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요엘의 뜻 :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 브두엘의 아들 / 브두엘(하나님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6월 18일(금)
여호사밧 골짜기(요엘 3:2)

요엘 3: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 여호사밧(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


여호사밧

여호와(야흐. Yâhh / יָהּ ) + 샤파트(shâphat / שָׁפַט )
    여호와 + 심판하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

* 여호사밧 골짜기 /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골짜기


역대하 20장
                  여호사밧       :         아람의 전쟁
            (유다 제4대 왕)       (모압, 암몬, 마온 사람)

역대하 20:12-13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역대하 20:14. 레위 사람 야하시엘

15b.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7절a.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역대하 20:20b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군대 앞에 노래하는 자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여호와를 찬송,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역대하 20:26

제 사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 the Valley of Beracah 

브라가 / 베라카(Berâkâh.  בְּרָכָה ) 송축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The people whom I formed for Myself Will declare My praise.

오늘의 기도

여호사밧과 같은 골짜기를
브라가와 같은 골짜기로 만들기 위하여!

시편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him.

역사적 배경은 역대하 20장에서 찾는다.

유다 왕 제4대 "여호사밧"은 모압, 암몬, 마온 사람들이 공격하려고 엔게디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호사밧은 두려워하여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금식하라 공포한 후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였다.
이때 여호와의 신이 레위 사람 "여하시엘"에게 임하여 아르기를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므로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하셨다.
그리고 저희가 "시스 고개"올라올 것이니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싸울 것이 없다.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여호사밧과 모든 백성들은 여호와께 엎드리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은 일어서서 큰 소리를 여호와를 찬송하였다.

여호사밧은 군대 앞에 노래하는 자들을 세우고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며 찬송하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적군을 물리치셨고 4일 후에 적군의 물건을 취하였는데 너무 많아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브라가(송축) 골짜기"에 모여 여호와를 송축하였다.

여호사밧의 골짜기가 연합군들에게는 패배의 골짜기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승리의 골짜기가 됩니다.
승리의 골짜기를 브라가 골짜기라고 불렀습니다.
브라가는 송축하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내가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어제의 그 자리가 아닙니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로 만드는 것도 누구입니까?
내가 어제와 같은 자리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승리의 자리 브라가의 자리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 머물고 싶습니까?
어제와 똑같이 지루하고 답답하고 소망이 없는 자리로 만들 수도 있지만
찬송하며 나갈 때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는 자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6월 17일(목)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요엘 2:13)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은 어느 개인에게 요구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민족 공동체에게 요구하신 것일까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배열 순서에 따라 호세아(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와 아모스(하나님의 정의와 심판) 사이에서 징검다리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엘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공동체의 회개)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옷을 찢는 것(비게데켐)
형식, 습관
큰 슬픔, 큰 재난, 회개

창세기 37:29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민수기 14: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사무엘하 1: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마음을 찢는 것(키르우 리바브켐)
아픔, 고통

시편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상한 심령(broken spirit)
- 죄를 깨닫는 마음
*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전에는 회복할 수 없는 마음

완고한 심령(stubborn spirit)
- 죄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 만민(알 콜 바사르) : 모든 사람
육체가 된 타락한 사람에게


창세기 6:3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죄를 지은 인간


사도행전 2:17.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오늘의 기도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상한 심령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여, 심령을 새롭게 하옵소서 


6월 16일(수)
여호와의 날(요엘 1:15)

여호와의 날(The day of the Lord) /
욤 아도나이(יוֹם אֲדֹנָי)

요엘(Joel) 1:15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5회)  1:15, 2:1, 11, 31. 3:14
                             * 2:31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언약의 백성 : 구원
                                이방인 : 심판
                                 구체적 내용 / 재앙적 심판의 날(1:12-14)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멸망(쇼드, shod, שֹׁד)                           
                                                                                            전능자(샤다이, shadday, שַׁדַּי)

1절.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
                        * 브두엘(Bethuel) 하나님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
                                                     하나님의 집(ref. 벧엘)
                                                 * 요엘(Joel)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2절. 늙은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 늙은자들아 /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시대를 먼저 살았던 어른들

3절.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 신앙교육(말씀교육)을 몇 대째 계속하는가?
* 말씀교육이 없는 시대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4절.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은 무엇일까?

