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벽묵상 / 출애굽기


출애굽기 장별요약

출애굽기 개요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출애굽의 과정과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짓고, 봉헌한 후 다시 출발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광야 생활의 가장 초기에 해당하여 40:17에 의하면 출애굽 한 후 약 1년 정도를 성막을 짓는 데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출애굽, 율법, 성막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펼쳐집니다.

출애굽기 구조

1-6장 억압과 모세의 소명

7-15장 열재앙과 출애굽

16-18장 시내산까지의 여정

19-24장 시내산 언약

25-40장 성막건축

  • 25-31장 성막 건축에 대한 설명
  • 32-34장 금송아지 사건
  • 35-40장 성막 건축

출애굽기 장별 요약


출애굽기 1장 요약

야곱의 70명의 가족이 애굽에 정착한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번성한다. 애굽의 새 왕은 이스라엘을 노예로 만들어 건축 공사에 부려 먹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괴롭힐수록 더욱 번성한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명을 거역한다. 하나님은 두 여인에게 복을 준다.

출애굽기 2장 요약

레위 지 중에 한 여인(요게벳)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아아를 낳고 석달 동안 숨긴다. 하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갈대상자를 만들어 역청을 발라 나일강에 흘려보낸다. 누이인 미리암이 따라가 바로의 딸이 아이를 취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 미리암을 소개해 준다. 모세가 자라 히브리인들을 괴롭히는 애굽 관리를 죽인다. 다음 날 히브리 인들이 다투는 모습을 보고 말리려다 그들이 모세의 살인 이야기를 꺼내자 결국 애굽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주한다. 그곳에서 이드로를 만나 딸 십브라와 결혼한다. 애굽에 40년, 광야에서 40년을 보낸다.

출애굽기 3장 요약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칠 때 호렙산(시내산의 다른 이름)에 이른다. 여호와의 사자가 가시떨기 나타난다. 불이탄 가시떨기가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는 모습이 신기해 다가간다. 갑자기 가시떨기 안에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신다. 그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듣고 너를 그곳으로 보내려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처음으로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밝힌다. 애굽으로 내려가 그들은 인도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을 명하신다.

출애굽기 4장 요약

하지만 모세는 여호와의 명을 듣지 않으려 한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로 뱀을 만드시고, 손을 문둥병이 걸리게 했다 낫게 하는 기적을 보이신다. 하지만 모세는 가지 않으려 한다. 이번에는 자신은 말을 못 한다고 변명한다. 그러자 하나님이 노하시고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애굽으로 가라 하신다. 애굽으로 내려간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모세를 죽이려 하자 십브라가 돌칼을 가져와 모세의 아들 게르솜에게 할례를 행한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광야에서 모세를 맞으라 하신다. 아론과 장로들이 모세를 맞이 한다.

출애굽기 5장 요약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만나고 광야에서 절기를 지켜야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달라 한다. 하지만 바로는 어찌 노역을 쉬려 하느냐며 짚은 주지 않고 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힌다. 이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힘들어진 이유를 모세에게 돌리고 원망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출애굽기 6장 요약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여호와’로 밝히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빼내어 속량 할 것을 알리신다.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 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력이 곤함으로 말을 듣지 않는다. 모세와 아론의 조상이 잠깐 소개된다.

출애굽기 7장 요약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라 하신다. 하지만 모세가 말을 못 한다고 말하자 아론이 있으니 아론이 네 대언자가 될 것이라 하신다.(1절) 모세와 아론은 다시 바로에게 나아간다. 그때 아론은 83세이고, 모세는 80세였다.(7절)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라 하고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보인다. 하지만 애굽의 마법사들도 그것을 행한다. 모세의 뱀의 애굽 술사들의 뱀을 먹어 버린다.(12절) 바로는 시큰둥하여 듣지 않는다. 결국 첫 번째 재앙인 나일강이 피가 된다.

출애굽기 8장 요약

두 번째 재앙은 개구리 재앙이다. 개구리는 애굽에서 다신의 신으로 섬겼다. 나일강에서 무수한 개구리 올라와 애굽 온 천지에 올라간다. 침실, 화덕, 그릇 등에 올라간다. 애굽의 요술사들도 애굽 땅에서 개구리를 올라오게 한다.(근데 참 이상하다. 개구리를 쫓아내는 요술은 안 하고 올라오게 하다니 거참)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개구리를 물러가게 하라고 말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라 요구한다. 바로는 수긍했지만, 개구리가 사라지자 마음이 변하여 약속을 바꾼다.

세 번째 재앙은 땅의 티끌이 이가 된다.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땅의 티끌을 치자 애굽 온 땅의 티끌이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기어오른다.(17절) 애굽의 술사들도 요술을 부렸지만 실패한다. 애굽의 술사들은 바로에게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하지만 바로가 듣지 않는다.

네 번째 재앙은 파리가 몰려와 애굽에 들끓는다. 이 재앙부터는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분한다.(23절) 이스라엘 고센 땅에는 파리 떼가 오지 않는다. 괴로운 바로가 모세를 불러 제사를 지내라고 한다. 하지만 애굽에서 못하고 사흘 길쯤 광야로 나가 드린다고 한다. 바로는 그렇게 하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파리 떼가 사라지자 모세는 곧바로 마음을 바꾼다.

출애굽기 9장 요약

다섯 번째 재앙은 가축의 돌림병이다. 애굽의 말과 나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돌림병이 일어난다. 바로가 듣지 않자 이튿날 애굽의 모든 가축이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고센의 가축을 죽지 않는다.

여섯 번째 재앙은 악성 종기가 온 애굽사람에게 생긴다. 하지만 바로는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는다.
일곱 번째 재앙은 거대한 우박이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이다. 모세는 바로에게 만약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내일 우박이 내릴 것이라 예고한다. 바로의 신하 중 일부가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가축을 집으로 들인다. 하지만 그대로 둔 자들은 모두 우박에 맞아 죽는다. 거대한 우박은 사람과 짐승, 채소들까지 모조리 파괴한다. 하지만 바로는 또 마음을 바꾸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는다.

출애굽기 10장 요약

여덟 번째 재앙은 메뚜기가 땅을 덮는다. 모세는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보지 않으면 메뚜기 떼가 올 것이라 경고한다. 하지만 바로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자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동풍이 불며 메뚜기 떼가 몰려온다. 메뚜기 떼는 하늘을 가려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우박에 상하지 않았던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 치운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잘못했다면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17절)고 애걸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자 메뚜기 떼가 물러간다. 하지만 바로는 또 마음을 바꾸어 보내지 않는다.

아홉 번째 재앙은 애굽 온 땅에 흑암이 찾아오는 것이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자 온 천지가 어두워진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만은 빛이 있었다.(23절) 이번에는 바로가 모세를 불러 다시는 내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라 경고하고 만약 보이면 죽일 것이라 협박한다.

출애굽기 11장 요약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다. 재앙이 임하기 전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고 하신다. 마지막 재앙이 끝나면 바로가 이스라엘을 내보낼 것이라 말씀하신다. 모세가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 밤에 죽음의 천사가 애굽에 임할 것이라 경고한다. 하지만 바로는 그 경고를 듣고도 보내지 않는다.

출애굽기 12장 요약

하나님은 장자의 죽음이 시작되는 그날을 달의 시작과 햇의 첫 달로 지정하라 하신다.(이것이 유대 종교력의 시작이다. 태양력으로 3월 말 4월 초에 해당한다. 개신교에서 지내는 고난주간이 유월절, 무교절 기간이다) 이스라엘은 첫 달 열흘에 어린양을 잡고, 가족대로 양을 취한다. 어린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한다. 양과 염소 중 하나면 된다. 14일까지 간직하다 14일 해가 지면(유대인인들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다. 집에 들어가 양을 구워 먹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는다. 날 것이나 삶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머리, 다리, 내장을 불에 굽는다. 허리에 띠를 차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는다. 이것은 구원의 긴박성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키라.

출애굽기 13장 요약

무교절이 제정된다. 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진행된다. 모든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레 동안 무교병(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먹고, 일곱째 날인 유월절 다음 안식일에 절기를 지킨다. 애굽을 나오면서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챙긴다.(19절) 그곳을 떠나 더나 에담에 장막을 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낮은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다.

출애굽기 14장 요약

이스라엘이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 바닷가에 장막을 친다. 바로가 마음이 변해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병거를 동원해 이스라엘을 추격한다. 애굽의 군대가 바알스본에 거의 도착할 때 이스라엘이 보고 두려워하여 부르짖는다. 모세를 찾아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따진다.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애굽의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시고 홍해를 향해 손을 내밀라 하신다. 손을 내밀자 밤새 동풍이 불어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된다. 이스라엘이 급하게 홍해를 건너고 새벽에 바다를 향해 손을 내밀자 다시 벽이 사라지고 본래대로 돌아간다. 애굽 군대가 뒤쫓아오다 그대로 수장돼 버린다.

출애굽기 15장 요약

모세가 여호와께 노래한다. 여호와는 높고 영화로우신 분이다. 여호와는 용사이시다. 바로의 병거와 군대를 바다에 던지셨다.고 노래한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도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라고 노래한다.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로 가서 마라에 이른다.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자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한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한 나무를 가리키시고 물에 던지라 하신다.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된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라'(26절) 하신다. 마라를 떠나 엘림에 이른다. 그곳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곳에 장막을 친다.

출애굽기 16장 요약

엘림에서 떠나 신 광야에 이른다. 그날은 애굽에서 나온 지 둘째 달 십오일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먹을 것이 없다. 우리를 광야로 인도해 죽게 하느냐고 원망한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약속하신다. 만나는 아침에 내린다. 육일 동안 매일 아침 한 오멜씩 거둘 수 있으나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는다. 안식일 하루 전에 이틀 치의 만나, 즉 두 오멜을 거두어 보관할 수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하루가 지나면 썩어 먹을 수 없다.

오멜(עֹמֶר, Omer)은 이스라엘 하루의 식사 분량으로 나오며 현대 부피로 약 2.2리터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일곱째 날에 만나를 거두러 나간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만나라고 했다. 만나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는 히브리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만나 한 오멜을 거두어 보관하라 하신다. 만나는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서 첫 유월절을 보내고 그친다.

  • 여호수아 5장 12절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출애굽기 17장 요약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친다. 백성들이 또 모세에 다툰다. 이제는 물이 없어 모세를 원망한다. 모세는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며 말한다. 백성들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죽게 하느냐’며 따진다.(3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에서 그 반석을 치라하신다. 반석을 치자 반석에서 물리 흘러나온다.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한다.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싸운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아말렉과 싸우게 한다.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손을 들고 기도한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졌다. 곁에서 보던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올려주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 부른다.

출애굽기 18장 요약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방문한다. 모세의 재판 모습을 보고 체계를 세우라고 조언한다. 모세는 장인의 말을 듣고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운다. 이후 이드로는 자신의 땅으로 돌아간다.

출애굽기 19장 요약

애굽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시내산에 도착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시킨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신다. 다른 백성들로는 산의 경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0장 요약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다. 1) 하나님만을 섬기라 2)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 3)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라 5)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하지 말라 9) 거짓 증거 하지 말라 10) 이웃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 두 돌판에 계명을 기록하여 모세에게 준다. 제단을 만들 때 정으로 쪼지 말라 하신다.

출애굽기 21장 요약

종에 관한 법률(1-11절)과 폭행에 관한 법(12-27절), 가축의 임자에 대한 법(28-36절)을 제정하신다. 히브리인은 잠시 종이 되나 영원하지 못하다. 7년이 지나면 해방해야 한다. 하지만 종이 그곳에서 여자를 만나 결혼하면 여자와 아이들을 두고 나와야 한다. 만약 헤어지기 싫으면 귀에 구멍을 뚫고 계속 종이 되어야 한다. 모든 폭행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상한다.

출애굽기 22장 요약

보상과 배상에 대한 법을 제정하신다.(1-15절)

소와 양을 도둑질해 팔면 소는 한 마리에 다섯 마리로 보상하고, 양은 한 마리에 네 마리로 보상한다. 도둑은 배상하고 배상을 못하면 몸을 팔아 배상한다. 도둑질해 손에 가지고 있으면 두배로 보상하다.

일반 이웃과의 다양한 법을 세우신다.(16-31절)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는 꾀어 동침하면 아내를 삼아야 한다. 만일 처녀의 아버지가 반대하면 납폐금을 내야 한다. 무당은 두지 말라. 짐승과 음행 하는 자는 죽이라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이웃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으면 해가 지기 전 돌려주라.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라.

출애굽기 23장 요약

공의로운 재판(1-9절)

거짓된 풍성을 퍼뜨리지 말라. 위증하지 말라. 가난한 자라고 편벽되어 두둔하지 말라. 원수의 소가 길을 잃으면 돌려주라.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뇌물을 받지 말라.

안식년과 안식일(10-13절)

여섯 해는 파종하고 칠 년째 되는 해는 파종하지 말고 묵히라. 여섯 동안 일하고 안식일에는 가축과 종들도 쉬게 하라.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14-19절)

이스라엘 사람들을 세 절기를 지키라.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째 예물을 가지고 여호와를 찾으라.

명령과 약속(20-33절)

여호와의 목소리에 청종하고 계명을 지키라. 너희보다 왕벌을 먼저 보내리라 너희는 서서히 가나안 족속을 몰아낼 것이다.

출애굽기 24장 요약

시내산에서 언약을 세우고 사십 일을 지낸다. 모세에게 모든 말씀을 기록하라 하신다. 열두 지파대로 기둥을 세우고 언약식을 통해 피를 부린다. 이것은 언약의 피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데리고 다시 시내산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사십 일을 지낸다.

출애굽기 25장 요약

성소를 지을 가져오라 하신다. 다양한 색의 실과 염소 털, 숫양의 가죽, 해달이 가죽, 각종 보석들이다. 이것들은 성막을 짓는 데 사용된다. 모세에게 하늘에서 보인 모습대로 성막을 짓도록 명하신다. 먼저 증거궤를 설명한다. 두 번째는 진설병과 상을 설명한다. 세 번째는 등잔대와 기구들을 설명한다. 이것들은 성막의 성소에 둘 성구들이다.

출애굽기 26장 요약

성막을 만드는 방식을 설명한다.

출애굽기 27장 요약

제단에 대해 설명한다. 성막의 뜰과 둘러싼 기둥들에 대해 설명한다. 성소 안의 등불에 대해 설명한다. 성소의 등불은 감람기름으로 불을 밝혀야 하고, 아침과 저녁을 하루 두 번씩 확인하여 불이 꺼지지 않도록 기름을 채워야 한다. 후에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게 된다.

출애굽기 28장 요약

제사장의 옷을 설명한다. 일반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옷은 조금씩 다르다. 성막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제사장들은 맞는 옷을 갖춰 입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없다. 판결 흉패를 말한다. 흉패에는 보석 12개가 있으며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출애굽기 29장 요약

제사장의 직분을 위임한다. 아론에게 대제사장의 옷을 입히고 위임을 행한다. 머리에 관유를 부어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으로 세운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유를 붓고 제물을 드려야 한다. 이후 아론이 대제사장이 되어 제사를 직접 행한다.

출애굽기 30장 요약

분향단을 소개한다. 분향단은 성소 안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위치한다. 휘장 바로 앞에 분향단이 있어 그 옷에서 향을 피워 지성소에 들어갈 때 사용한다. 회막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속적을 내야 한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이다. 한 세겔은 이십 게라다. 놋두멍은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위치한다. 물을 부어 먼지와 피를 씻는다. 향기름을 만든다. 향은 소합향과 나감향, 풍자향을 섞어 만든다. 이 향은 일반 사람이 사용할 수 없다. 오직 여호와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출애굽기 31장 요약

회막에서 사용될 기구를 만들라 하신다. 안식일을 지키라. 모든 말씀을 마치시고 모세에게 증거판을 주신다. 증거판은 둘이다.

출애굽기 32장 요약

모세가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을 충동질해 금송아지를 만든다. 제단을 쌓고 자신들의 장식을 떼내어 아론에게 바친다. 아론은 금을 녹여 송아지를 만든다. 이때 보세가 대려오며 떠드는 소리를 듣다. 진에 가까이 와서 그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며 시내산에서 받은 돌판을 깨뜨린다. 모세가 누구든지 여호와 편에 선자는 우상숭배자들을 죽이라 한다. 이 때 레위인들이 칼을 빼서 우상 숭배한 형제와 가족과 이웃을 죽인다.

출애굽기 33장 요약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한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올라 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회막에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영광을 보여 달라 말하며 하나님은 등을 보여 주신다.

출애굽기 34장 요약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판을 준비하여 시내산에 올라 오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서 강림하신다. 다시 언약을 세우십니다. 땅 주민과 언약을 하지 말라.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첫 태생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모세는 40일 동안 시내산에 있다가 십계명을 기록하여 내려 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자 얼굴을 수건으로 가립니다.

출애굽기 35장 요약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 하십니다.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리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감동하여 자원하여 하나님께 헌물을 드립니다. 유다지파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그로 하여금 성막을 짓는 일에 주관하도록 합니다.

출애굽기 36장 요약

브살렐과 오홀리암에게 총명을 부어 주셔서 성막과 성막에서 쓸 것들을 만들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많은 예물을 가져와 차고 넘칩니다. 성막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바깥들의 기둥과 천들을 만들어 연결하고, 휘장을 짜고 그룹들을 수 놓습니다.

출애굽기 37장 요약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듭니다. 궤는 금으로 쌉니다. 궤의 뚜껑에 두 그룹을 조각하고, 채를 만들고 궤를 걸 고리를 만들어 겁니다. 분향을 제단을 만듭니다.

출애굽기 38장 요약

번제단을 만듭니다. 다섯 규빗 육방체이며, 사면에 뿔이 있습니다. 제단을 놋으로 감쌉니다. 놋으로 물두멍을 만듭니다. 성막 울타리를 만듭니다. 성막 재료의 물자 목록을 소개합니다.

출애굽기 39장 요약

제사장의 옷을 만듭니다. 에봇에는 이스라엘 열두 아들들 즉 열두 지파를 기념하는 열두 보석이 달립니다. 제사장의 다른 옷들도 만듭니다. 드디어 성막의 모든 역사를 마칩니다.

출애굽기 40장 요약

모세가 성막을 봉헌합니다. 관유를 부어 거룩하게 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관유를 부어 거룩하게 합니다. 관유는 이후 제사장들에게 부어 거룩하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모든 것을 마치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합니다.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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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요?

관계(關係)
나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지식(智識)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사야 58:1-9)


이사야는 성경 가운데 예언서의 첫 머리입니다.
이사야의 처음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또 성경 가운데 제일 마지막 예언서는 말라기서입니다. 말라기서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꼴이 너무나도 가증스럽고, 더러워서 누가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주면 좋겠다고 할 만큼 하나님이 싫어하는 예배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상한 것은 우리는 생각을 할 때에 예배만 드리기만 하면 무조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싫어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예배 드리는 자의 태도, 마음의 자세, 진정성이 문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냥 예배를 드리는 자를 무조건 찾는 자가 아니라 예배의 진정성을 갖고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누가 진정한 예배를 드리느냐를 찾으십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배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1. 하나님이 기뻐하는 몸으로 드리는 제사는 영적 예배입니다.

몸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몸으로 드리는 예배의 진정성이 무엇입니까? 생활입니다.

예배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몸으로 실천하는 삶이 없다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며, 감동적인 순서로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란 여러분들이 생활 속에서 예배 드리는 사람다운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이 그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만 하면 무조건 모든 예물을 기쁨으로 받으십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예물도 있습니다. 예배와 마찬가지로 예물을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무조건 기쁨으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예물을 드린 자의 삶이 포함된 예물일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삶이 없는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다가 하나님께 헌금 드린다고 하나님이 그 헌금을 기뻐하고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물은 삶을 다시 회복하고 예물을 드릴 때에 하는 예물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리아는 그 때까지 일곱 귀신이 들어서 온갖 병을 앓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부모를 일찍이 잃어버리고 동생들을 거느리느라고 여인으로서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여인을 추한 여인으로 손가락질을 하는데도 주님은 이 여인의 옥합의 예물을 기뻐 받으셨습니다. 왜입니까? 지금까지는 인생을 부끄럽게 살고 죽지 못해서 더럽게 살았다 할지라도 오늘 주님을 만나고 자기의 부끄러운 삶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사는 거룩한 성녀가 되는 인생의 놀라운 전환점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부끄럽게 살았으나 주님 앞에 결단하고 새 출발하는 이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춥고 배고픈 여인, 가난하고 굶주린 여인이 있습니다. 그는 동전 두 닢으로 한 달을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불쌍한 여인입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예물을 기뻐 받으십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두 닢밖에 안 되는 작은 물질이지만 이 여인이 비록 어렵더라도 더럽게 살지 않고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적은 것이지만 주님은 그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물은 내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거룩한 신앙적인 삶이 포함된 결단과 결심으로 예물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 예물을 기뻐 받으십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금식 기도했습니다. 그 때에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을 때에 그의 조카 롯을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밧모섬에서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역사의 종말에 관하여 계시하십니다.하지만 모든 기도를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 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싫다고 하십니다. 왜입니까?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있는데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삶이 포함된 기도이다.” 어떤 삶입니까? 말씀에 보면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삶”이라고 되어져 있습니다.

이웃에게 어떤 것으로 결박하는 일이 있습니까? 올가미를 씌워서 그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면서 “주여!”를 외치는 기도는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구절은 금식 기도하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사악하고 잘못된 행동들을 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다른 사람의 멍에를 풀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금식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허물과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악하고 더러운 나쁜 행동들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쁜 행동들을 청산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양식이 없는 자에게 양식을 나눠주고, 헐벗은 자가 있으면 따뜻하게 옷을 입혀주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허물과 죄를 고하듯이 내 이웃들에게 내가 행하는 모든 잘못된 것들을 청산하고 또 그들의 허물로 말미암아 내가 지고 있던 어떤 권리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그 사람을 살려주는 적극적인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 때에 놀랍도록 축복을 해 주십니다. 그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내 빛이 아침처럼 밝게 비취게 하십니다. 우리 앞날이 환히 밝아지고, 미래와 희망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우리 앞과 뒤를 호위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둘째는, 내 심령을 만족하게 하고 어두움이 낮 같이 변하게 합니다. 아무리 메마른 곳에 이를지라도 내 영혼을 만족해 하며 내 뼈로 견고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물 댄 동산 같게 하며, 샘 같이 마르지 않게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 예물, 기도는 삶이 포함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축복의 연말이 되도록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고,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함으로 이웃들에게 적극적인 사랑을 베풂으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물 댄 동산 같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윗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한 가지는 윗사람이 무엇을 가장 싫어하는지 잘 살펴서 그 분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윗사람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그 사람의 앞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의 열심, 내 고집대로의 부지런함은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상황에 잘 적응하는 것이 세상을 승리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그것을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一.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요?

1.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누구에게 자신의 진실함에 대해 의심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의 불쾌함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어느 여고생이 교실에서 없어진 물건이 자기의 소행으로 오해를 받자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그는 유서에 “나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얼마나 신실하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마태복음 5:18에“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하셨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가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다 성취되었습니다. 이러하신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자신의 직위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푸대접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까? 정근모 장로님이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제직할 당시 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자신의 낡고 소형 승용차를 타고 약속한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호텔 안내자가 나와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습니다. 문을 열고“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장관임을 알아보고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낡은 소형차만 보았을 뿐 사람은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불쾌했겠습니까? 이 일을 두고 훗날 그는 말하기를“우리나라는 참 이상하다. 차는 교통수단일 뿐인데, 왜 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할까?”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을 그렇게 대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늘나라를 버리시고 낮고 추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탄생하실 때에 방 한 칸 구하지 못해 발 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억울한 죄수가 되어 십자가의 극형을 받으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태복음 21:42)라고 하셨습니다. 건축자가 돌 하나를 쓸모없다며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돌은 버릴 돌이 아니라 건물에 가장 소중한 머릿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푸대접을 받으신 예수님의 경우가 바로 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가치를 분명히 깨달아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치를 모르면 그것을 쓰레기처럼 취급하게 됩니다. 옛날 아프리카인들은 진주의 가치를 몰랐기에 유럽에서 여행 온 여행객들이 주는 인형 하나를 받고 한 바가지 진주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안타까운 일입니까? 훗날 아프리카의 한 청년이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이 학생은 보석가계에 들어가서 값진 진주를 훔치다가 채포되었습니다.“왜 남의 가게에 들어가서 귀중한 물건을 훔쳤느냐?”하고 취조를 하자“영국인들은 어리석은 우리 조상들의 값진 진주를 인형으로 수없이 거두어갔지 않으냐?”라고 하며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되고,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놓치게 되고 맙니다.

우리나라 대원군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하고자 토마스 선교사를 태운 제너널셔먼호가 태평양을 건너 대동강에 도착했습니다. 대원군은 그 배를 불태우고 말았습니다. 그 배에서 성경을 한 아름 안고 뛰어내린 토마스 선교사, 그 귀하고 고마운 사람을 대동강에서 죽였습니다. 이러한 무지함이 국가의 발전을 지연시켰고 시대에 뒤떨어진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일본보다 발전이 뒤져 힘없는 나라가 되므로 36년간 나라를 잃은 국치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 가운데“하나님을 보았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조금만만 생각해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질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기가 보입니까? 전파가 보입니까? 사람의 마음이 보입니까? 우리의 옛날 역사를 내가 직접 보았습니까?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셔서 나타내신 역사의 기록입니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나 이조시대의 역사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함께하신 역사입니다. 이 기독교 역사를 대한민국 기독교 신자들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선진국 국민들 대다수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브리서 12:1)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같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 얻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하셨습니다. 사람은 무슨 말을 듣던지 듣는 대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마귀의 말을 들으면 마귀를 믿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로마서 10:14)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늘로부터 어느 순간 갑자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19세기 세계적인 전도자였던 미국의 무디는 믿음에 대하여 말하기를“나는 믿음을 간구하면서 언젠가는 믿음이 내려와서 나를 번개처럼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오늘 나는 로마서 10:17을 읽었다.‘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나는 성경을 덮고 믿음을 간구했다. 또 성경을 펴서 읽었다. 그 후 나의 믿음은 점점 자랐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배의 소중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 믿음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승리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열쇠입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6:22~26에 전도자 바울사도가 겪은 고난가운데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 사도와 그 일행이 전도하다가 채포되어 모진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바울사도 일행은 옥중에서 기도하며 찬송하는 가운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밤중에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수갑이 벗겨졌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은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중국이 공산국가가 되었으므로 그 나라에는 기독교가 말살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모진 핍박을 견디며 하나님을 섬기는 숨은 성도들이 수없이 많고 합니다. 중국정부가 허용한“삼자애국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산당의 지시대로 하는 교회이므로 그 교회는 참된 성경적인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숨어서 비밀리에 하나님을 섬기는 지하교회 즉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가정교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다가 그들의 정체가 발각되면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난을 겪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복음은 계속 증거되어 2000년 1월 가정교회 연합회의 보고에 의하면 그 숫자가 5,8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가정교회 연합회 대표인 윈 이라는 목사가 체포되어 정저우 최고 보안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모진 고문으로 양다리가 다 골절되어 스스로 걷지도 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 감옥을 탈출하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1997년 5월 5일 아침 8시경 윈 목사는 아픈 다리를 끌고 3층 감옥에서 철창문 세 개를 통과하여 탈출했습니다. 문마다 간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그를 보지 못하는 눈으로 앉아만 있었다고 합니다. 마당을 지나는데 30여명의 간수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보고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감옥소 정문까지 열려있었습니다. 나중 깨달은 일이지만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다리의 골절상은 언제 다 나았는지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3층 감옥에서 그의 탈출을 지켜보고 있었던 죄수들은 훗날 증언하기를“윈이 감옥소 마당을 지나가는데 수많은 간수들 사이로 지나갔지만 아무도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윈 목사는 그 후 계속되는 기적 가운데 독일로 탈출하게 되었고, 독일정부는 그를 난민으로 인정하여 여권을 발급해 주었습니다. 윈 목사는 지금 온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윈 목사가 현재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분이 안양의 한 교회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이 믿음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행위가 예배입니다.

2. 하나님은 잃은 영혼이 돌아올 때 기뻐하십니다.

세례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던 사람이 이제는 일생동안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겠노라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교회의 가장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잔치가 펼쳐지는 날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12~14의 말씀에“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합니다. 쉼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1~2의 말씀에“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사랑하셔서“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는 반드시 승리자가 됩니다. 실패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도록 살아가는 삶의 방법 중 한 가지가 복음을 전하여 잃은 영혼을 찾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은 에녹입니다. 동행이란 앞서지 않고, 뒤서지도 않은 순종자를 가리킵니다. 창세기 5:22~24에“에녹은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하셨습니다. 긴 세월 300년을 하루같이 순종하며 살아간 사람이 에녹입니다. 이 모습을 아름답게 보신 하나님은 죽을 경험하지 않도록 살아있는 몸으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인 성경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에녹은 이와 같은 삶을 300년간 계속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죽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아있는 몸 그대로 하늘나라로 데려가셨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효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착실한 제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저를 가르치신 스승가운데 한 분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오늘은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까?”하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를 참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목사로, 교수로,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고귀한 삶을 살다가 가셨습니다.

二. 하나님이 기뻐하심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본문에“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한복음 8:29)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고의 은혜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합니다. 누구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승리자가 됩니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5:10에“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양치기 목동 출신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다윗은 그 누구도 그를 당하지 못했습니다. 블레셋 나라 골리앗 장군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그 거한 앞에서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형들을 면회 갔던 다윗이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물맷돌 하나를 들고 나가 무장한 골리앗을 향해 던졌습니다. 이 돌이 투구 쓴 골이앗 장군의 이마에 박혀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건지므로 일약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다윗을 칭송했습니다. 이 영광도 잠시뿐 사울 왕이 다윗을 정적으로 여겨 시기하며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10년이란 긴 날 동안 다윗을 해하고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해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사울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대왕이 된 후에도 수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믿음을 닮은 삶을 살아간 사람이 아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그는 숱한 삶의 질곡을 지나면서 믿음으로 헤치고 나가 끝내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배운 것은 고작 초등학교 9개월뿐, 그런 그가 세계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이 링컨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링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살았습니다. 여덟 번의 큰 실패의 늪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불굴의 믿음, 상원의원 선거를 치르는 동안 목말라하는 노인에게 콜라 두병을 사주었다며 나머지 선거자금을 당 본부로 돌려보내는 그의 진실성, 흑인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그의 박애정신,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 6:7~8)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간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에녹, 다윗, 심지어 우리 예수님까지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할 사람들입니다. 제자는 마땅히 스승의 정신과 스승의 삶을 본받아야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어떤 모습을 가장 기뻐하실까요?

첫째,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혼을 불쌍히 여겨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과 성령님의 감동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은 언제나 분명한 관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에게 (이후, 아브라함으로 칭함)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그곳에 도착하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2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이사야 51:16).
하나님께서는 또한 에스겔 38:14의 인접국 곡(Gog)을 향한 예언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확증하십니다.

유대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비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겨질까요?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위해 오신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16, 10:12, 갈라디아서 3:28).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는 하나님만이 그렇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 또한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역대상 29:17)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은 어느 나라에 속했는지 보다 하나님께 자신을 기꺼이 드리는 마음으로써 그 신분이 정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또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게 됩니다.
이 관계는 교회 참석이나 선한 행실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겠다는 신중한 선택입니다.
고린도후서 6:16과 마가복음 8:38 두 구절 모두에서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는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때 하나님 또한 우리를 받아들이십니다.
그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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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 (로마서 13:11~14)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입어야 하는 옷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이 주신 옷 '예수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런데 옷의 종류에 대하여 질문드린 이유가 무엇이냐면
성경에서는 타락한 인간과 회복된 인간을 옷과 관련하여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옷이 필요한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제 모습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옷의 종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옷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죄의 수치심과 두려움, 부끄러움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든 옷입니다. (아담과 하와)

가죽옷
하나님이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벗기시고 죄에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만든 옷입니다.
가죽옷은 한 생명이 죽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생명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어야 내 앞에 합당하다'라는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흰옷을 입은 큰 무리
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백성들을 '흰옷을 입은 큰 무리'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백성들은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흰옷을 입은 이들을 뜻합니다.
어린양의 피로 죄를 씻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서게 된 상태를 ‘흰옷을 입은 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에봇
에봇은 대제사장용으로 만들어진 거룩한 의복입니다.(출 28장, 출 39장).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출 28:8)
'에봇 위에 에봇을 매는 띠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붙여 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출 39:5)
에봇을 정교하게 만들게 하신 이유는 롬 12:1절에 나옵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우리 몸을 영적 예배로 드리고,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모습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의 삶에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이 잠깐이라도 실수하지 말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복
마 22장에 보면 왕이 초대한 결혼 잔치에 초대해서 온 사람 중에 예복을 입고 오지 않은 사람을 쫓아냅니다.
예복을 각자 준비한 것이 아니라 미리 다 갖다주고 입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초대하실 때는 주시는 예복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무화과로 만든 옷을 벗어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자(회개)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 (12절)
영적 전투복입니다.

켄 시게마츠가 '예수를 입는 시간'에서 말한 ‘영혼을 위한 7가지 습관’이 바로 영적 전투복입니다.

· 말씀 묵상하기
· 안식일 지키기,
· 감사하기
· 나누기
· 섬기기
· 우정 맺기
· 소명 따르기

예수그리스도의 옷

'이 시기를 알고 있습니다' (11절)
'이 시기'(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나의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였더니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느껴지고,
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입니다.
'자다가도 깨어날 때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십자가 앞에서 두려워 도망쳤고,
세상에서 말하는 못된 짓은 다 해보았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교회 지도자로 서게 했던 말씀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3~14)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고 날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시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시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서 '옷'의 상징 가죽 옷에서 의의 옷까지

성경에서 '옷'의 상징성과 의미

  • 창세기 3장의 가죽옷에서 신약의 '그리스도로 옷 입음'까지

성경에서 '옷'은 단순히 인간의 신체를 가리는 의복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가죽옷"으로 시작해, 구약의 제사적 상징과 신약의 "그리스도로 옷 입음"이라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옷'은 구속사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옷'은 인간의 죄와 수치, 의와 영광,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하며,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흐름을 관통합니다.

1. 창세기 3장의 가죽옷 : 죄를 덮는 은혜의 상징

죄로 인해 드러난 수치와 인간의 시도 : 아담과 하와는 타락 후 자신의 벗음을 부끄러워하며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 입습니다(창세기 3:7).
이는 인간의 죄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불완전한 시도를 상징합니다.

가죽옷의 상징성 :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신 "가죽옷"(창세기 3:21)은 수치를 덮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 희생의 원리 :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 동물이 희생되어야 했으며, 이는 구약의 희생 제사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예표합니다(히브리서 9:22).

  • 하나님의 주권적 구속 :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가죽옷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짐을 나타냅니다.

2. 구약에서의 '옷 ' : 의와 영광의 상징

1) 제사장의 의복 : 거룩함과 하나님의 영광

출애굽기 28장에서 제사장의 의복은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아론의 의복: 제사장의 옷은 "영광과 아름다움을 위하여"(출애굽기 28:2)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드러냅니다.

정결과 구별: 제사장은 거룩한 옷을 입음으로써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은 신자가 하나님께 나아감을 예표합니다(히브리서 10:19-22).

2) 왕의 의복 : 통치와 권위의 상징

성경에서 왕의 옷은 권위와 통치를 상징합니다(사무엘하 13:18, 에스더 6:8).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입으신 "의의 옷"과 왕 되심을 예표합니다.

3) 의의 옷과 구원의 옷

이사야 61:10은 구원을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에 비유합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시미..."

이 구절은 죄의 수치를 덮고 의로움으로 입히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묘사합니다.

4) 빛과 영광의 옷

시편 104:2에서 하나님은 "빛으로 옷 입으셨다"고 묘사됩니다. 이는 창조주의 영광과 존귀를 상징하며, 인간도 이러한 빛과 영광으로 덧입을 것을 암시합니다.


3. 신약에서의 '옷' : 빛과 그리스도로 옷 입음

1)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와 빛의 옷

마태복음 17:2에서 예수님의 변모 사건 중 그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묘사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과 영광을 나타냅니다. 빛은 의와 진리를 상징하며, 예수님의 변모는 신자들이 장차 입게 될 영광스러운 옷을 예표합니다(빌립보서 3:21).

2) '그리스도로 옷 입음'의 개념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죄와 수치를 덮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구원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표현입니다. 신자는 더 이상 자신의 죄와 수치 가운데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으로 덧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고린도후서 5:17).

3) 빛의 갑옷과 새 삶

로마서 13:12-14은 신자에게 "빛의 갑옷"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빛의 갑옷: 어둠의 일을 버리고 빛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음: 단순히 구원받는 것뿐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4. 요한계시록에서의 '옷' : 최종적 회복과 영광

1) 흰 옷 : 성도의 의와 영광

요한계시록 7:14: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흰 옷은 어린 양의 피로 깨끗해진 성도의 의를 상징하며, 최종적인 구원을 예표합니다.

요한계시록 19:8에서는 성도의 의로운 행위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로 묘사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의와 함께 성화의 열매를 강조합니다.

2) 새 창조에서의 영원한 의의 옷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성도가 영광과 의로 덧입은 최종적 상태를 묘사합니다.

타락 이전의 상태(창세기 1-2장)로의 회복이자, 이를 초월하는 영광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5. 옷의 구속사적 흐름 :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단계         옷의 상징성                               구속사적 의미

창세기 3:21   가죽옷: 죄를 덮는 은혜                    희생과 대속의 시작
구약 율법(출 39:1)
 제사장의 의복: 거룩함과 하나님의 영광             거룩한 삶을 향한 부르심,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의 예표
구약 선지서(사 61:10)
 의와 구원의 옷            하나님의 구원 약속과 메시아 사역의 예언
신약 복음서(마 17:2)
 변모의 옷 : 빛과 영광            예수님의 신성과 구속 사역의 성취
바울 서신(갈 3:27)
   그리스도로 옷 입음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으로 덧입음
요한계시록(7:14, 19:8)
     흰 옷과 세마포            어린 양의 피로 얻은 최종적 구원과 영광

6. 현대 신자에게 주는 교훈

  1.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라 : 가죽옷은 죄를 덮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2. 의와 거룩으로 옷 입으라 : 신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갈라디아서 3:27), 빛의 갑옷을 입어(로마서 13:12)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영광의 소망을 품으라 : 요한계시록의 흰 옷은 신자가 장차 누릴 최종적인 영광을 상징합니다. 이는 현재의 삶에서 인내와 소망을 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결론

성경에서 '옷'은 죄와 수치, 하나님의 의와 영광, 구속과 회복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창세기 3장의 가죽옷은 희생을 통한 구속의 원리를 예표하며,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최종적으로 요한계시록에서 흰 옷을 입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옷'이라는 주제를 따라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신자에게 주어진 의와 영광의 약속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명령은 단순히 믿음의 선언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드러내는 구속사적 부르심입니다.


성경 속에서 옷이 갖는 상징과 의미

성경에서 옷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다양한 신학적 주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옷은 인간의 상태, 의로움, 죄악, 회개, 영적 상태 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아래에 성경에서 옷이 갖는 주요 상징들을 주제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의로움과 순결의 상징

흰옷: 흰옷은 성경에서 의로움과 순결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 7:9에서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이는 이들이 죄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혀졌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흰옷은 성도들의 정결한 삶과 영적 순결을 상징하며, 구원받은 자들의 영광스러운 상태를 나타냅니다(계시록 3:5, 19:8).

죄와 타락의 상징

더러워진 옷: 더러워진 옷은 죄와 타락을 상징합니다. 스가랴 3:3-4에서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깨끗한 옷을 입히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죄로 인해 더러워진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정결해지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더러워진 옷은 인간의 죄악된 상태와 그로 인한 부정함을 나타냅니다.

낡고 헤어진 옷: 낡고 헤어진 옷은 죄와 세속적 삶의 피폐함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옷은 인간의 영적 상태가 피폐하고 죄로 인해 더럽혀졌음을 나타냅니다. 성경에서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죄로 인해 잃어버린 영적 생명과 깨끗함을 상징합니다.

회개와 애통의 상징

옷을 찢는 행위: 옷을 찢는 행위는 성경에서 깊은 슬픔, 회개, 애통을 표현하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요나 3:5-6에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할 때, 왕과 백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죽었을 때 슬픔에 잠겨 옷을 찢었습니다(사무엘하 13:31). 옷을 찢는 것은 내면의 고통과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굵은 베옷: 굵은 베옷은 회개와 애통을 상징하는 옷입니다. 굵은 베옷은 일반적으로 거친 재질로 만들어져 있으며,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상징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에스더서 4:1에서 모르드개가 유대인들에게 닥친 위기를 앞두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와 중보기도를 합니다. 굵은 베옷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상징입니다.

신분과 권위의 상징

왕의 옷: 왕의 옷은 성경에서 신분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예를 들어, 사울이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혔을 때(사무엘상 17:38), 이는 왕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부여하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바로가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주었는데(창세기 41:42), 이는 권위와 존귀함을 상징합니다. 왕의 옷은 통치자의 권위와 하나님이 부여하신 지위를 상징합니다.

아들의 옷: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는 장면이 있습니다(누가복음 15:22). 이 옷은 용서와 회복을 상징하며, 잃어버린 아들이 다시 아버지의 사랑과 권리를 회복하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납니다. 아들의 옷은 상속자의 신분과 가정에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영적 변화와 새 생명의 상징

새 옷: 새 옷은 성경에서 영적 변화를 상징합니다. 에베소서 4:22-24에서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권고가 등장합니다. 이는 죄와 세속적인 옛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새 옷은 신앙의 성숙과 영적 재생을 나타냅니다.

의의 옷: 이사야 61:10에서는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들에게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을 입히신다고 말합니다. 이 의의 옷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게 하시고, 그들의 영적 상태를 새롭게 하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의의 옷은 구원받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혀져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됨을 나타냅니다.

정체성과 소속의 상징

베옷: 베옷은 겸손과 종의 신분을 상징하는 옷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허리에 두르신 수건(요한복음 13:4-5)은 종의 역할을 상징하는 베옷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베옷은 겸손과 섬김, 그리고 순종의 상징으로 성경에 나타납니다.

옷을 벗는 행위: 성경에서 옷을 벗는 행위는 자신의 신분과 권리를 포기하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군인들이 그의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요한복음 19:23-24). 이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셨음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옷은 단순한 의복 이상의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의로움과 죄악, 회개와 구원, 권위와 겸손 등 다양한 영적 진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옷이 사용됩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와 인간의 영적 상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옷이 있다.
성경에서 옷은 그 사람, 신분, 인격을 뜻한다.
영적으로는 어둠의 옷과 빛의 옷으로 구분된다.
어둠의 옷은 밤의 옷이요, 방탕, 음란, 호색, 다툼의 옷이다.
빛의 옷은 낮의 옷, 생명의 옷, 그리스도의 옷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는 젊은 날에 어둠의 옷을 입었다.
그는 10대에 사생아를 낳았고 20대에는 입신양명의 길을 찾아 로마 거리를 누볐다.
한 때는 이단 신앙에 빠져들어 헛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방탕의 길에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날이 올 것을 확신하며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숨을 거둔 소식을 접하고 장례식에 참여하러 가는 도중에 사건이 일어났다.
여행길에 지쳐 한 수도원의 정원에서 쉬고 있는 그에게 담장 밖에서 “책을 들고 열어라, 책을 들고 열어라.”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의자에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성경을 펼치니 다음의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이 말씀이 그의 영혼을 통째로 변화시켰다.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2월 1일(토) 출애굽기 39-40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거룩한 옷(출 39:1)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From the blue, purple and scarlet yarn they made woven garments for ministering in the sanctuary. They also made sacred garments for Aaron, as the LORD commanded Moses.

거룩한 옷(garments for ministering in the sanctuary)이란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직무를 수행할 떼 입어야 할 예복을 말합니다.

거룩한(6944) 코데쉬(qôdes) קֹדֶשׁ 스트롱번호 6944

1. 거룩함.  2. 거룩한 것.  3. 지성소
발음 [ qôdesh ] 
어원  / 6942에서 유래
구약 성경  / 477회 사용
  • 1. 명사, 남성 거룩함, 시60:8(6), 89:36(35), 암4:2, 거룩한 이름, 레20:3, 22:2, 시2:6, 사11:9, 성의, 출28:2,4, 성령, 시51:13(11), 애4:1
  • 2. 명사, 남성 거룩한 것, 레12:4, 21:6, 렘2:3,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 레21:22, 22:2,3,15,성전에서 쓰이는 은 그릇, 대상26:20.
  • 3. 명사, 남성 지성소, 성소[성전에 사용되어], 출28:43, 29:30, 35:19, 39:1, 성전, 시20:2, 단8:14, 건물로서의 성전, 왕상8:8, 대하29:7, 가장 깊숙한 곳, 겔41:23.
    • a. 명사, 남성 가장 거룩한 것, 법궤, 출29:37, [복수로] 레21:22, 대하31:14, 겔42:13,44:13.
    • b. 명사, 남성 성전의 가장 깊숙한 부분, 출26:33,34, 대하3:8,10.
  • 관련 성경 / 성회(출12:16, 레23:35, 민28:18), 성소(출26:33, 레20:3, 민8:19), 지성소(출26:33, 레16:16, 왕상6:16), 성결(출28:36, 말2:11), 성물(출28:38, 레22:12, 민6:20), 거룩한 패(출29:6), 성의(출29:29, 레16:32), 거룩한 산(시43:3), 성산(겔28:14), 지성물(레21:22, 민4:4), 거룩한 날(출31:14), 성일(사58:13), 성소(레4:6), 성호(대상16:35, 시105:3, 145:21), 예물(대하31:12), 성전(시5:7, 138:2, 욘2:4), 거룩한 곳(렘31:40), 성도(단12:7). [형] 거룩한(출3:5, 레2:3, 시2:6), 성결한(출15:13, 삼상21:5).

옷(899) 베게드(beged) בֶּגֶד 스트롱번호 899

1. 덮개.  2. 의류.  3. 특히 값비싼 옷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함
발음 [ beged ]
어원  / 898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15회 사용
  • 1. 명사, 남성 덮개, 천, 삼상19:13, 왕상1:1.
  • 2.명사, 남성 의류, 옷[보통 동방인들의 외투로 사용됨], 창39:12,13,15, 41:42.
    • a. 명사, 남성 [주]특히 값비싼 옷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함, 왕상22:10, 대하18:9.
  • 3. 명사, 남성 불성실, 배반, 렘12:1.
  • 4. 명사, 남성 약탈, 사24:16.
  • 관련 성경  /   의복(창24:53, 레13:51, 욥13:28), 옷(창41:42, 레6:11, 겔16:18), 성의(출29:29), 예복(레21:10, 대하34:22), 보자기(민4:6,9,13), 왕복(왕상22:10,30, 대하18:9), 속옷(스9:5, 사59:17), 겉옷(시22:18), 베 옷(겔44:17).

여호와께서...명하신 대로
- 이와 동일한 말은 본 장에서 무려 9번이나 더 나온다(5, 7, 21, 26, 29, 31, 42, 43절).
이같은 사실은 백성들이 성막과 성의(聖依)를 제작함에 있어서 일점 일획도 인간의 생각대로 주관하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시(25:9; 28:4)대로 실행하였음을 보여준다.

1. 출애굽기 28: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찌니.

2. 출애굽기 28:4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찌며.

3. 출애굽기 35:19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공교히 만든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니라.

4. 출애굽기 35:21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5. 출애굽기 39:1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6. 출애굽기 39:41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라.

7. 출애굽기 40:13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8. 레위기 16: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찌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9. 시편 29: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10. 시편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월 31일(금) 출애굽기 36-38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자원하는 예물(출 36:3)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 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 오는 고로.
They received from Moses all the offerings the Israelites had brought to carry out the work of constructing the sanctuary. And the people continued to bring freewill offerings morning after morning.

자원하는 예물(freewill offerings)

자원하는(5071) 네다바(nedâbâh) נְדָבָה 스트롱번호 5071

1. 아낌없는 마음.  2. 복수형  ׃ נדָבוֹת 시110:3.
발음 [ nedâbâh ]
어원  / 5068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6회 사용
  • 1.명사, 여성 아낌없는 마음, 준비된 마음[바치기 위해], 민15:3, 신23:24(23), 시54:8(6).
    • a. 명사, 여성 [주]복수형 ׃נדָבוֹת시110:3.
  • 관련 성경  /  자원(레7:16), 자원제(레22:18, 시119:108, 암4:5), 자의(레22:21), 자원예물(레22:23, 23:38, 신12:6), 예물(신12:17, 대하31:14).
    [부]즐거이(대하 35:8, 호 14:4).
    [동] 드리다(스 1:4, 3:5), 흡족하다(시 68:9), 헌신하다(시 110:3), 드리다(출 35:29), 자원하다(출 36:3, 겔 46:12).





예물(8641) 테루마(terûwmâh) תְּרוּמָה 스트롱번호 8641

1. 헌납.  2. 요제
발음 [ terûwmâh ]
어원 / 7311에서 유래
구약 성경  / 76회 사용
  • 1. 명사, 여성 헌납, 제물, 선물, 출25:2,3, 30:13,14,레7:32, 22:12, 신12:11,17, 삼하1:21,잠29:4
  • 2. 명사, 여성 요제[비교 תְּנוּפָה], 출29:27, 레7:34.
  • 관련 성경 /  제물(출 25:2, 삼하 1:21), 요제물(출 29:27),성물(레 22:12, 민 5:9), 예물(출 36:3, 신 12:17, 겔 20:40), 거제(민 15:19, 신 12:6, 느 10:39), 거제물(민 18:8, 느 12:44), 뇌물(잠 29:4), 봉헌물(말 3:8).





󰃨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 직역하면 '그들은 모세의 앞에서 (예물을) 취했다'이다. 즉 지금까지 모세가 관리하던 예물을 실무자들이 인수함으로써 이제 본격적으로 성막 건축이 실시될 단계에 이른 것이다.

자원하는 예물
-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예물을 드렸음을 뜻한다.
즉 그들은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드렸던 것이다(35:5).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의 참된 의무요(고전 7:22). 헌금의 올바른 자세이다(고후 9:5).

출애굽기 35:5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과 은과

고린도전서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고린도후서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출애굽기 36:3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 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 오는 고로.

신명기 16: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사랑이란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사랑은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하는 대상에게 나눠준다는 것에 그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하는 마음을 값진 예물을 드림으로써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드리는 일에는 주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내 시간을 드리는 것, 내 물질을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거나, 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봅시다.
진짜 사랑하는 대상에게 줄 때 망설이거나 계산하지 않고 기꺼이 내어줍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주는 것은 아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아브라함은 그의 독자 이삭을 지체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어떤 지체함도, 망설임도 없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사랑하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간과 물질 곧 우리의 삶을 드리는 일에 지체하거나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풍성하게 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물질을 드린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하나님께 봉사와 수고를 더하여 드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5-26절을 봅시다. “
(35:25)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왔으며 (35: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으며”
25-26절에 사용된 “슬기로운 여인”이란 말은 “손재주가 있는 여인”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성막을 덮는 천으로 사용될 재료들을 위하여 손수 실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많은 정성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수고와 봉사를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하셨음은 그들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고대 사회에서 여인들이 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그 재능을 주님을 드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섬김을 통하여 성막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큰 일은 아니어도,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일도 주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감당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사실 구약시대 때 인구조사를 할 때는 여자의 숫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남자와 여자를 대우하는 것이 달리 여겨졌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족장과 일반 백성의 차이가 전혀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감동과 주님께 드리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주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29절을 봅시다. “(35:29)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하나님을 섬기는 데 신분, 성별, 빈부의 차이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어서 27절 말씀을 봅시다. “(35:27)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여기 보니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은 대제사장이 입을 거룩한 옷에 사용될 값비싼 보석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보석은 예나 지금이나 값비싼 귀중품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가장 값비싼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그들이 지도자로서 하나님께 가장 큰 헌신을 드리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을 받는 자가 큰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큰 사람입니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의 특징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더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나님께 더 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 삶의 값진 것들을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께 자원하여 더욱 더 드리는 일에 힘쓰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팔찌, 귀고리, 반지, 목걸이 같은 귀중품들도 있었습니다만, 어느 집에나 있을 만한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같은 일상적인 용품들도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값비싼 예물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일상적인 물품들도 함께 받으셨습니다. 따라서 부자가 아니라 평범한 백성들도 원하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예물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작아 보여도 주님께 마음을 담아 드리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드리는 엄청난 양의 헌금보다도 과부가 하나님께 드린 두 렙돈을 보시며 그녀가 하나님께 가장 많이 드렸다고 평가하셨습니다. 렙돈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128분의 1에 해당될 만큼 작은 돈 입니다. 두 렙돈은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50 정도 됩니다. 얼마나 작은 돈입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작다 해도,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작게 보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는 주님을 사랑하는 큰 마음을 담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기뻐 받으시는 것은 예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 중 주님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우리의 소유를 가지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만큼 복된 삶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것과 같이, 우리들도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께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시간과 재물과 모든 삶을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원하는 일군과 자원하는 예물(출애굽기 36:2-7)

홍해를 건너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이 시내산 기슭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불러내셨습니다.  산에 오른 모세는 40일을 지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지켜야 할 율법을 자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주셨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용될 특별한 천막을 지으라 하셨습니다.  이 천막은 거룩한 제사를 위해 구별된 것이라 하여 성막이라 불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전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성막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후 제 2년 1월 초하루에 세워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본문은 이 성막을 짓기 위해 필요한 예물을 드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은 성막을 짓기 위한 물품들을 모세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누가 이 드림에 동참하였습니까?   출애굽기 25장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사람, 마음에 원하는 사람, 마음이 감동된 사람, 자원하는 사람(출35:5, 21 22, 26, 29)이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물품을 가져왔습니다.  모세는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대표으로 세우고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들을 임명하여 성막 짓는 일에 필요한 물품을 모아 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6장에서 본 것처럼 백성들이 예물을 계속하여 너무 많이 가져오는 바람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신이 나고 즐거워 너도나도 자원하는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물품들이 드려졌으면 관리하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모세에게 달려가 ‘이제 쓰고도 남을 물건이 준비되었으니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광고해주세요’ 요청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에서 사용할 물질을 드리는데 이런 감동과 즐거움이 있어야 진정한 드림이 됩니다.   
역대상 29장을 보면, 다윗이 아들 솔로몬이 건축할 성전을 위해 백성들과 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여 예물을 드린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은 ‘오늘날 누가 즐거이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며 백성들을 독려합니다.  그리고 왕과 백성이 즐거이 드림으로 백성들도 기뻐하였고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이 감격하여 하나님께 드린 찬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조상들과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역대상 29:13-16)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이 백성들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성막을 세웠고, 왕국을 든든히 세운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이렇게 준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뵙는 성막과 성전은 이처럼 자원하는 마음과 감동된 사람들의 섬김으로 세워졌으며, 하나님은 백성들의 물질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을 먼저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막이나 성전이라는 건물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이루고 주의 이름으로 일하는 곳에는 물질이 필요하고 그 필요를 위해 우리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눕니다.  

헌금 때문에 혹은 섬김 때문에 마음이 상하거나 믿음을 잃었다는 말을 듣을 때 마음이 아픕니다.  돈 내라는 말 듣는 것이 불편하여 교회 가기 싫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헌금이 마지못해 짐지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예물, 자원하는 예물이 되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질을 드리라고 명하신 것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음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하게 하심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동기와 목적이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자원하는 드림이 됩니다.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드리거나 다른 사람만큼 드리지 못하면 자존심 상할 것 같아 억지로 드림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고백할 때 말로 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말로만 아니라 내 것을 나눔으로 증명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고 정성껏 선물을 준비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라 합니다.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나의 소중한 것을 나눕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정신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은 나에게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을 주셨고 사랑하기 때문에 죄로부터 구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먼저 받은 쪽입니다.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내가 가진 것 중에 일부를 떼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이런 예물이 진정한 드림입니다.    

그런데 자발적인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어떤 기대감으로 드리는 헌금이 있습니다.   내가 아끼는 것을 떼어 하나님께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이 예물 받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부풀려 돌려주시리라 기대하며 드렸다면 그것은 순수한 드림이 아니라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헌금은 뇌물과 같고 투자 이익금 배당이나 투자금 상환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가 드린 헌금보다 더 크게 복을 주시든 아무 것도 주시지 않든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림은 이 다음을 바라보고 바치는 투자가 아닙니다. 

내가 드린 것보다 몇 갑절로 돌려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헌금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고 굳게 믿는다면 금방 부자되기 위해 십의 일이 아니라 소유의 절반과 그 이상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드린 만큼 돌려받지 못해 손해가 나면 하나님께 항의하며 손해배상 청구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여 헌금하는 분들은 하나님께 드림이 무엇인가 그 동기와 목적을 다시 정리하기 바랍니다.

지난 수요일 성경공부반에서 고린도후서 8장, 9장을 공부하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부탁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8:12),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6,7)   사도 바울은 어려움을 만난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돕기 위해 모금하는 연보가 억지가 아니라 참 연보가 되려면 이렇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며 미리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 옳다고 가르칩니다. 

제자들과 함께 전도여행 하시던 예수님을 생각해봅시다.  가룟 유다가 돈 주머니를 맡았다고 했으니 회계담당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행도 활동하는데 재정이 필요했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복음 전하실 때 필요한 경비를 어떻게 마련하셨을까요?   날마다 제자들을 이끌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시는데 어디서 경비를 만들어 오셨을까요?  환자들을 고쳐주시고 치료비를 받으셨을까요?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분이시니 필요한 재정을 기적적으로 만들어내셨을까요? 예수님이 그런 분이셨다면 제자들도 예수님 덕에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주변에는 주님의 사역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베다니 마을에 살던 나사로 남매들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 나사로의 집에 머물며 따뜻한 대접을 받으신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예수 선생님의 얼굴을 보려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는 자기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께 온 마음을 빼았겼습니다.  ‘내가 너의 집에 머무르고 싶다’하실 때 마음이 감동된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며 여행 중에 지친 몸을 쉬게 하였습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 했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혹시라도 세리장 직위를 남용하여 남의 것을 도적질하거나 거짓으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인생관이 달라지고 물질관이 건강하게 변하면서 그의 남은 인생은 가진 재물로 선한 일을 위해 즐거이 사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물질로 봉사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 사는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여인 마리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임 장소를 제공하였고, 집을 기도처로 제공하여 거기 사람들이 모였으며,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를 체험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 여행을 위해 가는 곳마다 사랑으로 협력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보낸 편지들 속에 헌신적인 후원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바울은 재정적으로 약한 교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틈틈이 천막 제조업을 하여 경비를 충당했지만 그 일이 풀타임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나 디모데 등 순회 전도인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선한 일을 위해 물질을 드려 후원했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 공동체의 재정은 이렇게 운영이 됩니다.  받은 사랑과 은혜를 헤아려 감사함으로 드릴 때 그 물질이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되어 더 많은 열매를 얻게 합니다. 우리 교회도 주의 선한 사업을 위해 성도들이 드린 물질을 사용합니다. 이전에도 교회 재정의 일부분을 선교와 구제를 위해 사용해왔지만 만25살을 먹은 우리 교회가 보다 성숙한 교회로서 이웃을 섬기기 위해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물질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여러 기관 혹은 개인들의 필요를 위해 나누었습니다.   아직은 미약한 첫 걸음에 불과하지만 금년에도 그 기준을 따라 작년 결산의 십분의 일을 선교와 구제사업을 위해 사용할 예정입니다.   

 

내 주머니가 넉넉하기 때문에 쓰고 남는 것을 선심쓰며 적선하듯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빠듯하고 모자라는 형편이지만 더 필요한 분들을 위해 기꺼이 나누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눔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수입의 전부를 자신과 가족들만을 위해 소비하는 사람들에 비해 생활비의 일부를 나누어 드리는 헌금생활은 성도들의 살림살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물질을 떼어놓고 헌금하는 성도는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물질을 보다 알뜰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가진 것 전부를 내 필요를 위해 다 써버리면 소비 습관이 방만해질 수 있지만 선한 일을 위해 나누려면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거나 과용하지 않고 꼭 필요한 곳에 지출하는 좋은 습관을 가집니다.  
자연히 소비생활이 건강하게 되고 과소비를 멀리하는 지혜를 터득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청지기의 정신은 이처럼 물질관리 방식을 통해 드러납니다.   내가 수고하여 얻었으니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고 어떻게 사용하든 누구도 상관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청지기의 정신 첫 번째 원리를 망각했습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나를 세상에 보내신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맡아 사용하다가 주인 앞에서 회계보고를 하는 날이 옵니다. 맡겨준 재물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물으시면 청지기들의 대답은 다양할 것입니다.  먹을 것 못 먹고 옷도 마음껏 못 사입으면서 일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몽땅 남겨주고 왔다는 대답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며, 자식들에게 남겨줘봐야 고마운 줄도 모르고 제대로 관리할 줄 모를 것 같아 사는 날 동안 내 마음껏 즐기는데 사용했다는 말도 칭찬받지 못할 것입니다. 많이 맡긴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찾으실 하나님의 계산대 앞에 서게 될 날을 대비하여 이땅에서 성실한 청지기로 책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가정 살림에 궁핍함이 없도록 때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길 기도합니다.  
교우들이 일터에서 땀흘려 일하여 얻은 소득으로 가정 살림이 기름지고  여러분이 드린 고귀한 헌금이 주의 선한 사업을 위해 값지게 쓰여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세우는데 마음이 감동되고 자원하여 즐거이 드렸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교우 여러분이 즐거이 드리는 물질이 우리 교회 1년 살림에 넉넉하여 쓰고도 남음이 있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른 광야에서도 사랑하는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시며 적들의 공격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길 바랍니다.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예물(테루마)와 특별한 소유(쎄굴라)


예물(8641) 테루마() תְּרוּמָה 스트롱번호 8641
1. 헌납.  2. 요제
발음 [ terûwmâh ]
어원 / 7311에서 유래
구약 성경  / 76회 사용
  • 1. 명사, 여성 헌납, 제물, 선물, 출25:2,3, 30:13,14,레7:32, 22:12, 신12:11,17, 삼하1:21,잠29:4
  • 2. 명사, 여성 요제[비교 תְּנוּפָה], 출29:27, 레7:34.
  • 관련 성경 /  제물(출25:2, 삼하1:21), 요제물(출29:27),성물(레22:12, 민5:9), 예물(출36:3, 신12:17, 겔20:40), 거제(민15:19, 신12:6, 느10:39), 거제물(민18:8, 느12:44), 뇌물(잠29:4), 봉헌물(말3:8).



