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타인메츠<구조> - 구조를 알면 모든 것이 보인다
2. 한스 셀리에<스트레스> - 최초로 스트레스라는 용어를 사용
3. 탈레스<서양철학의 아버지> - 만물의 근원(아르케)은 "물"
4. 태선 스님 김진규 목사 - 임마누엘
5. 토마스 아 켐페스 - 그리스도를 본 받아
6. 미즈노 겐조 -
7. 마틴 로이드 존스
찰스 프로테우스 스타인메츠(Charles Proteus Steinmetz, 1865년-1923년)
찰스 프로테우스 스타인메츠(Charles Proteus Steinmetz, 1865년-1923년)
독일 출생의 미국 전기공학자로 그의 주요한 공헌은 자화(磁化)와 히스테리지스 손실과의 관계를 밝히는 '히스테리시스 법칙'의 발견, 복소수로 교류회로를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 기호법의 창안, 과도현상의 연구의 3가지로 귀착된다.
생애
본명은 카를 아우구스트 루돌프 슈타인메츠(Karl August Rudolf Steinmetz)이다.
1865년 4월 9일 독일 프로이센 브레슬라우 출생하였다.
브레슬라우대학교와 취리히대학교에서 수학과 전기공학을 공부하였다.
독일 학생사회운동의 선구자로서 독일 사회민주당에 소속해 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탄압을 피해 188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개명(改名)한 후 1848년 독일혁명 때 독일로부터 망명했던
R.아이케마이어의 공장에 고용되었다.
이 공장은 제너럴일렉트릭 설립 이듬해에 매수되어, 그도 그 회사의 고문기사로 임명되었다.
1902년 이후에는 유니온대학교의 전기공학과 교수를 겸임, 미국
최고의 전기공학자가 되었다.
전기공학에 관한 그의 주요한 공헌은 자화(磁化)와 히스테리지스 손실(hysteresis loss)과의
관계를 밝히는 '히스테리시스 법칙'의 발견(1891), 복소수(複素數)로 교류회로를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 기호법의
창안(1893), 과도현상(過渡現象)의 연구(1909)의 3가지로 귀착된다.
10월 26일 향년 59세로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Theory and Calculation of
Alternating Current Phenomena》(1897) 《Engineering Mathematics》(1910)
《America and New Epoch》(1910) 등이 있다. 전기화(電氣化)의 사회적 의의에 관심을 가져 1922년 레닌에게
편지를 보내어, 혁명 도상의 소련에 기술적 원조를 제의하였다.
출저 : 네이버 백과사전
이 일 후에(요한계시록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After
this I looked, and there before me was 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And the voice I had first heard speaking to me like a trumpet said, Come
up here, and I will show you what must take place after this.
이 일 후에(요한계시록 4:1) /설교 원고(2019-05-05)
(도입 이야기)
‘스타인메츠(Charles
Proteus Steinmetz, 1865. 4. 9~1923. 10. 26)’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전기 기술자가 있었습니다.
원래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출생하여 브레슬라우, 취리히,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 전기 공학,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의 기술자로 취업되었고 유니온 대학 물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벼락을 연구하여 피뢰침을 개량했으며 발전기와 전동기에
관한 200개 이상의 특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공장에서 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작동되지 않을 때 여러 기술자들을
불러 발전기를 수리하도록 의뢰하였으나 도저히 수리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스타인메츠에게 발전기 수리를 의뢰하였다고 합니다.
스타인메츠가 발전기 이곳저곳을 작은 망치로 두들겨 보더니 즉시 고장 난 부분을 알려주며 그곳에 하얀 분필로 표시한 후에 그곳을
뜯어서 고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여러 날 동안 많은 기술자들이 동원되어 고장의 원인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는데도 스타인메츠는
망치로 몇 번 두드리더니 고장 난 부분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공장 앞으로 발전기 수리비로 1만 불의 청구서가
배달되었습니다.
공장장은 스타인메츠에게 작은 망치로 몇 번 두들겨 본 것이 전부인데 수리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하였더니 그 때
스타인메츠가 공장장에게 ‘분필로 고장 난 부분 표시한 수고비는 $100. 그리고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기술은
$9,900 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결국 공장장은 스타인메츠에게 1만 불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스타인메츠의 이야기는 ‘구조를 알고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구약 성경의 구조는 모세와 엘리야
신약 성경의 구조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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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셀리에 János Hugo Bruno Hans Selye(1907. 1. 26 - 1982. 10. 16)
한스 셀리에(János Hugo Bruno Hans Selye CC(/ sɛljeɪ /; 헝가리어 : Selye János;
1907. 1. 26 – 1982. 10. 16)
선구적인 헝가리-캐나다인으로 내분비계 생리학자였다.
그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유기체의 가상적 비특이적 반응에 대한 중요한 과학적 연구를 수행했다.
비록 그가 글루코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s)의 많은 측면을 모두 인식하지는 못했을 모르지만, 셀리에(Selye)는 스트레스 반응에서 이들 역할의 주요한 측면을 알고있었다.
샬롯 거슨(Charlotte Gerson)은 그를 생물학적 스트레스의 존재를 최초로 증명한 주요한 인물이라고 여긴다.[1][2]
셀리에(Selye)는 1907년 1월 2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비엔나에서 태어나 헝가리 코마 롬에서 자랐다.[3]
셀리에(Selye)의 아버지는 헝가리의 의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오스트리아인이었다.
그는 1929년 프라하에서 의학 및 화학 박사가 되었으며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캐나다 맥길 대학교,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스트레스(stress)와 내분비학 분야의 선구적인 일을 계속했다.
그는 1949년에 처음으로 노벨 생리 의학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경력에서 총 17 개의 후보에 올랐지만 결코 수상하지 못했다.[4][5]
일반적응증후군(一般適應症候群,general
adaptation syndrome)은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스트레스의 종류에 관계없이 일어나는 신체적ㆍ생리적
증상으로 3단계(경고반응단계,저항단계,탈진단계)의 과정을 일컫는다.
일반적응증후군의 부작용으로는 피로, 두통, 불면증, 우울증,
분노, 불안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 ↑ Healing the Gerson Way, Defeating Cancer and Other Chronic Diseases, New Edition. Charlotte Gerson with Beata Bishop, Gerson Health Media, 2010, p. 48.
- ↑ Kroker, Arthur (1984). 《Technology and the Canadian Mind: Innis/McLuhan/Grant》. Montreal: New World Perspectives. 73쪽. hdl:1828/7129. ISBN 978-0-920393-14-7.
- ↑ 〈Hans Selye〉 2008판.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2008년 6월 12일에 확인함.
- ↑ The Nomination Database for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1901-1953
- ↑ “Nomination Archive” (미국 영어). 《NobelPrize.org》. 2018년 12월 1일에 확인함.
예를 들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작용 방식이나 신경내분비학 분야에 기여한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정신적, 신체적 자극에 대한 심신의 반응으로, 불안, 짜증, 집중력 저하 등의 심리적 증상과 두통, 어지럼증 등의 신체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면역력 저하와 뇌 기능(기억력, 감정 조절 등)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휴식, 건강한 식단, 심호흡 등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란?
-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행동적 반응입니다.
- '팽팽하게 죄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삶의 긴장감을 뜻합니다.
- 외적 요인 : 소음, 더위 같은 물리적 환경, 규칙이나 규정, 상사나 타인의 공격적인 태도 등.
- 내적 요인 : 생로병사, 경제적 어려움, 실직, 사업 실패, 과도한 목표 설정 등 개인적인 사건.
- 심리적 증상 : 불안, 짜증, 신경과민, 우울, 건망증, 집중력 저하, 좌절감 등.
- 신체적 증상 : 두통, 어지럼증, 무기력증, 면역력 저하, 수면 장애 등.
- 운동 : 가벼운 운동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며, 밖에서 하는 운동은 더 효과적입니다.
- 휴식 : 규칙적으로 휴식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식습관 : 건강한 식단을 유지합니다.
- 마음 챙김 : 심호흡을 하거나,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방해 요소를 최소화합니다.
- 계획 : 하루 계획을 미리 세우고 일을 천천히 진행합니다.
- 취미 활동 : 미술관 방문처럼 즐거운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다양한 질병의 주요 원인 또는 악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에 따르면 많은 질병이 직간접적으로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호르몬 불균형 :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는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을 위해 아드레날린,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급성 스트레스 시에는 유용하지만, 만성적으로 과다 분비되면 면역 기능을 억제하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등 악영향을 미칩니다.
- 신경계 자극 :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특히 교감신경계)를 자극하여 심박수 및 호흡 증가, 혈압 상승, 소화 불량, 불면증 같은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유발합니다.
- 염증 반응 증가 : 만성 스트레스는 염증 지표를 높여 신체 전반에 염증을 증가시킵니다. 이는 심혈관 질환, 당뇨병, 암 등 만성 질병으로 발전할 위험을 높입니다.
- 심혈관 질환 :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장 및 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입니다.
- 면역계 질환 : 면역력 저하로 인해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지며, 알레르기나 자가면역 질환(예: 루푸스, 류마티스 관절염)의 발병 위험을 높입니다.
- 소화기 질환 : 소화성 궤양, 기능성 위장 장애,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킵니다.
- 내분비계/기타 : 당뇨병, 갑상선 질환, 긴장성 두통, 만성 요통, 피부 질환(여드름, 두드러기)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 불안 장애, 우울증, 적응 장애, 수면 장애, 섭식 장애, 공황 장애 등 다양한 정신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
모두 신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 및 신경전달물질이지만, 분비 상황과 기능이 매우 다릅니다.
엔도르핀 (Endorphin)
- 기능: 강력한 진통 효과가 있으며(모르핀보다 수십에서 수백 배 강함), 행복감과 황홀감을 느끼게 합니다. 통증을 억제하고 스트레스를 줄여 면역력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
분비 조건:
- 통증이나 심한 스트레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분비됩니다.
- 격렬한 운동: 무산소 운동 상태가 되면 엔도르핀 분비가 급증하여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같은 쾌감을 유발합니다.
- 웃음, 즐거운 생각: 긍정적인 감정 상태일 때도 분비가 촉진됩니다.
- 매운 음식 섭취: 신체가 매운맛을 고통으로 인지하여 이를 상쇄하기 위해 분비됩니다.
- 기능 : 교감 신경계를 활성화하여 신체가 갑작스러운 자극이나 위협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킵니다.
-
신체 영향 :
- 심박수 및 혈압 증가 : 심장 박동과 혈압을 높여 혈액 순환을 빠르게 합니다.
- 혈당 증가 : 근육과 뇌에 산소와 포도당 공급을 늘려 에너지를 즉각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 기타 : 동공을 확장하고, 소화 속도를 늦추며, 근육으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킵니다.
- 분비 조건 : 공포, 불안, 분노 등 감정을 느낄 때나 위급 상황 시 부신수질에서 분비됩니다.
| 특징 |
|---|
| 엔도르핀 (Endorphin) | 아드레날린 (Adrenaline) | |
|---|---|---|
| 주요 역할 | 통증 완화, 행복감 유발, 이완 | 위기 대처(투쟁-도피 반응), 각성 |
| 분비 장소 | 주로 뇌하수체 및 시상하부 | 부신 수질 |
| 분비 상황 | 통증, 격렬한 운동, 웃음, 긍정적 감정 | 공포, 분노, 위협, 스트레스 |
| 느낌 | 황홀감, 쾌감, 안정감 | 긴장, 흥분, 에너지 급증 |
탈레스(Θαλής, Thales, 기원전 7세기) 625년 - 624년경, 547년 - 546년경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했다.
그리고 현재의 사람들한테 탈레스는 최초의 철학자, 최초의 수학자, 최초의 고대 그리스 7대 현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확실하진 않지만, 탈레스가 피타고라스의 스승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운동 경기 관람 중에 탈수증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사망지는 알려지지 않음.)
탈레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지만, 믿을 만한 고대 저술가들의 이야기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탈레스는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토스라는 도시 출신이며, 여러 분야에서 학식이 넓었다고 한다. 탈레스는 이집트 여행의 영향으로, 수학과 천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학과 천문학에 관련된 업적들이 아주 많은데,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천문학을 이용해서 기원전 585년에 일어나는 일식을 예언한 것이 있다. 또한, 수학의 기하학적 방법을 빌어서 이집트에서도 가장 큰 피라미드라고 알려져 있는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한 업적도 유명하다.
철학자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 따르면, 밤에 별을 보면서 걷다가 우물에 떨어졌는데, 이것을 본 영리한 트라키아 하녀가 "하늘의 이치를 알려고 하면서 바로 앞 우물은 보시지 못하는군요!"라고 비웃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탈레스에 관해서는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날, 탈레스의 친구가 "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돈 있는 사람들만 잘 살고, 돈 없는 사람들은 못 사는 더러운 세상 같으니라고!"라고 말하자, "친구! 돈을 잘 벌 수 있는 방법은 널려 있어. 머리를 두 번 써보라구."라고 탈레스가 되받아쳤다. 그러자 그 친구는 "넌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 어디 내가 여행을 다녀올 때까지 돈을 많이 벌어 보게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탈레스는 그 말을 듣고, 돈 버는 일에 몰두하게 됐다. 그리고 친구가 돌아와서 보니, 탈레스는 친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돈을 갖고 있었다. 과연 탈레스는 무슨 방법을 썼을까? 당시에는 올리브가 아주 귀한 것이었는데 쓰는 용도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여행을 떠난 후, 올리브의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유심히 관찰한 탈레스는 올리브의 생산량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는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탈레스는 마을을 돌아 다니면서 기름 압축기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당만 차지하는 기름 압축기를 기꺼이 팔았다. 올리브가 풍작일 때, 탈레스는 마을의 거의 모든 압축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탈레스는 기름 압축기를 사람들한테 빌려 주면서,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거라고 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했으며, 따라서 만물이 모두 물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땅도 물 위에 떠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탈레스에 관해서 그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세워보기에는 알려진 바가 너무나 적다고 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밀레토스 학파에 대해서는 더 많은 바가 알려져 있다. 그의 생각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이어받아, "가장 1차적인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 했으며, 아낙시만드로스의 친구인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라고 주장하게 된다.
한편,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탈레스가 직접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한, 전기 발생 실험을 최초로 행한 사람이 바로 탈레스라고 한다.
여담으로,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탈레스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기하학의 정리 5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믿을 수 있는 저술가들의 글을 통해서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임의의 원은 지름에 의해서 이등분 된다.
2. 두직선 이 만나면 마주보는 두 각은 같은 각을 이룬다.
3. 반원에 대한 원주각은 항상 직각이다.
4. 삼각형의 한 변과 양 끝의 각이 다른 삼각형의 그것과 같으면 두 삼각형은 합동이다.(흔히, ASA 합동 정리라고 말한다.)
5.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서로 같다.
그리스 7현인
그리스 7현인(그리스어: οἱ ἑπτὰ σοφοί hoi hepta sophoi 호이 헤프타 소포이)은 기원전 620년부터 기원전 550년에 영리하다고 불린 고대 그리스의 인물들이다.
누구를 '7현인'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대의 서적에 따라 제각기 다르며 일관된 것이 없고, '일곱'(7)이라는 숫자로 칭해지고 있지만, 플루타르코스는 '델포이의 Ε에 임해서'에서 본래는 다섯 명이었지만, 두 명의 참주가 덕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으로 현인의 이름을 강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누가 어떤 이유로 최초로 '현인'의 칭호를 얻었는지도 알 수 없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25명이나 거론하고 있다. 헤르미포스는 17명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여러 그리스인들이 각기 서로 다른 명단을 만들었던 탓이다.[1]
기원전 400년경 플라톤이 《프로타고라스》 중에서 든 것은 다음과 같다. 플라톤이 언급한 일곱 명은 모두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살았던 인물들이다.
- 린도스의 클레오불로스 - 시와 경구와 수수께끼를 잘 짓기로 유명했다.
- 아테나이의 솔론 - 아테나이의 법을 재정비했으며 시에도 재능이 있었다.
- 스파르타의 킬론 - 고결한 성품과 진실된 조언으로 명망이 높았다.