2: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5절.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찌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찌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 울찌어다(바카,  בָּכָה) 흐느끼다

                                                                                                                             * 곡할찌어다(얄랄, יָלַל  ) 고함치다, 소리치다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 멸망(쇼드, shod, שֹׁד)                           
                                                                                           * 전능자(샤다이, shadday, שַׁדַּי)


오늘의 기도

말씀 교육을 회복하기 위하여

1. 기독교 신앙을 자녀에게 가르치자
2. 예배를 회복하자(예배와 삶)


6월 17일(목)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요엘 2:13)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공동체의 회개)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마음을 찢으라!

<옷을 찢는 것>은 무서운 재앙이나 극심한 재난이 닥쳤을 때 이스라엘이 행했던 전통적이고도 관습적인 행위였습니다(창 37:29-35). 본래 마음을 찢는다는 의미의 상징적인 표현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런 의미를 상실하고 위선적이고도 습관적인 의미로 퇴색되자 요엘 선지자가 여기서 다시 내적인 심령의 통회를 요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옷을 찢는 것
창세기 37:29-30

르우벤
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마음을 찢는 것

옷을 찢는 것은 형식입니다.
마음을 찢는 것은 아픔입니다.

옷을 찢을 때는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어서  아픔이 동반되지 못한다.
반면  마음을 찢을 때는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어서 아픔이  함께 동반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아픔이 있는 것이 마음을 찢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아픔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감각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감각이 생겼으니  그 사귐에 있어서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깊고 넓게  가져 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아픔을 느낀다. 
그러나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면  아픔을 느낄 수가 없다. 
즉  하나님을 향하여 이 아픔의  감각을 찾으라는 요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엘을 통하여  세상적으로 보기에 멋있게 보이고 휼륭한 모습으로 까지 보이게 하는 신앙인의 모습  즉  옷을  찢는  멋있는 형식주의적  신앙인의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아픔을 느끼는  살아있는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기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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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이름속에 내포된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의미는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일생 뿐 만 아니라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오직 유일한 주권자이십니다.

핵심단어 : 여호와의 날

그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에는 두려움의 날이지만 주의 백성들에게는 위로의 날이며 보상의 날로 이해되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요엘은 당대에 유다가 당면한 국가적인 위기 상황(메뚜기 재앙)을 통해 비록 주의 백성들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지 않을 경우, 두려움과 심판의 ‘여호와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겸비케 함으로장래에 임하게 될 궁극적 ‘여호와의 날’을 잘 준비하며신앙 성숙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여호와의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 삶에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의 날’을 미리 경험케 하심으로 회개를 통해 향후 다가올 ‘여호와의 날’을 준비시키시 위한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입니다.

특징 : 요엘의 예언은 개인의 경험이나 환상 대신 자연 재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일반적인 선지서들의 경우, 선지자 개인의 경험이나 환상을 바탕으로 예언이 이루어지는데 반해 요엘은 메뚜기 재앙을 바탕으로 예언합니다.

구성

요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메뚜기재앙과 장차 임할 여호와의 날에 대한 경고의 내용인 1장 1절부터 2장 17절
2) 회개를 통한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과 축복의 약속에 대한 내용인 2장 18절 부터 3장 21절

1장은 1)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인 1절과
2) 여호와의 날의 예시로 주어진 메뚜기 재앙을 통한 경고를 다루는 2절부터 4절까지의 내용,
3)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빚어 지게 되는 참상 및 회개 성회를 촉구하고 있는 5절부터 14절,
4) 궁극적인 여호와의 날에 대한 탄식과 간구의 내용인 15절부터 마지막 20절까지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제 (1절)

본문 1절입니다.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요엘은 남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로 요엘의 예언 선포는 남유다의 제 8대왕이었던 요아스(B.C. 835~796)의 통치 초기로 여겨집니다. 당시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열된 지 약 100여년 정도 지난 시기로 두 왕국간의 정치적 갈등은 거의 해소되었으나 종교적으로 두 왕국 모두 패역한 길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로 그 때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됩니다.

요엘서의 표제인 1절에는 요엘의 아버지인 브두엘이 언급됩니다. 아들 요엘에게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이름을 지어준 요엘의 아버지 ‘브두엘’ 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은 광대하게 하셨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름들에 담겨진 의미를 통해 우리는 요엘의 아버지인 브두엘과 브두엘의 아버지인 요엘의 조부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아들 또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커가기를 바라는 그들의 신앙적인 열망을 이름에 담긴 의미를 통해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있어 중요한 책무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지닌 믿음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잘 계승해 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그냥 계승되지 않습니다. 내가 내 자손들에게 믿음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 갈 때 비로소 실현됩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내 대에서 믿음이 끊긴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가슴 아픈 일일 것입니다.