세굴라(çegullâh) סְגֻלָּה 스트롱번호 5459

1. 재산.  2. 부.  3. 출19:5
발음 [ çegullâh ]

어원  / ‘잠가두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여성 수동태 분사형)
구약 성경  / 8회 사용
  • 1. 명사, 여성 재산, 부, 출19:5, 신7:6, 14:2, 26:18, 대상29:3, 전2:8.
  • 관련 성경  / 소유(출 19:5), 특별한 소유(시 135:4, 말 3:17), 기업(신7:6, 14:2), 사유(대상29:3), 보배(전2:8).
                       [형] 보배로운(신 26:18).

시편 135:4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말라기 3: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 이 말은 온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소유권 주장이며 선포이다. 여기서 특별히 이 말을 한 이유는 여호와가 단지 이스라엘에 국한되는 그러한 지역신이나 나라신(國神)이 아니라는 뜻이다(Keil). 그리고 나아가 그러한 전우주적 신께서 특별히 이스라엘을 택한 당신의 백성으로 삼았음을 강조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언약
- 창 6:18 주석 및 출 19:1-6 강해. '성경의 언약'을 참조하라.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 여기에서 '소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굴라'는 평범한 소유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소유물, 즉 '아주 귀중한 소유물' 또는 '매우 값진 소유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언약의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그들은 세상 열방 중에서 하나님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제사장 나라가 되며
- 70인역은 이구절을 '왕 같은 제사장직' (*, 바실레이온 히에라튜마)이라는 의미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민족으로서(4:22) 하나님과 열방 사이를 중재하는 제사장이 됨과 동시에 그들을 다스리는 왕권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다. 그러나 육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그 특권을 상실하였으며(롬 11:20) 오늘날 이 특권은 영적 이스라엘, 즉 하나님을 믿는 성도(집합적으로는 '교회') 모두에게 주어졌다(벧전 2:9). 19:1-6 강해.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의 실패'를 참조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 다른 열방 민족들과는 구별되는, 택함받은 백성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의 뜻을 수행하는 성민(聖民)이 되리라는 뜻이다.


1월 30일(목) 출애굽기 33-35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의 백성으로(출 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If you are pleased with me, teach me your ways so I may know you and continue to find favor with you. Remember that this nation is your people.

"주의 백성"이란 용어가 사용된 구절은 70구절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6구절에 사용된 것으로 소개됩니다(출 5:23, 15:16, 32:11, 12, 33:13, 16).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Remember that this nation is your people.)

주의 백성(5971) 암(ʽam )  עַם 스트롱번호 5971

1. 백성.  2. 복수형 עַמִּים  : 신 28:10. 3. 민족
발음 [ ʽam ]
어원 / 6004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850회 사용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주의 백성은
1.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
2.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 이스라엘 백성
3. 신약에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하며 모든 성도가 고유한 역할을 갖고 있음을 강조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 하나님의 소유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 19:4-5)

성경의 두 중심축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 있다고 하지만 지위 자체가 동등한 것은 아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이스라엘의 존재적 근거가 되며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시는 분이다.
이스라엘이 그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가장 요약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의 본문이다. 본문이 보여주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세 가지이다. 곧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 나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신분’(status)을 보여주며,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 나라는 ‘사명’(mission)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어떤 삶(life style)을 살아야 하는지를 밝혀준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신분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소유’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세굴라’인데, 보물과 같이 귀하게 여기는 귀중품을 의미한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같은 단어 ‘세굴라’를 ‘보석(금과 은)’으로 번역하고 있다(대하 29:2). 하나님의 소유를 언급하면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세굴라’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런 소유 가운데서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 소유 ‘세굴라’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세굴라’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누릴 특권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신 26:18)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시 135:4; 말 3:17)이다. 자신의 소중한 보물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철저히 지킨다. 그렇듯이 하나님의 ‘세굴라’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절대 보호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마치 자신의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다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숨기셨도다”(시 17:8) 눈은 신체 부위 중 작지만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이다. 조그마한 상처가 생겨도 앞을 보지 못하는 큰 문제가 된다. 이스라엘은 비록 작고 보잘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눈동자처럼 소중한 보물을 삼으셨다. 그런 신분의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어질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의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은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6-7) 여기에서 ‘적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메아트’는 숫자가 적다는 뜻이다. 고대사회에서 수가 적으면 약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메아트’의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하나님의 ‘세굴라’가 되었다. 이제 이스라엘의 역사는 더 이상 자신들의 것이 아니고, 그들을 보물로 삼으신 하나님 손에 달려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보물인 ‘세굴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 확립은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의 실제적 근거이다. ‘기뻐하다’의 어원적 의미는 ‘자긍심’ 곧 ‘당당함’이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우리들이 누리는 기쁨은 ‘세굴라’로서의 신분과 그것에 뒤따르는 하나님의 절대보장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외적인 조건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구원의 감격, 그리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당당함이 곧 기쁨의 원천인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 제사장 나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 19:4-5)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베드로를 통하여 교회인 우리들에게 주신 정체성과 동일하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보물 ‘세굴라’로 삼으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함이었다. 사명과 이어지지 않은 은혜와 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라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들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갖고 있다. 그런 사명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곧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모든 백성이 제사장으로서 직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아론의 후손들로 이어지는 특별한 제사장 제도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성전제사 업무를 전적으로 책임 맡은 특수 계층이었다. 그러므로 제사장 나라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적문직으로서의 제사장 직능이기보다는 존재적 의미 곧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명감을 갖고 살아야하는가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제사장 나라 사명을 이해하려면 제사장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제사장을 히브리어로는 ‘코헨’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세우다’ ‘정착시키다’ 등을 의미하는 동사 ‘쿤’에서 파생된 것으로, ‘서있는 사람’ 곧 ‘봉사하거나 돕는 사람’을 가리킨다. 히브리적 관점에서 ‘서 있다’는 것은 봉사하는 자세를 말한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제사장을 ‘봉사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사 61:6)

제사장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제사장의 사역은 두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1) 하나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죄의 재물과 중보기도를 드리는 일이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을 상대하지 않고 백성 대표로 제사장을 가까이 나오게 하셨다. 제사장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물과 기도를 바치게 하신 것이다.

(2)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 축복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과 기도를 드릴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민수기 6:24-26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일이다.

다른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이스라엘의 제사장 나라 사명은 아브라함의 부름에서 이미 예고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주신 약속은, 아브람에게 복을 주어 그의 이름이 창대케 될 것이며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 아브라함의 받은 복으로 말미암아 다른 민족들도 함께 복을 받게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로 확대가 되었으며, 그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들이 해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우선해야 할 일은 중보기도이다. 중보기도는 자신을 넘어서서 남을 위한 관심과 배려의 기도이다. 중보기도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응답이 보장되어 있다(약 4:3). 그러면서 중보기도는 자신을 넘어서는 기도이기에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 지는 새로운 경험을 갖게 한다. 우리들이 영적으로 성숙해지면 성숙한 만큼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고, 많이 본 만큼 더욱 기도하게 되는 거룩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하나님의 뜻은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들이 정체성을 회복한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목적과 뜻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국 중에서 그의 소유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이때까지 이스라엘은 바로 왕이 시키는 대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위에 군림하여 자유를 억압하고 기쁨과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실 계획이셨습니다. 5절의,“내 소유”라는 단어는 (귀중한 보석)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천하보다도 귀중하고 소중한 보석으로 여기시며 사랑하고자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선한 목자가 되사 참 자유를 주셨습니다.

둘째로,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려고 출애굽 시키신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이 하는 일은 크게 세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출 28:30절에 있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위탁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을 합니다.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찌니라."

둘째는, 레 10:11절에 기록된 대로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셋째는, 예배를 인도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제사장들이 주관합니다.

출애굽기 28: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출애굽기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

이렇게 볼 때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제사장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나라)라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만백성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목자의 나라요, 성경선생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계 만민의 목자의 나라요, 성경선생의 나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실로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영광이요, 놀라운 축복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바로 왕의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를 절망과 한숨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귀한 구속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복된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거룩한 백성을 삼고자 출애굽 시키신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세상 모든 백성들과 특별히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거룩이란 도덕적인 순결을 의미하며, 무엇보다도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내면이 거룩하지 못합니다. 출 21-23장을 보시면 노예 백성으로서의 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음란하고 정욕적이었고,감정적이었습니다. 나아가서 이들은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소망을 두지 않았으며, 또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소망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소망을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요, 또 이들을 통해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크신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현재는 천박한 노예 백성이지만 장차는 하나님의 소유된 나라요, 제사장 나라로 보셨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목적과 계획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도 하나님의 소유된 민족과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원대한 계획과 큰 소망을 두시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여러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시고 간섭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전례가 없는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주셔서 전 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 되도록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온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경제적 축복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믿는 자들끼리 싸움질들만 하면서 불순종하니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북한 괴뢰도당을 막대기와 채찍으로 사용하셔서 사랑의 매를 때리셨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감격어린 해방도 주시고, 전쟁도 그치게 해 주셨습니다.
노예 근성과 죄악된 본성들을 뿌리 뽑으시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시고 간섭해 오셨음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즈음 우리 사회는 온갖 부정적인 현상들이 독버섯처럼 사회 구석구석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와 배금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사치와 향락주의가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은 심각할 정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교회들이 잘 감당하지 못하자,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으며, 극기야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던 교회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통계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이 시대는 우리 민족을 하나님의 소유된 나라로 삼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들로 만들어 보려고 하는 뜨거운 열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거룩한 백성들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나라가 성서 한국이 되도록 노력하는 중에 성서적인 가치관으로 철저히 무장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구별되고 거룩한 삶을 보여주는 거룩한 백성들이 계속해서 나와야만 합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하며 무기력하게 신앙생활을 하거나 자기 혼자만 구원을 받은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소유되며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들이 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5절 상반절을 보십시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됩니다. 말씀 제일주의로 생활하면 된다는 말이며, 빌 4:9절의 말씀처럼, 배우고 듣고 본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우리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한 계획과 뜻을 가지시고 애굽을 탈출시키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은 부족하고 연약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소유로 삼고,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와 민족을 이 마지막 시대에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100년 조금넘는 짧은 기독교 역사가운데 이처럼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켜 주실리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전례가 없다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크나큰 축복가운데 왔으며, 근간에는 성장속도가 주춤하고 있기는 하지만 먼저 믿은 우리들이 다시금 하나님 말씀 듣기를 열심내고, 철저히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분명코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일제의 사슬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된지 49년째 되는 광복 기념주일입니다.
모쪼록 이 4부 예배에 참석한 성도님들은 다시한번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남은 생애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며 철저히 순종하겠다는 각오와 결단들이 불일듯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셔서 주님께서 다시오실 날이 멀지않은 이 말세지말에 우리나라를 성서한국으로 만들어 주시고, 5대양 6대주-온 세계를 이끌고 책임져 나가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실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 2:9-10)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본래 이러한 수식어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되는 표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나라와 택하신 족속, 소유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선포하게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 19:5-6)​

주권과 자유를 모두 빼앗긴 채 비참한 노예로 400년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신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열방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언약을 재확인 시키며 그것을 이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부여된 이와 같은 수식어들은 무겁게 메는 멍에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라 함은 하나님이 이들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보호하고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제사장 나라라는 것은 그가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과 열방을 이어 주는 중보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열방 가운데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입니다(창 12:3). 하나님 앞에 제사장,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고 특권입니다.

유대인인 베드로 사도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이러한 언약과 선언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놀라운 수식어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엔 유대인 출신들도 있겠지만 이방인 출신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하나님의 언약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조정되고 그 안에서 열방을 대상으로 확장되어 이제 유대인들이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만이 이 놀라운 은혜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던 이방인들도 새 언약의 중보자인 그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특권을 얻게 된 것입니다. 특히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라는 말씀은 이방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신 족속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도 특별히 두 개의 족속(지파,가문)이 택함을 받았습니다. 유다 족속은 왕의 족속으로, 레위 족속은 제사장 족속으로 말입니다. 유다에게서 왕이 나오고 레위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 직분의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피와 다윗 왕의 계보를 잇는 만왕의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사람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왕이며 제사장입니다. 그들은 장차 그리스도로 더불어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또 세세토록 왕노릇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분의 제사장으로 지금부터 영원토록 그분 앞에서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자 역할, 복음의 통로가 되는 것이 제사장 역할입니다. 이것은 ‘짐’이 아니라 ‘영광’이며, 그것은 힘들게 감당하는 ‘일’이 아니라 ‘특별한 은총’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졌던 이 놀라운 축복과 특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유대민족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로 이동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 국가나 족속들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성경 안에 있는 모든 약속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왕 같은 제사장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와 함께 성경의 모든 약속들이 빠짐없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고 특권을 베푸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요?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주의 백성입니다(시편 79: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우리는 주의 백성입니다.
주의 목장의 양입니다. 그러기에 주께 영원히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신 이유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 삼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이 땅에 80억에 가까운 세계인구가 있지만 그 중에 나 한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나의 죄를 대속하셨으며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기적보다도 더 큰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것만 생각해도 감사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적용
1.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음을 알자!
2. 나를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음을 바로 알자!

사랑의 하나님, 우리는 늘 죄 가운데 살면서 죄와 짝하고 살아갑니다. 이제는 죄를 분간도 못하고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죄에서 자유를 주시고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디모데후서 2장 22~26절

주의 종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실까요?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에 보면, 마치 육상 선수가 계주를 할 때 바톤을 이어받는 것처럼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바톤을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바울)에게서 ‘너’(디모데)에게로, ‘충성된 사람’에게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로 계속 바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에 대해 여섯 가지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3절에 ‘병사’(군인)로, 둘째, 5절에 ‘경기하는 자’(운동선수)로, 셋째, 6절에 ‘농부’로, 넷째, 15절에 ‘일꾼’으로, 다섯째, 21절에 ‘귀히 쓰는 그릇’으로, 여섯째, 오늘 본문에 ‘주의 종’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나’인 줄 믿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즉 주의 종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살펴보면, ‘주의 종’은 크게 세 부류의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첫째, 영적인 지도자를 ‘주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창 26:24), 모세(출 14:31), 여호수아(수 24:29), 갈렙(민 14:24), 다윗(왕하 19:34), 다니엘(단 6:20), 스룹바벨(학 2:23), 욥(욥 1:8)은 주의 종이었습니다. 선지자들도 주의 종이었고(사 20:3),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주의 종이었습니다(단 3:26). 둘째, 그리스도(메시야)를 ‘주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종의 노래가 네 번 나옵니다(사 42:1~7, 49:1~9, 50:4~9, 52:13~53:12).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설교하면서 예수님을 ‘종 예수’라고 표현했습니다(행 3:13). 초대교회도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라고 불렀습니다(행 4:27). 셋째, 모든 그리스도인을 ‘주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시 136:22, 사 41:8), 신약성경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을(행 4:29) 주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전에는 ‘주의 종’을 목회자에게만 적용했는데, 최근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다 같이 주의 종입니다. 따라서 하겠습니다. “나는 주의 종이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관찰하면, 주의 종이 상대해야 될 세 부류의 사림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22절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이고, 둘째는 23~24절에 ‘모든 사람들’이고, 셋째는 25~26절에 ‘거역하는 자들’입니다. 주의 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본문 22절>“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마땅히 주의 종이라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종답게 살지도 않으면서 주님을 부른다면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마 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주의 종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주의 종답게 산다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땅히 주의 종이라면 뭔가 달라야 할 것입니다. 먼저 피할 것은 피하고, 그리고 따를 것은 따라야 할 것입니다. 먼저 피할 것은 ‘정욕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갖고 있으면, 세상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면, 결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먹는 것을 탐했습니다. 아간은 물질을 탐했습니다. 삼손과 다윗은 여자를 탐했습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정욕과 탐심을 이겨야만 합니다. <갈 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고 따라야 할 것은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주의 종은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불의와 불경건이 만연된 세상에 살지라도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화평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불의하게 살면서, 불신앙으로 살면서,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살면서, 불화하고 싸우며 살면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주님은 나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을 부를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교회 생활을 통해 주의 종답게 사는 훈련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홀로 독불장군처럼 주의 종답게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주의 종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3절 이하에 보면, 바울은 스데바나라는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자답게 강건한 믿음을 갖고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종이 되었습니다(고전 16:13~15). 그는 형제와 함께 일하며 수고했습니다(고전 16:16). 형제의 부족한 것 즉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고전 16:17). 형제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고전 16:18). 고린도 교회의 스데바나처럼 주의 종은 교회의 종 즉 성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 아니라, 교인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고후 4: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바울은 예수님의 종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종이 되었습니다.


둘째,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 23~24절>“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여기서 ‘모든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고전 2: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적인 일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가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남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 어리석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구원에 대해, 천국에 대해, 진리에 대해, 성경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은 주의 종들을 세우셨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그들과 변론이나 다툼이나 논쟁을 하지 말고, 온유함과 인내로 잘 가르쳐야 합니다. 따라서 주의 종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가르치는 내용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빌라도 총독 앞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8:37>“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그 때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빌라도 총독처럼 세상 사람들이 진리에 대해 물어볼 때, 주의 종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하다고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온유함과 인내로 잘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학자의 혀를 주셨습니다. <사 50:4>“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하나님은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요 14:17).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해야 합니다. <골 3: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셋째, 온유함으로 훈계해야 합니다.



대속물(代贖物) ransom

예수(Jesus)가 십자가(十字架)의 보혈(寶血)로 만민(萬民)의 죄(罪)를 대신(代身) 씻어 구원(救援)한 일.
대속(代贖) : 대신할 대, 속바칠 속  /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욥기 33: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키시는 근거가 언급된다. 영원한 사망의 '구덩이'(22절)에서 구원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사람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대속물을 보시고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속물'(*, 코페르)에 대해서는 '덮다', '화해하다', '대속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파르'(*)에서 파생되었으며, '구속하다'를 뜻하는 '파다'(*, 개역성경은 '건져서'로 번역함. 시 49:7 참조)와 연관된 속량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대속의 개념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는 제사 의식과 관련이 깊다(레 1:4;4:4;16:21).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범죄에 의한 처형이 있기 전에 그 몸값을 지불하여 자유의 몸이 되게 하는 수단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그를 놓아주라'(개역 성경은 '건지라'로 번역함)는 하나님의 명령이 '대속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의미를 이해하는 빛이 된다.

대속물(3724) 코페르(kôpherכֹּפֶר 스트롱번호3724

1. 마을.   2. 역청. 3. 고벨화
발음 [ kôpher ]
어원  / 3722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3회 사용
  • 1. 명사, 남성 마을, 부락, 촌락, 삼상6:18
  • 2. 명사, 남성 역청, 송진, 창6:14.
  • 3. 명사, 남성 고벨화[작은 관목], 아1:14, 4:13.
  • 4. 명사, 남성 속전, 몸값, 구속의 대가, 출21:30,30:12.
  • 관련 성경 /  속죄금(출 21:30), 속전(출 30:12, 민35:31,32), 마을(삼상6:18), 대속물(욥33:24), 보상(잠6:35), 고벨화(아1:14), 뇌물(암5:12). [동]칠하다(창6:14), 갚다(삼상12:3).


대속물
λύτρον, ου, τό 스트롱번호3083

1. 속전.  2. 석방금.  3. 마 20: 28
발음 [ lütrŏn ]

어원  / 3089에서 유래
  • 1.  속전, 석방금, 마 20: 28, 막 10:45.
  • 관련 성경  /  대속물(마20:28, 막10:45).



우리는 주의 백성

 시편 79편은 74편과 동일하게 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공격으로 인해서 BC 586년의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의 파괴를 배경으로 지은 시입니다. 이 시는 아삽의 후손 중 하나가 지은 것으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민족적인 애가시입니다.

1. 시인은 더럽혀진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 토로합니다(1-4)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시 79:1)

여기에 나오는 이방 나라들은 어디인가? 이 시의 저작 배경을 보아야 합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BC 586년으로 본다면 이방 나라들은 바벨론입니다(렘 39:5-6, M. Henry).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고 성전의 기물들을 다 탈취해갔습니다.

계속해서 2-3절을 보면 그들의 악행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시 79:2-3)

그들은 바벨론의 군대를 말합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유다에 와서 그 백성들을 참혹하게 학대했습니다. 주의 종들, 주의 성도들은 모두 유다 민족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이 유다 민족을 죽이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고 땅의 짐승에게 주고,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습니다. 이는 다 죽였다는 말입니다. 아주 참혹하고 철저하게 바벨론이 유다민족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참혹한 일을 저질렀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시 79:4)

유다 민족은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었습니다. 또 유다를 에워싼 바벨론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공격으로 인해 유다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유다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랑하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방 나라들에게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로마의 카타콤이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대한 박해의 유적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 카타콤 안의 길이는 약 800km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500만 명의 성도들의 시체가 매장되었습니다. 유명한 영화 ‘벤허’가 지은 교회당 역시 이곳의 중앙에 있다고 합니다. 또 벽에는 닻이나 물고기 등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황제들이 초대교회를 철저하게 박해를 했습니다. 특히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경우가 흔히 발생했습니다. 또 양의 가죽을 쓰고 사냥개, 맹수들의 우리에 들여보내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끊는 가마에 집어넣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검투사들과 싸우다가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를 정복해 버렸습니다.

2.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합니다(5-13)

시인은 여호와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시 79:5-6)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주변 국가들이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주변 국가들에게 벌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 유다를 조롱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교부신학자 어거스틴은 여러 제자들을 두었습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은 한 제자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상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거스틴은 화가 나서 그의 방으로 달려가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깊은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분노와 사려 깊지 못한 태도를 회개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 제자 앞에 엎드려 목을 내밀고 “교만한 어거스틴아”하고 3번만 목을 밟고 넘으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이처럼 악한 것입니다. 믿음은 잘되는 것을 축하해주고 안되는 것은 같이 슬퍼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그러나 유다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의 길에 있을 때에 주변 나라들은 위로하고 도와야 했는데 그렇지 않고 조롱하고 비난하여 그들의 교만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시 79:7-8)

바벨론이 유다를 삼키고 황폐하게 했습니다. 시인은 유다 조상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긍휼로 속히 영접해 달라고 합니다. 여기에 쓰인 속히(마헤르)라는 단어는 ‘급히, 빨리, 서둘라’는 의미입니다. 또 가련하게 되었다(달로누)는 칼완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가난하게 되었다, 여위게 되었다, 허약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매우(메오드)라는 단어가 있어서 아주 심하게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시 79:9)

시인은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즉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서 유다를 도우신 것입니다.

또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해 건지시고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사실상 유다가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에 이르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유다의 죄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벨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유다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시 79:10)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피를 흘리고 파괴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이방 나라들은 유다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때에 유다의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라고 이방인들이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조롱하고 비웃은 이방인들에게 보여 달라고 합니다. 무엇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유다를 용서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동시에 바벨론에는 심판을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시 79:11-12)

갇힌 자의 탄식이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의 탄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신음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능력을 따라 보존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즉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파멸에 이를 때 조롱하고 비웃던 이웃들에게 하나님께서 7배나 갚아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7배는 완전수입니다. 이는 유다를 조롱하던 이웃 나라들에게 하나님께서 완전한 심판을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 원한에 대한 복수를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자신의 심판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모든 사람이 각각 서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바로 그리스도가 법정의 판사로 서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 4:1)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날에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시 79:13)

이제 시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관계를 찬양합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목장의 양입니다. 유다는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완성하실 것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고 패망한 유다의 죄를 속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는 유다를 조롱한 이웃 나라들에 대해 심판해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건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고 영생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의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은혜를 전파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5:23  / 주의 백성은 주의 구원을 기다리는 백성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출애굽기 15:16  /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 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출애굽기 32:11-12  /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출애굽기 33:13  / 주의 백성은 주의 길을 아는 백성, 주의 은총을 입은 백성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출애굽기 33:16  / 주의 백성은 주께서 함께 행하시는 백성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월 29일(수) 출애굽기 30-32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출 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But now, please forgive their sin--but if not, then blot me out of the book you have written.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犯罪(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冊(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겔18:4 모든 령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령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령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령혼이 죽으리라
겔18:20 범죄하는 그 령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주의 책에서(5612) 세페르(çêpher) סֵפֶר 스트롱번호 5612

1. 집필.   2. 글을 읽거나 쓸 줄 아는 것. 3. 학문 /
발음 [ çêpher ]

어원 / 어미활용 סִפְרִי, 복수 סְפָרִים, 복수 연계형 סִפְרֵי, 5608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85회 사용
1. 명사, 남성 집필, 저술, 저서.
2. 명사, 남성 쓴 것, 기록된 것.
3. 명사, 남성 책, 출17: 14.
  • 관련 성경
    ☞책(출32:32, 신28:58, 시56:8, 렘36:13), 두루마리(민5:23), 증서(신24:1, 렘32:10,44),편지(삼하11:14, 왕상21:8, 에9:30), 역대지략(왕상14:19, 왕하8:23, 느12:23), 글(왕하5:6, 렘29:29, 나1 : 1), 조서(에1:22, 3:13, 8:10), 일기(에2:23, 6:1, 10:2), 학문(단1:4,17). [동] 기록하다(삼상10:25, 느7:5).

모세의 기도(출애굽기 32:30-35)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贖罪)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報應)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호흡을 할 때 육체가 힘을 얻는 것처럼 기도할 때 우리 영혼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숨을 못 쉬면 육체가 죽는 것처럼, 영혼도 기도하지 못하면 죽어갑니다. 
우리 영혼은 기도하면 살고 기도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기도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신앙생활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며,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 변화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없이 나 혼자 인생을 꾸려갈 수 있다는 그런 교만한 마음입니다.  
오직 기도생활의 변화가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모세의 기도생활에 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기도생활이 더 풍성해지고, 기도의 열심이 불길처럼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모세는 80세에 부름 받아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고, 40년간 광야에서 이끌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기적입니다. 인간 모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였고, 모세의 기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바로와의 싸움도, 홍해를 건너게 한 것도,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한 것도, 하늘에서 메추라기가 내려오게 한 것도, 끊임없는 전투에서 승리하게 한 것도 모두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 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 가운데 모세가 기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 기다리던 백성들이 종교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애굽인들이 풍요의 신으로 숭배하는 황소 우상 아피스(Apis)를 본떠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40일을 못 기다리고, 여전히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 여전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아래 있으면서 눈앞에 시내 산을 보면서 그들은 아피스 우상을 섬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모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두 가지였습니다. 대노(大怒)한 것과 기도(祈禱)한 것입니다. 먼저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우상의 난장판을 보고 대노합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을 징계합니다. 그는 우상에 빠졌던 백성들을 징계하는 의미로 금송아지를 갈아서 가루를 물에 타서 먹입니다. 금송아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갈면 갈아지는, 물에 타서 마시면 그뿐인 아무것도 아닌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에 연루된 자 3천명을 처형합니다.  

그런 후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보기도요 속죄의 기도입니다.  3차에 걸쳐 기도하는데... 생명을 걸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1차기도(출32:11~14), 2차기도(출32:30~35), 3차기도(출33:12~16)입니다. 본문은 모세의 2차기도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 모세의 기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는, 속죄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본받을 기도의 모델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배반하고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현실을 보았을 때 모세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모세는 이제까지 드려왔던 희생 제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커다란 배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잠재우기에 역부족임을 느꼈습니다.  염소와 소 같은 짐승의 피로는 이스라엘이 범한 죄를 없애기에 충분치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이때 그의 머리속을 스치는 한 가지 해결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犧牲)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달려가 이스라엘백성을 위하여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요 속죄의 기도입니다.  

(30절)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贖罪)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의 마음은 온통 “속죄(贖罪)”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모세의 기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32절)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모세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백성을 위해 우상을 조각해주는 그의 형 아론과는 너무 다름을 보게 되지요?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버려 주시라니... 내게 주신 공동체와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지도자의 마음이 느껴지죠? 고개가 숙여 집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바로 된 지도자입니다. 바른 지도자가 전체를 살립니다. 백성 대신 사죄하는 그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가지 욕심을 낸다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면 이시대의 주의 종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주신분이 있을 것입니다. 죄 앞에 철저하게 대처하는 태도와, ‘나를 지옥 불구덩이에 던져 넣더라도 그들을 용서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오늘날이라고 없겠습니까? 그런 주의 종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성도여러분, 죄 지은 인간은 모두 속죄의 필요성을 마음속 깊이 자각합니다. 모든 나라의 역사를 특징지어온 문화에는 속죄 제사나 속죄 의식을 거행하는 제사들이 꼭 나타납니다. 인간들은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자기의 죄를 덮어버리는 속죄의 필요성을 느껴온 것입니다. 만일 법을 파괴하거나 죄를 짓고 그것을 회개하거나 속죄의 의식을 거행하지 못했을 때.. 인간들은 그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심한 정신적, 영적 번민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기의 죄를 느끼면, 깊이 느낄수록... 십자가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대답은 ‘No' 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3절) 

모세는 백성들의 죄에 대하여 회개하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중보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No' 였습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통곡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의 기준을 세우시고 이에 따르도록 명령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좋은 뜻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도 기도를 받으시든 아니면 거부하시든지 이것은 엄연히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죄를 범하고도 기도로 다 사함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방자한 생각인지요. 기억하십시오.  죄를 범했을 때 댓가를 처절하게 치루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고, 감사도 모릅니다. 무릎을 꿇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이유가 뭡니까?  내 계획대로 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내 인생이 나의 걸음대로 되었다면... 누가 지금 이렇게 예배하는 자리에 앉아 있겠습니까? 나의 생각대로 되지 않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나를 택해서 이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할 뿐입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된 것이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 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꿈을 선택합니다. 내 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선택한 사람이 오늘도 기도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희생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는 것은 역부족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타인의 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백성을 위한 모세의 마음은 아름다우나 그가 백성들의 죄를 대신할 자격은 없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순결한 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으며,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대속의 희생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피의 무용성을 몰랐고, 때가 이르러 하나님 앞에서 한 점의 얼룩도 없는 죄없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흘리실 예수님의 피만이 죄를 속할 수 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일체화 기도. 동일화 마음’입니다.
 
백성의 죄를 ‘나의 죄’로 여기는 마음. 나와 백성은 하나라는 마음.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성육신. 인카네이션’의 마음입니다. 
백성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버리는 모세의 지도자 된 마음을 보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내어 주었는지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왜 목사가 힘든 줄 아십니까? 왜 사람들이 목사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돈 때문이 아닙니다. 두 가지입니다.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은 오랜 시간 연단을 받는 것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긍휼함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내(忍耐)와 사랑(愛)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목사의 직분입니다. 죄인을 품에 안고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마음이 기본입니다. 얼마나 연단을 받아야 이런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그러니 누가 이 일을 쉽다고 하겠습니까? 저도 참 부족한, 자격 없는 목사입니다.

(요일5:14~15)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여러분, 이렇게 분명한 약속이 있는데 어찌 기도 응답에 대해 의심할 수 있습니까?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무시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기도를 듣고 계시는 게 분명한데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먼저 당연히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면 그만큼 내 인생이 풍성해집니다. 내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기도의 특권을 이웃을 위해서도 사용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를 성경에서는 ‘도고’(禱告)라고 부릅니다.  

(딤전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 ”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도고’라는 표현보다 중보기도라는 말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이 도고가 깊어지면 속죄기도까지 가는 것입니다.  중보기도가 뭡니까?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합니다. 교복을 사는데, 친구가 걸립니다. 너무 가난해서 교복 살 형편이 안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요청합니다. “아빠, 친구가 가난해서 교복 못사는데 한 벌 사서 주시면 안 되나요?”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부탁하는 겁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해야 됩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모든 문제들에 관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지경을 넓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우리의 사명이며 이웃에 대한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의 폭이 신앙의 폭입니다. 이웃을 위한 기도의 크기가 신앙의 크기입니다. 신앙의 성숙도는 바로 이런 기도로 평가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꼬마가 말썽을 피워 부모님이 소풍을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소풍날이 다가오니까 안쓰러워서 한번만 봐 줄 테니까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며 소풍 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런데 이 꼬마가 좋아하질 않고 오히려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늦었잖아요. 벌써 하나님께 그 날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우리의 기도 생활이 이 꼬마처럼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기적인 기도가 우리에게 익숙한 기도입니다. 도무지 남을 위해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는 특권이며 사명입니다. 기도하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나 자신을 위해 기도에 힘써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기도의 지경을 넓혀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큰 기쁨과 감격, 보람, 그리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지경을 넓히면 축복의 지경도 넓혀집니다. 아무쪼록 모세와 같이 넓고 큰 기도 생활로 나 자신도 승리, 내 주변에도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는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사이에 불안함을 느끼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탈출 32,1-6) 하느님은 이에 진노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32,10)

여기서 늘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우리가 믿는 것과 완전히 다른, 화가 가득하고 복수하시려는 하느님 모습이 우리를 당황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분을 참지 못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 화를 내십니다. 레위인들이 이 일로 자기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3000명이나 죽였다는 이야기(32,25-29)는 우리가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지 않고 우리 입맛에 따라 하느님 상을 조작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식구를 잃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모세의 중재 기도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그들과 함께 가시도록 하느님을 여러 번 설득합니다.(32,11-14,31-34; 33,12-17; 34,8-9) 모세가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라고(32,33) 말씀드리지만, 주님은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32,34)는 말로 분명히 거부하십니다.

다시 모세가 하느님을 달래기 시도합니다.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저에게 ‘이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와 함께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께서는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뿐더러, 너는 내 눈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알고, 더욱 당신 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신 백성이라는 것도 생각해 주십시오.”(33,12-13)

모세는 주님께 애교를 부립니다. 자신이 더욱 주님 눈에 들게 해 달라는 청은 모세가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려는 밑밥입니다. 그의 본래 관심사는 그가 말미에 살짝 언급하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번에도 “내가 몸소 함께 가면서 너에게 안식을 베풀겠다”(33,14)고, 즉 모세만을 언급하십니다. 다급해진 모세가 자신의 의중을 단도직입으로 말합니다. “당신께서 몸소 함께 가시지 않으려거든, 저희도 이곳을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제 저와 당신 백성이 당신 눈에 들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닙니까?”(33,15-16) 모세는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늘 함께 이야기하지만 하느님은 계속 모세만을 언급하십니다.(33,17)

모세가 주님을 뵌 뒤(33,18-23) 재삼 간청합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34,8-9) 그제야 주님은 ‘너의 온 백성’, ‘너를 둘러싼 온 백성’, ‘너희’라는 말로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들이시고 모세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십니다.(34,10-28)

우리는 아픈 이들이나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모세는 입술과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기도합니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34,8) 겸허한 자세로 하느님께 애원합니다.(32,11)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면서 타인을 단죄하는 모습에서가 아니라 타인의 잘못까지 품어 안는 우리의 자세에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실 것입니다.





1월 28일(화) 출애굽기 27-29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림과 두밈(출 28: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찌니라.
Also put the Urim and the Thummim in the breastpiece, so they may be over Aaron's heart whenever he enters the presence of the LORD. Thus Aaron will always bear the means of making decisions for the Israelites over his heart before the LORD.

판결 흉패( 호쉔 함미쉬파트) חֹשֶׁן הַמִּשְׁפָּט

판결(4941) 미쉬파트(mishpâṭ)  מִשְׁפָּט 스트롱번호 4941

1. 판단.  2. 레 19:15. 3. 욥 9:32
발음 [ mishpâṭ ]
어원  /  819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424회 사용

1. 명사  판단, 판결, 사려분별, 의견.
2. 명사 정당한 것, 합법적인 것, 법에 따른 것, 권리, 권한, 신16:19, 27:19, 32:4, 삼상8:3, 잠16:11, 렘22:15, 23:5, 33:15,46:28.

8199.  שָׁפַט 스트롱번호 8199

1. 심판하다.  2. 분사형 שׁוֹפֵט : 재판장. 3. 저주하다
발음 [ shâphat ]
구약 성경  / 142회 사용



흉패(2833) 호쉔(chôshen) חֹשֶׁן
스트롱번호 2833

1. 장식. 2. 출 28:15이하. 3. 39:8이하
발음 [ chôshen ]
어원  / ‘내포하다’ 또는 ‘번쩍이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임
구약 성경  / 25회 사용
  • 1.  명사, 남성 장식[열두 개의 보석이 박힌 대제사장의 흉패에 대해 사용], 출 28:15이하, 39:8이하, 레 8:8.
  • 관련 성경  /  흉패(출 25:7, 39:8, 레 8:8).


출애굽기 28: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찌니라.

레위기 8:8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에스라 2:63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느헤미야 7:65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우림 (Urim) : 빛나다, 비추다
우림은 히브리어로 '빛나다' 또는 ‘비추다'라는 뜻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빛과 지혜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됩니다.

'우림'(’Ûwrîym. אוּרִים)은 '빛'을 뜻하는 '우르'( ’ûwr. אוּר)의 복수로 '빛들'이란 말이다.
'둠밈'(*)은 '온전함'을 뜻하는 톰(*)의 복수형으로 '완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אוּרִים 스트롱번호 224

1. 광채. 2. 광휘[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은 보석에서 발산되는 빛으로서 신탁의 의미.
발음 [ ’Ûwrîym ]
구약 성경  /  7회 사용
  • 1. 명사, 남성 광채.
  • 2. 명사, 남성 광휘[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은 보석에서 발산되는 빛으로서 신탁의 의미.
문법설명 / 217의 복수형

  • 관련 성경  /  우림(삼상 28:6, 느 7:65).

אוּר 스트롱번호 217

1. 빛.  2. 밝은 곳. 3. 계시
발음 [ ’ûwr ]
어원  / 215에서 유래
구약 성경  / 6회 사용
  • 1. 명사, 남성 빛.
    • a. 명사, 남성 밝은 곳, 동방, 사 24:15.
    • b. 명사, 남성 계시, 민 27:21, 삼상 28:6.
  • 2. 명사, 남성 불꽃, 사 50:11.
문법설명 / 복수 אוּרִים

  • 련 성경  /  불사르다(겔 5:2). 불꽃(사 50:11), 동방(사 24:15), 불(사 31:9, 44:16).



둠밈 (Thummim) : 완전하다
둠밈은 히브리어로 '완전하다'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신성한 결정을 내리거나 예언을 이끌어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תֻּמִּים 스트롱번호 8550

1. 진리.  2. 70인역에서 אוּרִים로 번역됨.
발음 [ Tummîym ]
구약 성경  / 5회 사용
  • 1. 명사 진리.
    • a. 명사 [주]70인역에서 אוּרִים로 번역됨.
문법설명  / 8537의 복수형

  • 관련 성경  /  둠밈(출 28:30, 신 33:8, 레 8:8, 스 2:63).

고결함, 차다, 충만한
(톰. tôm) תֹּם 스트롱번호 8537

1. 고결함. 2. 차다. 3. ׃ כְּתֻמָּם 충만한

발음 [ tôm ]
어원 / 8552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3회 사용

관련 성경  /  온전함(창 20:5,6), 충실(욥21:23), 성실함(시7:8), 완전함(시78:72, 26 : 1), 온전한 자(잠2:7), 정직한 자(잠10:29),성실(시25:21), 바른길(잠10:9). [부] 항상(출28:30), 온전히(왕상9:4, 사47:9), 완전히(잠20:7), 성실히(잠19 :1, 28:6).


종교 개혁자 루터(Luther)는 ‘우림’과 ‘둠밈’을 '빛과 공의'라고 번역합니다.

우림과 둠밈의 모양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에 우림과 둠밈 중에서 하나는 선택하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을 묻고 찾고 결정하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려고 할 때 어떤 방법으로 결정을 합니까?

결정의 어려움 때문에 심지어 점을 치는 무당을 찾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또는 결정을 위한 기도를 하고 성경을 펼쳐서 그 펼쳐진 내용에 따라 방향을 찾는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방법이 얼마나 어리석은 방법인가를 교훈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매우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려고 성경을 펼쳤는데 “마태복음 27:5”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그러자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다시 성경을 펼쳤더니 “누가복음 10:37”이 눈에 뜨였다고 합니다(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모든 일은 삼 세 번이지 하며 또 다시 성경을 펼쳤더니 이번에는 “요한복음 13:27”이었다고 합니다(속히 하라).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우림과 둠밈이라는 도구에 의해서 결정을 할 수 있었다면 오늘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동반되는 거룩한 삶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경건하고 거룩한 믿음의 길에서 방황하지 말고 꿋꿋하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림(Urim)과 둠밈(Thummim)

우림과 둠밈은 매끈한 한쌍의 돌로 만든 제비 뽑기를 위하여 사용하는 거룩한 도구라고 하겠습니다.
대제사장의 가슴에 부착된 판결 흉패 안에 들어 있는데, 이중 하나를 택해 “yes”와 “no”로 하나님의 뜻을 판별했다.

우림 (Urim) : 빛나다, 비추다

우림은 히브리어로 '빛나다'나 '비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빛과 지혜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28:30에서 제사장 아론이 가슴판에 달고 다니는 '우림과 둠밈'은 신의 뜻을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둠밈 (Thummim) : 완전하다

둠밈은 또 다른 히브리어 단어로 '완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용어도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신성한 결정을 내리거나 예언을 이끌어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8:30에서 언급된 가슴판은 우림과 둠밈을 함께 달고 다니는데, 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완전함을 상징하며,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의 의미

이 두 용어는 성경에서 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신의 지혜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빛과 완전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믿음과 지혜를 갖춘 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로 이해됩니다.

성경의 이러한 신비로운 용어들은 종종 해석의 여지가 있어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림과 둠밈은 성경 내에서 빛과 완전함, 지혜와 결정력에 대한 신비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이러한 용어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믿음과 지혜를 추구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우림과 둠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
- '우림'(*)은 '빛'을 뜻하는 '우르'(*)의 복수로 '빛들'이란 말이다.
'둠밈'(*)은 '온전함'을 뜻하는 톰(*)의 복수형으로 '완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루터(Luther)는 이것을 '빛과 공의'라고 번역했는데, 현대 대부분의 번역은 히브리어 그대로 '우림과 둠밈'으로 옮기고 있다.
이의 크기나 모양, 재료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아마 매끈한 돌이나 혹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주사위 모양 갔았던 것같다.
여하튼 그것의 용도는 명확한데, 즉 그것은 구약 수여 초창기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그 뜻의 가부(可否)를 결정하는 일종의 '제비' 도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삼상 28:6). 따라서 대제사장은 중요한 판결이 있을 때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는 흉패를 입고 그곳에 참석하여 가부(可否)를 제비 뽑는 형식으로 뽑아 문제를 해결하였던 것이다(레 8:8; 민27:21;신 33:8;삼상 28:6;스 2:63;느 7:65).
한편 우림과 둠밈의 뜻인 '빛과 완전'은 하나님의 성품과도 상통하는데 두 단어의 첫 자가 각각 히브리어 알파벰의 처음(*)과 마지막(*)자라는 점은 하나님이 자신을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계 1:8, 17; 21:6;22:13)이라고 계시하신 사실과 관련해 볼 때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구약 시대 초창기에 우림과 둠밈 등을 사용하여 '제비'를 뽑아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 기계적인 방법은 그 이후 선지자들의 예언 활동이 증대됨에 따라 점차 그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은혜의 시대'(고후 6:2)에는 이같이 제비 뽑는 방식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기록된 성경 말씀과 성령의 조명 등을 통하여 직접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요 16:13).

우림과 둠밈(Urim and Thummim)은 하나님의 뜻을 판별하는 제비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던 것으로, 높은 성직자들이 흉패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었다. 어떤 모양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림과 둠밈에 대한 말의 의미와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주장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은 우림을 ‘빛’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오르אוך  빛)에서 온 것으로, 둠밈은 ‘완전하다’를 의미하는 (타맘. תמם / 완전하다)에서 온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말 개역 개정과 새 번역 성경의 각주에서 우림과 둠밈은 “빛과 완전함”으로 번역한다.
이 두 단어를 이어서 표현하면 “완전한 빛”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빛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신의 조명, 계시’로 보아 ‘완전한 조명’으로 볼 수 있다.

우림과 둠밈의 어근을 서부 셈족어가 아닌 아카드어나 아랍어, 또는 이집트어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으나 근거가 희박하다.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 ‘예’와 ‘아니오’로 답변을 듣게 된다.

둠밈은 ‘무죄의’라는 뜻으로 볼 수 있고,
우림은 ‘저주하다’를 의미하는 어근 (아라르אראר  / 저주하다)로 본다면 ‘저주 받은, 유죄의’로 이해함으로 우림과 둠밈의 기능을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1]


저주하다(아라르.  ’ârar) 
אָרַר     스트롱번호 779

1. 미완료형 יָאֹר
2. 니팔형: 수동태 분사형 נֵאָרִים
3. 피엘형: אֵרַר
발음 [ ’ârar ]
구약 성경 / 63회 사용

관련 성경  / 
저주하다(말 2:2, 창 12:3, 민 24:9), 저주받다(창 3:14, 시 119:21, 말 3:9).
                    [명] 저주(말 2:2, 렘 48:10, 민 5:18).

우림과 둠밈은 기록이 나와 있지 않다.
그나마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구약 성경뿐이다.

출 28:19-30 부분에서 우림과 둠밈을 대제사장의 흉패 안에 보관하라고 했으므로 그것들의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것을 유추 할 수는 있다.
우림과 둠밈의 재료, 모양 또한 성경에서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우림과 둠밈의 기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은 사무엘상 14:41이다.
이 구절 중에서 실상이라는 것이 사실 둠밈으로 번역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사울이스라엘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컨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Then Saul prayed to the LORD, the God of Israel, "Give me the right answer." And Jonathan and Saul were taken by lot, and the men were cleared.

실상(8549) 타밈(tâmîym) תָּמִים 스트롱번호  8549

1. 완전한.  2. 온전. 3. 건전한
발음 [ tâmîym ]
어원  /  여성 תְּמִימָה, 8553에서 유래
구약 성경  /  91회 사용
  • 1. 형용사, 남성 완전한, 완벽한, 욥36:4, 37:16, 시19:8(7)
  • 2. 형용사, 남성 온전, 전체, 레3:9, 25:30, 수10:13.
  • 3. 형용사, 남성 완전한, 건전한, 전체의.
  • 관련 성경
    ☞정결한(겔43:22), 흠 없는(출12:5, 민6:14, 겔46:6), 완전한(창17:1, 삼하22:26, 시101:2), 진실한(삿9:16), 안전한(삼하22:33), 온전한(욥12:4). [부] 종일토록(수10:13), 진실로(욥36:4), 정직히(시84:11). [명] 진실(삿9:19, 시15:2), 실상(삼상14:41).

41. 사울이 여호와께 말씀드렸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완전하게 알려 주십시오.” 그랬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제비 뽑혔다.
백성은 벗어났다.

개역개정,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하건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새번역,41 사울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었다. ㉣"오늘 저에게 응답하지 않으시니, 웬일이십니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 허물이 저에게나 저의 자식 요나단에게 있다면 우림이 나오게 하시고, 그 허물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다면 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그러자 요나단과 사울이 걸리고, 백성들의 혐의는 벗겨졌다. / ㉣칠십인역과 불가타를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저에게 둠밈을 보여주십시오'

 
우리말성경,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진실을 알려 주십시오.” 그러자 요나단과 사울 쪽이 뽑혔고 백성들은 벗어나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41 사울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분명히 알려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렸더니, 요나탄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풀려났다.


새번역 / 사울이 주 이스라엘하나님께 아뢰었다. "오늘 저에게 응답하지 않으시니, 웬일이십니까? 주 이스라엘하나님, 그 허물이 저에게나 저의 자식 요나단에게 있다면 우림이 나오게 하시고, 그 허물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다면 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그러자 요나단사울이 걸리고, 백성들의 혐의는 벗겨졌다.

이 부분에서 마소라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번역이다.
하지만 마소라 본문은 성경을 필사하던 서기관이 동일한 단어가 두 행의 끝부분에 나타날 때 이미 필사한 것으로 착각해 그 행을 빼먹고 넘어가서 해당되는 행이 사라지는 서기관의 실수의 결과가 남아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칠십인역을 따라 사라진 부분을 재 구성하여 채워넣고 있고 새번역 성경이 이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 허물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다면 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이 구절에서 사울은 자신과 요나단에게 죄가 있는지 아니면 백성들에게 죄가 있는지 판결을 내리기 위해 우밈과 둠밈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주사위와 같은 물건을 던져서 그 결과로 신의 뜻을 구별하는 점술의 일종에 사용되는 도구였을 것이다.
이 본문을 유추해 보자면 우림의 의미는 아마도 저주받은 혹은 유죄 라는 가능성이 높다.

민수기 27:21에도 용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림과 둠밈을 던져서 점술을 행하는 권한이 제사장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여호수아는 엘르아살 제사장 앞에 서고, 엘르아살은 그를 위해 여호와 앞에서 우림의 판결을 여쭙게 해라. 엘르아살의 말에 따라 나가게 하고, 엘르아살의 말에 따라 들어오게 해라. 여호수아도, 그와 같이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도, 온 무리도 그렇게 해라.”

새번역 / 그는, 상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가서 설 것이며, 여호수아를 대신하여, 엘르아살이 우림의 판결을 사용하여 나 주에게 여쭐 것이다. 그러면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있는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총회는 그의 말에 따라서 나가기도 하고, 그의 말에 따라서 들어오기도 할 것이다."

사무엘상 14:1-23, 승리의 두 가지 조건

유엔군 16개국의 참전

부산의 남구 대연동에 가면, 유엔 묘지가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한국군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남쪽으로 밀렸을 때, 유엔에 속한 16개의 나라들이 군대와 전쟁 물자를 지원함으로 인해 패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부산의 유엔 묘지에 가면 당시 참전했던 16개국의 깃발이 세워져 있으며, 위기의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에 도움을 준 국가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머나먼 우리나라까지 온 16개국의 병사들은 승리에 대한 믿음과 자유에 대한 용기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습니다

군사의 수나 무기의 상황을 볼 때, 이미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패배한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주실 징조를 구하며 용감하게 블레셋을 기습하였습니다. 요나단이 기습하며 외쳤던 믿음의 고백이 오늘 우리에게도 큰 은혜가 됩니다.

1.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요나단은 먼저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 블레셋에게 나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6절과 같이 외칩니다.

사무엘 상 14: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비록 객관적인 전력을 볼 때는 승리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블레셋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뒤로 기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가 있지만, 요나단은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다시 언덕을 올라가 블레셋 군대로 공격해 나아갑니다. 뻔히 보이는 노출로 생명의 위협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임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백성들을 위하여 오늘도 일하심을 기억하십시오.

2.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었던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적군인 블레셋을 자신의 손에 넘기셨음을 믿었습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사무엘 상 14:10,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골짜기를 건너오는 요나단을 보며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서 덤벼 봐라"라고 외친다면,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요나단의 손에 넘기신 증거라고 믿었습니다. "넘기셨다"(נתן, 나탄)는 말은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요나단의 손에 맡기셨기에 요나단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입니다. 즉, 요나단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승리를 주실 것임을 믿었던 요나단은 담대하게 블레셋 군대의 정면을 돌파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하루를 우리의 손에 넘기셨고 세상을 우리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주님 뜻대로 살아가며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며 정복해 갑시다. 반드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과 용기가 승리의 조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울과 이스라엘은 앉아서 객관적 전력만을 따지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블레셋에게 정면으로 전진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시종에게 블레셋의 부대로 "건너가자"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외침은 용기의 표현이며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의 외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적들을 자신들의 손에 넘기실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적들에게 전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오늘도 담대하게 세상 속에 나아가 승리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소서.
  • 부모와 자녀가 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믿음으로 연합하는 가정되게 하소서.
  • 복음 전할 한 사람이 생각나게 하소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항상 이 점술 행위가 예 or 아니요 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사무엘상 28:6이 알려준다.
이 구절에 의하면 전쟁을 앞두고 우림과 둠밈을 통해 답을 얻고자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울 왕은 무당을 통해서 죽은 사무엘과 접신을 시도한다.
점술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히브리어의 표기는 같고 우림과 둠밈의 표기도 동일하다. 그랬을 때 예 또는 아니요 뿐 아니라 때로는 구체적인 답변이 주어진 경우가 있다.

사사기 1:1-2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찌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사무엘상 10:22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사무엘하 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찌니라.

예 아니오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지시가 내려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우림과 둠밈이 단순히 두 개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알파벳 22개 모두로 구성되었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6. 사울이 여호와께 여쭈었다. 그러나 여호와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로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에봇앞에는 흉패가 붙어 있었다.
에봇은 주로 우림 과 둠밈 그리고 흉패를 포함한다.
에봇은 단순한 대제사장 의복 이상의 것이었다.
사무엘상 23:6에 의하면 아비아달에봇을 가지고 사울을 피해 다윗에게로 피신해 왔다.
여기서 다윗은 합법적으로 에봇을 사용할 수 있다는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윗은 아비아달이 소유한 에봇을 통해 하나님께 두 번 물었다.
이것은 사울과 달리 다윗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림과 둠밈은 합법적인 대제사장의 에봇과 함께 사용된 합법적인 신탁도구였다.

판결흉패, 즉 히브리어로 호센이라는 낱말의 분명한 뜻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 용어는 ‘아름다운 것’을 의미하는 아라비아어 <하수나>(hasuna)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주장되었다.
그러므로 호센은 대제사장의 옷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또는 ‘가장 귀중한 부분’이라고 간주된다.
또한 ‘전쟁을 위한 조끼’라는 의미의 아라비아어 <가우산>(gausan)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흉패는 대략 좌우 9인치의 길이에 두 겹의 재료로 되어 있었다. 에봇과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이 중요한 부분은 금으로 된 열두 보석이 네 줄로 박혀 있었으며, 이 보석들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흉패는 에봇에 금고리 둘과 땋은 두 금사슬과 청색끈으로 단단하게 매여 있었다. 흉패는 이중으로 겹쳐서 만들었다는 주장과 우림과 둠밈을 간수할 수 있는 주머니로 설계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다른 학자들은 히브리어 엘은 우림과 둠밈이 흉패의 외부에 덧붙여져 고정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엘을 ‘위에’로 번역한다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해진다.

우림과 둠밈은 야웨의 신탁이 필요할 때마다 흉패의 외부에 덧붙여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림과 둠밈을 흉패위의 12보석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 8:8에 의하면 우림 과 둠밈을 흉패위의 12보석과 동일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림과 둠밈을 적절한 장소에 두는 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 8:8과 출애굽28:30은 분명히 우림 과 둠밈을 어떤 장소에 놓을 수 있는 일종의 유형의 물건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림과 둠밈은 만질 수 있고 실체적이며 유형의 정체성을 지닌 어떤 물체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2]

구약성경에서 우림과 둠밈은 일곱 개의 본문에 등장한다. 함께 기록되어 있거나 우림만 기록되어 있기도 하며 순서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출애굽기 28:30; 레위기 8:8; 민수기 27:21; 신명기 33:8; 사무엘상 28:6; 에스라 2:63; 느헤미야 7:65).

우림과 둠밈에는 정관사가 사용되고 있다(출 28:30; 레 8:8, 민 27:21; 삼상 28:6; 참조. 신 33:8). 출애굽기 29:30과 레위기 8:8는 처음 우림과 둠밈이 등장하여 소개되는 본문이지만 우림과 둠밈에 각각 정관사를 사용하는 것을 보아 잘 알려져 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각각 사용되었다는 것은 우림과 둠밈을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물체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명기 33:8에서는 정관사 대신 인칭대명사가 사용되고 있다. "주의 둠밈과 우림"을 레위 자손에게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께 속해 있던 우림과 둠밈이 레위 자손, 대제사장에게 주어졌다고 이해할 수 있다. 에스라2:63과 느헤미야 7:65에서는 정관사를 붙이지 않는데 이는 고유명사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해 신탁을 구하는 것은 출애굽 광야때부터 왕정 초기 사울 왕 시절까지만 나와 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는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존재 유무를 특정할 수 없다.
사울 왕은 우림과 둠밈을 통해 블레셋과 전쟁에 임해도 되는지 신탁을 묻지만 응답을 받지 못한다.
제사장이 아니었던 사울 왕이 사용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고 에스라 때에 이르기까지 구약성경에서 우림과 둠밈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림과 둠밈이 제 2성전 시대에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에스라(2:59-63 , 느 7:63-65)에서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 에 대한 기다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제 2성전 시대의 문헌들 가운데에서는 다양한 문서들이 우림과 둠밈을 언급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헬라어의 역본인 칠십인역(주전3-2세기)에는 우림과 둠밈에 대한 번역과 이해가 담겨 있다.
칠십인역 오경과 사무엘상 본문에서는 우림을 dēlōsis,(계시, 나타남)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둠밈은(진리 alētheia) 있다.
(출  28:30; 레 8:8; 민 27:21; 신 33:8; 삼상 28:6; 참조. 삼상 14:41; 호 3:4).

반면 에스라 2:63와 평행본문인 느헤미야 7:65은 우림을 (phōtizō, “빛나다”)의 분사형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둠밈을 teleios, (“완전한”)로 번역하고 있다.
칠십인역은 번역된 단어들을 통해 제2성전시대에 우림과 둠밈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정보를 제공하지만 제2성전시기에 우림과 둠밈이 존재하였는지 혹은 사용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칠십인역은 번역된 단어들을 통해 제2성전시대에 우림과 둠밈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정보를 제공하지만 제2성전시기에 우림과 둠밈이 존재하였는지 혹은 사용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시락서(주전 200-180년)에는 우림과 둠밈에 관한 두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시락 33:3에는 “지혜로운 사람은 율법을 신뢰하고 그에게는 율법이 우림의 질문처럼 믿을 만한 것이다.”
시락서가 기록된 시기까지 우림과 둠밈이 사라졌고 전혀 기능하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시락서에서 율법에 대한 신뢰성을 우림과 둠밈에비교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동시대인들에게 전설적으로 내려오는우림과 둠밈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동시대인들에게 친숙하고 신뢰성이 있기에 비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더 합리적인 추론이다.

제2성전의 멸망 이후 우림과 둠밈을 언급한 문헌들

요세푸스(37-100 CE)는 『유대 고대사』에서 제2성전시기에 우림과 둠밈이 있었고 대제사장에 의해 사용되었다고 기록한다.
요세푸스는 우림과 둠밈이 에봇 흉패 안에 있었으며, 우림과 둠밈이 신탁을 알려줄 때 흉패의 12개의 보석으로부터 “굉장히 장엄한 [빛이] 비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탈무드와 미쉬나의 기록들은 우림과 둠밈이 제2성전시대에 존재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기능은 하지 못하였다고 본다.

프라이드는 TB Yoma 21b에서 제2성전시대에 사라진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
“이 다섯 가지는 제1성전과 제2성전시기를 [구분한다]:
언약궤, 언약궤 덮개, 체루빔,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 쉐키나, 거룩한 영(예, 예언자의 영) 그리고 우림과 둠밈이다(TB Yoma 21b).”
블렌킨솝 또한 미쉬나와 탈무드(M.So a 9:12; TB So a 48b; TB Yoma 21b)를 인용하며 우림과 둠밈이 제2성전 시기에 사라진 다섯 가지 중 하나이며 이 다섯 가지는 제2성전 시기에 사라지나 메시아 시대에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우림과 둠밈이포로후기에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프라이드는 에스라 2:61-63(느 7:63-65) 본문을 제2성전시대 우림과 둠밈이 사라진 것과 연관하여 이해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TBYoma 21b는 제1성전시대로부터 제2성전시대에 다섯 가지가 사라졌다기보다는 다섯 가지가 ‘구분된다’ 혹은 ‘달라졌다’고 이해해야 한다. 반 담은 TB Yoma 21b:17의 제1성전시대로부터 제2성전시대에 구분되는 다섯 가지 목록 이후 문장인 “(다섯 가지는) 있었지만 기능하지 않았다”를 언급하며 우림과 둠밈이 제2성전시기에 존재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우림과 둠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못하는 기능의 상실로 이해한다. 베이컨은 바빌론 탈무드를 인용하여 “다윗, 사무엘, 솔로몬” 시기 이후로는 우림과 둠밈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TB So a 48b). 베이컨은 우림과 둠밈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원인으로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들이 하나님께 묻고 그 응답을 듣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주장한다.

예언자들의 신탁은 우림과 둠밈보다 하나님과 더 인격적이고, 직접적이었기에 신탁을 구하는 일에 있어 우림과 둠밈을 능가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TB So a 48b:9는 에스라 2:63의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죽은 자가 부활하고 다윗의 자손 메시아가 올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응답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에스라 2:63을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닌 먼 미래에 일어날 일로 언급하고 있다.
제2성전의 멸망 이후 기록된 유대 문헌들은 대체로 우림과 둠밈이 제2성전 시기에 존재하였으나 그 기능은 상실했다고 이해한다.
요세푸스의 경우 존 히르카누스가 사망하기 전(주전 104년)까지는 우림과 둠밈이 제사장들에 의해 사용되었다고 보는 반면,
미쉬나탈무드의 기록들은 제2성전시기 동안 우림과 둠밈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새한글 / 63. 총독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우림과 둠밈을 가진 어떤 제사장이 나설 때까지 거룩거룩한음식(지성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부탄의 환경보호를 위한 특이한 법
1. 담배 225불 벌금 / 반입 3년 징역 / 화요일 금주 법
2. 매년 1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알래스카 매매


알래스카 구입에 사용한 720만 달러 수표.

알래스카 매매
알래스카 매입(Alaska Purchase)
알래스카 매각1867년 미국 국무부 장관 윌리엄 슈워드의 명령으로 미국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한 사건이다.
구입한 영토는 600,000 평방마일(1,600,000 km²)로 현재의 미국 알래스카주이다.
미국은 이후 알래스카를 통치하기 위해 알래스카부(Department of Alaska)를 설치했다.

