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자료






설교 좋은 예화 20가지

1. 신앙의 건망증

아프리카에 산다는 ‘뱀잡이수리’라는 새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뱀잡이수리는 독수리의 일종인 것 같은데 주로 공중을 높이 날아다니다가 두더지나 뱀 같은 것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가 낚아챈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뱀잡이수리가 민첩하게 잘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땅에 내려와 먹이를 먹고 있는데 맹수의 습격을 받게 되면, 날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뛴다고 합니다.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날짐승이 뛰어봐야 얼마나 빨리 뛰겠습니까?
결국 얼마 못 가서 맹수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믿음의 날개를 달아주셨는데, 우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 때가 많습니다.
믿음을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뱀잡이수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평상시에는 무척 믿음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지만실제 믿음을 적용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면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는 핀잔을 들을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증발한 것입니다.
신앙의 건망증이 도진 것입니다.
신앙의 생활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신앙인이면서도 사고하는 방식이나 행동은 세상의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됩니다.
지금 내 행동은 누구에게, 무슨 영향을 받은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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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도면허증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의 이야기다.
그는 젊은 시절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중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곧 재기하여 “엠마오로 가는두 제자” 등의 명작을 남겼다.
그의 친구들이 종종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자네처럼 좋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
그럴 때마다 렘브란트는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묻기 전에 일단 붓을 들고 그리기 시작하게.”
그렇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우리는 너무 망설이며 쭈뼛거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신중하게 탐색하며 준비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진취성이나 실천력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행동’이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망설이다가 결국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지 않던가.
교회의 사명인 전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님의 전도에 대한 명령에 우리는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실천할 생각은 접어두고 이 말씀의 신학적 의미가 어떻고 배경이 어쩌고 하는 말 잔치에 빠져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미 운전면허를 딴 사람은 실제로 차를 전진시켜 보아야 한다.

단지 이론서만 복습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미 전도 면허증이 주어졌다.
“Just do it!”
어떤 스포츠용품 광고에 나오는 문구이다.
전도, 그것 역시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된다.
해보면 방법이생기고 그 맛을 깨달아가게 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넋 놓고 앉아 있는 시간은 휴식이 될 수 없다.
해야 할 일을 하고서 잠깐 쉬는 시간이 휴식이며 재충전의 기회다.

3. 행복을 주시는 예수님

로베르토는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이었다. 다리가 무릎 안쪽으로 심하게 굽은 이 소년은 가난과 절망이 끊임없이 찾아드는 암담한 삶을 살아갔다. 로베르토는 개처럼 네 발로 기어다녀야 하는 신체의 장애 때문에 교육받을 기회를얻을 수도 없었다. 훌쩍 십대가 되어버린 로베르토에게 삶은 무정하기만 했다. 그런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사람들을감찰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로베르토의 불우한 삶에 들어오셨다! 가난과 질병으로 허덕이는 로베르토에게 미국에서 외과 수술을 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는 오랜시간 수술한 끝에 다리를 똑바로 펼 수 있게 되었고 인생의 변화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로베르토는 일어나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뛰고 달릴 수 있는 다리를 갖게 되었다. 로베르토는 성한 다리라는 열쇠로 소망과 약속이가득한 미래라는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몇 달 후 로베르토는 인정 많은 후원자들 덕분에 직업 훈련뿐 아니라 개인 교습까지 받을 수 있었다. 소박하고 겸허하고 열정적인 로베르토는 후원자들에게 “제가 할 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걸 도와드리는 겁니다. 그분이 절 도와주셨기에 그분을 섬기는 일이 행복할따름입니다” 하는 말로 감사함을 표현했다. 예수님은 행복에 이를 수 있게 하신다.

로베르토와 같은 육신에 장애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영적, 정서적으로 장애가 있는사람들도 말이다. 당신이 누구이건, 당신이 어떤 상황이나 조건 속에 놓여 있건, 당신의 과거가 어떠했건, 당신의 문제가 무엇이건 예수님은 당신을 온전케 하실 수 있다.

4.감사가 불러온 기적

일본 해군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찌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귀국하여 오랫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으리 만치 피폐해 있어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짜증이 났고 불평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전신이 굳어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다행히 정신치료가인 후찌다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후찌다씨는 그에게 매일 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억지로라도 만 번씩 하라고 시켰습니다. 기이찌는 자리에 누운 채로 하기 싫었지만 낫기 위해 매일 밤 계속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들이 감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 감 잡수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는 이미 그가 매일 계속해서 감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감사가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자 신기하게도 손이 움직였고 차츰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던 목도 움직여졌다고 합니다. 말로만 하던 감사가 실제로 감사가 되어 감사로 불치의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5.한국교회 신자들의 의식구조

어느 기관에서 한국교회 신자들의 의식구조를 분석한 보고를 다음과 같이 해주고 있습니다.

