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나욧(사무엘상 19:18-24)


라마나욧(사무엘상 19:18-24)

'라마'는 사무엘의 출생지이자 고향이다.
이곳에 사무엘의 관저가 있었고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이곳을 거점으로 벧엘, 길갈, 미스바 등지를 순회하였다(삼상7:15~17).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곳에서 사무엘에게 그들의 왕을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다(삼상 8:4~55).
이에 따라 첫 번째로 사울을 택해 기름부음을 준 곳이며(삼상 10:1),
이후 다윗을 택해 기름부음을 주었다(삼상 16:13).

사무엘은 사울이 타락하자 결별하고 고향 '라마'로 돌아왔는데(삼상 15:34~35)
이때 이곳에 '나욧'을 세워 후학들인 선지자들을 가르쳤다.

'나욧'은 "거주지, 거처, 초원지대"라는 뜻으로 지금의 '기숙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무엘은 말년에 사울이 타락하자 훗날을 기약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이 '라마'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명에 따라 기름 부어 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미갈의 도움으로 도피한 곳도 '라마'였다(삼상 19:18).
사무엘은 사울의 행태를 고하는 다윗을 '나욧'으로 데리고 가서 말씀으로 교육했다(삼상 19:19).

다윗이 '라마나욧'에 있다는 것을 안 사울은 세 번에 걸쳐 다윗을 잡아오라고 사람들을 보냈으나 그때마다 '라마나욧'에 온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예언하게 된다(삼상 19:21).
이때 예언은 미래를 예측하거나 선지자적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황홀경 상태로 성령이 임한 현상이다.
이에 사울은 다윗을 잡으러 직접 가는데 그가 '라마나욧'에 도착하자 그에게도 성령이 임했고 사울은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며 벌거벗고 종일 누워있게 되었다.
이는 성령이 임하여 사울의 죄와 수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때 다윗은 피신하였다.

'라마나욧'은 선지자들을 가르친 말씀 공동체요, 교육기관이다.
또 말씀의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지성을 위해 성령의 은혜가 함께하고 역사하는 영성 훈련장이요, 성령 공동체였다.

아마도 다윗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신하고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며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라마나욧' 출신들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신약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두란노서원'을 통해 2년 동안 후학들을 길러내고 그들이 흩어져 가정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순회 전도자가 되어 초대교회를 든든히 세웠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성경 공부는 말씀을 지식적으로 공부할 뿐 아니라 성령의 조명과 은혜가 충만해야 한다.

'라마나욧'은 지명과 장소가 합해진 단어입니다.
여기서 라마는 지명으로 사무엘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그와 함께 하면서 사역하던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한 사울과 결별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과 결별하기 전에 한 말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울이 얼마나 하나님께 불순종했던지, 성경은 그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삼상 15:35).
아마도 이 말은 사람이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욕이 아닐까 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이런 사울을 버릴 것이라고 선포하고 라마로 돌아간 것입니다.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삼상 19:18).

다윗은 사울의 딸이요 자신의 아내였던 미갈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생명을 보존한 후, 사무엘을 만나러 라마나욧으로 찾아 간 것입니다.
물론 사무엘에게 자신을 지켜줄 세상적 권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은 다만 사무엘이 하나님과 깊이 교류하는 참 선지자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그를 라마로 이끈 것입니다.
이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그에게 나가는 자를 돌본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삼상 19:18)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여기 살았다는 단어에 사무엘은 물론 선지생도들도 다윗을 환영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사실 같은 장소에서 몸을 부딪기고 산다는 것은 환영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관계에선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당시 살아있는 권력 사울 왕의 눈에 난 자이니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반역죄가 되는 것이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무엘은 물론 그의 제자들도, 인간적인 두려움을 이기고도 남을 정도로, 하나님의 신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라마나욧 이야기는 우리 교회의 역할과 관련해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라마나욧은 사단이 힘쓸 수 없는 곳이요, 죄인의 변화와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이는 라마나욧이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는 믿음의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황혼 녁, 한 농부가 황소 한 마리를 끌고 황톳길을 걸어 귀가하는데, 소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뒤로 황토 먼지가 폭폭 일어났습니다.
그때 마침 붉은 석양 빛이 그 먼지 위에 내려앉자 황토 먼지가 금가루처럼 빛을 냈습니다.
한 사진 작가가 마침 그 장면을 보고 사진에 담아 “먼지도 아름답다!”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더러운 먼지도 빛을 입으니 아름다운 작품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티끌 같은 인생도 빛 되신 주님을 영접하면 밝게 빛을 내는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변화되어 세상을 비추는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경험한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
이런 공동체가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후

여호와의 영이 다윗의 걸음 걸음을 아주 치밀하게 인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는 여호와의 영께서 다윗을 왕실로 입궁시키는 것을 봅니다.
악신 들린 사울 왕 앞에서 다윗은 수금 타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엔 골리앗 앞으로, 그 다음엔 사울의 군장이 되여 이스라엘 앞에 출입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미갈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신혼생활은 한갖 꿈일뿐이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니 사울은 자기의 사위 다윗을 일컬어 자기 대적(원수)이라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도 자기 딸 미갈 앞에서 말입니다.

이제 다윗은 왕의 대적으로 죽어 마땅한 국가적인 죄수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간 곳은 사무엘이 있는 라마입니다.
그에게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어찌 행하였는지 말했다 합니다.
만일 사무엘이 다윗과 사울에 관한 사전정보 없이 있다 갑자기 왕의 군졸들이 쳐들어 오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다윗은 사무엘에게 미주알 고주알 다 일러바치고 난 후 대단히 홀가분했을 것입니다.
나아가 다윗은 자신의 기름부음에 관하여 무척이나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무엇보담 더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왕의 대적자로 몰리게 된 것인지 가장 질문하고픈 난제였을 것입니다.
더구나 갓 결혼한 신부 미갈를 두고 이리 도망다니는 신세가 과연 기름부음 받은 자의 모습인 것인지..
도대체 기름부음이 뭐길래 이토록 괴로운 것인지...
다시 물리고픈 심정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 그는 예전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정치판에 들어가게 된 것을 봅니다.
선지자나 제사장의 기름부음이 아닌 왕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응당 그리 되어야 할 것이지만 무척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낮 양 치는 목동임에 불과한 자신에게 정치적인 자질이 있기나 한 것일까?
아니 그 무엇보담 더 정치적인 소명감이 있는 것일까?
길지 않은 시간들이였지만 다윗의 눈에 들어 오는 왕권과 야합한 세력들을 보며 그는 절규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정치판에 뛰어 들어가느니 차라리 다시 목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신상에 좋다 싶었을 것입니다.

나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자각할정도로 받은 이후 맨 처음에는 예수 믿는게 참 쉬워보였습니다.
허나 날이 갈수록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예수 믿는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예수님을 내가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예수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날 떠나지 않고 늘 십자가의 못박히신 예수와 함께 죽고 또한 그분과 함께 사는 복음의 비밀을 삶속에서 가르쳐주시지 않았다면,나는 벌써 오래전에 예수님을 배도하였을 것입니다.
아님 십자가와 세상을 적당히 야합한 폼새나는 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하길 나욧에서 사무엘이 다윗과 함께 살았다 합니다.
사울과는 사무엘이 함께 살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허나 다윗만큼은 사무엘이 곁에 품고 살았습니다.
비록 다윗은 사울의 핍박이 원인이 되여 왔지만 그 핍박은 가장 축복스러운 만남을 갖도록 만든 희망 가득한 핍박이였습니다.
삶이 우리를 핍박할 때, 그것은 가장 축복된 만남으로 나를 인도해 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게 정답일 것입니다.

왜 사무엘은 다윗을 곁에 두고 살았을까요?
사무엘이 일평생 살면서 알게 된 하나님과 그 나라에 관한 여러가지를 소상히 가르쳐주고 싶어서였어요.
그리고 사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왕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예요.
결국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왕도를 배우게 된 셈이지요.
더불어 왕으로서의 소명 의식도 새롭게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앞으로 통과하게 될 고난의 터널을 넉넉히 지나갈 수 있는 자양분들을 많이 많이 섭취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사무엘과 라마나욧의 공동체를 통해 배울 것들을 배웠을 때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오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을 어찌 보호해주시는가를 다윗 평생에 기억할 수 있도록 놀라운 일을 보여주십니다.
그런 걸 직접 눈으로 보면서 살았으니 다윗이 어찌 다윗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역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리 당신이 만드셨는데도 다윗을 두고 두고 당신과 마음이 합한 자라고 칭찬하시는 것 보면 울 아버지 참 재미있으셔요.
사울이 세 번씩이나 다윗을 잡아 오라고 보낸 전령들과 네 번째로 찾아 온 사울에게까지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하도록 만드는 것을 봅니다. 사울은 세구라는 큰 우물가를 떠나 라마나욧을 향해 가는 길 내내 예언을 했다 합니다. 라마나욧 사무엘 앞에서는 옷을 벗고 온종일 누워서 예언 했다 합니다.

누구를 위한 예언인 것인가?
무엇을 예언하였을까?
분명 그 예언은 하나님을 위한 예언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함은 그가 기름을 부은 다윗 왕과 그 나라를 위해서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이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때 그 예언들은 사무엘과 그의 생도들에게 라마나욧 신학을 정립하는데 엄청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라마나욧의 실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라마나욧의 실체인 말씀보다 기도를 더 중요시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길이요,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이 우선시 되지 않는 기도는 모두 인간적인 기원에 불과한 종교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를 지켜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다윗이 그 때 라마나욧이 아닌 다른 곳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해주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결코 라마나욧이란 공동체원들이 기도를 하도 많이 한 결과 그 터가 특별히 영빨이 세기 때문에 악한 사울도 넘어져 예언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기도 빨 하나도 없는 다메섹 석상에서 꼬꾸라져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누군가 다메섹에서 열심히 기도를 한 자가 있었기에 특별히 예수님께서 그 장소를 택해 사울을 꼬꾸라지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필요하셔서 다메섹 석상에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라마나욧을 엉뚱하게 해석하면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게 됩니다.
라마나욧의 실상인 예언, 즉 말씀을 붙잡지 않고 그곳에서 나타난 성령의 현상만 본다면
우린 얼마든지 지극 정성 기도 많이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할 것이라는 헛된 영광과 헛된 꿈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도구화시키는 대단히 큰 죄를 범하게 된답니다.
사탄은 이런 자를 미혹합니다.
말씀을 붙잡지 않고 나타난 표적과 기사만 붙잡고 기도할 때 미혹의 영이 왜 아니 오겠습니까?
미혹의 영이 주는 기적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자랑하며 다닐 때 그 말을 듣는 자들이 미혹되고 그러다 보면 미혹의 영들이 집단화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미혹의 세력이 형성된 것이지요.
라마나욧을 잘못 해석하게 되면 영낙없이 미혹의 영들이 틈타 종내는 미혹의 세력 장소로 전락해버리게 되지요

주님!
소명이 있는 자를 보호해주시는 주님.
소명을 다 이루기까지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시는 주님.
라마나욧에서 사울과 그의 전령들이 예언한 그대로 당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라마나욧은 오늘도 내가 껴입은 두터운 옷들을 벗고 다윗의 사자이시며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 말씀과 상관하며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능히 벌거벗은 자로 만든다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입혀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그리스도로 입혀 주시기 위함입니다.



질병



출애굽기15: 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모든 질병이 영적인 치료가 우선이 되어야 그와 동시에 육적인 치료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
먼저 우리 마음의 문이 열려야 주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시며 비로소 그 때 영적인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말은 질병과 싸워 이긴 한 신앙인이 고백한 말입니다.
그에게는 치사율이 90%가 넘는다는 병이 있었습니다.
백혈병으로 진전되어 가고 있지만 백혈병은 아닌 병, 그래서 치료약이 없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는 병, 골수 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타인과의 골수가 맞을 확률은 20000:1. 그는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었습니다.
희망이 없었기에 세상을 향한 분노도 컸습니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겹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찾게 된 교회에서 그는 희망을 찾았습니다.
고통 가운데 눈물 흘리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는 것으로 지금껏 살려주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합니다.
세상 가운데 서서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의지할 곳도 없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수없이 많은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개개인에게 문 밖에 서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서 당신의 마음을 열어 줄 때까지 문 두드리며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뿌리치지 않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십시오.
당신을 책임지는 이는 당신의 아버지 여호와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아직까지 계속됩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질병, 병에 관한 성경 말씀

 

0 (출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0 (시편 103: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0 (전도서 5:17)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0 (마태복음 19: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0 (누가복음 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0 (누가복음 5: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0 (누가복음 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0 (누가복음 7: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0 (누가복음 9: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0 (사도행전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0 (야고보서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질병, 병에 관한 금언

*  결정적인 질병에는 결정적인 치유법이 있다.

* 질병은 지나친 방종에 대하여 치루는 형벌이며, 또한 건강증진법에 소홀한 데 대한 벌이다.(강원용 목사)

* 마음의 병도 육체의 병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병을 이해하기 전에 절반 쯤 죽게 되고,
우리가 병을 이해하면 반 쯤은 낫는다.(C. 콜턴)

질병이 찾아오면

질병이 찾아오는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병을 고치는 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생은 건강만으로 다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을 멈추어 세우고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 더 깊은 믿음, 영적인 자기 성장을 이룩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유한한 피조물이라는 것을..........

적개심과 질병

가정의학 전문의인 돈 콜버트 박사는 어느 날 심각한 고혈압 증세 때문에 다량의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목회자 한 분과 상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혈압을 일으킬만한 소위 비만과 같은 신체적 결함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와 상담하면서 콜버트 박사는 과거 이 목회자가 섬기던 교회 안에 심각한 분쟁이 생기면서 교회의 실권을 쥐고 있었던 몇몇 사람들과의 갈등 때문에 그 교회를 떠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적개심으로 나타나면서 그의 혈압이 오르게 된 주된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극심한 적개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사실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용서가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권고를 담당의사로부터 받게 된 이 목회자는 스스로 용서의 필요를 깨닫고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그의 마음을 토해내면서 회개와 용서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평안을 갖게 되자 그들을 직접 만나 용서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평안과 함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고혈압 증세가 사라지고 혈압이 정상을 되찾은 것은 물론 한 때 험상궂게 보였던 그의 얼굴 모습도 전혀 딴 사람처럼 평온하게 변해 갔습니다. 적개심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화가 나있거나 누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로 실망해서 좌절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감쌉니다. 그렇지만 그 실망자체가 사실은 분노의 일종이지요.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적개심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그 정도가 높은 지경에 이르게 되면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심각한 해악이 생겨나게 됨을 예상하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이 치명적인 적개심의 문제를 해결해야합니다. 그가 바로 은혜 받은 지혜자입니다.


