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 Informatization
글로발화 / Globalization
디지탈화 / Digitalization
현대화, 그 변화의 물결 -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의미
“현대화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묻고, 또 고민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과거와 분명히 다른 점이 많죠.
그런데 이 ‘다름’이 바로 ‘현대화’의 흔적입니다. 현대화는 단순히 기술이 발전하고, 도시가 커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관계 맺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의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죠.
과거와의 단절, 그리고 그 시작
현대화는
단순히 ‘산업화’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이는 18세기 산업 혁명에서 시작되었고, 점차 전 세계를 뒤흔들며
오늘날의 모습을 만들었죠. 물론 그 시절 사람들은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며 ‘미래’를 그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미래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순간,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바로 ‘변화’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릅니다.
산업화라는
파도가 덮친 후, 농업 중심 사회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도 큰 전환을
맞이했어요.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현대’라 부르는 이 시대는, 사실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차근차근 걸어온 길이라는 거죠.
현대화의 다양한 얼굴들
현대화는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그 변화의 중심에는 기술, 교육, 그리고 사람들의 이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도시화 현상은, 현대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자주 떠올리는 고층 빌딩들, 복잡한
교차로들, 그리고 늘 분주한 사람들. 이 모든 것은 도시화의 산물입니다. 이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생활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럼, 이 변화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산업화 : 경제의 중심이 농업에서 산업으로 바뀌었어요. 이를 통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경제는 급격히 성장했죠.
도시화 :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서울처럼 거대한 도시들이 경제 활동의 중심지가 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사회적 문제도 불러왔죠.
기술 발전 :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졌어요. 스마트폰, 인터넷, 그리고 자동화 기술까지.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죠.
교육의 확산 : 교육이 중요해졌습니다. 단순히 지식 습득을 넘어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 되었죠.
문화의 세속화 : 전통적인 가치관이 변화하고, 개인의 자유와 합리적인 사고가 더욱 강조되었어요. 이 변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 사회와 현대화의 흐름
한국은
20세기 중반 이후 급격한 현대화를 경험했어요. 특히 1960년대 경제 개발 계획을 통해 산업화를 추진한 결과,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또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요? 우린 이 과정을 어떻게 느꼈고, 또
무엇을 배웠을까요?
경제 성장: 현대화가 가져온 빠른 경제 성장 덕분에, 한국은 이제 세계 경제 강국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도시화와 인구 집중: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여러 사회적 문제가 등장했습니다. 주택 문제, 교통 체증, 그리고 환경 문제 등...
문화적 변화: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가족 구조와 가치관에 큰 변화가 있었고, 이는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교육의 확대: 한국은 교육에 대한 투자와 중요성을 점차 확산시켰습니다. 덕분에 ‘고학력 사회’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교육의 질이 높아졌죠.
디지털화와 미래 사회를 향해
오늘날
현대화는 더 이상 단순한 산업화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화, 정보화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될 만큼, 기술 혁신은 이제 우리가 사는 방식을 더 빠르고, 더 스마트하게 바꿔놓고 있어요.
그런데 과연 이런
변화가 끝일까요?
아니죠, 현대화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의 사회적 불평등, 환경 문제 등은 여전히 큰 고민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현대화는 더욱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겠죠.
결론 :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현대화는
단지 ‘경제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의 과정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이 현대화를 겪으며 많은 교훈을 얻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길을 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점은, 현대화가 계속될수록 ‘지속 가능성’과 ‘포용성’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일 것입니다.
급변하는 시대, 현대사회의 특징과 과제
현대사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기술의 발전, 경제 구조의 변화,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현대사회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차원에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현대사회의 주요 특징과 그로 인한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현대사회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기술의 혁신과 디지털 기술의 확산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은 정보에 접근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몇 초만의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와 같은 플랫폼은 개인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다양한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원격 근무와 전자 상거래의 발전은 경제 활동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며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업은 전통적인 물리적 인프라 없이도 세계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혜택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디지털 접근성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정보와 자원에 대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으며, 이는 기술 격차(digital divide)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또한, 개인 정보 보호와 사이버 보안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또한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국경을 초월한 경제, 문화, 사회적 교류는 현대사회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전 세계의 상품과 문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보거나 해외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글로벌화는 기술적 혁신과 더불어 국가 간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화는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약화할 위험성이 있으며, 특히
소수 민족의 문화와 언어는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에 놓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 언어의 약 40%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소수 언어와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글로벌화는 또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이 소수의 국가와 지역에 부를 집중시키면서
저개발 지역의 경제적 종속성을 강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경제 구조의 변화는 현대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과거의 제조업 중심 경제는 점차 서비스업과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창출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 생산 라인의 자동화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대체하며, 많은 사람이 기존의 직업을 잃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재교육과 평생 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 또한 변화하는 노동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경제 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숙련 노동자와 저숙련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확대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는 현대사회의 가장 시급한 도전 과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상승하고 기상이변이 빈번해지면서 환경 보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원의 과도한 사용과 환경 오염은 생태계 파괴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많은 국가와 기업이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와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는 화석 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기술은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자원 절약, 재활용, 그리고 에너지 효율적인 생활 방식을 실천하는 노력이 장려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개인화와 디지털 사회적 관계의 변화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의 목표와 행복을 우선시하며, 이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사람들 간의 연결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실제 인간관계는 점차 약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연결이 종종 표면적이며, 깊은 인간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을 맞추고 지역 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거나 자발적인 봉사 활동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한 가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사회는 기술, 경제,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와 책임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현대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협력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적은 노력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요즘 시대의 특징 6가지
1) 요즘 시대 _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영향을 주는 시대적 특징 6가지
2) 리더십 _ 리더의 역할 재정의와 리더의 시간 사용의 변화 5가지
3) 조직문화 _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야 할 행동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 5가지
그 중 이번주 뉴스레터에서는 요즘 시대의 특징 6가지를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정말 편하게 읽어보시며 우리 회사와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 ‘정답이 없고, 지도가 없는 시대’
① 퇴사하지 못하는 엘더
‘엘더(elder·연장자)’라는
명칭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50대가 넘어선 선배들 중에 임원이나 팀장이라는 리더십 타이틀을 갖지 못한 직원을 일컫는
말이죠. 수년 전만 해도 은퇴 전 많은 선배들이 퇴사하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었는데 요즘 회사 밖에서의 생존이 위험하다고 느끼며
조금 더 조직에서 머무르려는 직원들이 많아 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생긴 용어입니다.
저 또한 많은 대기업들과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기에 이 메시지의 무게와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밖에는 없더라고요.
A팀장님은
팀원 7명 중에 3명이 과거 자신의 팀장이었던 분이고, 팀에서 가장 연봉이 높았던 25년차 부장님이 영수증 정리를 하고 있었고
대리/ 과장들이 중요한 기획서를 작성하고 있는 B팀장님의 고민도 참 해결하기 어려웠었습니다. 또 어떤 부서는 고참 임원과 고참
팀원들로만 구성된 팀을 만들어 어려운 과업보다 익숙하고 해결하기 쉬운 과업을 부여하기도 하죠.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엘더의
연봉이 팀장보다 더 많은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죠. 이를 지켜보는 요즘 세대들은 ‘왜 연봉을 많이 받는 선배보다 연봉이 낮은
내가 더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엘더와 팀장을 압박하기도 합니다.
과거
엘더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었습니다. 그들의 경험이 일하는 방식이 되었고, 그 방식으로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엘더의 지식과 경험이 더 이상 큰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더라고요.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의 특징을 조금 이해해 볼 수 있다면 조직의 방향성과 구성원 개개인의 성과와 성장 방정식을 조금은 다르게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② 요즘 시대의 특징 하나, ‘정보의 공유‘
Knowledge
Doubling Speed, 벅크민스터 풀러 박사가 공유해준 지식 배가 곡선의 메시지 입니다. 너무 빠르게 지식이 쌓이고,
새로워 지고 있다는 의미이죠.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 팀에서 연장자가 가장 많은 지식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죠. 팀장도 비슷합니다.
이로 인해 한 회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찾고 공유하고 있죠.
1) 모든 구성원들이 정기적으로 외부 커뮤니티에 참석하고, 매달 팀 모임에서 그 내용을 공유합니다. 우리가 몰랐던 지식과 경험을 외부로 부터 학습하고 동료에게 공유하는 것이죠.
2)
이보다 더 강력한 지식 인풋의 방법으로 ‘외부 경력직을 지속해서 채용‘합니다. 이때 채용의 핵심은 ‘우리 회사가 가지지 못한
지식과 경험을 가졌는가?’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 경력직이 입사를 함과 동시에 기존 구성원들은 외부 경력자와의 원온원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학습'하고 자신들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더라고요.
3)
주간회의 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팀도 있습니다. ‘동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라는
목적에 따라 모든 구성원들은 매주 1명씩 20분 동안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발표합니다. 전 직장에서의 프로젝트 경험, 자신이
했던 스터디에서 얻은 인사이트, 외부 멘토와 코치로 부터 얻은 지식 등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죠.
이 세가지 행동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지식을 우리의 업무에 적용하자.’는 것이죠.
③ 요즘 시대의 특징 둘, ‘지식의 역전‘
과거에는
팀장이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팀장보다 더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팀원들이 많이 알게
되더라고요. 팀장은 임원과 팀원들 사이에서 너무 바빠 외부 활동이나 학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 중 성장과 성공에
관심이 있는 직원들은 외부 커뮤니티, 대학원, 독서 클럽 및 사이드 프로젝트, 외부 멘토와 코치 등을 통해 회사가 가진 지식과
경험 이외에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익히게 되었죠.
팀장과 엘더가 가지고 있는 과거 지식이 더 이상 지금 시대에 통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이들이 바로 ‘선배가 모르는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외부에서 수혈’ 받은 팀원들입니다.
이들은
팀장과 선배의 조언과 티칭을 ‘꼰대와 라떼‘라며 옛날 지식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특히, GPT와 다양한 IT 도구들, 유투브와
다양한 디지털 도구들은 회사 내 선배가 꼭 필요한 존재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죠.
④ 요즘 시대의 특징 셋, ‘지식 생산자‘
임플로이언서 (Employee + Influencer’ 직원들 중에 SNS와 방송 등을 통해 영향력을 갖춘 사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요즘
개인 SNS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죠. 저 또한 페이스북, 링크드인,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매일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2018년 7월 1일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매일 쓰기 시작했으니 벌써 2200일이 넘었더라고요.
유투브에서
‘백종화‘ 라는 이름을 치면 외부 강연을 했었던 영상들을 찾을 수 있고 5,800여명이 구독해 주시는 뉴스레터와 책도 7권이
출간을 했네요. 직장을 다닐 때 어느 순간 ‘B사를 다니는 백종화‘가 아니라 ‘백종화가 다니는 B사‘ 라고 불러 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후배 중에 ‘제가 다니는 회사를 입사하고 싶다'며 이력서를 낸 친구들도 있었고요.
저는
글이라는 매개로 매일 콘텐츠를 만들어 냅니다. 탁월한 지식은 아니지만, 내 경험과 생각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가장 적합한 지식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콘텐츠를 생산하는 활동을 오래하다 보니 여기저기에 제 생각과 경험들이 많아 졌고요.
지금
시대는 누구나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시대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식은 ‘연구기관, 성공한 기업과 경영자, 학자'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초등학생도 자신의 지식을 만들고 공급할 수 있고, 그 누구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된 시대가 된 것이죠. 반면 IT에 능숙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주저하는 선배들에게는 ‘알겠어. 알겠는데
못하겠어.’ 라는 좌절을 주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⑤ 요즘 시대의 특징 넷, ‘기업 내부 지식 생산 / 공유‘
빠른
기업들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회사 내 인트라넷에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현대
제철의 ‘기술 지식 공유 플랫폼‘. SK 하이닉스의 노하우를 협력사에 공유하는 ‘DBL 스퀘어‘, 수험생의 질문에 교수 /
서포터즈가 1대 1로 답변을 하는 에듀윌의 ‘에지인‘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
첫번째 직장도 비슷한 플랫폼이 있었습니다. 저음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던 2004년,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내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정리해서 LUTI 라는 플랫폼에 업로드 했어야 합니다. LUTI 점수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승진의 기회가 박탈
되었죠. 내 지식을 업로드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후배가 업로드한 지식들을 읽고 적용하기도 해야 했습니다. LUTI 는 내
지식을 업로드한 숫자와 다른 누군가가 내 지식을 보고 어떻게 적용했었는지를 점수로 환산해서 티칭 점수를 나에게 주었고, 내가
다른 사람들의 지식을 학습하고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보며 학습 점수를 주었거든요. 두 점수가 합산되어서 내가 얼마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학습했는지로 평가 받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문화가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며 성공도, 실패도 기록하고 공유할 수 밖에 없는 회사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기업 내부보다 외부에서 지식을 더
많이 찾게 된다는 것이죠. 외부에서 얻는 지식의 양과 질이 내부에서 얻는 것보다 더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⑥ 요즘 시대의 특징 다섯, ‘조용한 소속감‘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바로 희미해지는 소속감입니다. 10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평생
직장‘ 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내 지식과 경험을 내 선배들로 부터 얻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모든 직장인들이 알아가기 시작했죠.
대퇴사의 시대, 대이직의 시대,
조용한 퇴사, 대해고의 시대라는 신조어가 생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한번 입사하면 끝까지 책임지는 회사가 아닌,
회사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는 불확실한 비즈니스 환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똘똘한 직장인들은 평생 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성장과 성공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과 조직을 선호하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⑦ 요즘 시대의 특징 여섯, ‘공존의 시대‘
또 다른 변화는 앞에서 이야기한 평생 직업을 선택하며 자신의 업에서 주도권을 가져간 직장인 외에 ‘편안하게 일을 하며 은퇴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배짱이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승진도
관심이 없고, 연봉 인상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조금 더 편안하게 일하고, 저녁 시간과 주말 시간을 나와 가족을 위해서만
사용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직장인들입니다. 극단적인 개미와 배짱이가 우리 조직에 함께 존재하는 시간이 바로 요즘 시대의
특징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떤 삶을 선택하고, 어떤 회사와 동료를 선택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조직과 개개인이 내릴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그런 조직을 선택해야 하고,
내가 빠른 성장과 성공을 원한다면 ‘지식과 경험을 확장하며 나의 성장과 성공에 관심 가져주는 조직과 리더'를 만나야 하는 것이죠.
요즘 시대는 ‘정답이 없는 시대, 지도가 없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만의 목표‘가 될 수 밖에는 없죠.
그 답을 스스로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여러 패널께서 상황에 따른 다른 리더십이 필요함을 말씀해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업에서 리더십 진단을 하거나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하려면 일관된 도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공정성/타당성 등을 위해서라도요.)
실제로 컨설팅하시거나 현업을 경험하시면서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는 리더십 진단 방법 혹은 도구가 있을까요?
A (100coach) 생각 (정답이 아닌, 백코치의 관점입니다.)
리더십
다면평가의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면 평가에서 다면 피드백으로 말이죠. 이제 리더십은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도전을 좋아하는 리더, 편안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리더, 학습과 피드백이 중요한 리더, 관계가 중요한 리더,
개척하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것을 잘하는 리더와 안정적인 운영을 잘하는 리더 등 다양한 리더십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죠.
리더십을 평가하게 된다면 회사가 정한 리더십의 모습에 맞게
리더십을 갈아 끼울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의 리더십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없는 시대거든요. N가지의 다양한
리더십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조직의 문제를 풀고 목표를 달성해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특히,
공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모든 구성원들의 말을 다 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게 되었고요.
도전적인 리더와 피드백을 중요하게 여기는 리더를 싫어하고 나쁘게 평가하는 팀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 조직에 필요한
리더일까요? 기준은 이제 조직과 구성원의 상황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평가가
아닌, 피드백의 관점으로 리더십 다면 진단을 바라봐 주시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리더십 다면 진단의 결과를 가지고 리더와 리더의
상사 그리고 HR이 모여 토론하며 더 나은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피드백하고 코칭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죠.
다면 평가가 아닌, 성장을 위한 다면 피드백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지금 하고 계신 고민은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시대를 정보 홍수의 시대라고 합니다.
각종 정보가 유투브, 에스엔에스라는 매체로 세계적으로 유포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을 게시합니다.
그런데 홍수가 넘쳐나도 마실 물이 없다는 말처럼 아모스 선지자는 말씀의 기갈이라고 탄식합니다.
말씀의 기갈이 오는 이유
1. 강팍함(스가랴 7: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돌처럼 마음이 굳어지면 하나님 말씀이 어떤 감동적인 말씀이라 할지라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받으려면 깨끗한 마음이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은 은총의 말씀 앞에 자신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은총의 말씀이 좋은 마음과 착한 마음에 심어져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말씀으로 생각하는 성숙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겠습니다.
2. 교만(누가복음 10: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만한 자들에게는 숨기십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같이 깨끗한 마음의 영혼들에게, 겸손한 영혼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은 양약으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3. 하나님의 진노(사무엘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섬기는 당시에 하나님은 진노하심으로 이상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회개할 일이 있는지 찾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8장 27절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혹시라도 내가 변화될까 두려워서 귀를 막고 눈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말씀은 결코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4. 마귀의 역사(마태복음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은혜를 담는다면 여러분은 마귀에게 그 마음의 땅을 빼앗기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은 사탄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장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절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죄악으로 어두워져 가는데 무엇으로 이곳에서 나를 건질 수 있을까요?
다니엘서 9장 13절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말씀에
흥미와 관심이 사라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의 기갈은 곧 하나님 백성의 실패입니다. 오직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만이 우리를 붙드실 수 있습니다. 주의 발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기쁨으로 받길 간구하시고 사모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계 기아와 영양실조에 관한 7가지 사실
풍요로 가득한 2024년에도 기아는 여전히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입니다. 전 세계 기아와 영양실조에 대해 알아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이 기아를 겪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인구 11명 중 1명이 기본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이 한참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2. 수단은 세계 최악의 기아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수단은 재앙 수준의 기아를 겪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분쟁으로 광범위한 강제 이주민이 발생하여 2023년에는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위기 수준의 식량 부족에 직면했습니다. 2024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현재 수단의 일부 지역은 기근에 직면해 있습니다.
2024 세계 위기국가 1위 수단 위기 더 자세히 알아보기
3. 기아와 영양실조는 똑같지 않습니다
기아는 음식 부족으로 인한 신체 상태를 말하며, 영양실조는 단백질이나 에너지 부족과 같은 영양 결핍을 의미합니다. 닮은 듯 다른 이 두 가지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전 세계적인 기아 위기는 영양실조 위기이기도 합니다.
4. 어린이 사망의 거의 절반이 영양실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아
관련 건강 문제는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며, 어린이 사망의 거의 절반이 영양실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영양실조에서 살아남은
어린이의 경우에도 신체 및 인지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등 심각하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5. 영양실조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치료를 받는 어린이는 5명 중 1명도 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4,500만 명의 5세 미만 어린이가 급성 영양실조를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매년 200만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인해 사망하고 있습니다.
급성 영양실조를 치료할 수 있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검증된 치료법이 있지만, 필요한 치료를 받는 어린이는 5명 중 1명도 되지 않습니다. 더 간단한 접근 방식을 통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6. 전 세계적으로 기아 퇴치를 향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기아는 감소했습니다
. 오늘날에는 11명 중 1명(9%)이 굶주리고 있지만, 1970년에는 4명 중 1명(또는 24%)으로 훨씬 더 높았습니다. 기아는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기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심화되는 분쟁, 기후변화, 극심한 빈곤은 점점 더 소수의 국가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영향을 받는 지역과 국가의 사람들은 한꺼번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기아 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7. 기후변화와 분쟁은 기아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지구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자연재해가 증가하고 있으며, 가뭄과 홍수 등 기후 관련 재해로 인해 농지가 파괴되고 식량 불안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 식량 가격은 2050년까지 20% 상승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후변화는 농지의 50%
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습니다.
분쟁은 세계 기아의 또 다른 주요 요인입니다. 기아를 겪는 85% 이상의 사람들이 분쟁에 영향을 받는 지역
에 살고 있습니다. 일례로 수단은 계속되는 폭력 분쟁으로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기존 문제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수단은 '인간이 만든 식량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기아 위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영양실조 치료 격차 해소
영양실조에
대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는 어린이는 5명 중 1명도 되지 않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영양실조에 대한 접근
방식을 간소화하여 이러한 치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의 간소화된 치료법은 92%의 회복률과 21%의 비용 절감 및 접근성 향상을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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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구조위원회와 함께해 주세요
국제구조위원회는 분쟁과 재난으로 삶이 무너진 사람들의 생존과 복구, 재건을 돕습니다. 1933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도움으로 설립되어 현재 40개 이상의 위기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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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 3천만명 굶는데 하루 10억 끼니 버려…온실가스 10% 차지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은 2022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먹을 것이 10억톤 넘게 쓰레기로 버려졌다고 27일(현지시각) 밝혔다.
음식물쓰레기지수 보고서 이미지 갈무리
전 세계적으로 7억3천만명이 굶주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하루에 10억 끼니 이상의 먹을 것을 내다 버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은 27일(현지시각) ‘음식물쓰레기지수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보고서를 보면, 2022년 한 해 동안
음식 및 식품, 식량 등 먹을 것이 10억톤 넘게 쓰레기로 버려졌으며, 이는 한 사람당 132㎏꼴로 전체 먹을 것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비용으로 따지면 1조달러(1340조원)에 이른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굶주리는 사람도 7억3천만명에 달한다.
먹을
것이 가장 많이 버려지는 건 가정이었다. 매년 버려지는 10억톤 분량의 음식물 쓰레기 중 60%가 가정에서 나왔으며, 28%는
음식점 등 요식업소, 12%는 소매 판매처에서 나왔다. 유엔환경계획 잉에르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먹을 것을 버리는 건 비극”이라며
“한쪽에서 수억명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음식물이 버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음식물쓰레기는
부자 나라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나라라도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는 한 사람당 7㎏까지 차이가 났다. 대체로 더운
나라들이 더 많이 버렸는데, 이는 더운 날씨에 신선한 식품이나 음식물을 오래 보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음식물
투기 및 손실은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8~10%가 먹을 것을 내다 버려서 나온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항공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보다 거의 5배 많은 규모다. 영국의 환경단체 ‘쓰레기와 자원 행동프로그램’(WRAP)의 해리엇 람
최고경영자(CEO)는 “음식물쓰레기가 야기하는 엄청난 환경비용, 사회 및 경제 비용을 고려할 때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더
협력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라별로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성공한 주목할 만한 사례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몇몇 나라에서는 2007년부터 시작한 음식물 낭비와 온실가스 배출 모범 사례 등을 공유하고 행동하는
‘공공-민간 파트너십(PPP)’을 통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이 성과를 보였다. 특히 일본은 거의 3분의 1이 줄었고, 영국은
18%가 줄었다.
세계 인구 8억명 굶주리는데…매일 음식물 10억만톤 버려져
전 세계에서 8억명이 굶주림을 겪고 있지만, 매일 10억 5000만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27일(현지시간)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이 발표한 최신 음식물 쓰레기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인구 중 8억명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매일 10억끼 분량의 음식물이 버려진다. 이는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농산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며,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 달러(약 135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는 81억명이 넘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매일 한 끼 이상의 식사를 낭비하고 있는 셈이며, 전 세계에서 생산된 음식의 19%를 차지한다. 1인으로 환산할 경우 132㎏에 달한다고 UNEP는 설명했다.
또한 "매일 10억끼씩 버려진다는 수치는 매우 보수적인 추정치이며 실제 폐기량은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음식물이
가장 많이 버려지는 곳은 가정으로 전체의 60%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호텔·식당 등 서비스업소 28%, 정육점·식료품점 등
소매업소 12% 등 순이었다. 가정에서 식사량보다 더 많은 식자재를 구입해 낭비하는 경우가 생기고, 개발도상국 등에서는 냉장 시설
부족이나 운송 중 손상 등으로 음식물이 상하면서 폐기된다는 것.
또한 이런 식량 낭비가 "도덕적으로도 문제지만,
환경적인 실패"라고 꼬집었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8~10% 수준으로, 항공 산업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의 5배에 이른다. 국가 배출량으로 따지면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할 정도의 양이다.
보고서는 "농업용지 조성이 자연생태계 내 서식지 손실의 주요 원인이며 음식물 쓰레기는 전 세계 농경지 30%를 유지하는 규모와 맞먹는다"면서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최대 10%를 차지하는 것도 음식물 쓰레기"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비영리단체 WRAP의 리처드 스와넬은 "현재 전 세계에서 굶주리는 8억 명에게 매년 버려지는 음식으로 하루 한 끼만
먹여도 (모두) 먹일 수 있다"며 "우리가 이미 구매하고 있는 음식을 더 잘 활용한다면 탄소 발자국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비용을 절약할 기회가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에 대해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 25억 6천만,종교인들 중 가장 많아… 남반구 큰 증가폭
전세계에서 기독교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남반구에서 기독교 인구 증가폭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든콘웰신학대학교 글로벌기독교연구센터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세계 기독교 현황(Status
of Global Christianity, 2022)에 따르면, 올해 중반 기준 기독교 인구는 전체 79억 5300만 명 가운데
3명에 1명꼴인 25억 6000만 명으로 전 세계 종교 가운데 가장 많았다.
2025년에는 약 26억 3700만 명, 2050년에는
33억3400만 명으로 앞으로도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을 것으로 전망됐다.
기독교 인구 통계자료는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도 포함되어 있는데, 가톨릭은 12억 명, 정교회는 약 3억 명을 차지했다.
기독교 인구 중에는 오순절 계열과 복음주의 계열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오순절 계열은
1.88%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약 6억7000만 명, 복음주의 계열은 1.8% 추세에 약 4억 명, 프로테스탄트 계열 역시
1.54%에 약 6억 명으로 강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특히 오순절 계열은 2020년 4억4000만 명에서 약 20년만에
2억3000만 명이 증가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라질 등 남미 국가에서 가톨릭 신자가 급감하고 있으며,
오순절 교회로 개종이 늘고 있다”면서 “대중을 끌어안고 빈곤층을 위해 사역하는 오순절 교회에 사람들이 관심을 더 갖고 있으며,
특별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복음주의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지친 사람들을 위로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독교인 다음으로 많은 종교 인구는 무슬림 19억 6000만 명, 힌두교인 10억 7000만 명, 불교도 5억 4000명 순이었다.
또한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자(Agnostics)는 0.59% 증가하며 약
7억 5000만 명,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Atheists)는 0.18% 1억 4700만 명에 그쳤다. 1970년 이후
불가지론자는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무신론자의 비율은 꾸준히 감소했다. 발표 자료에서는 2025년에는 1억 4300만 명,
2050년에는 1억 4200만 명으로 무신론자는 오히려 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자료에서 주목해볼만한 것은, 선진국들이 몰려 있는 북반구에 비해 저개발국과 도발개상국이 많은 남반구의 기독교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다.
북반구에서는 기독교인이 0.13% 증가한 약 8억 4000만 명이었으며,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일부 국가가 포함되어 있는 남반구는 1.79% 증가한 17억 2000만 명이었다.
대륙별로 보면 유럽 기독교인이 0.06% 증가세 중 5억 7000만 명, 북미 0.27%에
2억 7000만 명이었다. 반면 아프리카는 무려 2.77% 증가한 6억 9000만 명이었고, 남미 1.09% 증가한 6억 1000만
명, 오세아니아 0.73% 증가한 약 3000만 명이었다.
