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붕괴론



중국 분열 가능성과 예상 국가 수 분석

중국이 소련처럼 여러 개의 나라로 분열될 가능성과, 만약 분열이 발생한다면 얼마나 많은 국가로 나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정학적 관심의 핵심 주제입니다.

​소련은 1991년 경제적 파탄, 민족 갈등, 중앙 권력 약화로 15개 국가로 붕괴되었으며, 이는 중국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참고점이 됩니다.

​그러나 중국은 단일 국가 체제와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소련과 차별화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분열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엄청나지만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 분열 가능성의 배경

중국이 소련처럼 분열될 가능성은 여러 요인에서 기인합니다. 소련의 붕괴는 경제적 파탄, 민족 갈등, 중앙 권력 약화로 인해 발생했으며, 중국도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민족적 다양성

  • 중국은 한족(92%)이 다수지만, 위구르, 티베트, 몽골 등 55개 소수민족이 인구의 8%(약 1억 1,200만 명)를 차지합니다. 
    신장, 티베트, 내몽골 지역은 독립 요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장은 위구르족(1,100만 명)의 독립운동이 강렬하며,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의 영향력으로 독립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 티베트의 경우 중국으로 유입되는 양자강과 황하강의 물의 근원이므로 만일 티베트에서 물을 통제하면 중국 대륙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티베트의 종교는 불교

    * 위그루의 경우 힌두교이며 


경제적 불균형

  • 2024년 중국의 지역별 1인당 GDP는 상하이(2만 5,000달러)와 간쑤(6,000달러) 간 최대 4배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격차는 지역 간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으며, 특히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분리주의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정치적 긴장

  • 시진핑 주석의 1인 체제 강화는 중앙 권력을 공고히 했지만, 지방 엘리트의 불만과 부패 척결 과정에서의 권력 투쟁은 체제 불안정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24년 내부 숙청(최고위 간부 15명 처형 추정) 사례는 이러한 긴장을 보여줍니다.

내부 갈등의 복합성은 중국 분열 가능성의 주요 요인으로, 소련 붕괴와 유사한 맥락을 제공합니다.

소련 붕괴와 중국의 차이점

소련 붕괴를 참고하되, 중국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중앙집권적 통제

  • 소련은 연방제 구조로 각 공화국이 자치권을 가졌지만, 중국은 단일 국가 체제 아래 강력한 중앙집권을 유지합니다. 2024년 기준, 중국 공산당은 지방 정부에 대한 재정·행정 통제를 강화하며 분리주의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련의 느슨한 연방제와 대비됩니다. 이것이 오히려 중국 공산당이 무너지면 소련보다 더 강력한 독립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적 상호의존

  • 소련은 경제적으로 독립된 공화국들이 느슨히 연결된 구조였으나,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2024년 세계 수출 14%)으로, 지역 경제가 상호 밀접히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분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화되면 식량난의 가속화와 자연재해의 심각성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민족 통합

  • 소련의 러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50%였지만, 중국의 한족은 92%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해 민족적 통합력이 강합니다. 이는 소련의 다민족 연방과 달리 통합을 유지하는 데 유리합니다.

강한 중앙 통제와 경제적 통합은 중국의 분열 가능성을 낮추는 핵심 요소입니다.

분열 가능성의 시나리오

만약 중국이 분열된다면, 소련 붕괴와 달리 제한된 지역 중심으로 나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장(동투르키스탄)

  • 위구르족(1,100만 명)의 독립 요구는 신장에서 가장 강렬합니다. 2024년 중국 정부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의 인권 문제 제기는 분리주의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

  •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영향력과 2023년 이후 티베트 망명 정부의 활동 강화는 독립 가능성을 키웁니다. 티베트 인구는 약 600만 명입니다.


홍콩과 광둥

  • 홍콩의 자치 요구(2019년 시위 재점화)와 광둥성의 경제적 독립성은 남중국 분리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광둥은 2024년 중국 GDP의 10%를 담당합니다.

내몽골

  • 몽골족(600만 명)의 문화적 정체성은 약화되었으나, 몽골과의 연계 가능성은 잠재적 분리 요인입니다.

민족과 경제 중심지는 분열의 주요 축이 될 수 있습니다.

예상 분열 국가 수: 3~7개 가능성

소련은 15개 국가로 나뉘었지만, 중국은 역사적·지정학적 특성상 더 적은 수로 분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래 표는 가능한 분열 시나리오를 정리한 것입니다.


나리오

분열 국가 수

주요 지역

비고

최소 시나리오

3개

중앙 중국, 신장, 티베트

민족 갈등 극단화 시, 70% 영토 유지

중간 시나리오

5개

추가로 홍콩-광둥, 내몽골

영토 50~60% 손실, 경제적 요인 포함

최대 시나리오

7개

만주, 서남부(윈난·구이저우) 추가

경제 붕괴 시, 소련보다 복잡한 결과

  • 최소 시나리오(3개): 중앙 중국(한족 중심), 신장(동투르키스탄), 티베트로 나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민족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경우 발생하며, 약 70%의 영토가 중앙 중국에 남습니다.

  • 중간 시나리오(5개): 홍콩-광둥 연합과 내몽골을 추가로 분리 시, 5개 국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이는 경제적 자율성과 민족적 요인을 반영하며, 중국은 영토의 50~60%를 잃을 수 있습니다.

  • 최대 시나리오(7개): 만주(동북 3성)와 서남부(윈난·구이저우)까지 포함하면 7개로 나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경제 붕괴와 중앙 통제 완전 상실 시 발생하며, 소련 붕괴보다 복잡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5개 국가는 현실적 분열 규모로, 민족·경제적 요인을 균형 있게 반영합니다.

분열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

분열 가능성은 외부와 내부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습니다.

  • 경제 위기: 2024년 중국 경제 성장률은 4.8%로 둔화되었으며, 부동산 거품(2023년 헝다 파산)과 지방 부채(70조 위안)는 재정 위기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지역 경제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 국제 제재: 미중 무역전쟁(2025년 관세 100% 예상)은 중국 수출(2조 달러)을 위협하며, 지역 경제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 민족 봉기: 신장과 티베트의 저항은 국제 지원(미국, EU)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장의 위구르족 독립운동은 국제 인권 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적 압박은 분열의 가장 강력한 촉매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분열 방지를 위한 중국의 대응

중국은 분열 위험을 인지하고 강력한 대책을 시행 중입니다.

  • 일 대 일로 와 자급자족: 2024년 일대일로 투자(1조 달러)는 지역 경제를 중앙에 묶는 전략입니다. 이는 지역 간 경제적 의존도를 높여 분리를 어렵게 만듭니다.

  • 감시 체제: 신장의 AI 감시망(2023년 5억 대 카메라 설치)은 분리주의를 억제하며, 티베트와 내몽골에도 유사한 통제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 문화 통합: 한족 중심의 교육과 언어 정책은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민족적 분리주의를 줄이는 데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 반발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통제력은 단기적으로 분열을 억제하지만, 장기적 반발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결론

중국이 소련처럼 분열될 가능성은 민족 갈등, 경제 불균형, 국제 압박으로 인해 존재하지만, 소련과 달리 강한 중앙집권과 경제적 통합은 이를 억제하는 요인입니다.

만약 분열이 발생한다면, 3~7개 국가로 나뉠 가능성이 높으며, 5개 국가가 가장 현실적 시나리오로 보입니다.


신장, 티베트, 홍콩-광둥, 내몽골, 그리고 중앙 중국은 잠재적 분리 지역입니다. 중국은 감시와 경제 통합으로 분열을 방지하려 하지만, 경제 위기와 외부 제재는 붕괴의 방아쇠가 될 수 있습니다.

* 중국은 1인 독재체체 인데 이 통치가 흔들리고 있다.


동영상 자료 / https://www.youtube.com/watch?v=4Bry_EVj21I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중국 몰락의 4대 원인

이춘근 국제정치학자

중국 몰락론이 대유행하고 있다. 바로 1년 여 전,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으로 엉터리 국제정치 이론을 붙들고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 허구를 부르짖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로 대단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중국이 무너지는 현상은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고 결국은 붕괴 위기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존재해 왔던 문제점들이 종합된 결과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중국의 구조적 한계를 이해하고 있던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회는 그런 전문가들을 중국의 시대가 곧 다가오는데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멸시하고 경멸했다. 중국의 부상이 시작된 이래 항상 그런 소수파 계열에 속했던 필자는 적어도 4가지 원인 때문에 중국의 경제와 정치는 미국을 앞서기는커녕 필히 멸망할 것이라고 보았다.

첫째는 중국이 진정한 시장경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정한 시장경제의 국가라면 사람이 타지 않는 고속전철을 건설할 일도 없고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를 지을 이유도 없다. 오늘 중국에는 전체 아파트의 20%인 6500만 채가 빈 집으로 남아 있고, 세계 최고 최장을 자랑하는 중국의 고속철도회사가 내는 적자는 2022년 기준 9000억 달러로 중국 GDP의 6%에 이른다. 중국 몰락의 중요 원인이 되고 있다.

