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적 역사관과 제사장적 역사관
신명기 역사서(6권)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하, 열왕기상· 하
신명기 역사서의 특징
1. 신명기 신학의 주제는 계명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저주가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축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 징계를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여호수아서로부터 열왕기서에 이르는 6권의 책은 신명기적 사관에 따라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명기적
역사서는 “범죄→징계→회개→구원”의 역사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타락하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징벌을 받는
중에 회개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데 얼마 있지 않아 또 범죄, 회개, 징계, 구원의 과정이 계속적으로 순환됩니다.
3. 신명기 역사서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거나 소개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며, 회개와 순종 및 그것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역사서(4권)
역대상· 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 역사서의 특징
1. 신명기 역사서가 가나안 정복 시대로부터 서술을 시작하고 있는 것에 반해 역대기 역사서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대상
1-9장)의 서술로 시작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체성를 부각시키기 위함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역대기 역사서가 쓰인 시기가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여 동질성과 자기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2. 역사의 관심은 지속적으로 불순종했던 북 이스라엘 왕국보다 남 유다 왕국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는 남 유다 왕국이 참
이스라엘이며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심은 예루살렘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다윗 집안의 정통성이 변함없이 강조됩니다.
아울러 다윗 집안이 일으킨 예루살렘 성전과 그 제의(祭儀)에 대한 강조가 나타납니다.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찬란했던 다윗 왕조를 회복하자는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한 데 있습니다.
4.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는 포로 기간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주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성전을 향한 열심과 재건에의 뜻에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역대기는 성전과 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신명기 역사서와 역대기 역사서의 비교
1. 공통점
신명기 역사서나 역대기 역사서는 모두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졌으며,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두 역사서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쓰여졌다고 할지라도 그 근본적인 주제는 같은 것입니다.
2. 차이점
신명기 역사서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함께 취급하며 소개하고 있는 반면, 역대기 역사서는 남 유다와 성전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사가의 시각이 선지자적이라고 한다면 역대기 사가의 시작은 제사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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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화면(04-15-2022 / (금) 열왕기하 드라이브 참조
열왕기와 역대기
열왕기 : 신명기적 역사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하, 열왕기상· 하
범죄 → 징계 → 회개 → 구원
역대상· 하, 에스라, 느헤미야
아담으로 시작 → 이스라엘 정체성 → 성전과 제사
열왕기와 역대기 비교와 그 차이점
1. 열왕기서
⑴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신명기적 사관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열왕기는 모세를 통해 전하여진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라는 잣대를 가지고, 이 율법을 왕과 백성이 힘써 지키면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며 적들을 물리치시고 구원해 주시지만
율법을 범하고 죄를 지으면 나라에 환란이 찾아오고 적들에게 패배하여 고생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⑵ 열왕기서의 이런 집필의도는 역대 왕들의 치세를 간략히 평가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라는 구절을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⑶ 역대기가 남 유다 왕국의 역사만 기록하고 있음에 반해 열왕기는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의 역사를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⑷ 역대기가 제사장적인 시각에서 기록된 역사서라면 열왕기는 선지자적인 시각에서 기록된 역사서입니다.
2. 역대기
⑴ 역대기는 똑같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열왕기와는 다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왕이라도 어떤 왕은 선하게, 어떤 왕은 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므낫세의 치세를 기록한 부분을 열왕기와 비교해보면, 역대하 33장 전반부는 열왕기처럼 므낫세의 우상숭배에 대하여 다루고
있지만 10절 이하 후반부는 열왕기에서는 볼 수 없는 앗수르에서의 포로생활과 그가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기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므낫세의 행적에 대해서는 포로 이전과는 다르게 전에 지었던 우상과 산당을 훼파하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섬길 것을 권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 33:15-16).
⑵ 열왕기서가 므낫세를 악한 왕으로 묘사한 것과는 달리 역대기가 므낫세를 나중에 회개하고 선하게 행한 왕으로 묘사한 것은 회개를 통한 이스라엘의 재건에 초점을 맞춘 역대기적 사관에 의해서입니다.