2000년 당시 통계와 비교해 보면 북반구는 8억 1000만 명에서 소폭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남반구는 11억 7000만 명에서 17억 200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2018년 발표된 조사자료와 비교해보면 아프리카
기독교 인구는 6억 명으로 불과 4년 사이에 9000만 명의 기독교 인구가 늘었다.
한편, 타문화권에서 사역중인 선교사는 43만 5000명, 파송 선교단체는 5700개로 추정됐다. 또 지난 10년간 순교자수는 90만 명으로 20여년전인 2000년의 160만 명에 비해서 줄어들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복음을 모르는 인구는 22억 2300만명으로 이는 전 세계 인구의 28%에 해당한다.
9월 30일(화) 아모스 7-9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기갈(飢渴)(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The days are coming," declares the Sovereign LORD, "when I will send a famine through the land-- not a famine of food or a thirst for water, but a famine of hearing the words of the LORD.
보라 날이 이를지라
- '이를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임'(*)은 '들어오다'는 의미를 가진 '보'(*)의 분사형으로 역동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람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셨다. 백성들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말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시 74:9; 애 2:9; 겔 7:26; 호 5:6).
기갈(飢渴) : 주릴 기, 목마를 갈
a thirst for water
기갈이란 한글사전의 정의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영어성경에서는 "a thirst for water(NIV)"
갈함(6772) 차마( tsâmâʼ ) צָמָא
1. 갈증. 2. 목마름. 3. 겔 19:13.
발음
[ tsâmâʼ ]
어원 /
구약 성경 /
-
관련 성경 / 목마름(출 17:3, 시 69:21, 사 50:2, 신 28:48, 대하 32:11, 애 4:4), (해)갈(시104:11), 메마른데(렘 48:18, 겔 19:13),
갈증(사 41:17).
주림(7458) 라아브( ) רָעָב
-
1. 명사, 남성
배고픔, 굶주림, 기근, 창12:10, 14:30, 애5:10.
-
관련 성경
☞기근(창12:10, 대하6:28, 사14:30), 흉년(창26:1, 왕하4:38, 느5:3). [형] 주린(출16:3, 왕하6:25, 느9:15).
육신적으로 너무 풍성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갈급한 시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 많은 설교자들의 동영상에 의한 설교가 넘쳐나고 있지만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텅빈 공간에서 메아리만 울려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 기갈의 시대가 닥쳐왔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8장 11절에서 언급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겪게 될 영적 기근을 의미합니다.
양식이나 물이 부족한 육체적 기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그분의 뜻에서 멀어진 상태를 지칭합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음을 알리시며,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겠다는 경고입니다.
1884년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을 받은 조선 땅에 급성장한 교회가 이제는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141년만의 기적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후 100년 만에 급성장하였으나 이제는 급하게 감소되는 현상은 교회안에 젊은층이 전멸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2025년 한국에서 각 교단의 총회를 마치면서 발표한 교세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래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년령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입장입니다.
그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선지자 아모스는 "영적 기갈"이 그 원인이라고 외칩니다.
핵심 내용
환상의 의미 :
아모스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여름 과일 한 광주리 환상에 이어,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보내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영적 기갈 :
이는 단순히 먹을 것이나 마실 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영적인 굶주림,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
이 기갈은 이스라엘의 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조이며, 하나님의 인내가 다하여 그들을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겠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이스라엘의 태도 :
북이스라엘은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미래 :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이스라엘의 기쁨은 애곡으로 변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잃어버린 채 심판을 맞이할 것입니다
진정한 위기는 '말씀의 기갈'에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11)
교회에서 몇 개월에 걸쳐 아모스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에 가졌던 아모스에 대한 선입견도 깰 수 있었고, 그 말씀의 깊이와 넓이에 감격하며 깊은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모스의 힘은 그 말씀이 오늘 날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매주 깊은 울림을 만듭니다.
위에
언급한 아모스의 한 구절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아모스 전체 중의 백미라고 여기는 부분입니다. 이는 5장 24절의 말씀과 극적인
호응을 이루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잘 알려진 대로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지로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과 '하수'는 생명의 근원, 생명수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물'과
'강'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경에서는 주로 그렇게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법과 정의를 생명의 근원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공의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을 향한 최후통첩이자 살 길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지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
그러나 아모스 8장에서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용서를 베풀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생명수를 이제는 마셔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더 이상 그들에게 그 생명수가 공급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심각하게 타락한 것은 그들 가운데 바른 진리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그들의 타락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짐으로 타락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끊어지는 저주를 받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는 가장 근본적인 뿌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와 민족과 국가가 모두 분열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선택하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는 특수성이 완전히 상실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큰
저주가 이스라엘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지만,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심각한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과연 ‘신자 됨’이란 무엇인가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문제를 던져 줍니다. 곧, ‘신자 됨’이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과연 무엇으로 ‘신자 됨’을
증명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적 측면들, 선행이나 도덕, 양심의 발현 등으로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처럼 일반계시
영역 안에 존재하는 사항들로는 특이성 자체를 찾을 수 없고, 더욱이 선행의 문제에 있어서 결코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른
종교의 사람들 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독특한 종교적 경험으로 우리의 신자 됨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만의 특별한 종교적 경험이라고 하는 일들이 이단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종교들 속에서 우리보다 더 활발히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날의 이스라엘인 교회와 신자 역시도, '신자 됨'과 '교회 됨'을 찾을 근거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생명으로 공급받고 그것으로 존재를 유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유일한 '신자 됨'의 증거이겠지요.
그러므로 오늘 날 교회와 신자가 염려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할 상황은 맑은 생명수가 사라지고 썩은 물이 흐르는 일일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생명수가 되어 우리 가운데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애통해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많은 '걱정'을 하시는 '분'들의 말씀 속에서는 이러한 '염려'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걱정'에 앞장
서는 분들일수록 '더 크고', '더 많은' '목회'와 '사역'을 하시는 분들이라 더 안타깝습니다.
진리가 기갈 된 시대…우리의 눈물마저 말라버린 시대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 합니다. 곧, 진리에 심각한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진리를 전하고 붙드는 일이 우리의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썩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그 물이 마치 생수인양 벌컥벌컥 마셔대고 있는데도 뒷짐 지고 다른
일에만 열을 내고 있다면 그것 이상 심각한 직무유기가 어디에 있을까요.
세상을 향해 애통해하며 흘릴 눈물은 세상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야 어차피 세상의 방식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단지 그 세상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양심에 따라,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충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돕는 것까지가 교회와 신자의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진정 흘릴
눈물은 우리 가운데에 이미 벌어지고 있는 말씀의 기갈을 향한 눈물이어야 하겠지요.
시국을 걱정하시는 많은 분들을 보고 문득 씁쓸한 마음이 들어 몇 자 적어봤습니다.
홍수가 닥치면 주위 사방에 물이 많지만 마실 물은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아이러니라고 합니다.
아이러니(irony) 뜻, 종류, 유래, 어원
아이러니(irony)는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의미하는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말과 행동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의도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게 표현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irony) 뜻
아이러니(irony)는 말과 행동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의도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게 표현될 수도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 방법이다.
아이러니를 사용하면 독자나 청중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아이러니(irony) 종류
1. 언어적 아이러니
말과 행동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을 미워하는 경우이다.
2. 상황적 아이러니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기대했는데, 시험에 떨어지는 경우이다.
3. 구조적 아이러니
작품의 구조 자체가 모순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는데, 비극적인 결말이 나오는 경우이다.
아이러니는 문학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품의 주제를 더욱
강조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아이러니는 문학에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으며 독자나 청중의 기대를
뒤집을 수 있고,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다.
아이러니(irony) 유래, 어원
아이러니(irony)는 모순, 역설, 이율배반, 부조화 등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위장(僞裝)'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에이로네이아(eironeia)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위장이라고 하면 무엇을
은폐하여 드러나지 않게 하는 실제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아이러니는 좀 더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뜻을 내포한다.
아이러니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되어 왔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無知)를 가장한 채 논쟁의 상대에게 접근하여 그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칭 지자(知者)라고 자부하는 상대방의
내적 모순을 폭로하고 스스로 무지함을 자각하게 하는 방법을 썼다.
이를 가리켜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라 불렀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지적(知的)인 날카로움을 갖는다는 점에서 기지(wit)와
통하고, 간접적으로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풍자(satire)와 통하며, 은유의 방법을 쓴다는 점에서 유머(humor)와 통한다.
이는 상대방의 생각을 자극하고 진실을 깨닫도록 돕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아이러니는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활용되었다. 특히 희곡에서 아이러니는
등장인물의 행동과 운명의 역설성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햄릿은 삼촌에게 살해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척 미쳤다고 행동하는데, 이는 상황적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아이러니는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뉴스 기사, 정치적 발언, 심지어 개인적인 대화에서도 아이러니를 찾아볼 수 있다. 아이러니는 사회 문제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며, 상황의 유머러스함을 표현하는 데에도 활용한다.
“홍수에 마실 물 없다”는 옛날 속담이 있습니다.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홍수로 인해서 물은 넘쳐나지만, 정작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물은 없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로움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물질의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은 넘쳐나지만 정작 마실 물이 없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도 오늘날처럼 물질이 풍요로운 때였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가들은 ‘모든 것이 잘되어 간다’고 기세등등했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향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때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 경고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들이 배고파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고,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 11절의 말씀으로 오늘 우리 한국 사회를 조명해 보면 어떨까요? 성경이 널리 보급되어 있고,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동네마다, 골목마다 교회가 자리 잡고 있고, TV와 라디오, 인터넷에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인 수가 더 늘어나야 할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늘어나기보다는 오히려 교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은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서 깨닫지 못하는, 영적 둔감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는 말씀은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심판 때는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마지막 때에 영적 기갈이 다가오는 것일까요?
영적 기갈의 원인 / 무감각(無感覺), 무관심(無關心), 불만족(不滿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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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변(周邊) 상황(狀況)이나 사람에 대하여 관심(關心)이 없음.
감각의 종류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감 외에도 다양한 감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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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빛과 색을 인식하는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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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소리를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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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냄새를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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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 맛을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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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 접촉, 압력, 온도를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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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감각: 신체의 균형과 위치를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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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감각: 신체 부위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감각입니다.
감각의 과정
감각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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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 수용: 감각 기관이 외부 자극을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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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환: 자극이 신경 신호로 변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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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 신경 신호가 뇌로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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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뇌가 신호를 해석하여 의미 있는 정보로 만듭니다.
감각의 특성
감각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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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성: 지속적인 자극에 대해 감각의 강도가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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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치: 감각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자극 강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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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성: 특정 자극에만 반응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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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차: 같은 자극에 대해 개인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감각의 중요성
감각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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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인식: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안전: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학습: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데 기초가 됩니다.
-
즐거움: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입니다.
감각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각 감각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통합되어 우리의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감각의 정확성과 민감성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나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각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은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중요합니다.
인식(認識)
인식(認識)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을 의미하는 한자어입니다. 한국어로는 ‘어떤 대상을 알아차리고 분별하여
이해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인식은 단순히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대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포함하는 복잡한 정신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개인의 경험, 지식, 가치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같은 대상이라도 개인마다 다르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큰 개를 보고 위협을 느끼는 반면, 다른 사람은 같은 개를 보고 친근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식의 다양한 의미
인식은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
철학적 인식: 인간이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탐구합니다.
-
심리학적 인식: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하는 정신 과정을 연구합니다.
-
사회학적 인식: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분석합니다.
-
인지과학적 인식: 인간의 지각, 학습, 기억, 추론 과정을 연구합니다.
인식의 과정
인식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
감각: 외부 자극을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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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감각 정보를 조직화하고 해석합니다.
-
인지: 지각된 정보를 기존 지식과 연결하여 의미를 부여합니다.
-
판단: 인지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인식의 특성
인식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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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성: 개인의 경험과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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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성: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에 따라 인식이 달라집니다.
-
능동성: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합니다.
-
가변성: 새로운 정보나 경험에 의해 변할 수 있습니다.
인식의 중요성
인식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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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집니다.
-
행동: 인식은 우리의 행동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
관계: 타인에 대한 인식은 대인 관계의 질을 결정합니다.
-
학습: 새로운 정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학습 효과가 달라집니다.
인식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올바른 인식은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의 기초가 되며,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인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감(直感)
직감(直感)은 ‘이성적 판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을 의미하는 한자어입니다. 한국어로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이나 판단’으로 해석됩니다. 직감은 의식적인 추론 없이도 무언가를 곧바로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험 많은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즉시 진단을 내리는 경우나, 숙련된 운전자가 위험한 상황을 순간적으로 감지하고 대처하는 경우가 직감의
예시입니다.
직감의 특성
직감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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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성: 의식적인 사고 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판단이 이루어집니다.
-
직접성: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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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성: 다양한 정보를 순간적으로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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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차: 경험과 지식에 따라 개인마다 다른 직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직감의 역할
직감은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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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 복잡한 상황에서 빠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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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새로운 아이디어나 해결책을 떠올리는 데 기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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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감지: 잠재적 위험을 빠르게 인식하고 대응하게 합니다.
-
대인관계: 타인의 감정이나 의도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직감의 과학적 근거
최근 연구들은 직감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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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표지자 가설: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이론으로, 직감이 신체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과 관련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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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 인식: 뇌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패턴을 빠르게 인식하는 능력이 직감의 기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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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 처리: 많은 정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처리되어 직감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직감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전문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직감만을 맹신하기보다는 논리적 사고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감을 발달시키고 활용하는 능력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향상될 수 있으며, 이는 더 나은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감(五感)
오감(五感)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의미하는 한자어입니다. 한국어로는 ‘다섯 가지 감각’으로 해석됩니다. 오감은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는 우리의 경험과 인지 과정의 기초가 되며, 생존과 적응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시각으로 음식의 모양과 색을 보고, 후각으로 향기를 맡으며, 미각으로 맛을 느끼고, 촉각으로 질감을 느끼며, 청각으로 씹는
소리를 듣습니다.
오감의 종류
오감은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
시각 : 빛과 색을 인식하는 감각으로, 눈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
청각 : 소리를 감지하는 감각으로, 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
후각 : 냄새를 감지하는 감각으로, 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
미각 : 맛을 감지하는 감각으로, 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
촉각 : 접촉, 압력, 온도를 감지하는 감각으로, 피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오감의 기능
각 감각은 다음과 같은 고유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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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 물체의 형태, 색상, 움직임, 거리 등을 파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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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 소리의 높낮이, 크기, 방향 등을 인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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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 다양한 냄새를 구별하고 인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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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 :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을 감지합니다.
-
촉각 : 물체의 질감, 온도, 압력 등을 감지합니다.
오감의 중요성
오감은 우리 삶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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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인식 :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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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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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데 기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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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입니다.
오감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각 감각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통합되어 우리의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오감의 정확성과 민감성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나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감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은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중요합니다.
Q : 감각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A : 감각은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감각은 생존과 적응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우리의 경험과 인지 과정의 기초가
됩니다.
Q : 인식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A: 인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대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포함하는 복잡한 정신 과정입니다. 인식은 개인의 경험, 지식, 가치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직감의 기본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직감은 ‘이성적 판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이는 의식적인 추론 없이도
무언가를 곧바로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직감은 과거의 경험과 지식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Q: 오감이란 정확히 무엇을 말하나요?
A: 오감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오감은 우리의 경험과 인지 과정의 기초가 되며, 생존과 적응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1.
[명사] indifference, unconcern, apathy, [형용사] indifferent (to), unconcerned, uninterested (in), apathetic, careless (of)
관점 - 관심의 의미
사전적 - 주의와 마음이 향한 상태
심리학적 - 동기와 주의를 유도하는 감정적 에너지
철학적 - 존재에 대한 태도와 자각
사회적 - 관계 형성과 배려의 핵심
교육적 - 성장과 정서 안정을 위한 자극
종교적 - 사랑과 자비의 시작
문화적 - 표현 방식과 해석이 다양한 행위
만족(滿足)의 어원과 한자 의미
'만족(滿足)'이라는 단어는 한자로 '가득 찰 만(滿)'과 '발 족(足)'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직역하면 "그릇이 가득 차고 발이 충분하다"는 의미로, 무언가가 충분히 채워져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 '만(滿)' : 가득 차다, 넘치다, 충만하다
- '족(足)' : 발, 충분하다, 넉넉하다
한자의 구성 자체가 매우 상징적입니다. '만(滿)'은 물(水)이 가득 찬 상태를 나타내고, '족(足)'은 기본적인 이동 수단인 발을 의미합니다. 이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상태, 즉 생활의 필수 요소가 채워진 상태를 암시합니다.
만족의 심리학적 의미
심리학에서 만족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상태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사랑의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 다양한 단계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욕구들이 충족될 때 만족감을 느낍니다.
흥미로운 점은 만족이 단순히 '많이 가진 상태'가 아니라 '충분하다고 느끼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는 만족이 객관적인 조건보다는 주관적인 인식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 사회와 만족의 역설
현대 사회는 역설적으로 '만족'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비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고, 소셜 미디어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킵니다.
뉴스와 광고는 우리에게 "아직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합니다. 더 나은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연봉, 더 멋진 여행... 이러한 끊임없는 '더 많이'의 추구는 정작 현재의 '충분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옛말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는다(知足不辱)"라는 말이 있습니다. '족함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욕심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뜻합니다.
만족의 다양한 형태
만족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몇 가지 주요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1. 물질적 만족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만족으로,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될 때 느끼는 만족감입니다. 배고픔을 해소하는 식사, 추위로부터 보호해주는 따뜻한 집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2. 정서적 만족
관계와 소속감에서 오는 만족으로, 사랑받고 존중받는 느낌, 의미 있는 관계에서 오는 충족감 등이 포함됩니다. 가족, 친구, 동료와의 깊은 유대감은 정서적 만족의 중요한 원천입니다.
3. 성취적 만족
목표를 달성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입니다.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 자신의 기술과 지식이 성장했음을 느낄 때의 만족감이 여기에 속합니다.
4. 존재적 만족
자신의 존재 자체, 삶의 의미와 목적에서 오는 만족감입니다. 자신이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 자신의 삶이 의미 있게 흘러가고 있다는 인식은 깊은 존재적 만족을 가져옵니다.
동양 철학에서의 만족
동양 철학, 특히 도가와 불교에서는 만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노자는 "족함을 아는 것이 부유함이다(知足之足, 常足矣)"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만족을 아는 사람은 항상 풍요롭다는 의미로, 참된 부(富)는 외부적 조건이 아닌 내면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불교에서는 '만족'을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합니다. 욕망(갈애)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보는 불교에서,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태도는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중요한 실천입니다.
서양 철학에서의 만족
서양 철학에서도 만족은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이란 단순한 쾌락의 극대화가 아니라 고통의 부재와 마음의 평정(아타락시아)이라고 보았으며, 이는 욕망을 제한하고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것에 만족하는 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외부 환경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만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네카는 "자연에 따라 사는 자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삶에서 진정한 만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현대인의 만족을 위한 실천적 제안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만족을 경험하기 위한 몇 가지 실천적 방법을 제안합니다:
1. 감사 습관 기르기
매일 감사일기를 쓰거나 감사할 일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 것은 현재의 풍요로움에 주목하게 해줍니다. 이는 '아직 부족한 것'보다 '이미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고방식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2. 비교 습관 줄이기
소셜 미디어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타인과의 비교보다는 자신의 내적 기준에 따라 만족감을 판단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교는 만족의 도둑"이라는 말이 있듯이, 끊임없는 비교는 만족감을 앗아갑니다.
3. 최소주의(미니멀리즘) 실천하기
물질적 소유를 줄이고 정말 필요하고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생활 방식은 만족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덜 소유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4. 경험에 투자하기
물질적 소유보다 의미 있는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 더 지속적인 만족감을 가져옵니다. 여행, 배움, 관계에 투자하는 것은 장기적인 만족과 행복에 기여합니다.
5. 자신의 '충분함'의 기준 정립하기
스스로에게 "얼마나 있으면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자신만의 '충분함'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은 끝없는 욕망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만족과 성장의 균형 찾기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에 안주하거나 발전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만족은 현재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건강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균형 있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오늘의 나에게 만족하되, 내일의 나를 위해 노력한다"는 태도는 현재에 대한 감사와 미래를 향한 건강한 열망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결핍의 시대, 만족이라는 혁명
우리는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만족감은 더 낮아진 듯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족'이라는 개념을 재발견하고 실천하는 것은 일종의 조용한 혁명이 될 수 있습니다.
만족은 단순히 현실에 안주하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선택입니다.
'만족'의 한자 '만족(滿足)'이 말해주듯, 진정한 만족은 그릇이 가득 차고 발이 충분한 상태, 즉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외부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상태입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에 만족하시나요?
그리고 그 만족은 진정 당신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함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1. 죄에 대한 무감각
2. 말씀에 대한 무관심
3. 육신에 대한 만족
1. 영적 기갈이 다가오는 것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기 때문
호세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다면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외쳤습니다.
아모스는 특별히 경제 정의를 외쳤는데, 그가 활동하던 때에 이스라엘이 범한 죄의 내용이 본문 4-6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를 괄시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적인 부정과 불의는 지배자들의 재판과정에서만 자행된 것이(5:7-13) 아니라 시장 등 사회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월 첫날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정했습니다. 그것을 월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도 지켰습니다. 누가 보아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없습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아까워하면서 지켰습니다.
몸은 예배에 왔지만 마음은 ‘언제 예배 시간이 끝날까?’ 마음은 딴 곳에 가있습니다.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아 빨리 곡식을 팔아야 하는데 이놈의 월삭은 왜 이렇게 자주 오는 거야, 빨리 밀을 팔아야 하는데 왜
안식일을 이렇게 자주 오는 거야 귀찮아 죽겠네. 안 지키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지키자니 시간이 아깝고.’ 이런 말입니다.
이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마귀는 예배 시간을 제일 싫어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배를 방해하려고 하고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마귀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예배를 잃어버리자 그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거짓과 속임수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에바’는 곡식을 담아 파는 그릇이었는데 이것은 작게 만들고 돈을 받을 때 쓰는 단위인 ‘세겔’은 크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거래의 부정행위, 사기 치는 일로 인해 이스라엘에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가중되었습니다.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이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면 신발 한 켤레 값에 사람을 종으로 팔아먹어버리는 인신매매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찌꺼기 밀을 팔자.” 이것은 가진 자들이 자기들은 먹지 않으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찌꺼기 밀을 판 것을 말합니다. 권력과 결탁한 힘 있는 자들의 부정부패는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는데서 극심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아모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의 개념과 감각이 없었습니다. 아모스의 책망이 있었지만 저희들은 여전히 죄를 밥 먹듯 저질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씀을 듣고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치 전범으로, 수많은 유대인을 끝까지 잡아 학살하던 악명 높은 아이히만이라는 한 독일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악의 화신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생명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파리 목숨처럼 앗아갔습니다.
아이히만은 전쟁 후 오랜 세월 경찰의 추적을 피해서 도망 다니다가 결국에 붙잡히게 되었고, 1961년에 유대인에 대한, 인류에 대한, 전쟁에 대한 범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악마와 같은 모습, 눈에 핏발이 서고 증오와 살기로 가득한 한 사람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의 모습은, 그저 평범한 50대 중반의 한 가장의 모습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아이히만의 변론이었습니다. 그는 잘못했다든지 용서해 달라든지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악에 대해,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사람이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면 어떻게 되는 지 보여주었습니다.
영적
기갈의 징조는 죄에 대한 무감각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율법이 없어도 사람이 죄를 알 수 있는 것은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양심이 있어서입니다.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인간, 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면 머지않아 영적인 기갈이 다가옵니다. 이때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이기적으로, 내 멋대로 사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께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기 때문(아모스 8: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왜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잔소리로 여겨질 만큼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서의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의 말씀에 귀를 닫았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싸우고 아옹다옹 할 때는 그래도 애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정이 식으면 말하기도 싫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심판을 경고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실 때는 그래도 기대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자 하나님은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언자를 보내지도 않고 이상으로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포로 귀환 후 말라기를 끝으로 400여 년 동안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모스
시대와 지금 이 시대의 동일한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교만하고 강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포스트모던이즘의 영향으로 유일신과 절대 구원을 주장하는 기독교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면 성도들도 영향을 받아 영적 수준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보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외면하고, 성경에 먼지가 쌓이게 됩니다.
마태복음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누가복음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마지막
시대에 다가오는 말씀의 기근은 성경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늘날처럼 성경이 널리
보급되어 있고, 교회가 많은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주리고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몰라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하나님 이름만 나와도 귀를 닫고,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 기갈이 생깁니다.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요한복음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마다 생명의 떡으로 영혼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생수의 강으로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주리고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도 되고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양식이며 생수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3. 영적 기갈이 다가오는 것은 육신의 것에만 몰두하기 때문
13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여기서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는 인간이 육신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강할 때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왜 다 쓰러지는 것일까요?
육신적으로 최고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고 영적인 기갈이 다가오면 아름답고 젊음이 충만하던 젊은 남녀도 맥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인간이 육신적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솔로몬은 우상숭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것에 몰두하면 자연적으로 영적인 것은 관심 밖이 됩니다.
말년에 하나님께로 돌아온 솔로몬은 육신의 것에 몰두했던 지난 삶에 회고하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4)
옛날이나 지금이나 청춘 남녀들이 하나님 말씀 없이 세상을 방황하다 넘어지고 자빠지기가 부지기수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지만 젊은이들이 육신의 것에 몰두하면 술과 마약을 하며 온갖 음란의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육신의 것에 몰두하면 또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본문 14절을 보겠습니다.
“사마리아의 죄 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깁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어놓고 복을 달라고 빕니다.
이사야 4: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우리가 볼 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러면 우상 숭배하는 자들은 왜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사야 44: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우상숭배는 영적으로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육신의 것에 몰두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상숭배는 육신의 탐욕이 드러난 것입니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탐욕은 모든 우상숭배의 뿌리입니다.
우상숭배의
한 형태는 자연숭배입니다.
자연을 신성시하고 숭배함으로써 육신적 안전과 복락을 기대합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나일 강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요 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때 가장 먼저 나일 강을 피로 만들며 그들의 신을 심판하셨습니다(출
7:20, 12:12).
인도의 힌두교인들도 갠지스 강을 성스러운 강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일생에 꼭 한 번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게 소원이고, 죽어서 갠지스 강가에서 화장되는 것이 최대의 소원입니다.그래서 인도의 갠지스 강물에는 강변의 화장터에서 뿌려진 유골과 시신을 태운 부산물이 둥둥 떠다닙니다.
그러나 힌두교인들은 그 갠지스 강변에 몸을 담그고 강물을 성수(聖水)라며 감동하며 마십니다.
우상숭배의
폐해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민족이 우상숭배로 인해 일상이 온통 더러움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환경이 오염되면
병원균에 감염되어 병이 나고 죽게 되듯 우상에 전염되면 그 결국은 멸망입니다.
엎드러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모든 문제의 핵심은 결국 영혼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육신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우리 성도들에게도 영적 기갈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고, 그리고 육신의 것에만 몰두하면 그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기갈이 찾아와서 영혼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풍요롭던 때가 아득한 옛 시절 같습니까?