러시아 제국은 크림 전쟁의 여파로 인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고 나중에 분쟁이 생겨 특히 영국해군이 방어하기 어려운 지역을 쉽게 점령할 경우에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알래스카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알렉산드르 2세는 이 영토를 미국에 팔기로 결정했고 1867년 3월 초에 주미 러시아 공사 에두아르트 스테클(Эдуард Андреевич фон Стёкль)에게 미국 국무 장관 시워드와의 협상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협상은 밤새도록 이루어져 3월 30일 오전 4시에, 미화 720만 달러(현재 미화 16억 7000만 달러, 한화 약 1조 9413억 7500만원의 가치)에 매매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미국 여론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지만 일부 부정적인 여론도 있었으며, 미국의 한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미 우리는 인구로 채울 수 없는 영토의 부담을 안았다. 현재 공화국 영토 안에 있는 인디언 원주민들을 다스리기에도 벅차다. 우리는 지금 국가가 신경써야 할 그런 사람들을 더 늘려서 우리를 더 힘들게 하려고 눈을 불을 켜고 찾아서 추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입 비용이 높고, 매년 행정 비용이 들고, 민간과 군사 비용이 점점 많이 계속해서 들 것이다. 할양될 영토는 국가 영역과 인접해 있지 않다. 불편하고 위험한 거리에 그 영토가 떨어져 있다. 조약은 비밀리에 준비되었고, 오전 4시에 서명되고 억지로 합의되었다. 그 날 밤에 악행이 일어난 것이다.... 뉴욕 월드에서는 "다 빨아먹은 오렌지"(sucked orange)라고 했다. 그 땅은 털짐승 밖에 없고, 거의 멸종위기가 올때까지 사냥해버렸다. 앨류시언 섬과 남쪽 해안까지 뻗어 있는 좁은 해협을 제외하고는 그 땅은 증여물의 가치가 없다.... 이라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호 출판사, 감리교, 런던 경찰청에 축복이 내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건 "얼어붙은 황무지"라고 뉴욕 트리뷴에서 말했다.[1]

그러나 미국 국민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720만 미국 달러러시아로부터 미국이 사들인 알래스카에는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들이 매장되어 있었다.
알래스카에는 많은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으며 알래스카에서 채굴한 철의 양만으로도 무려 미화 4000만 달러(현재 미화 92억 7000만 달러, 한화 약 10조 7763억 7500만원의 가치)어치에 달하였다.
그 외에도 금과 구리도 엄청나게 채굴되었으며 침엽수림의 목재나 석탄, 천연가스 등 기타 자원들까지 합친 알래스카에 존재하는 자원들의 총합은 미화 수십억 달러(현재 미화 수조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석탄은 무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석탄의 10분의 1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 알래스카에 매장되어 있다.[2]

그 당시 미국의 알래스카 매입은 미국 국민으로부터 '슈어드의 어리석은 짓', '슈어드의 냉장고', 대통령 앤드류 존슨으로부터 '북극곰 정원'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멀리 떨어진 지역을 매입하는 데 무모하게 너무 많은 돈을 들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조약은 오랫동안 영토 확장을 바랐던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상원의장 찰스 섬너가 승인하였다. 그들은 이 조약을 바라는 국가의 전략적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러시아는 남북 전쟁 내내 귀중한 동맹국이었으나, 영국은 거의 공공연한 적이었다. 러시아를 지원해서 영국을 꺾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것 같았다. 더욱이 인접한 영토가 대영제국에 속해있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거의 미국에 둘러싸여 그 영토는 영국에게 거의 전략적 가치가 없어져서 언젠가는 미국이 매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뉴욕 헤럴드'는 매입이 차르로부터 영국과 프랑스에까지 그들은 "이 대륙에 아무런 간섭도 하면 안 된다"라는 의미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캐나다가 '뉴욕 트리뷴'을 통하여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우회적 움직임이다."라고 했다. 곧 세계는 북서쪽에 "적의를 품은 코크니와 경계하는 양키가 양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존 불에게 유일한 길은 그 곳에 대한 그의 관심을 형제 조나단에게 파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4월 9일, 섬너는 이 조약을 지지하는 주요 연설을 했고, 알래스카의 역사, 기후, 자연 상황, 인구, 자원(삼림, 광산, 모피, 생선 등)을 다루었다. 훔볼트, 빌링스, 유리 리샨스키, Luetke, Kotzebue, 포트록, 쿡, Meares, von Wrangel과 같은 훌륭한 학자들, 지리학자와 항해자의 증언을 인용하였다. 그가 연설을 마쳤을 때, "저울이 기울어지지 않게 하는 것보다 조금 더 했을 뿐"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만약 저울이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면, 그쪽의 증언이 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곧, "실질적인 경쟁으로, 어떤 사업에 종사하기 위해 혹은 애국심을 위해, 두려움을 모르는 항해자들이 떼지어 해안으로 움직여 갈 것이다. 상업이 새로운 무기를 찾을 것이며, 국가는 새로운 방어자를 찾을 것이며, 새로운 손에 의해 국기가 높은 곳에 게양될 것이다."라고 섬너가 말했다.[3]

1867년 4월 9일, 미국 상원은 조약 체결을 투표해서 37 대 2로 승인했다. 그러나 알래스카 매입 비용에 따른 세출 승인은 미국 하원의 반대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 1868년 7월에 가서야 113 대 48의 투표로 하원에서도 승인받았다.[4]

섬너는 러시아 제국에서 알래스카에 2500명의 러시아인과 혼혈인, 8천 명의 토착인, 만여 명의 러시아 모피 회사의 직속 직원, 관할 영역 밖에 5만여 명의 에스키모와 인디언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유럽인들은 이용하기 편리한 섬과 해안에 23개의 교역소를 차렸다. 더 작은 사업소에서는 네댓명의 러시아인이 상주하여 인디안들로부터 모피를 수집하여 보관하거나 배에 실어서 회사의 배가 오면 가져갈 수 있게 하였다. 큰 도시가 두 곳 있었는데, 노보아르항겔스크싯카라고도 부르며 1804년 귀중한 바다수달피 교역을 처리하기 위해 세워졌다. 116개의 작은 오두막집이 있었고, 968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또 다른 큰 도시는 코디악 섬에 있는 세인트 폴이었는데 100개의 작은 오두막에 28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물개 가죽 산업의 중심지였다.

미국은 알류트 족이 쓰던 이름인 "알래스카"를 공식 지명으로 선택했다. 할양식이 1867년 10월 18일 시트카에서 열렸다. 러시아와 미국의 군인들이 총독 관저 앞에서 열병식을 했다. 포병대의 굉음과 함께 러시아의 국기가 내려갔고 미국의 국기가 올랐다. 알렉시스 페스트초로프 대위는 "로소 장군, 나는 러시아 황제의 권위로, 알래스카의 영토를 미국에 인도하겠소."라고 했고, 러벨 로소 장군은 영토를 받았다. 여러 크고 작은 요새들, 목재 건물들이 미국식으로 개조되었다. 군대가 막사를 차지하였고, 제퍼슨 데이비스 장군이 총독 관저에 들어갔고, 남기로 되어 있던 몇몇 상인과 종교인들을 남겨두고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돌아갔다.

알래스카의 날은 알래스카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공식 이전된 1867년 10월 18일을 기리는 날이다. 현재 알래스카는 매년 3월 마지막 월요일에 수어드의 날로 알래스카 매입을 기리고 있다.






사람에게 적당한 평수는 얼마인가?
국토교통부에서는 한 사람에게 적절한 평수는 4평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4인 가족의 경우에는 16평이 적절한 넓이라고 하겠지요.
1평은 3.3058제곱미터(m²)
따라서 20평은 대략 66.116제곱미터가 되겠지요.
(20평 × 3.3058 m² = 66.116 m²)
그런데 사회적은 통념은 평수가 넓으면 넓을수록 부의 가치가 높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므로 넓은 평수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면적과 정비례하는 영적 면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적 면적의 기초는 예수의 피라고 하겠습니다.



언약(베리트. 1285)
- '바라'(1262. 자르다, 끊다, 새기다)에서 파생된 말
위반시에는 죽음 및 관계 단절이 뒤따르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엄정한 약속, 계약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선 일찍이 아담과도 이러한 언약을 맺으셨는데(2:16, 17; 3:15).
구체적으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여기서부터이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아브라함(15:18; 17:9-14; 22:15). 이삭(26:24), 야곱(28:13, 14)등과 맺은 언약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모두 구속사에 있어서 최고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속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285. 베리트(berîyth) בְּרִית   

1. 언약.   2. 수 9:6.  3. 삼상 18:3
발음 [ berîyth ]
어원 / 1262에서 유래 [‘자르다’는 뜻에서]
구약 성경 / 283회 사용

자르다(바라. bârâh) בָּרָה 스트롱번호 1262

1. 잘게 자르다.  2. 먹다. 3. 선택하다
발음 [ bârâh ]
구약 성경  / 7회 사용




1월 27일(월) 출애굽기 24-26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언약의 피(출 24:8)

모세가 그 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니라.
Moses then took the blood, sprinkled it on the people and said, "This is the blood of the covenant that the LORD has made with you in accordance with all these words."

언약의 피(the blood of the covenant)
성경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언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반드시 "피(血. blood)"를 사용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를 사용하여 '언약의 피'를 강조합니다.
짐승의 피는 일시적인 효력만 갖기 때문에 계속적인 효력을 위해서는 자주 피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의 피"를 사용하여 '언약의 피'를 강조합니다.
예수의 피는 영원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더 이상 피를 바쳐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글개역 성경에는 '언약의 피'라는 말씀이 7구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2구절(출 24:8, 슥 9:11)
신약에서는 5구절(마 26:8, 막 14:24, 히 9:20, 10:29, 13:20).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나누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고 잔을 들어 축복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니라."

유월절 만찬의 핵심 내용은 예수께서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4: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스가랴 9: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가복음 14: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히브리서 9: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히브리서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3:20-21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새 언약의 피의 효력 (마태복음 26:26-28)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히브리서 9:9-14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 장면은 십자가를 지시는 날 밤에 주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떼시는 장면입니다. 유대인의 달력은 저녁 6시부터 하루가 시작하여 그 다음 날 6시까지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 달력으로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저녁까지가 유월절 날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달력으로는 유월절 음식을 드신 날과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다르지만 유대달력으로는 같은 날입니다. 즉, 예수님은 유월절 날에 음식을 떼셨고 유월절 날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으로는 본문에서 주께서 유월절 음식을 드신 것은 목요일 저녁이었고, 그 다음 날인 금요일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현재 우리 달력으로 유월절 절기의 목요일에 일반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다락방에서 나누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유월절의 유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해는 이스라엘의 첫해, 첫째 달로서 14일에 최초로 유월절 양을 먹었습니다. 이는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 양을 먹으며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었습니다. 이때 유월절 양을 먹을 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습니다.

유월절 양의 피는 믿는 자들의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지게 되었고 그 고기는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되 아침까지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만일 남으면 아침까지 남지 않도록 곧바로 불에 태워 재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어린양을 잡아 피를 흘린 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불에 태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고 떠날 것처럼 급히 먹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주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면 이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했다면 그들은 그 날 밤에 죽음의 천사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진노가 온 애굽 땅에 임하였고 가축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장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주의 말씀대로 믿고 행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때 구원 받은 자들은 마치 애굽 사람들을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그들에게서 은금패물과 가장 좋은 의복을 받으며 신속히 떠나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자유롭게 나오게 되면서 애굽의 종으로 있던 신분에서 해방되고 이스라엘 나라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로 매해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절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1900년이 지난 때에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며 떡과 포도주로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유월절의 실체요, 궁극적인 성취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로는 유월절 대신에 성만찬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유월절과 함께 나타난 사건은 10가지 재앙을 비롯하여 하나님 심판, 구름 기둥과 불 기둥, 홍해의 갈라짐,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 반석에서 터지는 물, 낡아지지 아니한 옷, 해어지지 아니한 신발,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구약의 어린양의 피가 이처럼 어마어마한 역사를 나타냈는데, 하물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보혈은 얼마나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겠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은 그 피를 먹고 마시는 자, 곧 그리스도의 사역을 믿는 자에게 어떤 역사를 일으킵니까? 저는 오늘 네 가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죄사함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5-48)

그런데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죄사함은 그 어떠한 죄인의 죄악도 사할 수 있고 아무리 많은 죄도 사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악 무도한 죄악도 사할 수 있고 온 인류의 수천 년 동안의 모든 죄를 다 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보혈의 효력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의 피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누구든지 어떠한 죄인이든지 무한하게 부르시며 무한하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평생 음란한 삶을 살아온 우물가의 여인을 용서하여 주셨고,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구원하여 주셨으며, 많은 죄를 지은 또 다른 여인을 사하여 주셨고, 로마 제국에 충성하며 권력으로 약자를 괴롭히던 백부장을 용서하여 주셨고, 삭개오처럼 다른 사람을 착취하여 부자가 된 악인도 용서하여 주셨고, 심지어 평생 살인하며 악행하던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까지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바울을 선한 사람으로 착각하지만 사실 바울은 죄인 중의 괴수였습니다.

그는 사회와 남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 섰습니다. 이 얼마나 악하고 무서운 죄인입니까? 이에 바울은 과거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거룩한 양심을 갖게 되었을 때 과거에 자신이 한 일을 고백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행 26:10-12).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라”(행 22:4).

또한 그는 로마서에서 고백하기를 자신 역시 탐심의 죄로 가득했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심지어 그는 율법의 의로 최고가 되고자 했던 교만한 자였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했지만 사실 그는 단 한번도 하나님을 만나 뵌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고백은 다른 유대인들처럼 거짓되고 헛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바울을 부활 승천하여 영광을 얻으신 주께서 즉사 시켜 죽이셔도 되는 것을 도리어 친히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그에게 하늘의 계시를 보여주시며 사도 삼으셨으니 그를 사하시는 주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무한합니까?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어떤 악인인 줄 알고, 그럼에도 주의 사함을 받은 자이기에 늘 그 사실을 의식하며 살아갔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

그러면서 바울은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를 고백합니다.

[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6-8)

이것이 바로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십자가 보혈의 죄 사함의 능력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원수로 행하던 자를 가장 큰 은혜로 용서하는 능력,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십자가의 은혜를 맛본 자들마다 그들의 삶에서 동일한 죄 사함의 용서를 나타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자는 그 무엇보다 그 마음에 앙심과 독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누구든 다 용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속 용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 세상이 얼마나 무한하게 악한 줄 아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그러므로 십자가의 용서의 능력을 힘입어 끝없이 용서하고 계속 용서하고 어떠한 악한 사람도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의 요구를 만족시키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안에서 영원히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자신의 거룩함과 의의 기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에 빠진 인류는 그 어떤 사람도 그 기준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롬 3:23-25)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이 세상에는 십자가 외에는 하나님의 거룩함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보혈의 통로 외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 역시 동일한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만일 십자가의 보혈이 없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완전하게 공의한 분이요 율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 단 한 사람도 구원 받지 못하고 온 인류가 전부 지옥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가령, 거룩한 하나님을 알려주는 구약의 율법은 이러한 분명한 공의를 보여줍니다. 살인자는 죽임 당하고, 부모를 욕하거나 대들거나 때리는 자 역시 죽임 당하고, 누구를 유괴해도 죽임 당하고, 간음해도 죽임 당하고, 내가 키우는 동물이 사람을 해하여 죽여도 주인인 내가 죽임 당하고, 동물과 관계해도 죽임 당하고, 하나님을 욕해도 죽임 당하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해도 죽임 당하고, 우상을 숭배해도 죽임 당하고, 안식일에 일해도 죽임 당합니다.

따라서 구약 사람들은 어린양의 희생 제사가 없었다면 대다수가 매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속죄일로 인해 그들은 매해 죽음을 피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제사는 참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킨 것이 아닙니다.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3-4).

사실 동물 제사로는 결코 죄 사함을 받지 못하지만 그 제사가 가리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혈의 능력이 구약에서도 주의 백성을 용서하고 그들을 보호한 것입니다.

이에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언제나 지성소에 계셨고, 오직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하루 속죄일에 모든 주의 백성을 대표하여 어린 양의 피를 갖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성소 밖에 있던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대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통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없이 억만 마리의 동물의 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돈 많은 부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재물로도 우리의 죄를 단 하나라도 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결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의인으로써 내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피는 독생하신 하나님의 피이며, 완전한 의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 피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이기 때문에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완전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외에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죄라도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허락될 수 없고 누구든지 먼지 만한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의미는 그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고 결코 나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의 요구를 만족시켰고 이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과 세상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이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영원히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의 요구를 만족시켰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사건일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한 사건입니다.

이에 누구든지 그 어떤 죄인이든지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영원히 만족하시는 상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4-16)

이렇게 죄 많은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영원한 보혈의 공로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롬 8:31-35)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영원히 태우는 무한한 하나님의 진노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영원한 멸망에 이르기 전에 속히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를 영원히 보호할 능력

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도 또 쓰러지고 또 죄를 짓습니다. 호흡이 마치는 순간까지 죄를 짓습니다.

제가 사랑하던 귀한 분은 믿음이 좋은 분임에도 불구하고 죽는 순간까지 섭섭함을 느끼며 차가운 마음을 갖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녀들에게 섭섭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연약한 인간의 죄일 뿐입니다. 화를 내는 죄, 미워하는 죄, 더러운 생각이 스치는 죄 등,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어도 육에 속하여 사는 동안은 결코 완전하게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짓는 수많은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는 천국은 머리카락만한 죄가 있더라도 들어갈 수 없는 완전하고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범하는 우리의 구원은 사실 전혀 보장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은 주와 믿음으로 연합한 자의 모든 죄를 사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의 속량 때문에 죄 사함 받은 자로부터 죄와 싸울 수 있는 거룩한 마음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죄에 쓰러지더라도 죄와 싸울 수 있는 거룩한 생명과 마음이 있기 때문에 회개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합니다. 이는 그분의 보혈의 효력은 우리가 믿을 때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죄사함의 효력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토록 안전합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요, 한번 거듭남은 영원한 영생을 얻어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보혈의 무한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도다”(롬 8:1).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0: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4; 히 10:16-18)

거짓 복음의 본산인 거짓 교회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효력은 영원한 능력이 없다고 봅니다. 이에 그들은 미사를 드립니다. 즉, 미사 때에 예수님이 죄를 고백하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또 희생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무한한 능력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에 그들 대부분은 천국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연옥을 믿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죄사함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죽자마자 연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연옥이라는 곳은 없으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몇 년 전 유보적 칭의론을 말하는 김모모 교수 같은 사람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 받더라도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십자가 보혈의 무한한 효력을 망각한 어리석고 이단적인 알미니안적인 발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십자가 보혈은 무한한 효력을 가지고 있기에 택함 받은 자들을 구원하시며 그들의 죄를 영원토록 무한히 용서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주와 언약을 맺는 참 신자들의 구원은 영원토록 보장되며 안전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신자들의 모든 죄를 영원히 무한히 사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참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과 물로 거듭났습니까?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확인해 보셨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거듭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은 거듭난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어떤 악인이든지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빚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인류가 타락한 이후로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주께 기쁨이 되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

9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9-20)

이 뜻은 사람은 죄의 노예인데 결코 그 무엇으로도 사람을 죄의 권능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과거에 다른 세상사람들과 동일하였습니다. 오직 죄를 짓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하지 못하던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동기를 가진 듯 하지만 사실은 궁극적으로 내 자신 외에 다른 동기를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딛 3:3).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라”(엡 2:2-3)

그러나 주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살리셨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은 죄만 지을 수 밖에 없던 그러한 죄인에게 생명을 주어 변화시킵니다. 이 부분이 사실 복음을 믿는 가장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3:4-7)

십자가의 보혈은 죄로 가득한 악인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 만들어냅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주를 박해하던 바울을 복음의 선교사로 만들어 놓았고, 혈기 많고 겁 많은 베드로를 침착하고 용기 많은 수제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감정에 따라 휘둘리던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변화시켜 놓았으며 사람을 두려워하던 니고데모를 담대한 신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참된 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마다 십자가의 보혈로 인한 성령의 역사로 인해 엄청난 변화를 나타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 역시 이러한 변화의 산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에 우리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알아갈수록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계속 닮게 됩니다.

[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롬 6:4-7)

이처럼 십자가의 보혈은 완고한 죄인까지 사랑으로 녹여 겸손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거룩한 성품의 신자로 이끌어 냅니다. 이에 성경은 뚜렷하게 독생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변화되어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함임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멸망을 향하는 모든 사람들을 복음을 믿어 순종케 하여 그리스도를 닮아 변화시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

[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8-30)

히브리서 기자 역시 주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며 고난 당하심은 우리로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러운 아들들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아직 거듭나지 않았든지 혹은 하나님의 무서운 매를 맞아야 정신차릴 깨어 있지 못한 갓난 신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더욱 십자가의 보혈의 무한한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도록 늘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의 권능을 네 가지 알아 보았습니다.

1) 죄사함  2) 하나님과의 화목  3) 구원의 보장  4)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킴.

이러한 주의 보혈의 권능이 여러분의 삶 전체에, 그리고 이 교회 전체에, 더 나아가 한국 교회와 인류 전체에 계속 강력하게 나타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내산 언약 체결식(출애굽기 24:1-18)

지금 우리는 출애굽기 말씀 중에 19-24장에 있는 시내산 언약에 대해 매주 묵상했습니다. 특히 19-20장 말씀은 시내산 언약을 맺는 과정과 시내산 언약의 핵심인 십계명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어서 21-23장 말씀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말씀으로 “시민법”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기 19~23장까지 선포된 “언약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공식적으로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주시고,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서 함께 교제하며, 언약백성답게 살 것을 굳게 다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본문에서 모세가 언약체결을 위해 뿌린 희생제물의 피는 우리를 언약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11절에 공동식사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주의 보혈로 새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성찬예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오늘 이 땅에서 경험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 언약 체결식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혈의 능력을 경험하고, 다시 한 번 결단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어떤 예배가 되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의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고, 보혈의 능력을 경험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로 결단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합니다.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순서 하나하나를 통해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마당만 밟고 시간만 때우고 가는 예배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이런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말씀을 듣고 믿는 시간이 되고,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회복되는 시간이 되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는 시간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행복한 그런 사람으로 다시 한 번 회복되고 살아나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체결 기념행사(1-11절)

1) 하나님의 부르심 (1-2절)

● 출 24: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 출 24: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여기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부르시고,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 70명과 함께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모세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아예 접근금지를 시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인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받아주셔야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셔야 가능한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다면 여기에 있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부르시고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말씀을 전함 (3절)

● 출 24: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들에게 전파합니다. 그때 백성들은 모두 한 소리로 응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것을 굳게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의 특징이 여기 나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믿음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믿는 그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사람이 참으로 구원받을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뿐입니다. 그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파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반드시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소개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믿게 하기 위해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믿어야 할 사람들을 찾는 사역입니다.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바로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을 찾아서, 참된 생명의 길을 가르치고, 영생 얻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엔 실패가 절대 없습니다. 교회로 데려오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그건 우리에게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파수꾼의 사역입니다. 다가올 심판에 대해 미리 알려주고 대비할 수 있도록 생명의 복음을 전파할 사명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다고 낙심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영생 얻기로 작정된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안 믿습니다. 그러나 믿어야 할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마음을 열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잃어버린 한 영혼 찾아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3) 어린양의 피로 드린 제사 (4-8절)

● 출 24: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 출 24: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 출 24: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이제 모세가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합니다. 그 뒤에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8절에 보시면 백성들에게 뿌립니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에게 어린양의 피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도 인간이 그냥 곧 바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어린양의 피를 통해 죄를 해결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어린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모든 인간은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능력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보혈로 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바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우리를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주고, 억만 죄악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이 흘리신 그 보혈의 능력으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출 24: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때 모세는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합니다. 그때 백성들은 모두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할 것을 다시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에 이처럼 백성들의 결단이 두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참된 구원은 이처럼 죄 문제만 해결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결단으로 이어짐을 보여줍니다.

그 사람이 정말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람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제부터 이전에 행하던 악한 행실을 끊고, 이제는 새로운 마음과 결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열매로 그를 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정말 참된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믿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 삶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결단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출 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여기에 “언약의 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이 쓰셨던 표현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언약의 피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언약의 피라는 말씀은 약속이 있는 피라는 뜻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누구든지 이 피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주신다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이 피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오늘 모세는 이 피를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우리도 이 피 뿌림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어린양의 피를 우리에게 뿌릴 수 있습니까?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안에 영접하여 모시고 있으면 어린양의 피로 뿌림을 받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음의 구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억만 죄악에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알지 못해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 회복 (9-11절)

● 출 24: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 출 24: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이렇게 죄 문제가 해결된 뒤에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보았다는 것은 그냥 스쳐지나가듯 본 것이 아니라, 주목해서 바라보고 분명히 목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성경도 그렇게 쓰여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장소만 본 것이다.”

저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그의 발”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발 아래에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한 광경을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장소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 출 24: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여기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말씀이 쓰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났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식사교제를 나누며 하늘잔치에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언제 이렇게 되었습니까? 언약을 맺기 전에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로 언약을 맺은 뒤에는 이처럼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었고, 하늘잔치에 참여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어린양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예수께서 바로 그 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만드는 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회복되기 전의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생각도 없고 마음도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대적하며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함께 교제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것이 좋고, 기도하는 것이 좋고, 헌신하는 것이 좋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언약백성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가 하나님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싫고, 찬송하는 것이 귀찮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괴로운 사람이라면 정말 회복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은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이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행복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처럼 참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욱 깊은 변화를 위해(12-18절)

● 출 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언약을 체결한 뒤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시내산에 올라와서 나를 만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에게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친히 기록한 돌판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제 하나님의 언약백성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구원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바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점점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죄악으로 관영한 이 땅에서 정말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살아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책임감이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원은 이미 다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구원을 완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현재적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우리의 꿈이 달라지고,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구원이 참된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13절 이하에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가장 가까이 따라갔고, 나머지는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산 아래에 있어야 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기간 동안 모세는 하나님의 계명이 적힌 십계명 두 돌판을 받게 되고, 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막을 제작하는 방법에 대해 듣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산에서 모세가 받았던 것은 십계명 두 돌판과 성막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하나는 율법이며, 하나는 예배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또한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 대신 다른 신을 예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 지금 이 시대 사람들도 십계명을 배워야 합니다. 십계명을 바르게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건 율법으로 돌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배하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예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대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참된 예배가 드려지고 복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뒤의 삶은 더욱 중요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오직 하나님만 참되게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통해 죄악으로 관영한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충실하게 세워가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내산 언약의 마지막 말씀은 언약을 체결하는 예배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하나님을 만난 백성, 정말 하나님을 아는 백성, 정말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한 백성,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그런 사람으로 온전히 세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이런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면서 깨어지고 무너진 영혼들이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만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로 결단하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면 안 됩니다.
예배가 나를 다시 살려내는 예배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참된 예배를 드리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참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려고 아무리 결단하고 다짐해도 또 다시 무너지고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번 한 번만의 예배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한 번 하나님을 깊이 만난 경험으로 평생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다음 25장 말씀을 보시면 성막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십니까?
계속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혈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는 시간을 끊임없이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하나님의 사람도 참된 예배를 회복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예배를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이처럼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경험하는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정말 내가 다시 살아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리 세상과 마귀가 도전해도 절대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견고하게 서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참된 언약백성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약속, 구약성경의 약속들

① 의미 -

            ❶ 성경적 의미

                          ※ 하나님의 언약(covenant)은 -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약속.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신 -

                                                                    ⒈ 일방적이며

                                                                    ⒉ 무조건적인 은혜의 약속.

            ❷ 사전적 의미 - 2명 이상의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거나 금지하겠다고 서로 약속하고 동의하는 것.

② 하나님의 언약

       ⅰ) 하나님이 - 사람을 창조 하시고

                             사람들과 친히 언약을 맺으심.

                                                ex) 아담과 이브,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 . .

       ⅱ) 하나님은 시대와 인물에 따라 - 다양한 언약을 맺으셨다.

                                ※ 각 시대와 인물에 따라 - 다양하게 언약하시나

                                                                         일관되게 역사하심.

                                               ⇒ 모두 다 - 동일한 내적 통일성을 이룸,

       ⅲ) 언약의 근본 목적은 -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이 은혜의 약속이다.

                               ⇒ 구원 즉 예수의 십자가 희생 고난을 통한 - 구속의 언약으로 이어짐

                               ⇒ 동일한 내적 통일성을 이룸,

                                                ※ 구약 → 신약

③ 언약의 대상

                ❶ 구약의 언약은 - 육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복음이자 언약 - 이스라엘 유대인

                ❷ 신약의 언약은 -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복음이자 언약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

④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 우리 인간의 반응이 아주 중요하다.

                                ⇒ 언약의 수행 여부가 -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 되기도 했음.

       ⅰ)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으로 언약을 지켜야 함(사 62:4, 아 2:10)

                   Ⓐ 헵시바 쁄라처럼.(사 62:4)

                                ※ 사 62:4 - 다시는 너를 -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 ❶ 오직 너를 - 헵시바라 하며

                                                                   ❷ 네 땅을 - 쁄라(쀼ㄹ라)라 하리니 

                                                                                 ※ 이는 - 여호와께서 너를 -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 아가서의 사랑 – 솔로몬고 술람미 여인처럼 – 함께 하는 사랑(아 2:10)

                                ※ 아 2:10 -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

                                                              ※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 일어나서 함께 가자!.”

       ⅱ)  하나님은 - 우리의 중심을 먼저 살피신다.

                            - 심령을 먼저 감찰하신다.(삼상 16:7, 잠 16:2, 렘 17:10)

                   ※ 삼상 16:7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

                                                  ※ “그의 용모와 키를 - 보지 말라!.

                                                         내가 이미 - 그를 버렸노라.

                                                                 ※ 내가 보는 것은 -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❶ 사람은 - 외모를 보거니와

                                                                                ❷ 나 여호와는 -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잠 16:2 - 사람의 행위가 -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

                                                 ※ 여호와는 -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 렘 17:10 - 나 여호와는 -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 보응하나니

⑤ 중심 단어들. - 축복과 저주를 나누는 구절들

       ⅰ) “ . . . 을 행하면”   vs   “ . . . 을 행하지 아니하면 . . . ”

       ⅱ) “ . . . 을 지키면”   vs   “ . . . 을 지키지 아니하면 . . . ”

       ⅲ) “ . . . 을 돌이켜”   vs   “ . . .을 돌이키지 아니하면 . . . ”

       ⅳ)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vs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⑥ 언약의 종류

               ❶ 행위 언약 – 1개 - 타락 전 - 불순종 전인 아담과 이브와의  - 선악과 언약

               ❷ 은혜 언약 - 타락 후 - 죄인인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언약 - 일방적 언약

       ⅰ) 구약 시대 - 옛 언약 - 구약

                    ❶ 선악과 언약(창 2:16~17) - 아담과 하와( = 이브)

                                              ※ 불순종 전(타락 전)

                                                   행위 언약

                    ❷ 여자의 후손 언약(창 3:15) - 아담과 하와( = 이브)

                                              ※ 불순종 후(타락 후)

                                                   은혜 언약

                    ❸ 무지개 언약(창 9:8~17) - 노아와 그의 후손들, 생명 있는 모든 동물들

                    ❹ 횃불 언약(창15:9~21) - 아브라함

                    ❺ 할례 언약(창17:1~22) -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

                    ❻ 시내 산 언약(출 19~24장)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❼ 소금 언약(민 18:19) -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들

                    ❽ 제사장 언약(민 25:10~31) - 비느하스와 그의 자손들( = 아론의 자손들)

                    ❾ 메시야 언약(다윗 언약)(삼하 7:5~16) - 다윗

                    ❿ 새 언약(렘 31:31-34) - 불순종하여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ⅱ) 신약 시대 - 새 언약 - 신약

                    ❶ 피(보혈)언약(마 26:26-29) -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

                    ❷ 보혜사 언약(요 14:16) - 성령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

                    ❸ 재림 언약(요 14:2~3,행 1:11) -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


(1) 구약의 언약

1) 선악과 언약 - 불순종 전(타락 전)(창 2:16~17)

① 체결 대상 - 아담과 하와( = 이브)

                                      ★참고 - 695. 아담

② 언약 내용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 먹지 말라!

                                  ※ 네가 먹는 날에는 -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cf) 의미 - ‘죽으리라’ - 하나님과 영적 단절을 의미

③ 특징

         ❶ 타락 전 인간에게 주신 첫 언약.

                        cf) 1째 아담으로 인해 - 사망.

                             2째 아담인 그리스도 안에서 - 영생이 성취됨.(고전 15:45, 48, 49)

         ❷ 행위 언약

         ❸ 쌍방(쌍무) 언약

2) 여자의 후손 언약 - 불순종 후(타락 후)(창 3:15)

① 체결 대상 - 아담과 하와( = 이브)

② 언약 내용

         ❶ 뱀(사탄)에게 - 저주

                                  ★참고 - 492.사탄

         ❷ 여자의 후손에게 -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창 3:15)

                                ※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후손에게 주신 언약.

                  ※ 창 3:15 - 내가 - 너로 -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❸ 여자의 후손은 -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❹ 너는 -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③ 의미 -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 -

                           ⇒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심으로 - 뱀으로 상징된 사단을

                                                                             멸하실 것임.

④ 특징 -

          ❶ 타락 후 인간에게 주신 첫 언약

          ❷ 원시복음으로서 - 메시야에 대한 첫 예언

          ❸ 일방(편무) 언약

3) 무지개 언약 - 노아에게 -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창 9:8~17)

                  ※ 때 - 2월 27일(377일째) - 방주에서 나옴 - 땅이 마름(창 8:14~22)

① 체결 대상 - 노아와 그의 후손들, 생명 있는 모든 동물들

                                                                  ★참고 - 136. 노아

② 언약 내용

          ❶ 다시는 - 모든 생물을 홍수로 -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창 9:11)

          ❷ 내가 내 무지개를 - 구름 속에 두었나니 -

                                                      ※ 이것이 -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

③ 의미 -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

                              ※ 다시는 홍수(물)로 인간과 생물들을 심판치 않겠다고 결심하심.

④ 특징

          ❶ 축복 - 에덴에서 주신 원초적 축복을 다시 주심(창 8:17, 창 1:12, 창 1:28)

          ❷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창 9:3~6)

          ❸ 무지개 언약(창 9:13)

          ❹ 은혜 언약.

          ❺ 쌍방(쌍무) 언약

⑤ 내용 -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창 9:1~17)

       ⅰ) 여호와의 명령(창 8:16~17)  

                      Ⓐ “방주에서 나오고”(창 8:16)

                                    ※ 창 8:16 - 너는 -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

                                                                             ⇒ 노아가 -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창 8:18)

                      Ⓑ “모든 것을 - 이끌어 내라.” - “번성하리라.”(창 8:17)

                                    ※ 창 8:17 - “너와 함께 한 - 모든 혈육 있는 생물

                                                                  ※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

                                                                                           ⇒ 이끌어내라!.”

       ⅱ)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창 8:20)

                      ※ 창 8:20 - 노아가 -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

                                                                  ※ 제물을 취하여 -

                                                                               ⇒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ⅲ)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아니하리라.(창 9:11)

                      ※ 하나님 -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

                                                   ※ 다시는 -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 땅을 멸할 홍수가 -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창 9:11)

       ⅳ) 축복을 받음 -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와 동물들에게 주셨던

                                  창조때의 복을 다시 선포하심.

                                                 ⇒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에게

                                                                   (창 9:1~2, 창 9:7, 창 8:17, 창 1:22, 창 1:28)

       ⅴ) 사람들을 축복하심(창 9:1~2, 창 9:7, 창 1:28)

                                  ※ 창 9:1a - 하나님이 -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

                  ❶ “생육하고 번성하여 - 땅에 충만하라!.”(창 9:1b)

                  ❷ “땅의 모든 짐승과 - 공중의 모든 새와

                                                  - 땅에 기는 모든 것과

                                                  -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 너희를 두려워하며

                                                                                     -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 이것들은 -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창 9:2)

                  ❸ “너희는 -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 그 중에서 번성하라!.”(창 9:7)

                           cf) 에덴 동사에서의 축복(창 1:28)

                                       ※ 창 1:28 - 하나님이 -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

                                                                   ※ “생육하고 번성하여 - 땅에 충만하라!.

                                                                                                      -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 다스리라!.”

                                                                                                      하시니라

       ⅵ) 동물들도 축복하심(창 8:17, 창 1:22)

                    ※ 창 8:17 - “너와 함께 한 -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 모든 것을 - 다 이끌어내라!.

                                                    ⇒ 이것들이 - 땅에서 생육하고

                                                                       -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 창 1:22 - 하나님이 -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

                                                     ※ “생육하고 번성하여 -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ⅶ) 먹을 것으로 - 동물과 식물을 주심(창 9:3, 창 1:29~30)

                    ❶ “모든 산 동물은 -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❷ “내가 온 지면의 - 씨 맺는 모든 채소와

                                                 -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 너희에게 주노니 -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창 1:29)

       ⅷ) 경고 -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들(창 9:3~6)

                      ❶ 피째 먹지 말라!. - 동물을 먹을 때 피째 생식하지 마라!.(창 9:4)

                                         ※ 창 9:4 -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창 9:5 - 내가 반드시 -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

                                                                    ※ 짐승이면 -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❷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말라!.(창 9:5~6)

                                        ※ 창 9:6 -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 이는 -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ⅸ) 무지개 언약 - 언약의 증거(창 9:8~17)

                     ※ 창 9:8 - 하나님이 -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대상 - ❶  노아와 노아 후손들      ❷  모든 생물들

                             ※ 하나님 - “내가 - 내 언약을 -

                                                                  ❶ 너희와 너희 후손과(창 9:9)

                                                                  ❷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

                                                                                           ※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창 9:10)

                  Ⓑ 언약 내용 - “다시는 -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 무지개 언약 (창 9:11~17)

                               ⓐ 내가 -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 

                                                            ※ 다시는 -모든 생물을 -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 땅을 멸할 홍수가 -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 9:11)

                               ⓑ 내가 - 나와 너희와

                                            -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

                                                               ※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창 9:12)

                                      ❶ 내가 - 내 무지개를 - 구름 속에 두었나니 -

                                                               ⇒ 이것이 - 나와 세상 사이의 -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 

                                      ❷ 내가 구름으로 - 땅을 덮을 때에

                                                      ※ 무지개가 - 구름 속에 나타나면(창 9:14)

                                      ❸ 내가 - 나와 너희와

                                                  -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

                                                               ※ 내 언약을 – 기억하리니 -

                                                                           ⇒ 다시는 - 물이 -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

                                                                                                   ※ 되지 아니할지라(창 9:15)

                                      ❹ 무지개가 -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

                                                                          ⇒ 내가 보고 - 나 하나님과

                                                                                              -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 영원한 언약을 – 기억하리라(창 9:16)

                                      ❺ 내가 -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

                                                              ※ 언약의 증거가 – 이것이라.(창 9:17b)

4) 횃불 언약 - 아브라함에게(창 15:17~21)

                             cf) 하나님의 계획 - 오직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손만이

                                                           참 상속자, 참 씨앗이 된다.(창 15:4~5, 창 17:19~21, 창 21:12)

                                             ※ 여호와 - “그 사람이 - 네 상속자가 아니라

                                                                           ※ 네 몸에서 날 자가 -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4)

                                                                                      ★참고 - 737. 아브라함

① 대상 - 아브라함 

② 일방(편무) 언약

③ 내용 - ❶ 입(入)애굽과 출(出)애굽에 대해 미리 말씀하심

               ❷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

                                    cf) 요셉Ⓘ과 야곱을 통해 - 입애굽

                                          모세를 통해 - 출애굽

                                          여호수아①를 통해 – 가나안 정복

       ⅰ)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

                     ※ 하나님 -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 이와 같으리라.”(창 15:5)

                     ※ 하나님 - ❶ 네 아내 사라가 -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

                                                       ⇒ 너는 그 이름을 - ‘이삭’이라 하라.

                                       ❷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

                                                       ⇒ 그의 후손에게 -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 17:19)

       ⅱ) ‘네 씨’ -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 하나님 -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 근심하지 말고

                                                       ※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창 21:12)

       ⅲ) 입(入)애굽과 출(出)애굽에 대한 예언 - ‘횃불언약’

                                            ※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12지파

                              ❶ 입(入)애굽(창 15:13)

                                            ※ 여호와 - “너는 반드시 알라!.

                                                                       ※ 네 자손이 - 이방에서 객이 되어 -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 400년 동안 -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창 15:13)

                              ❷ 출(出)애굽(창 15:14)

                                            ※ 여호와 -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4)

                              ❸ 출애굽후 가나안 입성 - 횃불 언약을 체결한 지 약 670여년 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감.(창 15:13~21)

                                            ※ 횃불언약(약 200년) + 애굽노예(430년) + 광야(41년) = 약 670년

                   Ⓐ 횃불 언약 -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5:17~21)

                                                         ※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

                                                                          ⇒ 타는 횃불이 -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창 15:17)

                   Ⓑ 가나안 땅을 주리라(창 15:19~20) 

                                             ※ 창 15:18a -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

                              ※ 여호와 - “내가 이 땅을 -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 15:18)

                                                                           ※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창 15:19)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창 15:20)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창 15:21)

5) 할례 언약(창 17:10~14)

① 대상 -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② 특징 -

        ❶ 내적 믿음에 대한 외적 증거의 요구(롬 4:11)

                                           cf) 신약의 세례와 비슷

        ❷ 쌍방(쌍무) 언약

③ 언약 내용 - ❶ 너희 중 남자는 다 - 할례를 받으라!.

                      ❷ 난 지 8일 만에 - 할례를 받을 것이라(창 17:12)

       ⅰ) 너희 중 남자는 - 다 할례를 받으라!(창 17:19a)

                       ※ 이것이 -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 내 언약이니라(창 17:19b)

       ⅱ) 너희는 - 포피를 베어라!.

                       ※ 이것이 - 나와 너희 사이의 -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11)

       ⅲ) 난 지 8일 만에 - 할례를 받을 것이라!.(창 17:12b)

                       ❶ 너희의 대대로 - 모든 남자는 -

                                          ※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

                                                                ⇒ 난 지 8일 만에 - 할례를 받을 것이라( 창 17:12)

                        ❷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

                                         ※ 이에 내 언약이 - 너희 살에 있어 -

                                                           ⇒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창 17:13)

       ⅳ)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

                                         ⇒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 17:14)

6) 시내산 언약(출 19~24장)

① 언약 체결 대상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 하나님의 백성으로 - 이스라엘을 지목하심.(출 19:5~6)

                                        ⇒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 율법이라는 행위 언약을 주심.

                                                                     cf) 율법 - 모세오경

                                                                               ★참고 - 280. 모세오경

② 의미 -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의 상호관계가 사랑과 공의 가운데 맺어짐.

③ 특징 - ❶ 최초로 율법에 근거해 맺은 언약.

               ❷ 쌍방(쌍무) 언약

④ 때 - 4차, 5차 시내산 등반 때

⑤ 내용 - ❶ 율법을 - 지키면 - 축복

                              - 지키지 아니하면 - 저주를 받으리라

              ❷ 10계명과 여러 가지 규례 - 말씀으로만 들려 주심.(출 20:1~24:8)

                                         ※ 모세가 시내산 언약 기념비 세움 - 12기둥을 세움(출 24:4)

              ❸ 모세가 율법들을 읽음. - 많은 행동강령들이 있음(21장~23장)

                                         ※ “ . . . . 하라 ” or “ 하지 말라 ”

       ⅰ) 4차 시내산 등반 

                    Ⓐ 세계가 다 - 내게 속하였나니 -

                                      ※ 너희가 - 내 말을 잘 듣고 - 내 언약을 지키면 -

                                                                 ⇒ 너희는 - 모든 민족 중에서 - 내 소유가 되겠고(출 19:5)

                                                                 ⇒ 너희가 내게 대하여 - 제사장 나라가 되며

                                                                                                   -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 너는 이 말을 -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 19:6)

                     Ⓑ 10계명 - 하나님께서 전 백성에게 - 직접 음성으로만 들려주심.

                                                                         (출 20:1~17, 신 5:1~6:9, 신 5:22, 신 9:10, 신 10:4, 18:16)

                                                   cf) 친히 돌판에 써 주신 때는 - 6차 시내산 등반때(출 32:18)

                                    ※ 출 32:18 - 여호와께서 -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

                                                                 ⇒ 증거판 2을 - 모세에게 주시니

                                                                              ※ 이는 -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❶ “너는 - 나 외에는 - 다른 신들을 - 네게 두지 말라!.”(출 20:3, 계 22:8~9)

                          ❷ “우상을 - 섬기지 말라!.”(출 20:4, 고전 10:14)

                                   ⓐ 너를 위하여 - 새긴 우상을 - 만들지 말고

                                                          -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

                                                                             ※ 어떤 형상도 - 만들지 말며(출 20:4)

                                   ⓑ 그것들에게 - 절하지 말며 -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5a)

                                   ⓒ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 20:5b)

                                                ⒈ 나를 미워하는 자의 - 죄를 갚되 -

                                                                 ⇒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 3~4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c)

                                                 ⒉ 나를 사랑하고 -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

                                                                 ⇒ 1000 대까지 -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❸ “여호와의 이름을 -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 20:7, 마 6~9)

                                    ⓐ 너는 -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 20:7a)

                                    ⓑ 여호와는 -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

                                                                            ※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b)

                          ❹ “안식일을 - 거룩히 지내라!.”(출 20:8, 창 2:2~3, 히 10:24~25)

                                    ⓐ 안식일을 기억하여 -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 엿새(6일) 동안은 -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 20:9)

                                    ⓒ 7째 날은 -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

                                                                                         ※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 이는 - 엿새(6일) 동안에 -

                                                            ※ 나 여호와가 -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

                                                                                                         ※ 7째 날에 - 쉬었음이라

                                                                      ⇒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 안식일을 - 복되게 하여 -

                                                                                         ※ 그 날을 -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11, 창 2:2~3)

                         ❺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a, 엡 6:12)

                                            ⇒ 그리하면 -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

                                                                                         ※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b)

                         ❻ “살인하지 말라!.”(출 20:13, 요일 3:15)

                         ❼ “간음하지 말라!.”(출 20:14, 히 13:4)

                         ❽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 엡 4:28)

                         ❾ “네 이웃에 대하여 -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엡 4:25)

                         ❿ “네 이웃의 집을 - 탐내지 말라!.”(출 20:17a, 눅 12:15)

                                           ※ 네 이웃의 -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

                                                        ⇒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 탐내지 말라!.(출 20:17b)

       ⅱ) 내려옴

                   Ⓐ 모세가 와서 -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

                                                         ※ 백성에게 전하매.(출 24:3a)

                   Ⓑ 백성들은 화답했다.(출 24:3b) 

                                    ※ 백성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

                                                                          ⇒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b)

                   Ⓒ 시내산 언약 기념비 세움 - 이튿날 아침 12기둥을 세움(출 24:4)

                                    ※ 출 24:4 - 모세가 -  ❶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❷ 이른 아침에 일어나 -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❸ 이스라엘 12지파 대로 - 12기둥을 세우고

                   Ⓓ 제사를 드리고(언약의 피를 뿌림) - 언약서를 낭독 - 백성들에게(출 24:5~8)

                                    ❶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

                                                       ⇒ 여호와께 -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출 24:5)

                                    ❷ 모세가 - 피를 가지고 -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 반은 제단에 뿌리고(출 24:6)

                                    ❸ 언약서를 가져다가 -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

                                                       ⇒ 그들이 이르되 -

                                                                    ※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

                                    ❹ 모세가 - 그 피를 가지고 -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

                                                ※ 모세 - “이는 -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

                                                                                     ※ 언약의 피니라.”(출 24:8)

       ⅲ) 제5차 시내산 등반 - ‘언약체결 기념식사’(출 24:9~11)

                    Ⓐ 모세와 아론과 나답①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

                                                ※ 시내산에 올라 - ‘언약체결 기념식사’를 함.(출 24:9~11)

                                ⓐ 모세와 아론과 나답①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 올라가서 (출 24:9)

                                ⓑ 하나님을 봄(출 24:10)

                                                ※ 출 24:10 -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

                                                                              ⇒ 그의 발 아래에는 -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 하나님이 -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

                                                                      ※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출 24:11)

                                 ⓓ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 먹고 마셨더라(출 24:11)

       ⅳ) 내려옴 - 직접적인 기록은 없음.

                         cf) 그러나  모세가 6차 등정 전 - 하나님이 다시 부르시고

                                                                          아론과 훌, 장로들에게 뒷일을 부탁한 것을 볼 때 -

                                                 ⇒ 제 5차 시내 산에 오른 후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출 24:12~14)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

                                  ※ 여호와 - “너는 산에 올라 -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

                                                                              ⇒ 내가 -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출 24:12)

7) 소금 언약 - 제사장 가문인 아론과 그의 후손들에게 - 제자장직(민 18:19)

                                                             ★참고 - 178. 대제사장①②

① 체결 대상 -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들

② 특징 - 일방(편무) 언약

③ 언약 내용 - 하나님께 드려진 거제로서 성물을 -

                                                ⇒ 제사장들에게 음식으로 줌.

                              ※ 민 18;19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

                                                                ⇒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

                                                                                           ※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

                                                                               ※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④ 의미 - 소금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언약 - 제사장직을 보장해 준다는 의미.

       ⅰ) 이스라엘 자손이 -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

                   Ⓐ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

                                                 ※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 이는 -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

                                                 ※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민 18:19)

       ⅱ)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

                    ※ 여호와 - “너는 -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 내가 - 이스라엘 자손 중에 -

                                                                                    ❶ 네 분깃이요

                                                                                    ❷ 네 기업이니라” (민 18:20)

8) 제사장 언약 - 평화의 언약(민 25:10~31)

① 대상 - 비느하스①와 그의 자손들( = 아론의 자손들)

                                                                      ★참고 - 453. 비느하스①

② 내용 - 비느하스①와 그의 자손들에게 -

                                 ⇒ 영원히 제사장 직분을 수행케 함.

                         ❶ 내가 그에게 -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민 25:12)

                         ❷ 그와 그의 후손에게 -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

                                                                    ⇒ 이스라엘 자손을 - 속죄하였음이니라(민 25:13)

③ 특징 - 일방(편무) 언약

④ 의미

         ❶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분노를 - 귀하게 여기심.

                        ※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출 34:14)

         ❷ 아론의 자손들이 - 대대로 제사장으로서 -

                                                   ⇒ 하나님 앞에서 섬기며

                                                        백성들을 위해 속죄와 중보하게 하심.

9) 메시아 언약( = 다윗 언약) - 다윗 가문을 통한 메시아적 구원.

                                           (삼하 7:1~17, 대상 17:1~27, 삼하 23:5, 사 42:6, 사 49:8, 렘 31:31~34)

                        ※ 여호와가 나단①을 통하여 - 솔로몬에 대해 말씀하심.

                                                                                          (삼하 7:4, 대상 17:4, 대상 22:9)

                                                                                                  ★참고 - 273. 메시야

① 체결 대상 - 다윗 

② 메시야( =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암시.

                        ※ 일방(편무) 언약

③ 다윗의 생전에 지켜질 약속(삼하 7:8~11)

                        ※ 다윗 - “나는 -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 휘장 아래 있도다”(삼하 7:2, 대상 17:1)

             ❶ “네가 - 나를 위하여 -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삼하 7:5)

             ❷ “너는 - 내가 거할 집을 - 건축하지 말라!.”(대상 17:4)

                                      ※ 너는 군인이라 - 피를 많이 흘렸으니

                                                    ⇒ 내 이름을 위하여 -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 28:3)

             ❸ “네 이름을 - 존귀케(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❹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 한 곳을 정하여”(삼하 7:10)

             ❺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 집을 짓고”(삼하 7:11)

             ❻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 한 왕조를 세울지라”(대상 17:10)

④ 다윗의 자손들에게 지켜질 약속 - 메시아 언약(삼하 7:12~16)

                         ※ 다윗과 솔로몬의 왕위를 - 영원히 견고하게 함.

       ⅰ) “내가 - 네 몸에서 태어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

                                         ⇒ 그의 나라를 -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3)

                   ❶ “내가 - 네 뒤에 네 씨 -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

                                         ※ 그 나라를 - 견고하게 하리니”(대상 18:11)

                   ❷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 .솔로몬이라 하리니” (대상 22:9)

       ⅱ) “그가 나를 위하여 - 집을 건축할 것이요 -

                                                      cf) 솔로몬의 성전 건축(대하 3:1~2)

                                     ※ 나는 - 그의 왕위를 -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3, 대상 17:14)                                    

       ⅲ) “나는 -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 내 아들이 되리니 -

                                     ※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 대상 22:10)

       ⅳ) “내가 영원히 그를 -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

                          ※ 그의 왕위가 -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 대상 17:14)

                                           cf) 의미 - 다윗의 육신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

                                                                                ※ 영원히 왕 노릇 하실 것임(눅 1:32~33, 계 19:16)

⑤ 이 언약들은 -

              ❶ 새로운 지도자가 생기면 - 다시 재확인되었다.

                                           ex) 솔로몬(대하 7:16~22), 느헤미야(느 1:7~10) . . . .

              ❷ 선지서의 전반에 - 이러한 언약들이 깔려 있다.(사 42:6~8, 렘 33:14~18 . . .)

                            ※ 렘 33:14b - 보라!.

                                                    내가 -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

                                                                      ※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렘 33:15 - 그 날 그 때에 -

                                                             ※ 내가 다윗에게서 -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 그가 이 땅에 -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 그날에 -

                                                                                  ⒈  유다가 - 구원을 받겠고

                                                                                  ⒉ 예루살렘이 - 안전히 살 것이며

                                                                                  ⒊ 이 성은 -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렘 33:16)

                                렘 33:17b -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

                                                              ※ 다윗에게 -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렘 33:18 - 내 앞에서 -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

                                                                                      ※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0) 새 언약(렘 31:31-34)

① 대상 - 불순종하고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② 내용 - 이스라엘의 죄악을 - 사하고

                                           - 다시는 죄를 기억지 아니하심.

                         ※ 렘 31:31 - 내가 -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

                                                                     ※ 새 언약을 맺으리라

                              렘 31:34 - 내가 -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③ 특징

       ❶ 새 언약 - 장차 그리스도가 와서 맺을 보혈 언약을 예표(마 26:28)

       ❷ 새 언약, 곧 신약이란 말이 - 구약 성경에 최초로 나타남

                           ※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보여 주심.

       ❸  일방(편무) 언약

④ 이스라엘이 불순종 - 언약을 깸.

                             ⇒ 많은 선지자들의 경고도 - 듣지 않음

                                                ※ 경고 - “악에서 돌아서라!. 벌하리라!. 멸하리라!.”(습 1:2~9)

       ⅰ) 다가오는 멸망에 대한 경고 - “진멸하리라. 멸절 하리라!.”(습 1:2~3)

                  Ⓐ 내가 - 땅 위에서 모든 것을 – 진멸하리라(습 1:2)

                  Ⓑ 내가 - 사람과 짐승을 - 진멸하고

                               -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 땅 위에서 -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1:3)

       ⅱ) 유다에 대한 경고 - “멸절하리라!.”(습 1:4~13)

                  Ⓐ 내가 -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 손을 펴서 -

                                          ❶ 남아 있는 바알을 - 그 곳에서 멸절하며(습 1:4b)

                                          ❷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 아울러 멸절하며(습 1:5a)

                                          ❸ 또 지붕에서 -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습 1:5b)

                                          ❹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습 1:5c)

                                          ❺ 여호와를 배반하고 -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습 1:6a)

                                          ❻  여호와를 -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 멸절하리라(습 1:6b)

                  Ⓑ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

                                ※ 이는 -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

                                                            ⇒ 여호와께서 -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습 1:7)

                  Ⓒ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

                                ※ 내가 - ❶ 방백들과 왕자들과

                                               ❷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 벌할 것이며(습 1:8)

                                               ❸ 문턱을 뛰어넘어서 -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습 1:9)

       ⅲ) 구원하리라(습 3:14~17)

                              ※ 기뻐하며 부를 노래 - 이스라엘의 구원과 축복(습 3:14~20

                   Ⓐ 시온의 딸아!. -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습 3:14)

                   Ⓑ 여호와가 - ❶ 네 형벌을 - 제거하였고

                                        ❷ 네 원수를 - 쫓아냈으며

                                        ❸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 네 가운데 계시니 -

                                                        ⇒ 네가 다시는 - 화를 당할까 -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습 3:15)

                  Ⓒ 그날에 -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

                                        ❶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 3:16)

                                        ❷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

                                                                      ※ 그는 -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❸ 그가 - 너로 말미암아 -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 하나님의 은총의 날에 대한 약속 - 하나님께 속한 자들(18~20절)

                                       cf) 하나님께 속한 자들 -

                                                     ❶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이 -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어 -

                                                                         ⇒ 하나님의 절기를 지킬 수 없게 된 것에 대하여

                                                                              근심하는 자들.

                                                      ❷  자기의 연약함을 도와달라고 - 간구하는 하나님의 백성.

                                ⓐ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

                                                      ※ 그들은 -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습 3:18b)

                                ⓑ 그 때에 내가 -

                                            ❶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 다 벌하고

                                            ❷ 저는 자를 - 구원하며

                                            ❸ 쫓겨난 자를 - 모으며

                                            ❹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습 3:19)

                                ⓒ 내가 그때에 - 너희를 이끌고 - 

                                      그 때에 - 너희를 모을지라(습 3:20:a)

                                                ※ 내가 너희 목전에서 -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

                                                                  ⇒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습 3:20)





1) 피(보혈)언약 - 언약의 피(마 26:26-29)

① 언약 체결 대상 -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

                                                                              ★참고 - 79. 그리스도①~⑩

② 언약 내용 - 언약의 피 -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언약의 피.

                               ※ 마 26:27a - 또 잔을 가지사 -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

              ※ 예수님 - “너희가 다 - 이것을 마시라!.(마 26:27b)

                                   이것은 -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

                                                                  ※ 나의 피 -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③ 특징 -

           ❶ 그리스도의 피로 - 죄 씻음 받음 - 영원한 언약의 피(히 13:20)

                             ※ 히 13:20 -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

                                                            ※ 영원한 언약의 피로 -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❷ 구약에 - 이미 예언됨(렘 31:31~34)

                            ※ 렘 31:31 - 내가 -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

                                                                          ※ 새 언약을 맺으리라

                                 렘 31:34 - 내가 -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cf) 새 언약 - 장차 그리스도가 와서 맺을 보혈 언약을 예표(마 26:28)

            ❸ 일방(편무) 언약

④ 메시야 오심의 언약 - 구원자로서 - 이미 성취된 언약.

                                                                      ★참고 - 273. 메시야

                      ❶ 한 사람의 죄 → 한 사람의 순종

                               (아담의 죄) → (예수님의 화목제- 속량-죄사함)

                                               ※ 롬 5:19 - 한 사람이 -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 순종하심으로

                                                                              ⇒ 많은 사람이 - 의인이 되리라

                      ❷ 예수님의 사명 - 메시아 - 구원자(마 8:31, 마 26:28)

                                    cf) 예수님의 메시아와 - 군중들의 메시아는 - 서로 다른 의미였다.

                                               ※ 막 8:31 - 인자가 -

                                                                      ⒈ 많은 고난을 받고

                                                                      ⒉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 버린 바 되어

                                                                      ⒊ 죽임을 당하고

                                                                      ⒋ 사흘 만에 - 살아나야 할 것을 -

                                                                                     ※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 마 26:28 - 이것은 -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

                                                                         ※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

                                                                                               ⇒ 나의 피 - 곧 언약의 피니라

       ⅰ) 성육신 - 성령으로 잉태됨 - 마리아가 요셉②과 약혼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임신함. (마 1:18, 눅 1:27, 사 7:14, 눅 1:34~35)

                               ⇒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됨.(사 7:14)

※ 사 7:14 - 그러므로 주께서 - 친히 징조를 -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 아들을 낳을 것이요

                                                                                              ⇒ 그의 이름을 -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마 1:18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①가 - 요셉②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

                                                                            ※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 나타났더니

                                            ※ 가브리엘 - “성령이 -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 너를 덮으시리니

                                                                            ※ 이러므로 나실 바 - 거룩한 이는 -

                                                                                          ⇒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눅 1:35)

                   Ⓐ ‘그리스도’ - ‘기름 부은 자’, ‘메시아’의 그리스식(헬라) 명칭. 

                                                        ※ 이름이 아니고 - 직분의 명칭이다.(요 1:41, 요 4:25)

                   Ⓑ 삼위일체 하나님(창 1:26)

                                cf) 삼위 일치 - ❶ 성부 하나님    ❷ 성자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❸ 성령 하나님

                                          ※ 하나님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

                                                                         ※ 우리가 - 사람을 만들고

                                                                                     ⇒ 그들로 -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

                                                                                               ※ 모든 것을 - 다스리게 하자!.”(창 1:26)

                   Ⓒ 하나님의 아들 - 독생자(성자 하나님)(요 3:16, 요 1:14, 요 1:18)

                                                          ※ 성자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심.

                               ※ 요 3:16 - 하나님이 -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 그를 믿는 자마다 -

                                                                        ※ 멸망하지 않고 -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말씀이신 하나님(창 1:3, 요 1:1~3, 요 1:14)

                                               ※ 창 1:3 - 하나님이 이르시되 -

                                                                        ※ “빛이 있으라!.” 하시니 -

                                                                                         ⇒ 빛이 있었고

                                ⓐ 태초에 - 말씀이 계시니라

                                            ※ 이 말씀이 -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

                                                         ⇒ 이 말씀은 -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 그가 - 태초에 -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 1:2)

                                            ※ 만물이 - 그로 말미암아 - 지은 바 되었으니

                                                                        ⇒ 지은 것이 하나도 -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3)

                                ⓒ 말씀이 - 육신이 되어 -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 우리가 - 그의 영광을 보니 -

                                                                        ❶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❷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 다윗의 후손으로 오심. (마 1:1~17, 눅 3:23~38, 요 1:14)

                                ※ 가브리엘 - “보라, 네가 잉태하여 - 아들을 낳으리니

                                                                     ※ 그 이름을 - ‘예수’라 하라!.(눅 1:31)

                                                        그가 -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 주 하나님께서 -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눅 1:32)

       ⅱ) 십자가 고난 - 그가 찔림은 -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 53:2~12 → 눅 23:4~18, 마 27:27~60)

                                                ⇒ 화목 제물이 되심 -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들의 화목을 위해.(요일 2:2)

                                                              ※ 요일 2:2 - 그는 우리 죄를 위한 - 화목 제물이니

                                                                                               ※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십자가에 못 박고 - 그 옷을 나눌새 -

                                        ⇒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 제비를 뽑더라(막 15:24)

                     Ⓑ 예수께서 - 큰 소리를 지르시고 - 숨지시니라(막 15:37, 눅 23:26, 막 15:34, 요 19:30b)

                                                   ※ 눅 23:26 - “아버지!, 

                                                                           내 영혼을 -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 이 말씀을 하신 후 - 숨지시니라

                                                   ※ 요 19:30b -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

                                                                                          ⇒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❶ 이에 - 성소 휘장이 -

                                                   ※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 2이 되고(막 27:51a, 눅 23:45)

                              ❷ 무덤들이 열림.(막 27:52~53)

                                                         ⇒ 예수님 부활 때 같이 부활함.(막 15:52~53)

                                        ⓐ 땅이 진동하며 - 바위가 터지고(막 15:51b)

                                        ⓑ 무덤들이 열리며 - 자던 성도의 몸이 - 많이 일어나되(막 15:52) -

                                                               ※ 예수의 부활 후에 -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

                                                                                   ⇒ 거룩한 성에 들어가 -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막 15:53)

       ⅲ) 부활 - 장사한지 사흘(3일) 만에 부활하심 – 부활주일(초실절)(마 28:1~7, 막 16장)

                   ❶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심 - 초실절 열매(고전 15:20)

                                ※ 고전 15:20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

                                                                        ⇒ 잠자는 자들의 - 첫 열매가 되셨도다

                    ❷ 예수님 부활 때 - 죽었던 성도들이 같이 부활함.(막 15:52~53)

                                                             cf) 예수님 돌아가셨을 때 - 무덤들이 열렸음.