둘째는 중국의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 1등 국가의 필수조건은 민주주의적 정치 체제다. 그래야 다른 나라를 포용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만이 패권국의 군대가 될 수 있다. 패권국의 군대란 국내 정치를 걱정하지 않고 해외 먼 곳에 나가서 원정 작전을 벌일 수 있는 군대다. 독재국가 중국의 군대는 아예 중국 공산당을 지키는 군대임을 자임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 미국이라는 현존 패권국이 중국의 도전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상 어떤 패권국도 도전국의 도전을 평화적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미국이 중국을 방치할 것이라는 몰(沒)국제정치학적 사고를 가진 사람만이 중국이 1위가 될 것을 믿었다.

넷째, 교정이 불가능한 원인인 인구통계학적 요인이다. 

중국의 노동인구는 이미 줄어들고 있고 반면 먹여 살려야 할 가난한 노인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4가지 원인의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비극이다. 하지만 보통 중국인들에게는 기회일 수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또다시 등장한 ‘중국 위기론’, 어떻게 볼 것인가?

2023년부터 현재까지 중국 정점론(peak China)과 중국 위기론(China crisis)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중국 정점론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구조적 한계로 인하여 정점에 도달했고, 이 때문에 미래에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중국 위기론은 중국 정점론을 확대 재생산한 것으로, 단기적으로도 중국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여 체제 위기나 붕괴를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위기론이라기보다는 희망적 사고나 주관적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위기론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평가가 필요하다.


새로운 판본의 중국 위기론’?

2023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중국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논의된 주제(hot issue)는 아마 ‘중국 정점론(peak China)’과 ‘중국 위기론(China crisis)’일 것이다. 중국 정점론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의 성장 가능성과 미·중 간의 패권 경쟁 문제를 다룬다. 이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구조적 한계로 인하여 정점에 도달했고, 이 때문에 미래에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근거는 첫째, 급속한 인구 감소와 심각한 고령화, 둘째,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과 식량의 해외 의존 심화, 셋째, 미국의 중국 견제와 첨단 산업(특히 반도체)의 한계 직면, 넷째, 시진핑 일인 독재에 따른 정치체제의 경직화, 다섯째, 중국의 대만 공격과 미·중 간의 군사 충돌 가능성 증가 등이다. 중국 정점론은 세계적인 언론과 저명 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마치 ‘정설’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반면 중국 위기론은 중국 정점론을 확대 재생산한 것으로, 단기적으로도 중국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여 체제 위기나 붕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근거는 첫째, 자산시장의 위기(즉 부동산 거품의 붕괴와 증시의 장기 침체), 둘째, 이에 따른 소비위축과 경기침체, 셋째, 정부 재정 적자의 확대와 재정 위기, 넷째,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금융위기 가능성, 다섯째, 외국자본의 이탈과 민간 자본의 투자 위축, 여섯째, 청년 실업률의 급증과 사회 불안정의 고조, 일곱째, 중국-대만 관계의 위기 증가, 여덟째, 시진핑 일인 지배와 정책 경직성의 심화다. 이는 주로 한국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퍼져 나갔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도 중국 전문가보다는 경제학자, 시사평론가, 언론인 등이다.

반면 중국의 싱크탱크나 학자들은 ‘중국 정점론(中國崛起頂峰論)’에 대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인민대학의 충양(重陽) 금융연구원은 작년 5월과 올해 1월에 이를 반박하는 두 편의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점론의 판본은 여러 가지지만 공통으로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개념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즉 정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경제 성장률인지 아니면 경제 규모(GDP)인지, 절대적인 정점인지 아니면 상대적인 정점인지, 성장 속도 둔화인지 아니면 정체 혹은 쇠퇴인지 불명확하다. 둘째는 논리상의 허점으로, 중국 경제의 일부 문제를 들어 전체를 재단한다. 셋째는 근시안적 시각으로, 중국 경제의 기초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없다. 넷째는 “약한 연구로 강한 결론을 도출”하는 문제로, 이런 주장은 “관점의 표현”이지 “관점의 논증”이 아니다.

한국의 전문가와 언론도 이에 적극 개입해 왔다. 각종 연구소의 보고서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대체로 중국 정점론은 수용하는 것 같다. 사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 같은 국제기구, 세계적인 민간 투자회사들도 중국의 성장률 둔화를 전망하면서 중국 정점론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중국 위기론에 대해서는 논쟁이 분분하다. 소수의 중국 경제 전문가는 이것이 과장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와 평론가들은 중국 위기론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 위기론이 주도하고 있다. 그래서 유튜브만 보고 있으면, 당장 혹은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이 망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 세계 상위 10대 경제 대국의 경제 상황(2023년 기준)

국가 GDP(조 달러) 1인당 GDP(천 달러) 성장률(%) 국가 GDP(조 달러) 1인당 GDP(달러) 성장률(%)
미국 26.954 80.41 2.5 영국 3.332 48.91 0.1
중국 17.786 12.54 5.2 프랑스 3.052 46.32 0.8
독일 4.430 52.82 -0.3 이탈리아 2.190 37.15 0.9
일본 4.231 33.95 1.9 브라질 2.132 10.41 2.9
인도 3.730 2.61 7.8 캐나다 2.122 53.25 1.0

출처: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Statista (GDP 성장률)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논의에 앞서 2023년 중국의 경제 상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표>에 따르면, 세계 10대 경제 대국 중에서 중국(5.2%)은 인도(7.8%) 다음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참고로 5.2%의 성장률 중에서 최종 소비재가 4.3%, 투자가 1.5%, 수출이 –0.6%를 차지한다. 이는 내수(민간 소비와 정부 소비)가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수출은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3조 6천억 달러를 기록하여, 전년 대비 7.1%나 증가했다. 무역 수지도 8,890억 달러 흑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간단한 통계 자료만 보아도 중국 위기론은 근거가 빈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 규모가 1조 7천억 달러고 인구가 5천만 명인 한국은 1.4%, 경제 규모가 1조 3천억 달러고 인구가 2,300만 명인 대만은 1.3% 성장했는데, 한국과 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 위기론은 유행하지 않았다. 마이너스 성장률(-0.3%)을 기록한 독일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반면 17조 8천억 달러의 경제 규모를 가진 14억 2천만 명의 중국이 5.2% 성장했는데 위기라고 진단한다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중국 정점론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망하는 것이라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정설로 받아들이기에는 검토해야 할 문제가 매우 많다.

이처럼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객관적인 ‘사실’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의 문제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위기론을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사실로서의 위기’를 반영한 위기론(‘진짜 위기론’)이고, 다른 하나는 ‘인식으로서의 위기’에 근거한 위기론(‘가짜 위기론’)이다. 전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위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위기론인 데에 비해, 후자는 보는 사람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나 주관적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위기론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 위기론은 ‘인식으로서의 위기론’에 가깝고, 중국 정점론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사실 지난 40여 년의 개혁기를 보면, 중국은 10년 주기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었다. 즉 ‘사실로서의 위기’는 수없이 있어 왔다. 예를 들어, 개혁 정책을 추진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 거대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다. 첫째는 내부적 위기로, 1989년 4~6월에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이다. 이를 통해 공산당은 국민으로부터 통치 정통성을 의심받는 존재로 전락했다. 둘째는 외부적 위기로,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1991년 소련의 붕괴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제 ‘사회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1992년 초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와 1992년 말 공산당 14차 당대회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 채택을 통해 개혁에 더욱 매진했고, 그 결과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뒤인 1997~98년에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중국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공산당 15차 당대회(1997년)를 전후로 본격화한 국유기업 개혁으로 인해 이미 3천만 명에서 4천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아시아 금융위기는 설상가상으로 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더해 1997년 7월에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은 홍콩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국가적 ‘체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에 직면한 중국은 주룽지 총리 주도로 국유기업 개혁과 홍콩 안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아시아 강대국(regional power)’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다시 10년 뒤인 2008년에는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번에는 위기의 진원지가 선진국의 심장인 미국이었다. 중국은 시장·기술·자본의 상당수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에 금융위기는 심각한 충격이었다. 또한 2009년에 집권한 오바마(B. Obama) 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면서 중국 견제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혁신(創新, innovation) 주도의 경제 전략과 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라는 대외 전략을 민첩하게 추진하면서 국력을 증진하고 국제적 지위도 높였다. 2010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 무렵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를 다스린다는 ‘G-2(Group of Two: 주요 2개국)’라는 용어가 만들어졌고, 미·중 경제가 한 몸처럼 결합해 있다는 ‘차이메리카(Chimerica: China+America)’라는 말도 한때 유행했다. 이제 중국이 ‘세계 강대국(global power)’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국이 경험한 가장 최근의 국가적 위기는 2019~20년의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이다. 코로나19가 중국을 강타했을 때, 국내외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중국판 체르노빌 사건’이라고 불렀다.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과 정부의 은폐 시도가 소련의 붕괴를 초래한 계기가 되었듯이, 코로나19도 중국에서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예측은 잘못되었다. 최소한 수치로만 보면, 중국은 성공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한 국가 중 하나다. 단적으로 중국은 3년 동안 연평균 4.5%의 양호한 성장률을 기록했고, 적은 수의 중증 감염자와 사망자를 기록하면서 코로나19를 통제했다.