⑶ 열왕기가 남북 두 왕국의 역사를 모두 기록하고 있음에 반해 역대기는 남 유다 왕국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⑷ 열왕기가 선지자적인 시각에서 기록된 역사서라면 역대기는 제사장적
인 시각에서 기록된 역사서입니다. 그래서 역대기는 제사장의 반열까
지 기록할 만큼 성전과 제사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 신명기적 역사관
과거의 그 시대에 남북의 조선사람들은 식민지 사관이라는 관점의 교육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위해서 그러한 식민지 사관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사람이 알게 모르게 그 사관에 주입되어 지금까지 그 영향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에 어떤 소위 명문대학의 교수의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일부 교수들은 몇 십년 전의 어떤 나라가 식민지화 하기 위한 역사적 교육을 그대로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 교육을 일방적으로 하였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는 거부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배운 것일 것이다. 그 어떠한 이론과 시각도 그 이론을 합리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다 일리가 있는 면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학계의 일부 교수는 물론 언론이나 소위 여론 리더 그룹도 이 식민사관 또는 사대 사관에 완전히 물들어 있는 것을 일부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담대하게 출애굽 하였는데 광야 사십년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였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민족적으로 체험하는 기간이기도 하였다.
또한 애굽의 노예적 사고에 또는 사관을 완전히 청산하는 기회도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출애굽 행진 중 어려울 때에는 그래도 애급이 낫지 아니하였느냐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장관을 세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백성들이 외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예적 사고나 사관을 씻어내고 하나님의 말씀 절대의지의 사고 사관을 갖는 것을 위해서도 결과적으로 광야 사십년이 필요했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의 한국은 어떤 역사적 사관 어떤 사관을 갖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각 개인과 역사에 대하여 어떤 사관(historical view)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인도주의적 사관, 평화와 번영의 사관, 인류애의 사관, 사대주의적 사관 ,
지금 식민지적 사고나 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어떤 집회에 성조기를 들고 다니며 흔들어 대는 모습도 보는데 그것은 아직도 자기도 모르게 식민지적 사관에서 아니 사대주의적 사관에서 행동하는 아닌가 보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신앙적 사관이나 성경적 사관의 행동은 아닐 것이다.
목회자가 그러하다면 자신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일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라고 하였지 주위 강대국을 의지하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애국가 가사에도 어느 나라 의지하다가 다시 어느 나라에 먹힐지 모른다는 마음도 담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자주적 신앙적 혼이 담긴 의지 결단 절규가 아니겠는가, 조선의 그 시대상황과 그 현실을 안다면 말이다.
지금 한국의 언론 소위 지식인 정치인들 등 소위 리더 그룹의 일부를 보면 그들의 역사관이 한국인의 자주적 역사관이라기 보다고 소위 강대국에 의지하려는 또는 어떤 강대국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대주의적 관점에서 역사와 현실을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선조와 후손에게 부끄러운 모습이 아닌가 하다. 퍽 하면 어떤 나라에 달려가 도움을 구하는 치인들이 있다. 한국의 어떤 대사는 과연 어떤 나라를 위하고 있었는가를 안다면 그것도 난감할 일이다. 한반도 남북의 평화 번영의 행진을 우리 남북이 아직도 주체적으로 못한다면 자괴감을 갖는다. 이제 총선이 있기에 좀 조심스럽기도 하겠지만 총선에서의 합당한 결과가 나오고 과감하게 자주적 신앙적 결단을 하고 과감하게 경우에 따라서는 단호하게 평화 번영행진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삼일 독립선언서를 보라 우리의 선조들이 바라는 이상과 현실의 내용이 얼마나 잘 담겨 있는가,
(이러한 내용은 외국어로도 번역하여 외국어 공부에도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외국에 공부가 기본 생활 회화 이상의 이러한 명문의 내용을 가지고 공부하여야 생각과 언어가 더욱 유익하고 발전할 것이다. 최고의 방법은 배우고자 하는 외국어를 잘 번역 된 성경으로 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말이다. 물론 기본 생활에는 당장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도 근본 어학의 바탕은 가장 유익하다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삼일 독립선언문을 높이 평가하다가 어학공부 이야기가 나왔다. 다시 본 주제로 가보자.)