- 프리에네의 비아스 - 탁월한 연설가로 이름높았다.
- 밀레토스의 탈레스 - '최초의 철학자'로서 유명. 기자의 피라미드의 높이를 비율을 사용해 구했고, 기원전 585년 최초의 일식을 예견하였는데, 이는 서양 철학사에서 연대를 신뢰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 미틸레네의 피타코스 - 현명한 지도자이자 입법자로 이름이 알려졌다.
-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
다만 플라톤은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 대신 케나이의 농부였던 뮤손을 거론했다. 뮤손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당대에 살아있는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리스 7현인의 유명한 일화로는 그들의 사이에 벌어졌던 '지혜 가늠'이 있다.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우연히 발견된,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 솥을 둘러싸고 코스와 미레토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그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지혜로 적시는 자"에게 솥이 돌아갈 때까지는 양국의 전쟁은 끝나지 않으리라는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당시 현자로 이름이 나 있던 탈레스에게 솥을 주었지만, 그는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른 현자에게 양보했다. 다른 현인들 역시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라며 사양했고, 그렇게 서로 돌아가면서 사양하는 사이에 탈레스에게로 돌아왔다. 결국 탈레스는 이 황금 솥을 아폴론에게 봉납했고, 델포이에서 신탁을 전하는 퓨티아(무녀)는 이후 이 솥에 앉아서 신탁을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들이 당대의 현인으로 칭해지게 된 연유에 대해 "그들은 모두 스파르타의 문화를 동경한다. 그들의 지혜는 모두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과 인상적인 격언을 사용하는 스파르타의 문화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하였다.[2] 윌 듀란트에 따르면 그리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현자는 이론가가 아니라 자기 지혜를 세상에서 적극 활용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현자의 말은 그리스인들 사이에 격언처럼 여겨졌고, 어떤 경우에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가장 불행한 인간은 불운을 이겨 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 "인간은 길거나 짧은 인생을 살도록 운명으로 정해진 것처럼 자신의 삶을 다스려야 한다" "지혜는 젊었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여행의 수단으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다른 어떤 소유물보다 지혜가 더 오래 가기 때문이다" 등의 비아스의 경구를 자주 인용하곤 하였다.[1]
그리스 7현인으로 꼽히는 이들 모두는 조언, 리더십, 변호, 법제 개혁 등의 분야에서 같은 시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출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조언자나 입법가, 개혁가 등의 역할을 많은 사람은 대단히 지혜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이나 플루타르코스 모두 이들 일곱 현인을 선출한 공통적 기준을 공들여 설명하였지만, 7현인이 어떤 식으로든 지혜롭기는 했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지혜롭지는 않았기에, 플라톤이나 플루타르코스 모두 그 '어떤 공통점'을 설명하는 용어에 제약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2]
- 우치야마 가쓰토시 편저, '철학의 역사 1', 중앙공론 신사, 2008년
- 트레버 커노 저, 정연우 옮김 《지혜의 역사 - 역사 속 지혜는 어떤 모습이었나》 도서출판 한문화, 2018년
- 윌 듀런트 저, 김운한 역 《문명 이야기》2: 그리스 문명(1), 민음사, 2011년
- ↑ 이동: 가 나 윌 듀런트 저, 김운한 역 《문명 이야기》2: 그리스 문명(1), 민음사, 2011년
- ↑ 이동: 가 나 트레버 커노, 정연우 옮김 《지혜의 역사 - 역사 속 지혜는 어떤 모습이었나》도서출판 한문화, 2018
보통은 밀레투스의 탈레스, 아테네의 솔론, 프리에네의 비아스, 미틸레네[2]의 피타코스[3], 스파르타의 킬론, 린도스[5]의 클레오불로스[6],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를 꼽는다.
그러나 참주로서 논란거리가 많은 페리안드로스[7]를 빼고 파이스토스[8]의 에피메니데스[9] 넣기도 하고, 그 이외에 경우나 기호에 따라 아나카르시스,[10] 뮈손[11], 페레큐데스를 넣기도 한다. 나중에 가면 아예 누구를 7현인로 치는지가 서술자 나름인지라 20명 정도가 거론되기도 했다.[12][13]
그래도 탈레스, 솔론, 비아스, 피타코스 이 네 사람을 7현인에 넣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 외에는 스승과 제자는 물론이고 지역과 역사가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결국은 서술자 나름.
이 7인의 선정은 바다에서 건진 세발 달린 솥의 소유권을 둘러싼 코스와 밀레투스의 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신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코스 섬 어부들이 그물을 걷다가 뭔가 묵직한 게 걸려서 애매해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밀레투스 청년들[14]이 "거 뭐요?"라고 말을 걸다가 뭔가 느낌이 왔는지, 그물에 걸린 게 뭔지 확인도 안 하고 돈 주고 사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건져놓고 보니 황금으로 된 세발 달린 솥이었던 것이다.
어부들은 뭔가 계약조건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거래를 취소하려 했다고 한다.
"이거 황금이잖아? 그물도 망가졌고, 값을 더 줬으면 하는데?"
그러자 청년들은 "팔기로 했으면 그냥 팔지 이제 와서 왜 말을 바꿔?"라며 항의했고, 그 결과 청년들과 어부들은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열받은 어부들이 그냥 솥을 들고 코스로 돌아가버리자, 청년들은 당연히 밀레투스로 가서 "코스 놈들한테 사기당했음!! 이래도 됨??"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결국 밀레투스는 폴리스 차원에서 항의사절단을 보냈지만, 코스에서는 묵살하고, 결국 열받은 두 도시는 전쟁까지 벌였다고 한다.[15]
나중에 자기들이 생각해도 솥단지 하나 때문에 전쟁했다는 게 좀 어이 없었는지, 두 도시는 신탁에게 중재를 요청했는데,[16] 신탁은 가장 현명한 자에게 솥을 넘기라고 하였고, 이에 양측은 밀레투스의 현자인 탈레스에게 넘기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코스 섬 사람들은 밀레투스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지만, 탈레스라면 또 얘기가 달라서, 탈레스한테는 호감을 느꼈다고.
그러나 탈레스는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현자들에게 돌렸고, 그 현자도 똑같은 생각에 다른 현자한테 돌리고, 그렇게 돌리고 돌리다가 결국은 탈레스한테 돌아오자, 탈레스는 그 솥을 델포이의 아폴론에게 봉헌했다고 한다.
다만 이 이야기는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솥의 내력은 물론이고 솥이 한 바퀴를 다 돈 게 아니라 그냥 마지막 사람[17]이 아폴론에게 봉헌했다는 설도 있는가 하면, 정확히 봉헌된 아폴론 신전이 어디인지, 아폴론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에게 봉헌되었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 솥이 아니라 술잔이나 머리에 쓰는 관이라는 설도 있다.
7현자들은 서로 제법 끈끈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설에 따르면 델포이와 코린토스에서 회합을 가진 적이 있다고 한다. 특히 델포이에서의 회합은 위에서 말한 솥단지를 봉헌하면서 모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플라톤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그때 그들이 "너 자신을 알라"와 "모든 것은 적당하게 하라"는 두 격언을 새겼다고 한다. 코린토스에서의 회합은 코린토스의 참주 페리안드로스의 초청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18]
이들끼리 주고 받은 편지라고 전해지는 문헌들이 있는데, 이 문헌들을 보면 이들은 서로 활발한 학술교류를 희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서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조언을 보내기도 하는가 하면, 솔론이 아테네의 참주정을 피해 망명할 때에는 서로가 앞다투어 솔론을 각자 자기 도시에 초대하려고 초대장을 보냈다고도 한다.
대항해시대4의 패자의 증표 지도가 이들 7현인의 이름을 띄고 있다. 탈레스의 종이 지도, 쿠레오보로스의 무명 지도, 페리안도로스의 돌 지도, 솔론의 나뭇잎 지도, 비아스의 화폐 지도, 케이론의 대나무 지도, 피타코스의 칼날 지도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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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목사, "前 태선스님"
어느 날 꿈에 이상한 문자를 받았지요."임마누엘"
도대체 불경 어디에 이런 문자가 있는지 찾아내려고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물었지만 아무도 정확한 의미를 알려주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어느 산속에 도사님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그 도사님을 찾아가던 중 임마누엘이라는 기도원의 간판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기도원에 들어가 도대체 임마누엘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스님을 살던 내게 왜 이런 문자를 보여주셨을까?
그 작은 기도원에서 성경을 주셔서 성경을 읽던 중 예수님을 영접하고 승복을 벗고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할 후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 "중생선교회'를 설립하고 스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저의 이름은 김진규 목사입니다. 저는 3대의 불교 가정에서 17년 동안을 중으로 있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서 나의 동료와 선후배 불교신도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 나와서 20년 동안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종교성이 강한 백성입니다. 여러 가지
종교가 많이 침투해 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종교는 바로 불교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60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600년 긴 세월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하나같이 절에 다니기도 하고 또 부처님께 절을 하고 복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보면, 문화유산을 남겨놓은 것은 있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게 해결해야 할 먹고 사는 가난의
문제는 해결을 못 했습니다. 왜 그러냐? 석가모니 부처는 불교를 창설했지만, 그는 죽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복을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1,600년 역사 속에서 모두 다 가난하게 살아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가 100년 밖에 안 됐지만, 기독교가 들어온 다음에는 우리 민족은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민족들이
우리나라를 우러러 보게 되었지 않습니까? 이것이 다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였던 축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조상 대대로 불교를 믿던 사람이에요. 저희 할아버지는 강원도 지구의 불교 신도 회장을 했습니다. 백암온천에 백암사를 지으신 분이
우리 할아버지에요. 저희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가지고, 결혼을 했지만 한국불교 태고종 대처승 중이 되가지고, 경상도
일월사에서 74년 동안을 중으로, 주지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나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불교 신앙을 이어받아 가지고,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승복을 입어야 했고, 그리고 커가지고 성년이 되어서는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가 되어서 17년 동안 중생 계도에
몸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저는 충청북도 속리산 법주사에 들어가서 3년 동안의 행자의 교육을 받았는데, 엄청난
고행을 했습니다. 불교에서는요, 중이 되려고 일주문에 한번 들어가면 3년 동안을 절 밖을 못 나와요. 그리고 바깥의 소식을 못
들어야 돼요. 자, 먹고 싶고, 입고 싶고, 가지고 싶고, 하고 싶고, 보고 싶은 108번뇌를 끊어야 돼요. 그리고 신문도 보면 안
돼요. TV도 못 봐요. 라디오도 못 들어요. 일반 책도 못 봐요.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불경을 독경해야 되고, 참선을 해야
됩니다. 편지가 오는 것도 받을 수가 없고, 편지 한 장도 하면 안 됩니다. 부모 형제가 찾아와도 만나지도 못하고, 가지도
않습니다. 완전히 바깥세상을 끊어야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걷는데, 두 눈동자도 좌우로 돌리지도 못하고, 벌레 새끼 한 마리 밟아
죽이지 않으려고 발끝만 보고 살아야 돼요. 이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수계를 받습니다. 그리고 나면 중생을 제도하고자 나오게
되는데, 저는 법명이 태선승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불자들에게 소원기도 올려줬습니다. 그리고 49제도 올려줬습니다. 그리고
운명에 따라가지고 부적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불교 신도들을 위해서 중생제도에 몸 바치던 태선 승려 김진규가 왜 그 옷을 벗어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는가? 세 가지 문제가 나를 예수 믿게 했어요.
첫째로 예수를 만나게 된 동기는...
불교에는
중이 죽으면 불에 태워서 화장하는 다비식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중은 젊어서 죽든 늙어서 죽든 어떻게 죽든지, 죽으면 다
불에 타야 돼요. 저의 은사스님이, 84살 먹은 은사스님이 참선하다가 중풍에 걸렸습니다.
움직이지 못했어요. 자식이 없는 중들이라 제자들이 자식 대행을 하고, 밥상도 갖다 주고, 빨래도 해서 입히고, 목욕도 시켜 드립니다.
그런데 하루는 내 친구가 밥상을 갖다 주고, 소변 대변 받아놓은, 용변을 치우겠다고 요강을 들고 넘어오다가
절간 문턱에 걸려가지고 엎어져 버렸어요. 그 요강을 떨어뜨려 가지고 깨버렸어요. 그 속에 있는 배설물이 온 바닥에 쏟아져
버렸어요. 그걸 치우려고 하니까 화가 났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친구가 그 나이 많은 노인장을 보고 욕을 해버렸어요.
"빨리 뒤져라, 어이구, 오래 살아가지고 원수 되지 마라."
지겹다고 막 욕을 하면서 그걸 치웠단 말이에요. 그 소리를 들었던 그 노인장은 그 다음에 밥을 갖다 드리니까 고개를 내저으면서,
"나는 너희들이 욕을 하며 주는 법을 먹고 살고 싶지 않다. 난 안락사하기로 결심했으니 밥 가져오지 말아라!"
안락사라고 하는 것은 자살인데요. 불교는 정당한 자살은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굶어 죽기로 마음먹었다. 가져오지 말아라!"
그래서 밥을 갖다드리니 먹지 않습니다. 그 노인이 죽음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그 모습이 참으로 처량합니다. 그래서 다른 스님들이,
"스님, 그러지 마시고 각서를 써가지고 도장을 찍으시면 빨리 안락사를 해 올리겠습니다."
"그래 좋다."
그래서
그분에게 각서를 받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러면 옛날에 그 중들은 바위 밑에다가요, 참나무 장작을 한 열 짐을 쌓아놔요. 그리고
아직도 생명이 끊어지지 않은 스님을 밧줄로 꽁꽁 묶어 가지고 장작 위에다 얹어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다 석유를 들이부어요.
그리고 연꽃으로 만들어 놓은 불교의 상징 가운을 보기 좋게 씌워 놓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비식이 진행됩니다. 우리는 그 당시
아직도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다비식을 견학을 하고 서 있었습니다. 큰스님들은 목탁을 들고 나와요. 이제 신호에 따라서 그 나무에다
불을 질러 버립니다. 그 기름에 불이 붙어 가지고 활활 타들어가요. 그 생명이 끊어지는, 그 소리치는 비명소리를 들을 때에
간장이 다 녹습니다. 이렇게 생명이 끊어지고 나면 가죽이 터지고 살이 터져서 송장 타는 냄새가 공중에 막 올라가요. 하...
불고기 굽다가 불 꺼진 마냥 기름과 살점이 주룩주룩 떨어집니다. 두 눈으로 못 봐요. 이걸 2탕, 3탕, 재탕, 또 해야 돼요.
저는 그것을 보고 그날 저녁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눈만 감으면 그게 막 나타나요.
'나도 중인데 나도 죽으면 저렇게 타야 된다.'
도저히 있고 싶은 마음이 없어 가지고 나올 마음을 가지게 됐던 것이올시다. 여러분들은 중이 안 돼봤기 때문에 그런 처참한 모습을 안 보고 사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나오게 된 동기는...
중들은
한 절에 오래 못 있어요. 여기저기 전국 순회를 하게 되어 있는데, 돈을 가지고 가면 대우 받고, 돈 안 가져가면 일만 직싸게
해야 돼요. 제가 영주 부석사에 가서 있었는데, 저녁잠을 자고 아침밥을 먹으려고 나갔더니 선배가,
"시주공양 받아 왔나?"
"아닙니다."
"밥 먹지 말고 나가! 공양도 안 받아가지고 와서 무슨 밥을 먹냐?"
이
절간에는요, 선후배 차이가 엄청나게 큽니다. 그래서 밥을 못 먹고 쫓겨났는데, 배가 고프니 어떻게 해요? 마을에 나가서 또 시주
공양을 받았지요. 쌀도 주고 돈도 주고 하는데, 한 군데 갔더니 왜 난데없는 젊은 청년이 나타나 가지고,
"스님, 염불하고 다니지 말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소."
제가 처음 듣는 말인데 구원이 뭔지 압니까?
"당신, 뭐 준다 그랬소?"
"구원 받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뭐요? 예수 믿으면 영원히 살아요?"