이와 같은 개혁기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중국 정점론이나 중국 위기론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중국에는 ‘사실로서의 위기’가 계속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10년 동안 연평균 10.2%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던 후진타오 시기(2002~12년)에도 ‘중국 위기론’이 유행했었다. 당시에 한 저명한 미국의 중국 정치 전문가는 중국이 ‘이행의 덫’에 갇혀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우리는 중국의 부상이 아니라 ‘붕괴’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저명한 미국의 중국 경제 전문가는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가 심각한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에 전면적인 자본주의적 개혁이 없는 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모두 ‘인식으로서의 위기론’이었다. 현재의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도 이럴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팬데믹 충격의 시차 효과’?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주장이 다시 유행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볼 때,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코로나 팬데믹 충격의 ‘시차 효과(time-lag effect)’ 때문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선진국은 2021년 말에서 2022년 초에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을 경험했다. 이 기간에 ‘코로나와의 동행(with Covid)’ 정책을 채택하면서 서너 달 동안에는 의료체계의 마비를 포함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곧 팬데믹이 통제되면서 정상 생활이 가능해졌고, 사회도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이보다 1년이나 늦은 2022년 말에서 2023년 초에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을 경험했다. 즉 2022년 1년 내내 ‘제로 코로나(zero Covid)’ 정책을 고수하다가 그해 12월 26일이 돼서야 코로나와의 동행 정책을 채택하면서 본격적인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예를 들어, 2022년 12월 6일에 50만 명이었던 감염자는 12월 22일에는 700만 명으로 14배가 증가했다. 그 결과 농촌과 중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베이징시와 상하이시 같은 대도시도 의료체계의 마비 등 대혼란을 겪으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때 ‘안정적인’ 세계와 ‘혼란스러운’ 중국이 대비되면서 중국의 팬데믹 충격은 더욱 크고 심각해 보였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팬데믹의 후유증으로 인해 2023년 상반기에는 중국의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즉 부동산과 주식 시장, 외국인 투자와 민간투자, 민간 소비와 수출 등 대부분의 경제 지표가 악화 일로를 걸었다. 게다가 미국의 중국 견제는 더욱 강경하게 바뀌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2월 발발)도 예상과는 달리 1년이 넘는 장기전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2022년에는 3%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경제 성적표가 발표되자 중국이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이처럼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중국이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을 겪으면서 보여주었던 사회경제적 혼란을 배경으로 등장하여 급속도로 확산한 것이다. 즉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적 요인’이 조성한 경기침체 국면을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경제 위기로 과장 및 확대 해석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이다. 만약 코로나 팬데믹 충격의 ‘시차 효과’가 없었다면 이런 주장이 등장했어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기부양,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은 매우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는 데는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추진할 경우는 그런 문제로 인해 중국이 실제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사실로서의 위기론’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예를 들어, 실업 문제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의 지역 봉쇄 정책으로 인해 건설 경기가 위축되고, 음식과 숙박 등 서비스 업종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 결과 3억 5천만 명이 넘는 농민공(農民工) 중에서 1억 5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여기에 더해 자영업자와 소형 민영기업가도 최소한 3천만 명 이상이 실업자가 되었다. 청년(16~24세) 실업률은 20%를 넘어 새로운 사회 문제가 되었다. 단적으로 2022년에는 1,100만 명, 2023년에는 1,152만 명에 달하는 대졸자 중에서 최소 30~40% 이상이 미취업 혹은 불완전 취업 상태에 있다. 이를 합하면 2024년에는 최소한 800만 명에 달하는 대졸자가 실업 혹은 반(半)실업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다. 만약 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누적된다면 사회경제적 발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정부 재정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중국이 3년 동안 코로나 봉쇄 정책을 강력하게 실행하면서 재정 적자와 정부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국의 총부채(가계·기업·정부 부채의 총합)는 2023년 말 기준으로 GDP의 287.8%인데, 이중 가계 부채는 63.5%, 기업 부채는 168.4%, 정부 부채는 55.9%다. 따라서 절대 규모(GDP의 55.9%) 면에서만 보면 다른 주요 국가에 비해 심각한 것은 아니다. 참고로 일본의 정부 부채는 GDP의 255%, 미국의 정부 부채는 GDP의 124%이다. 문제는 중국의 정부 부채가 전년 대비 10%나 급증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쓰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그렇게 되면 재정 적자가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사회경제적 문제 중에는 정부가 해결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책 ‘의도’에서 일부러 방치하는 것도 있다. 부동산 대기업의 도산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있었던 지역 봉쇄 정책은 이미 거품이 꺼지고 있던 부동산 시장을 더욱 침체에 빠트렸다. 그런데 정부는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2020년부터 부동산 투자를 통해 경제를 부양하던 방침 대신에 첨단 기술 분야(예를 들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고품질 발전(高質量發展)’ 방침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침에 따라 정부는 헝다(恆大) 그룹이나 비구이위안(碧桂園) 그룹 같은 부동산 대기업의 부도를 용인했다. 이는 단기적인 경제 침체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산업구조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코로나19 기간과 그 이후에 중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전국적으로 개별 국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주요 국가는 아마 중국이 유일할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미국은 천문학적인 현금을 살포했고(이것이 미국 인플레이션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도 재난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다. 또한 중국은 코로나19 방역에는 많은 재정을 투입했지만, 소비 진작이나 다른 경기부양책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 방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23년 10월에 개최된 중앙 금융 공작회의와 12월에 개최된 중앙 경제 공작회의를 보면 이런 방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경기부양책을 통한 경제성장보다 정치 사회적 ‘안전(安全)’을 중시할 것이다. 또한 금융 정책도 양적 완화 대신에 ‘금융 안전 확보’를 우선시할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확대하고, 금융기관이 통화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금융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기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만 지방정부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중앙 정부가 30~50년 만기의 초장기 국채를 1조 위안(한화 약 189조 원)을 발행하여 지원할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가 중국의 경제 문제를 볼 때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문제인지 아니면 상황적 요인에 의한 문제인지 구분해야 한다. 전자라면 구조가 바뀌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고, 그래서 오랫동안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후자라면 상황이 종료되면 해결될 수 있고, 그래서 그렇게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 또한 정부 정책의 의도적 산물인지, 아니면 정부도 어쩌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직면한 결과인지도 구분해야 한다. 현실은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그런데 단순히 통계 수치만 바라볼 경우는 이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경제 문제를 볼 때는 수치에만 의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정치적 요소에 대한 단순화와 무시

마지막으로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정치적 요소를 단순화하거나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시진핑 ‘일인 지배’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르면, 첫째, 정책 결정이 시진핑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정부의 정책 결정 기제가 마비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결과 관료조직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만연하게 된다. 둘째, 시진핑은 ‘측근(시진핑 세력)’에 의존하여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공식조직은 더욱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정책 실수의 위험성은 증가하고, 정책 집행도 힘을 받지 못한다. 셋째, 시진핑 일인 지배의 경직성으로 인해 상황 변화에 맞추어 신속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능력, 즉 정책 탄력성(policy flexibility)이 떨어진다.