 

▣ 난치병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흔히 셋으로 분류한다. 비교적 고치기 쉬운 병이 있는가 하면, 아예 고치기 어려운 불치병이 있다. 또 치료는 가능하나 그 과정이 매우 어려운 난치병도 있다. 그 중에서 난치병은 원인이 다양하다. 악질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고, 환자의 체질이 워낙 약해 오기도 한다. 워낙 병세가 심한 상태에서 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병이 아닌데도 난치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침을 맞아야 되는데 약을 쓰겠다고 고집하거나 그와 반대로 꼭 약을 써야 하는데 침만으로 고쳐달라고 주장하는 경우다. 이런 잘못된 선택이 난치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편작이라는 명의가 육불치(六不治)라 하여 여섯 가지 고치지 못할 병을 논한 바 있다.

첫째, 이치를 헤아리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

둘째, 자신의 몸은 가벼이 여기고 재물은 중히 여기는 겨우.

셋째, 의식주 생활이 적절치 않은 경우.

넷째, 음양이 한곳으로 몰려 장기가 안정되지 않은 경우.

다섯째, 몸이 야위어 약을 먹지 못하는 경우.

여섯째,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경우다. 영혼의 병을 고치는 것은 이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불신앙도 어떤 의미에서는 심각한 영혼의 질병일 수도 있다.

/손수명 장로(동진한의원장)

 

불치병

중국의 고대 역사가 ‘사마천’의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병에는 다섯 가지 못 고칠 병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교만해서 도리를 무시하는 병이라고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아무도 그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몸을 해하면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병입니다.
재물은 아무리 가득 채우려고 해도 채울 수 없고 결국은 몸을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 철학이 타당치 못한 병입니다.
생각이 잘못된 사람은 바로 잡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기운이 불균형한 병이라고 합니다.
깊은 병이 얼굴에 나타나면 이미 때가 늦어 고칠 수 없다고 합니다.

다섯째는 무당과 박수의 말을 의사의 말보다 더 믿는 병입니다.
신비로운 체험만을 쫓는 사람은 그 병을 고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병의 원인은 잘못된 주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런 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과 행동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고 고집과 독선은 능력 있는 사람의 소양으로 포장되곤 합니다.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항상 옳고 정당한 것인가를 묻고 또 묻는 지혜가 이기적인 현대 사회를 극복하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병

 

병은 오직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과 좋지 못한 음식을 먹는 사람을 공격한다. 병을 예방하고 내쫓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먹는 것에 달려 있다. 그 다음으로는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이다.

-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의《조화로운 삶》중에서 -

* '먹는 것'은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마시고 들이쉬는 물과 공기도 '먹는 것'에 해당됩니다. 먹는 것 따로 환경 따로가 아니고 좋은 음식, 좋은 물, 좋은 공기, 좋은 환경이 결국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 중 어느 것 하나가 깨지기 시작하면 다른 것도 함께 깨지게 됩니다.

질병의 의미

 

나는 의대에 입학한 후 우쭐대는 마음으로 2년간의 예과시절을 교회를 멀리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내 몸에 이상한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비늘 같은 것이 생겨 약간만 건드리기만 해도 주위가 온통 하얀 비늘로 뒤덮일 정도였습니다. 유명한 대학병원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아토피성 피부염이라는 말만 할 뿐 전혀 치료 효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사람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던 내가 1년 동안 사람을 피해 다니며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복음을 읽던 중 내가 죄인임을 다시금 깨닫고 나의 교만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 내 모든 죄악과 이기적인 마음을 회개하자 주님께서는 저를 용서해주셨고 그날부터 제 피부가 깨끗해진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질병을 가질 때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질병의 의미를 깨닫기만 한다면 그 질병은 더 이상 우리에게 머무르지 않습니다.

/박상은 박사(샘안양병원장)

 

▣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

 

모리 선생님은 미소지었다.

"미치,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줄까?"

"뭐죠?"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야."

- 미치 앨봄의《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중에서 -

* 엊그제 '간암 직전' 진단을 받고 놀란 어느 한 분이 "이제 진짜 술과 담배를 끊겠다"는 다짐을 굳게 하시더군요. 병을 얻고 나서 깨닫는 것도 더없이 소중하지만 병을 얻기 전에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병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암을 정복하는 방법

 

본문 : 엡 3:16 , 요삼 1:2

0 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0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암 발생률과 암 사망률이 높아짐으로 인해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암 전문의 장석원 원장은 암을 정복하는 방법을 「암 예방과 치료법」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01.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기 위해 삼림욕을 자주 하라.

02. 피로하다고 느끼면 바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03. 자신의 명과 치료에 대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사소한 약물복용에 대해서도 주치의에게 꼭 물어본 후 실행하라.

04. 각종 항암물질이 함유된 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라. 올바른 식습관이 중요하다.

05. 피곤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라.

06. 자신의 곁에는 항상 가족들이 있음을 명심하라.

07. 몸무게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라.

08.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

09. 면역기능을 떨어뜨리는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노력하라.

10.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의사의 조언을 구하라.

건강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 중 하나입니다. 기도와 실천으로 건강을 잘 관리하여 건강한 몸으로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십시오.

* 기도: 주님!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소서.

* 묵상: 영육간에 강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김장환 목사

 

▣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

 

예수님이 마지막 심판을 하실 때, 모든 민족을 오른 편에 속하는 양과 왼편에 속하는 염소로 구분할 것이라고 하신다.(마태복음 25:31~33)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자신이 병들거나 옥에 갇혔을 때 찾아오지 않은 자들은 왼편에, 자신을 찾아온 자들은 오른편에 서게 하셨다. 그러자 오른편에 선 자들이 말한다.

“우리가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마태복음 25:39).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찾아가 보는 것’(go to visit), 그것이 먼저다. 아플 때는 누가 찾아와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감옥에 갇히면 나올 수 없다. 누군가 찾아와서 말이라도 걸어 줘야 한다. 그 자신이 고난당하는 자였던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 지니라”(야고보서 5:14).

겪고 보니 고난당하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볼 친구다.

그가 버림받았다는 고립감에 빠지지 않도록, 함께 함으로 ‘나 혼자’가 아닌 ‘우리 함께’라는 소속감을 갖게 해 줘야 한다. 나는 밤마다 아이들을 투병 중인 엄마 방으로 모이게 한다.

큰 녀석은 엄마 오른손을, 작은 녀석은 엄마 왼손을, 그리고 셋째는 엄마 얼굴을 만지도록 한다. 아내가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은 이렇게 함께하는 것이기에.

[난 당신이 좋아/ 김병년]

* 금언: 기도는 전능하신 분을 의지하는 연약함이다.(바우덴)

 

▣ 질병은 몸을 치료하는 한 방법

 

요즘 미국발 금융회사의 파산으로 전세계 경제가 흔들흔들 하는듯 합니다. 제가 경제는 잘 모르지만 제가 아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결국은 좋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요,

우리가 그동안 생각하던대로가 아니라서 그렇지 결국은 좋아지고야 말것입니다.

마음이 아프면 결국은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때에 몸으로 넘겨주고 그때부터 몸이 감당을 합니다. 그래야 충분히 경험되고 경험이 되어야 나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에 질병이 찾아오기 전에 스스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렇게 아픈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봅니다. 감정이입이 되면서 내안에 있던 아픔들이 씻어집니다. 정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에 질병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혹시 몸에 질병이 찾아와도 그 질병과 싸우지 않고 그 질병의 의미를 찾아 삶을 배우는 기회로 삼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관계가 힘들어 질 때거나 괜히 화가 나고 짜증이 올라올 때는 찬스라는 것입니다.

변화해야 할 때임을 알려주는 성장해야 할 때임을 알려주는 우주의 사인인 것입니다. 신이 그대를 버리지 않고 기억하며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어려울수록 수련을 합니다. 힘들 때 일수록 기도를 합니다. 혼란스러울수록 명상을 합니다. 지혜롭게 사는 요령들입니다.

 

▣ 가장 무섭고 큰 질병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큰 질병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에이즈다. 암이다.

감기다. 등등.

일류 역사이래로 가장 크고 무서운 질병은 뭐니뭐니 해도 무지입니다.

자기를 모르고 자연을 모르고 신을 모르고. 그것들을 모르는 줄을 모른채 살아가는 무지 말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팔만대장경도 빨래판이고 고려 청자도 개 밥그릇이니까요.

▣ 당뇨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

당뇨병은 혈액속의 포도당 수치가 높아져 생기는 것으로 각종 합병증을 유발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예방법으로는 혈당조절이 중요하므로 최대한 육류섭취를 제한하고 저단백 식사요법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가벼운 운동을 변행하여 몸의 커디션을 최상으로 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 운동법

권장하고 싶은 운동으로는 산책, 가벼운 체조와 같은 전신 운동을 매일 생활속에서 30- 60분 정도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운동요법은 혈당조절에 도움을 주며 동맹경화증 예방과 비만을 막는 데에도 큰 몫을 합니다. 또한 스트레스 해소에도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심한 운동은 오히려 당뇬인들에게 해가 되므로 절대 무리하지 않는 운동이 좋습니다.

 

* 당뇨를 이기는 식품

노루궁뎅이 버섯, 상황버섯, 천마 등은 혈당치 강화작용으로 그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입증되었으며 혈당치를 현저하게 내려 내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칡뿌리, 가지, 검정콩, 인삼, 생지환, 뽕나무, 양파, 다시마 등이 있으며 꾸준히 섭취하여 건강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중풍

10명이 발병하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장애를 갖게 되며 1명만이 온전히 회복하게 된다.
음주와 흡연을 즐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발병율이 3 배 가량 높으며 채식보다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 2배 가량 발병 위험이 높다.
암, 심장병과 함께 3대 질병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1년에 20만 명 가량이 앓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뇌혈관질환인 중풍에 대한 설명이다.
계절적으로 온도차가 심한 겨울철에 비발하며 한번 발병하면 심각한 장애의 후유증을 남기게 되어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질병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뇌는 몸무게의 2.5% 밖에 되지 않지만 혈액은 10배 가량이 몰리는 특수한 부위이다.
그래서 뇌혈관은 정상혈압의 10배 정도인 1500mmHg 정도까지 견디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다.
그러나 잘못된 식생활이나 격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약해진 뇌혈관벽이 터지거나 막혀서 발병되는 것이다.

내 몸은 지금 문제가 좀 있다

 내 몸은 지금 문제가 좀 있다.
대체로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간에는 열 개의 종양이 있고 살 날은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처한 상황에 낙담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나나 내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 랜디포시의《마지막 강의》 중에서 -

답은 간단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건강을 다시 챙겨보고, 할 수 있는 것부터 바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시작도 못 할 지경에 이르기 전에...
최고의 투자는 건강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건강해야 꿈도 이룰 수 있습니다.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는 길

지인(至人)은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고,
의사는 병이 생긴 다음에 치료한다.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는 것은 곧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며,
수양하는 것이다.

-동의보감 내경편 신형

 

귀신과 병균의 유사점

우리교회에서 얼마 전에 지역주민을 위한 무료 건강검진을 했습니다.
거기에 오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한국인의 60%가 장내에 위염과 위암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균이 우리 장내에 있지만, 평소에는 내 안에 그 균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식하지 못한 체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귀신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신은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그 귀신이 어디에 있는지?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체 살아갑니다.
내가 깨닫기로는 귀신은 병균과 매우 유사합니다.

첫째, 병균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귀신도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병균은 더러운 곳에서 잘 번식합니다.
마찬가지로, 귀신은 더러운 죄가 있는 곳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셋째, 병균은 사람 속에 침투해 들어옵니다.
마찬가지로, 귀신도 사람 속에 침투해 들어옵니다.

넷째, 병균이 우리 몸 속에서 계속 번식하도록 그냥 두면 결국 우리는 병들어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귀신이 내 생각 속에 계속 영향력을 끼치게 그냥 두면 내 영혼은 죽고, 내 인생은 파멸로 끝납니다.

다섯째, 병균은 빛을 싫어합니다.
빛에 노출되면 수초만에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귀신은 진리를 싫어합니다(진리 앞에서는 힘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요한복음 8:12)

귀신들은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이 ‘빛과 진리’되신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영혼을 죽이고, 내 인생을 파멸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가 끝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할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에게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게 되십시오.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에베소서6장10절-12절 말씀)

조급한 마음은 병을 만든다

발명왕 에디슨은 80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그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나는 불필요한 일에 몸을 혹사시키지 않았다.
또 시간에 초조해 하지 않았다.
쉬고 싶으면 쉬고 눕고 싶으면 누웠다.”
지나치게 분주하고 조급한 마음은 병을 만든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언 21:5)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

하나님의 여덟 가지 큰 언약



하나님의 여덟 가지 큰 언약


1. 에덴동산 언약

인간(아담)의 생육과 번성에 관한 언약.

자연을 다스릴 책임을 주심.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금지사항.

창1:26-31

창2:16-17

조건적

2. 아담 언약

아담이 범죄한 후 주신 언약.

최초의 메시아 언약이 포함됨.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정하심.

인간의 노동에 대한 의무를 규정함.

육체적 죽음에 대해서 예고함.

창3:14-19

무조건적

3. 노아 언약

자연법의 안정성에 관한 약속을 주심.

육식을 허용함.

생명(피)의 고귀함에 대한 언급.

노아의 후손들에 대한 예언

창8:20:-9:27

무조건적

4. 아브라함 언약

씨(민족)에 대한 언약을 주심.

땅에 대한 언약을 주심.

* 아브라함 언약은 이삭(창26:4)과 야곱(창28:14)을 통해서 반복됨.

창12:1-4

창22:18

창15:18-21 등

무조건적

5. 모세 언약

율법(commandment)을 주심 - 십계명 등

규례(ordinance)를 주심 - 절기들, 제사들

판단의 법도(judgment) - 사회생활에 관한 법

출20:1-31:18

조건적

6. 팔레스타인 언약

약속의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조건들 제시하심.

이스라엘의 실패와 그 후의 회복을 예언함.

신30:1-20

무조건적

7. 다윗 언약

왕권에 관한 언약.

다윗의 왕좌가 영원히 견고할 것에 대한 약속.

삼하7:4-16

무조건적

8. 새 언약

이스라엘과 교회 모두를 위한 언약.

렘31:31-33

히8:7-13

무조건적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구약(옛언약)과 신약(새언약)으로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옛 언약)은 히브리 백성들과 맺은 약속입니다.
신약(새 언약)은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약속입니다.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언약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아담과 하와의 언약(에덴동산의 언약) / 조건적 언약
 
 1. 생육과 번성(창세기 1:26-31)
 2. 다스리라(창세기 1:26-31)
 3. 선악과 금지(창세기 2:16-17)

둘째, 범죄 후 언약(아담) / 무조건적
창세기 3:14-19

아담이 범죄한 후 주신 언약.