그래서 내가 욕을 했어요.
"이
사람아, 거짓말하지 마라! 인생은 나면 고생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게 인간이다. 당신도 나도 인과응보에 따라 업보 중생해야
되는 법이다. 부처님도 그 일을 다 해결 못하고 열반했다. 당신, 그런 거짓말하고 다니면, 당신 죽어 지옥의 열 두 대문에
끌려가면 고통 받을 게야! 그런 거짓말을 하면 안 돼! 부처님, 저 어리석은 청년을 용서하옵소서. 나무아미타."
그리고
가는데, 이게 또 따라오네. 뭐하러 오냐고 하니까, 예수는 생각해보고 믿고,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면서 주더라고요. 시주 쌀을
얻으려고 짊어지고 다니는 바랑 망태에다가 그 책을 쑥 집어넣어 버려요. 절에 와 가지고 펴보니까, 쌀이 막 묻어 있는 신약성경 책
한 권이 나왔어요. 기독교 신자가 이 책을 보고 예수 믿는데, 이게 그래도 뭔 진리가 있지 않겠나 싶어요. 그래서 다른 스님들 몰래 감춰 가지고 다니면서 여섯 번 봤어요. 이 성경책을 보고,
'기독교의 주인공은 살았다. 그러니 우리는 죽은 주인공에 복 달라고 빌 것이 아니라 산 주인공에 복 달라고 비는 것이 인간의 가치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도 믿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책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된 것이 두 번째 동기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올라고 생각해보니 못 나오겠어요. 중은 절에서 먹여주고 채워주고 다 공짜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나가면 누가 밥 먹여줄
겁니까? 그런데 한번은 염불하다가 졸음이 와가지고 법당 옆에 누워 잠들었다가 우리 주지스님한테 뒤지게 맞았어요.
"이놈아, 자려면 방에서 자지 왜 부처 옆에 발을 뻗쳤냐?"
사정없이
패는 바람에 얻어맞고 앉아가지고 생각해 보니 화가 나더라니까요. 자는 놈은 개도 안 때린다는데 깨워가지고 때릴 것이지. 그래
가지고 그렇게 두들겨 맞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근데 이상해요. 신약성경 6번 읽었는데, 말씀 한마디가 내 머리 속에 떠
올라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야, 다 내게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석가모니 부처는 80을 살아도 그런 소리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있으니까 오라고 안 했겠느냐. 아이구, 모르겠다 가자!'
그래서 뛰쳐나와 버렸어요. 그렇게 그냥 뛰쳐 내려 와 가지고 저희 아버지 원구 스님께,
"아버님! 종교의 주인공이 산 주인공도 있고 죽은 주인공도 있는데, 아버님, 산주인공 따라 가십시다."
무슨 소리를 듣고 왔냐고 야단치대요.
"아니요, 나는 직접 체험했습니다."
큰절을 올리고, 아버지한테 붙잡힐까봐 도망쳐 버렸어요. 그 이후에 저는 부산 경성대학을 졸업하게 되었고, 서울 감신대학을 졸업해서 이제 감리교 목사 안수를 받게 된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원구 스님이신데 74년 동안 주지로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내가, 목사가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지요.
"구하면 주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천지는 없어져도 내 말은 안 없어진다고 했는데, 제가 목사 하려면 우리 아버지가 예수 믿어야 되겠사온대 아버지를 전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옵소서."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아버님과 헤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요. 명절이 오면
시를 써보기도 하고, 글을 써보기도 하고, 편지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전부 다 모아가지고 하나의 노래를 만들었어요.
이것이 바로 효도가인데, 그걸 내가 베껴가지고 갔거든요.
"아버님, 그동안 만수무강 하셨습니까?"
아버지가 내 모습을 보고, 나하고 인연이 끝났는데 돌아가라고 그래요.
"아버님, 자식이 어떻게 인연이 끝났습니까? 아버님, 예수 믿고 구원 받으셔야 됩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라 그래요.
"안 갑니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성령님의 감동 받으면 믿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저는 아버님을 위해서 기도하렵니다."
그리고 나이가 74살 먹은 할아버지 앞에서 저녁마다 엎드려 가지고
"아버님, 제가 보고 싶어서 이 글을 써 가지고 왔는데 한번 들어 보실랍니까?"
필요 없다고 안 듣는다고 그래요.
"들어보세요."
그러면서
그 노래를 4개월 동안을 저녁마다 아버지 앞에서 불려 드렸습니다. 그 노래를 듣던 저희 아버지가 74살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4개월 동안을 하루 저녁도 안 빠지고 불렀더니요, 아버지가 은혜를 받아서 기독교에도 그런 효도관이 있느냐고 물어요.
"아버님, 기독교는 살았을 때 효도하는 종교올시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그랬더니,
"너
같은 놈 인간 만들어 돌려보내는 거 보니까 기독교가 괜찮구나. 나도 젊을 때는 불교 신도들이 많이 왔는데, 늙어 빠지니까 안
온다. 인생은 늙어지면 다 헛것이다. 나이가 많으면 자식 따라 가야 되고, 나는 이미 끝나버렸다. 네가 하나님과 예수를 믿어
가지고 잘 된다면 나도 너를 따라 예수 믿지!"
할렐루야! 저희 아버님은 74살에 74년을 입었던 승복과 염주, 그리고 책 같은 거 사정없이 불태워버리고 예수 믿게 됐습니다.
이렇게 된 그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
후에 우리 아버님이 가지고 있던 절간을 허물어 가지고 고등공민학교를 세웠습니다.
왜 그랬느냐.
그때 당시는 자녀들 중에 돈이
없어 중학교도 못가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나는 그 아이들을 전도할 욕심으로 절간을 변화시켜서 학교를 만들었고, 부처를
들어내니까 벌레가 바글바글 부처 밑에 많이 있어요. 석유를 부어가지고 불로 태우니 꼬불탕꼬불탕 다 타 죽대요. 그리고요 그
자녀들을 돈 안 받고 공부 가르친다고 모아놨더니 엄청나게 아이들이 몰려왔어요. 책 살 돈도 없는 아이들이에요. 그래서 서울에
올라가서 미션스쿨들을 다니면서 책을 얻어다가 아이들에게 나눠주니까 12과목이 넘대요, 중학교 과목이. 그렇죠? 원래는 과목마다
선생님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돈도 없는데, 내가 혼자 교장인데, 월급을 못 주니까 나 혼자 그걸 다 가르치는 겁니다.
교장도 되고, 담임도 되고, 과목선생도 되고. 그 12과목을 나 혼자 다 가르쳤으니 내가 얼마나 머리가 좋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가르쳤고, 저녁마다 모아가지고 특별 강의로 전도했어요. 그렇게 성경 읽고 기도하고 찬송 가르쳤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신앙을
받아들이니까요, 성령이 충만하니까요, 그래서 그 부모를 막 전도하는데, 생명 걸고 전도했어요.
4회
졸업생을 제가 얻었어요. 그 4회 졸업생 내고 나니까, 중학교가 평준화가 되니까, 고등공민학교가 필요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고등공민학교를 지금은요, 십자가를 달아가지고 교회를 만들어 버렸어요. 그렇게 절이 변해서 학교가 되고, 학교가 변해서 교회가 된
곳이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사동이라고 하는, 절골 마을의 사동교회가 그렇게 세워진 교회에요. 그리고요, 그 아이들이 예수
믿어가지고 지금 잘 됐어요. 목사가 세 사람이 나오고요, 장로가 일곱 명이 나왔어요. 초등, 중등, 고등학교 교사가 나오고, 지금
대학교 교수가 나왔어요. 그 고등공민학교 출신 중에! 예수를 믿으니까요, 사람의 운명이 바뀝디다. 지금은 절 두 개가 싹 없어져
버렸어요. 내 가족이 예수 믿으면 가정이 바뀌고, 지역이 예수를 믿으면 지역이 바뀌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지역을
복음화 했지요. 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서
중생교회를 세우고, 중생선교회를 세워가지고 중들을 전도했는데, 기독교로 돌아온 중이 92사람입니다. 이분들을 보면 돈 가져오는
분이 한 분도 없어요. 그러니 옷을 벗기고 다른 옷을 사 입혀야 되고, 고무신 벗기고 구두 신겨야 되고, 그 다음에 머리 기르니까
이발 시켜야 되고, 장가보내야 되고 시집보내야 되고요, 사명감 있는 사람 신학공부 시켜줘야 되고. 제가 22년 동안 지금 그
일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들어가야 내보내고. 이런 일을 지금까지 하는데, 그래서 제가 이렇게 비쩍
말랐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 다 예수 믿어가지고요. 아버지도 지금 예수 믿어가지고 돌아가셨지만
소천했고, 우리 형님이 장로가 됐고요, 내 동생이 목사 됐고요, 우리 누님들이 부산에 사는데 보살이 변해가지고 집사가 되가지고요.
과거에는 염불하던 우리 가족들이 모이면 그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송 할 때마다 너무 기쁘게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여,
다만 내가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여러분만 구원받았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구원받았으면 천국 가는 건 가요. 그러나
아직도 부모가 믿지 않는다든지, 또 자식이 믿지 않는다든지, 나와 함께 사는 남편이 믿지 않는다든지, 그분 지옥 간다는
말이에요. 금년에는요, 최대의 목적이, 소원이 뭐냐. 가족 전도에 가정 선교사 되시기를 바랍니다. 외국에 나가 선교사는 못해도
가장 가깝게 살고 있는 내 가족은 전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4개월 동안 엎드려 울부짖으니까요, 들어줍디다. 그러니 될 때까지 한번 매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것들, 곧 인간은 태어나서 고생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생각해 보자...
생명을 부여받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생은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가.
그 인생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고생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경험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가.
인생과 달리 인생을 둘러싼 자연의 꾸준함은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가.
이러한 놀라움과 신비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얼마나 논리적이고 명확한가.
이러한 놀라움과 신비를 만드신 분이 계실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논리적이고 명확한가.
그래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이것이다.
(창세기 1: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개종인의 삶을 돌보는 것이 나의 소명”
“타종교를 믿거나 우상을 숭배하다 예수를 믿겠다며 돌아오는 개종인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득도를 하겠다고 집을 나가 오랜 세월 불교전통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일반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죠. 우선은 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이 제일 시급한 문제랍니다.”
바랑 속에 든 성경으로 예수님 만나
1980년 4월 개종인선교회를 설립, 타종교인 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중생교회 김진규 목사(68세)는 조부가 강원도 지역 불교신도 연합회 회장이고, 부친이 경북 영양군 ‘한국불교 태고종’ 일월사 주지승(태고종은 결혼한 승려를 인정하는 대처승제도를 허용하고 있다)인 불교가정에서 자라났다.
어려서부터 절밥을 먹고 자란 김 목사는 24살에 자연히 태고종에서 승려가 됐다. 그러나 불교계에서 대처승을 인정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승려들이 술과 담배• 육식 등을 거리낌 없이 해대면서 해탈하겠다고 하는 모습으로 보면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진정한 부처의 법도를 깨닫고자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인 속리산 법주사에 입문해 ‘태선’이라는 법명으로 17년간 수행했다. 하지만 고령인데다 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은사(82세) 승려에게 본인의 동의를 받아 ‘다비식’(불교 장례식)으로 거행하는 것을 보면서 또 한 번의 회의를 느끼게 됐다.
자신의 젊음을 바쳐 몸담고 있던 불자의 생활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성경을 선물 받았다. 김 목사는 “시주하러간 마을에서 한 청년이 바랑 속에 겁도 없이 성경을 넣었다”면서 “밤마다 남몰래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속죄와 구원, 영생의 진리와 함께 기독교가 살아있는 종교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직접 체험하고 17년 동안 자기해탈을 위해 고행 길을 걸으며 함께 했던 승복을 벗어 던졌다.
삶이 안정될 수 있는 공간 마련해 줘야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 것이 너무나 감사했던 김진규 목사는 처음부터 덮어놓고 ‘불교인선교회’를 창립해 선교회 명칭대로 승려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그를 불교계에서 가만 놔둘리 만무했다. 대놓고 승려들을 선교한다고 데모와 압력 등으로 가는 곳 마다 쫓아 다니면서 방해했던 것이다.
이에 개종인들이 거듭났다고 해서 ‘중생인선교회’라고 개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생이라는 어감 때문에 이단같다고 기독교에서 거부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우상숭배 하거나 타종교에서 개종한 사람도 들어올 수 있도록 3년 전부터 ‘개종인선교회’로 개명해 선교 활동을 펼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가운데 김진규 목사는 지난 20년 동안 90여명의 승려들을 개종시키는 열매를 거두게 됐다. 그러나 이들 중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사회에서 발붙일 곳 없어 방황하던 사람들 30여명이 다시 절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60여명도 생활고로 인해 사방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생활관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
이에 지난 3월 강원도 원주에 생활관을 100평 규모로 개관해, 전직 승려들을 불러모아 이들이 안정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김 목사는 “전직이 승려인 개종인들은 오랫동안 절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정이 없을 뿐 아니라 기술도 없어 의식주 해결이 힘들다”며 “게다가 교회에서도 서로의 배타적인 심리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기 어렵다”고 이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들이 불교의 경전과 전혀 다른 성경의 진리를 깨닫기 까지는 매우 힘이 들지만, 구원의 확신이 들어서면 절대로 사찰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믿음이 심어질 때까지 이들의 생활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이러한 생활관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개종한 승려 때문이다. 원주에 있는 백운사의 비구승이 김 목사의 간증테입과 비교종교학 책을 읽고 마음을 열어 예수를 영접하면서 사찰을 생활관 용도로 내놓은 것이다.
비구승이 개종한 것도 기쁜일이지만 그동안 생활관 터를 구하는 기도제목이 이뤄져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었다. 이에 김 목사는 불상을 직접 철거하고, 5층 석탑 위에 십자가를 세워 중생기도원을 설립한 후 숙원사업인 생활관을 건립하게 됐다.
내가 책임져야 할 과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20년을 선교해 왔어도 김진규 목사는 여전히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곧 70세가 되면 은퇴해야 되는데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뜻있는 분들의 지원과 간증을 통해 받은 사례비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지만 생활관을 이끌어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관 건립에 들어간 비용의 일부를 아직까지 못 갚아 이자가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지워해 오던 개종 후 신학을 하는 사람들의 학비와 생활비 일부를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우상을 숭배하는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켜야 되는데 그 뜻을 이루는 데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개종인들에 대해 관심 가져주기를 촉구했다.
그는 목사가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타종교로부터 갖은 폭력과 협박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이들을 위해 사역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중이 목사가 됐다는 이유로 많은 교회에서 초청을 받아 전국을 다니며 간증했는데, 그때마다 불교계에서 폭력과 데모 등으로 갖은 핍박을 했다”면서 “목사가 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내가 개종인들의 삶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세 가지 소원을 피력했다.
“△우상의 재단들이
하나님의 재단으로 바꿔질 수 있도록,
△부처가 되겠다는 승려들이 겸손한 자세로 돌아와 복음의 전도자가 되도록,
△증가하는 개종자들의 생활 문제가
해결되도록….”
조계종 태선스님 17년간 의 삶을 청산하고 개종하여 목사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는 김진규 목사와 사형수들의 교수형을 지켜본 한 교도관의 간증 영상
개종인선교회는 일천 육백년 불교역사와 전통 가운데 우리 민족은 우상을 숭배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본인이 승려 생활을 하다가 개종을 했기 때문에 불붙는 열정을 가지고 타종교 우상 숭배하는 이들을 구원시키고자 처음에는 불교인선교회로 시작하여 이후 우상인선교회로, 중생인선교회로, 그리고 지금은 개종인선교회로 범위를 확대해 선교하고 있습니다..
http://ca9191.org/bbs/view.php?id=board_19&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
김진규 목사의 영상간증
교도관으로 사형수들의 사형집행장면을 지켜 보면서 그들이 죽음 앞에 어떻게 반응을 했나를 자세히 영상처럼 묘사하는 간증
사형장에서도 생명얻는 회개의 역사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한 예수 때문에 스데반처럼 담대하게 죽어가는 사형수를 부둥켜 안고 찬송과 기도의 봇물을 터트리고 말았던 박효진 장로!