그렇다면 인정하기 싫어도 영적 기갈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 기갈이 다가오지 않도록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먹는 것으로 유혹할 때
신명기 8:3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면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베드로전서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라.
9월 29일(월) 아모스 4-6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4: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Therefore this is what I will do to you,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to you, prepare to meet your God, O Israel.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12-13)
예비하라(3559) 쿤(kûwn) כּוּן
1. 똑바로서다. 2. 세우다. 3. 필렐형 כּוֹנֵן
발음
[ kûwn ]
구약 성경 / 217회 사용
예비하다는 히브리 단어는 '쿤(kûwn)' 이라고 합니다.
'쿤'이란 "똑바로 서다" 또는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만나려면 똑바로 서야만 합니다.
똑바로 선다는 것은 올바른 삶을 말합니다.
나라가 어지럽고 뒤숭숭한 이유는 똑바로 서야 할 사람들이 바르게 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똑바로 서는 것을 '정의(正義)'라고 하였습니다.
정의는 사람마다 자기의 본분을 바르게 감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정치가의 본분은 정치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농사군의 본분은 때에 따라 씨를 뿌리고 가꾸어 풍성한 수확을 얻는 것입니다.
군인은 나라의 영토와 국민들을 잘 지키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상인은 장사를 잘하여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본분은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사역하던 시기는 B.C. 793~753년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의 사마리아는 태평성대의 시대였으며 무려 41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수리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벧엘과 길갈에 황금송아지와 바알의 우상 신상을 세웠습니다.
레위인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 제사장을 세우고, 8월 15일을 절일로 정하고 임의로 하나님께 제사했습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도덕이 타락합니다.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는데 몰두하고, 높은 산, 푸른 나무숲은 음란과 쾌락의 유희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라”고 통탄하셨습니다(호 2:8).
이스라엘 온 천지가 풍성한 물질이 썩는 것과 함께 윤리와 도덕과 신앙이 썩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외치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동일하게 외치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아 여호와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사회 질서가 확립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법질서가 바르게 실행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야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정상화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와 질서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이 묻어나는 공의와 질서가 없이는 세상을 새롭게 세워갈 수 없습니다.
더러운 입맛에 따라 세상을 주물럭거린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징계를 통하여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엄하게 다스릴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는 자유를 누리려면 먼저 공의로운 하나님 만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지혜 있는 인간들은 어떤 일이든 미리미리 준비해 놓습니다.
만약을 위하여 예비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미래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장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죽어서 들어갈 묘지를 미리 예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들은 많은 예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들 보다 가장 중요하게 예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오늘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왜냐하면 우리는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그때에 예수를 믿었던 자는 천국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산들을 지으시고 바람도 창조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심판주입니다.
그 만남을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죄인으로서는 영광스런 하나님 앞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께 예배할 때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계시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큰 봉사를 해도, 아무리 큰 헌금을 드려도, 아무리 중요한 직분을 받아도 예배에 등한한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둘째, 회개할 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럽고 추한 자를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속에 꽉 차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죄를 없앨 수
있습니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죄를 없앨 수 있습니다. 회개는 수술과 같습니다. 죄는 회개해야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깨끗이 씻음 받습니다. 불의가 죄입니다. 의롭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불법이 죄입니다. 법을 어기는 것이 죄입니다.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도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믿지 않음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을 피하는 길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깨끗이 씻음 받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 만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는 하나님 만날 준비가 된 자들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내 죄를 회개하는 자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씻음 받아 깨끗하게 용서함 받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아모스는 12절에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이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나 성과가 있을 때는 주인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기다려지지만 잘못된 행동을 한 후 주인이 보자고 하면 그것은 두렵고 가기 싫은
법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곧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사건들로 경고하셨는데 결국 말을 듣지
않자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겠다고 합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13절입니다.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분이요, 그 앞에서는 온 만물이 벌벌 떨며 어떤 것도 감출 수 없습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그가 누구든 세 번 무릎을 꿇고 그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해야 합니다. 황제가 거하는 자금성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는데 이 문을 통과할 때마다 이런 예식을 행하게 했다고 합니다. 인간 앞에서도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더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매우 심각한 사실입니다. 인간은 그냥 살다가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인생은
길어야 백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그래서 영원이라는 바다에 비하면 한줌의 모래만도 못하것 같지만, 그러나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내가 이 짧은 인생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영원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는 정말 두려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계시면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홀로 하나님 앞에 서고 홀로 하나님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인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11절에 무어라 말씀합니까?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한참 불이 붙은 나무 조각을 꺼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온통 그을리고 탄 불쌍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처럼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이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예배가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만한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생활 속에서 무엇보다 이 세대의 정신과
가치관과 풍습을 본받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열납하실 만한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아모스 4:12~13)
인간은 만남과 헤어짐의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해 가고 있습니다.
어떤 만남은 소망과 기쁨 가운데 만나는 복스러운 만남이 있는가
하면, 어떤 만남은 만나면 안 될 사람이 만나고, 만나면 안 될 환경을 만나는 악연의 만남도 있습니다.
또 어떤 만남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만남도 있고, 또 어떤 만남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기다리는 만남이 있습니다.
죽음
후에 찾아오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히 9:27).
인생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서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선악간에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죽음과 심판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사역하던 B.C. 793~753년,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의 사마리아는 태평성대의 시대였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드물게 여로보암 2세가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수리아와의 일전에서 승리함으로,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벧엘과 길갈에 황금송아지와 바알의 우상 신상을 세우고, 레위인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 제사장을 세우고, 8월 15일을 절일로 정하고 임의로 하나님께 제사했습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도덕이 타락합니다.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는데 몰두하고, 높은 산, 푸른 나무숲은 음란과 쾌락의 유희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라”고 통탄하셨습니다(호 2:8).
이스라엘 온 천지가 풍성한 물질이 썩는 것과 함께 윤리와 도덕과 신앙이 썩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네 하나님 마나기를 예비하라”고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마가복음 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누가복음 3:4 /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이사야 40:3 /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하는가?
1. 종말(개인의 종말, 세상의 종말)(창세기 3:19, 로마서 5:12, 베드로후서 3:10)
과학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류는 끊임없이 생명의 한계에 도전해왔고, 어떤 부분은 얼마만큼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불가능의 벽이 곧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범한 아담에게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창 3:19).
바울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롬 5:12).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벧후 3:10).
성경은 여러 곳에 개인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을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4절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자는 죽음 후에 하나님 만날 일을 준비해야합니다.
2. 죄 때문(로마서 3:10)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롬 3:10).
아담의 타락 이래 온 인류가 범죄 했으니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요 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요 3:17).
성경은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엡 1:7).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요일 1:7).
베드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벧전 1:19).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3. 잃어버린 상태에 있기 때문(누가복음 19:10)
예수님께서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왔노라”고 하셨습니다(눅 19:10).
“잃어 버렸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하나님과 분리된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건강을 잃어버렸다고 가장 큰 손실이
아닙니다.
사람이 물질을 잃어버렸다고 가장 큰 손실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손실은 사람이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하셨습니다(요 14:2).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예비하지 못한 사람은 그 곳에 갈수 없습니다.
어떻게 예비할 것인가?
1. 이웃을 사랑하는 것(마태복음 22:37-39)
율법사가 시험하여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22:37~39).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는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늘 관심을 가지시는 이웃은, 작은 자! 곧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였습니다.
2. 참된 신앙을 회복하는 것()
본문 4절에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벧엘과 길갈은 어떤 곳인가? 이스라엘의 종교와 신앙의 중심지입니다. 그곳에 우상을 세우고, 여호와 하나님과 이방신을 겸하여 섬기는
종교혼합주의 죄악에서 돌이켜야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유형무형의 우상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 제일주의 순수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3. 회개하고 돌아서야 하기 때문()
본문에는 “그런데 너희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씀이 6절, 7절, 9절, 10절, 11절에 계속하여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범한 이스라엘을 가진 방법을 동원하여 부르셨지만 그들은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벧전 4:7)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오늘, 지금 바로 이시간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잠시 후에 그 문은 닫힐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패와 패역은 여호와 하나님의 큰 근심거리 입니다.
이사야서 1장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을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사야서에서 한탄하신 것이나 아모스에서 한탄 하시는 내용이 다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잠자는 이스라엘을 깨워 돌아오게 하시려고 고난을 주시지만 이 백성들은 절대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양식를
떨어지게 하여 보시기도 하시고, 비를 멈추게 하시기도 하시고, 메뚜기를 동원하여 곡식을 다 먹어치우게도 하시고, 전염병으로
치시고, 이방의 군대로 침략을 하여 청년들을 죽게하시기도 하였으나 이 목이 곧은 이스라엘은 전혀 돌아설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입으로는 섬기지만 동시에 악을 행하기에 익숙한 청개구리 같은 믿음을 가진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되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29장에 백성들에대한 하나님의 평이 나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도 어느덧 우리들의 믿음의 선조들을 닮아갑니다. 입으로는 다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실상은 겉모습만 따라가는 믿음입니다.
세상이 기이하게 돌아갑니다.
틀린 것 같은 정책과 법들이 버젓이 통과되고 시행이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는 때 입니다.
이
혼란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을 하십니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의 뜻을 택한 사람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속에 이미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바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날, 지혜자의 지혜가 살아나고 명철자의 총명이 회복될 것 입니다.
9월 27일(토) 아모스 1-3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자기의 비밀(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Surely the Sovereign LORD does nothing without revealing his plan to his servants the prophets.
자기의 비밀을 다른 말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비밀(God's secret)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본절이 앞절과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 부분과 논리적인 연결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T. E. McComiskey).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본절의 첫머리에 나오는 히브리어 '키'를 '그러나'(but)로 번역하고(Harper),
어떤 역본들은 '확실히'(surely)로 번역하였다(KJV, JB).
그렇지만 8절에 나오는 '사자'와 '두려움'의 개념이 4절의 '사자'와 6절의 '두려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보면,
7절만을 따로 생각할 수도 없다.
한편 '비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드' '은밀한 협의'(SECRET COUNSEL)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밀접한 관계에 기초한 적극적인 의논(잠 15:22)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깊은 관계성을 통해 미리 알려주는 계획(plan)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나님과 이런 관계에 있으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렘 23:18, 22).
한편, 하나님의 심판에는 그에 앞서 항상 경고가 있다.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도 그러했고(창 6:13-21),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미리 경고되었다(창 18:17-21;19:12,13).
아모스 3장 7절의 "자기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심판이나 섭리이며, 하나님은 반드시 선지자들을 통해 이 비밀을 미리 알리신 후에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어떤 재앙을 내리시거나 어떤 일을 행하시기 전에, 종종 그 뜻을 선지자들에게 계시해주시고 그들에게 전달하게 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 :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에 대한 설교(아모스 3:1-15)
3~6장까지는 설교 형태로 예언을 합니다.
그 중 3장은 현재, 4장은 과거, 5-6장은 미래의 틀에서 예언을 합니다.
3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을 2장에 비해 좀 더 구체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장의 내용구조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1-8절),
이스라엘의 범죄 지적(9-10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양상(11-15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 (1-8절)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게 일렀습니다(1절).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모두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백성으로 삼았음을 증명하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제사장나라로 세우기 위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원해낸 것입니다(출 19:6).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민족 가운데 그들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그들만 알았으니 하나님이 모든 죄악을
그들에게 보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2절).
이는 이스라엘에게만 특별한 사랑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다’에 해당하는
‘야다’(ידע)는 지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적인 앎으로서 관계성을 기초한 지식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그들만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애정을 쏟았다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만 다른 민족에게 주지 않은
특별한 은혜를 주었습니다.
그들에게만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고 그들에게만 자신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에게만 자신의 뜻을 알 수
있는 율법을 주었고 자신과 교제할 수 있는 성전과 제사제도를 주었습니다.
그들에게만 특별한 은혜를 베푼 것은 그들을 거룩한
제사장나라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19:6에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름을 두시고 그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19:5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고 했습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그에 합당한 징벌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5.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에 대해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제시했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했습니다(3절).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고는 같은 방향으로 같이 걸아갈 수 없습니다.
쟁기를 가는 소도, 행진을
하는 군사도, 여행을 하는 친구도, 사업을 하는 동업자도, 가정생활을 하는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처럼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뜻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지킨데 반해 이스라엘은 언약을 어기고 불순종과 죄악으로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고 했습니다 (4절). 사자는 먹이를 사냥하여 잡았을 때
포효하며 먹이를 굴에 가져가 새끼들에게 먹이기 위해 새끼들을 부를 때 소리를 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심각한 죄악을 보았기
때문에 심판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고 했습니다 (5절). 덫은 얇은 판이나 그물 등으로 장치한 기구 안에 새 모이를 넣어두고 새가 모이를
먹기 위해 들어왔다가 장치를 건드리면 판이나 그물이 덮쳐서 새를 잡는 형태의 기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려는 것은
이스라엘이 심판받을 만한 죄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드러났는데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6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8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아모스는 연이어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제시했습니다.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고 했습니다 (6절). 성읍에서
파수꾼이 나팔이 부는 것은 적군이 쳐들어올 때 부는 것입니다. 그 경고의 나팔을 불 때 백성들은 두려워 피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려 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7절).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기 전에 먼저 선지자에게 알려서 그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한 다음에 그래도 돌이키지 않을 때 심판을 내립니다. 노아 때 세상이 홍수로 멸망당할 때도 그러했고 아브라함 때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창6:13-21, 18:17-21, 19:12-13). 본절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종말의
날짜를 예언하면서 그 근거로 자주 활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절의 내용은 날짜 개념이 아니라 사건 개념의 계시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려할 때도 아모스에게 미리 그 계획을 알려 주었는데 그것은 아모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심판을
경고하게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심판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어서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8절). 사자가 부르짖으면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경고하면 그 심판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영광받으려는 목적을 가지셨습니다.
베드로전서2:9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다른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수님의 구속과 성령님의 강림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와 성경말씀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배와 교제와 사역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가진 성도답게 사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범죄 지적 (9-10절)
9.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10.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스돗 궁궐들과 애굽 땅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산들이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고 하라 했습니다 (9절). ‘아스돗’(Ashdod)은 블레셋의 5대 성읍중 하나로서 블레셋을 가리켜 한 말로서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자주 침입하여 괴롭힌 나라였습니다. ‘애굽’(Egypt)은 이스라엘이 그곳에 살 때 학대하여 괴롭힌
나라였습니다. 그처럼 이방국가로서 대적국가였던 나라에게 이스라엘의 죄를 보게 한 것입니다. ‘사마리아’(Samaria)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로서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이방국가에게 이스라엘에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요란함’에 해당하는 ‘메호마’(מהומה)는 혼란, 소동, 괴롭힘 등의 뜻이 있는 단어인데 여기에서는 괴롬힘의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블레셋과 애굽은 그 나라의 왕궁과 성읍들에서 괴롭힘과 학대가 심하게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
성읍들에 괴롭힘과 학대함을 있는지 보라는 것은 이스라엘 왕궁과 성읍에 괴롭힘과 학대함이 블레셋과 애굽에 못지않게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언약국가가 이방국가에 못지않은 죄를 지으므로 이방국가가 그들을 보고 놀랄 정도라는 것입니다.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 모른다고 하라 했습니다 (10절). 권세자들이 궁궐에 살면서
포학과 겁탈을 일삼는다는 것입니다. 권세를 가진 자들이 권세를 이용하여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심하게 억압하고 착취한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고 했습니다. 권세자들은 큰 궁궐을 짓고
살았습니다. 궁궐을 겨울 궁과 여름 궁이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냉난방 시설이 없는 때였으므로 겨울에는 벽을 두껍게 하고
문과 문틀을 튼튼하게 단 따뜻한 집에서 지내고 여름에는 벽이나 창을 거의 없는 시원한 집에서 지냈습니다. 아내들의 거처로 별채를
따로 두기도 했는데 상아(코끼리 이)로 장식을 해서 상아궁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12절에 보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침상과 의자의 방석이 언급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침대와
쇼파를 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인데 그런 것들을 갖추고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요한 생활이 9절에서 언급한대로
학대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압제하고 그들의 것을 탈취한 것들로 누리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권세를 가진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빚을 주고 빚을 못 갚으면 경작지와 집 등을 빼앗은 것입니다. 빼앗긴 자들은 자연히 사마리아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율법은 가난한 자들을 도울 것을 요구합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 때에는 종도 풀어주고 땅도 되돌려주고 빚도 탕감해
주게 했습니다 (레25:13-55). 추수 때 곡식 한 뭇을 잊어버리고 왔으면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버려두라고 했습니다.
포도도 다 따지 말고 얼마를 남겨두고 감람나무도 한 번 떤 후에 다시 가서 살피지 말라고 했습니다 (레19:10,
신24:19-21). 그것은 가난한 자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사회는 그런 정신을 무시하고 오히려 자기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국가는 제도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살 수 있도록 해야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세금을
충분히 거두어 국방과 교육에 사용하는 동시에 복지에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인이나 극빈자들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부자들은 자발적으로 기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사회 지도층이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하는 도덕적 의무 혹은 책임을 강조하는 프랑스어입니다. 당시 귀족들이
노동자들에 대해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자신들과 사회 전체가 잘된다는 생각을 가진 데서 나온 말입니다. 교회적으로는 교우들 가운데
극빈자들을 돕도록 해야 합니다.
3.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양상 (11-15절)
11.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13.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14.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15.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이스라엘의 힘을 쇠하게 하며 이스라엘의 궁궐을 약탈하리라고 했습니다(11절).
사면에 대적이 있어 힘을 약화시키고 궁궐을 약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앗수르(Assyria) 제국의 디글랏 빌레셀
3세(Tiglath-pileser III)가 B.C. 733년에 북이스라엘에 속한 길르앗과 갈릴리를 침략하고, 살만에셀
5세(Shalmaneser Ⅴ)가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도 건져냄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12절).
당시
목자가 양을 치는 중에 맹수가 양을 잡아먹게 되었을 때 목자가 양의 다리나 귀 조각 등을 주인에게 가지고 가면 그것이 목자가 양을
지키려 했다는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잃어버린 양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목자가 맹수에게서 양의 다리나
귀 조각을 건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적을 통해 멸망시킬 때에 그들을 멸망시키는 가운데서도 남은 자가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심판 가운데서도 회복의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전체의 의미를 볼 때는 두 번째 의미일 것 같으나
본문 자체만을 볼 때는 본문이 심판을 강조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의미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아스돗)과 애굽에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야곱 족속에게 증언하라고 했습니다(13절).
이방민족이 증언을 할
정도로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이 심각했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을 꺾어 땅에 떨어뜨릴 것이라고 하라 했습니다(14절).
‘벧엘’(Bethel)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배도에 대한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여로보암1세(JeroboamⅠ)는 북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에 제단을 쌓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했습니다(왕상12:28-33).
‘제단의 뿔’은 제단의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입니다.
속죄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권위와 능력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벧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 우상숭배의 장소를 완전히 파괴하되 가장 핵심적인
것까지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도덕적으로도 타락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종교적이 타락이 있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범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데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쳐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라 했습니다(15절).
왕을 비롯한
권세자들은 겨울에 거할 곳과 여름에 거할 곳을 따로 두고 그 집을 상아로 장식했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을 압제하고 그들의 것을
착취한 것으로 풍요를 누렸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언약국가로서 이방국가의 모습으로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미 심판을 경고했던 이방국가들에게 이스라엘의 심판을 증언하라고 한 것입니다.
13절에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고 했습니다.
이방민족이 증언을 할 정도로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이
심각했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속적인 단체와 다를 바 없고 성도들이 세속적인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가 바른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7에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라고 하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골로새서 1:24-27)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비밀은 감추어진 것이지만 꼭 알아야 할 사람들에게는 공개된 것이지요.
이것이 비밀의 양면성입니다.
비밀의
헬라어는 ‘뮈스테리온’입니다.
‘입을 다물다라’는 단어 ‘뮈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알리지 말아야 할 말이나 일을 의미하지요.
신약에서 그 의미는 신령한 계시 외에는 밝혀질 수 없는 진리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비밀이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왔으며 하나님의 종들에게 공개된 것입니다(단2:19,28,29). 물론 성경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성경의 내용을 알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을 가져야 할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비밀이 열려있고, 믿음을 갖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성경은 여전히 비밀에 붙여진 책이지요. 그러므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이 우리에게 오픈된 하나님의 편지임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나에게 성경이 공개되지 않는 비밀의 책으로 남아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다. 무엇보다 성경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는 것이 가장 큰 복
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비밀 성경이 나에게 공개된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신비가 성경 안에 다 들어 있지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그런데 만일 아무에게나 공개해도 상관없는 일이라면 굳이 비밀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밀은 꼭 알아야 할 사람만
알아야 합니다. 지켜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비밀을 맡겨주십니다. 만일 비밀을 지켜주지 못할 사람이라면 비밀을 어떻게 공개할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나에게 비밀이 공개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나를 믿어주신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주시는 것이지요.
그것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비밀을 공개하는 것은 그만큼
나를 믿어준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사람과의 관계도 신의가 있어야 비밀을 맡겨둡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에 맡겨주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줄 그릇이 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비밀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하고 믿고 지키고 행하는 자에게 당신의 비밀을 맡겨두신다는 말이지요. 비록 나는
전혀 그럴만한 그릇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그만큼의 수준으로 인정해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하나님이 당신의 비밀을 맡겨두신 것이니까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비밀이 들려지고 보여지고 믿어지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4:1)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 사도 안에 하나님의 풍성한 비밀이 가득하다는 말이지요. 과연 내 안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비밀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두 맡겨놓으셨습니다. 세상 어떤 종교나 어떤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맡겨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세상 어떤 종교도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 원하시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가 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일꾼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만 알 수 있고, 비밀을 맡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이 비밀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비밀입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이 비밀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공개하시면서 다른 자들에게는
숨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의 비밀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 하나님의 비밀을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알려주십니다(마 13: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그러므로 나에게 당신의 비밀을 공개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당신의 비밀을
알려주심에 감사하십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비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성경에 계시된 모든 비밀을 우리가 다
알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만큼 알려주십니다. 성령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믿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토록 믿어주시는데 과연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내 마음 판에 새기지 못하고 그
비밀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대부분이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믿음의 비밀을 잘 새기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믿고 비밀을 알려주신 하나님에 대한 예의입니다. 비록 어떤 위험이나 불이익이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비밀은 반드시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비밀의 생명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비밀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행함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누설한다할지라도 예수님이 알려주시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비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 때 하나님의 모든 비밀이 풀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거든요.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비밀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싶으면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본다고 해서 하나님의 비밀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 비밀을 깨닫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당신의
비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사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비밀이지만 그중에 최고의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최고의
비밀입니다(27, 2:2). 그런데 그 예수님이 어디 계실까요? 내 안에 계십니다(27절).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이보다 더 큰 비밀이 어디 있겠습니까?
골로새서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비밀을 구하기만 하면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성령은
우리 안에서 내 영으로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적용시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14장 26절을 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질서가
분명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의 역할이 다르십니다.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설계하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모든 일을
맡아서 성취하시는 분은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우리 안에서 깨닫게 하시고 적용케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롬 8:16). 하지만 구속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모든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을 갖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는 말이지요.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밀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을 가지시고 우리 가운데 친히 오신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것이지요.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의 완전체로 오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비밀이 풀리는 거예요.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밀을 몰라요.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로 작정된 자들만 알 수 있는 거예요. 사도행전13장에 보면, 전도여행을 떠난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그들이 전한 복음을 영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작정된 자들만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로 작정된 자들만 복음을 받아드린 것이지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비밀을
받아드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좇아 우리가 복음을 영접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까? 하나님의
비밀은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으로 설명되어질 것이 아니요, 세상의 철학이나 종교로 믿어질 것이 아니며,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이해되어질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최고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비밀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려면 먼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의 본체이십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에요.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모든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비밀이지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성령잉태가 하나님의 비밀이요, 성육신이 비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비밀이요, 부활이 비밀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심이 비밀이고,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신비에 쌓여있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무엇보다 그 예수님이 내안에서 나를 성전 삼고 계심이 비밀입니다. 이
비밀이 아무나 믿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 안에 의심없이 믿어지는 것이 신령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이
비밀이 풀린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전혀 비밀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감히 누가 하나님의 비밀을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시대마다 하나님의 비밀을 풀어주겠다고 자청하는 사람들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말만 토해냅니다. 자기들 멋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합니다. 그들은 영혼을
미혹시키는 영적사기꾼들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시대마다 있어 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비밀을 풀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주변에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거나 선포하는 자들이 있다면 경계하십시오. 대부분 그런 자들은 음녀와 같이 달콤한 말로 성경을 해석하고 풀어갑니다.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작위적으로 해석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 할 것입니다. 말세에는 그런 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도록 보안장치를 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도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종교에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비밀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물론 그분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새 언약의
중보자로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이지요.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서입니다(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런데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내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친히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아무나 믿어지겠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니면 믿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비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죄를 탕감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량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11-12절은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 믿어지십니까?
그런데
그 주님이 다시 왕권을 가지시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과 함께 영으로,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28절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것도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성전 삼고
내안에 주인으로, 왕으로, 전부로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여 예수님은 머리가 되고, 나는 몸이 되어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주는 마음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살게 해주시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른바 새
언약의 복음이지요. 요한복음 10장2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요, 천국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이해되어지고 믿어지는 것이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비밀을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이 깨달아지십니까?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복음의 비밀은 반드시 율법을 통과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복음은 비밀 중에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 율법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구약 성도들은 율법을 통해서 복음을 보아야 했던
겁니다. 그러나 율법을 통해 복음의 비밀을 깨닫는 것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율법이라는 수건이 벗어져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옷을 벗어야 복음의 비밀을 아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율법의 수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음이
비밀이 완전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율법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로 복음의 비밀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복음이 아니면 구원은 없습니다. 그 복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복음을 믿지 못함이요, 복음을 믿지 못하면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십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결국 복음을
만나게 하심입니다. 이른바 율법을 통과하여 복음을 만나게 하려하심이지요.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통과하지
못하고 율법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요.
누차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버스를 타고 어디로 이동할 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것입니다.
정류장은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정류장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류장은 지정된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장소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은 복음을 만나기 위한 하나님의
한시적인 법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만 유효한 법이지요.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거지요.
아파트를
분양하는 시공사가 아파트 분양을 위해 모델하우스를 짓습니다.
그 모델하우스는 구입할 아파트의 그림자입니다.
아무도 그
모델하우스에서 살지 않습니다.
그 모델하우스는 실물 아파트 분양이 끝나면 전부 철거가 됩니다.
아무도 모델하우스에서
살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율법도 그런 원리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복음으로 안내하는 몽학선생일 뿐입니다.
복음의 실체이신 주님이 오시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그런데 복음의 실체이신 주님이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이른바 그분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것이지요(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He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ver all creation.
이것이 복음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을 아는 자가 복된 사람이지요.