위로설교에는 90%가 은혜를 받는다
축복설교에는 70%가 은혜를 받는다
죄와 회개설교에는 30%가 은혜를 받는다
헌금과 헌신설교에는 10%만 은혜를 받는다

6. 여성이 살기 가장 힘든 나라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7월 9일자)가, 분야별로 최악의 나라를 선정, 소개를 했는데, 여성이 살기에 가장 힘든 나라로 회교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이 뽑혔다.
1996년, 과격이슬람 세력인 텔레반 정권이 전국을 장악하면서 철저한 회교원리주의 국가로 전환, 심지어 유네스코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2천년 이상된 유물까지도 우상이라 하여 파괴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회교 율법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곳이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남성들은 턱수염을 깎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턱수염이 다시 자랄 때까지 감옥에 가두는가 하면,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차도르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싸고 있어야 함은 물론 외간 남자와 말도 건넬 수가 없다고 하였다.
또 여성들은 의무교육도 받을 수도 없으며 집밖에서는 일도 할 수 없고 친척 남성이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도 할 수 없다.
집들의 모든 창에는 페인트로 칠을 해서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했으며, 여러 사람 앞에서 발가벗고 목욕하는 것이 율법에 어긋난다하여 여성공중목욕탕과 뒤이어 남성공중목욕탕까지도 없애버렸으며 도박은 물론 TV, 비디오 등 오락도 못하게 하였다.
이러다 보니 국가 경제는 최악의 상태가 되었고 거리에는 수 십년간의 내전으로 남편을 잃은 부인들이 당국의 눈을 피해 구걸을 하는 일이 다반사라 전한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마 23:27).
거짓종교는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7. 시련의 유익

조용한 섬나라인 뉴질랜드.
그곳에는 날지 못하는 새가 다섯 종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섬에는 새를 해치는 다른 동물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뱀들도 독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들은 굳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필요가 없게 되고,그저 나뭇가지나 땅에서 지내다보니 날개는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일은 삶을 무기력하게 하지만시련은 새를 날아오르도록 합니다.
이렇듯 시련은 우리의 삶을 높이 끌어올리는 필수 요소입니다.

8.함몰 웅덩이 증상

플로리다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 창 밖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 도로의 지반이 내려 앉아 플로리다 사람들이 함몰 웅덩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계속 꺼져 들어가는 웅덩이 속으로 자동차와 도로 그리고 잔디밭이 함몰되어 갔다.
그 다음은 아파트가 무너질 차례이다.
이러한 함몰 웅덩이는 가뭄으로 지하수가 고갈되어 지표를 지탱할 힘을 잃을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딛고 있는 땅 조차 안전한지 의심스러울 만큼 갑자기 모든 것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간다.
아마 우리들의 내면이 고갈되어 영적인 침체가 왔을 때 , 피곤으로 무감각한 느낌을 받을 때 ,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목표에 대한 쓰디쓴 환멸감 등을 느낄 대 내부는 갑자기 무너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의 상태를 잘 돌보아야 한다.

9. 오늘 날의 바나바

사울 왕이 범한 죄 중의 하나는 질투와 미움이었다.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키워야 될 그가 오히려 다윗을 질투하여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다.
그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풀어서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굴 속에서 자기 옷만 찢기는 망신만 당했다.
그때 사울은 깨달았어야 했다.
하나님이 그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시종 분노의 칼을 갈다 결국 자기가 먼저 죽는다.
요한 스타우피츠는 루터를 진심으로 아끼고 키워주었다.
루터를 키워준 스타우피츠가 없었더라면 16세기의 종교개혁이 성공했을까?
종교 개혁자 존 칼뱅을 키운 윌리엄 파렐이 제네바에 있었기에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성공했다.
다소에 묻힐 뻔한 사울을 불러내어 안디옥교회에서 동역한 바나바의 섬기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도 우리 주변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생기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며 인정해줄 줄 아는 현대판 바나바가 정말로 필요하다

10. 요강을 닦는 머슴

평북 정주에 있던 명문 오산학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당시 그 동네에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다.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청년이었다.
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다.
그는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다.
그러자 모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보고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
마침내 그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됐다.
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조만식 선생이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의 성공비결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데 있다”고 말해준다

11.나는 한알의 복음의 씨앗이 되리라

로마 도미티안 황제 때 안디옥 교회 감독인 이그나티우스는 짐승에 물려 몸이 찢기면서 순교당했다. 그는 로마로 잡혀가면서 소아시아 여러 교회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요 동역자인 친구 폴리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타협하지 말라. 내가 놓이기를 바라지 말라. 나는 한 알의 밀씨가 되고 짐승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하나님의 깨끗한 빵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형벌당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다면 십자가에서 짐승의 이빨에 뼈가 가루되고 손과 발이 잘리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가 있을 뿐이다”고 말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는 말씀을 믿고,한 알의 복음의 씨앗이 되고자 각오했기 때문이다.