이런 주장은 중국이 부패 척결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권력이 시진핑으로 집중되기 시작한 2014~15년 무렵에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다가 곧 사라졌다. 그런데 중국 정점론과 함께 이것이 다시 10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런 주장이 사라졌던 이유는, 현실에서 그런 문제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거나, 문제가 나타났어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정간부의 복지부동 문제는 공산당 중앙이 주도하는 감독이 강력하게 전개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정책 오류의 증가와 형식적인 정책 집행 문제, 정책 탄력성의 저하 문제도 우려했던 것과는 달랐다. 즉 대부분 정책이 타당하고 적절하게 결정되어 효과적으로 집행되었다. 이런 잘못된 예측은 중국의 엘리트 정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국 정점론이나 중국 위기론에는 중국의 국가 통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중국은 개혁기 40여 년 동안 수많은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지만, 결국은 그것을 극복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치개혁의 결과 통치 체제(governing system)가 합리화되고 제도화되면서 국가의 위기 대응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즉 중국 정치에는 시진핑 ‘일인 지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이 직면한 객관적인 위기 요소를 지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통치 체제가 그것을 극복할 능력이 있는지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심각한 위기 요소가 아무리 많이 발생해도 국가가 그것을 잘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위기로 실현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까지 중국 정점론이나 중국 위기론에는 이것이 없다. 이는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중국 정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본격화된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은 최근 들어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고,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러 간의 연대, 더 나아가서는 이들과 이란 및 북한 간의 연대가 더욱 공고해지면서 ‘민주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진영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은 우리가 왜 미국 편에 서서 중국과 ‘권위주의 진영’에 맞서야 하는지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문제는 이것이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희망적 사고와 주관적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주장이라는 점이다. 결국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우리는 중국과 국제 정세를 잘못 판단하게 되고, 이는 곧 한국의 국익 실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제라도 중국 정점론과 중국 위기론을 ‘우리의 눈’으로 냉철하게 분석 및 평가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중국이 붕괴한다? '중국 붕괴론'의 원인과 배경 [신형관의 상하이클래스]

5–6 minutes

00:00[음악] 안녕하십니까, 시하의 클라스입니다

00:051990년 전후에서 소련의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서구에서는 중국의 경제가 곧 붕괴될 것이라는 주장이 끊이질 않고 있었습니다

00:162001년에 고든 창이라고 하는 변호사는 중국 종말론을 주장했고, 2012년에 폴 크로반 교수께서 쓴 중국 경제 붕괴론 같은 예측은 결과적으로는 틀렸거나, 또는 아직은 맞지 않고 있습니다

00:30오히려 2013년에 나온 로날드 커스 기수의 중국 권기는 붕괴보다 더 잘 막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00:39중국 붕괴론 기수 고든 창은 2001년에 자신이 출판한 책, '중국 붕괴'라는 책의 서문에서 중국은 국유기업의 비효율성과 중국 공산당 때문에 개방적인 민주주의를 구축하지 못할 것이며, 중국 은행의 부실과 이런 부실이 금융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외국인 투자가 계속 감소하면서 공산당의 부패와 합쳐져 사회적인 근간을 갉아먹고, 또 WTO 가입 자체가 무한 경쟁에 내몰릴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01:142011년이 되면 중국 공산당과 국가가 붕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01:20이런 예언을 한 지 24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01:29또 얼마 전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미디어인 폭스 뉴스에 나와서 불법 이민자로 신분을 위장한 중국 군인들이 멕시코 국경에 집결해 미국으로 잠입하려 하고 있으며, 이들은 피를 나눠 마신다는 그런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01:47그 사람이 미국 정부의 정책 자문위원을 몇 살이나 했었다고 합니다

01:56먼저, 서방의 중국 붕괴론은 내부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02:03첫 번째는 자본가, 또 금융 자본들이 있습니다

02:05이들은 중국에..

02:08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고, 또 매우 냉철한 사람들입니다

02:11이해관계 집단으로서 초기에 중국을 이용했으며, 통제 가능한 민주주의로 체제의 어떤 변화를 유지하려고 했었지만, 너무 빠른 중국의 부상이 이제는 매우 두려운 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02:26그리고 체제 전환이 쉽지 않다는 것과 경제적으로도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을 하자, 중국을 배제한다는 목표를 위한 전술적인 수단으로서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02:40아, 또 두 번째로는 아마도 중국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제학자들이 있습니다

02:46그들은 중국의 체제와 수천 년간 이어온 역사적, 문화적 배경, 그리고 민족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 때문에 기적이나 단편적인 사건에 집중하면서 전체를 잘못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03:05또 마지막으로는 미디어들의 네거티브한 뉴스를 듣고, 중국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감정적으로 '중국은 안 돼'라고 인식하는 일반 대중들도 있습니다

03:21이런 과정에서 제 생각에는 해외 미디어들의 영향이 상당히 큽니다

03:26하지만 중국은 그것을 관리할 능력은 또는 바꿀 능력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03:32중국 건국 이후에 체제가 바뀔 수도 있었던, 위험했다고 할까요, 그런 순간이 세 번 있었습니다

03:40첫 번째 순간은 1978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동세호 비행이 개혁을 추진할 때였습니다

03:46과거의 방식을 계속 유지하면서 계획 경제를 부분적으로만 조정하면서 글로벌 무역 체계에 편입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을 겁니다

03:58그런데 덩샤오핑은 큰 판을 벌리기도 하고, 또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04:04그의 목표는 중국을 전혀 다른 전방위적으로..

04:08완전히 다른 그런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04:13두 번째로는 1989년 6월에 있었던 그 천안문 사태라는 정치적인 비극입니다

04:21사실 인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이는 중국 정치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희생과 비난을 감수하고서도 강력한 대응을 한 것입니다

04:35세 번째는 1992년에 덩샤오핑이 남방 순시를 하면서 중단없는 개혁을 시사한 1년의 남순 강화입니다

04:48그 당시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동구가 무너졌고, 소련이 무너졌으며, 이에 대해 서방은 환호를 했습니다

04:57중국 내부에서도 사회주의가 그대로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05:04그러나 덩샤오핑은 사회주의를 견지하되, 더 대규모로 개혁 개방을 추진해야 하며, 시장 경제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합니다

05:15그의 그 결정은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결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짓는 차이가 아니라면서,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버립니다

05:38결과적으로 덩샤오핑의 세 번의 결정은 모두 봉쇄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또 현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았습니다

05:49중국의 상황과 그 당시 시점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05:59중국은 사실 고속 성장 속에서 경제와 사회의 여러 심각한 문제와 갈등들이 분명히 쌓여 있기 때문에 더 힘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06:09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와 원자재 소비 대국입니다

06:16글로벌 투자자들은 시장에서 중국을 주제로 논쟁을 펴면서 중국 위협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06:24자연스럽게 토론하고 또 퍼진 것입니다

06:28다만, 중국 붕괴론의 원인과 그 배경을 알고,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06:36우선, 극단론자들입니다

06:36사실 정치나 외교와 달리 금융 시장에서는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습니다

06:46대형 투자은행들의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유튜브 세계처럼 중국 붕괴론이 대세는 결코 아닙니다

06:55둘째로, 우리는 중국의 현재 다양한 문제를 직시해야 하지만, 또 중국이 붕괴하지 않을 그런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07:10사실, 중국이 붕괴한다고 얘기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서 여러 문제가 있죠

07:16중국 부채 얘기도 있지만, 중국 부채는 거의 외채입니다

07:21중앙정부도 그런 부채를 관리 가능한 영향을 갖추고 있습니다

07:24중국의 도시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당장 큰일 날 것 같은 부동산 문제는 이미 다 나와버렸습니다

07:31굉장히 골치 아픈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죽을 병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07:35또한, 환경 보호, 공공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투자가 필요합니다

07:45과거와 같은 고속 성장은 아니어도, 분야별로 개혁을 해 나간다면 붕괴가 아니라 다시 한번 어떤 도약을 할 저력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07:56무엇보다 제가 아는 중국 국민들은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경제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이 정말 대단합니다

08:04중국처럼 큰 나라는 나무만 봐서도 안 되고, 숲만 봐서도 안 됩니다

08:09그 둘을 다 보면서 그것을 연결하는 시스템, 그 상호 연관성을 봐야 하는데, 이게 어지간히 공부해서는 잘 안 보입니다

08:19적지 않은 매체에서 중국의 경제 사회적 현상을 비교적 얕은

08:22차원에서 반복적으로 생산하고 또 선택적으로 편성을 하면서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좀 넘쳐나고 있습니다

08:32그 배경은 아무래도 서방 언론이 그동안 중국의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도한 그런 영향을 받아왔고, 또 지금도 매일매일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많기 때문에 거기에 조금만 더 보태서 해석을 하고, 또 약간의 자극적인 제목만 달아도 굳이 골치 아픈 문제들을 파고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08:58앞서서 소개한 고창이 얘기했던 중국이 망해야 할 이유들, 제 생각에도 그거는 틀린 건 별로 없습니다

09:04대부분 맞습니다

09:04다 중국의 문제이고, 그대로 가면 분명히 망합니다

09:08그런데 망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 그의 예언이었습니다

09:12왜 그럴까요? 문제만 제기하는 것은 참 쉽습니다

09:15많은 문제를 가진 중국 경제는 서구 경제학의 틀에서만 본다면 망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09:22저는 그 사람도 공산당 체제의 문제점만 파악하고 분석했을 뿐, 그거보다 더 뿌리 깊은 곳에 있는 중국의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힘과 그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조금 과소 평가했다고 생각합니다

09:421989년에서 1991년에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이유 중 하나가 비화폐적 계획 경제 하에서 배급제에 의존했던 그런 시스템이 무너져 버리자 한꺼번에 다 무너져 버린 겁니다

10:00중국도 91년까지 배급표를 받아서 생필품을 바꾸는 그런 공급 시스템이었고, 계획에 따라서 모든 물자가 배분되는 그런 시스템이었습니다

10:14당시 물가는 매월 거의 20% 가까이 폭등하는 등 소련과 동구 유럽의 사회주의 국가와 같은 문제가 똑같이 있었습니다

10:24그러나 중국은 그 전부터 이미 소련과 동구의 문제를

10:27파악을 하고 그 비화폐적 가격, 재정, 외환, 통화 등의 개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0:41그리고 소련이 무너지자 말자 한 달도 안 돼서, 등소평은 남순 강화에 착수하면서 동시에 배급제를 폐지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고속 성장을 구가하게 됩니다

11:02문제는 너무 많지만, 문제 풀이의 시간을 늘릴 줄 알며, 또 그 기간 동안에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그런 저력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아직 망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11:17이런 나라를 구소련 시스템, 또 구 동유럽의 시스템과 동일시하는 것은 중국을 참 모르는 것입니다

11:26그래서 중국을 더 공부해야 합니다

11:28오늘도 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복연 한나


주님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위하여
온 밤을 지새워 찾아다니셨던
그 열정과 
그 사랑과
그 믿음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정한나님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새 영으로 덮어 주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시옵소서.

