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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월)
하나님을 위하여(요한계시록 1: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Look, he is coming with the clouds, and every eye will see him, even those who pierced him; and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will mourn because of him. So shall it be! Amen
헬라어 원문
Ἰδοὺ ἔρχεται μετὰ τῶν νεφελῶν
Idou erchetai meta tōn nephelōn
직역하면:
“보라, 그가 구름들과 함께 오신다.”
- Ἰδοὺ (ἰδού, 이두) — “보라!”, “주의하여 보라”
-
ἔρχεται (erchetai, 에르케타이) — “그가 오고 있다/오신다”
- 동사 ἔρχομαι(오다)
- 현재시제, 중간태/디포넌트, 3인칭 단수
- μετά + 속격(τοῦ/τῶν) — “~와 함께”
-
τῶν νεφελῶν — “구름들과”
- νεφέλη(구름)의 복수 속격
따라서 μετὰ τῶν νεφελῶν은 “구름들과 함께”라는 뜻입니다.
2. “구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νεφέλαι (νεφέλη의 복수형)**는 단순히 하늘에 떠 있는 자연적인 구름만을 의미한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나타내는 구름이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 7:13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헬라어 요한계시록 1:7의 표현은 바로 이 **다니엘 7:13의 ‘인자와 구름’**을 강하게 연상시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7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오시는 왕적·종말론적 사건을 선언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오시리라”가 중요한 이유
ἔρχεται는 현재형입니다.
한국어로는 “오시리라”라고 미래적으로 번역하지만, 헬라어에서는 현재시제를 사용하여 확실하게 다가오는 사건을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이를 **현재시제의 생생한 표현(현재적 미래, prophetic/present tense)**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그가 오실 것이다”**라는 단순한 미래 예고를 넘어
“보라! 그분이 오고 계신다!”
라는 긴박성과 확실성을 전달합니다.
4.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이어지는 말이 더욱 중요합니다.
καὶ ὄψεται αὐτὸν πᾶς ὀφθαλμός
“그리고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다.”
- ὄψεται — “볼 것이다”
- πᾶς ὀφθαλμός — “모든 눈”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은 일부 사람만 경험하는 은밀한 사건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보겠고”
라는 보편적이고 공개적인 재림의 성격이 강조됩니다.
5. 설교용으로 정리하면
구름 → 하나님의 영광
오심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모든 눈 → 공개적이고 보편적인 재림
ἔρχεται → 반드시 오시는 주님
따라서 요한계시록 1:7의 핵심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습니다.
“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반드시 다시 오신다. 그분의 재림은 감추어진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공개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계시록의 첫 장에서부터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독자에게 선포하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8월 29일(토)
하나님을 위하여(요한계시록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and has made us to be a kingdom and priests to serve his God and Father--to him be glory and power for ever and ever! Amen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내 뜻과 유익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삶의 목적과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위하여 → 목적과 방향
- 하나님과 함께 → 동행
-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 근원과 능력
- 하나님께 영광을 → 최종적인 목적
2. 대표적인 성경 말씀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여기서 “위하여”는 헬라어 εἰς δόξαν θεοῦ
(eis doxan theou)입니다.
- εἰς = ~을 향하여, ~을 위하여
- δόξαν = 영광을
- θεοῦ = 하나님의
즉,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라는 방향성을 강조합니다.
3. “하나님을 위하여”의 신앙적 구조
하나님을 위하여 → 하나님과 함께 →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 하나님께 영광
이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爲神而生 —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與神同行 — 하나님과 함께 걷고
由神而行 —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며
歸榮於神 —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특히 설교 제목으로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를 위하여 하느냐”**라는 주제로 발전시키기에 매우 좋은 표현입니다.
♪ 나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Amen. Come, Lord Jesus.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고전 16:22) 주 께서 임하시느니라
8월 28일(금)
예수의 피(요한계시록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and from Jesus Christ, who is the faithful witness, the firstborn from the dead, and the ruler of the kings of the earth. To him who loves us and has freed us from our sins by his blood.
예수님의 피가 왜 중요한가?