12.마음의 병

어떤 여자가 남편과 두번째 사별하고 한 믿음직한 남자와 세번째 결혼을 했다.새로 맞은 남편은 아내를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해주었다.그런데 행복에 겨워야 할 부인은 몸이 약해지고 얼굴마저 날이 갈수록 핼쓱해져만 갔다.보다 못한 남편이 물었다.“어디 불편한 일이라도 있는거요” 그러자 부인은 단지 마음의 병이라고만 대답 했다.이에 진실한 남편은 자신이 잘못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어떻게 더 사랑해주면 되겠느냐며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하자 부인의 대답은 이러했다.“당신이 또 죽으면 어떻게 하나요” 즉 걱정 때문에 몸이 말라간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때와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는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다.‘새가 노래한다’고 보는 것과 ‘새가 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로버트 슐러 목사의 책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한 부인이 시장에 나와 작은 고기만 골라 사길래 상인이 물어보았더니 “우리집 프라이팬이 작아서”라고 대답했다.그러자 그 상인은 “부인,고기를 사기 전에 프라이팬을 바꾸세요”라고 했다고 한다.선입견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13.등불 켜고 준비하는 밤

옛날 어떤 의사가 한밤중에 13㎞나 떨어진 먼 시골로 중환자를 왕진하러 가야만 했다.폭설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가는 길목의 가장 가까운 첫번째 집에다 전화를 걸어 창문에 등불을 켜 둘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에다 전화를 해서 역시 창문에 등불을 켜 두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환자의 집에 이르는 동안 모든 길목의 집들이 창문에 등불을 켜게 되었고 의사는 쏟아지는 폭설과 어둠을 뚫고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로 도와주는 길목의 등불이어야 합니다

14.두 소녀의 조개줍기

두 소녀가 바닷가에서 사이좋게 조개를 줍고 있었다.문득 그들의 눈앞에 큰 조개가 하나 보였다.그들은 동시에 그 조개를 자기들의 손으로 덮쳤다.두 소녀는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했다.결국 고집이 센 소녀가 그 조개를 차지했다.조개를 빼앗긴 소녀는 마음이 언짢았다.두 소녀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헤어져 조개를 줍게 되었다.그런데 조개를 빼앗겼던 소녀는 뜻하지 않게 값진 진주를 발견하게 되었다.그는 그 진주를 얼른 품속에 감추었다.그의 마음은 완전히 풀렸다.그는 다시금 자기 친구 옆으로 다가가서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조개줍기를 계속했다.그들 앞에 또 큰 조개가 나타났다.그러나 저들은 이전처럼 다투지 않았다.진주를 가진 소녀가 기꺼이 양보했기 때문이다.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다.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은 너무나도 좋은 곳이다.천국을 소유한 우리는 이 땅의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자.

15.십자가 바로보기

오래전 어떤 목사님이 종려주일 낮 예배 시간에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오늘 저녁예배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특별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미리 깊이 묵상하고 오시기 바랍니다”저녁예배 시간이 되었다.많은 사람이 은혜를 사모하면서 예배당에 모였다.목사님은 촛불을 켜들고는 아무 말없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먼저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이마에 촛불을 비추었다.한 참 뒤 그는 말없이 못박힌 예수님의 손과 발을 촛불로 비추었다.마지막으로 창에 찔려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옆구리로 촛불을 옮겼다.이것이 그의 설교의 전부였다.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곳에 참석한 모두가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이번 주간은 수난주간이다.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큰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16.묘비 없는 칼뱅의 무덤

장로교의 창시자인 장 칼뱅은 생전에 남긴 업적도 대단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도 큰 영적 교훈을 남기고 갔다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장로교회를 창립하자 그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장로교회를 세웠고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유럽 각지로 흩어져 개혁교회들을 세웠다.칼뱅이 죽을 때 남겼던 유언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바로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그의 유지를 따라 지금도 제네바에 가면 장 칼뱅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단지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덤 위에 ‘J.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놓았다.그래서 칼뱅의 유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덤가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장차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칼뱅처럼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겠다