[Hannah 10/20/1984] [12:59 PM] I see. I lived in NY for a while when I first came to America. I live in SF now
[Hannah 10/20/1984] [1:00 PM] I saw you in the friend recommendation list when I contacted my Korean friends. Maybe we have mutual friends or have communicated with each other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09 PM] Always, Have a good condition & Happy Life in CA.
Thank you.
I'll go to Market.
See you later.
[Hannah 10/20/1984] [1:17 PM] Ok, have a nice weekend. Talk to you later😊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39 PM] Patris Church
Check YouTube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40 PM] Hannah,
Are you married?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41 PM] Photo
[Hannah 10/20/1984] [1:53 PM] I came to America after my divorce. I am single now. What about you?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54 PM] Photo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54 PM] Photo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55 PM] Photo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56 PM] I live 4 Family that my Mom, Wife and  younger son Daniel.
Samuel live in Woodside. 
[Hannah 10/20/1984] [1:58 PM] I see. I come from China, and my mother is Korean. My parents are enjoying retirement in China. My aunt is the only family I have in America
[Hannah 10/20/1984] [1:58 PM] Photo
[Hannah 10/20/1984] [1:58 PM] This is me. Nice to meet you😊
The message has been deleted.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2:06 PM] Photo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2:10 PM] We'll be best friend in SNS.
I'm Korean Church Pastor.
My DOB is  10-16-1949
[Hannah 10/20/1984] [2:13 PM] I see. You must be a very kind person. I was born on October 20th 1984
[Hannah 10/20/1984] [2:13 PM] I am a limited partner. I participated in a clothing trading company and some crypto investments
[Hannah 10/20/1984] [7:16 PM] I don't know why you read the message but didn't reply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7:36 PM] Don't stress! 
I'm just trying to give you some direction in life.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7:38 PM] Just as you need to watch traffic lights to drive, it also tells you the signs of life's journey.
I pray that you have a healthy and happy day today.
[Hannah 10/20/1984] [7:40 PM] Thank you. Do you know anything about BTC? Now many countries regard it as a strategic reserve.
[Hannah 10/20/1984] [7:46 PM] You haven't answered my question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8:14 PM] I don't know Bitcoin.
[Hannah 10/20/1984] [8:27 PM] I see. Now the US government has been promoting the development of Bitcoin. What do you think of Bitcoin?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8:29 PM] I'm not interested at all.
[Hannah 10/20/1984] [8:34 PM] I think it is normal. No one is interested in what he doesn't know. You are not interested because you don't understand. Right?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8:37 PM] I don't have money to invest in anything else.
[Hannah 10/20/1984] [8:38 PM] I didn't ask you to invest. Everyone has his own different understanding. I'm just asking your opinion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8:42 PM] What can I say about something I don't know?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8:44 PM] May you be greatly blessed with a great business mind.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8:45 PM] If you were to win a lot of money, what would you do with it?
The message has been deleted.
[Hannah 10/20/1984] [8:52 PM] Thank you. You too. I believe you will get better and better in the future
[Hannah 10/20/1984] [8:52 PM] How much do you mean by the grand prize?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8:54 PM] If you ever visit New York, I'll treat you to a meal. I pray for your continued health.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8:56 PM]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deliver us from evil.
The message has been deleted.
[Hannah 10/20/1984] [9:19 PM] Thank you. No problem. You can also tell me when you come to sf. We can have a cup of coffee and dinner together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11:11 PM] My cell phone number (917) 597-2322
Thank You.
Good night
Sunday, November 9, 2025
[李勝赫(Victor) πατρίς] [5:42 AM] Photo



나이를 칭하는 한자어 총정리

지학(地學)  15세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논어(論語)
약관(弱冠)  
20세     남자 나이 스무살 예기     예기(禮記)
희수(喜壽)  77세     희(喜)의 초서체가 칠(七)이 세 번 겹쳤다고 해석하여 77세를 의미 





희수(喜壽)    77세        수)      
희(喜)의 초서체가 칠(七)이 세번                                                                           겹쳤다고 해석하여 77세를 의미









이립(而立) 30세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 논어(論語)
불혹(不惑) 40세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 논어(論語)
상수(桑壽) 48세      상(桑)자를 십(十)이 네 개와 팔(八)이 하나인 글자로 파자(破字)하여 48세로 봄  
지명(知命) 50세 천명을 아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이라고도 함 논어(論語)
이순(耳順) 60세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思慮)와 판단(判斷)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 논어(論語)
화갑(華甲) 61세 화(華)자는 십(十)이 여섯 개이고 일(一)이 하나라고 해석하여 61세를 가리키며, 일갑자인 60년이 돌아 왔다고 해서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이라고도 함  
진갑(進甲) 62세 환갑보다 한 해 더 나아간 해라는 뜻  
종심(從心) 70세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 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논어(論語)
고희(古稀) 70세 杜甫의 곡강시(曲江詩) 중,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유래된 말 두보의 詩
희수(喜壽) 77세 희(喜)의 초서체가 칠(七)이 세변 겹쳤다고 해석하여 77세를 의미  
산수(傘壽) 80세 산(傘)자를 팔(八)과 십(十)의 파자(破字)로 해석하여 80세라는 의미  
미수(米壽) 88세 미(米)자를 팔(八)과 십(十)과 팔(八)의 파자(破字)로 보아 88세라는 의미  
졸수(卒壽) 90세 졸(卒)자의 약자를 구(九)와 십(十)으로 파자(破字)하여 90세로 봄  
망백(望百) 91세 91세가 되면 백살까지 살 것을 바라본다하여 망백  
백수(白壽) 99세 일백 백(百)자에서 한 일(一)자를 빼면 흴 백(白)자가 된다하여 99세로 봄  
상수(上壽) 100세 사람의 수명을 상중하로 나누어 볼 때 최상의 수명이라는 뜻. 좌전(左傳)에는 120살을 상수(上壽)로 봄 장자(莊子)






나이별 부르는 말과 의미 (한자어로 나이별 이름, 나이별 명칭)

최근에 연도로 세는 나이는 없어지고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만 나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인생의 여러 시기에 거쳐서 각 나이별 이름 또는 나이별 명칭이 있는데 알고 보니 어떤 것은 세는 나이고 어떤 것은 만 나이였다. 예를 들어 60세를 뜻하는 말이 이순(耳順)도 있도 환갑(還甲)도 있다고 들어왔는데, 사실 이순(耳順)은 세는 나이로 60이라 실제로는 만 59세 생일이고,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은 실제로 만 60세 생일이다. 오늘 이 글에서는 이런 나이별 생일을 부르는 명칭을 만 나이로 정리해 보겠다.    

일단 기준부터 정해야 한다. 예전에 '세는 나이' 기준으로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고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먹어서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가는 다음날 1월 1일에 두 살이 되는 이상한 셈법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12월 31일에는 0세이고 그다음 날 해가 바뀐 1월 1일에도 만 0세 1일이 그 아기의 나이이다.

 그리고 태어난 날이 논리적으로는 '첫 생일'인 것 같지만 만 1세가 되는 생일 (=첫 돌)을 첫 번째 생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첫 돌잔치에 초를 1개 꽂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느 정도 자라면 햇수로 세는 나이 기준으로 초를 꽂았던 기억이 있다.

 생일을 다른 말로 '귀빠진 날'이라고도 하는데, 이것도 사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로, 사람이 태어날 때 산모의 산도를 통과하기가 어려운 과정인데 이때 신생아의 가장 큰 신체 부위인 머리가 나오면 거의 성공한 것이고 머리 중에서는 가장 둘레가 큰 귀 부근이 빠져나오면 (=귀가 빠지면) 출산의 가장 큰 고비를 넘겨 성공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생일을 '귀 빠진 날' 또는 한자어 표현으로는 이출일(耳出日)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공자 맹자 시절의 옛날 중국에서도 '세는 나이'를 사용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논어에 나오는 나이는 '세는 나이' 기준이다. 세는 나이를 만 나이로 일괄적으로 변환할 수 없지만 (생일이 지났는지 여부에 따라 1씩 차이가 나니까..) 이 글에서는 아주 단순하게 '세는나이 - 1 = 만 나이'라고 가정하고 설명하겠다. 그런데 앞으로 만 나이가 제대로 정착되면 '세는 나이'가 뭔지 잊힐 것이라 아래처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혼용되어서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 1세: '돌'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생일잔치는 '돌잔치'라고 따로 행사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백일잔치도 하고 돌잔치 때에는 가족, 친척, 지인들 다 불러서 그야말로 '잔치'를 했지만 요새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하는 분위기이다.