성경에서 예수님의 피는 단순한 육체의 피가 아니라 대속(代贖)과 속죄(贖罪)와 죄 사함 그리고 새 언약과 연결됩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기독교는 피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피의 종교란 피 자체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피 흘림에 의한 죄에 대한 용서를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상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죽옷(창세기 3장)
2. 아벨의 제사(희생)
3. 유월절 어린 양의 피(출애굽기)
4. 속죄제와 피(레위기)
5. 고난 받는 종(이사야 53장)
6.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복음서)
7. 단번에 드린 그리스도의 피(히브리서)
8. 어린 양의 피(요한계시록)
결국 성경은 “피에서 시작하여 어린양에게서 완성되는 구속의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가 의미하는 중요한 신앙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첫째, 죄 사함을 위한 언약의 피(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둘째,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피(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셋째,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피(요한일서 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넷째,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는 피(히브리서 10:19)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예수의 피(αἷμα τοῦ Ἰησοῦ)는 보배로운 피(τιμίον αἷμα)라고 하여 특히 한국 교회에서는 ‘보혈(寶血)’이라고 부릅니다.
보혈의 능력이 피 자체에 마술적인 힘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구원의 효력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요한계시록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성경에서 “예수의 피”가 의미하는 것
| 의미 | 성경적 내용 |
|---|---|
| 속죄 | 죄를 대신하여 흘리신 피 |
| 죄 사함 | 죄를 용서받게 하는 근거 |
| 칭의 |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 |
| 화목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 |
| 새 언약 | 예수께서 세우신 언약 |
| 구속 | 죄의 종에서 해방됨 |
| 정결 | 죄와 양심으로부터 깨끗하게 됨 |
♪ 나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Amen. Come, Lord Jesus.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고전 16:22) 주 께서 임하시느니라
8월 27일(목)
일곱 교회(요한계시록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John, To the seven churches in the province of Asia: Grace and peace to you from him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and from the seven spirits before his throne.
어느 주일 아침, 아름답고 웅장하게 지어진 교회 앞에 한 흑인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람들이 그를 막으며 말했습니다.
“여기는 백인들만 예배드리는 교회입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교회 밖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왜 들어가지 않고 여기 계십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 교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저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도 아직 저 교회에 들어가 보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까요.”
교회는 건물이 아름답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있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이는 공동체일 때 교회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막 11:17)
미국 남부에서 흑인을 배척하고 인종차별이 강했던 지역을 역사적으로 표현할 때 몇 가지 명칭이 있습니다.
1. 선다운 타운(Sundown Town)
Sundown Town(선다운 타운)은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이 해가 진 뒤 그 지역에 머무르는 것을 금지하거나 사실상 허용하지 않았던 미국의 도시·마을을 가리킵니다.
- 표지판에 “Nigger, Don't Let the Sun Go Down On You”와 같은 극단적인 인종차별 문구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 법률로 명시된 경우도 있었지만, 폭력·협박·경찰의 묵인 등으로 사실상 흑인의 거주와 방문을 제한한 곳도 많았습니다.
- 남부뿐 아니라 미국 중서부와 서부에도 존재했습니다.
- 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심각했습니다.
2. Jim Crow South — 짐 크로 남부
Jim Crow South는 미국 남부에서 흑인과 백인을 법적으로 분리하고 흑인을 차별했던 사회·법률 체제를 가리킵니다.
Jim Crow laws(짐 크로 법) 아래에서는 흑인에게 학교, 식당, 대중교통, 화장실, 공공시설 등에서 백인과 분리된 시설을 사용하게 하는 법적 인종분리(segregation)가 시행되었습니다.
3. Black Belt — 블랙 벨트
주의해야 할 표현입니다. Black Belt 자체가 흑인을 배척하는 지역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원래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미시시피 등을 중심으로 한 비옥한 흑토 지역을 가리키던 지리적 명칭이며, 역사적으로 흑인 인구가 많이 거주했던 지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교회(敎會)와 성전(聖殿)의 의미와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교회(ἐκκλησία)는 하나님께 부름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따라서 교회는 외형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예배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그러므로 사람들이 모이면 모인 공동체가 되고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면 흩어지는 공동체가 됩니다.