어느 날에는 사형 집행 순간 대적하는 영의 눈빛을 보다 못해 목에 걸린 밧줄 밑에서 예수를 전하고 난 후, 죽음 5초 직전까지 같이 울어야만 했던 그 감동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붙드시는 능력을 곧 체험하실 것이며,
누군가의 목에 걸린 죽음의 밧줄을 풀어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는 꼬불 꼬불 재를 넘어 찾아간 경북 청송 골짜기...
'죽은 자의 땅'이라 불리는 감옥(감호소)에서 집사 9년만에 껍데기 신앙인을 벗어 던지 박효진.
'갱생' 구호소리 음산한 열 닷섯자 높이 담장 안에서 희락의 기름을 부음받고 드디어 항복을 외치며 돌이킨 후에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새로 시작합니다.
누구보다 더욱 훈련되어진 그는 하나님의 거대한 빛살이 영혼을 가까이 비춰주어 '주님의 증인'으로서 지구촌 모든 땅을 발바닥으로 밟으며 복음의 빛, 사랑의 열매를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밀양 박가 규정공파 송당가문의 대 종갓집 종부, 어느 새벽에 들려온 종소리는 새벽닭 울 때 심히 통곡한 베드로처럼 한 여인을 회개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결단 이후 사당을 모셔놓고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살아온 집안이 구원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만 섬기는 집으로 변화합니다.
낙망치않고 기도한 부인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다윗의 혈통으로 계보가 바뀐 박효진 장로의 가문을 만나보십시오.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끼는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http://www.kcmusa.org/broadcast/viewer.php?idx=24&tn=broadcast_kcm&op=KCMTV&type=A 박효진 장로 간증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
토마스 아 캠피스(1380~1471, T. A Kempis)는 독일에서 출생했다. 1399년 19세에 수도사가 되어 소박한 수도사로 평생을 살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명상하며 글을 썼다. 그의 작품은 많지만 <그리스도를 본받아>(The imitation of Christ)로 명성을 얻었다. 영적 생활, 내적인 일, 내적인 위안, 성만찬 등 4부 108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영적 명상을 기록했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하나님의 세계에 젖어 살았다. 하나님, 그 분의 마음을 만나는 일은 그에게 즐겁고 감사한 일이었다. 기독교의 정신을 가장 깊게 고취시킨 정교한 문장으로 평가 받는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쓴 글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지금까지 끼치고 있다. 어떤 이는 성경 다음으로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한평생 사는 동안 어느 누가 시험과 시련을 당하지 않고 살겠는가!
이 책은 이런 경우에 위로와 격려를 제공해 준다. ‘땅에서의 인생은 전쟁과 같으니 깨어 기도하라’고 한다. 시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험이 고통만 주는 것은 아니고 우리에게 영적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캠피스의 명상 기록에 나오는 말이다. “한 가지 시험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시험이 온다. 시험을 피하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진정한 겸손과 인내로만 이길 수 있다. 시험은 불안정한 마음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한 데서 시작한다. 육신적인 욕망에서 출발이 된다. 유혹은 욕심에서 온다. 사소한 작은 생각에서 싹이 튼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런 때 낙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찾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예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시험을 가져오는 삶의 역경에 대하여는 인내가 필요하다. 나만 혼자 힘든 인생이 아니다. 시험이 오기 전에 미리 저급(低級)한 세상 즐거움을 멀리하라고 캠피스는 말한다. 충동이 시작되면 싸우라고 한다. 나쁜 습관은 끊어 버리라고 한다. 영적으로 유익이 될 만한 말을 선택하라고 한다. 고난을 당해야 방심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고난은 나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든다. 나는 지옥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언행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수고와 슬픔이 떠나지 않는 인생길이다. 어디에 가든지 유혹의 함정과 영적 유혹들로 가득 차 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악평을 하더라도 화를 내지 말고 나보다 더 악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라”고 캠피스는 권면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에게 모함을 당할 때에 잠잠하다. “닥치는 시험을 대처하기 위해 깨어 있으라”라고 충고한다. ‘시험의 유익함’을 깨달아야 한다. 시험으로 인해 더 겸손해지고 더 깨끗해진다. 교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점검하게 된다. 시험을 당할지라도 그 곳에 성령님께서 함께 계시고 도와주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도와주시는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난을 통해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거룩하게 빚어 가신다.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어느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성경도 침묵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깊으신 지혜와 높은 길을 알지 못한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주의 성소(聖所)를 만들어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순례자의 길을 가고 싶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독일 가톨릭 수도사제이자 신비사상가로 알려진 토마스 아 켐피스는 1380년 라인 강 하류 쾰른 부근의 도시인 켐펜에서 태어났습니다. 1399년, 19살에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한 후, 일생을 거의 아드네텐베르크 수도원에서 보내는데요, 33살(1413년)에 사제 서품을 받아 신부가 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네덜란드의 신비사상가 헤르트 호르테와 그의 제자 플로렌티우스 라데빈스가 창설한 평신도 공동체인 ‘공동생활의 형제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형제회는 당시의 신비주의가 지나치게 현실을 배격하고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하여 현실 속에서 신비와 경건을 추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형제회는 속세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수도적인 청빈, 정결, 복종의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고, 재산을 공유하며, 스스로의 노동으로 그날그날의 양식을 벌었습니다.
수도와 노동 외에도 그들은 필사본을 만들고, 인쇄와 제본을 했습니다. 그들은 교육 활동도 했는데요, 특히 연소자의 교육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수도회에서 주로 수련수사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고 설교와 저술활동에 주력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 외에 이 형제회가 배출한 인물로는 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의 가톨릭 사제이자 인문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지식인 에라스뮈스(Erasmus, 1466-1536), 독일 신학자이자 근세철학의 선구적 사상가였던 니콜라우스 쿠사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 등이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1425년 수도원의 부원장으로서 후진 지도에 진력했는데, 후진 지도를 위한 지도서로 쓴 책이 바로 《그리스도를 본받아》(《준주성범》으로도 번역됨)인데요, 그가 마흔 일곱 살 경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기도와 묵상》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성서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이 읽힌 책이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영적 삶을 위한 거룩한 조언’,
2장은 ‘내적 삶을 위한 거룩한 조언’,
3장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내적 위로’,
4장은 ‘예수님의 거룩한 만찬 준비’입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비교적 짧은 권면 형식의
글이기에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지침이 될 만한 주제들을 선택해서 소개하는 방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적 훈련 :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1장
“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또 온갖 철학자들의 말을 꿰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외에는 그 어느 것도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전 1,2)”(1)
토마스 아 켐피스가 교권과 국가권력의 갈등기, 스콜라 철학의 절정기를 살았던 신비주의자였다는 것을 알면 왜 그가 이런 주장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시작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토마스 아 켐피스가 인간의 지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배움을 경멸하지는 마라! 지식은 선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지만 소중한 양심과 아름다운 삶에는 미치지 못한다.”(2)
지식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심판의 날이 닥치면 우리가 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한 것에 관해, 또 어느 정도나 말을 잘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살았는지에 관해 질문을 받게 될 것임을 명심하라.”(3)고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말합니다.
평신도 형제회 활동을 했던 토마스 아 켐피스는 아마도 당시의 가톨릭 교황과 사제들의 부패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 앞에서의 겸손’, ‘지나친 정욕의 절제’, ‘순종을 통한 참된 자유’를 훈련 수사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면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토마스 아 켐피스는 ‘침묵’을 권합니다. “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매우 나쁜 습관이다”(4)이고, “악한 습관에서 손을 끊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경의 유익함을 발견하기’, ‘시험의 인내’,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기’, ‘거룩한 사랑으로 선행을 베풀기’,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끈기 있게 감당하기’, ‘매일의 삶에서 영적 훈련을 수행하기’, ‘혼자만의 시간과 골방의 침묵을 사랑하기’,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기’, ‘죽음을 준비하기’를 훈련하라고 합니다.
‘역경’이 유익한 것은 역경이 “우리가 영적인 나그네이며, 세상에 속한 그 무엇도 신뢰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오해에서 오는 고통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교만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우리 내면의 삶은 외적으로 비난 받을 때 가장 크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5)
‘시험’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험’으로 번역된 독일어는 ‘페어수헨’(versuchen)인데요, 전철 ‘페어’(ver-)는 ‘잘못된’을 의미하고, 동사 ‘수헨’(suchen)은 ‘찾다’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시험’은 우리가 ‘무엇인가 잘 못된 것을 찾는데서 온다’는 뜻이지요.
토마스는 ‘땅을 밟고 사는 사람은 시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험은 두 가지 허점을 이용해 인간을 더욱 옥죄는데요, 우유부단한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 그것입니다. “키 없는 배가 물결에 밀려 요동하듯 부주의하고 결단력이 없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시험에 마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6)
사실 시험은 피하는 것이 어떤 때는 하나의 답이 될지 모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시험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면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는 시험을 “피하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고 합니다. “시험을 피하려고 들면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토마스는 인내와 겸손으로 시험에 맞서 시험을 뿌리째 들어내라고 합니다.(7) 쉬운 일은 아니지만, 토마스는 시험과 어려움을 겪을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게(벧전 5,6), 간절히 기도하면서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권합니다.(8)
토마스는 “사랑이 없는 겉치레의 선행은 영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반면, “사랑으로 행하는 일은 아무리 작거나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충실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선행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선행을 했는지 따지지 않으시고, 선행의 동기를 헤아리신다.”는 것이지요. 토마스는 선행이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행해지고, 자기 의로움의 근거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겠지요. 토마스는 “참된 진리와 완벽한 사랑을 소유한 사람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만물 안에서 타오르는 것만을 바랄 뿐이다.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거만하거나 개인적인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다.”(9)고 합니다.
영적인 삶을 위해서는 ‘영적 훈련’이 중요합니다. 토마스는 ‘영적 훈련’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그 과정을 설정하되, 특히 자신의 최대 약점과 싸움을 벌이듯 치열하게 해야 한다.”(10)고 합니다. 훈련은 매일 계획에 따라 반복되어야 하고, 마치 싸움을 하듯 치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군대에서 제식훈련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절도와 규율을 가르치기 위해 줄과 열을 맞춰 행진하는 그토록 쉬운 일을 며칠이고 반복하면서 지루할 정도로 가르치지요.
물론 똑같은 종류의 훈련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영적 훈련을 선택하는 것도 달라야 한다고 토마스는 비교적 융통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든 훈련의 핵심은 이 땅을 후회 없이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에 있다.”(11)고 합니다. 죽을 때 삶에 후회가 없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요! 이런 죽음, 매일의 영적 훈련이 없다면 아마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일 것 같습니다.
토마스는 이런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아침이 되면 해질녘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라. 밤이 되면 새로운 아침을 기약하지 마라.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라”(12)고 합니다. “참으로 슬기롭고 행복한 사람은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평소처럼 변함없이 자신의 삶을 산다. 우리가 이 세상을 진심으로 경멸하고, 덕을 쌓는 일을 열망함으로 규율을 잘 지키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회개하고, 기꺼이 복종하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위해 어떤 고난이든지 끈기 있게 참아 나간다면 이처럼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13)고 합니다.
그런데 죽음이 언제, 어떻게 올지는 우리가 잘 모르지요. “우리가 잡고 있는 기회가 죽음 때문에 막을 내리게 될 순간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지금 행동하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바로 지금 하라. … 이 세상에서 나그네나 피난민처럼 지내라”(14)고 권합니다.
토마스는 심판을 현재적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죄를 범하는 만큼 나중에 벌을 받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게으른 사람은 불채찍을 맞고, 음식을 탐하는 사람은 굶주리고 목마르는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사치하고 쾌락을 즐기는 사람은 뜨거운 불속에 들어가게 되고, 시기하는 사람은 마치 정신을 놓아버린 짐승처럼 울부짖게 될 것이다. 죄는 반드시 그 값을 치르기 마련이다. 교만한 사람은 온갖 혼란에 빠질 것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릴 것이다. … 벌을 받는 사람에게는 휴식이나 위로가 없다.”(15)고 합니다.
심판의 때, “의로운 사람들이 과감하게 일어나 자신들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것에 맞서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은 크게 안심하지만 교만한 사람은 사방에서 밀려드는 두려움에 휩싸일 것이다. 그때에는 인내하면서 겪었던 모든 고통이 즐거움으로 바뀌고, 모든 악인이 자기 입을 봉하게 될 것이다. … 그때에는 초라한 의복이 빛을 발하고, 값비싼 의복이 빛을 잃을 것이다. 그때에는 오두막이 금으로 장식된 궁전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겨질 것이다. 그때에는 변함없는 인내가 세상의 어떤 권력보다 더 유용할 것이다.”(16)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지,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일어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토마스는 하나님의 심판을 현재적이고 동시에 미래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내적 삶: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2장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제2장은 ‘내적 삶을 위한 거룩한 조언’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내적 삶을 위해 “누가 자신의 편이고, 또 누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해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17)고 권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시고, 그리하면 그 누구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기에, 굳이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내적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야’ 하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단순함과 순수함’이라는 두 날개를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토마스는 여기서 ‘의도의 단순함’과 ‘감정의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수한 마음은 그분을 바라보고 헤아립니다.(18)
토마스는 행복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낮추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시 119,1-2)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다른 모든 사랑을 넘어서야 합니다.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근거로,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을 찾으면 분명히 그 분을 만날 것인데, 반대로 자신을 찾으면 오직 자신만 만나게 될 것이고 그 때문에 손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19)
그런데 예수님의 하늘나라를 사랑하는 이들은 많지만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드문 현실을 토마스는 지적합니다. “누구나 예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지만 그분을 위해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떡을 나누어 주시는 한 그분을 따르려고 하지만 고통스러운 자기희생의 잔을 마시려고 머무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그분의 기적에 감명을 받지만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어느 정도의 위로를 받는 한 그분을 찬양하고 축복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감추고, 심지어 잠시 그들을 떠나가기라도 하시면 그들은 불평하기 시작하고 금세 낙심한다.”(20)
‘문제해결의 신’, ‘도깨비 방망이 같은 신’을 믿는 신앙, 자기 이익이나 자기 사랑에 물들지 않은 신앙인을 찾기 어려운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토마스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기꺼이 섬기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21)고 합니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지요. 기적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처럼, 기적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거나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지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도 그의 《기도시집》에서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을 찾는 이들은 저마다 당신을 시험합니다. … 그렇지만 나는 대지가 당신을 이해하듯 그렇게 당신을 이해하렵니다. 나의 성숙과 더불어 당신의 왕국도 성숙합니다. 나는 당신을 증명하려는 어떤 허영도 당신에게 바라지 않으렵니다. 시간이란 당신과는 다른 것임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어떤 기적도 행하지마소서.”(22)
내적 위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3장
제3부, ‘주님으로부터 오는 내적 위로’는 그리스도와 ‘따르는 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먼저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의 자녀야, 헌신을 은밀하게 유지하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스스로를 높이지 말고 헌신을 자주 입에 담지 마라. 헌신의 수준 때문에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도 마라. … 은총을 누리고 있다는 감정에 너무 지나치게 매달리지 마라. … 영적인 삶은 위로의 은총을 누릴 때가 아니라 겸손과 자기 부정과 인내로써 은총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때 발전하게 된다. 또한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항상 경건의 시간을 조금도 소홀하게 여기지 않을 때 발전하게 된다.”(23)
“어떤 경솔한 사람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황홀한 헌신을 경험하겠다며 시도하다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자신들의 취약함은 안중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이상을 시도하다가 쉽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스스로를 위해 하늘에 보금자리를 지으려고 하는 이들은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24)
‘헌신강박증’, 예수님 시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나무랄 것 없고 흠이 없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경건과 헌신을 폄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의 헌신과 경건이 남에게 드러내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것이지요. 오늘의 교회 안의 갈등과 분열도 대게는 지나치게 열심인, 남의 평가를 의식한 헌신에서 비롯되지요.
