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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피
그리스도의 피(Sanguis Christi, Blood of Christ)
십자가 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흘렸던 육체의 피를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인류 구원은 바로 이 피를 흘림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보혈(寶血) 또는 보배로운 피라고도 한다.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등에서는 성찬례 때 사용하는 축성된 포도주는 성혈(聖血)이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흘렸던 피와 동일시하는 신학적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For you know that it was not with perishable things such as silver or gold that you were redeemed from the empty way of life handed down to you from your forefathers.
but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 lamb without blemish or defect.
예수의 피로 우리가 구속함을 얻었습니다.
은이나 금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피의 능력을 믿는 자는 모든 죄를 깨끗이 씻음 받습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롬 5:9)
예수의 피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의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예수의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입니다.
“이것은 언약의 피니라”(마 26:28, 막 14:24, 눅 22:20)
언약의 피는 살아 있는 피요.
말하는 피요.
의사를 전달하는 피 입니다.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는 놀라운 피 입니다.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계 1:5).
예수의 피는 죄에서 해방하시고, 사망에서 해방하시고, 사단에서 해방하시고, 모든 무거운 짐에서 해방하시고, 모든 억압과 눌림에서 해방해 주십니다.
예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
그래서 주님께서 “내 피를 마시라”(마 26:27-28)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습니다(요 6:54).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한다고 하셨습니다(요 5:56).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예수의 피가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합니다.
동행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벗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룹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피로 헐어 버리셨습니다.
믿음으로 언제나 하나님께 나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항상 깨끗케 하십니다.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죄인이 깨끗케 되는 것은 오직 예수의 피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의 피는 성소에 들어 갈 담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20).
예수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성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인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예수 피의 공로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의 피는 승리케 합니다.
“저를 이기었으니”(계 12:11).
예수의 피는 능력이 있습니다.
비난도, 시기도, 마귀의 공격도 이기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복이 됩니다.
믿고 회개하는 자들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예수 보혈을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기억도 안하십니다.
죄로 마구 낙서가 된 산만하고, 추한 마음이 깨끗한 백지가 됩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렘 31:34).
죄를 영원히 지워 버리십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죄를 등 뒤에 던져 버리셨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죄를 도말해 버리십니다.
“내가 네 허물을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도말한다는 말은 지워 버린다는 말입니다.
죄를 깊은 바다 속에 던져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8-19).
죄를 발견치도 못하게 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사할 것임이니라”(렘 50:20).
죄를 가려 주십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예수의 보혈의 피에 적심을 받은 사름들은 반드시 잘됩니다.
흥합니다.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심판과 저주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보혈을 믿고, 회개하며, 기도하는 자들의 모든 죄를 넉넉히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든 죄는 사함 받았습니다.
보배로운 예수님의 피의 능력은 영원한 능력입니다.
예수 피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성경에선 믿음의 순도를 비유할 때 종종 사용된다. 또 ‘지혜’와 ‘귀하고 소중한 것’ 등을 상징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중 하나인 금은 처음엔 광석에 불과하지만 온도가 1000도 이상의 용광로에서 40일 동안 세 번 살아남으면 순금이 된다.
무엇보다 온도가 제일 중요하다.
약간 높거나 낮아도 안 된다.
다른 액체가 함께 녹아 불순물을 걷어낼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련사의 사전에는 ‘적당히’라는 말이 없다.
마지막 불순물이 제거되고 금의 표면이 장력을 일으켜 판판하게 퍼진다.
그때 금의 표면 위에 제련사의 얼굴이 거울보다 더 또렷하게 비친다.
마침내 순금이 탄생하는 시간이다.
순금을 만들려면 자신의 얼굴이 거울처럼 보일 때까지 연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금을 만드는 사람들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뢰, 사랑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세상의 어떤 정금이나 권력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내 영혼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드러나야 한다.