17. 밥 태운 건 마찬가진데

시어머니가 밥을 앉히고 며느리에게 불을 때라고 일렀다.
갓 시집을 온 며느리는 밥짓는 경험이 없었던 터라 밥물이 넘치는 줄도 모르고 계속 불을 때다가 밥은 타고 솥은 금이 가고 말았다.
놀란 며느리가 전전긍긍하고 있자 시어머니는 “내가 물을 너무 적게 부어서 그렇게 됐다”며 며느리를 위로했고, 시아버지는 “내가 부엌에 땔감을 너무 많이 들여서 그랬다”라고 했으며, 신랑은 “제가 너무 물을 적게 길어와서 그렇게 됐다”라고 말했다.
길 건너에는 술집이 있었다.
그 집에서도 새 며느리에게 불을 때라고 했고 역시 밥은 타고 솥은 깨졌다.
화가 난 시어머니가 욕설을 퍼붓고 구박하자 며느리는 일부러 그랬느냐며 대들었고, 시아버지는 어디서 말대꾸냐며 호통을 쳤으며, 이에 지켜보던 신랑이 손찌검을 하자 새댁은 죽이라며 대들었다.
대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가정도, 교회도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이해, 사랑, 화해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경직된 사회에 윤활유를 부어 금속음을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다.
무너지는 가정, 흔들리는 나라가 걱정스럽다.
주여 이 나라를 구원하여 주소서!

18.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는 힘

인도의 성자 선다싱이 복음을 전하다 어느 날 네팔의 감옥에 투옥됐다.
그는 마치 바울처럼 감옥에서도 다른 죄수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그러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간수가 그를 냄새가 심하게 나는 독방에 감금시켰다.
손과 발을 묶고 옷을 벗긴 채였기 때문에 거머리가 달라붙어 피를 빨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하나님을 소리높여 찬양했다.
이 모습을 본 선다싱의 고소자가 간수에게 말했다.
“당신은 선다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그는 고통에도 아랑곳없이 노래하며 행복해하고 있지 않소?”
그러자 간수는 “그는 미쳤소.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소.
우리는 그의 설교를 중단시켰고 고통을 주었소.
하지만 그는 오히려 행복에 젖어 노래를 부르고 있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다싱의 고소자는 소리쳤다.
“그는 미친 놈이다. 당장 석방시켜라!”
세상을 살다보면 나 때문에 겪는 고난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겪는 고난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겪는 고난은 값지고 행복한 고난이다.
또 영원한 상급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19. 마음먹기에 달렸다.

큰 물건을 등에 지고 길을 나섰던 두 장사꾼이 높고 험난한 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때는 여름이고 해는 중천에 떠 있어서 가만히 앉아 있어요 땀이 비오듯 흐르는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장사꾼 중의 한 사람은 그 큰 재를 짜증난 시선으로 바라다보면서 중얼 거렸습니다.
"재수없는 날이군, 어느 세월에 이 재를 넘는단 말인가."
그런데 다른 한 장사꾼은 희망찬 시선으로 놓은 재를 바라보면서,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재수 좋은 날이군, 이렇게 험한 재가 있으니 재 너머 저 쪽엔 장사꾼이 자주 올 수 없었을거야.
그러니 재를 넘어 가기만하면 물건은 쉽게 팔 수 있을거야."
전자의 장사꾼은 재 너머 마을에서 얻게 될 기쁨을 보지 못하고 목전의 고생만 바라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서 높은 재는 장애물로만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장사꾼은 목전의 고생보다 그 다음에 올 기쁨을 바라다본 사람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높은 재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모든 역경도 꿈이 있는 자에게는 언제나 성공을 위한 도약대가 되는 것입니다.
실패할 사람은 목전의 수고만 바라보고 쉽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성공할 사람은 고생과 수고 다음에 찾아올 영광을 바라다보면서 인내합니다.

20. 감추인 보화

1971년 아폴로 15호로 달에 다녀온 제임스 어윈의 간증을 들어본다.
"우리가 발견했던 것은 하얀 돌이었습니다.
영국의 과학자 패트릭 모어(Dr.Patrick More)에 의해 오래전에 '창세기 돌'로도 명명되어 있던 그 돌이 왜 그토록 중요했길래 우리에게 그돌은 찾아 오도록 시켰을까요?
저는 그 돌을 발견한 것은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진짜 돌'을 찾으시길 기도합니다.
저는 감추인 보화 비유를 말할 때 곧잘 이 하얀 돌의 모형을 보여드리곤 합니다.
이 돌을 구하기 위해 왜 그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였을까요?
과학자들에 의하면 그 돌은 달의 산과 표면의 성질을 모두 알아낼 수 있는 표본이기 때문에 귀할 수 밖에 없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돌-감추인 보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야말로 내인생에 진정한 의미를 가져다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목사들이 주기철을 파면하고 가족을 추방