성전(ναός / מִקְדָּשׁ)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나타나는 장소 또는 그 임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예배당(禮拜堂)"이라고 합니다.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있었던 일곱 교회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일곱 교회들의 외형적인 모습만 살필 것이 아니라 영적 의미를 찾아서 오늘의 교회가 갖춰야 할 교회의 참다운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작업을 위하여 각 교회가 갖는 책망과 칭찬을 살펴야 합니다.
부족함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일곱 교회의 영적 진단표로 만들면 매우 선명합니다.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서머나교회는 고난 속에서 충성했습니다.
버가모교회는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두아디라교회는 거짓을 용납했습니다.
사데교회는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말씀을 지켰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미지근한 믿음이었습니다.
일곱 교회들 가운데서 칭찬만 들었던 교회는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이었습니다.
반면에 책망만 들었던 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어떤 영적 진단서가 발급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단서에서 부복한 것은 채우고 넉넉한 것은 잘 관리하며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네 가지 날마다 행해야 할 목록을 소개합니다.
첫째, 날마다 새롭게(고후 4:16, 5:17)
둘째, 날마다 죽노라(고전 15:29-34)
셋째, 날마다 새벽을 깨우라(마가 1:35-39)
넷째, 날마다 십자가를 짊어지라(마가 8:27-38)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우리 모두 함께 칭찬만 듣는 믿음의 길을 따라갑시다.
그리고 훗날 내가 그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 나는 예수 따라가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Amen. Come, Lord Jesus.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고전 16:22) 주 께서 임하시느니라
8월 26일(수)
예언의 말씀(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the words of this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it and take to heart what is
written in it, because the time is near.
예언이란 한문자를 두 가지로 표기합니다.
첫째는 예언(豫言)
"미리 예, 말씀 언"이란 훈으로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하여 짐작하여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는.prophecy, prediction, forecast라고 합니다.
둘째는 예언(預言)
"맡길 예, 말씀 언"이란 훈으로 맡겨진 말씀은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prophetic word, prophecy 라고 합니다.
본문에서는 사도 요한이 천사들로부터 받은 요한계시록을 말합니다.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에게 반드시 복이 임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창세기의 생명나무(창 2–3장)가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가 완성됩니다.
요한계시록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받을 복을 일곱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1:3)
둘째, 주 안에서 죽음(14:13)
셋째, 깨어 자기 옷을 지킴(16:15)
넷째,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함(19:9)
다섯째, 첫째 부활에 참여함(20:6)
여섯째, 예언의 말씀을 지킴(22:7)
일곱째, 정결함을 입고 생명나무에 나아감(22:14)
일곱 가지 복을 기억하기 쉽도록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씀을 지키며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죽음에서도 복되고, 부활에 참여하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마침내 생명나무에 이른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첫 번째 복과(1:3) 마지막 복을(22:14) 연결하면,
요한계시록 전체가 “말씀을 지키는 삶은 거룩한 생활을 유지하며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조로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이여,
혼돈과 어지러움 가운데서(카오스) 세상을(코스모스) 창조하신(바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승리하기 위하여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마다 약속된 복을 확인하며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Amen. Come, Lord Jesus.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고전 16:22) 주 께서 임하시느니라
8월 25일(화)
자기의 본 것(요한계시록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Who testifies to everything he saw--that is,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사도 요한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요한계시록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사도 요한은 세 가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본 것(1장)
둘째는 이제 있는 일(2-3장)
셋째는 장차 될 일(4-22장)
사도 요한이 본 것은 20절에서 확인합니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특히 1장과 21–22장을 서로 연결해서 보면 놀라운 구조가 보입니다.
1장에서는 요한이 영광의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합니다.
21–22장에서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완성된 세계를 봅니다.
요한계시록의 시작은 “그리스도를 봄”이고, 마지막은 “하나님의 얼굴을 봄”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소개합니다(7대 구조).