오늘 요엘의 아버지인 브두엘과 브두엘의 아버지인 요엘의 조부는 성경에 거의 기록이 없는 아주 미미한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요엘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믿음이 요엘에게 잘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승계받은 요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써 내려 가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계승,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써야 할 중요한 책무중에 하나입니다.

메뚜기 재앙을 통한 경고 (2절-4절)

이제 본문 2절부터 4절까지는 당면하고 있는 재앙을 통해 요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요엘은 먼저 늙은 자들, 곧 나이든 노인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이 조상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 중에 최근 이스라엘이 경험하고 있는 재앙과 비견할 수 있는 날이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재앙이 충격적이며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요엘은 나이든 노인들에게 현재의 재앙에 대해 자녀들에게 말하고 자녀들은 또한 후세에 말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당대에 경험하고 있는 이 일이 결코 잊혀져서는 안되며 그 일을 교훈삼아 다시는 후손들이 반복해서 그런 재앙을 겪지 말게 하라는 바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바른 계승을 위해서는 이처럼 후세를 교훈하여 세워나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물론 항상 바른 삶으로 본을 보이며 진면교사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비록 부끄러운 고백일지라도 그 일이 반면교사가 되어 후손들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세워 나가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전해야합니다. 그를 통해 그들이 경각심을 갖고 바른 신앙적 삶을 견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진면교사적인 인물들과 반면교사적인 인물들이 총망라된 인생 표본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으로 하나님 역사의 통로로 쓰임 받았던 복된 인생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되는 불경건한 삶으로 하나님께 징벌받았던 가여운 인생 또한 등장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1장 19절 말씀을 통해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강론하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자녀와 후손들을 교훈하여 세워나감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바른 믿음을 계승해 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4절입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그 재앙은 바로 메뚜기 떼의 습격이었습니다. 본문에 등장 하는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 은 모두 ‘메뚜기’ 를 가리키는 각기 다른 4개의 히브리어를 우리 말로 옮긴 것으로 이 단어들이 각 각 다른 4종류의 메뚜기를 가르키는 것인지 아니면 메뚜기의 4단계 변태 과정중에 있는 메뚜기의 유충과 성충을 가리키는 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메뚜기 재앙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반복해서임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메뚜기 재앙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참상과 회개 성회의 개최 촉구 (5절-14절)

이제 5절에서 14절까지는 메뚜기 재앙으로 야기된 참상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성회를 개최하기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5절에서 7절입니다.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나이든 노인들을 향해 경고의 메세지를 전달한 요엘은 이제 ‘취하는 자들’ 곧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 에게 술 공급이 끊기게 된 것을 슬퍼하라고 합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자가 먹이를 덮치는 것처럼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인해 포도나무는 물론이거니와 무화과나무 또한 초토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주신 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축복의 땅 가나안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의 표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상징인 포도나무가 망가지고 무화과나무는 전부 갉아먹혀서 하얗게 죽어 버리게 된 것입니다.

아쉽게도 요엘서에는 이 메뚜기 재앙에 대한 원인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엘서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요아스 왕 재위시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며 타락의 길을 걸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에 대한 징벌로 하나님께서 축복의 상징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저주의 상징으로 바꾸어 버리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30장 19절 말씀처럼 우리 인생 행로에는 복과 저주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며 의지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시는 복된 길을 걷게 되지만 그 반대에 경우, 하나님께 징벌받는 고통의 길로 걸어가기 마련입니다. 바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시는 복된 길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당면한 심각한 재앙 앞에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슬퍼하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마치 결혼을 앞둔 처녀가 남편될 사람을 잃었을 때처럼 슬프게 곡하라고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약혼한 남자를 잃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스러운 경험중 하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메뚜기 재앙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9절에서 10절입니다.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메뚜기 떼로 인해 곡식이 죽게 되고 포도나무 또한 망가져 버리게 되자 그 일을 담당하며 백성들의 헌금으로 살아가던 제사장 또한 생활이 궁핍해 져 탄식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곡물 제사였던 소제와 포도주를 부어 드리던 전제는 또한 드릴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죄는 나 뿐 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점차 영향을 미칠 뿐 만 아니라 종국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단절시키고야 마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권면하고 계신 것입니다(살전 5:22).

본문 14절입니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죄로 인해 야기된 죽음과도 같은 재앙앞에 요엘은 제사장들로 하여금 금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열어 백성들을 성전에 모으고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던 아합 왕이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듣고 금식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겸비함을 보시고 용서하사 재앙을 유보해 주셨습니다(왕상 21:17-29)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참회의 마음을 담은 금식과 중심을 담은 기도입니다. 그런 모습과 기도는 하나님께 곧바로 상달되고 그를 통해 죽음과도 같은 징계의 자리는 용서와 구원의 자리로 변화되게 됩니다.