                                ⓐ 성소 휘장이 -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 둘이 되고(막 15:51a)

                                     땅이 진동하며 - 바위가 터지고(막 15:51b)

                                     무덤들이 열리며 - 자던 성도의 몸이 - 많이 일어나되(막 15:52)

                                ⓑ 예수의 부활 후에 -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

                                                  ⇒ 거룩한 성에 들어가 -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막 15:53)

                    ❸ 부활하신 이후 40일 동안 -

                                             ⇒ 부활하신 모습을 - 보이시며,(행 1:3)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며(행 1:3)

                                                  증인이 될 것을 - 명령하심.(행 1:8)

                                 ※ 행 1:3 -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

                                                           ⇒ 40일 동안 - 그들에게 보이시며

                                                                            ※ 하나님 나라의 일을 – 말씀하시니라

                                ※ 행 1:8 - “오직 성령이 - 너희에게 임하시면 -

                                                           ⇒ 너희가 -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

                                                                     ※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예수님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 내게 주셨으니(마 28:18)

                                                   그러므로 너희는 -

                                                           ※ ⒈ 가서

                                                                ⒉ 모든 민족을 - 제자로 삼아

                                                                ⒊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

                                                                                        ※ 세례를 베풀고(마 28:19)

                                                                ⒋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

                                                                                        ※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ⅳ) 승천하심.(눅 24:30~24) -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막 16:19)

                                cf) 제자들을 축복하신 후 - 베다니① 앞까지 가심(눅 24:50)

                       ※ 막 16:19 - 주 예수께서 - 말씀을 마치신 후에 -

                                                            ⇒ 하늘로 올려지사 -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 보혜사 언약(요 14:16)

① 언약 체결 대상 - 성령을 기다리는 모든 믿음의 성도

② 언약 내용 - 보혜사 성령을 보내리라

                                   ※ 요 14:16 - 내가 -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

                                                               ※ 그가 또 -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

                                                                           ⇒ 영원토록 -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③ 특징

       ⅰ) 보혜사 성령님은 - 영원히 성도와 함께 하심.(요 14:16~17)

       ⅱ)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 성령님을 보내시사 -

                                         ⇒ 심령 가운데 - 내재케 하시고

                                              성도들을 -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요 14:26, 요 16:13))

                  ※ 요 14: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 그가 - ❶ 너희에게 모든 것을 - 가르치고

                                                                   ❷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 생각나게 하리라

                  ※ 요 16:13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

                                                    ⇒ 그가 너희를 -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 스스로 말하지 않고 -

                                                                ❶ 오직 들은 것을 - 말하며

                                                                ❷ 장래 일을 -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ⅲ) 성령이 -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임하심(행 2:1-4, 33)

       ⅳ) 일방(편무) 언약.

(3) 재림 언약 - 심판자로서 오심 – 각 사람의 행위대로.(행 1:11, 계 22:20, 요 14:2~3)

                ※ 두 남자 -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

                                                                    ⇒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 오시리라.”(행 1:11)

                 ※ 계 22:20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

                                                    ※ “내가 진실로 -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① 대상 -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

② 내용 -

          ❶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임

                           ※ 요 14:2 - 내 아버지 집에 - 거할 곳이 많도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 가서 -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

                                                                   ⇒ 내가 다시 와서 -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 나 있는 곳에 - 너희도 있게 하리라

          ❷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 사단을 멸하시고

                                                        성도들을 온전히 구원하심(마 25:41, 계 19:11~16)

          ❸ 그리스도 재림 때 - 성도들을 심판하심(고후 5:10)

          ❹ 일방(편무) 언약

③ 언제 오실런지는 - 오직 하나님만 아심.(마 24:36, 마 24:44)

                                                ⇒ 예수님도 모르고 - 인간들도 모름.

                 ※ 마 24:36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

                                                       ※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 모르고

                                                       ※ 오직 아버지만 – 아시느니라.”

                 ※ 마 24:44 - “이러므로 - 너희도 - 준비하고 있으라!.

                                                             ※ 생각하지 않은 때에 - 인자가 오리라.”

④ 심판자로 오심(마 19:28, 계 22:12, 딤후 4:1)

                 ※ 예수님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 나를 따르는 너희도 - 12 보좌에 앉아 -

                                                                     ⇒ 이스라엘 12 지파를 – 심판하리라!.”(마 19:28)

                 ※ 예수님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

                                                      ※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

                                                                    ⇒ 각 사람에게 -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⑤ 예수님 재림의 징조 - 말세의 징조

                  ❶ 영적 기근 -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함(암 8:11)

                                   ※ 암 8:11 -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

                                                                             ※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 기갈이라

                  ❷ 전쟁, 기근, 지진 발생(마 24:6~8)

                                   ※ 마 24:6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

                                                                     ※ 너희는 -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

                                                                     ※ 아직 끝은 아니니라

                                        마 24:7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마 24:8 - 이 모든 것은 -

                                                              ※ 재난의 시작이니라 

                  ❸ 박해(마 24:9)

                                  ※ 마 24:9 - 그때에 사람들이 -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 너희를 죽이리니

                                                              ※ 너희가 - 내 이름 때문에 -

                                                                           ⇒ 모든 민족에게 - 미움을 받으리라

                  ❹ 미움 - 사랑이 식어짐(마 24:10~12, 마 24:48~51)

                                  ※ 마 24:10 - 그 때에 -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

                                                                                 ⇒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 마 24:12 - 불법이 성하므로 -

                                                               ※ 많은 사람의 - 사랑이 식어지리라

                  ❺ 거짓 그리스도(마 24:5, 마 24:23~26)

                                                              ★참고 - 34. 거짓 그리스도

                                  ※ 마 24:5 - 많은 사람이 -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

                                                               ※ “나는 - 그리스도라!.” 하여

                                                                                        ⇒ 많은 사람을 - 미혹하리라

                                  ※ 마 24:23 - 그때에 사람이 - 너희에게 말하되 -

                                                               ※ “보라!.

                                                                     그리스도가 - 여기 있다.”,

                                                                                      -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 믿지 말라!.

                                      마 24:24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

                                                               ⇒ 할 수만 있으면 -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 24:26 - 그러면 사람들이 - 너희에게 말하되 -

                                                               ※ “보라!.

                                                                      그리스도가 - 광야에 있다!.” 하여도 0

                                                                                     ※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

                                                                                     ※ 믿지 말라!.

                  ❻ 거짓선지자(마 24:11)

                                ※ 마 24:11 - 거짓 선지자가 - 많이 일어나 -

                                                              ⇒ 많은 사람을 - 미혹하겠으며

                                                                              ★참고 - 35. 거짓 선지자

                  ❼ 적그리스도 -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요이 1:7, 요일 4:3)

                                ※ 요이 1:7 - 미혹하는 자가 -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 이는 -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 ❶ 미혹하는 자요

                                                                   ❷ 적그리스도니

                                ※ 요일 4:3 - 예수를 -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

                                                                        ※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 이것이 곧 -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 너희가 들었거니와 -

                                                                       ⇒ 이제 벌써 - 세상에 있느니라

                   ❽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짐(마 24:14)

                                ※ 마 24:14 - 이 천국 복음이 -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

                                                                 ※ 그제야 - 끝이 오리라

                   ❾ 이스라엘 국가 회복(마 24:32~33, 눅 21:29~31)

                                ※ 예수님 -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

                                                                 ⇒ 여름이 가까운 줄을 - 아나니,(마 24:32)

                                                     이와 같이 너희도 - 이 모든 일을 보거든 -

                                                                  ⇒ 인자가 -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 알라.”(마 24:33)

                                 ※ 예수님 -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 보라!.(눅 21:29)

                                                     싹이 나면 - 너희가 보고 -

                                                                  ⇒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눅 21:30)

                                                      이와 같이 너희가 -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 보거든 -

                                                                  ⇒ 하나님의 나라가 - 가까이 온 줄을 - 알라!.”(눅 21:31)

                  ❿ 하늘의 별들의 기이한 현상(욜 2:29~32, 마 24:29, 계 6:12) 

                                ※ 욜 2:29 - 내가 이적을 -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

                                                              ※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31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 이르기 전에 -

                                                              ※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욜 2:32 - 누구든지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 구원을 얻으리니

                                                              ※ 이는 - 나 여호와의 말대로

                                                                      ⒈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⒉ 남은 자 중에 -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 마 24:29 - 그날 환난 후에 -

                                                             ⇒ 즉시 해가 - 어두워지며

                                                                  달이 -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 흔들리리라

                               ※ 계 6:12 - 내가 보니 - 6째 인을 떼실 때에 -

                                                             ⇒ 큰 지진이 나며

                                                                  해가 -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 온통 피같이 되며

⑥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

       ⅰ) 은밀히 오신다 - 도적같이 갑자기 온신다(눅 12:40, 눅 17:24~25, 마 25:6, 계 3:20, 계 3:3)

                        ※ 눅 12:40 - “이러므로 너희도 - 예비하고 있으라!.

                                                           ※ 생각지 않은 때에 -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 눅 17:24 - 번개가 -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

                                                                       ※ 인자도 -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5 - 그러나 그가 먼저 - 많은 고난을 받으며

                                                                        -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 마 25:6 - 밤중에 소리가 나되 -

                                                          ※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 계 3:20 - “볼찌어다!.

                                             내가 -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 누구든지 - 내 음성을 듣고 - 문을 열면

                                                                  ⇒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계 3:3 - 그러므로 네가 -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 생각하고

                                                         ※ 지키어 -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

                                                         ⇒ 내가 - 도적같이 이르리니

                                                                      ※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 네가 알지 못하리라

       ⅱ) 공개적으로 오신다(마 24:30,  계 1:7, 마 26:64, 막 13:26)

                        ※ 마 24:30 - 그 때에 - 인자의 징조가 -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 땅의 모든 족속들이 - 통곡하며

                                                                      ※ 그들이 -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 보리라

                        ※ 계 1:7 - 볼지어다!.

                                          그가 -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각 사람의 눈이 -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마 26:64 - 예수께서 가라사대 -

                                                           ※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

                                                                                  ※ 이후에 - ❶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❷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 막 13:26 - 그 때에 -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

                                                                                   ※ 사람들이 보리라

⑦ 심판 -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하실 사역(요 5:22, 요 12:48, 벧전 4:17~18, 계 20:12~18)

                        ※ 요 12:48 -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 심판할 이가 있으니

                                                       ⇒ 곧 내가 한 그 말이 -

                                                                        ※ 마지막 날에 - 그를 심판하리라

                        ※ 요 5:22 - 아버지께서 -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

                                                                        ※ 심판을 다 -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벧전 4:17 - 하나님의 집에서 -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 만일 우리에게 - 먼저 하면

                                                                        ⇒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벧전 4:18 - 또 의인이 - 겨우 구원을 받으면

                                                                        ⇒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 어디에 서리요

                      ※ 계 14:7 – 그가 - 큰 음성으로 가로되 -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

                                                              ⇒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 계 20:12 -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 그 보좌 앞에 섰는데

                                                              ❶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

                                                                                     ※ 곧 생명책이라

                                                              ❷ 죽은 자들이 - 자기 행위를 따라 -

                                                                                 ⇒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으니

                    ※ 계 11:18 - 이방들이 분노하매 -

                                                    ⇒ 주의 진노가 내려 -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

                                                              ⇒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⑧ 말세에 주님을 맞이하는 방법 - 깨어서 들어야 함.(마 25:6, 마 25:13, 요 10:27, 계 2:29, 계 3:20)

                   ※ 마 25:13 - 그런즉 - 깨어 있으라!. 

                                                           ※ 너희는 - 그 날과 그 시를 - 알지 못하느니라

                   ※ 마 25:6 - 밤중에 소리가 나되 -

                                                ※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 요 10:27 - 내 양은 -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 그들을 알며

                                         그들은 - 나를 따르느니라

                   ※ 계 2:29 - 귀 있는 자는 -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 계 3:20 - 볼지어다!.

                                       내가 - 문 밖에 서서 - 두드리노니

                                                            ※ 누구든지 -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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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몸-세계를 창조하기와 파괴하기
일레인 스캐리 지음, 메이 옮김/오월의봄·3만7000원

문학의 공교한 언어를 읽던 섬세한 시선으로 ‘세계’라는 텍스트를 읽어내려가는 문학비평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 황현산 교수, 신형철이 좋은 모범이다.

일레인 스캐리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의 첫 책이자 대표작인 <고통받는 몸>도 ‘문학비평가의 세계비평’의 성공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1985년 출간된 이 책은 당시 40살의 지은이를 단숨에 주목받는 학자이자 저술가로 올려놓았고, 지금도 몸의 고통과 고문을 논의하는 데서 빠지지 않고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스캐리는 이후에도 여러 책을 냈지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책도 <고통받는 몸>이 됐다.
스캐리는 호메로스와 사르트르 등 수많은 문학 작품과 함께 자크 데리다의 해체비평, 현상학,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 등 철학 텍스트를 비롯해 앰네스티 보고서, 군 실무참고서까지 막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가로지른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곳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관성에서 벗어난 언어로 전개해나가는 독창적인 사유가 읽는 사람의 정신을 각성시킨다.

<고통받는 몸>의 저자 일레인 스캐리 미국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지은이의 평범하지 않은 언어를 평범하게 만들어버리는 위험을 피할 수 없지만, 책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인간은 창조를 통해 대상과 사물을 만들어왔다.
인간의 창조 이유는 현실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추위와 배고픔, 동물의 위협에 대항해 옷, 불, 집을 발명해냈다.
인간은 몸의 고통과 불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만큼 세계로 눈을 돌려 더 많은 창조물을 탄생시켰고, 자신을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문과 전쟁은 이와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파괴하는 운동이다.
인간의 몸에 고문은 고통을 가하고, 전쟁은 상해를 가한다.
고통받는 인간은 그 세계가 극단적으로 축소돼 결국 고통만이 그의 세계 전부를 잠식한다.
고문을 받는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언어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고통은 단말마와 비명으로만 표현될 뿐 좀처럼 언어로 명료하게 옮겨지지 않는데, 저자는 이를 “고통이 언어에 저항하는 것은 언어의 본성이다”라고까지 표현한다.
그 끝에서 (한 인간이 구성한) 모든 문명과 세계는 붕괴한다.

그 붕괴는 철저하다. 고문실 안에 있는 “벽, 의자, 욕조”와 같은 인공물조차 본래의 기능을 잃고 고문 무기로 전환돼버린다. 지은이는 고문의 고통으로 몸을 뒤트는 사람을 브라질에선 ‘전화기’, 그리스에선 ‘모토로라’(접이식 핸드폰이 펴졌다 접혔다 하는 모습)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전한다. “극한의 고통 안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전화기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이 전화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화기가 아니라 한 인간을 분쇄하는 수단일 뿐이고, 분쇄되는 이 인간은 더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전화기일 뿐이고, 다시 이 인간은 전화기가 아니라 그저 전화기를 분쇄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런 고문을 통해 정권의 권력이, 전쟁을 통해선 전쟁의 결과가 약탈물과 확대된 국경선의 모습으로 실재가 된다.

지은이는 이 같은 ‘세계를 파괴하기와 창조하기’(부제)라는 양극의 운동이 곧 인간 문명의 근본적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파괴에서 창조로 돌아서는 그 전환의 첫발, 즉 몸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야말로 문명의 핵심 과제라고 단언한다. 언어에 저항하는 고통을 언어화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는 어려워하지만 의심은 쉽게 한다. 그렇기에 출판, 의학, 법, 예술 등을 통해 고통을 언어화하려는 인간의 발버둥은 “윤리적인 중요성으로 가득 찬 기획”이다.


스캐리는 여기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오랫동안 독방에 갇혀 고문당한 죄수가 어느 날 빵 덩어리 안에서 작은 쪽지가 든 성냥갑을 발견한다.
쪽지에 적힌 말은 “코라죠(이탈리아어 Coraggio)!”, 즉 “용기를!”이라는 말이었다.
“이 부서지고 절단된 목소리들의 세계 안에서 가장 치유가 되는 강력한 순간은 어쩌면 당연히도, 상상을 초월하는 고립과 자기 자신의 육체 안으로 삼켜지는 것만이 유일한 현실이 된 사람에게 인간의 목소리가 와 닿는 순간이다. (…)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위와 같은 행위들은 고통을 규탄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고통을 감소시키는 일과 거의 같은 것, 고문 과정 자체를 부분적으로 되돌리는 일이 된다.”

이 책이 나오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국제 앰네스티가 1972년 시작한 세계 각국 독재정권의 고문 실태 폭로와 고문 철폐 캠페인이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지은이가 1977년 런던에서 국제 앰네스티의 고문 보고서를 읽은 것이 집필에 결정적이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지은이는 고문 보고서를 읽으며 “고문의 구조가 사실 창조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이라는 이 책의 핵심 테제를 떠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고문은 세계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겠으나, 지금의 한국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급박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은이가 고문이라는 폭력의 극단적 형태를 해명함으로써 드러난 폭력의 논리는 현실의 폭력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얼마 전 어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바닷물 속에 잠겨 들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문’을 당해야 했다.
그들의 절규에 귀를 닫지 않고 그 고문과 같은 고통을 같이 받기를 선택한 수많은 시민의 애도가 있었다.

지은이의 언어를 빌려온다면, 그 절규와 애도야말로 우리의 문명이 파괴되는 것을 온몸으로 막은 행위이며, 앞으로 우리 문명이 딛고 서야 할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이들과, 경제 위기를 들먹이며 “이젠 빨리 잊어버리자”고 등을 떠밀었던 이들이 인간과 문명을 파괴하는 고문기술자와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도. 성폭력으로 인해 인간임을 부정당한 여성들이 자신의 고통을 힘겹게 언어로 고백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왜 자신만이 아니라 문명을 치유하는 결단인지도 이 책은 알려준다.

출간 후 30년이 지난 터라 이 책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옮긴이인 연구활동가 메이도 지적하듯이 책에선 문명의 창조 행위를 순정한 유토피아적 행위로까지 격상시키고 있으나, 현대 문명의 창조가 세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자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문명의 위기는 문명의 부정이 아닌, 고도화든 방향 전환이든 문명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손쉽게 기각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지금 시대는 창조의 본질과 방향에 관해 근본부터 다시 사고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통받는 몸>은 여전히 의미 있는 모범이자 자극제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첫 저서이자 대표작인 《고통받는 몸》(1985)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으면서 단숨에 석학의 반열에 올랐다. ‘독창적인 사유’의 학자 스캐리의 참고문헌은 영문학 정전은 물론 군 실무참고서, 미 해군 잡지와 항공기술 잡지에까지 이른다. 문학·법·군사·기술·정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고 광범위한 소재를 다루면서 집필과 강의를 해왔지만, 스캐리의 작업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인간의 고통을 향한 연민이 있다. 《고통받는 몸》부터 시작하여, 스캐리는 인간 몸이 훼손되는 상황과 사건들에 민감히 반응하면서 육체적 고통과 언어, 상상과 창조, 아름다움과 정의, 핵무기의 위험, 시민권과 동의 등의 관심사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일반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고통받는 몸》은 출간과 함께 지식인 사회의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받았으며, 고통이 지니는 철학적·사회적·정치적 함의를 논할 때 필수 문헌이 됐다.
이후 스캐리의 주저로는
《재현에 저항하기Resisting Representation》(1994), 트루먼 커포티 문학비평상을 받은
《책으로 꿈꾸기Dreaming by the Book》(1999),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관하여On Beauty and Being Just》(1999),
《누가 나라를 수호했는가Who Defended the Country?》(2003),
《법의 지배, 인간의 실정Rule of Law, Misrule of Men》(2010),
《비상상황에서 사고하기Thinking in an Emergency》(2011),
《핵무기 군주제Thermonuclear Monarchy》(2014),
《그대에게 이름을 주다Naming Thy Name》(2016)가 있다.

육체적 고통은 때때로 존재 자체를 흔들어 버릴 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고통의 양상과 강도를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의 저자인 일레인 스캐리는 “육체적 고통에는 목소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은 ‘나’에게 비현실적이다. 이 세계에서 날마다 누군가 고통받는다 해도, 심지어 그 고통이 불과 몇㎝ 떨어진 바로 옆 사람에게 발생할 때조차, 우리는 그것을 감각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막연하고도 심상하게 여긴다. 이처럼 고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단절을 일으킨다. 그래서 “‘고통에 관해 듣기’는 ‘의심하기’의 가장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책은 이처럼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육체적 고통의 핵심에는 언어의 부서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영어로 번역된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에서 동명의 주인공은 ‘아! 아!!!!’라고 고통을 토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고통은 표현될 수 없는가.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내적 상태는 외부 세계의 대상을 수반한다. 인간의 감정과 지각, 신체 상태는 “내 몸의 경계를 넘어 외부의 공유할 수 있는 세계로 이동”해 나간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은 미움이나 두려움, 혹은 양가적 감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은 외부의 어떤 대상을 지향할 수 없다. “외부로 이동해 나가는 인간의 능력은 육체적 고통에 도달할 때 갑자기 중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육체적 고통은 무언가에 대한 것이거나 무언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대상을 갖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육체적 고통은 다른 어떤 현상보다도 더욱 언어로 대상화되는 데 저항한다.”

다시 말해 ‘말할 수 없음’은 고통의 본성이다. 하지만 저자는 고통을 언어로 표현해 “대상화된 상태로 변환”한다면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일부나마 제거된다”고 말한다. 고통의 영역에 손을 뻗어 언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고통의 본성을 뒤집어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첫 번째는 “몸소 고통을 겪은 개인들”이다. 때로는 그를 대신해 말함으로써 고통이 공적 영역으로 진입하게 통로를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장 명백해 보이는 통로는 의학”이다. 이어서 저자는 국제앰네스티, 소송이 벌어지는 법정, 그리고 예술을 거론한다.


고문과 전쟁은 인간에게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안긴다. 일레인 스켈리는 <고통받는 몸>에서 육체적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전두환 정권이 불법적으로 자행한 고문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고문 철폐를 위한 국제앰네스티의 활동이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한 직접적 영감이었다는 점이다. 책이 집필되던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인간의 몸에 가해지는 위협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베트남전이 끝난 직후였으며, 미·소 갈등과 핵무기 경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국제앰네스티는 1972년부터 10년간 ‘고문 철폐 캠페인’을 진행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독재 정권의 폭력상을 고발했다. 1985년 영어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그런 시대적 상황을 배경에 깔고 있다.

이 책은 고통과 언어의 문제에서 출발했으나,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이 가져오는 정치적 문제”에 주목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고통은 표현되지 않기에, “방 안에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고통받고 있을지라도, 다른 한 사람은 그의 고통을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문장을 읽노라면 한국 사회에서도 빈번했던 고문의 섬뜩함과 잔인함이 절로 떠오른다. 고통은 표현될 수 없다는 본성으로 인해 아예 존재 자체가 부정되면서 “고통받는 이와 다른 이들의 현실 사이에 완전한 단절”이 벌어진다. 저자는 “고통을 언어적으로 재현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 고통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일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문과 전쟁에 대해 ‘파괴하기’라고 명명하면서 책의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고문과 전쟁은 고통을 양산하지만 그 고통의 실제성은 지워지고 정권의 유지, 전쟁의 결과 같은 것들만 남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좀 더 강조하려는 지점은 ‘창조하기’라고 이름 붙인 영역이다. ‘파괴하기’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그것은 “고통에서 촉발된 행위”이며 “대상이나 사물을 지어내고 실제화하는 과정, 불편과 고통을 제거하는 활동”이다. 저자는 인류의 문명 전체를 고통에서 비롯한 창조로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반면에 파괴는 문명을 떠받치는 모든 인공물들, 벽과 창문, 거처, 의학, 법, 친구 등 문명에 속한 모든 것들을 파괴를 위한 무기로 전도함으로써 “문명을 절멸시키는 과정”이다. 저자는 자신이 국제앰네스티 고문 보고서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지점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잔혹함이 창조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 일레인 스캐리(72)는 미국 하버드대 영문학과 교수다. 33년 전 세상에 나온 이 책은 방대한 내용을 다룬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몸은 고통받고 상처받을 수 있으며 그 고통을 표현하고 재현하는 것, 아울러 다른 이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고통을 치유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상해, 고문, 전쟁, 핵무기, 동의, 재현, 상상, 창조 등 이후 스캐리의 다른 저작들에서 다뤄질 중요한 주제들을 예고하고 있는 책이다.



1월 25일(토) 출애굽기 21-23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 귀를 뚫을 것이라(21: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then his master must take him before the judges. He shall take him to the door or the doorpost and pierce his ear with an awl. Then he will be his servant for life.


귀 뚫은 종의 의미(Piercing One's Own Ear)
출애굽기 21:1-6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이 세상은 법이 있어야 질서가 유지됩니다. 나라의 법은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으로 뽑힌 선량들은 국민들의 삶과 국가의 안보, 치안 등을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새로운 법을 만들고 기존의 법을 재정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모든 법을 주시는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법을 내리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셨고, 613가지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백성답게 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주신 은혜의 법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이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인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녀를 낳습니다. 자녀를 낳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법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법 가운데 <종에 대한 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은 남종을 향한 5조이고, 7~11절은 여종을 향한 5조입니다. 

종들은 6년간은 의무적으로 종살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7년 째 되는 해에는 무조건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과 살다보니 주인이 너무나 좋고, 나가서 자유인으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주인의 종으로 사는 것이 더 좋다는 결심이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처리하는 법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5,6절=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송곳으로 귀를 뚫은 종은 어떤 종입니까? 이 시대 스스로 자진하여 귀에 구멍 뚫은 종은 어떤 그리스도인입니까?
1. 종신토록 상전을 섬기기로 자원함 (= 영원한 하나님의 종)

  6절=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다른 사람의 종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종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종이 되는 경우를 몇 가지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해서 종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레 25:39). 또한 도적질한 것을 배상할 능력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적질한 것을 배상하라고 하십니다(출 22:3).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종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6년만 참고 종살이 하면 7년째 되는 해에는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종의 노동 연한을 ‘6년’으로 정한 기준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6일간 일하시고 제 7일에 쉬셨다는 데 있습니다. 

제 7년에 자유함을 얻은 종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함을 획득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죄의 종으로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젠가는 자유함을 주실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6년을 종으로 살고도 “나는 내 주인이 너무 좋고 내 처자가 좋아서 이 집을 떠나지 않겠다” 라고 결단하면 주인은 그를 재판장에게 데리고 갑니다. 

재판장은 그 종의 의사를 확인하고 문설주에 종의 귀를 대게 합니다. 그리고 송곳으로 귀를 뚫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종이 되었다’ 라는 표시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원하여 귀를 뚫은 종은 어떤 종입니까? 그는 종신토록 상전을 섬기기로 자원한 종인데, 이것은 영원히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자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한번 구멍 뚫은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미국의 어느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헌금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헌금을 하는데 한 아이만 헌금은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따로 불러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아이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헌금할 돈이 없어 대신 그 시간에 기도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내 몸과 생명과 내 일생을 바치겠다고 기도드려요.” 
그 말에 감동한 선생님은 아이를 격려하고 나서 약간의 돈을 주면서, ‘잔돈으로 바꿔 매주일 1달러씩 헌금하라’고 말했습니다.
몇 주일이 지나자 매주 꼬박 꼬박 헌금을 하던 소년이 더 이상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잔돈으로 바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헌금을 했는데, 사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사먹으면 죄를 지을 것 같고... 그래서 지난 주일에 몽땅 바치고 이제는 다시 기도만 하기로 했어요."

어려서부터 이렇게 성실하게 기도하던 소년이 바로 1884년 부활절에 당시 미국인들에게 불모지나 다름 없던 조선 땅에 건너온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님입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먼 오지인 한국에 와서 평생을 귀에 구멍 뚫은 종으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귀에 구멍 뚫은 종입니까? 
여러분은 종신토록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셨습니까?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가장 귀한 자유까지 포기하고 자원하여 영원한 주님의 종이 되기로 헌신하셨습니까?

프랑스 군대의 최고의 명사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군인 봉급을 절약하여 조그마하고 아담한 집을 샀습니다. 
그 집은 담쟁이 덩굴이 우거지고 각종 꽃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그가 은퇴하여 평화롭게 이 집에서 살 수 있을 때를 손꼽아 기다리던 그 무렵 보불전쟁이 발발했고, 독일군이 이 조그만 마을을 점령하여 그의 집을 병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 명사수인 병사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대포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 때 그를 지휘하는 장군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네, 저기 저 시골집이 보이나?” 
병사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작은 집을 장군이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집에 독일군이 들어가 있네. 잘 겨냥하여 일격에 날려버리기를 바라네,” 장군이 말했습니다. 

명령에 복종한 이 병사는 그가 가진 기량을 다하여 장군이 지적한 집을 겨냥했습니다. 
무서운 굉음이 터지면서 그 아름다운 집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잘 했군,” 하며 장군이 병사를 돌아다 보았을 때, 병사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자네 왜 그러나? 무슨 일이야?” 그러자 충성스러운 병사는 대답했습니다. 
“장군님, 제 집입니다.”
이 병사는 그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그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기꺼이 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십자가에 피흘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가장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자원하여 귀에 구멍 뚫어 영원한 하나님의 종이 되는 엄숙한 결단의 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상전을 사랑하니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함 (= 자유를 포기한 종)

  5절=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

  누구든지 잠시라도 종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부득이 종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6년만 참고 주인을 섬기면 이제 자유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자원하여 귀 뚫은 종은 6년 만에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거절하고 영원한 종이 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6년 종은 임시 종이요 귀 뚫은 종은 영원한 종입니다. 이 사람은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자유를 스스로 포기한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 여러분! 귀에 구멍 뚫은 것은 자신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자유를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아낌없이 포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실 7년째의 종의 해방은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은 주인의 신앙적인 행위에 기인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6년간의 종 생활을 마친 자에게 신분상의 자유만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자립의 기틀까지 마련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해방되는 종들이 빈손으로 출발하게 되면 분명히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또다시 빚을 지고 종이 되는 생활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에 그를 6년 간 부렸던 주인으로 하여금 얼마의 물질을 주어 보내도록 배려를 하신 것입니다. 

신 15:12-14= “···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영원히 주인의 종으로 살겠다고 자원하는 종의 마음을 보십시오. 귀에 구멍 뚫은 종, 상전을 사랑하여 자유인이 되기를 포기한 종 --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사역을 맡기십니다.

  링컨이 어느날 시장을 걷고 있었습니다. 노예시장이었습니다. 한 가족을 진열하여 놓고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 뿔뿔이 헤어져 따로따로 팔려가는 현장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여종이 필요하다고 그 가정의 예쁜 딸을 사가려고 하니까 딸이 안 떨어지겠다고 부등켜 안고 몸부림치면서 막 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링컨은 이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다가가서, 그 종의 가정 식구를 모두 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의 몸값은 내가 다 지불하였네. 그대들은 이제 자유네.” 그때 그들은 말했습니다.

  “주인님, 우리는 주인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의 영원한 종이 되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거절하고 자원하여 종이 되기로 선택한 종이 ‘귀에 구멍 뚫은 종’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자유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쓰는 사람, 내가 가진 물질을 다 쓸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자원하여 주님께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는 사람, 내 몸의 편함을 누리기를 거부하고 주님의 일을 위해 몸을 불사르기를 자원하는 사람 -- 이런 사람이 귀에 구멍 뚫은 종입니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C. T. 스터드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수석을 달리는 우수한 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아주 탁월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그는 크리켓으로 영국 전체 시합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보장된 출세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캠퍼스 집회에 참여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가겠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 때문에 그는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선교사가 되는 훈련을 마치고 중국 땅으로 갔습니다. 

중국에서 10여 년을 섬긴 후에 그의 육신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와 투병 생활을 하던 중 그는 다시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결정이라며 그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스터드가 남긴 말은 모든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의미를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날 위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로 만족해서도 안 되고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자원하여 귀에 구멍 뚫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자원하여 귀에 구멍 뚫은 종입니까? 주님을 사랑하여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주께 헌신하기로 작정하셨습니까? 

3. 구멍 뚫은 귀를 부끄러워하지 않음 (= 종의 직분을 자랑스러워하는 종)

  5절=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

  아무리 종이라도 귀에 구멍을 뚫지 않으면 종의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귀에 구멍을 뚫으면 평생 종이라는 표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종은 자원하여 귀에 구멍을 뚫은 것이라 이 흔적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종이라고 깔보는지 모르지만 본인은 조금도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자원하여 귀에 구멍 뚫은 종은 종의 직분을 자랑스러워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성경

 인물 중 종의 직분을 그리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사람으로 사도 바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가 쓴 서신서의 초두에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종 됨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빌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딛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

  바울 사도는 자신의 종 됨을 자랑스러워하며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전도하다가 매를 맞았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복음으로 인해 받은 많은 상처와 고통의 자국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그의 자랑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이 흔적을 ‘예수님의 흔적’이라 하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몸에는 바울처럼 예수님의 흔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신학, 철학, 음악, 의학 등 4개의 박사학위 소지자인데 하나의 밀알이 되는 사명으로 아프리카 오지에서 흑인들을 위해 일평생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아프리카에 온 방문객이 그의 헌신을 보며 “당신 같은 사람이 꼭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야 합니까?” 라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슈바이처는 “나를 동정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십니까?” 라고 했다고 합니다.

프란시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흔적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몸에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프란시스는 아무에게도 이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그에게 난 못자국, 창자국, 채찍자국을 그의 옷을 빨래하던 여인만이 알았습니다. 
빨아도 빨아도 자꾸만 피가 흘렀다고 합니다. 
프란시스는 온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던 주님의 참 종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귀에 구멍 뚫은 종은 사람들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표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살아간 종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주님의 종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탈북자인 <이순옥> 여사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호주를 비롯한 곳곳에서 북한의 참상을 증언했습니다. 
그 분은 북한의 감옥과 교화소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던 분입니다. 
그 증언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는데, 그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교화소 안에는 용광로 시설이 있는 작업장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무기 생산에 필요한 것들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게 됩니다. 

옷도 거의 입지 않고 고무로 된 치마만 걸친 수백 명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는데, 멀리서 보니 그들은 머리가 둘 달린 괴물 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가까이 가 보니 고문을 당해 머리에 혹이 하나씩 달려 있었고, 척추가 내려앉아 꼽추처럼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혹독한 형벌을 당했으면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그곳의 간수들은 그들을 <하늘을 믿는 미친놈들>이라고 욕을 했다고 합니다. 

하늘을 믿는 이 사람들은 누굴까요?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간수들은 징을 박아 만든 구두로 그들을 밟고 짓이기곤 했습니다. 그들은 피투성이가 되고 뼈가 부러져 나갔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서도 그들은 <주여, 주여>하면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고, 그 얼굴에는 고통이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얻어맞다가 죽으면 시뻘건 쇳물을 갖다 부어 숯처럼 만들었는데, 공장 안에 살타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합니다.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북녘 땅에서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주님의 종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지하교회 성도들이 계십니다. 

남한의 교회는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그리고 북한 성도들의 신앙의 자유를 위해 연합하여 움직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들은 왜 그런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나요? 천국에 가 봤습니까?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버티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비록 천국에 가 보지 않았지만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천국을 믿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오히려 천국 가는 보증수표로 생각하고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의 종 됨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피 값을 지불하고 사셨다는 말입니다. 
그 흔적이 복음이 되어 여러분의 영혼에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원하여 귀에 구멍 뚫은 사람들로 부름받아 나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제 영원한 하나님의 종이요,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주님의 종 됨을 자랑스러워하는 종이어야 합니다.

이제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가 가기 원하는 곳으로 마음껏 달려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로 기도하며 걸어가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여러분의 육체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며, 여러분의 시간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여러분의 물질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는 참된 헌신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 가지
- 일단 첩이 된 여종에게 주인이 남편의 자격으로서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의무(10절),
즉 의복, 음식, 동침의 의무를 가리킨다.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 일전에(7절) 딸을 여종으로 팔고서 주인으로부터 받았던 돈을 다시금 그에게 되돌려 줌이 없이 딸을 자유인의 몸으로 되돌려 받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렇게 되면 이제 그 딸은 더이상 주인에게 속한 여종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여인의 신분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귀를 뚫은 종의 마음(출애굽기 21:1-11)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족쇄라면 갑절의 족쇄를 채워주십시오. 만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멍에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멍에로 묶어 주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멍에로 묶어지는 것이 유일하며 완전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귀를 뚫은 종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주인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기에 스스로 사랑의 종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1. 네가 백성 앞에 세울 율례는 이러하니라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3.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7.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 같이 나오지 못할찌며
  8.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아니하여 상관치 아니하면 그를 속신케 할 것이나 그 여자를 속임이 되었으니 타국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요
  9.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접할 것이요
  10.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 들찌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못할 것이요.
  11.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자유와 평등의 새 세상을 꿈꾸며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었지만 약속의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출애굽기 21장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노예에 관한 규례입니다.

첫째, 노예제도의 규례

남자 노예의 경우 주인을 위해 6년을 일했다면 몸값을 내지 않더라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주인의 집에 머무를 수도 있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한 이들은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배고픔을 면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노예제도는 창조 질서가 아닙니다.
노예라고 해서 생각과 인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그들이 자유인으로 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7년째가 되면 노예를 해방하되 자립할 수 있도록 넉넉히 베풀어야 합니다(신명기 15:13~14).

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남의 딸을 노예로 샀을 경우는 문제가 좀 복잡해집니다.
주인이 아내로 삼으려고 그녀를 노예로 샀지만 금방 싫증이 나서 여자를 내보내려 한다면 몸값을 얹어서 친정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그를 이방 민족에게 파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만약 아들에게 주려고 여종을 샀다면 종이 아니라 딸처럼 대해야 했습니다.
또 주인이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맞이한 경우 첫째 아내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아내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했습니다.
만약 능력이 없다면 몸값을 받지 말고 친정으로 돌려보내주어야 했습니다.

왜 여종의 규례가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부모에 의해서 노동력과 성적 노리개로 사고 팔리는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여성은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되었고 침묵과 인내와 희생을 강요당했습니다.
성경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 규정을 두었습니다.

둘째, 스스로 노예 된 자

성경은 노예해방의 예외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주인과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니 나가고 싶지 않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주인은 그를 재판관에게 데려가 법적으로 계약을 맺고 그의 귀를 송곳으로 뚫어 영원한 종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영원히 노예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주인을 존경하고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스스로 영원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사랑과 자유 사이에서 서슴없이 사랑을 선택하고 자유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사랑의 종이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약속받은 7년째 되던 해 그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년 안에 낳은 자식이니 아이들이 얼마나 어리겠습니까?
아내와 자식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뻤겠습니까?
그는 가족들을 두고 자유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은 스스로 영원한 종이 되기로 결심한 그의 귀를 송곳으로 뚫었습니다.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는 징표입니다.
귀가 송곳으로 뚫렸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 자원하여 자유를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수치와 굴욕의 징표가 아니라 당당하고 떳떳한 사랑의 표식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노예였지만 그 영혼 안에는 자유인들이 가지지 못한 깊은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자유를 포기한 노예. 더 놀라온 것은 이렇게 스스로 종이 된 자도 희년 즉 50년이 되면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노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는 사랑으로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인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자유를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반납하고 종의 멍에를 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으로 살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 때문에 스스로 노예가 되어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이지만 진정한 자유와 만족을 누리며 살기에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격하며 그분의 종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기꺼이 주님의 종이 되어서 즐거이 주님이 가신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사는 인생은 결코 노예의 삶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의 종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혀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종이 되어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더 깊은 인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 세상의 그 어떤 종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종이 되어 이 땅에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죽어가면서 말한 것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나는 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 벌레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나는 위대한 나폴레옹이 곧 맞게 될 운명이다.”

간디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안았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다. 내 주위는 모두 어둠뿐이며 나는 빛을 달라고 기도한다.”

간디가 말한 구렁텅이는 천로역정에서 나오는 구렁텅이입니다. 간디는 기독교의 문화에 대하여 잘알고 있었고 기독교에서도 호감을 갖기있지만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벤자민 프렝크린 “여기 벌레의 먹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작품은 사리지지 않으리 그가 믿었던 대로 작가가 교정하고 개정하여 우아한 판본으로 새롭게 낼 것이다.”

사도바울의 말입니다.

딤후 6장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빌리 그레엄 목사님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의 말을 인용, 이 구절은 큰 글씨로 인쇄돼 침실과 주방, 욕실 등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집 안 곳곳에 놓았다고합니다. 그레이엄 목사가 95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 그는 이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설교를 준비하며 이 구절을 가슴속에 새기고자 했다. 아들 프랭클린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회고하며 “우리가 항상 곁에 두고 살아가기에 좋은 성경 구절”이라고 지난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언젠가 당신은 빌리 그레이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이전보다 더욱 살아날 것입니다. 방금 이사를 완료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낼 때마다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사도로서의 자격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시고 주의 종으로 삼아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사도 바울도 주의 종으로 삶을 살았지만 여러분들도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로마서 1장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것이라는 것은 소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소유는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종이지만 성도 여러분들도 다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원래의 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가 죽으시고 여러분들을 다 자유의 종으로 사셨습니다. 자유의 종으로 살아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난 주일날 우리에 주시는 십계명은 우리에게 큰 틀의 계명입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가 세부적으로 지켜야할 사항들이 21장부터 나오게 됩니다. 성경은 그것을 율례와 규칙(법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의 정의, 종이 자유인이 되는 과정, 종이 귀를 뚫는 의미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종이란?

1.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종이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한 주인에게 순종을 다할 의무를 지고 있는 남자나 여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종이나 노예를 가리키는 구약의 가장 보편적인 단어는 히브리어로 에베드입니다. 구약에서는 종, 사환, 품꾼으로 사용되고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둘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사환이나 시종, 사자와 같은 일을 하는 집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노예)의 시작 ?

문서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서부터입니다. 수메르인의 나라에서 출연하였습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부근의 자옷에서 귀족, 평민, 예속민, 노예 (공노예, 사노예) 문서에 의하면 전쟁에서 뿐만아니라 양부모가 자식을 포기하는 경우 노예로 팔았습니다.

기원전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백성들은 노예로 살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보다 더 가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노예생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애굽한 것이 성경입니다.

본서는 십계명을 백성들에게 전달한 뒤 곧이어 유대인이 다른 유대인을 6년 이상 잇달아 노예로 부리는 것을 금시하는 법령이 이에서 나왔다고 책은 전하고 있습니다. (43페이지, 크리스티앙 들리캉파뉴, 노예의 역사)

레위기 25장 44. 네 종은 남녀를 막론하고 네 사방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사올 것이며 …. 46. 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가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노예제도의 폐지는 기독적인 나라에서부터 폐지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텐마크 독일 (퀘이커교도들) 스위스 네덜란드.. 미국의 경우에는 흑인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흑인들에게 자유를 주기 시작하였고 1865년 4월 9일까지 60만명의 사상자와 흑인 3만 8천명의 죽음으로 노예전쟁이 끝을 내게 되어 링컨 대통령에 의하여 노예제도를 전면 폐지하게 되었습니다.

2. 종이 되는 경우

1) 전쟁의 포로가 되는 경우입니다.

왕하 5장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2) 가난하게 되어 부체를 갚지 못할 경우

왕하 4장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3)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에 배상할 능력이 되지 않을 경우 자신을 팔아 종이 되는 경우

출애굽기 22장 3. 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둑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3. 종에서 해방

3.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1) 남자의 경우

(1) 7년이나 희년에 해방됩니다.

해방될 때에 주인은 종에게 선물을 주워야합니다.

신명기 15장 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2) 아내와 함께 들어오면 남자 종과 여자 종은 자유롭게 나갈 수 있으나 종이 되었을 때에 주인이 여종을 주워 결혼하게 하였을 경우 남자 혼자만 나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아내와 함께 영원히 종노릇하려고 하면 제판장에게 보이고 그리고 귀를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서 영원히 그 집에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여자가 종일 경우

(1) 주인의 첩이 될 수 있고

(2) 자신의 아들의 아내가 될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의 아내가 될 경우 자신의 딸처럼 생각하고 정당한 권리를 주워 대우하도록 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왜 노예제도를 두었을까?

하나님은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하셨는데 왜 노예제도를 두게하셨을까?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 미국의 16대 대통령까지 노예제도가 존속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기독교 국가서부터 노예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독교 국가 들어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평등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저희 어린 시절에는 여성들이 공부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였지만 이제는 여성들에게 학문의 자유를 주고 누구나 균등하게 시험을 통하여 회사와 공무원에 합격하여 일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기독교국가 아닌 곳은 므슬렘과 불교국가에서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인권과 자유가 없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7년째 되는 해에 안식년 해에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워서 생활할 수 있도록 성경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안식년 뿐만 아니라 희년에서도 모든 노예를 해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적으로 노예제도 종에 대한 제도를 완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신약과 구약의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노예제도가 전반적으로 이루워지고 있는 상황가운데 이러한 성경의 구절을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7년이 되면 모든 노예가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4. 귀를 뚫은 종

5.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장가들고 왔으면 아내와 함께 나갈수 있다.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주었으면 아내와 아들 딸은 상전에 속할 것이요. 단신으로 나갈 것이다. 종이 상전에 나는 내 처자를 사랑하니 자유인이 되지 않고 당신를 섬기겠다고하면 제판장에 대리고 가서 그 집 문설주에 송곳으로 그의 귀를 뜷어 영원토록 상전을 섬기도록 하는 법입니다.

칠년이 되었지만 자유인이 되지 않고 자신을 영원한 종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에 자신의 귀를 뚫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자신을 비워 영원한 하나님의 종으로 순종의 종으로서 그리고 수난의 종으로 오신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군대에서 말뚝을 박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뚝을 박을 때에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군대가 좋아서 (군대 체질인 사람입니다) 2) 사고를 치는 경우 3) 나가서 벌어먹고 살 여력이 없어서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군대와 조금 다릅니다. 왜 주의 종이 되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만 있는 특별한 종의 제도입니다. 모든 나라들은 한 번 노예면 영원한 노예입니다. 노예12년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1840년 경에 자유인 흑인을 잡아가다 남부지방에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곳에 12년을 노예생활하면서 격는 고통에 대하여 책으로 영화로 쓴 내용입니다. 남자의 경우 이빨과 몸이 튼튼한 경우에는 좋은 가격에 팔리는 것입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자녀 생산을 잘하게 생긴 여자가 좋은 가격에 팔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귀를 꿇습니다. 그런데 귀를 꿇은 것은 자신이 다른 분의 소유물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귀를 뚫어 그곳에다가 다름 금속물을 달고 다니는데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몸에 나쁜 파장이 일어질 수 있다고하는 연구결과가 있고 그리고 금속의 부작용으로 귀가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또한 옛날에는 귀에다가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아프라카에서는 미신의 요소, 부적의 요소가 있다고합니다.

5. 자원함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자신의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자신이 다신 종이 되는 것입니다.

1) 첫째는 주인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2) 둘째는 내 아내와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너무 너무 사랑하여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연호의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이 한국에서 잘못한 것들을 취재하여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좀 더 알아야 하겠다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러나 오연호는 미국 현지에서 중요한 것들을 깨닫습니다.

세계에서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도 쇠퇴하고, 1900년대에까지만 해도 소련과 미국이 서로 경쟁하면서 우주항공분야에서 선두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직 미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원함입니다. 
스스로 일하는 것입니다. 
돈 받지 않고 봉사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을 발런티어 자원봉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됩니다.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스스로 자원하여 선교사가 되어서 세계의 모든 곳에 봉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도 이에 못지 않게 이제 선교사를 파송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많은 사람들은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교회를 자원봉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섬김이 축복으로 이어기지를 기도합니다.

종이 자원하여 주인에게 섬기고, 자신의 가정에서 섬기게 될 때에 얼마나 큰 감동을 주번에게 줍니까? 
그의 자녀들은 그의 아내는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남편이 자유의 몸이 되지 않고 영원한 종이 되어 섬기는 모습을 볼 때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자원한 종은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자원하는 종은 그 집의 일들을 자원하여 할 것입니다. 
충성스럽게 할 것입니다. 
능동적으로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돈 주고 팔려왔지만 정말로 충성되고 자원함으로 일함으로 그가 더 많은 지위와 권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원함으로 봉사하게 되면 더 놀라운 부흥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 하고 싶지도 않은데 봉사하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좋지 않고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무척 더운 여름날 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아빠 수고하셨어요’하면서 차가운 사이다와 한병의 컵을 가지고 와서 드시라고 딸아주는 것입니다. 
종일 설교하고 목말랐던 참에 정말 시원하게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빠 목사님이 묻습니다.
‘이것 누가 사왔는니?’ 물었습니다. 
아들이 ‘제가 사왔습니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엄마가 돈 주워서 사왔니? 아니요 제 용돈을 사왔습니다. 
너무 기특해서 사이다 값이 10배를 주었다고합니다.
1000원 주고 자원해서 사왔는데 아빠가 1만원을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므로 7년씩, 2번 14년을 수 일처럼 보냈다고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누구 더 사랑하겠습니까? 
같은 부모라고 하더라고 아내가 더 사랑합니다. 
왜요 아픔과 고통으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누가 더 사랑하겠습니까? 
자원하는 마음으로 고통을 함께 참는자가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하여 우리는 다 죄의 종입니다. 
마귀의 종, 사탄의 종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기뻐서 주님이 너무 기뻐서 스스로 귀에 구멍을 뚫어서 평생 종이 되었습니다. 
주의 종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서는 그러한 분들을 하나님의 종 모세나 다윗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를 주의 종이라고합니다. 
신약시대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예수님의 종,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사용하셔서 백성과 하나님의 중계자가 되게 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1월 24일(금) 출애굽기 18-20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제 내가 알았도다(18:11)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Now I know that the LORD is greater than all other gods, for he did this to those who had treated Israel arrogantly.

참된 믿음은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이델베르고 신조 21문에서 믿음이란 세 가지 요소를 갖추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첫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
둘째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셋째는 믿음은 오직 예수의 공로에 의한 것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광야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하게 듣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이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가 믿는 예수를 지켜보며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참 신입니다 라는 고백을 들을만한 믿음으로 살아왔는가?

성경적인 믿음을 위하여
믿음은 내가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찾는 것


인생은 시간과 함께 생명을 얻었지만 또한 시간과 함께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죽음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이전보다는 덜 하지만 아직도 한자 죽을 사(死)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숫자 4자를 꺼려서 아파트나 병원 층수에서 빼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성경정과 본문은 죽음과 부활을 주제로 합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는 구약 본문은 우리 몸의 부활에 대한 구약 성경의 최초 증언인데 이사야서 26장 19절의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라"는 말씀과 함께 모호하고 단편적입니다. 구교에서는 외경 마카베오 하 7장을 본문으로 하는데 육체에 대한 부활이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는 열렬한 그리스 문화 신봉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정복하자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와 아폴로 신상을 세우고,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 절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분이신 야훼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티오쿠스의 명령에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안티오쿠스의 명령에 항거했습니다.

그때( B.C 175~164) 예루살렘에 일곱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일곱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안티오쿠스 왕 앞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왕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일곱 아들을 차례로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돼지고기를 먹기만 하면 살려 주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아들이 끌려 나왔습니다.
왕은 그 아들의 머리 가죽을 벗기고 두 팔과 양다리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먹을 것인지 죽음을 당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머리 가죽이 벗겨지고 사지가 잘린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
화가 난 왕은 그 아들을 벌겋게 달군 가마솥에 던져 넣었습니다.
솥에서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갈 때, 어머니와 나머지 여섯 아들은 서로 격려하면서 고상하게 죽자고 다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면 틀림없이 측은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왕은 둘째 아들은 돼지고기를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왕은 첫 번째 아들보다 더 잔인한 방법으로 둘째 아들을 죽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못된 악마, 너는 우리를 죽여서 이 세상에 살지 못하게 하지만, 이 우주의 왕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위해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셋째 아들이 끌려 나왔습니다.
셋째 아들도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하는 사람들이 혀를 내밀라고 하자, 그는 혀뿐 아니라 손까지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손발을 하나님의 율법을 위해서 내던진다.
그러므로 나는 이 손발을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받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셋째 아들은 서서히 죽어 갔습니다.

셋째가 죽자 넷째 아들이 끌려 나왔습니다.
넷째 아들 역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넷째 아들은 죽는 순간에 안티오쿠스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사람의 손에 죽어서 하나님께 가서 다시 살아날 희망을 품고 있으니 기꺼이 죽는다.
그러나 너는 부활하여 다시 살 희망은 전혀 없다."

이런 모습으로 여섯 아들이 어머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고스란히 죽어 갔습니다.
이제 막내아들과 어머니만 남게 되었습니다.
안티오쿠스는 겁에 질린 막내와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먹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막내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떻게 내 뱃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도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을 주어 살게 한 것은 내가 아니며, 또 너희의 신체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너희는 지금 너희 자신보다도 하나님의 율법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사람이 출생할 때에 그 모양을 만들어 주시고 만물을 형성하신 창조주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내 아들아, 이 어미를 불쌍하게 생각하여라.
나는 너를 아홉 달 동안 뱃속에 품었고, 너에게 삼년 동안 젖을 먹였으며, 지금 내 나이에 이르기까지 너를 기르고 교육하며 보살펴 왔다. 얘야, 내 부탁을 들어 다오.
하늘과 땅을 바라보아라.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라.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인류가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도살자를 무서워하지 말고 네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태도로 죽음을 달게 받아라.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로 내가 너를 형들과 함께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분이 치밀어서 막내아들을 잔인하게 죽였고, 그 어머니마저도 죽였습니다.

복음 본문은 부활을 믿지 않은 사두개파 몇 사람이 예수님께 첫 남편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결혼하지 않은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규정(신25:5~6)에 따라 계속해서 일곱 남편 그러니까 시동생 여섯과 부부 관계를 하게 되는 한 여인의 경우를 말하고 난뒤 "이렇게 일곱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의 때에 그 일곱 형제가 모두 살아나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눅20:33)라고 묻습니다. 멀쩡한 형제 일곱이 차례대로 죽는다는 게 불가능한 일임에도, 부활 신앙을 조롱하고 잘못되었다 몰아가려고 그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하셨고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에 과연 누가 산 자이며, 누가 죽은 자라고 생각됩니까?
무자비한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면서 일곱 아들과 어머니를 살해한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가 살아 있는 자입니까?
아니면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께 목숨을 바쳐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 일곱 아들과 그 어머니가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에 과연 누가 승리자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폭력으로 일곱 아들과 그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안티오쿠스 왕이 승리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때문에 왕의 폭력 앞에 힘없이 죽어 간 일곱 아들과 그 어머니가 승리자입니까?

일곱 아들과 그 어머니는 안티오쿠스의 그 무자비한 권력과 폭력 앞에서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았고, 폭력으로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안티오쿠스 왕을 꺾어 누른 승리자였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안티오쿠스 왕에게는 제우스나 아폴로와 같은 생명 없는 우상과 폭력이 있었지만, 일곱 아들과 어머니에게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과 부활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우스나 아폴로와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안티오쿠스 왕이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이나 다가올 내세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부귀영화와 향락을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 삶이 전부인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지, 흑은 이 세상이나 사회가 어떻게 되든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권력과 부요를 누리면서 향락과 안일 속에 사는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지르는 행위는 파렴치하며 무자비합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자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모두 그러합니다.

한마디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들은 악마의 자식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 그들의 손끝이 미치는 곳은 모두 죽음과 어둠의 세력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는 사람들에게 지금 안일과 향락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들은 이웃과 형제들의 기쁨과 행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저함이 없이 거짓과 부정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향락과 안일을 위해서 얼마든지 이웃과 형제들에게 고통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어두울 수밖에 없고 고통과 죽음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부활에 대한 희망도 없는 자들이 이 땅에서 온갖 부귀영화와 향락을 누린다고 해도,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죽음의 자식으로서 그들이 누리는 것은 그야말로 향락일 뿐, 참기쁨과 행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향락을 누리면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서서히 죽어 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부활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세상은 희망 찬 세상, 밝은 세상이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오늘 정직하고 진실 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안일과 안락보다는 이웃과 형제들의 기쁨과 행복을 먼저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과 부활을 믿기에 현실에서 당하는 고난과 고통도 감수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죽음은 모든 것의 끝장이지만,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또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다리일 뿐입니다. 여섯 아들을 고스란히 빼앗기고도 막내아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라고 권고할 수 있는 어머니의 용기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마저도 큰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님 여러분, 숨을 쉬면서 살아 있다고, 하루 세끼 밥을 먹는다고 다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이 아니면 정말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요 우리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친구들아, 잘 들어라.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겠다.
그분은 육신을 죽인 뒤에 지옥에 떨어뜨릴 권한까지 가지신 하나님이다.
그렇다.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이다."

생명이 없는 제우스나 아폴로와 같은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안티오쿠스 왕은 일곱 아들과 그 어머니를 잔인하게 죽이고 기고만장했을지 몰라도, 그는 살아 있는 자가 아니라, 죽음의 세력 밑에 있는 불쌍한 자였습니다. 한편 일곱 아들과 그 어머니는 비록 폭력의 희생물이 되어서 비참한 죽음을 당했지만, 그들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당했으나 그 죽음을 죽음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죽었지만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커다란 희망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기쁘게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 앞에서 장엄하게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우리는 바로 그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세력 밑에 있는 마귀의 자식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나누고 베푸는 생활, 그리고 진실하고 성실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나누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서신서 본문을 통해 바울 사도도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주시고 주님의 인내를 본받게 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산 자여, 나를 따르라."


앝타 야다티(עַתָּה יָדַעְתִּי)

이제(6258) 내가 알았도다(3045)
- '이제'란 말의 히브리어는 '아타'(*)로서 '지금에야', '방금에야'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현재를 시점으로해서 과거와 미래의 인생관이 전적으로 변화되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내가 알았도다'란 말은 히브리어의 '야다에티'(*)로서 '내가 깨달았다. ' 또는 '내가 알아차렸다'라는 의미의 현재형 동사이다.
이것은 과거에는 몰랐던 사실을 이제 비로소 분명히 깨닫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 이드로는 여기서 다른 모든 이방신, 즉 자기가 섬기던 신을 포함하여 애굽의 모든 여러 신들이나 다른 부족들의 신들보다 여호와의 능력이 더 위대함을 증거하였다.
그런데 이 표현을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즉 다신교(多神敎) 사상의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다른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과 비교하여 수사학적으로 강조한 것 뿐이다.
즉 이것은 홍해 바다에서 구원받은 후 이스라엘이 올렸던 찬양이나(15:11), 시편의 노래 가운데 자주 나타나는(시 136:2, 3) 표현과 같은 것이다.

제 21 문 :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내가 진실되다고 아는 참된 지식이며 1
또한 전적인 신뢰입니다.2
전적인 신뢰는 복음을 통하여 3
성령께서 내 안에 창조하신 것으로,4
죄를 용서하고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5
남들과  함께 나에게도 6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7
1) 요한복음 17:3,17; 히브리서 11:1-3; 야고보서 2:19
2) 로마서 4:18-21; 5:1; 10:10; 히브리서 4:14-16
3) 로마서 1:16; 10:17; 고린도전서 1:21
4) 마태복음 16:15-17; 요한복음 3:5; 사도행전 16:14
5) 로마서 1:17; 히브리서 10:10
6) 갈라디아서 2:20
7) 로마서 3:21-26; 갈라디아서 2:16; 에베소서 2:8-10

하나님의 말씀은 참된 진리
성령께서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한 것


소금으로 맛을 내듯 은혜로운 말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바깥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항상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특별히 은혜스러운 말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참 재미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은혜스러운 말을 하되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어떤 음식도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습니다. 싱겁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항상 은혜스러운 말을 쓴다고 하다보면 맛이 없습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스러운 말을 쓰는 것까지는 좋은데 늘 흥미가 없고 재미가 없다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교회, 신앙, 성령에 대해서 은혜스러운 말을 하는 것은 좋은데 소금으로 맛을 내듯이 좀 재치가 있고 재미가 있게 말을 하라는 주문입니다. 참으로 현명한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고리타분해보입니다. 늘 예수타령 교회타령만 하고 뭔가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피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금혼식, 즉 결혼 50주년을 맞아서 할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녁놀이 빨갛게 물드는 바닷가 벤치에 앉아서 평생 한 번도 하지 않던 말을 했답니다. "할멈, 고마워. 당신과 함께 지내온 시간이 내게는 참 행복했다오." 이 말을 들은 할머니가 잠시 멈칫하더니만 한숨을 푹 쉰 채 한 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영감, 이제야 진실을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사실 나도 당신과 함께 사는 게 참 지겨웠거든요." 할머니의 귀가 어두워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서는 경우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을 사오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은혜로운 말을 쓰는 것은 참 좋은데 까딱 잘못하면 사오정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의 말은 항상 은혜스럽고 거룩한 말이라야 하지만 좀 맛을 내서 재치 있고 재미있는 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장영희 교수님이 마지막 남긴 유고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보면 추천서를 써달라고 찾아온 제자와 나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예쁘고 날씬한 여학생이었는데 이름을 묻자 '제니퍼 배'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한국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자기 이름이 좀 독특해서 말하기 어렵다는 투였습니다. 
순간 장교수님은 성이 배씨니까 혹시 네 이름이 '배신자'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는 것입니다. 
점점 더 궁금해진 장교수님이 다시 묻자 그 여학생이 대답합니다. 
"배창자요." 이 이름을 들은 뒤 한바탕 웃고나서 두말하지 않고 성명란에 '제니퍼 배'라고 이름을 써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소금으로 맛을 내듯 은혜스럽게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결코 천하거나 야하거나 남의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서도 뭔가 듣고 나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그런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권세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시겠습니까? 긍정적인 말을 해서 여러분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시겠습니까?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잠 25: 11)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긍정적인 말을 씁시다.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씁시다. 은혜로운 말을 씁시다. 소금으로 맛을 내듯 재치가 있고 재미있고 상냥한 말을 씁시다. 여러분의 운명이 바뀝니다. 가정이 변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이 달라집니다.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옛날에 인정이 많은 부자 한 사람이 살았답니다. 그 부자는 동네 안의 한 가난한 목수에게 "우리 부부가 멀리 여행을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 건축비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고 아주 멋진 집을 한 채 지어주게"하고서는 길을 떠났습니다. 목수는 이 기회에 주인을 속여먹어 큰 이윤을 남기기로 결심하고서는 임금을 줄이기 위해 한 번도 건축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인부로 쓰고 싸구려 건축자재를 써서 날림공사로 집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번쩍번쩍 그럴듯 해보였습니다. 드디어 부자가 돌아왔을 때 목수는 "최선을 다해서 멋진 집을 지었습니다" 하면서 열쇠를 건넸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열쇠를 목수에게 도로 주면서 "이 집은 내가 자네한테 주는 선물이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수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부실한 자재로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건설적이고 친절한 언어를 쓰는 사람은 좋은 자재로 튼실한 집을 짓는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쓰는 말이 여러분의 집을 날림공사로도 만들기도 하고, 비가 오고 홍수가 와도 절대로 무너짐이 없는 견고한 집을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소금으로 맛을 내듯 항상 은혜로운 말을 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1월 23일(목) 출애굽기 15-17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치료하는 여호와(15:26b)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He said, "If you listen carefully to the voice of the LORD your God and do what is right in his eyes, if you pay attention to his commands and keep all his decrees, I will not bring on you any of the diseases I brought on the Egyptians, for I am the LORD, who heals you."