1. 역사란 무엇인가?
천국은 영적세계로 가고 오고가 동일한 언어일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이미 와 있고 그러므로 죽음이후에도 겨속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즉 영생은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거이 아니라 믿는 그 순간 부터 계속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주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거 거하시는 순간부터 천국과 영생은 시작하는 것인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지금 믿고 영생은 죽음 이후에 받는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는가 했는데 영적 세계은 영원히 현재인 것이다. 아니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너무나 세상이 좀 부조리라고 할까 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생각해 보면 과연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과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도 객관적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해도 그 하나님의 나의 삶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든 아니든 나의 삶에 도움이 되시지 않는다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잠시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 저러한 이유로 목사 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였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였기에 혹 다시 마음이 바뀌어 내가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여 더욱 목회자가 되지 않기를 다짐하였다. 안된다 안된다 죽으면 죽어도 안 된다. 목회자가 다짐하고 다짐하였다. 그러할수록 혹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 길로 인도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므로 더욱 다짐하였다.
그럼에도 혹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리고 그 기도가 혹 응답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더욱 안된다 안된다는 마음으로 다짐하였던 것이다.어떤 하나의 역사적 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과 역사와 성품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홍해 바다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과 관심과 참으로 세밀하심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역사에서 우리는 너무나 풍부한 자료들을 찾을 수 있고 볼 수 있다.
성경에서 모세 오경 이후에 나오는 역사서들 중 사무엘서 이후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의 내용은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고 배울 것도 많이 있지만 좀 어렵다고 생각하여 많이 읽지 않는 경향도 있다,
그들이 신앙적인 관점은 물론이지만 역사가들의 관점에서 보아도 잘 갖춘 탁월한 역사가들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알려진 어떤 역사가 이상으로 학문적이기도 하고 사실적 근거에 의해 역사를 기술하였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자신들이 보았고 겪었던 사실적 경험의 관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은 그들의 개인적인 보고 경험한 현재의 하나님의 생생한 개인적인 체험에도 근거하는 것이다.
지금 생생하게 보고 경험한 신앙적 근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록인 것이다.
어떤 근대 현대 역사가 그 이전에 역사의 흥망성쇠를 신앙적 사관으로 본 것이다.
열왕기서 역대기서는 신명기적 역사관으로 보고 기록한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열왕기서는 신명기적 선지자적 역사관이라고 하고 역대기는 제사장적 역사관이라고 하지만 크게 보면 역대기서도 신명기적 역사관이 담겨 있다 할 것이다.
신명기적 역사관모세 오경 중 모세가 가나안 들어가기 직전에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회고 기억하게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설교한 내용이다. 이스라엘의 그 후의 역사를 그 신명기적 사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다. 신명기의 핵심은 율법의 핵심으로 십계명이고 그 요약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다. 구약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의 열왕의 평가의 구체적 기준의 사람은 다윗이었다.
열왕기서는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에 선지자로 지명 받은(렘 1:4) 예레미야가 기록한 내용이다.
다윗을 신앙적 관점으로 즉 열왕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을 기준으로 형통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나라 역사의 흥망성쇠가 평가의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역대기서는 제사장 학사 선지자인 에스라가 아담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 연구가 얼마나 방대하고 깊은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 의 제사장 들 중 힐기야 의 아들 예레미야 의 말이라(렘 1:2)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신분으로 태어나 선지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에스라, 제사장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십 육대 손이라고 하였다.
또한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율법학자 학사
서기관이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삼대 율법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스 7:5-6)
신명기 사관(historical view)
모세가 드디어 그 백성이 가나안 땅 들어가기 직전에 모압 땅에서 설교한 그 내용의 핵심에 근거해서 그 이후의 역사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역사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신명기서의 다음 장 절 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신 5: 6:4 , 8:1-4,
10:12-13, 신 11: 30:-34:)
신명기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6:4)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 이웃 사랑은 지리적 혈통적 뿐 아니라 서로 ,, 나도 상대방에게 이웃이라는 것이다. 서로이다,, 이웃은 혈통적 지리적 또는 특정한 이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이다,,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대로 사는 삶이 일등 국민으로 사는 큰 사람이고 행복한 삶일 것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 먼저 인생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신명기서의 역사관을 연구해 보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오라버니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가장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요한복음 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11:43 When he had said this, Jesus called in a loud voice, "Lazarus, come out!"