그런데 ‘따르는 자’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저는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당신만을 바라보고, 당신만을 사랑할 때, 제 자신과 당신을 발견합니다.”(25) 자기만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를 잃어버리지만,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요. 토마스 아 켐피스는 바라는 것을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권합니다: “주여, 만일 그것이 당신의 뜻이거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약 4,15). 그렇게 되는 것이 당신을 영광되게 한다면 당신의 이름으로 그렇게 되게 하소서. 만일 당신이 그것을 좋다고 보시면 그것이 제게도 유익이 되게 해주시고, 저로 하여금 그것을 당신께 영광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소서. 그러나 만일 그것이 해로운 것이라면 그 소원을 제게서 앗아가소서.”(26)
아무리 수도사들이 함께 사는 수도원이라고 해도 서로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행태는 어디에나 있는가 봅니다. 헐뜯는 비난에 마음에 상처를 받고, 또 그에 대한 보복으로 험담을 퍼뜨리는 이들에게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마음의 모든 불안과 괴로움은 절제를 모르는 사랑과 헛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27)고 합니다. 남에게 칭찬받으려는 욕망에서건,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건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자유롭고, 철저하게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28)고 토마스는 권면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 입을 다물고, 들은 말이라고 해서 모두 무분별하게 믿지 않고, 그 말을 쉽게 퍼뜨리지 않아야 하고 … 가볍게 마음을 내보여서는 안 되며... 떠도는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 하늘의 은총을 간직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사람들의 평가를 기대하지 않고, 널리 칭송을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29)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칭찬에 이리 저리 흔들리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쓰면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사람들이 “멸시받기를 두려워하기 때문”(30)이라고 토마스는 말합니다. “신중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싫은 소리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무관할 수 있다.”(31)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심장을 샅샅이 살피시고, 얼굴이나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람들의 부당한 대우에 신경 쓰지 않는다.”(32)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은 사소한 험담에도 크게 낙심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SNS를 통한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악의적인 험담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거짓말도, 가짜 뉴스도 선점하면, ‘아니면 말고’ 식의 악의적 무책임이 오히려 사실인 것처럼 퍼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옛날에도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냥 내버려 두어라. 그와 같은 일이 처음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다.”(33)고 합니다. “가능하면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도록 하고, 마음이 상해도 실망하지 말고, 오랫동안 매달리지 마라. … 듣고 싶지 않고, 분노가 솟구치거든 자신을 다스리고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말을 입에 담지 않도록 하라.”(34)고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힘, 견딜 수 있는 믿음은 “주님은 의로우시고, 주님의 판단은 정확하시다.”(시 119,137)는 말씀에 있습니다.
4권 성찬에 관한 경건한 권면
[3권과 비슷하게 4권은 제자의 질문과 주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어는 제자의 질문이고, 하대어는 주님의 대답입니다. 중요한 구절만을 발췌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께서 이 부족하고 가련한 자를 초대하셔서, 주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에 참여하라고 하시니, 그 말씀이 이 죄인의 귀에 너무나 달콤하고 향기롭습니다. 주께서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를 극진히 대해 주시며, 이렇게 지극한 사랑으로 초대해 주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성찬을 통해서 영적인 은혜가 수여되고, 잃어버렸던 영적인 능력이 회복되며, 죄로 흉측해졌던 아름다움이 되돌아옵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거룩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고, 나는 죄인들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죄인입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 앞에서 얼굴조차 들 수 없는 자인 데도, 주께서는 친히 몸을 굽혀 나를 바라보십니다.
주님, 내가 처음 죄를 짓게 된 날부터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주 앞에서와 주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저질러 온 나의 온갖 죄악들과 범죄들을 주 앞에 내어 놓고, 주의 속죄의 제단 위에 올려 드리오니, 주의 사랑의 불로 그 모든 것들을 태우시고 사르셔서, 내 모든 죄의 더러움을 씻어 주옵소서.
경건한 사람은 성찬에 나아와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의 신비를 경건하게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교제를 통하여 보이지 않게 새롭게 세워져 가게 된다.
의문과 논란이 있는 어려운 길들을 버리고, 하나님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명하신 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무 심오한 것들을 천착하고자 하다가 신앙까지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너의 지각을 믿음 아래 종속시켜라.
모든 이성과 본성적인 탐구는 믿음보다 앞서가거나 믿음을 훼방해서는 안 되고, 도리어 믿음을 뒤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서 측량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고 인간들의 탐구에 쉽게 포착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일들은 기이하고 인간의 언어로 모두 표현할 수 없다.
-끝-
3. 나가면서
중세의 고전을 읽어오면서 지금까지의 책들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책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세적 신비주의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지나치게 신비주의를 추구하거나 관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아퀴나스처럼 집요하게 철학적 사유방식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읽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건전하고 바른 신앙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책 속의 내용은 지나치게 세상과 결별하고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의 삶은 현실에서의 경건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전에 신비주의자들이 현실에 과도하게 집착했음에도 관상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중세 교회사를 집필한 R.W. 서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며 아쉬워합니다.
“세상을 등지지도 않았고 세상에 몸을 던지지도 않았다. 다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투쟁들에서 피신했을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상생활을 훌륭히 해나간 모범적인 사람들이었는데도 폭풍과 같은 도시 생활에서 물러 나와 힘써 추구했던 삶을 세상에 소개할 만한 책은 한 권밖에 내놓지 못했다.”
저의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기독교 역사 중에서 최고의 고전을 세 권을 선정하라고 한다면 어거스틴의 <고백록>과 존 번연의 <천로역정> 그리고 중세 시대를 대변하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고를 것입니다. 중세의 신비적 성향을 지니면서도 삶과 신앙을 격리시키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과도하게 상징적으로 해석하거나 이성적으로 추론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이성을 믿음에 굴복시켜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성경을 알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습니다. 분주하고 헛된 야망에 부추김을 당하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맑은 샘물과 같은 청량함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본성과 은총
600여 년 전, 수도사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쓴 책이지만,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수도원 안에 있거나, 세상 안에 있거나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읽어야 할 고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 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도사건 세속인이건, 수도원 안이건 밖이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 켐피스도 ‘본성’과 ‘은총’을 대비시킨 것 같습니다.(35)
본성은 교활해서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걸려 넘어지게 만들고, 속이고, 언제나 자신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은총은 소박하고, 전혀 악을 포장하지 않고, 속이려고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하나님 안에서 최후의 안식을 누립니다.(36)
본성은 죽는 것을 꺼리고, 낮아지는 것을 싫어하고, 지배 받기를 바라지 않고, 복종하기를 거부하거, 쉽게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총은 고난을 자처하고, 육욕과 맞서고, 복종하려고 애쓰고, 패배하고 싶어하고,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37)
본성은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고, 누가 이익을 취하게 되는지 살핍니다. 그러나 은총은 스스로를 위해 도움이 되거나 유용한 것보다는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본성은 수치와 멸시를 두려워하지만 은총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수치를 당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행 5,41). 본성은 여가와 흥미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값싸고 세련되지 않은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은총은 평범하고 겸손한 것을 즐거워하고, 거친 것을 비난하지 않고 낡고 기운 옷이라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본성은 일시적인 것들을 존중하고, 세상적인 이익을 즐거워하고, 손실을 슬퍼하고, 상처를 주는 말에는 예외 없이 화를 냅니다. 그렇지만 은총은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고, 세상적인 것들을 멀리하고(고후 4,18), 손해를 볼지라도 괴로워하지 않고, 기분 나쁜 말에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38)
본성은 육신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외적인 위로를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은총은 하나님에게서만 위로를 구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너머에 있는 더할 수 없는 선한 것을 즐거워하고 싶어 합니다.(39)
본성은 스스로의 이익과 도움을 위해 모든 것을 조종합니다. 본성은 보수를 받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은총은 하나님 이외에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본성은 높은 지위와 좋은 출신 배경을 높이 사고, 권력을 잡은 사람에게 미소 짓고, 부자에게 아첨하고, 자신과 비슷한 것들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은총은 원수까지 사랑하고, 높은 지위나 좋은 출신 배경에 개의치 않습니다.(40)
본성은 부족하고, 어려움에 처하면 바로 불평합니다. 은총은 언제나 부족함을 견뎌냅니다. 본성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신을 내세우려고 애쓰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은총은 모든 것을 그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돌립니다.(41)
그렇다면 은총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토마스는 “타고난 재능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똑같이 허락되지만 은총과 사랑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에게 주어진다.”(42)고 합니다. 그러므로 은총을 간구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가운데 은총을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지요.(43)
문은 두드려야 열리듯이, 은총은 찾는 이에게 주어지니, 본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은총을 찾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수도원 안에서나 밖에서나, 수도사건 세속인이건 마찬가지이겠지요.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
1. 토마스 아 켐피스의 생애
토마스는 1380년 라인강 하류 켐펜에서 요한과 겔트루테 해멜켄(해멜켄은 ‘작은 망치’란 뜻)의 아들로 태어나 1471년 7월 25일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그는 독일의 신비 사상가이자 의도치 않았지만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데보티오모데르나(Devotio moderna)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공동생활형제단이 운영하는 더벤터의 학교에 보냅니다. 화란(네덜란드)에 있는 더벤터는 타락한 수도원과 교회와 다르게 경건생활을 통해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의 형이었던 요한은 아그네스산 수도원에서 부원장으로 있었습니다. 당시 규칙에 의하면 형제가 동일한 수도원에 함께 머무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두 형제의 바르고 온유한 성품은 모두에게 인정되어 함께 머물도록 허락이 됩니다. 그곳에서 청빈, 순결, 순종 서약을 하고 1413년 33세의 나이로 사제 직분을 받게 됩니다. 1425년에는 부원장으로 임명되었고, 새로운 수도사들을 훈련시키는 일도 맡게 됩니다. 수도원의 사무장도 맡게 되지만 그에게 행정적 재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엽, 중세는 그야말로 흑 역사였습니다.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감금되다시피 하면서 프랑스 국왕의 꼭두각시 노릇을 합니다. 1377년 그레고리 11세가 로마로 귀환하면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교황청의 수모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황청에 로마로 옮겨가자 프랑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는 것에 반발해 프랑스 추기경들이 콘클라베 무효를 선언하고 탈퇴하여 '대립 교황'을 세우게 됩니다. 새로운 대립 교황은 아비뇽에 두어 두 명의 교황이 있게 됩니다. 피사 공의회에서 다른 교황을 세우게 되면서 세 명의 교황이 있던 적도 존재합니다. 토마스가 활동했던 시기는 중세의 종말을 알리는 교황의 붕괴와 도덕적 타락이 극심한 시기였습니다.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마르티노 5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하여 서방교회의 분열은 막을 내리지만 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중세가 무너지는 여진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시기를 살아갔던 토마스는 새로운 종교적 운동이 필요함을 체감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데보티오모데르나(Devotio moderna)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공동생활형제단은 부유한 상인이었던 헤르트 드 흐루트가 세속적 생활을 정리하고 공동체를 설립하면서 시작됩니다. 처음 시작은 비공식적 평신도 운동이었습니다. 1392년 토마스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한 이 운동은 집단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의 거룩한 열심에 대한 결심이었습니다. 운동은 점점 확산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옛 사도들을 본받아 경건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공동생활형제단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작은 공동체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중세의 신비주의가 지나치게 현실을 배격하고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비현실적 신앙에 몰두하는 것에 반대해 현실 속에서 신비와 거룩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이 후일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특징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루터가 기도원을 나와 세속에서 거룩을 추구하고, 칼빈이 소명을 세상 속에서의 ‘직업’과 연결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수도원이 몸담고 있던 위트레흐트 시민들과 교황과의 갈등으로 인해 토마스는 형과 함께 1429년 6월 11일, 히링겐 부근의 구넨케르크 수도원으로 옮겨 갑니다. 이 일로 형 요한은 건강이 나빠져 3년 후에 죽게 되고 심각한 영혼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 때 속세를 떠나라는 책의 내용은 지리적이고 공간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1448년 그는 부원장의 자리에 다시 선출되고 20년 동안 학생이자 상담사, 필사자 및 저자로 살아갑니다. 1471년 6월 25일, 마침내 토마스는 주님의 품에 안깁니다. 그의 나이 91세, 종교생활 63년째, 수도생활 58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 중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기였습니다. 그러나 어두울수록 아침은 가까워 오는 법, 종교개혁의 여명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은 어두운 시대 속에서 개혁과 거룩의 기치(旗幟)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사상의 씨앗을 뿌린 것과 같았습니다. 그가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구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를 붙임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됩니다. 이제 토마스 아 켐피스의 거룩한 열정이 스민 <그리스도를 본받아>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중요한 대목만을 직·간접적으로 옮깁니다. 박문재의 번역을 주인용 서적으로 삼았고, 필요에 따라 다른 번역자의 글도 첨가하였습니다.
2. 요약
[책은 4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1권은 25장, 2권은 12장, 3권은 59장, 4권은 18장으로 나누었습니다. 1권에서는 ‘영적 삶에 유익한 권면들’이란 주제로 영적 삶이 무엇인지 다룹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혹적인 부분입니다. 2권은 ‘내면의 삶에 관한 권면들’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권은 ‘내적 위로’라는 제목으로 세상 속에서 평안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권면합니다. 마지막 4권은 ‘성찬에 관한 경건한 권면’이며, 성찬에 담긴 영적 의미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의 논문처럼 각권의 제목과 각장의 내용이 명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암울하고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토마스의 생애는 세속에 대한 지나친 배타성을 드러냅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 중세의 신비주의 사상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 속에서 배타적 거룩과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은 타락한 세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했던 토마스의 열정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거나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에 위와 같은 것들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면, 독자는 이 책이 얼마나 귀중한 고전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해럴드 C. 가디너]
1권 영적 삶에 유익한 권면들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참된 빛을 받아서 마음의 온갖 눈먼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삶과 성품을 본받을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지 않고 겸손하지 않아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고상한 말로 늘어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없어져 버릴 부를 추구하고 재물을 의지하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명예, 부귀, 권력, 육체의 욕망을 구하는 것 역시 헛된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 자신이 하찮은 존재인 것을 아는 자는 타인의 칭찬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많이 알고, 많이 소유한다 하여 삶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자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 없이는 아무도 바르게 깨달을 수도 없고 제대로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이 단순할수록 깊은 것들을 깨닫고, 순전할수록 영적인 것에 민감합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그가 진정 지혜자입니다.
지식을 얻으려고 성경을 읽지 말고 진리 자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명성이나 세상적 유익을 위해 성경을 읽지 마십시오. 평안은 욕망을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찾아옵니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를 경계하십시오.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헛된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쾌락적 지식을 추구하며 자신을 상처 나게 합니다.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이유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내적 위로가 아닌 것은 헛된 것입니다. 도리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많이 사랑하는 것이 많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하지 말고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당신은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 이유는 인내하고 수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서는 순례자와 나그네로 지내십시오. 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 땅은 인내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정화시키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날에는 단순한 순종이 탁월한 지혜보다 더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2권 내면의 삶에 관한 권면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내면에 그리스도가 거처할 곳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주님을 신랑으로 영접하십시오. 사람은 쉽게 변하고 힘이 금세 사라집니다. 그리스도만이 영원히 계시며 변함없이 함께하십니다. 내면이 잘 정돈되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괴하고 악한 행위들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모욕과 수욕을 넉넉히 이깁니다. 자신을 변명하려 들지 말고 다른 사람을 먼저 용납하십시오. 사람은 단순함과 순수함이란 두 날개를 가질 때 하늘로 올라갑니다.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이킨 사람은 새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고통은 곱씹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은 무감각합니다. 내면의 삶을 중시하는 사람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먼저 살피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가장 궁핍한 사람이고, 예수님과 함께 잘 살아가는 사람은 가장 부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것은 위대한 예술이고, 예수님과의 교제를 지속하는 법을 아는 것은 위대한 지혜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십시오. 그러면 가장 높은 곳이 당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선물에 감사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적습니다.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자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위로를 받을 것이며 예수님을 찬송하고 감사드리고 싶어 할 것입니다.