치료하다(라파. râphâʼ) רָפָא 스트롱번호 7495

1. 수선하다.  2. 고치다. 3. 신 32:39
발음 [ râphâʼ ]
구약 성경  / 67회 사용

무엇을 치료해야 하는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경상도파 예수 전라도파 예수가 존재한다는 것부터 치료해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아직도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서로 구분하며 심지어 정치적으로 대립과 갈등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가?


치료하는 여호와(I am the LORD, who heals you.)
아도나이 로페에카(יְהוָה רֹפְאֶךָ)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 문자적으로 '여호와', 와 '너희의 치료자'란 동격의 단어가 합성을 이뤄 만들어진 것으로, 직역하면 '나 여호와는 너희의 치료자'가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절대자이신 동시에 우리의 모든 질병과 아픔을 치료해 주시는 친근한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치료하는'의 히브리어 '라파'(*)는 '의사' 또는 '의원'을 가리킨다. 곧 우리의 의원되시는 여호와는 실로 모든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실 뿐만 아니라, 죽음과 죄 등 인생의 모든 문제점까지도 깨끗이 해결해 주시는 진정한 우리의 치료자이시다(마 9:12).

인생을 살면서 씁쓸한 일들을 당할 때 그것을 달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쓰디쓴 독을 마시는 것처럼 괴로운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마실 수도 없고 안 마실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 처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런 쓴 물을 달콤하고 시원한 약수로 바꾸어줍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홍해를 지나 수르 광야로 들어가 사흘 동안 걸어갔으나 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 드디어 물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물을 마셔보니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마라의 물은 마시지 못할 정도로 쓴 것일까요? 

제가 마라에 직접 가서 보았습니다. 
마라는 지면이 아주 낮은 곳입니다. 
바닷물의 높이보다 지면이 낮은 곳입니다.  
그래서 홍해의 바닷물이 스며들어 지표면에 고여 있습니다. 
그 물은 바닷물이니 짜다 못해 쓴 것입니다.

물 없는 광야를 사흘이나 걸으며 지칠 대로 지쳤고 이제 물이 없어 여기서 죽나 보다 하고 낙심 중에 물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고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물이 마시지도 못할 쓰디쓴 바닷물이라니 기대감이 무너지며 오히려 더 속이 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화풀이를 지도자 모세에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이 말은 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자유를 주겠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겠다. 하고 선동하여 물도 하나도 없는 사막으로 인도하여 죽게 하느냐? 는 원망입니다. 그래, 먹지도 못할 쓴물이나 있는 이런 곳으로 인도하려고 끌고 나왔느냐?는 원망입니다.

모세라고 목이 타지 않겠습니까?   모세라고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똑같이 괴롭고 갈증에 시달리는데 사람들은 왜 늘 모세에게 원망하고 화풀이하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백성이라 그렇습니다. 

모든 고난에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고난에는 어떤 뜻이 담겨있을까?' 묵상하며 하나님께 그 문제를 함께 들고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백성은 한번도 그렇게 하지 않고 지도자 모세를 공격했습니다. 모세에게 화풀이했습니다. 

고난에 감추어진 뜻을 모르고 무지한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 - 버티는 사람
고난에 감추어진 뜻을 알고 그 뜻을 적용하며 살아가는 사람 - 지키는 사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버티는 사람은 오래도록 견디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키는 사람은 죽도록 그 일을 감당하므로 흥미롭습니다.




2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이 어떻게 하나? 시험해보신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있나? 고통스러울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문제를 만나면 당황하지 않고 하나님께 가지고 오나?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따라 나온 것을 후회하며 불신앙을 드러냈습니다. 

반면에 모세는 그렇게 한심한 백성들과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너희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 모두 짐승처럼 일만하고 대우도 못 받고 소망 없이 학대 받으며 사는 것을 구해주었더니 은혜를 다 잊었느냐? 바로 엊그제 홍해바다를 가르고 기적을 일으켜 구해줄 때는 감격하여 찬송을 지어 부르고 간이라도 다 빼줄 것 같이 하더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하며 백성들과 똑같이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과만 상대하여 문제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이 물이 없어 죽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만난 물이 쓴 물이라 도무지 마실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도와 주십시오."  

그러자 그 기도가 상달되고 곧바로 응답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며 "꺽어 물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그 나무 가지를 물에 던졌더니 물이 변했습니다. 쓴 물이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과 가축이 그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출 15:26)"

   지금 상황이 누가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나타나 고쳐 주신 것입니까? 모세가 육체적인 질병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고침 받게 한 것입니까? 병든 사람을 고쳐주시는 상황이 아니고 쓴 물이 단 물로 바뀌는 능력이 나타난 직후에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당신을 가리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계시하신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은 어떤 불치의 질병도 치료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암병, 나병, 맹인, 앉은뱅이 등 수 많은 병자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깨끗이 치료하시고 건강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질병의 치료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무엇을 치료해 주시겠다는 약속일까요? 쓴 물을 단 물로, 다시 말해 우리가 처한 환경을 치료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육체적 질병을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주실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처한 환경도 완벽하게 치료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도 깨끗이 치료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제 이스라엘백성이 쓰디쓴 바닷물을 나무를 던져 넣어 단 물로 정수하여 마시고 나서 조금 더 행진을 하니 엘림이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엘림에는 물 샘이 열 둘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가 칠십 주나 있었습니다. 신선하고 깨끗한 샘물을 실컷 마시고 여행을 위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샘이 열 둘이나 모여 있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우거져 숲을 이룬 완벽한 오아시스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장막을 치고 얼마 동안 쉬면서 원기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황량한 사막에 안락한 오아시스를 준비해 놓으시고 그 백성의 고통을 치료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백성들의 원망하는 불신앙도 치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하나님의 처방이 많고 많은 것 중에 왜 나무였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든 알프 핑크 라는 

 성서

 주해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 나무 가지에서 십자가를 본다. 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나무를 본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시는 방법으로 베드로 전서 2장24절에 보면 십자가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인류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치료하십니다. 여러분, 고통스러울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심으로 치료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통 당할 때 고통의 의미를 물어도 누구도 속 시원하게 그 의미를 다 해결하거나 대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면 한가지 분명한 대답을 얻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같이 아파하시는구나! 고통 속에 있는 나를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찾아오신 하나님, 그 십자가에서 큰 고통과 아픔을 당하신 그 예수님이 내 고통을 이해하시며 위로하시고 이길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한 고통의 한복판 속에서도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파요. 힘들어요. 그렇지만 주님이 저를 사랑하는 줄을 제가 믿습니다." 

이 사람은 다시 일어납니다. 어떤 고통도 슬픔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수 있습니다. 

치킨 스프 스토리에  이런 아름다운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중부 시골마을에 마샤 에븐스라는 소녀가 살았습니다. 
12살이 되면서 수술을 받게 되었어요. 
입 근처에 신경조직이 잘못되어서 수술을 받는데 수술도중에  신경 하나를 건드려서  마샤 라는 어린 소녀의 입이 삐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틴에이저 소녀가 입이 삐뚤어지니까  자화상에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친구 만나기 싫어하고, 학교 가기 싫어하고, 가기는 가도 말도 하지 않고, 친구들을 떠나게 되고, 집에 와서도 말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엄마하고도 대화를 끊었습니다. 
우울한 소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3살이 되는 자기의 생일날, 뜻밖의 이 소녀 앞에  선물 소포 하나가 배달이 되었는데 꽃이었어요. 
치자 꽃 한 송이, 아주 아름다운 치자 꽃 한 송이가 배달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보냈는지 몰라요. 익명으로 배달이 되었어요. 
단지 한마디 "마샤! I love you so much"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마샤가 그 치자 꽃을 보고 가만히 있다가 몇 달 만에 엄마에게 말 문을 열었습니다. 
 '엄마, 이걸 누가 보냈을까? 도대체 누굴까?' '글쎄 누굴까? 아마 너를 좋아하는 남학생이겠지.' '에이 누가 나를 좋아해 나 같은 못난이를..' '그래도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꽃을 보냈겠지.' '그럼 이름을 쓰지.' '수줍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마 남자들도 수줍어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얘, 아마 수줍은 사람이 보냈겠지.' '그럴까?.' 

별것 아닌 치자 꽃 한 송이 때문에 마샤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 지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 생일날도 어김없이 치자 꽃 한 송이가 배달이 됩니다. 그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마샤는 점점 밝아졌고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까지 계속 꽃이 배달이 되었어요. 궁금했던 것이 결혼 후에도 이 꽃이 배달될까? 

그런데   결혼 직후에 불행하게도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치자 꽃 한 송이는 더 이상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샤는 누가 그 꽃을 보냈는지를 알았습니다.  
치자 꽃이 마샤의 인생을 바꾼 것입니까? 아니죠. 엄마의 사랑이 바꾼거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는 고백가운데 많은 고백은 이것입니다. 나는 십자가 앞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고, 십자가가 우리를 변화 시킨 것일까요? 십자가라는 나무가?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가 우리를 변화 시킨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때문 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십자가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되고 삶의 쓴 물을 달게 변화시키는 하나님 사랑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지금 고통 속에 있지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는지?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고통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나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붙들게 되면  우리는 어떤 고통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라에서 더 이상 원망의 삶에 얽매이지 않고 단물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전진하여 엘림에 이르러 오아시스 같은 쉼과 만족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새 힘을 얻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서 전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현실의 어려운 환경과 고통이 십자가의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쉽게 극복하는 하나님의 치유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의 치유를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가 만난 쓴 물을 어떻게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까?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의 말을 듣고 놀라서 미안하다 하시며 얼른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까? 아닙니다. 모세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 나뭇가지를 꺽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런 환경, 괴로운 상황을 만나면 원망과 불평의 화살을 쏘아댈 대상을 먼저 찾습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야, 누구누구가 나쁜 사람이라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그리고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불평하거나 원망의 말을 쏟아놓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될 뿐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사람은 사람이나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말을 늘어놓기 보다는 괴로움을 하나님께 나아가 토해 놓고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그 상황을 아시고 환경을 바꾸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하며 부르짖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하나님은 만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십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만사를 치료하는 의사인 하나님께 우리의 고통을 열어 보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상처를 만지시도록 하나님께 가져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처한 환경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합니까? 만약 건강하지 못하다면 싸우지만 말고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직장환경은 어떻습니까?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만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준비하여 힘들고 지친 광야 길에서 쉴 수 있게 배려하시는 분입니다. 모세처럼 다투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여 하나님을 만나 위기의 상황을 쉽게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라파(출애굽기 15:26)

홍해사건 그 이후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기적이며 감격적인 구원사건을 들라면 그것은 바로 출애굽기 14장에 나오는 홍해사건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병들이 쳐들어오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 하나님은 밤새도록 동풍을 불어 홍해를 가르고 그 마른땅 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걸어서 건너게 한 뒤, 뒤쫓아 오는 애굽 군대 위에 홍해 바닷물이 다시 덮치게 하여 모두 빠뜨려 죽이는 놀라운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홍해의 구원사건 직후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큰 파도를 하나 겨우 넘겼나 싶은데 또 다시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드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위기를 겨우 이겨냈는가 싶은데 곧바로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곤 합니다.
다같이 오늘 본문인 출애굽기 15:22~23을 읽습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구원사건을 체험한 직후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광야여정이 시작되는데 수르광야라는 곳에 이르러 3일이나 헤매도 물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사막에서 물은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먹을 것은 없어도 수십일 이상 견딜 수 있지만 물이 없으면 단 며칠도 견딜 수 없습니다. 사흘씩이나 물을 마시지 못해 기진맥진 거의 죽을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도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어떤 오아시스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오아시스의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물이 쓰다는 말이 얼핏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데 이 ‘쓰다’는 말은 물속에 염분이 많이 들어있어서 짠 맛을 내는 것을 뜻합니다. 사흘 만에 겨우 물을 발견했는데 물이 짜서 도저히 마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몽골에 선교사로 갔다가 몇 년 만에 돌아왔는데 그 가지런하던 이가 다 상하고 빠져 있었습니다.
까닭을 물으니 몽골은 물에 석회석 성분이 많아서 신토불이라고 그 나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마셔 와서 아무 문제도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이나 외국인이 가서 그 물을 오래 마시면 잇몸이 상하고 치아가 빠지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물 좋은 것이 참 큰 축복입니다.
마라의 물도 바닷가에 가까워서 염분이 많이 들어있어 식수로는 도저히 쓸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곳 이름을 히브리말로 쓰다는 뜻을 가진 ‘마라’라고 붙이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렇게 마라 같은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은혜로 이제 좀 살만 한 것 같은데 또 다시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물을 찾지 못하고 소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비틀거리게 됩니다. 드디어 지쳐 쓰러질 때쯤 되었는데 겨우 사막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나게 됩니다. 이제 살았구나 싶어 달려가 보니 그 오아시스의 물은 쓴물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쓰디쓴 순간을 맞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절망하게 되고 인생을 포기하게 됩니다. 내가 왜 사나? 이렇게 살아 뭐하나 싶고, 완전히 모든 소망을 포기하게 됩니다.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피난 갔던 나오미는 거기서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며느리 룻만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터덜터덜 돌아옵니다. 그런 나오미를 고향 사람들이 알아보고 “나오미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들을 향해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불러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란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뜻이고 ‘마라’는 출애굽기에도 나오듯 ‘쓰다’는 뜻이므로 “나는 사랑스러운 여인이 아닌 인생의 쓴맛 다 본 불쌍한 여인이다”는 말이지요.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일들이 찾아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나오미처럼 처절한 인생의 실패와 아픔을 겪으면서, 인생의 쓴맛이란 쓴맛은 모조리 맛본 후에 모든 소망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의 순간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행은 불행끼리 몰려다닌다고 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행과 실패는 계속 몰려오고 우리는 그 인생의 쓴맛 때문에 좌절하는 것입니다.

원망이냐, 기도냐?

그런데 바로 이 인생의 마라의 순간에, 인생의 가장 쓰디쓴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24절과 25절을 보면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특기는 불평과 원망입니다. 홍해바다에서 진퇴양난의 위험에 빠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애굽에 무덤이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까지 끌고나와 죽게 만드냐”며 원망하는데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은 광야생활 끝날 때까지 40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어 조금만 힘들면 하나님께 불평하고, 조금만 괴로우면 모세를 원망하곤 합니다. 오늘 마라의 쓴물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그 주특기인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24절을 보면 백성들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고 원망합니다. 설마 이렇게 점잖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했겠습니까? “야! 이놈의 모세야, 도대체 우리보고 뭘 마시라는 거냐? 목말라 죽으라는 말이냐?”라고 막 해댔겠지요. 조금만 배고프면, 조금만 목마르면 불평하는 습관이요 조금만 힘들고 괴로우면 원망하는 습관입니다.

원망이나 불평은 습관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늘 원망 불평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입에 “아이고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못 살겠다” 소리를 달고 삽니다. 조금만 힘들거나 어려우면 늘 주변 사람들을 탓합니다. 재빨리 원망의 대상을 찾아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늘 습관적으로 누군가의 탓을 하고 공격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습관을 바꾸십시오. “죽겠다, 죽겠다” 하면 정말 죽을 일만 생깁니다. “못 살겠다, 힘들다” 하면 정말 못 살 일, 힘든 일만 계속 생깁니다. 우리의 언어습관을 고치고 정신자세를 고쳐야 합니다. “살겠다, 살겠다” 하면 살 일이 생기고, “된다, 할 수 있다” 하면 정말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감사하다, 즐겁다” 하면 정말 감사할 일, 즐거운 일들이 생깁니다. 우리의 자세와 습관이 정말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보세요.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목마른 순간인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혀 다르게 반응하지 않습니까? 25절에 보면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이렇게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해결방법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과연 하나님은 이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해 주시니 그 나무를 물에 던지자 물이 달아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쓰디쓴 부분들을 단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절망은 소망으로 바뀌고, 불행은 행복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내 인생에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못 믿었기 때문에 방금 전에 열 가지 재앙을 보고, 겨우 사흘 전에 자기 눈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도 지금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열 가지 재앙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홍해까지 가르신 하나님이 그까짓 먹을 물 없어서 그 사랑하는 백성을 목말라 죽게 하시겠습니까? 먹을 것 없어 굶어죽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적은 것이 없다고 홍해의 기적까지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투덜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구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놀라운 기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기적을 체험한 우리가 그까짓 인생에서 쓴맛 좀 봤다고, 어려움 좀 당했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못 믿고 투덜거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홍해기적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놀라운 구원의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이 내 인생에 닥쳐오는 마라의 쓴물들을 다 단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 가지고 어려울 때마다 쓸 때마다 부르짖어 해결 받는 모세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 라파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은 이 마라의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도를 정하십니다.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는 법입니다.
네 가지 조건이란

첫째, “너희가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면”
청종이란 말은 ‘듣고 또 듣는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는 자세입니다.

둘째,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바른 삶을 사는 자세입니다.

셋째,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순종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넷째,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그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네 가지 조건을 갖추면 어떻게 하겠다고요?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아시지요?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의 죽음 가운데 대부분은 사람이나 가축에게 내린 질병입니다.
질병은 우리 인생에서 우리를 가장 괴롭고 힘들게 하는 일들을 뜻합니다.
바로 그 질병이나 불행이나 고통을 모두 제하여 주시고 치유하시겠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여기서 ‘여호와 라파’ 즉 “여호와가 치료하신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히브리말로 좀 더 정확하게 읽으면 ‘아니 여호와 로프에카’ 즉 “나 여호와는 너의 치료자다”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치료자, 나의 의사가 되어 나를 고치고 회복시킨다는 뜻입니다.

나의 치료자 되신 하나님을 만나라

세상에서 몸에 병 하나 안 가지고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저도 이렇게 멀쩡해 뵈지만 실은 몸에 이런 저런 병들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크든 적든 몸에 병 하나 이상씩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병을 빨리 고쳐야지 그대로 놔두면 더 큰 병으로 발전해서 결국 우리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성도들 가운데 육신의 병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분이 많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병은 병원에서 의사가 고치고 약으로 고치는 것이지 기도한다고 고쳐지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병 치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마치 잘못된 신앙이나 미신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5:15에 분명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기도해서 일으키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병이나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할 때 주께서 그 기도를 듣고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의사가 고치고 약이 고쳐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을 통해 주님이 고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못 믿는 것이 오히려 불신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부터라도 내 육신 속에 있는 질병을 위해,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상관없고 불치병이라도 상관없으니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또 나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모든 성도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또 안 믿는 사람의 병도 고쳐주셔서 예수 믿는 기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나의 치료자 되신 하나님이 고쳐주시고, 예수님의 피 묻은 손으로 어루만지사 치유하실 줄 믿습니다. 올 한해 우리 교회와 구역 안에, 우리 가정 안에 모든 질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육신의 질병뿐 아닙니다.
세상에서 인생의 쓴 뿌리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려서 받은 학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한 깊은 상처, 자라면서 겪은 아픔과 시련으로 인해 우리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멍과 상처들...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과 영혼에 쓴 뿌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와 쓴 뿌리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교회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고 그 상처는 저 영혼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쓴 뿌리들 위에 또 다른 쓴 뿌리를 얼기설기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쓴 뿌리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곪아 터져서 병이 됩니다. 정신이 병들고 영혼이 병듭니다. 그 병은 불평이나 원망으로 나타납니다. 쓸데없는 고집이나 남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납니다. 절망과 좌절로 나타납니다. 결국 우리 인생도 망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정도 망치고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질병과 상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이 영혼의 상처와 쓴 뿌리입니다.

그러면 이 영혼의 병과 쓴 뿌리는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육신의 질병은 좋은 의사나 약을 만나면 나을 수 있지만 이 인생의 쓴 뿌리, 내 영혼의 질병은 하나님을 못 만나면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그것도 그냥 스쳐 지나가듯 만나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어렴풋이 하나님을 믿고 아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 내 삶이 바뀌고 내 정신과 영혼이 완전히 새롭게 개조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들 중에도, 심지어 목회자 중에도 인생의 쓴 뿌리, 영혼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교회를 오래 다녔으면서도, 심지어 신학교 나와 목회자가 되었으면서도 아직 치료자 되신 하나님을 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병원 가서 의사를 만나더라도 그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면 그의 처방을 따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감기니까 약국 가서 이런 약을 지어 먹으세요”라고 의사가 처방하는데 환자가 제 마음대로 생각하길 “아무래도 이 의사는 못 믿겠어, 내 병은 틀림없이 감기가 아니라 폐암이야”라고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다른 병원에 가서 다른 의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사도 같은 처방을 하면 또 못 믿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며 똑같은 검사를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병원 패키지 투어 형 환자’라고 하는데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하나님을 내 영혼의 치유자요 내 인생의 치료자로 온전히 믿고 나를 맡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고 또 다른 해결방법을 찾아 전전하게 되지요. 이런 경우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영혼의 상처와 쓴 뿌리는 절대 치유 받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의심과 불안 속에서 치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거나 그 분께 내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속에도, 또 제 속에도 반드시 ‘마라’가 있습니다. 인생의 고통과 상처, 그로 인한 공격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치료 받아야 합니다. 이게 치료되어야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만나십시오. 나의 치료자 되신 하나님을 꼭 만나십시오. 그 분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 분께 내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온전히 맡기십시오. 이 시간 “하나님, 저는 환자입니다. 육체적으로, 무엇보다 영적으로 불치병 환자입니다”라고 인정하고, “이 불치병 을 치유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고쳐 주세요”라고 고백하십시오. 이렇게 고백하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 속에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영과 혼과 육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합니다.
따라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영의 치료자, 혼의 치료자, 육의 치료자가 되십니다.

영의 치료자로서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영생이란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혼의 치료자로서 영의 일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5-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영의 생각이란
골로새서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빌립보서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육의 치료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다양한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마태복음 9:20, 마가복음 5:25, 누가복음 8:43-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이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레미야 33:6-9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1. 인간은 모두 병들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말씀을 불순종하여 범죄하므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죄로 인하여 사람의 영과 육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조금도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를 범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가리우신다고 하였습니다.

5절에 보면“....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만족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얼굴을 돌리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해야 할 그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얼굴을 돌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북극지방의 겨울밤은 길고 춥습니다.
밤이 20시간씩 계속될 때에는 해 구경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해가 빛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시고 돌아서면 내 영혼은 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심령은 냉랭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영혼들이 죄로 어두워지면 냉랭하여 결국은 얼어죽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과 같이 생명의 빛을 발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날마다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민6:25에 보면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로 나를 비취실 때 내게 은혜가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은혜가 떨어지고 내 마음이 냉랭해지는 것은 바로 나의 죄 때문입니다. 다른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나의 죄를 제거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속량 해주신 예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할 때에, 먹구름보다 더 어두운 흑암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것이 없어집니다. 주의 얼굴빛이 우리의 마음속 깊이 비치어 집니다. 그래서 내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냉랭하다 답답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력이 넘칩니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시야 안에서 살아야지, 시야 밖으로 벗어나면 안됩니다.

민6:26을 보면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실 때에는 내게 평강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에 내 영혼과 삶속에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든지, 대면한다고 하는 것은 상징적 표현이지 실제적 사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처럼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영혼이 하나님을 우러러 앙망하며, 사랑하며, 경배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영적 교통을 말합니다.

출33:11절을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친구처럼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눈 사람입니다. 모세의 얼굴에는 신령한 광채가 빛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히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얼굴빛을 가리웠고 그 심령은 추운 겨울처럼 얼어죽어 버린 상태입니다. 송장과 같은 인생들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남은 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형벌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따사로운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치료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났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바벨론의 침략으로 참담하게 된 예루살렘을 고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치료하십니다.
우리 인생들은 사탄의 침략과 죄의 오염으로 만신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 도성과 같이 우리의 심령은 완전히 파괴되고 오염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심령은 병들었고 자연도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고쳐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말라기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5:26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애굽기 23:25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이렇게 하나님의 치료는 광범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자연을 치료
 
출애굽기 15:25
이스라엘 마라에서 물을 발견하였지만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모세가 물을 치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나무를 물에 던졌을 때 물이 치료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치료의 방법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과 이를 믿고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19-22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올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쫓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소금을 뿌린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과 순종입니다. 그래서 이론에 맞지 않는 엉뚱한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엘리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의 수질과 토질을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연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연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연도 고치시는 것입니다.

2. 인간을 치료

우리 인간은 성경이 말한 대로 영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하다고 하는 것은 영혼과 몸이 함께 건강한 것을 말합니다. 인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치료 역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의술이나 의약은 하나님께서 주신 치료의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이 만든 절대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술이나 의약을 사용할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의사는 어디까지나 치료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치료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무슨 병이던지 근본 치료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료하실 때 보면 그저 말씀으로 하신 때도 있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고쳐 주신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치료해 주셨고 그냥 일어나라고 말씀하심으로 고쳐 주신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도 고쳐 주셨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도 걷게 하셨고 눈먼자도 뜨게 하셨고, 문둥병 자도 어린아이 살과 같이 깨끗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나사로도 말씀 한마디로 살려 주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무화과 나뭇잎을 이겨 종처에 부처 치료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병이던지 다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도, 정신도, 육체도, 마음도 모두 한결같이 치료하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이 먼저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삼2절에서 말씀하기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영혼이 잘될 때에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의 치료는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로 병든 부분을 수술하여 치료받을 수 있고 깨끗하게 씻음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빈(R. B Robins)박사는 “절망적 사회나 인간을 치료하는데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 교회를 대신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절망과 좌절을 치료하는 영적 병원입니다. 그리고 원장님은 바로 만병의 의원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3.  나라와 역사를 치료
 
본문에서 성을 치료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나라와 그 역사를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하여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나라는 모두가 선진국 대열에 끼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오늘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도 약100년전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부터 시작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가 세워졌고, 병원이 세워졌고, 각종 문화 복지 시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문맹 퇴치, 우상 타파, 남녀 평등, 인권 존중..,등등의 운동으로 이 나라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개한 민족이 문화 민족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겼을 때에는 그 역사가 빛났고 나라가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거역했을 때에는 외세의 침략으로 국가가 시련을 겪었고 역사가 불행해 젓습니다.

국가나 정치 지도자들이 우상 숭배를 저질렀을 때, 가령 돼지 대가리 올려놓고 절을 한다든지, 점쟁이 말에 귀를 기울였을 때, 그리고 공공 기관이나 언론 기관들이 미신을 조장하거나 무당춤 따위를 보도했을 때, 그리고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을 때, 그때마다 정변이 일어났거나, 사회 혼란이 일어났거나, 재난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국가도 역사도 그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회복하십니다.

본문7절에 보면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원수의 압박으로부터 뽑아 내어 자유와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해방과 통일도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치료를 받을 때 이 민족의 통일도 가능한 것입니다.

스콧트랜드가 나은 유명한 희극배우인 해리 로우더(Harry Lauder)가 아들 잃고 비탄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용기와 힘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훗날 시카고에서 음악회를 열었을 때 수많은 관중들이 운집했습니다. 계속 앙코르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열광하는 청중들을 조용하게 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감사하지 마십시오. 그분에게 감사하십시오..그분은 내 마음속에 짙은 슬픔과 한숨을 거두시고 노래를 심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Praise the Lord)”라고 말했습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고독과 상처를 고치시는 하나님, 내 정신의 공허를 풍요로 채우시는 하나님, 내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네 병든 역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3. 죄악을 사하시는 하나님

8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여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오염된 우리를 정하게 하십니다. 깨끗케 하십니다. 눈보다도, 양털보다도 희게 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그릇과 같이 쓸모 없는 우리를 깨끗케 하여 귀한 그릇으로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깡패가 변하여 전도자가 되고, 도둑놈이 변하여 봉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위하여 피 흘려주신 공로를 믿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정케하고 깨끗케 하여 주십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그 모든 죄를 기억조차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치료받고 사함 받고 난 후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멋진 삶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의 이름만 들어도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주변 국가들이 두려워 떨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성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에는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치료함을 받고 죄 사유함을 받아 영육이 강건하여지고 범사에 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언제나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원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고쳐주셨습니다.
질병도 치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치료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영육이 강건해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우상인 바로를 섬기고 있습니다.
바로의 압제 하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안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이후로 원죄에 빠진 죄인들은 사탄의 압제에서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이 원죄에서 해방될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의 의지로는 절대 애굽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이며 노예에서의 해방자로 모세를 선택하여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원죄에 빠진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원죄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죄인들을 해방시킬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면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장자를 치는 재앙을 통해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게 됩니다. 이 날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장자가 죽은 날입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은 하나님의 아들인 독생자가 죽은 날입니다. 바로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원죄에 빠진 내가 살아난 날입니다. 이 날이 바로 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된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긋지긋한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어 대망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여 출발한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부푼 꿈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발했지만 생각처럼 여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걸어서 왔는데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들이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했고 그뿐만 아니라 모세에게 원망을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요? 원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주셨는데 현재의 문제가 나에게 있다고 해서 주님을 원망하고 있습니까? 차라리 원래의 원죄의 생활이 더 좋았다고 회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여 지팡이를 홍해를 향하여 내밀어 홍해가 갈라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마른땅처럼 걸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주시고 애굽의 군대들을 홍해에 수장시켜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땅을 걸어가듯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상황도 이와 같습니까? 그렇다면 홍해의 기적과 같은 놀라운 역사가 우리의 인생 가운데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계속해서 이끌고 나가기 때문에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기적을 보고 수르 광야로 들어가 사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광야는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라라는 장소에 도착했는데 이곳에는 물이 있지만 써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 물은 죽은 물입니다. 이 물을 마시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모세에게 원망을 돌리게 됩니다. 삼일 전에 홍해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도 지금 당장 마실 물이 없으니 또다시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홍해와 같은 엄청난 기적을 인생 가운데 체험하였는데도 지금 당장 마실 물이 없고 당장 쓸 돈이 없다고 해서 주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사업이 풀리지 않는다고 또한 내가 생각한 계획이 무산되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은 나도 인간의 죄악 된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인간은 다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속성들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덮어주시고 참아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이들을 시험하셨습니다.

 

25절 바이체아크 엘 아도나이 바요레후 아도나이 에츠 바야쉘레크 엘 하마임 바이므테쿠 하마임 솸 삼 로 호크 우미쉐파트 베솸 니사후

출 15:25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고 이것을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이들을 시험하셨습니다.

‘한 나무를’이라는 단어는 (에츠 6086 NMS 명사, 남성, 단수) 나무, 목재,이며 עצה(아차 6095) 견고하게 하다, 눈을 닫다, 확고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 도착하여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 물은 있지만 마실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만약에 이 물을 마시면 백성들은 죽게 됩니다. 이곳에 하나님께서는 한 나무를 허락하셔서 물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9절 바야체마흐 아도나이 엘로힘 민 하아다마 콜 에츠 네흐마드 레마르에 베토브 레마아칼 베에츠 하하임 베토크 하간 베에츠 하다아트 토브 바라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인간은 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원죄가 되어 모든 인간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생명나무도 하나님께서 두셨습니다. 이것을 인간이 먹고 스스로 살 수 있기 때문에 화염검으로 지키셨습니다.

여기에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단어가 עץ(에츠)입니다.
인간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모두 죽어 영적인 눈이 닫히고 죄악에 눈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반항하고 대적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회복시키시고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며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라의 썩은 물은 불순종했던 인간의 죄악의 속성인 거짓된 복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물을 마시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나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치료해주시고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가니 써서 먹지 못했던 물이 달게 변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비 복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가니 물이 단 물로 바뀌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마라와 같은 장소에 있을 때에 물을 먹으려고 하지만 마실 물이 없습니다. 현재 우리의 교회들을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썩은 비 진리만 선포되고 있다면 결국 영혼들은 마실 물이 없어서 죽게 됩니다. 이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인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면 물이 단물로 바뀌어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1월 22일(수) 출애굽기 12-14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담대히 나갔음이라(14:8)

여호와께서 애굽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The LORD hardened the heart of Pharaoh king of Egypt, so that he pursued the Israelites, who were marching out boldly.

(공동번역) 야훼께서 이집트 왕 파라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셨으므로 그는, 의기양양하게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되었다.
(현대인) 여호와께서 이집트 왕 바로의 마음을 돌처럼 굳게 하셨으므로 그가 당당하게 나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였다.
(새번역) 주님께서 이집트의 왕 바로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하시니, 바로가, 주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나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뒤쫓았다.

애굽에서 나온 수 많은 백성들을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어른들과 노약자들 그리고 많은 가축들을 인솔해야 하므로 걸음이 늦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 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습니다.
차라리 애굽 왕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는 것이 히브리 백성들에게는 다소 위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더 강퍅하게 하심으로 출애굽하는 무리들을 조급하고 두렵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다고 합니다.
담대(膽大)히 나갔다는 것을 여러 번역으로 소개합니다.
(공동번역) 은 의기양양하게 나갔다.
(현대인의 성경) 당당하게 나갔다.
(새번역) 주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나갔다.

담대히 라는 히브리어는 "베야드 라마"라고 합니다.
'베야드 라마'는 두 개의 단어가 합성한 것으로 "담(야드, 손)"과 "대히(룸, 높이)"라는 단어입니다.
'베야다 라마'는 손을 높이 든다는 뜻입니다.

왜 손을 들어야 합니까?

첫째는 손을 높이 드는 손은 기도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둘째는 손을 높이 드는 곳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해결하여 달라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하늘의 권능을 사모하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오직 주님만을 환영한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지난 1월 21일 윤석열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자기 변론을 위하여 서울 구치소에서 출발할 때 거리에는 수 많은 애국시민들이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대통령을 환호하며 힘을 내라고 외쳤습니다.
시민들이 지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시는 대통령의 자기 변론의 길을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현재 헌법재판소 소장 문형배판사는 이재명과 사법고시 동기생이며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은 평소에 호형호제하는 절친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인맥을 갖고 법정신에 따라 올바른 판결을 기대할 수 없지만  애국시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헌번재판소앞에서 수 많은 애국시민들의 탄핵반대와 계엄 합법이라는 집회가 계속되는 것을 보고 들으며 담대하게 재판소를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울 때 도움이 되시는 주님
괴로울 때 위로가 되시는 주님
고통스러울 때 힘이 되시는 주님
연약할 때 붙잡아 주시는 주님
그 주님의 손을 잡고
어지러운 세상을 당당하게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단어는 담(3027) 대히(7311)

담대히(*, 베야드 라마)
- 문자적 의미는 '높은 손으로' 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적을 베푸시는 '여호와의 손'을 따라(사 26:11) 출애굽 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할 때에 도망하는 자들처럼 초라하거나 비겁하게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의하여 담대하고도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왔었다.

이사야 26:11
여호와여 주의 이 높이 들릴찌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이다.

담(3027)

יָד 스트롱번호3027

1. 사람의 손.
2. 전치사와 함께 쓰이는 경우
발음 [ yâd ]

구약 성경  /  1617회 사용


대히(7311)

רוּם 스트롱번호7311

1. 높다.  2. 거만한.  3. 과시하다
발음 [ rûwm ]
구약 성경  / 166회 사용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히브리서 4:14~16)

구약시대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지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 때문이기 죄를 용서받는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일을 돕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일반 제사장은 한 개인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사를 집행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지금까지 제사장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드린 제사와 모든 백성들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드려서 양의 피를 그릇에 받아서 성소를 지나 지성소로 들어가서 언약궤 위 속죄소에 위에 일곱 번 피를 뿌리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은 지성소 밖으로 나와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백성들의 죄가 용서받고 해결되는 것은 오직 대제사장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만약에 대제사장이 아차 실수를 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면 백성들이 일 년 동안 드린 모든 제사는 무효가 됩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계시는데 그분은 곧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십니까? 그분(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죄를 없애 버리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드린 속죄제가 하나님께 받아 드려졌기 때문에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드린 속죄제사를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 즉시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모든 문제는 죄 때문에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됩니다. 그리고 한 번 용서받은 죄는 영원히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할렐루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구원자가 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첫 번째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될 모든 연약함을 다 경험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어떤 문제와 연약함도 충분히 이해하시고 받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2) 그래서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와 고민과 고통을 다 경험해 보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다른 것이 하나가 있는데 그분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수가 있었습니다. 흠없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에 오셔서 단 한 번의 제사를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누구든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서 긍휼하심을 받고 또한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즉 각자가 당면한 태산같은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2. 그러면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보좌에 올라 가 본적도 없고, 그 하나님 보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문제들 즉 질병, 고통, 가난, 해결되지 않는 인간관계와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 등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입니까?

  1) 첫 번째 방법은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굽게 잡을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믿는 도리란 홀몰로기아 라고 하는데 인정, 고백, 공언한이라는 뜻으로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의 내용은 당시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공식적인 고백으로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고백입니다. 굳게 잡을지어다란 크라테오 라고 하는데 힘을 쓰다, 붙잡다, 또는 지니다, (단단히)붙들다, 간직하다 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신앙고백을 끝까지 간직하고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굳게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롬10: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는 것 또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의롭게 되고 구원에 이르는 중요한 수단과 통로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도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방법이고, 대제사장을 만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만나든지 예수님이 곧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들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3. 그리고 대제사장에게 나아가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며, 어떤 방법으로 계십니까? 예수님의 존재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1) 첫 번째는 예수님은 천국에 있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래서 히8:1/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고 했으며, 히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세상과 교회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2) 두 번째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십니다. 예수님은 원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요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요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셨던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죄 있는 인간의 모양으로 태어나셔서 인간의 죄를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3) 그리고 인류의 구원(구속)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올라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말씀)을 남겨 놓고 가시면서 그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순종할 때 예수님이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자신의 말씀(성경책)을 남겨 놓고 그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남겨 놓으신 말씀(성경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배우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와 예배의 장소로 나오는 것이고,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 즉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해 나아가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고 눈에 보이지 않고 볼 수가 없으니까 대신에 우리가 보고 듣고 읽을 수 있는 성경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왜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4.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할 말씀의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라고 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역시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죽은 말씀이 아닙니다. 화석화된 그래서 아무런 능력이 없는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기록된 말씀의 약속들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내가 거기에다 금액을 적으면 내가 적은 금액만큼 은행에 가면 찾아 쓸 수 있는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2) 활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활력이 있다는 말은 예를 들면 죽은 물고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물고기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돌아다니면서 먹이활동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누구에게요?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입니다. 또 말씀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우주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거대한 우주(은하계)와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가 계속해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돌아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그 때 말씀하셨던 그대로 지금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활력을 가지고 말입니다. 거대한 우주와 지구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지구가 살아 있는 것처럼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도 살아 있고, 지구 안에 수많은 생명체들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또한 활력이 있습니다.

  3)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에 기록되었으면 레이저 광선보다 더 예리하다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신체의 어느 부위든지 들어가서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는 레이저 광선보다 더 예리하다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좌우에 날 선 검, 즉 레이저 광선보다 더 예리한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도 찔러 쪼개기까지 하면서 우리가 가진 영육간의 모든 질병과 세균과 바이러스를 태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하는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여 우리의 생각과 뜻과 계획이 옳은지 잘못되었는지 그것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재판한다는 뜻입니다.

  4)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이 레이저 광선보다 더 예리한 말씀 앞에 다 들어난다는 것입니다. 

  13절에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하나도 말씀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라고 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정체가 대제사장이신 말씀 앞에서 그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천사와 타락한 천사의 정체까지도 다 들어난다는 뜻입니다.

  5) 이어서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대제사장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살아 있는 말씀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한 결산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의 눈은 세상 모든 만물들을 궤뚫어 보시고 감찰하시고 그것의 실상을 들어내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모든 만물을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고 감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 세상 모든 만물의 실체를 궤뚫어 볼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긍휼하심을 받고 그 시즌에 맞는 문제로부터 구원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하나님의 말씀을 덮어 두고, 말씀을 제쳐 놓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멀리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갈수록 문제가 꼬이게 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즉 지금 이 시즌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대제사장이시고 구원자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제사장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시며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성경말씀 안에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어떤 문제든지 거기에 대한 해답과 해결책이 성경 말씀 안에 다 들어 있고, 설교 말씀과 오늘의 말씀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13절의 말씀을 보세요.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문제가 말씀 앞에서 다 들어난다는 뜻입니다. 세상 어떤 문제든지 거기에 대한 해답이 말씀 안에 다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없으면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곧 솔루션입니다.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2024년도에는 특별히 여러분 각자에게 돌파가 일어나고 승진이 있을 것입니다. 돌파란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고, 승진이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서 더 큰 축복을 받아 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즉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실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 말씀들이 이미 다 주어졌습니다. 일 년 치의 말씀을 한 시간 안에 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매 주일예배 때마다 그리고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 시간에 그것을 풀어 나갈 것입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그 복을 받아 누리시고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복을 나누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즉 여러분이 머리가 되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이 여러분 보다 더 크게 되고 높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다 머리가 되셔서 새로 들어오는 성도들의 본이 되고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작은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축복받은 모델이 되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성도들이 여러분을 바라보고 여러분을 따라가는 그런 축복의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14절)

예수 그리스도는 세 가지 직분을 감당하는데,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의 직분이 그것입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를 사하고,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론의 제사장과 비교되는 큰 대제사장입니다.
아론의 제사장은 땅에서 일하고 지성소 안에 들어갔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일하십니다.
아론의 제사장은 늙고 죽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한 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영원히 살아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6절)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보좌입니다.
보좌는 왕이 앉는 자리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보좌는 죄인들에게 심판의 보좌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그 앞에 설 수도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갔다가 탄식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런데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때문에 심판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고난 받고 죽으심으로 값없이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끝나고 평화가 도래하였습니다.
은혜가 왕노릇하는 새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갑시다.

야곱은 얍복나루에서 환도뼈가 위골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여리고성의 소경 거지 바디메오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성입니다.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거스릅니다.
성령의 소욕에 순종합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립시다.

둘째, 생활이 복잡하고 바빠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인생의 짐이 무거워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럴수록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고,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셋째, 기도 응답이 더디어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응답은 예, 아니오, 그리고 기다리라는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욥의 인내를 보십시오.
욥이 시험을 당하고 고난을 당할 때 기다리는 것 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기도할 때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모든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험적으로 아십니다.
우리가 받는 시험이 어떤 것인지도 아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은혜를 받으면 슬픔 많은 세상도 천국으로 변합니다.
은혜를 구하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구를 만날 것인가에 미래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친구이고 중보자이십니다.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오늘 본문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허물많고 연약한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4:14-16은 지금까지 소개한 예수님을 정리한 다음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
예수님은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가 없습니다.

이 네 가지 특징은 복음의 핵심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자격은 결국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도록 합니다. 네 가지의 사실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시험을 받으신’이란 구절 속에 담겨 있습니다. 즉 사람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육신적 갈망을 느끼셨고, 고독과 배신, 슬픔과 아픔을 느끼셨다는 말입니다. 경험된 앎을 통해 성도들을 아십니다. 그레이크 R. 쾨스터는 ‘연약함’(15절)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a) 육체적 연약함 b) 사회적 연약함 c) 죄에 대한 취약함

연약함은 궁극적으로 죄를 지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영생할 수 없는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동정(συμπαθέω)’하십니다. 동정이란 헬라어 ‘쉼파테오(συμπαθέω)’는 ‘함께’와 ‘느끼다’의 합성어 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 아파하면 함께 아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발톱이 빠져 아픔을 느낀다면 온 몸이 동일하게 그 아픔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것이 ‘동정(συμπαθέω)’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동정(συμπαθέω)’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실 때 함께 슬퍼하십니다.

요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러한 우리를 예수님은 돕기를 원하시고,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위해 언제나 ‘은혜의 보좌(θρόνῳ τῆς χάριτος)’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은혜의 보좌가 어떤 곳입니까?

a) 기도의 장소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필요, 우리의 고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인 것입니다.

b) 하늘의 성소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십니다. 하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은 성소입니다. 성소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곳입니다. 대제사장들은 대속죄일에 성소의 가장 내밀한 곳인 지성소에 들어가 모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c) 왕의 보좌입니다.

보좌는 왕이 앉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십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는 한 지역의 분봉왕이 아니라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왕이신 하나님께 갑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는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좌에 나아가는 이들의 특권이며 복입니다.

2) 연약에 휩싸인 땅의 대제사장

이 땅에 대자사장들은 사람입니다. 아담의 피를 물려받아 죄성으로 가득 차있으며 시한부적 삶을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자신과 동일한 육정(肉情)을 가진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대제사장이 하는 일은 죄인들이 가지고 오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자신 또한 죄를 짓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대제사장은 죄인들에게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도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동정입니다.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죄의 무게가 다름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죄는 모두 불법이며 사망을 가져옵니다. 집보다 큰 바위만 바다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잘 보이지 않는 모래 알갱이도 하나님의 공의의 바다에 가라앉습니다. 자신의 악함을 아는 사람들은 타인의 눈에 들어간 티를 찾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들보를 염려합니다.

겸손과 용서는 타인을 구분하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신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보지 못하는 자는 타인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을 볼 수 있는 자만이 타인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수많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먼저 팔복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악함을 아는 자만이 타인을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μακάριοι οἱ ἐλεήμονες, ὅτι αὐτοὶ ἐλεηθήσονται.

‘긍휼히 여기는 것’(ἐλεήμονες)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ἐλεηθήσονται.)
‘긍휼’(ἐλεέω)이란 단어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는 용서와 사랑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구제하다는 의미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율법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눅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여기서 사용된 자비가 바로 ‘긍휼’(ἐλεέω)이란 단어입니다. 긍휼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이 땅의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사 속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입니다.

이 말의 뜻은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고 싶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레위 지파, 그중에서 아론의 후손들만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 땅의 대제사장의 영광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럼 유대지파인 예수님은 어떻게 대제사장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창세기 14장에 기록된 멜기세덱에게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전쟁이 일어나 소돔이 그돌라오멜에게 롯이 잡혀갑니다. 아브라함은 조카를 롯을 구해옵니다. 이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축복하고 아브라함의 십의일조를 드립니다. 간단하게 보이는 이 문제가 왜 예수님의 대제사장 자격과 연결되는 것일까요? 문제는 바로 아론이 대제사장이 되기 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혈통을 따라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멜기세덱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창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나중에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할 것입니다.(7장) 여기서는 간략하게 넘어갑니다. 저희도 그 때 다시 살펴봅시다. 오늘은 멜기세덱이 혈통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제사장이라는 것만 기억해 둡시다. 그런 의미에서 아론을 선택하신 것과 다르지 않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들이 제사장이 된 것은 자의가 하나님의 선택이며 은혜입니다. 물론 아론의 후손들도 근원적으로 은혜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비록 유대인이 아니고 아론의 후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근거와 이유는 바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격이 결코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덧입게 되는 예수님의 공로를 설명합니다.

첫째, 육체에 계실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둘째, 그 기도는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입으셨기에 죽음의 공포를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구하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자신과 또한 자신에게 속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셋째, 순종을 통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9절)이 되실 것입니다.

이것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함으로 얻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친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심으로 불순종했던 이스라엘과 같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의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십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하고 연약한 기도를 기꺼이 들으십니다.

 


1월 21일(화) 출애굽기 8-1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 백성을 보내라(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Then the LORD said to Moses, "Go to Pharaoh and say to him, 'This is what the LORD says: Let my people go, so that they may worship me.

내 백성을 보내라(Let my people go)


백성(암. ʽam)  עַם 스트롱번호 5971

1. 백성.  2. 복수형עַמִּים -  신 28:10.  3. 민족
발음 [ ʽam ]
어원  / 6004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850회 사용


섬길 것이니라
- '섬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5647)는 종이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은 철저한 봉사 행위를 가리킨다(4:23).

섬기다(아바드.  ʽâbad)  עָבַד   스트롱번호 5647

1. 노동하다. 2. 창 2:5.  3. 신 15:19
발음 [ ʽâbad ]
구약 성경  / 289회 사용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주로 모세의 출생이나 부르심, 10가지 재앙이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 전제가 되는 왜 애굽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스쳐지나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언약이나 계획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도 역사적 조건과 맞물려 진행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중노동과 억압의 현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소수민족으로서 애굽에서 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때문에 해방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소수 민족이 당하는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올 해로 아르메니아 대학살 100주년이 됩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유지한 채, 노아 방주로 유명한 아라랏 산이 있는 터키 북동부에 수천 년 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15년 1차 세계 대전 중에 오스만 투르크 지배하에 있던 터키가 아르메니안 인종 청소라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150만 명 집단 학살당했다고 추정합니다. 당시 인구의 근 3분의 2입니다. 그 악랄한 한 가지 예로 일반인들 35만 명을 사막으로 몰아서 굶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 시리아로 겨우 탈출한 사람이 35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은 터키에 의한 이 학살을 “20세기 최초의 인종대학살”이라 규정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터키는 이 학살을 부정하고 있고 사과 한 마디 없습니다.

20세기 대명천지에서도 이런데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점에서 특별한 한 민족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모든 위기 가운데 있는 소수 민족의 이야기이고, 또 반생명의 문화 가운데 고통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

이스라엘이 받는 고통은 이미 모세의 탄생 전부터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지자 위협을 느낀 애굽은 중한 노동과 출산율 통제 정책을 폈습니다. 오랜 동안 이런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가 되어 내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자 더 가혹해졌습니다. 진흙 벽돌을 만들 때 진흙을 뭉치게 하는 짚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했던 대로 동일한 양의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짚을 구해야 하는 노동이 추가되어 노동 시간은 많아졌고 더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중노동의 현실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해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근로 시간은 연간 2,163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로 많습니다. OECD 평균은 1,770시간입니다.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약 4백 시간 정도 일을 더 합니다. 산업재해 사망률은 1위입니다. 1,850명이 지난 한 해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과로 사회입니다. 노동 시간은 고대보다 현대가 더 합니다. 전등이라는 것이 발명되어 밤에도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피곤에 지쳤고 잠시간이 줄어든 결과 갖가지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안식을 강조합니다. 일주일 중 가장 큰 날이 안식일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루는 저녁에 안식을 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과 관련되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집안의 노예나 짐승들도 쉬도록 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9-10) 이처럼 안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애굽 땅에서 겪었던 노예적 현실과 중노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2) 노예적 현실이 율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요구하였던 것은 무엇입니까? 광야로 나아가 제사를 드릴 수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제사는 동시에 축제입니다. 1절의 ‘절기’를 영어 성경은 ‘festival’ 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내려놓고 쉬면서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들 드린 음식은 온 백성이 나누어 먹습니다.

우리 사회도 출애굽이 필요합니다. 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이제는 안식과 행복 중심의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노동이 중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노동이 되어야 합니다. 근로 시간이 더 줄어야 합니다. 그 나머지 시간을 가족과 취미, 자기 계발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만들었던 칼 마르크스는 하루 네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나 놀이 휴식으로 보내는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것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고도의 기계화와 전산화가 되면서 효율적이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갈수록 일자리는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하면 모두가 정규직이 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근로시간을 줄임으로써 일자리를 나누어야 합니다. 물론 생활은 보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인 필요도 있지만 우리 삶의 가치나 기준을 바뀌어야 합니다. 노동이 아니라 안식입니다.

바로의 억압

노동 시간에 대신 광야로 나가 예배를 드리겠다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대한 바로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8절입니다. “그들이 게으르므로” 17절입니다.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실제 게으릅니까? 아닙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지배자의 눈에는 게을러 보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난을 바라보는 태도도 그렇습니다. 정말 게을러서 가난하게 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정규직의 절반 정도의 월급을 받습니다. 사회나 직장의 구조가 잘못되어서입니다. 가난하게 되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사회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냅니다. 우리 사회에서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습니다. 중등 초등학생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하는 의무 급식을 무상 급식 또는 공짜 밥이라고 부릅니다. 그게 왜 무상입니까?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우리가 낸 세금 제대로 쓰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해방의 기운이 불자 바로는 오히려 더 강한 억압정책을 폅니다. 해방의 싹을 자르려는 시도입니다. 바로의 예상대로 억압 정책을 펴자 그 불똥이 모세에게 떨어집니다. 21절입니다.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사람들이 비겁한 게, 대부분 일이 이렇게 돌아갑니다. 억압자에 대해서는 잠잠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자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예언자들은 소중합니다. 이들이 우리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정복민을 다스리는 중요한 정책 중 하나는 분열정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 다스리지 않고 이스라엘 중에서 기록자 곧 작업반장을 세웁니다.
이들에게 적당한 혜택도 주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관리하도록 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는 이들을 통해서 분열을 유도합니다.
권력자들의 분열 정책을 극복하는 길은 가난한 자들이 단결하는 것입니다.
노예들이 단결했을 때 홍해가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고 애굽의 노예체제가 무너졌습니다.
마틴 루터 킹이 흑인 인권 운동을 하면서 했던 연설 중의 일부입니다.
“바로는 그들의 노예를 지속적으로 묶어두기 위해 선호하는 효과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다.
노예들이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것이다.
분할지배 정책은 억압을 위한 유력한 무기이다.
그러나 노예들이 단결했을 때 역사 속의 홍해는 열렸고, 노예 체제의 이집트는 무너졌다.”

모세가 10가지 재앙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에 바로 체제를 무너뜨리지 왜 10가지나 필요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연합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투쟁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에 대한 욕구와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10개의 작은 승리들을 통해서 자신감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Let my people go!)

출애굽기 1장부터 40장에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14구절에서 나타납니다(5:1, 7:16, 8:1, 8, 20, 21, 29, 9:1, 7, 13, 10:3, 12:33, 23:27).

히브리 백성들은 애굽에서 고역으로 시달리던 중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미디안 광야에 머물고 있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오늘날도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자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직도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에서 요구하는 만큼 채워지지 않았는지 남과 북의 갈등은 점점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몹시 안타깝습니다.
남한에서 통일을 요구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욕망의 그릇을 채우려는 기도라고 한다면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순수한 믿음으로 신앙의 자유를 갈망하며 기도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느 기도에 더 귀를 기우리실까요?

내 백성을 보내라는 말씀은 억압에서 고통에서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서 느낀 것은 애굽에서는 풍부한 먹을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스런 자유를 누리는 것보다도 오히려 애굽에 편하기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모세를 향하여 원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자유가 더 좋습니까?
배부르게 먹고 즐기는 것이 더 좋습니까?
육신의 안일과 평안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자유보다 먹을 것과 즐길 것을 선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믿음의 사람은 육신의 안일보다는 오히려 영혼의 자유함을 더 사모할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머물고 있는 땅이 우리가 있어야 될 곳이 아님을 각성 시키는 촉구입니다.
애굽의 풍요함 그러나 부자유와 억압이 있는 곳은 우리가 머물 곳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고 중노동을 통해서 얻으려 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다름 아닌 피라미드의 건설이었습니다.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장식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헛된 것에 소중한 노동력을 쏟아 붓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탈출 선언은 그런 어리석은 것에 인생을 투자하지 않겠다는 해방선언입니다.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길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입니다. 당장은 애굽의 풍요가 좋지만 그것은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길입니다. 광야는 배고플 수도 있지만 그곳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자유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소망을 향한 길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백성을 충동했고 그 결과로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이 순간을 견디고 단결해야 하는데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22) 하나님은 원망 받을 만합니까? 네 맞습니다. 그분은 역사의 주관자시기에 역사에서 일어나는 억압과 폭력에 대한 비난을 받으셔야 합니다. 해방의 운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이로 말미암아 촉발된 학대에 대한 비난을 받으셔도 마땅합니다.

이런 비난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모습이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역사는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악도 그 악에 대한 저항도 인간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지만 그냥 자신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모세나 이스라엘이 이제 하나님의 손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노예 된 상태보다 해방을 원하십니다. 의미 없는 노동보다 자유를 원하십니다. 죽음에 볼모 잡힌 인생이 아니라 행복과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배부르지만 소망 없는 인생들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뜻에 함께 하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 부릅니다. 역사의 주관자 전능 하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진실과 정의가 우리 편이고, 미래는 우리의 것입니다. 바로보다 더 강력한 손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6:1)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할 때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에 함께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 했다.

출 5: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화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모세와 아론은 누구인가 바로의 노예가 아닌가 40년 동안 노예로 살아온 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노예인 두 사람이 대표라고 와서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하라니 얼마나 가소롭겠는가 더구나 40년 전부터 이들이 번성하면 애급에 반기를 들고 떠날까 싶어서 비돔 성과 라암셋 성을 거축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생소한 노예가 와서 백성을 내 놓으라 하니 가소로운 일이다.

백성의 수가 많으니 대적한다고 했다.

출 5:5.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 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 도다 하고.

바로는 히브리 백성들을 번성하지 못하게 제약했어도 박해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지금은 수가 많아졌다. 그러므로 때가 되어 이제 우려 했던 대로 대적하고 쿠데타를 일이키려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새와 아론을 폭동의 주동자로 생각했다. 그러기에 몹씨 분노하였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보낼 수 없다 했다.

애급에도 신들이 많이 있다. 신전도 있고 제사장도 있다. 선조 요셉은 애급이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했다.

창41: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바로는 하나님을 모른다. 애급의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여긴다. 그는 애급의 주인 암몬(אַםמוֹן Ammon)과 애급을 건립한 신 프다(רַע Fhtha)와 창조의 신 라아(טָא Ra)를 최고의 신으로 섬기고 이 세 신상과 자신의 초상을 신전에 두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 아래 여러 신중의 하나로 생각했다.

높은 세 신을 지신이 섬기고 있는데 그 아래 신의 명령을 따를 수 없고 자신은 여호와 신을 알지도 못한 신이고 외국인들이 믿는 신이기에 나와 우리 민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신이고

모세와 아론은 바로가 거절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기대하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께 전하라 했기에 다시 말했다.

사흘 길 쯤 광야로 나가서 절기를 지키려 하니 허락 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바로는 허락할 이유가 없다. 몇 가지를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

1. 노예의 대표인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2. 하나님도 모르고 높은 신을 믿는 자이기에 여호와 같은 하등신의 명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3. 노예들은 애급의 국력이고 이들은 애급의 재산이기 때문에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애급에서 낳았고 애급에서 산 사람들이다.
4. 40년간을 노예로 삼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내라 함은 헛소리에 불과하기에 들을 수 없는 것이다.
5. 80여 년간을 이들로 하여금 국고 성을 건립하는데 이들이 없으면 중단해야 하기에 들을 수 없는 것이다.
6.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목적이 이들이 번성하여 독립하여 대적할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혹독한 노동을 시키기 때문에 보낼 수 없는 것이다.
7. 애급에도 얼마든지 축제할 수 있는 땅이 있는데 국경 넘어 광야로 간다는 것은 쿠데타를 도모하려는 속셈을 알기 때문에 더욱 들을 수 없는 것이다.
8. 듣지 아니하면 신의 노여움으로 전염병이나 칼로 친다고 겁박을 주기에 더욱 화가 나게 되었다. 당시에 나라에 가장 두려워하는 재난이 전염병이고 침략받는 전쟁이었다. 이는 자신들의 종교를 모독함이다. 애급인들을 모독하는 말인 것이다.
9. 자신은 높은 신을 많이 섬기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 신 같은 신은 두렵지 않기에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10. 40여 년 동안 아무 일 없었는데 갑자기 보내라 하니 모세와 아론을 쿠데타 선동자로 여긴 것이다.
11. 모세와 아론의 말을 거짓말로 생각했다.

내 백성, 나의 택한 백성(이사야 43:14-21)

14.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16. 바다 가운데 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17. 병거와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하노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너는 내 것이라(1절, 7절) - 하나님과 개별적인 관계(사적인 관계)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너는 나의 증인이다(12절) - 하나님이 선택하신 목적(부름의 관계)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는 내가 택한 백성이다(20절) - 하나님과 집단적인 관계(공적인 관계)





내 백성, 나의 택한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이스라엘의 창조자’, ‘이스라엘의 구원자’,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사 43:11)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세 가지로 부르십니다.

첫째, ‘너는 내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사 43:1, 7)

둘째, ‘나의 증인, 나의 종이다’입니다.
“너는 자격이 없지만 내가 너를 나의 증인이요 종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셋째는 ‘내가 택한 백성이다’라고 부르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라는 말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관계를 강조한 것이고,
‘나의 증인, 나의 종이다’라는 말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내 백성이다’라는 말은 집단적 공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역사를 다스리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앞서 말한 창조자, 구원자, 왕 외에 네 가지를 더 말씀하시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14절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첫째,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14절에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게 했다”라는 말씀 속에 이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시기 위해서 바벨론 제국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이 때 벼락을 내리거나 지진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주변의 강대국을 이용하셨습니다. 이것을 잘못해석하면 시험에 빠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강대국을 이용해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강대국이 바벨론제국입니다. 바벨론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 포로로 잡혀가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한국전쟁과 일제 강점기가 생각이 납니다. 스탈린이나 모택동이 소련이나 중국을 지배하던 어두운 역사를 생각하게 합니다. 스탈린이나 모택동의 정치 철학이나 권력이 승리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흥망성쇠의 주관자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초토화시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길 바라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죽도록 얻어맞아도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바벨론에게 완전히 점령당하고 포로로 잡혀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감정은 아주 복잡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버리셨을까’, ‘역사라는 것은 우연히 진행되는 것일까’ 등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지만 그것이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제거한 것입니다. 바벨론의 역할이 끝나고 페르시아 제국을 들어 바벨론을 멸망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해방됩니다. 귀환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14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강대국을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와 무관하신 분이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역사 안에 계십니다.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 둘째, 하나님은 위기가운데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15-17절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하나님은 강대국을 이용하기도 하시고 큰 세력을 이용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주셨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시고 광야에 길을 내셨습니다. 바위에서 샘물이 터지게 하셨고, 광야에서 물을 만드셨습니다. 위 말씀 중에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냈다는 것은 홍해바다 사건입니다. 길을 만들고 강을 만들었다는 것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점령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사건이었지만 애굽 군대에게는 몰살당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했다’는 말씀이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단순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는 역사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강대국을 이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그 가운데서 기적과 능력을 베푸시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8-20절입니다.“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전 일이란 홍해가 갈라진 사건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던 영광스런 사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영광스런 사건에 머물러 있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왕년에...’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사람은 과거의 사람입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제 결혼식에서 주례를 해주셨고 제 목회의 멘토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과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사실 그분은 정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언제나 자신의 과거 이야기보다 미래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이 들어서 과거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때에 묶여서 집착해서 향수에 젖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홍해의 사건, 광야의 사건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꿈, 새로운 비전, 새로운 모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 계십니다. 우리도 비즈니스건 목회건 공부건 다 한 발짝 앞서야합니다. 남이 생각하는 것 보다 한 발짝 앞서야하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리더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미리 예측하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새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항상 새 일을 계획하십니다. 이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에 대해서, 민족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여러분의 신앙에 대해서,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은 구체적인 청사진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을 깨달으십시오. 이것을 아십시오. 내 미래의 청사진을 알면 일이 쉬워집니다.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것은 미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의 영광스런 사건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을 보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의 눈이 반짝거리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슴이 흥분과 모험으로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도전과 기쁨으로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에 아무것도 없고 여러분의 현실은 빈손일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무언가 가득찰 것입니다. 이제 충만해 질것입니다. 당신의 건강과 재력과 나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놀라운 미래를 갖고 계십니다. 그것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보다 세련되고 감각이 있는 분입니다. 빠르고 놀라운 분입니다. 여러분 그런 면에서 우리 하나님은 신세대입니다. 우리 미래를 아시고 미래에 새 일을 예비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인간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을까요? 항상 미래적이고 긍정적이고 희망과 용기와 도전과 모험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편안하다고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의 표정이 항상 일어서려는, 뛰어 가려는 표정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생기가 돋고 의욕이 있고 꿈이 있고 비전이 있고 할 일이 있고 할 말이 있고 가야할 곳이 있고 그런 흥분된 사람 감동적인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 넷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 나의 택한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나의 증인 나의 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과 선택받은 사람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 자식과 이웃집 자식은 다릅니다. 자기 재산을 좀 못난 자식에게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잘난 이웃집 자식에게 주시겠습니까? 좀 못났어도 내 자식에게 내 재산을 주는 것이 부모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내가 좀 못났고, 자격이 없고, 소경이고, 귀머거리일지다도 하나님은 “너는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택한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소유를 의미합니다. ‘나의 택한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지와 선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연히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과 상관없이 사랑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엄마는 아이를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아이를 사랑합니다. 그 아이가 나중에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에 상관없이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나의 찬송을 부르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의 백성들로 삼으시고 자기의 택한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가 21절에 나옵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 택하시고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기적을 베푸시고 미래를 향하십니다.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회복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사탄의 형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이상한 마귀의 자식같이 보입니다. 하는 행동마다 생각마다 거칠고 야만스럽고 오만하고 죄가 많고 더럽고 추합니다. 오죽하면 인간을 개띠 소띠 말띠 하면서 짐승에 비유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인간의 자화상을 짐승처럼 생각합니다. 고대 로마왕국의 신은 다 짐승의 얼굴입니다. 귀신들이 다 짐승들의 얼굴입니다. 인간이 원숭이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시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분이고 목적이고 비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저희 교회에서 회복사역도 많이 하고 치유 사역도 많이 하는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두 비뚤어져서 우울증, 의처증, 의부증, 시기, 질투, 미움 등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 다 쓰레기처럼 버리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본래의 성품대로 돌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것이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택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여러분 안에 놀라운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 백성, 나의 택한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이스라엘의 창조자’, ‘이스라엘의 구원자’,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사 43:11)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세 가지로 부르십니다.