용광로에서 노폐물이 제거되어 정금이 되듯 고통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악의 찌꺼기들을 제거하고 거룩한 사람을 만든다.
한번 순금이 된 뒤에는 다시 광석으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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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도 있다.
"남들과 대화할 때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거나 '성경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면 신앙 좋은 사람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실천하면 또라이 취급 받습니다." 이건 누구 말이냐. 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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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체험기인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The Year of Living Biblically) 미국의 대형 책방 '반스앤노블'의 유머 코너에 꽂혀 있었다. | |
미국의 대형 책방 '반스앤노블'(Barnes and Noble)에서 본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The Year of Living Biblically)가 유머 코너에 꽂혀 있기에 하는 말이다.
저자 A. J. 제이콥스가 글을 워낙 유머러스하게 쓴 탓도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글자 그대로 똑같이 실천에 옮겨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웃기는 일이기에 종교 코너가 아니라 유머 코너에 배치됐을 게다.
오늘날 성경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책 제목처럼 '미친 척'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유머 코너에서 한 번 더 깨달았다.
성경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건함과 엄숙함과 진지함이 문장마다 아로새겨 있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에스콰이어>라는 남성 패션 잡지의 편집자인 저자에게 경건, 엄숙, 진지 같은 말들은 애당초 거리가 먼 단어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건 그만의 글맵시를 죽이는 일이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구약성경 시대 목자들의 복장을 하고, 샌들을 신고, 한 손에는 십계명 돌판(번역서에는 성경을 들고 있다)과 다른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든 채(번역서에는 양 한 마리를 이끌고) 맨해튼 일대를 싸돌아다니는 저자의 모습을 담은 책 표지부터 재미있고, 본문 곳곳에서 톡톡 튀어나오는 기발한 장면들과 산뜻한 표현들도 재미있다.
성경 완독, 100여 권 도서 참고, 자문위원 구성 등 치밀한 준비
글맛도 글맛이지만 사뭇 진지한 내용이 돋보인다. 재미있다고 해서 새털처럼 가볍기만 하면 쓸모가 별로 없다.
제이콥스는 '무늬만' 유대인일 뿐 사실은 '불가지론자'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는 태도다.
그런데도 그는 성경대로 실천하는 생활을 무척이나 진지하고 성실하게 진행했다.
준비 단계부터 그랬다.
그는 16권의 영어 성경을 구입해서 한 달 동안 하루 5시간씩 집중적으로 읽었다.
앞으로 실천해야 할 계율, 지침, 조언, 금언 들을 일일이 찾아서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렇게 정리한 실천 목록은 700개가 넘었다.
원칙이 하나 있었다.
성경 구절을 임의로 취사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하는 미국의 기독교인들 태반이 자기가 내세우는 명분에 맞는 성경 말씀만 골라내서 지키고 있었다.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였다.
그는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걸 통해 위대한 것, 영원한 것을 발견해 보고 싶었다. 구약성경에만 치우치지 않으려 했던 것도 그래서다.
그는 또 성경의 진의(眞意)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100권이 넘는 참고 도서를 읽었다. 무신론 주창자인 리처드 도킨슨, 기존의 성경 해석을 전면으로 뒤집은 존 셸비 스퐁,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 이밖에 폴 틸리히, 짐 월리스 등의 책들을 두루 섭렵했다. 다양한 신학 성향을 가진 영적 자문위원단까지 구성해서, 혼자 힘으로 풀기 어려운 암초를 만날 때마다 도움을 구했다.
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순례의 길을 떠난다.
생리하는 아내는 불결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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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J. 제이콥스는 수염을 길게 기르고, 구약성경 시대 목자들의 복장을 하고, 샌들을 신고, 한 손에는 십계명 돌판과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맨해튼 일대를 싸돌아다녔다. | |
첫날부터 일이 어이없이 꼬였다.
