듣다(렘 23:18), 기울이다(잠 2:2, 아 8:13), 들어보다(욥 13:6), 응답하다(시 55:2), 유의하다(시 61:1), 돌아보다(렘 18:19, 잠 1:24).
구약 성경 / 46회 사용
238. 기울이라(Listen) 아잔(’âzan) אָזַן
관련 성경 / 깊이 생각하다(전 12:9), 순종하다(출 15: 26), 귀기울이다(신 1:45, 시 86:6, 렘 13:15), 듣다(대하 24:19, 느 9:30, 시 135:17), 깨닫다(사 64:4).
구약 성경 / 2회 사용
제사장들아
-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들을 마땅히 가르치고 준수하도록 훈계해야 하는 책임을 저버린 제사장들을 먼저 경고한다.
이스라엘 족속들아
- 원문에는 '이스라엘 집'(이스라엘 베이트)으로 되어 있다.
이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왕족들아
- 원문에는 '왕의 집'(하멜레크 베이트)으로 되어 있다.
이는 왕의 가족들 외에 그 가문에 속한 자들과 왕의 주변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들으라...깨달으라...기울이라
- 여기에 사용된 세 동사(솨마, 카솨브, 아잔)는 점층적인 방법으로 연설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의깊고
세심하게 들으라는 것이다(사 28:14 ,23; 렘 13:15).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기 위해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임을 선고하는 말씀이다.
특히 이 말씀은 왕족과 제사장들을 향한 것인데, 아마 앗수르의 침략을 받은 므나헴 왕가와 관련된 것
같다(왕하 15:19).
또한 곧이어 있을 북왕국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다.
미스바에서...다볼 위에서
- '미스바'는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삼상 7:5) 요단 동편 길르앗 미스바를 가리킨다(삿 10:17; 11:29).
이곳은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세웠던
곳이다(창 31:48, 49).
그리고 '다볼'은 요단 서편에 있는 다볼산을 가리킨다.
이 두 곳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 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 숲이 우거져 새와 짐승들을 잡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사용된 것 같다(Keil, Given).
본절은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새를 잡는 것처럼 백성들에게 올무와 그물을 놓고 있음을 책망하고 있다.
그것은 미스바와 다볼 산
위에서 거짓 우상을 섬기라고 부추겼던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백성들을 악한 길로 인도하였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기는 커녕 도리어 도덕적 부패와 우상 숭배에 빠져 멸망의 길에서 허덕이며 백성들을 미혹했던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의 첫번째 설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4:1-5:4).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율법과 계명을 가르칠만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없었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비극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부패하고 교만해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가 부강해지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축복이 자기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부패와 죄악, 즉 우상 숭배와 교만된 행위가 나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의존하지 아니하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당연한 심판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반부에서는 철저하게 부패된 이스라엘의
죄악상에 대해 고발합니다(1-7절)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해결책이 인위적으로는 될 수 없음과 아울러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할 것 등에 대해 예고합니다(8-1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행한 악행들을 열거하시면서 그것들로 인해 심판을 내리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징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 길을 하나님의 특별 계시와 언약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계명을 따르며 사랑하려고 할 때마다 새로운 길을 보여주시고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 알기를
거절하므로 부패와 타락의 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성품과 지식에 관하여 가르치고
증거하는 선지자마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거짓 선지자들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어야
하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준수할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합니다.
더욱이 지켜야 할 언약과 계명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하고 더 나아가 선지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획득된 지식에 따라 삶의 형태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삶은 지식과 행함이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하나님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진리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식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인간의 살아가야 할 모든 지표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식이 없는 자는 오직 멸망으로 향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순종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성공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는 어리석은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성경 말씀을 언제나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참된 성공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6월 29일(목) 호세아 4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음란한 마음(12절)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of my people. They consult a wooden idol and are answered by a stick of wood. A spirit of prostitution leads them astray; they are unfaithful to their God.
KJV. My people ask counsel at their stocks, and their staff declareth unto them: for the spirit of whoredoms hath caused them to err, and they have gone a whoring from under their God.
음란한 마음(the spirit of whoredoms. a spirit of prostitution. a spirit of harlotry)
(음란의 정신, 매춘의 정신, 매춘의 영)
현대인 / 음란한 정신
새번역 / 마음이 음심에 홀려서
공동번역 / 음탕한 바람에
호세아서 3장까지는 호세아 개인의 불운한 결혼 생활을 통해 북왕조의 죄악을 경고하고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4장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을 호세아의 설교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깨우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세아는 먼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와 평민들 모두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합니다(1-10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음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결과를 소개합니다(11-19 절).
특히 호세아는 본장 전체를 통하여 책망의 말씀과 경고를 일관성 있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종교적,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였음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가증한 죄악상을 밝히시며 그로 인해 그들에게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탐욕과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자초함으로써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앗수르 땅으로 옮겨가야 했습니다.
"음란한 마음"이란 "음란한 영(루아흐 제누님. רוּחַ זְנוּנִים)"이란 뜻입니다.
2183. 음란한(zânûwn) זָנוּן
어원 / 2181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음란(호 2:2), 음행(왕하 9:22, 나 3:4), 간음(겔 23:11). [동] 음행하다(겔 23:29), 음란하다(호 1:2, 2:4, 4:12), 간음하다(겔23:11).
구약 성경 / 12회 사용
7307. 마음(rûwach) רוּחַ
어원 / 7306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영(창 1:2, 삼상 10:10, 사 11:2), 기운(창 6:17, 7:15), 바람(창 8:1, 삼하 22:11, 시 11:6), 마음(창 26:35, 수 2:11, 전 1:17), 콧김(출 15:8, 시 18:15, 애 4:20), 의심(민 5:14, 30), 생명(민 16:22),노여움(삿 8:3, 잠 29:11), 정신(삿 15:19, 왕상 10:5, 대하 9:4), 성령이 하시는 역사(왕하 2:9,15), 큰 바람(욥 1:19), (콧)김(욥 4:9), (입)기운(시 33:6), 호흡(시 104:29, 전 3:19), 영혼(욥 7:11, 시 143:7, 사 26:9), 광풍(시148:8, 사 32:2), 숨(욥 9:18, 19:17), 혼(전 3:21), (입)김(욥 15:30), 심령(시 77:3, 잠 16:2), 폭풍(시 55:8, 사 27:8), 성품(잠17:27), 생기(렘10:14, 겔 37:9), 분(전 10:4), 사면(렘 52:23), 사방(겔 5:10, 17:21, 단 11:4), 바람이 불 때(창 3:8), 헐떡거림(렘 2:24). [부] 허망하게(미 2:11). [동]헐떡이다(렘 14:6).
구약 성경 / 378회 사용
진실(571) 에메트(’emeth) אֶמֶת
인애(2617) 헤세드(chêçêd) חֵסֵד
하나님을 아는 지식(1847, 430) 다아트(daʽath) דַּעַת 엘로힘(’ĕlôhîym)
3무(無) 5유(有)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1절)
저주, 사위, 살인, 투절, 간음(2절)
-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Hear the word of the LORD, you Israelites, because the LORD has a charge to bring against you who live in the land: "There is no faithfulness, no love, no acknowledgment of God in the land. -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There is only cursing, lying and murder, stealing and adultery; they break all bounds, and bloodshed follows bloodshed.
진실(571) 에메트(’emeth) אֶמֶת
진실(571) 에메트(’emeth) אֶמֶת
어원 / 539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바름(창 24:48), 진실함(출 18:21, 렘 42:5), 확실함(신 17:4, 잠 11:18), 참됨(신 22:20, 단 10:1), 충성됨(대하 32:1), 진정함(느9: 3), 성실함(시 54:5), 충실함(사 16:5), 견고함(사 39:8), 옳음(사 43:9). [부] 분명히(렘 32:41), 참으로(삿 9:15), 진실히(삼상 12:24, 왕상2:4, 겔 18:8), 성실히(시 132:11, 잠 29:14). [명] 성실(창 24:27, 왕상 3:6, 시 71:22), 진실(왕하 20:3, 시 111:7), 진리(창 32:10), 시 57:3, 단 10:21), 성실함(창 47:29), 참(신 13:14, 대하 15:3, 렘 10:10), 진실함(수 24:14).
구약 성경 / 127회 사용
인애(2617) 헤세드(chêçêd) חֵסֵד
인애(2617) 헤세드(chêçêd)
발음 / 헤세드[ chêçêd ]
어원 / 2616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인자(창19:19, 민14:18, 시18:50), 은혜(창20:13, 삼하3:8, 렘32:18), 인애(창47:29, 신7:9, 렘2:2), 은총(창32:10, 삼하9:1, 호2:19), 성실(왕상3:6), 긍휼(느1:5, 시85:10), 아름다움(사40:6). [동] 영화롭게 하다(잠14:34), 선대하다(수2:12, 삿1:24, 룻1:8), 은혜를 베풀다(룻2:20), 인자하다(대상16:34, 대하7:3,시59:10), 자비하다(대상16:41, 대하5:13), 선하다(대하32:32, 느13:14), 긍휼히 여기다(스9:9, 시59:17), 불쌍히 여기다(욥6:14).
구약 성경 / 246회 사용
하나님을 아는 지식(1847, 430) 다아트(daʽath) דַּעַת 엘로힘(’ĕlôhîym) אֱלֹהִים
하나님을 아는 지식(1847, 430) 다아트(daʽath) דַּעַת 엘로힘(’ĕlôhîym)
지식(1847) 다아트(daʽath) דַּעַת
어원 / 3045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지식(렘 22:16, 시 19:2, 전 1:16), 지혜(욥 34:35), 재능(왕상 7:14).
구약 성경 / 91회 사용
1. 신들. 2. 신과 같은 모습. 3.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
관련 성경 / 하나님(창 1:1, 시 109:1, 욘 4:6), 엘엘로헤 이스라엘(창 33:20), 신상(창 35:2, 출 20:23, 신 7:25), 신(출 7:1, 신 4:34, 삼상17:43), 재판 장(출 21:6), 여호와(레 21:7), 여신(왕상 11:5).
구약 성경 / 2603회 사용
사위(3584) 카하쉬(kâchash) כָּחַשׁ
살인(7523) 라차흐(rôtsach) רָצַח
투절(1589) 가나브([gânab) גָּנַב
간음(5003) 나아프(nâʼaph) נָאַף
(현대인의 성경) 2절 / 오직 저주와 거짓말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며 폭력과 살인이 그칠 날이 없다.
저주(422) 알라(’âlâh) אָלָה
관련 성경 / 저주하다(삿 17:2), 맹세시키다(왕상 8:31, 대하 6:22). [명] 저주(호 4:2), 맹세(호 10:4).
구약 성경 / 6회 사용
사위(3584) 카하쉬(kâchash) כָּחַשׁ
관련 성경 / 부인하다(창 18:15, 레 6:2,3), 굴복하다(삼하 22:45), 속이다(수 7:11), 모르다(욥 8:18, 잠 30:9), 인정하지 아니하다(렘 5:12), 속이다(슥 13:4, 레 19:11), 떨어지다(호 9:2). [명] 속임(왕상 13:18, 호 4:2), 거짓말(사 59:13).
구약 성경 / 22회 사용
살인(7523) 라차흐(rôtsach) רָצַח
관련 성경 / 죽이다(민 35:16,27, 왕상21:19), 살인하다(민35:11, 렘7:9, 호6:9, 신4:42, 수20:3), 찢기다(잠22:13), 죽임을 당하다(삿20:4), 살해하다(시94:6). [명] 살인(호4:2), 살인자(민35:6, 신29:3, 수21:38, 민35:18,21).
구약 성경 / 16회 사용
투절(1589) 가나브([gânab) גָּנַב
관련 성경 / 도둑질하다(창31:30, 잠6:30, 렘23:30, 수7:11, 왕하11:2, 삼하15:6), 가만히 가져오다(삼하21:12), 날려가다(욥21:18), 앗아가다(욥27:20), 도둑을 맞다(출22:7,12), 가만히떠나다(창31:20), 가만히 도망하다(창31:27), 유인하다(신24:7), 도둑맞다(창31:39), 끌려오다(창40:15), 가만히 이르다(욥4:12),[명] 도둑질(호 4:2)
구약 성경 / 40회 사용
- 1.원형 훔치다, 몰래 가져가다, 창31:19,30,39,삼하19:42(41), 신24:7, 욥21:18
- 2.원형 속이다, 창31:27.
- 3.원형 피엘형
간음(5003) 나아프(nâʼaph) נָאַף
관련 성경 / 간음하다(레20:10, 잠6:32, 시50:18, 렘7:9,출20:14, 겔16:32), [명] 간음(호4:2), 간부(레20:10), 음부(레20:10, 겔23:45, 호3:1), 음녀(잠30:20, 사57:3).