이 비밀을 알려면 반드시 율법의 수건이 벗겨져야 합니다. 율법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율법의 때가 벗겨져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지요. 그러면 율법 안에 감취어진 하나님의 비밀을 주님이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비밀을 다 갖고 계시고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율법의 옷을 벗으면 죽을 것
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허다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처럼 안달 부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뭔가 자기 눈에 보이는 종교적인 열심이나 공력이 추가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직도 율법의
선입견이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내 눈에서 율법의 비늘이 벗어지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반드시 율법의 옷을 벗어야 복음의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복음의 옷으로 단장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라면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없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아무리 당신이
율법으로 흠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사도 바울처럼 율법으로 흠이
없고 완전하십니까? 그런 사도 바울도 율법의 더러운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복음의 옷을 입었습니다. 구원은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 비밀이 주안에 나타났습니다. 당신의 종교적인 고집으로 당신의 영혼을 망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은 율법으로 살려고 하는 일체의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율법으로는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저주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갈1:9). 그런데도 율법을 고집하시렵니까? 당신은 율법을 버렸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지금 당신의 생각을 붙들고 있는
종교적인 모든 것들이 당신 안에 있는 율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복음은 오직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입니다. 당신을
압도하는 모든 마음과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그것을 포기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율법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가 복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율법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죄의 값을 알게 하였습니다. 또한 율법은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모르고, 죄를 모르면 사망을 모르며, 사망을 모르면 영생도
모릅니다. 그런 모든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이 바로 율법의 기능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1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율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복음을 만나지 못합니다. 복음을 만나지 못하면 비참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복음의 비밀이 우리 안에 깨달아지기를 축원합니다. 그 복음의 비밀이 사도들을 통해서 공개되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복음의 비밀이 공개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복음의
비밀이 공개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보다 더 복된 것은 없습니다. 율법 안에서 감추어있던 복음의 비밀이 공개된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시대적으로만 구분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구약시대에 사는 사람이 있고,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처럼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지금도 구약시대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른바
아직 율법의 탈을 벗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구약시대를
살았던 사람일지라도 복음을 만나서 복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복음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시간적으로 신구약을 구분하는
것은 또 다른 율법의 잔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골자는 이것입니다.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의 경계는 시간이
아니요, 장소가 아닙니다. 혹은 세대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각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의 여부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젊은이가 늙은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비록 나이는 늙었지만 젊은 청춘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마음의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은혜의 시대, 복음시대를 살아가지만 여전히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의 옷을 입고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들은 아직도 주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바르게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자라면 반드시 복음을 믿고 복음 안에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즉, 예수를
구주삼고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비밀에 참예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을 기쁨으로 누리고 자유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The mystery of God) 골로새서 1:25-27
25. 내가 교회 일군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에게 자신이 교회의 일군이 된것은 하나님의 경륜, 곧 그분의 명령을 따라 된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명령’ (mission) 은 바로 ‘하나님의 비밀’ 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비밀은 영원전 부터 모든 세대 가운데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 ‘그의 성도들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고 말합니다.
이 비밀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구약에 약속된
다윗의 씨요,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러나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십자가에 목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인것
입니다.
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비밀이요, 우리 모든 성도의 ‘영광의 소망’ (the hope of glory) 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말씀을 통해, 단순히 머리로만, 성경지식으로만이 아니라, 내 인격적인 고백을 통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비밀되시며, 나의 영광의 소망되심을 고백하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기대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는가?’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 하시겠습니까?
사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 비록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다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 물으면 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합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죄사함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가게 됩니다!!” 모두 맞는 말 입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가게 된다는 구원의 확신을
언급한 것 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전부라면 많이 부족 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다면, 영원전 부터 모든 세대에 감추어졌던 비밀이요, 이제 성도들에게 ‘드러난 비밀’ (the revealed
mystery) 이 되신다면 <예수님 믿으면 죄 사함받고, 천국간다> 가 예수님에 대한 전부가 되어서는 문제가 많음을
우리는 깨닫아야만 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2000여년전에 팔레스타인 나사렛동네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그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고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죽게 하고자
보내신 그의 독생자 예수는 누구 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성경에 나타난 것을 통해 차례대로 살펴 보겠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그의 미션을 이루셨나?’
첫째, 그분의 ‘의로우신 피’로서 그 미션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죄없으신 선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해 그의 '값진 생명' (=의로우신 피) 를 대신 주실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 입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자격)
둘째, 십자기 위에서 하나님의 ‘화목제물’ 되심으로 그 미션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미션을 이룰 자격이 있을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철저하게 순종하심으로 그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 이 되셔서 말 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순종)
‘큰그림에서 본 예수님이 이 땅에 온 목적(mission)은?’
-
‘하나님과 화해’ (For reconciliation with God)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 롬.
3:25) 이것을 줄여서 ‘칭의’ (justification)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의 죄가 씻음바 되고,
의롭다고 불리어지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어지는 시작인 것 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통해
화목해 가는 것 입니다.
-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 (For being people who eager to do what is good) 되게 하시고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2:14) 이것을 줄여서 ‘성화’ (sanctification) 라고
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예수믿고 구원받는 것에는 관심과 믿음이 집중되어 있지만,
거듭난 이후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자녀' 가 되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열심도 없다는 사실 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자녀들에게 드러내시고자 하는 비밀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성숙된 자녀가 되기 원하신다는 사실 입니다.
-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For reigning with Christ) 하게 하시고자: (“ ~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살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디모데후서 2:11,12) 이것을 줄여서 ‘영화’ (glorification) 라고 합니다. 이 '영화'의 삶은 현재의 삶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주님을 만나게 될때 영화롭게 변화되어질 삶인 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 각자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수 있을찌를 살펴 보겠습니다.
-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비밀> 인 예수님을 알아갈까?’
-
그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함으로: “복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2): 예수님을
알아나간다는 것은 그분과 점점 더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나간다는 뜻 입니다. 그분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첫출발이 되어야
할까요? 이미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라면, 이제 다음 단계는 그분의 마음과 뜻을 이해해 나가는 것 입니다. 그분의 마음과
뜻을 어떻게 알아갈까요? 바로 성경말씀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내신 그분의 뜻과 계획하심이 성경에 매우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나는 잘 모르겠다’ 고 말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당신이 말씀을 읽고, 그분의 뜻을 찾기에 무관심하고
게으른 까닭 입니다. 하나님의 이 비밀은 감추어져 있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깊은 속까지도 ‘드러내신 비밀’ (the
revealed mystery) 인 것 입니다. 내가 여전히 말씀을 즐거워 하지 않고, 하루동안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마음에
되새기기를 게을리 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의 비밀인 주님을 알아갈수 없습니다.
-
그의 말씀을 ‘지켜나감’으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21)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해 나가는 것이 그분을 알아 나가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출발점이라면, 그분의 말씀
즉, 그의 계명 (=명령) 을 지켜나가는 것은 반드시 함께 이어져나가야 할 다음 단계일 것 입니다. 이말은 ‘주님은 말씀은 열심히
보는데, 그의 말씀데로 살지 않는다’ 라는 엉터리 신앙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뜻 입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묵상하고
사랑한다면, 반드시 그 말씀의 뜻을 쫓아 지켜 나가야만 한다는 것 입니다. 주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 (요. 14:21) (“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b) 고 분명하게 선언하셨읍니다. 그분의 계명 (the commandment) 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는 것 입니다. 왜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이토록 강조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다음 이렇게 그이유를 밝히고 계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35) 는 것 입니다. 말로가 아니다는 것 입니다. ‘서로사랑할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합당한 삶을 살게 되는 것 입니다. 당신은 지금 사랑을 연습하고 있습니까?
-
‘성령을 통해 그분 안에 거함’으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요. 15:5) 예수님을
우리가 알아나간다는 것은 결국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지는 인격적인 연합을 뜻함을 주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말씀 하십니다.
포도나무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입니다. 바로 ‘포도나무 원둥치’ 에 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 가지는 어떤 열매도 맺을수 없고, 말라죽게 됩니다. 그 나무로 부터 ‘수액과 영양분’ 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나간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그분안에 거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하는것이 그분안에 거하는 것인가?” 일것 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
고. 이 말씀은 다시 두번째 조건으로 돌아 갑니다. 즉, 주님을 계명을 지킨다는 뜻은 그분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그분의 계명을 지킬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게 될뿐 아니라, 그분안에 또한 거하게 되는 것 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바로 ‘성령’을 말씀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성령이 아니고는 주님의 사랑의 명령을 누구도 지켜 나갈수
없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성령께 순종함으로 사랑의 명령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영원전
부터 감추어져 있는 그분의 놀라운 비밀을 그의 택하신 자녀들에게 밝히 드러내기를 심히 기뻐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천국백성 되게 하여 주실뿐 아니라, 그분을 모퉁이 돌이 되게 하여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지게 하심을 성령을 통해 그의 사도들에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 안에서 땅아래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비밀의 계획은 지금도 그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발견되어지고, 누려지는 것 입니다. 마치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 와 같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비밀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은 평생, 날마다 그의 말씀을 통하여, 그의
‘사랑’ 의 계명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실천해 감을 통해 더욱 더 깨닫아 나가고, 깨닫은 만큼 하나님을 온 힘과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그분만을 경외하는 자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비밀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자기 백성과 체결하신 언약 속에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점진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최종 성취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언약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언약을 통해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골 1:26-27, 2:2-3).
예수 그리스도는 “감추었던 만나”(계 2:17), “감추인 보배”(잠 2:4,
참고-고후 4:6-7, 벧전 2:4-8), “감추인 보화”(마 13:44, 골 2:2-3) 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언약에는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 있고, 그 언약의 최종 성취는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세히 연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가운데 언약이 체결되고 완전히 성취되는 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본론
1.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비밀
성육신(Incarnation)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심’입니다(빌 2:6-8). 성육신은 성자 하나님께서
신인(神人) 즉 하나님-사람(God-Man)이 되신 것으로, 그의 신성(神性)에 인성(人性)이 부감 됨을
의미합니다(요 1:14).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방편은, 성령으로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어(마 1:18, 20)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골 1:26-27, 2:2). 그래서 디모데전서 3:16에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전 3:16).
2.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백성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비밀을 알지 못하였으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고 배척하였습니다(요 1:11, 6:41-42, 고전 2:6-9).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에 최후 순간에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사 성을 내려다 보시고 소리 내어 우시면서,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라고 한탄하셨습니다(눅 19:41-42). 여기서 “숨기웠도다”는 헬라어로 ‘크륍토’(κρύπτω)인데, 이것은
‘감추다, 숨기다, 비밀로 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비밀인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눅 4:22).
요한복음 6:42에서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여기 “아는데”는 헬라어 ‘에이도’(ϵίδϖ)의 1인칭 복수형으로, 그냥
얼핏 아는 것이 아니라 ‘사귐과 확신을 통하여 자세히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모님을 자세히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 앞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보다도 자신들이 아는 경험과 지식에 착념하다가 영생에서
낙오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3. 감추었던 만나 예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2:17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감추었던” 역시 ‘크륍토’(κρύπτω)의 완료수동분사형으로,
‘감추어져 있는’ 만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이 만나를 주십니다. “이기는”의 헬라어는
‘니카오’(νικἀω)의 현재분사형으로, ‘계속적으로 이기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죄악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는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만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계 2:7).
하나님은 왜 ‘비밀’을 보이시는가? 아모스 3장 7절과 성경 속 하나님의 계시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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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 아모스 3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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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과 그분의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아모스 3장 7절은 "그 비밀을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선포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그의 종들에게 미리 알리신다는 놀라운 원칙을 밝힙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그분의 백성을 향한 친밀한 교제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오늘은 이 구절의 깊은 의미를 파헤치고, 성경 전체에서 이와 유사한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다른 구절들을 함께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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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3장 7절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구절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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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비밀'(סוֹד, 소드)은 단순히 숨겨진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뜻과 계획, 섭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작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인류를 향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깊이와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시편 33편 11절은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독단적으로 행하시기보다, 먼저 그 뜻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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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그 계획을 당신의 종들에게 계시하신다는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무작정 심판하시거나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경고하시고, 준비시키시며, 당신의 뜻을 알리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심판에 앞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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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3장 7절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 '비밀'을 누구에게 보이시는지를 명확히 밝힙니다: "자기의 종 선지자들에게는 그 비밀을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그분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계획을 깨닫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시대의 선지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그분의 뜻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확장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신명기 29장 29절은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목적이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게 하기 위함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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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3장 7절의 원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당신의 백성에게 드러내시는 신실한 성품을 보여주는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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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15절: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함은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더 이상 종이 아닌 친구라고 부르시며, 아버지로부터 들은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뜻을 그들에게 다 알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계시되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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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3장 7절과 그와 유사한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적극적으로 계시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계획을 알리시고, 세상의 흐름 속에서 당신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돕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그분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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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종들, 곧 당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비밀'을 보이시며, 그들과 함께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진리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발견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전달되는 방식(아모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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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인류에게
전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비밀을 선지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분의 백성이 준비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이
임의로 행동하지 않으며, 그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2.선지자들의 역할
선지자의 역할 "그 종 선지자들"이라는 표현은 선지자들의 특별한 위치를 나타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직접적으로 모든 이에게 알리지 않고,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하십니다.
선지자들은 중재자로서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로서 백성들에게 경고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행하시는 일들을 미리 알고 그 일들을 백성들에게 알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달합니다.
3. 뜻을 땅의 사람들과 함께 이루심
이 구절은 또한 하나님이 혼자서 일하시지 않으며, 땅의 보낸 선지자와 함께 그의 뜻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분의 종들에게 미리 그분의 계획을 알려 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며, 사람들은 그분의 계획에 따라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4. 선지자들의 사명
이 구절은 또한 선지자들의 사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선지자들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그분의 계획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백성들이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하도록 촉구합니다.
선지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때로는 환영받지 못하는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어려운 사명을 감당합니다.
아모스는 그러한 선지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당대의 부패한 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공의를 외쳤고,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를 주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골로새서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My purpose is that they may be encouraged in heart and united in love,
so that they may have the full riches of complete understanding, in
order that they may know the mystery of God, namely, Christ.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the mystery of God, namely, Christ)
비밀의 정원(시크릿 가든) 아모스 3:7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거나 감추어진 속내’라는 뜻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비밀’이라는 단어가 37번 나오는데, 대부분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 종합을 해보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합니다(골 2:2).
골로새서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My purpose is that they may be encouraged in heart and united in love,
so that they may have the full riches of complete understanding, in
order that they may know the mystery of God, namely, Christ.
하나님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거나 감추어져
있기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나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는 그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3:2에 의하면 ‘비밀을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If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can fathom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if I have a faith that can 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비밀’,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목회자로 살아가면서, 목회자 이전에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비밀을 분명하게 보고 싶을 때가 잦습니다.
확실하게 보여주면 흔들리지 않을 터인데 종종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일까?” 하는 ‘하나님의 부재’를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2010년 아이티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그곳 현지인들이 “하나님, 정말 당신은 살아계신 건가요?”
절규하는 모습을 외신을
통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이 국교이기에 국민의 80%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쓰나미로 폐허가 되자 그들은
‘신의 부재’를 심각하게 경험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를 보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신의 부재’를 느꼈습니다.
몰지각한 이들은 이런 재앙을 향해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라는 투로 말하기도 했지만, 그런 식의 해석은 성경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전한다면,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거짓 선지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을 잘 봐야 합니다.
그런데 잘 보이지 않으니, 비밀입니다.
본문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자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그런데 그럼에도 왜 이리되었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갖고, 더 편리해지고자 하는 무한소비와 무한욕구를 부채질하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욕심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늘 힘없고 약한 이들이 더 큰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경고를 하나님은 수도 없이 보여주고
계시지만, 선지자를 자처하는 이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도 관심이 없습니다.
참 선지자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밀을 보는 사람들, 그것을 보았기에 전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에 붙들려 사는 사람입니다.
아모스, 그는 어떤 선지자였습니까?
유다왕 웃시야 시대에 드고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밀을 듣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너희가 죄를 돌이키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죄악상뿐 아니라 이웃 나라들의 죄악상까지 고발합니다.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너무 직설적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그 죄악상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이 지키는 절기를 미워하고 성회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제사를 드려도 돌아보지 않으십니다. 구역질 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은 강 같이 흐르게 하라’(암 5:12-24)는 것입니다.
신약성서로 넘어오면 하나님의 비밀은 특별한 이들에게만 보여집니다.
마가복음 4장 11절에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하십니다.
이것도 하나의 비밀인데, 누가복음 8:10절에 의하면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신서로 넘어가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는
사도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비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은 사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이제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 13:2)”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도 하나님과 사랑, 이웃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빌은 더 이상은 비밀이 아니게 됩니다.
골로새서 1:26절에 말씀에 의하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비밀이 공개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만 사도만 혹은 목사만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 비밀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그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 나오는 ‘비밀’이라는 단어를 따라가며 저는 시크릿 가든(비밀의 정원)을 떠올린 것입니다. 교회 뒤에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잘 활용하면 아주 좋은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만, 교회 땅이 아니므로 조심스럽습니다. 지금은 그곳에 어떤 식물이
잘 자랄 것인지 살피는 중입니다. 거기에 토지주가 거부감을 갖지 않을 정도로 휴식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남교회는 언덕 위에 있어서 올라다니기 쉽지 않지만, 이만한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교회도 드뭅니다. 언덕길을 위시해서 우리의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곳이 참으로 많습니다. 마치 ‘비밀의 정원’과도 같습니다. 이 비밀의 정원이 잘 가꿔지면, 많은 이들이
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육간의 휴식, 이것이 가능한 한남교회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오시면,
교회에 작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일들, 그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에 민감한 사람, 그것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비밀을
본다고, 안다고 다 기쁜 것이 아닙니다. 때론 그로 말미암아 고통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뜻과 달라서
괴로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을 드러내는 일, 그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남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이들을 파파라치라고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런 비밀을 폭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징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비밀을 제대로 보고 폭로하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고난도 당합니다. 아니, 대체로
고난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을 내게 보여주셨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 행복 때문에 아프기도 하지만, 나는 그 비밀을 선포하고 내 삶의 영역에서 삶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비밀을 간직한 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간직한 분들답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동산,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비밀의 정원입니다.*
선지자를 통한 계시 :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아무에게나 알리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종 선지자들에게 먼저 알리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선포 :
이 비밀은 주로 이스라엘이 받을 심판과 재앙에 대한 경고와 관련됩니다. 사마리아에 임할 심판이 예고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먼저 선지자들에게 그 계획을 알리시고, 선지자들은 그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게 됩니다.
재앙의 필연성 :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니"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행동에는 반드시 그 이유와 목적이 있으며, 이는 선지자를 통한 경고와 함께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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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선지자들(선지자 연구)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12:6)
* 선지자(先知者)의 출현
사무엘 이전에도,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와 환상을 받은 자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선지자로 불린 아브라함,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창20:7 중)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였던 모세,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사사 겸 선지자로 활동했던 드보라 등입니다. “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삿4:4) 그러나 본격적인 선지자들의 등장은 사무엘에 이르러서였습니다.
* 선견자와 선지자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로 일컬었더라)”(삼상9:9)
구 분 |
원어의 의미 |
차이점 |
공통점 |
선지자 |
히브리어 ‘나비’로
‘말하는 자’(spokesman),
‘예언자’(prophet)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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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선견자는 계시를 받고 선지자는 계시를 선포함
② 선견자는 선지자보다 훨씬 전부터 사용되던 용어(삼상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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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호제’와 ‘로에’는 선지자를 지칭하기도 함(사30:9~10)
② 양자는 결국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임(삼하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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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자 |
히브리어 ‘호제’ 또는 ‘로에’
모두 ‘보는 자’(seer)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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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역시 선지자!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소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행2:29~30)
다윗 역시도 사도 베드로에 의해 선지자로 증거를 받고 있는데(행2:30), 실제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였던 헤만’(대상25:5)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계시와 환상을 받아서 75편 가량의 시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궁정 선지자
구약의 선지자들 중 일부는 궁중에 기거하거나, 또는 통치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예컨대 사무엘, 나단, 갓은 다윗 왕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또한 정치적 영향력도 지니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제도권의 선지자들을 일반적으로 ‘궁정 선지자’로 일컫습니다.
* 문서 선지자
선지자들 가운데는 그들의 예언 내용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으로 남긴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타인에 의해 예언 내용이나 사상만이 전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를 보통 ‘문서 선지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주전 8~6세기에 활발한 예언 활동을 하였으며, 보통 붓과 두루마리를 들고 설교하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구약의 대, 소선지서 기자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대(大)선지서와 소(小)선지서
이 구분은 해당 선지자의 활동기간이나 역량이 아닌, 그들이 남긴 선지서의 분량에 따른 구분입니다.
구 분 |
대선지서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5권) |
소선지서 |
호세야,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12권) |
*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18:15)
여기서 ‘나와 같은 선지자’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1차적으로는 모세 이후 여러 세대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일어날 모든 선지자들을 가리키나, 궁극적인 의미에서 이 말은 모세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장이며(출24:6~8) 왕이며(신33:5) 선지자(신24:10)였던 것처럼, 온 인류의 유일한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왕이시고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행3:22,23) /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행7:37)
* 하나님의 비전: 만인(萬人)선지자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당신의 모든 자녀들이 다 선지자 되길 원하셨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적 분리를 상징하던 휘장이 찢어진 이래,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게 됨으로써, 또한 보혜사 성령이 각자의 심령에 임하심으로써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욜2:28,29) / “이는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구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2:16~18)
<구약의 선지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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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선지자들
|
• 아브라함(창20:7)
• 모세(신34:10)
• 미리암(모세의 누이 / 출15:20)
• 드보라(사사 겸 여선지자 / 삿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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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왕국
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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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마지막 사사, 제사장 겸직)
• 다윗(시편 75편을 저작 / 행2:30)
• 선견자 헤만(찬양대장 / 대상25:5)
• 나단(삼하7:2~17, 12:1~25)
• 갓(선견자 / 삼상22:5)
• 아히야(실로 사람 /왕국 분열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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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왕국
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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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야(왕상12:22~24)
왕국 분열 직후의 남북 전쟁을 막음
• 아사랴(대하15:1~7)
오뎃의 아들, 아사의 개혁 촉구
• 선견자 하나니(아사에 의해 투옥됨)
• 선견자 예후(대하19:2,3)
하나니의 아들 / 여호사밧을 규탄함
• 야하시엘(레위인 / 대하20:14~17)
• 마레사 사람 엘리에셀(대하20:37)
아하시아와 교제하는 여호사밧 규탄
• 디셉 사람 엘리야(대하21:12~15)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 책망함
•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대하24:20~22)
요아스를 규탄하다가 순교를 당함
• 브두엘의 아들, 요엘(욜1장~3장)
유다인들의 회개를 촉구함
•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사1~66장)
유다 백성들의 경성과 회개 촉구
• 미가(미1~7장)
이스라엘, 유다의 심판과 회복 예언
• 엘고스 사람, 나훔(나1~3장)
니느웨(앗수르)의 멸망을 선포함
• 하박국(합1~3장)
요시아 왕의 재위 말기 예언 활동
• 여선지자 훌다(왕하22:14~20)
요시아의 종교개혁을 촉발함
• 스바냐(습1~3장)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촉구
•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렘1~52장)
유다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함
•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렘26:20~23)
유다멸망 예언, 여호야김에 의해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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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히야(왕상14:1~18)
실로 사람 / 여로보암의 멸문 예언,
• 무명의 선지자(왕상13:1~32)
유다 출신 / 벧엘 제단 규탄
• 예후(왕상16:7)
하나니의 아들 / 바아사를 책망함
• 디셉 사람 엘리야(왕상17장~왕하2장)
우상(바알) 종교와 맞서 싸움
• 미가야(왕상22:13~28)
이믈라의 아들 / 아합의 죽음 예언함
• 엘리사(왕상19:16~왕하13:21)
엘리야의 뒤를 이어 우상종교에 대항함
• 브에리의 아들, 호세야(호1~14장)
고멜과 혼인, 북이스라엘의 회개 촉구함
•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암1~9장)
북이스라엘의 임박한 멸망 예언, 회개촉구
• 아밋대의 아들, 요나(욘1~4장, 왕하14:25)
니느웨의 회개 촉구, 이스라엘 영토회복 에언
• 오뎃(대하28:9~11)
사마리아군인들에게 유다 포로의 석방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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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벨 론
포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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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장 출신, 에스겔(겔1~48장)
바벨론 포로민들을 향한 예언 사역
• 오바댜(옵1장)
유다 침략에 앞장 선 에돔의 멸망 예언
• 예레미야(렘40~44장)
정복당한 유다와 애굽에서 예언활동
• 다니엘(단1~12장)
바벨론 포로지에서의 활발한 활동,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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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귀환
이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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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개(학1~2장, 스5:1,2)
백성들의 각성, 성전의 재건 촉구
• 스가랴(슥1~14장, 스5:1,2)
잇도의 손자, 선지자 학개와 동역함
• 말라기(말1~4장)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느헤미야와 동시대에 사역, 백성들의 각성 촉구
|
(분열왕국시대의 남북 선지자의 분류는 출신지역이 아니라 활동 지역이 기준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2> (편의상 사무엘부터 기술)
선지자 |
활동시기
(주전)
|
부친이름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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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및 주요활동 |
주요 본문 |
사무엘 |
1075~1017 |
엘가나의 아들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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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구함’이라는 뜻
최후의 사사, 최초의 선지자
사사시대와 통일왕국 과도기에 활동
미스바 신앙부흥운동을 주도함
사울, 다윗 두 사람에게 기름 부음
다윗의 행적을 기록함(사무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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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1~25:1
대상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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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 |
1010~930 |
|
‘선물’ 또는 ‘주는 자’라는 뜻
다윗 왕조 때의 궁정선지자, 고문
아사리아와 사붓의 아버지
밧세바를 범한 다윗에게 회개 촉구
다윗과 솔로몬 두 왕의 행적을 기록함 솔로몬에게 기름 부음
|
삼하7:2~17; 12:1~25 |
헤만 |
1003~945 |
요엘의 아들 |
‘충실, 신실’이라는 뜻
다윗, 솔로몬 시대의 충실한 성가대장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로 명성 떨침
왕의 선견자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만들기도 함, 예배찬양의 규범 제작
|
대상6:33
15:16~19
16:41~42
|
갓 |
1010~970 |
|
‘행운’이란 뜻
다윗 왕 때의 선견자, 다윗이 도망 중일 때 이방 땅에 머물지 말고 유다로 들어가라고 함, 다윗의 통치 말기에 인구조사를 행함으로 범죄하자,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을 전했음. 다윗의 행적 기록
|
삼상22:5; 24:11~19 |
아히야 |
10세기 초 |
(실로) |
‘여호와의 형제’라는 뜻
왕국 분열 및 여로보암의 등극 예언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을 선포함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함
|
왕상11:29~40; 14:1~18 |
스마야 |
930~913 |
|
‘여호와께서 응답하심’이란 뜻
왕국분열 직후의 남북전쟁을 막음
르호보암 왕의 행적을 기록함
|
대하11:2~4; 12:5~8 |
잇도 |
970~910 |
|
‘찬양하는’이란 뜻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의 행적 기록함(묵시책과 주석책 등)
|
대하9:29; 12:15: 13:22 |
아사랴 |
910~ |
오뎃의 아들 |
‘여호와께서 도우셨다’라는 뜻
구스의 백만 대군을 무찌르고 온 아사에게 종교개혁을 촉구함.
|
대하15:1~7 |
하나니 |
874~ |
|
‘여호와는 은혜로우심’이라는 뜻
이 단어는 ‘하나냐’의 단축형임
선지자 예후의 아버지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아람과 연합한 아사를 책망하다가 투옥됨
|
대하16:7~10 |
예후 |
909~886 |
하나니의 아들 |
‘그는 여호와’라는 뜻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
바아사를 꾸짖고 그 멸망을 예언함
여호사밧이 악인을 도운 행위를 질책
|
대하19:2,3
왕상16:7,12
|
엘리야 |
875~850 |
(디셉) |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
우상(바알) 종교와 맞서 싸움
북이스라엘의 최고 선지자
갈멜 산에서 바알선지자 850명 처단
여호와야말로 참 하나님이심을 선포
선지자 엘리사의 스승
유다왕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 책망함
병거 타고 승천한 불의 선지자
|
왕상17~왕하2장
대하21:12~15
|
미가야 |
869~850 |
이믈라의 아들 |
‘누가 여호와 같으랴’는 뜻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이스라엘 유다 연합군의 패배와 아합이 길르앗 라못에서 죽을 것을 예언
|
왕상22:13~28 |
야하시엘 |
|
레위 사람
스가랴의 아들
|
모압, 암몬 연합군과의 전쟁을 앞둔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을 독려함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선포함
|
대하20:14~17 |
엘리사 |
9세기 후반경 |
사밧의 아들
(아벨므홀라)
|
‘하나님은 구원자’라는 뜻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의 제자
엘리야의 뒤를 이어 우상종교에 대항
선지학교를 세워 생도들을 육성함
기적적인 능력으로 조국을 지킴
|
왕상19:16 ~
왕하13:21
|
엘리에셀 |
853년경 |
도다아후의 아들
(마레사)
|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뜻
유다 여호사밧 왕 때의 선지자
여호사밧이 악한 아하시아와 교제함을 규탄, 그의 배가 파선될 것 예언
|
대하20:37 |
스가랴 |
835~796 |
여호야다의 아들 |
‘여호와께서 기억하심’이라는 뜻
요아스 왕을 즉위시킨 제사장 여호야다와 공주 여호사브앗의 아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백성들의 배교행위를 질책하고 심판을 선포함. 요아스의 의해 여호와의 전 뜰에서 돌에 맞아 순교함
|
대하24:20~22 |
호세야 |
793~710 |
브에리의 아들 |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는 뜻
고멜과 혼인하여 세 자녀를 둠
북이스라엘의 출신으로 여로보암 2세 때 활동, 북이스라엘의 회개촉구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끝없는 사랑을 선포함
성경기록(호세야)
|
호1~14장 |
아모스 |
793~753 |
(드고아) |
‘무거운 짐을 진 자’라는 뜻
목자출신, 북이스라엘에서 주로 활동
주변 7개국에 대해 차례로 예언
배교와 방종으로 얼룩진 북이스라엘의 임박한 멸망과 회개를 촉구함
백성들에게 공평과 정의를 촉구함
‘선지자의 아버지’로 일컬어짐
성경기록(아모스)
|
암1~9장 |
요나 |
798~752 |
아밋대의 아들
(가드헤벨)
|
‘비둘기’라는 뜻
니느웨 성의 회개를 외친 선지자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 지내기도 함.