영적 순례를 시작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라"는 레위기 19장 이야기 앞에서 멈췄다. 이걸 지키려면 폴리에스테르와 면 혼방 티셔츠부터 벗어야 했다. 그는 혼방 섬유 감별사까지 불러서 자기 옷가지들을 샅샅이 조사하게 했다. 감별사는 제이콥스가 봉급의 3분의 1이나 들여서 산 비싼 단벌 양복의 여기저기를 포크 비슷한 도구로 마구 쑤셔댔다. 그러더니 목깃 안쪽에 댄 흰 천을 의심했다. 혼방인지 아닌지 조사하려면 그걸 연구소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시트콤 수준의 이런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아내 줄리가 생리를 시작하자 다른 성경 구절이 그를 괴롭혔다. 창세기 말씀을 따라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한동안 땀 흘리며 열심히 해왔던 성적(性的) 노동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게다가 일주일 동안은 '불결한' 아내를 만지기는커녕 가까이해서도 안 된다.
제이콥스는 줄리가 한번 앉았던 의자에는 절대 앉지 않았고, 집 열쇠를 건넬 때도 30센티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녀의 손 위에 떨어뜨렸다. 아내는 문둥병 환자(요즘에는 '나병'이라고 순화했다)가 된 듯한 불쾌감에 휘감겼다.
자녀 교육도 꼬였다. 구약성경 잠언에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는 말이 있다. 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면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말도 있다. 자녀를 두들겨 패서라도 똑바로 키우라는 얘기가 여러 군데에서 튀어나왔다. 곤혹스러웠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막대기나 채찍으로 자녀를 때려서 키우는 것을 성경적인 훈육법이라고 믿고 있다.
고심에 고민을 거듭한 저자는 결국 스티로폼으로 된 장난감 방망이를 샀다. 아이의 장난이 극에 달하자 방망이로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한 번도 아이를 체벌한 적이 없었는데, 성경 구절 앞에서 지금까지의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주체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왔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근데 아이가 동요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신이 나서 장난감 방망이로 아빠의 엉덩이를 마구 때리면서 웃어젖혔다. 저자의 체벌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성경의 역사가 길다 보니 별의별 희귀한 얘기가 다 나온다. 그걸 글자 그대로 지키면서 살려니까 온갖 해괴망측한 체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이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 위해 수입의 10% 기부
제이콥스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십일조를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건 남편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남편보다 남 돕는 손이 큰 아내도 수입의 10%나 기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둘은 꼼수를 생각해 내기 시작했다. "저작권 대행사에 지불하는 중개 수수료를 십일조로 간주할까?" "세금을 제하고 난 수입의 10%로 해도 되겠지?" 양심이 찔렸다. 이런 식으로 따지는 건 아무래도 '성경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제이콥스는 몇 군데 구호 단체를 골라서 그곳에 수입의 2%를 기부했다. 감사 메일을 받고 보니 기분이 흐뭇해졌다. 신의 존재를 확신하지는 않지만, 돈을 기부하면서 하나님의 기쁨을 느낀 것 같았다. 평생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기쁨에는 고통이 수반되기 마련. 아직 8%를 더 기부해야 한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되는 날 쉬었다. 이에 맞춰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일곱 번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지키도록 했다. 이 해에는 농사를 짓지 않아 땅도 쉬어야 했고, 이웃이 진 빚을 청산해 주어야 했다.
특히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그 다음 해인 50년이 되는 해를 '희년(禧年)'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하자면 '기쁨의 해'이다. 희년에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해야 했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농사를 지어서도 안 되었다. 무엇을 사고 팔 때 이웃을 억울하게 해서도 안 되었다. 세나 이자도 금지되었다. 빚도 조건 없이 탕감해주어야 했다. 식객과 종으로 타향으로 팔려나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제이콥스는 '대희년(大禧年) 유에스에이 네트워크'라는 단체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갔다. 선진국들이 제3세계의 채무를 탕감해주라고 촉구하는 엽서를 국회의원과 정부 각료들에게 보내는 일을 도왔다. 그 일로 모처럼 줄리의 칭찬도 받았다.