 최초의 메시아 언약이 포함됨.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정하심.

 인간의 노동에 대한 의무를 규정함.

 육체적 죽음에 대해서 예고함


 

1. 에덴동산 언약

 인간(아담)의 생육과 번성에 관한 언약.

 자연을 다스릴 책임을 주심.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금지사항.

창 1:26-31

창 2:16-17

조건적

2. 아담 언약

 아담이 범죄한 후 주신 언약.

 최초의 메시아 언약이 포함됨.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정하심.

 인간의 노동에 대한 의무를 규정함.

 육체적 죽음에 대해서 예고함.

창 3:14-19

무조건적

3. 노아 언약

 자연법의 안정성에 관한 약속을 주심.

 육식을 허용함.

 생명(피)의 고귀함에 대한 언급.

 노아의 후손들에 대한 예언

창 8:20:-9:27

무조건적

4. 아브라함 언약

 씨(민족)에 대한 언약을 주심.

 땅에 대한 언약을 주심.

* 아브라함 언약은 이삭(창26:4)과 야곱(창28:14)을 통해서 반복됨.

창 12:1-4

창 22:18

창 15:18-21 등

무조건적

5. 모세 언약

 율법(commandment)을 주심 - 십계명 등

 규례(ordinance)를 주심 - 절기들, 제사들

 판단의 법도(judgment) - 사회생활에 관한 법

출 20:1-31:18

조건적

6. 팔레스타인 언약

  약속의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조건들 제시하심.

 이스라엘의 실패와 그 후의 회복을 예언함.

신 30:1-20

무조건적

7. 다윗 언약

 왕권에 관한 언약.

 다윗의 왕좌가 영원히 견고할 것에 대한 약속.

삼하 7:4-16

무조건적

8. 새 언약

이스라엘과 교회 모두를 위한 언약.

렘 31:31-33

히 8:7-13

무조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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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



대언서들의 연대 비교표

 

모든 년도는 BC 임

책  명

에스라 성경사전

피터 러크만

어셔/ 스코필드     

죤 H.월톤(챠트 구약)

    G. 포오러(구약성서개론)

이사야

700 - 638 (62년간)

 

760 - 698

739 - 685

    746 -

예레미야

590 - 549 (41년간)

 

629 - 588

627 - 580

    626 -

(예레미야 애가)

588

 

 

 

 

에스겔

560 - 539 (21년간)

 

595 - 574

593 - 570

    593 - 571

다니엘

600 - 527 (73년간)

607 - 534 (73년간)

607 - 534

605 - 530

    167 - 164

호세아

720 - 660 (60년간)

689 - 611

785 - 725

760 - 720

    755 - 725

요엘

810

(885-865)

800

835

    4C 초

아모스

760

(783 - 753)

787

760

    760 - 750

오바댜

585

587

887

845   

     587

요나

770

793 - 753

862

782

     250

미가

700 - 660 (40년간)

720 - 680

750 - 710

737 - 690

     725 - 711

나훔

620

740 - 700

713

650

     663 - 612

하박국

610

 

626

609

     626 - 622

스바냐

630

 

630

640   

     630

학개

520

 

520

520

     520

스가랴

520

 

520 - 518

520

     520

말라기

430

 

397

433

     465

 예언서란 어떤 성서인가요?

 예언자란?

 먼저 ‘예언’하면 우리는 즉시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나 그 주변 문화권에서 일컫는 예언은 그런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이나 그 메시지를 해석하고 선포하는 것을 가리켜요.
다시 말해 예언의 중점은 미래에 있을 일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일’에 있는 것이죠.
고대 문화권에서는 대개 예언자가 있었고, 신탁을 통해 신의 뜻을 밝히고 기억시키며 중재하는 일을 맡은 그들의 역할은 중시되었어요.
이스라엘에서도 일찍부터 예언자가 있었다고 보아요.
아브라함도 예언자라 불리지만(창세 20:7),
공식적으로 첫 예언자로 꼽히는 이는 모세이지요(신명 34:10).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예언자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때는 왕정시대 이후에요.
왕과 사제 계급이 생긴 것처럼 예언자 층도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들과 별도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나서는 예언자들이 있었어요.

 예언자의 구분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는 사제들과 달리 세습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으로부터 영을 받아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이 참된 예언자인지 거짓 예언자인지를 분별하는 일은 중요하면서도 곤란한 문제였어요. 같은 예언자들끼리 서로 진위를 다툰 대표적인 경우가 아합 왕 때의 시드키야와 미가야(1열왕 22,13-28), 예레미야와 그를 박해한 거짓 예언자(예레 6,13; 18,18; 20,1-6; 23, 9-40) 들이죠. 결국 예언자의 진위는 그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는가 여부와, 설사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된 하느님의 말씀으로 기억되었는가에 따라 갈렸어요.

기준은 예언자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예언서를 남겼는가의 여부에요. 가령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위대한 예언자는 아무 글도 남기지 않았지요. 그러나 예언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기원전 8세기 이후에 활약한 예언자들, 이를테면 아모스, 이사야 등은 대부분 예언서를 남겼어요. 그래서 그들을 ‘문서 예언자’ 또는 ‘정경 예언자’라고 불러요. 이들을 활동시기에 따라 갈라보면 아래와 같아요. 1) 유배 이전 :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나훔, 미가, 스바니야, 하바꾹, 예레미야. 2) 유배 기간 : 제2이사야, 에제키엘. 3) 유배 이후: 즈가리야, 말라기, 오바디야, 요엘, 제3이사야.

 예언서의 분류

그리스 성서와 라틴어 성서에서는 정경 예언자들의 문헌만 예언서라 불러요. 그러나 히브리 성서는 내용을 다룬 시기에 따라 둘로 구분해요. 즉 정경 예언서를 후기 예언서라 부르고, 그에 앞선 시기를 다룬 여호수아부터 열왕기 하권까지를 전기 예언서라 불러요. 그 까닭은 먼저 랍비 전승에 따라 사무엘, 예레미야 등의 예언자를 그 성서들의 저자로 보았기 때문이고, 또 그 성서들에 담긴 역사를 하느님의 예언이 성취된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에요. 후기 예언서는 그 분량의 대소에 따라 대예언서 세 권(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과 소예언서 열두 권으로 분류하지요.

대예언서

대예언서(大豫言書, Major Prophets)는 기독교 구약성서의 선지자들이 기록한 주요 예언서들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이 책들은 전통적으로 저자로 여겨지는 선지자를 중심으로 하고있다. 대예언 이라는 용어는 소예언서와 달리 장문(長文)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소예언서(小豫言書)

  1. 대선지서와 소선지서가 본래부터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예언은 주로 남쪽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를 전후하여 예언한 선지들을 구분한 것뿐이다. 그것은 인물에 차이에서도 아니요, 그들의 입은 은혜나 능력이 우월해서도 아니요, 예언의 내용이 중요해서도 아니다. 다만 그들이 예언한 분량에 따라서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나뉘었다.
  2. 혹 차이가 있다면 각 예언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 것뿐이다.
  3. 대,소선지서를 막론하고 장차 구세주로 세상에 오는 메시아를 예언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호세아서
  • 이스라엘 나라의 죄악을 불륜에 빠진 아내와의 관계로서 예언하여 야훼 하느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나타내며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죄악이 어떠함을 보여 주고 있다.
요엘서
  •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로 인하여 "회개하라"고 외침
  • 당시 유다는 사상초유의 메뚜기 재앙을 받고 있었음
  • 재앙의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요 - 재앙의 결과는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는 주님의 경고로 말하고 있음
아모스서
  • 우상 숭배와 패역한 이스라엘에 야훼 주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고 또 주님의 사랑을 애가와 환상으로 보여 준다.
  •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 하고 돌아오면 구원과 축복이 있음도 함께 예언 한다.
오바댜서
  • 형제의 나라를 괴롭히는 에돔의 죄를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회개치 않을 경우 주님께서 내릴 심판과 멸망을 예언한다.
  • 그러면서 유다의 멸망이 있을지언정 반드시 구원과 회복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메시아 예언)
요나서
  • 이스라엘의 숙적이며 이방나라인 아시리아(앗수르) 니느웨에서 예언 - 주님은 이방인의 구원을 원함을 요나의 예언을 통해 나타냄
미가서
  • 유다의 지도층과 부유층의 죄에 대하여 책망하고 주님의 공의를 선포하며 심판을 예언한다.
  • 그러나 회개자에게는 구원이 있음을 구속자가 오심을 예언한다.
나훔서
  • 하느님을 적대하며 교만하고 포악한 아시리아 제국을 책망하고 명망을 예언한다.
  • 나훔서는 용서와 구원이 없다
  • 오직 야훼 주님의 의로우심과 공평하심을 강조한다.
하박국서
  • 어려운 환란 가운데에서 "의인은 믿음으로만 산다"는 위대한 진리를 발견하고 선포한다.
  • 하바꾹은 신자의 신앙적 승리의 비결을 예언했다.
스바냐서
  • 예언의 중심은 '주님의 날이다"이다(주님의 날은 심판의 날을 뜻한다.)
  • 심판의 이유는 하느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불신앙적인 데에 있다.
  • 그러나 그들이 자기 죄를 회개하면 하느님께서는 저들을 구원하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학개서
  •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하느님의 성전은 짓지 않고 자신들의 집을 완벽하게 지은 것을 꾸짖고 성전을 짓도록 독려(예언)한다.
스가랴서
  • 학개 선지자를 도와 성전의 재건을 독려(예언)한다.
  • 성전 건축울 통하여 영적 각성과 신앙적 헌신과 메시아의 시대를 예비하도록 예언한다.
말라기서
  • 이스라엘의 형식적인 신앙생활 이방인과의 결혼과 십일조 불이행등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깨닫지 못하는 저들(특히 지도급)에게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을 전하며 회개를 촉구한다.





새속역사와 성경의 역사




성경은 역사입니다.
예수님도 역사입니다.

  창조  

  노아시대  

  바벨탑 사건(창세기 11:1-9) 

 

 
족장시대 인물 연대표(아담부터 야곱까지)

B.C  

2166     아브라함의 출생 (창 11:27) 
2166     우르에서 하란까지 (창 12:4) 
2091     아브라함의 가나안 도착 (창 12:56) 
2067     할례 제정(창 17:9-14) 
2066     이삭의 출생 (창21:23)  
 ?       욥이 고난 받음 (욥 1:12-19, 2:7-11) 
         욥이 축복받음 (욥 42:10-15) 
         욥의 죽음 (욥 42:17) 
2006     에서와 야곱의 출생 (창 25:26) 
1991     아브라함의 사망 (창 25:8) 
1929     야곱의 하란도피 (창 28:10) 
1918     유다의 출생 (창 29:35) 
1915     요셉의 출생 (창 30:24) 

          
1898     애굽으로 팔려감 (창 37:36) 
1886     이삭의 죽음 (창 35:29) 
1885     애굽의 총리가 됨 (창 41:46) 
1876     야곱의 애굽 이주 (창 46:7) 
1859     야곱의 사망 (창 49:33) 
1805     요셉의 사망 (창 50:26) 
1527     모세의 출생 (출 2:12), 모세의 시 (시 90) 
         
1447     모세와 바로의 1차 접견 (출 5:1) 
1446     이스라엘의 애굽 탈출, 라암셋 출발 (출 12:37)

         홍해 도착 (출 14:11) 
         만나,메추라기 시작 (출 16:13)

         시내광야 도착 (출 19:1), 십계명 받음 (출 20:3-17) 
1445     성막 건축 (출 40:33), 레위기의 규례 지시< 1-2월 >, 첫번째 인구 조사 (민 1:2) 
         시내산에서 가데스까지(민 33:16-36), 70인 장로선정 (민 11:24)

         가데스 정탐군 파견 (민 13:3) 

         
1406     모세의 유언 설교 (신 1장 - 신 33장), 모세의 죽음 (신 34:5), 아론의 죽음 (민 20:28) 
         모압 광야 도착, 두번째 인구 조사 (민 26:1), 발람과 발락의 사건 (민 22장 - 민 24장) 
         후계자 여호수아 임명 (민 27:23), 요단 동편정복 (민 32:1) 
1405     요단강을 건넘 (수 3:17), 이스라엘의 가나안 도착, 두번째 유월절 (수 5:10) 
         만나 그침 (수 5:12), 요단 동편땅 분할 (수 13:15-31) 
1400     요단 서편땅 분할 (수 14장 - 수 17장), 실로에 회막 세움 (수 18:1) 
         
1390     여호수아 사망 (수 24:29) 
1375     사사 통치의 시작 
1384     옷니엘 < 40년 사역 > (삿 3:9-11) 
1316     에훗 < 80년 사역 > (삿 3:15-30) 
1236     삼갈 (삿 3:31) 
1216     드보라와 바락 < 40년 사역 > (삿 4장, 삿 5장) 
1169     기드온 < 40년 사역 > (삿 6장 - 삿 8장) 
         
1120     돌라와 야일 (삿 10:1-5) 
1117     룻과 나오미 
1103     사무엘의 출생 
1085     입다 < 6년 사역 > (삿 11:1-33) 
1079     입산.엘론.압돈 (삿 12:8-15) 
1075     삼손 < 20년 사역 > (삿 13장 - 삿 16장), 사무엘의 사역 < 75년 > (삼상 7:3), 미스바 대회개 (삼상 7:3-11) 
          

1050     사울 치하의 통일왕국시대 (삼상 10:24) 
1040     다윗의 출생 초기생애 (시 7:11-13,17,22,23,34,35,52,54,56,57,59편) 
1025     기름부음 받은 다윗 (삼상 16:13) 
1020     다윗과 골리앗 (삼상 19:1-15) 
1017     사무엘의 죽음 (삼상 25:1) 
1010     사울의 전사 (삼상 31:6, 대상 10:6), 다윗의 등극 < 헤브론 > (삼하 2:4, 대상 11:3),

         왕정 초기 (시 8, 9,15,16,18-21,24,26,29,36,58,60,68,101,108,110편) 
1003     다윗의 통일왕국 (삼하 5:5), 예루살렘 천도 (삼하 5:9, 대상 11:7) 
         법궤의 예루살렘 안치 (삼하 6:16, 대상 15:29) 
991      다윗의 간음죄 (삼하 11:1-21), 범죄 후 망명 전 (시 5,6,32,38-41,51,55,64편) 
990      솔로몬의 출생 (삼하 12:24)