11:44
The dead man came out, his hands and feet wrapped with strips of linen,
and a cloth around his face. Jesus said to them, "Take off the grave
clothes and let him go."
예수님께서는 이 가장 놀랍고 복된 말씀을 하시고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를 불러 살아
나오게 하시므로 이 말씀을 증명하셨다.
부활과 영생을 증명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를 큰 소리로
나사로아 살아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신 것이다.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명이 없어지지 않았고 존재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신 것이다.
신명기서는 이야야서와 함께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 중에 하나이다.
신명기는 계명적인 내용이 많고 이사야서는 메시야 예언의 교리적인 면이 강하다 할 것이다. 물론 신명기서에도 가장 분명하게 메시야 예언을 하고 있다.
성경 주석가들은 열왕기서를 선지자적인 관점에서 또한 신명기적 관점에서 그리고 역대서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기록하였다고 하나 넓은 의미에서 열왕기서나 역대기서 모두 신명기적 사관을 가지고 기록하였다고 할 것이다.
또한 학사 즉 서기관이고 제사장인 에스라가 기록한 많은 성경의 역사적 사료들을 사용하여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에스라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스 7:10 )
이것은 마치 신약성경의 초대교회사 성령행전이라고도 하는 누가복음의 사도행전을 기록과 연관하여 볼 수 있다.
(스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For Ezra had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and observance of the Law of the LORD, and to teaching its decrees and laws in Israel.'
(비, 눅1:1-4,, 누가는 의사 문학가 그리고 역사가라고 할 수 있는데 에스라도 역사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스라와 누가는 역사가로서의 자세와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 결심하였더라 ,, 영어성경은 devote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원) 준비되어 있다(준비하게 하다), 바른, (똑바로, 굳게, 앞에)세우다, 안정하다, 세우다(튼튼히 하다 prepare, establish, ready, stablish, provide, fixed, confirmed, firm, preparation.
NIV 1984 판의 번역을 높이 평가하는데 이 구절에서도 에스라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성경 연구에 헌신적인 열심을 다한 것을 에스라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에스라의 심정과 자세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겪은 상황과 역사를 보면 그야말로 헌신적인 자세를 전심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심하였더라는 굳게 굳게 헌신적으로 온 생애를 다하여 준비하고 시행하였다는 것은 그의 너무나 분명한 모습인 것을 그가 본 상황을 안다면 그렇게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자신의 민족이 이방 나라의 포로로 끌려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현실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인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절규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였겠는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자기의 전 생애를 건 연구이었다 할 것이다. 그의 성경 연구가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건 결단의 결심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민족이 다시는 이러할 수 없다는 절규의 심정을 담아 온 힘을 다하여 자료를 구하고 연구하고 또 연구하였을 것이다.
예수 메시야 그리스도의 초대교회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얼마나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였는가와 비교할 수 있다. 바울의 동역자 의사 누가는 초대교회에서 바울과 동역하며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생생하게 많이 체험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가의 복음서를 기록함에 있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의 목격자들의 많은 증언과 자료들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이며 역사가로서 그 사실을 기록 한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대단히 세밀하고 정밀하고 착오없게 진단하고 처방해야 하는 직업인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과학적 합리적 객관적인 관찰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직업을 그의 누가 복음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바울과의 동행에서 예수님의 영 성령의 놀라운 많은 역사를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목격자들의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증언을 자세히 듣고 그 자료들을 세밀하게 검증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모습과 연관하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명기서의 주요 내용성경의 앞 부분은 모세 오경이다, 그 모세의 오경 중 신명기서는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명기 이후의 가나안의 역사는 그 신명기의 말씀에 근거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것을 신명기적 역사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명기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 역사의 기록자들은 신명기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개인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도 신명기적 사관(viewpoint)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신명기적 사관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의 가장 첫째 되는 내용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인들은 이 관점에서 개인의 역사와 세계 역사를 보아야 할 것이다.또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사랑은 종교적인 면인 것이고 이웃 사랑은 지리적 혈통적인 이웃 이상의 서로 사랑이라는 것인 것이다. 서로 사랑은 윈윈 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두 돌 판에 손수 써 주신 사랑의 언약 십계명은 출애굽에 있지만 신명기에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새 세대를 포함한 백성들에게 다시 반복하여 말한 것이다. 그 내용에는 계명을 지키면 그 은혜의 복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말씀하고 있다.