첫째, ‘너는 내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사 43:1, 7)
둘째, ‘나의 증인, 나의 종이다’입니다.
“너는 자격이 없지만 내가 너를 나의 증인이요 종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셋째는 ‘너는 내가 택한 백성이다’라고 부르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라는 말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관계를 강조한 것이고, ‘나의 증인, 나의 종이다’라는 말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하시는 ‘내 백성이다’라는 말은 집단적 공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역사를 다스리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앞서 말한 창조자, 구원자, 왕 외에 네 가지를 더 말씀하시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14절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첫째,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14절에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게 했다”라는 말씀 속에 이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시기 위해서 바벨론 제국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이 때 벼락을 내리거나 지진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주변의 강대국을 이용하셨습니다. 이것을 잘못해석하면 시험에 빠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강대국을 이용해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강대국이 바벨론제국입니다. 바벨론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 포로로 잡혀가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한국전쟁과 일제 강점기가 생각이 납니다. 스탈린이나 모택동이 소련이나 중국을 지배하던 어두운 역사를 생각하게 합니다. 스탈린이나 모택동의 정치 철학이나 권력이 승리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흥망성쇠의 주관자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초토화시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길 바라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죽도록 얻어맞아도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바벨론에게 완전히 점령당하고 포로로 잡혀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감정은 아주 복잡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버리셨을까’, ‘역사라는 것은 우연히 진행되는 것일까’ 등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지만 그것이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제거한 것입니다. 바벨론의 역할이 끝나고 페르시아 제국을 들어 바벨론을 멸망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해방됩니다. 귀환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14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강대국을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와 무관하신 분이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역사 안에 계십니다.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  

둘째, 하나님은 위기가운데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15~17절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하나님은 강대국을 이용하기도 하시고 큰 세력을 이용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주셨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시고 광야에 길을 내셨습니다. 바위에서 샘물이 터지게 하셨고, 광야에서 물을 만드셨습니다. 위 말씀 중에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냈다는 것은 홍해바다 사건입니다. 길을 만들고 강을 만들었다는 것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점령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사건이었지만 애굽 군대에게는 몰살당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했다’는 말씀이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단순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는 역사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강대국을 이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그 가운데서 기적과 능력을 베푸시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8~20절입니다.“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전 일이란 홍해가 갈라진 사건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던 영광스런 사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영광스런 사건에 머물러 있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왕년에...’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사람은 과거의 사람입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제 결혼식에서 주례를 해주셨고 제 목회의 멘토이십니다. 저는 그분이 과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사실 그분은 정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언제나 자신의 과거 이야기보다 미래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이 들어서 과거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때에 묶여서 집착해서  향수에 젖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홍해의 사건, 광야의 사건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꿈, 새로운 비전, 새로운 모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 계십니다. 우리도 비즈니스건 목회건 공부건 다 한 발짝 앞서야합니다. 남이 생각하는 것 보다 한 발짝 앞서야하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리더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미리 예측하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새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항상 새 일을 계획하십니다. 이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에 대해서, 민족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여러분의 신앙에 대해서,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은 구체적인 청사진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을 깨달으십시오. 이것을 아십시오. 내 미래의 청사진을 알면 일이 쉬워집니다.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것은 미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의 영광스런 사건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을 보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의 눈이 반짝거리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슴이 흥분과 모험으로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도전과 기쁨으로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에 아무것도 없고 여러분의 현실은 빈손일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무언가 가득찰 것입니다. 이제 충만해 질것입니다. 당신의 건강과 재력과 나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놀라운 미래를 갖고 계십니다. 그것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보다 세련되고 감각이 있는 분입니다. 빠르고 놀라운 분입니다. 여러분 그런 면에서 우리 하나님은 신세대입니다. 우리 미래를 아시고 미래에 새 일을 예비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인간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을까요? 항상 미래적이고 긍정적이고 희망과 용기와 도전과 모험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편안하다고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의 표정이 항상 일어서려는, 뛰어 가려는 표정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생기가 돋고 의욕이 있고 꿈이 있고 비전이 있고 할 일이 있고 할 말이 있고 가야할 곳이 있고 그런 흥분된 사람 감동적인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 나의 택한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나의 증인 나의 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과 선택받은 사람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 자식과 이웃집 자식은 다릅니다. 자기 재산을 좀 못난 자식에게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잘난 이웃집 자식에게 주시겠습니까? 좀 못났어도 내 자식에게 내 재산을 주는 것이 부모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내가 좀 못났고, 자격이 없고, 소경이고, 귀머거리일지다도 하나님은 “너는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택한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소유를 의미합니다. ‘나의 택한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지와 선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연히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과 상관없이 사랑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엄마는 아이를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아이를 사랑합니다. 그 아이가 나중에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에 상관없이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나의 찬송을 부르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의 백성들로 삼으시고 자기의 택한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가 21절에 나옵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 택하시고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기적을 베푸시고 미래를 향하십니다.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회복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사탄의 형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이상한 마귀의 자식같이 보입니다.
하는 행동마다 생각마다 거칠고 야만스럽고 오만하고 죄가 많고 더럽고 추합니다.
오죽하면 인간을 개띠 소띠 말띠 하면서 짐승에 비유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인간의 자화상을 짐승처럼 생각합니다.
고대 로마왕국의 신은 다 짐승의 얼굴입니다.
귀신들이 다 짐승들의 얼굴입니다.
인간이 원숭이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시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분이고 목적이고 비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저희 교회에서 회복사역도 많이 하고 치유 사역도 많이 하는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두 비뚤어져서 우울증, 의처증, 의부증, 시기, 질투, 미움 등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 다 쓰레기처럼 버리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본래의 성품대로 돌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것이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택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여러분 안에 놀라운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가 성만찬을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과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몸 안으로 들어올 때 2천년 전에 다락방에서 행했던 성만찬이 이 자리에 재현되게 하옵소서.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 안에서 짐승의 형상이 다 사라지고 마귀의 형상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월 20일(월) 출애굽기 5-7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5:1)

그 후에 모세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Afterward Moses and Aaron went to Pharaoh and said, "This is what the LORD, the God of Israel, says: 'Let my people go, so that they may hold a festival to me in the desert.' "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세상의 절기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에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절기를 지킵니다.
예를 들면 삼일절은 1919년 기미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사건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절기는 먼저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절기를 명하셨고 그 절기를 지킴으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면 애굽의 노예로 신음하며 고통을 받던 히브리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서 그 고역을 들으시고 미디안 광야에 머물던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지키려고 애급의 왕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고 전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건이 유월절이란 절기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절기의 출발은 "유월절(逾越節. Passover)"입니다.

유월절은 무교절과 병행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어린 양으로서의 예수님을 예표하는 절기라고 하겠습니다.
무교절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무덤 속에 안장되셨던 것을 예표합니다.

절기의 출발이 되는 유월절은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신 후에 다시 살아나셨던 예수님을 영접할 때 새 생명의 삶을 약속받는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언제 거듭났습니까?
이런 질문을 제시하며 거듭난 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며 신앙의 기초를 흔드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언제 태어날지 알고 태어났습니까?
내가 태어난 후에 주위 사람들이 너는 언제 태어났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에 내 생녀월을을 알게 된 것처럼 거듭났다는 것도 어느 날 어느 시간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구원받은 은혜를 확신하며 믿음으로 고백하고 살아가면서 그 은총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절기에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이 담겨 있습니다.

유월절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 요한복음 1:29

     29. 이튿날 요한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무교절 : 그리스도의 무덤에 안장(친교) / 마태복음 12:39-40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속에 있으리라.

초실절 : 그리스도의 부활 / 고린도전서 15:20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칠칠절 :  그리스도와 성령의 임재 / 사도행전 2:1-4
오순절, 맥추절

  1. 오순절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나팔절 : 그리스도의 강림 / 마태복음 24:29-31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가 어두워지며 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대속죄일 : 그리스도의 속죄 / 요한계시록 5:9-12

     9. 새 노래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심판(새예루살렘) / 요한계시록 21:1-3

  1. 또 내가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하그(châg)  חָג 스트롱번호 2282

1. 축제.  2. 희생 제물
발음 [ châg ]

어원 / 2287에서 유래
구약 성경  / 62회 사용
  • 1. 명사, 남성 축제, 절기, 출10:9, 12:14, 신16:10, 대하5:3
  • 2. 명사, 남성 희생 제물, 출23:18, 시118:27, 말2:3.

연계형 חַג, 어미활용 חַגִּי

  • 관련 성경  /  절기(출 10:9, 왕상 12:32, 말 2:3), 절일(출 32:5, 민 28:17, 시 81:3), 희생(시 118:27).

모에드(môwʽêd) מוֹעֵד 스트롱번호 4150

1. 정한 때.  2. 시간의 한 점. 3. 시간의 공간
발음 [ môwʽêd ]
어원  / 325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23회 사용
  • 1. 명사, 남성 정한 때.
    • a. 명사, 남성 시간의 한 점, 창17:21, 레23:2,4,37,44, 삼상13:8,11, 삼하20:5,24:15, 시75:3(2), 1:4, 2:6, 렘8:7, 단8:19, 11 :27,35, 호9:5, 12:10.합2:3.
    • b. 명사, 남성 시간의 공간, 창1:14, 단12:7
  • 2. 명사, 남성 회중, 민16:2, 욥30:23, 사14:13, 33:20.
  • 3. 명사, 남성 집회 장소, 수8:14, 시74:8, 애2:6.
  • 4. 명사, 남성 신호, 삿20:38.
  • 관련 성경 /  계절(창1:14), 기한(삼상13:8, 시102:13), 때(출23:15, 수8:14, 습3:18), 회막(출27:21, 레24:3, 왕상8:4), 성막(출35:21, 40:2), 회막문(출40:12, 민16:18, 27:2), 성회(레23:2,37, 겔46:11), 절기(레23:37, 민29:39, 대하8:13, 호2:11), 절기제(민15:3), 회중(민16:2, 시74: 4),시기(민28:2, 렘46:17), 군호(삿20:38), 날(삼상13:11), 시간(삼상20:35), 한 해(왕하4:16),회당(시74:8), 기약(시75:2), 절기의 날(애2:7, 호9:5). [동] 돌아오다(왕하4:17), 정하다(욥30:23, 시104:19).


절기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하그'와 '모에드'다.
하그는 '춤춘다' '순환한다'는 의미다.
매년 그맘때가 되면 예외 없이 절기가 돌아오며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속성을 두고 불리는 명칭이다.
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축제의 기본 요소인 춤춘다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모에드는 '특별하게 정해진 시간'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 '모에드'에 따라 공생애 사역을 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

​성경은 이 절기를 '여호와의 절기'라고 밝힌다(레 23:2).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가 각 민족의 절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 그럴까?

​첫째, 이스라엘의 절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셨다.
따라서 과장이나 꾸밈, 조작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둘째, 사건과 절기의 순서가 다르다.
즉, 다른 민족의 절기는 사건이 발생한 뒤 그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기념해 생겨났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 먼저 절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에 맞춰 사건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최대 절기인 유월절을 예를 들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애굽에 대한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죽임'이 임할 날짜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미리 알려주셨다. 그리고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집집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과 설주에 바르도록 하셨다. 죽음의 신이 이스라엘의 집에 넘어가도록 정하셨고 이를 유월절로 제정하신 것이다.

레위기 23장엔 이스라엘의 7개 절기가 언급돼 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대속일, 초막절 등. 이는 하나님이 진행하실 인류 구속사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절기에는 하나
님의 구속의 경륜과 프로그램이 암호화돼 있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친교를,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칠칠절(오순절)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임무 교대를,

나팔절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대속죄일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사건 후에 지키는 절기는 세상에서 지키는 절기의 특징입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절기는 먼저 절기가 선포된 후에 절기를 지킴으로 사건이 구체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절기(하가그.  châgag. חָגַג)라는 의미는 '원 안에서 돌다'라는 뜻으로 이는 종교 행사의 한 부분으로 둥그런 원형을 이루어 춤을 추고 즐거이 노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 중 대부분을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절기 중 무도회를 열거나(삿 21: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 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주 앞에서 즐거운 찬송을 발하거나(시 100:1)

"온 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혹은 성전을 향해 행진하는(시 42:4) 다양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그 후에
- 모세와 아론이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여호와의 메시지와 이적을 제시하자, 백성들이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수용하고 그 두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이요.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한 후에란 뜻이다.

바로에게 이르되

- 당시 애굽 행정제도는 중대한 사안일 경우, 왕이 백성의 소청을 공개적으로 듣고 응답을 내리던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의 바로 알현(謁見)도 그러한 맥락에서 쉽게 이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 민족 해방의 소청이 단순한 항거나 시위가 아니라 장자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4:22)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자 선포임을 보여 준다. 더욱이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 표현하신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묘사한 동시에 일개 이방 왕인 바로가 이스라엘을 압제할 아무런 권한이 없음을 명백히 시사한다.

절기를 지킬(하가그. châgag. חָגַג)
- 본래 의미는 '원 안에서 돌다'라는 뜻으로 종교행사의 한 부분으로 둥그런 원형을 이루어 춤을 추고 즐거이 노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전통 중에 "강강술래"와 같은 놀이라고 하겠습니다.

강강술래는 전라도 지방에서 전하는 민속놀이다.
강강술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이며, 2009년 9월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주로 해남·무안·진도·완도 등지에서 음력 8월 15일 밤에 예쁘게 차려입은 부녀자들이 공터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둥근 원을 만들어,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는 놀이이다.
밤새도록 춤을 추며 계속되는 원무를 도는 도중에 민속놀이를 곁들인다.

전라남도의 해안지대와 도서지방에 전파되어 있는 춤으로, 처음에는 긴중모리 장단으로 시작하여 굿거리로 끝에 가서는 자진모리로 빨라지면서 춤은 고조되어 뛰면서 돌아간다.

강강술래는 노래와 춤이 하나로 어우러진 부녀자들의 집단놀이로 주로 전라남도 해안지방에서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행해졌다.


이스라엘의 절기 중 대부분을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절기 중 무도회를 열거나(삿 21:12), 주 앞에서 즐거운 찬송을 발하거나(시 100:1) 혹은 성전을 향해 행진하는(시 42:4) 등 갖가지 행사가 있었다.

절기(하가그. châgag)  חָגַג 스트롱번호 2287

1. 선회하다.  2. 춤을 추다. 3. 절기를 지키다.
발음 [ châgag ]
구약 성경  / 16회 사용
  • I. 원형 선회하다, 돌다
    • 1. 원형 춤을 추다, 삼상30:16
    • 2. 원형 절기를 지키다.
      • a. 원형 [어지럽게 뛰논다는 뜻], 출5:1, 레23:41.
      • b. 원형 [공적인 모임으로서] 시42:5(4).
    • 3. 원형 비틀거리다, 현기증이 나다[술 취한 자에 대해 사용], 시107:27.
  • 관련 성경  /  지키다(출12:14, 나1:15, 슥14:16), 구르다(시107:27), 춤추다(삼상30:16). [명] 성일(시42:4), 절기(출5:1, 23:14, 신16:15).




특별히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일곱 가지 절기를 레위기 23장에서 소개합니다.

본문에서는 말씀하는 절기는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시려고 애굽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 가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일곱 가지 유대 절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맥추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장막절, 수장절)

레위기 23:3
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분의 영광을 기념하고 찬양하며 백성으로 기쁨을 누리기 위해 정해 주셨습니다.

레위기 23: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무교절,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신명기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자신이 메시아 임을 알리시기 위해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자주 인용하셨습니다.
선지서와 절기를 비롯해 여러 상징은 예수님을 가르키고 있기에 구약을 이해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것을 아는데 도움이 됩니다.

유월절 (Passover) The Feast of Passover, ‘패이샤크 (Pesach)’

  • 시기 : 니산월 (Nisan, 유대력 1월, 오늘날 3-4월) 14-15일
  • 목적 : 애굽에서 재앙이 지나간(passover) 것을 기념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에굽과 에굽에서 종살이에서 자유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무교절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음으로 지키게 한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중심에 무고한 어린 양의 생명의 대속(substitution)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손 대대로 이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관련 말씀

레위기 23:4-8

출애굽기 12:13-14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 (민 9:1-14) 애굽에서 나온 다음 해 시내 광야에서 (유대 달력으로) 첫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게 하십니다. 정결하지 못하거나 여행 중인 이 그리고 이방인으로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는 이에 대한 규례를 주십니다
  • (민 28:16)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하나님의 어린 양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유월절을 통해 우리는 가장 선명한 대속의 상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흠 없는 당신의 장자 예수님을 죽게 하는 대속으로 완전한 공의와 완전한 자비의 유월절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 침례 요한의 증거: (요 1:29)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바울의 증거: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 예수님은 유월절 양을 잡는 6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요 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무교절 (Unleavened Bread)

무교병 (Hand made shmura matzo)

  • 시기: 니산월 15-22일 (유월절 후 1주일간)
  • 목적: 애굽으로 부터 급히 빠져 나오며 누룩없는 무교병을 먹은 것 기념

관련 말씀

  • (레위기 23:6)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유월절이며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은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먹는 무교절로 지키나 무교절의 첫째 날과 일곱째 날은 성회로 모이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교절 기간 동안 날마다 매일 아침에 드리는 상번제를 드린 후에 초하루에 드렸던 똑같은 방식으로 번제, 소제, 전제 그리고 속죄제를 드립니다. (민수기 28:16~25절)

생명의 떡

성경에서 누룩(leaven, yeast)은 주로 죄를 나타냅니다. (갈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누룩 없는 빵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죄가 없는 흠이 없는 어린 양으로 우리 죄를 대신한 완벽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가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셨습니다.

  •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에 주신 것뿐 아니라 우리의 영의 양식을 제공하십니다.

초실절 (First Fruits)

  • 시기: 니산월 16-17일
  • 목적: 첫 곡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하나님에 속한 것 임을 인정)
  • 관련 말씀: 레위기 23:9-14

부활 그리고 첫 열매

제사장들은 유월절 양을 니산월 14일에 잡았고 그 후 3일째 되는 날이 초실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한 지 3일째 되는 날 부활하셨고 바울은 예수님을 첫 열매라 했습니다.

  • (고전 15:20)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의 영혼이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 새 언약의 예표가 됩니다.

  • (눅 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칠칠절 (Feast of Week)

칠칠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늘 날이며 (새 소제) 상번제를 드리고 성회로 모이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사방식은 초하루과 같습니다.

  • 시기: Sivan (유대력 3월, 오늘날 5-6월) 6-7;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해 시내산에 강림하신 날, 초실절로 부터 50일 후 (오순절의 영어 단어 Pentecost 50일 이라는 의미), 2개의 떡을 바침
  • 목적: 추수 감사
  • 관련 말씀: 맥추절 (Feast of Harvest, 출 23:16), 칠칠절 (Feast of Weeks, 신 16:9-12), 두 번째 거둔 곡식을 바치는 절기 (레 23:15-22), 민수기 28:26-31
  • 신약: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신 날 (성령강림절, Whitsunday)

추수할 것은 많되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며 목자 없는 양과 같다 불쌍히 여기시며,

  • (마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리고 주님은 성령님을 기다리라 명령하셨습니다.

  •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오셨고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000 영혼이 구원받는 추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두 개의 떡) 모두에게 전해지며 추수는 우리에게까지 미쳤습니다.

나팔절 (Trumpet)

일곱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으며 나팔을 붑니다. 수송아지 한 마리, 숫양 한 마리,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7 마리로 동물에 따라 규정된 양의 소제를 함께 드리고 ,숫염소로 속죄제도 드립니다. 이것은 월삭, 상번제로 드리는 소제와 전제외에 별도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민수기 29:1-6)

  • 시기: Tishri (유대력 7월, 오늘날 9-10월)
  • 시나이 반도를 기념하며 나팔을 불어 성회에 모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제 (하나님의 favor)

관련 말씀:

  • 나팔절 규례: 레위기 23:23-25, (레 23:2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 나팔 신호에 관한 규례: 민 10:1-10

혼인 잔치

나팔 소리는 휴거 혹은 예수님께서 신부를 위해 오시는 때(고전 15:52)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님께서 오시면 혼인 잔치가 벌어집니다.

  • (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주님은 잔치를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속죄일 (Atonement)

아사셀 염소 (scapegoat) 광야로 보내기

  • 시기: Tishri (유대력 7월, 오늘날 9-10월) 10
  • 목적: 제사장, 백성의 속죄
  • 관련 말씀: 레위기 16장, 레위기 23:26-32, 민수기 29:7-11

The Day of Atonement 히브리어로 '욤 기포어 (Yom Kippur)’로 불리는 속죄일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가장 엄숙하고 거룩한 날로 유대 달력으로 7번째 달인 티슈리 (Tishri) 월 10번째 날입니다. 티슈리는 오늘날 달력으로는 9 혹은 10월입니다. 제사는 나팔절과 같은 규정으로 드렸습니다.

  • (레 23:27-28)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 (민 29:7) 일곱째 달 열흘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며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이날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정교한 종교의식을 행합니다. 레위기 16장에 이 의식이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 중 희생양(“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 scapegoat - NIV)의 머리 위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안수함으로 상징적으로 백성의 죄를 염소에게 전가하였습니다. 죄를 전가 받은 염소가 광야로 감으로 백성의 죄가 멀어졌습니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

  •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 (요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초막절 (Feast of Tabernacles)


성막 모델 - 이스라엘 팀나 벨리(Timna Valley)

  • 시기: Tishri (유대력 7월, 오늘날 9-10월) 15-22
  • 목적: 가나안으로의 여정 감사 (성막 기역)
  • 관련 말씀 (다른 이름): 수장절 (Feast of Harvest 출 23:16), 초막절 (레 23:33-44, 신 16:13-17), (민수기 29:12-40)
  • (민 29:12)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이레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

수송아지 13마리와 숫양 2마리 그리고 1년 된 숫양 14마리로 각 짐승에 정한 소제와 전제의 양으로 드리고 다만 7일까지는 수송아지 숫자만 한 마리씩 줄어드는 거 외에는 매일 똑같이 제사지냈습니다

  • (민 29:35) 여덟째 날에는 장엄한 대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1마리,수양 1마리, 어린 숫양 7마리로 소제와 전제로 상번제와 속죄제외로 드렸습니다.

임마누엘

  •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주시기 위해 인간이라는 초막(Tabernacle, 텐트)을 잠시 입으셨습니다.



광야(미드바르. midbâr) מִדְבָּר 스트롱번호 4057

1. 목초지.  2. 불모지. 3. 아라비아 사막
발음 [ midbâr ]
어원 / 1696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71회 사용
  • 1. 명사, 남성 목초지[사막이 아니라 가축을 먹이기에 적당한], 시65:13(12), 사42:11, 렘23: 10, 욜1:19, 2:22
  • 2. 명사, 남성
    • a. 명사, 남성 불모지, 사막, 사32:15, 35:1, 50:2, 렘4:11, 욜2:3, 4:19(3:19).
    • b. 명사, 남성 [관사와 함께 쓰이면] 아라비아 사막, 창14:6, 16:7, 출3:1, 13:18, 신11:24.
    • c. 명사, 남성 [은유로] 사막, 사14:17, 렘2:31, 호2:5(3).
  • 3. 명사, 남성 시적으로, דִּבֶּר ‘말하다’에서 유래: 입, 아4:3.
  • 관련 성경 /  광야(창 14:6, 출 3:1, 대상 5:9), 들(창 21:14,호 2:14), 황무지(수 18:12, 삿 1:16, 삼상 23:14).[형] 황폐한(욜 2:3).

다바르(dâbâr) דָּבָר 스트롱번호 1697

1. 말.  2. 복수로 쓰인 경우. 3. 약속
발음 [ dâbâr ]
어원 / 1696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442회 사용
관련 성경 / 언어(창11:1, 시19:3, 잠29:20), 말씀(창 15:1, 민 11:24), 일(창18:14, 출18:18), 말(창24:52, 출35:1, 신4:2),
명령(창44:2, 삼상15:11,13), 물건(출22:9), 대답(잠27:11), 사건(민25:18, 신19:15), 계명(신 4:13), 규례(신15:2), 판결(신17:11), 뜻(신17:10), 직무(신24:5), 까닭(수5:4, 왕상9:15), 의견(삿20:7), 염려(삼상10:2),구변(삼상16:18), 이유(삼상17:29), 소식(삼하15:28), 식양(왕상6:38), 소문(왕상10:6),행위(왕상10:6, 16:20), 사적(事蹟)(왕상11:41,14:29), 행적(왕상14:19, 대하12:15), 지략(志略)(왕상14:29, 16:14), 독(왕하4:41), 불의(왕하17:9), 양(왕하25:30), 유언(대상23:27), 반(대상27:1), 글(대상29:29), 소행(느5:9), 생각(겔38:10), 한 마디(렘38:14), 조서(에1:19), 일기(에2:23), 소리(욥26:14, 시22:1), 용맹(욥41:12), 병(病)(시41:8), 목적(시64:5), 영광(시79:9), 표적(시105:27), 노래(시137:3),사물의 이치(전8:1), 불행(전8:5), 예언(렘28:6), 편지(렘29:1), 영(단9:25), 말미암다(창20:11, 신4:21), 조금(렘38:5), [동] 응하다 (겔12:23), 말씀하다(말1:1), 대하다(출8:12), 대답하다(민20:8, 삼하24:13), 이르다(창41:28, 왕상18:31), 상종하다(삿18:28), 상심하다(삼하13:33), 청하다(삼하14:15), 구하다(삼하14:22), 모의하다(왕상1:7), 허락하다(대하1:9), 무엇이든지(삿19:19), 구별하다(느12:47), 자세히(삼상3:18), 어찌(삼상11:12).



1월 18일(토) 출애굽기 1-4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애굽기 3: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So I have come down to rescue them from the hand of the Egyptians and to bring them up out of that land into a good and spacious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the home of the Canaanites, Hittites, Amorites, Perizzites, Hivites and Jebusites.

젖과 꿀이 흐르는 땅(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용어가 구약 성경에서만 19구절 사용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4회, 레위기 1회, 민수기 3회, 신명기 6회, 여호수아 1회, 예레미야 2회, 에스겔 1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지순례를 다녀온 교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황무지와 같고 사막과 같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젖(하라브. châlâb)
חָלָב 스트롱번호 2461

1. 우유. 2. 젖을 먹다
발음 [ châlâb ]
어원  / 2459의 어원과 동형에서 유래
구약 성경  / 44회 사용
  • 1. 명사, 남성 우유, 버터, 치즈, 창 18:8, 49:12, 잠 27:27.
    • a. 명사, 남성 [주] 젖을 먹다, 젖을 빨다, 사 60:16.
  • 문법설명 /  정관사가 붙는 경우 הֶחָלָב, 연계형 חֲלֵב, 어미활용 חלָבִי
    관련 성경 /  우유(창 18:8, 삿 5:25), 젖(출 3:8, 욥 21:24, 겔 20:6). [형] 젖 먹는(삼상 7:9).

드바쉬(debash)  דְּבַשׁ 스트롱번호 1706

1. 벌꿀.  2. 석청. 3. 포도의 꿀
발음 [ debash ]

어원 / 어미활용 דִּבְשִׁי, ‘덩어리로 만들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
구약 성경 / 54회 사용
  • 1. 명사, 남성 벌꿀, 레2:11, 삼상14:26,27, 29,43,잠16:24, 24 :13.
    a. 명사, 남성 [주]석청, 신32:13,시81:17(16)
  • 2.명사, 남성 포도의 꿀, 창43:11, 겔27:17.

  • 관련 성경 /  꿀(창 43:11, 신 6:3, 겔 3:3).

땅(에레츠.  ’erets)  אֶרֶץ 스트롱번호 776

1. 땅.   2. 창 1:1.  3. 창 9:19
발음 [ ’erets ]
어원  / 혼성 어미활용 אַרְצִי, ‘확고하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504회 사용

땅(아다마.  ’ădâmâh ) אֲדָמָה 스트롱번호 127

1. 땅.   2. 흙.  3. 들판
발음 [ ’ădâmâh ]
어원  / 11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225회 사용

메마른 땅(타루바흐. talʼûwbáh) תַּלְאוּבָה 스트롱번호  8514
1. 목마름.  2. תַּלְאֻ בוֹת אֶרֶץ 메마른 땅.
발음 [ talʼûwbáh ]
어원  /  3851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회 사용
  • 1. 명사, 여성 목마름, 가뭄, 호13:5.
    • a. 명사, 여성 [주 ]׃ תַּלְאֻ בוֹת אֶרֶץ 메마른 땅.
  • 관련 성경  /  마른 땅(호 13:5).

테라로사

תְּרַע 스트롱번호 8651

1. 문.  2. 궁전 문
발음 [ teraʽ ]
어원  / 아람어
구약 성경  / 2회 사용
  • 1. 명사 문, 입, 단 3:26
  • 2. 명사 궁전 문, 단 2:49.

참고 정보

문법설명 / 8179와 동일
  • 문법설명 /  8179와 동일

    관련 성경 /  왕궁(단 2:49), 아귀(단 3:26).

שַׁעַר 스트롱번호 8179

1. 열림 : 문.   2. 출 32:26.  3. 창 23:18
발음 [ shaʽar ]
어원  / 8176에서 유래
구약 성경  /  375회 사용
  • 1. 명사 열림 : 문.
    • a. 명사 [장막문] 출 32:26, 27.
      b. 명사 [성문] 창23:18, 수2:7.
    • c.  명사 [성전문, 제단문] 겔 8:5, 10:19.
    • d. 명사 [왕궁의 문] 에2:19,21.
  • 관련 성경  /  문(창22:17, 삼상4:18, 슥14:10), 성중(신12:12, 15:22), 성(신12:15), 성읍(신14:28, 룻3:11), 성안(신31:12), 성문(창34:24, 수2:5),문밖(대하24:8).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팔레스틴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유대 광야와 네게브 사막을 지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을 갖습니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약속의 땅은 매우 비옥할 것으로 생각했던 환상이 무너지고 황량하고 메마른 지역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다른 말로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란 말로 이해해도 되는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여러 주석학자들의 해석을 소개합니다.

독일학자인 벤징거(Benzinger)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리스의 신화적인 배경에서 신들의 음식인 젖과 꿀의 땅”으로 해석합니다.
벤징거는 가나안을 신들의 땅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레쓰만(Greβmann)
“가나안을 낙원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바벨론의 신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레쓰만은 요엘 3:18, 아모스 9:13에 근거하여 이것은 선지자들의 종말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합니다.

후트만(Houtman)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욥기 20:17에 근거하여 “시적 표현에서 비롯된 과장법으로, 젖과 꿀이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성경학자요 랍비인 모쉐 데이빗 카수토(Moshe David Cassuto)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광야에 살았던 유목민들이 가나안 땅을 가리켜 처음 사용했던 표현으로, 그 의미는 목축을 통해서는 젖을, 그리고 농업을 통한 각종 나무로부터 벌의 꿀처럼 많은 실과를 거둘 수 있는 배경에서 이해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는 확대되어 각종 실과를 풍성하게 소출하는 가나안 땅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저명한 유대 학자 나훔 마타티아스 사르나(Nahum Mattathias Sarna)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을 “가나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심스럽게 해소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이 표현은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출 3:8).

“내가 …(중략)…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중략)… 이르려 하노라.”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생활했던 나일강 삼각주 지역은 지역은, 흉년을 피한 이주민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성경의 역사·지리학자인 데니스 발리(Denis Baly)는 이 표현을 광야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 땅이 꼭 비옥하다는 의미가 아닌, 광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괜찮은 땅”으로 이해합니다.

민수기 16:13-14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 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이렇듯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에 대해 학자들마다 다양한 주장들을 제기했다.
비록 일부이지만 이 표현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의 의견들을 거의 망라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성경을 탐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나안 땅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던 후기 가나안 시대의 역사·지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지정학적인 측면

가나안 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곧 상호 국제 무역을 주도할 수 있는 자연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지리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정착민들은 무역이 아닌 목축과 농사에 종사하였다.
국제 무역은 오히려 페니키아에서 활기를 띠었다.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들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입니다(시 104:15).
열방들이 혹시 주의 백성들에게 조롱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할 때”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면서 이 땅으로부터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욜 2:17-19).

둘째, 후기 가나안 시대(Late Bronze Age)

가나안 땅의 정착 인구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되었다.
네게브는 크게 황폐되었다.
중기 가나안 시대(Middle Bronze Age)에 번성했던 주요 성읍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황폐되었다.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브엘세바 인근, 중앙 산지, 그리고 요단 계곡이 대표적이다.
실로, 벧술, 여리고, 헤브론은 중기 가나안 시대에 견고한 성읍이었지만, 후기 가나안 시대에 이르러 작은 촌락으로 전락되었다.
텔 아줄(Tell el-Ajjul)과 텔 나길라(Tel Nagila)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농사를 위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정착했던 사마리아 중앙 산지에서는 중기 가나안 시대의 수많은 작은 도성들이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지역의 경제 구조가 농경에서 유목 생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후기 가나안 시대의 말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던 시대이다.  

셋째, 고대 이집트의 시누헤 문서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 시대보다는 앞선 때이지만, 가나안 땅에 대해 잘 표현된 고대 이집트의 시누헤 문서가 있다.
주전 20세기 초반에 속한 시누헤 문서에 나타난 가나안 땅에 대한 내용이다: 

“그곳은 야(Yaa)라 부르는 땅이다.
그 곳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가득하였다.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주가 흔하였다.
꿀은 넘치고 올리브는 풍부하였다.
각종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실과들이 열렸다.
보리도 있었다.
양과 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중략)… 그는 나를 그 땅의 가장 뛰어난 지파의 지도자로 삼았다.
매일의 양식으로 빵이 준비되었으며 포도주는 일용한 음료로 마련되었다.
나를 위하여 사막의 야생 고기 대신 (집에서 기른) 고기가 요리되었고 구워진 닭 요리가 내 식탁에 마련되었다. …(중략)… 나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음식이 마련되었고 우유로 만든 각종 요리들이 준비되었다”(ANET 18-22).

주전 20세기 초반의 시누헤 문헌에 야(Yaa)는 상당히 발달된 농경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야(Yaa)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는 올리브, 각종 나무에서 생산되는 실과,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들이 언급되었는데, 이것들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여기의 농산물들은 보통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수확하고, 밀, 보리는 늦봄에서 시작하여 여름 내내 추수하는 곡식이다.
학자들은 야(Yaa)의 위치를 갈릴리 호수의 동쪽, 골란 고원의 기름진 평야로 이해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서 한 마디로 분명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워도 두루뭉수리하게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 표현이 성경에 처음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기 위해 부르신 때이다.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출 3:17).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약속의 땅(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 방법이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은 일부 기름진 곳에서는 곡식을, 일부 척박한 곳에서는 가축을 돌봄으로 젖을 구할 수 있는 땅이다.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이 첨예하게 공존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시선은 늘 있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의미(신명기 11:8-12)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젖과 꿀이란 당시로선 일용하는 필수 식품이 아니라 기호 식품 중에서도 상당히 고급스런 식품의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아주 풍요로운 땅으로 쉽게 단정짓고는 예수를 믿고 나면 이전보다 생활 형편이 훨씬 나아지는 축복을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해석이자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많이 생산된다는 의미로 "흐른다"라고 표현했듯이 가나안 땅의 주산물은 물론 젖과 꿀입니다만 땅 자체가 풍요롭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젖과 꿀이 주산품이라는 것은 목축과 양봉이 주산업이라는 의미인데 곡물을 심을 수없는 아주 척박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아리조나 사막 지역에 가보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보호 구역이 곳곳에 있는데 너무 덥고 메마른 모래 땅이라 염소와 꿀벌을 치고 토산품을 만들어 파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바로 그런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그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습니까?
"파종한 후에 채소 밭에 발로 물대기"를 할 수 있는 애굽 땅과 비교했습니다.
수차(水車)를발로 저어 물을 댈 수 있는 비옥한 평지라 채소나 곡물을 심기만 하면 풍족하게 수확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고 합니다.
우선 채소와 곡물을 심을만한 평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간혹 내리는 비가 대지를 적실 정도가 안 됩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일용할 주 식품인 곡물과 채소를 경작할만한 여건이 전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젖과 꿀을 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기호 식품은 양으로 따지면 조금만 생산해도 사실은 아주 많은 양이 됩니다.
기호식품이란 주 식품에 첨가해서 아주 적은 양을 섭취하는 것이고 또 매일 젖과 꿀만 먹고 살 수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쌀 수십만 톤과  꿀 1 톤이 먹일 수있는 사람 수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아가 당시의 경제적 형편과 식생활 습관을 감안하면 젖과 꿀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최고급 식품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흐르는"이란 표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도저히 사람이 살 데가 못되는 땅이 가나안입니다.

정작 신자가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왜 그런 척박한 땅을 하나님은 오히려 축복의 땅이라고 약속하셨고 또 그 크고도 수많은 희생들을 거쳐서야 인도하셨는가?" 입니다.
애굽의 종살이 사백년과 가데스 바네야와 광야에서의 온갖 반역으로 인해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었지 않습니까?
그 중에 모세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 해답을 본문이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歲初-신년초)부터 세말(歲末-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척박하여 산물이 희귀한 땅이라 오히려 하나님이 일년365일 한 시도 떠나지 않고 항상 지켜 보호해 주시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땅을 당신의 백성에게 권고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건이 풍족한 곳이 아니라 정반대의 땅으로 당신의 자녀들이 들어가 살기를 하나님은 원한다는 것입니다. 또 바로 그러하기에 세상 수단에 절대 의지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계명대로만 살아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백성으로 선정한 이유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7:7) 신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해주는 백성들의 모습도 동일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

한 마디로 신자가 되었다는 것,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는 주위 여건이 어떠하든 삶의 세밀한 구석부터 전 인생을 걸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의존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절대로 돈의 많고 적음이나, 사람들의 칭찬이나 멸시와, 환경의 풍족함이나 궁핍함에 굴복하지 않고 사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신 8:3).

또 그렇게 살면 젖과 꿀은커녕 마실  물마저 없는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방황해도 주리거나 갈하지 않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으며 발이 부릍지 않게 해줄 하나님이 세초부터 세말까지 항상 우리를 지켜봐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참 정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막상 가나안 땅에 들어가선 젖과 꿀을 싫컷 맛보았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젖과 꿀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40년간 방황하던 광야가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발로 물 대는 애굽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탐심을 좇아 살고 있습니까?(골 3:5).
진정한 젖과 꿀을 사모하기에 땅이 물을 흡수하는 험한 산과 골짜기에서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손을 잡고 따라 가고 있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이는 성경 곳곳에서 가나안 땅의 대명사처럼 자주 사용된 말이다(민 13:27; 신 31:22; 렘 32:22). 이 말을 문자적으로 풀어보면 젖을 생산하는 소와 양을 많이 사육할 수 있는 풍부한 목초지와, 꿀을 채취하는 양봉이 가능 할 정도로 꽃과 화초가 많이 자라 살기 좋은 땅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1차적인 자연 조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말 속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는 영적의미로서 곧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이 임하는 곳이란 뜻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의미와 해석

약속의 땅인 가나안과 관련된 여러 가지 표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 표현은 성서 전체에서 20회 정도 사용이 되었는데, 모세 오경에서 15회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5회 사용되었다.

“젖”과 “꿀”을 근동 지방의 신화와 연결시켜 신의 특별 선물(special gifts of god)이나 신의 기호 식품들(favorite diet of gods)으로 해석하려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주석가들은 그동안 일관되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표현은 땅의 비옥성을 함축적으로 나타난 것으로서 가나안 땅을 다소 과장시켜 생산성이 넘치는 땅으로 나타난 독특한 표현이라고 해석하였다.

특별히 사막의 유목민들이나 애굽에 종살이하였던 히브리 민족에게는 그러한 표현이 먹을 음식이 풍부한 땅을 묘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한 해석을 가능케 한 것은 성경 자체가 젖과 꿀, 혹은 그러한 것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매우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성경에서 젖과 꿀은 대표적인 고단백질 음식으로 여겼다.
그래서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광야에서 숨어지내던 다윗과 그의 신하들에게 제공된 중요한 음식물 중에는 젖과 꿀로 만든 것이 포함되었다. (삼하 17:28) 그것들은 또한 고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교역 물품들이었으며(겔 27:17),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봉헌되는 물건이기도 하였다. (대하 31:5) 창세기에서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는 아들들에게 야곱이 함께 보내는 선물에 포함된 물품이기도 하였다. (창 43:11) “무엇이 꿀보다 달겠느냐?”라는 성경의 수사적 질문(삿 14:18)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꿀은 단 것을 대표하는 식물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달콤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비교적 표현에 꿀을 사용하였다. 잠언에서 꿀은 즐거움과 건강함을 주는 선한 말에 비유되고 있다. (잠 16:24) 그런가 하면 꿀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시 19:11; 119:103), 지혜 (잠 24:13; 16:24) 혹은 연인 사이의 아름다운 감정(아 4:11; 5:1) 등과 같이 다양한 즐거움과 유익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명히 젖과 꿀은 고대 사회에서 높이 평가되는 값진 물건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양식으로 주셨던 만나는 그 맛이 꿀 섞은 과자 맛 같다고 하였다. (출 16:31) 그런가 하면, 부정적인 측면에서 초인들에게는 젖과 꿀이 정녕 허락될 수 없는 양식이기도 하였다. (욥 20:17)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비옥한 땅으로 해석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이스라엘의 실제 지리적 상황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따라서 그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극히 힘들다는 점에서 이 표현에 대한 해석상의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일 년 중 거의 절반 이상이 계속되는 고온 건조한 기후의 자연환경과 개발의 조건마저 그 가능성이 희박한 땅이 이스라엘이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주변 지역은 사막 내지는 준사막 지역으로 둘러쌓여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심 무대로 삼았었던 산간지방은 석회질 바위로 뒤덮여 있는 척박한 지역이고 보면 과연 성서에서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거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만큼 기름진 땅이었으나 험난한 역사를 겪으면서 본래의 아름다움은 파괴가 되고 지금과 같이 황폐한 현실이 된 것일까?
아니면 성서의 표현은 이스라엘 땅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이상적인 땅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일까?
이러한 해석상의 난제는 성서학자들 사이에서 연구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주제이었다.
이런 해석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결책으로서 학자 중에는 이 표현이 실제적인 땅의 비옥성을 가리킨 것이 아닌 상징적 표현으로 보기도 했고 혹은 유목 민족들이 신화에서 연유된 축복과 이상의 땅을 소망하는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 관한 대표적 표현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느 한 측면으로 치우쳐 이해되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실제 현실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다양한 역사 경험과 신앙 속에서 종합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주제라고 여겨진다.

본 논고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다음의 세 가지 입장,
1. 고대 근동 아시아의 지리적 차원
2. 가나안 땅의 생활 경제적 차원
3.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분석하여 그 해석적 시도를 하려고 한다.

그러한 해석적 시도에 앞서서 가나안 땅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먼저 살펴봄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관한 더욱더 큰 신학적 컨텍스트를 찾아보려고 한다.

II. 성서에 나타난 땅 개념의 신학적 의미

A. 땅과 관련된 용어들

구약에서 을 지칭하는 용어로서는 “아다마” “에레츠”가 있다.
아다마”는 “붉다”(red)라는 뜻의 “아톰”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붉은색을 띤 비옥한 땅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산지에서 흘러내려 주변의 골짜기에 쌓인 충적토가 유명한데,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이러한 토양을 가리켜 “테라로사”, 즉 “붉은 땅”이라고 부른다.

“아다마”로서의 땅은 경작이 가능한 땅, 소유지로서의 객관적 가치가 있는 땅, 인간의 거주에 적합한 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다마”의 반대적 개념은 인간이나 생물의 생존이 불가능한 사막이나 광야 등이다.

땅에 대한 또 다른 용어는 “에레츠”이다.
이 용어는 비옥한 땅인 “아다마”와는 달리 땅의 외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창조와 우주적 관점에서 본 땅의 개념이다.
, “에레츠”는 하늘 혹은 바다와 반대적 개념으로서의 땅이다.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우주는 하늘과 땅으로 구분되거나 혹은 하늘과 바다와 땅으로 삼등분된다.
이런 우주의 구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에레츠” 땅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에레츠”의 땅은 정치적 개념을 내포한 땅으로서 인간의 역사와 신앙 그리고 사회조직 등으로 의미화 내지는 역사화되어 있는 땅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성서신학의 주제가 되는 땅 개념은 “아다마”이기보다는 더욱더 포괄적개념인 “에레츠”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이루어진 계시의 현장으로서의 땅이기도 하다.

성서에서 땅을 “에레츠”와 “아다마”로 구분하는 것과 유사하게 땅을 공간(space)과 장소(place)로 구분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공간이란 외부의 어떠한 압력도 없는 완전 자유의 상태로서의 땅이며, 그렇기 때문에 책임성 자체도 없는 공백 상태의 땅이다. 반면에 장소로서의 땅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땅,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었고, 그 사건이 기억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거쳐서 연속성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땅이다.

따라서 공간(space)의 추구는 역사로부터의 회피이지만, 장소(place)의 추구는 역사 안으로 들어가려는 결단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추구하였던 땅은 비옥성과 더불어 풍요를 보장하는 “아다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통치가 기다리고 있는 “에레츠”이었으며, 역사의 부름을 외면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강조된 “장소”로서의 땅이었다.

B. 에덴으로부터의 추방과 가나안으로의 부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에게 적합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은 단순한 땅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창조적 목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의미의 땅이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직접 창설(창 2:8)하신 땅이었으며,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완벽한 조화를 누릴 수 있는 땅이었다. 그러한 조화로운 삶은 에덴에서 발원하여 네 방향으로 흐르는 풍부한 물 근원에서 찾을 수 있다. 창세기 2장 8~27절 사이에 묘사된 내용에 의하면, 에덴은 물이 풍부한 땅이었다. 에덴의 중앙 부분에서 발원하는 수원은 동산 전체를 적실 뿐만 아니라 네 방향으로 흘러 네 강의 근원이 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풍부한 수원과 흘러 내려가는 강의 이미지는 단순한 물이기보다는 영적 의미를 동시에 포함한 것으로서, 에덴 안에서 누리는 완벽한 조화와 풍요로운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가 단절되었고 동시에 땅으로부터의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은 곧 에덴의 풍요로운 근원으로부터의 추방이었다. 인간에

게 주어진 원천적 삶의 시작은 창조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진 하나님의 땅인 에덴으로의 도입이었다고 한다면, 인간의 실패는 그러한 본질적 삶의 땅으로부터 추방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온 인류를 사랑으로 흩으신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새로운 구속역사를 시작하셨다. 새로운 역사는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새로운 땅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창 12:2-7) 여기에서의 새로운 땅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살게 될 땅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는 신학적 차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름이 인류 구속사를 향한 부름 곧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여 추방당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부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 전체를 향한 부름의 초청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어진 축복의 땅이면서 동시에 인간 전체에게 회복될 에덴동산의 원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C. 땅의 신학적 의미

성서에 나타난 땅 개념에 관한 신학적 연구는 최근까지 활발하게 논의되지 못한 주제이었다.
그러나 땅(land)이라는 단어가 성서에서 쓰인 빈도수를 본다면 그것은 놀랄 만큼 자주 사용되었다.

땅을 구원의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 축복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한 마르텐스(Elmer A. Martens) 교수는 ‘땅’이란 단어가 구약에서만도 2,504번이나 나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성서에서 네 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이며, 통계적인 수치만으로는 계약 사상보다도 더 중심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성서에 나타난 땅의 의미를 연구하는 분야로서는 여러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땅의 외형적 형태를 다루는 지형 지리, 국경 문제 혹은 지파별 땅 분배 등을 다루는 정치 지리 혹은 땅의 비옥성, 경제성, 종교-문화의 관련성 등을 주제로 삼는 분야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땅을 단순한 인간 삶의 공간만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신앙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나님과 땅과 이스라엘 백성은 상호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한 신학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땅의 신학적 이해를 위하여 성서가 제시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땅이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라는 사상이다.
그러한 성서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창조신앙이 그러한 하나님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멜기세덱의 축복에 화답하는 아브라함의 고백 속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자”라고 표현되었다. (창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이스라엘의 선택과 언약의 상대자임을 강조하는 출애굽기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세계가(에레츠) 다 내게 속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 (출 19:5) 여기에서의 ‘세계’는 히브리어 “에레츠”를 번역한 것으로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땅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의 실제적 주인이심을 더욱 명백히 밝힌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레 25:23)라는 이유때문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못한다는 희년 규정과 관련하여 나오고 있다.

성경에서 땅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는 주장은 하나님의 소유권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근거를 제시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땅의 실제적 주인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 땅에 살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라는 주장 다음에 제시된 이스라엘은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들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땅을 선물로 받았을 뿐이지 땅의 실제적 주인은 아니라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오히려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는 신분으로서 그 땅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게르 토샤브)라는 신분은 완전한 시민권을 갖지 못한 장기체류자를 의미하는데, 그런 신분으로서는 합법적으로 토지와 같은 재산권을 소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비록 가나안 땅을 소유하여 살고 있지만, 그것은 정식 주민으로서의 재산권을 누리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땅을 소유할 능력이나 권리조차도 없었다.
다만 궁극적인 소유주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분배받아 관리할 뿐이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이스라엘에게 영영히 주어진 것이다.

땅이 하나님의 축복된 선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점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신학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1.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은 선조들에게 약속된 것이 성취되었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 땅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러한 사실은 여러 가지 법전이나 종교의식을 통하여 인정되고 있다.
3.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만 유지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한
삶의 형태가 요구된다.

아브라함의 부름은 땅에 관한 약속(창 12:7; 13:14-16; 15:18-21; 17:8)으로 시작되었다. 그러한 약속은 그의 자손들에게 계속적으로 확인되었으며(창 26:3-4, 24; 28:13; 35:9-12), 출애굽을 주도한 모세에게도 확인되고 있다. (출 6:8) 하나님의 그러한 약속들은 약속이기보다는 맹세이었다. 그래서 데이비스(W. D. Davies) 같은 학자는 “맹세의 땅”이라는 표현이 ‘약속의 땅’이라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요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약속과 성취의 역사적 실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실제적으로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음은 지파 간에 분배된 토지가 양도 불가능한 성격이라는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자기 친족이 아닌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땅을 판 경우가 없다는 사실과 고고학적으로 이스라엘에서 토지 매매에 관한 문서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은 침묵에 의한 논증이다. 역사적인 증거로서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들 수 있다. (왕상 21장) 나봇이 왕명을 거역하여 결국 목숨을 잃게 되면서까지도 자신의 땅을 아합 왕에게 내어놓지 않은 것은 재산의 양

도 불가능성을 잘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다.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 27:17)라는 율법 조항 역시 토지의 부동성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토지 양도의 불가능성은 이스라엘이 땅을 상실하였을 때도 여전히 적용되었다. 비록 이스라엘이 외적의 침입으로 멸망하여 땅을 상실하였지만, 포로기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땅이 양도될 수 없다는 근거에 의하여 포로 귀환의 소망을 선포하였다. (렘 12:14-16; 16:14-15; 겔 36:8-15)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땅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땅 소유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특별한 삶이 요구되었다. 그러한 요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있었다. 신명기에 제시된 규례들은 그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사항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네 열조의 하나님 여화와께서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신 12:1) 땅은 약속의 선물일 뿐만이 아니라 책임을 요구하는 땅이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요구를 성실히 실행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거주를 계속적으로 유지할 뿐만 아니라 땅으로 인한 풍요와 번성을 더불어 누릴 수가 있었다. (신 8:1)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은 땅에서의 저주와 축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무서운 경고가 주어졌다. 토지와 관련하여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이스라엘의 잘못된 행위들이 땅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레 19:29; 민 35:29-34; 신 21:23) 이것은 여호와 자신이 더럽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불가능함으로 오히려 땅이 더럽혀진다는 것으로 그 표현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땅은 여호와를 대신하는 유형적 상징이 되고 있다. 땅이 더럽혀진다는 사고는 결과적으로 그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낸다(레 18:25, 28; 20:22)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내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서에서의 땅 개념은 단순한 외형적인 지리 형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경험과 신앙고백을 통해서 오히려 이해될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구약의 구원을 하나님의 역사개입 행위 자체(de-liverance)와 축복(blessing)으로 양분시키고, 이 축복의 내용 속에서 땅의 약속과 성취를 본 베스터만의 논리는 의미 있는 것이라 하겠다. 축복 자체가 구원행위에서 시작된 하나님 활동의 결과이자 지속적 연장인 것처럼 이스라엘의 땅 문제는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라는 신학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땅을 차지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적합한 삶을 유지하도록 성서는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다.

III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해석적 입장

위에서 살펴본 가나안 땅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기초로 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해석적 입장을 다음 세 가지 관점 - 고대 근동의 지리적 측면, 가나안 땅의 생활 경제적 측면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A. 고대 근동의 지리적 입장에서 본 해석

고대 근동 지방이란 보다 큰 영역에서 볼 때, 이스라엘은 “비옥한 반달형”이라 불리는 지역 안에 속하고 있다. 근동의 ‘비옥한 반달형 지역’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고대 근동 지방이 과연 어떠한 지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근동 지방은 오늘날의 세 대륙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일부를 각각 포함하고 있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한계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지만, 대체로 에게해에서 아프카니스탄의 힌두쿠쉬 산지까지의 약 3,200km에 달하는 지역이 동서 간의 한계이고, 흑해와 카스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코카서스 산지에서 아라비아반도 남서단에 이르는 지역이 남북 간의 한계이다.

근동 지방의 지리적 특징은 이 지역 주변에 있는 세 가지의 장애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장애 요소들은 다른 지역과의 교류나 교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서 고대 근동 사회의 역사 및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세 가지 장애 요인 중에 첫 번 째 요소는 북부지역에 위치한 산지들이다. 이러한 산지들은 북쪽으로부터의 외적의 침입과 겨울철 동안 북쪽에서 불어오는 추운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두 번째 장애 요인은 남쪽에 있는 거대한 사막들이다. 이들 사막은 건조한 사막 기후의 영향은 근동 지방의 대부분 농경지를 잠식하여 경제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지만, 긍정적으로는 북쪽의 산지처럼 외적 침입을 막아주는 자연 방어선 역할을 하였다. 세 번째 장애 요소는 근동 지방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바다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세 가지 지리적 요소들은 육상 교통에 크게 방해가 되는 요인들로서, 근동 지방이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원할하지 못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근동 지방의 지리적 요인들은 자연스럽게 페르샤 만에서 시작하여 지중해의 동부 해안을 따라 가늘고 길게 뻗은 비옥한 지역, 곧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형성하게 되었다. 비옥한 초생달 지역은 사면이 자연적인 방벽에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고대 문명이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었던 문명의 요람지였다. 고대 역사와 문명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근동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은 성서의 이해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다. 특히, 이곳은 창세기의 족장 역사를 비롯한 성서의 원 역사(Proto-History)의 배경이 되고 있으며, 당시의 문화 내지 역사 이해는 성경 연구에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비옥한 반달형 지역은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으로 대별할 수 있다. 동부 지역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방이라고 불리는데, 페르샤 만에서 시작하여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중심한 지역을 가리킨다. 서부 지역은 지중해의 해안지역으로서 “레반트”(Levant) 지방이라 부른다. 이 지역은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이 있는 지중해 연안 지역이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서쪽 지역인 레반트에 속하고 있으며, 비옥한 반달형 지역의 중심부가 아닌 서남단의 외곽지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최남단 도시인 브엘세바는 비옥한 반달형 지역의 최남단으로서, 이 지역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사람의 거주가 불가능해지는 사막 지역이 되고 있다. 성서에서 브엘세바를 이스라엘의 남방 한계선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나, 브엘세바 이남 지역에서 정착된 생활 근거지가 언급되고 있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약속의 땅 이스라엘은 분명 비옥한 반달형 지역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위치적으로 이스라엘은 비옥한 반달형 지역의 중심부가 아닌 외곽지역이었다. 여기에서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평가하는 시각을 볼 수가 있다. 비옥한 지역의 중심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환경은 부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인간 거주가 가능한 문명된 지역 안에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표현한 것은 현실을 무시한 과장이거나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소망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단지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막에 거주하는 자들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같은 입장에서 카수토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표현을 사막의 유목민들이 그리는 이상적 삶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런 점에서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라고 부른 것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의 현실적 상황에 입각한 객관적 판단에 의한 표현임을 확증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40년 동안을 사막에서 지냈다는 역사적 정황을 고려하여 볼 때, 그들에게 보인 가나안은 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땅임이 분명하였다.

가나안 땅에 대한 이해의 혼동을 가져다주었던 것은 판단의 기준, 비교의 기준을 잘못 잡은 데에 있다. 가나안의 참모습과 의미는 이스라엘 민족이 생활하였던 사막으로 들어가 그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유대인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초막절 풍습 중 초막 짓기는 사막에서 가나안을 보아야 함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레위기에 의하면 초막절 동안 초막을 짓고 그곳에 나가 생활하는 것(레 23:43)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초막에 거하였던 출애굽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상징적 행동이다. 노트는 이러한 풍습의 의미를 “historical reason”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는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여호와를 기억나게 할 뿐 아니라 광야에서 생활하였던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B. 가나안 땅의 생활 경제적 입장에서 본 해석

두번 째 관점의 해석은 가나안 땅에 대한 표현인 “젖”과 “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의를 가나안의 생활 경제적 측면과 직결시켜보려는 입장이다. 젖과 꿀은 가나안 땅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의 대표적 요소로서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활동이 무엇인가를 규정지어주는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 즉 이 두 가지 생산품은 가나안 경제의 양대축이라고 할 수 있는 목축문화와 농경문화를 대변하는 요소이다.

“젖”이란 성서에서 직접적인 증거들을 얻을 수 있듯이 목축을 지적하는 표현이다. 목축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경제적 수단이었다. 믿음의 조상들을 비롯한 욥.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성서적 인물은 목축업에 종사하였다. 이스라엘 땅 자체가 사막에 인접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목축은 이스라엘 여건에 적합한 경제 수단이 되었다. 목축경제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동물이었던 양들은 이스라엘 제사 제도에서 가장 중요시여겼던 제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젖이 흐른다’는 표현 속의 ‘젖’은 목축의 주종을 이루는 양젖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목축에서 양을 키우는 일차적인 목적은 양을 잡아 고기를 얻는 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젖을 생산하여 그 젖으로 다른 유제품을 만드는 데 있었다. 성경에서 여러 종류의 유제품이 거명되는 것은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양들은 일 년에 평균 30~150리터의 젖을 생산하며, 젖이 집중적으로 짜게 되는 시기는 2~3월경에 시작하여 3~4개월간 계속된다.

이스라엘의 꿀은 두 종류가 있다. 첫 번 째 종류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벌들에 의하여 채집되는 꿀인 “드바쉬”이다. 구약에서 언급되는 꿀은 대부분이 야생꿀이다. (신 32:13 : 삿 14:8;삼상 14:25-29, 43) 시편 기자는 반석에서 나오는 자연의 꿀로 만족할 것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시 81:16) 그러나 이러한 “드바쉬”로서의 꿀 이외에도 과일나무의 열매에서 얻어지는 즙으로서의 꿀이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과일즙 형태의 꿀을 “아시스”라고 부르는데, 주로 포도, 무화과, 종려나무의 열매 등에서 얻어진다.