궁극적인 여호와의 날에 대한 탄식과 간구 (15절-20절)

이제 15절부터 마지막절인 20절까지는 궁극적인 여호와의 날에 대한 탄식과 간구에 관한 내용입니다.
15절입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여호와의 날’이 곧 도래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요엘 선지자가 말하는 ‘여호와의 날’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에 의한 멸망의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의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6절부터 20절까지 묘사된 바에 의하며 ‘여호와의 날’은 한마디로 '파멸의 날’입니다. 성전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은 없어지고(16절), 사람들의 곤핍함은 극에 달하며(17절), 가축들 또한 고통스러워 하는 혹독한 고통의 날(18절)입니다.

그 때에 취해야할 행동에 대해 요엘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바로 그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고 요엘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온 징벌적 재앙이기에 그 재앙을 거두어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로 자비와 용서를 구하라는 뜻입니다.

비록 죄로 인한 징계의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며 참회의 자리로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는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정화된 심령을 지니게 된 우리는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한적한 곳, 겟세마네를 찾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가고, 결국 하나님의 원대로 기도하며 그 기도가 상달되는 은혜를 경험하며 우리에게도 임할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기억하시며 한적한 겟세마네의 기도 처소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주님의 용서와 자비하심을 경험하며 다가 올 여호와의 구원의 날을 기쁨으로 준비해 가시는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요엘 선지자가 어떤 사람이고 언제 사역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단지 사도행전 2장 16절에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베드로와 사람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성령충만의 역사로 요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 외에는 언급된 것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요엘 선지자는 아모스와 동시대 사역자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요엘도 아모스가 탄식했던 것과 동일하게 메뚜기 떼나 기근이나 불의 심판들에 대해서 예언했기 때문이지요(암 4:7-11, 7:1-6).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서,
요엘은 남유다에서 사역했습니다.
요엘은 호세아와 오바댜와도 동시대에 사역했을 것으로 봅니다.

여호와의 날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을 5회나 언급합니다(1:15, 2:1,11,31, 3:14).
여호와의 날이 아주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그날은 슬픈 날, 멸망의 날, 주민들이 떠는 무시무시한 날입니다.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로 심히 두렵다고 표현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지금 닥친 일일 수도 있고, 더 큰 심판이 임할 거라는 서곡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든 항상 깨어 있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1장 1절-2장 11절에는 재앙의 날들에 대한 예언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을 후대에 걸쳐서 말해주라고 하십니다.
단순히 신기한 이야깃거리로 삼으라는 게 아니라 ‘가르치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미워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메뚜기 떼로 인해 대자연의 황폐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팥중이와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이 때문에 남은 게 하나도 없이 철저하게 황폐해집니다(1:4).
자연재해로 인한 재앙은 오히려 모든 백성들이 회개할 기회를 갖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분의 얼굴을 구할 때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1장 14절에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라

요엘은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2:12-14)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섯 영역으로 설명합니다.

첫째 은혜로우시며,
둘째 자비로우시며,
셋째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넷째 인애가 크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다섯째 더 나아가서 복을 내리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계획을 변경하거나 취소하거나 연기할 경우는 애초에 계획을 잘못 세웠거나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을 돌이키실 때는 전적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여 회개하며 나아가서 은혜를 간절히 구하면 주께서는 심판의 계획을 세우셨다 할지라도 뜻을 돌이키시고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엘서에는 악한 죄악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면서 주께로 돌아가 간절히 부르짖으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재앙을 돌이키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회개할 때 중심은 우리의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으로의 회복

2장 18-32절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이 비록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하면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특히 18-2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이를 다섯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우리에게 양식을 주셔서 풍족한 삶을 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둘째, 다시는 이방 나라들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셋째,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모든 군대들을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어 다시는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넷째, 회개하여 돌이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히 내려주겠다고 하십니다.
다섯째, 그들에게 이전에 있었던 팥중이와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이가 먹은 햇수대로 도로 갚아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28-32절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사도행전에서는 시간적으로 명확하게 ‘말세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부어주리니”라고 했지요(행 2:17).
‘말세’라는 시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마지막 때에 온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약속하십니다.

여호사밧 골짜기

3장에서 주님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을 벌하시고,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예루살렘을 영광스럽게 회복하여 형통하고 영원한 삶을 살게 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사밧 골짜기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위해 열방을 심판하는 법정입니다(3:2).