구약 성경 / 31회 사용
4:1-14:9은 모두 9개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4:1-5:4)
2. 인간의 교만을 지적함(5:5-6:3)
3. 인애가 없으므로 망함(6:4-7:7)
4. 세속과
혼합된 죄를 책망함(7:8-8:14)
5. 부패의 죄로 징벌을 받음(9:1-17)
6. 이스라엘의 두 가지 큰
죄(10:1-15)
7. 인간적인 계책을 책망함(11:1-16)
8. 우상 숭배의 죄악을 다시 책망함(13:1-16)
* 12:1-14 / 이스라엘에 대한 회개 촉구
9. 회복에 대한 약속(14:1-9)
이상에서 하나님은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무궁한 은혜속에 거하도록
촉구하신다.
여호와께서...쟁변하시나니
- '이 땅 거민'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쟁변하신다. '쟁변'(리브)은 다투는 것을 말하는데(2:2 참조),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한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을 고소한다는 의미이다(12:2; 미 6:2).
이 땅에는...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 계약을 위반한 이스라엘의 죄악은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진실(에메트)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말과 행동의 신실함을 나타낸다.
이는
곧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에 충실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인애(헤세드)는 언약에 기초한
사랑으로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은총과 긍휼을 의미한다(2:19 참조).
지식(다아트)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다아트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서 얻게되는 체험적 지식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다아트'가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짓신들을 섬기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치도
않았다(롬 1:21).
게다가 사랑과 진실을 도외시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로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것은 심판과 멸망에 대한 선포였다.
오직 저주와...간음 뿐이요
- 이스라엘의 부도덕한 죄악들이 열거되고 있는데,
저자는 명사형이 아닌 부정사 절대형(infinitives absolute)으로 표현함으로써 타락과 죄악의 현실을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Keil, Lange).
저주의 '알라'는 원래 '맹세하다'란 단순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남을
저주하는 것과 관련된 거짓 맹세를 의미한다(마 5:34 참조).
사위의 '카하쉬'는 '거짓말하다', '속이다'란 뜻으로
십계명 중 제9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투절(가나브)은 훔치는 것으로 절도 행위를 가리키며, 제8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살인(제6계명)과 간음(제 7계명) 역시 이스라엘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죄악으로 간주되고 있다.
간음(나아프)은 제7계명을 위반하는 것이다.
강포하여...뒤대임이라
- '강포하다'의 '파라츠'는 '찢다',
'깨뜨리다'등의 뜻으로 강도와 살인의 목적이 있는 폭력 행위를 의미한다. '피'(*, 다밈)는 피흘리는 행위와 관련되며,
'뒤대임'(*, 나가)은 원래 '만지다', '도달하다', '치다'등의 뜻으로 여기서는 피흘리는 행위에 또 다른 피흘림이 뒤따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폭력은 폭력을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는 뜻이다. 이는 폭력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사회의 비극적인 상황을
반영해준다.
영어 성경에서는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the spirit of whoredoms(음란한 정신), a spirit of prostitution(매춘의 정신), a spirit of harlotry(매춘의 영).
왜 음란한 마음 즉 음란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까요?
백성들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무를 향하여 묻는다는 것은 우상 숭배의 구체적 행위 즉 나무로 새긴 우상에게 신적 계시를 묻는 것을 말합니다(렘 10:3, 합 2:19).
막대기는 마치 드라빔과 같은 점을 치는 도구와 같은 것으로 나무 막대기가 넘어지는 방향으로 결정할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특징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부족합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범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호세아 4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가장 큰 죄목은 십계명을 어긴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것과, 바른 인간 관계를 갖지 못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한 행위를 저지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뿐만이 아니라 제사장들조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이스라엘 왕국의 지도자였던 여로보암 2세는 레위인이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에 대해 신실하고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많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북이스라엘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이 아닌 제사장들은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을 뿐더러 바른 제사도 집행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백성은 더 큰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에 깨한 지식의 결여는 일차적으로 백성들 자신에게 있었고 또한 제 사장들도 이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려면 성경 또한 깊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곧 죄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 동기가 되기 때문에 인간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말씀 앞에서 바로 서는 훈련을 꾸준히 지속해야만 합니다.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 백성들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 행위가 구체적으로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나무로 새긴 우상에게 신적계시를 묻는다(렘 10:3;합 2:19).특히 이것은 드라빔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3:4).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 '막대기'(마켈)는 여기서 우상의 형상을
나무 꼭대기에 새겨서 만든 것이거나, 아니면 막대기가 넘어지는 방향에 따라서 예언이 응답되는 것으로 믿는 점술적인 도구의 하나로
여겨진다(J.Given, W.Harper).
이는...떠났음이니라
- 나무 우상에게 신탁을 구하고 점복술을 통하여 소원을
얻으려는 이스라엘의 우매함과 가증스러움에 대해 호세아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5:4).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의 감각적인 행음에 빠져서 더이상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하고 언약에서 떠남으로써 멸망의 길을 자초한다. 그런데,그렇게
만드는 배후의 세력은 '음란한 영'(*, 루아흐 제누님) 곧 악한 귀신의 능력이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기보다는 음란과 우상 숭배를 자극하는 사탄의 권세에 굴복하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호세아서 3장까지는 호세아 개인의 불운한 결혼 생활을 통해 북왕조의 죄악을 경고하고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4장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을 호세아의 설교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깨우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세아는 먼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와 평민들 모두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합니다(1-10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음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결과를 소개합니다(11-19 절).
특히 호세아는 본장 전체를 통하여 책망의 말씀과 경고를 일관성 있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종교적,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였음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가증한 죄악상을 밝히시며 그로 인해 그들에게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탐욕과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자초함으로써 약속의 땅에서
뽑힘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특징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부족합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범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호세아 4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가장 큰 죄목은 십계명을 어긴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것과, 바른 인간 관계를 갖지 못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한 행위를 저지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뿐만이 아니라 제사장들조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이스라엘 왕국의 지도자였던 여로보암 2세는 레위인이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에 대해 신실하고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많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북이스라엘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이 아닌 제사장들은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을 뿐더러 바른 제사도 집행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백성은 더 큰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에 깨한 지식의 결여는 일차적으로 백성들 자신에게 있었고 또한 제 사장들도 이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려면 성경 또한 깊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곧 죄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 동기가 되기 때문에 인간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말씀 앞에서 바로 서는 훈련을 꾸준히 지속해야만 합니다.
6월 28일(수) 호세아 3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음부 된 그 여인(1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The LORD said to me, "Go, show your love to your wife again, though she is loved by another and is an adulteress. Love her as the LORD loves the Israelites, though they turn to other gods and love the sacred raisin cakes."
음부된 그 여인(the woman who became a whore)(the woman who became an adulteress)
그 여인(802) 이솨(’ishshâh) אִשָה
관련 성경 / 여자(창 2:22, 출21:28, 느8:2), 아내(창2:24, 20:7, 스2:61), 여인(창12:14, 출21:22, 욥14:1), 첩(창16:3, 삿19:1), 부인(창24:36), 시집(민 36:8), 기생(수2:1, 6:22), 과부(삼하14:5), 계집(잠2:16), 어머니(왕하8:5, 사45:10).
구약 성경 / 782회 사용
음부 된(5003) 나아프(nâʼaph) נָאַף
발음 / 나아프 [ nâʼaph ]
관련 성경 / 간음하다(레 20:10, 잠 6:32, 시 50:18, 렘 7:9, 출 20:14, 겔 16:32), [명] 간음(호 4:2), 간부(레 20:10), 음부(레 20:10, 겔 23:45, 호 3:1), 음녀(잠 30:20, 사 57:3).
구약 성경 / 31회 사용
♦ 6월 28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호세아 3: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음부 된 그 여인(1절)
♦ 성구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음부(淫婦)"란 훈(訓)은 "음란할 음(淫)"과 "아내 부(婦)"라고 하여 "음란한 부인"을 말합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망할 때까지 활동했던 예언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역사에 개입하셔서 인간들로 하여금 멸망과 파멸의 늪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는 죄악으로
얼룩져 갔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나라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말씀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부관계가 부인의 부정한 행동으로 인하여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고멜이란 음부 된 그 여인으로 등장시켜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멜은 분명한 호세아의 부인이었으므로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려야 하므로 고멜을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로 인하여 타락의 길로 치닫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인간 역사의 배후에서 자기 백성들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차질 없이 펼쳐 나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탕한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데려오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런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멜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을 때 그들을 구하시기 위해 속전을 지불하시고 자기의 품으로 안아주셨습니다.
이것은 공의로우신 본질과 더불어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품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시킴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 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음란하고 타락한 고멜까지도 부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부르셨으며 오늘날도 우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속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신 하나님의
사랑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와 동행 365 / 179일
욥기 11-13장
사도행전 9:1-21
♪ 찬양 / 예수 따라 가며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160. 사랑(아하브. ’ahăbâh) אַהֲבָה
관련 성경 / 사랑함(삼상 18:3, 왕상 10:9, 시 109:4), 사랑(삼하 1:26, 시 109:5, 아 2:4, 삼하 13:15), 사랑하는 자(아 3:5, 8:4)
구약 성경 / 40회 사용
다른 신을 섬기고
- '섬기고'에 해당하는 '파나'(6437)는 얼굴을 돌이켜서 다른 신을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배교와 우상 숭배를 잘 보여준다.
6437. 섬기고(파나, pânâh) פָּנָה
관련 성경 / 권고하다(레 16:9, 왕하 13:23), 돌아가다(신 16:7, 수 22:4, 렘 50:16), 돌이키다(신 31:18, 왕하 2:24, 겔 10:11), 돌아보다(왕상 8:28, 대하 6:19, 렘 47:3), 떠나다(신 29:18, 왕상 17:3), 지나가다(시 90:9), 보다(대하 26:20, 욥 6:28, 전 2:11), 쳐다보다(사 8:21), 가다(사 53:6), 올라가다(렘 6:4), 들다(창 25:63), 거스르다(출 14:27), 들어오다(신 23:11), 엎드러지다(삿 19:26), 향하다(창 18:22, 겔 17:6), 돌리다(신 1:7), 들어가다(신 1:40, 2:1), 돌이키다(사 45:22), 살피다(출 2:12), 바라보다(출 16:10, 민 16:42), 만들다(레 19:4), 추종하다(레 19:31, 20:6), 정탐하다(신 1:24), 돌아서다(수 7:12), 보이다(수 8:20), 나오다(삼상 13:17), 행하다(왕상 2:3), 이르다(수 15:2), 돌아오다(렘 46:5, 겔 44:1), 섬기다(호 3 :1), 예비하다(사 40:3),준비하다(시 80:9), 쫓아내다(습 3:15), 수축하다(사 57:14), 매다(삿 15:4). [부] 도리어(학1:9). [명] 새벽(시46:5), 모퉁이(대하25:23).
구약 성경 / 135회 사용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 '건포도 떡'(아쉬솨 아나빔. 6025, 809)(אֱלֹהִים אֲחֵרִים)은 그 맛과 관련하여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우상 숭배의 모습을 상징한다(Keil, Given, Lange).
특히 이것은 앗수르의 풍요의 여신인 아스다롯
신전에 바쳐진 희생의 떡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렘 7:18; 44:17-19).
6025. 포도(에나브. ʽênâb) עֵנָב
어원 / 복수עֲנָבִים, 연계형 עִנְּבֵי, ‘열매맺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
관련 성경 / 포도송이(창 40:10), 포도(창 40:11, 신 23:24, 암 9:13), 열매(레 25:5).
구약 성경 / 19회 사용
809. 떡(이쉬솨. ’ăshîyshâh) אֲשִׁישָׁה
관련 성경 / 건포도 떡(삼하 6:19), 건포도 과자(호 3:1), 건포도로 만든 과자(대상 16:3), 건포도(아 2:5)
구약 성경 / 5회 사용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 직역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여호와처럼'이다. 이는 호세아가 음부된 여인을 사랑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너는 또 가서...사랑하라
- '여인'으로 번역된 '이솨'(*)에 정관사(*,
하)가 없다는 이유로 본절의 '여인'이 1장에서의 고멜이 아니라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솨'는 여기서 어떤
다른 여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부된 여인과의 별거 상태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Pusey).
즉, 고멜은 호세아를 떠나 다른
남자와 간음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레아'(*)가 '타인'의 의미뿐만 아니라(렘 3:1) '남편'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렘 3:20)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고멜이 타인(또는 친구)을 사랑하며 음란한 생활을
했다(RSV,NEB).
2. 고멜이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부가 되었다(JB, Keil).
이 두 가지 해석 모두
여인의 간음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음부된 여인처럼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한 모습을
묘사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부 고멜을 다시 사랑하라는 명령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14:4).