 세는 나이 15세 (만 14세가 되는 해): 지학(志學) - 공자가 '15세에 학문(學)에 뜻(志)을 두었다 (吾十有五而志於學)’라고 말했다고 하여 유래한 말

 만 16세: Sweet Sixteen - 북미 지역 (미국/캐나다)에서 일종의 '성인식' 의미도 겸하는 생일로 특히 여학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두어 파티를 열기도 하는 생일

 세는 나이 20세 (만 19세가 되는 해): 약관(弱冠) - 이 말은 논어는 아니고 '예기'에 나온 말로, 성인이 되어 머리에 관(冠)을 쓸 나이이지만 아직은 여러 면에서 성숙하지 못하고 약(弱)하다는 의미

 세는 나이 30세 (만 29세가 되는 해): 이립(而立) - '논어'에 나온 말로 '30세에는 나의 뜻이 확실히 섰다 (三十而立)'는 말에서 따온 것

 세는 나이 40세 (만 39세가 되는 해): 불혹(不惑) - '논어'에 나온 말로 '40세에는 어떠한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 (四十而不惑)'는 말에서 따온 것인데, 요새는 불혹을 '아무도 나에게 혹하지 않는다 or 아무도 나를 유혹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 말로 쓰기도 한다. ^^

 세는 나이 50세 (만 49세가 되는 해): 지천명(知天命) - '논어'에 나온 말로 '50세에는 하늘의 뜻/명을 알게 되었다 (五十而知天命)'는 말에서 따온 것

 세는 나이 60세 (만 59세가 되는 해):  이순(耳順), 육순(六旬)  - 이순은 '논어'에 나온 말로 '60세에는 어떤 말을 들어도 다 받아들이게 귀가 순해졌다 (六十而耳順)'는 말에서 따온 것이고, 육순은 순(旬)이 10을 뜻하는 한자라서 그냥 60의 다른 말이다. 예를 들어 11월 초순, 중순, 하순 이런 식으로 말할 때도 대략 11월 1일~10일이 초순, 11일~20일이 중순, 21일~말일까지를 하순으로 부르는 것처럼 순(旬)이 10을 뜻한다.

 만 60세: 환갑(還甲), 회갑(回甲) - 이것은 60 갑자를 설명해야 되는데 이건 너무 길 테니 따로 다른 글에서 하기로 하고, 간단히 설명하면 예전 역법(달력 시스템)에 따르면 매해 두 글자로 고유의 이름을 붙이는데 앞 글자에 올 수 있는 글자는 천간(天干)이라고 부르며 10개가 있고, 뒤에 올 수 있는 글자는 지지(地支)라고 부르며 12개가 온다. 천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지지는 흔히 동물의 띠를 말하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이고 임진왜란 같은 것은 임진년 (천간 = 임, 지지 = 진이 되는 해)에 일어난 왜놈들의 난이란 뜻이다. 아무튼 10과 12의 최소 공배수는 60이므로 같은 이름의 해가 돌아오는 데에는 60년이 걸리고 천간의 첫 글자인 '갑'이 돌아왔다는 의미로 환갑(還甲), 회갑(回甲)이라고 일컫는다. 이것은 공자나 논어와는 관계가 없고 역법 시스템에서 온 말이다.

 만 61세: 진갑(進甲) - 이것은 환갑(甲)에서 한 살 더 전진(進)한다는 뜻에서 환갑 다음에 돌아오는 생일을 뜻한다.

 세는 나이 70세 (만 69세가 되는 해): 칠순(七旬), 고희(古稀), 종심(從心) 

- 여러 표현이 있는데, 칠순은 위에 설명한 것처럼 순(旬)이 10을 뜻하는 한자라서 그냥 70의 다른 말이고, 고희(古稀)는 중국의 유명한 시인인 두보의 시 곡강(曲江)에 나온 표현인 ‘인생에 있어 70세는 예로부터(古) 희귀(稀)하다 (人生七十古来稀)’에서 두 글자를 따와서 부르는 말이다. 
종심(從心)은 공자님의 논어에도 ‘70이 되니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마음(心)을 따라도(從)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는 말에서 따온 것인데, 이번에는 시인 두보가 더 영향력이 컸는지 종심보다는 고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세는 나이 80/90세 (만 79/89세가 되는 해): 팔순(八旬)/구순(九旬)  - 순(旬)이 10을 뜻하는 한자라서 그냥 80/90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나이를 상/중/하(上/中/下)로 나눌 때 100세 이상을 상수, 80세를 중수(中壽), 60세를 하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는 나이 91세 (만 90세가 되는 해): 망백(望百)  - 백(百) 살을 바라본다(望)는 뜻.

 세는 나이 99세 (만 98세가 되는 해): 백수(白壽)  - 하얀(白) 나이란 의미는 아니고 일백 백(百)에서 하나 일(一)을 빼면 100 - 1 = 99라는 한자어 버전의 언어유희이다. 한편 현대 중국과 일본에서는 만 99세를 뜻하는 말로 쓰고 있다고 하고, 우리나라도 만 나이만 쓰게끔 변화 중이니 몇 년 뒤에는 위에 모든 것이 세는 나이가 아닌 만 나이로 그냥 사용(or 혼용)할 것 같긴 하다.

 세는 나이 100세 (만 99세가 되는 해) 또는 그 이상의 나이: 상수(上壽) - 사람의 나이를 상/중/하로 나눌 때 100세 이상을 상수, 80세를 중수, 60세를 하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관련글]






나이를 칭하는 한자어 총정리


전통 사회에서는 나이를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단계와 덕성의 성취로 보았습니다. 아래 표와 설명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나이 한자어를 중심으로 뜻과 유래, 올바른 쓰임을 정리했습니다. 헷갈리기 쉬운 표현은 주의 사항을 함께 표기했습니다.

기본 원칙
• 아래 나이는

만 나이 기준

으로 설명합니다. 다만 환갑·회갑은 간지(60갑자) 순환 개념이므로 전통적 세는나이 표현도 병기했습니다.
• 불확실하거나 학계·관행에서 이견이 있는 부분은 “확실하지 않음”으로 표기합니다.

연령별 한자어 한눈에 보기
나이 한자어(음) 한자 풀이 핵심 뜻 유래·비고
15 지학(志學) + 배움 배움에 뜻을 세움 『논어』의 공자 생애 단계 표현
20 약관(弱冠) 어릴 + 갓 (남자) 성인식으로 갓을 씌우던 나이 본래 남성 전용. 요즘은 성별 가리지 않고 비유적으로도 사용
20 전후(여성) 방년(芳年) 향기 + 해 꽃다운 나이 여성의 한창 젊은 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
30 이립(而立) + 설 학문·인생관이 자립함 『논어』 출전
40 불혹(不惑) 아닐 + 미혹 사물에 미혹되지 않음 『논어』 출전. “정답을 다 안다”가 아니라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
50 지천명(知天命) + 하늘 + 명 하늘의 명(자연 법칙·도리)을 깨달음 운명론이 아니라 ‘도리의 자각’에 가까움
60 이순(耳順) + 따를 다른 의견도 거슬림 없이 들림 청력 의미가 아님. ‘관용의 경지’ 비유
60(간지 회귀) 환갑·회갑(還甲/回甲) 돌아올 還/回 + 첫째 천간 태어난 해의 간지가 60년 만에 돌아옴 만 60세. 전통 세는나이로는 61세에 치름 사례가 있었음
70 고희(古稀) + 드물 예로부터 드문 나이 두보의 시 “인생칠십고래희”에서 유래
70 종심(從心) 따를 + 마음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矩)에서 벗어나지 않음 『논어』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에서 온 표현
77 희수(喜壽) 기쁠 + 수 77세 의 옛 글씨가 ‘七十七’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
80 산수(傘壽) 우산 + 수 80세 의 글자 모양이 80과 닮았다는 비유
88 미수(米壽) + 수 88세 를 분해하면 8·8로 보인다는 데서 유래
90 졸수(卒壽) 군사/마칠 + 수 90세 의 ‘마치다’ 뜻에서 ‘한 생을 마무리하는 나이’ 상징
99 백수(白壽) + 수 99세 百(100)에서 一을 빼면 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
100 기이지수(期頤之壽), 상수(上壽) 기약 + 턱 / 높을 백세 장수 ‘백세의 수’를 뜻하는 격식 높은 표현

2) 핵심 표현 자세히 풀이

① 약관(弱冠, 20)

약관은 본래 남자의 성인식(관례)에서 유래했습니다. 스무 살에 갓(冠)을 씌워 성인으로 공식 인정하던 풍습에서 ‘어리지만 갓을 씌운 나이’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별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약관의 나이에 창업했다”처럼 비유적으로 널리 씁니다. 다만 전통 의미를 강조할 때는 남성 전용 표현임을 유념합니다.