하나님의 보편적 관심을 기록함
이스라엘의 영토회복 예언하기도 함
성경기록(요나)
|
욘1~4장
왕하14:25
|
오뎃 |
740~732 |
|
‘부흥자’라는 뜻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이스라엘 왕 베가가 유다와 싸워 20만 명을 포로로 잡아올 때 그들을 유다로 돌려보내게 함.
|
대하28:9~11 |
요엘 |
835~796 |
브두엘의 아들
(예루살렘)
|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
유다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함예루살렘과 유다에서 주로 활동
메뚜기 재앙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선포하면서 유다백성들의 회개 촉구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선지자
회개하고 성령을 경험할 것을 촉구함
성경기록(요엘)
|
욜1~3장 |
이사야 |
739~680 |
아모스의 아들
(예루살렘)
|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뜻
여선지자인 아내와 두 아들 ‘스알야숩, 마헬살랄하스바스’를 둠
유다귀족출신, 주로 예루살렘에서 사역
유다 백성들의 경성과 회개 촉구
므낫세 왕에게 순교를 당함
희망과 복음의 선지자
회개와 고난을 통한 소망을 강조함
히스기야의 행적을 기록(사36~39장)
성경기록(이사야)
|
사1~66장
대하32:32
|
미가 |
728~697 |
|
‘하나님과 같은 자가 누구냐’라는 뜻
유다 출신의 선지자
이스라엘, 유다의 심판과 회복 예언
겸손, 자비, 정의에 대해 호소함
메시야의 베들레헴 탄생 예언
성경기록(미가)
|
미1~7장 |
나훔 |
612년경 |
(엘고스) |
‘위로자’라는 뜻
니느웨(앗수르)의 멸망을 선포함
하나님의 열심히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선포함
성경기록(나훔)
|
나1~3장 |
하박국 |
612~605 |
|
‘껴안은 자’라는 뜻
요시야 왕의 재위 말기에 예언 활동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을 강조
성경기록(하박국)
|
합1~3장 |
훌다 |
622 |
살룸의 아내
(예루살렘)
|
여선지자, 예루살렘 둘째 구역 거주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
요시야가 발견한 율법책에 대해 예언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촉발함
|
왕하22:14~20
대하34:22~28
|
스바냐 |
630년경 |
구시의 아들 |
‘여호와께서 숨겨 주신 자’이라는 뜻
므낫세와 아몬의 영향을 받아 우상숭배에 젖어 있는 유다의 각성촉구
임박한 ‘여호와의 날’에 대해 경고함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촉발함
겸손한 자들의 소망을 강조함
성경기록(스바냐)
|
습1~3장 |
우리야 |
|
스마야의 아들 |
유다멸망 예언
여호야김에 의해 순교
|
렘26:20~23 |
예레미야 |
627~586 |
힐기야의 아들
(아나돗)
|
‘여호와께서 세우시다’라는 뜻
눈물로 회개를 선포한 선지자
요시야를 위해 애가를 지음
유다의 멸망과 회복 예언, 독신생활
정복당한 유다와 애굽에서의 활동, 순교
애굽에서 우상숭배하는 동족들을 꾸짖다가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됨
새 언약의 약속을 예언함.
성경기록(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
렘1~52장
대하35:25
|
에스겔 |
593~570 |
부시의 아들 |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
바벨론 1차 침략 때 포로로 잡혀감
포로시대의 제사장이며 선지자
포로민들을 중심으로 한 예언 사역
환상과 소망의 선지자
새로운 예배 공동체를 향한 미래 소망
성경기록(에스겔)
|
겔1~48장 |
오바댜 |
586년경 |
|
‘주의 종, 주의 경배자’라는 뜻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략 당한 직후에, 유다침략에 앞장 선 에돔의 멸망을 예언함.
성경기록(오바댜)
|
옵1장 |
다니엘 |
605~536 |
|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
유다 지파의 왕족 출신
바벨론 1차 침략 때 포로로 잡혀감
신앙 절개를 지킨 포로 선지자
바벨론포로지에서 활발한 활동, 예언
구약의 계시록으로 평가되는 ‘다니엘서’를 기록함
|
단1~12장 |
학개 |
520~515 |
|
‘축제, 즐거움’이라는 뜻
포로생활 중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
1차 포로귀환 때 함께 돌아옴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공사가 16년이나 중단되자,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성전의 재건을 촉구함
하나님의 집을 우선할 것을 강조함
성경기록(학개)
|
학1~2장
스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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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
520~470 |
잇도의 손자
베가랴의 아들
|
‘여호와를 기억함’이라는 뜻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선지자의 사명을 받았음.
학개와 마찬가지로 성전 재건 독려
8가지 상징적 환상을 보고 기록함.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를 강조
성경기록(스가랴)
|
슥1~14장
스5:1,2
|
말라기 |
433~432 |
|
‘나의 천사, 나의 사자’라는 뜻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느헤미야가 가나안 땅을 떠나 있던 시기에 해이해진 백성들을 향해 각성을 촉구함
하나님만을 높이고 그분의 의를 기다릴 것을 촉구함, 성경기록(말라기)
|
말1~4장 |
<4대 선지서 비교>
구 분 |
이사야 |
예레미야 |
에스겔 |
다니엘 |
사역연대 (주전) |
739~680
(60년간)
|
627~586
(41년간)
|
593~570
(23년간)
|
605~536
(70년간)
|
소 명 장 |
사 6장 |
렘 1장 |
겔 1~3장 |
|
출신지, 사역지 |
예루살렘 |
아나돗, 예루살렘 |
바벨론 그발강변 |
예루살렘, 바벨론 |
예 언 대 상 |
유다인 |
포로된 유다인과
남은 유다인
|
포로된 유다인 |
이방나라 왕들과 포로된 유다인 |
중 심 내 용 |
하나님께서 남은 자에게 영광스런 미래를 약속하심 |
예루살렘의 죄, 운명, 미래의 영광 |
예루살렘의 멸망과 회복
영광스러운 미래
|
4개 왕국과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 |
역사적 배경 |
왕하 15~20장
대하 26~30장
|
왕하 24~25장 |
단 1~6장 |
단 1~6장 |
정치적 상황 |
시리아, 이스라엘의 위협
앗수르의 위협
북이스라엘 멸망
애굽과 앗수르
2강의 각축전
|
앗수르의 멸망 바벨론의 등장
1차 바벨론포로
애굽과 바벨론 2강의 각축전
|
백성 중 일부가 포로됨(2차)
예루살렘의 함락
|
유대인들의 3차 바벨론 포로 |
종교적 상황 |
우상숭배 성행
외식적 예배 만연
히스기야의 개혁
|
요시야의 개혁
요시야 사후
다시 과거로 회귀
거짓선지자 만연
|
전민족의 불순종
불신, 반역
|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 그러나 소수의 남은 자 |
|
메시야에 대한
비유적 표현
|
싹, 나의 종 |
의로운 가지
여호와 우리의 의
|
백향목의 연한 가지 |
돌, 인자, 기름 부음 받은 자 |
예언의 강조점 |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가르침 |
바벨론 포로의 당위성, 이를 회개의 기회로 삼아 더 큰 구원을 사모할 것 촉구 |
범죄 결과에 대한 단체적, 개인적 책임, 언약 성취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 등을 가르침 |
열국의 우상보다 뛰어난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 능력은 장소, 상황에 구애 받지 않음을 보여줌 |
구 성 |
66장 |
52장 |
48장 |
12장 |
표현상의 특징 |
선포와 경고 |
상징적 행위 |
비유와 묵시 |
역사와 묵시 |
중심단어 |
구원은
여호와의 것
|
유다의 멸망 |
장차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 |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
비 고 |
복음의 선지자
메시야의 선지자
|
눈물의 선지자
심판의 선지자
희망의 선지자
|
환상의 선지자
포로기의 선지자
|
이방 시대의 선지자 |
선지서와 선지자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는 대언자라 정의합니다.
- (민 12: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성경(구약)은 선지자들의 사역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서들에서 뿐 아니라 선지서라 분류된 책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그 자료들을 모아 요약합니다.
선지서 분류
구약의 선지자들은 솔로몬 왕 이후 남 유다 북 이스라엘 분열 왕국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네명의 대선지자와 열두명의 소선지자로 구분할 수 있다. 대와 소의 구분은 그들의 사역이나 업적의 구분이 아닌 선지서 책의 분량으로 나눕니다.
대선지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예레미야애가, 에스겔서, 다니엘서
소선지서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Micah), 나훔, 하박국, 스바냐 (Zephaniah), 학개, 스가랴 (Zechariah), 말라기
시대별 분류
선지자 사역 당시 시대 배경
- (BC 930) 남유다 (르호보암 왕)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왕) 분열과 부패 시작 --> 분열 왕국 시대
- (734-732) 앗수르의 공격 --> 아람 (시리아), 블리셋, 이스라엘, 그리고 유다의 일부 앗수르에 조공 받침
- (722-721) 앗수르 사마리아 점령, 북이스라엘 망함 (북이스라엘왕 호세아 왕) --> 남유다 잔존 왕국 시대
- (701) 유다 앗수르에 반란했지만 실패 --> 예루살렘은 해를 입지 않음 (히스기야 왕)
- (586) 바벨론 (느부갓네살 (Nebuchadnezzar)에 의해 남 유다 망함 (시드기야 왕) --> 포로 시대
- 포로 생활 70년 후 귀환 시작
분열 왕국 시대
-
요엘 (835-796): 여호와의 날, 성령의 강림, 통치자: 요아스
-
요나 (793-753, 니느웨):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이스라엘의 부흥, 여로보암 2세
-
엘리야 (북이스라엘): 아합가의 멸망
-
미가야 (764-724, 북이스라엘): 아합의 죽음
-
호세아 (764-723),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함락,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에 의존하는 이스라엘 책망, 여로보암 2세
-
엘리사 (760-785, 북이스라엘): 아합가의 멸망
-
아모스 (760-755, 북이스라엘): 하나님의 공의, 여로보암 2세
-
이사야 (750-686):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구원, 메시야의 탄생과 사역, 웃시야 - 히스기야
-
엘리에셀 (740-680): 여호사벳에게 아하시야와의 교제를 책망
-
미가 (737-690): 심판과 회복, 베들레헴에서 메시야 탄생, 요담 - 히스기야
남유다 잔존 왕국
-
나훔 (664-612): 니느웨(앗수르)의 멸망, 므낫세
-
스바냐 (635): 여호와의 날, 요시야
-
하박국 (609-600): 신앙의 고뇌와 승리, 바벨론의 멸망, 요시야 - 시드기야
-
예레미야 (626 - 593): 예루살렘의 죄와 슬픈 운명 및 미래의 영광, 여호야김
바벨론 포로 시대
포로 귀환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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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 구약성경개론 (Survey of the Old Testament - 폴 N. 벤웨어)
구약 선지자들의 연대기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현재 기록이 전해지는 16명의 선지자들은 BC 800년경부터 400년까지 4세기 동안 활동했다. 그들 대부분은 봉사
기간을 최소한 대략적으로라도 확정지을 수 있도록 연대 자료를 남겼다. 그러나 두 사람(요엘과 오바댜)의 경우 사역 시기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이 문제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매우 다르다.
첨부된 도표를 통해 독자는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이 선지자들을 연구할 수 있다. 많은 예언과 기별은 선지자들이 봉사했던 시기의 상황과 대비시키고 그들의 생애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비추어 볼 때에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 특별히 후기 왕들의 시대를 비교적 매우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 16명의 선지자들이 봉사했던 시기에
다스렸던 여러 왕들의 통치 기간이 본 주석에서 채용한 잠정적인 연대기에 따라 이 도표에 편입됐다(참조 제3권, 107; 제4권,
54, 76, 99, 100, 322). 이 시기에 다스렸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왕들의 비교적 잘 정립된 연대도 다른
난에 기록되어 있다. 그 왕들 대부분은 성경의 예언서나 역사서에 언급되어 있다. 또 한 난에는 이 기간에 있었던 특별한 사건들의
목록이 나와 있는데, 일부는 이스라엘과 유다 주변국들에서 일어난 국외 사건에 관한 것이고 일부는 국내 사건에 관한 것이다. 이
도표에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으며 예언적 기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건들만 나와 있다.
다음의 간략한 요약에는 여러 선지자들이 도표에서 각각 해당 연대에 표시된 것에 관한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
이사야
이사야는
성경 기자들의 위대한 선구자였다. 이 사실은 여러 신약 기자가 인정하는 바, 그들은 이사야서를 90회 이상 인용했다. 이사야는
남방 왕국의 선지자로,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시기에 살았다. 그는 두 번의 결정적인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 아하스 치세 때 아람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였던 시기(사 7~11장),
(2) 히스기야 치세 때 산헤립이 이스라엘을 포위했던 시기(36, 37장).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통해 히스기야와 백성을 독려한 그는 예루살렘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의 초기 봉사는 웃시야 왕 통치 말기와 일치하는 것 같지만(참조 이사야 서론), 공식적인 선지자로서의 부르심은 웃시야 왕의 마지막 해인 BC 740/739년에 있었다(6:1). 이어지는 세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치세 아래서 신실하게 봉사했던(1:1)
그는 히스기야의 악한 아들 므낫세에게 극도로 미움을 받았던 것 같다. 므낫세는 BC 686년경 그의 아버지의 사망 직후 단독
통치자로 보좌에 등극했을 때 지체하지 않고 그 신실한 선견자를 제거하였다(선지자와 왕, 382).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톱으로 켬을 당하여 죽었다고 한다. 히브리서 11장 37절이 이 사건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웃시야부터 므낫세까지 이사야의 전 봉사 기간은 반세기 넘게 지속됐음에 틀림없다(선지자와 왕 310, 382,).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일대기는 다른 선지자에 비해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아나돗이 고향이었던 제사장의 가문에 속했다. 예레미야는 출생 전부터 하나님에게 택함 받아 직무를 맡았고(렘 1:5) 어린 나이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1:6, 7). 선지자가 자신을 가리켜 말한 “청년” 혹은 “아이”(1:6)라는
뜻의 히브리어 나아르(na‘ar)는 예레미야가 정확히 몇 살에 부름을 받았는지 드러내 주지는 않지만, 이 단어가 들어있는 구절의
문맥이 적어도 20세 미만의 매우 젊은 나이였다는 해석을 지지하는 듯이 보인다. 이 부르심은 BC 627/626년 요시야 왕
제13년(1:2; 25:3)에 있었다. 그 당시 요시야는 불과 21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왕이었다.
예레미야는 조국이 위기를 겪던 시기에 살면서 동포에게 책망의 기별과 앞으로 닥쳐올 파멸에 대한 엄중한 예언을 많이 선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여호야김 치세 때는 담대한 기별로 인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기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36:26).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치세 때는 바벨론인들에게 항복하라고 권고했다는 이유로 배반자로 여겨져 투옥됐다(37:11~16). BC 586년 예루살렘 멸망 후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가 유다에 남게 된 동포와 지내도 좋다고 허락했다(40:1~6). 유다의 새 총독 그다랴의 피살 후 미스바의 유대인들은 느부갓네살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예레미야와 그의 서기 바룩을 데리고 애굽으로 도망갔다(43:6).
애굽에서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그곳에서 행하던 우상숭배를 강하게 질타했다(43, 44장). 그는 나일강 지역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유대인의 전설 가운데는 그가 동포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는 주장이 있다. 역사적인 후기(後記)인 52장을 예레미야가 기록했다면 그는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Evil-Merodach)이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방면했던(참조 52:31) BC 561년까지 살았음에 틀림없다. 이럴 경우 그는 80대였을 것이다. 52장이
예레미야의 서기나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영감받아 기록한 후기로서 첨가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약 20년 앞선 BC
580년경에 죽었다고 믿는다. 도표에는 두 의견을 다 반영하여 실재했을지 모를 BC 560년 이전 20년의 봉사 기간을 점선으로
표시했다.
에스겔
선지자
겸 제사장인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압송됐던 BC 597년에 느부갓네살 왕이 포로로 잡아갔던 유다인 10,000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여호야긴이 포로 된 지 제5년인 BC 593/592에 에스겔은 바벨론 남부 닙푸르(Nippur)라는 유명한
도성 인근의 한 운하였던 “그발강”가에서 첫 번째 계시를 보았다(겔 1:1~3). 포로 된 지 제5년을 그가 “제삼십년”이라고 언급한 것은 수수께끼이다. 선지자가 자신의 나이를 그렇게 지칭했거나 아니면 그 해가 요시야 왕이 개혁을 일으킨 지 제30년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에스겔의 여러 기별은 정확한 연대를 매길 수 있으며 연대가 매겨진 예언 기별 중 마지막은 에스겔이 사로잡힌 지 제27년(29:17)인
BC 571/570년에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은 BC 593/592년부터 BC 571/570년까지 적어도 22년의 봉사를
한 셈이 된다. 그러나 연대가 매겨지지 않은 일부 예언이 그 이후에도 주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BC 571/570년을
굳이 그의 봉사의 마지막 해로 구분지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즉위년인 BC 605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참조 단 1:1 주석). 하지만 젊은 다니엘이 선지자의 소명에 관한 최초의 증거를 보여 준 사건은 느부갓네살 제2년 곧 그가 포로 된 지 제3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1:5, 17; 2:1, 19). 따라서 BC 603년을 다니엘이 선지자로 봉사하기 시작한 해로 볼 수 있다.
한동안 그는 느부갓네살 정부의 고위직에 있었고(2:48) 그 위대한 왕에게 신임받는 모사가 됐다. 느부갓네살의 후계자들의 치세 때는 다니엘의 조력이 요청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바벨론이 멸망하던 밤, 벽에 기록된 신비스런 글자의 해석자로서 다시 한 번 역할을 담당한다(5장). 이 사건 직후 그는 새롭게 형성된 페르시아 제국에서 또다시 명예롭고 책임이 막중한 고위관직에 오르게 되었다(6장).
7~12장에 기록된 모든 계시는 다니엘이 말년에 받은 것인데, 첫 번째 계시(7장)는 벨사살 원년(BC 552년 혹은 그 후)에, 마지막 계시(10~12장)는 고레스 제3년인 BC 536/535년에 주어졌다. 그가 책을 마무리짓고 봉함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가 이 시기였을 것이며, 이때 다니엘은 거의 90세였을 것이다(12:4, 13). 이런 이유로 다니엘의 광범위한 선지자 봉사 기간은 대략 BC 603년에서 535년까지로 산정할 수 있다.
호세아
선지자 호세아는 북방 이스라엘의 시민이었는데, 당시는 그가 “우리 왕”(호 1:1; 7:5)이라고 부른 여로보암 II세가 통치하던 때였다. 호세아의 예언 일부와 아모스의 예언을 비교해 보면 호세아가 동시대의 아모스보다 젊었다는 점이 드러난다(참조 호 4:3과 암 8:8; 호 4:15과 암 5:5; 호 8:14과 암 2:5). 유다 왕 웃시야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시대(호 1:1)에 봉사를 시작한 호세아는 유다 왕 히스기야 때까지 계속 활동했다(1:1). 그러나 그의 모든 기별은 북방 왕국에게 보낸 것이었다.
호세아서에는
BC 723/722년에 일어난 사마리아의 함락에 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선지자의 마지막 기별은 사마리아의 멸망
전에 주어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봉사는 약 BC 755년(혹은 그전)부터 BC 725년경까지로 산정할
수 있다.
요엘
선지자 요엘에 관해서는 브두엘의 아들(욜 1:1)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다. 그의 저작은 능란한 말솜씨와 균형 잡힌 구문과 생동감 있고 인상적인 시(詩)라는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이 책에는 선지자가 살았던 시기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 선지자가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며 다가올 심판날의
두려움과 비교하는 파괴적인 황충 재앙의 시대를 산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요엘이 봉사했던 시기에 관해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한다.
이전 세대의 학자들은 그를 BC 9세기 사람으로 보는 반면, 현재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의 시기를 요시야 왕 시대나 바벨론 유수
이후로 정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의 세 가지 견해를 지지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모두를 여기에 제시한다.
1. 9세기 견해
대제국 앗수르와 바벨론은 이 선지자의 시계(視界) 안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 보건대 그는 앗수르가 팔레스타인 정세에 어떤 역할을 하기 이전 시대에 일했던 것 같다. 이방 민족들이 유다에게 자행한 적대 행위들(3:4 이하)은 열왕기하 8장 20~22절과 역대하 21장 8~10절에 기록된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반면 왕하 12:17, 18과 대하 24:23, 24에 기록된 하사엘의 침공을 지적하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요엘이 이 두 사건 사이에 해당하는 시기에 기별을 전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더욱이 그는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어린 왕 요아스를 위해 섭정하던 시절(왕하 11:17~12:2)에 봉사했다고 여겨지는데, 이 사실은 요엘서 어느 곳에도 왕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다. 한편 그 당시에는 성전봉사가 잘 이뤄지고 있었다.
2. 7세기 견해
이
견해는 요엘의 봉사가 요시야 초기, 곧 앗수르 세력이 거의 끝나고 바벨론이 아직 약한 왕국이었던 시기에 들어맞는 것 같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 두 왕국에 관한 언급을 이 선지자가 전혀 안 했던 것이다. 요시야는 어린 나이에 보좌에 올랐기 때문에 섭정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요엘이 왕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에 대한 설명이 된다. 더욱이 두로와 시돈 백성이 유다
역사의 마지막 수십 년이 돼서야 적대국으로 등장하는 반면, 요엘이 그들을 유다의 원수로 언급한 사실은 이 선지자의 봉사가 늦은
연대에 있었음을 가리키는 것 같다. 여기에 헬라에 관한 언급(욜 3:6)을 덧 붙일 수 있는데, 헬라는 BC 7세기 이전에는 근동 역사에서 활약한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정확하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을지라도 본 주석에서는 7세기를 요엘서의 연대로 채택했다.
3. 바벨론 유수 후 견해
유다
왕이나 앗수르 혹은 바벨론에 관한 언급이 없으나, 두로와 시돈의 적개심과 헬라에 관해서 언급한 사실을 일부 주석가들은 요엘서가
포로 후 시대에 기록되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페르시아에 대한 언급, 즉 그렇게 늦은 연대에 기록됐다면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요소도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사실로 인해 이런 늦은 연대를 지지하는 논거는 약해진다.
아모스
아모스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목자” 그리고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암 1:1; 7:14)로
제시한다. 책 서두에서 그는 유다 왕 웃시야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II세의 치세 때 봉사했다고 밝힌다. 두 왕만 언급된 점으로
보아 아모스는 두 왕이 각자의 나라에서 단독 통치자로 있던 시대에 예언했던 것 같다. 웃시야는 유다에서 BC 767년부터
750년까지,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에서 BC 782년부터 753년까지 단독으로 통치한 왕이었다. 첫 번째 기별이 “지진 전
이년”(1:1)에 임했다는 언급이 있는데도 더 정확한 연대 추정이 불가능한 이유는 지진의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진은 매우 강력했음에 틀림없는데, 이는 스가랴 14장 5절을 보면 그 지진에 대한 기억이 250년 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유다의 국민이었으나 이스라엘 왕국에도 기별을 전했다. 그의 기별 중 일부는 여러 이방 민족들에 대한 경고였다. 그는 북방 이스라엘의 성소가 있는 벧엘에 가서 이스라엘에 닥칠 운명과 경고와 견책의 예언들을 전했다.
오바댜
21절로만
구성된 짧은 책 오바댜는 연대가 나와 있지 않으며 연대적 배경도 불확실하다. 에돔에 대한 경고인 오바댜의 예언은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이 최근에 일어났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오바댜가 BC 9세기 여호람 왕 시대에
예루살렘이 정복당한 사실(왕하 8:20~22; 대하 21:8~10, 16, 17)을 언급한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지만, BC 586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일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가 사용한 단어 일부가 예레미야(옵 1:1, 3, 4절; 참조 렘 49:14, 16)와 요엘(옵 1:15, 17절; 참조 욜 1:15; 2:1, 32)에도 나온다는 점이 늦은 연대인지 이른 연대인지 밝히는 증거로 사용되기 힘들다. 본 주석에서는 이른 연대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늦은 연대를 채택하고 있다.