제이콥스가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의 상징 제리 폴웰 목사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다(당시 그는 살아 있었다). 마침 교회 창립 50주년 기념일이었다. 제리 폴웰은 교회 창립 50년과 성경의 대희년을 접목하는 설교를 했다. 그는 린치버그에 있는 20만의 다른 영혼들을 누르고 승리하라고 설교했다. 제이콥스가 보기에 교회 확장과 대희년을 연결하는 제리 폴웰 목사의 설교는 성경의 진의(眞意)에 안 맞았다.
극과 극에 있는 근본주의자들과의 만남
팻 로버트슨이나 제리 폴웰 같은 근본주의, 문자주의 목사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적극 지지하고 도와주었다. 이스라엘 현지를 방문한 제이콥스는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들 주장의 배경이 되는 요한계시록 내용에 대해 자문위원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어느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 태도(문자주의)는 <이솝우화>가 문자 그대로 다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일세."
저자는 같은 근본주의면서도 제리 폴웰과 정반대 위치에 있는 곳도 방문했다. 펜실베이니아 랭카스터에 가면 아미시 공동체가 있다.
아미시 공동체를 몇 문장으로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아미시는 '국가 교회' 체제에서 이뤄진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아 '재세례파'라고도 불리는 기독교의 종파 중 하나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1700년대 중반 유럽에서 미국의 이곳으로 넘어와서 공동체를 이뤘다. 이후 미국 곳곳으로 퍼져나가서, 지금은 20개가 넘는 주에 20만 명 이상의 아미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어느 기독교 종파보다 예수의 산상수훈을 철저하게 실천하며 산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은 물론이고 군 입대를 거부해 많은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기도 했다. 몇 해 전 아미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정신질환자가 총을 난사해 아이들을 죽였을 때, 부모들이 범인을 용서하고 범인의 장례식에서 죽음을 애도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던 곳이다.
제이콥스는 공동체 아이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고 쓴 글이다.
"아이들의 실력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잠시 후에야 이상한 부분을 깨달았다. 내가 이제껏 본 야구 시합 중에 가장 조용했다. 야유하는 소리도 없고, 관중석에서 목이 터져라 자기 아이를 응원하는 부모도 없었다. 가끔씩 방망이가 공을 때리는 소리만 들릴 뿐 거의 침묵에 가까웠다. 참으로 요상하고…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둘 다 성경대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둘째 가라면 입에 거품 물 사람들인데, 한쪽은 살인과 전쟁을 부추기고, 다른 한쪽은 용서와 평화가 충만하다.
양 극단뿐 아니라 중간 지점에 있는 사람들도 만났다. 저자는 토니 캠폴로나 짐 월리스 같은 이들을 통해서 "복음의 내용을 너무 많이 해석해서, 예수가 전하려 했던 진의(眞意)보다 그 해석을 믿기 시작한 데서 종교적인 문제들이 일어난다"는 걸 알았다. 대형 교회 목사들의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 교리가 '이단적'이라는 것, 예수의 절대적 관심은 동성 간의 결혼 문제가 아니라, 장벽을 허물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포용하는 데 있다는 걸 알았다.
