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도(默禱)와 묵상(默想)에 대하여
묵도(默禱)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예배 형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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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시작할 때 인도자가 종을 세
번 치면서 “다같이 묵도함으로 예배를 시작하겠다”고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물론 시대마다 조금씩 예배를 시작하는 첫
순서가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속사도 시대에는 성경봉독으로 예배를 시작했고,
3~4세기에는 집례자가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면, 회중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응답함으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동방교회나 카톨릭교회는 지금도 이렇게 예배를
시작하고 있다.
반면에 종교개혁자들은 회개의 기도와 사죄의 확신으로 예배를 시작했다.
주지하다시피 카톨릭교회에서는 미사를 드리기
전에 반드시 고해성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교회의 고해성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 대신 회개기도로 예배를
시작했다.
그러면 왜 한국교회는 묵도로 예배를
시작했는지 그 사연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많은 종교의식이나 국민의례를
시작할 때 머리를 숙이고 묵념을 하는 것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묵념을 해야 일상의 행동이나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예배를 시작하면서 묵도를 해야 예배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배의 첫
순서로 자리를 잡게 된 것 같다.
둘째는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교인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조용하게 하는 방편으로 묵상기도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처럼 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교인들이 예배당인지 사랑방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떠들어대니까 교인들을 조용히 시키는 방편으로
묵도를 사용했다.
이것과
함께 강대상에 종을 올려놓고 예배를 시작하면서 종을 보통 세 번 땡땡땡 치는 관행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탁상용 작은 종을 놓고
쳤는데, 이것이 상품화 되면서 점점 커지고, 금으로 도금한 십자가까지 붙여서 강대상에 올라가 있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종교개혁시대에 개혁교회들이 마을에 세워졌을 때 교회에 큰 종탑을 세우고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을 쳤다.
지금도 서구 교회들이
대부분 종탑을 가지고 있고 특별한 행사를 할 때 종을 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교회마다 종탑이 있었고, 예배시간을 알리는
초종과 재종을 쳤다. 특별히 새벽종소리에 대한 아름다운 향수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강대상에 종을 올려놓고 예배를 시작하면서 종을 치는 것은 세계 그 어느 교회에서도 없는 것이다.
처음에 선교사들이 주일학교
아이들 조용히 시키면서 종을 치던 것이 습관처럼 전해져서 보통 종을 땡땡땡 세 번 치고, “묵상기도 드림으로 예배를 시작하겠다”고
하면서 예배를 시작하는 관행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개혁교회의
예배의 첫 번째 순서는 예배의 부름(The call to worship)이다.
오르간 전주가 끝날 때 쯤 예배인도자는 단에
올라서 “이제 다함께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찬양대의 영광송이 나오고, 이어서 인도자가 성경
말씀(보통 시편말씀)을 몇 절 읽고, 이어서 개회기도를 드림으로 예배가 시작된다.
여기 개회기도는 예배를 위한 기도로 성령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고, 예배자들의 마음을 온전히 주장해 주셔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예배 자체를
위해 드리는 짧은 기도이다. 어떤 경우는 이 시간에 일반 기도와 같이 죄를 회개하고 성도들의 모든 필요를 구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것은 예배의 각 순서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데서 오는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도 120년을 넘어서고 있다. 120년은 결코 짧은 역사라고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동안 예배신학적인 고민 없이
관행적으로 해 왔던 잘못 사용했던 용어와 습관들을 하나씩 바로 잡아서 바른 예배 모범을 회복하고, 후손들에게 계승해야 할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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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도(默禱 /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기도하다)
묵상(默想 / 묵묵히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기도하다)
예배를 시작할 때 “다같이 묵도(默禱)하심으로 예배를 시작합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은 너무나 귀에 익숙하다.
보통 한국 기독교인들은 묵도를 ‘묵상기도(默想祈禱)’의 줄임말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묵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조용히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묵도는 일본인들이 신사참배를 할 때나 가정에서 자신들의 신을 잠시 묵념하는 것을 말한다.
묵도라는
말이 예배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다.
일제강점기 이전,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의 전통과 예식을 할 때는 묵도라는
말이 없었다.
1938년 한국 기독교가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 묵도는 예배의 순서가 됐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예배드리기 전에 일본의 신사(神社)에 먼저 참배하는 묵도를 예배의 순서에 넣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참담한 역사의 산물은 예배의 순서로 굳어지고 정형화 됐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묵도가 예배의 한 순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묵상기도와 비슷한 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묵상기도는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묵상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깨닫는 지적인 노력과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의지적인 결단이 바탕이 돼야 한다.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를
되돌아보고 말씀으로 영적 내적인 성숙을 이끌어내는 것이 묵상기도다.
많은 교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묵도하심으로’라는 말의 사용을 줄여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멘트 없이 예배의 부름을 찬양대의 찬양이나 악기의 연주로 시작하는 교회들도 있다. 하지만 습관에 의해 신사참배의 잔재인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는 교회들이 아직 많이 있다.
예배를 시작할 때 ‘묵도하심으로’라는 말 대신 성경적인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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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목사(한세대 외래교수)
이 말이 아닌 다른 어떤 표현으로 예배의 시작을 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통 한국 기독교인들은 묵도를 ‘묵상기도(默想祈禱)’의 줄임말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묵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조용히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묵도는 일본인들이 신사참배를 할 때나 가정에서 자신들의 신을 생각하며 잠시 묵념하는 것을 말한다.
묵도라는 말이 예배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다.
일제강점기 이전,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의 전통과 예식을 세워나갈 때는 묵도라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1938년 한국 기독교가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 묵도는 예배의 순서가 됐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예배드리기 전에 일본의 신사(神社)에 먼저 참배하는 묵도를 예배의 순서에 넣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참담한 역사의 산물은 예배의 순서로 굳어지고 정형화됐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묵도가 예배의 한 순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묵상기도와 비슷한 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묵상기도는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묵상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깨닫는 지적인 노력과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의지적인 결단이 바탕이 돼야 한다.
감정에 치우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를 되돌아보고 말씀으로 영적·내적인 성숙을 이끌어내는 것이 묵상기도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묵도하심으로’라는 말의 사용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
멘트 없이 예배의 부름을 찬양대의 찬양이나 악기의 연주로 시작하는 교회들도 있다.
하지만 습관에 의해 신사참배의 잔재인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는 교회들이 아직 많이 있다.
예배를 시작할 때 ‘묵도하심으로’라는 말 대신 성경적인 언어인 ‘묵상’(시 1:2)을 사용하거나 ‘조용히 기도하심으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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