이스라엘은 과일나무가 잘 자라는 토양이며, 자연적인 입지 조건도 과일나무 재배에 적합하다. 산과 산 사이에 비가 올 때마다 씻겨 내려가 쌓이는 충적토는 밭농사에도 좋은 토양이 되지만, 경사진 산간 지역에서는 과일나무를 심어 기르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표현에 등장하는 ‘꿀’을 벌에게서 얻어지는 꿀인 “드바쉬”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나안의 경제적 입장을 고려할 때는 그것은 오히려 과일나무에서 얻어지는 즙으로서의 꿀인 “아시스”로 보는 것이 더욱더 타당하다 하겠다. 같은 입장에서 카수토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젖을 생산하는 가축들을 위한 초지와 과실을 생산하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땅이라고 해석하였다. 모세에 의하여 파송된 열두 정탐꾼이 그 땅의 비옥함을 증거하기 위하여 세 종류의 과일 – 포도, 무화과, 석류-을 가져왔을 때도 그 과일들은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있는 증거임을 밝히고 있다. (민 13:27)

가나안 땅을 표현하는 “젖과 꿀”은 가나안 땅의 생활 경제적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 땅에 적합한 목축과 과일 생산을 유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은 이스라엘 땅의 비옥성을 과장적으로 나타낸 것이기보다는 그 땅에 허락된 생산의 가능성에 대한 진솔한 표현이라 하겠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재해석해 볼 때, 그것들은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나님의 가능성, 곧 각양의 은사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게 될 때 신앙의 활력을 얻듯이, 가나안의 가능성인 젖과 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될 때 비로소 가나안에게 주어진 축복성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C.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 고백적 입장에서 본 해석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가도록 지시하셨고, 또한 그 땅을 그와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이삭, 야곱을 통하여 거듭 확인된 내용들로서 모세를 통하여는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로 부각이 된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 속에 깊이 축적된 거룩한 약속이며 하나님에 의하여 보증된 영원한 유산이다. 성서에서 이 땅은 이스라엘에게 선택의 여지나 조건들이 허락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제시된 땅이다. 다시 말하여,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민족이 창조주로 믿고 있는 하나님에 의하여 절대적으로 약속된 하나님의 땅이다. 그런 점에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신앙고백 속에서 이 가나안 땅은 이미 비교의 대상을 허용치 않는 절대의 땅, 지고의 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가나안 땅을 설명하면서 그 땅의 외형적 가치를 과장시켜 평가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외관적인 조건으로는 다른 지역에 뒤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그런 외형적 조건이나 여건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열조에게 맹세하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설명하고 있는 신명기 11장은 가나안을 애굽과 비교하여 그 땅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신 11:10-12)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가 얻게 될 가나안 땅은 애굽 땅과 같지 않음이 전제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애굽은 나일강의 풍부한 수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진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을 흡수하는 척박한 땅임이 명시되어 있다. 비록 자연환경의 측면에서는 풍부한 급수원을 가지고 있는 애굽이 하늘의 비만을 의존하고 있는 가나안 땅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애굽은 인간의 노력에 의존하여 사는 인간 중심의 지역인 반면, 가나안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거룩한 땅이라는 것이다. 신명기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라고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집중된 땅이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져 각자의 거주지역을 선택하는 내용을 보여 주는 창세기 13장은 가나안 땅의 평가 기준이 외형적 조건이 있지 않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이다.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 요단 들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었다. (창 13:10) 반면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선호도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간 지역의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겼다. 아브라함의 그러한 선택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두고 있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 13:14). 이 두 본문에서는 '눈을 들어 본다'라는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롯의 경우는 자신의 판단 기준에 의한 것이었고, 아브람의 경우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또한, 롯이 선택한 요단 들은 외형적으로 물이 넉넉하여 살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의 지역임을 성경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창 13:13) 그에 비하여, 아브람이 차지한 지역은 비록 생활에 불편한 산간 지역이었지만, 자손 번성의 축복과 더불어 그 땅이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확인되는 땅이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을 세계의 중심지로 보면서 이스라엘 땅을 땅의 일반적 용어인 히브리어 “에레츠”에 정관사를 붙여 “하아레츠”, 곧 절대적 땅(the Land)이라고 이해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어느 다른 나라나 땅과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표현이다. 절대자 하나님이 주신 땅이란 점에서 외형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상대적 땅이 아님을 강력히 시시하는 것이다. 앞부분에서 살펴본 것처럼 히브리어 “에레츠”는 “아다마”와 달리 토양의 비옥성과 관계없이 의미상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닌 땅에 대한 표현이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땅이 곧 “에레츠”이다. 이와 같은 절대적 의미의 땅 개념은 성경 시대뿐 아니라 전 세계에 유랑 민족으로 흩어져 살았던 과거 이천 년 동안에도 그 명맥을 꾸준히 유지하여 왔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어난 시온주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이민 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당시, 이스라엘의 대부분 땅은 버려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늪지대로 바뀌어 있었다. 초기 이민자들은 이러한 불모지의 땅에 뛰어들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개척하였다. 그러한 개척적인 용기는 이스라엘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거룩한 땅임을 받아들이는 신앙적 차원을 떠나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비록 외적으로는 황폐한 땅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신앙적 확신을 갖고 피와 땀과 눈물을 뿌렸을 때, 땅 밑에 감췄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참 모습은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이스라엘을 가리켜 사막에 꽃을 피운 기적의 나라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여 그것은 숨겨져 있었던 가나안의 의를 민족적 신앙과 땅에 대한 확신으로 도전하여 본래의 것을 되찾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헤르첼을 비롯한 초기의 시온주의자들이 유대인의 본토를 아르헨티나나 우간다로 정하려 했던 시도는 땅에 대한 성경 신학적 통찰력이 부족했던 것임이 사실이며, 그러한 제안과 시도를 거절하고 팔레스타인 본토를 고수하였던 유대인들의 정서는 수천 년을 내려왔던 민족적 신앙 전승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표현은 다소 과장되거나 아니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시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성서신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는 “땅의 신학”의 신학을 기초로 놓고 볼 때, 이스라엘은 결코 자신의 땅에 대하여 과장되거나 현실을 무시한 이상향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관점을 달리하는 세 가지 입장에서 본 해석은 구약성경 신학을 비롯하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약속된 땅으로서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소유로 현실화한 거룩한 땅이다. 그 땅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점에서 축복의 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나안 땅의 축복성은 땅의 풍요로움이라는 외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신앙적 관계성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곳은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땅이기 때문에 축복된 땅이었으며(신 11:2), 하나님이 주시는 쉼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신 12:9-10) 축복의 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땅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을 즐기는 것에 초점에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특별한 생활 양식을 요구받는 땅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땅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자신의 신앙과 삶을 고백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현대비평적 입장에서는 구약성경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이스라엘의 현실이나 실제 역사 경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에 그 기원이 있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 역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유목민들의 상징적 언어와 신화적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나안에 대한 그러한 표현은 신앙 고백적 요소를 강조한 내용이긴 하여도 고대 근동 지방의 지리적 여건이나 가나안의 생활 경제적 상황에 근거를 둔 객관적 고백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허구 속에서 하나님을 찾거나 신앙을 고백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 곧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계시하시고 만나주셨던 구원의 하나님을 고백한 것이다.

셋째,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해석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가나안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약속과 성취의 복지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그 땅은 같은 질적 의미가 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삶은 곧 축복으로 주어진 가나안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살펴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해석적 입장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우리 삶의 신앙적 원리를 조명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나안의 축복성을 더욱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하여는 세 가지 방향의 해석이 보여 주듯이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신앙적 수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앙고백 위에 사막이라는 출발점에 서서 자신의 삶을 조명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젖과 꿀이라는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오늘의 삶 속에서 주어진 가나안뿐 아니라 종말에 이루어질 영원한 가나안의 축복을 소망 중에 바라는 것도 중요한 자세일 것이다.


























































































































































헌법재판소

문재인 임명 :  문형배, 이미선 / 2025년 4월 18일 임기 만료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임명 :  정정미, 김형두
최상목 대행 임명 : (여당) 조한창, (야당) 정계선
윤석열 대통령 임명 : 정형식
조희대 대법원장 임명 :  김복형

* 대한민국은 판사 검사가 말아먹었다! <김문수 노동부장관>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의 주인이 되심을 믿사오니
혼돈의 세상에서 진실과 질서의 조화를 보여주시옵소서

바른 자리를 지켜야 할 검사와 판사들이
법질서를 스스로 파괴하며
권력의 유혹과 협박에 무릎을 꿇거나
보장된 약속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참담한 현실을
주여,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십자가 탑의 높이를 자랑하며
많은 교인과 예산을 자랑하던 교회와
최고의 신학 과정을 이수한 목회자들마저
부조리를 숨쉬듯하는 권력 앞에서 침묵이 금이라며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힘없는 민초들만 대통령관저 앞에 모여
이승만 광장에 모여
추위를 몸으로 부딪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탄핵 무효!
윤석열 대통령 만세!
이재명 구속!

사나운 칼바람에 묻혀버리는 외침만이
힘없이 맥없이 허공을 맴돌다 지쳐 떨어집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시는 주님
이대로 무너지는 것이
진정 주님 뜻인가요?

무너지고 깨져서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마시고
속히 무너트려 주옵소서
멍든 가슴이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못하도록
이대로 멈춰주옵소서

진리가 이긴다는 외침도
정의가 실현된다는 아우성도
이겼다는 함성도
이제는 메아리가 되어 사라질 순간입니다.

견딜 수 있는 힘마저 잃어버리고
버틸 수 있는 건강마저 빼앗기고
흔들 수 있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바람에 팔랑일뿐
겨울 바람만 쌩쌩 불어옵니다.

오 주여,
죽이든지
살려주시든지
어서 속히 막을 내려주옵소서.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생명의 말씀이
허무한 땅에서
열매가 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새벽 기도의 유래와 성경적 의미 그리고 휴대 전화를 이용하는 방법


한국교회 새벽기도회 유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어떤 이는 예수께서 새벽기도회를 맨 처음 시작했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주장이다.
예수께서 새벽에 기도하신 이유는 식사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셔서 새벽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던 것이다.
새벽기도회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옥성득 교수의 한국교회 새벽기도회에 강의를 들어본다.


옥성득 교수(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석좌 부교수, 한국기독교)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대개 초대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4시 30분이나 5시에 드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벽 4시 30분이라는 시간은 도성(都城)의 새벽 파루(罷漏)와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큰 도시는 4대 문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세종 때 만든 자격루(自擊漏, 물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알았다.
따라서 같은 시각에 종을 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새벽 4시에는 파루(罷漏)로 33번 종을 쳐서 성문을 열고 통행을 시작했다.
밤 10시에는 인정(人定, 인경)으로 28번 타종하여 우주의 일월성신 28개 별자리를 쉬게 하고 성문을 닫고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파루 때 했던 33번 타종은 불교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수미산(須彌山) 정상에 있는 33개의 하늘을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찰처럼 새벽 3시나 5시가 아니라 도성에서 4시에 파루를 친 것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노동을 해야 했던 농경시대의 산물이었다.
수천 년 간 그때 일어나 일하던 인간의 생체리듬에 맞춘 것이었다.
새벽 기도회를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한 것은 4시에 통행이 시작되던 습관을 따라 한 것이다.
도성의 종각에서 타종하지 않아도 4시에 일어나 예배당에 오면 4시 30분이 되었고 먼 곳에서 오는 자들이 많으면 5시에 모여 기도할 수 있었다.
즉 파루와 연관한 하루 일상의 시작 시간에 일어나 교회로 와서 새벽 기도회로 모였다.

그러나 절에서는 하루 다섯 번 범종을 울리고 예불을 드렸다.
초경(밤 8시), 이경(밤 10시), 삼경(자정, 108번), 사경(새벽 3시, 5번), 오경(새벽 5시, 28번 타종으로 28세계가 깨달음을 얻기를 기원) 등이었다.
사찰의 상가 공동체는 성(城) 안에 있지 않고 산속에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새벽 3시에 예불, 다시 새벽 5시에 운판(나무판)을 치고 목어(목탁)를 울리고, 법고(북)를 울린 다음에 범종(梵鍾)을 28번치고 승려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기를 구했다.

사찰의 그것은 일과에 따라 기도했던 중세 유럽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생체리듬에 반하는 시간에 일어나 묵상하고 잠과 욕망을 끊는 행위로 드린 염불이었다.
즉 사찰의 새벽종은 세속 도시의 하루를 시작하는 파루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종으로 속세를 떠난 수도승의 정좌와 묵상과 예불을 위한 시공간이었다.
그 피안의 공간에서 매일 자정과 새벽 3시에도 일어나 육체성을 거부하고 전문 종교인 집단의 집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그것은 새벽기도와 달랐고 둘 사이의 연관성은 적었다.

새벽기도는 불교 사찰의 범종이나 전문 종교인들이 드린 피안적 예불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세속 도성의 새벽 파루와 함께했던 하루 일상의 시작과 연관된다.
그와 같은 세속성 안에서 거룩성을 회복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했던 신자들이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던 데서 창출되었다.
긴장감이 있는 성속(聖俗)의 경계에서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문지방과 같은 틈새 시간에 새롭게 넣은 기도시간이었다.

한국교회 새벽기도는 무교적 민속신앙이 그 유래인가?

1905년 초 송도(개성)서 열린 남감리회 부인사경회 때 캐롤(A. Carroll)이 경험한 내용을 보자.
"아침 여섯 시가 되자 마치 아침을 알리는 시계처럼 건너에 있던 여자 교인들이 일어나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는 바람에 나도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다음 날은 새로 몇 사람이 더 오더니 새벽 4시에 사람들을 깨워 무려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덕주 교수는 이 글을 해석하면서 과거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조왕신(竈王神)에게 빌던 여자들의 습관이 사경회 기간 중에 새벽 기도회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보았다.
(이덕주,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348~350쪽)
그런데 이 자료를 가지고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부엌에서 조왕신에게 노래로 찬양을 드렸던가?
아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치성(致誠)을 드릴 때 옆 사람들과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누었던가?
아니다. 자료에 나오는 일시적인 새벽 기도회와 무속의 조왕신이나 치성사이에는 시공간, 성격, 의례 모든 면에서 연속성을 찾기 어렵다.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시작

새벽기도의 유래에 대해서는 필자가 발표한 논문이 있다.
'평양 대부흥과 길선주 영성의 도교적 영향'(한국기독교와 역사, 25호, 2006년 9월, 7~35쪽)을 보라.
필자는 이 논문에서 선도(仙道)의 수행자였던 평양의 길선주와 그의 동료들이 청일전쟁 후에 개종하고 평소 수행(修行)을 하던 새벽기도, 통성기도, 철야기도 등을 1905년 전후 사경회(査經會)에 도입했으며, 1909년 전후에 교회 프로그램인 기도회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새벽기도가 길선주와 그 친구들의 도교(道敎) 수행에서 유래했다는 나의 이 주장에 대해 아직 반론을 들은 적이 없다.

필자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길선주가 중심이 되어 선도(仙道)에서 기독교로 토착화한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는 1910년 전후부터 한국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사적인 소원을 빌었던 도교(道敎)의 기도와 비교하면 개신교의 기도는 민족적 위기에 교회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공공성(公共性)을 지니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집단적인 '새벽기도'는 장로교회 사경회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1898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에서 일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으며, 황해도의 다른 사경회(1901년 2월)에서도 교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시작한 것을 처음 소개했다.
이와 같이 사경회(査經會) 때 소규모 일시적으로 모이던 새벽 기도회가 1905년 평양 도(道) 사경회 때 정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으며 1909년에 개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고 정리했다.

1890~1905년 사경회와 새벽기도회

선교사들은 1892년 10명 정도의 한국인 남자 지도자들과 조사를 모아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성경, 교리, 전도법, 설교법, 교회 치리법 등을 가르치는 사경회(査經會)를 조직했다.
1891년 채택한 네비어스의 방법에 따라 본토인 목회자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1892년 11월 28일부터 12월 2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첫 신학반에 참석한 백홍준, 한석진 외 참석자들이 새벽에 일어나 자발적인 기도회로 모였다.
이후 이 조사 사경회(査經會)에서 새벽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임이 계속되었다.
조사 사경회의 새벽 기도회가 황해도에서 일반 사경회 새벽 기도회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말테의 논문 '한국 개신교회 새벽기도의 초기에 대한 연구'(신학과 실천 31호, 2012년 5월, 183~225쪽)에는 1892년 조사 사경회(査經會) 전 백홍준, 마포삼열, 한석진 등의 새벽기도 사례를 소개한 후 여러 사경회에서 행해진 새벽 기도(회) 사례를 잘 정리해 놓았다.
후자는 필자가 소개한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 새벽기도(1898년 2월)와 다른 황해도 사경회 새벽기도(1901년 2월)에 이어 평북 초산(1901), 원산(1903), 평양(1904), 서울 이화학당(1904), 송도(1905) 등의 사경회(査經會)에서 이루어진 새벽기도 사례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어서 필자가 정리한 1909년 길선주와 박치록 장로가 주도한 평양 장대현교회의 새벽 기도회를 마지막으로 언급했다.
이 가운데 1909년 새벽 기도회만 교회에서 광고한 후 일반 신도들이 모인 기도회였고 나머지는 사경회 때 이루어진 일주일 정도의 한시적인 기도회였다.

이말테는 새벽 기도를 남성들이 시작한 것에 주목했다.
여성들의 무속적 새벽 치성에서 새벽 기도가 유래했다는 통설을 비판했다.
또한 1893년 평양 지부를 개척하던 마페트(S. A. Moffett) 선교사와 조사 한석진 가정의 새벽기도를 근거로 마페트가 새벽기도 창시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페트가 새벽기도를 시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더 검토되어야 한다.
만일 그가 새벽기도에 관심이 많았다면 1895년 이후 가정에서 새벽기도를 꾸준히 드리거나 평양 널다리교회 혹은 장대현교회가 준공된 1900년에 새벽 기도회를 창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페트가 남긴 글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또한 개인적으로 잠시 드린 새벽기도를 교회의 '새벽 기도회'의 유래로 보기는 어렵다.

길선주의 첫 장대현교회 새벽 기도회는 1906년 아닌 1909년

많은 책이나 온라인 블로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잘못된 글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새벽기도는 1906년 가을 길선주 장로의 주도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하였다.
이 새벽 기도회는 1907년 평양에서 촉발된 한국 기독교 부흥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길선주 장로는 국가가 어려운 상황(당시 일제강점기)에 놓여 있는 것을 걱정하여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였고 많은 교인들이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300~500명에 이르는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길선주의 새벽 기도회가 1906년 가을에 시작했다.
길선주의 새벽 기도회가 1907년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다는 세 가지 주장은 오류다.
1906년으로 알려진 것은 김인서가 1930년대 '신앙생활'에 길선주 소전을 쓰면서 그렇게 잘못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새벽 기도회는 부흥운동이 끝난 후 열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냉랭해졌을 때 다시 부흥의 불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1909년에 시작한 새로운 부흥회 방법이었다.
또한 아직 한국이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기 이전이었다.

새벽 기도회가 정착한 것은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1907년 대(大) 부흥 이후 1910년대에 새벽 기도회가 한국교회에 널리 시행되고 매일 새벽에 모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런 기록은 없다. 이덕주 교수가 지적한 대로 1914년에 시작한 강화도 마리산 부흥회 때나 여러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 모두 일주일을 사경회(査經會)와 부흥회 때 드린 것이 전부 다이다. 그러므로 아직 개 교회 차원에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또 교회에 홀로 새벽에 나가 30일이나 100일 개인 기도를 드린 예들이나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신석구 목사의 개인 새벽기도 등에서 보듯이 1919년 이전에는 매일 새벽 기도회로 모이는 교회가 없었다.

1920년대 후반에 정착하는 새벽 기도회 자료는 더 수집해서 정리해야 할 주제다.
이때 새벽 기도회가 매일 드리는 일상의 기도로 거의 모든 교회에서 자리 잡은 것은 식민지 치하에서 더욱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하루하루가 종말인 가난한 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새벽 시간의 기독교화로 파루를 대신한 교회의 새벽 종소리

1910년대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는 도시의 새벽 시간을 기독교화하기 시작했다.
1910년 전후 일제 총독부는 문명의 발전과 도로 확장과 신작로 개설이라는 명목으로 서울과 다른 도시들의 성벽(城壁)을 다 허물었다. 사대문(四大門)을 지키는 일본 순경의 호각 소리와 칼 소리가 새벽 소리가 되었다.
성벽이 없는 경성(京城)에 보신각(普信閣)은 무용지물이라 폐쇄(閉鎖)되었다.
서울은 영혼(靈魂)의 종소리를 잃어버렸다.
성(城)이 없는 경성은 보신각 종소리(聲)가 사라진 경성이었고 종소리 없는 도시는 성스러움(聖)이 사라진 식민지의 경성이었다.

이러한 때에 도시와 시민들에게 다시 종소리를 준 것이 교회와 성당이었다.
명동성당에서는 아침 6시, 정오 12시, 저녁 6시에 하루 3번 종을 쳤다. 주일마다 각 도시 교회와 그리고 점차 교회마다 사경회를 다른 기간에 하면서 새벽에 종을 쳤다.
여러 교회에서 퍼져 나간 종소리는 다시 새벽시간을 구별하고 도시의 새벽을 살리는 영성(靈聲)이 되었다.
도시의 혼이 살아나는 소리였다.
성수주일이 일주일을 시작하는 안식일의 성화였다면 새벽기도는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의 성화였다.

한국교회 새벽기도는 성도들이 확보한 시공간

성(城) 안에 사는 시민들은 새벽 4시에 성문이 열리면 일어나던 습관을 따라 성(城)의 종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대개 4시에 거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에 도착하는 4시 30분이나 5시에 새벽 기도회로 모이고 이어 일하러 가면 시간이 적절했다. 따라서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한 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격리된 산속에 있는 사찰에서 새벽 3시나 5시에 승려들끼리 모여 조용하고 엄숙하게 예불을 드리는 것과 달랐다.

세속 도시 속에서 거룩성을 느끼고 영성을 유지하려는 노동자와 주부들의 기도회였다.
그 예배는 곧 다가올 일상의 무거움 앞에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하루의 문지방과 같은 경계선의 시간의 사이(時間), 그래서 긴장이 팽팽한 틈새 시간, 변혁을 품고 있는 전이의 시공간에 새벽을 깨우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구했다.
새벽에 일어나야 생존할 수 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과 밤낮 쉼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잠자는 하늘을 깨우거나 중생을 계몽하려는 사찰의 예불과 달랐으며 여성들이 홀로 칠성신(七星神)에게 비는 민간신앙의 치성과 달랐다. 전자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 없었고 후자에는 남녀가 함께 하는 공동체성이 없었다.
양자 모두 공적(公的) 기도가 없었다.
새벽 기도회가 한국 개신교를 상징하는 의례가 된 것은 피안(彼岸)의 기도나 사적 기복인 기도와 달리 세속 안에서 일반 교인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公的)인 기도회로 기독교화 했기 때문이다.

소리가 세상을 구한다.
거룩한 영혼의 종소리가 사라진 한국교회에 다시 종을 치는 종지기들이 필요하다.
남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새벽마다 종을 치던 사찰 집사님의 매일의 헌신이 있던 교회 어릴 때 들었던 교회의 그 종소리가 그립다.
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새벽 미명에 무릎 꿇고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어머니들의 눈물로 지금 청년과 장년들이 그나마 살고 교회가 살아 있다. 진정한 새벽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한 손에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수직성을 담고 다른 한 손에는 세속 성자로서 민족을 위해 도고하는 수평성을 담아 두 손을 모아 함께 드리는 새벽 기도로 교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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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 토착화된 새벽 기도의 유래와 본질

새벽 기도회는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의례다.
새벽기도가 남자들의 선도(仙道) 수련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새벽기도의 기독교화 과정이 어땠는지도 서술할 생각이다.
유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초기 새벽 기도회에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초월성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 역사성이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1.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유래와 시작

(1) 한국교회 새벽기도가 불교나 무교에서 유래되었는가?

여러 글과 책에 초기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불교 사찰 승려들의 새벽 예불에서 유래했다고 한 다.
민간 무속의 여성들이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샛별(계명성)이나 칠성신에게 빌던 성수(星宿) 신앙, 고목 앞에서 빌던 신목(神木) 신앙 혹은 조왕신 (부엌 음식 신)에게 빌던 데서 왔다고 서술하기도 한다.

새벽 미명은 신령한 존재와 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여인들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하게 빌고 치성을 드렸다.
그 기복적 가족 기도가 그대로 기독교로 넘어와서 새벽마다 교회에서 가족의 건강과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기도하는 ‘무교적 기독교인’이 많다고 비판해 왔다.

 옥성득 교수는초대 한국교회에 관한 기록에서 새벽기도가 그런 연관성을 가졌다고 언급한 자료를 아직 본 적이 없다.
1970년대 이후에 급성장한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을 비판하는 글들이 피상적으로 그 연결성을 유추하고 짐작한 것뿐이다.
그러한 글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나 1차 사료(史料)를 가지고 쓴 것은 아니다.

(2) 도시 파루와 사찰 새벽종이 새벽기도 종의 기원인가?

대개 초대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4시 30분이나 5시에 드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벽 4시 30분이라는 시간은 도성(都城)의 새벽 파루(罷漏)와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큰 도시는 4대 문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세종 때 만든 자격루(自擊漏, 물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알았다. 따라서 같은 시각에 종을 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새벽 4시에는 파루(罷漏)로 33번 종을 쳐서 성문을 열고 통행을 시작했다. 밤 10시에는 인정(人定, 인경)으로 28번 타종하여 우주의 일월성신 28개 별자리를 쉬게 하고 성문을 닫고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파루 때 했던 33번 타종은 불교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수미산(須彌山) 정상에 있는 33개의 하늘을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찰처럼 새벽 3시나 5시가 아니라 도성에서 4시에 파루를 친 것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노동을 해야 했던 농경시대의 산물이었다. 수천 년 간 그때 일어나 일하던 인간의 생체리듬에 맞춘 것이었다. 새벽 기도회를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한 것은 4시에 통행이 시작되던 습관을 따라 한 것이다. 도성의 종각에서 타종하지 않아도 4시에 일어나 예배당에 오면 4시 30분이 되었고 먼 곳에서 오는 자들이 많으면 5시에 모여 기도할 수 있었다. 즉 파루와 연관한 하루 일상의 시작 시간에 일어나 교회로 와서 새벽 기도회로 모였다.

그러나 절에서는 하루 다섯 번 범종을 울리고 예불을 드렸다. 초경(밤 8시), 이경(밤 10시), 삼경(자정, 108번), 사경(새벽 3시, 5번), 오경(새벽 5시, 28번 타종으로 28세계가 깨달음을 얻기를 기원) 등이었다. 사찰의 상가 공동체는 성(城) 안에 있지 않고 산속에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새벽 3시에 예불, 다시 새벽 5시에 운판(나무판)을 치고 목어(목탁)를 울리고, 법고(북)를 울린 다음에 범종(梵鍾)을 28번치고 승려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기를 구했다.

사찰의 그것은 일과에 따라 기도했던 중세 유럽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생체리듬에 반하는 시간에 일어나 묵상하고 잠과 욕망을 끊는 행위로 드린 염불이었다. 즉 사찰의 새벽종은 세속 도시의 하루를 시작하는 파루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종으로 속세를 떠난 수도승의 정좌와 묵상과 예불을 위한 시공간이었다. 그 피안의 공간에서 매일 자정과 새벽 3시에도 일어나 육체성을 거부하고 전문 종교인 집단의 집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그것은 새벽기도와 달랐고 둘 사이의 연관성은 적었다.

정리하면 새벽기도는 불교 사찰의 범종이나 전문 종교인들이 드린 피안적 예불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세속 도성의 새벽 파루와 함께했던 하루 일상의 시작과 연관된다. 그와 같은 세속성 안에서 거룩성을 회복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했던 신자들이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던 데서 창출되었다. 긴장감이 있는 성속(聖俗)의 경계에서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문지방과 같은 틈새 시간에 새롭게 넣은 기도시간이었다.

(3) 한국교회 새벽기도는 무교적 민속신앙이 그 유래인가?

1905년 초 송도(개성)서 열린 남감리회 부인사경회 때 캐롤(A. Carroll)이 경험한 내용을 보자. “아침 여섯 시가 되자 마치 아침을 알리는 시계처럼 건너에 있던 여자 교인들이 일어나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는 바람에 나도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다음 날은 새로 몇 사람이 더 오더니 새벽 4시에 사람들을 깨워 무려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덕주 교수는 이 글을 해석하면서 과거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조왕신(竈王神)에게 빌던 여자들의 습관이 사경회 기간 중에 새벽 기도회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보았다.(이덕주,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348~350쪽) 그런데 이 자료를 가지고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부엌에서 조왕신에게 노래로 찬양을 드렸던가? 아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치성(致誠)을 드릴 때 옆 사람들과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누었던가? 아니다. 자료에 나오는 일시적인 새벽 기도회와 무속의 조왕신이나 치성사이에는 시공간, 성격, 의례 모든 면에서 연속성을 찾기 어렵다.

2.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시작

새벽기도의 유래에 대해서는 필자가 발표한 논문이 있다. 자세한 논의는 ‘평양 대부흥과 길선주 영성의 도교적 영향’(한국기독교와 역사, 25호, 2006년 9월, 7~35쪽)을 보라. 필자는 이 논문에서 선도(仙道)의 수행자였던 평양의 길선주와 그의 동료들이 청일전쟁 후에 개종하고 평소 수행(修行)을 하던 새벽기도, 통성기도, 철야기도 등을 1905년 전후 사경회(査經會)에 도입했으며, 1909년 전후에 교회 프로그램인 기도회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새벽기도가 길선주와 그 친구들의 도교(道敎) 수행에서 유래했다는 나의 이 주장에 대해 아직 반론을 들은 적이 없다.

필자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길선주가 중심이 되어 선도(仙道)에서 기독교로 토착화한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는 1910년 전후부터 한국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사적인 소원을 빌었던 도교(道敎)의 기도와 비교하면 개신교의 기도는 민족적 위기에 교회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공공성(公共性)을 지니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집단적인 ‘새벽기도’는 장로교회 사경회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1898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에서 일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으며, 황해도의 다른 사경회(1901년 2월)에서도 교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시작한 것을 처음 소개했다. 이와 같이 사경회(査經會) 때 소규모 일시적으로 모이던 새벽 기도회가 1905년 평양 도(道) 사경회 때 정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으며 1909년에 개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고 정리했다.

3. 1890~1905년 사경회와 새벽기도회

선교사들은 1892년 10명 정도의 한국인 남자 지도자들과 조사를 모아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성경, 교리, 전도법, 설교법, 교회 치리법 등을 가르치는 사경회(査經會)를 조직했다. 1891년 채택한 네비어스의 방법에 따라 본토인 목회자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1892년 11월 28일부터 12월 2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첫 신학반에 참석한 백홍준, 한석진 외 참석자들이 새벽에 일어나 자발적인 기도회로 모였다. 이후 이 조사 사경회(査經會)에서 새벽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임이 계속되었다. 조사 사경회의 새벽 기도회가 황해도에서 일반 사경회 새벽 기도회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말테의 논문 ‘한국 개신교회 새벽기도의 초기에 대한 연구’(신학과 실천 31호, 2012년 5월, 183~225쪽)에는 1892년 조사 사경회(査經會) 전 백홍준, 마포삼열, 한석진 등의 새벽기도 사례를 소개한 후 여러 사경회에서 행해진 새벽 기도(회) 사례를 잘 정리해 놓았다. 후자는 필자가 소개한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 새벽기도(1898년 2월)와 다른 황해도 사경회 새벽기도(1901년 2월)에 이어 평북 초산(1901), 원산(1903), 평양(1904), 서울 이화학당(1904), 송도(1905) 등의 사경회(査經會)에서 이루어진 새벽기도 사례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어서 필자가 정리한 1909년 길선주와 박치록 장로가 주도한 평양 장대현교회의 새벽 기도회를 마지막으로 언급했다. 이 가운데 1909년 새벽 기도회만 교회에서 광고한 후 일반 신도들이 모인 기도회였고 나머지는 사경회 때 이루어진 일주일 정도의 한시적인 기도회였다.

이말테는 새벽 기도를 남성들이 시작한 것에 주목했다. 여성들의 무속적 새벽 치성에서 새벽 기도가 유래했다는 통설을 비판했다. 또한 1893년 평양 지부를 개척하던 마페트(S. A. Moffett) 선교사와 조사 한석진 가정의 새벽기도를 근거로 마페트가 새벽기도 창시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페트가 새벽기도를 시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더 검토되어야 한다. 만일 그가 새벽기도에 관심이 많았다면 1895년 이후 가정에서 새벽기도를 꾸준히 드리거나 평양 널다리교회 혹은 장대현교회가 준공된 1900년에 새벽 기도회를 창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페트가 남긴 글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또한 개인적으로 잠시 드린 새벽기도를 교회의 ‘새벽 기도회’의 유래로 보기는 어렵다.

(1) 길선주의 첫 장대현교회 새벽 기도회는 1906년 아닌 1909년

많은 책이나 온라인 블로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잘못된 글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새벽기도는 1906년 가을 길선주 장로의 주도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하였다. 이 새벽 기도회는 1907년 평양에서 촉발된 한국 기독교 부흥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길선주 장로는 국가가 어려운 상황(당시 일제강점기)에 놓여 있는 것을 걱정하여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였고 많은 교인들이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300~500명에 이르는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길선주의 새벽 기도회가 1906년 가을에 시작했다. 길선주의 새벽 기도회가 1907년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다는 세 가지 주장은 오류다. 1906년으로 알려진 것은 김인서가 1930년대 ‘신앙생활’에 길선주 소전을 쓰면서 그렇게 잘못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새벽 기도회는 부흥운동이 끝난 후 열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냉랭해졌을 때 다시 부흥의 불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1909년에 시작한 새로운 부흥회 방법이었다. 또한 아직 한국이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기 이전이었다.

(2) 새벽 기도회가 정착한 것은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1907년 대(大) 부흥 이후 1910년대에 새벽 기도회가 한국교회에 널리 시행되고 매일 새벽에 모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런 기록은 없다. 이덕주 교수가 지적한 대로 1914년에 시작한 강화도 마리산 부흥회 때나 여러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 모두 일주일을 사경회(査經會)와 부흥회 때 드린 것이 전부 다이다. 그러므로 아직 개 교회 차원에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또 교회에 홀로 새벽에 나가 30일이나 100일 개인 기도를 드린 예들이나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신석구 목사의 개인 새벽기도 등에서 보듯이 1919년 이전에는 매일 새벽 기도회로 모이는 교회가 없었다.

1920년대 후반에 정착하는 새벽 기도회 자료는 더 수집해서 정리해야 할 주제다. 이때 새벽 기도회가 매일 드리는 일상의 기도로 거의 모든 교회에서 자리 잡은 것은 식민지 치하에서 더욱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하루하루가 종말인 가난한 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3) 새벽 시간의 기독교화로 파루를 대신한 교회의 새벽 종소리

1910년대 사경회 때의 새벽 기도회는 도시의 새벽 시간을 기독교화하기 시작했다. 1910년 전후 일제 총독부는 문명의 발전과 도로 확장과 신작로 개설이라는 명목으로 서울과 다른 도시들의 성벽(城壁)을 다 허물었다. 사대문(四大門)을 지키는 일본 순경의 호각 소리와 칼 소리가 새벽 소리가 되었다. 성벽이 없는 경성(京城)에 보신각(普信閣)은 무용지물이라 폐쇄(閉鎖)되었다. 서울은 영혼(靈魂)의 종소리를 잃어버렸다. 성(城)이 없는 경성은 보신각 종소리(聲)가 사라진 경성이었고 종소리 없는 도시는 성스러움(聖)이 사라진 식민지의 경성이었다.

이러한 때에 도시와 시민들에게 다시 종소리를 준 것이 교회와 성당이었다. 명동성당에서는 아침 6시, 정오 12시, 저녁 6시에 하루 3번 종을 쳤다. 주일마다 각 도시 교회와 그리고 점차 교회마다 사경회를 다른 기간에 하면서 새벽에 종을 쳤다. 여러 교회에서 퍼져 나간 종소리는 다시 새벽시간을 구별하고 도시의 새벽을 살리는 영성(靈聲)이 되었다. 도시의 혼이 살아나는 소리였다. 성수주일이 일주일을 시작하는 안식일의 성화였다면 새벽기도는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의 성화였다.

한국교회 새벽기도는 성도들이 확보한 시공간

성(城) 안에 사는 시민들은 새벽 4시에 성문이 열리면 일어나던 습관을 따라 성(城)의 종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대개 4시에 거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에 도착하는 4시 30분이나 5시에 새벽 기도회로 모이고 이어 일하러 가면 시간이 적절했다. 따라서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한 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격리된 산속에 있는 사찰에서 새벽 3시나 5시에 승려들끼리 모여 조용하고 엄숙하게 예불을 드리는 것과 달랐다.

세속 도시 속에서 거룩성을 느끼고 영성을 유지하려는 노동자와 주부들의 기도회였다. 그 예배는 곧 다가올 일상의 무거움 앞에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하루의 문지방과 같은 경계선의 시간의 사이(時間), 그래서 긴장이 팽팽한 틈새 시간, 변혁을 품고 있는 전이의 시공간에 새벽을 깨우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구했다. 새벽에 일어나야 생존할 수 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과 밤낮 쉼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잠자는 하늘을 깨우거나 중생을 계몽하려는 사찰의 예불과 달랐으며 여성들이 홀로 칠성신(七星神)에게 비는 민간신앙의 치성과 달랐다. 전자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 없었고 후자에는 남녀가 함께 하는 공동체성이 없었다. 양자 모두 공적(公的) 기도가 없었다. 새벽 기도회가 한국 개신교를 상징하는 의례가 된 것은 피안(彼岸)의 기도나 사적 기복인 기도와 달리 세속 안에서 일반 교인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公的)인 기도회로 기독교화 했기 때문이다.

소리가 세상을 구한다. 거룩한 영혼의 종소리가 사라진 한국교회에 다시 종을 치는 종지기들이 필요하다. 남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새벽마다 종을 치던 사찰 집사님의 매일의 헌신이 있던 교회 어릴 때 들었던 교회의 그 종소리가 그립다. 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새벽 미명에 무릎 꿇고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어머니들의 눈물로 지금 청년과 장년들이 그나마 살고 교회가 살아 있다.

진정한 새벽기도가 세상을 구한다.
한 손에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수직성을 담고 다른 한 손에는 세속 성자로서 민족을 위해 도고하는 수평성을 담아 두 손을 모아 함께 드리는 새벽 기도로 교회가 산다.(*) 글쓴 이 / 옥성득(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석좌 부교수, 한국기독교).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집사님이 거제시 둔덕면 어구리 어구교회 종을 울리고 있다. 병 색이 엿보이나 그래도 종지기로 서의 소명의식만큼은 철저하다. 새벽 4시 반 여명을 깨우는 교회 종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부 드럽게 포구를 감싼다. 마을을 돌아 나온 종소리는 이내 남해 바다를 건너 갯내읍을 타고 이순신의 섬 한산도까지 뻗어나간다. 한산도까지는 뱃길로 15분 바닷가를 따라 70여 호가 옹기종기 몰려있는 작은 포구 경남 거제시 둔덕면 어구리의 하루가 이렇게 시작된다.

날마다 새벽을 깨우는 주인공이 바로 39년 종지기 김창근(90년 은퇴) 집사님이다. 1967년 마을에 어구교회가 들어선 지 39년, 교회를 거쳐 간 목사가 10명이 넘지만 종지기만큼은 늘 집사님 몫이었다. 김 집사님은 과연 몇 번의 종을 칠까? 이전에는 매일 정확히 50번 씩 종을 쳤다. 그러나 집사님 귀가 어두워지면서 요즘은 70번, 100번을 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불평하는 주민은 없다. 270여명의 주민 중 교인은 30여명에 불과하지만 교회 종소리는 이미 주민들의 일상이 되었다. 시계도 없던 가난하고 힘겨웠던 주민들에게 김 집사님이 치는 교회의 새벽종소리는 논밭일의 시작과 출어(出漁)를 알리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김 집사님은 어구교회 설립 성도 중 한 사람이다.
1967년 그 때는 종 대신 산소통을 소나무에 매달아 두들겼다.
1999년 새 교회당을 짓고 종을 철거하려했으나 집사님은 자식들이 준 쌈짓돈 70만원을 내놔 오히려 종탑까지 세웠다.
그런데 요즘은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집사님 건강 때문이다.
머지않아 집사님이 천국으로 떠나시면 사람들은 더 이상 종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후계자가 없다. 하지만 김 집사님이 힘을 다해 쳤던 교회당 종소리를 주민들은 ‘천국의 소리’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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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미명에(마가복음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Very early in the morning, while it was still dark, Jesus got up, left the house and went off to a solitary place, where he prayed.

카이 프로이 엔뉘콘 리안 아나스타스 엨셀덴 카이 아펠덴 에이스 에레몬 토폰 카케이 프로세위케토
 και πρωι εννυχον λιαν αναστας εξηλθεν και απηλθεν εις ερημον τοπον κακει προσηυχετο

새벽(4404) 프로이(prōï ) πρωΐ  

1. 일찍이.  2. 아침. 3. 일찍
발음 [ prōï ]

어원  / 4253에서 유래
1. 일찍이, 아침, 일찍, 마16:3, 막1:35, 16:2.
관련 성경  /  아침에(마16:3, 요20:1, 행28:23), 새벽에 (막1:35, 13:35,15:1), 해 돋을 때(막16:2).



미명에(1773) 엔누코스(ĕnnüchŏs)  ἔννυχος, ον  

1. 밤.  2. 중성 복수 목적격은 부사처럼 사용됨 : ἔννυχα.  3. 막 1:35.
발음 [ ĕnnüchŏs ]
어원  / 1722와 3571에서 유래
1.  밤, [주] 중성 복수 목적격은 부사처럼 사용됨: ἔννυχα, 막1:35.
관련 성경  /  새벽 아직도 밝기 전(막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교훈과 치유 사역으로 몸이 퍽 고단하셨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집에 머무시다가 '아직 날이 채 새기도 전에'(눅 4:42)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가셨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이엔뉘카 리안'(πρωι εννυχον λιαν)을 흠정역에서는 '날이 밝기 이전'(agreat while before day)이라 하였고, NIV역에서는 '아직 어두울 때'(while it wasstill dark)로 번역하고 있다.
이때는 아마도 오늘날의 새벽 3-4시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서 나가셨을 뿐 아니라 그 성읍에서도 나가셔서 갈릴리 가버나움 교외의 광야 지대로 추정되는 '한적한 곳'으로 발길을 옮기셨던 것이다.
본서에는 이곳 외에도 두 번 정도 더 같은 상황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예수는 당신의 사역 중 매우 중대한 일을 눈 앞에 두었음을 볼 수있다.
지금 예수는 갈릴리 전역에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으로서 그 어떤 준비보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내밀한 교제를 통한 영적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 한적한 곳에, 이른 시간에 홀로 나아오셨던 것이다.

기도하시더니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케토'(προσηυχετο)미완료 시제로서 예수께서 기도의 끈을 늦추지 않고 지속적이고도 열심히 기도하셨음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실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맡은 인류 구속 사역, 그중에서도 지금 당장 완수해야만 하는 갈릴리 사역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요구하셨을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이처럼 자신의 기도의 모본(模本)을 통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그는 세례 받으실 때(눅 3:21), 열 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눅 6:12), 오병 이어의 이적을 베푸실 때와그 일 후에(6:41,46),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시고자 할 때에(눅 9:18), 변화산에 계실 때에(눅 9: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도 오라"고 하신 사랑의 초청 직전에(마 11:25-30), 베드로가 자기를 세 번 부인하기 전 그를 위하여서(눅22:32),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시던 날 밤에(요 17장), 겟세마네 동산에서(14:32, 35,36, 39), 십자가 위에서(눅 23:34), 그리고 그의 부활 후(눅 24:30)에 기도하셨다.
위의 기도의 경우들은 예수의 기도 생활이 얼마나 진지했으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실로 기도는 그분이 지니신 능력의 원천이요 또한 영적 양식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새벽 기도

- 온라인 새벽 기도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은 사람마다 그들의 손에 들고 있는 휴대 전화(셀룰라 폰.  cellular phone, cell phone)가 대표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어느 곳에서든지 휴대 전화기를 켜면 모두가 같은 시간대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발전된 기능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루의 시작을 먼저 말씀과 기도로 출발하는 것이 그 첫번째 의미라고 하겠다.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새벽 기도회의 역사적 의미는 위에서 두 개의 논술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오늘의 시대에 새벽 기도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검토하여 방향을 찾아야 하겠다.

파트리스교회의 구성원은 주로 노약자들이다.
노약자들이 새벽에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각자 소지하고 있는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기에는 휴대 전화가 없었기에 휴대 전화를 대신한 인터넷 방송으로(페이스 북을 이용) 참여하도록 권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카톡 및 유투브) 동시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며 혹시 그 시간대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경우 녹회된 동영상을 제공하여 반드시 참여하도록 합니다.

녹화 영상을 두 종류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인도자의 얼굴과 내용을 중심으로 전달
둘째는 내용을 화면화 하여 핵심을 알리도록 전달(특히 해외 선교사 및 타 지역의 성도들을 위한 것)




사사기 19: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But the men would not listen to him. So the man took his concubine and sent her outside to them, and they raped her and abused her throughout the night, and at dawn they let her go.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 새벽에

아니 오하베하 오하바이 에하브 우메솨하라이 임차우네니
אֲנִי [כ= אֹהֲבֶיהָ] [ק= אֹהֲבַי] אֵהָב וּמְשַׁחֲרַי יִמְצָאֻנְנִי׃

* 간절히(7836)  솨하르(shâchar)  שָׁחַר

1. 날이 새다.  2. 찾다. 3. 피엘형 שִׁחַר
발음 [ shâchar ]
관련 성경 /  구하다(잠11:27, 사26:9, 호5:15), 찾다(욥7:21, 시78:34, 잠7:15), 갈망하다(시63:1), 근실히(잠13:24).
구약 성경 / 13회 사용


󰃨 나를 사랑하는...나를 간절히 찾는 - 성경과 고대 문헌에 있어서 이러한 긍정적인 보응의 용례는 자주 나타난다(요 14:21:솔로몬 지혜서 7:28;집회서 4:14). 한편 본절의 상반절은 곧 지혜에 대한 내적 자세를, 하반절은(1:28 주석 비교) 그 지혜를 얻기 위한 계속적인 실천적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Toy).



잠언 1: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 이른 아침에

전도서 11:10 / 청년의 때 <새벽에>

* 부지런히(7836)


󰃨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 여기서 '찾으리라'(*, 솨하르)는 '새벽녘'이란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일찍 일어나 열심을 내어 기도하며 찾는다는 의미이다(8:17, Delitzsch, Zockler). 따라서 본절 이하는 그러한 열성적인 부르짖음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할 것임을 시사하는 바(요 7:34),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은혜의 시기, 곧 회개와 용서의 때에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호 10:12; 눅13:24-28; 고후 6:1,2).


잠언 27:14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1. 부지런히

* 이른(7925) 아침에(1242)

메바레크 레에후 베콜 가돌 바보켈 하쉬켐 케랄라 테하쉐브 로
מְבָרֵךְ רֵעֵהוּ בְּקֹול גָּדֹול בַּבֹּקֶר הַשְׁכֵּים קְלָלָה תֵּחָשֶׁב לֹו׃

본절은 표면적으로 이른 아침에 큰 목소리로 축복하거나 혹은 인사함으로써 그 듣는 자로 하여금 오히려 성가시게 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멍청한 사람에 대한 묘사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침에 큰소리로 하는 축복의 말 혹은 인사를 겉으로는 요란하지만 진심은 결여된 가식적인 아첨으로 해석하고 있다(W.J.Deane, Clark, Cook).
참지혜자는 가식적인 아첨의 축복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 57:8.  시편 108:2)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Awake, my soul! Awake, harp and lyre! I will awaken the dawn.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Awake, harp and lyre! I will awaken the dawn








성경에서 새벽에라는 구절이 사용된 말씀들

출애굽기 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출애굽기 14: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여호수아 6:15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번 도니 성을 일곱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사무엘상 11:11
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사무엘상 29: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사무엘하 17:22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쌔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욥기 24:14
사람을 죽이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난한 자나 빈궁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적 같이 되며.

* 시편 46: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다니엘 6: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호세아 10:15
너희의 큰 악을 인하여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멸절하리로다.

* 요나 4:7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매태복음 27: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마가복음 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누가복음 24:1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누가복음 24: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시도행전 5: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한자의 분석 자료 1. 영광, 2. 선, 3. 악


영광(榮光) :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

- 영화 영(榮), 빛 광(光)

 불 화(火), 덮을 멱(冖), 나무 목(木) - 열 십(十) + 사람 인(人)

* 사람이 어렵고 힘든 십자가를 감당한 후에 자기가 한 것을 감추고 덮을 때(자랑하지 않을 때)
  불이 타오른다.

빛 광(光)

  작을 소(⺌)  + 우뚝할 올(兀)
  光자는 ‘빛’이나 ‘빛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光자는 儿(어진사람 인)자와 火(불 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光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빛이 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光자를 보면 儿자 위로 火(불 화)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 주위가 매우 밝게 빛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光자는 ‘빛’이나 ‘비추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 honor, glory

고린도전서 15: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요한복음 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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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 : 착하다, 어질다

  입 구(口)  +  양 양(羊) + 초두머리 초(䒑)

善자는 ‘착하다’나 ‘사이좋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善자를 보면 양과 눈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답은 ‘양의 눈망울과 같은’이다.
뜻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식으로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해석될 수 있겠다.
보통 착하고 선한 사람을 일컬어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졌다고 말하곤 한다.
善자는 그러한 뜻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目자 대신 言(말씀 언)자가 쓰이게 되었는데, 이것은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였다.
이후 善자는 변화를 거듭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1.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道德的) 기준(基準)에 맞음. 또는 그런 것.
2. 도덕적(道德的) 생활(生活)의 최고(最高) 이상(理想).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를 뜻함.
옛날 재판에는 양 비슷한 신성한 짐승을 썼음.
신에게 맹세(盟誓)하고 한 재판이란데서 나중에 훌륭한 말 → 훌륭함 → 좋다의 뜻이 되었음.

로마서 9: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선이란 양처럼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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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 :

 악할 악(惡), 미워할 오(惡)

惡자는 ‘미워하다’나 ‘악하다’, ‘나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惡자는 ‘악하다’라고 할 때는 ‘악’이라고 하지만 ‘미워하다’라고 말할 때는 ‘오’라고 발음을 한다.
惡자는 亞(버금 아)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亞자는 사면이 요새처럼 지어진 집을 그린 것이다.
惡자는 이렇게 사방이 꽉 막힌 집을 그린 亞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으로 ‘갇혀있는 마음’이라는 의미에서 ‘악하다’를 뜻하게 되었다.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㣺) ☞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亞(아→악)이 합(合)하여 이루어짐.
亞(아→악)은 고대(古代) 중국(中國)의 집의 토대나 무덤을 위에서 본 모양, 나중에 곱사등이의 모양으로 잘 못보아 보기 흉하다→나쁘다의 뜻에 씀.


12월 3일 / 계엄령 선포 - 12월 14일 탄핵 찬성 12명 의원 명단 / 5. 18 유공자 명단


윤석열 대통령 계엄령 선포 시국 선언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하였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 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건국 이후에 전혀 유례가 없던 상황입니다.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안부 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 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국가 예산 처리도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에서 재해대책 예비비 1조 원, 아이돌봄 지원 수당 384억, 청년 일자리,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등 4조1천억 원을 삭감하였습니다.

심지어 군 초급간부 봉급과 수당 인상, 당직 근무비 인상 등 군 간부 처우 개선비조차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예산 폭거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러한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들의 한숨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저는 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만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 시키겠습니다.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들께 다소의 불편이 있겠습니다마는, 이러한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자유대한민국의 영속성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기여를 다한다는 대외 정책 기조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저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명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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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6시간 만에 비상계엄 해제…"국회 요구 수용"

오전 4시간30분 국무회의서 의결, 軍도 철수…야 "尹 즉각 하야"


▪︎긴급▪︎

윤석열 대통령이
성동격서를 통해 손에 넣고자 했던 증거는
바로 다음에 열거된 가짜 국회의원들의
부정 당선을 입증할 서버 조작의 흔적이었다.

자기 이름 빠졌다고 좋아하지 마라.
몇 명 자료 보완 중이다.

1. 추미애(하남갑),
2. 이언주(용인병),
3. 전현희(중구성동),
4. 고민정(광진을),
5. 남인순(송파병),
6. 이재명(계양을),
7. 박수현(공주),
8. 김병기(동작갑),
9. 진성준(강서을),
10. 황희(양천갑),
11. 부승찬(용인병),
12. 장철민(대전동구),
13. 곽성언(종로),
14. 문진석(천안갑),
15. 이상식(용인갑),
16. 이재정(안양),
17. 김주혁(수원정),
18. 장경태(동대문을),
19. 안규백(동대문갑),
20. 이인영(구로갑),
21. 이정현(광진갑),
22. 이해식(강동을),
23. 진선미(강동갑),
24. 어기구(당진),
25. 황명선(논산),
26. 정일영(인천연수을),
27. 전재수(부산),
28. 박용갑(대전중구),
29. 이기헌(고양병),
30. 김영환(고양정),
31. 허영(춘천),
32. 송기헌(원주을),
33. 이현희(충북 청주흥덕),
34. 임호선(증평),
35. 위성곤(서귀포시),
36. 윤종근(안성시),
37. 박찬대(연수 구갑),
38. 이훈기(인천남동구을),
39. 김태선(울산동구),
40. 박성주(중구성동),
41. 민홍철(김해갑),
42. 김민석(영등포),
43. 김동아(서대문갑),
44. 오기형(도봉을),
45. 박정현(대전대덕),
46. 허성무(창원성산),

☆☆☆☆☆
지금부터는 여론전쟁입니다!

애국우파 여러분!
정의로운 목소리를 여러분야로 크게 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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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엄 당시 국회 상황 이상한게 한 두가지가 아님

2. 이미 8월에 김용현 국방부장관 인사청문회때부터 민주 김민석 의원이 뜬금없이 계엄하려는거 아니냐면서 냄새 맡음

3. 이때부터 의도적으로 계엄 선포하고 국회 봉쇄할꺼다라는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

4. 계엄 해제 요구안 190명이 찬성했는데 국힘 의원 18명이었음

5. 야권에서 1시간반 만에 무려 172명이 국회로 모임 (야당 총 의원수 192, 안귀령 등 풀메이크업 하고 나타남)

6. 계엄 선포 직후 국회로 수백명의 민노총들 모여서 길막고 시위하는데 이미 계엄 관련한 피켓들 전부 다 만들어서 나옴 (급하게 나오기도 바쁜데 이걸 언제 만들어서?)

7. 그렇게 기다렸다는듯이 개같이 국회로 모였는데 실제로 군인을 이용해 국회 봉쇄하려는 의도 없었음

8. 계엄 선포 후 국회를 막았던건 경찰들인데 그마저도 신원 확인하고 들여보내줌, 출입 안막았음

9. 군인들은 자정 다 돼서 뒤늦게 도착, 그러나 시민들에게 일체의 무력 사용 안함

10. 오히려 지령받은 민주쪽 사람들이 총을 뺏으려 하고 들이대는 등 무력 충돌 그림을 만들기 위해 존나게 애씀

11. 국회로 투입된 군인들은 도착할때까지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작전상황도 제대로 인지 안돼서 우왕좌왕함

12. 계엄을 일부러 사람들 다 tv보고 유튜브 보고 안자고 있는 10시반에 대놓고 함, 진짜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임

13. 계엄 선포 과정에서 위법사항 없음

14. 국무회의 거쳤고, 군인들 무력 사용 없었고, 해제 요구안 가결하게끔 의원들 막지 않았고, 해제 요구안 가결 후 국무회의 의결 거쳐서 바로 해제함

15. 선포 이유에 대해서는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정마비 상태라는 것에 대해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현 민주당 행태 (2년반 동안 국무위원, 검사 등 22명 탄핵, 주요 예산 전액 삭감 등)는 국정마비 상태로 볼 여지 있음

16. 즉, 탄핵이라는 최악의 경우는 막을 수 있도록 헌법 다 지켜가면서 계엄 선포, 해제했고 국회에서 아무런 충돌도 안 일으키고 이목만 집중시킴

17. 국회 투입 군인들 실탄 없었음

18. 그럼 이지랄 왜 했냐?

19. 국회 투입 군인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과천, 수원 선관위와 선관위 연수원을 털음

20. 여기로 투입된 군인들은 실제 무장 상태

21. 선관위 안에서 박스 안에 담긴 여러 물건들을 압수해서 가지고 나옴, 당직자들 핸드폰도 압수하는 등 국회에서 보여준 것에 비해 훨씬 강경하게 선관위를 급습함

22. 선관위는 정부 기관이지만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라 평시에 압수수색 영장도 안나오고 수사도 자기들 마음대로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등 털기가 불가능함

23. 계엄 상태였기 때문에 군인들 투입해서 안에 있는 '무언가'를 털어서 가져나올 수 있었음

24. 인원 투입 숫자만 봐도 어디가 주력이었는지 알 수 있고, 국회에서는 하는 척만 한거에 비해 선관위는 직접 기물들 털어오고 휴대폰도 압수하는 등 실제 물리력을 행사함

25. 우리나라는 3만5천 미군 주둔해있는 나라랑 미국에 상의없이 계엄 선포 불가능

26. 미국 몰랐다하는건 다 언플

27. 트럼프는 본인 선거도 그렇고 항상 부정선거에 대해 끈임없이 공론화 해옴

28. 몇달 전 트럼프 최측근 등이 한국에 들어와 부정선거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돌아감

29. 트럼프 당선 후와 계엄 선포하고 선관위 털어온 시기가 맞물림

30. 트럼프는 방위비 인상 등 한국과 협상하고 싶은 카드가 많은데 민주당하고는 대화가 불가능, 그나마 윤하고는 말이 통할건데 어차피 거대야당이라 대통령이 뭘 해줄 수 없음

31.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트럼프는 본인 임기동안 한국 관련해서도 성과를 내고싶기 때문에 거대 야당에 식물이 돼어있는 대통령을 도와줄 명분이 생김

32. 계엄 선포 보름 전 은행권에 시민단체에 대한 무더기 신원조회 요청, 사유는 국보법 위반 조사

33. 선거시에는 항상 민주쪽 시민단체들 동원되어 개표현장에 배치되었음

34. 어차피 이대로 가도 남은 2년반 병신처럼 아무것도 못할꺼고, 탄핵 요건은 피하면서 계엄 선포로 이목 집중시키고 그 와중 선관위 털어서 부정선거 증거 내놓으면, 야권 190석 무력화 시키고 정국 가져올 수 있을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

35. 계엄 선포 당일 키르기스스탄 대통령하고 회담 있었음

36. 키르기스스탄은 몇년 전 한국산 개표기 사용해서 부정선거하다 들통나서 대통령 퇴진하고 새로 들어온 정부가 현 정부임, 여기에서 어떤 조언을 받았을 가능성

37. 국회에서 창문 깨고 시민들 위협했다면서 개거품 무는 민주새끼들 선관위 급습건에 대해 얘기 안함

38. 휴대폰도 빼앗고 실제 기물도 털어나오고 훨씬 더 많은 인원이 투입되는 등 누가봐도 이쪽이 더 심했는데 이 악물고 모른척함

39. 이거 공론화되면 진짜 부정선거 뭔가 있나보다 왜 선관위를 털었을까 여론이 형성되기 때문에 지들 다 좆됨

40. 일부 뉴스에서 선관위 급습 내용 흘러나오자 개헌해서 장기집권 하기 위해 선관위 털었다는 개좆말도 안되는 헛소리 시전

41. 개헌하고 선관위하고 뭔 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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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윤석열대통령 탄핵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여당의 국회의원 12명

1. 김상욱(울산 남구갑)
2. 김예비(비례)
3. 조경태(부산 사하구을)
4. 안철수(서울 분당갑)
5. 김재섭(서올 도봉갑)
6. 한지아(비례)
7. 박정훈(서울 송파갑).
8. 배현진(서울 송파을)
9. 김소희(비례)
10.고동진(서울 강남병)
11. 진종오(비례)
12. 유용원(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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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보상자' 4296명 명단 최초 확인

   518   518     4926

▲ 광주 서구 5·18 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 5·18 관련 명예회복 및 보상자 4,92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정상윤 기자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우파 진영은 부정수급 등을 이유로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은 명단 공개가 불법이라고 맞서고 있다.

광주 서구 5·18 기념공원 지하에 조성된 '추모승화공간' 벽면에는 5·18 관련자 이름이 새겨진 오석(烏石) 명패가 가나다 순으로 정렬돼 있다. 총 4296명이다. 2005년까지 5·18 민주화운동으로 보상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이다. 이후 추가된 622명의 명단은 여기에 없다. 보상자가 모두 다 유공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공자 신청을 하기 위해선 우선 '보상자'로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 보상자가 5·18 유공자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5.18 유공자 명단'을 유추하고, 확산되는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광주 5·18기념공원 내 조성된 '5·18 보상자' 4296명의 명단을 그대로 옮긴다. / 편집자

5·18 보상자 4296명... 대부분 5.18 유공자

5·18 기념공원은 추모승화공간의 명단에 대해 "5·18 피해자로 인정되어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은 자들의 명단"이라고 밝혔다. 5·18 보상자 4296명 전원이 5·18 유공자인 것은 아니다.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원·보상을 받은 사람과 유족·가족을 유공자 적용 대상으로 규정한다. 5·18 보상을 받지 않고 유공자 신청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이들 보상자 중 제67조(이 법 적용 대상으로부터의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경우엔 유공자가 될 수 없다. 이 조항은 주로 국가보안법 위반·성폭력 등 위법 행위를 명시한 배제 조항이다. 따라서 5·18 보상자가 국가보훈처에 5·18 유공자로 신청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보상자 전원이 심사에 통과해 유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광주시 산하 '보상심의위원회'가 심사

5·18 유공자 심사는 광주시 산하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광주시장)가 맡는다. 5·18 유공자는 관련법에 따른 보상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추모승화공간에 새겨진 4296개의 보상자 명단 중 5·18 유공자가 대거 포함될 수밖에 없다.

보훈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시민 102명이 보훈처를 상대로 낸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소송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으니 공개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보훈처는 5·18 유공자 수는 공개했다. 지난해 말 기준 4415명이다. 그런데  5·18기념공원 내 조성된 '5·18 보상자'의 수는 4296명이다. 5·18 유공자 명단이 왜 보상자 명단보다 더 많은 걸까.

5·18 직접 관련자만 '추모승화공간' 명단에 기재

추모승화공간 벽면에 붙여져 있는 전체 명패는 4360개다. 1999년 5·18 기념공원 조성 당시 3870개에서 2005년 490개의 명패가 추가됐다. 이중 64곳의 자리가 비어 있다. 

빈 명패 64곳은 'ㅎ' 이후 잔여 공간에 따른 빈 칸은 20곳(1999년 기준 2곳, 2005년 기준 18곳)과 성(姓)씨 구분을 위해('ㄱ'에서 'ㄴ'으로 넘어가는 공간 사이) 1칸 씩 띄어 놓은 22곳, 그리고 2000년 검찰 조사에서 서류 조작 등으로 5·18 보상금을 허위로 수령했다 적발된 자 22명의 자리다.

나머지 4296명 전원은 5·18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백종운 광주시청 5·18 선양과 계장은 "5·18 당사자가 사망했을 경우 보상은 관련법에 따라 유족이 수령하지만, 지하 추모공간 명단엔 5·18 직접 관련자만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5·18 보상자가 유공자보다 503명 더 많아

본지 취재 결과, 2005년까지 4296명이던 추모공간 보상자 명단은 2019년 2월 현재 4918명으로 늘었다. 14년 동안 622명 증가한 것이다. 백종운 계장은 "2019년 2월 기준 5·18 보상을 받은 분들은 4918명"이라며 "(추모공간 숫자는) 2005년 이후 갱신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5·18 기념재단 홈페이지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자 현황'(2018년 12월 기준)에는 보상 총계가 5807건으로 돼 있다. 백 계장은 "5807건은 신청 대비 보상 건수"라며 "누적관리라서 중복자가 있다"며 "중복(수령)을 제외한 보상 인원수는 4918명"이라고 했다.  5·18 보상자 수(4918명)가 5·18 유공자 수(4415명)보다 503명 더 많은 셈이다.