최덕성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일제치하의 한국교회의 수난과 그 이후의 진행 과정은 로마제국치하에서의 박해, 특히 7차와 10차 대박해 동안 기독교인들이 당한 수난, 그리고 그 이후 진행 과정과 흡사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우상숭배와 황제숭배 강요와 거부라는 점,
2. 국가가 그것을 강요했다는 점,
3. 수많은 순교자가 생겼다는 점,
4. 박해 후 교회에 분열의 갈등이 일어났다는 점
그러나 갈등의 원인과 분열의 원인은 전혀 달랐다.
(이 글의 많은 내용은 최덕성 교수의 책 <한국교회친일파전통>에서 인용하였다.)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 설립

조선총독부는 장로교 총회 (제27회, 1937)가 모여 신사참배 결의한 후 부총회장 김길창 목사가 각 노회 대표들을 인솔하여 평양신사에서 신사참배를 하였다.
한국교회가 일본적 종교로 거듭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약간의 변절을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신도교로 개종한 것이었다.
 

1938년 9월 신사참배 반대로 인해 평양신학교,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교”가 폐교됨

1938년 여름부터 일제는 개 교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서를 보냈다. 

“천황이 높으냐? 여호와가 높으냐?”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냐? 국가의식이냐?”
“국가지상이냐? 종교지상이냐?”

그리고 그 답변에 따라 집회를 허락하던지, 교회를 해산시키던지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윤성범은 신앙이 약한자는 신사참배에 항거했고, 그래서 믿음이 약한자이고(롬 14:1), 신앙이 강한 자는(롬 15:1) 그것에 참여했다고 하였다.

한국교회는 1931년 일제가 제정한 법, “신도(神道)가 절대의 도이며, 국민 모두가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
각종의 배도하는 신앙고백서를 발표하였다.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 규칙”에 의하면, “황국(皇國)의 도를 따라 신앙에 투철하며 각기의 분을 다하여 신도를 실천하여 황운(皇運)을 부익(扶翼)하여 받든다.”는 것을 교단강령으로 선언하였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변절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도교로 개종한 것이다. 일본기독교 조선감리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교회가 단지 “상처받고 수모를 겪는 교회였지 악마의 교회는 아니었다”고 하는 교회역사학자 민경배의 주장은 당시 상황에 대한 바른 이해가 결여된 것임을 보여 준다.

1939년 12월 25 일 평양노회의 종교재판에 의해서 주기철은 우상숭배를 행하지 않는다는 죄명으로 파면되었다.
총회 관할 아래에 있는 자가 신사참배를 행하기로 한 총회의 결의에 감히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교역자로[서] 국가의식 불응은 총회결의 정신 위반”
이라는 것이다.
평양 노회는 주기철의 산정현교회 담임목사직을 해임한 것만이 아니라 목사 자격 자체를 박탈했다. 
그를 파면하고 가족을 사택에서 추방하고, 굶주리고 헐벗고 추위에 떨게한 것은 일제가 아니라 한국교회였다.
일제 충견이던 친일파 목사들의 솔선수범에 의해서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들을 박해했다.

주기철의 가족과 수진수난 성도들은 주기철에 대한 파면이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같은 결정을 한 교회를 파괴하여야할 집단으로 보았다.
배교하는 교회의 결정이 자신들의 영적 상태와 신분에 아무런 영향을 주시 못한다고 생각했다.

1940년 서울에 숭동교회에 “조선신학교”가 개교했고 초대 학원 원장에 김대현 장로가 취임했다.
조선신학교는 광복 후 미군정청으로부터 학교인가를 받았다.
교장에 김재준, 전임강사 송창근, 한경직이 취임했다.
조선신학교는 1951년 한국신학대학으로 개명하였다.
평양신학교는 “채필근 신학교”로 다시 개교했으며, 주기철 이름을 졸업생대장 원본에서 없애 버리고 현재의 대장을 다시 만들었다.