예상치 못했던 1년 뒤의 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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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동안 종교 체험을 하면서 겉만 바뀐 것이 아니라 속도 바뀌었다. 온기 없이 쌀쌀맞던 40대 뉴요커가 1년 사이에 자기 수입의 10%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거짓말을 안 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 |
제이콥스는 따뜻한 감성보다는 차가운 이성이 훨씬 더 반들거리는 40대의 전형적인 뉴요커다. 그런데 1년간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다음에는 우주가 더 이상 무의미한 물리학적 입자들로만 보이지 않았다. 항상은 아니지만, 어느 때는 이 세상에 신성한 빛이 가득 드리워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우주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풍성해지고 덜 사악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일에서도 경이로움을 느끼고, 일상생활에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행동에서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신호등의 색깔과 보행자의 행동과 전혀 무관한 맨해튼 거리에서 차도를 건널 때 꿋꿋이 신호등을 지킨다. 거짓말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수입의 십일조를 아시아 지역의 고아들을 위한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가장 큰 변화는 '감사'다. 전에는 특별히 감사할 일에만 감사했는데, 지금은 모든 일상에 감사한다. 세상의 모든 소소한 기쁨, 모든 음식, 눈떠 있는 모든 시간, 물을 마시는 모든 시간,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기적과도 같은 사실을 감사한다. 감사의 대상이 지금 기독교에서 믿는 바로 그 하나님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제이콥스가 글자 그대로 지키려고 꼽은 700개의 종교적 규율이 그를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불가지론이 뒤집힌 것도 아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은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평화와 나눔과 감사와 기쁨을 알았다. 그리고 개인주의로 찌들었던 자신의 삶이 공동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1년 동안 또라이 짓을 한 대가가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장사 아닌가? 책도 제법 팔렸으니 금상첨화다.
예수의 '피'만 빨아먹는 '뱀파이어' 기독교인들
오늘날 기독교와 기독교인에 대한 일반인의 비난과 원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서 기독교라는 종교는 지구촌에서 박멸되어야 할 악성 바이러스 같은 존재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뿌리를 캐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처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예수' 때문에 욕을 얻어먹는다면야 눈 질끈 감고 감수할 수밖에 없다. 성경대로 실천하다가 욕을 먹으면 하늘의 상이라도 받는다. 사실은 일반인들한테 존경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하라는 걸 안 해서 생기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것도 기독교의 아주 핵심적인 부분은 모조리 거세되어 있다.
달라스 윌라드 목사는 <잊혀진 제자도>에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그의 피에만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교회가 넘쳐난다.
나는 그들을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실천은 온데간데없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 노래하는 기독교인들을 '흡혈귀'라고 한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가 몰라도 뭘 한참 모른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 만발인 영화 <트와일라이트>(Twilight)에 나오는 뱀파이어는 섹시하고 멋있는데.
예수 믿는 뱀파이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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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중요성을 탐구하십시오.
성경은 피 를 생명의 상징이자 원천으로 간주합니다.
레위기 17 장 14 절은 "모든 피조물의 생명은 그 피다 : 피는 생명 이니 ..."( ESV )
구약에서 피는 중요한 역할을합니다.
출애굽기 12:1-13
첫번째 유월절에 양고기의 피가 각 문틀의 상단과 측면에 이미 죽음이 일어났다는 표시로 게시되었으므로 죽음의 천사가 건너 뜁니다.
대속죄일(Yom Kippur)에 일년에 한 번 대제사는 사람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피 제사를 드리기 위해 거룩한 신전에 들어갔다.
황소와 염소의 피는 제단에 뿌려졌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대신하여 동물의 생명이 부어졌습니다.
하나님 께서 시내산에서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 셨을 때, 모세는 소의 피를 가져다가 그것의 절반을 제단에 뿌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절반을 뿌렸다(출애굽기 24:6-8)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생명과의 관계 때문에, 피는 하나님께 최고의 헌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성과 정의는 죄가 처벌되어야한다고 요구합니다.
오직 죄에 대한 벌이나 지불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동물을 제물로 바치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의 죽음까지도 죄를 치르기에 충분한 희생이 아닙니다.
속죄에는 올바른 방식으로 제공되는 완벽하고 흠없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완벽한 한 신의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순수하고 완전하며 영원한 제물을 바치려고 오셨다.