3:2. 내가 은 열 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내가...저를 사고
- '사다'의 '카라'는 '거래에 의해서 얻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여인을 찾아오기 위하여
간부(姦夫)에게 지불한 대가는 아니다. 또한 여인의 부모에게 주어야 하는 지참금도 아닐 것이다.
호세아와 고멜의 법적인 이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단지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마 '카라'는 여인의 현재 상태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즉, 호세아는 여인에게 일정한 몸값을 결혼 선물의 형식으로 주었을 것이다(Lange, Wood).
이는
그녀의 음란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하여 그녀에게 주었던 생활 보장의 비용이었던 것 같다.
한편, 그 비용은 은
십오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이었다.
한 호멜은 십 에바로서 은 십 세겔과 비슷하다(겔 45:11).
여기서 '반'으로 번역된
'레테크'(*)의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전통적인 해석을 그대로 따른다면 보리 한 호멜 반은 은 십오 세겔이다.
따라서 여인에게
주어진 값은 은 삼십 세겔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보통 노예의 몸값이었다(출 21:32, 레 27:4).
결국 호세아가
지불했던 비용은 여인의 낮아진 신분과 노예적인 생활 상태를 암시하고 있다.
이는 창녀와 같은 이스라엘의 타락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3:3.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많은 날 동안(야밈라빔)
- 이는 정확하게 한정된 시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많은 날'의 끝은 여인의 행동에 달려있다.
즉, 그 기간은 여인이 절제하고 훈련받음으로써 새롭게 변화되는 날들을 가리킨다.
나와 함께 지내고...좇지 말라
- 여인의 음란한 생활은 끝나게 되었다.
이제
여인은 남편에게 다시 돌아와서 순결한 삶을 살도록 요청받는다.
그러나 여인은 다른 남자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성적인 교제가
금지된다.
'함께 지내고'의 '야솨브 리'는 '거주'가 아니라 조용히 혼자 앉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LXX).
또한 '남자를
좇지 말라'(로 하야 레이쉬)는 성적인 부부 관계를 갖지 말라는 뜻이다.
여인은 고독과 절제의 시간들을 통하여 새롭게
인격이 변화될 때까지 훈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 직역하면 '그리고 또 나는 너에게로'이다. 이 구절은
해석상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이해되었다. (1)'나도 너와 함께 지낼 것이다'(NIV). 이것은 부부간의 전적인 헌신을
내포한다. (2)'나도 네게 오지 아니하리라'(Kimchi). 이는 부부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의미이다(NEB, Keil).
(3)'내가 네게 친절하게 대하리라'(Ewald). (4)'나도 역시 네 편이 되리라'(Calvin). 즉, 너의 남편이 되어
신실할 것을 맹세한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2), (4)의 견해가 적합한 것 같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새 언약하에서 새롭게 변화될 때까지 인내하실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 가운데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3: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 고멜의 절제 기간은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을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해야 하는 암울한 시기임을 암시한다.
왕도 없고 군(君)도 없고
- 이는 이스라엘의 자주적 통치권과 행정이 부재(不在)할 것임을 시사한다.
'군'(사르)은 '방백'과 같이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을 뜻한다(7:3, 13:10).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 '제사'(제바흐)는 여호와께 드리는 희생
의식으로서 이스라엘의 종교 행위를 상징한다.
'주상'(마체바)은 원래 하나의 '기둥'(pillar, RSV)을 뜻하였는데(창
28:18, 수 24:26), 후에는 제단 곁에 세우는 종교적 숭배물로 인식되거나 이교적인 우상과 관련되었다(출 34:13, 신
7:5).
특히 바알 숭배의 일환으로 주상을 세우기도 하였다(10:1,왕하 3:2, 미 5:13).
따라서 본 구절은 전통적인 제사
의식이든지 우상과 관련된 혼합주의적인 종교 행위이든지 간에 종교 자체의 폐지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 '에봇'(에포드)은 본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으로서 하나님의 신탁을 구하는 우림과 둠밈에 관계되었다(출 28:30).
이것은 후에 신적 계시를 받기 위한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 종교적 숭배물로 우상화되기도 하였다(삿 8:27, 17:5, 삼상 21:9).
'드라빔'(테라핌)은
가정의 수호신으로서(창 31:19, 삼상 19:13-16) 미래를 예언하는 신으로 숭배된 우상이었다.
특히 이것은 점치는 도구로서
개인적인 우상 숭배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삿 18:14-20, 겔 21:21).
따라서 에봇과 드라빔이 없어진다는 것은 여호와
숭배와 관련된 혼합주의적 우상 숭배가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정치적, 종교적인 암흑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참회의 기회이며, 인내와 시련을 통한 훈련의 시기임에 틀림없다.
3:5.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말일에는(아하리크 하야밈) יְהוָה אֱלֹהֵיהֶם
- '말일'(last days)은 단순히 미래를
뜻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를 가리키는 종말을 의미한다(신 4:30;사 2:2;렘 23:20;미 4:1 참조) 그때는 곧
구속이 완성될 메시야의 날이며(Butler, Lange), 하나님 나라가 종결되는 메시야 강림의 날이다(Keil).
경외함으로...나아가리라
- '경외함'(파하드)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을 존경하고 섬기게하는 두려움으로서 신적 거룩함 앞에서 겸손히 떠는 것을 뜻한다. '은총'으로 번역된 '토브'는
'선하심'(goodness)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땅의 소산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넘치도록
채우신다(신 6:11, 사 1:19, 렘 31:12, 슥 9:17). 이것은 곧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주는 은혜의 표현이며, 그들을
자비와 긍휼로 용납하시는 축복의 결과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선하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오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한편,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메시야 시대로 확대, 적용될 수 있다.
곧 교회와 성도들에게 내려주시는 성령의 은사와 축복들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이 잘 나타날 것이다.
6월 27일(화) 호세아 2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음란한 자식들(4절)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And I will not have mercy upon her children; for they be the children of whoredoms.
NIV / the children of adultery
KJV / the children of whoredoms
NASB / children of harlotry
♦ 6월 27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호세아 2: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음란한 자식들(4절)
♦ 성구 : 내가 그 자녀(子女)를 긍휼(矜恤)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淫亂)한 자식(子息)들임이니라.
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 왕국 여로보암 2세 때부터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던 시대에 예언 활동을 했던 선지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조국을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조국이 망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선지자의 마음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날도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극단의 이기적인 생각과 번영의 신앙이 굳게 자리를 잡은 세상에서 세상 걱정을 한다는 것은 주제 넘은 생각이거나 사치스런 행동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선지자 호세아를 통하여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부정한 자식들을 낳게 하면서까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만일 부정한 여자가 자식을 낳았다면 유전자 검사를 통하여 내 자식인지 아닌지 확인한 후에 내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면 이 여자가 부정한 짓을 하여 낳은 자식이라고 세상에 알린 후에 나는 이런 여자와 더 이상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당장 이혼 청구 소송 및 위자료를 청구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부정한 여자가 곧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이라고 책망합니다.
당장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할 교회와 성도들이지만 하나님은 또 다시 사랑을 베풀며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깨우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영원히 내 아내로 삼아 너에게 신의와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진실함으로 너를 맞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로 인정할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사랑받지 못하는 자'라고 부르던 자에게 네가 사랑을 베풀고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던 자에게 '너는 내 백성이다.' 하고 말할 것이며 그들이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호세아 2:19-20. 23)
호세아를 함께 읽어가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하나님의 자비가 두 팔을 벌리고 우리들을 맞이하려고 할 때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주님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 날 음란한 여자처럼 음란한 자식들을 낳았던 더러운 과거를 모두 버리고 이제부터는 거룩하신 주님과 더불어 진리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소금과 빛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호세아 2:4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아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음란한 자식들
베네 제누님(בְנֵי זְנוּנִים)
the children of adultery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음란한 어미를 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1:2).
오히려 그들 자신도
어미와 같이 음란한 행위와 우상 숭배에 빠져들었다.
이스라엘 개개인은 전체로서의 나라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백성들은 우상
숭배와 탐욕으로 더러워졌고, 이스라엘 나라는 주위에 있는 이방 나라들의 정치적인 힘과 부를 의존함으로써 여호와를 떠났다.
결국
백성들은 더 이상 긍휼을 얻지 못하고 고아처럼 버려지게 될 것이다.
음란한 자식에서 벗어나는 길
첫째, 어미와 쟁론하라(2절)
어미는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어미는 육체적인 욕망과 생각을 말한다.
쟁론하다(리브) 7378 רִיב
관련 성경 / 다투다(창26:22, 시35:1, 사45:9), 논쟁하다(욥33:13), 시비하다(삿21:22, 호2:2), 변론하다(욥9:3, 미6 : 1), 징벌하다(암7:4), 변호하다(사1:17), 대답하다(창31:36), 싸우다(출21:18), 복병시키다(삼상15:5), 꾸짖다(느5:7, 13:11), 억울함을 풀다(삼상24:15, 잠22:23), 책망하다(느13:25), 견책하다(사27:8), 대적하다(삼상2:10, 사49:25). [명] 원통(시74:22, 애3:58), 변호(시119:154), 원한(잠23:11), 다툼(렘2:29), 송사(렘51:36).
구약 성경 / 68회 사용
3808. 로(לֹא)
1. ~하지 않았다, 2. ~하지 않을 것이다
발음
/ 로[ lôʼ ]
관련 성경 / 전무후무한(출 11:6), 풀리다(전 12:6). [명]무죄(호 8:5). [부] 틀림없이(욥 1:11), 진실로(렘 15:11).
구약 성경 / 5097회 사용
517. 어미(엠, ’êm ) אֵם
관련 성경 / 어머니(창 3:20, 신 21:18, 왕하 4:20, 11:1, 대하 12:13)
구약 성경 / 220회 사용
그 얼굴에서...제하게 하라
- 이스라엘의 음행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짓 신을 섬긴 우상 숭배와 그에 따른 온갖 불의와 탐욕을
의미한다(4:11-14; 6:7-10; 7:1-10; 8:3-14; 10:1-10; 13:1-3).
그들이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죄악들을 그 얼굴과 유방 사이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했다.
여기서 '얼굴'과 '유방'은 창녀의 호색과 방종을 드러냄과 동시에 음행에
대한 담대함과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Lange, Keil).
6440. 얼굴(파님. pânîym) פָּנִים
1. 얼굴, 2. 대면 ㉠ פָּנִים אֶל פָּנִים발음 / 파님[ pânîym ]
관련 성경 / 얼굴(로부터 피하다)(창 16:8), 대항(창16:12),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다)(창17:3, 민16:4), (소돔) 쪽(으로 향하다) (창18:16),소원(창19:21), 앞(창23:12), 섬김(창24:40),말미암음(창27:46, 출8:24, 레26:10), (기근)까닭(창47:13), 인도(출32:1, 민23:28), 얼굴(레17:10), (세력 있는) 자(레19:15), 거느림(신3:28), 낯(창3:8, 출2:15), 위(창6:1), 얼굴(창9:23, 출10:28, 민12:15), 나그네(창23:4),후일(창30:33), 맞은편(출14:9, 신32:49), 목전(출17:6, 수10:12), 진설병(출39:36), 들(레14:7, 민19:16), 선봉(신3:18), 용모(신28:50),본래(수11:10), 손(삿2:14), 전례(룻4:7), 선견자(삼상9:19), 건너편(삼하10:16), 아귀(삼하17:19), 부하(삼하18: 9), 내소(왕상6:20), 옛적(대상4:40), 몸(대하35:22), 가죽(욥41:13),앞잡이(잠16:18), 생명(잠16:15), 시작(잠17:14), 형편(잠27:23), 안색(사3:9), 까닭(사10:27), 얼굴가리개(사25:7), 사람(사36:9), 이전(사41:26), 얼굴빛(렘30:6), 내시(렘52:25), 대적(애1:5), 모양(겔1:28), 징조(겔4:3), 빈들(겔39:5), 현관(겔40:22,26), 출입구(겔 42:11),어귀(겔42:12).
- 구약 성경 / 2038회 사용
7699. 유방(솨드. shad) שַׁד
관련 성경 / 젖 먹임(창 46:25), 유방(아 7:7, 호 2:2), 젖(시 22:9, 아 8:1, 사 60:16, 66:11, 애 4:3, 욜 2:16), 품(욥 24:9, 아 1:13, 사 28:9), 가슴(사 32:12).
구약 성경 / 21회 사용
음란(2183) 자눈 זָנוּן
어원 / 2181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음란(호2:2), 음행(왕하9:22, 나3:4), 간음(겔23:11). [동] 음행하다(겔23:29), 음란하다(호1:2, 2:4, 4:12), 간음하다(겔23:11).