일제말기의 신사참배 거부자들은 일제와 우상숭배를 행하는 기존교회부터 이중으로 공격을 받으면서 성경적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교회의 기구적 연속성, 고전성, 정통성은 절대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며, 기구적 유전(遺傳)에 집착하는 것은 죽은 전통이라고 보았다.
교회는 이름을 가진 조직기구라도 성경의 중추적인 가르침을 명백하게 위반할 경우에는 그 결정에 순종할 필요가 없다.
그 횡포가 지나쳐 우상숭배를 할 정도이거나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자를 면직, 제명할 정도이면 그 기구를 파괴하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배도하는 총회와 노회의 명령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순종하고자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새로운 노회를 조직하여 순결한 한국 기독교를 계승하고자 했다. (p. 197)
 

1941년 3월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수회가 해체됨

1943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해체되었다. 1945년 장로교라는 이름마저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1907년에 첫 노회가 조직되고 1912년 가을에 총회를 조직한 한국 장로교회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대신 (평양 장로회신학교 대신) 조선신학교 (서울에)와 채필근신학교가 (평양에) 세워졌다. 일제의 황민화 도장으로 인허된 이 학교는 목사, 전도사가 아닌, 교회사(敎誨師), 정교사, 보교사를 양성했다. 일제는 목사를 “정교사” 전도사를 “보교사”로 부르게 했다. 정교사, 보교사는 일본적 기독교의 순복음(純福音)을 전파하는 자들이었다. 순복음이란 신도주의와 기독교를 혼합한 신도교를 뜻한다. 겉모양은 기독교이지만 내용은 신도주의로 채워진 일본식 혼합종교이다. 일제의 “순복음교회”는 신도교를 뜻한다.
 

1944년 3월 26일,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의 정교사(正敎師) 안수식

순일본기독교의 교회사(敎誨師)로 안수를 받은 것이다. 1944년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 임원들은 “적성(赤誠)을 다하여 하루라도 빨리 완전한 황민화(皇民化)를 하는 것이 최대의 급선무”라고 하면서 “황국의 도를 따라 ... 신도(神道,臣道)를 실천하며 황운을 부익하여 받든다”고 고백하고서 작위를 하사받듯이 목사 감투를 쓴 자들이었다. 광복 후에도 이들은 참회고백 없이 한국교회를 주름잡았다.
 

1946년 출옥성도들이 고려신학교(현 교려신학대학원, 천안) 설립

1995년 6월 장신대학 정기교수회에서 조사하여 주기철 목사의 이름을 학적부에서 제거된 것을 확인하였고, 일제 황민화 정책의 전열에선 '채필근 신학교'가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삭제하였다고 결론지었다. 채필근 신학교는 신도주의와 기독교가 혼합된 “순정일본적 기독교”(純正日本的基督敎)라고 부르는 신도교의 교회사(敎誨師) 양성소가 되었다. 그리고 광복 (1945년) 후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친 친공산주의 신학교가 되었다.
 

한국교회 죄책 고발자 주기철

주기철은 우상숭배를 거부한다는 까닭으로 자신을 면직시킨 한국교회의 죄책 고발자로 서 있다. 한국교회의 배도, 백귀난행(百鬼亂行), 민족배신, 비인도적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거짓이 참을 능멸하고, 불의가 정의를 학대하고, 악이 선을 짓밟는 친일파 전통의 악마적 습성에 항거하고 있다. 비진리가 진리를 배척하고, 배도자가 순수 신앙인을 추방하고, 가룟 유다들이 신실한 선지자들을 능멸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교회에 대한 고발자로 서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주기철의 일제에 대한 항거와 일사각오 신앙만을 강조했지, 그가 배도하는 교권주의 장로교 집단에 항거한 일에 대해서는 눈여겨 보지 않았다. 일제에 의해 박해를 받은 것만 강조했지 한국교회가 그를 박해한 것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는 우상숭배를 거부한다는 까닭으로 자신을 파면한 한국교회를 고발하고 있다. 주기철은 조직기구의 그릇된 결정을 절대화하고 광복 반세기를 넘기도록 공적인 참회고백문 한 장 발표한 바 없는 양심부재의 한국교회를 고발하고 있다.

주기철은 치리회적 질서를 무시하는 교회, 중세기적 미신을 버리지 않는 교회, 순교자를 교권의 확보와 자파의 위상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교회에 대한 항의자로 서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성을 갖지 못한 교회, 믿는것과 행하는 것이 불일치하는 교회, 이중성, 기회주의, 두 얼굴, 양시론, 타협주의, 회색주의의 습성을 버리지 않는 교회에 대한 고발자로 서 있다.
 

1997년 4월 주기철 목사 복권

주기철 목사의 아들 주광조 장로는 주기철 목사복권과 관련하여 주기철이 “하나님 앞에서 면직도, 파면도 된 바 없다”고 했다. 복권 복직 선포식에서도 그 선포식 자체가 무용하다고 했다. 목사복권 결정은 그 자체가 신학적, 치리회적 근거가 없는 일이며 그 치리회의 결정은 불법이며, 무효이다. 그런데 왜 주광조는 주기철의 목사복권 행사를 원했느가? 주광조 일가에서 주기철의 순교정신은 표류하고 있다.