총 보상액 2510억원 …1인당 5100만원 꼴

광주시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5·18 관련자에게 지급된 보상액은 총 2510억여 원이다. 보상액 수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나, 전체 보상액 2510억원과 보상자 수(4918명)를 나눠보면 보상자 1인당 평균 5100만원을 수령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예산은 전액 국비로 지급된다. 보상이 결정되면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가 기준에 따라 보상금을 일시 지급한다. 보상자가 사망했을 경우 유족이 보상금을 받는다.

초중고대학 수업료 면제, 보조금, 취업에 가점

5·18 유공자로 선정되면 우선 대통령 명의 5·18 민주유공자증서가 수여된다. 그밖에 교육·취업·의료 지원이 동반된다. 교육은 중·고·대 수업료 면제 및 학습보조비 지원 등, 취업의 경우 가점 취업·보훈특별고용·일반직공무원 특채 등이다. 의료 방면에선 보훈병원 진료시 본인부담금 감면 등의 지원이 이뤄졌다.

다만 2015년 12월 관련법 개정으로 2016년 6월 23일 이후 등록한 5·18 유공자는 유가족 및 가족이 받는 지원 범위와 대상이 축소됐다.

교육지원은 당초 본인·배우자·자녀에서 '만 30세 이전 취학' 자녀라는 조건 등이 추가됐다. 취업 지원 대상도 기존 유공자 자녀 3명에서 1명으로, 지원 횟수도 무제한에서 3회로 축소했다. 의료의 경우도 지원 대상이 대폭 축소됐다. 기타 지원으로는 국립묘지 안장·국공립공원 할인·수송시설 이용 지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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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서구 5·18 기념공원 지하 추모승화공간 벽면에 새겨진 '문재인'씨. 그는 5·18 피해자로 인정돼 벽면에 새겨졌으며, 문재인 대통령과 단순 동명이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상윤 기자

'문재인' '김경수'는 동명이인... '추미애'는 최미애

광주 5·18 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 벽면에 있는  5·18 관련자 4,296명의 명패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문재인' 씨다. 현직 대통령과 같은 이름이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5·18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단순 동명이인인지에 관한 의문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가중되고 있다.

본지가 2월 19~20일 5·18 기념공원과 5·18 기념재단 등을 취재한 결과, 공원 지하 추모승화공간에 새겨진 '문재인'은 대통령과 다른 동명이인이었다. 차종수 5·18 기념재단 고백과 증언센터 조사관은 "(추모공간에 기재된 문재인 씨는) 2002년도에 광주 광산구에 사셨던 분으로,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02년 주로 부산에 있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사단법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이사장 및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시선거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활동했다.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차 조사관은 "(문 대통령과 이름이 같지 않냐는) 문의 전화가 많이 와서 5·18 유족회에서 조사한 것으로 안다"며 "지금 (동명이인) 문씨는 5·18 단체에서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차 조사관은 "어쨌든 대통령은 아니니 그것은 정확히 해 달라"고 덧붙였다.

차 조사관은 "드루킹 사건으로 구속된 김경수 지사와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5·18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추모승화공간 4,296명 중 '김경수'는 있다. 하지만 '추미애'는 없다. '김경수' 는 김경수 지사와 동명이인이다. '추미애'의 경우엔 추모공간 명단에 아예 없다. 다만 '최미애'라는 비슷한 이름이 있다. 항간의 소문과 달리 '박원순' 역시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이해찬,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유공자 포함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본인이 밝힌 것처럼 5.18과 직접 관계가 없지만, 명단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표가 명단에 포함된 것은 5.18 유공자 대상 요건 중 하나인 <그밖의 5.18 민주화운동으로 희생한 사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1980년 9월 17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2003년 재심에서 무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은 1980년 신군부세력이 김대중 등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 음모를 계획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일으킨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한 일이다. 이 대표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으로 복학생 회의를 열어 '제2 광주사태' 유발을 선동한 혐의를 받았다.

이 대표의 사례를 제외한 5.18 유공자 대상 요건은 ▲5.18민주화운동 시 사망한 사람 또는 행방불명된 사람 ▲5.18민주화운동으로 부상당한 사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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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기념공원에 설치된 '5·18 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 안내판. ⓒ정상윤 기자

추모승화공간' 5.18 보상자 명단

다음은 광주 5·18기념공원 내 '추모승화공간' 벽면에 새겨진 보상자 명단이다. 가나다 순이며, 동명이인도 있다. ○○○은 보상금 부정수급으로 제외된 사람이다. ○은 성(姓)씨 구분을 위한 빈 칸이다.

강경원 강공수 강광식 강구영 강귀동 강기배 강기선 강기원 강길조 강대경 강대삼 강대웅 강대은 강대일 강대일 강대정 강대종 강대형 강동일 강두구 강두오 강명렬 강명춘 강병규 강병현 강복남 강복원 강분희 강상길 강상원 

강상원 강석봉 강석신 강석웅 강성구 ○○○ 강성기 강성기 강성남 강성범 강성범 강성봉 강성욱 강성원 강성원 강성필 강소만 강수복 강승우 ○○○ 강신석 강신식 강신우 강신춘 강양채 강영근 강영복 강영종 강용구 강용운

강웅기 강웅원 강윤원 강익현 강인곤 강인기 강인성 강인철 강임아 강점구 강정규 강정배 강정택 강종구 강종기 강종현 강종호 강창선 강창원 강창현 강필원 강해규 강해중 강헌구 강현기 강현영 강현웅 강형근 강효승 경창수

고경석 고경애 고광덕 고광문 고광석 고광석 고광연 고귀석 고규석 고석남 고성수 고숙희 고영기 고영기 고영기 고영문 고영식 고영욱 고영일 고영자 고영재 고영호 고용석 고윤춘 고은태 고인석 고재건 고재경 고재달 고재덕

고재묵 고재성 고재용 고재욱 고재준 고재호 고정운 고종렬 고효숙 고희석 공명학 공성수 공영석 공점기 공태길 공호택 곽길수 곽남동 곽동관 곽봉극 곽영원 곽영주 곽재구 곽정연 곽한왕 곽희성 구교성 구교철 구만석 구명수

구민희 구상희 구석기 구성주 구성희 구임규 구재선 구창열 국민호 국석우 국순병 국승보 권광빈 권광식 권근립 권병주 권상헌 권영국 권영길 권영옥 권영휘 권오국 권용호 권용호권자남 권종환 권창순 권향년 권혁중 권혁충

권호영 기간호 기남용 기노을 기성공 기세규 기일섭 기종도 기종현 기철 길시환 김갑제 김갑주 김갑진 김갑현 김강곤 김강식 김강호 김건형 김결 김경 김경국 김경래 김경만 김경수 김경순 김경식 김경우 김경임 김경중

김경채 김경천 김경철 김경환 김경환 김경환 김경환김경환 김경희 김계수 김공록 김공휴 김관 김관제 김관철 김관호 김관호 김광국 김광남 김광복 김광석 김광수 김광수 김광영 김광임 김광중 김광중 김광중 김광진 김광헌

김광현 김광호 김광호 김광호 김광효 김국진 김군산 김군자 김권수 김귀식 김귀중 김귀현 김귀환 김규성 김규진 김규채 김균식 김근기 김근호 김금단 김금동 김금삼 김금열 김기곤 김기광 김기묘 김기삼 김기석 김기선 김기수

김기영 김기운 김기종 김기현 김기호 김기훈 김길도 김길석 김길식 김길영 김길자 김길전 김길호 김낙길 김남국 김남규 김남석 김남수 김남수 김남용 김남일 김남현 김남현 김남호 김내향 김녕호 김녹영 김농광 김달건 김대동

김대운 김대일 김대중 김대헌 김대현 김대현 김대호 김대홍 김대홍 김덕곤 김덕규 김덕래 김덕수 김덕열 김덕조 김덕태 김덕호 김동구 김동기 김동기 김동룡 김동문 김동선 김동수 김동수 김동식 김동열 김동원 김동진 김동진

김동채 김동헌 김동혁 김동현 김동협 김동환 김동희 김두식 김두전 김두하 김득용 김득후 김라광 김란배 김랑호 김령연 김막동 김만두 김만석 김만석 김만선 김맹섭 김맹수 김면중 김명동 김명선 김명섭 김명수 김명수 김명숙

김명순 김명식 김명진 김명철 김명호 김명호 김명호 김명환 김명환 김명희 김무영 김문규 김문기 김문석 김문석 김문수 김미정 김민석 김민영 김방기 김방심 김배호 김백열 김백현 김범동 김범태 김병국 김병군 김병규 김병균

김병남 김병대 김병률 김병민 김병석 김병석 김병수 김병식 김병연 김병열 김병열 김병용 김병일 김병조 김병주 김병주 김병준 김병채 김병태 김병학 김병학 김병현 김병호 김병화 김보선 김보영 김복 김복균 김복동 김복만

김복수 김복진 김복희 김봉래 김봉수 ○○○ 김봉채 김봉태 김부열 김사연 김삼규 김삼남김삼남 김삼중 김상곤 김상구 김상기 김상남 김상두 김상묵 김상빈 김상섭 김상수 김상옥 김상용 김상우 김상우 김상원 김상윤 김상일

김상진 김상진 김상집 김상태 김상태 김상한 김상현 김상호 김상호 김상호 김상환 김상환 김서기 김석봉 김선규 김선남 김선모 김선문 김선문 김선옥 김선출 김선택 김선호 김성곤 김성곤 김성군 김성귀 김성근 김성기 김성기

김성남 김성남 김성대 김성두 김성만 김성배 김성배 김성섭 김성수 김성수 김성애 김성열 김성용 김성우 김성준 김성중 김성진 김성호 김성호 김성훈 김세현 김수겸 김수기 김수남 김수복 김수복 김수용 김수중 김수철 김수현

김순곤 김순곤 김순만 김순모 김순봉 김순학 김순호 김순희 김승경 김승렬 김승렬 김승배 김승복 김승원 김승철 김승현 김승후 김승희 김시도 김시중 김신덕 김신호 김실 김안부 김앵도 김양귀 김양근 김양문 김양빈 김양섭

김양섭 김양수 김여수 김연권 김연배 김연성 김연수 김연순 김연임 김연주 김연태 김연호 김열 김영 김영 ○○○ 김영곤 김영관 김영국 김영국 김영규 김영근 김영기 김영기 김영길 김영길 김영남 김영남 김영남 김영대

김영도 김영두 김영래 김영렬 ○○○ 김영만 김영모 김영묵 김영민 김영민 김영범 김영복 김영봉 김영봉 김영산 김영선 김영수 김영수 김영수 김영수 김영식 김영식 김영애 김영엽 김영옥 김영완 김영우 김영윤 김영이 김영임

김영재 김영제 김영주 김영진 김영찬 김영찬 김영창 김영천 김영철 김영철 김영철 김영철 김영철 김영춘 김영춘 김영태 김영필 김영호 김영호 김영호 김영호 김영화 김영환 김영훈 김영훈 김영휴 김오성 김오순 김오식 김오영

김오진 김옥근 김옥남 김옥두 김옥삼 김옥섬 김옥수 김옥순 김옥준 김옥채 김옥환 김완봉 김완섭 김완수 김왕기 김왕호 김요한 김용관 김용관 김용균 김용근 김용기 김용남 김용대 김용덕 김용만 김용만 김용명 김용범 김용빈

김용삼 김용석 김용석 김용석 김용석 김용석 김용석 김용선 김용선 김용성 김용수 김용식 김용오 김용완 김용운 김용은 김용인 김용재 김용주 김용준 김용채 김용철 김용태 김용택 김용택 김용표 김용필 김용현 김용현 김용호

김용환 김용희 김우곤 김우영 김운기 김운영 김운주 김웅기 김원갑 김원귀 김원우 김원채 김유 김유곤 김유성 김윤계 김윤기 김윤수 김윤식 김윤오 김윤철 김윤희 김은 김은수 김은환 김은희 김의기 김의택 김이기 김이수

김이수 김이운 김이종 김이중 김익천 김인 김인권 김인석 김인석 김인수 김인숙 김인순 김인순 김인원 김인윤 김인태 김인환 김일권 김일남 김일모 김일섭 김일수 김일순 김임열 김장덕 김장석 김장수 김재갑 김재관 김재권

김재귀 김재남 김재명 김재봉 김재성 김재성 김재수 김재수 김재수 김재식 김재신 김재양 김재언 김재언 김재열 김재영 김재오 김재유 김재은 김재종 김재진 김재천 김재철 김재철 김재평 김재평 김재평 김재형 김재형 김재호

김재호 김재호 김재홍 김재홍 김재홍 김재화 김재환 김재희 김점열 김점자 김점중 김점호 김정 김정곤 김정곤 김정교 김정권 김정균 김정기 김정남 김정남 김정란 김정배 김정선 김정섭 김정섭 김정수 김정수 김정수 김정수

김정식 김정옥 김정완 김정우 김정인 김정일 김정임 김정자 김정중 김정현 김정현 김정호 김정호 김정환 김정희 김제안 김존정 김종관 김종권 김종규 김종규 김종기 김종남 김종명 김종배 김종분 김종삼 김종삼 김종석 김종성

김종수 김종수 김종순 김종안 김종연 김종열 김종열 김종완 김종일 김종재 김종주 김종준 김종준 김종준 김종천 김종철 김종철 김종태 김종태 김종태 김종태 김종태 김종태 김종학 김종학 김종호 김종환 김종희 김주명 김주탁

김주형 김주호 김주호 김준동 김준목 김준봉 김준석 김준수 김준철 김준태 김준헌 김준호 김중구 김중길 김중남 김중식 김중현 김지용 김진관 김진관 김진규 김진석 김진선 김진옥 김진우 김진원 김진태 김진태 김진학 김찬균

김창규 김창길 김창선 김창수 김창수 김창수 김창수 김창오 김창진 김창헌 김창호 김창환 김채화 김천두 김천례 김천수 김천안 김천호 김천홍 김철기 ○○○ 김철현 김청길 김청식 김추호 김춘국 김춘남 김춘례 김춘석 김춘호

김춘화 김충남 김충식 김충현 김충호 김충호 김충호 김치곤 김치성 김치영 김태규 김태랑 김태상 김태성 김태수 김태수 김태연 김태종 김태주 김태진 김태찬 김태헌 김태형 김태호 김태호 김태호 김태홍 김태훈 김판금 김판봉 

김판숙 김판조 김판호 김평곤 김평용 김평정 김학민 김학수 김학수 김한중 김한중 김한호 김함옥 김항호 김해권 김해식 김해영 김행구 김행남 김행남 김행엽 김행주 김행준 김향득 김향순 김현 김현곤 김현규 김현동 김현묵

김현수 김현영 김현장 김현재 김현주 김현중 김현채 김현철 김현철 김현철 김형곤 김형관 김형기 김형영 김형옥 김형우 김형일 김형진 김형진 김형태 김혜옥 김혜정 김호갑 김호동 김호성 김호술 김호조 김호중 김호천 김호현

김홍균 김홍렬 김홍만 김홍명 김홍배 김홍수 김홍일 김홍주 김화성 김화영 김황영 김효석 김효형 김후섭 김후식 김훈석 김훈호 김흥기 김흥기 김흥수 김흥호 김희규 김희봉 김희삼 김희성 김희수 김희수 김희용 김희중 김희진

김희탁    ○    나광수 나근호 나기용 나동수 나명관 나병남 나병운 나병진 나삼수 나상곤 나상기 나상옥 나상종 나상주 나성길 나승돈 나승재 나승정 나안주 나애란 나양수 나영선 나우균 나윤균 나인기 나일성 나재철 나정석

나정식 나종경 나종구 나준경 나하엽 나현균 나홍균 나홍수 남경훈 남길성 남세엽 남승우 남영관 남영님 남용기 남재천 남재희 남재희 남정길 남정식 남준식 남춘만 남현애 남호광 남호례 남호열 노갑순 노경규 노경운 노공현

노기현 노대현 노덕진 노동규 노동길 노득기 노명조 노문철 노병유 노병호 노봉기 노성대 노성대 노성식 노성철 노수남 노양섭 노영석 노용기 노인섭 노인천 노일구 노재권 노재규 노재열 노재인 노정준 노종근 노종복 노종영

노준현 노향기 노형규 노흥숙 노희관 ○   도인재 도준식 동근식    ○    라경균 라린 류문연 류상수 류소영 류영선 류영선 류영택 류인호 류일대 류재건 류재구 류재율 류재창 류재희 류진현    ○     마삼훈 마순란 마연근

마연식 마재관 명노권 명노근 명동진 명재관 명재용 명현산 모기훈 모남선 모용이 문관 문광량 문광열 문국주 문귀동 문귀석 문기현 문기홍 문덕진 문덕희 문두순 문명호 문명화 문미숙 문민기 문배근 문병권 문병권  문병란

문병수 문병식 문병운 문병윤 문병호 문봉길 문봉석 문사열 문석환 문성식 문성주 문순식 문순옥 문승식 문승엽 문승훈 문연애 문연주 문연희 문오근 문용동 문용윤 문익환 문장우 문재완 문재우 문재인 문재학 문재학 문정순

문제석 문종대 문종덕 문종연 문종호 문채연 문행관 문헌주 문혁 문호덕 문홍기 문홍석 문화주 민권기 민병대 민병열 민병욱 민봉규 민준식 민청진 민홍수    ○  박가용 박갑수 박갑수 박갑술 박갑용 박건수 박건용 박경구

박경수 박경주 박경환 박계동 박관현 박광남 박광웅 박광진 박권수 박귀주 박규상 박규현 박균보 박근만 박근철 박금석 박금희 박기봉 박기상 박기현 박남규 박남선 박남순 박남춘 박노봉 박노순 박노정 박노택 박달종 박대인

박대현 박덕춘 박도규 박도현 박동규 박동만 박동섭 박동철 박동호 박동호 박동환 박두현 박득남 박래천 박래풍 박막동 박만천 박명국 박명서 ○○○ 박명호 박명환 박몽구 박무길 박문기 박문재 박미양 박민기 박민환 박병규

박병기 박병기 박병대 박병률 박병복 박병선 박병선 박병성 박병웅 박병준 박병태 박병헌 박병호 박병화 박보현 박복동 박복용 박복환 박봉구 박봉식 박봉춘 박삼규 박삼수 박상규 박상복 박상순 박상언 박상옥 박상철 박상철

박상호 박석규 박석무 박석연 박석용 박석환 박선재 박선정 박성곤 박성규 박성기 박성기 박성길 박성득 박성봉 박성수 박성수 박성식 박성용 박성용 박성윤 박성철 박성철 박성호 박성환 박성훈 박세경 박세근 박세정 박수자

박수진 박순기 박순복 박순철 박승열 박승종 박승희 박시형 박신열 박양규 박양규 박양수 박연옥 박연진 박연훈 박영규 박영근 박영기 박영문 박영섭 박영수 박영순 박영순 박영식 박영오 박영재 박영종 박영준 박영천 박영철

박영철 박영희 박옥률 박옥재 박옥주 박완주 박왈수 박왕현 ○○○ 박용기 박용길 박용남 박용성 박용수 박용열 ○○○ 박용주 박용준 박용준 박용채 박용택 박용현 박용화 박용희 박우송 박우정 박원응 박원종 박원주 박원호

박월규 박유덕 박윤규 박윤선 박윤수 박은성 박은식 박이선 박인배 박인수 박인재 박인천 박인천 박일남 박일섭 박일수 박장선 박재구 박재덕 박재만 박재술 박재식 박재영 박재진 박재택 박재호 박점동 박점행 박정남 박정남

박정란 박정래 박정래 박정민 박정삼 박정성 박정식 박정열 박정용 박정욱 박정철 박정호 박정환 박정훈 박종관 박종국 박종국 박종근 박종기 박종길 박종덕 박종덕 박종렬 박종민 박종민 박종서 박종석 박종섭 박종섭 박종섭

박종식 방종연 박종용 박종욱 박종천 박종철 박종호 박종화 박종훈 박주삼 박주석 박주환 박주흥 박준구 박준영 박중복 박진 박진성 박진숙 박진영 박진우 박진원 박진재 박진천 박진태 박진흥 박찬석 박찬수 박찬영 박찬욱

박찬욱 박찬웅 박찬직 박찬채 박찬환 박창권 박창규 박창남 박창석 박창식 박창식 박창신 박창현 박채수 박채영 박천만 박철 박철영 박철옥 박철현 박철호 박청진 박춘기 박춘일 박춘흥 박충렬 박충원 박충주 박치형 박태명

박태석 박태성 백태원 박태조 박판석 박판진 박팔균 박필호 박하성 박한초 박해경 박해권 박해일 박행삼 박행원 박헌재 박현구 박현기 박현동 박현숙 박현숙 박현종 박현준 박형기 박형석 박형선 박형수 박형순 박형옥 ○○○

박형철 박호연 박홍규 박홍식 박홍용 박홍철 박화용 박회원 박효남 박효선 박효정 박흥수 박흥식 박흥식 박희광 박희민 박희술 반재연 방광범 방기곤 방민원 방비호 방양균 방이용 배균석 배기선 배남기 배동기 배문조 배범진

배병수 배봉현 배상룡 배상선 배석도 배석준 배설남 배성진 배영란 배오진 배용추 배우식 배재훈 배태휴 배학원 배한식 배희진 백계남 백계문 백기철 백난식 백대길 백대환 백덕규 백덕호 백동기 백두선 백만도 백상순 백세광

백승국 백영권 백영수 백운서 백윤 백재성 백종오 백종인 백종환 백지원 백진숙 백천기 백호종 백홍남 범운봉 범일균 범정균 범정진 범진염 변동섭 변동일 변연관 변오연 변인석 변재영 변재현 변학연 변형섭 변홍규 봉복용

봉점수 봉필호    ○     서감성 서경란 서경원 서공석 서관승 서광순 서광식 서기홍 서길재 서남동 서남식 서대석 ○○○ 서동구 서동근 서동열 서만동 서만석 서만오 서명옥 서명원 서민호 서병두 서병선 서병주 서봉석 서봉진

서삼표 서상채 서상천 서상춘 서성규 서수천 서순열 서양수 서영욱 서영채 서영호 서용균 서우석 서원석 서을석 서의환 서재용 서재웅 서재필 서재형 서정열 서정덕 서종선 서주만 서주열 서중진 서진광 서채원 서철용 서충석

서형석 서형진 서호빈 서호열 서호영 서환기 석성진 석영규 선만호 선명규 선병길 선병렬 선병용 선재규 선종원 선종철 선주영 선현호 선형채 설광범 설동철 설용남 설훈 성경환 성낙기 성낙현 성대수 성동식 성락철 성무원 

성문기 성병덕 성시균 소계화 소영두 소이섭 손갑술 손광종 손도기 손동호 손동환 손문찬 손병섭 손병섭 손상영 손석기 손성채 손성택 손성희 손승춘 손영완 손영준 손옥래 손용직 손재선 손재오 손재일 손점모 손점식 손정일

손정채 손주식 손주항 손진성 손창식 선천만 손철식 손치근 손홍무 손효근 손휴성 송건호 송경갑 송광래 송규선 송기숙 송기원 송기홍 송도연 송만용 송민섭 송백석 송병헌 송복심 송선태 송세곤 송송송이 송수현 송승석 송안종

송연식 송영교 송영기 송영신 송용완 송인기 송인도 송인숙 송일순 송재문 송재섭 송점수 송점진 송정교 송정근 송종식 송진광 송진석 송진율 송찬식 송창근 송창석 송창수 송철환 송춘수 송태관 송태봉 송하근 송현수 송현식

송현종 송형택 송환철 송희상 송희성 신갑경 신강식 신강식 신경식 신경식 신경준 신경진 신경호 신계우 신광근 신광성 신극정 신기홍 신길수 신길호 신동천 신동휴 신만식 신맹조 신명식 신명식 신명호 신묘섭 신민정 신방님

○○○ 신봉섭 신봉식 신상균 신상제 신상철 신석현 신성은 신성준 신양균 신영미 신옥철 신용국 신용길 신우영 신은주 신을호 신일호 신자욱 신재룡 신재선 신재식 신재호 신정호 신종권 신종근 신종식 신종태 신진희 신철승

신충식 신충우 신치호 ○○○ 신행균 신현길 신현남 신현홍 신형조 신홍섭 신황암 신후식 심경섭 심광섭 심동선 심동호 심상근 심상대 심석수 심성주 심송무 심영업 심영의 심우민 심인식 심재웅 심재철 심정보 심태산     ○   

안권섭 안극순 안근옥 안길정 안남석 안동철 안동혁 안두환 안명섭 안민구 안병복 안병섭 안병조 안병채 안병태 안병하 안성옥 안승권 안양로 안옥선 안용섭 안용순 안운재 안월순 안의영 안종기 안종명 안종필 안진오 안창순

안창식 안철 안철우 안태용 안통일 안평순 안필환 안현경 안형기 안형순 안형순 안형엽 안황호 양갑현 양강섭 양경모 양광열 양근석 양기남 양기옥 양길용 양남 양동국 양동선 양동익 양동인 양동춘 양동희 양만승 양명근

양민도 양민석 양봉열 양봉열 양삼근 양승길 양승열 양승옥 양승조 양승칠 양승팔 양승희 양영두 양용호 양원배 양원식 양원열 양원일 양원조 양인서 양인섭 양인철 양인화 양일권 양일준 양재봉 양재홍 양준열 양준호 양지문 

양창근 양창석 양천택 양철희 양치정 양치홍 양태열 양판철 양평두 양해철 양홍 양홍범 양홍영 양회남 양회도 양회철 양희승 양희영 양희태 엄대후 엄태주 여균동 여운칠 여창운 여호현 여흥용 염경석 염경선 염경태 염광재

염동유 염미란 염성순 ○○○ 염용섭 염인구 염인옥 염정희 염행열 예춘호 오경선 오경식 오광룡 오광석 오광탁 오교필 오권열 오근규 오근호 오기석 오기철 오남경 오대영 오동수 오동찬 오만석 오만호 오명택 오병국 오병남

오병문 오병영 오병인 오병춘 오병춘 오병학 오봉교 오봉열 오상교 오성곤 오성균 오성근 오세봉 오세중 오세창 오세현 오양근 오양수 오억석 오영백 오영선 오영호 오용태 오원진 오윤생 오윤현 오은수 오인두 오인수 오일교

오일석 오일성 오재일 오정숙 오정순 오정호 오종수 오종진 오종화 오중원 오진근 오진수 오창근 오천수 오춘수 오춘환 오치갑 오태양 오평교 오필환 오현탁 오형수 오화성 오효진 옥윤기 왕상우 왕태경 우동관 우동렬 우수영

우연하 우인석 우중원 원순석 원종관 원종위 위경종 위길화 위동훈 위성삼 위성상 위성완 위순복 위양우 위인백 위종회 유경호 유계룡 유관열 유광범 유규성 유근익 유길석 유대식 유동운 유몽룡 유병량 유병우 유복남 유복동

유복용 유상준 유석 유선 유선장 유성숙 유수미 유수연 유수용 유승귀 유억구 유영신 유영택 유은열 유은초 유인섭 유인호 유일수 유재도 유재민 유재병 유재성 유재순 유재영 유재옥 유재원 유재홍 유정태 유정환 유제억

유제옥 유종수 유종순 유종현 유춘학 유해선 유형근 유홍식 유흥열 유희상 윤강옥 윤개원 윤경중 윤경철 윤곤석 윤광섭 윤광장 윤권중 윤금석 윤기권 윤기근 윤남호 윤다현 윤덕자 윤동식 윤목현 윤민한 윤석규 윤석루 윤석준

윤석형 윤석호 윤성모 윤성용 윤성호 윤성환 윤소열 윤순애 윤순자 윤순탁 윤순호 윤승봉 윤승훈 윤식 윤쌍선 윤안식 윤여연 윤영규 윤영돈 윤영배 윤영배 윤영석 윤영선 윤영식 윤영식 윤영원 윤영천 윤영철 윤영철 윤영화

윤영효 윤영훈 윤용관 윤용택 윤용한 윤우현 윤웅열 윤이재 윤이정 윤익중 윤재근 윤재식 윤재은 윤재중 윤재천 윤재칠 윤재평 윤점숙 윤점이 윤정구 윤정귀 윤정남 윤정방 윤종만  윤종수 윤종표 윤주병 윤중석 윤진 윤철

윤태섭 윤한봉 윤한창 윤현제 윤형근 윤형식 윤호현 윤홍식 윤효종 윤효준 은명기 이갑열 이갑진 이강갑 이강규 이강근 이강래 이강수 이강식 이강준 이강중 이강태 이강하 이강희 이건남 이건성 이건양 이건우 이건태 이건한

이경 이경규 이경봉 이경식 이경식 이경일 이경호 이경호 이경훈 이경희 이계영 이계운 이계운 이계진 이계철 이곤섭 이공수 이관근 이관주 이관택 이광백 이광석 이광수 이광영 이광영 이광우 이광주 이광철 이광행 이광호

이광호 이교정 이국권 이군순 이권홍 이귀만 이규영 이규웅 이규형 이규홍 이근재 이금석 이금영 이금재 이기성 이기수 이기안 이기운 이기중 이기홍 이기홍 이기화 이기환 이길남 이길수 이길원 이길원 이남 이남견 이남범

이남하 이남형 이내성 이달연 이대성 이덕선 이덕소 이덕준 이덕호 이덕환 이도형 이돈규 이돈채 이동계 이동권 이동근 이동기 이동산 이동섭 이동성 이동수 이동식 이동신 이동신  이동용 이동주 이동진 이동춘 이동흠 이두수

이두영 이득영 이래일 이만영 이만우 이매실 이명남 이명수 이명중 이명진 이명철 이명호 이명훈 이몽룡 이무성 이무헌 이문수 이문수 이문영 이문영 이문영 이문창 이미영 이민복 이민성 이민오 이민용 이민호 이민환 이방균

이방기 이방섭 이방춘 이배식 이병갑 이병기 이병길 이병돈 이병렬 이병섭 이병수 이병술 이병의 이병재 이병헌 이병홍 이병휴 이보균 이복남 이복수 이봉주 이봉주 이봉채 이부규 이북일 이삼수 이삼자 이삼학 이상균 이상균

이상범 이상보 이상복 이상복 이상식 이상영 이상원 이상윤 이상윤 이상일 이상조 이상종 이상주 이상준 이상헌 이상현 이상현 이상호 이상훈 이석규 이석봉 이석선 이석연 이석영 이석주 이석표 이선 이선직 이선철 이성귀

이성규 이성길 이성남 이성대 이성대 이성수 이성숙 이성순 이성연 이성우 이성원 이성율 이성자 이성자 이성전 이성주 이성진 이성학 이성헌 이세교 이세영 이세웅 이세종 이세진 이수범 이수영 이수영 이수하 이숙자 이숙자

이순노 이순봉 이순영 이순재 이순진 이순행 이순호 이승규 이승룡 이승문 이승민 이승배 이승범 이승용 이승을 이승일 이승재 이승준 이승천 이승현 이승훈 이승희 이시정 이신범 이신재 이심복 이애신 이애연 이양동 이양석

이양석 이양현 이양호 이언연 이연 이연수 이연식 이연식 이연재 이연진 이연희 이영구 이영근 이영근 이영기 이영길 이영대 이영례 이영미 이영민 이영범 이영복 이영생 이영수 이영수 이영순 이영순 이영일 이영일 이영자

이영주 이영준 이영채 이영학 이영행 이영헌 이영호 이영환 이영희 이영희 이예숙 이오동 이옥기 이옥단 이왕근 이요안 이용근 이용길 이용수 이용숙 이용신 이용옥 이용주 이용진 이용진 이용찬 이용충 이우봉 이우성 이우재

이우정 이운호 이웅재 이원갑 이원기 이원배 이원영 이유 이유성 이유수 이유원 이윤교 이윤우 이윤정 이은하 이은형 이이완 이익주 이인선 이인성 이인종 이인현 이일배 이자엽 이장오 이장의 이장재 이재걸 이재관 이재관 

이재권 이재규 이재남 이재두 이재록 ○○○이재섭 이재성 이재술 이재승 이재연 이재옥 이재의 이재일 이재정 이재철 이재춘 이재호 이재홍 이정규 이정기 이정기 이정기 이정길 이정남 이정두 이정모 이정무 이정방 이정배

이정상 이정상 이정선 이정수 이정수 이정신 이정연 이정열 이정용 이정태 이정팔 이정해 이정행 이정호 이정호 이정호 이정호 이정호 이정휴 이정희 이종교 이종구 이종구 이종기 이종남 이종수 이종안 이종연 이종의 이종천

이종철 이종탁 이주석 이준규 이준기 이준석 이준희 이중일 이중하 이지현 이진우 이진현 이진호 이창관 이창규 이창길 이창범 이창섭 이창성 이창영 이창현 이창협 이창희 이철연 이철우 이철현 이철호 이철호 이청조 이추자

○○○ 이춘기 이춘문 이춘범 이춘봉 이춘옥 이춘원 이춘한 이춘화 이충국 이충영 이치연 이태규 이태성 이태헌 이태헌 이택돈 이평곤 이평수 이필철 이필형 이하원 이한규 이한근 이한수 이항휘 이해동 이해동 이해웅 이해찬 

이행기 이행용 이헌규 이혁 이현 이현근 이현민 이현범 이현삼 이현조 이협 이형기 이형민 이혜명 이호열 이호철 이홍길 이홍봉 이홍선 이홍섭 이홍식 이홍재 이홍재 이효복 이효순 이후성 이흥남 이흥자 이흥주 이흥철

이희곤 이희승 임갑현 임건 임경래 임경렬 임경채 임경택 임광신 임규상 임균수 임근수 임근호 임금명 임금주 임기윤 임대원 임덕호 임동규 임동복 임동재 임동조 임동화 임두환 임명순 임백순 임병석 임병식 임병준 임병철

임부덕 임삼무 임삼수 임삼채 임상택 임석만 임성기 임성모 임성석 임성순 임성욱 임성택 임성택 임소례 임수춘 임승만 임승빈 임승용 임양수 임연묵 임영락 임영수 임영천 임영희 임오장 임옥환 임왕택 임우택 임원동 임은주

임은철 임은택 임익원 임인복 임인수 임재구 임정숙 임정식 임정하 임종기 임종기 임종도 임종문 임종인 임종일 임종필 임종훈 임주윤 임준섭 임중근 임진호 임찬덕 임창옥 임창주 임채명 임채문 임채석 임채송 임채형 임채호

임철순 임춘래 임충성 임태남 임태목 임태주 임태형 임필순 임한오 임항식 임해만 임형만 임형수 임호상 임희숙 ○     장경모 장경주 장경철 장경희 장계범 장광식 장규범 장기수 장기언 장두석 장막동 장방환 장병복 장복순

장봉성 장부용 장선호 장성암 장세균 장세완 장양오 장양정 장영섭 장영숙 장영준 장영철 장영환 장예운 장우석 장운기 장원구 장윤기 장윤수 장익수 장인석 장인성 장재국 장재균 장재근 장재범 장재인 장재철 장재철 장재춘 

장정기 장종필 장종희 장주인 장지권 장창술 장천수 장천수 장천일 장철석 장치봉 장하일 장한용 장한환 장해인 장현만 장현우 장현윤 장현익 장현철 장형규 장형원 장형주 장훈명 전경호 정고선 전기수 전기학 전남수 전남현

전대열 전만석 전만오 전문자 전미향 전병곤 전병기 전병두 전병식 전성미 전성민 전성용 전성준 전수용 전술영 전영종 전영진 전용상 전용일 전용주 전용호 전운석 전재서 전재수 전정일 전정호 전종만 전종식 전종태 전주완

전중환 전창섭 전채상 전철부 전철종 전춘봉 전춘심 전태웅 전현선 전형문 전형준 전홍엽 전황금 정갑룡 정갑수 정건배  정경근 정경상 정경자 정경채 정곤석 정공명 정관복 정관영 정관춘 정광식 정광진 정광진 정광호 정광희

정국성 정규완 정규철 정규철 정근호 정금동 정금채 정기백 정기봉 정기봉 정기철 정길호 정낙재 정남석 정남철 정남호 정대규 정대영 정덕만 정덕성 정도연 정동년 정동열 정동진 정동현 정동호 정동훈 정두석 정두진 정락준

정만태 정명귀 정명운 정문기 정민구 정민식 정민홍 정방남 정백중 정백진 정병곤 정병구 정병국 정병균 정병두 정병서 정병석 정병영 정병욱 정병조 정보영 정복남 정복철 정봉수 정사기 정삼기 정삼모 정삼수 정삼영 정삼진

정상덕 정상섭 정상용 정상철 정석봉 정석종 정성국 정성기 정성영 정성찬 정세국 정수관 정수만 정수진 정순석 정순심 정순열 정순철 정순철 정순홍 정승옥 정앵진 정양균 정양근 정양기 정양숙 정연수 정연태 정연호 정영기

정영기 정영기 정영대 정영동 정영만 정영수 정영숙 정영식 정영식 정영욱 정영자 정영철 정영호 정영희 정완주 정용명 정용문 정용숙 정용옥 정용일 정용조 정용철 정용화 정운석 정운창 정웅이 정원 정원재 정유아 정육열

정윤경 정윤식 정을용 ○○○ 정이석 정이순 정익섭 정인서 정인순 정인영 정인채 정일진 정일환 정재구 정재규 정재근 정재옥 정재용 정재필 정재호 정재희 정정남 정정남 정정래 정정순 정정옥 정제만 정종구 정종규 정종대

정종만 정종선 정종영 정종옥 정종월 정종주 정종표 정준모 정지만 정지수 정지영 정진갑 정진균 ○○○ 정찬복 정찬용 정찬홍 정창연 정창진 정철 정철 정철남 정철인 정철희 정춘규 정춘식 정태기 정태석 정태성 정태수 

정태중 정태호 정택균 정판식 정판호 정필우 정하규 정학근 정학문 정학성 정한오 정한용 정해남 정해동 정해민 정해영 정해직 정향자 정헌민 정헌식 ooo 정현수 정현순 정현애 정현택 정현호 정형규 정형무 정해원 정호채

정홍섭 정화면 정환규 정환수 정효철 정휴성 정희문 정희연 제해만 제해윤 조갑태 조강선 조강일 조경근 조경남 조경숙 조경호 조계석 조계학 조광로 조광희 조국진 조규연 조규영 조금호 조기모 조기백 조기범 조기붕 조기창

조기태 조남식 조남신 조남용 조남일 조달훈 조대성 조대성 조대환 조대훈 조덕래 조동기 조동일 조동진 조동훈 조명현 조문구 조미은 조병국 조병길 조병무 조보선 조복환 조봉환 조봉훈 조사천 조삼수 조상옥 조선제 조성구

조성규 조성봉 조성수 조성우 조성인 조성자 조성철 조성출 조성태 조성환 조성환 조송훈 조순태 조순형 조승래 조승익 조승일 조시형 조아라 조안수 조양배 조연동 조영국 조영나 조영미 조영복 조영수 조영익 조영일 조영자

조영철 조영훈 조옥현 조용신 조용진 조용철 조용하 조용현 조용호 조월남 조윤근 조이현 조익근 조익문 조인영 조인현 조일기 조일제 조장관 조재만 조재영 조재필 조재현 조정옥 조정현 조정호 조정호 조정화 조정환 조정희 

조종기 조종덕 조종현 조준배 조진만 조진섭 조진성 조진형 조철상 조철제 조철현 조철홍 조총열 조춘복 조충길 조태원 조한진 조항 조행권 조현모 조현상 조혜숙 조홍엽 조효성 조효신 조흔수 조희기 주남진 주노식 주명식

주병현 주복동 주상석 주승호 주암순 주영남 주영진 주영철 주완 주인구 주재성 주정완 주지신 주필호 주현로 주홍일 지대위 지병주 지성용 지영길 지정용 지창용 지청룡 진병선 진병욱 진수전 진재학 진정완 진정태 진흥권

전희종 ○  차경우 차기수 차명석 차명숙 차상섭 차성준 차수규 차영기 차영철 차오진 차용봉 차욱준 차재기 차재연 차전호 차종성 차형의 채경복 채계환 채광환 채명옥 채수길 채영선 채이병 채종선 채종원 채종일 천동우

천동준 천순남 천순례 천실우 천영진 천종수 천종식 천주열 최갑교 최갑선 최강락 최강식 최강욱 최강철 최강철 최강현 최강현 최곡전 최공우 최광범 최광열 최광열 최광집 최광희 최귀옥 최규백 최규완 최금석 최금철 최기동

최기만 최기범 최기영 최기용 최기환 최길동 최남심 최남일 최남현 최대근 최대동 최대원 최덕기 최덕길 최도규 최도진 최동길 최동복 최동순 최동술 최동열 최동윤 최동인 최두섭 최만재 최명석 최명철 최몽남 

최문 최문호

최미경 최미애 최미자 최민수 최민철 최병귀 최병렬 최병옥 최병진 최병진 최병호 최병훈 최복덕 최복순 최복주 최봉남 최봉희 최상권 최상기 최상언 최상용 최상용 최상준 최상철 최상현 최상호 최석군 최석조 최석필 최석훈

최성남 최성무 최성옥 최성용 최성일 최성화 최성환 최세연 최세환 최수동 최수영 최승기 최승석 최승철 최승호 최승호 최승호 최승희 최양근 최양덕 최연규 최연숙 최연태 최열락 최영만 최영민 최영석 최영석 최영오 최영옥

최영일 최영준 최영진 최영산 최영철 최영철 최옥경 최용범 최용식 최용주 최용주 최운영 최운영 최웅용 최원배 최윤 최윤근 최윤종 최윤택 최은홍 최인규 ○○○ 최인영 최일조 최일종 최임열 최재남 최재방 최재식 최재용

최재원 최재원 최재철 최재철 최재희 최정기 최정길 최정민 최정순 최정아 최정환 최종구 최종락 최종삼 최종원 최종일 최종주 최종주 최종철 최종현 최종환 최종환 최주환 최준 최준택 최중길 최진동 최진수 최찬호 최창석

최창주 최철원 최철진 최철환 최충용 최치수 최쾌남 최태호 최판술 최필호 최현구 최현기 최현진 최현철 최현호 최형석 최형식 최형주 최형호 최호연 최홍선 최황우 최홍기 최흥주 최희호 추길례 추성길 추연욱 추채환 ○

탁상준 ○ 표경수 표경종 표완수 ○ 하덕열 하명철 하성윤 하연호 하영국 하영열 하영우 하용만 하재홍 하종대 하종래 하찬호 하철웅 하태수 하헌남 한강래 한강운 한계수 한광진 한국재 한귀남 한규영 한규훈 한기원

한기창 한기호 한길랑 한대복 한동백 한복남 한봉철 한상근 한상기 ○○○ 한상열 한상석 한상수 한상우 한상일 한순금 한승용 한승철 한승헌 한연석 한연수 한영길 한영용 한영욱 한영택 한옥만 한완상 한왈수 한용덕 한용호

한운용 한인석 한일남 한재옥 한정만 한창우 한채환 한천석 한춘자 한칠성 한화갑 함광수 함윤식 함종호 해정구 허경훈 허귀환 허규정 ○○○ 허남복 허남주 허봉 허성진 허순배 허연수 허옥기 허정 허정웅 허정흥 허종식

허춘섭 허충만 허평길 허행심 허현 현동한 현병화 현용식 현중진 현흥권 홍갑의 홍금숙 홍금순 홍기송 홍기종 홍두표 홍란 홍명표 홍상기 홍석기 홍석복 홍석재 홍석종 홍석표 홍선임 홍성규 홍성대 홍성수 홍성태 홍수덕

홍수영 홍수원 홍숙희 홍순관 홍순권 홍순섭 홍순영 홍오선 홍운석 홍원식 홍인주 홍인표 홍장권 홍종철 홍준희 홍창남 홍춘식 홍태환 홍현희 홍희윤 황강주 황광남 황금례 황금선 황길량 황남열 황덕구 황도연 황두성 황삼문

황선건 황성민 황성술 황성진 황세연 황승현 황영연 황영종 황영주 황영진 황은환 황의란 황의수 황의출 황인갑 황인곤 황인묵 황인식 황일봉 황재영 황재우 황종호 황진하 황창옥 황호걸 황호선 황호정 황홍주 ○

다음은 2005년 추가된 보상자 명단.

○ 강기룡 강기종 강범희 강상원 강웅식 강현섭 강형인 고광열 고세현 고영진 고은수 고재윤 고춘남 고충석 공유상 곽길영 구은우 권순엽 권순형 권영조 권영택 권오창 권용호 권운상 권재호 권찬동 권춘택 금승기 김가진 김거성

김건호 김경남 김경옥 김경주 김경택 김경하 김관회 김광수 김광원 김광주 김권호 김기대 김기선 김기수 김기철 김길환 김난수 김대식 김동윤 김동호 김두기 김래용 김명수 김명인 김명자 김병일 김봉우 김봉일 김봉준 김상근

김상수 김상철 김상호 김상훈 김석호 김성구 김성규 김성배 김성수 김성숙 김성재 김성춘 김연규 김영봉 김영석 김영주 김영현 김영환 김옥남 김용식 김우겸 김위영 김은경 김인규 김일섭 김장기 김장주 김재보 김재엽 김정철

김종기 김종길 김종세 김종용 김종흠 김준영 김지형 김진덕 김진석 김진한 김차순 김창근 김창석 김천영 김충섭 김치걸 김태섭 김택춘 김현칠 김형식 김혜성 김혜숙 김환수 김회경 ○ 나병식 나이균 남궁춘 남명수 남상우

남충희 노복헌 노영민 노일현 ○ 도천수 ○류영국 류중람 류진수 ○ 문희선 ○ 박강희 박광순 박근우 박대호 박동석 박득순 박명규 박미숙 박민서 박병식 박병준 박병하 박성열 박시영 박용안 박용훈 박원규

박인균 박정서 박종률 박종민 박종홍 박진형 박찬수 박철수 박춘노 박춘학 박태식 박태식 박판영 박한배 박해전 박희주 방휘철 배순호 백상태 백성조 백완승 백유성 백현국 백현기 변대근 ○ 사공술 서성교 서성교 서성길

서연자 서원기 서은혜 서재주 서창석 서홍석 석원호 선점숙 설종수 성광오 소준섭 손광우 손덕팔 손영엽 손주영 손호만 송성근 송성엽 송재천 송재형 송창달 송형근 송혜경 신근수 신나미 신명직 신병종 신영일 신종실 신중섭

신창일 신태식 신학현 심영배 심재덕 심재환 ○ 안건석 안숙 안승운 안원규 안일순 안재성 안정언 안창도 안평수 안호성 안효준 양균화 양기해 양동학 양상민 양성철 양윤신 양은숙 양화수 엄주웅 오병일 오세구 오인택

오종윤 유광석 유기홍 유대기 유덕열 유동수 유수근 유승규 유영완 유완순 유인현 유재광 유재창 유제완 유종덕 유종성 유종일 유증열 유창훈 유춘열 윤금순 윤동현 윤명석 윤영석 윤일현 윤종천 윤형기 은종성 이경재 이경하

이관복 이광희 이대현 이덕재 이돈열 이동열 이명식 이범 이병수 이병욱 이상경 이상국 이상민 이상술 이상원 이상헌 이상헌 이석원 이석태 이성하 이송재 이수언 이순광 이숭규 이승정 이영언 이옥섭 이완배 이용선 이용학

이용호 이용희 이우엽 이원배 이원주 이유근 이윤기 이재권 이정현 이종렬 이종렬 이종선 이종욱 이종태 이주미 이진걸 이창주 이춘섭 이충래 이학령 이형엽 이형환 이호 이호 이호신 이희선 임금재 임동확 임미애 임영섭

임종수 임종호 임채열 임철규 임형 ○ 장건상 장대수 장동현 장만철 장병윤 장석호 장성봉 장신규 장신환 장영옥 장우섭 장을병 장장영 장재규 장정익 장홍균 장훈열 전성 전광출 정광표 전성갑 전영찬 전은주 전재민 전홍준 전희남 정광민 정광서 정구원 정근식 정금숙 정남균 정대호 정동윤

정동진 정모용 정문수 정문화 정병규 정상시 정상용 정성봉 정성진 정세희 정순석 정양언 정연주 정영철 정외영 정우창 정운본 정원용 정이근 정인석 정인자 정인화 정재돈 정재흥 정지성 정진동 정해랑 정해숙 정형서 조건수 조상행 조성우 조순이 조영희 조영광 조주형 조준승 조진태 조철호 조태일

조향래 조혜경 주경석 주미경 주선로 ○ 채광석 채만수 천승준 천영초 최경운 최광규 최귀섭 최규엽 최낙범 최낙창 최남철 최만호 최문규 최병관 최병일 최병조 최봉례 최봉일 최상필 최양식 최영선 최영일 최용식 최이수 최재만 최정간 최정진 최종문 최해룡 추연창 ○ 하종호 한기양 한동욱

한승희 한영철 한용상 한점숙 허욱 허덕래 허인규 허헌중 현무환 형난옥 홍기섭 홍성백 홍영주 홍익표 황광우 황덕경 황병윤 황순원 황영문 황은자 황인오 황보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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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단독] 5·18 유공 정치인 339명 중 91% 가짜… 땅에 떨어진 양심

5~6분

▲ 5·18 유공자 단체 관계자들이 1월18일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5·18 가짜 유공자 척결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5·18 가짜 유공자들로 인해 5·18이 진실이 아닌 거짓이 됐고 명예가 아닌 부끄러움이 됐다”고 말하며 가짜 유공자 척결을 촉구하고 있다. 남충수 기자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등록된 4346명 중 상당수가 5·18과 무관하다는 본지 단독보도[2023.5.18일자 1면, 가짜 판치는 5·18 유공자… ‘진실’을 묻다]와 관련, 정치계에 ‘가짜’로 추정되는 유공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스카이데일리는 지난해 연말께 국민적 관심사인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2차 명단’을 단독 입수해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관련자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실체적 규명을 진행해왔다. 이에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등록된 유공자 명단에 대한 개별적인 분석을 토대로 최근 공개한 언론계와 문화예술계에 이어 정치계 인사들에 대한 검증 결과를 추가로 공개한다.

다만 대법원에서 공인을 제외한 일반 유공자들에 대한 명단 비공개는 정당하다는 원심을 확정함에 따라 공인을 제외한 일반인의 경우,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실명이나 소속, 공적·피해 내역 등은 신중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 전·현직 정치인 339명 중 29명만 공적·피해 내역 확인

5·18 유공자 1·2차 명단 4346명을 분석한 결과, 전·현직 정치인들이 339명(7.8%)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정치계 인사 중 29명은 5·18 당시 공적이나 계엄군에게 피해를 본 내역이 확인됐다. 

이 중 14명은 5·18 때 중상이나 경상 등 부상을 입어 유공자로 등록됐다. 나머지 12명은 군사법원에 회부된 경우였으며 3명은 구금이나 체포를 당해 5·18 유공자로 선정됐다. 

1991년 광주지역 구의회 의원을 역임한 김○집(당시 25세) 씨는 전남대에 재학 중에 5·18 민중항쟁이 터지면서 대학생 조직·홍보팀장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체포돼 군사법원에 회부됐다. 1998년 전남 순천시 기초의원에 당선됐던 심○근(당시 34세) 씨와 광주지역 정당 지역위원장을 역임한 송○석(당시 21세) 씨 또한 계엄군에게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2018년 광주시장 예비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수 씨를 비롯해 국민의당 창당발기인 중 한 명인 손○호 씨, 전북지역 시의원 김○오 씨 등은 5·18 당시 부상을 입어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나머지 310명(91.4%)은 5·18과 무관하거나 아무 공적 없어

하지만 이들 29명을 제외한 나머지 310명(91.4%)의 정치계 인사들은 5·18이 아닌 다른 민주화운동이나 학생운동·노동운동 등을 한 이력으로 5·18 유공자로 등재됐으며, 공적이나 피해 내역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가짜 유공자일 개연성이 높은 정치계 인사 310명 중 86명은 ‘민주화명예’ 5·18 유공자로 선정됐다. ‘민주화명예’는 5·18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지만 대한민국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유공자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민주화명예를 제외한 나머지 224명은 이름과 소속·경력 등만 언급돼 있을 뿐 5·18 당시 공적이나 피해 내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이들이 ‘인우보증’ 방식을 통해 유공자로 편입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우보증은 기존 5·18 유공자가 보증만 해주면 별다른 증거가 없어도 누구나 유공자가 될 수 있는 제도로 가짜 5·18 유공자가 넘쳐난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 스카이데일리가 단독으로 확보한 5·18 유공자 명단 일부. 스카이데일리

◇ 가짜 추정 인사 중 정당 관계자가 82명… 민주당 출신 정치인 압도적으로 많아

가짜 유공자로 추정되는 정치계 인사들을 직업별로 살펴보면 전·현직 정당 관계자가 82명으로 가장 많았다. 또 광역시와 시‧군‧구의회 의원이 79명, 전·현직 국회의원이 49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도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전·현직 고위공무원이 24명, 주요 기관이나 협회 단체장이 22명, 전·현직 광역자치단체장과 군수·구청장 등이 15명, 국내 거물급 정치인의 보좌관·비서관·특보 등이 15명이었다. 기타 각종 선거에 낙선했거나 직업 관련 언급이 뚜렷하지 않은 정치계 인사가 24명이었다. 

특히 가짜로 추정되는 전·현직 국회의원과 시·군·구의회 의원들을 정당별로 분석한 결과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유공자로 등록된 전·현직 국회의원의 경우 총 49명 중 38명(77.5%)이 민주당 출신이었으며, 나머지 11명은 다른 정당 정치인들이었다. 

시·군·구의회 의원 또한 총 79명 중 65명(82.2%)이 민주당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5‧18 당시 전남도청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 5·18기동타격대 상임고문은 “당초에 5‧18 유공자로 인정되는 조건이 1980년 5월17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항쟁에 참여하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로 규정돼 있었지만, 민주당이 법을 바꾸는 바람에 관련 없는 인사들이 대거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전 총리부터 전·현직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 전직 장·차관 등 다양

5‧18 유공자로 등록된 주요 정치계 인사들 중에는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차관, 광역자치단체장 등 거물급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들의 명단은 본지 취재진이 1차로 지난달 28일 광주 5‧18기념공원 내 지하 추모승화공간 돌판에 새겨진 5‧18 유공자 명단과 대조 작업을 거쳤으며, 실제 본인이 맞는지 인터넷에 게재된 개인 프로필과 유공자 명단의 대조 작업을 추가로 거쳤다. 본보에서 확보한 유공자 명단에는 개인별 성명과 생년월일·소속·과거 정치 이력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전·현직 국회의원의 경우 김○석·김○현·김○진·김○두·김○우·김○영·박○동·박○주·박○호·설○·유○수·양○조·이○영·정○국·한○갑·허○식 의원 등이 유공자로 등재돼 있다. 

김○두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수행비서 당시 1978년 명동구국선언과 관련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면회가 거절되자 시위를 하다 1978년 9월26일 업무방해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아 5‧18 유공자가 됐다. 

김○우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1989년 4∼10월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청년학도 투쟁연합 발대식 등에 참여해 시위를 벌이다 1989년 12월에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민주화명예로 5․18 유공자로 등재됐다. 

김○영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5‧18특별법 제정 찬성자 명단에 올랐다는 이유로 민주화명예 유공자로 등재됐다. 

박○주·박○호·허○식 의원 등은 개인 신상만 기록돼 있을 뿐 5‧18과 관련된 아무런 공적이나 피해 내역이 없었다. 

공직 출신 중에선 이○찬 전 국무총리도 이름을 올렸다. 이 전 총리는 5‧18이 아닌 서울대 재학 당시 민청학련 사건 관련 긴급조치 위반으로 내란 음모죄를 선고받아 명예 유공자로 등재됐다. 

이와 함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 보좌관을 역임한 오○호 씨가 등재돼 있고, 이○영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 수석과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낸 박○춘 씨도 이름을 올렸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을 역임한 김○현 씨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한 최○욱 씨도 유공자로 등재돼 있지만 공적 내역은 전혀 없었다. 전 노무현 대통령 특보와 장관을 역임한 김○경 씨도 5‧18 관련 아무런 공적 없이 유공자로 등재돼 있다. 

시‧군‧구 의원 중 국회의원 보좌관과 광주지역 기초의원을 역임한 이○진 씨는 1986년 4월 대학교 재학 중 교내에서 4‧19 기념제 참여 후 “반제·반파쇼 투쟁의 깃발 아래 힘차게 진군하자”등을 외치는 등 수 차례 집회 및 시위를 주도하다 같은 해 8월25일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민주화명예로 5‧18 유공자가 됐다.

◇ 김경재 “가짜 유공자 문제, 민주당서 혁신 과제로 삼아야”

이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던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는 “민주당이 광주와 호남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마련했기 때문에 5‧18 유공자들을 보호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하지만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삼가고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려야 했음에도 자신들이 가담했다고 이름 넣고 돈 받고 명예를 얻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김 전 총재는 또 “더불어민주당의 진정한 혁신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며 “이를 위해선 가짜 5‧18 유공자 문제를 자유주의 진영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혁신의 과제로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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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유공자 5801명에 2508억원 보상금...평균 4300만원 | 중앙일보

유성운
3~4분

5ㆍ18 민주화운동 유공자의 보훈 수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보수진영 일각에선 5ㆍ18 유공자들이 독립유공자나 6ㆍ25 유공자보다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보훈처 1990~2016년 지급 #교육·의료비 지원, 취업 가산점 #다른 국가유공자와 혜택 비슷 #부상자만 지방세 면제 등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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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주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

반면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5.18 유공자로 내가 받는 혜택, 국립공원 입장료 면제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국가보훈처의 ‘2018 보훈 수혜 일람표’를 근거로 양측의 주장을 팩트체크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1990년부터 2016년까지 9227명이 보상금을 신청해 이중 5801명에게 2508억원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평균 4300만원이다. 또, 5·18 사망자는 1인당 1억1000만원, 사망 후 행방불명은 1억3900만원, 행방불명은 1억3000만원이다. 이 보상금은 일시불이어서 다른 유공자와 달리 5·18 유공자에겐 유공자연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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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광주를 비롯한 전라남도 시민들이 벌인 광주민주화운동. 도청앞 거리 [중앙포토]

지난 1월 기준으로 5.18 유공자 수혜대상은 본인 3611명, 유가족 1만4105명 등 1만7716명이다. 유공자 본인과 자녀에겐 중ㆍ고ㆍ대학교 입학금과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가 면제된다. 또, 중ㆍ고ㆍ대학교에 재학시 학기당 12만 4000원~23만6000원의 학습보조비(자녀는 고교까지만)가 지급된다. 취업 시엔 5ㆍ18 유공자 본인과 가족에게 각 시험 단계마다 모든 과목 만점의 5~10%까지 가산점이 붙는다. 취업 가점은 국가기관, 지자체, 국·공·사립 학교, 공기업은 물론 20명 이상 고용한 사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단 공무원은 6급 이하에만 적용된다.
 또 유공자 가구당 3명까지 보훈특별고용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유공자 본인이나 가족이 취업능력개발을 수강할 때는 150만원~300만원의 취업 수강료가 지원된다. 지난 1월 현재 5·18 유공자 수혜대상 중 국가·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취업한 사람은 1617명이다. 이는 독립유공자(3815명)나 국가유공자(9만4000명)보다 훨씬 적다. 다만 수혜대상 대비 취업자 비율은 땐 5·18 유공자가 9.1%로 독립유공자(4.8%)나 국가유공자(4.3%)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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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31일 전두환 前대통령이 광주사태와 관련 계엄사의 지위권 발돌문제를 언급하자 특위 위원이 아니 평민당의 이철용의원이 방청석에서 단상으로 뛰어나와 전씨에게 삿대질을 하며 &#34;살인마&#34;라고 고함치고 있다. [중앙포토]

보훈병원이나 위탁지정병원을 이용할 경우 5ㆍ18 부상자는 100% 병원비가 국비로 지원된다. 그 외 유공자와 유가족은 50~60%까지 치료비를 지원받는다. 단 2016년 6월 이후 등록된 유공자는 가족 중에서 1명만 지원된다.
교통비는 5ㆍ18 부상자에 한해 KTX와 SRT에 대해 연 6회까지 무임승차가 가능하고, 이후부터는 50%가 할인된다. 5ㆍ18 유공자와 유족에겐 30% 할인이 적용된다. 전국 시내버스와 지하철은 무료이며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승차료는 50~70%가 할인된다. 내항 여객선은 무료, 국제 여객선은 객실 요금은 20% 감면된다. 또한 5ㆍ18 부상자는 국내선 항공기(대한항공ㆍ아시아나항공)는 50%가 할인되며(5ㆍ18 유공자와 유공자 가족의 경우 30%), 그 외 저가항공은 10~50%가 할인된다. 공항 이용료 및 주차장 사용료도 50% 할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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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주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 (광주=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추모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2018.5.18 citybo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5·18 유공자 본인과 가족 1인에 한해 고궁이나 국ㆍ공립공원ㆍ박물관ㆍ미술관 등에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고 국ㆍ공립 공연장과 공공체육시설은 50% 할인된다. 또한 5ㆍ18 부상자는 지방세ㆍ개별세ㆍ유료도료 통행료 등이 면제되고, 출입국심사 시 우대 서비스를 받는다. 이동전화, 인터넷 요금이 30~35% 할인되고 전기요금은 월 1만6000원(여름엔 2만원), 도시가스요금은 월 6600원(겨울 2만4000원)이 할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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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39;5ㆍ18 광주항쟁의 진실과 역사적 의의&#39; 토론회에서 최경환 의원(앞줄 가운데) 등이 손피켓을 들고 한국당 일부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이상 열거한 혜택은 5ㆍ18 유공자뿐 아니라 독립유공자·국가유공자에게도 대부분 부여되는 내용이어서 5·18 유공자가 다른 유공자들에 비해 특혜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5·18 유공자중 부상자에 한해선 독립유공자·국가유공자에게 없는 혜택이 추가되는 항목이 있다. 공항이용료 및 주차장 사용료 감면과 지방세(취득세·자동차세) 면제, 개별소비세 면제 등이다. 또한 연말정산 추가공제와 상속세, 자영사업자 세금 등을 감면받는다. 정부 관계자는 “부상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 유공자 전체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알려진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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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7일 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5ㆍ18 유공자명단 및 유공내용공개촉구국민연합(5.18 공촉연) 주최로 명단 공개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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