구약 성경 / 12회 사용
음행을 제하라(5005) 나아푸페하(naʼăphûwph) נַאֲפוּף
어원 / 5003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음행(호 2:2).
구약 성경 / 4회 사용
6월 26일(월) 호세아 1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음란한 아내(2절)
음란한(2183) 자눈(zânûwn) זָנוּן
어원 / 2181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음란(호 2:2), 음행(왕하 9:22, 나 3:4), 간음(겔 23:11).
[동] 음행하다(겔 23:29), 음란하다(호 1:2, 2:4, 4:12), 간음하다(겔 23:11).
구약 성경 / 12회 사용
뜻풀이부
-
1. 남성 매춘, 음행, 창 38:24, 호 1:2, 2:6(4), 4:12, 5:4
-
2. 남성 [비유법]
-
a. 명사, 남성 우상숭배, 왕하 9:22.
-
b. 명사, 남성 이방인과의 음행, 나 3:4.
-
♦ 6월 26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호세아 1:1∼11
♦ 묵상을 위한 주제 : 음란한 아내(2절)
♦ 성구 :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淫亂)한 아내를 취(取)하여 음란(淫亂)한 자식(子息)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行淫)함이니라.
오늘부터 구약의 마지막 책들 “소선지서(minor prophets)”를 읽게 될 것입니다.
‘소선지서’는 12권의 책들이며, 그 내용이 “대선지서(major prophets)”보다 분량이 작기 때문에 소선지서라고 합니다.
결코 선지자의 활동과 그 인품이 크고 작기 때문에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세아(Hosea)”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Jehovah is salvation)”라고 하며 별명은 “사랑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호세아서”를 읽어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껴야 하겠습니다.
“아모스(Amos)”는 “정의의 선지자” 라고 합니다.
‘아모스’와 ‘호세아’의 활동을 비교하면 “아모스”는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강조합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느끼신 것을 강조합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북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호세아 1장은 여호와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전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명령을 하신다면 나는 호세아처럼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음란하다”는 단어는 복수형으로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타락한 삶을 말합니다.
방탕한 삶을 즐기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셨을 때 그 여자 “고멜(Gomer)”을
아내로 맞이하여 첫 아들 “이스르엘(Jezreel)”과 딸 “로루하마(Lpruhamah)” 그리고 둘째 아들
“로암미(Loammi)”를 낳는 선지자의 모습에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은혜가 내 삶에서 분명하게 새겨져야 하겠습니다.
“호세아”는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고멜”은 계속적으로 죄악 된 삶을 즐기는 우리들을 말합니다.
“고멜”이 낳은 “이스르엘”과 “로루하마”와 “로암미”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선지자 호세아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었는지 증거하는 말씀에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닫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rco1vI3Gr4c
예수 내 구주!예수 내 생명!
비로소 호세아로
'비로소'(데힐라트)는 여호와의 말씀의 시작, 곧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는 계시가 호세아를 통해 처음으로 내려졌음을 의미한다.
'호세아로'는 '호세아를 통하여'(through,
NIV, RSV), 또는 '호세아에 의하여'(by, KJV)란 뜻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호세아와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취하다'의 히브리어 '라카흐'는 축첩을 뜻하지
않고 결혼하라는 의미이다(창 4:19; 6:2; 19:14; 출 34:16).
'음란한'의 히브리어 '제누님'은 음탕한 기질이
있는 여자, 또는 매춘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같은 명령이 하나님의 도덕적 특성과 신적 거룩함에 맞지 않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 가설적인 결혼이라는 견해 :
호세아의 결혼이 하나님과 타락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비유 또는 환상이라는 주장이다(Augustine, Jerome, Kimchi, E.J.Young).
2. 영적인
불신앙으로 보는 견해 :
여인의 음란을 이스라엘의 타락을 표현하기 위한 영적 음란으로 이해하려는 주장이다(Umbreit).
하나님의
명령이 선지자의 내적이고 영적 본능 속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Keil).
3.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견해 :
선지자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경험한 결혼이라는 주장이다(Kurtz, Lange, Harper, Chrisholm,
Given, Butler).
즉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실재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가 가장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두 가지로 나뉜다.
(1) 여인이 호세아와 결혼하기 전에는 순결하였으나, 결혼 후에 음란하게 되었다는
주장
(2) 원래부터 음탕한 창녀였다는 주장 등이다.
그러나 (1)의 견해는 신적 거룩함을 옹호하기 위한 변증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뒷받침이 불충분하며, 특히 3:1-3과 연관해 볼 때 수용하기 어렵다.
(2)의 견해는 하나님의 명령이 결코 그의 신적
속성을 더럽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명령을 어기는 것이 죄가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은 실제적인
음란죄를 범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죄악된 관습을 치료하여 선지자 자신의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결합이라는 것이다(Lange).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고상한 명령이자 선지자의 의무이지, 결코 도덕적 특성과 관련된 죄에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M.Henry).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일 때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을 명령한 하나님의 속성이 결코 불의 하다거나,
또는 그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호세아 선지자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원문에는 '낳으라'는 말이 없고 '취하라'(라카흐)는 동사가 나온다.
그래서 혹자는 고멜이 결혼시에 이미 자녀들을 데리고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음란한 자식들은 4-9절의 세 자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음란한 자식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름지어진다(4, 6, 9절).
이 나라가...행음함이니라
'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레츠'는
이스라엘 땅의 백성을 가리키며(4:1), '떠나다'의 히브리어 '메아하레'는 여호와의 신실함에서 끊어진 관계를 나타낸다.
이처럼 그 백성이 여호와를 떠난 것은 '크게 행음하였기'(자노케즈네)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이 나라'는 크게 행음하고 있는 음란한 아내로 상징되고 있는데,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와 방탕한 생활 가운데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실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2. 호세아 선지자의 아버지(호 1:1)
성경에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름으로 "아주 평범한 인물" 이라고 하겠다.
* 호세아(Hosea)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구원자)
레위기 21:13-15
- 레위기 21장은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례"에 관한 말씀입니다.
13.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찌니
14. 과부나 이혼 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15.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찌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
1. 이스르엘(Jezreel) / 하나님이 뿌려주심
2. 로루하마(Loruhamah) / 자비를 받지 못한 자
3. 로암미(Loammi) / 내 백성이 아니다
* 브에리(Beeri) / 샘에 속해 있는
* 디블라임(Diblaim) / 두가지 무화과 과자. 무화과 떡.
- 호세아의 장인(호 1:3)
성경에서 "음행(淫行), 행음(行淫)"이란?
1. 고린도전서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찐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3. 호세아 9: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
4. 호세아 2:2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5. 호세아 4: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 유다 자손인데 이것은 지명으로 해석하는 자도 있다(대상 4:3)
2. 호세아가 자기 장자에게 지어준 상징적 이름(호 1:4)
3.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상징적인 이름(호 2:22)
* 로루하마(Loruhamah) / 자비를 받지 못한 자
1. 호세아가 부정한 아내의 몸에서 태어난 딸에게 지어준 상징적인 이름(호 1:6. 8)
1. 고멜이 낳은 호세아의 둘째 아들에게 상징적으로 준 이름(호 1:9, 2:23).
빌립보서 1장 9-10절
“너희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날까지 정결하고 흠이 없기를 나는 기도하노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개역개정)
1. 9절의 한글 번역은 주어(‘너희 사랑을’)를 목적어로 번역하면서, 그 목적어를 취하는 주동사(‘풍성하게 하사’)의 주어가 하나님인 것처럼 보이게 만듦으로써,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헬라어 문장에서 주어는 ‘너희 사랑’이고, 동사는 ‘풍성하다’(περισσευω; abound, 자동사)이다.
아이스데시스(αισθησιs; perception, insight)는 '총명'보다는 '통찰력'이 더 적절한 번역이다(NIV, NRSV).
말론 카이 말론(μαλλον και μαλλον; more and more; NIV, NRSV, ESV)는 시간적 의미의 ‘점점 더’가 아니라, 양적 의미의 ‘더욱 더’가 더 적절한 번역이다.
2. 10절의 한글번역은 다시 주어가 바뀌어 마치 ‘너희가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도록’ 바울이 기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그 날까지 ‘정결하고(ειλικρινηs; pure, sincere) 흠이 없기를(αποσκοποs; blameless)’ 사도 바울은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 한글번역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주어가 됨으로써 성도의 사랑을 포함하여 성도의 모든 행위와 행실이 수동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데, 반면에 원문에 따르면, 성도의 사랑을 포함하여 성도의 모든 행위와 행실이 능동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기도는 2장 12절 말씀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없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 결정되지만, 그 완성은 주님의 재림 때 성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까지 우리는 날마다 계속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신학에서 우리는 이러한 양면성을 직설법(indicative)과 명령법(imperative)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지만(indicative),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의 구원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명령법; imperative).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우리의 신앙이 수동적이 되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기도하라는 주님의 기도가 간과될 수 있는 여지가 남는다.
▶ 오늘도 구원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에서,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날까지 정결하고 흠이 없게 해 달라”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이 아침 여러분께 드립니다.
# | 왕조 | 임금 | 통치 기간 | 성경 구약 참고 | |
---|---|---|---|---|---|
1 | 여로보암 왕조 | 여로보암 1세 | 22년 | 기원전 931년경-909년경 | 열왕기상 12:20 |
2 | 나답 | 2년 | 기원전 909년경-908년경 | 열왕기상 15:25 | |
3 | 바아사 왕조 | 바아사 | 24년 | 기원전 908년경-885년경 | 열왕기상 15:33 |
4 | 엘라 | 2년 | 기원전 885년경-884년경 | 열왕기상 16:8 | |
5 | 지므리 왕조 | 지므리 | 7일 | 기원전 884년경-884년경 | 열왕기상 16:15 |
6 | 오므리 왕조 | 오므리 | 12년 | 기원전 884년경-873년경 | 열왕기상 16:21 |
7 | 아합 | 22년 | 기원전 873년경-852년경 | 열왕기상 16:29 | |
8 | 아하지야 | 2년 | 기원전 852년경-851년경 | 열왕기상 22:51 | |
9 | 요람 | 12년 | 기원전 851년경-842년경 | 열왕기하 1:17 | |
10 | 예후 왕조 | 예후 | 28년 | 기원전 842년경-815년경 | 열왕기하 9:6 |
11 | 여호아하즈 | 17년 | 기원전 819년경-804년경 | 열왕기하 13:1 | |
12 | 여호아스 | 16년 | 기원전 805년경-790년경 | 열왕기하 13:10 | |
13 | 여로보암 2세 | 41년 | 기원전 790년경-750년경 | 열왕기하 14:23 | |
14 | 즈가리야 | 6달 | 기원전 750년경-749년경 | 열왕기하 15:8 | |
15 | 살룸 왕조 | 살룸 | 1달 | 기원전 749년경-749년경 | 열왕기하 15:13 |
16 | 므나헴 왕조 | 므나헴 | 10년 | 기원전 749년경-738년경 | 열왕기하 15:17 |
17 | 브가히야 | 2년 | 기원전 738년경-736년경 | 열왕기하 15:23 | |
18 | 베가 왕조 | 베가 | 20년 | 기원전 736년경-732년경 | 열왕기하 15:27 |
19 | 호세아 왕조 | 호세아 | 9년 | 기원전 732년경-722년경 | 열왕기하 17:1 |
왕국이 분열하게 된 이유
솔로몬
왕이 통치하던 시기의 이스라엘 왕정은 세상적으로 볼 때 가장 완벽한 체제를 갖춘 왕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드넓은
영토와 강력한 군대 조직과 능률적인 행정 조직, 그리고 농업과 목축업을 뛰어 넘은 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 등… 역대 어느 왕조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강성대국(제국)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는 인간이 통치하는 왕정국가가 가지는 한계와 그늘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솔로몬 왕조 40년의
세월 동안 그늘 밑에 가려져 있었을 뿐, 결국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억눌렸던 문제들이 터져나오면서 왕국 분열의 뇌관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왕국의 분열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분열의 이유들이 폭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
지게 되자 일시에 터지게 된 것입니다.
다음의 목록들은 솔로몬 왕국이 분열될 수 밖에 없는 원인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지파 갈등
솔로몬 왕국은 에브라임 지파로 대변하는 북쪽 지파와 유다 지파 간의 오랜 세월 동안 뿌리 깊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 갈등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련의 정책으로 인해 결국 지파 갈등이 왕국 분열을 초래하게 하였습니다.