3권 내적 위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원해서 세상의 모든 방해물을 떨쳐 내버리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사무엘처럼 ‘주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지자들은 말씀을 전할 수 있었지만 성령을 수여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은 물을 주지만 하나님은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듣는 사람을 깨닫게 하십니다.
[3권 저자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하대어를 사용했고, 그렇게 번역되었습니다.]
사랑은 신속하고 진실하며 경건하고 유쾌하며 온유하고 강하며 인내하고 신실하며 사려 깊고 오래 참으며 용감하고, 결코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그 일에서는 사랑으로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에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다스림이나 지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많이 배워 교만한 것보다 배우지 못하고 겸손한 것이 낫다.
스스로 선하다 생각하며 지나치게 애쓰다가 나중에 선하지 않은 일로 밝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단호하게 육신의 정욕과 맞서 싸워야 한다.
네 자신을 완전히 꺾고서 다른 사람들의 뜻에 복종하고자 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네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낮고 비천한 자가 된 것은 너로 하여금 나의 겸손을 본받음으로써 네 자신의 교만을 이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난을 더 잘 감당할수록, 너는 더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고, 장차 더 큰 상을 받게 된다. 마음과 몸이 고난을 감당할 각오와 준비와 철저히 되어 있다면, 고난을 감당하는 일은 더 쉬워진다.
늘 많이 갖기보다는 적게 갖는 것을 택하라. 늘 가장 낮은 자리를 구하고, 모든 사람 아래에 있어라. 네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늘 바라고 기도하라. 보라, 그런 사람은 평화와 안식의 땅으로 들어간다.
아들아, 호기심을 갖지 말고, 쓸데없는 일들에 관심을 갖지 말라. 이런저런 일들을 너와 무슨 상관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유명한 사람의 그늘에 그늘 아래 들어가고 하거나, 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자 하거나, 사람들의 사랑과 호의를 얻으려고 애쓰지 말라. 그런 것들에 힘을 쓰게 되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많이 어두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생명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계명들을 지켜라.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나를 믿으라. 온전해지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팔아라. 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한다면, 네 자신을 부인하라.
4권 성찬에 관한 경건한 권면
[3권과 비슷하게 4권은 제자의 질문과 주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어는 제자의 질문이고, 하대어는 주님의 대답입니다.
중요한 구절만을 발췌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께서 이 부족하고 가련한 자를 초대하셔서, 주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에 참여하라고 하시니, 그 말씀이
이 죄인의 귀에 너무나 달콤하고 향기롭습니다.
주께서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를 극진히 대해 주시며, 이렇게 지극한 사랑으로
초대해 주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성찬을 통해서 영적인 은혜가 수여되고, 잃어버렸던 영적인 능력이 회복되며, 죄로 흉측해졌던 아름다움이 되돌아옵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거룩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고, 나는 죄인들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죄인입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 앞에서 얼굴조차 들 수 없는 자인 데도, 주께서는 친히 몸을 굽혀 나를 바라보십니다.
주님, 내가 처음 죄를 짓게 된 날부터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주 앞에서와 주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저질러 온 나의 온갖 죄악들과 범죄들을 주 앞에 내어 놓고, 주의 속죄의 제단 위에 올려 드리오니, 주의 사랑의 불로 그 모든 것들을 태우시고 사르셔서, 내 모든 죄의 더러움을 씻어 주옵소서.
경건한 사람은 성찬에 나아와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의 신비를 경건하게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교제를 통하여 보이지 않게 새롭게 세워져 가게 된다.
의문과 논란이 있는 어려운 길들을 버리고, 하나님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명하신 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무 심오한 것들을 천착하고자 하다가 신앙까지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너의 지각을 믿음 아래 종속시켜라.
모든 이성과 본성적인 탐구는 믿음보다 앞서가거나 믿음을 훼방해서는 안 되고, 도리어 믿음을 뒤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서 측량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고 인간들의 탐구에 쉽게 포착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일들은 기이하고 인간의
언어로 모두 표현할 수 없다.
중세의 고전을 읽어오면서 지금까지의 책들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책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세적
신비주의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지나치게 신비주의를 추구하거나 관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아퀴나스처럼
집요하게 철학적 사유방식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읽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건전하고 바른 신앙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책 속의 내용은 지나치게 세상과 결별하고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의 삶은 현실에서의 경건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전에 신비주의자들이 현실에 과도하게 집착했음에도 관상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중세
교회사를 집필한 R.W. 서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며 아쉬워합니다.
“세상을 등지지도 않았고 세상에 몸을 던지지도 않았다.
다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투쟁들에서 피신했을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상생활을 훌륭히 해나간 모범적인 사람들이었는데도 폭풍과 같은 도시 생활에서 물러 나와 힘써 추구했던
삶을 세상에 소개할 만한 책은 한 권밖에 내놓지 못했다.”
기독교 역사 중에서 최고의 고전을 세 권을 선정하라고 한다면 어거스틴의
<고백록>과 존 번연의 <천로역정> 그리고 중세 시대를 대변하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고를 것입니다.
중세의 신비적 성향을 지니면서도 삶과 신앙을 격리시키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과도하게 상징적으로
해석하거나 이성적으로 추론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이성을 믿음에 굴복시켜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성경을 알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습니다.
분주하고 헛된 야망에 부추김을 당하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맑은 샘물과 같은 청량함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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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 켐피스는 라인 강 하류 쾰른 부근의 도시인 켐펜에서 태어났다. 1392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고, 1399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 33세이던 1413년에 사제서품을 받아 신부가 되었다. 1425년에는 수도원의 부원장이 되었고, 경건한 생활로 모범이 되었다.
그는 수도회에서 주로 수련수사[1]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고, 설교와 저술활동에 주력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준주성범(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기도와 묵상> 등이 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 이후, 토마스 아 켐피스가 살았던 수도원은 개혁교회(장로회)로 개조되었다.
준주성범
원래 라틴어로 쓰여진 <준주성범>은 그리스도교 신앙적 교훈에 따라 주제를 나누어 총 4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정신생활에 유익한 훈계’, ‘내적 생활로 인도하는 훈계’, ‘내적 위로에 대하여’, ‘존엄한 성체성사에 대하여’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정신생활에 유익한 훈계’에는 수도자의 순명과 수도생활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1913년도부터 부분이 번역되어 소개되어 오다가, 1923년 장로회의 조선야소교서회에서 이원모 장로에 의해서 <긔독셩범>이란 제목으로 1-4권이 최초 완역되었다. 이후 1924년 성공회의 허세실(Cecil Hedges) 신부에 의해서 <遵主聖範>(준주성범)이란 제목으로 전권이 출판되었으며, 라틴어 원문에 한자본, 일본어본, 영어본을 대조하여 번역되었다. 천주교에서는 해방 후, 1954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윤을수 라우렌시오 신부에 의해 완역되었다.[2]
개신교에서는 마지막 장인 ‘존엄한 성체성사에 대하여’ 부분을 빼거나, ‘성체성사’를 ‘성찬례’로 바꾸어서 번역하였다. 가톨릭에서는 사제만이 성체성사를 집전할 수 있고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몸과 피(성체와 성혈)로 성변화(聖變化)하며, 죄를 지었으면 고해성사를 본 후에 영성체해야 한다고 가르치고[3] 준주성범의 마지막 장도 그러한 내용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신교에서는 사제(성직자) 직분을 인정하지 않으며(만인사제설), 성변화와 성사(聖事)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년 ~ 1471년 7월 25일)는 독일의 가톨릭 수도사제이자 신비사상가이다. 라인강 하류의 켐펜에서 태어나, 92년 동안의 일생을 거의 즈볼러에 가까운 아그네텐베르크 수도원에서 보냈다. 여기서는 네덜란드의 신비사상가 헤르트 호르테 및 제자 플로렌티우스 라데빈스가 창설한 '공동생활의 형제회'(Brethren of the Common Life)가 활동하고 있었으며, 토마스 아 켐피스도 이 회에 가담하여 모범적인 경건한 생활을 보냈다. 이 회는 속세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수도적인 청빈·정결·복종의 생활을 보내도록 노력하고 재산은 공유하며, 스스로의 노동으로 그날그날의 양식을 벌었다. 일은 사본(寫本) 및 인쇄·제본과 교육으로, 특히 연소자의 교육에 힘을 기울였으며, 후에 에라스무스, 니콜라우스 쿠사누스 등을 배출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회와는 달라서 자신의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신비주의의 조용한 실천활동이 강조되고 있다. 그보다 더 경건한 사람은 없다는 말까지 들은 토마스 아 켐피스는, 1425년 이후 부원장으로서 후진 지도에 진력했다. 그래서 후진 지도를 위한 지도서를 몇 가지 썼는데, 그 중 <준주성범>, 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기독교 세계에서 널리 애독되는 책이 되었다.
1725년에 웨슬리는 온전한 거룩을 향한 구도자적 자세로의 전환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해였다. 이 때 그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더욱 가속화되었다.[1]
- ↑ Kim, Kwang-nyŏl.; 김광열. (2000). 《Kŭrisŭdo ane innŭn kuwŏn kwa sŏnghwa》. Sŏul: Ch'ongsin Taehakkyo Ch'ulp'anbu. 117쪽. ISBN 89-8169-156-8.
미즈노 겐조
시인 미즈노 겐조(1937~1984)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산과 들을 뛰어다닌 건강한 소년이었지만, 그해 여름 홍역이 돌아 감염이 되어 전신마비가 되고 언어의 능력조차 빼앗겨버린 것입니다.
겐조가 열두 살이 된 어느 날, 마을의 한 교회 목사가 겐조의 집에 빵을 사러 왔다가 때마침 겐조를 알게 되어 한 권의 책을 주고 갔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며 자신이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그의 얼굴은 웃음을 찾게 되었지요.
14세에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어 수백 편의 시를 남기고 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눈 깜빡이는 시인 미즈노 겐조(水野源三 , 1937-1984), 그는 조용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산과 들을 뛰어 다니는 건강한 소년이었지만, 그해 여름 홍역이 돌아 겐조도 감염되고 말았다.
고열이 내리고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이미 그 전의 겐조가 아니었다.
전신이 마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 조차 빼앗겨버린 것이었다.
이때부터 겐조의, 그리고 그 가족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겐조가 열두살 나던 어느 날, 마을의 한 교회 미야오 목사가 겐조의 집에 빵을 사러 왔다가 때마침 겐조를 알게 되어 한권의 책을 주고 갔는데, 그것은 성경이었다.
처음 읽어보는 성경. 소년 겐조에게는 자신을 몰입시키는 하나의 세계였다.
매일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어나가는 동안 겐조의 사고방식은 변화되고, 자신이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여 그 얼굴은 날로 밝아져갔다.겐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삶의 주관자로 마음에 영접했다.
그 후의 겐조는 더욱 변화되어갔고,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면서 그의 얼굴은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써 겐조는 누구에게나 만면의 웃음을 지어보이곤 했다.몸이 부자유스럽고, 말조차도 하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시를 짓게 되었을까?
그 계기가 된 것은 겐조를 진찰하던 의사가 "[예]라고 대답할 때는 눈을 감으라"는 주문을 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겐조의 어머니는 이것을 단순한 대답뿐만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적용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물(水)을 뜻하는 일본어인 みず(미즈)를 찾을 경우, 오십음도(일본의 가나 문자를 순서대로 배열한 도표)를 사용하여 그의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아행(あ行)부터 차례대로 옆으로 짚어가면 아-카-사-타-나-하-마-야-라-와(あ-か -さ-た-な-は-ま-や-ら-わ)의 마(ま) 부분에 와서 겐조가 눈을 깜빡이면, 거기서부터는 밑으로 짚어가며 마-미-무-메-모(ま-み-む-め-も)의 미(み) 부분에 와서 또 한 번 눈을 깜빡이는 방식으로 한자 한자의 글을 찾으며 문장을 만들어 가는 엄청나게 고된 작업이었다.
이렇듯 정말 엄청난 작업을 통해 그때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겐조의 내면 세계가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눈 깜빡임을 통해서 수백편에 이르는 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미즈노 겐조가 [눈깜빡이는 시인]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시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찬미와 기쁨이 가득 넘쳐흐르고 있다.미즈노 겐조의 이야기는 NHK에 특집으로 다뤄졌고, 그의 시집은 일본 문단의 걸작이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즈노의 시집 중에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해도 부족할 텐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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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는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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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즈노 겐조 출판 선한청지기 발매 2014.10.15.
몸이 부자유스럽고, 말조차도 할 수 없는 그가 어떻게 시를 짓게 되었을까요?
겐조를 진찰하던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겐조 씨! '예'라고 대답할 때는 눈을 감으세요.
겐조의 어머니는 일본의 오십음도(일본의 가나 문자를 순서대로 배열한 도표)를 차례대로 짚어가면서 눈 깜빡이는 방식으로 한자 한자의 글을 찾아 문장을 만들어 내어 수백 편에 이르는 시가 탄생된 것입니다.
너무나도 공감이 되는 시 몇 편을 올립니다.
"오늘 하루도"
신문 냄새에 아침을 느끼고
냉수의 시원함에 여름을 느끼고
풍경 소리의 서늘함에
저녁을 느끼고
개구리 소리가 드높아
밤을 느끼네
오늘 하루도 끝이구나
한가지 한가지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가을
사과가 익어 가는 가을에 몸이 불편해졌고
코스모스가 필 즈음
처음으로 예수님 이야기를 들었고
성경을 읽었으며
귀뚜라미가 우는 밤
구원의 기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산다
하나님의 크신 손안에서
달팽이는
달팽이답게 기며
반딧불 꽃은
반딧불 꽃답게 피고
청개구리는
청개구리답게 울며
하나님의 크신 손안에서
나는 나답게
산다
앨범
앨범 속에서
부모님의 음성이 들린다
시집 간 동생의
행복을 바라는 말
어린 조카딸을
달래는 소리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뻐하는 노래
지체장애인 나를
염려하는 기도
앨범 속에서
부모님의 음성이 들린다
엄마 고마워
나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슬픔 고통을
함께해 주셨던
엄마
겐조를 천국으로 보낸 후에
가고 싶다고
언제나 말씀하셨던
엄마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고
이른 봄 아침
천국으로 가 버리신
엄마
아버지 2
예순이 다 된 아버지
자동차 학원에
나가셨다
면허증을 받았지만
한 번도 운전하지 못하시고
하늘로 불려가 버리고 마셨다
일기장에는
면허증을 따서
겐조를 태우고 싶다고
쓰여있었다
단 하나만 변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신세를 지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서른한 해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으로 불려 갈 때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만
변했습니다
3년 전부터
신세를 지는 분이
어머니에서 제수씨로
변했습니다
부수고 부수고 부수 소서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는 것임에도
자기 홀로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부수고 부수고 부수 소서
하나님께 깊이 사랑받고 있음에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진실로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을
부수고 부수고 부수 소서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았음에도
남의 작은 잘못에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부수고 부수고 부수 소서
그렇지 않아
걷는 것은 나 혼자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나의 약함을 알고 계시는
주 예수가 이미 함께 계셔
괴로워하는 건 나 혼자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나의 약함을 알고 계시는
주 예수가 이미 함께 계셔
기도하는 건 나 혼자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나의 바람을 알고 계시는
주 예수가 함께 기도하셔
사랑의 손
건강하게 보낸 날들도
아픔에 괴로워했던 날들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손 안이라
기쁨을 노래하는 아침도
눈물을 흘리는 밤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손 안이라
기세등등한 때도
후회투성이 일 때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손 안이라
해바라기
마당에서
꺾어 온
크고도 큰
해바라기 꽃이
작고 작은 일로
트집 잡고 있는 내 마음에
말을 건다
하나님의
크고 크신 사랑을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병으로 쓰러졌던 그때에는
눈물이 흐르고 슬펐지만
'영의 아픔을 치유하시는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라는 걸 깨닫고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습니다친구에게 외면당하는 그때에는
밤에 잠들지 못할 만큼 원망스러웠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친구 되신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라는 걸 깨닫고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습니다실수했다는 그때에는
마음이 혼란스러웠지만
'모든 것을 속죄하신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라는 걸 깨닫고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신문 냄새에 아침을 느껴
차가운 물맛에 여름을 느껴
풍경 소리에 선선한 해 질 녘을 느껴
개구리 소리에 졸음을 느껴
오늘 하루도 끝나지 않았어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껴
그저 감사할 뿐
나는
가족
사람
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주님
사람
가족의 풍성한 사랑에
그저 감사할 뿐
그저 감사할 뿐
울지 마세요
어머니를 잃은 나를 위해서
울지 마세요
더 이상 울지 마세요
마음속은
이상할 정도로
잠잠합니다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계셔 주기 때문일까요
하나님
33년 전에
뇌성마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닿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감사와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주님을 슬프게 한 것은 아닐까?"