1st. 1장 그리스도의 계시 → “본 것”
2nd. 2–3장 일곱 교회 → “이제 있는 일”
3rd. 4–5장 하늘 보좌와 어린양 → 역사의 주권
4th. 6–11장 일곱 인 · 일곱 나팔 → 심판과 증언
5th. 12–18장 용 · 짐승 · 바벨론 → 영적 전쟁과 악의 심판
6th. 19–20장 재림 · 승리 · 심판 → 그리스도의 최종 승리
7th. 21–22장 새 하늘 · 새 땅 →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
중요한 것은 7개 구조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다 → 교회를 살핀다 → 보좌를 본다 → 심판이 시작된다 → 악의 실체가 드러난다 → 그리스도가 승리한다
→ 새 창조가 완성된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야 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내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 하려고 합니까?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다시 오실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하며 축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Amen. Come, Lord Jesus.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
의심의 눈은 문자적으로는 무언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며 바라보는 시선을 뜻합니다.
1. 일반적인 의미
2.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성경에서는 눈(ὀφθαλμός, ophthalmos)이 단순히 시각기관만 아니라 인식하고 판단하는 내면의 시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의심의 눈”을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기준으로 의심하는 시선 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3장에서 뱀의 말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세기 3:1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3. “의심의 눈”과 “믿음의 눈”
| 의심의 눈 | 믿음의 눈 |
|---|---|
|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 |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 |
|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셨는가?” |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믿는다” |
| 자신의 판단을 우선함 | 하나님의 약속을 우선함 |
| 두려움으로 바라봄 | 믿음으로 바라봄 |
| 현실이 말씀보다 크게 보임 | 말씀이 현실보다 크게 보임 |
그래서 신앙적으로는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졌고(롬 4:18–21),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합니다(고후 4:18).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의심의 눈은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믿음의 눈은 현실을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바라본다.
믿음의 눈”과 “의심의 눈”을 성경적· 언어적으로 표현
| 표현 | 한자 | 영어 | 헬라어 |
|---|---|---|---|
| 믿음의 눈 | 信仰之眼 / 信仰의 目 | eyes of faith | ὀφθαλμοὶ πίστεως |
| 의심의 눈 | 疑心之眼 / 疑惑之眼 | eyes of doubt | ὀφθαλμοὶ ἀμφιβολίας |
1. 믿음의 눈 — 신앙지안(信仰之眼)
信仰之眼 / 信(믿을 신) + 仰(우러를 앙) + 之(…의) + 眼(눈 안)
영어로는 eyes of faith가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헬라어로는 ὀφθαλμοὶ πίστεως
ophthalmoi pisteōs
→ “믿음의 눈들”
- ὀφθαλμός = 눈
- ὀφθαλμοί = 눈들, 복수 주격
- πίστις = 믿음
- πίστεως = 믿음의, 속격
즉 ὀφθαλμοὶ πίστεως는 문법적으로 “믿음에 속한 눈들 / 믿음의 눈들”이라는 구조입니다.
2. 의심의 눈 — 회심지안(疑心之眼)
疑心之眼 / 疑(의심할 의) + 心(마음 심) + 之(…의) + 眼(눈 안)
영어는 eyes of doubt 또는 문맥에 따라 eyes of suspic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에서는 의미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ὀφθαλμοὶ ἀμφιβολίας
ophthalmoi amphibolias
→ “의심의 눈들”
- ἀμφιβολία = 의심, 불확실, 주저함
- ἀμφιβολίας = 의심의, 속격
다만 “의심”을 “불신”이라는 의미로 강하게 표현하려면:
ὀφθαλμοὶ ἀπιστίας
ophthalmoi apistias
→ “불신의 눈들”
3. 중요한 성경적 구별
성경에서는 “믿음의 눈”이라는 표현 자체가 특정한 정형 문구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개념은 매우 성경적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고린도후서 5:7
여기서 핵심적인 대조는
보이는 것 → 믿음
ὁράω(보다) → πίστις(믿음)
따라서 설교나 성경공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조 구조가 매우 좋습니다.
믿음의 눈 — 信仰之眼 — eyes of faith — ὀφθαλμοὶ πίστεως
↕
의심의 눈 — 疑心之眼 — eyes of doubt — ὀφθαλμοὶ ἀμφιβολίας
그리고 “믿음의 눈”의 반대가 단순한 의심(doubt)인지, 불신(unbelief)인지에 따라 헬라어를 ἀμφιβολία와 ἀπιστία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요새(要塞) / 요긴할 요(要). 중요할 요(要), 변방 새(塞)
1. 군사적(軍事的)으로 중요(重要)한 곳에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방어(防禦) 시설(施設). 또는 그런 시설(施設)을 한 곳.