1대 왕 사울 왕의 경우 에브라임 지파도 아니고 유다 지파도 아닌 베냐민 지파에서 왕이 선출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 두 지파 간의 갈등 요인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 시대부터는 유다 지파에서 왕이 나왔기 때문에 에브라임 지파와의 갈등은 언제나 분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인정 받는 지도력과 정치력을 발휘해 이런 문제들이 부각되지 않도록 하였고, 다윗 왕조 시대에는 특별한 지파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솔로몬 왕조는 12개의 지방 행정 조직을 구성하면서, 지파 차별에 근간한 국가 경제 정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즉 다른 지파들은 1년에 한 번, 한 달씩 돌아가며 국가 재정의 모든 것을 담당해야 했고, 더불어 군역도 감당해야 했는데, 오직 유다 지파에게만은 어떠한 짐도 지우지 않는 특혜를 베풀었습니다.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한 다른 지파들의 불만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솔로몬 통치 후기로 갈수록 세금과 부역은 가중되었고, 북쪽 지파들이 겪는 부담은 점점 인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솔로몬 왕의 강력한 전제 정치하에서 말 못할 고민으로 가지고 있어야 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하게 되었을 때, 르호보암이 북쪽 지파의 인준을 받으려 에브라임 지파의 근거지인 세겜으로 찾아가서 북쪽 지파의 장로들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들이 르호보암에게 요구한 것은 한 마디로 그 부담을 줄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상12: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왕상12: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왕상12: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상12: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들의 주장을 수락해 주라는 장로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합니다.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관리들의 자문을 받아들여, 오히려 솔로몬 때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강경책을 결정합니다.
[왕상12: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왕상12: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이러한 결정을 들은 북쪽 지파들은 당연히 반발하였고, 그 동안 잠재되어온 불만이 한 순간에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북쪽 지파들은 르호보암 왕이 보낸 역꾼 감독인 아도람을 돌로 쳐죽이는 민중반란으로 일으키며 그들은 더 이상 다윗 왕조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마침 이집트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여로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왕상12: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왕상12: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왕상12:18]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왕상12: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왕상12: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이에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에서 뽑은 18만 군대로 북쪽 지파의 반란을 진압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 스마야를 보내어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긴 일임을 전하게 하셨고, 이로 말미암아 전쟁은 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왕국의 분열은 기정 사실화 되어 이 때부터 제2차 분열 왕국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왕상12: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왕상12: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왕상12: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상12: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2. 우상 숭배와 하나님의 징계
지파 간의 갈등이 왕국 분열의 표면적인 이유라고 한다면, 보다 깊은 분열의 원인은 영적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곧 솔로몬 왕국의 우상 숭배가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11장에 보면 솔로몬 왕은 무려 1,000명의 아내를 거느립니다. 소위 결혼 동맹을 위한 정략 결혼의 결과입니다. 당연히 솔로몬의 아내들 중에는 수 많은 이방 여인들이 있었고, 문제는 이들이 솔로몬과 결혼하여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이 섬기던 이방신들도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솔로몬이 나이가 많아져서 분별력을 잃어갈 때는 그 여인들은 솔로몬으로 하여금 우상 숭배에 깊이 빠지게 한 것입니다.
[왕상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왕상11: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상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왕상11: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왕상11: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왕상11: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왕상11: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왕상11: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그래서 하나님은 2번씩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솔로몬은 우상 숭배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고, 이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왕국을 둘로 나누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북쪽 지파 모두를 솔로몬의 신하인 여로보암에게 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왕상11: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왕상11: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왕상11: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왕상11: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왕상11: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3.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도덕 타락과 급격한 세속화, 그리고 이에 대한 민심의 이반
하나님께서는 이미 신명기 17:16~17을 통해서 왕이 해서는 안 될 금기 사항들을 보여 주었는데, 솔로몬 왕은 정작 이 모든 금기 조항들만을 골라서 행하는 부덕을 행합니다.
[신17: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신17: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17: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지난 시간에 솔로몬 왕국의 번영을 소개하면서 솔로몬에게는 1,200승의 병거와 12,000명의 마병, 그리고 4,000필의 말을 관리하는 마구간이 있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다윗 왕 때에는 없었던 군사력 증강의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사전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또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1,000명의 아내를 거느림으로 결과적으로는 그들에 의해 우상 숭배의 미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은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라고 했지만, 당시에 솔로몬 왕과 필적할 왕이 없었을 정도로 솔로몬의 부는 거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같은 일을 경계한 것은 결국 이 일이 영적 타락은 물론이거니와, 도덕적 타락을 가져와 왕국이 급속하게 세속화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인간 통치의 시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모든 백성들은 보고 있었습니다. 특히 북쪽 지파에 속한 백성들은 솔로몬의 전제 정치의 권력 앞에 할 말을 하지 못하였지만, 솔로몬이 사후 그들의 불만들은 왕국을 분열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4. 중앙권력의 증대로 인한 견제세력의 약화, 그리고 국가 권력의 균형 상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솔로몬 왕조가 들어서면서 왕권은 더욱 더 강화되었고, 중앙정부로의 권력이 집권화되면서 지파의 독립성이 약화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성전은 점차로 왕실 예배당이 되어갔고, 대제사장은 왕이 임명한 사람으로서 내각의 종교부 장관 수준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었습니다. 사무엘 시대와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종교는 어느덧 정치 권력의 부속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상황은 솔로몬 왕이 여호와 신앙을 잃어버리게 될 때 그의 잘못된 독주를 막아줄 제동 장치의 부재 상황을 만들었고, 결국 계속해서 누적 되어진 부패와 불신앙은 결국 솔로몬 왕국의 운명을 북쪽 지파에게도 버림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도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결과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솔로몬 통치 후기의 반란
솔로몬 왕국의 분열은 이미 솔로몬 생전에 시작되었고, 그것이 전조가 되어 솔로몬 사후 급격히 왕국이 분열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의 통치 후기에 이르자 3명의 대적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대적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왕국의 분열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발생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인 것입니다.
[왕상11:14]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왕상11:23]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왕상12: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왕상12: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왕상12: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왕상12: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상12: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사사기 역사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를 하면, 하나님이 대적을 보내어 그들을 징계하셨듯이, 솔로몬 왕국도 분열에 앞서 대적을 보냄으로써 그들을 돌이키는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겸손한 반응이 아닌 강팍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 결과 솔로몬 왕국은 통치 말기부터 이미 왕국의 변경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하자 한번 더 마지막 기회를 주었것만, 그 역시 더 강팍하게 반응함으로써 왕국은 급속히 분열의 절차를 경험하게 됩니다.
1. 여로보암
솔로몬의 첫 번째 대적자는 훗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될 여로보암입니다. 여로보암은 일찍이 솔로몬의 눈에 띄어 요셉 지파의 노역 감독관으로 일하게 된 솔로몬 왕국의 인재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실로 출신의 선지자인 아히야가 나타나 여로보암이 가던 길을 막으며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 중 열 조각을 취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솔로몬이 죽은 후 여로보암이 통치하게 될 열 지파를 상징한 것입니다.
[왕상11:26]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왕상11:27] 그가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는 까닭은 이러하니라.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였는데
[왕상11:28]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왕상11:29]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왕상11:30]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왕상11: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왕상11:32]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왕상11:33]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
그렇지만 이 일이 발각되면서 여로보암은 이집트에서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 것 같이 솔로몬도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길을 따르기 보다는 사울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결국 여로보암은 다윗이 그런 것처럼 이집트에서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오자 북쪽 지파의 왕이 됩니다.
이와 같이 역사는 반복과 반전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여정이 여로보암과 솔로몬과 무척 닮아 보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성공자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실패자 사울의 전철을 밟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반역은 이미 솔로몬 자신에게 하나님이 경고하신 바가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왕상11: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왕상11: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왕상11: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왕상11: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왕상11: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그리고 이 일은 마치 그 옛날 사울 왕이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로 받은 경고와 예언의 성취와 동일한 일이 다윗의 후손에게도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삼상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이 때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집트 제22왕조를 창건한 쇼셍크 1세(B.C. 946~913년)로서 성경에서는 그를 '시삭'으로 소개합니다. 후일 그는 르호보암 시대에 또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합니다.
[왕상11:40]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으니라
[왕상14:25]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왕상14:26]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시삭의 침공에 대한 더 자세한 기록이 역대하 12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시삭의 침공으로 이집트 군대는 이스라엘 전역을 황페하게 하였고, 네게브 지역을 석권하였으며 이 지역에 있는 솔로몬의 요새들을 접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삭의 침공 역시 솔로몬의 대적이 발현한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르호보암이 율법을 버리고, 온 이스라엘이 왕을 본받아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삭을 강성케하여 이스라엘을 치는 막대기로 사용한 것입니다.
[대하12:1]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대하12:2]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대하12:3] 그에게 병거가 천이백 대요 마병이 육만 명이며 애굽에서 그와 함께 온 백성 곧 리비아와 숙과 구스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더라
[대하12:4]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빼앗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대하12:5] 그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의 일로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한지라
[대하12:6]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대하12:7] 여호와께서 그들이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들이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대하12:8] 그러나 그들이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
[대하12:9]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빼앗은지라
이와 같이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이 발생합니다. 한 민족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도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역사 안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2. 에돔의 하닷
두 번째 대적자는 에돔의 하닷입니다. 하닷은 다윗 왕 시대에 요압이 에돔을 정복하고 큰 살육을 자행했을 때에 에돔 왕가 중에 유일하게 생존한 왕손이었습니다. 하닷 역시 여로보암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로 망명하여 때를 기다렸고, 다윗이 죽고 요압도 죽게 되자 에돔으로 다시 돌아와 당시 솔로몬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에돔 지역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왕상11:14]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열왕기상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집트의 파라오의 신임을 받아 파라오의 왕비의 동생, 곧 파라오의 처제와 결혼하여 파라오의 동서가 되었습니다.
[왕상11:19] 하닷이 바로의 눈 앞에 크게 은총을 얻었으므로 바로가 자기의 처제 곧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를 그의 아내로 삼으매
[왕상11:20] 다브네스의 아우가 그로 말미암아 아들 그누밧을 낳았더니 다브네스가 그 아이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그누밧이 바로의 궁에서 바로의 아들 가운데 있었더라
따라서 그가 가진 권세와 영화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닷은 다윗과 요압이 죽자 파라오에게 에돔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강권합니다.
[왕상11:21] 하닷이 애굽에 있어서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것과 군대 지휘관 요압이 죽은 것을 듣고 바로에게 아뢰되 나를 보내어 내 고국으로 가게 하옵소서
[왕상11:22] 바로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있어 무슨 부족함이 있기에 네 고국으로 가기를 구하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러나 아무쪼록 나를 보내옵소서 하였더라
그 이유가 열왕기 기록에 소개됩니다.
[왕상11:15] 전에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 군대 지휘관 요압이 가서 죽임을 당한 자들을 장사하고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왕상11:16] 요압은 에돔의 남자를 다 없애기까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여섯 달 동안 그 곳에 머물렀더라
[왕상11:17] 그 때에 하닷은 작은 아이라 그의 아버지 신하 중 에돔 사람 몇몇과 함께 도망하여 애굽으로 가려 하여
[왕상11:18] 미디안을 떠나 바란에 이르고 거기서 사람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매 바로가 그에게 집과 먹을 양식을 주며 또 토지를 주었더라
이와 같이 하닷은 오래 전 요압이 에돔 백성에게 행했던 잔악한 행위를 기억하며, 그들 민족이 당했던 수치와 아픔을 되 갚을 것을 다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오자 그는 이집트의 영화를 뒤로하고 에돔으로 돌아와 솔로몬 왕국의 대적자가 됩니다.
그래서 이 하닷으로 인해 솔로몬 제국의 남쪽이 타격을 받게 됩니다. 당장 에돔에 속한 무역항 에시온 게벨로부터 이어지는 왕의 대로의 통제권이 불안하게 되었고, 이전과는 달리 활발한 무역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생존한 날까지는 에돔의 완전한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고 여전히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존재합니다.