열방의 죄목은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여러 나라로 흩어버리고 그들의 땅을 나누어 가져간 것.
둘째는 포로로 잡아 온 유대인의 젊은 남녀를 인신매매업자에게 판 것.
셋째는 하나님의 금과 은을 부당하게 빼앗고 성전의 보물을 그들의 신전으로 가져간 것입니다.

열방에 내려진 선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이 행한 그대로 당하게 될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이 직접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는 피난처와 산성이 되실 것입니다.

심판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애굽은 황무지가 되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영원히 있을 것이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이 약속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분적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들에게서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요엘서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인은 멸망을 받을 것이나 죄악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분의 성품을 의지하여 회개하고, 간절히 그분의 얼굴을 구하면 긍휼히 여기시고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선지자 요엘

  1. 선지자 요엘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1:1에서 소개한 내용외에 더 알려진 것이 없다.
  2. 요엘이란 이름이 성경에 제일 먼저 언급되기는 사무엘의 아들로서 (삼상8:2)그 이름은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3. 정확한 연대 추정은 어렵다.

제목

저자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히브리어 표제명 '요엘'은 그 뜻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이다.
또한 구약 헬라어 역본인 70인역(LXX)에서도 히브리어 표제를 그대로 음역한 '요엘'을 표제로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전통에 따라 영어 성경들과 한글 개역 성경의 표제명도 '요엘'로 쓰고 있다.
이러한 표제의 뜻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강조하는 본서의 내용과도 잘 부합된다.

저자와 기록 연대

본서의 저자가 브두엘의 아들 '요엘'(1:1)이라는 사실은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요엘에 대해서는 그 자신과 아버지의 이름 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그의 부친의 이름인 '브두엘'의 뜻이 '하나님의 성실'이며 '요엘' 자신의 이름 뜻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인 점에서 그가 경건한 가문 출신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어떤 전승은 그가 전제와 소제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 점을 근거로 그의 부친이 제사장이었다고 전하기도 한다(1:9, 13, 14). 그리고 그가 본서에서 시온과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는 것으로 보아(2:15-17, 23, 32 ; 3:1, 5, 6, 16, 17, 20, 21)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한편 본서의 기록 연대에 관해서는 본서를 남유다 제8대 왕 요아스의 재위 기간(B.C. 835-796년)중의 기록으로 보는 전기 연대설과 느헤미야의 종교 개혁(B.C. 432년경) 이후의 기록으로 보는 후기 연대설이 대립되어 있다.


특징

  1. 메뚜기 재앙에 대한 기록.
  2.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실 것을 최초로 암시(2:28~29)
  3. 예언의 계속성-요엘 선지자 당시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 이르는 광대한 예언의 범위
  4. 문체의 스타일은 아주 순수하고 부드러우며 물 흐르는 듯 하면서도 힘이 있고 유연하다.


요엘의 사역

  1. 그 당시는 가뭄, 메뚜기 재앙등이 몹시 심했다.
  2. 비록 모세(신 28:38~39)와 솔로몬(왕상8:37)이 이러한 재앙은 하나님의 징계의 일종이라는 것을 말했지만 이 경우에 있어 백성들은 이것이 징계임을 깨닫지 못했다.
  3. 요엘은 백성들의 영적 생활의 슬픈 현실을 지적하고 그것이 재앙이 되었음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필수적인 단계로서의 국가적인 회개를 역설했다.


중심어구 및 메시지

  1. 중심어구: "주의 날"(1:15, 2:1.11.31, 3:14)로서 "주의 날"은 교회가 없어짐으로 시작되며 주께서 이 세상의 치를 직접 판단하고 간섭하는 날로서 천년 동안 계속된다.
  2. 메시지: 요엘은 "신앙부흥의 선지자"라고 불려왔다. 그는 모든 진정한 부흥의 기초로써 진실한 회개를 지적하고 있으며 이것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이 책은 회개의 책이다. 마음을 찢으면(2:13) 휘장이 찢어지고(마 27:51) 하늘이 갈라진다.(사64:1). 즉 진정한 회개 후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오순절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신약 성경으로의 인용 및 유사 비유

2:28-32(3:1-5) 사도행전 2:17-21
2:31(3:4), 2:10, 3:15(4:15) 마태복음 24:29, 마가복음 13:24, (누가복음 21:25), 요한묵시록 6:12, 9:2
2:32(3:5) 로마서 10:13
3:13(4:13) 요한계시록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