              
979      압살롬의 반란(삼하 15:10-12), 망명시기(시 3,4,27,28,31,61,63,69,70,143편), 아삽의 시(시 50, 73-83편)     

         고라 자손의 시(시 42,44-49,84,85,87,88편), 헤만의 시 (시 88장), 왕정 말기 (시 3,37,103,139편) 
973      블레셋의 침입 (대상 20:4), 다윗의 인구조사 범죄(삼하 24:1-7) (대상 21:1) 
970      다윗의 죽음(왕상 2:10, 대상 28:11-21), 솔로몬의 등극 (왕상 2:12), 솔로몬의 시 (시 72,127편) 
966      성전 기공 (왕상 6:1, 대하 3장, 4장) 

        

 

965      아가서 기록 
959      성전 완공 < 7년 > (왕상 6:38), 왕궁기공(왕상7:1) 
         솔로몬의 잠언(잠 1장 - 잠 9장, 잠 10:1-22, 16:25-29,31장), 아론의 잠언 (잠 30장) 
935      솔로몬의 전도서 기록
931      솔로몬의 죽음 (왕상 11:43, 대하 9:31), 왕국 분열 (왕상 11:43-12:20)
926      애굽왕 시삭의 침입 (왕상 14:15-28) 
910      아사의 유다왕 즉위 (왕상 15:8, 대하 14:1) 
885      오므리의 이스라엘왕 즉위 (왕상 16:23) 
875      엘리야의 사역 시작 

         
874      아합의 이스라엘왕 즉위 (왕상 16:29) 
872      여호사밧의 유다왕 즉위 (왕상 22:41, 대하 17:1) 
853      벤하닷의 사마리아 침입, 아합의 전사 (대하 18:34) 
848      엘리사의 사역 시작 (왕하 2:13) 
         
841      예후의 이스라엘왕 즉위 (왕하 10:30), 아달랴 왕후의 유다 섭정 (대하 22:12) 
835      요아스의 유다왕 즉위 (왕하 11:21), 요엘의 사역 시작 
814      여호아하스의 이스라엘왕 즉위 
797      엘리사의 사역 종결 (왕하 13:20) 
796      요엘의 사역 종결 
793      요나의 사역 시작,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왕 즉위 (왕하 14:23) 
790      웃시야의 유다왕 즉위 (대하 26:1) 
783      살만에셀 4세의 앗수르왕 즉위 
772      앗술단 3세의 앗수르왕 즉위 
760      아모스의 사역 시작 (암 1:1) 
759      요나의 니느웨 전도 (욘 3:1-10) 
        
755      아모스의 사역 종결 
754      앗술니라리 5세의 앗수르왕 즉위 
753      스가랴의 이스라엘왕 즉위, 요나의 사역 종결 
752      살룸의 반란,살룸이 시해됨 
751      요담의 유다왕 즉위 
746      호세아의 사역 시작 (호 1:1) 
      
742      미가의 사역 시작, 브가히야의 이스라엘왕 즉위, 아하스의 유다왕 즉위 
740      이사야의 사역 시작 (사 6:1) 
733      르신과 베가의 침입 (사 7:1) 
732      호세아의 이스라엘왕 즉위, 다메섹의 함락 
728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왕하 18:4, 대하 29-32장) 
724      앗수르의 3차 침략 (왕하 17:5), 호세아의 사역 종결 
722      북왕국 이스라엘의 함락 (왕하 17:6), < 북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 > 
         미가의 예언 성취 (미 1:67) 
         
714      앗수르왕 산헤립의 침입 (대하 32:1) 
701      산헤립의 예루살렘 포위 
697      므낫세의 유다왕 즉위 (대하 33:1) 
695      미가의 사역 종결 
669      앗술바나팔의 앗수르왕 즉위 
663      테베의 멸망 
681      이사야의 사역 종결 
642      아몬의 유다왕 즉위 
640      요시야의 유다왕 즉위(왕하 22:1, 대하 34:1), 나훔, 스바냐의 사역 시작 
630      스바냐의 사역 종결 
627      예레미야의 사역 시작 (렘 1:1) 

         
622      요시야왕의 종교개혁 
612      니느웨의 함락,앗수르의 멸망, 나훔의 예언 성취 (나 2, 3장) 힐기야의 율법책 발견(왕하 22:8, 대하 4:14),

         하박국의 사역 시작 
609      요시야왕의 전사,여호야김의 유다왕 즉위 
608      하박국의 사역 시작 < 유다 > 
605      갈그미스 전투 (왕하 24:1), 바벨론의 1차 침입 < 1차 포로 >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감 (렘 46:2, 단 1:12)   

           

602      여호야김의 반 바벨론 정책 
601      애굽과의 재동맹 (렘 22:13-17) 
598      바벨론의 2차 침입 < 2차 포로 > (왕하 24:10) 
597      시드기야의 유다왕 즉위 (대하 36:11),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감, 하박국의 사역 종결 
593      에스겔의 예언 시작 < 바벨론 > (겔 1:12) 
586      남왕국 유다의 함락 < 3차 포로 > 예루살렘 함락, 바벨론 포로가 됨(왕하 25:8, 대하 36:17), 
         하박국의 예언 성취 (합 1:5-11), 스바냐의 예언 성취 (습 1:8-18) 
         예레미야의 사역 종결 (렘 39:1-18), 오바댜의 사역 시작 

        
583      오바댜의 사역 종결 
580      다니엘의 풀무불 (단 3:19-25) 
570      에스겔의 사역 종결 
562      느부갓네살의 사망 
559      바사의 고레스 즉위 
550      다니엘의 4짐승 환상 (단 7:1-8) 
539      고레스의 바벨론 점령 (단 5:30) 
538      다니엘의 사자굴 (단 6:16-24), 고레스의 1차 귀환 조서 (대하 36:23) 
         
537      1차 귀환 (스 2:1) < 스룹바벨 > 
536      성전 재건 작업 1차 시작 (스 3:8), 성전 재건 작업 1차 방해,중단(스 4:4-23) 
530      다니엘의 사망 
522      다리오의 바사왕 즉위 
520      학개,스가랴의 사역 시작 (슥 1장 -슥 8장), 성전 재건작업 재개 (스 5:2, 학 1:1) <학개, 스가랴의 사역 시작> 

516      제 2성전 완공 (스 6:15), 스가랴의 사역 (슥 9-14장) 

         
486      아하수에로의 바사 통치 
480      그리이스의 바사 침공 
479      왕후로 간택된 에스더 (에 2:17) 
475      스가랴의 사역 종결 
474      하만의 책략 (에 3:9) 

         
473      부림절 제정 (에 9:28) 
465      아닥사스다의 바사 통치 
458      2차 귀환 조서 (스 7:11), 2차 귀환 (스 7:9) < 에스라 > 
444      3차 귀환 < 느헤미야 > (느 2:9-11), 성곽 중수 필역 (느 6:15) 
435      말라기의 사역 시작  (구약의 마지막 성경)

         
433      바벨론으로 돌아간 느헤미야 (느 13:6), 말라기의 활동 
432      느헤미야의 2차 귀국 (느 13:7) 

 

신구약 중간사

  •  성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의 예언 활동 이후에 신약시대 이전까지의 그 자세한 내용은 성경에는 기록이 없다. 일반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중간인 400년 간을 소위 중간사라고 말하는데 이 기간에 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까지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팔레스틴의 통치자들의 흥망을 기 준으로 통치자와 사건연대, 주요 사건을 살펴보자.
  • 바사시대

 

주 전 404-331

▷알렉산더 대제에게 함락당함

헬라 시대

알렉산더

336-323

▷알렉산더가 죽은 후 4장군들이 제국을 분할 점령함
▷숱한 앞서의 헬라 잔존 세력들 간의 정 변 끝에 B.C.201년에 셀류크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Ⅲ세가 팔레스틴을 차지함
▷안티우쿠스 Ⅳ세의 성전 모독 및 약탈

프톨레미 왕조

301-201

셀류크스 왕조

198-167

독립 유다 시대

마카비 혁명

166-143

▷마카비 가문이 주도한 헬라화 반대 혁명성공과 성전 재복원
▷로마의 유대 독립권 인정
▷다윗 시대의 영토회복
▷바리새인의 대 반란

하스몬 왕조

142-67

로마 시대

 

B.C.63-A.D.4

▷로마장군 폼페이의 예루살렘 점령
▷이두매 출신의 헤롯 가문의 유대 지배 시작
▷로마 의 통치는 주 후 70년 예루살렘 함락, 주 후 130년 경의 전 유대인 강제 추방정책이 실시된 후 제국 말기까지 계속됨


37       헤롯의 유다왕 즉위 
5        세례 요한의 탄생 
4       예수 탄생 (마 2:11), 헤롯의 유아 학살 (마 2:16-18), 헤롯 대왕의 죽음 

          

 

예수님의 탄생


A.D 
 

 
8        유아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 
12       디베료 가이사의 로마황제 즉위 
26       세례 요한의 사역 시작 (막 1:4)

         본디오 빌라도의 유다 총독 부임 
27       예수의 공생애 시작 (마 3:13-17, 막 1:14, 눅 1:36)

         예수의 제1차 갈릴리 사역 
         가나안의 첫 이적 (요 2:1-11)

       

         니고데모의 전도 (요 3:1-21) 
28       12제자를 세우심 (마 10:1-4, 막 3:13-19)

         

         예수의 제2차 갈릴리 사역 
29       오천명을 먹이심 (마 14:13-21, 요 6:1-15)

         물위를 걸으심 (요 6:16-21) 

        
         베드로의 신앙 고백 (눅 9:18-22)

         예수의 제3차 갈릴리 사역 
30       승리의 입성 (마 21:1-11)

         
 

         성전 숙정 (눅 19:18-22)

         주의 만찬 (막 14:22-25)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마 27, 28, 막 15:24-16:8, 눅 23:26-24:12, 요 19:17-20:10) 

        
         
         그리스도의 승천 (행 1:9-11)

         오순절의 성령강림 (행 2:1-4)

         스데반의 순교 (행 7:60) 

       
32       사울의 다메섹 회심 (행 9:1-9) 

        
35       바울의 예루살렘 1차 방문 (행 9:26, 갈 1:18) 
44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행 12:12), 베드로의 투옥 (행 12:4) 

         
45       대 기근 <글라우디오 치하 > 
47-48    바울의 1차 전도여행 (행 13:1-14:28) 
49       예루살렘 공회 (갈 2:1), 로마로부터 유대인 축출 
50-52    바울의 2차 전도여행 (행 15:36-18:23, 살전 1:56, 3:1-6) 
51       데살로니가 전.후서 기록 
53-58    바울의 3차 전도여행 (행 18:23-21:16), 로마서 기록, 고린도전.후서 기록 
54       네로의 로마황제 즉위 

         
56       갈라디아서 기록 
58       바울 체포 (행 21:27-39) 
59       베스도의 유다총독 부임, 바울의 로마여행 (행 27:1-28:15) 
60       히브리서 기록 
61       바울의 로마 투옥 (행 28:16, 엡 3:16, 엡 1:12) 

         
62       야고보서 기록, 주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에베소서 기록, 빌립보서 기록, 골로새서 기록, 빌레몬서 기록 
63       바울 석방, 디모데를 권고하여 에베소 교회에 머물게 함 (딤전 1:3), 디모데전서 기록 
64       로마 대화재, 네로의 박해 < 1차 박해 >, 베드로전서 기록 
66       유대인의 반란, 디모데후서 기록, 디도서 기록, 베드로후서 기록 
67       바울의 순교 
68       베드로의 순교 

 
69       베스파시아누스의 예루살렘 침입 
70       예루살렘 함락, 산헤드린 공회 폐지 
70-80    유다서 기록 
81-96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 2차 박해 > 
90       요한계시록 서신서 기록 
95       요한의 밧모섬 유배 (계 1:6), 요한계시록 기록 
96       도미티아누스의 죽음 
100      얌니아 회의, 사도 요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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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00년경~1050년경은 '후기-청동기시대'가 끝나고 '전기-철기시대'가 시작되는 시기로,
성서에서는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 시대를 단순 계산하면 모두 410년이 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6장 1절("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과 비교해 보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솔로몬 성전 건축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 480년이 되는 해에 시작되었다면, 사사 시대 410년을 빼고 70년 동안 가나안 정복, 제사장 엘리와 사무엘의 통치 등이 모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 계산으로 나온 593/591년은 열왕기상 6장 1절의 480년보다 더 긴 기간입니다.

여기에 사도행전 13장 19-20절을 비교해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행 13:19-20)."

여기에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무려 450년이 흐른 뒤 사사 시대가 시작됩니다(NIV도 같음). 그렇게 되면 사사 시대 이전에 450년이 더해져 열왕기상 6장 1절을 근거로 출애굽 후 480년이라는 기간과 전혀 맞지 않게 됩니다.

KJV는 이러한 모순을 피하기 위해, 사무엘 이전에 사사들의 기간을 450년 동안이라고 번역했습니다(13:20).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가장 좋은 방법은 사사들 통치 기간인 20년, 40년, 80년이라는 숫자들을 실제 통치 기간이 아닌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것입니다. 옷니엘 40년, 에훗 80년, 드보라 40년, 기드온 40년이 실제로 40년, 80년이라기보다 '충분한 기간', '온전한 통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숫자 4는 여호와(YHWH)의 알파벳 개수와 같은 수입니다. 4의 배수인 12·40·80·480 등 상징적으로 많이 쓰입니다.

둘째, 각 지파 사사들의 통치 기간이 서로 겹친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12지파 여러 사사들이 각 시기에 겹쳐서 활동했으며, 따라서 이들의 통치 기간을 수직적으로 더하지 않고 일정 기간 중복된 것으로 계산하면 됩니다.
돼지 뼈

주목할 만한 사사 시대 고고학 자료가 있습니다.

에발산·실로·길갈 등지에서 기원전 1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발견되었는데, 주로 염소와 양의 뼈였습니다. 특이하게 이스라엘 지역에서 돼지 뼈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산림지대가 벌채되어 자연적인 먹이를 구하기 어려웠고, 사람들이 먹는 것을 돼지도 함께 먹었기에 부족한 식량을 염려해 돼지를 금지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살던 고지대의 산지는 상수리나무 덕에 그늘이 많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돼지가 좋아했기 때문에 돼지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 7절("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이 제시하는 율법을 지킨 것은 이스라엘의 식생활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스라엘과 가까운 블레셋에서는 상당히 많은 돼지 뼈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학설을 뒷받침해 줍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사기 21장 25절은 사사 시대를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이후 사무엘서는 왕정에 대해 매우 부정적입니다.
사사 시대가 지난 뒤 마지막 사사 사무엘을 끝으로, 이스라엘은 왕을 세웁니다.
사사들은 정치와 종교 영역을 아우르는 단일 지도자였습니다.
왕이 들어서면서 정치권력은 왕에게 넘어가고 제의에 관한 권한은 제사장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환상(?)에 길들여 있기 때문에 왕이 없는 상황을 일종의 무질서나 방종과 같이 느끼는 듯합니다.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현명한 왕과 강력한 왕권은 신앙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1:25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기에 백성들은 무질서하게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왕을 세운 뒤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하고, 다른 나라에 의해 둘 다 멸망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예언서 대부분이 왕과 세력들(종교 지도자들, 재판관들, 사회 엘리트들)을 향한 비판과 심판 선포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 '왕'이 아닌 사람 '왕'의 한계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왕은 여호와만으로 충분했으며, 인간 왕은 평등사회를 깨뜨릴 뿐입니다.