2. 다메섹의 르손
세 번째 대적자는 다메섹의 르손입니다. 하닷으로 인해 남쪽 지역의 지배력이 약화되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르손으로 인해 솔로몬 제국의 북쪽 지역의 지배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르손은 이전에 다윗이 물리친 소바 왕 하닷에셀을 섬기는 신하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닷에셀이 다윗 왕과의 전투에서 패전하고 세력이 약해지자 그 틈을 이용해 다메섹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왕상11:23]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왕상11:24]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자기에게 모으고 그 무리의 괴수가 되어 다메섹으로 가서 살다가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왕상11:25]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이전에 다메섹은 그다지 강력한 세력의 중심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르손의 등장과 함께 다메섹은 이후 아람 도시국가 연합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솔로몬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었고, 이후 분열왕국 시대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이스라엘이 다메섹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왕상15:18]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왕상15: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왕상15: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1. 솔로몬 왕국의 번영과 실패
솔로몬 왕국의 분열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가져다 줍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솔로몬 왕국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번영을 누린 국가였습니다. 당연히 왕국의 백성들은 왕국의 번영에 대한 기대감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죽자마자 왕국은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솔로몬 왕국은 솔로몬 왕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1차적으로는 아버지 다윗 왕의 신실한 믿음과 정복 전쟁에 의한 열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 왕과의 약속을 통해 다윗 왕국의 후계자인 솔로몬 왕국을 번영시켜 주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 같은 번영 위에 지혜로운 관리자로서 적어도 통치의 절반까지는 하나님 뜻 앞에 순종하는 왕으로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기만 해도 왕국의 번영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번영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에 취했고, 세상에 속한 화려함을 쫓았으며, 그같은 번영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서 있지 못하고 우상숭배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결국 하나님도 잃고, 왕국도 잃는 실패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의 인생 말기에 쓰여진 전도서는 그의 이러한 실패의 고백을 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나 하나님은 솔로몬 왕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 다윗 왕의 신실함과 그와의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왕국은 분열되어도 다윗의 후손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남유다 왕국은 북이스라엘 왕국과는 달리, 비록 고비가 있을지언정 여호와 신앙만큼은 근근이 이어나갈 수 있었고, 왕국의 왕권 또한 다윗의 직통 후손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삼하7: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삼하7: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삼하7: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삼하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왕상15: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왕하8:19]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 하셨음이더라.
2. 분열되는 왕국(B.C. 930~586년, 344년 간의 기록)
분열왕국 시대의 이야기는 성경의 열왕기상 12~22장, 열왕기하 1~25장, 그리고 역대하 10~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분열왕국 시대의 역사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주된 요인은 동 시대에 두 개의 왕국이 존재하고, 그리고 당시에 활동한 선지자의 활동 영역이 남북 왕조에 겹쳐있으며, 두 왕국을 둘러싼 열방들의 환경도 공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분열왕국 시대의 역사는 여러 요인에 의해 얽히고 설켜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열왕국 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분열왕국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그러한 요인들에 대한 일종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중요한 축으로 분열왕국 시대를 구분해야 합니다.
첫째는 각각의 왕조의 역사이고, 둘째는 그 당시 하나님이 보내어 활동하게 한 선지자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통정리 위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이 두 왕국을 둘러싼 고대 근동의 주변 강대국들의 힘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요인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분열왕국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상황
① 북왕국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왕국으로부터 시작했지만, 혈통적 뿌리는 달랐습니다. 지난 강의솔로몬 왕국의 분열 원인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12개의 지파 공동체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왕국은 오랜 기간 동안 내재된 지파 갈등이 존재했었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 시대에는 한 동안 잠잠했었지만, 솔로몬 왕이 집권한 이후에는 유다 지파만을 우대하는 일종의 차별 정책으로 인해 또다시 지파 갈등의 불이 다시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르호보암 시대에 이르러서 그것이 폭발하여 결국 왕국이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갈등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다지파와 에브라임지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북쪽의 지파들이 연합하였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은 베냐민 지파는 역사적으로는 북쪽 지파이고, 혈통적으로도 라헬의 자식이라는 공통점에서 보면 요셉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와 가까운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를 따르지 않고 유다 지파를 따라 남쪽 지파에 속하였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베냐민 지파의 의중보다는 유다 지파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베냐민 지파의 땅은 유다 지파와 북쪽 지파의 경계에 위치하여 일종의 완충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북쪽 지파와 유다 지파의 갈등이 있더라도 그 중간에 베냐민 지파가 있었기에 유다로서는 북쪽 지파와의 극적인 충돌은 피할 수가 있었고, 예루살렘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 지파는 어떻게 하든 베냐민 지파에 대한 영향력 만큼은 결코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 안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생각해서 유다 지파에게 한 지파를 남겨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에서 ‘한 지파’는 직접적으로는 ‘유다 지파’를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베냐민 지파’도 포함됩니다.
[왕상11: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왕상11: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왕상11: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② 북 이스라엘 왕국은 남 유다 왕국에 비해 지리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북으로는 남쪽의 벧엘에서부터 북쪽의 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동서로는 요단 동편의 길르앗과 모압을 포함한 트랜스요르단 지역까지 남 유다 왕국보다는 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국들과의 통상에 유리한 두 개의 국제도로인 해변 길과 왕의 대로가 영토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립된 구조가 아닌 다양한 민족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개방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솔로몬 시대의 번영을 가져다 준 경제 파트너인 부유한 페니키아 왕국과의 무역을 통해 북 왕국은 남 왕국보다는 더 부유하고, 더 강대한 국력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③ 그렇지만 이러한 이점들은 다른 측면에서 해악을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페니키아 왕국과의 결혼 동맹을 통해 이방의 물질 문명과 사회적 풍습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하였는데, 페니키아의 바알 종교가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받아 들이고, 여호와 신앙을 잃어버리게 하는 악영향을 끼치게 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번영 시대를 연 오므리 왕조의 첫째 왕 오므리는 페니키아와의 동맹을 위해 아들 아합을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시키는 결혼 동맹을 맺게 합니다.
그런데 오므리 왕이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세벨의 아버지 시돈 왕 엣바알(바알과 함께하는 자)은 평범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마저도 ‘바알과 함께하는 자’라는 뜻의 ‘엘바알’로 개명하면서까지 바알을 열렬히 숭배하는 바알 숭배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나라의 왕 임과 동시에 바알신을 섬기는 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세벨은 북 이스라엘에 시집을 오게 된 것은 바알 종교를 전파하러 온 선교사로서 파송 받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딸이 북 이스라엘 왕국의 왕비가 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여호와 신앙보다는 세속적인 왕가였던 오므리 왕조는 급격하게 바알 종교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결국은 이세벨이 왕비가 되자 북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 종교가 여호와 신앙을 대체하여 국교가 되었습니다.
[왕상16: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왕상16: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왕상16: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왕상16: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여호와의 단은 허물어 졌고, 제사장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 자리를 바알과 아세라 신전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남 유다에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출생한 딸인 아달랴 역시 남북 왕조의 결혼 동맹으로 인해 유다 왕국으로 시집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 왕국 또한 이로 인해 바알 종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왕하8:16]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오년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왕하8:17] 여호람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왕하8:18]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가서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아달랴)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왕하8:25]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왕하8: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왕하8:27]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그래서 이 불행한 시기에 두 나라의 왕실에는 이교 숭배와 음모, 그리고 살인이라는 먹구름이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가운데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북이스라엘의 패역을 고발하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적으로는 가장 암흑기 시기였던 이 때에 가장 탁월한 활동을 한 두 선지자가 출현합니다. 바로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특히 엘리야는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북 이스라엘 아합 왕가의 영적 타락을 경고하였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 인물들을 세우십니다.
[왕상19: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왕상19: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왕상19:17]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④ 북 왕국 이스라엘에는 왕국이 존속한 218년(B.C. 930~722년)동안 총 19명의 왕들이 존재했습니다. 이 보다 더 긴 344년(B.C. 930~586년)동안 존속한 남 왕국 유다는 총 20명의 왕들이 단지 다윗 가문 한 곳에서만 배출 되었던 것에 비해,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9개의 다른 가문에서 나왔고, 이중 단지 2개의 가문만이 두 세대를 넘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평균 재위 년도도 11년에 불과합니다. 이 중에 7명의 왕들이 암살당했고[ 나답(B.C. 909~908년), 엘라(B.C. 886~885년), 아합(B.C. 874~853년), 요람(B.C. 852~841년), 스가랴(B.C. 753년), 살룸(B.C. 752년), 브가히야(B.C. 742~740년), 베가(B.C.740~732년)], 시므리 왕은 겨우 7일만에 왕권을 다시 빼앗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 만큼 북 이스라엘의 정치는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치적 불안과 지리적 취약성은 후일 앗시리아(앗수르) 제국이 침략하였을 때(B.C. 722년) 너무 쉽게 나라가 무너지는 멸망의 주된 요인이 되었습니다.
남 왕국 유다
한편 남 왕국 유다는 북 이스라엘과는 달리 그래도 비교적 정치적 안정 위에 오랜 기간 동안 왕국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몇 가지 이유가 그것을 가능케 했습니다.
① 다윗의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기에 그 약속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남 왕국 유다는 북 이스라엘과는 달리 344년 동안 오직 다윗의 후손들만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7년 동안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일시적인 통치기간이 있습니다)
또한 북 이스라엘 왕국에는 단 한 명의 신실한 왕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남 왕국 유다에는 여러 명의 신실한 왕들을 배출했습니다. 성경은 그런 왕들을 가리켜 ‘다윗의 길을 따르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와 반대 개념이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왕국의 왕들 중에는 히스기야, 요시야와 같은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왕도 있었고, 비록 온전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여로보암의 길보다는 다윗의 길을 쫓아가려고 노력했던 아사, 웃시야, 요담과 같은 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 가문의 왕조를 이어갈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② 유다 왕국의 지리적 이유입니다. 유다의 지형은 이스라엘에 비해 주변 강대국과 훨씬 더 격리되어 있습니다. 남북으로는 대체적으로 베냐민 땅에서부터 가데스바네아까지 국경을 유지하였습니다. 동서로는 블레셋과 사해로 인해 국경이 형성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는 달리 국제도로인 해안 길과 왕의 대로와도 단절되어 있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은 중보 산악지대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인 장애물이 많은 유다로서는, 이러한 지리적 상황이 단점이 되어 경제적으로는 북 이스라엘에 달리 무역을 통한 상업적 관계를 제한시켰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영적인 면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습니다. 비록 경제적 이득은 얻지 못했을지라도, 이방 나라로부터의 우상 숭배가 들어오는 것도 제한되게 되었고, 물질 문명과 세속문명의 폐해도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에 성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남 유다는 종교적으로 안정되어 이것이 결국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남 유다 왕국은 북 이스라엘 왕국보다 136년 동안 더 오래 동안 왕국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분열왕국 시대의 분류
분열왕국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북왕조의 열왕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그리하듯이 왕국의 역사는 왕들의 역사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의 치적이 역사 기록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대의 역사 흐름의 주도권은 일반 백성이 아닌 왕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들이 하나님 앞에 신실하면 백성들로 그리하였고, 왕들이 하나님을 배역하면 일반 백성들 또한 그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왕들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통해 왕국의 흥망성쇠를 결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 또한 열왕기 시대의 왕들의 행적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들의 역사가 왕국의 역사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다행이 이 부분을 잘 정리해준 자료(류모세 선교사의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제2편 분열왕국 시대)가 있어서 그것을 참고하여 이 시기를 5개의 시대로 분류함으로써 복잡한 열왕기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1) 남북경쟁시대(B.C.930~874)
이 시대의 상황을 한 마디로 설명해 주는 성경의 표현이 있습니다.
[왕상14:30] 르호보암(유다)과 여로보암(이스라엘)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왕상15:6] 르호보암(유다)과 여로보암(이스라엘)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왕상15:7] 아비얌(유다)과 여로보암(이스라엘)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왕상15:16] 아사(유다)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이스라엘)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왕상15:32] 아사(유다)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스라엘)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그래서 이 시기의 두 왕국은 팔레스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크고 작은 국지전들이 발생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다의 아비야 왕과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유다의 아사 왕과 이스라엘의 바아사 간에 전쟁입니다. 그래서 이로 인해 베냐민 땅을 중심으로 남북 왕조의 국경선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대하13:19]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의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들과 여사나와 그 동네들과 에브론과 그 동네들이라
(2) 남북화해시대
분열 왕국의 시작과 함께 남북 간에 벌어진 전쟁 가운데 유다의 아사 왕에 의해 외세인 아람의 다메섹이 개입되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충수가 되어 이로 인해 오랫동안 이스라엘은 외세에 의한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분열 왕국의 대립이 깊어지고 길어질수록 체력이 바닥나듯이 두 왕국 모두 국력이 소진되면서 통일왕국 시대에 비교하여 현저히 국력이 약화되었고, 반대로 이스라엘이 약해진 만큼 아람 다메섹과 같은 주변국들의 힘은 강성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남북 왕조는 비로서 소모적인 전쟁을 중지하고 이제는 힘을 합쳐 공동의 적인 아람을 대항하기 위한 동맹을 체결합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인 아달랴와 남 유다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이 결혼하는 결혼 동맹이 맺어지게 됩니다. 이로써 여호사밧은 아람과의 전쟁에 아합을 도와 참전하였고, 모압과의 전쟁에서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과 함께 참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북경쟁시대와는 달리 이 때의 상황을 설명하는 표현은 ‘화평입니다.