히브리서 8장에서부터 10장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되어 어떻게 희생 제물의 피로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 자신의 귀한 피로 천국에 들어가셨는지를 아름답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세상 죄를위한 궁극적 인 속죄 희생에 목숨을 부어 주셨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 언약의 기초가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위해 부어지는이 잔은 내 피의 새 언약이다."(누가 22:20, ESV)
사랑하는 찬송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귀중하고도 강력한 본성을 표현합니다.
이제 그 성경의 중요한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성경을 살펴 봅시다.
예수의 피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를 구하자.
그분 안에는 은혜의 풍성함에 따라 우리의 죄로 용서받는 피로 말미암아 구속받을 수 있습니다 ... ( 에베소서 1 : 7)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그 자신의 피로 그는 언제나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들어가서 우리의 구속을 영원히 확보했습니다. (히브리서 9:12, NLT )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 시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죄를위한 희생 제물로 예수님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께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고 피를 흘리신다고 믿을 때 사람들은 하느님 께 바르게 ... ( 로마서 3:25, NLT)
우리의 대우를 지불하십시오
여러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빈 삶으로부터 여러분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 께서 몸값을 지불 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가 지불 한 대속물은 단지 금이나 은이 아니 었습니다. 그것은 죄없고 무모 한 하나님의 어린 양 이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베드로 전서 1 : 18-19, NLT)그리고 그들은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너는 두루마리를 들고 물개를 열 수 있었습니까? 왜냐하면 당신은 죽임당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피로 당신은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과 국가에서 하나님을위한 사람들을 속량하였습니다 ... ( 계시 5 : 9, ESV)
죄를 씻어라 (요한일서 1:7, NLT)
그러나 우리가 빛 속에 살고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며, 그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줍니다.
우리를 용서해주십시오(히브리서 9:22, ESV)
사실, 율법 아래서는 거의 모든 것이 피로 정화되고, 피를 흘리지 않고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우리 무료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는이 일에 충실한 증인이며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서.
우리를 정당화하다(로마서 5 : 9, ESV)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그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그분에 의해 훨씬 더 많이 구원을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책감을 깨끗케하십시오(히브리서 9:13-14, NLT)
예전의 시스템에서는 염소와 황소의 피와 새끼 암소의 유골이 사람들의 몸을 의식 불순물에서 제거 할 수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죄된 행위에서 얼마나 더 많이 정화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우리를 성화시키다(히브리서 13:12, ESV)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로 백성들을 거룩하게하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12, ESV)
하나님의 면전 길을 열어라(에베소서 2:13, NLT)
그러나 이제는 당신이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했습니다. 일단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그에게 가까이갔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인해 대담하게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19, NLT
평화를주십시오.
모든 충만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를 기뻐 하셨으며, 그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신과 화목하게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평안을 이루 셨습니다. 골로새서 1:19-20, NLT
적을 극복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어린 양의 피와 그들의 간증의 말씀으로 그를 이겼으며, 그들의 삶을 죽음까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계시록 12:11)
다시 말해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등은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있으나 그 안에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의 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특별히 가톨릭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화하는 것을 성변화라고 부른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실체 변화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를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성찬을 거행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희생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구약의 속죄의 희생제물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대제사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희생 제사를 드리던 성전 뜰은 주님께서 죽으신 골고다 언덕을 가리킨다. 구약의 성막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완전한 성막, 즉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가 있는 영원한 천국을 가리킨다.
성경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11-22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죄하신다.
(12절) 우리의 모든 죄값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지불하신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He did not enter by means of the blood of goats and calves; but he entered the Most Holy Place once for all by his own blood, having obtained eternal redemption.
(14절) 우리를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How much more, then, will the blood
of Christ, who through the eternal Spirit offered himself unblemished
to God, cleanse our consciences from acts that lead to death, so that we
may serve the living God!
(15절) 영원한 기업을 약속으로 얻게 하신다.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this reason Christ is the mediator of a new covenant, that those who are called may receive the promised eternal inheritance--now that he has died as a ransom to set them free from the sins committed under the first covenant.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입고 새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럽고 풍성한 기업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