요나
선지자 요나는 가드헤벨 출신의 갈릴리 사람이었다. 그의 책에는 니느웨로 가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시기를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열왕기하 14장 25절에는
요나가 여로보암 II세가 성취할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에 관한 예언을 선포했다고 나와 있다. 이 예언은 여로보암이 즉위하기 전(약
BC 793년)이나 그의 통치 초기에 선포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요나는 여기서 논의하는 선지자들 중 가장 초기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요나의 봉사 시기를 BC 790년경으로 이른 연대로
잡는 것은 앗수르의 역사와 잘 부합한다. 니느웨에 대한 요나의 사명과 그 결과가 부합되는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기간은 아닷-니라리
III세(Adad-nirari III, BC 810~782) 치세이다. 그의 통치 중 짧은 시기 동안 앗수르는 다신교 신앙에서
단일신 나부(Nabu) 숭배 신앙으로 돌아섰다(참조 제3권, 82).
미가
미가는 아마도 유다 남서부 텔 엣-주데이데(Tell ej-Judeideh)로 보이는 가드모레셋(미 1:1, 14) 출신의 선지자였다. 미가를 아합 시대(BC 9세기)에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와 혼돈해서는 안 된다. 초기 주석가들은 이 두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보려고 했는데, 이는 그들이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미 1:2; 참조 왕상 22:28). 그러나 미가가 제시한 연대적 자료는 이렇게 보는 것과 부합하지 않으며, 두 사람 사이에 한 세기 이상의 시차가 있음을 보여 준다. 미가는 자기의 봉사가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미 1:1)
시대에 해당한다고 언급한다. 요담의 단독 통치가 그의 아버지 웃시야가 죽던 BC 740/739년 후에 시작됐기 때문에, 미가의
선지자 봉사의 시작 연대도 웃시야의 사후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사야보다 조금 어린 동시대 사람인데, 그의 예언은
어휘와 용어 면에서 이사야와 매우 흡사하게 나타난다(미 4:1; 참조 사 2:2~4). 예레미야(렘 26:18)도 미가서(미 3:12)를 인용하며 미가가 히스기야 시대에 봉사했음을 증언한다. 이 모든 사실에 비춰볼 때 미가는 약 BC 740년부터 700년경까지 예언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훔
나훔은 엘고스 사람이라 불린다(나 1:1).
엘고스라는 지명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주석가들은 이곳이 갈릴리 북부에 있는 엘케시(Elkesi), 모술(Mosul) 인근의
알쿠쉬(Alkush), 유다의 엘류쎄로폴리스(Eleutheropolis) 인근 마을임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가 남방
왕국에서 살고 일했으며, 그의 주요 예언이 전반적으로는 앗수르를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니느웨를 다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어떤 연대적
자료도 나오지 않지만 선지자는 노(No)의 멸망을 과거사로 말하고 있다(3:8). 헬라식 명칭인 테베(Thebes)로 더 잘
알려진 상(上)애굽의 이 수도는 BC 663년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에게 멸망당했는데, 이 해는 나훔이 예언했다고 볼
수 있는 시기의 상한선이 된다. 반면 니느웨의 멸망은 장래 사건으로 기술되어 있다(3:7).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BC 612년 메대와 바벨론 연합군의 수중에 들어가 멸망당했고, 따라서 이 해는 나훔이 예언한 시기의
하한선이 될 수 있다. 테베에 임한 파멸에 관한 선지자의 생생한 묘사는 그 사건이 백성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인상을
주는 반면, 앗수르는 세력이 기울고는 있었지만 아직 파국에 가깝지는 않았다. 그래서 테베의 멸망과 니느웨의 멸망 연대의 중간쯤
되는 BC 640년이 나훔의 예언적 봉사에 합당한 추측 연대일 것 같다.
하박국
하박국에 관해서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다. 하박국 3장이 “영장”에게 바치기 위해 “내 수금에 맞춘 것”(합 3:19)이라는 기록을 보면 그가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연대적 자료도 하박국서에 나오지 않지만 하박국의 예언 시기를 비교적 정확히 추정할 수 있는 언급들이 일부 있다. 성전이 아직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2:20) 하박국서는 BC 586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전에 기록됐음이 드러난다. 더군다나 갈대아 사람들이 일어나 서방을 침략할 것이라는 예언은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1:5~7).
이 상황은, BC 626/625년에 통치를 시작하여 메대와 함께 앗수르를 멸망시킨 장본인인 나보폴랏사르(Nabopolassar)
치하의 갈대아 제국이 일어나기 전 시기에 가장 잘 맞는다. 갈대아 사람들이 주요 세력이 되기 전인 BC 630년경이 하박국의
예언 활동 시기로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스바냐
선지자 스바냐는 유다 왕 히스기야(Hezekiah)로 보이는 히즈키야(Hizkiah, 두 이름이 히브리어로는 같음)라는 중요 인물에 이르기 까지 자기 계보를 소급한다. 그는 BC 640년에서 609년까지 다스렸던 요시야 왕(습 1:1)의 치세 때 봉사했다고 진술한다. BC 612년에 일어난 니느웨의 멸망이 미래의 사건으로 언급된 점은 스바냐의 사역이 이 연대보다 앞서 진행됐음을 나타낸다. 더욱이 유다의 죄악이 당대에 엄청났다고 반복하여 언급한 것(참조 1:4~6, 8, 9, 12; 3:1~3, 7)은 BC 622/621년에 시작된 요시야의 개혁 이전 시대를 가리킨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스바냐는 아마도 BC 630년경 요시야의 통치 초기 곧 하박국과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학개
한동안 중단됐던 성전 재건(스 4:24; 5:1)은
학개의 담대한 봉사를 통해 다리오 I세 때 재개되었다. 학개서에는 연설 네 개가 들어 있는데, 각각에는 다리오의 정확한 통치
연월일이 나와 있다. 학개서의 이어지는 순서를 통해, 기록된 그의 봉사 기간은 BC 520년 8월 29일에 시작하여(학 1:1) 마지막 두 편의 연설(2:10, 20)을 했던 BC 520년 12월 18일까지 전부 3개월 반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학개의 사역처럼 이렇게 명확하게 연대를 매길 수 있는 다른 선지자는 없다.
스가랴
스가랴는 제사장 가문에 속했던 것 같다(슥 1:1; 참조 느 12:12, 16). 소명은 BC 520년 10/11월 어느 날 그에게 이르러 왔는데, 같은 해에 학개도 처음 등장한다(슥 1:1). 여러 예언이 두세 달 후에 연이어 임했다(1:7~6:15). 그런 뒤 그의 활동은 거의 2년 동안 잠잠했다가, BC 518년 12월 6일(7:1) 7장과 8장에 기록된 또 다른 거룩한 기별을 받았다. 9~14장에
나오는 나머지 기별과 예언에는 연대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스가랴의 활동기간을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그가 BC 520년에
사역을 시작하여 BC 518년까지 계속했음은 알려져 있는 반면, 선지자 봉사의 끝은 정하지 않은 상태로 유보해야만 한다. 일부
학자들은 그의 봉사의 마지막을, 잠정적으로 BC 510년이라고 정한다. 9~14장 부분이 훨씬 후에 주어졌을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좀 더 오래 일했을 가능성도 있다.
말라기
말라기라는
말이 “나의 사자”라는 뜻이기 때문에 말라기가 저자의 이름인지 아니면 단순히 익명의 저자에 대한 호칭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만약 후자가 사실이라면 그의 책은 구약의 선지서 가운데 유일한 익명의 작품이 된다. 그러나 말라기를 왜 고유명사로 보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한 근거는 없다.
말라기서는 선지서들의 배열에서 마지막 책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에 저술된 마지막 예언서이기도 하다. 그 책의 기별은 유다 왕국 시대가 끝나고 총독이 나라를 치리하던 시대(말 1:8)에 기록되었음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그때가 페르시야 시대임을 가리킨다. 성전은 분명히 재건됐고 말라기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제사가 정규적으로 드려졌다(1:7~10). 말라기가 꾸짖었던 여러 악습은 느헤미야가 두 번째 총독 임기를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발견했던 것들과 거의 동일하다(말 3:8, 9; 참조 느 13:10~12; 말 2:11~16; 참조 느 13:23~27).
불행하게도
느헤미야의 두 번째 총독 임기의 연대를 추정할 수 없기에 말라기의 연대를 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느헤미야의 첫 번째 총독
임기는 BC 444년부터 432년까지 이어졌다가, 이후에 페르시아로 소환됐다. 거기서 그는 얼마간인지 알 수 없는 여러 해를 보낸
뒤 유대로 돌아왔을 때 느헤미야 13장에
기록된 악습들을 보게 된다. 이런 악습들은 총독의 단호한 조치로 시정되었다. 이를 통해 말라기의 사역은 느헤미야의 첫 번째 총독
임기에 뒤이어 있었지만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수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시기 이전에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BC 42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선지자들의 활동 장소와 시기를 시대순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지와 그 때의 왕은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한 선지자들과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의 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엘리야 (Elijah):
왕: 아합 왕 (Ahab)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선지자 중 하나로,
우상 숭배에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특히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주도한 바알 숭배에 반대하여 유명한 갈멜산 대결을 벌였습니다.
(2) 엘리사 (Elisha):
왕들: 여로보암 2세, 여호아하스, 여호람 등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했습니다.
여러 왕들의 통치 기간 동안 예언 활동을 하였으며,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을 외적의 침략에서 보호하는 예언을 하고, 사회적 정의를 외쳤습니다.
(3) 호세아 (Hosea):
왕: 여로보암 2세 등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직전에 활동한 선지자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배신을 고발하고, 그 결과로 다가올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그의 예언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에 대한 경고로 유명합니다.
(4) 아모스 (Amos):
왕: ** ** 여로보암 2세
아모스는 원래 남유다 출신이었지만,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모스는 주로 사회적 불의, 부패, 그리고 종교적 위선을 강하게 비판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이 네 명의 선지자들은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했으며,
각기 다른 시기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특히 엘리야와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의 초기와 중기에,
호세아와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후기, 즉 멸망 직전에 활동한 선지자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지와 그 떄의 왕은
남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주요 선지자들과 그들이 활동한 시기의 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사야 (Isaiah):
왕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이사야는 남유다 왕국의 여러 왕들 하에서 활동한 선지자로,
주로 히스기야 왕 때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사야는 유다의 죄악을 경고하고,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했습니다.
(2) 예레미야 (Jeremiah):
왕들: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멸망 직전에 활동했으며,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그는 유다 백성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했고,
실제로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3) 에스겔 (Ezekiel):
왕들: 여호야긴 (유다의 마지막 왕 중 한 명, 바벨론으로 끌려갔음)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기 동안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유다의 멸망을 설명하고, 포로된 백성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미래의 회복과 새 성전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4) 미가 (Micah):
왕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하며,
주로 사회적 불의와 부패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한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5) 스바냐 (Zephaniah):
왕: 요시야
스바냐는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이전에 활동하며,
유다의 죄악과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그는 요시야 왕이 개혁을 단행하도록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집니다.
(6) 하박국 (Habakkuk):
왕: 여호야김
하박국은 유다의 죄악과 바벨론의 압박 사이에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의문을 품고,
하나님께 질문하며 답을 받는 형태의 예언을 남겼습니다.
그는 신실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믿음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7) 요엘 (Joel):
왕들: 정확한 시기는 불명확하지만, 여호사밧 왕 또는 요아스 왕 시기로 추정
요엘은 메뚜기 재앙을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회개와 금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했습니다.
(8) 아모스 (Amos) (또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지만, 유다에 대한 예언도 포함):
왕: 웃시야
아모스는 주로 북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활동했지만,
유다에 대한 예언도 했습니다. 그는 부패와 불의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선지자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활동하며,
유다 왕국의 왕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들은 유다의 종교적 타락과 사회적 부패를 비판하고, 회개와 구원을 촉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참고용 : 다른 자료에서 발췌... 중복되기도 함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와 장소를 시대순으로 정리
(1) 오바댜 (Obadiah)
활동 시기: 주전 9세기 (정확한 시기는 불명)
활동 장소: 유다 왕국
특징: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2) 요엘 (Joel)
활동 시기: 주전 9세기 (정확한 시기는 불명)
활동 장소: 유다 왕국
특징: 요엘은 메뚜기 재앙과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으로 유명합니다.
(3) 아모스 (Amos) *이스라엘
활동 시기: 주전 8세기 (약 주전 760-750년)
활동 장소: 북이스라엘 왕국
특징: 아모스는 주로 사회 정의와 도덕적 타락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4) 호세아 (Hosea) *이스라엘
활동 시기: 주전 8세기 (약 주전 750-722년)
활동 장소: 북이스라엘 왕국
특징: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타락과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5) 이사야 (Isaiah) *
활동 시기: 주전 8세기 (약 주전 740-700년)
활동 장소: 유다 왕국, 예루살렘
특징: 이사야는 유다 왕국의 여러 왕들의 통치 기간 동안 활동하였으며,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많이 남겼습니다.
(6) 미가 (Micah) *
활동 시기: 주전 8세기 (약 주전 740-700년)
활동 장소: 유다 왕국
특징: 미가는 주로 유다의 사회적 부패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7) 요나 (Jonah)
활동 시기: 주전 8세기 (약 주전 780-750년)
활동 장소: 아시리아 니느웨 (아시리아의 수도)
특징: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8) 나훔 (Nahum) *
활동 시기: 주전 7세기 (약 주전 660-620년)
활동 장소: 유다 왕국
특징: 아시리아 니느웨의 멸망 예언.
(9) 스바냐 (Zephaniah) *
활동 시기: 주전 7세기 (약 주전 640-609년)
활동 장소: 유다 왕국
특징: 유다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 예언.
(10) 예레미야 (Jeremiah) *
활동 시기: 주전 7세기 말~6세기 초 (약 주전 626-586년)
활동 장소: 유다 왕국, 예루살렘
특징: 유바벨론 포로기 직전에 활동하였으며, 유다의 멸망과 포로됨을 예언했습니다.
(11) 하박국 (Habakkuk) *
활동 시기: 주전 7세기 말 (약 주전 612-589년)
활동 장소: 유다 왕국
특징: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질문과 바벨론의 침공 예언.
(12) 에스겔 (Ezekiel)
활동 시기: 주전 6세기 (약 주전 593-571년)
활동 장소: 바벨론 유배지
특징: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기간 동안 포로로 잡혀 간 유대인들에게 예언을 전했습니다.
(13) 다니엘 (Daniel)
활동 시기: 주전 6세기 (약 주전 605-536년)
활동 장소: 바벨론 제국
특징: 꿈다니엘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에서 활동하며, 꿈 해석과 관련된 예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4) 학개 (Haggai) **
활동 시기: 주전 6세기 (약 주전 520년)
활동 장소: 예루살렘
특징: 학개는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예언을 했습니다.
(15) 스가랴 (Zechariah) **
활동 시기: 주전 6세기 (약 주전 520-518년)
활동 장소: 예루살렘
특징: 스가랴는 성전 재건과 메시아 도래를 예언했습니다.
(16) 말라기 (Malachi) **
활동 시기: 주전 5세기 (약 주전 430년)
활동 장소: 예루살렘
특징: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과 메시아의 오심 예언.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적 의미의 선지자
구약의 선지자들
선지자란?
'선지자(Prophet)'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비(נָבִיא)'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와 명령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예언적 환상과 신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냈으며, 때로는 심판과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신앙적·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신탁을 전하는 전형적인 선지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다양한 영적 지도자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들 또한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했으며, 시대적 상황에 따라 특정한 사명을 부여받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특정 사건의 개입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와 희망을 전하며 백성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때로는 개인의 삶과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의 유형과 대표적 인물들
1. 원시적 영적 지도자
노아: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받고 방주를 준비하며 의를
전파했습니다(창 6-9장). 베드로후서 2장 5절에서는 그를 '의의 전파자'로 칭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방주를
건축하며, 당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노아의 경고를 무시했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홍수 이후 노아는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어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구원의 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께 언약을 받아(창 12:1-3)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며,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전하는 중재자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이 예정되었을 때
하나님께 중재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을 나타냈습니다(창 18장). 또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언약의
순종과 신실함의 본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믿음과 순종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본보기가 됩니다. 그는 또한 각기 다른 시험과 도전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확립하며,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언약의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모세: 신명기 18장에서는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큰
선지자'로 제시됩니다. 그는 출애굽을 이끌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받아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순종한 백성을 위해 중보하며, 광야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민 14장). 모세는 여러 차례 백성의
불평과 반항에 직면했으나, 하나님께 끊임없이 중보하며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백성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전인적 역할을 포함했습니다.
2. 왕이면서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한 지도자
다윗: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서(삼상 13:14) 메시아적 왕국의
모형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시편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를 남겼으며, 하나님의 임재와 왕권에 대한 깊은
신앙적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다윗은 범죄 후에도 진심으로 회개하며(시 51편)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와 용서의 본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한 영원한 언약을 확립하실 것을 예고받았으며, 그의
후손이 장차 영원한 왕국을 세우는 메시아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신앙과 리더십은 이스라엘 왕정 시대의 중심적
모델이 되었습니다.
선지자의 시대적 구분
1. 신 앗수르 시대의 선지자들 (주전 9~7세기)
- 이 시대의 주요 선지자 목록: 요나, 아모스, 호세아, 미가, 이사야
앗수르 제국이 점차 강성해지던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들로, 그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회적·종교적 타락을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강조하면서도, 회복과 구원의 소망을 함께
전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요나: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지 못해 도망쳤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닌웨에 도달해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요나의 사역은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민족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닌웨 사람들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전적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했습니다. 요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극률에 대해 분노했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용서를 상징하는 강력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모스: 정의와 공의를 외치며, 이스라엘의 불의한 사회 구조와 위선적인
종교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부유층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행태를 규탄하며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암 5:24)고 선포했습니다. 아모스는 단순히 윤리적 비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예배와 사회정의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간 관계에서의 공정성과 배려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했습니다.
호세아: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메시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영적
배신을 표현하기 위해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며, 이스라엘의 배교와 하나님의 사랑을 결혼 관계로
비유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회복의 약속을 강조했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할 때마다 그들이 겪을 심판과 고통을 경고했지만, 동시에 회개하고 돌아올 때 주어질 은혜를 역설했습니다.
미가: 미가는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향해 불법과 우상숭배를 경고하며
심판을 예고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미 4:3)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듯이, 장차 올 평화로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미가는 또한 "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미
6:8)라는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적 삶의 본질을 강조했습니다.
이사야: 이사야는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을 향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임마누엘 예언(사 7:14)을 통해 장차 올 메시아를 예고하며, 하나님의 거룩성과 의로움이 온 땅에 드러나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사야서 후반부에서는 포로에서 돌아올 백성들을 위로하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선포했습니다(사
65:17). 이사야는 또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진 고난받는 종의 예언(사 53장)을 통해 구속적 희생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2. 신 바벨론 시대의 선지자들 (주전 7~6세기)
- 이 시대의 주요 선지자 목록: 예레미야, 하박국, 스바냐, 나훔, 에스겔, 다니엘
이 시대의 선지자들은 바벨론 제국의 침략과 유다 멸망이라는 역사적 위기 속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들은 심판을 예고하며, 동시에 장차 회복될 하나님의 언약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포로기 동안 신앙을
지키며 새로운 희망을 품도록 백성들을 격려했습니다.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악과 멸망을 예언하며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는 바벨론으로의 포로 생활을 피할 수 없음을 경고했으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실 것을 약속했습니다(렘 31:33). 백성의 반발과 핍박을 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렘 29:11)라는 말씀을 통해 회복과 희망을 전했습니다.
하박국: 하박국은 하나님께 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지
질문하며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깊이 묻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그는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는 신앙적 원칙을 깨닫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하박국은 마지막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라는 고백으로
믿음의 절정을 보여주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스바냐: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과 구원을 예고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겸손하게 의를 구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심판 속에서도 남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나훔: 나훔은 닌웨의 멸망을 예언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앗수르의 잔혹함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을 보여줍니다. 나훔은 또한 "여호와는 질투하며
보복하시는 하나님"(나 1:2)이라는 선언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냈습니다.
에스겔: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다양한 환상과 상징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와 심판, 그리고 회복을 전했습니다. 마른 뼈의 환상(겔 37장)은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과 하나님의 새 언약을
상징합니다. 그는 성전 회복과 미래의 새 예루살렘에 대한 소망을 선포했습니다. 에스겔은 또한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통해 죄의 결과를 경고했습니다.
다니엘: 다니엘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왕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며,
꿈과 환상을 통해 장차 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했습니다. 그의 사자굴 사건은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다니엘은 또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심"(단 7:13)이라는 예언을 통해 메시아의 도래를 예고했습니다.
3. 페르시아 시대의 선지자들 (주전 6~5세기)
- 이 시대의 주요 선지자 목록: 학개, 스가랴, 말라기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가 유다 백성의 귀환을 허용한 후, 선지자들은 성전 재건과 신앙 회복을 독려하며 언약의 성취를 강조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귀환 공동체가 새로운 신앙적 기초 위에 서도록 인도했습니다.
학개: 학개는 성전 재건의 중요성을 외치며, 백성들이 개인적 안녕에만
몰두하는 것을 책망했습니다. 그는 성전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질 것임을 약속했습니다(학 2:9). 학개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과 재정을 통해 영적 우선순위를 정하실 것을 촉구했습니다.
스가랴: 스가랴는 여덟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메시아 왕의 도래와 새 시대의 회복을 강조하며, 예루살렘이 다시 하나님의 중심지가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스가랴는 "그 날에
여호와께서 홀로 왕이 되실 것이라"(슥 14:9)고 선포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나타냈습니다.
말라기: 말라기는 타락한 제사장들과 백성을 향해 경고하며, 참된 경건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엘리야 같은 자'가 올 것을 예고하며(말 4:5-6),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과 회복을 선포했습니다. 말라기는 또한 십일조와 예배에 관한 문제를 다루며, 백성들이 하나님께 올바른 경배를
드릴 것을 강조했습니다.
신약 시대의 선지자가 갖는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직과 삼중직 개념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궁극적인 선지자로 묘사됩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온전히 계시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미래 사건을 예언하는 선지자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고 그것을 직접 실현시키신 분입니다. 이는 히브리서 1장 1-2절에서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의 선지자직은 삼중직(선지자, 제사장, 왕) 중 하나로 이해되며, 각 직분은 예수님의 사역 전반을 설명합니다.
1. 선지자직 (Prophet)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직접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곧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임을 밝히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산상수훈(마 5-7장)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윤리와 가르침을 선포하시며,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미래에 대한 예언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마 24장)과 마지막 심판에
대해 경고하셨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에 대한 소망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지자직은 단순한 예언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회복을 몸소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2. 제사장직 (Priest)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였으나, 예수님은 스스로가 제물이 되어 인류의 죄를 단번에 속량하셨습니다(히 9:12).
이로써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3. 왕직 (King)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영원한 왕국을 다스릴 왕으로 오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6절은 그분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왕직은 단순히 정치적 통치가 아닌, 영적 왕국의 통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과 승천을 통해 그 왕권을 확증하셨으며, 최종적으로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주권 아래에 들어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선지자적 역할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강조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그리스도인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자 “거룩한 나라”로 부르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선포하는 사명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삶 속에서 그 말씀을 구현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1. 복음 전파
예수님은 승천 직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로써 제자들과 이후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선포자로서 선지자적 사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며, 많은 이들에게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각자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마 5:13-16). 이 사명은 단지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2. 공동체 내에서의 선지자적 역할
초대 교회에서는 선지자적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공동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절은 선지자적 은사를 통해 성도를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선지자적
역할이 공동체 내에서 영적 성장을 돕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는 데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현대 교회에서도 목회자, 성경 교사,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은 이러한 선지자적 역할을
맡아 성도들을 가르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여 전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할은 특정 직분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성도가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3. 사회적 정의와 예언적 목소리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불의와 죄악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부패한 지도자들과 불의한 사회 구조를 책망하며 정의와 공의를 외쳤듯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정의를 대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을 위로하시고, 종교적 위선과 부패를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마 23장).
오늘날에도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사회 속에서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성령과 선지자적 사명
신약에서 성령은 선지자적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행 2장)을 통해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할 능력을 받았으며, 각종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곳곳에서 성령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을 인도하고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을 언급하며, 그 중에서도
예언의 은사를 중요한 위치에 두었습니다. 그는 "예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며 권면하고 위로한다"(고전 14:3)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은사는 공동체 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고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또한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진리의 영"으로 소개하시며, 그분이 장차 일어날 일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신약 시대의 선지자는 단순히 예언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복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셨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모범을 따라 선지자적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는 복음을 전파하고, 공동체를 세우며,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될 것입니다.
선지작들의 사역
구약에 소개되는 중요한 선지자들의 사역들을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선지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자들이며, 어떤 선지자는 왕적 권위를 가지고 백성들을 통치하기도 합니다.
1. 모세 (M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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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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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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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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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냄,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음, 40년 동안 광야에서 백성을 이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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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출애굽기 3:10 -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2. 사무엘 (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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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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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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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무엘상, 사무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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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마지막 사사이자 첫 번째 선지자, 사울과 다윗을 기름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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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사무엘상 3:19 -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3. 엘리야 (Elij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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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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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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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열왕기상, 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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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바알 선지자들과의 갈멜산 대결, 하늘로 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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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열왕기상 18:21 -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4. 엘리사 (Eli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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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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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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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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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엘리야의 후계자로 많은 기적을 행함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사르밧 과부의 기름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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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열왕기하 2:9 -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하여 줄꼬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거늘"
5. 이사야 (Isa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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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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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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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사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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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남유다 왕국에서 활동, 메시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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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이사야 6:8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6. 예레미야 (Jer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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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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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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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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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남유다의 멸망을 예언, '눈물의 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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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예레미야 1:5 -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7. 에스겔 (Ezek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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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에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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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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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에스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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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바벨론 포로 생활 중 활동,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 성전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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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에스겔 2:3 -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에게 보내노라 그들은 내게 패역한 자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8. 다니엘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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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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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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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다니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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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바벨론에서의 고위 관리, 여러 환상과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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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다니엘 6:10 -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9. 호세아 (Ho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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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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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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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호세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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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이스라엘의 배교와 회복을 예언, 상징적인 결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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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호세아 1:2 -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하시니"
10. 요엘 (J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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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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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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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요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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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메뚜기 재앙과 회복, 성령 강림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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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요엘 2:28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11. 아모스 (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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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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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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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아모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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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남유다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 정의와 공의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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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아모스 5:24 -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12. 오바댜 (Obad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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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오바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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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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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오바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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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에돔의 멸망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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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오바댜 1:15 -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3. 요나 (Jo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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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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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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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요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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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니느웨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도망,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 후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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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요나 1:17 -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14. 미가 (Mic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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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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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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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미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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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예루살렘의 멸망과 회복 예언,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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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미가 5:2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15. 나훔 (Na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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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나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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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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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나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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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니느웨의 멸망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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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나훔 1:7 -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16. 하박국 (Habakk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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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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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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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하박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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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하나님께 질문하고 답을 받음, 칼데아인을 통한 심판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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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하박국 2:4 -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7. 스바냐 (Zephan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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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스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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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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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스바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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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유다와 열방의 심판과 회복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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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스바냐 3:17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학개 (Hagg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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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학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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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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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학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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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성전 재건 독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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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학개 1:8 -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19. 스가랴 (Zechar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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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스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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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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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스가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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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성전 재건 독려, 메시아와 종말에 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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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스가랴 9:9 - "시온에 따라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에 따라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20. 말라기 (Mal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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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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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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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말라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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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백성의 죄와 회개 촉구, 메시아와 엘리야의 오심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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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절: 말라기 3:1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구약의 선지자들(선지자 연구)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 12:6)
* 선지자(先知者)의 출현
사무엘 이전에도,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와 환상을 받은 자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선지자로 불린 아브라함,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창20:7 중)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였던 모세,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사사 겸 선지자로 활동했던 드보라 등입니다. “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삿4:4) 그러나 본격적인 선지자들의 등장은 사무엘에 이르러서였습니다.