따라서 21:25을 새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기에 백성들은 자율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왕정 이스라엘의 시작

사무엘은 라마에 여호와를 위한 단을 쌓고 벧엘, 길갈, 미스바에 차례로 머물며 사사의 일을 감당했습니다(삼상 7:3-17).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과 달리 불법을 저지르고(삼상 8:1-3),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그들에게 왕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은 왕국 시대 이스라엘의 시작을 알리는 구절입니다. 왕권의 부정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삼상 8:11-17).

이에 왕의 임명을 반대하라는 여호와의 지시(삼상 8:6-22)가 있었지만, 곧 사울을 비밀리에 왕으로 세우라는 지시를 받습니다(삼상 9:15-24). 왕을 세우는 것은 여호와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나,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뜻대로 왕을 세워 줍니다. 사무엘은 왕정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정착과 사사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은 왕정 국가로 접어들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 자체는 정당합니다. 지금까지 왕 없이 나라를 유지한 것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주저했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위대하고 유일한 왕이라는 이스라엘의 신앙고백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전에 사사기 8장 23절에서 기드온은 왕권을 거부했습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삿 8:23)."

마지막 사사, 사무엘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를 끝내고 이웃 나라와 같은 왕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외부적으로 이스라엘에 왕권이 발생한 요인으로 가장 널리 인정받는 것은 중앙집권화한 블레셋의 군사적 위협이었습니다. 블레셋은 기원전 1150년 이후 남부 해안 평야 지배권을 확고히 장악하였으며, 1050년에는 산악 지대의 이스라엘 중심부까지 심각한 위협을 가해 왔습니다.

성서를 보면, 사무엘상 초반부부터 블레셋의 침략과 전쟁을 묘사합니다. '블레셋'이 사사기에서 131번, 사무엘상에서 무려 492번, 사무엘하에서 99번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블레셋의 존재가 이스라엘에게 매우 위협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블레셋은 상호 반목하는 가나안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과두 지배 체제라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철제 무기와 기동성 있는 공격력을 모두 갖추었기에 산악 지대에서 효과적인 전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삼상 13:19-20)."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할 때 사용할 칼이나 창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울과 요나단만 갖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블레셋은 월등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삼상 13:22).

기원전 10세기부터 청동보다 철이 더 중요한 금속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철광석이 적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고 주요 철 생산지였던 길르앗에서 수입하였습니다. 상부 갈릴의 하르 아디르(Har Adir) 유적지의 기원전 11세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새에서 상당히 잘 보존된 강철 곡괭이가 상수리나무 손잡이가 달린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 유물은 강철로 만들어진 가장 초기의 유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원전 10세기로 추정되는 다아낙에서 발견된 철 유물들에는 낫, 쟁기 끝, 칼날, 화살촉, 갑옷 비늘 등이 있습니다. 이는 사무엘상 13장 20절의 역사성을 보여 줍니다.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이스라엘 운동(Israel Movement)이 군주제 여명기에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운동을 위해 전향한 잡다한 민족들은 사회경제적 평등화와 공유라는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시국가를 탈출할 때의 평등 사회에 대한 갈망이 정착 생활이 안정되자 흐릿해져 버렸습니다.

특정 지역과 특정 가문들 특별히 므낫세·에브라임·베냐민·유다 가문의 부와 영향력이 증대된 것도 주요 요인입니다. 제사장 엘리 아들들의 권력 남용(삼상 2:12-17), 사무엘 아들들의 뇌물 수수(삼상 8:1-3) 이야기에서 보듯이, 지도층들이 보여 준 비윤리적 행동이 평등주의 이념을 서서히 잠식해 버립니다.

또한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도 그녀가 포도주에 취한 줄 착각할 정도로 둔탁했으며(삼상 1:9-14), 여호와가 사무엘을 부를 때에도 알아채지 못합니다(삼상 3:2-6). 사무엘상 3장 1절은 엘리 시대 여호와이즘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굴로 도망갔을 때, 400명 정도나 되는 부랑자들을 모았다는 것은 이스라엘 운동이 온전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가량이었더라(삼상 22:2)."

사울 일가와 다윗 일가의 분쟁은 비교적 평등한 힘을 나누어 가졌던 12지파 구조가, 에브라임과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한 두 세력으로 양분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운동은 실패해 버립니다.



부유한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은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하였는데(삼상 9장),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숩(Zuph) 땅의 마을로 오게 됩니다. 사무엘은 우연히 그 마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있다가 사울을 만나 몇 가지 예언과 지시 사항을 일러 줍니다. 그 뒤 사무엘은 미스바에 사람들을 모으고, 제비를 뽑아 짐 가운데 몸을 숨기고 있던 사울을 왕으로 삼지만(삼상 10:17-25),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무리는 불만을 표출합니다.

사무엘이 기름 부어 왕으로 추대된 사울은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에서 첫 승리를 이스라엘에게 안겨 줍니다(삼상 13:5~14:46).

성서의 기록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발생했던 일에 대한 세부 사항은 간략한 암시만 줍니다. 사울이 블레셋을 이스라엘 중심에서 몰아낸 것 같습니다. 훗날 사울은 길보아산 근처 평지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고 맙니다(삼상 31:1-7, 삼하 1:6-10).

사울이 통치한 햇수

사무엘상 13장 1절 히브리어 본문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개역개정판 -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새번역판 -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은 마흔두 해였다.
공동번역판 - 번역 없음.
NIV판 - Saul was thirty years old(30세) t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over Israel forty-two years(42년)
KJV판 - Saul reigned one year(1세);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2년)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는 해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을 2년간 다스렸다"입니다. 처음부터 왕위 등극 관련 숫자가 없었거나 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1절은 사울이 40년간 다스렸다고 합니다(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같은 내용).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행 13:21)."

어떤 학자들은 사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름 부음을 받는 사건(삼상 10:6)부터 왕으로 확정된 때(삼상 11:15~13:1)까지는 1년이 흘렀고, 사울이 왕으로 확정된 때로부터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때까지는 2년이 흘렀다고 해석합니다. 아쉽게도 사울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연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블레셋의 위협

블레셋(Philistine)은 해양 민족들 중 하나입니다. 구약성경에는 300번 가까이 등장합니다. 성경이 전하는 묘사에서 파생해 현대 영어에서 'philistine'은 '속물' 혹은 '교양 없는'을 뜻합니다. 에게(Aegean, 서쪽 그리스반도와 동쪽 소아시아 및 크레타섬 사이에 있는 지중해 지역) 지방이나 아나톨리아(오늘날 터키 지방) 남부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블레셋은 철기 문화를 지닌 강력한 민족이었습니다. 해양 민족들은 기원전 12세기 초 시리아-페니키아 해안에 있는 수많은 도시를 파괴했고 이집트까지 점령하려고 시도하지만 람세스 3세 통치 8년(기원전 1177년경)에 저지됐습니다. 이 전투는 테베에 있는 람세스 3세의 메디네트 하부(Medinet Habu) 신사 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 시대 고고학

사울의 왕권에 대한 고고학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실로(Shiloh)는 기원전 11세기 중반쯤 큰 불로 불타 버린 것 같은데, 이 파괴는 블레셋이 에벤에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찌르고(삼상 4장) 난 뒤 있었던 후속 공격의 결과물로 보입니다.

이 시기는 중앙 집중화가 덜 된 농부들과 목축업자들의 사회였으며, 요단강 서쪽에 5만 명 정도가 살았습니다. 이스라엘과 달리 블레셋 도시 아스돗, 텔 게리사, 텔 미크네(성서의 에그론), 아스글론은 번창했습니다.

사울 통치 시기 이스라엘에는 철공이 없었고, 보습·삽·도끼·괭이 등은 블레셋을 통해 구입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만 칼과 창을 소유했다는 성서 이야기는(삼상 13:19-22) 고고학 자료로 뒷받침됩니다.

기원전 11세기로 추정되는 철로 만든 쟁기 끝들이 기브아(텔 엘 풀, Tell el-Ful)에서 발견되었고 텔 제메, 벧산, 텔 엔 나스베에서는 기원전 10세기로 추정되는 철로 만든 보습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철기 시대 유물은 12세기에서 11세기로 넘어갈 때 4배, 10세기로 넘어갈 때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사울 시대를 기점으로 이스라엘도 청동기에서 철기 문화로 발달했다는 사실이 고고학을 통해 입증됩니다.


사울에 대한 평가

사울은 처음에 왕(히브리어 '멜렉')이 아니라 지도자(영도자, 히브리어 '나기드')라고 불립니다(삼상 9:16; 10:1). 다윗이나 솔로몬과 달리 사울은 이스라엘 부족 구조를 중앙집권 체제로 바꾸지 않고, 세금을 부과하거나 상비군을 두지도 않고 왕궁도 건설하지 않습니다. 그가 거느린 군사는 약간의 무리였을 뿐입니다(삼상 13:2; 14:52).

기브아에서 있었던 사울 통치 이야기를 보면,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사울이 여호와에게 성실하고 열정적인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울은 정치적 지도자인 왕이라기보다는 전쟁 사령관에 가까웠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다윗을 향한 질투와 시기로 처음의 성실한 신앙과 겸손을 잃게 됩니다.

사울에 대한 평가는 사무엘상 16장 14절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와 같이 비극적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을 왕으로 세운 왕조 시대가 결국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암시합니다.


다윗에 이르러서야 이스라엘은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400년 역사의 왕조를 창건합니다.

시편 132편은 다윗 왕권이 지닌 성격을 잘 드러내 줍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시 132:11-12)."

성서 전승을 보존했던 공동체가 다윗의 인간적인 면도 함께 보존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사울에게서 도망치면서 이스라엘 주적 블레셋에 의지하는 장면, 밧세바 사건, 압살롬 사건 등을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를 거북하게 여기고, 포로 생활 끝나고 돌아와 역대기서를 기록할 때 다윗 행적을 미화하기도 했습니다. 열왕기서도 다윗이 죽고 난 다음에 기록했다는 점에서, 다윗의 죄를 삭제해 그를 완벽한 왕으로 추켜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은 성서의 역사성을 확증해 줍니다.
다윗과 골리앗

골리앗을 이긴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당연히 '다윗'이라고 답하겠지만,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조금 애매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삼상 17:4),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삼상 17:50)."

"또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삼하 21:19)."

"다시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할 때에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이 사람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대상 20:5)."

사무엘상 17장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으며, 사무엘하 21장 19절과 역대상 20장 5절은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21장 19절에서 "~의 아우 라흐미"는 원래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습니다. 한글 성경(개역개정)에만 있는 첨가한 글입니다.

- 사무엘하 21장 19절 비교

(개역개정) "또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새번역) "또 곱에서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에는 베들레헴 사람인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창 자루는 베틀 앞다리같이 굵었다."

(공동번역) "곱에서 불레셋 군과 또 한 차례 싸움이 붙었을 때 베들레헴 사람 야이르의 아들 엘하난이 갓 사람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 굵었다."

(NIV) "In another battle with the Philistines at Gob, Elhanan son of Jaare-Oregim the Bethlehemite killed Goliath the Gittite, who had a spear with a shaft like a weaver's rod."

사무엘상 17장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사무엘하 21장 19절에서는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역대상에서는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과 역대상 20장 5절 사이 모순을 피하기 위해, 한글 성경(개역개정) 사무엘하 21장 19절은 원래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 "~의 아우 라흐미"라는 표현을 첨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대로 번역한 새번역에는 첨가문이 없으며, 영어 성경도 첨가문이 없습니다. 따라서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다윗인지 엘하난인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됩니다.
다윗 시대 고고학

- 텔 단 비문

어떤 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 통일 왕국 등의 역사는 포로 생활 이후나 예루살렘 제사장 집단이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 낸 교묘한 창작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993년 여름, 이스라엘 북부 지방에 자리한 성경 유적지 텔 단에서 '텔 단 비문' 파편이 발견돼 다윗 왕국이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후대 사람들이 깨뜨려 건물 받침돌로 사용한 이 유물은 검은색 현무암 기념비입니다. "다윗의 집"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시리아 아람 왕국 언어였던 아람어로 쓰인 이 비문은,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죽였고, 나는) 다윗의 집의 (왕인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를 죽였다. 또 나는 (그들의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고 그들의 땅에서 (사람의 자취를 쓸어) 버렸다."

아람 왕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메섹 하사엘이 기원전 835년 무렵 북왕국 이스라엘을 침공한 이야기를 비문이 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왕하 9:14)."

이 기록은 다윗 아들 솔로몬의 통치 시대에서 100년도 안 된 시점에 다윗 왕조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 다윗성

2006년 에일라트 마자르(Eilat Mazar)는 예루살렘에 있는 오벨 남쪽에서 발견한 돌로 된 대규모 성벽을 다윗왕의 궁궐로 봅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삼하 5:11)."

시대를 조금 늦추면 솔로몬 궁궐의 파편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성 동쪽 경사면에 건설한 돌계단 구조물(Stepped-Stone Structure) '여부스인의 경사로' 연대 문제는 논쟁 대상이지만, 마찬가지로 다윗의 건축물로 볼 수도 있습니다.