2. 차지하거나 달(達)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대상(對象)이나 목표(目標).
고린도전서 16:22
Εἴ τις οὐ φιλεῖ τὸν κύριον, ἤτω ἀνάθεμα. Μαράνα θά.
에이 티스 우 필레이 톤 퀴리온, 에토 아나테마. 마라나 타.
여기서 마지막의 Μαράνα θά가 “마라나타”입니다.
Μαράνα θά의 의미
Μαράνα θά는 헬라어 단어가 아니라 아람어를 헬라어 문자로 음역한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מָרַנָא תָא — Maranā thā / Maranatha
- מָרַן (maran) = 우리 주, 우리의 주님
- א / ָא (ā) = “우리의”라는 소유적 형태에 포함
- תָּא (thā / tā) = 오라!
따라서 Μαράνα θά =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통적입니다.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아람어를 어떻게 분절하느냐에 따라 מָרַן אֲתָא (Maran atha)
→ “우리 주께서 오셨다/오신다” 또는 문맥상 “우리 주께서 오신다” 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6:22에서는 초대교회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도와 고백,
곧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고린도전서 16:22
바울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Εἴ τις οὐ φιλεῖ τὸν κύριον, ἤτω ἀνάθεμα.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리고 곧바로 Μαράνα θά!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고 외칩니다.
여기에는 매우 강한 신앙적 긴장감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
따라서 “마라나타”는 단순히 “예수님, 빨리 오세요”라는 말이 아니라,
“주 예수님,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라는 종말론적 신앙고백입니다.
요한계시록과 연결하면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과 매우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요한계시록 22:20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에 교회가 대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헬라어로는 Ἀμήν,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Amēn, erchou, kyrie Iēsou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핵심 정리
| 표현 | 언어 | 의미 |
|---|---|---|
| Μαράνα θά | 아람어 음역 |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
| מָרַנָא תָא | 아람어 | Maranā thā |
|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 헬라어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 Αμήν | 히브리어/헬라어 음역 |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
따라서 “마라나타”는 초대교회의 예배와 재림 신앙을 압축한 한마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는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
이것이 Μαράνα θά가 담고 있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마라나타(Maranatha)는 아람어 표현으로, 성경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번역됩니다.
- "주여, 오시옵소서." (Our Lord, come!)
- "우리 주께서 오셨다." (Our Lord has come.)
기독교에서는 문맥상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의미로 가장 널리 사용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드리는 소망과 기도의 표현입니다.
성경에서는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마라나타"라는 형태로 등장하며,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와도 같은 의미의 신앙 고백으로 이해됩니다.
8월 24일(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할 수 있다면 한 구절씩 암송하는 것도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22장 405구절로 구성된 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중요한 단어는 "계시(啓示. revelation)"와 ''속히(速. soon)"라고 하겠습니다.
계시라는 단어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때로는 "묵시(默示)"라고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계시(啓示. Revelation. 아포칼룹시스)는 하나님이 ‘자기’를 드러낸 사건을 가리킵니다.
계시를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구분합니다.
특별계시는 요한에게 보여주신 계시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드러내지 않습니다.
일반계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계시를 말합니다.
이러한 계시를 자연계시라고도 합니다.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안에 하나님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연과학도 관심을 갖고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계시의 본질로 여깁니다.
첫째는 시간적인 의미
시간적 의미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주님이 오실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영적인 의미
영적인 의미는 반드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언 29:18)
만일 묵시가 없다면 인간의 본성은 자기 중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타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시를 통하여 장차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날마다 주님을 기다리는 정숙한 신부와 같이 항상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 등에 기름이 넉넉한지 가늠하며 부족한 기름은 채우고 언제든지 등불을 밝힐 수 있는 예비된 믿음으로 무장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 하나님의 나팔 소리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Amen. Come, Lord Jesus.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