그때 그 사람에게
사랑 없는 태도나 말이
주님을 슬프게 한 것은 아닐까?
그때 그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였던 생각, 소원이
주님을 슬프게 한 것은 아닐까?
그때 그 일로 가슴 속에 일어난
불안이나 투덜거림이
주님을 슬프게 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아"
걸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걸어가신다.
고민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고뇌하신다.
기도드리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기도하신다
"하나님의 진실은 변함이 없다"
오는 해도 오는 해도
상큼한 첫 여름에는
은방울꽃이 피듯,
하나님의 진실은 변함이 없다.
오는 해도 오는 해도
하늘 맑게 갠 가을에
용담꽃이 피듯
미즈노 겐조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열병을 앓고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고 ,언어 능력도 상실하고 말았지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은 오직 눈 깜박임 밖에 없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 있던 그에게 어느 날, 미야오 목사님을 통해 생명의 빛이 비추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시력과 청력은 잃지 않았기에, 그는 그때부터 성경을 읽고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랑과 은혜를 외부에 나누고 싶어 했던 겐조. 오직 눈 깜박임으로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기에, 벽에 붙인 오십음도표 글자를 어머니가 차례대로 가리키면, 자신이 원하는 글자에 이르렀을 때 신호를 보내 한 글자를 모으고, 다음 글자를 모아 단어를 만들고 결국엔 하나의 문장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감사 뿐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시(時)로 쏟아냅니다. 겐조의 옆에는 항상 그와 함께 기뻐하고, 울어주고, 기도해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어머니는 병으로 아들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절망적인 상황에 휩싸여 있었지만,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시를 통해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에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떠난 이후 겐조의 삶에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겐조 씨의 성경은 어린 조카딸이 한 장 한 장 넘겨주었고, 겐조의 눈 깜빡임을 해독하고 기록하는 일은 제수씨가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시를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감사 뿐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시(時)로 쏟아냅니다. 겐조의 옆에는 항상 그와 함께 기뻐하고, 울어주고, 기도해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어머니는 병으로 아들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절망적인 상황에 휩싸여 있었지만,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시를 통해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에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떠난 이후 겐조의 삶에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겐조 씨의 성경은 어린 조카딸이 한 장 한 장 넘겨주었고, 겐조의 눈 깜빡임을 해독하고 기록하는 일은 제수씨가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시를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분명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입니다.
전신마비 장애인, 눈을 깜박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즈노 겐조 씨가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가 있었을까요?
죽고 싶어서 흘린 그의 눈물이,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바뀌자, 기적 같은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매일 감사 거리를 찾으며 나 답게 살아야겠어요.
미즈노 겐조는 47년의 짧은 생애를 마치고 198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시를
통해 평안과 감사를 노래했습니다. 몸이 자유롭지 못했기에 늘 집 안에 갇혀 살아야 했지만 제한된 환경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가족의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아픔도 감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을 통해
‘감사의 조건’을 놓쳐버리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내가 가진 행복을 깨달을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시인 미즈노 겐조의 감사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라고 괴테가 말했다.
그만큼 감사하는 생각과 언행이 인간의 삶속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는 말이다.
일본에
미즈노 겐조라는 시인이 있다.
이 사람은 11살에 뇌성마비가 와서 전신이 흐물흐물한 해파리처럼 퍼져서, 말도 못하고 수족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유일하게 제 기능을 나타낼 수 있는 부위는 눈뿐이었다. 그는 검은 눈썹에 총기가
있는 눈동자를 가진 눈을 스스로 깜빡 거릴 수 있었는데, 그것이 그가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자리에 누워
꼼짝 못하는 전신마비 환자나 다름이 없었지만, 눈꺼풀만큼은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마저 안
되었다면, 그는 숨은 쉬지만 죽은 자나 별반 다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즈노 겐조는 모친의 도움을 받아 눈을
깜빡거리면서 한 자씩 글자를 선택하는 일을 반복했다.
모친이 글자판을 벽에 걸어놓고 막대기로 한 자씩 글자들을 훑어나갈 때,
미즈노가 눈을 깜박하면, 그걸 신호로 해서 모친이 글자를 종이에 받아 적곤 했다.
그런 방법으로 그는 아름다운 시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미즈노 겐조는 고통 속에서 창작한 시집을 세상에 발표했는데, 그 시집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NHK 방송에서도 그 내용을 특집으로 보도했다.
깜빡거리는 눈으로 한 자씩 써내려간 그의 시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네
권의 시집들 중에서, 첫 번째로 그가 출간한 시집에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 12:9)’라는 시가 있다.
되짚어보면
그러한 최악의 조건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미즈노 겐조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에게 족하다고 여길 수 있었던 건지,
다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최악의 바닥상태에 놓여있는 처참한 자신의 신체적 조건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착하고 겸손하며 흔들림 없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될 때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눈 깜빡이는 시인 미즈노 겐조(水野源三 , 1937-1984), 그는 조용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산과 들을 뛰어 다니는 건강한 소년이었지만, 그해 여름 홍역이 돌아 겐조도 감염되고 말았다. 고열이 내리고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이미 그 전의 겐조가 아니었다. 전신이 마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 조차 빼앗겨버린 것이었다. 이때부터 겐조의, 그리고 그 가족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겐조가 열두살 나던 어느 날, 마을의 한 교회 목사가 겐조의 집에 빵을 사러 왔다가 때마침 겐조를 알게 되어 한권의 책을 주고 갔는데, 그것은 성경이었다.
처음 읽어보는 성경. 소년 겐조에게는 자신을 몰입시키는 하나의 세계였다. 매일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어나가는 동안 겐조의 사고방식은 변화되고, 자신이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여 그 얼굴은 날로 밝아져갔다.
겐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삶의 주관자로 마음에 영접했다.
그 후의 겐조는 더욱 변화되어갔고,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면서 그의 얼굴은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써 겐조는 누구에게나 만면의 웃음을 지어보이곤 했다.
몸이 부자유스럽고, 말조차도 하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시를 짓게 되었을까?
그 계기가 된 것은 겐조를 진찰하던 의사가 "[예]라고 대답할 때는 눈을 감으라"는 주문을 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겐조의 어머니는 이것을 단순한 대답뿐만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적용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물(水)을 뜻하는 일본어인 みず(미즈)를 찾을 경우, 오십음도(일본의 가나 문자를 순서대로 배열한 도표)를 사용하여 그의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아행(あ行)부터 차례대로 옆으로 짚어가면 아-카-사-타-나-하-마-야-라-와(あ-か -さ-た-な-は-ま-や-ら-わ)의 마(ま) 부분에 와서 겐조가 눈을 깜빡이면, 거기서부터는 밑으로 짚어가며 마-미-무-메-모(ま-み-む-め-も)의 미(み) 부분에 와서 또 한 번 눈을 깜빡이는 방식으로 한자 한자의 글을 찾으며 문장을 만들어 가는 엄청나게 고된 작업이었다.
이렇듯 정말 엄청난 작업을 통해 그때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겐조의 내면 세계가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눈 깜빡임을 통해서 수백편에 이르는 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미즈노 겐조가 [눈깜빡이는 시인]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시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찬미와 기쁨이 가득 넘쳐흐르고 있다.
미즈노 겐조의 이야기는 NHK에 특집으로 다뤄졌고, 그의 시집은 일본 문단의 걸작이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즈노의 시집 중에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해도 부족할 텐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쓴 시 몇편을 소개한다.
내가 만일 괴롭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일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모든 형제자매가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신문 냄새에 아침을 느끼고
냉수의 시원함에 여름을 느끼고
풍경 소리의 서늘함에
저녁을 느끼고
개구리 소리가 드높아
밤을 느끼네
오늘 하루도 끝이구나
한 가지 한 가지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삶
하나님의 크신 손 안에서
달팽이는 달팽이답게 가고
닭장 들꽃은 닭장 들꽃답게 피고
청개구리는 청개구리답게 울고
하나님의 크신 손 안에서
나는 나답게 산다
평화
나는
나라도 말하는 언어도 생각하는 일도
각각 다른 수십억의 인간들이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오도록
아침에도 기도 드리고
저녁에도 기도 드린다.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기도 드려 구하세요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기도 드려 결정하세요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주님의 뜻대로만 행하세요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악마의 유혹에 조심하세요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주님의 은혜와 뜻을 찬양하세요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음에
사랑 어린 발길로 걸어오시는
주 예수님 영접을 위하여
준비를 서두르세요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음에
사랑 어린 음성으로 나직이 부르시는
주 예수님 영접을 위하여
지금 곧 문을 여세요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음에
사랑 어린 눈길을 보내시는
주 예수님 영접을 위해
모든 일을 다 끝마치세요
나의 마음 속에
나의 마음 속에 소망이 있네
그리스도가 주셨다네
근심 중에 있어도 변함이 없네
아직 안 보이는걸
기다리는 소망
나의 마음 속에 기쁨이 있네
그리스도가 베풀어 주셨다네
세월 흘러 간데도 소멸치 않네
세상에서 얻지 못할 기쁨 있다네
내가 전진해나갈 한 길이 있네
그리스도가 활짝 열어 주셨다네
어둠이 드리워도 헤매지 않네
저 천국에 이르는 기쁨이 있는 그 길
잊어버리기 전에
지금 들은 것
본 것
마음에 느꼈던 것
잊어버리기 전에
사라지기 전에
주님의 아름다운 일을
찬양하는 시를 만든다.
그렇지는 않아
걸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걸어가신다.
고민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고뇌하신다.
기도드리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기도하신다.
미즈노 겐조(水野源三. 1937~1984)
뇌성마비 장애를 가졌던 그는, 일본 나가노현에 埴科郡 坂城 출생하였고, 14세 때 세례 받고 크리스천이 되어 18세 경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수백편의 시를 남기고, 향년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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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로이드 존스 (Martyn Lloyd-Jones, 1899-1981) 목사는 누구인가?
20세기 최고의 설교자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辨證家)이며 문필가(文筆家)는 영국인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 1898-1963) 다. 그리고 20세기 최고의 복음 가수는 미국인 흑인 여(女) 가수인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1911-1972)이다. 이것은 나의 주장이 아니다. 이렇게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루이스를 사탄이라고 험담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나 그의 여러 책을 읽으면 다른 이들이 쓴 책들이 시시하게 여겨진다.
기독교 평신도이면 누구나 위에서 언급한 존스의 설교와 책을 만나고, 루이스의 책을 읽어야 하며. 잭슨의 복음 성가를 들어 봐야 한다. 나는 로이드 존스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그에 관해 글을 쓴다. 이 글은 존 피터스가 지었고, 서문강이 번역했으며, 2007년 출판사 지평원이 펴낸 책, ‘마틴 로이드 존스 평전(評傳)’과 이안 머리가 지었고, 김귀탁이 번역했으며, 2010년 출판사 부흥과개혁사가 펴낸 ‘은혜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 (이 책은 그의 전기(傳記)이다)를 읽고 쓴 글이다. 위 두 사람이 저술한 책들에 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그들이 어떤 책인가 금방 알 수 있다. 잭슨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그녀는 노래는 참 좋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1899년 영국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웨일스의 카티프에서 태어났다. 삼 형제 중 둘째다. 그는, 영락교회와 국내와 국외(國外)에 600개의 교회를 세운 한경직 (1902-2001) 목사보다 3년 먼저 이 세상에 왔는데, 그는 1963년, 그의 나이 82세 때 소천(召天)했다. 그는 스펄전 목사가 이 세상을 떠난 지 7년 후에 이 세상에 왔다. 그가 태어나고 2일 후 무디 목사가 이 세상을 떠났다.
로이드 존스는 부모와 두 형제와 함께 웨일스에서 자랐다. 가정 형편은 가난했다. 이 가난이 그의 가족이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던 1914년에 런던으로 이사하게 했다. 이 해에 그는 성 바돌로매 병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한다. 이 병원은 당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이었다. 후에 그의 부인이 된 베단도 역시 이 해에 웨스트민스터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1921년에 왕립 의과대학 회원 자격과 왕립(王立) 내과 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약학사 자격도 취득한다. 그는 신학에 관한 학위는 없다. 정규 신학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는 가정에 태어났는데, 이런 가정적인 배경과 왕성한 독서와 뛰어난 두뇌가 설교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20세 중반에 회심(回心)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의사 자격을 취득한 1921년 그해에 당시 영국의 최고 의사로서 왕의 주치의(主治醫)였던 토머스 호더 경(卿)의 주목을 받고 그의 조수가 된다. 그는 1925년 왕립(王立) 의학협회가 주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M. R. C. P.라는 학위를 받는데, 그가 의학계에 계속 머물러 있었더라면 부와 명예가 그를 따랐을 것이고 유명한 그리고 성공한 의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로이드 존스는 1926년 그의 고향인 웨일스의 한 교회에서 설교했는데, 그 교회가 그의 설교에 매혹되어 그가 설교한 지 22일 만에 그 교회의 목사가 되어달라는 청빙을 받았다. 그는 이 청빙을 수락하고 의사의 직업을 버리고 목사의 길로 간다. 이때 그의 나이 27세. 뛰어난 의사로 촉망받던 의사, 연봉을 최소 2,500파운드를 받을 수 있었는데도 연봉 225파운드에 허름한, 노동자가 사는 집을 받고 목사가 되었다. 그가 의사의 직업을 버리고 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의 스승과 동료들은 매우 놀랐다.
로이드 존스는 그의 고향 웨일스에서 1938년까지 12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고, 런던의 중심가 웨스트민스터 채플(영국에서는 국교인 성공회에 소속되지 아니한 교회를 채플이라고 부른다)에서 1968년까지 30년간 목회자로 일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80대가 될 때까지 영국에서 순회하면서 설교를 계속했다. 미국에서도 설교했다. 그는 영국의 두 교회에서만 40여 년을 설교자로, 목회자로 섬겼다. 그는 은퇴 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교수로 연속 강좌를 하기도 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 평전’을 쓴 존 피터스는 로이드 존스가 그의 생애는 “먼저 설교에 바쳐졌다”라고 하면서 그를 설교자(說敎者)와 설교가(說敎家)로 묘사하고 있는데, ‘은혜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를 저술한 이안 머리는 존 피터스의 묘사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그를 설교자이면서 목회자(牧會者) 자라고 묘사한다. 사전에 따르면, 설교자와 설교가를 어떤 일의 견해나 종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사람이고, 목회자는 교회 안팎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여 신도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전적인 의미에서 볼 때, 로이드 존스를 목회자로 부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그는 예배가 끝나면 항상 광고를 통해서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를 찾아오라고 하였고 모든 사람을 언제나 직접 만나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했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를 ‘20세기 최고의 설교자’, ‘설교자들의 황태자’, ‘최상의 설교자’, 20세기의 사도’라고 부르는데, 그의 전기를 쓴 이안 머리는 ’종교 개혁 이후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던 조지 휫필드(G. Whitefield), 스펄전(C. H. Spurgean) 그리고 찰머스(Chalmers)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캔달 박사는 로이드 존스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며, 의심 할 여지 없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설교자이다”라고 평했다.