- 예루살렘 규모

다윗 시대 예루살렘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군주가 이집트 왕궁에 쓴 '아마르나 편지'를 보면, 이미 왕국의 '수도'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로 추정해 보면, 상당한 규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미하이 마자르(Amihai Mazar)는 2008년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기원전 10~9세기에 대한 정확한 연대는 이스라엘과 주변 지역에서의 국가 형성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다. (중략) 그러나 1990년 이후 몇 학자들(Jamieson-Drake 1991, Finkelstein 1996, 1999, 2003, Finkelstein and Silberman 2001)은 그러한 왕국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중략) 예루살렘이 기원전 10세기 동안 정착하지 않았다거나, 조그마한 산지 마을이었다는 우시쉬킨과 핑컬스타인의 주장은, 내가 보기에 증거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기초한다. 특별히 케년과 에일랏 마자르에 의하여 발견된 건물과 함께 조합하여 계단 돌 구조물이 유용한 증거에 기초하여 기원전 11~10세기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이 시기 레반트에서 발견된 가장 기념비적인 구조물이다. 다윗의 예루살렘은 그 시기 예외적인 크기의 망대를 지닌 약 4㏊(4만㎡)의 도시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한 도시와 망대는 강력한 통치자의 세력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솔로몬 시대는 통일 왕국의 황금시대입니다. 열왕기상 4장 21절을 보면, 유프라테스강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 이집트 지경까지 정치적인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왕상 4:21)."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역사 편찬(성서 기록과 편집)도 이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추정합니다. 역대상 29장 29-30절에 따르면, 다윗의 행적은 사무엘의 글, 나단과 갓의 글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원래 다양한 성소들(세겜, 헤브론, 브엘세바, 실로 등)과 연관한 초기 이스라엘 전승을 한데 묶는 역사 기록을 장려했을 것입니다. 흔히 J, E, D, P문서에서 J문서(여호와 문서)가 이 시기(10세기)에 집필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솔로몬 시대에 새로운 왕정 이념과 국가의 역사적·법률적 전승의 발전이 시작되었고, 서기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잠언이 3000가지이고, 노래가 1005편이라는 전승(왕상 4:32)은 과장이지만, 이 시대에 왕정 이념과 관련한 히브리어 문학의 중요한 조류가 태동되었습니다. 잠언 25장 1절에서는 이러한 잠언이 솔로몬의 잠언이고 유다 왕 히스기야 신하들이 편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역사성

성서의 역사성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수정주의자들은 다윗과 솔로몬 이야기는 왕국 시대가 아닌 실제로는 '헬라 시대'의 기록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솔로몬 왕국에 대한 분명한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 잘 알려진 열왕기상 4장 솔로몬의 행정 구역 목록입니다. 본문에 나열된 15개 지역 중심지 가운데 13개가 고고학적으로 잘 조사가 되었습니다. 그중 일부(하솔, 텔 엘-파라/디르사, 욕느암, 므깃도, 게셀, 벳쉐메쉬)는 중앙화와 기념비적인 건축의 증거를 보여 줍니다. 이 건물들은 기원전 10세기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특별히 눈여겨볼 점은 이 지역 대부분이 헬라 시대에는 버려진 채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폐허 더미에서 솔로몬 이야기의 환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수정주의자 말대로 솔로몬 이야기가 실제로 기원전 10세기가 아니라 한참 후대인 헬라 시대 기록이라면, 당시에 사라져서 없어져 버린 유적 목록을 헬라 시대 성서 서술자들은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둘째, 13세기 후반 인구는 1만 2000~1만 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12세기에 이르러서는 5만까지 늘어나고 11세기에는 8만, 솔로몬 시대인 10세기 중후반에는 10만 명까지 늘어났을 것으로 봅니다. 10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 최소한 10개 정도가 '도시'로 충분히 인정받을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 므깃도, 하솔, 게셀

솔로몬 왕이 건축한 세 도시(므깃도, 하솔, 게셀)가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왕상 9:15-17)."

므깃도에서 발견된 궁전은 솔로몬의 궁전(왕상 7장)과 매우 비슷한 모양입니다. 건물을 장식한 기둥머리가 성서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종려나무 가지 모양인데, 예루살렘·므깃도·하솔·게셀 등에서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북서부에 위치한 므깃도에는 솔로몬 시대에 두 궁전이 지어졌습니다. 이는 솔로몬의 예루살렘 궁전과 비슷합니다. 성서가 묘사하는 성전의 규모는 길이가 약 30m, 너비가 10m, 그리고 높이가 15m인데 이렇게 긴 길이의 구조를 '비트 힐라니'(bit hilani) 양식이라 부릅니다.

이집트 시삭에 의해 파괴됐다고 하는 게셀의 파괴층을 조사한 결과, 여기서 나온 도자기들이 모두 기원전 10세기 후반으로 연대 설정이 됩니다. 건축들은 기원전 970~기원전 930년으로 추정되는데, 솔로몬 시대와 일치합니다. 솔로몬이 게셀 성문과 성벽을 건축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가상 인물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게셀과 마찬가지로 하솔과 므깃도도 10세기 솔로몬의 '국가'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

- 벧-세메스(Beth-shemesh)

열왕기상 4장 9절에 언급된 벧세메스는 10세기 도시화된 지역의 훌륭한 후보입니다.

"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이요(왕상 4:9)."

벧세메스는 촌락이 잘 세워진 11세기의 중심 도시로 큰 저장소, 넓은 공공건물, 경이로운 공학 기술을 사용한 대용량 급수 시설이 있습니다. 거기서 '하난'(Ḥanan)이라는 소유주 이름이 적혀 있는 양면으로 된 게임판이 발견되었습니다. 10세기 후반의 서체였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기록을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합니다.

특별히 열왕기상 4장 9절 목록을 보면,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이라고 되어 있는데 엘론벧하난은 '하난 가족의 참나무'라는 이름입니다. 하난이라는 이름은 성서의 딤나(Timnah)인 텔 바타쉬에서 발견된 10세기 깨어진 그릇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겨우 8km 떨어진 곳입니다. 벧세메스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중앙화된 행정 기구가 있었음을 증거합니다.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솔로몬의 재판 The Judgment of Solomon'. 1617년 작품.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아쉽게도 솔로몬은 많은 치적에도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을 드러냈습니다. 열왕기상 11장은 우상숭배에 연루된 솔로몬의 모습이 나옵니다. 고대 세계에서 왕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솔로몬은 아내 700명과 첩 300명을 거느렸습니다. 솔로몬은 아내의 신들을 위해 신전을 세웠고 자신도 동참했습니다(왕상 11:4-8).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기에(왕상 11:6),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나라가 '찢어질' 것이라고 예고합니다(왕상 11:9-13). 왕권의 호화스러운 사치는 백성들 목을 더욱 졸랐을 것입니다. 언약 율법에 반영된 경제적 평등 분배 정신이 흐려지고, 지배 엘리트들의 기득권 지키기로 변질되었습니다. 부유한 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죽자 그의 아들 르호보암과 측근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의 격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솔로몬은 지혜와 부의 왕이었지만, 점차 신실함을 잃어버렸기에 여호와에 의해 언제든 내쳐질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죽음, 이스라엘의 분열

지혜의 왕 솔로몬의 죽음은 연합 왕국에 폭풍을 몰고 옵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930~913년)은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권을 물려받지만(왕상 11:43),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 왕국의 체제가 무너져 버립니다.

솔로몬의 조세수입 징수에 관한 설명(왕상 4:7-28)을 보면 왕권 유지와 국가 체제를 위한 수입 징수는 그런대로 무리 없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건축 공사와 왕궁 유지를 위한 세금 부담은 어느 정도 이스라엘 지파 지도자들이 감내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과 예루살렘 왕궁 건축이 20년 넘게 이어지자 백성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습니다. 또한 세겜에서의 일을 보면(왕상 12장) 강제 노역도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9:15-23에 따르면 솔로몬은 강제 노역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에게만 부과했고 그의 공사에 참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관리와 감독을 담당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럼에도 북부 지도자들의 불평을 들으면, 자신들이 솔로몬의 노동 정책에 의해 노예화되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열왕 12:3-4).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왕

암몬 여인 나아마의 아들 르호보암은 41세에 왕이 되어(왕상 14:21) 17년간 다스립니다. 르호보암은 재위 초기에 아버지 솔로몬의 토목공사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열왕기상12:7을 보면 '왕은 먼저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백성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될 것'인데,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노역을 줄여 주라는 노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친구들의 자문을 따릅니다(왕상 12:10-11).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중략)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중략)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왕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왕상 10:16).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시삭(Shishak)의 침공

925년경 르호보암 재위 5년에 이집트의 22왕조 창시자인 시삭이 남유다를 침략합니다(왕상14:25-265, 대하 12:1-12). 시삭은 이집트 파라오 쇼솅크 1세(Shoshenq 1)로 추측되며, 테베(오늘날의 룩소)에 있는 카르낙의 아문 대신전의 첫 번째 앞뜰 남쪽 벽에 위치한 소위 부바스티스 현관(Bubastite Portal)에 묘사된 시삭의 승리 장면과 함께 나오는 상형문자 본문을 통해 성서의 기록이 증명되었습니다. 샤론 평원과 이스르엘 통로(므깃도, 다아낙, 슈넴, 벧스안, 르홉)를 지나 요단 동편(숙곳, 브누엘, 마하나님, 아담)에 이르기까지의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별히 유다만 정복하고 벌인 전쟁은 아닙니다. 전쟁을 조직한 형태와 카르낙에서 그것을 기념하는 수사학은 위대한정복자 람세스 2세의 형태를 그리워하며 모방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시삭 침략의 원인은 솔로몬이 남부 네겝에 요새들을 건설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을 수 있으며, 시삭은 이집트와 시내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온 뒤 가사(Gaza)를 지나 게셀(Gezer)을 공격했습니다. 거기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에브라임 산지 남부로 갔다가 아얄론, 벳호론, 기브온을 통과하는 통상적인 북부 접근로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열왕기상 15:26에서 보듯이 르호보암이 왕궁의 보물과 솔로몬의 금 방패를 다 빼앗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 줍니다.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여정의 많은 유적지에서 10세기 말엽에 해당하는 층에서 큰 규모의 불탄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아라드, 게셀, 다나악, 므깃도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므깃도에서는 시삭이 세운 기념비의 파편도 발견되었으며 이는 솔로몬의 므깃도, 하솔, 게셀의 대규모 건축 이야기(왕상 9:15)의 역사성의 간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또한 파괴된 도시들은 신속하고 완벽하게 때로는 더 높은 수준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아직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시삭의 침략(기원전 925년경)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연대를 확정할 수 있는 최초의 사건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왕들의 연대 확정하는 문제

성서에서 처음으로 연대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건은 열왕기하 24:10-17에 나오는 느브갓네살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입니다. 이는 바벨론 연대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7년 기슬리무 월月: 아카드 왕은 하티 땅으로 군대를 이동시켜 유다 성을 포위하였고, 왕은 앗다루 월 제2일에 그 성을 취하였다. 그는 그 성에 자신이 좋아하는 한 왕 '여호야긴의 숙부 시드기야'를 임명하였고 그 성으로부터 많은 전리품을 받아서 그것을 바벨론으로 가져왔다."

느부갓네살 7년 앗다루 제2일은 기원전 597년 3월 15일이나 16일이었을 것입니다. 성서는 정확한 연대를 기록하지 않고 대신 왕의 즉위 연대를 같은 시대의 다른 왕국 왕의 재위 기간과 연결시켜 밝혀내는데 아시리아와 바벨론 기록을 성서와 비교해보면서 정확한 시대를 확정할 수 있습니다.

- 아합은 기원전 853년 살만에셀 3세가 서방을 원정하는 동안에 이스라엘 왕이었다.
- 예후는 기원전 841년 살만에셀 3세의 왕전 때에 왕위에 있었다.
- 여호아스의 재위 기간은 아닷니라리 3세(810-783년)와 겹치고, 여호아스는 806년과 796년 사이의 어느 때에(아마도 796년) 아닷니라리에게 조공을 바쳤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왕의 통치 기간을 확정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열왕기서에 나오는 연대기 수치들은 성서 편집자의 도식에 맞춰 조정되었을 것이다.
둘째, 성서의 여러 사본들과 판본들에서 읽기가 서로 다르다. 이는 전승되는 동안 어느 정도 유동적이었을 것이며 특히 히브리 및 헬라어 사본들 간에 심하다.
셋째, 하나의 사본 전승이나 판본에서도 불일치가 있다. 마소라 본문(MT)에서 인용한 구절에 의하면 바아사는 그가 라마에서 건축을 시작했을 때 이미 죽은 지 10년이 지난 후가 된다.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그 왕위에 있으니라(왕상 16:8)."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대하 16:1)."

넷째, 성경의 수치들은 메소포타미아 기록들에 드문드문 나오는 '기준치들'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아시리아 기록을 통해 므나헴이 737년에 디글랏빌레셋 3세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것과 아시리아가 호세아를 732년에 사마리아에서 왕위에 앉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시리아 기록에 따르면 므나헴의 재위 기간의 끝과 호세아의 재위 기간의 시작 사이에는 최대 6년의 공백이 있다. 그렇지만 열왕기하에서는 므나헴과 호세아 중간에 통치하였던 브가야와 베가가 모두 합쳐 22년간 재위에 있었다고 말한다. 아시리아 기록에는 6년, 성경에는 22년의 기간으로 나오기에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의 대략적인 연대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르호보암 성벽

2015년 7월, 이스라엘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텔(언덕이라는 뜻) 라기스' 발굴 현장에서 르호보암 성벽을 발굴하였습니다. 이 지역 발굴은 이스라엘, 미국, 한국 등 3개국 연합으로 2013년부터 진행됐으며, 한국 발굴단은 르호보암 성벽을 찾는데 집중해 왔습니다. 라기스는 아세가와 함께 바벨론의 공격을 끝까지 견딘 견고한 성읍으로 쉐펠라(평지) 지역의 중요한 성읍으로 여호수아와 연합해 싸운 아모리 다섯 왕 중 하나가 다스렸던 성읍이었습니다. 라기스는 1929년 올브라이트에 의해 텔 에드 두웨이르(Tell ed-Duweir)로 동일시되어 텔 라기스(Tel Lakhish)로 불립니다.

라기스는 역대하 11:5-10에서 '르호보암이 유다 땅에 건축하였다'고 전한 15성읍 가운데 하나로, 한국 발굴단은 르호보암이 건설한 성벽을 찾아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성벽은 너비 3M의 돌로 축조됐으며, 기원전 10세기 당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들도 출토되었습니다.

르호보암 시대의 라기스는 키르벳 케이야파, 게셀에 이어 계획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왕정 체제에 의한 건설 작업이 분열 왕국 시대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을 보여 주며 이후 브엘세바, 텔 베이트 미르심 등의 도시 건설로 그 명맥이 이어갑니다.

[출처: 뉴스앤조이] 르호보암이 낳은 이스라엘 분단

여로보암왕

열왕기서에는 북이스라엘 초기 40년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여로보암의 종교 활동과 관련해 부정적 이야기가 많습니다.