[왕상22:44]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왕상22: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왕상22: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왕상22: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왕상22: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왕하3: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왕하3: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왕하3:7]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3) 남북단절시대(B.C.841~731)
남북 간에 형성되었던 화해 무드는 남북 왕조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일어난 쿠테타로 인해 이전의 경쟁 수준을 넘어서 피차 상종도 하지 않는 남북단절 시대를 겪게 됩니다.
사건의 발단은 북이스라엘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에서는 아합 왕조에 대한 피의 숙청을 감행한 예후의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남유다에서도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다윗 가계의 왕자들을 죽이고 남유다 최초의 쿠테타가 일어납니다. 이런 상황 예후와 아달랴는 결코 상종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가 됩니다. 아달랴 입장에서는 예후가 자신의 가족 모두를 몰살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4) 아시리아 정복시대(B.C.731~722)
남북간의 경쟁, 화해, 단절 시대를 거치는 동안 주변국들은 국력이 약해진 이스라엘의 공백을 메우며 점차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가 아람 왕국이었고, 그 뒤를 이어 앗시리아 제국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앗시리아는 이전의 소국들과는 달리 제국주의 노선을 천명하며 질풍노도와 같이 수 많은 왕국들을 몰락시킵니다. 이 시대가 앗시리아 정복시대입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B.C.722년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5) 유다 왕국시대(B.C. 97~583)
북이스라엘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홀로 남은 유다는 초강대국인 앗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앗시리아는 제국의 절정기를 지나 급속히 쇠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바통을 바벨론이 잇게 됩니다. 또한 이 시대에 이집트도 오랜 침체기를 거두고 고대 근동 지역의 세력 판도에 합류하게 됩니다. 당연히 팔레스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정복 전쟁의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결국 남 유다는 앗시리아가 쇠퇴하는 틈을 이용해 다시 독립을 이루는 듯하다가 이집트에 예속된 후 최종적으로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B.C.586) 하게 됩니다.
남유다,북이스라엘 선지자 활동
포로귀환 |
학개, 스가랴, 말라기 학개(B.C.520-519), 스가랴(B.C.520-475), 말라기(B.C. 430/다리오2세때) |
니느웨 예언 |
요나(B.C.760/북 여로보암2세때), 나훔(B.C.663~612/남 요시야때) |
바벨론 포로 |
1차포로 다니엘(B.C.605년의 1차포로/남 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느부갓네살, 고레스때), 2차포로 에스겔(B.C.597년의 2차포로/남 여호야긴, 시드기야, 느부갓네살때) |
에돔 예언 |
오바댜(B.C.848-841/남 여호사밧때) |
통일왕국시대 |
사무엘 |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을 삼음 |
삼상 16 : 12 |
분열 왕국 시대 |
유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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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 도 스 마 야 이 사 랴 하 나 니 예 후 아하시엘 엘리에셀 엘 리 야 스 가 랴 요 엘 이 사 야 미 가 나 훔 하 박 국 야 두 둔 홀 다 스 바 냐 예레미야 |
835-796 740-680 740-695 640-630 608-597 640-630 627-586 |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 르호보암에게 여로보암과 전쟁하지 않도록 권장 아사에게 하나님과의 언약 이행을 권유 아람과 외교하는 아사를 책망 아합과 동맹한 여호사밧을 책망 모압,압몬 연합군과의 전쟁의 승리를 예언 여호사벳에게 아하시야와의 교제를 책망 여호람(유다)에게 창자가 빠지는 죽음을 예언 요아스 왕과 신하들의 우상 숭배를 책망 성령의 강림을 예언 메시야의 탄생과 사역을 예언 베를레헴에서의 메시야 탄생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 요시야 왕을 도와 유월절을 지킴 유다의 멸망 예언 여호와의 날을 예언 시드기야에게 유다의 명망을 예언 |
대하 9:29 대하 11:1-4 대하 15:1-7 대하 16:7-9 대하 19:1-3 대하 20:14-17 대하 20:14-17 대하 21:11-15 대하 24:20 욜 2:28 사 49-53장 미 5: 2 나 2: 8-13 합 2: 4-17 대하 35:15 왕하 22:15-20 습 1:14-16 렘 34:2-5 |
이 스 라 엘 | ||||
분 열 왕 국 시 대 |
아히야 무 명 예 후 엘리야 미가야 엘리사 호세아 아모스 요 나 오 뎃 |
764-724 760-785 793-753 |
여로보암의 집의 멸망을 예언 요시야의 탄생을 예언 바아사의 우상 숭배와 악행을 책망 아합가의 멸망을 예언 아합의 죽음을 예언 아합가의 멸망을 예언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에 의존하는 이스라엘을 책망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회복을 예언 이스라엘의 부흥을 예언 베가에서 유다인 포로를 석방토록 권유 |
왕상 14: 6-16 왕상 13: 3 왕상 16: 7 왕상 21:20-26 왕상 22:19-28 왕하 9: 6-10 호 7: 8-16 암 9: 1-15 대하 14:25 왕하 28: 9-13 |
포로 시대 |
에 스겔 |
593-570 |
유다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 |
겔 12 : 8 - 16 |
귀환시대 |
학 개 |
520-519 |
메시야 임재의 예언 |
학 2 : 6 - 9 |
<선지자들의 출신별 분류>
출신 예언국 |
목자 |
평민 |
왕족,귀족 |
제사장,레위 |
미상(未詳) |
유다 |
|
미가 |
이사야 다니엘 |
예레미야,에스겔, ⓬하박국, ⓯스가랴, |
요엘, ⓮학개 |
이스라엘 |
아모스 |
|
|
⓰말라기 |
호세아 |
이방 |
|
|
⓭스바냐 |
|
오바댜,요나,⓫나훔 |
(ⅰ) 유다지방(大이사야. 大예레미야. 大에스겔. 大다니엘. 요엘. 스가랴. 미가. 하박국. 학개) (ⅱ) 이스라엘지방(엘리야. 엘리사, 호세아. 아모스. 말라기) (ⅲ) 앗수르지방(요나. 나훔. 스바냐) (ⅳ) 에돔지방(오바댜) |
예언서 (Nebhim) |
대선지서 (5) |
이사야 |
아모스의 아들로 아마샤 왕의 형제이며 요아스 왕의 손자. 유다왕 10대웃시야가 죽던 해(B.C.739)+11대요담(B.C.751~736)+12대아하스(B.C.742~725)+13대 히스기야(B.C.725~697)+14대므낫세(B.C.697~642)의 통치기간 중인 B.C.680년에 순교하기까지 약60년간 예언활동. |
예레미야 |
B.C.650년경 유다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 20세에 선지자 소명, 활동시기는 유다왕 요시야 왕 때(B.C.627)부터 예루살렘 멸망 때(B.C.586년 7,8월)까지, 즉 요시야(18년간)+여호아하스(3개월)+여호야긴(3개월)+여호야김(11년간)+시드기야(11년간)= 40년 6개월 동안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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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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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
사독계열의 제사장 부시의 아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2차 침입 때, 3개월간 통치하던 여호야긴(B.C.597. 3개월 통치)이 포로로 잡혀간지 5년 후인 B.C.593년에 소명을 받고, 22년 뒤인 B.C.570년까지 예언활동, 주제:여호와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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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
바벨론에 1차 포로로 잡혀간(B.C.605) 다니엘(벨드사살)은, 티그리스 강 기슭에서 마지막 환상을 본 고레스 3년(B.C.536)까지가 역사적 배경이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윌므로닥-네르갈사레셀-라바시말둑-나보니두스-고레스 때까지 활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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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12) |
호세아 |
북이스라엘 출신 브에리의 아들. 물질적 풍요하나 영적 빈곤의 시대인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B.C.793~782~753)를 배경으로 함. 사마리아가 함락(B.C.722)되고 포로로 잡혀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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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
브두엘의 아들. 유다왕 요아스의 재위기간 중인 B.C.830년경 기록. 메뚜기 재앙(팟종이. 늣, 황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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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
드고아 목자. 유다출신으로 벧엘로 이주하여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 호세아와 동시대 선지지. 평화와 번영의 시기였던 유다왕 웃시야(B.C.783~742)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2세(B.C.786~746)의 통치기간 중에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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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댜 |
에돔(에서 자손의 땅)의 멸망 예언. 오바댜의 예언과 유사한 성경은 아모스서(1,2장), 이사야서(13~23장), 예레미야서(46~51장), 에스겔서(25~32장)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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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
북이스라엘 가드헤벨 출신. 아밋대의 아들. B.C.765년과 B.C.763년에 역병 발생함. 니느웨(당시의 왕은 아슈르단 3세로 요나 당시 앗수르의 수도는 ‘갈가’였고, 니느웨는 B.C.700년경 수도로 됨)에 대한 예언. 엘리야가 살려준 사렙다 과부의 아들(왕상17:17~24). 엘리사가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해 보냈던 소년(왕하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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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
모레셋(블레셋 가드 근처)출신. 이사야와 동시대 활동. 앗시리아(빌레셋3세. 살만에셀3세. 사르곤2세. 산헤립 등)가 고대 근동지역을 정복하려는 야망에 불타있던 시기. 요담(B.C.739~735)와 아하스(B.C.735~725) 히스기야(B.C.725~697)의 통치시대에 말씀을 받음. 미가는 이사야가 예루살렘에서 설교할 때 그곳에 종종 체류하며 설교했다(렘26:16~19). B.C.700년경에 메시야의 베들레헴(고대이름:에브라다)탄생을 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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⓫나훔 |
엘고스 출신. 앗시리아의 앗술바니팔(B.C.669~626)이 치리했던 때부터 니느웨 함락(B.C.612년)까지의 일을 기록. 북왕국 이스라엘이 함락된 지 약1세기가 지난 때로서 예레미야. 하박국, 스바냐의 활동기간과 동일(렘3:6;습1:1). 주제: 니느웨 성의 멸망을 예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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⓬하박국 |
갈대아인이 강성해져, 나보폴라살 왕 때 앗수르를 함락 후 대바벨론 제국을 세움. 니느웨를 멸망시키고(B.C.612년), 1차로 이스라엘을 침입한 때(B.C.605년)에 기록함. 주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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⓭스바냐 |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예언. 상류사회(왕족과 방백들)의 죄악상을 지적. 스바냐의 조상이 4대까지 기록된 것은 히스기야 왕과 같은 인물이 조상가운데 있기 때문. 유다왕 요시야(B.C.640~609)가 종교개혁을 하기 몇 해 전(B.C.627~626년경)에 기록. 앗수르의 에살핫돈과 앗술바니팔(B.C.668~626)의 치세 때 절정에 이르지만 사후에 국력이 쇠퇴하여 신흥세력인 바벨론의 공격(B.C.626)을 받아, 결국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군에 니느웨가 함락되고 앗수르가 멸망함(B.C.612년). 스바냐는 앗수르가 메대의 공격으로 스키티아족이 서부 아시아를 침공(B.C.625)할 것과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함. 유다와 열방들에 임한 하나님 심판을 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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⓮학개 |
포로기간 중 바벨론에서 태어남. 바사왕 고레스(B.C.539~529)가 스룹바벨 인솔 하에 귀환 때(B.C.536) 예루살렘으로 옴. 스가랴보다 약2개월 먼저 사역 시작함.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짧은 사역함. 스룹바벨, 여호수아, 스가랴와 함께 성전 재건에 힘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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⓯스가랴 |
제사장가문. 학개와 동시대 활동. 바벨론의 고레스왕 치하에서 1차 귀환 때(B.C.537) 귀국함. 스가랴의 예언 선포는 1차 귀환 이후 18년이 지난 해로서, 다리오 왕 2년 8월(B.C.520)부터 다리오 왕 4년 9월(B.C.518)까지 만2년에 걸쳐 예언활동. 70년간 포로생활(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때(B.C.605년) 부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린 때(B.C.538년) 까지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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⓰말라기 |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자들이 성전 재건 후 시간이 흐르자 하나님을 향한 처음 열심을 잃고 타락함을 지적.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부자(父子)관계로 설명. |
▶북이스라엘 멸망(B.C922~B.C.722년): B.C.722년 19대 호세아 왕(B.C.732~722) 때 앗수르왕 사르곤2세(주전722~705년)에게 멸망했다.
아홉 王朝 19왕:
1대(①여로보암 왕조-②둘째 아들 나답)/ 2대(왕위 찬탈한 ③바아사 왕조-④아들 엘라)/ 3대(⑤엘라의 신복으로 병거의 절반을 통솔한 장군 시므리 왕조)/ 4대(⑥오므리 왕조-⑦아합-⑧아하시야-⑨여호람)/ 5대(⑩예후 왕조-⑪여호아하스-⑫요아스-⑬여로보암2세-⑭스가랴)/ 6대(⑮살룸 왕조)/ 7대(⑯므나헴 왕조-⑰브가히야)/ 8대(⑱베가 왕조)/ 9대(⑲호세아 왕조)
▶남유다 멸망(B.C.~B.C.): B.C.586년 20대 시드기야 왕(B.C.597~B.C.586)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B.C. 605-562년)에게 멸망했다.