(신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but showing love to a thousand generations of those who love me and keep my commandments.
( 이러한 약속을 보아도 현실에서
한반도 남북이 적대를 청산하고 평화 공존 협력 이웃사랑 서로 사랑을 실천하면 그 은혜의 복은 얼마나 엄청날 것인가를 신앙인들은 알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증오 비방 적대 등등을 진행한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과 입술에 손해이다. 마음에 그러한 마음을 품고 있고 말한다면 최대의 손해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위선적 거짓 애국을 과시하려고 하는 것 뿐이다. 혹 일시적 스트레스 해소는 될지 모르고 일부 치인들이 과격한 말로 자기 이름을 알리는 공천을 덛기 위한 전략일지 모르지만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신앙인들은 이러한 모습이 당연히 없어야 한다. 생각과 언어와 행동에서 말이다.)
신명기서는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그 출애굽 사십 년 십일월 일일에 가나안 땅이 보이는 요단 이편 모압 땅에 다시 한번 율법과 지금까지의 역사를 말하고 약속의 땅에서의 행복한 삶을 위한 설교의 내용이다.
신명기의 두 번째 말씀이라는 뜻으로 신 자는 한문으로도 거듭 신으로 율법을 새 세대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다시 설교한 내용이다.
그들은 신명기서를 진지하게 읽고 또 읽어야 할 것이다. 그 당시로서는 듣고 또 들어야 할 것이다.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가 그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로 얻고도 이렇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이제 어떠해야 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스 1:1-3
신1:1-5
(신5:12- )
모세가 가나안 들어가기 직전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돌판에 친히 써 주신 사랑의 언약 십계명 돌판을 받고 전한 그 내용을 그 시대를 모르는 그 이후 세대에게 다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신6:4 )
이스라엘의 교육의 근거 또는 목표는 쉐마 이스라엘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 목표는 이스라엘이 인구비례로 가장 많은 노벨상을 탔다는 점에서도 세상 교육에 적용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6:18)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Do what is right and good in the LORD'S sight, so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you may go in and take over the good
land that the LORD promised on oath to your forefathers,
신 8:1-4
신10:12-13
11:8-12
신11:13-25
(신13:18 )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정직을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because you obey the LORD your God, keeping all his commands that I am giving you today and doing what is right in his eyes.
(* '지키다' 히브리어 솨마르 는 행함으로써 지키는 것이 아니라 keep, 마음에 간직하다. 신10:13,,11:1, 11:18,, )
신29:
신30:14-
신31:1-30
신32:
신33: 29
신34:1-34
34:10-12,,
이러한 감격적인 내용을 모세를 통하여 주었는데 그들이 지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은 더구나 제사장 예레미야의 심정은 그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다고 하는 그리고 그것을 예언해야 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은 어떠하였겠는가, 그것은 예레미야서 와 예레미야 애가에서 절절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벨론 칠십 년을 포로로 살고 있었을(B.C.586~537) 제사장 율법학자 서기관이었던 에스라의 심정은 어떠하였겠는가, 그리고 무엇을 찾았고 알았고 무엇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겠는가, 그것을 실천한 것을 에스라서에서 역시 절절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과거의 역사에서도 찾았고 전했던 것이다. 그것이 역대기서인 것이다.
시편 34:8-11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 Fear the LORD, you his saints, for those who fear him lack nothing./ The lions may grow weak and hungry, but those who seek the LORD lack no good thing. / Come, my children, listen to me; I will teach you the fear of the L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