스레다(Zeredah, 에브라임 실로) 출신, 느밧의 아들인 여로보암은 행정 수완을 비롯한 능력 덕분에 솔로몬에게 주목받았습니다. 솔로몬은 그에게 요셉의 집(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영토에 있는 강제 노역 집단) 부역 책임을 맡겼으나, 그는 반체제 관리자(왕상 11:26-28)로서 반란을 주도했습니다. 그가 솔로몬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자, 이집트 파라오 쇼솅크 1세(시삭)에게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이집트 시삭은 리비아 귀족(Lybyan nobleman) 출신으로 여로보암을 환대합니다. 이는 21왕조의 이집트가 남유다 예루살렘과의 화해 정책을 더 이상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했습니다. 21왕조인 파라오 시아문(기원전 978~959년)은 이스라엘, 유다와 손잡고 블레셋을 대항하는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죽자 여로보암은 이스라엘로 돌아와 세겜 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왕상 12장), 이스라엘이 두 왕국으로 분열하는 데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

솔로몬에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은 북쪽 지역 세겜에서 북부 지파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합니다. 세겜은 북부 지역 주요 장소로 여로보암의 수도가 됐습니다. 여로보암은 세겜에서 브누엘(길르앗의 도시)로(왕상 12:25), 그곳에서 다시 디르사(Tirzah, 세겜 북동부)로 옮깁니다. 역사학자들은 여로보암이 시삭의 침공을 피해 요단 동편으로 도망갔다고 보지만, 성서는 이에 대해 침묵합니다.

열왕기상 14장 17절에 암시돼 있는 것처럼, 여로보암이 왜 나중에 서쪽으로 돌아와 디르사에 수도를 세웠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디르사는 바아사(왕상 15:33), 엘라(왕상 16:8), 시므리(왕상 16:15)를 거쳐 사마리아가 설립된 오므리 6년(왕상 16:23)에 이르기까지 꽤 오랫동안 북이스라엘 수도였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여로보암의 수도에 관한 정보는 그가 단과 벧엘에 세운 종교 중심지들에 관한 자세한 보도와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왕상 12:26-33; 왕상 13:1-14:18). 이와 같은 대조는 열왕기서를 기록한 성서 저자의 관심이 신앙적인 부분에 집중돼 있었기에 여로보암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예언자 아히야는 벧엘과 단에 송아지 형상을 만든 여로보암을 비판하는데(왕상 14:6-16), 이는 출애굽기 32장 금송아지 전승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로보암의 배교는 후대 왕들에 의해 지속돼 북이스라엘 혼란의 원인이 됩니다.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作,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여로보암 Jeroboam Offering Sacrifice for the Idol'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여로보암 시대 고고학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는 모습과 다시 다윗 왕조 통치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워합니다(왕상 12:26-27). 그래서 남쪽 베델과 북쪽 단에 산당을 세우고, 두 개의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깁니다(왕상 12:28).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왕상 12:28)."

여로보암이 만들었다고 말한 황금 송아지는 아니지만, 단(Dan)에서 10세기 후반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이것은 2m 너비의 돌로 된 커다란 블록들로 만들어졌으며, 성경에는 종종 "높은 곳"(high place)으로 번역됩니다(레 26:30; 왕상 12:31).

7개 심지가 있는 기름등잔, 뱀 모양 장식, 향단, 동물 뼈가 가득 찬 그릇, 진흙과 조약돌의 입상 등을 발굴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뱀은 특히 바알 숭배와 관련 있었습니다. 경사가 있는 현무암 슬래브가 있는 분지도 존재하는데, 아마도 물 정화 의식과 관련됐을 것입니다.
분열의 역사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분열은 200년 동안 이어집니다. 두 왕국의 역사 기록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나뉘기도 하면서 두 왕국이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비록 북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그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한 형제임을 성경 기록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려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왕들을 향한 평가는 대부분 종교적 신실함에 달려 있었습니다. 경제와 정치적 평가는 이차적 문제였습니다. 성서 저자는 경고의 말과 개혁의 요구를 독자들에게 제시합니다. 성서 저자는 역사적 사실과 사료를 활용해, 여호와 신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하는 데 근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신앙은 분열된 두 왕국이 언젠가 다시 합쳐져 다윗 왕국처럼 강력하고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데 근간된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분열된 역사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슴 아픈 현실이었고, 후대 독자들에게는 과거의 교훈을 보여 주는 거울이 됩니다.

[출처: 뉴스앤조이] 황금 송아지 숭배로 시작된 북이스라엘의 혼란



오므리가 저지른 죄
(기원전 883~기원전 872)

거듭된 쿠데타가 불러온 혼란 가운데서 왕위를 찬탈한 오므리(Omri)는 3대에 걸쳐 왕위를 보존할 수 있었던 최초의 북왕국 왕가를 만들었다. 오므리와 아합은 성경 외 문헌에 언급되는 최초 인물이기도 합니다(열왕기상 16장).

오므리는 디르사에서 6년 동안 다스린 뒤, 세겜 북동부 사마리아에 새로운 수도를 세웠습니다. 통신과 무역을 장려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높이 90m 산 위에 세워진 사마리아는 방어하기에 좋고, 다른 도시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에브라임 고지대의 비옥한 지역으로, 서쪽으로 40km 지점에 해안 고속도로와 지중해에서 산지로 들어오는 주요 간선도로 하나를 굽어 보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위치가 페니키아와 광범위하게 접촉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었을 것입니다.
오므리와 페니키아

여러 면에서 오므리 왕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두로와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오므리는 두로의 왕 이토바알(Ittobaal), 곧 성서의 엣바알(Ethbaal, '바알의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아들 아합을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킵니다. 그들의 결혼은 번영하는 지중해 상업 도시들과 맺는 외교적·상업적 관계를 강화하여 육지로 둘러싸인 이스라엘 도시들에 상당한 부를 안겨 주었습니다.

페니키아는 중부 산간 지방을 통과해 요단 동편으로 가는 통로에 있었습니다. 요단 동편으로 대상隊商들이 남쪽에서 사치품을 싣고 '왕의 대로'를 통해 올라왔습니다. 왕의 대로는 아카바만 북단에서 다메섹까지 요단 동편 고원 변두리를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도로입니다("왕의 큰 길", 민 20:17, 21:22). 대상들은 부의 원천이었기에 그들이 다메섹에 이르기 전 방향을 바꾸게 하는 것이 두로와 다른 페니키아 항구도시들에 이익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한 최상의 경로는 이 지역 지형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그 경로는 왕의 대로를 통해 오다가 라못-길르앗 근방에서 방향을 바꾸어, 와디 야비스(Wadi Yabis)를 통해 요단 계곡으로 내려왔다가 건너편으로 가서 벳스안과 이스르엘 계곡을 통과한 다음, 아코 평원으로 나와 두로와 다른 페니키아 항구도시에서 끝났습니다.

아코 평원에 있는 호르밧 로슈 자이트(Horvat Rosh Zayit), 벳스안 바로 서쪽에 있는 텔 아말(Tell 'Amal), 요단 계곡에 있는 텔 엘-함마(Tell el-Hamma) 등의 도시에서 발견된 전형적인 페니키아 도기류를 통해 기원전 10세기와 9세기에 이 경로를 따라 페니키아가 동쪽으로 확장한 것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됩니다. 이런 유적의 존재는 그 지역에 대한 페니키아의 직접적 지배를 보여 준다기보다, 이 경로가 지나가는 영토를 소유한 이스라엘과의 정치적 우호 관계와 상업적 협력을 의미합니다.

같은 시대 이스라엘 도시들도 비슷한 유형을 보여 줍니다. 이 도시들에서도 수입된 페니키아 도기류가 상당수 나왔습니다. 페니키아에서 수입된 건축 자재를 비롯해, 마름돌 석공술(ashlar masonry), 원原아이올리우스식 기둥머리(Proto-Aeloic capitals), 그리고 상아 조각술 등의 페니키아 건축 공법을 이용한 흔적을 보여 주는 건물 유적들도 나왔습니다.

10세기부터 8세기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페니키아 양식 상아 장식들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많은 유적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마라아 왕국에는 조각된 상아로 만든 상감象嵌 재료가 500점 정도 나왔습니다. 이는 사마리아에 "(아합이) 건축한 상아궁"(왕상 22:39)과 사마리아를 향한 아모스의 예언에 나오는 '상아궁'과 '상아상'을 떠올리게 합니다(암 3:15, 6:4).
사마리아 언덕.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오므리 시대 고고학

- 사마리아성

이곳에서 행정 관련 히브리어 오스트라카와 페니키아 상아 조각품뿐 아니라,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오므리가 세운 사마리아성에서 발견된 사마리아 오스트라카는 사마리아 산지 북부의 고대 정착지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줍니다.

오스트라카에는 므낫세 지파 자손들 이름과 성읍 이름이 나타납니다. 이 가운데에 슬로브핫의 딸 이름 중 노아와 호글라가 있습니다. 디르사는 이 다섯 명의 딸 중 하나로 오스트라카에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라카에 언급된 호글라의 성읍들이 세겜의 북서에, 노아의 성읍들은 사마리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디르사는 세겜의 동북쪽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디르사라는 성읍 이름도 므낫세 지파 정착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디르사는 기원전 8세기까지는 번영을 누린 도시로 이곳에서 발굴된 부자들의 집들과 가난한 이들의 움막집들의 대조는 아모스 선지자의 비판을 연상시켜줍니다(암 5:10-13).

- 메사 비문 또는 모압 석비(Mesha Inscription, Moabite Stone)

1868년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던 독일 선교사 클라인(F. A. Klein)이 요르단 디반(Dhiban, 고대의 Dibon)에서 발견한 것으로, 이 비문은 성서의 히브리어와 매우 가까운 모압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열왕기하 3장 4-27에 등장하는 모압 왕 메사의 공적을 열거한 것입니다.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왕하 3:4)."

여기에서 오므리 왕조에 관한 최초의 성서 외적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모압 석비 연대는 대략 830년입니다.

"나는 메사, 그모스의 아들, 모압 왕, 디본 사람이다. 이스라엘 왕 오므리에 관해서 말하면, 그는 여러 해 동안 모압을 억압하였다. 이는 그모스가 자신의 땅에 진노했기 때문이다. 그를 계승한 아들도 '나는 모압을 억압하리라'고 말했다. 내 시대에 그가 (그렇게) 말했으나, 나는 그와 그의 가문을 무찔렀고, 반면에 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당했다! 오므리가 메드바(Medeba) 땅을 점령했고,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그곳에 거주했다. 그의 아들 통치 기간의 절반 동안도 (이스라엘이 그곳에 거주했음을 고려하면 모두) 40년 동안 (메드바가 이스라엘에 의해 지배당했다). 그러나 내 시대에는 그모스가 그곳에 (돌아와) 살게 되었다. 갓 사람들이 아다롯 땅에 항상 살았고, 이스라엘의 왕도 그들을 위해 아다롯을 건설했지만, 나는 그 마을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하략)"

비문은 메사가 이스라엘 왕국에 반기를 들고 영토를 단계적으로 넓혔으며, 오므리와 그의 아들 아합을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비문을 통해 얻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오므리는 오랫동안 모압을 지배했다.
2) 오므리는 메드바(Medeba)를 점령했다. 오므리는 메드바에 거주하였는데, 오므리 아들까지 모두 40년 동안 지배했다. 오므리는 북부 모압 중앙 고원지대 서쪽 산마루에 있는 특정 지역 거주민들, 곧 옛 갓 지파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였다.
3) 메드바의 주요 성읍은 아다롯이었다. 이 이름을 가진 성읍은 아다롯과 아다롯-소반(민수기 32장 34-35, 갓 자손은 디본, 아다롯, 아로엘, 아다롯소반, 야셀, 욕브하와) 두 곳이다. 이 둘의 이름을 가진 옛 유적지도 2개인데 키르벳 아타루즈(아다롯)와 루즘 아타루즈(아다롯-소반)로 불리는 이 두 유적지이다. 갓 지파 사람들을 위한 아다롯 건축은 모압이 이스라엘에 예속되어 있던 40년 동안 이루어졌다.

이렇게 오므리는 요단 동편의 남부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아랍 대상들을 다메섹으로부터 주로 벧-스안을 경유하여 이스라엘과 페니키아로 방향을 돌이키게끔 했으며, 양털·염소털을 풍부한 섬유산업에 필요한 채색 염료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던 페니키아에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므리에 대한 평가

오므리가 많은 정치적 성과를 이루었는데도, 성서는 오므리를 신실한 왕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서가 얼마나 토라(율법)에 순종하는가를 기준으로 왕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25-26)."

오므리의 사마리아 건설은 짧지만 강력한 암시를 합니다.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왕상 16:23-24)."

오므리가 사마리아를 자신의 수도로 삼기 전에 이미 이곳에는 기름 생산을 위한 마을이 있었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과 중요한 공공건물도 있었습니다. 겨우 은 두 달란트로 사마리아를 구입했다는 말은 아마도 그 지역을 무력으로 강탈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 아합이 시돈 왕 엣바알(Ethbaal, '바알의 사람') 딸 이세벨과 결혼한 것으로 보아(왕상 16:30-31) 오므리는 자녀들에게 여호와 신앙의 신실함을 교육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경우처럼 정략결혼은 정략 면에서는 유리했지만, 이스라엘의 신앙 근간을 흔들었으며 결과적으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과 왕권의 부패를 불러오게 됩니다.

[출처: 뉴스앤조이] 북이스라엘 오므리, 많은 성과에도 악한 왕으로 기록된 이유

아합은 사마리아에서 22년 통치합니다(기원전 872~기원전 851년). 아합 통치 기록이 열왕기상 16장 29절에서 22장 40절까지 나오는데, 이세벨의 마지막 장면까지(열왕기하 9장) 포함하면 북왕국 왕들 가운데 가장 분량이 깁니다.

아합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중략)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0, 16:33)."

이 기록의 문학적 유형은 '예언적 관점'입니다. 예언적 관점에서 기록한 형태로, 사무엘과 사울의 왕권에 대한 이야기가 선지자 나단과 다윗 이야기와 비슷하며, 또한 솔로몬의 권력 남용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신적 영감을 부여받은 선지자들 권위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있는 왕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순수성에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묘사하는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은 성서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악정惡政을 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왕상 21:25)."

아합이 여호와를 전혀 숭배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아합 통치 기간, 적은 무리의 사람들만 바알을 섬겼습니다. 여호와 신앙이 그의 자녀들 이름에 나타납니다. 세 자녀 이름이 모두 여호와와 관련돼 있습니다. 두 아들 요람('여호와가 옳다', 왕하 8:16)과 아하시야('여호와의 소유', 왕상 22:51)와 딸 아달랴('여호와의 크심', 왕하 8:26, '오므리의 손녀')에서 보듯 여호와 숭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합은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더 매달렸습니다.
아합 시대 고고학

- 텔 단 비문(Tel Dan Inscription)

이 비문은 1993년 발견했습니다. 고고학자들에게 가장 큰 흥미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람어로 쓰인 이 비문은 기원전 9세기 혹은 기원전 8세기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에서 '텔(tel 또는 tell)'은 '작은 언덕'을 의미하는 고고학의 전문용어이며, 단(Dan)은 갈릴리 지방에 위치해 있습니다.