신학교육을 전혀 받지 아니했던 스펄전도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그의 신도 5,000명의 이름을 일일이 다 기억했고, 그들의 개인사(個人事)를 다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로이드 존스의 기억력도 뛰어나서 성경 전체를 다 꿰들어 알고 있어서 그의 지식은 백과사전적이었다, 그의 기억력은 5년 전에 만난 사람들의 얼굴뿐 아니라 대화 하나까지 다 기억할 정도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신학 수업을 받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성경의 근본을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뛰어났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지 단순하게 설교자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라고 말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설교했고, 지금도 설교하고 있다. 만일 하느님의 은혜가 허락한다면, 계속 설교할 것이다. 가난하고 지치고 주저하는 영혼을 그리스도의 집으로 인도하여 그 임금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설교는 큰 신비입니다. 가장 신비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설교가 신비라고 밝히는 그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참된 설교는 하나님의 영이 역사한 결과이고 여기에 정확히 신비가 시작됩니다”라고 말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설교는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것을 조종하지 못한다고도 주장했다.
그가 설교할 때, 신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는 설교는 설교 현장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청자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있을 때는 전혀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의 설교는 한 번만 들어도 10년이 지난 뒤에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그런 명설교였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의 전기 작가 이안 머리는 로이드 존스가 휫필드와 같이 “강단에서는 사자를 닮았고, 강단 밖에서는 어린양을 닮았다”라고 평한다.
전기 작가 이안 머리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가 권위 있었고, 성경적이었고, 분석적이었고, 설득력이 있었고, 실천적이었고 무엇보다 성령 충만하였다고 증언한다. 로이즈 존스는 참으로 비범해서 복음이 가져다주는 죄로부터의 자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소망에 대하여 어쩌나 담대하고도 확신 있게 증거 하는지 정말 놀라웠다고 기술한다. 예리한 그의 지성과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고, 성경적인 그의 탁월한 그의 능력이 설교에서 찬란한 꽃을 피웠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설교였고, 청자들에게 주의의 산만을 허용하지 않는 설교였으며, 언어적으로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도 영향을 준 설교였으며, 그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에게, 특히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으로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는 그의 설교에 심한 혐오감과 반감을 품고 다시는 그 교회에 오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리어 교회를 다시 찾게 되는 이들도 있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저 시골 먼 곳에서 런던의 그의 교회를 방문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의 교회, 웨스트민스터 채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를 갈망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구약성경이 현대 기독교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고 무시하는 풍조가 난무하던 당대에, 로이드 존스는 이런 풍조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구역 성경은 신약성경과 마찬가지로 전적인 신적 계시로 보았다. 그는 구약성경이 인간의 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계시하고, 하나님 없는 삶은 절대로 무익하며,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관한 책이라고 강조하면서 설교할 때 신약성경과 같은 비중으로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설교했다. 그의 설교는 철저하게 성경에 기초했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는 이들은 “로이드 존스가 지나치게 성경에 의존함으로써 불필요한 요구로 청자들을 괴롭혔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로이드 존스는 세상의 조류에 맞서면서 부와 명예를 멀리한 목회자로 살았는데, 일생 단 한 번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했고 단 한 번 TV 방송에 출연했을 뿐이다. 1970년대에 세계 50개 국가에서 백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집을 읽었는데, 그의 나이 70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에베소서 강해와 로마서 강해가 책으로 출판되었다.
로이드 존스는 가족을 크게 사랑한 사람이었다. 두 딸과 의사인 그의 아내를 크게 사랑했다. 그가 일생에서 제일 잘한 일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고, 두 번째로 잘한 일은 그의 아내와 결혼한 일이라고 그는 술회(述懷)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것은 그의 가족을 두고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었다. 그가 임종이 가까웠을 때 말을 하지 못하고 필담으로 가족과 대화했는데, 마지막 대화가 그의 아내한테 한 말이, “여보 이제 하나님께 내가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아요, 나 하나님께 가오"였다.
로이드 존스는 의사란 직업을 버린 것을 칭찬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 칭찬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큰 것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설교자로서의 칭찬도 받아들이지 않고, “저는 설교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라고 말하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삶 자체가 설교의 한 부문이 되었는데, 그는 위대한 그리스도인답게 잠자는 중에 운명(殞命)했다.
로이드 존스는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돼라"라는 바울 사도의 명령을 따라 일생을 산, 역사상에 나타났던 가장 위대한 그리고 포괄적 목회 사역자 중의 하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로이드 존스의 기도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있는데, 그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항상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늘 그의 신도들에게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다음의 두 이야기는 로이드 존스 목사가 그의 설교 중에 직접 밝힌, 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이야기와 다시금 헌신한 사람들의 예 중의 하나이다. 존 피터즈가 지었고, 서문강이 옮기었고, 2007년 12월 15일 출판사 지평원이 펴낸 마틴 로이드 존스 평전(評傳)의 57쪽과 58쪽에 있는 글을 그대로 여기에 적은 것이다. 이 글에서 ‘저’는 로이드 존스 자신을 말한다.
이야기 1:
“한번은 제가 준비한 설교의 반도 못 하고 강단에서 내려와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일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일이 그렇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어떤 의미에서는 다음 주일 설교를 이미 준비한 셈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일 아침에 저는 그전에 했던 설교 중 하지 못한 나머지 부분을 한 편의 설교로 구성하여 설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하면서 특별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날 예배를 마쳤을 때, 한 사람이 제게 와서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목사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 목사가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데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동하여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먼 데서 겨기까지 오게 하신 것은 바로 이 특별한 설교를 듣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확신하였습니다.저는 「믿음의 시련」(Faith on Trial)이라는 저의 책 서문에 이 일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복할 만큼 이 일은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지금도 저는 그 사람의 생각이 옳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만일 제가 지난 주일에 준비했던 이 설교를 끝까지 모두 전해버렸다면, 그분이 그날 들었던 그 설교까지도 이미 전 주일에 다 해 버린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어를 당했고, 그 전 주일에 제가 준비한 설교 분량의 반만 전하도록 허락받은 것입니다. 그 나머지 반은 그다음 주일에 전하도록 보전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처음에 그 점에 대해서 약간 석연치 않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해졌습니다. 우리가 상황을 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
이야기 2:
“저는 가공(可恐)할 죄로부터 회심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된 한 가련한 남자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남웨일즈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불행히도 낙심 자(backslider)가 되었고 죄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와 자녀들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함께 런던으로 도망하였고, 거기서 가진 돈을 모두 써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를 설득하여 돈을 더 뜯어내려고 거짓말을 하고, 자기 아내와 공동명의로 되어 있던 집의 명의를 자기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돈을 얻기 위해서 집을 팔고 아주 먼 고장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섭게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돈도 다 떨어지고 그 여자도 그를 버렸습니다.
그는 너무나 철저하게 비참하게 되고 부끄럽기도 하여 감히 자살하기로 하였습니다. 깊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자신은 자기 가족에게 가까이 갈 권한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웨스트민스터 브리지를 향해 걸어가 자신의 몸을 템스강에 던지기로 단호하게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하여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가련한 영혼이 그 다리에 도착했을 때, 영국 국회의사당 시계탑에서 매시 30분에 치는 종이 울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하였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지금 저녁 예배를 위해 강단에 막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삶을 끝내기 전에 제 설교를 마지막으로 들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약 6분 후 웨스트민스터 채플에 도착했고, 계단을 올라와 복도로 들어서면서 ‘하나님이여 낙심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저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간구가 그가 그날 그곳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이 즉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는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런던 교외에 있는 한 교회의 장로가 되어 오랫동안 탁월하게 섬겼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David Martyn Lloyd-Jones)
| 출생 | 1899년 12월 20일 |
|---|---|
| 사망 | 1981년 3월 1일 |
| 성별 | 남성 |
| 국적 | 영국 |
| 직업 | 복음주의 설교자, 의사 |
데이비드 마틴 로이드 존스(영어: David Martyn Lloyd-Jones, 1899년 12월 20일 ~ 1981년 3월 1일)은 영국의 의사 출신의 복음주의 설교자이다. 존 스토트와 함께 한국교회에 가장 영향력이 많았던 목회자였다.
청년 의사였던 로이드 존스는 40세가 되던 해에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설교자로 활동하였다. 그가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출판한 "목사와 설교"는 명저로 알려져 있다. 로이드 존스는 웨일스학파의 대표적인 회중교회의 목회자였다.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에 대해 불붙는 논리(logic on fire)라고 불렀다. 이는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감상적인 설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과 만나는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열정적인 집중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 “ |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이 주장해야 하고, 또한 알아야 하며, 체험해야 하는 것은 어떤 일들을 하고 안 하는 것들에 대한 일반적인 아이디어나 행위들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는 것만이 우리들의 목표이어야 합니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목표 미달입니다.(복음의 핵심, 132쪽.). | ” |
마틴 로이드 존스는 사회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간증하는 일부 개신교 교회들의 모습들에 대해 "종교오락"이라는 말을 썼다. 즉, 교인이라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게 설교하고 목회하는 종교서비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설교의 의미를 훼손시킬 수 있음을 꿰뚫어본 것이다.
| “ | 간증자로 초대되는 사람들 중에는 해군 제독이나 육군 장성처럼 특별한 직함을 가진 이들도 있고, 야구선수나 연극배우, 영화배우, 가수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설명하고 설교하는 일보다 그런 이들의 간증 듣는 일을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깁니다. 제가 이 모든 것을 ‘오락’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음을 눈치 채셨습니까? 저는 이런 일들이 당연히 오락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설교에 등을 돌리고 이런 오락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설교와 설교자 26). |
” |
로이드 존스는 설교는 신학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설교자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인 신학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설교를 잘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거나, 교인들에게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가르치는 현대교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특별히 조직신학과 교회사는 그의 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1959년부터 1978년까지 웨스트민스터 청교도 연구회( Puritan and Westminster Conferences)에서 19회분을 강연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부으심이 말씀 선포로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령의 불을 끄는 행위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부흥운동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며, 칼빈주의가 만일 메소디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지성주의와 스콜라주의로 흐른다고 경고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신앙고백이 성경을 대체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열광주의 즉 감정 조절이 한되는 상태를 옹호하며, 이것을 칼빈주의자들이 반박한다고 주장하였다.[1]
로이드 존스의 저서로는
- 목사와 설교, CLC
- The Miracle of Grace, 은혜와 기적, 백합출판사, 1987
- 영적 침체와 치유, 이용태 역,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01
- 하나님 나라(복있는 사람)
- 사도행전 강해시리즈(승리하는 기독교 등, 복있는 사람)
- 설교와 설교자(복있는 사람)
- 내가 자랑하는 복음, 복있는 사람, 2008
- 로마서 강해, 기독교문서선교회
- 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서문강역, 생명의 말씀사 2002.
가 있으며, 특히 복있는 사람에서는 개혁주의 신학단체인 진리의 깃발(Banner of Truth)와 계약하여 로이드 존스의 책을 내고 있다.
- ↑ Clark, R. Scott (2008). 《Recovering the Reformed confession : our theology, piety, and practice》. Phillipsburg, N.J. 1381/9975쪽. ISBN 978-1-59638-7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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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Christ-centered Preaching by Bryan Chapell)
"Fallen Condition Focus!" (타락된 상태에 초점!)
2015년 RTS Jackson에 온 Bryan Chapell 교수는 이것을 반복적으로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부드럽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강해설교의 지향점을 차분히 전달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를 강조하는 개혁주의 전통은 필연적으로 강해설교(Expository Sermon)에 대한 강조로 귀결된다. 설교는 성경의 적용이고, 예배의 중심이며, 지역교회의 풍향계다. 그만큼 설교에 대한 고전(古典)들도 많다. 로이드존스의 <설교와 설교자; Preaching and Preachers>, 조엘 비키가 엮은 <타오르는 강단; Pulpit Aflame), 그리고 팀 켈러의 <설교; Preaching>까지 강해설교의 원리와 적용을 세심하게 다룬 서적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미국 칼빈신학교 학장이자 실천신학 교수인 브라이언 채펠 박사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Christ-centered Preaching>은 설교의 준비와 전달에 있어 매우 실용적이다. 책은 크게 (1) 강해설교의 원리, (2) 강해설교의 준비, 그리고 (3) 그리스도 중심 메시지의 신학,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 강해설교의 원리
이 부분에서 체펠 박사는 성경본문의 우선성을 말한다. 사실 설교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준비자세는 성경본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적극적인 의뢰다. 또한 그는 설교에 있어서 통일성 있는 원 포인트 설교를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How many things is a sermon about? One!) 하나의 명제(Proposition)를 제대로 전달하라! 그리고 체펠 박사는 그의 독창적인 개념이기도 한 FCF(타락상태초점; the Fallen Condition Focus)를 소개한다.
FCF is the mutual human condition that contemporary believers share with those to or about whom the text was written that requires the grace of the passage for God's people to glorify and enjoy him. (타락상태초점(FCF)이란 오늘날 신자들이 성경본문이 기록될 당시 그 대상이었던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은혜를 공유하는 공동의 인간적 관심사이다.)
Christ-centered Preaching, 50
정의(definition)에서 알 수 있듯이 FCF는 항상 부정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인간공통의 상태다. FCF는 성경본문이 고치거나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체펠 박사가 제시하는 설교론은 본질적으로 변증적(Apologetic)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설교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감추기보다 오히려 극대화해서 설득과 수긍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물론 그 자신이 복음진리의 전달에 있어서 Logos - Pathos - Ethos의 연결고리들을 언급하지만 FCF는 보다 Logos의 영역에 가깝다.
강해설교의 구조는 <설명(Explanation) - 예화(Illustration) - 적용(Application)>의 세 부분의 연결고리로 구성된다. 각 부분의 분량은 본문과 대상에 따라 상이하다. 체펠에 따르면, "설교를 하는데 있어서 구성 요소들의 비율을 결정하는 규칙은 없다.... 종교개혁 지도자들은 듣는 사람의 욕구와 능력에 맞추어 설교하라고 조언했다. [WLC, 159] 이 지혜로운 조언은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거나 명성을 드내기 위해 설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체펠 박사의 조언에 따라 RTS Jackson 재학당시 Preaching Lab에서 각 대지마다 1개씩의 예화(Illustration)를 꼭 첨부할 것을 훈련받기도 했다. 그것은 생생한 심상을 가질 때에 본문과 교리의 의미를 보다 잘 기억하게 되는 청중을 위한 훈련이었다. 예수님과 바울이 몸소 보여주었듯이 대상이 달라지면 설교의 구성과 전달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2. 강해설교의 준비
체펠 박사는 설교 준비를 위한 6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특별히 4번째 질문은 FCF를 확정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1) 본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본문의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 어떤 관심사들 때문에 본문이 기록되었는가?
4) 본문을 기록한 사람 및 그 대상과 우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5) 본문의 진리에 대해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6) 본문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그 다음으로 설교준비의 4단계는 다음과 같다.
(1) 관찰 - (2) 질문(6하원칙, 담화분석; Discourse Analysis) - (3) 관련(청중과의 관련성) - (4) 구성(설교문)
설교의 도입부는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영역이어야 한다. 흥미로운 예화로 시작할 수도 있겠으나 이 설교가 나오게 된 계기나 지향하는 목표, 곧 말씀을 갈망하게 하는 것과 맥락연결과 같은 선행주제(ante-theme)가 적절하다.
3. 그리스도 중심 메시지의 신학
이 부분에서 체펠 박사는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본질적으로 구속적 설교(Redemptive preaching)라고 말한다. 체펠은 제이 아담스(Jay Adams)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당신이 유대교인이나 유니테리언주의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설교를 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설교이다.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설교는 독특해야 한다. 설교를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설교 전체에 구원하시고 성화시켜주시는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것이다. 당신이 전하는 설교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복음적인 설교와 교화적인 설교 모두에 적용된다.... 청중이 성경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자력으로 행할 수 있다는 듯이 그것들을 행하라고 권면해서는 안된다. 청중은 십자가의 구원하는 능력과 성령 안에서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내주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 행하게 하시는 능력의 결과로서 성경이 요구하는 것들을 행할 수 있다."
이와같은 구속적 진리의 중심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체펠 박사는 결코 교화적인 설교, 이를테면 당신은 본받아야 하고, 더 거룩해져야 한다는 설교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그는 이와같은 설교가 인본주의와 도덕주의로 흐르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의 중심성이 항상 견고하게 견지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