* 선견자와 선지자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로 일컬었더라)”(삼상9:9)
구 분 |
원어의 의미 |
차이점 |
공통점 |
선지자 |
히브리어 ‘나비’로
‘말하는 자’(spokesman),
‘예언자’(prophet)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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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선견자는 계시를 받고 선지자는 계시를 선포함
② 선견자는 선지자보다 훨씬 전부터 사용되던 용어(삼상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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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호제’와 ‘로에’는 선지자를 지칭하기도 함(사30:9~10)
② 양자는 결국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임(삼하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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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자 |
히브리어 ‘호제’ 또는 ‘로에’
모두 ‘보는 자’(seer)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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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역시 선지자!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소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행2:29~30)
다윗 역시도 사도 베드로에 의해 선지자로 증거를 받고 있는데(행2:30), 실제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왕의 선견자였던 헤만’(대상25:5)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계시와 환상을 받아서 75편 가량의 시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궁정 선지자
구약의 선지자들 중 일부는 궁중에 기거하거나, 또는 통치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예컨대 사무엘, 나단, 갓은 다윗 왕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또한 정치적 영향력도 지니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제도권의 선지자들을 일반적으로 ‘궁정 선지자’로 일컫습니다.
* 문서 선지자
선지자들 가운데는 그들의 예언 내용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으로 남긴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타인에 의해 예언 내용이나 사상만이 전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를 보통 ‘문서 선지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주전 8~6세기에 활발한 예언 활동을 하였으며, 보통 붓과 두루마리를 들고 설교하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구약의 대, 소선지서 기자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대(大)선지서와 소(小)선지서
이 구분은 해당 선지자의 활동기간이나 역량이 아닌, 그들이 남긴 선지서의 분량에 따른 구분입니다.
구 분 |
대선지서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5권) |
소선지서 |
호세야,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12권) |
*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18:15)
여기서 ‘나와 같은 선지자’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1차적으로는 모세 이후 여러 세대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일어날 모든 선지자들을 가리키나, 궁극적인 의미에서 이 말은 모세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장이며(출24:6~8) 왕이며(신33:5) 선지자(신24:10)였던 것처럼, 온 인류의 유일한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왕이시고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행3:22,23) /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행7:37)
* 하나님의 비전: 만인(萬人)선지자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당신의 모든 자녀들이 다 선지자 되길 원하셨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적 분리를 상징하던 휘장이 찢어진 이래,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게 됨으로써, 또한 보혜사 성령이 각자의 심령에 임하심으로써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욜2:28,29) / “이는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구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2:16~18)
<구약의 선지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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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선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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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창20:7)
• 모세(신34:10)
• 미리암(모세의 누이 / 출15:20)
• 드보라(사사 겸 여선지자 / 삿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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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왕국
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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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마지막 사사, 제사장 겸직)
• 다윗(시편 75편을 저작 / 행2:30)
• 선견자 헤만(찬양대장 / 대상25:5)
• 나단(삼하7:2~17, 12:1~25)
• 갓(선견자 / 삼상22:5)
• 아히야(실로 사람 /왕국 분열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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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왕국
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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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야(왕상12:22~24)
왕국 분열 직후의 남북 전쟁을 막음
• 아사랴(대하15:1~7)
오뎃의 아들, 아사의 개혁 촉구
• 선견자 하나니(아사에 의해 투옥됨)
• 선견자 예후(대하19:2,3)
하나니의 아들 / 여호사밧을 규탄함
• 야하시엘(레위인 / 대하20:14~17)
• 마레사 사람 엘리에셀(대하20:37)
아하시아와 교제하는 여호사밧 규탄
• 디셉 사람 엘리야(대하21:12~15)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 책망함
•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대하24:20~22)
요아스를 규탄하다가 순교를 당함
• 브두엘의 아들, 요엘(욜1장~3장)
유다인들의 회개를 촉구함
•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사1~66장)
유다 백성들의 경성과 회개 촉구
• 미가(미1~7장)
이스라엘, 유다의 심판과 회복 예언
• 엘고스 사람, 나훔(나1~3장)
니느웨(앗수르)의 멸망을 선포함
• 하박국(합1~3장)
요시아 왕의 재위 말기 예언 활동
• 여선지자 훌다(왕하22:14~20)
요시아의 종교개혁을 촉발함
• 스바냐(습1~3장)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촉구
•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렘1~52장)
유다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함
•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렘26:20~23)
유다멸망 예언, 여호야김에 의해 순교
|
• 아히야(왕상14:1~18)
실로 사람 / 여로보암의 멸문 예언,
• 무명의 선지자(왕상13:1~32)
유다 출신 / 벧엘 제단 규탄
• 예후(왕상16:7)
하나니의 아들 / 바아사를 책망함
• 디셉 사람 엘리야(왕상17장~왕하2장)
우상(바알) 종교와 맞서 싸움
• 미가야(왕상22:13~28)
이믈라의 아들 / 아합의 죽음 예언함
• 엘리사(왕상19:16~왕하13:21)
엘리야의 뒤를 이어 우상종교에 대항함
• 브에리의 아들, 호세야(호1~14장)
고멜과 혼인, 북이스라엘의 회개 촉구함
•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암1~9장)
북이스라엘의 임박한 멸망 예언, 회개촉구
• 아밋대의 아들, 요나(욘1~4장, 왕하14:25)
니느웨의 회개 촉구, 이스라엘 영토회복 에언
• 오뎃(대하28:9~11)
사마리아군인들에게 유다 포로의 석방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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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벨 론
포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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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장 출신, 에스겔(겔1~48장)
바벨론 포로민들을 향한 예언 사역
• 오바댜(옵1장)
유다 침략에 앞장 선 에돔의 멸망 예언
• 예레미야(렘40~44장)
정복당한 유다와 애굽에서 예언활동
• 다니엘(단1~12장)
바벨론 포로지에서의 활발한 활동,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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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귀환
이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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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개(학1~2장, 스5:1,2)
백성들의 각성, 성전의 재건 촉구
• 스가랴(슥1~14장, 스5:1,2)
잇도의 손자, 선지자 학개와 동역함
• 말라기(말1~4장)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느헤미야와 동시대에 사역, 백성들의 각성 촉구
|
(분열왕국시대의 남북 선지자의 분류는 출신지역이 아니라 활동 지역이 기준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2> (편의상 사무엘부터 기술)
선지자 |
활동시기
(주전)
|
부친이름
(고향)
|
특징 및 주요활동 |
주요 본문 |
사무엘 |
1075~1017 |
엘가나의 아들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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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구함’이라는 뜻
최후의 사사, 최초의 선지자
사사시대와 통일왕국 과도기에 활동
미스바 신앙부흥운동을 주도함
사울, 다윗 두 사람에게 기름 부음
다윗의 행적을 기록함(사무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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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1~25:1
대상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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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 |
101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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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또는 ‘주는 자’라는 뜻
다윗 왕조 때의 궁정선지자, 고문
아사리아와 사붓의 아버지
밧세바를 범한 다윗에게 회개 촉구
다윗과 솔로몬 두 왕의 행적을 기록함 솔로몬에게 기름 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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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7:2~17; 12:1~25 |
헤만 |
1003~945 |
요엘의 아들 |
‘충실, 신실’이라는 뜻
다윗, 솔로몬 시대의 충실한 성가대장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로 명성 떨침
왕의 선견자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만들기도 함, 예배찬양의 규범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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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6:33
15:16~19
16: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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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
1010~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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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란 뜻
다윗 왕 때의 선견자, 다윗이 도망 중일 때 이방 땅에 머물지 말고 유다로 들어가라고 함, 다윗의 통치 말기에 인구조사를 행함으로 범죄하자,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을 전했음. 다윗의 행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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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2:5; 24:11~19 |
아히야 |
10세기 초 |
(실로) |
‘여호와의 형제’라는 뜻
왕국 분열 및 여로보암의 등극 예언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을 선포함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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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1:29~40; 14:1~18 |
스마야 |
93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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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응답하심’이란 뜻
왕국분열 직후의 남북전쟁을 막음
르호보암 왕의 행적을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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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1:2~4; 12:5~8 |
잇도 |
97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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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는’이란 뜻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의 행적 기록함(묵시책과 주석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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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9:29; 12:15: 13:22 |
아사랴 |
910~ |
오뎃의 아들 |
‘여호와께서 도우셨다’라는 뜻
구스의 백만 대군을 무찌르고 온 아사에게 종교개혁을 촉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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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5:1~7 |
하나니 |
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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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은혜로우심’이라는 뜻
이 단어는 ‘하나냐’의 단축형임
선지자 예후의 아버지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아람과 연합한 아사를 책망하다가 투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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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7~10 |
예후 |
909~886 |
하나니의 아들 |
‘그는 여호와’라는 뜻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
바아사를 꾸짖고 그 멸망을 예언함
여호사밧이 악인을 도운 행위를 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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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9:2,3
왕상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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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
875~850 |
(디셉) |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
우상(바알) 종교와 맞서 싸움
북이스라엘의 최고 선지자
갈멜 산에서 바알선지자 850명 처단
여호와야말로 참 하나님이심을 선포
선지자 엘리사의 스승
유다왕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 책망함
병거 타고 승천한 불의 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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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7~왕하2장
대하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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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야 |
869~850 |
이믈라의 아들 |
‘누가 여호와 같으랴’는 뜻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이스라엘 유다 연합군의 패배와 아합이 길르앗 라못에서 죽을 것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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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22:13~28 |
야하시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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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 사람
스가랴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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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암몬 연합군과의 전쟁을 앞둔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을 독려함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선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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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20:14~17 |
엘리사 |
9세기 후반경 |
사밧의 아들
(아벨므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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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구원자’라는 뜻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의 제자
엘리야의 뒤를 이어 우상종교에 대항
선지학교를 세워 생도들을 육성함
기적적인 능력으로 조국을 지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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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9:16 ~
왕하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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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에셀 |
853년경 |
도다아후의 아들
(마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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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뜻
유다 여호사밧 왕 때의 선지자
여호사밧이 악한 아하시아와 교제함을 규탄, 그의 배가 파선될 것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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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20:37 |
스가랴 |
835~796 |
여호야다의 아들 |
‘여호와께서 기억하심’이라는 뜻
요아스 왕을 즉위시킨 제사장 여호야다와 공주 여호사브앗의 아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백성들의 배교행위를 질책하고 심판을 선포함. 요아스의 의해 여호와의 전 뜰에서 돌에 맞아 순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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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24:20~22 |
호세야 |
793~710 |
브에리의 아들 |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는 뜻
고멜과 혼인하여 세 자녀를 둠
북이스라엘의 출신으로 여로보암 2세 때 활동, 북이스라엘의 회개촉구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끝없는 사랑을 선포함
성경기록(호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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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1~14장 |
아모스 |
793~753 |
(드고아) |
‘무거운 짐을 진 자’라는 뜻
목자출신, 북이스라엘에서 주로 활동
주변 7개국에 대해 차례로 예언
배교와 방종으로 얼룩진 북이스라엘의 임박한 멸망과 회개를 촉구함
백성들에게 공평과 정의를 촉구함
‘선지자의 아버지’로 일컬어짐
성경기록(아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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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1~9장 |
요나 |
798~752 |
아밋대의 아들
(가드헤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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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라는 뜻
니느웨 성의 회개를 외친 선지자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 지내기도 함.
하나님의 보편적 관심을 기록함
이스라엘의 영토회복 예언하기도 함
성경기록(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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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1~4장
왕하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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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뎃 |
74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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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자’라는 뜻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이스라엘 왕 베가가 유다와 싸워 20만 명을 포로로 잡아올 때 그들을 유다로 돌려보내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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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28:9~11 |
요엘 |
835~796 |
브두엘의 아들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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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
유다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함예루살렘과 유다에서 주로 활동
메뚜기 재앙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선포하면서 유다백성들의 회개 촉구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선지자
회개하고 성령을 경험할 것을 촉구함
성경기록(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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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1~3장 |
이사야 |
739~680 |
아모스의 아들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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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뜻
여선지자인 아내와 두 아들 ‘스알야숩, 마헬살랄하스바스’를 둠
유다귀족출신, 주로 예루살렘에서 사역
유다 백성들의 경성과 회개 촉구
므낫세 왕에게 순교를 당함
희망과 복음의 선지자
회개와 고난을 통한 소망을 강조함
히스기야의 행적을 기록(사36~39장)
성경기록(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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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66장
대하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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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
728~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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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같은 자가 누구냐’라는 뜻
유다 출신의 선지자
이스라엘, 유다의 심판과 회복 예언
겸손, 자비, 정의에 대해 호소함
메시야의 베들레헴 탄생 예언
성경기록(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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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1~7장 |
나훔 |
612년경 |
(엘고스) |
‘위로자’라는 뜻
니느웨(앗수르)의 멸망을 선포함
하나님의 열심히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선포함
성경기록(나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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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1~3장 |
하박국 |
612~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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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안은 자’라는 뜻
요시야 왕의 재위 말기에 예언 활동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을 강조
성경기록(하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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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1~3장 |
훌다 |
622 |
살룸의 아내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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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지자, 예루살렘 둘째 구역 거주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
요시야가 발견한 율법책에 대해 예언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촉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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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22:14~20
대하34: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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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
630년경 |
구시의 아들 |
‘여호와께서 숨겨 주신 자’이라는 뜻
므낫세와 아몬의 영향을 받아 우상숭배에 젖어 있는 유다의 각성촉구
임박한 ‘여호와의 날’에 대해 경고함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촉발함
겸손한 자들의 소망을 강조함
성경기록(스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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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1~3장 |
우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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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야의 아들 |
유다멸망 예언
여호야김에 의해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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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6:20~23 |
예레미야 |
627~586 |
힐기야의 아들
(아나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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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세우시다’라는 뜻
눈물로 회개를 선포한 선지자
요시야를 위해 애가를 지음
유다의 멸망과 회복 예언, 독신생활
정복당한 유다와 애굽에서의 활동, 순교
애굽에서 우상숭배하는 동족들을 꾸짖다가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됨
새 언약의 약속을 예언함.
성경기록(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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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1~52장
대하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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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
593~570 |
부시의 아들 |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
바벨론 1차 침략 때 포로로 잡혀감
포로시대의 제사장이며 선지자
포로민들을 중심으로 한 예언 사역
환상과 소망의 선지자
새로운 예배 공동체를 향한 미래 소망
성경기록(에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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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1~48장 |
오바댜 |
586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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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종, 주의 경배자’라는 뜻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략 당한 직후에, 유다침략에 앞장 선 에돔의 멸망을 예언함.
성경기록(오바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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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1장 |
다니엘 |
605~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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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
유다 지파의 왕족 출신
바벨론 1차 침략 때 포로로 잡혀감
신앙 절개를 지킨 포로 선지자
바벨론포로지에서 활발한 활동, 예언
구약의 계시록으로 평가되는 ‘다니엘서’를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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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1~12장 |
학개 |
52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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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즐거움’이라는 뜻
포로생활 중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
1차 포로귀환 때 함께 돌아옴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공사가 16년이나 중단되자,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성전의 재건을 촉구함
하나님의 집을 우선할 것을 강조함
성경기록(학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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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1~2장
스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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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
520~470 |
잇도의 손자
베가랴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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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억함’이라는 뜻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선지자의 사명을 받았음.
학개와 마찬가지로 성전 재건 독려
8가지 상징적 환상을 보고 기록함.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를 강조
성경기록(스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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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1~14장
스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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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
433~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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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천사, 나의 사자’라는 뜻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느헤미야가 가나안 땅을 떠나 있던 시기에 해이해진 백성들을 향해 각성을 촉구함
하나님만을 높이고 그분의 의를 기다릴 것을 촉구함, 성경기록(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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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1~4장 |
<4대 선지서 비교>
구 분 |
이사야 |
예레미야 |
에스겔 |
다니엘 |
사역연대 (주전) |
739~680
(60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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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586
(41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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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570
(23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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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536
(70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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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명 장 |
사 6장 |
렘 1장 |
겔 1~3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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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사역지 |
예루살렘 |
아나돗, 예루살렘 |
바벨론 그발강변 |
예루살렘, 바벨론 |
예 언 대 상 |
유다인 |
포로된 유다인과
남은 유다인
|
포로된 유다인 |
이방나라 왕들과 포로된 유다인 |
중 심 내 용 |
하나님께서 남은 자에게 영광스런 미래를 약속하심 |
예루살렘의 죄, 운명, 미래의 영광 |
예루살렘의 멸망과 회복
영광스러운 미래
|
4개 왕국과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 |
역사적 배경 |
왕하 15~20장
대하 26~30장
|
왕하 24~25장 |
단 1~6장 |
단 1~6장 |
정치적 상황 |
시리아, 이스라엘의 위협
앗수르의 위협
북이스라엘 멸망
애굽과 앗수르
2강의 각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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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멸망 바벨론의 등장
1차 바벨론포로
애굽과 바벨론 2강의 각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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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중 일부가 포로됨(2차)
예루살렘의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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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3차 바벨론 포로 |
종교적 상황 |
우상숭배 성행
외식적 예배 만연
히스기야의 개혁
|
요시야의 개혁
요시야 사후
다시 과거로 회귀
거짓선지자 만연
|
전민족의 불순종
불신, 반역
|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 그러나 소수의 남은 자 |
|
메시야에 대한
비유적 표현
|
싹, 나의 종 |
의로운 가지
여호와 우리의 의
|
백향목의 연한 가지 |
돌, 인자, 기름 부음 받은 자 |
예언의 강조점 |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가르침 |
바벨론 포로의 당위성, 이를 회개의 기회로 삼아 더 큰 구원을 사모할 것 촉구 |
범죄 결과에 대한 단체적, 개인적 책임, 언약 성취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 등을 가르침 |
열국의 우상보다 뛰어난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 능력은 장소, 상황에 구애 받지 않음을 보여줌 |
구 성 |
66장 |
52장 |
48장 |
12장 |
표현상의 특징 |
선포와 경고 |
상징적 행위 |
비유와 묵시 |
역사와 묵시 |
중심단어 |
구원은
여호와의 것
|
유다의 멸망 |
장차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 |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
비 고 |
복음의 선지자
메시야의 선지자
|
눈물의 선지자
심판의 선지자
희망의 선지자
|
환상의 선지자
포로기의 선지자
|
이방 시대의 선지자 |
구약의 선지자들 이름과 활동시기
구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의 이름과 활동 시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각 선지자의 이름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왕국시기 이전의 선지자들 / 모세, 미리암, 발람, 사무엘
통일왕국 시기의 선지자들 / 나단, 갓, 아히야
분열왕국 시기의 선지자들 / 오바댜(848-841), 요엘(835-796), 아모스(782-739), 호세아(755-715), 미가(740-690), 이사야(740-680)남왕국시대 / 나훔(661-612), 스바냐, 예레미야, 하박국
바벨론 포로 시기 / 다니엘, 에스겔
귀환 시기의 선지자들 / 학개, 스가랴, 말라기
왕국시기 이전의 선지자들 / 모세, 미리암, 발람, 사무엘
모세
모세 이전에도 선지자의 역할을 족장들이 감당하기는 했지만 정식적인 선지자는 모세입니다.
미리암
모세의 누나로 선지자도 활동했지만 강조 되지는 않습니다.
발람
이방 선지자로 이스라엘의 선지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사무엘
사사이자 선지자도 활동한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를 연 인물이었습니다.
통일왕국 시기의 선지자들
나단
다윗과 동시대 인물이며, 다윗이 죽은 후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을 왕 위에 앉힌 주도적인 인물입니다.
갓
다윗과 동시대 인으로 다윗의 개인 선지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할 때 하나님께 기도했던 선지자입니다.
아히야
솔로몬 말기에 솔로몬의 범지를 폭로하고 이스라엘의 분열을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분열왕국 시기의 선지자들
오바댜(848-841)
요엘(835-796)
아모스(782-739)
호세아(755-715)
미가(740-690)
이사야(740-680)
남왕국시대
나훔(661-612)
스바냐
예레미야
하박국
바벨론 포로 시기
다니엘
에스겔
귀환 시기의 선지자들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족장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에서 통일 이스라엘을 이루고 있었던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는 가장 번성하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죽고난후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북쪽의 북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 왕국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된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말년에 행하였던 악행, 즉 이방 신들을 이스라엘로 들어오게 하여 결국에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하였던 영향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은 단(Dan)과 베델(Bethel)에 금송아지를 섬기는 산당을 지어 백성들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숭배하도록 하였고, 남 유다에서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을 위한 성전이 성전산 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과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남 유다에서는 하나님 앞에 신실한 왕들이 나타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으나, 북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바알 신과 아세라 목상과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왕들이 많이 나타나서 나라를 부패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성전의 문을 폐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왕들도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에서 하나님의 앞에 악행을 자행하므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면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하나님은 말씀을 전하면서 선포하는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들은 각 시대마다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잘못된 모습을 경고하기도 하고, 어떤 선지자는 자신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도 있었으며, 곧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회복의 예언들을
전하였던 선지자도 있었습니다.
선지자들 중에는 북이스라엘을 위하여 활동하였던 선지자가 있었으며, 남 유다를 위한 선지자, 그리고 이방 사람들을 위한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위한 선지자 : 호세아, 아모스, 미가.
남 유다를 위한 선지자 :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학개, 요엘, 스가랴, 스바냐, 에스겔, 말라기.
이방 민족을 위한 선지자 : 요나, 나훔, 하박국, 오바댜.
그리고 그 선지자들의 활동하였던 시기적으로 분류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BC 9세기 : 요엘, 오바댜
BC 8세기 :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요나, 미가
BC 7 세기 : 나훔, 하박국, 스바냐, 예레미야.
포로 시대 : 다니엘 , 에스겔.
귀환 시대 : 학개, 스가랴, 말라기.
https://blog.naver.com/byunsdd/221522143360
Hebrew bible
http://blog.naver.com/supax/220591274623
포로 귀환 시대 / 유대민족,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오바댜
오바댜 선지자가 활동하였을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남 유다의 선한 왕 여호사밧의 아들로 왕이 된 여호람은 북이스라엘의 악명 높았던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던 아달랴와 결혼함으로써 남 유다 왕국에 많은 해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여호람 왕은 자신의 왕위를 보존하기 위하여 그의 모든 형제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유다 땅에서 그의 아내가 가지고 들어 왔던 바알숭배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에돔은 남 유다의 속국이었는데 여호람 시대에 독립하게 되었고, 블레셋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이 왕궁을 침범하여 재물을 약탈하는 사건까지도 일어났었으며 이때 왕자까지도 납치하여 갔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선지자 오바댜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 사람들에게 전하였으며, 이방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던 선지자입니다.
요엘
선지자
요엘이 활동하였던 시기의 역사적 배경은, 선지자 오바댜의 역사적 배경 직후인 것 같습니다. 여호람 왕이 죽자 그의 아내였던
아달랴는 왕자와 손자들을 죽기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학살을 당하였던 그의 손자 가운데 요아스만이 여호시바에 의해 구출되어 살아남아 있다가 여호시바와 결혼한 대 제사장인 여호야다에 의해 유다의 왕으로 추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을 받아 요아스 왕은 우상 숭배를 금지시키고 모세의 율법에 따른 제사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대에 선지자 요엘은 남 유다를 위하여 활동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
호세아는 남 유다의 웃시야 왕, 요담 왕, 아하스 왕, 그리고 히스기야 왕 시대에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부터
시작하여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서 망할 때까지 약 40년간 사역을 하였던 선지자입니다. 이때에 남 유다에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고 있었을 때에는 물질적으로 나라를 부흥 시켰으나 나라에는 도적이 들끓었고 종교적으로도 부패하였으며
사회적으로는 음행이 창궐하였던 시기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죽은 뒤 왕위 쟁탈전과 정치적 음모가 끊임없이 나타났으며 백성들은
더욱 탐욕과 착취로 타락하게 되었다가 결국 BC 722년에 앗시리아(앗수르)에게 점령당하여 되었으며 호세아는 앗시리아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 아모스는 남 유다 사람이었지만 그의 사역은 북이스라엘에서 하였습니다. 그가 선지자로 사역하였던 시기는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였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다만 아모스는 호세야보다 먼저 선지자로 사역하였습니다.
요나
선지자 요나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던 니느웨는 당시 앗시리아의
수도는 아니었지만 앗시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그 당시 앗시리아에서는 정치적으로 후계자 선정 문제를 놓고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는데 아스루단 3세가 앗시리아의 왕으로 오르는 후에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있을 때였으며 사회적으로는 열병이
유행병으로 돌고 있었으며 때마침 일어난 일식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민심이 흉흉하였을 때였습니다. 선지자 요나는 북이스라엘
사람이었는데 시기적으로는 허세아가 사역하였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왕 때에 사역하였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는 약 60년 동안 남 유다 왕국에서 선지자 사역을 하였으며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한 후 30년을 더 남 유다에서 사역하였던 선지자입니다.
웃시야 왕 시대에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인하여 번창하게 되어 요담 왕 시대에는 암몬으로부터 3년간 조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 유다의 아하스가 왕이 되어 통치하게 된 후부터는 여호와의 길을 떠났으며, 친앗시리아 정책을 펴면서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성전 문을 폐쇄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악행을 저질렀던 아하스 다음으로 왕이 된 히스기야 왕은 폐쇄되었던 성전의 문을 다시 열었으며 다시 모세의 율법대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하였고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남 유다 왕국은 하나님 앞에서 회복할 기세를 보이다가 히스키야가 죽은 후 다음으로 왕이 된 므낫세 왕 시대에는 또 다시 우상들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때에 수없이 많은 무죄한 피가 흐르게 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때에 선지자 이사야는 므낫세 세력에 반대하다가 톱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미가
선지자 미가는 남 유다의 요담 왕, 아하스 왕, 그리고 히스기야 왕 시대의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였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이며 미가는 이사야 보다는 더 젊은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 미가가 활동을 시작할 때에는 앗시리아가 세력을 얻고 자기의 군대를 몰아 세계정복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주위의 모든 나라들은 앗시리아의 위협 때문에 떨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수리아의 수도 다메섹이 이미 앗시리아의 손에 넘어갔으며, 그 후로부터 10년 뒤에는 북이스라엘이 마침내 앗시리아에 의해서 망하고 말았던 때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던 선지자 미가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향하여 동시에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였습니다. 미가는 선지자들 가운데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에게 동시에 하나님의 경고 메지지를 전파하였던 유일한 선지자였습니다.