비석을 세운 군주 이름은 나와 있지 않지만,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아람-다메섹 왕 하사엘입니다["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왕상 19:15)"]. 하사엘은 성서에서 오므리 가문에게 굴욕을 안겨 준 인물입니다. 기원전 835년경 단을 점령하고, 그곳에 승전비를 세운 것 같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올라갔다.
나의 아버지는 누웠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고 내가 죽인 사람은
'다윗의 집'이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포위했다.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의 아들"

이 비문이 아합 아들이며 왕위를 계승한 여호람 이름을 언급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뜻은 명확합니다. 오므리 왕조가 이끈 이스라엘 왕국은, 다메섹 부근 지역에서 이스라엘 중앙 고원지대와 여러 계곡 전체는 물론 모압 남쪽에 이르는 지역까지 상당히 많은 이방 민족을 통치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오므리 왕조가 막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살만에셀 3세의 모놀리스 비문(Monolith Inscription)

이 비문은 하나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비석입니다. 아시리아 님루드(Nimrud)에서 발견했습니다. 기원전 853년 시리아 베카(Beqʿa) 계곡에서 벌어진 카르카르(Qarqar) 전투 자료로, 잘 문헌화됐습니다. 아시리아 연대기는 아합이 다른 어떤 왕보다 많은 군사력을 제공했다고 보고합니다. 아합은 반-아시리아 동맹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습니다(기원전 853년, 성서 기록에는 없음). '이스라엘의 아합' 군대가 다메섹의 벤하닷보다 더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나 살만에셀은 앙의 도시인 카르카르를 파괴하고 황폐화했으며, 또한 불태워 버렸다. 아람의 왕 하닷에셀은 병거 1200대, 기병 1200명, 보병 2만 명 … 이스라엘 왕 아합은 병거 2000대, 보병 1만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 열두 왕이 동맹국으로 모였다."

아합의 병거가 2000대, 보병이 1만 명입니다. 병거 수가 아주 많아 약간 의심이 가지만, 아합 군대가 연합군 핵심 부대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남유다는 목록에 없는데, 북이스라엘과 밀접한 동맹 관계였기에 아합 군대에 속한 것으로 계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는 살만에셀 3세가 승리했다고 주장하나, 이 전투의 실제 결과를 보면 심하게 과장한 것입니다. 살만에셀 3세는 급히 아시리아로 회군했으며, 적어도 잠시 동안은 아시리아의 서방 진격이 저지됐습니다.
대토지화 정책,
아합과 나봇의 포도원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왕상 21:2)."

사마리아에서 벌어진 종교적 대립은 여호와 숭배자와 비 여호와 숭배자의 대립이 아니라, 배타적 여호와 숭배와 비배타적 여호와 숭배의 대립이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한 나라 왕이 자기 백성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더구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이세벨은 나봇을 모함해 죽이기까지 합니다. 왜 아합과 이세벨은 무리한 방법까지 써서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것일까요?

많은 학자가 이 정책을 '대토지화', 곧 집약 농업 정책이라고 부릅니다. 엘리야가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과 갈멜산에서 대결을 벌인 것도 종교적 측면뿐 아니라, 세습 토지제도와 수녹 토지제도 간 가치관 충돌도 포함돼 있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아합은 아내 이세벨과 선지자 엘리야 사이에서 머뭇거립니다. 같은 맥락에서 여호와와 바알이 대결하는 것입니다.

바알은 가나안 폭풍의 신이었습니다. 엘리야 이야기 전반부에서 언급하는 3년 기근은 진정한 폭풍(비)의 신이 누구인지 묻는 것입니다. 비를 주관하고 농업의 풍년과 흉년을 주관하는 신은 여호와인가, 바알인가? 자율적 농업 정책을 펼칠 것인가, 왕이 강제하는 집약 농업 정책을 펼칠 것인가?

아합은 갈멜산에서 허망하게 패배한 바알 선지자들을 보면서도, 이세벨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의지해 바알 편에 서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릅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왕상 21:7)."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나서 포도원으로 갑니다. 여호와는 엘리야를 통해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라고 말씀합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왕상 21:19)."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삽화 '아합의 죽음'.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이전에 여호와는 아합에게 기회를 여러 번 줬습니다.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과 제단을 쌓거나, 아세라상을 만들었을 때도(왕상 16:31-33), 갈멜산 대결에서도(18장),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을 때도(19장) 하나님은 아합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기회에도 전혀 개선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여호와는 아람왕과의 전투에서 아합을 패배하게 합니다.

"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22:37-38)."

열왕기상 22장 39-40절은 아합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로 마무리합니다.

[출처: 뉴스앤조이] 아합, 악한 왕의 대명사


구약성서는 '예언자들의 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구약성서 39권 중 20권이 예언서입니다.
"~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는 상용구로 시작하는 예언서는 왕·신하·백성에게 하나님 여호와의 의도를 알려 주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었습니다.

오므리 왕조, 예후 왕조, 다윗 왕조 때 예언자들은 활동하면서 종교 문제뿐 아니라 정치·경제까지 아우르는 부조리를 고발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예언의 기원을 따지면 사사 시대로 올라갑니다. 족장들도 때때로 예언자라고 불렸지만 이것은 후대에 붙은 이름일 것이고, 기드온·드보라 같은 이들이 예언자와 중요한 연속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뒤이어 사무엘·나단·갓 같은 이들이 예언자 역할을 담당합니다.

오바댜(소선지서 오바댜 선지자와 다른 인물)가 이세벨 눈을 피해 선지자 100명을 굴에 숨겨 준 이야기(왕상 18:4), "선지자의 무리"라는 표현(왕상 20:35) 및 엘리야와 후계자 엘리사, 아합-여호사밧 연합군이 아람과 전쟁하기 전 선지자 400명에게 물어보는 이야기(열왕기상 22:6)를 통해 이스라엘에 선지자 학교 또는 선지자 공동체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왕과 직접 대면하는 예언자로 궁중 예언자이며,,
소선지서에 등장하는 12예언자는 백성 사이에서 활동합니다.
예언서 분량도 차이가 납니다. 개인에게 예언이 주어지다가 공동체 지향으로 바뀐 것은 문서 예언자들 등장(기원전 8세기 중반의 아모스)과 시기를 같이합니다.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은 아모스서나 호세아서지만, 그보다 먼저 활동한 예언자들도 언급합니다(암 2:11-12; 호 6:5 등).

고대 지중해와 근동 세계에서 예언은 널리 실행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고대 근동의 예언

- 마리(Mari) 예언 문헌

마리의 행정 서신은 짐리-림 왕(Zimri-Lim, 기원전 18세기)에게 예언 활동을 보고하는 50통의 편지입니다. 이 신탁은 전형적입니다. 짐리-림에게 해야 할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 과거 그를 후원한 신을 정중히 대하라는 훈계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신탁은 백성들을 향해 회개를 요청하지만 나머지는 왕과 관련 있습니다.

"(전략) 경배하던 중 다간 신(Dagan)이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야만 족속의 왕들과 그 군대가 이곳에 올라온 짐리 림의 군대와 평화협정을 맺었느냐?' 저는 '그들이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중략) 이제 가라. 내가 너를 보낸다. 짐리 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 '네 사자들을 나에게 보내어 보고하도록 하라. 그리하면 내가 야만 족속의 왕들을 어부의 막대기에 꽂아 구워서 너의 앞에 가져다 놓아 주겠다.' 이 사람이 이와 같이 꾼 꿈을 나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하략)"

아시리아 예언

성경에도 등장하는 에살핫돈(왕하 19:37, 사 37:38, 스 4:2)과 아슈르바니팔(개역개정에는 오스납발, 기원전 668~기원전 630년, 스 4:10) 통치 때 나온 약 30개 예언 문헌입니다.

대부분은 '아르벨라의 이슈타르'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부수적으로 복사해 편찬했으며 여선지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온 땅의 왕 에살핫돈이여 두려워 마라! 네게 부는 저 바람은 내가 한마디만 하면 끝낼 수 있다. 네 적들은 시반월의 (어린) 야생 돼지처럼 네 앞에서 도망 갈 것이다. 나는 위대한 벨렛-나는 아르벨라의 이슈타르, 네 적들을 네 앞에서 물리친 자이다. 나의 명령들 중 어떤 것을 네가 의지할 수 없었는가! (하략)"

이집트 네페프로후(네페르티)의 예언

이 문서는 제4왕조(기원전 26세기)의 왕 스네프르(Snefru)가 유흥을 추구한 이야기입니다. 한 예언자가 고왕국 몰락과 제12왕조 초대 왕 아멘엠헷 1세에 의한 질서 재확립을 예언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 문서 가장 오래된 사본은 약 5세기 뒤인 제18왕조 것입니다.

"(전략) 그러자 낭송사제 네페르포후(네페르티)가 말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말씀드릴까요,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드릴까요? 주권자(생명과 번영과 건강이 있기를!), 내 주여?' 그러자 폐하(생명과 번영과 건강이 있기를!)께서 말씀하셨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좋겠다. 이미 오늘 일어난 일이면 지나가라.' 그리고 그는 글쓰기 도구가 있는 상자에 손을 뻗어 파피루스 한 두루마리와 팔레트를 꺼내서 거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시아인들이 강한 팔로 다니며, 추수 중인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쟁기질 중인 소들을 잡아갈 때, 곧 그가 동쪽의 상황을 기억했을 때, 이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심사숙고하면서, 동쪽의 현자, 바스텟에게 속한 자, 헬리오폴리스 놈(Heliopolitan nome)의 소생, 낭송 사제 네페프로후가 말한 것이다. 그가 말했다. 생각해 보아라, 오 내 심장이여, 네가 시작된 땅을 애도하라. (하략)"

- 데이르 알라 문서(Deir ‘Allā Text)

1967년 요르단 계곡 동쪽 텔 데이르 알라(Tell Deir ‘Allā)에서 발굴된 데이르 알라 문서(Deir ‘Allā Text)는 기원전 800년 문서입니다. 고대 예언에 관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텔 데이르 알라는 얍복강과 요르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가까운 트란스요르단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어 기원을 지닌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어느 집 석고 벽에 먹물로 쓰였습니다. 본문에는 민수기 22~24장 발람 이야기의 역사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데이르 알라 건물을 파괴한 지진은 웃시야왕과 아모스 때(기원전 760년)에 발생했던 지진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 년에(암 1:1)"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슥 14:5)."

이 문서가 기록된 때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이어야 하기에, 기원전 770~기원전 880년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9세기, 또는 그 이전 구전(oral tradition)에서 유래되었습니다.

53행으로 구성되어 아람어로 쓰인 이 글은 '브올의 아들인 발람으로부터의 경고들. 그는 신들의 예언자였다'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발람을 브올의 아들로, 밤중 찾아온 신들에게서(1~4행) 메시지를 받은 사람으로 보는 점에서는 민수기 발람 이야기와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책의 경고

그는 신들의 선견자였다.
신들이 한 밤에 그에게 왔다."

신들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심히 못마땅해하는 것을 발람이 환상 중에 보고합니다(5~12행).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앉아라. 나로 네게 말하게 하라.
샤댜인이 (말했던) 것을
와서 신들의 일을 보라.
신들이 서로 모였을 때
샤댜인이 모임을 주선했다.
그들이 샤(갈)에게 말했다."

발람이 다음 날 일어나 몹시 슬퍼하고, 신들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13~32행).

여기서 신의 이름은 '일라힌'과 '샤댜인'입니다. 이 두 명칭은 같은 신을 부르는 다른 호칭입니다. 발람을 찾아가 말을 거는 신은 샤댜인(saddayin)입니다. 구약성서 '전능자'(히브리어 '샤다이')와 같은 호칭입니다(창 17:1; 35:11; 43:14; 48:3 등).

본문들은 기원전 8세기 또는 기원전 9세기 팔레스타인의 협소한 지역에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대단히 수준 높은 문학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고도로 전문 지식을 가진 서기관 교육을 전제하며, 왕궁 이외에도 복잡한 텍스트를 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물론 성서의 발람 이야기는 이집트 탈출 시기이기에 이 문서 시대와 시간적으로 많이 차이가 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성서 기록 시기를 기원전 10세기 다윗-솔로몬 시대로 보는 것을 충분히 가능하게 해 줍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예루살렘 파괴를 한탄하는 예레미야 Jeremiah Lamenting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열왕기상 22장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은 요단 동편 도시 '길르앗 라못'을 아람 손에서 도로 찾기 위해 전쟁을 결정하고, 이 결정이 하나님 뜻에 적합한지 예언자들에게 묻습니다. 이전에 이 성읍은 오므리왕이 시리아 침공을 막기 위해 다른 성읍과 함께 시리아에 양도했습니다. 아벡 전투 뒤 맺은 협정에 따라 벤하닷은 이 성읍들을 돌려준다고 했으나, 지키지 않자 이스라엘과 유다는 힘을 합쳐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장면에서 엘리야와 동시대 사람 미가야가 등장합니다(소선지서 미가 선지자와 다른 인물). 이스라엘 왕 아합은 예언자 400명을 불러 전투가 시작할 때 사기를 북돋게 합니다. 예언자 400명은 모두 한목소리로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왕상 22:6).

모든 선지자가 승리를 예언하는 것이 도리어 불안했는지, 여호사밧왕은 다른 선지자를 찾습니다. 아합은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불러오라고 시킵니다. 미가야를 데리러 간 사신은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왕상 22:13)라고 부탁하지만 미가야는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왕상 22:14)."

미가야는 처음에는 비웃는 투로 400명의 낙관적 예언을 조롱해 그것을 흉내 내지만 곧 진실한 예언을 합니다. 이번 전쟁에서 여호와가 아합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 죽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 선지자가 미가야 뺨을 치며 여호와의 영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자신들이 여호와의 영을 소유했다고 주장하는 선지자들 사이에서 전혀 다른 예언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왕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전쟁터에 나갑니다. 아합이 전투에서 죽게 되면서 미가야 예언이 맞았음이 증명됩니다. 예언자 400명과 2명의 왕 앞에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미가야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을 예언함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증명해 보입니다.

정반대 예언이 선포될 때, 어떤 것이 참된 예언인지는 실현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바알·아세라 선지자 800명과 엘리야의 대결, 전쟁을 찬성하는 400명 선지자와 반대하는 미가야 싸움에서 보듯이, 결국 여호와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예언자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출처: 뉴스앤조이] 고대 근동 예언자에 대한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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