①르호보암-②아비야-③아사-④여호사밧-⑤여호람,요람-⑥아하시야-⑦아달랴 여왕-⑧요아스-⑨아마샤-⑩아사랴,웃시야-⑪요담-⑫아하스-⑬히스기야-⑭므낫세-⑮아몬-⑯요시야-⑰여호아하스-⑱여호야김-⑲여호야긴-⑳시드기야
신 바벨론 제국 2대 왕인 느부갓네살 2세(B.C. 605-562년경). ‘느보(Nebo) 신(神)이 국경을 지켜주셨다’는 뜻.
그는 바벨론의 창설자이며 부왕(父王)인 나보폴라살이 당대 최강대국인 앗수르를 공격할 때 왕자로서 니느웨를 함락시키고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켰다. 3년 뒤 앗수르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노려 중근동의 패권을 차지하려던 애굽의 바로 느고(Pharaoh-Neco)가 앗수르 지역까지 진출했을 때 갈그미스(Carchemish)에서 애굽을 맞아 격퇴시킴으로써(B.C. 605년) 바벨론을 명실상부한 중근동 최고의 강대국 자리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이스라엘(북부 10지파) |
아모스(B.C.760/북 여로보암2세때), 호세아(B.C.760/북 여로보암2세때), 요나(B.C.760/북 여로보암2세때) |
유다(남부 2지파) |
요엘(B.C.597/남 여호사밧때), 오바댜(B.C.848~841/남 여호사밧때), 이사야(B.C.700~680/아하스,히스기야때), 예레미야(B.C.627~587/남 요시야, 여호아하스,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때), 다니엘(B.C.605년의 1차포로/남 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느부갓네살때), 에스겔(B.C.597년의 2차포로/남 여호야긴, 시드기야, 느부갓네살때), 미가(B.C.627-586/남 아하스,히스기야때), 하박국(B.C. /남 여호야김때), 스바냐(B.C.640~609/남 요시야,여호야김때), 나훔(B.C.663~612/남 요시야때) |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할 무렵 활동했던 선지자는 요엘, 요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무렵이나 바벨론 포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예레미야, 오바댜, 나훔, 하박국, 스바냐, 에스겔, 다니엘
바벨론의 포로였던 유다가 본토로 귀국할 때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학개, 스가랴, 말라기
♦ 호세아 1장 문단 분해
1:1, 서언.
1:2, 음행한 여인을 취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1:3-5, 호세아의 결혼 및 장남 이스르엘의 출생과 그 이름에 있어서 보여진 이스라엘 장래의 운명.
1:6, 차남 로루하마의 출생과 그 이름의 유래.
1:7, 하나님의 긍휼과 유다의 구원.
1:8-9, 삼남 로암미의 탄생과 그 이름의 유래.
1:10, 이스라엘 장래의 회복.
1:11, 이스라엘과 유다의 축복.
♦ 내용개요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 왕국은 최고의 번영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풍요 속에 백성들에게는 영적 타락이
스며들었으며 급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경고를 듣게 되었다.
본장은 이런 배경하에 호세아 선지자의 비극적인 결혼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하여 그들에게 최후의 경고를 주고 있는 내용이다.
특히 본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풍요로움의
결국 이 파멸과 심판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배도를 경고하는 상징적 메시지로서 그들의
비극을 폭로하시려고 한다. 따라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고멜과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호세아가 순종하는 부분(1-9절),
하지만
하나님께서 백성을 징계하시는 목적은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성숙한 인격을 가지게 하여 하나님 자신과 바른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소망의 부분(10-11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강해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는데 그 내용은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자녀를 낳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호세아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멜을 아내로 삼아 자녀들을 잉태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지어 주시면서 이스라엘에
대해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호세아의 가정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뜻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어 구원을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 신학 주제
미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대다수 선지자들이 외친 메시지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사역에 관한 것이었다.
본장에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심판에 관한 암시를 자녀들의 이름을 통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의 약속들도 함께 보여 주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기로 하다.
특히
본문에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이 미래에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과 하나님의 신정 정치의 회복, 남북 왕조의 통일, 나아가 메시야의 도래
등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은 그의 후손을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해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는 약속이며 위로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본장에서 이스라엘 패망이 예언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말소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잠시 지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약속이 지연되는 원인과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에게 있음을 성경은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백성들 자신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이 회복의 예언은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이며, 세상의 고난과 핍박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의 삶에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말씀이 되기도 한다.
♦ 영적교훈
역사상 인간들은 스스로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인간 사회는 오히려 멸망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행복을 달성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된 행복과 인류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약의 하나님이며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께 굴복하여야 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인간도
창조주이신 하나님제 의지할 때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장에서 호세아가 강조하고 있듯이 자신의 죄인 됨과 무능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인간의 물질이나 세상 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며 또한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2. 호세아 선지자의 아버지(호 1:1)
성경에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름으로 "아주 평범한 인물" 이라고 하겠다.
* 호세아(Hosea)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구원자)
레위기 21:13-15
- 레위기 21장은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례"에 관한 말씀입니다.
13.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찌니
14. 과부나 이혼 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15.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찌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
1. 이스르엘(Jezreel) / 하나님이 뿌려주심
2. 로루하마(Loruhamah) / 자비를 받지 못한 자
3. 로암미(Loammi) / 내 백성이 아니다
* 브에리(Beeri) / 샘에 속해 있는
* 디블라임(Diblaim) / 두가지 무화과 과자. 무화과 떡.
- 호세아의 장인(호 1:3)
성경에서 "음행(淫行), 행음(行淫)"이란?
1. 고린도전서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찐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3. 호세아 9: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
4. 호세아 2:2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5. 호세아 4: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 유다 자손인데 이것은 지명으로 해석하는 자도 있다(대상 4:3)
2. 호세아가 자기 장자에게 지어준 상징적 이름(호 1:4)
3.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상징적인 이름(호 2:22)
* 로루하마(Loruhamah) / 자비를 받지 못한 자
1. 호세아가 부정한 아내의 몸에서 태어난 딸에게 지어준 상징적인 이름(호 1:6. 8)
1. 고멜이 낳은 호세아의 둘째 아들에게 상징적으로 준 이름(호 1:9, 2:23).
호세아서 개론 및 장별 요약
1. 호세아서 개요
호세아서는 구약 소진서 중에서 가장 서두에 배치된 선지서입니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의 차이는 분량의 차이일 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량의 차이는 중요의 차이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소선지서에 들어가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호세아의 내용은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일어나는 가정의 내용을 비유로 작동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이를 설명합니다. 주 대상은 북이스라엘입니다.
2. 역사적 배경
1:1에서 유다왕 히스기야가 왕으로 있을 때 북이스라엘에 속한 호세아는 선지라도 부름을 받습니다.(이후 남유다는 유다로, 북이스라엘은 이스라엘로 표기)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입니다.(1절) 여기에 등장하는 여로보암은 솔로몬 이후 등장하는 여로보암이 아닙니다. 당시의 여로보암을 존경해 자신을 여로보암으로 이름한 여로보암 2세(Ⅱ)입니다. 호세아의 활동
시기는 시기적으로 기원전 790-710년 정도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주변으로 권력의 공백기가 일어납니다. 애굽과 시리아, 앗수르 등은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을 공격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권력의 공백기를 틈타 여로보암은 주변 소국들을 정복해 나갑니다. 기원전 8세기경 이스라엘은 광대한 영토를 회복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망각한 힘을 갖게 되고, 경제적으로 때 아닌 부강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결국 깊은 영적 퇴보와 타락을 가져왔고, 세상을 탐하는 욕망의 삶을 살아갑니다. 호세의 아내 고멜은 당시의 이스라엘의 정신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잠잠하던 앗수르가 드디어 일어나면서 힘을 갖게 됩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회개할 것을 촉구했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결국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게 됩니다.
호세아서를 읽을 때는 이런 부유함 속에 깃든 멸망의 징조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회개하도록 촉구했지만 결국 그들은 멸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가족 이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냅니다. 호세아는 구원이란 뜻을 가진 이름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뜻합니다. 부인 고멜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쾌락을 찾는 음란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장자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으셨다'는 뜻으로 멸망당할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둘째이자 장녀인 로루하마의 뜻은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후에 부정어인 '로'을 제하고 루하마'로 고쳐 '긍휼을 베푼다'는 뜻이 됩니다. 셋째인 '로암미'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본서의
글의 정경학적 연구를 통한 주해를 기본적으로 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블로그에 올려진 글에는 각주나 따른 설명이 거의 첨부되지
않았습니다. 각주나 참고도서들은 후에 출간된 책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호세아 연구에 필요한 도서는 [호세아서 연구와 관련된 도서들]이란 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3. 호세아 장별 요약
호세아 1장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 호세아가 선지라로 부름 받는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한다. 첫 번째 아들 이름을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인 이스르엘이라 한다. 둘 째는 긍휼히 여김을 얻지 못한다는 뜻의 '로루하마'라 부른다. 셋째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로암미로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이름을 듣게 될 것이다.
호세아 2장
너희는 형제에게(암미-내백성)이라하고, 자매에게 루하마(그휼히여김을 받은자)라 하라. 음란을 제하라. 그렇자면 벌거벗겨 지리라. 너희가 바알에게 쓴 곡식, 새포도주, 은, 금 모든 내가 준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빼앗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위로하리라. 내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를 긍휼히 여기고,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하리라.
호세아 3장
이스라엘은 음녀지만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 너도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여자를 사랑하라.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반으로 그를 샀다. 그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주상도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 내게 올 것이다.
호세아 4장
여호와께서 이땅 주민과 논쟁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이 땅에 피가 가득하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다. 너희가 나를 버렸으니 나도 너희를 버리고 너희 자녀들을 잊으리라. 음행과 묵은 포도주가 너희 마음을 빼앗는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한다.
호세아 5장
제사장들아 이스라엘에 깨달아라. 그들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다. 너희는 망하고 황폐할 것이다. 아무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그들이 그 죄를 뇌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을 돌아가리라.
호세아 6장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면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너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하고, 너희들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호세아 7장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 그들의 죄와 악이 드러난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얼굴에 있다. 거짓말을 하고 간음한다. 뒤집히지 않은 전병처럼 혼합되었다. 교만이 그들의 얼굴에 가득하다. 여호와께 돌아가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앗수르로 놀아간다.
호세아 8장
원수가 독수치럼 여호와의 집을 덮치리라. 그들은 내 언약을 어기고 내 율법을 범했다. 그들은 선을 버렸다. 그들은 내가 세우지 않은 왕과 지도자를 세웠다. 그들이 은과 금으로 만든 우상도 파괴되리라. 그들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했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겼다.
호세아 9장
이스라엘아 너희는 이방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타작 마당의 술틀도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다. 형벌의 날이 이르렀다. 기브아의 시대처럼 심히 부패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만난 포도처럼,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알브올에게 가서 자신의 몸을 드린다. 그들이 듣지 않음으로 그들을 버리리라.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 떠도는 자가 되리라.
호세아 10장
너희는 포도나무처럼 열매가 많은 수록 우상 제단을 많게 한다. 번성할 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한다. 그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짓을 말하고 거짓 증언을 한다. 이스라엘의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날 것이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이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세아 11장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부를수록 멀리갔고, 우상 앞에서 분향한다. 내가 사랑의 줄로 이끌었고, 그들 앞에 먹을 두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로 오기를 싫어한다. 내가 어찌 너희를 잊겠으며 놓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세아 12장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간다. 거짓과 포악을 더한다. 앗수르와 계약하고 애굽에게 아부한다. 여호와께서 그 행위대로 보응하실 것이다. 야곱은 형의 뒷굼치를 잡고 하나님과 힘을 겨루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샀다. 너희는 여호와께 돌라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켜라.
호세아 13장
이스라엘은 바알로 말미암아 망한다. 그들은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든다. 이들은 아침 구름같고, 이슬같다.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다.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만났다. 이스라엘아 너희가 나를 대적함으로 패망한다.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다. 해산 여인처럼 망하리라. 너희가 쌓아둔 모든 보화가 약탈 당하리라.
호세아 14장
이스라엘아 여호와께 돌아오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 앗수를 의존하지 말고 손으로 만든 것을 신이라 하지 말고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는 것처럼 하라.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그들을 사랑하리라. 그들은 백화화처럼 피고, 레바논 백향목처럼 뿌리가 박힌다. 가지는 퍼지고,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다.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 것이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