나훔
선지자
나훔이 기록한 “나훔서”를 요나서의 속편으로 보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나서와 나훔서, 이 두 책들은 같은 윤리적
맥락에서 니느웨의 역사를 취급하고 있으며, 요나가 니느웨의 회개를 기록했다면,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바냐
선지자
스바냐는 남 유다의 요시아 왕 때 사역하였던 선지자입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기록한 스바냐서는 요시아 왕이 남 유다를 종교적으로
개혁하기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요시아 왕에 의해 이미 폐지된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스바냐가 선지지로 부름을 받기 이전에 살던 시대는 나훔이 살던 시대와 같은
시대로 히스기야 왕 이후의 므낫세와 아몬이 통치하고 있었을 시대였습니다. 므낫세 왕의 통치는 경건한 부왕 히스기야를 따르지 않고
그의 조부인 아하스의 길을 따라 악을 자행하였습니다. 성전 안에 바알 제단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힘놈 골짜기에서 그의 자녀들을 제물로 드리는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그의 아들로서 왕이 된 아몬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계속해서 악을 자행해 왔지만 2년 만에 그가 죽임을 당하게 되어 그의 아들 요시아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하박국이 선지자로 활동하였던 시기는 신학자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의 간섭 없이 언제까지 부패한 정치가 계속되어 무죄한 백성들을 착취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통스럽게 질문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호야김 시대(BC 608~600년경)로 보고 있습니다.
요시야왕은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무리하여 자신의 죽음을 빨리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둘째아들 여호아하스가 남 유다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이집트의 왕 느고에 의해서 폐위되고 이집트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곧 이집트의 왕에 의해서 여호야김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엘리야긴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는 여호아하스의 두 살 위의 형이었으며 25세에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으며 통치에 있어서도 무능력하였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예언서를 불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예레미야는 남 유다 왕 요시야가 왕이 된 지 13년째가 되던 BC 627년경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며 남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갈 때까지 사역하였습니다.
여호야김
4년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시기를 요시아의 날로부터 그때까지 그에게 나타낸 모든 예언을 두루마리를 취하여 기록하라고
하신 명령에 의하여 예언서를 기록하였는데 그의 서기관이었던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술을 받아 적은 기록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박국과 비슷한 시대에 활동하였던 선지자로써 남 유다 왕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활동하였던 선지자입니다.
남 유다 왕국이 신흥제국인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함으로써 유다의 왕들과 수많은 지식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갔습니다. 이때에 바벨론으로 왕과 그리고 지식인들과 함께 끌려갔었던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다니엘
예언자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 했을 때 그 자신과 세 친구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다니엘은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라기보다는 예언자로써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갈 때부터 페르시아 제국의 왕 고레스의 명령에 의해서 유대 땅으로 돌아 올 때까지 약 70년을
사역하였습니다.
다니엘은 3개의 큰 제국의 시대를 지내면서 예언자로 사역 하였습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예언들은 메데 파사, 희랍(그리스), 로마의 흥망성쇠와 그 후의 세상열국,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국의 도래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예언자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제사장 출신의 예언자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앞두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들과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예언활동을 펼친 반면, 에스겔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어 가는 이런 사건들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이와 같은
일들을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백성들과 관련시켜서 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유다 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었는데 이때가 남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기 약 11년 전 쯤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었던 유다의 백성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을 때 활동하였던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언자 학개, 스가랴와 말라기입니다.
학개
유다 백성이 세 번에 걸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갔던 것처럼 그들이 예루살렘과 유다로 귀환 할 때도 세 번에 걸쳐 귀환하였습니다.
첫
번째 귀환은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점령한 직후에, 스룹바벨에 의해 인도 되어졌고, 두 번째 귀환은 이보다 80년이 흐른 뒤
아닥사스왕 7년인 BC 458년에 에스라에 의해 인도 되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귀환은 두 번째 귀환이 있은 후 13년이 지난
뒤인 아닥사스왕 20년, 즉 BC 445년에 느헤미야의 인도를 받으면서 귀환하였습니다.
귀환한 사람들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로 알았고, 곧 재건사업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것은 귀환 첫해 7월에 시작되었는데 기초공사는 빠르게 잘 진행되어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도
성전 재건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하였지만 유다 사람들은 반대하였는데 이와 같은 갈등에 의하여 성전재건은 더 이상 진해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초 작업만을 마친 채 16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다리오 왕 2년이 되던 해에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학개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학개서입니다.
스가랴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는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던 예언가입니다. 예언자 스가랴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네 번에 걸쳐서 받게 되었는데, 첫
번째 계시는 BC 520년 다리오 왕 2년 8월에 임했으며, 두 번째 계시는 첫 번째 계시가 있었던 때보다 3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계시는 2년이 지난 BC 518년 다리오 왕 4년, 9월에 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의 계시는 BC 480년 이후에 임하였습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던 예언자로, 하나님께서 중단된 성전 건축에 대한 촉구하심을 선포함으로써 마침내 BC 515년 3월에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었습니다.
말라기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의 마지막에 기록된 예언자 말라기서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유다 땅으로 귀환한 후에 기록된 예언서입니다. 이때에는
이미 재건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적인 형편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와 비슷하였습니다.
말라기서의
내용면으로 보게 되면 종교적, 사회적 타락과 퇴보,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생활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면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면은 포로 생활을 하다가 유다 땅으로 돌아와 살기 시작한 직후에 볼 수 있었던 시대상에서 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처와 기대를 양면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망하고 본국으로 귀환하여 성전이 재건되면 메시야왕국이 실현 되리라 믿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게 되지 못하자 실망하여 냉소주의와 불신앙이 온 유대 땅에 팽배하였던 시기였습니다.
이와 같은 절망에 처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을 각성 시키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모스 개론
1. 표제
소선지서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제목은 저자인 아모스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것이다.
아모스라는 이름은(히, Amos) “짐을 지다”,
“(짐을) 운반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아마스(히,‘amas)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그 이름의 뜻은 “짐을 진 자”인데,
이것은 아모스가 부름을 받고 전달하였던 엄숙하고도 무게가 있는 기별들과 잘 어울린다.
이 이름은 구약의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2. 저자
전통적으로 아모스를 인정하고 있다.
그는 유다의 광야 지역인 드고아 출신이었다.
그는 이사야처럼 왕궁에 속한 선지자도 아니었고
예레미야처럼 제사장도 아니었다.
그는 양떼를 치고 뽕나무를 재배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양떼를 돌보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아모스 7:14, 15에서 소개되는 아모스의
자서전으로부터 우리는 그가 목자요, 경시받던 뽕나무 배양자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가 가난하였지만 독립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사실은 그가 잠시 그의 양떼를 떠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교육받은 사람도 아니었고, 선지자 학교에서 선교를 위하여 훈련받은 사람도 아니었다.
아모스의 경우에서처럼, 비교적 배우지
못하고 유리한 점들도 별반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사업을 위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고후 4:7)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에 사람을 적합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람됨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모스는 유다를 떠나 이스라엘로 가서 아마도 왕의 여름 궁전이 있고 제일의 송아지 신전이 위치해 있는 벧엘에서
그의 주된 일을 하였을 것이다.
그가 송아지 숭배에 대하여 고발을 하였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아모스는 우상을 숭배하는 대제사장
아마시야의 반대에 직면하였는데, 이 사람은 아모스를 위험한 음모자라고 왕앞에 고소하였다(암 7:10-13 참조). 우리는
아모스의 말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아모스는 그의 단순하면서도 꾸밈없는 변론과 그의 사상의
생동감과 고귀함 때문에 가장 중요한 선지자들의 대열에 들어야 한다.
물질 세계와 도덕 세계의 바탕을 파악하기 위하여 더욱 깊이
꿰뚫어 보거나 하나님의 거룩성, 지혜, 능력에 대하여 더 큰 통찰력을 나타낸 선지자들이 많지 않다.
3. 역사적 배경
아모스는 유다와 이스라엘 양국이 번영하던 때에 부르심을 받아 그의 사명을
성취하였다.
여로보암 Ⅱ세 아래의 이스라엘은 그 세력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호 2:8 참조).
여로보암은 시리아를 정복하여 통일
왕국 시대의 북방 변경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 영토는 북단의 하맛에서부터 사해까지 이르렀다(왕하 14:25, 28).
유다에서는 웃시야 왕이 에돔과 블레셋을 정복하고, 암몬을 굴복시키고 농업과 평화의 목적을 위한 가내(家內)기술을 장려하였고, 크고
힘있는 군대를 양성하여 예루살렘을 철통같이 방비하였다(대하 26:1-15 참조).
외관상으로는
외적으로부터 안전하고 내면적으로 튼튼하였기에, 이스라엘은 위험이나 멸망을 조금도 예기치 않고 있었다.
사실, 앗시리아가 그 상승
세력으로 주의를 끌고 있었지만, 그 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 것은 있을성 싶지 않았다. 번영으로 인한 공통된 열매들자부심,
사치, 이기심, 압박이 유다와 이스라엘 양국에 마음껏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은 초대 왕이던 여로보암
Ⅰ세가 도입한 송아지 숭배(왕상 12:25-33)때문에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아모스와 호세아가 부름을 받고 그들의 예언들을
특별히 북방 왕국을 향하여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송아지 숭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웃시야는
B.C. 767-750년까지의 유다의 유일한 왕이었고, 여로보암 Ⅱ세는 B.C. 782-753년까지의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이었으므로, 아모스의 봉사는 B.C. 767-753년 사이의 어떤 때인 것같다. 아모스의 실제적 예언 봉사가 얼마동안
이루어졌는지에 대하여 책 속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지진 전 이년”(암 1:1)이라는 진술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언제 이 지진이 일어났는지를 확증할 만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아모스는 호세아 선지자와 동시대의 사람이면서 더
나이를 먹었던 것같다.
기록연대
<암 1:1>의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2년"은 아모스서의
기록 연대를 가늠케 한다. 그는 남방의 이사야와 미가보다는 훨씬 빠른 시대의 인물이며, 호세아와는 동시대 인물이다. 여기
여로보암(Jeroboam)은 여로보암 2세를 말한다. 그리고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이때의 지진이 주전 763년 6월 15일에
일어났다고 계산한다. 이렇게 보면 아모스의 활동 시기는 대략 주전 760년경으로 확정된다. 왕하14:25에 의하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했다고 한다. 이는 통일 왕국의 전성 시대인 솔로몬 왕 당시와 같은
것이다(왕상8:65). 또한 이것은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약속했던 이스라엘의 전영역이었다(<신 32:36>). 그러나
나라의 부강과 더불어 국민의 사치와 죄악은 더욱 심각했던 것이다. <암 6:4>은 그들의 사치를 비판하고 있으며, 이에
반하여 <암 2:6,7>은 빈부의 격차와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를 고발하고 있다. 또한 <암 4:1>은
여성의 타락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이 시대는 부요함과 더불어 죄악이 관영한 시대임을 알 수 있다.
4. 주제
아모스의 주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죄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가능하다면 그들로 회개하게 하는 것이었다. 아덴의 도시가 우상 숭배에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의 마음이
격동되었던 것처럼, 아모스도 그가 상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죄들과 사치를 보고 격동되었을 것이다. 그는 물질적
번영으로부터 생겨난 죄악들, 부자들의 사치, 주연, 방탕등을 탄핵했는데, 그들은 가난한 자를 압박하고 뇌물과 강요를 통하여 재판을
굽게 함으로써 이러한 일들을 자행할 수 있었다. 아모스는 호세아보다 죄악들이 저질러진 환경과 그 죄상들에 대하여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백성들의 일상사에서 일어나는 죄악들을 곳곳에 생생하게 파헤치고 있다. 죄된 어떤 행위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고하고, 주변 국가들에게 만일 그들이 계속 죄짓는 일을 고집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틀림없이 임할 것임을 경고하는 일이 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의가 죄를 이기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영광스러운 묘사로써 그의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5. 개요
Ⅰ. 표제 1:1
Ⅱ. 주변 국가들 유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들 1:2-2:16
1. 다메섹 1:2-5
2. 가사 1:6-8
3. 두로 1:9, 10
4. 에돔 1:11, 12
5. 암몬 1:13-15
6. 모압 2:1-3
7. 유다 2:4, 5
8. 이스라엘 2:6-16
Ⅲ. 이스라엘을 위한 예언적 기별 3:1-6:14
1. 예언적 기별들의 확실성 3:1-8
2.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심판을 피할 수 없음 3:9-4:13
3.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슬픔 5:1-27
4. 여호와의 날을 뒤로 미루는 자들에게 임할 화 6:1-14
Ⅳ.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한 이상 7:1-9:10
1. 황충에 대한 이상 7:1-3
2. 불에 대한 이상 7:4-6
3. 다림줄에 대한 이상 7:7-9
4. 아모스에 대한 아마샤의 반대 7:10-17
5.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과 익은 열매에 대한 이상 8:1-14
6. 죄인들의 심판에 대한 이상 9:1-10
Ⅴ. 회복과 축복에 대한 약속들 9:11-15
내용 요약
1장 아모스의 묵시(1-2); 다메섹에 대한 예언(3-5); 가사에 대한 예언(6-8); 두로에 대한 예언 (9-10); 에돔에 대한 예언(11-12); 암몬에 대한 예언(13-15)
아모스가
받은 묵시로(1) 여호와가 음성을 발하신다(2).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악은 이스라엘에 행한 잔악성이니(3) 하사엘의 집과
벤하닷 궁궐에 불을 보내시며(4) 아웬골짜기에서 거민을 끊으며 벧에던의 홀잡은 자를 끊으신다(5). 가사의 서너 가지 죄악은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 에돔에 팔아넘김이니(6) 블레셋의 성읍들은-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가드)(7-8) 멸망당한다. 두로의
서너 가지 죄악은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않았으니(9) 두로 성에 불을 보낸다(10). 에돔의 서너 가지 죄악은 형제를 긍휼히
여기지 않은 것이니(11) 데만에 불을 보내고 보스라의 궁궐을 사른다(12).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악은 영토를 확장하려고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으니(13) 랍바 성과 궁궐을 사르고(14) 방백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한다(15).
2장 모압에 대한 예언(1-3); 유다에 대한 예언(4-5);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6-16)
모압의
서너 가지 죄악은 에돔 왕의 뼈를 불사른 것이니(1) 그리욧 궁궐을 사르며(2) 재판장과 방백을 멸하신다(3). 유다의 서너
가지 죄악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고 거짓 것에 미혹됨이니(4) 불을 보내어 멸하신다(5).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악은 가난한
자에 대해 불의를 행하고(6) 무시하였고, (바알의 성녀와) 행음하며(7) 갖은 악을 행한다(8). 하나님은 아모리 사람을 멸하게
하였고(9) 저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었으며(10), 영적으로 축복하여(11) 성결하게 하셨다(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리니) 수레가 누름같이(13) 아무도 피할 수 없고(14-15) 망하게 된다(16).
3장 정해진 심판(1-6); 하나님의 예언(7-8); 임할 심판(9-15).
이스라엘아(1)
내가 너희만 알았으니 내가 너희의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2).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해야 동행하고(3), 사자는 잡은 것이
있어야 소리 지르고(4), 창애가 있어야 새가 잡히니(5), 여호와의 명령으로 성읍에 재앙이 돈다(6). 비밀을 종에게
보이시고(7) 여호와가 말씀하시니 예언을 하게 된다(8). 아스돗의 궁과 애굽 땅 궁들은(9) 포악과 겁탈을 인하여(10) 힘이
쇠하게 되고 궁궐은 약탈당한다(11). 그러나 사자 입에서 두 다리의 건져냄 같이 적은 수가 건져냄을 받는다(12). 야곱
족속에게 증거하여(13) 벧엘의 단과 뿔은 땅에 떨어지고(14) 겨울궁과 여름궁, 상아궁은 파멸된다(15).
4장 포로(1-3); 우상 숭배(4-5); 돌아오지 않는 자들(6-11); 하나님의 심판(12-13).
가난한
자를 학대, 압제한 바산의 암소들은(1) 낚시로 끌려가고(2) 성은 무너지고 하르몬에 던지운다(3). 벧엘과 길갈에서
범죄하고(4) 수은제와 낙헌제로 광포하였다(5). 양식이 떨어지나 돌아오지 않고, (6) 비가 없어 마르고(7) 두세 성읍이
비틀거리나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는다(8). 깜부기와 팟종이로(9), 염병과 노략과 악취가 코를 찔러도 돌아오지 않는다(10).
너희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불붙는 가운데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돌아오지 않는다(11). 그러므로 내가 (심판을) 행하리니
하나님을 예비하라(12). 대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13).
5장 이스라엘의 운명(1-3);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4-15); 심판(16-27).
이스라엘의
애가이다(1). 이스라엘은 엎드려졌고(2) 많은 사람이 거하던 성읍은 적은 사람이 남게 된다(3). “여호와를 찾으면 살게
되고”(4), (형식적으로 섬기지 말라) 벧엘과 길갈, 브엘세바는 허무하게 되며(5) 요셉의 집은 멸망한다(6). 공법과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은(7)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8) 여호와를 찾으라. 패망이 임함은(9) 정직한 자를 싫어함이요(10) 너희가
지은 곳에 거하지 못함은(11) 너희 죄악의 중함을 인함이다(12). 이 때 지혜자도 잠잠하다(13).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라(14) 그리고 공의를 세우면 여호와께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15). 그러므로 광장에서 사람들이
애곡하며(16) 포도원에서 울 것은 여호와가 지나감(심판을 받음)을 인함이다(17). 여호와의 날은 어두움이요(18,19),
갑자기 만난 것 같다(19). 절기를 멸시하니(21) 번제나 소제를 받지 아니하고(22) 노래도 듣지 않는다(23). “오직
공법과 정의를 흘리고”(24) 광야에서 드린 제물과(25) 우상을 가짐으로 인해서(26) 너희는 포로로 잡혀 가게 된다(27).
6장 포로의 예언(1-7). 완전한 파멸(8-11)과 사악한 자의 최후(12-14).
화
있을진저 시온과 사마리아 산에 있는 자들아(1) 갈레와 대하맛같이 멸망당하고(2) 심판을 생각지 않고(3) 사치와(4)
타락과(5) 일락으로 태만한 자는(6) 사로잡혀 가게 하신다(7). 성읍의 모든 것을 대적에게 주어(8) 다 죽게 되고(9-10)
멸망한다(11). 공법과 정의를 변개하는 너희는(12) 허무한 것을 기뻐하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니(13) 한 나라를 일으켜
학대하리라(14).
7장 1. 황충의 환상/ 심판 보류(1-3); 2. 불의 환상/심판 보류(4-6); 3. 다림줄의 환상/ 피할 수 없는 심판(7-9); 아마샤가 아모스를 핍박함(10-17) - 하나님의 심판은 정해짐.
풀이
움돋을 때 황충을 지어(1) 다 먹게 하시니(2) 미약한 야곱을 위해 심판을 하지 않게 하시며(3),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4)
야곱이 미약하여(5) 이 심판의 뜻도 돌이키신다(6). 담 곁에 다림줄을 잡고 서시니(7) 백성을 다시 용서치 않고(8) 성소를
훼파하신다(9). 때에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가 왕을 모반한다고 하며(10) 아모스의 심판 (여로보암은 칼에 죽고 이스라엘은
포로로 간다)(11)을 듣고 아모스에게 “유다 땅으로 도망가라”(12)고 하고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13)고 한다. 아모스는
뽕나무 배양하는 목자로(14)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여(15) 아마샤에게 이르기를(16) 심판은 정해진 것이며 정녕 포로로
잡혀간다고 한다(17).
8장 4. 여름 실과 광주리 비유(1-3); 심판(4-10); 말씀의 기근(11-14).
여름
광주리를 보이시며(8)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러(2) 애곡과 파괴가 있다고 하신다(3).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를 망케 하는
자들은(4) 거짓 저울로 속이고(5) 가난한 자를 착취하니(6), 여호와는 그들의 소위(所爲)를 잊지 아니하시니(7) 이로 인해
땅은 떨게 된다(8). 여호와의 심판 가운데 천지가 변하고(9) 애통으로 가득 찬다(10). 말씀의 기근을 가지고(11) 말씀을
구하나 얻지 못하고(12) 다 갈하여 피곤하며(13)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니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14).
9장 5. 성전 비유(1-4); 전지전능하신 하나님(5-6); 범죄한 나라의 심판과 긍휼(7-10): 회복(11-15)
주께서
단 곁에 서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고 칼로 살륙하게 하시니(1)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고(2-3) 원수 앞에 사로 잡혀
살륙하게 하신다(4). 땅을 녹게, 바다를 높게, 강을 낮게 하시고(5) 전을 하늘에 세우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6).
이스라엘도 (선민이지만) 구스와 같고(7) 범죄한 나라를 멸하고(8) 그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신다(9). 그러나 화가 없다고
하는 자는 칼에 모두 죽는다(10). 그 날에(마지막 날에)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세우고(11), 에돔의 남은 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업을 얻고(12) 열매 맺게 하시며(13) 돌이키게 하셔서(14) 본토에 심으셔서 다시 뽑히지 않게 하신다(15).
[배경]
우리는 1:1과 7:10~13을 통해 아모스가 유다의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 때에 활동한 선지자임을 알 수 있다.
유다 왕 웃시야는 B.C. 791~740까지 50여년간을 다스렸다. 웃시야는 유다의 적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튼튼하게
증축했다. 그의 치세 동안 유다는 번성했고 한때 선지자 아모스의 영향으로 영적으로 견고하기까지 했다.
[특징]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했다면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고 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속성을
공의 혹은 정의로 파악하고 또한 이것을 인간도덕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가르쳤다. 개인적인 죄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심판대 앞에서
심판받고 국가적인 죄는 국가적인 심판을 받는다. 새계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목적]
아모스가 예언을 하고 본서를 기록한 목적은 이스라엘에서 나타난 생활의 방종과 배교와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선포하며
그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었지만 북 왕국의 타락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한 농부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을 책망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들에게 임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구조]
아모스는 1~9:10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심판을 말하<고 9:11>~15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소망을 말한다.
전자에는 열방과 이스라엘의 심판을 가리키는 다섯 가지 환상이 나오고 후자에는 메시야의 약속이 나옵니다. 아모스는 남쪽 유다
왕국의 드고아에서 양치는 목자에 불과하였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거나,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순전한
마음으로 경건히 신앙 생활을 하던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사명이 주어졌다. 아모스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반영하여 부패한
권력자들이 일으키는 사회 문제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여호와의 말씀에 입각한 사회정의를 부르짖었다.
[내용]
사람은 손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어도 이미 마음으로 율법을 범한다. 이것은 북쪽 왕국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아모스는 하나님께
책망받은 백성의 태도에 대해서 공박했다. 모든 생활이 아모스의 설교 내용에 비춰보면 다 수준 이하였다. 여기에는 아모스가 암소로
비유(<암 4:1>)한 사회적으로 출세를 노리는 야심가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백성들의 마음이 굳어질수록 아모스의
설교 내용도 더욱 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집센 자들에 대한 희망도 남겨 놓았다.이는 우리를 위한 적극적인 축복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우리의 태도조차 바꾸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들의 협력도 요구하십니다.
[교훈]
* 역사적인 교훈: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번영하므로 물질만능주의가 된 북방 지파들에게 그들의 죄를 회개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아모스는 배교와 방종으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을 새롭게하고 새로운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하였다.
* 교리적인 교훈: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의 소유인 백성을 향한 질투와 율법의 거룩성을 가르쳐 준다. 한편 본서에는 모세
율법에 대한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2:7,8,12; <신 23:17; ><출 22:26, ><민
6:1>~21).
* 기독론적인 교훈: 본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장막을 재건하는 자(9:11)와 백성의 남편(9:13)으로 예표되어 있다.
아모스 참고 사항
l. 본문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참조)
l-2장 “코 아마르 야웨(주께서 이떻게 말씀하시기를)”의 구조로 각 나라에 대하여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
3-5장 "샤무우"(들어라)라는 구조로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폭로하고 있다.
6장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며 특히 5:l8과 6장에는 "호이'(화 있을진저)로 시작하여 심판을 나타내고 있다.
7-9장 그리고 아모스는"히르아니'(내게 보이신 것) 즉 하나님의 환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결론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서론 1:1-2과 결론 9:11-16을 나눌 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도
l-2장의 각 나라의 심판을 8개국에 대한 심판이나 7개국(유다와 이스라엘을 같이)의 심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설교에 있어서도 세 가지 설교 혹은 다섯 가지의 설교로 나누는데 구조적으로는 세 가지의 설교와 두 가지의 큰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누어 진다.
2. 본문의 내용은 어떠한가?
1-2장 각 나라의 구체적인 죄악상
l. 다메섹 (Syria)
(1) l:3 에 나타난 다메섹의 죄악상은 무엇인가?(참 왕하 10:32,33)
예후 시대 때 시리아의 하사엘이 길르앗과 바산까지 침공한 것을 가리킨다.
(2) 1:4-5 다메섹의 심판의 예언은 무엇인가?(참고 왕하 l6:6-9)
BC 732 앗수르(Assyria)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멸망하였다. 특히 이스라엘을 괴롭힌 왕 하사엘과 벤하닷을 대표적으로 심판하고(4절) 우상숭배지인 아웬골짜기와 벧에던을 심판 하신다.
2. 가사(Gaza = Philistia) 블레셋
(1) 1:6의 블레셋의 죄악 상은 무엇인가?(참 대하 2l:16,17)
유다 사람을 포로로 에돔 백성에게 팔았던 사실을 말한다
(2) 따라서 l:7-8에서 보여주던 그들이 살던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삼상6:16-17) 도시들은 불살라진다(왕하 l8:8 이스라엘의 승리).
3. 두로(Tyre = Phoenicia)
(l) 1:9 솔로몬시대에 두로왕 히람이 맺었던 계약(왕상 5:12) 즉, 노예 판매 금지 조항에 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2) 1:10절의 심판과 같이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으로 성취되었다
4. 에돔(Edom)
(l) 1:11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이스라엘과 형제의 관계이나 칼로 무자비하게 한 것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
(2) 결국 1:12말씀과 같이 기원전 732년에 틸그랏 빌레셋 3세 때 멸망당한다.
5. 암몬(Ammon)
(1) 1:13 암몬은 롯의 후손으로서(롯과 두 딸의 후손 중 작은 딸은 암몬이었다. 창 19:36-38) 아람과 동맹을 맺어 여인의 배를 갈랐다(왕하 8:l2)
(2) 그 결과 l4, 15절의 말씀대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당했다.
6. 모압(Moab)
(l) 2:l모압의 죄악은 성경에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왕하 3장 26, 27을 비추어 보아 더 럽게 한 행위였다(왕하 23:l6)
(2) 2:2,5 그 결과 모압은 티글렛 블레셋 3세에게 기원 전 734에 정복당하고 결국 느부갓네 살에게 멸망당했다.
7. 유다(Judah)
l) 2:4 유다의 죄악은 율법을 무시하고 거짓 것에 미혹 당하였다
2) 그 결과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였다.
8. 이스라엘(IsraeI)
(l)
이스라엘의 죄악은 ①불의(2:6)한 재판, ②불의한 치부(7절 전), ③음행(바알 숭배 7절후), ④전당을 돌려주지 않음(8절 전
참 출 2, ⑤신행 분리 (8절 후), ⑥하나님의 구원의 역사(9-10절), ⑦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지 않음(1l-l2절)
(2) 그 결과 이스라엘은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며(2: 14-l5) 누름을 당하게 된다(13절)