② 방년(芳年, 20 전후 여성)

방년은 ‘향기로운 해’라는 뜻으로, 여성의 한창 젊고 아름다운 나이를 높이는 표현입니다. “방년 이십의 신부”처럼 예식·기사문 등에서 공손한 존칭으로 쓰입니다.

③ 이립(而立, 30)

이립은 ‘서다(立)’는 글자에서 보이듯 자립을 강조합니다. 직업·가정·학문에서 자기 기준이 바로 서는 시기로 이해합니다. 단순히 경제적 독립만이 아니라 가치관과 삶의 길이 굳건해지는 경지를 뜻합니다.

④ 불혹(不惑, 40)

불혹은 ‘미혹되지 않는다’는 덕성의 표현입니다. 모든 것에 정답을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보가 넘쳐도 중심을 잃지 않고 판단 기준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⑤ 지천명(知天命, 50)

지천명은 ‘하늘의 명을 안다’로 번역되지만 숙명론과는 다릅니다. 자연의 이치와 사회의 도리를 깨달아 자신의 한계·책임을 헤아릴 줄 아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⑥ 이순(耳順, 60) & 환갑·회갑

이순은 ‘귀가 순해졌다’는 뜻으로, 다양한 의견을 거슬림 없이 수용하는 관용의 경지를 말합니다. 청력이 좋아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환갑·회갑은 60갑자 순환이 한 바퀴 돌아 태어난 간지가 다시 돌아오는 해를 이릅니다. 만 나이로 60세, 전통 세는나이로는 61세에 치르던 관행이 있어 행사 시 연배 표기에 주의합니다.

⑦ 고희(古稀, 70) & 종심(從心, 70)

고희는 두보의 시구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유래하여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다’는 의미입니다. 종심은 『논어』의 “칠십에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에서 나온 말로, 규범과 욕망이 자연스레 합치되는 경지를 말합니다.

⑧ 희수(喜壽, 77)·산수(傘壽, 80)·미수(米壽, 88)

세 표현은 모두 글자 모양에서 숫자와 연결해 읽는 전통적 비유입니다. 희수는 喜의 옛 글씨가 ‘七十七’과 닮았고, 산수는 傘의 모양을 80과 연결하며, 미수는 米를 8·8로 보아 88세를 이릅니다. 축하 현수막·기념패에서 관습적으로 널리 쓰입니다.

⑨ 졸수(卒壽, 90) · 백수(白壽, 99) · 기이지수/상수(期頤之壽/上壽, 100)

**졸수(卒壽)**는 ‘마칠 졸(卒)’에서 유래하여 아흔 살을 일생을 마무리하는 나이로 비유한 표현입니다. 후대에 卒의 글자 모양을 억지로 90과 연결시키는 민간 해석도 있지만, 본래 뜻은 ‘마치다’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맞습니다.
**백수(白壽)**는 百(100)에서 一을 빼면 白처럼 보이는 데서 비롯되어, 99세를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기이지수(期頤之壽)**는 『예기(禮記)』에서 유래한 격식 있는 백세 장수 표현이고, **상수(上壽)**는 가장 높은 장수를 기리는 말로 보통 100세 이상을 가리킵니다. 참고로 현대 한국어에서 ‘백수’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라는 속어로도 쓰이므로 문맥을 분명히 해야 혼동을 피할 수 있습니다.

3) 현대적 쓰임 예문

  • 약관의 나이에 전국 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 “그는 서른에 이립을 이루고, 마흔에 불혹의 경지를 체득했습니다.”
  • “아버지 환갑 잔치는 만 60세에 가족끼리 간소하게 치렀습니다.”
  • “할머니 고희 기념 사진전을 준비했습니다.”
  • “외조부님이 올해 미수를 맞으셔서 집안이 모였습니다.”
  • “증조모께서 기이지수를 누리셨습니다.”

4) 헷갈리기 쉬운 포인트

불혹 = “모든 것을 안다”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다”입니다.
이순은 청력과 무관합니다. ‘남의 말을 순하게 듣는 그릇’이란 비유입니다.
환갑/회갑은 60갑자 순환에 근거합니다. 전통적으로 세는나이 61세에 치른 사례가 있어 표기 혼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백수(白壽) 99세와 ‘백수(白手)’·‘백수(白首)’는 다른 단어입니다. 문맥 주의가 필요합니다.
• 일부 지역·문헌에 다른 별칭이 있으나, 대표 표준만 수록했습니다. 이견이 있는 항목은 “확실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배제했습니다.

5) 마무리 정리

나이를 부르는 한자어는 단순한 경칭이 아니라, 각 시기에 기대되는 덕성과 삶의 태도를 담은 문화 코드입니다. 약관·이립·불혹·지천명·이순은 공자의 생애 단계에서 삶의 성찰을, 고희·희수·산수·미수·백수·기이지수는 장수를 기리는 축하의 언어를 보여줍니다. 행사 초대장·현수막·기사 제목에서 품격 있게 쓰되, 전통적 의미와 현대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면 표현이 더욱 정확해집니다.





70이란 수의 의미



성경의 숫자 ‘70’에 담긴 공동체의 완성, 심판과 회복의 수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시간과 민족의 질서

성경에서 숫자 ‘70’은 공동체와 민족의 충만함, 완전한 지도 구조,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결정적 시기를 상징하는 의미 깊은 수입니다. 

히브리어로 ‘שִׁבְעִים’(shivʿim), 헬라어로는 ‘ἑβδομήκοντα’(hebdomēkonta)로 불리며, 일곱(완전함)과 열(권위)이 곱해진 상징으로 이해됩니다. 본문에서는 ‘70’이라는 수가 어떻게 이스라엘 공동체, 민족의 구성, 포로기 심판과 회복,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 안에서 구조적으로 등장하며, 그 속에 담긴 신학적 의미와 구속사적 흐름을 논문 형식으로 정리하여 제시합니다.

야곱의 자손 70명과 민족적 기초: 하나님의 구속 공동체의 씨앗

창세기 46장 27절은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과 그 가족의 수를 이렇게 언급합니다:

“야곱과 함께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창세기 46:27)

이 숫자는 단순히 인구 집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공동체가 민족적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는 시점을 상징합니다. 
이 ‘70’은 이스라엘이라는 거룩한 민족이 형성되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과 씨앗이며, 훗날 출애굽 사건과 시내산 언약 체결로 이어지는 계시적 흐름의 기초가 됩니다.

출애굽기 1:5에서도 이 숫자는 다시 언급되어 구속사의 반복적 리듬으로 자리잡습니다. 
이는 ‘70’이 이스라엘의 신적 기원과 언약의 출발점으로서 기능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창세기 10장에서 노아의 후손으로 인류의 ‘70민족’이 나뉘는 목록이 등장하는데, 이는 히브리 문헌 전통에서 세계 민족의 원형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에 따라 ‘70’은 전 인류의 대표성과 하나님이 열방을 다스리시는 상징 수로 확대됩니다.

따라서 ‘70’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한 가문으로부터 민족, 그리고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원형적 구조로 이해되며,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민족에게 전파되는 선교적 흐름과도 연결됩니다.

70인의 장로와 사역의 분산 : 지도력과 계시 구조의 질서

민수기 11장 16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사역 부담을 덜기 위해 70인의 장로를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있는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할 것이라” (민수기 11:16–17 요약)

이 장면에서 ‘70’은 지도력의 분산과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성령의 구조화로 해석됩니다. 모세에게 임한 영이 분배되어 70인에게 부어졌다는 점은, 하나님의 계시와 능력이 인격적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상징을 내포합니다. 이는 곧 장차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모든 신자 위에 임하는 성령 강림 사건의 전조이기도 합니다.

이 전통은 유대교 라삐 문헌에서도 계속되어 산헤드린(Sanhedrin)의 구성 수가 70인으로 규정되며, 법적 권위와 지혜의 충만한 숫자로 간주됩니다. 신약시대의 예수님께서도 제자들 외에 ‘70인 제자’를 따로 파송하신 사건이 누가복음 10장에서 등장합니다:

“이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장소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누가복음 10:1)

이 ‘70인’은 단지 숫자의 반복이 아니라, 구약의 장로제도를 계승한 메시아적 사역의 구조적 표현이며, 예수의 권위가 그의 공동체로 확장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70’은 지도력, 계시, 권위의 전수 구조를 상징하며, 교회의 조직과 사명 감당의 원형적 모델로 이해됩니다.