목사복권 사건은 조직기구, 형식, 제도를 절대시 하는 그릇된 교회관과 왜곡된 역사인식이 낳은 일대 불상사였다. 교회의 존재는 조직기구와 그 결정에 달려있지 않다. 주기철 목사복권 및 복적선포식에 참석한 일본인 도까 가쓰야 목사는 일본교회가 영원히 죄책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이 행사를 주도한 통합측 교단과 장신대학은 단 한 마디의 참회의 말도, 반성의 표현도 없었다.

조직기구(교회)의 결정을 절대화하거나 교회의 본질을 조직기구에서 찾는것은 잘못이다. 교회의 본질을 기구적 연속성과 고전성 혹은 정통성에서 찾는 것은 로마가톨릭 전통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의 존재를 외형적인 요소에서 찾지 않는다. 영적, 신앙고백적 실체에 달려있는 것으로 본다. 배도하는 교회가 결정한 것을 유효한 것으로 여겨 복권을 시킨 것은 개혁주의 교회론과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반역이다.

그러면 배도하는 교회의 파면을 유효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면, 왜 배도하는 교회의 성례나 안수는 유효한 것을 볼 것인가? 주기철 목사 복권을 주도한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를 로마가톨릭 교회관의 시녀로 갖다 바쳤다. 배도하고 우상숭배하는 교회에서 파면당한 것만큼 명예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가 파면을 당한 것은 순교 다음 가는 영예로운 일이다. 목사복권으로 주기철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하는 발상의 배후에는 한국교회의 신앙좌표 설정에 혼란을 준 특정 교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교권주의, 제도주의, 형식지상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로마가톨릭 교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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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03월 17일 / 채필근 목사 소천

1973년 3월 17일 한국 교회의 산증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채필근 목사가 소천했다.
그는 일생동안 자기만의 노선을 개척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박형룡 박사가 정통주의 입장을, 김재준이 진보주의 입장을 천명했다면 채필근은 정통주의와 진보주의의 양극단을 배격하고 중도 노선을 걸었다.

191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채필근이 평양신학교의 정통주의에서 온건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였다.
1920년 캐나다 선교회의 주선으로 일본에 유학한 채필근은 메이치학원 고등학부 문과(1923년 졸)와 동경제국대학 문과(1925년 졸)에 유학하면서 신학영역을 넘어 폭넓은 세상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그가 신학뿐만 아니라 종교일반, 철학, 역사, 심리학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저술도 남겼던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에게는 정통과 진보가 공존하고 있었다.
평양신학교 출신이면서도 조선신학원 설립운동에 관여하였고, 1943년 장로교 총회가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으로 개편되자 초대 통리로 선출되기도 했다.
1930년대 초 김재준, 송창근 등이 <신학지남>에 진보적인 글을 발표하고 <아빙돈 단권주석> 번역에 참여하는 등 전통적인 신학이 위협을 받을 때에는 그는 교단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진보적인 노선에 있는 이들과 입장을 같이했다.

교회가 단순히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도전을 가져다 주었지만, 교회가 상황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 교회 본질 자체를 퇴색시켰다는 면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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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최대의 보증서이다.

미국에서 물건을 살 때 보면 몇 십 달러짜리 물건에도 대개 보증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잘못되었을 때 보증서만 보이면 군소리 없이 새 것으로 바꾸거나 수리해 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최대의 보증서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는 것이다.
먹고 입고 사는 일에도 하나하나 보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험회사가 잘 된다.
퇴직, 은퇴, 생명보험 등 여러 각도에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안정을 보장받아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백 년 미만의 제한된 미래만을 보장할 뿐이다.
그리스도가 발행하시는 생명보험은 영원한 보장을 약속한다.
우리가 지불하는 보험료는 단지 믿음뿐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당하는 죽음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형의 죽음을 철저하게 통과하셨다.
빌라도의 "이 사람을 어떻게 하랴"라는 물음에 대한 군중의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죽여야 하오. 십자가요! 죽음이요!" 하고 외치는 고함소리에 예수는 만족했을 것이다.
죽어야 제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악을 향한 신의 진노를 풀고 용서의 은총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했던 것이다.
제단을 생략한 속죄는 있을 수 없다. 예수는 죽어야 했다.
그 길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들의 길이며 종의 길이며 구세주의 길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부활과 생명은 하나님의 만족을 나타내는 보상 곧 은혜인 것이다.
크리스찬의 행복이란 십자가가 주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가 가볍게 느껴질 때가 은혜받은 때이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사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예수와 함께 구체적인 십자가를 질 때 은혜에 대한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십자가는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자는 그것을 어리석은 것이요, 부끄러운 것이요, 손실이요, 후회만이 남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십자가를 진 자에게는 그것이 자랑과 기쁨과 영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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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다시 가져 가십시오