70년 포로와 회복의 시기: 심판과 자비의 균형적 시간

예레미야 25장 11–12절은 바벨론 포로 기간을 ‘70년’으로 명확히 선언합니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되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 25:11)

이 예언은 단지 역사적 징벌의 시간 할당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만나는 시점으로 해석됩니다. 다니엘서 9장에서도 이 70년의 예언을 성취의 관점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글을 읽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리며, 그 70년이 하나님의 회복의 시간임을 간구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70’은 심판의 경과가 아니라 회복의 경계이며, 하나님의 징계조차 언약적 자비 안에 제한된다는 신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는 신자의 삶 속 고난의 시기조차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으며, 회개의 문을 여는 거룩한 기간이라는 점을 묵상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다니엘 9:24에는 “일흔 이레”라는 구절이 등장하며, 메시아 도래와 구속사의 완성을 향한 예언적 숫자 구조로 ‘70’이 변주되기도 합니다. 이 구조는 종말론적 사건의 도식으로도 작용하며, 구약의 심판과 신약의 은혜가 교차하는 계시의 축으로 기능합니다.

마무리

숫자 ‘70’은 성경 안에서 이스라엘의 민족적 기초, 지도력의 구조, 포로기와 회복의 경계, 열방 선교의 원형까지 아우르는 신학적 풍요를 담고 있는 수입니다. 
이 수는 단순한 역사적 계수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질서, 계시의 분산, 회개의 시간, 그리고 선교의 지리적 확장을 통합적으로 상징합니다. 
신자는 이 ‘70’이라는 숫자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 그리고 공동체적 거룩함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지속되고 확장되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70’은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시간, 공간, 권위, 자비의 질서를 담은 숫자이며, 오늘날 교회가 지녀야 할 공동체적 구조와 선교적 책임의 지표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늘날에도 초막절이 되면 예루살렘에서는 송아지 70마리를 제물로 바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70이란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하며 더 나아가서 전 세계 모든 민족을 상징하는 수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휴전협정 1953년 7월 27일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Korean Armistice Agreement)

1953년 7월 27일 한반도에서의 전쟁 행위를 멈추게 한 정전 협정(ceasefire, truce) 및 휴전 협정(armistice)을 의미한다. 
휴전 협정의 의무 조항으로 평화 협정을 3개월 안에 휴전 협정 당사국 간에 논의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후 1954년의 제네바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해서 구체적 논의가 되어야 했지만, 미국측의 협상 회피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깊은 논의가 되지 못하였다.1]

휴전에 대한 논의는 양 측에서 계속 이루어졌다. 유엔군 측은 1950년 12월에 미국과 영국 사이에서 평화적 협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공산측의 반대로 유엔총회에서 결실을 얻지는 못했다. 공산측에서는 1951년 6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담에서 "38도선의 경계선을 복구하는 조건에서 휴익이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휴전협정을 성사시키기 위한 양측의 휴전회담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이루어졌다.[2]

1953년 유엔에서 인도가 한국전쟁의 휴전협정(armistice) 체결을 제안하였다.[3][4][5]

휴전협정에는 중국군, 북한군, 유엔군 사령관만 서명했다.[6][7][8] 국제법상 평시의 조약 체결에는 당사국 의회 등의 비준이 필요하지만, 전시의 조약 체결은 군사령관의 서명만으로 비준이 완료된 것으로 본다.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영문으로는 “Agreement between the Commander-in-Chief, United Nations Command, on the one hand, and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ommander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on the other hand, concerning a military armistice in Korea”이고, 중국어로는 "朝鮮人民軍最高司令官及中國人民志願軍司令員一方與聯合國軍總司令另一方關於朝鮮軍事停戰的協定"이다.

개념상 ‘정전’은 휴전의 전제로서 짧은 기간의 적대 행위 중단을 의미하고 반면‘휴전'은 국제법상 전쟁 상태이고 전쟁원인의 해결에 합의는 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중단하는 것이다.

한국어의 정전은 영어의 'ceasefire 혹은 truce'에 대응하고, 휴전은 영어의 'armistice'에 대응하는데 협정서 명칭이 제각각이라 혼란이 존재한다.[9]

부연하자면 협정서의 영문 협정서 원본에는 ‘armistice’로 되어 있는데 반하여 중문 협정서 원본에는 이것이‘停戰(정전, ceasefire, truce)' 그리고 북한의 한국어 협정서 원본에도‘정전’이라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대한한국 측의 협정문 번역본은 이것을 다시 '휴전(休戰, armistice)’이라고 기재했다.[10][11]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 후 '휴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북진통일 등을 위하여 '국제법상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휴전’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1.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2. 정화(停火) 및 정전(停戰)의 구체적 조치
  3.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4. 쌍방 관계정부들에 보내는 건의
  5. 부칙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해 국민들은 이러한 휴전회담에 대해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특히 북진통일 국민 총궐기대회가 주최되면서 전쟁에 대한 휴전의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이들은 북진 통일을 통한 정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1950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원수에게 전작권을 이양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쟁이 고착화됨에 따라, 1953년 정전 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전쟁이 종전이 아닌 정전으로 끝났기에, 정전 협정에 대한 의무와 이행 여부를 감독하는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중립국 감독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90년대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북한은 일방적으로 군사정전위 및 중립국 감독위를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하였으며, 2013년에는 정전 협정이 파기되었다고 선언한 전적이 있다.[13] 이후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 선언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었으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종전에 대한 논의도 종결을 맺게 된다.

정전(停戰, ceasefire, truce)은 전쟁 중인 나라들이 국제적 기관이 개입하여 전투를 일시적으로 중단 및 정지하는 것으로 일부 전선 혹은 전면적으로 선포되어 시행된다.

비슷한 개념인 휴전(armistice)은 전투행위는 멈추나 전쟁은 지속되는 상태로서 국제법상 전쟁 상태이지만 당사국 간 협상으로 전체 전선에서 전쟁이 중단된 상태을 의미한다.[14][15]

한편 국제법상 휴전은 여전히 전쟁상태를 의미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우는 전시, 준전시, 평시 상태를 나눠놓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정전 상태에 가깝고, 전시 상태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전 상태가 전시, 준전시, 평시 상태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정부 문서는 없으며 대한민국 정부 부처에서도 정전협정과 휴전협정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16][17]

결론적으로 정전과 휴전이 개념상 차이는 분명이 있지만 그 차이에 맞게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정전인지 휴전인지 분석해서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현실이다.

6.25 전쟁에서 중국 및 미국은 전세가 영 좋지 않을 때 전쟁 이전의 영토, 즉 38선 경계를 원상복구하려고 했으며 특히 휴전 회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기존의 38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약 전쟁 이전대로 38선 경계로 되돌아갔다면 언제든지 대한민국은 전선 구축에 상당히 어렵고 북한의 군사 도발이 매우 증가했을 것이며, 38선이 아닌 39전에서 휴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1. “북한 핵을 제거할것을, 지속 기다리기보다, 왜 당장 협상이 우선인가? North Korea: Why negotiations can't wait for denuclearisation”. www.afr.com. 2018년 2월 9일. Feb 2018에 확인함.
  2. “휴전회담(休戰會談)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년 3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12월 24일에 확인함.
  3. Barnes, Robert (2013). “Between the Blocs: India, the United Nations, and Ending the Korean War”.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1979-)》 18 (2): 263–286. ISSN 0731-1613.
  4. Singh, Iqbal (1994). “Korean Crisis of 1950: Nehru's Peace Initiative”. 《World Affairs: The Journal of International Issues》 3 (1): 45–48. ISSN 0971-8052.
  5. shanKariasacademy. “India’s Role in Korean War (1950-53)”. 2023년 9월 2일에 확인함.
  6. 기자, 유새슬 (2023년 7월 24일). “[정전 70년] 정전협정문에 빠진 이승만 서명…두고두고 ‘당사국 논란’”. 2023년 9월 2일에 확인함.
  7. 조성훈 (2005년 9월). “[왜?] 왜 이승만은 휴전협정에 반대했을까?”. 《내일을 여는 역사》 (21): 157–168. ISSN 1228-8802.
  8. “1953년 7월,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다!”. 2015년 7월 3일. 2023년 9월 2일에 확인함.
  9. 헷갈리는 정전협정과 휴전협정···어쨌든 평화협정 체결이 답이다
  10. 정전·휴전·종전의 차이점?
  11. 휴전 70주년인가, 정전 70주년인가?
  12. “우리역사넷”. 2020년 12월 24일에 확인함.
  13. “정전협정 63주년…끝나지 않은 전쟁”. 2024년 3월 28일에 확인함.
  14. 정전·휴전·종전의 차이점?
  15. 70주년인가, ‘정전’ 70주년인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6. 정전·휴전·종전의 차이점?
  17. 휴전 70주년인가, 정전 70주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