아주, 아주 옛날에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나이가 계속 들면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걱정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끔 이런 질문들을 해봅니다.
"만일 우리에게 돈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누가 우리를 돌 볼것인가?"
"누가 우리의 셋돈을 낼 것인가?"
"누가 우리에게 먹을것을 사 줄것인가?"
그들은 이와같은 생각들을 가끔 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매일 들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장래의 일에 대하여 걱정하고 걱정 했습니다.

어느날 아침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아침을 만들기 위하여 부엌에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난로위에 큰 보석이 하나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할머니는 남편 할아버지에게로 황급히 와서 "여보, 이것좀 보세요! 이 큰 보석좀 보세요. 부엌에 있었어요." 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크 큰 보석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햇습니다.
"여보, 이제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더 이상 걱정안해도 되게 되었어요.
이 보석은 엄청난 가치가 있어요.
팔면 큰 돈이 될거예요.
이것을 팔아서 무엇이든지 많이 삽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날밤 할머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에서, 할머니는 천국에 가 있었으며, 한 천사가 할머니에게 모든 곳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구경하는 가운데, 천사가 아름다운 의자가 많이 있는 곳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자마다 아름다운 보석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천사는 설명했습니다.
"이 의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지 돈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또 할머니에게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의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천사는 "할머니가 천국에 오시면 이 의자가 할머의 의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자기 의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큰 보석이 하나 들어갈 만큼의 빈 구멍이 하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있던 보석은 어디 갔습니까?"
천사는 대답하기를, "여기있던 보석이 할머니의 난로위에 있던 그 보석입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그 보석을 미리 받은 것입니다.
만일 할머니가 그것을 팔아서 돈을 써버리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꾼 꿈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할머니는 남편에게 꿈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참동안 그들은 그 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 보석을 되돌려 주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지 보석을 믿어서는 안된다."라고 햇습니다.

그날저녁 잠자리에 들기전에 그들은 그 보석을 난로위에 되돌려놓고, "하나님 다시 가져 가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보석을 다시 가져가셨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들이 일어나 난로를 보니보석이 없어졌습니다.

두 노인 부부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두 노부부는 도둑맞을 염려가 없는 하늘에 보물을 두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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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숙함의 특징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할 수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잘못 진단을 한다면 결국 스스로에게 속고 맙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무엇으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해 왔습니까?

아래 세 가지 질문은 어쩌면 가장 정확하게 우리들의 영적인 상태를 공개하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 질문들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대답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당신은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결단이 있는가?

2.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3. 당신은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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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필근(蔡弼近) 목사 : 3년상을 치르고 공자님께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평양신학교 교장을 지냈던 채필근(蔡弼近) 목사는 한학과 동양학은 물론 해박한 신학과 철학을 겸비한 신학자였습니다. 
본래 채 목사는 철저한 유교가정에서 자랐으며 유교경전에 심취했습니다.
그런데 14살 되던 1898년도에 아버지가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당시 소년 채필근의 심정은 아버지를 이단에게 빼앗긴 것 같은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개종한 아버지는 600여권의 책을 쌓아 놓고 공부하던 유명한 한학자이셨기 때문입니다.

채필근은 공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공자시여, 아버지가 그리스도교를 공박하고 유교를 옹호하는 글을 쓰시겠다더니 기독교 경전 성경을 보시다가 불행하게 그리스도교에 빠지셨습니다.
공자의 말씀에 이단을 공부하면 해롭다고 하심이 이것을 가리키심인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공자의 도를 버리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버지가 채필근을 부르더니

“내일은 주일이니 예배당에 함께 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난생 처음 아버지를 따라 예배당에 갔습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온 채필근은 공자께 다시 호소하였습니다.

“공자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당신의 가르침 중에 아버지가 잘못하면 간하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울면서 좇으라고 하셨지요.
세상을 떠나시면 3년까지 고치지 말라고 하셨지요.
저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3년상을 치르고 틀림없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나 채필근은 끝내 공자한테 돌아가지 않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훗날 채필근 목사는 ‘공자께’ 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공자에게로 돌아오겠다던 맹세를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는 공자가 살아 계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교에 귀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자나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같은 성인들도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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